다락방, 왜 이단이라 하는가?
2013년 호교단체 신년하례회 및 세미나
2013년 01월 13일 (일) 23:51:49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한창덕 목사 / 한국교회연합 바른신앙수호위원회 전문위원

<글 싣는 순서>
1. 다락방의 이단성
2. 다락방의 삼위일체론과 기독론
  1) 삼위일체의 양태론
  2) 다락방의 기독론
3. ‘비밀’이란 단어로 구성된 다락방의 교리들
  1) 베뢰아 귀신론과 동일한 사탄신학
  2) 다른 복음
  3) 다른 그리스도
  4) 번영신학
  5) 신화사상
4. 결론












류광수 다락방은 고신(1995/45, 1997/47/이단), 통합(1996/81/사이비성), 합동(1996/81/이단), 합신(1996/81/위험한 사상, 참여금지), 기성(1997/52/사이비운동), 기감(1998/23/이단), 고려(1995/45/유사기독교운동, 사이비기독교운동), 개혁, 기침 등 9개 교단에서 이단 및 사이비 단체 등으로 규정하였다.

다락방에서는 김기동 베뢰아 귀신론과 같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불행, 질병, 가난, 사건·사고, 재앙 등이 다 사단 때문이라고 하며, 사단만 멸망시켜버리면 그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한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단을 멸해버리셨으니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하면서 구원파와 같은 논리를 전개하고 ‘그리스도의 비밀’, ‘복음의 비밀’, ‘언약의 비밀’, ‘영접의 비밀’, ‘삼위일체의 비밀’, 그리고 ‘임마누엘의 비밀’ 등 비밀시리즈로 이어지는 핵심적인 교리들을 통하여 ‘사람이 하나님 된다’는 지방교회의 ‘신화사상’을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다락방이 베뢰아와 흡사하다는 말을 듣게 된 이유이며, ‘천사 동원권’과 ‘사단 결박권’ 등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것을 자기들의 주장과 같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사람이 하게 된다고 한 이유이다. 그러므로 다락방은 과거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확실히 이단이다.

1. 다락방의 이단성

다락방은 확실한 이단성을 가지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예를 들면 삼위일체에 관한 양태론적 이해나 성자의 인격으로 오셔서 한 분이시지만 온전한 인성을 취하셔서 참 하나님과 동시에 참 사람이 되신 예수님에 관해 “영은 하나님이시고 몸만 사람의 몸을 입고 계신 분”(류광수, <복음편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이라고 하면서 주님의 인성을 반쪽만 인정해서 결국 그분의 온전한 인성을 부인한 것 등이다.

전자는 흔히 한국교회의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 또한 오해였다고 하며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381년에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아폴리나리우스와 같은 사상이기 때문에 변명하기 어렵다.

물론, 어떻게 생각하면 그와 같은 것들은 단편적인 것으로써 실수나 무지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그와 같은 정도의 실수는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이 어떤 목회자라도 할 수 있는 정도인데 그것을 가지고 이단이라 정죄 한다면 거기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하면서 그것은 지나친 처사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단편적인 실수나 무지로 인한 문제에 대해서는 함부로 이단으로 정죄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다락방의 문제는 그와 같은 것들이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는 그들의 전체적인 교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들의 그 교리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이는 베뢰아와 비슷한 사탄신학과 지방교회의 신화사상 등에 핵심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다락방의 또 다른 문제점은 대부분의 이단이나 불건전 사이비 단체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그들의 교회론적인 특징, 즉 교주가 실제적으로는 교인들과 직접적으로 관계되어 있어서 목회자는 다만 관리자에 불과한 것과 같은 체제로 되어 있는가 하면 불건전한 번영신학 등도 문제점이라 할 수가 있다.

2. 다락방의 삼위일체론과 기독론

류광수 목사의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을 바로 알아야 그의 ‘신화사상’을 바로 알 수 있고, 그의 전체적인 주장이 어떻게 지방교회와 연관되는지 알 수 있다.

1) 삼위일체의 양태론
류광수 목사는 삼위일체에 있어서 양태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 한다.

“더 확실한 것은 고린도전서 3장 16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신다. 우리 안에 누가 계신단 말이지요. 하나님이 계신다. 이것 보고 삼위일체, 그래 삼위일체 교리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단들은 전부 삼위일체를 부인하지요”(EBS 양육 테이프 2).

이 내용은 고려 측에서 류광수 목사의 잘못된 삼위일체론을 통하여 지방교회와의 관련성을 지적하고 나아가서는 인간의 신격화, 즉 지방교회에서 ‘사람이 하나님 된다’라고 하는 신화사상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것을 밝히기 위하여 인용하며 비판한 것이다.

지방교회에서는 하나님이 본질이 하나이지만 구별된 세 인격으로 존재 하신다는 정통 삼위일체와는 다르게 본질도 인격도 하나라는 삼일론을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의 신관은 양태론일 수밖에 없는데, 류광수 목사 또한 그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개혁측 나용화 교수는 “성자는 성부와 함께 같은 성령을 가지고 계시므로 성부와 함께 한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전체로 성자 안에 내주하고, 성자는 전체로 성부 안에 상호 내주하신다”는 ‘상호내주’를 통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하나님이 교회 안에 함께 동시에 항상 계신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성경적 진리이므로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이라고 하면서 고려 총회 신학부의 지적은 합당하지 않다고 하며 다락방을 옹호 하였다.

그러나 나용화 교수의 옹호는 정당하지 못하다. 하나님은 신격, 혹은 본질이 하나이시기 때문에 삼위일체 중 삼위의 하나님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며, 위격들이 상호내재 해서 소위 ‘페리코레시스’라 불리는 상호교류와 상호순환이 있어 신성이 분할된 위격들 안에 분할되지 않은 채로 존재하여 세 위격은 각각 자신 안에 동일실체 전부를 갖기 때문에 성부 안에는 성자와 성령이 있고, 성자 안에 성부와 성령이 있으며, 성령 안에 성부와 성자가 있으므로 각 위격은 실체에 관한한 다른 위격들을 완전히 포괄하고 관통한다.

그러므로 이것만 보면 나용화 교수의 옹호가 어느 정도 옳은 것 같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는 갑바도키아의 바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닛사의 그레고리 등 세 교부들의 연구에 의해 상호내주뿐만 아니라 상호구별에 가서야 비로소 정리가 되게 되었으며 오늘의 신앙고백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삼위간의 상호내재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는 서로 다른 위격들과 공유할 수 없는 특성이 있어서 상호 구별되기 때문에 성부는 성자와 성령이 아니고, 성자는 성부나 성령이 아니며, 성령 또한 성부나 성자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내주를 가리켜 삼위일체라고 하면 안 되는데, 나용화 교수는 그것을 무시하고 각 사람의 심령에 임한 성령의 내주를 양태론적 입장에서 삼위일체라고 한 것을 가리켜 정통 개혁주의 삼위일체라 하며 옹호하고 만 것이다.

물론, 각 사람의 심령에 임하는 성령의 내주를 하나님이 거룩한 영이시다라는 측면에서 성령이라 하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며, 이런 측면에서 성경에는 하나님의 영이나 여호와의 신,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을 성령이라 하기도 하고, 또한 삼위 하나님을 본질이 하나요 분리할 수 없는 같은 하나님이란 측면에서 여호와가 예수님으로 인용되기도 하며, 예수의 영을 성령이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호 구별된 인격으로서의 삼위를 말할 때에는 성령을 삼위일체라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성육신 하신 분이 성자가 아니라 성부 하나님이 되기도 하며,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성부라는 ‘성부 수난설’을 주장하게 되기도 하는데, 류광수 목사는 그것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류광수 목사의 삼위일체에 관한 양태론적인 입장은 이 외에도 많이 있다.

다음은 류광수 목사의 <현장복음 메시지>에 있는 것으로, 필자가 보기에는 여기에만 봐도 그의 양태론적 입장이 바글바글한데 이와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리고 그의 주장을 양태론이 아니며 정통 개혁주의 삼위일체라고 했던 나용화 교수가 이 글을 보면 뭐라고 변명할지 궁금하다.

{ △ 이 예수님께서 지금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3가지 치료가 나타나는 것이다. 요 16:4~24절에 주님 재림 오시는 날까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성령을 보내사 너희와 영원히 같이 있겠다고 하였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성부 하나님,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성자 하나님, 지금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 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시다.
△ 베드로가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완전히 힘이 생겨서 바뀌어 버렸다. 바리새인들이 모인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담대히 말했다. “내가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것과 사람의 말을 듣는것 중에서 어느 것이 옳은지 생각해 보라.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노라!”고 담대히 말했다.

△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위협하니까,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였다.
△ 이러고 나서 기도하는데, 행 4:29~39절에 성령이 그대로 임하신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역사하신 것이다. 이것이 안 되어지면 여러분의 일이 안되어진다.
△ 행 2:1~13절에 보니까,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하는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거기 역사하시는 것이다. 베드로가 힘을 얻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하면서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말했는데, 앉은뱅이가 일어나 버렸다. 너무너무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계속 터집니다. 겁도 없이 예수 믿는 사람 잡아 죽이려고 설치는 사울 앞에 주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그 일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 어떤 사람은 큰 실수를 한다. 행 1:8절을 유언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죽었는가? 유언을 하시게? 부활하신 주님의 첫 번째 명령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힘하시면…” 이 말은, ‘나의 영이 너희에게 역사하면’ 이란 말이다.
△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살아계신 증거로 역사하시겠다는 뜻이다. 이 역사가 지금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

류광수 목사의 이와 같은 주장에는 그의 양태론적 주장들이 그대로 녹아 있는데, 간추려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그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재림 때까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실 것이라 하면서 성령으로 너희와 영원히 같이 함께 있을 것이라 하셨는데, 그와 같이 모순처럼 보이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같은 하나님’이라는 것, 즉 ‘성부 = 성자 = 성령’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라 하였고,

둘째, 베드로가 그 사실을 깨닫고 바리새인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한 다음 기도 했더니 성령이 임하셨는데 그것을 부활하신 주님의 역사라고 하였으며,

셋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다른 보혜사를 약속 하시고(요 14:16~17), 승천하시기 직전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고 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이 박해를 피해 도망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 기도하였고, 오순절 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여 제자들이 방언을 하고 각 사람의 위에 불의 혀 같은 것이 갈라지는 모습이 보이게 되었는데 그 오순절의 성령강림을 부활하신 주님의 역사라고 하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이라 하였으며,

넷째,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라고 하신 다음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 가셨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이 그분이 이 세상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이란 뜻에서 유언이라고 한 것에 대해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비판 하면서 성령의 예고를 “나의 영이 너희에게 역사하면”이란 뜻으로 바꾸어 인격적으로 구별되는 제 2위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영과 성령을 같은 분으로 본 것 등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16~17절에서 제자들에게 분명히 당신이 떠나가서 ‘다른 보혜사’를 보낼 것이라 하셨고, 그 다른 보혜사가 제자들의 ‘속에 거하실 것’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오순절 때 다른 보혜사로 오셔서 성도들의 속에 계신 성령과 그분은 분명히 인격적으로 구별되는 분이시다. 그런데도 류광수 목사는 그것을 정면에서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삼위일체는 하나님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구별된 세 인격으로 존재하시지만 본질(본체)이 하나라는 하나님의 존재양식에 대한 표현이다. 그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 하나님이시지만 성부는 성자나 성령이 아니며, 성자 또한 성부나 성령이 아니고, 성령은 성부나 성자가 아니다. 그런데 류광수 목사는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가 양태론자가 아니며, 그의 주장을 정통 개혁주의 삼위일체라 할 수가 있겠는가!

2) 다락방의 기독론
류광수 목사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성도 부인한다. 그는 <복음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 하였다.

①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 1:14).
△ 우리가 만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길을 여셨다.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② 그러므로 그분은 죄가 없고 그 영은 하나님이십니다(고전 15:45).
△ 고전 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③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④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가진 분입니다(마 16:16~19). -영은 하나님이시고 몸만 사람의 몸을 입고 계신 분이 예수님이다.

류광수 목사는 성육신의 목적을 설명하는 가운데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고 하며, “그 영이 하나님이므로 죄가 없다”는 주장을 하다가 “영은 하나님이고 몸만 사람의 몸을 입고 계신 분이 예수”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인성의 영혼의 존재를 부인하였다. 즉, 사람이라면 영혼과 육체가 있어야 온전한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데, 그는 예수님에게 있어서 인성의 영혼이 없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영이 있다고 함으로 그분이 참 사람도 되신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분의 인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이단이다.

그러면 류광수 목사는 양태론 뿐만 아니라 왜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일까?

3. ‘비밀’이란 단어로 구성된 다락방의 교리들

다락방의 교리는 주로 ‘비밀’이란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복음의 비밀’, ‘그리스도의 비밀’, ‘영접의 비밀’, ‘언약의 비밀’, ‘삼위일체의 비밀’, ‘임마누엘의 비밀’ 등이 곧 그것인데, 이것들은 상호간에 깊은 관계가 있다.

다락방에서 말하는 ‘복음’과 ‘복음의 비밀’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스도는 예수님이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직을 가지고 있다는 그분의 삼중직을 의미하고, 영접의 비밀은 그 삼중직을 가지고 계신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임마누엘의 비밀은 그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분이 우리와 임마누엘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락방의 이와 같은 주장들은 겉으로 보기엔 정통교회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인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핵심적인 것에서 서로 의미가 다른 것을 알 수가 있다.

다락방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 교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다. 그들은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다 하면서 사람들은 이리 저리 얘기하지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칭찬하시고 그에게 천국 열쇠를 주었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고, 그것을 증거 하는 것이 다락방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런 것만 보면 다락방의 주장은 정통교회와 같아 보인다.

그리스도란 말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보면 세 가지 직분 자를 세울 때 기름을 부었으니 곧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였다. 다락방에서는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을 강조하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야 한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강조한다.

사실, 이와 같은 주장도 정통교회의 주장과 같아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삼중직의 의미가 정통교회에서 말하는 의미와 다르기 때문에 다락방에서 주장한 그리스도는 정통교회에서 말한 그리스도가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국 정통 교회와 다른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제 그들의 ‘비밀 시리즈’가 무엇이 문제인지 류광수 목사의 신학사상을 통하여 차근차근 살펴보자.

1) 베뢰아 귀신론과 동일한 사탄신학
다락방에서는 베뢰아 귀신론과 같이 귀신이 자신의 수명을 다 하지 못하고 죽은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한사코 자신들이 베뢰아 귀신론이 아니라고 항변 한다. 그러나 그들의 기본적인 주장은 베뢰아 귀신론과 동일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류의 모든 불행이 창세기 3장에 나타난 사건 때문이며, 인간의 타락의 원인은 사단의 유혹 때문이고,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인류는 사단의 종이 되어 그의 영향아래 있으므로 헤어 나오지 못할 운명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각종 사고나 질병, 실패 등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말해 모든 문제는 사탄 때문에 일어난다고 하면서 사탄을 멸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하며, 사탄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구원이라 하기도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논리 형식은 베뢰아와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락방의 교주라 할 수 있는 류광수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축복이 회복되었습니다”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기도 한다.

“창세기 1장 27~28절에 원래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는데, 창세기 3장 1~6절을 보니 마귀에게 이 축복을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요한일서 3장 8절에 예수님께서 이것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래서 회복이 되었는데 옛날과는 다릅니다. 복음을 통해서 회복된 것입니다. 예전에는 예수님 없이 바로 누렸는데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부터는 복음을 통해서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찾아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비밀입니다”(류광수, <파급단계>, p.95).

인간은 마귀 때문에 축복을 빼앗긴 것이지 마귀에게 빼앗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마귀에게 축복을 빼앗겼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그렇다면 마귀는 인간이 가지고 있던 축복까지 가져갔으니 축복받은 존재가 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류광수 목사는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는 요한일서 3장 8절에 있는 성경 구절의 내용까지는 쓰지 않았지만 그는 그 구절을 이용하여 예수님께서 그것을 회복시키셨다고 한다.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다 찾아냈는데 그것이 비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비밀이라고 한 이 주장부터가 그의 비밀이라고 하는 주장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궁극적으로는 타락하기 이전보다 더 놀라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죽음도, 고통도, 눈물도, 한숨도, 질병도 없는 영원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님의 재림 이후에 최종적으로 구원이 완성되어 영화로운 몸이 되었을 때에 그렇게 된다는 것이지 지금 현실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통해 구원받아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더라도 ‘아직’ 최종적인 구원의 상태인 영화로운 몸이 되지 않았고, 천국 또한 어떤 의미로 보면 ‘이미’ 임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아직’ 임하지 않아 완성된 천국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이후에 변해버린 가시나무와 엉겅퀴가 있는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타락하기 이전과는 다르게 죽기도 하고 병들기도 하며, 또 때론 자연의 재해를 통해 고통을 당하며 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락방에서는 이 차이를 무시하고 주님의 복음을 통하여 창세기 3장에서 타락하기 이전의 복을 다 찾아 누리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락방의 비밀 교리들은 이미 여기에서부터 잘못된 것이다.

2) 다른 복음
다락방에서는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그리스도의 비밀’이라 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을 ‘영접의 비밀’이라 하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을 ‘복음의 비밀’이라 하고, 성령의 내주를 ‘임마누엘의 비밀’이라고 하는데, 이 임마누엘의 비밀로 이끌어가는 것이 양태론인 ‘삼위일체의 비밀’과 아폴리나리우스 사상과 같은 예수님의 성육신이며, 그들이 성육신과 성령의 내주를 같은 것으로 보는 이유이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하나님의 자녀에게 임하신 성령의 내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성육신은 삼위일체 중 제 이 위의 하나님이신 성자께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당신의 인격으로 우리와 같은 마리아의 살과 피를 취하여 참 하나님으로써 참 사람이 되신 사건이다. 그러나 그분이 비록 인성을 취하여 사람이 되기는 하셨지만 성자 하나님의 인격으로 오셨기 때문에 두 분이 아니라 한 분 그리스도시요 주로써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써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되신다. 그분은 하나님으로써의 중단됨이 없이 인성을 취하여 신·인이 되신 사건이 바로 성육신인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임한 성령의 내주는 성육신과 다르다.

성령의 내주는 성자 하나님과는 구별되신 성령께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을 기억나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요 14: 26), 그분을 믿고(요 16:7~11),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보증하시고 인치신 것으로(엡 1:13), 거듭나게 하기 위하여 성도들의 심령에 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내주는 성육신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 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성령이 임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다락방에서는 이 둘을 같은 의미로 보기 때문에 각종 ‘비밀’이라 칭하는 교리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며, 인간이 성령의 내주를 통하여 마치 하나님이 되기나 한 것처럼 ‘천사 동원권’, ‘사탄 결박권’ 등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세를 사람도 행한다 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들은 우리가 믿는 복음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복음이다.

3) 다른 그리스도
다락방에서 정통교회와 다른 복음을 주장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그리스도라는 개념이 정통교회에서 믿고 있는 그리스도란 개념과 다르기 때문이다. 다락방의 류광수 목사는 다음과 같은 주장들을 한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세 가지로 압축이 되며 그것도 한가지로 압축됩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창 3:1~20). 그것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났습니다(롬 3:23). 그 배후에는 사단이 미혹하여 인간을 실패시킨 것입니다(요 8:44). 이 문제를 해결한 분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실제로 발견해야 합니다”(류광수, <성경적인 다락방 전도>, p.49).

“근본 문제 해결 - 그리스도다.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서 간단하게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란 말은,
① 사단을 꺽은 왕이다. 기름부음 받은 자 이런 말은 할 필요가 없어요. 전도하는데…그렇죠. 그리스도란 말은 사단을 꺽은 왕이라 그 말입니다.
② 그리스도라는 말은 하나님의 성령이 임할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소개하는 선지자라는 그 말입니다. 성령이 임하죠? 말씀을 따라 성령이 임하니까. 선지자가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까?
③ 그리스도 이 말은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와 실패를 전부 해방시켜 버리신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이 그리스도를 믿으면 지금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고 정말 내가 마음에 믿고 기도하면 그 날부터 성령이 내게 역사하는 것인데 그것을 보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류광수, <기본 메시지>, 1집).

“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자는 어떤 것을 알고 있는 자입니까?
① 그리스도는 창 3:1~20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참 선지자).
② 그리스도는 롬 3:23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참 제사장).
③ 그리스도는 요 8:44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참 왕).
이 사실을 아는 자는 모든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류광수, <성경적인 다락방 전도>, p.17).

“‘그리스도’라는 증거에서 초대교회의 모든 문제해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란 말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글자의 의미는 알아도 사실을 몰랐습니다. 여기서 유대인은 구원을 얻지 못하는 실패에 빠졌고, 초대교회는 이 의미의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세상을 살렸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선지자, 제사장, 왕에게만 기름을 붓는데 바로 예수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되는 참선지자라는 말입니다(요 14:6). 죄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가는 참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세상과 사단을 이긴 참된 왕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을 구원 혹은 성령의 내주(요 1:12, 요 14:16~17, 고전 3:16)라는 것입니다. 구원과 평안의 증거가 실제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분을 구주로 영접할 때 참 제사장의 증거인 해방(미신, 점, 죄, 지옥, 모든 악한 것)되는 증거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증거했습니다”(류광수, <성경적인 다락방 전도>, p.11)>

“그렇다면 전도는 무엇입니까?
①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마4:19, 막3:14~15, 마28:18~20
② 응답하시는 그리스도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엄청난 비밀을 계속 고백 했습니다.
△ 최고의 지식이 그리스도를 얻는 것입니다(빌 3:1~7).
그리스도의 비밀을 발견하면 모든 것을 얻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발견되기를 소원했습니다(빌 3:7~8)”(류광수, <성경적인 다락방 전도>, p.30).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정말로 정말로 모든 일의 원인이 되는 사단의 세력을 꺽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금 구주로 영접하면 거기에서 해방됩니다”(류광수, <기본메시지>, p.2).

진정으로 한 분만 알면 당신 모든 문제가 해결이 다 된다. 진짜 진실하게 얘기했습니다. 당신이 한분만 알면 다 해결된다”(류광수, <기본메시지>, p.3).

이 주장들만 보아도 류광수 목사가 얼마나 베뢰아 사상에 찌들어 있는지 알 수가 있다. 그런데 그는 베뢰아 사상과 같은 주장을 하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성락교회의 김기동 목사와 같은 축사를 하는 대신에 그 자리에 ‘그리스도’를 넣고 그리스도가 현실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했으므로 그런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다락방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는 ‘사단을 꺽은 왕’으로서의 왕이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로서의 선지자이며, ‘인생의 모든 저주와 실패를 전부 해방시켜버리신 분’으로서의 제사장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생의 모든 문제는 창세기 3장 사건 때문에 생긴 것인데, 인간의 타락의 원인은 사단의 유혹 때문이며,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인류는 사단의 종이 되어 그의 영향아래 있기 때문에 헤어 나오지 못할 운명 속에 살고 있고, 사단은 각종 사고나 질병, 실패 등 모든 문제가 발생하게 하는데 예수님께서 사단을 멸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사단을 꺾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해결했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것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라 하며, 그것을 ‘그리스도의 비밀’이라 하고, 그런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을 ‘영접의 비밀’이라 하며, 그것을 ‘복음의 비밀’이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락방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와 정통교회에서 믿는 그리스도는 다르다. 왜냐하면 정통교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서 상의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문 31 : 왜 그를 그리스도, 즉 기름 부음 받은 이라고 부릅니까?
답 :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성령으로 기름 부어 우리의 대선지자요, 선생으로 세우셨습니다. 선지자로서 그는 우리에게 우리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숨은 결정과 뜻을 완전하게 계시하십니다. 그는 또한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으로 세우심을 받으셔서 자신의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려 우리를 구속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늘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영원한 왕으로 세우심을 받으셔서 말씀과 영으로 우리를 다스리시며 다 이루신 구속으로 우리를 보호하시며 보존하십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문 42 : 우리의 중보자를 왜 그리스도라고 부릅니까?
답 : 우리의 중보자를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분이 성령으로 한량없이 기름 부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구별되셨으며, 자신을 낮추신 가운데서나 높이 들림을 받으신 가운데서, 모든 권위와 능력을 충만히 부여 받으셔서 당신의 교회의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의 직능을 다하십니다.

문 43 :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선지자의 직능을 다하십니까?
답 : 그리스도께서는 시대마다 여러 가지 달리 경영하심으로써 사람들을 교훈하고 구원하는 모든 일에 관한 하나님의 온 뜻을 나타내 보이심으로 선지자의 직능을 다하십니다.

문 44 :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제사장의 직능을 다하십니까?
답 :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고자 자신을 하나님께 흠 없는 희생 제물로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계속 중보의 일을 하심으로써 제사장의 직능을 다하십니다.

문 45 :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왕의 직능을 다하십니까?
답 :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세상으로부터 자신에게로 불러내시고 그들에게 직분과 법을 주시고 책망하심으로써 왕의 직능을 다하십니다. 이를 통하여 주께서는 그들을 눈에 보이게 다스리십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택함을 받은 이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부여하십니다. 그들이 순종하면 상을 주시고, 그들이 죄를 범하면 징계하시며, 그들이 시험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거나 원수를 제압하고 정복할 때 그들을 보전하시고 도우십니다. 주께서는 당신의 영광과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모든 사물을 능력 있게 주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복음을 순종치 않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원수를 갚으심으로써 왕의 직능을 다하십니다.

‘그리스도’란 말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구약시대에는 세 종류의 직분 자를 세울 때 기름을 부었다. 세 직분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이었는데, 선지자는 자기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며 메시야를 증거 하는 자로써 말씀이 육신이 되어 참된 선지자로 말씀을 가르쳐주실 예수님을 예표 하는 자였고,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써 제사를 집전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역할을 함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하신 중보자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던 자였으며, 왕은 이방의 왕처럼 절대 권력을 누리며 자신의 뜻대로 통치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인 율법으로 다스리며 그 말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백성들을 보호하고 다스림으로써 우리의 왕이 되셔서 말씀으로 다스리시고 보호하실 예수님을 예표 하는 자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란 말, 즉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세움을 입은 자란 뜻이었으며, 이런 의미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은 예수라는 말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 1:21)이며 그리스도란 말이 기름이라는 상징을 통하여 그것을 부음으로 그 특별한 직분을 수행하게 했듯이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세우신 자로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고백서에서도 그분이 우리의 선지자로써 우리를 교훈하시고, 제사장으로써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지금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중보의 일을 하시며, 왕으로써 순종하면 상을 주시고 죄를 범하면 징계하시며 책망하고 다스리시며 보호하심으로 왕의 직을 수행하고 계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다락방에서는 이와 같이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고백서 상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4) 번영신학
‘사단을 꺾은 왕’,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와 같은 다락방의 그리스도관은 병의 원인이 되는 병원균을 없애버리면 병의 증상도 사라지고 병에 아예 걸리지도 않게 된다고 하면서 병과 죄를 같이 보고 예수님께서 죄를 도말하여버리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가 없고 죄를 지을 수도 없다고 하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내용이 들어있는 주기도문을 암송조차 하지 않는 구원파의 논리와 같이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번영신학으로 이끌어 간다. 그러나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5) 신화사상
다락방에서는 자기들만의 독특한 그리스도의 삼중직인 ‘그리스도의 비밀’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을 ‘복음의 비밀’이라 하며, 그런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영접의 비밀’이라 하고, 성령의 내주를 성육신과 같은 의미에서 ‘임마누엘의 비밀’이라 하기 때문에 다락방의 이와 같은 주장은 ‘사람이 하나님 된다’라고 하는 지방교회의 ‘신화사상’과 같은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다락방의 류광수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리스도’라는 증거에서 초대교회의 모든 문제해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란 말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글자의 의미는 알아도 사실을 몰랐습니다. 여기서 유대인은 구원을 얻지 못하는 실패에 빠졌고, 초대교회는 이 의미의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세상을 살렸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선지자, 제사장, 왕에게만 기름을 붓는데 바로 예수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되는 참선지자라는 말입니다(요 14:6). 죄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가는 참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세상과 사단을 이긴 참된 왕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을 구원 혹은 성령의 내주(요 1:12, 요 14:16~17, 고전 3:16)라는 것입니다. 구원과 평안의 증거가 실제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분을 구주로 영접할 때 참 제사장의 증거인 해방(미신, 점, 죄, 지옥, 모든 악한 것)되는 증거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증거했습니다”(류광수, <성경적인 다락방 전도>, p.11).

“영접 ― 이 말은 성령께서 우리 속에 내주한다. 그러니까 이 말을 이해해야만 영접이란 말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영접시킨다는 말이 보통 말이 아니지요. 신약에서는 영접이라는 말을 요한복음 1장에서 썼는데 구약에서는 쓰지 않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구약에서는 전부 예언이고, 그림자인데 신약에 와서 썼습니다.
구약에는 성령이 임했다. 동행했다. 이 말은 썼지만 성령의 내주란 말은 쓰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시고 난 뒤에 쓴 단어가 성령의 내주입니다. 그렇지요? 이 말을 이해해야만 성령이 우리 속에 오셨다는 이 말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 오셨다. 말씀이 육신을 입어 오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뭐라고 말하느냐? → 성령의 내주!
이것을 이해해야 이해되는 말입니다. 주님이 여러분 속에 오셨다는 그 말이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뭘 주셨으니? ― 권세를 주셨으니…그러니까 창 3:1~20의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버렸어요.
성령의 내주 ― 이 말은 모든 것을 다 회복해 버렸다는 말입니다. 보통 사건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영접해 버리면 몰라서 그렇지 모든 것을 다 회복해 버린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멸망 받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 회복했어요”(류광수, <기본메시지> 기초 M 모음).

“한 가지 발견 ― 모든 것 발견
2.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다.
골 1:26, 골 2~3 이 사실을 믿는 자, 확인한 자, 이 비밀을 가지고 누리는 자는 모든 것을 다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을 다 포함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만 만나면 모든 것을 다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빌3:1~6)”(류광수, <성경적인 다락방 전도>, p.90).

“그리스도를 누리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해결하셨고,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류광수, <성경적인 다락방 전도>, p.50).

“전도는 모든 문제 해결
전도는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누리는 말씀운동이다.
1. 전도
(2) 성도의 가장 축복된 하나님의 비밀을 누리는 것입니다(막 3:14~15)”(류광수, <성경적인 다락방 전도>, p.36).

“육체, 사회, 환경, 가정에 병들기 시작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 해 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순서는 영혼구원 → 마음치유 → 환경치유 → 육신치유입니다. 이 순서를 어기면 또 다시 재발합니다(요삼 1;2, 행 8:4~8, 마 8:15~17)”(류광수, <성경적인 다락방 전도>, p.47).

류광수 목사는 정통교회와 다른 그리스도를 주장하면서 성령의 내주로 인한 성도들의 거듭남을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 1:23)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같은 개념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지방교회와 같은 신화사상이 되어 ‘천사 동원권’ 등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각종 권세를 사람이 하게 된다는 그릇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4. 결 론

다락방은 예수님께서 사탄을 멸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는 잘못된 베뢰아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양태론과 아폴리나리우스와 같은 주장을 하였고, 아폴리나리우스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다 결과적으로 그분의 인성을 부인하게 되었지만 다락방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잘못된 그리스도관을 가지고 구원파와 같은 논리 전개를 하여 번영의 신학이 되었으며, 성령의 내주를 성육신과 같은 것이라 함으로 지방교회의 신화사상과 같은 주장을 하게 되어 인간이 마치 하나님이나 되는 것처럼 천사 동원권 등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각종 권세도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다락방은 베뢰아 귀신론을 바탕으로 하여 구원파와 같은 논리전개를 하여 불건전한 번영의 신학으로 나아갔으며, 그 핵심은 지방교회와 같은 신화사상이기 때문에 비복음적이며 반성경적인 가르침이라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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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설교 “핍박, 그 때가 온다…면하려 하지 말라”
2014년 05월 26일 (월) 01:12:55 전정희 기자 gasuri48@hanmail.net

사상 유래 없는 세월호 대 참사 원인지목! 유병언 父子 현상수배 보상최고액 5억! 139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배임·탈세 혐의….

그러나 대다수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교주 유병언) 신도들에겐 이 모든 게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오래전부터 유병언 교주가 ‘핍박’에 대한 예방교육을 철저히 시켰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10월 15일 유병언 교주의 설교 ‘데살로니가후서를 읽고서’를 보자(영상기사 참고).

유 교주는 먼저, 자신들에게 닥칠 핍박은 현실이라고 말한다.

“핍박을 겪어야 될 그리스도인들…이것은 결코 이론이 아닙니다. 역사의 실체며 …진짜 역사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어서 말한다. 핍박이나 고난, 환란이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고난을 받기로 결정된 집단이라면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된다”고.

“많이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 그 차이일 뿐이지 핍박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도 아무에게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환란이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축복과 함께 연결되는 겁니다. …복음을 아는 의 때문에 고난을 받기로 결정된 집단이라면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됩니다. 이것보다 나은 삶이 어디 있느냐. 궁궐 같은 예배당, 교회? 대단한 조직을 세운 그거?”

또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도 덧붙인다.

“믿는 성도들에게는 기이히 여김을 받는 날이 온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날까지 우리는 세상에 괴롭지만, 남들에게 천덕꾸러기 같이 보이지만 확실히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 구원파 유병언 교주

물론 구원파가 핍박받는 이유는 오로지 복음 때문이다. 구원파, 사이비, 심지어 오대양이라는 핍박도 마찬가지다.

“복음을 미리 알았다, 은혜의 복음을 알았다, 의를 주장했다, 구원에 대한 확신에 대해서 지적을 했다, 여기에 얻어 걸리는 인사가 무엇이냐? 구원파다! 음? 또 심지어 덮을 욕 없는 사람들은 만들어서 사이비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오대양이다! 별 거 다 뒤집어 씌웠습니다.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 할 때, 이것은 아무에게나 내는 게 아닙니다. 어떤 거스려 더러운 소리를 해도 복음은 계속 진행되고 있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핍박을 면하기 위해서 떠나면 핍박은 우리에게 가중됩니다. 떠난 사람들은 많이 갔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간직되어 왔습니다. 역사는!”

“예수 믿고 편하기를 원해요? 또 타협하기를 원해요? 인터넷을 찾아보면 괴상치도 않습니다. 그러나 너무 거짓들이 많습니다. 다 같이 따라합시다. 너희를 거스려(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또, (마태복음 5장) 10절 다시 보겠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천국이 저희 것이라) 나를 인하여(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때는(모든 악한 말을 할때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유 교주의 설교에 따르면 핍박은 결국 구원파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절대 외면해선 안 된다.

“이것(핍박)은 영광의 길에 서는 하나의 척돕니다.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이것은 우리에게 그림자같이 깔려 있습니다. 억지로 핍박을 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경찰과 검찰의 유병언 교주 일가 검거작전에 대해서조차 “갈 데 까지 가 보자”며 결사항전 하는 구원파 신도들의 모습이 아마 여기서부터 기인된 게 아닌가 짐작된다.

교회와 신앙

로마 교황의 축복과 저주

 

* 이 글은 영국과 호주에서 발간된 「Papal Blessings and Curses」라는 소책자를

스위스의 구영재 선교사님이 번역한 것입니다.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릅니다」(도서출판 두루마리)에 수록돼 있습니다.

 

  1990년 이탈리아에서는 월드컵 세계축구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특별히 카톨릭 국가인 아일랜드 팀을 축복하고 다음날의 경기에서 승리할 것을 기원하였다. 그러나 교황의 축복은 오히려 아일랜드 팀에게 패배를 안겨다 주었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 세계제패를 꿈꾸며 결승에 진출했던 이탈리아 팀 역시 바티칸에서 로마 교황으로부터 특별축복을 받고 출전했으나 역시 패배의 잔을 마셔야만 했다. 이탈리아의 신문들은 로마 교황의 축복에 대해 의심했으며, 로마 카톨릭교의 주간지 [카톨릭 위클리](Catholic Weekly, 1990년 7월 25일자) 조차도 로마 교황의 축복의 효력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글을 실었다.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1588년 스페인 함대에 일어난 일을 잘 알고 있다. 무적함대를 자랑하던 스페인의 필립 2세는 영국을 정복하여 로마 교황에게 되돌려 주려고 금과 군인과 로마 교황의 축복을 가득 실은 [아르마다] 함대를 출항시켰다. 그러나 로마 교황의 축복은 그들에게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음이 곧 드러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쳐서 흩어 버리시고 그들 대부분을 산채로 수장시켜 버리셨다. 역사는 로마 교황의 축복이 가져다주는 치명적인 것들에 대한 수많은 예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 작은 책자를 통해 독자는 로마 교황의 축복과 저주가 어떻게 일관성 있는 결과를 가져왔는지 이제 보게 될 것이다.

 

로마 교황의 축복


1) 로마 교황 비오 9세(1846~78)는 시실리아의 왕에게 “황금 장미”(역자 주: 로마 교황이 축복한 황금 장미는 특별한 명예의 상징이며, 순금으로 제작되어 로마 카톨릭 국가의 원수, 교회, 도시 등에 기증되었다. 이 황금 장미의 실물은 프랑스 파리의 끌리니 박물관 Museede Paris에도 소장되어 있으며, 좀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면 대영백과사전의 “Golden Rose”란을 참조하기 바란다)를 보냈다. 그런데 이 왕은 그 축복을 받은 지 일년이 채 못 되어 왕좌에서 쫓겨났다.


2) 역시 같은 로마 교황 비오 9세가 오스트리아의 황제를 축복했을 때, 황제는 일년이 못되어 베네치아를 잃었고, 사도와에서 참패를 당했다.


3) 로마 교황 비오 9세는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에게 황금 장미를 보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녀는 왕좌에서 쫓겨나 망명 중에 죽었다.


4) 로마 교황 비오 9세는 프랑스의 위제니 왕후에게 황금 장미를 보냈다. 일년이 채 못 되어 왕과 왕비는 권좌에서 쫓겨났고, 둘 다 망명 중에 죽었다. 그들의 외아들이었던 왕자는 아프리카에서 줄루족에 의해 살해되었다.


5) 브라질의 왕후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삼일 후 왕후의 다리가 부러졌으며, 왕과 왕비는 권좌에서 쫓겨났고 귀양 중에 죽었다.


6) 브라질의 왕위 상속자였던 공주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곧 기형아를 출산했으며 망명 중에 죽었다.


7) 로마 교황은 멕시코의 막시밀리안 황제를 축복하였다. 그러나 황제는 곧 권좌에서 쫓겨났으며, 국민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8) 로마 교황은 역시 그 황제의 과부를 축복하였으나 그녀는 불치의 정신병에 걸려 망명 중에 죽었다.


9) 1890년 로마 교황은 수녀들을 가득 싣고 남아프리카를 향해 떠나는 증기선을 축복하였다. 그러나 이 배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실종되었다.


10) 로마 교황은 몬테비데오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호화 여객선을 축복하였다. 그러나 이 배는 이틀 후 침몰하고 말았다.


11) 로마 교황은 프랑스의 로마 카톨릭교도였던 불랑제(George Boulanger, 1837-91) 장군을 축복하였다. 그러나 채 2주가 못되어 그는 추방되었고, 그후 자신의 정부(情婦)의 무덤 앞에서 자살하였다.


12) 미국 남북전쟁의 영웅이었던 셔만(W. T. Sherman) 장군의 부인은 로마 교황으로부터 황금 장미를 받은 직후에 죽고 말았다.


13) 윈드호스트(Ludwig Windhorst, 1871년에 결성된 독일 로마 카톨릭 중앙당의 지도자) 박사는 로마 교황이 수여하는 그리스도 훈장(Order of Christ))을 받은 뒤 채 일년이 못되어 죽었다.


14) 1895년 다마스커스의 대주교는 빗토리아(Vittoria)에서 스페인의 군대와 함대에 로마교황의 축복을 기원하였다. 그 결과 스페인은 두 개의 함대와 두 개의 군단을 잃었다.


15) 1897년 로마 교황의 사절단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대자선 바자회를 축복하였다. 그러나 5분이 채 못 되어 바자회는 불길에 휩싸였고, 오스트리아 황후의 자매를 비롯해서 거의 150명의 상류인사들이 사망하였다.

 

16) 가련한 오스트리아의 황후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황금 장미를 받았다. 그 후 황후는 스위스의 제네바 호숫가에서 살해되었고, 그의 아들은 자살을 했으며, 왕위계승자였던 그녀의 조카 페르디노는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해 세계 제1차대전이 일어났다. 그 후 오스트리아는 더 이상 제국으로 불려지지 않았다.


17) 로마 교황을 방문한 영국의 국왕 에드워드 7세는 교황 자신의 서명이 들어있는 레오 13세의 사진을 기념선물로 받았다. 그러나 바로 영국군이 소말리아에서 역전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왕의 건강은 악화일로를 치달아 죽을 때까지 회복되지 못했다.


18) 로마 교황은 영국 국왕의 특사였던 덴비(Denbigh)경을 축복하였다. 바로 그 날 남아프리카의 영국군은 참패를 당했고, 미투엔(Mithuen)경은 중상을 입었다. 영국의회의 로마 교황 신봉주의자들은 이 뉴스를 듣고 기뻐했다.


19) 1923년 바텐베르크(Battenberg)의 에나(Ena) 공주는 결혼식 날 로마 교황의 축복을 받았다. 나흘이 채 못 되어 그녀는 로마 카톨릭 무정부주의자들의 습격을 받아 13명이 사망하고 80여명이 부상당하는 와중에서 겨우 도망쳐 목숨을 건졌으나 그녀의 결혼 예복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1931년 5월, 그녀와 남편(알폰소 13세 왕)은 왕좌에서 쫓겨나 스페인으로부터 탈출하였다.


20) 1906년 로마 교황은 로마 카톨릭교로 개종한 세르비아의 나탈리(Natalie) 여왕을 축복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망명 중에 죽었으며, 그녀의 외아들은 왕위에 올랐다가 살해되었다.


21) 오를레앙(Orleans)가에 속한 포르투갈의 한 왕비는 로마 교황의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왕이었던 남편과 장남은 마차를 타고 가다가 왕비 옆에서 살해되었고, 목숨을 건진 왕비는 살아남은 다른 한 아들과 함께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그 후 포르투갈은 공화국이 되었다.


22) 권세가 극에 달했던 독일의 황제는 1908년 로마 교황을 방문하고 그의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1918년에 왕위를 잃었고 망명 중에 죽었으며, 독일은 패망하여 약소국으로 전락하였다.


23) 1914년 영국의 재산가였던 다이어 에드워드(Dya Edwards)는 로마 교황의 신봉자가 되었다. 그 뒤 1916년에 그는 로마를 방문하고 로마 교황의 축복을 받았다. 그리고 4일 후에 그는 죽었다.


24) 1926년 로마 교황은 벨기에의 엘리자베스 왕비에게 황금 장미를 보냈다. 1934년 왕 알베르 1세는 등반사고로 죽었고, 그들의 며느리였으며 왕비가 되기 위해 로마 카톨릭교로 개종한 스웨덴 출신의 아스트리드 왕비 또한 스위스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

 

25) 1928년 로마 교황은 비행선 이탈리아를 축복하고 북극점에 놓을 십자가도 주었다. 그러나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비행선은 추락하여 두 동강이가 되었고, 승무원의 절반은 실종되었다. 노빌(Nobile) 장군은 부상을 입었고, 그 후 사건조사 위원회로부터 심한 견책을 받았다. 이 사건은 그 당시 최악의 사건이었다.


26) 무솔리니가 이디오피아(Abyssinia - 이디오피아의 옛 이름) 사람들을 학살하고 그 땅을 약탈했을 때, 로마 교황은 이탈리아 국민을 "위대하고 선량한 국민"이라고 축복하였으나 무솔리니와 그의 정부(情婦)는 살해되어 거꾸로 매달려 군중에게 공개되었다.


27) 1961년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로마 교황청의 요청대로 검은 색 의상을 입고 로마 교황을 방문하였다. 그 이후로 해가 지는 일이 없었던 대영제국은 쇠퇴의 길로 들어섰으며, [로마협약]에 의한 유럽공동시장에 가입함으로써 그 주체성을 잃고 경제적으로 로마에 예속되는 길을 걷게 되었다. 또 영국 왕실 왕족들이 로마 교황과 잦은 접촉을 함으로써 자신들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정치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안겨 주었다.


28) 1963년 3월 7일, 소련의 후르시초프(Krushchev) 수상은 로마 교황과 직접 접견하지는 않았지만, 바티칸-소련간의 관계개선을 증진시키기 위해 딸과 사위인 아주벨(Adzubel)을 로마에 보내어 로마 교황을 접견케 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일년 반이 지난 후 1964년 10월 16일, 그는 권좌에서 밀려나 당서기장직을 사임하였으며, 그 이후로 그는 정치세계에서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


29) 1963년 7월 2일,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로마 교황을 접견하고 축복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월남파병 병력을 증강시킴으로써 미국을 월남전에 깊이 개입시켰다. 그리고 1963년 11월 12일에 그는 암살당하고 말았다.


30) 1964년 로마 교황은 황 금장미를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 보냈다. 그 이후로 이스라엘 영토 내, 특히 "거룩한 장소"로 불리는 곳에서는 끊임없는 소요가 잇달아 일어났다.


31) 1964년 5월 12일, 요르단의 후세인 왕은 로마 교황을 접견했다. 일 년 후 1965년 6월 5일, 요르단 군은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에게 대패하였고 많은 영토를 잃게 되었다.


32) 1964년 10월 12일,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대통령은 그 권력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로마 교황을 접견하고 평범한 신도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명예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1967년 2월에 축출당하고 말았다.


33) 호주의 노동당 당수인 아더 콜웰은 로마 교황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곧이어 그의 정치 생활은 끝이 나고 말았고, 결국 정치무대로부터 사라지게 되었다.


34) 1965년 10월 5일 로마 교황 바오로 6세는 뉴욕 시를 방문해서 유엔총회에서 연설하였다. 존슨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로마 교황을 방문하였고, 미국을 위해 뜻 깊은 방문이라며 환영하였다. 대통령은 자신의 부인과 딸을 로마 교황에게 소개하였다. 그 후 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미사에 자주 참석하였다. 1968년 4월 1일, 그는 차기 선거에 나서지 않을 것을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은퇴하였으며, 일년 후 사망하였다. 그가 임기를 치른 3년은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때였다. 50만 명 이상의 미군이 월남에 파병되었으나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대학가에서는 반전데모가 한창이었고 흑인 폭동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해외에서의 미국의 위신은 크게 실추되었다.


35) 1966년 4월 24일, 그리스의 콘스탄틴 왕과 마리 왕비는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일 년 후 1967년 4월 21일, 일단의 육군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콘스탄틴 왕을 폐위시켰다. 같은 해 12월 12일 친 왕파가 일으킨 쿠데타가 실패하자 왕과 그 가족은 그리스로부터 탈출했다.


36) 1967년 2월 5일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함과 동시에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그러나 1968년 6월 6일 그는 암살되고 말았다.


37) 1967년 6월 1일, 프랑스의 드골 장군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의 전쟁 주축국이 항복한 후 형성된 평화위원회에 바티칸 대표를 절대 용인하지 않겠다는 종래의 태도를 바꾸어 로마 교황과 화해하기 위해 로마 교황을 접견했다. 그러나 1969년 8월 24일, 드골 대통령은 헌법개정안이 부결된 후 사임하고 말았다.


38) 1967년 5월 12일, 로마 교황 바오로 6세는 포르투갈의 파티마(Fatima)를 방문하녀 그 당시 수상이었던 살리자 박사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일 년 후인 1968년 9월 8일에 살리자 수상은 중풍에 걸려 사임하고, 캐타노 박사가 새 수상이 되었다.


39) 1969년 7월 31일, 로마 교황 바오로 6세는 아프리카의 우간다를 방문하여 자신을 초청한 밀톤 오보테 대통령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고 우간다 국민을 축복하였다. 그러나 1971년 1월, 오보테 대통령은 이디 아민이 일으킨 쿠데타에 의해 하야했고 국외로 추방되었다. 그 후 8년 동안 우간다 국민은 이디 아민의 폭정에 시달렸다. 1975년 9월 10일, 이디 아민 대통령은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그러나 1979년 4월 12일, 인접한 탄자니아에서 온 해방군은 이디 아민의 군대를 격파하였고, 이디 아민 대통령은 해외로 탈출하였다.


40) 1970년 9월 29일, 닉슨 대통령은 로마 교황을 방문하고 월남전으로부터 모든 미군을 철수시킬 계획을 말하였다. 이 때 그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냉대를 받고 축복도 받지 못하였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은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였다. 불행하게도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닉슨 대통령은 미국 헌법이 바티칸의 공식 대표부를 두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자신의 개인적인 특사를 바티칸에 보내어 로마 교황청과 타협하였다. 1972년 12월 21일, 닉슨 대통령의 딸 패트리샤와 사위는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그러나 1974년 8월 24일,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불명예스럽게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41) 1970년 10월 10일 이디오피아의 하이레 셀라시에 황제는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1972-73년에 걸쳐 이디오피아는 심한 기근과 가뭄에 시달렸다. 1974년 8월, 그는 쿠데타에 의해 폐위당하고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였다. 1975년 8월 27일, 그는 감옥에서 죽었다.


42) 1970년 11월 30일, 로마 교황 바오로 6세는 파키스탄을 방문하고 폭풍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돌아보고 난민들을 동정하였다. 그러나 1971년 3월, 내전이 일어나 일 년 이상 계속되었고, 수십만의 사람이 죽고 수백만이 난민이 되었다. 1972년 4월, 로마 교황의 방문을 허락하였던 칸(Khan) 대통령은 인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하야했다.


43) 1970년 12월, 로마 교황 바오로 6세는 호주를 방문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위대한 호주 위에 함께 하기를, 또 평화와 번영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 호주를 축복하였다. 그의 추종자들은 매우 기뻐하며 국가 위에 큰 축복이 임하기를 기대하였으나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1973년 4월 27일, 위트램 수상은 로마 교황을 접견하고 몇 달 후 국민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호주 역사상 최초로 바티칸과의 외교 관계를 열었다. 그 후 많은 노동쟁의가 일어났으며, 절제 없는 임금인상 요구, 경제 불황, 17%에 이르는 높은 인플레이션, 심각한 실업률 등은 1982년이 되도록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974년 12월 15일, 다윈 시는 무서운 폭풍우에 의해 초토화되었고, 1975년 12월 13일 호주 노동당은 선거에서 대패를 당했다. 프레이저가 수상이 되었고 다시 한 번 노동당이 참패하면서 위트램은 당수직에서 물러났다.


44) 1972년 10월 5일, 영국의 히드 수상은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1973년 12월 17일,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경제적, 산업적 위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1974년 3월 4일, 보수당이 패배하고 히드 수상은 사임하였다. 1975년 2월, 마가렛 대처가 당수가 되고 히드는 당수직에서 물러났다.


45) 1972년 11월 14일, 망명 중이던 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이었던 페론은 새 대통령으로 부임하기 전에 로마 교황을 먼저 접견하였다. 그러나 1974년 7월 2일, 그는 일년간의 공직생활 후 심장마비로 서거하였다.


46) 1973년 4월 9일, 월남의 티우 대통령은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그러나 1975년 7월 24일, 월남군은 월맹군과 베트콩에 의해 완전히 축출되어 티우는 해외로 탈출하였다.


47) 1975년 6월 4일, 포드 대통령 부부는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1976년 11월 4일, 포드 대통령은 선거에서 패배하고 지미 카터가 새 대통령이 되었다.


48) 1977년 7월 4일, 호주 수상 프레이저는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프레이저 수상에게 재앙이 내리는 대신에 1978년 8월 6일 로마 교황 바오로 6세가 죽었다. 새로 선출된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1세도 급작스럽게 죽었다. 그러나 프레이저 수상에게 올 재앙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인플레이션 대응책은 큰 실패로 돌아갔고 호주는 최대의 실업률로 인해 크게 곤경을 당했다.

 

49) 1978년 2월 14일,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그러나 1981년 10월 7일 그는 암살당했다.


50) 1979년 11월,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터키를 방문하녀 디머렐 수상의 영접을 받았다. 1980년 9월 12일, 디머렐 수상은 이브렌 장군이 이끄는 터키 군부의 무혈 쿠데타에 의해 하야하고 말았다.


51) 1979년 10월,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미국을 방문하자 교황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을 뿐 아니라 백악관에까지 초청하였고, 의회 연설까지도 하게 했다. 연이어 카터 대통령은 1980년 6월 23일 개인적으로 바티칸을 방문하였다. 1980년 12월 선거에서 그는 레이건에게 압도적인 대패를 당했다. 로마 교황의 두 번에 걸친 축복도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52) 1981년 2월, 오히라 수상은 일본을 방문한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환영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12일 그는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53) 1981년 2월,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필리핀 군도를 방문하여 관습대로 땅에 입을 맞추고 필리핀을 축복하였다. 그 이후 이 나라는 태풍의 피해로 인해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상실하였다. 마닐라의 대주교인 신 추기경은 필리핀의 경제가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The Age, 1981년 1월 2일자). 마르코스 대통령은 굴욕스럽게 쫓겨났고, 새 대통령이었던 아키노는 인기를 잃었다. 재앙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 것이다.


54) 1980년 5월 9일,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가나의 아크라를 방문하여 리만 대통령의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1982년에 로링스는 군사혁명을 일으켜 리만 대통령의 부정부패를 규탄하고 그 정권을 축출했다. 리만 대통령은 해외탈출을 시도하다가 체포되었다.


55) 1980년 6월 2일,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프랑스를 방문하여 지스까르 데스땡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원수 급의 예우를 받고 개인적인 면담을 가졌다. 그러나 일 년이 채 못 된 1981년 1월 5일,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 당수인 미테랑에게 패배 당했다.


56) 1980년 7월 1일, 로마 교황은 10일 간에 걸쳐 브라질을 방문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82년에 브라질의 정부 관리들은 900억불의 외채를 지고 있음을 시인하였고, 1983년에는 지난 5년 동안의 가뭄으로 인한 기근이 브라질 일부지역을 휩쓸었고 브라질은 경제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57) 1981년 11월 11일, 인디라 간디 인도 수상은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그러나 1984년 11월 그녀는 시크교도인 자신의 경호원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58) 1982년 2월, 로마 교황은 나이지리아를 방문하여 세가리 대통령의 영접을 받았다. 그 뒤 세가리 대통령은 바하리 장군이 이끄는 쿠데타군에 의해 축출 당했고, 3년 후인 1985년에 바하리 대통령도 다고냐라 장군이 이끄는 쿠데타군에 의해 축출 당했다.


59) 1982년 6월, 로마 교황은 아르헨티나를 방문하여 야외 미사에서 갈티리 장군을 비롯한 군 수뇌 장성들을 축복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4일 후 아르헨티나 군은 포클랜드 섬의 스탤리 항에서 영국군에게 항복하고, 갈티리 장군은 사임하였다. 1983년 10월에는 아르헨티나 공군의 고위 장성 두 명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은 공군 사령관 플레시 장군이었다. 갈티에 장군은 12년 징역형을 언도받았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60) 영국은 사상 초유로 로마 교황이 영국을 방문하겠다는 호의를 수락하였다. 그러나 1982년 5월로 예정된 로마 교황의 영국 방문을 몇 주 앞두고 영국은 국민의 95%가 로마 카톨릭교도국인 아르헨티나와의 전쟁에 휘말려들었다.


61) 1982년 9월, 모나코의 그레이스 왕비는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이 사고가 있기 약 2년 전 왕과 왕비는 로마에서 선전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로마 교황을 접견하였다.


62) 1984년 5월,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푸아 뉴기니를 방문하여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같은 해 9월, 뉴브리튼 섬의 물루웨이 화산이 분출하여 섬 주민들이 급히 대피하였고 1985년에는 집단강간, 살인, 강도 등의 폭력사건이 온 섬에 만연하였다. 1986년에 지도자였던 소매어는 윙티에 의해 축출되었다.


63) 1984년 5월, 로마 교황은 구아달카날과 호니아라를 방문하여 솔로몬 군도를 축복하였고, 아울러 인근 피지와 바노트 섬에서 온 방문자들도 축복하였다. 그런데 1985년 1월에 에릭이라는 이름을 가진 태풍과 니켈이라는 이름을 가진 태풍이 연달아 섬들을 강타하였다. 특히 피지와 바노트에 있는 가옥과 농장은 큰 피해를 입었다. 1986년 3월,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태풍이 솔로몬 군도를 강타하여 그 지역을 황폐케 만들었고, 섬주민의 절반은 집을 잃었고, 이 태풍은 계속해서 시카이나, 말라이타, 구아달카날, 산 크리스토벨 섬들을 강타하였다.


64) 1985년 8월 13일, 로마 교황은 아프리카의 카메룬 국의 보멘다 시를 방문하고 근처에서 야외 미사를 가졌다. 그로부터 1년 후 화산호(湖)인 니요스 호수에서 독가스가 분출되어 보멘다 시의 외각지대의 촌락들에서만 2천 명이 사망하였고, 짐승과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하였다.


65) 1986년 11월 22일, 로마 교황은 랭 수상이 이끄는 뉴질랜드를 방문하여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1989년 8월, 랭 수상은 더 이상 정치적 압력을 견디다 못해 사임하였다. 비록 그가 속한 당이 1987년 8월 선거에서 이겼지만 그에 대한 개인적인 추문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다.


66) 1986년 11월 25일, 뉴질랜드 야당 당수였던 하워드는 의회에서 로마 교황을 환영하였다. 그의 환영 연설문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로마) 교황께서는 이 시대의 가장 존경받는 기독교인으로서 이곳을 방문하셨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위대한 교회의 가장 추앙 받는 지도자로서 환영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최고 멤버로서 말입니다......!” 그러나 하워드는 1988년 총선에서 패배를 했고 결국 자유당 당수직에서 밀려났다.


67) 1986년 11월 26일, 제프 케넷은 비록 자신이 로마 카톨릭교도가 아닐지라도 플레밍톤 경마장에서 로마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가할 것이라는 것을 선언하고 로마 교황을 만났다. 그러나 1989년 케넷은 빅토리아에서 있었던 선거에서 패배했고 6개월 후에 자유당 당수직에서 물러났다.


68) 1986년 11월 26일, 뉴사우스 웨일즈의 수상인 언스워스는 시드니에서 로마 교황을 영접하였다. 그러나 호주 노동당은 1988년 선거에서 패배하고 언스워스는 실각하였다.


69) 1986년 12월 1일, 호주의 재벌 알란 본드는 퍼트에서 로마 교황을 영접하여 무릎을 꿇고 교황의 반지에 입을 맞춘 후 개별적으로 교황과 면담을 가졌다. 그 후 그는 사업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호주의 방송 심의위원회는 본드가 방송면허를 소유할 자격이 없다고 판결하였고, 그는 재정적으로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70) 1987년 로마 교황이 미국을 떠난 지 한 달이 채 못 되어 월 가(Wall Street)의 주가가 폭락함으로 인해 온 세계는 “검은 월요일”(Black Monday)을 맞았고, 미국은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준 축복에 깔려 휘청거렸다.


로마 교황이 한국을 축복하고 떠난 후


  ■ 1984년은 한국천주교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해 5월 3일 사상 처음으로 로마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첫 한국인 사제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103위 시성식 등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하는 행사의 진행상황은 TV로 생생히 소개됐다. 교황은 여의도 광장에서 이른바 한국순교복자 1백3위를 시성하고 5월 7일 로마의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대한민국의 1984년은 특별한 해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신 분이 이 땅을 찾아와 우리나라를 축복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가 축복했다면 하나님은 당연히 우리에게 降福(강복)하실 것이다. 그러나 로마 교황이 한국을 축복하고 떠난 직후 이 땅에는 국가적인 불운과 재앙이 닥쳤다. 교황 방한 넉 달 후인 9월 1일부터 3일 동안 중부내륙지방에 300밀리미터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물폭탄이었다. 그 결과 한강에 대홍수가 발생해 189명이 사망했고 150명이 실종됐다. 재산피해는 1천3백여억원에 육박했다. 이 물난리가 바로 북한이 보내준 구호물자를 받았던 ‘1984년 한강대홍수’ 이다.


  1984년 한강대홍수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후 60년 만에 우리가 경험한 가장 큰 수해였다. 을축년 대홍수 때 한강 인도교 수위가 12.26m까지 상승해 물이 한강제방 위로 넘쳐 사망자가 404명에 이르고 가옥 유실 및 침수가 수만호에 달하는 큰 피해가 있었다.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에 해당하는 1억300만원의 피해를 냈다. 1984년 한강대홍수는 을축년 대홍수에 버금가는 재앙이었다.


  그 피해규모가 얼마나 큰지 북한이 수재물자를 보내줄 정도였다. 북한 적십자사가 9월 8일 “쌀 5만석, 천 50만 미터, 시멘트 10만 톤, 기타 의약품 등을 제공하겠다고 제안을 했고 이걸 대한적십자사가 “상부상조의 길을 트고 남북 관계개선을 위하여”라는 명분을 내세워 북한 구호물자를 받았던 것이다(1984년 9월 29일). 로마 교황이 한국을 축복하고 떠난 지 불과 넉 달 만에 벌어진 국가적 재난이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결과인가!

 

  ■ 1989년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두 번째 한국을 방문했다. 10월 4일~8일까지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된 소위 “세계성체대회”를 집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요한 바오로 2세가 5년 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가 떠난 후 한국 백성은 또다시 재난과 불운을 겪었다. 로마 교황이 한국을 축복하고 떠난 지 11개월 후 수도권에 대홍수가 또 발생했다.


  1990년 9월 9일부터 12일까지 한강 전역(중부지방)에 많은 비가 집중적으로 내렸다. 경기도 이천 581mm, 수원 529mm, 강화 512mm, 홍천 508mm, 양평 491mm. 서울 486mm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경기도 이천, 수원의 시간당 최대강우량은 각각 59mm와 56mm, 1일 최대강우량은 경기도 수원이 296.3mm가 내렸다.


  당시 사흘간의 중부지방 집중호우는 평균 452mm의 강우량을 기록하면서 곳곳에 크고 작은 많은 수해를 발생시켰다. 한강 수위는 집중호우와 한강수계 댐들의 방류량 증가로 급상승했고 결국 한강대홍수가 났다. 그로 인해 126명이 사망하고 37명이 실종되었으며, 187,265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5,203억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로마 교황이 한국을 축복하고 떠난 지 1년이 채 안 돼서 발생한 국가적 재앙이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축복의 결과인가!


  1984년과 1990년의 두 차례 한강대홍수는 근래에 우리가 겪은 최악의 대홍수였다. 이 두 수해 모두 로마 교황이 한국을 축복하고 떠난 후 1년 안에 발생했다. 더욱이 교황은 한강을 끼고 있는 여의도 광장에서 행사를 집전하며 대한민국을 축복했다. 그런데 한강대홍수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올여름 25년 만에 교황이 다시 한국을 찾아온다. 로마 교황 프란치스코가 한국 천주교 대전교구에서 개최하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오는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4박5일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교황의 이번 방한 일정 중 주목되는 것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 집전이다(16일). 시복식 장소로는 서울 광화문광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찰청은 최하 35만 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천주교의 한 저명인사는 약 100만 명이 운집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도 한국을 축복하고 떠날 것이다. 하지만 그가 떠난 후가 우려된다. 로마 교황이 한국을 축복하고 떠난 후에는 여지없이 국가적 재난이 닥쳤기 때문이다. 서울 광화문 광장은 대한민국 1번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수도 서울의 중심인 그 곳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사칭하는 교황의 활동장소로 내어준다면 교황의 첫 번째, 두 번째 방문 때보다 더 강력한 후폭풍이 있을 것이다. 올가을과 겨울을 위해 기도하라.


로마 교황의 저주


아마도 지난 1700년 동안 로마 교황 혹은 로마 교황청의 축복을 받고 망한 사람들을 세어 본다면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두 번이나 로마 교황의 축복을 받은 한국, 그가 떠난 후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는지...


역대 로마 교황들은 거의 로마를 떠나지 않고 죽었으나, “슈퍼스타”, “날으는 교황”의 별명이 붙은 이 교황은 지구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축복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 재난이 생겼으며, 이 사실은 온 세상에 임할 재앙을 우리들에게 예고해주고 있다. 로마 교황의 축복이 재앙을 동반한다면, 그의 저주는 응당 축복을 가져올 것이다.


1) 로마 교황 비오 9세는 이탈리아의 해방자였던 빅토르 에마누엘 왕을 저주하였다. 또 이탈리아를 자유국으로 만들고 로마를 그 수도로 선포한 이탈리아 정부를 저주하였다. 로마 교황의 저주로 인해 이탈리아는 세계 열강의 하나가 되었지만, 이디오피아를 정복하러 떠나던 이탈리아 군을 로마 교황이 축복한 후부터 이탈리아 제국은 다시 붕괴하기 시작했다.

 

2) 가리발디는 그의 모든 애국적인 노력 때문에 로마 교황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특히 시실리 왕국을 전복시켰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가리발디는 이탈리아의 영웅이 되었고, 그를 기념하는 기념물들이 여기저기에 세워졌다.


3) 비스마르크와 프러시아이 왕이 제수이트(일명 예수회) 사제들을 추방했을 때, 로마 교황은 프러시아를 저주했다. 그러나 로마 교황의 저주는 축복이 되어 프러시아는 세계 열강의 하나가 되어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격파하였고, 어느 날 그 지도자가 로마 교황과의 친교 관계를 맺는 불운이 오기까지는 수년간 서유럽에서 최강의 제국으로 군림하였다.


4)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내린 로마 교황의 저주는 영국에 큰 축복이 되었다. 반대로 아일랜드에 내려진 로마 교황의 축복은 아일랜드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마틴 루터가 로마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받은 저주로 인해 온 세계의 기독교회가 누려온 축복을 어찌 다 헤아릴 수가 있을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엄히 말씀하고 계신다.


말 2:2 내가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I will curse your blessings” Malachi 2:2

 

  하나님께서는 대원군을 일으키시고 프랑스 군함에 실려 오는 로마 카톨릭교의 세력을 막게 하셨고, 결과적으로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인해 한국은 로마 카톨릭 국가가 되지 않았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로마 종교가 들어간 나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공산주의 국가를 제외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의 대부분이 카톨릭 국가가 아닌가? 남미와 북미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경우,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및 모든 동구권 국가들이 가장 가난한데, 이들의 공통점은 천주교가 국교라는 점이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을 보면 남미는 북미보다 더 자원이 풍부하지만, 국민들은 무지하고 생활수준은 형편없다. 소위 “카니발”, “삼바 축제” 등의 카톨릭 국가에서만 볼 수 있는 무질서로 인해 1년에도 수십만 명의 부모 없는 아이들이 태어나 거리에 버려지고 있다. 천주교는 기독교와 다르며 천주교의 영은 기독교의 성령과 다르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진실인 것이다. 오늘날 로마종교와의 일치운동에 빠져있는 한국교회의 낭만적인 에큐메니칼(종교통합) 지도자들이 받을 저주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이들이 짓는 죄악은 너무나도 크며 슬픈 것이다.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먹이를 찾는 이리들이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사람들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모으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변질된 나무는 악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악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변질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라”(마 7:15-20).


기사 중 한국 관련 부분은 영문 원서 및 번역서에는 없으나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보충 추가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첨부파일 로마교황의 축복과 저주.hwp

 

 

로마 교황이 한국을 축복하고 떠난 후

 

“I will curse your blessings” Malachi 2:2

 

비행기에서 내려 한국 땅에 입을 맞춘 뒤 우리나라를 축복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84년 5월 3일)

 

  1984년은 한국천주교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해 5월 3일 사상 처음으로 로마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첫 한국인 사제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103위 시성식 등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하는 행사의 진행상황은 TV로 생생히 소개됐다. 교황은 여의도 광장에서 이른바 한국순교복자 1백3위를 시성하고 5월 7일 로마의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실로 우리나라의 1984년은 특별한 해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신 분이 이 땅을 찾아와 한국백성을 축복했기 때문이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서 대한민국을 축복했다. 놀라운 일 아닌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축복했다면 하나님은 당연히 우리에게 降福(강복)하실 것이다.

 

  그러나 로마 교황이 한국을 축복하고 떠난 후 이 땅에는 국가적 재앙과 불운이 닥쳤다. 교황 방한 넉 달 후인 9월 1일부터 3일 동안 중부내륙지방에 300밀리미터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물폭탄이었다. 그 결과 한강에 대홍수가 발생해 189명이 사망했고 150명이 실종됐다. 재산피해는 1천3백여억원에 육박했다. 이 물난리가 바로 북한이 보내준 구호물자를 받았던 ‘1984년 한강대홍수’ 이다.

 

  1984년 한강대홍수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후 60년 만에 우리가 경험한 가장 큰 수해였다. 을축년 대홍수 때 한강인도교 수위가 12.26m까지 상승해 물이 한강제방 위로 넘쳐 사망자가 404명에 이르고 가옥 유실 및 침수가 수만호에 달하는 큰 피해가 있었다.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에 해당하는 1억300만원의 피해를 냈다. 1984년 한강대홍수는 을축년 대홍수에 버금가는 재앙이었다.

 

  그 피해 규모가 얼마나 큰 지 북한이 수재물자를 보내줄 정도였다. 북한 적십자사가 9월 8일 “쌀 5만석, 천 50만 미터, 시멘트 10만톤, 기타 의약품 등을 제공하겠다고 제안을 했고 이걸 대한적십자사가 “상부상조의 길을 트고 남북 관계개선을 위하여”라는 명분을 내세워 북한 구호물자를 받았던 것이다(1984년 9월 29일). 로마 교황이 한국을 축복하고 떠난 지 불과 넉 달 만에 벌어진 국가적 재난이었다.

 

1984년 5월 6일 여의도광장(한강 마포대교 옆)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집전으로 거행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와 103위 순교복자 시성식” 모습


  1989년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두 번째 한국을 방문했다. 10월 4일~8일까지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된 소위 “세계성체대회”를 집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요한 바오로 2세가 5년 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가 떠난 후 한국 백성은 또다시 재난과 불운을 겪었다. 로마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한국을 축복하고 떠난 지 11개월 후 수도권에 대홍수가 또 발생했다.


  1990년 9월 9일부터 12일까지 한강 전역(중부지방)에 많은 비가 집중적으로 내렸다. 경기도 이천 581mm, 수원 529mm, 강화 512mm, 홍천 508mm, 양평 491mm. 서울 486mm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경기도 이천, 수원의 시간당 최대강우량은 각각 59mm와 56mm, 1일 최대강우량은 경기도 수원이 296.3mm가 내렸다.

 

  당시 사흘간의 중부지방 집중호우는 평균 452mm의 강우량을 기록하면서 곳곳에 크고 작은 많은 수해를 발생시켰다. 한강 수위는 집중호우와 한강수계 댐들의 방류량 증가로 급상승했고 결국 한강대홍수가 났다.

 

  그로 인해 126명이 사망하고 37명이 실종되었으며, 187,265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5,203억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로마 교황이 한국을 축복하고 떠난 지 1년이 채 안 돼서 발생한 국가적 재앙이었다.

 

 

제44차 세계성체대회(1989년 10월4일~8일). 한강 변 여의도 광장을 가득 메운 천주교인들은 약 65만여 명.


 

  1984년과 1990년의 두 차례 한강대홍수는 근래에 우리가 겪은 최악의 대홍수였다. 이 두 수해 모두 로마 교황이 한국을 축복하고 떠난 후 1년도 안 지나서 발생했다. 더욱이 교황은 한강을 끼고 있는 여의도 광장에서 행사를 집전하며 대한민국을 축복했다. 그런데 한강대홍수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러나 올여름 교황이 25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아온다. 로마 교황 프란치스코가 한국 천주교 대전교구에서 개최하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오는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4박5일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3월 10일 오후 8시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 대한민국 대통령과 주교들의 초청을 받아들여, 대전교구에서 치러지는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시고자 2014년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대한민국을 사목방문하신다"고 공식 발표했다. 교황청도 같은 시각(현지 낮 12시)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교황의 방한 계획이 발표되자 그 다음 날인 3월 11일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즉각 환영의 뜻을 표했다. 그리고 ‘교황방한 정부지원위원회’를 구성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범정부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정부는 범정부적으로 위기를 맞았다.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교황의 이번 방한 일정 중 주목되는 것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 집전이다(16일). 시복식 장소로는 서울 광화문광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찰청은 최하 35만 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천주교의 한 저명인사는 약 100만 명이 운집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교황 프란치스코도 한국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축복하고 떠날 것이다. 하지만 그가 떠난 후를 대비하라. 교황이 한국을 축복하고 떠난 후에는 여지없이 국가적 재난이 닥쳤기 때문이다. 올 가을과 겨울을 위해 기도하라. 이것이 결코 기우가 아님은 아래 링크한 문서에 수록된 역사적 자료들이 분명히 입증해줄 것이다. 로마 교황의 축복은 재앙을 동반했고, 그의 저주는 복을 가져왔다.

 

아래를 클릭해 

「Papal Blessings and Curses」라는 글을 정독해주십시오.

 

 

 

< Papal-Blessings-and-Curses.rtf - Bible Based Ministries >

< http://www.freedom.neilcadman.com/papalblessings.html >

 

 

< 로마 교황의 축복과 저주(한글) >

 

< 로마교황의 축복과 저주(전자책) > 

 

 

▼ 관련기사

 

‘적그리스도(Anti Christ)’의 ‘안티’(Anti-αντι)가 지닌 이중적 의미

 

죄의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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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구원파의 소름 돋는 억지와 음모론
법, 질서, 국가도 아랑곳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이기주의다. 정의(正義)와 공평(公平)의 기준은 오직 구원파 뿐이란 것인가?

1.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가 발표한 15일 공식성명 내용은 오싹하다. 구원파는 ‘우리는 왜 검찰에 저항하는가’ 제목의 성명을 통해서 유병언 회장 수사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불공정 수사”라고 강력 반발했다. 연이어 발표한 기독교복음침례회 평신도 어머니회 성명은 “법의 공정함을 믿지 못해 법집행을 거부한다”고 했다.
  
  구원파 성명엔 세월호 침몰 사망자·실종자·유가족에 대한 유감(有感), 위로(慰勞)의 표현이 전무하다. 300여 명의 희생자 앞에서 TV를 통해 낭독된 이 성명은 일단 뻔뻔하다.
  
  구원파 성명은 오히려 “침몰의 책임은 청해진에 있지만 사망의 책임은 해경에 있다” “300여명의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당연히 청해진보다 해경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했다.
  
  2.
  ■ 세월호 참사의 주(主) 책임은 선장(船長)·선원(船員) 그리고 선사(船社), 청해진해운에 있다.
  
  검찰의 판단에 따르면, 선장·선원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자들이다. 이들은 승객의 탈출을 유도할 장비(裝備. 선내방송, 비상벨, 무전기 등)와 충분한 시간(時間)이 있었다. 그러나 탈출 직전 일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검찰은 ▲선장·선원이 제복을 입고 있었다면 선원법에 따라 가장 늦게까지 배에 남아야 했었고, ▲대피령을 내려서 갑판 위로 승객이 쏟아져 나오면 자신들이 구조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승객들의 사망 위험을 외면한 ‘미필적 고의’가 성립된다고 보고 있다.
  
  선장·선원은 육지에 내려서도 무전기로 대피하라는 명령을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분을 속였다. 증거인멸까지 시도한 것이다.
  
  ■ 청해진해운은 무리한 증축(增築)·과적(過積)으로 사고를 자초했다. 사고 당시 세월호엔 최대적재량보다 1,400t을 초과한 2,478t을 실어 운송료 6,200만원을 더 챙기려 했었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가 무리한 증축·과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합수부 발표에 따르면, 상무 金모씨는 김한식 대표에게 복원성(復原性) 등 세월호 결함을 보고한 사실이 있었다. 원래 선장 신(申)모씨와 선원들 일부는 회사에 단체로 사표를 내기도 했었다. 사고 위험을 수차례 알려도 묵살된 탓이다.
  
  ■ 선장·선원·선사의 범죄혐의는 유병언 회장에게 귀결된다. 유 회장은 사원번호 ‘A99001’로 등재된 세월호의 실제 주인이다. 매년 월급·고문료 등으로 청해진해운에서 1억6천 만 원을 받았다. MBN 5월12일 보도에 따르면, 유 회장은 김한식 대표가 세월호 복원성 문제를 보고한 뒤 매각 지시를 내렸다. 유 회장 본인도 세월호 결함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합수부가 확보한 2013년 초 청해진해운 임원회의 회의록엔 “복원력 저하로 최고경영자께 심려를 끼쳐 죄송스럽다”는 내용이 나온다.
  
  유병언 회장 일가로 흘러간 계열사 자금은 996억 원에 달한다. 이 엄청난 자금이 빠져간 회사의 곡간은 텅텅 빌 수밖에 없다. 청해진해운도 지난 해 7억8천만 원 손실이 났었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급여를 줄였고 안전교육비 역시 연 54만1000원을 쓰는데 그쳤다. 그 결과 참사가 터졌다.
  
  ■ 구원파는 이 예측된 참사의 책임이 유병언 일가와 청해진해운에 없다는 억지를 부린다. 해경의 사후 대처는 분명 엉성하고 어설프고 답답했다. 그러나 언론이 과장한 부분을 빼고 나면 ‘해경의 책임이 선장·선원·선사의 책임보다 크다’는 주장은 가당치 않다. 궤변이다.
  
  구원파는 사람 죽인 강도(强盜)보다 사람 죽는 것을 막지 못한 경찰(警察)의 책임이 크다는 식으로 말한다. ‘우리는 주된 책임이 없다’며 ‘유병언과 천해지·아이원아이홀딩스 압수수사를 해야 한다면, 해경청은 물론 상부부서인 경찰청, 해수부, 안행부, 청와대까지 압수수색 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법, 질서, 국가도 아랑곳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이기주의다. 정의(正義)와 공평(公平)의 기준은 오직 구원파 뿐이란 것인가?
  
  3.
  구원파 성명은 동문서답(東問西答)식 ‘물타기’로 쟁점(爭點)을 돌렸다. 성명은 “우리를 근거 없이 살인집단·테러집단 등으로 몰고 가는 정부의 보도지침을 즉각 중단하라”며 “우리는 테러집단도 사이비집단도 아니”라고 했다.
  
  역시 궤변이다. 검찰은 물론 언론도 구원파를 사이비집단 심지어 살인집단·테러집단으로 몰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의 주범인 선장·선원·선사 이 피라미드 꼭짓점에 위치한 유병언 일가의 업무상과실치사, 횡령·배임·탈세 등 불법·탈법 행위에 대한 수사와 비판을 하고 있을 뿐이다.
  
  구원파 성명은 이 모든 불법·탈법에 대한 법리적 항변 대신, 있지도 않은 “살인집단·테러집단” 비난과 있지도 않은 “정부의 보도지침” 운운한다. 부당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약자(弱者) 코스프래, 희생자(犧牲者) 연극이다.
  
  4.
  구원파 성명은 음모론도 동원했다. “언론의 마녀사냥” 운운하며 “유 씨 일가에 대한 수사가 마치 사전에 기획하고 준비시킨 수사처럼 진행됐다”며 91년 오대양 사건을 수차례 언급했다. 이어 “91년과 비슷하게 2014년 국정원 간첩조작사건 등등 정부에 대한 국민들 원성이 높아질 무렵(···) 오늘의 상황이 단순한 우연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구원파 성명은 ‘국정원 간첩증거조작 논란’을 ‘국정원 간첩조작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가 이것을 감추기 위해서 유병언 탄압에 나섰다는 논리이다. 인터넷에 유포되는 좌익들의 종말론적 거짓선동과 다를 바 없다.
  
  5.
  구원파 성명은 자해공갈(自害恐喝)식 엄포도 서슴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잃을 것도 없다”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기독교복음침례회를 말살해서 당신이 얻을 것은 무엇인가. 이런 음모를 꾸밈으로써 국가의 통합과 화해를 파괴하는 사람의 계획이 박 대통령 당신을 위험하게 만들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라. 이 이야기는 세상에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드리는 충언”이라고 했다. 물러날 곳도 잃을 것도 없는 이들의 마지막 충언. 섬뜩한 말이다.
  
  구원파 성명은 “상기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검찰과 정부는 더 이상 저희 협조를 기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법의 공정함을 믿지 못해 법집행을 거부한다” “저희가 아무리 결백하고 당당해도 그것이 결코 공정하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1991년 경험으로 배웠기에 더는 똑같이 당하고 싶지 않다” “여기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단순한 검찰의 수사(搜査)가 아니라 법집행을 거부하는, 반(反)법치·反질서·反국가 집단의 선언이다.
  
  5.
  법 앞에 모든 이는 평등하다. 불법엔 처벌이 따른다. 그것이 국가다.
  
  만일 정부가 구원파 협박에 굴복해 유병언 일가의 처벌에 몸을 사리게 된다면 국민은 모든 책임을 해경과 정부에 돌리게 될 것이다. 거대한 혼돈의 쓰나미 앞에서 박근혜 정부가 살고 대한민국이 사는 길은 유병언 일가의 불법(不法)에 대한 엄정한 집행뿐이다. 유병언과 연결된 부패의 고리를 끊지 못하면 국가가 쓰러질 판이다 

  
  
김성욱의 전체기사  
2014년 05월15일 23시05분

꽃 놀이패 쥔 금수원
강제진압은 진상규명 물거품 만들 가능성 커
2014년 05월 17일 (토) 14:35:10 양재영 ( 메일보내기 )( newsnjoy

   
 
  ▲ 구원파 금수원 입구에 걸린 ‘김기춘 실장, 갈데까지 가보자’ 플래카드. 사진제공 서울신문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지 평론가였던 앙드레 지드의 말이다. 잘못되고 왜곡된 역사가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것은 지나간 역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을 귀 기울여 듣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작년 4월 17일 텍사스 비료공장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일어나 20년 만에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일명 ‘다윗파 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1993년 4월 19일 작년 폭발 사고가 일어났던 텍사스 웨이코의 비료 공장 자리에서 인질극을 벌이다 발생한 참극이었다.

당시 ‘다윗파’라는 광신적 종교 집단이 인질을 잡고 경찰과 51일간 대치하다, 미국 연방경찰이 진압작전을 전개하자 자신들의 건물을 방화, 신도 80명(어른 53명, 어린이 25명, 태아 2명)이 불에 탄 체 주검으로 발견되었던 당시 미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다윗파’ 교주인 데이비드 코레시가 이끄는 일당들은 연방정부의 사법, 조세권 등을 거부하며 독자생활을 하다 공권력과 대립하고 되었고, 무기와 폭발물을 잔뜩 쌓아놓은 채 연방요원들과 무장 대치극을 벌이다 화재에 의해 몰살되었다. '웨이코 학살(Waco massacre)' 이라고도 불렸던 이 사건은 ‘집단자살극’이라는 설도 있었지만, 대체로 과도한 공권력의 횡포로 인해 발생한 ‘집단살상극’이었다는 비판이 지배적이었다. 

   
 
  ▲ 다윗파 사건을 다룬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캡처 화면  
 
잘못된 역사의 데쟈뷰

20여 년 전의 이 사건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 지금 ‘금수원’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금수원에 1,000 여명의 신도들이 인간 바리케이드를 친 채 찬송가를 부르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고 있는 반면, 검찰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한 채 조만간 강제 진입할 채비를 하고 있다.

유병언은 검찰 소환 출석시한인 16일 오전 10시까지 나타나지 않았고,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본산인 경기도 안성 금수원에는 1,000여명의 신도들이 모여 앞으로 있을 검찰의 강제 진압에 대비해 세를 불리며 항전을 준비하고 있다.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홍보담당 조계웅씨는 금수원 정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경찰과 검찰 뿐 아니라 국세청, 감사원, 금융감독원 등의 초강도 수사를 받는 등 종교탄압을 받고 있다”라며,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 종교시설인 금수원에 공권력이 투입되면 저항할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금수원에 모인 구원파 신도들은 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과거 ‘오대양 사건’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다고 주장하며, ‘김기춘 실장, 갈 데까지 가보자!!!’라는 플래카드를 금수원 입구 철문에 걸어두고 ‘표적탄압’에 대해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웨이코’와 ‘금수원’의 오버랩

‘오대양 사건’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구원파 일당들의 집단 자살 사건으로, 지난 87년 8월29일 경기도 용인시 오대양 공장 터에서 오대양 대표 박순자와 직원, 가족 등 32명이 이곳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오대양교 박순자 교주의 지시에 다른 집단 자살’로 결론을 내렸던 ‘오대양 사건’은 이후 외부인에 의한 타살 가능성과 함께 집단 변사의 배후에 전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씨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후 밝혀진 바에 의하면 민속공예품 제작업체 ‘오대양’ 대표로 알려진 박순자는 유 전 회장의 무역회사인 삼우트레이딩의 사채모집책이었으며, 300여명으로부터 200억 여 원의 사채를 빌린 후 갚지 못해 총무 등 3명을 암매장 살해 후 집단 자살했다고 알려진 사건이다. 

   
 
  ▲ 오대양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  
 
금수원에 모여든 1,000여명의 신도들과 검찰의 대치 국면이 20여 년 전 미국 텍사스 웨이코에서 벌어진 비극적 참극과 오버랩 되는 것은 지나친 상상력의 소산일까?

텍사스 웨이코의 ‘다윗파’ 신도들이 자신들을 조여오던 공권력에 맞서 결사항전을 외치던 모습이나, 지금 금수원에서 ‘표적탄압’이라며 ‘갈 데까지 가보자!’라고 외치는 구원파 신도들의 모습에서 20년의 시간을 두고 반복되고 있는 '종교적 광신에 의한 집단 자살(Cult Suicide)‘의 가능성이 느껴져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

미국에는 현재 약 700~5,000개 정도의 종교적 사교집단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 한국에도 약 1,000여 집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들 사교집단에 의한 ‘광신적 집단행동’은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사회적 골칫거리이자 본질을 밝힐 수 없는 종교적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92년 ‘영생교 사건’, 94년 ‘태양의 사원 집단자살사건’, 95년 ‘일본 오움진리교 사건’ 97년 ‘미국 천국의 문 집단자살사건’ 등 끊이지 않는 사교집단에 의한 광신적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그것들의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고 있으며, 전문가들의 숱한 연구와 조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집단 자살이 결정되고’, ‘왜 수많은 신도들이 이 참극에 순수하게 동참했는지’는 아직도 의문투성이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갖고 지나간 역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지금 금수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치상황이 끔찍한 종교적 비극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아직 세월호의 실종자도 모두 발견하지 못한 현 상황에서 또 다른 참사의 발생은 온 나라를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위기로 몰아갈 것이며, 이로 인해 발생할 온전한 아픔은 고스란히 맥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국민들의 몫이 될 것이다.

상상하기도 싫은 건 강제 진압이 이루어질 경우 역설적으로 청해진 해운에 대한 조사는 실종되고 무능한 대처로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현정부의 실책 마저도 잠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유병언측은 공권력의 강제 진압과 저항하는 신도들의 '순교적 행동'을 상상하며 나쁘지 않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대치든 진압이든 결코 금수원에게는 불리하지 않은 심지어 정부에도 여론 전환의 국면을 줄 수 있는 삼 중의 꽃놀이패인 셈이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러므로 강압적 공권력 진입은 재고해야 한다. 공권력 진입은 유병언 일가를 소환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묻겠다는 의도와는 별개로, 그들에게 사회적, 정서적 면책과 ‘오대양’ 사건 때처럼 구원파와 함께 그 일가들이 재건할 수 있는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칼 마르크스는 말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이번 사건만큼은 어이없는 비극적 역사의 반복으로 종결되지 않고, 모두 다 수긍할 수 있는 희극의 역사가 반복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린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좀더 지혜롭고 슬기로운 대처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양재영 기자 / <미주뉴스앤조이>


구원파, 교주님은 있고 세월호의 아픔은 없나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상삼리에 있는 구원파의 총본산 금수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 12일부터 전국 각지의 구원파 신도들이 금수원으로 속속 집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금수원으로 통하는 길목을 차량으로 막고, 그 주변에는 신도들이 몇 겹으로 에워싸며 인의장막을 쳤습니다. 금수원 입구에는 300여명의 신도들이 굳게 닫힌 철문 뒤로 모여 검·경의 진입 등에 대비하는 모습입니다. 신도들은 외부인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하면서도 신도들의 차량은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고 있습니다.

 

 

 

 

 

유병언 검찰 출석 불응...금수원 있을 가능성 높아

 

현재 금수원에는 주말을 맞아 구원파 신도들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는 가운데, 오늘 저녁 8시로 예정된 정기예배 시간까지 최대 3000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게 다 교주인 유병언을 결사옹위하겠다는 행동으로 보여집니다. 안성의 한 산자락에 위치한 금수원은 축구장 30여개를 합친 규모의 땅에 교회와 주택, 의료시설 등이 갖춰져 있는 곳으로 오랫동안 자급자족이 가능할 정도입니다. 이곳의 대표는 구원파 핵심인물로 알려진 탤런트 전양자(본명 김경숙)입니다.

 

구원파 교주인 유병언은 어제(16일) 오전 10시 검찰 출석통보를 받았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검찰은 “좀더 기다려 보자”고 했지만 유씨는 이를 보기좋게 비웃었습니다. 이에 열받은 검찰은 유씨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고, 20일 오후 3시가 영장실질심사일인데, 이날에도 나올 확률은 낮습니다. 검찰은 유씨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금수원에 찾아가 강제로 영장을 집행할 생각이지만 지금의 금수원 상황을 보면 검찰 뜻대로 순조롭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검찰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죽을 맛입니다. 유씨를 종용해서 자진 출석을 유도하자니 말을 들을 것 같지 않고, 금수원에 가서 영장을 집행하자니 물리적인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법집행을 미루고 가만히 있자니 검찰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노조파업이나 촛불시위 등을 강제진압 전력이 화려한 만큼 이번에도 어떤 진압작전을 펼칠 지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설마 구원파와 신도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 것은 아니겠죠?

 

사실 검찰의 체면은 이미 구겨질대로 구겨졌습니다. 검찰은 유병언 이전에 그의 자녀들에게도 출석을 통보했지만 이들은 소환에 불응한 채 연락을 끊고 도주하거나 잠적한 상태입니다. 검찰은 이들의 위치를 제대로 추적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소재 파악에 허둥대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장남인 유대균에게 즉시 체포가 가능한 ‘A급 지명수배'를 내리는데 그쳤습니다. 검찰은 유씨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지시를 받아 계열사 자금을 빼돌려온 횡령·배임 혐의의 공범으로 보고 수사중입니다. 

 

 

 

 

금수원에 신도들 속속 집결...물리적 충돌 배제할 수 없다

 

지금 금수원이 ‘폭풍전야’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경찰과 검찰은 대대적인 병력을 동원해서 금수원을 돌파하려고 시도할 것이고, 구원파 신도들은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양측의 충돌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구원파 신도들은 정부의 공권력 집행을 ‘종교 탄압’으로 몰고 있습니다. 금수원에 내걸린 현수막에는 “종교탄압을 중단하라” “공권력의 교회진입을 반대한다”는 문구들이 많습니다.

 

@출처=MBC 뉴스화면

 

지난 15일 구원파 조계웅 대변인(금수원 직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를 맹비난 했는데, 그는 “세월호 침몰 사고의 책임은 청해진에 있지만 사망 책임은 해경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구조활동은 느릿느릿하면서 종교탄압은 속전속결”이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입니다. 조씨는 또 “만약에 유혈사태가 초래된다면 유례없는 종교탄압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검찰총장은 물러나야 할 것”이라면서, 신도들을 향해서는 “교회를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라며, “죽음을 각오하고 종교탄압에 맞서 싸우자”고 했습니다.

 

 

'국가'와 '법' 보다 '교주님'이 먼저다?

 

이런 것을 보면 한 가지는 명확해 집니다. 구원파에게는 대한민국의 ‘법’과 ‘체제’ 보다 교주인 유병언이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세월호가 침몰해 300명이 넘는 승객들이 죽거나 실종된 아픔보다 교주가 검찰에 불려간다는 것에 더 아파한다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행동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파의 교리는 ‘죄를 깨달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영혼을 구원받으면 이후 죄를 지어도 죄가 아니다’는 것인데, 과연 저들의 행동은 구원을 받을런지 궁금합니다.

 

 

 

금수원에 걸린 ‘김기춘 실장’ 플래카드 내막

 

“김기춘 실장, 갈데까지 가보자”

금수원 정문에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실명을 언급한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있습니다. 구원파 신도들은 왜 대통령도, 검찰총장도 아닌 ‘김기춘 실장’을 언급했을까요? 이를 제대로 알려면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오대양 사건이 터졌을 다이 김 실장은 법무부장관을 맡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김 실장은 검찰총장 출신입니다.

 

 

경기 용인에 위치한 공예품 제조회사 오대양(주)의 공장 식당 천장에서 대표 박순자씨와 그의 가족, 종업원 등 32명이 시신으로 발견됐는데, 대부분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겨있는 상태로 죽어있었습니다. 박순자는 자신을 따르는 신도와 자녀들을 집단시설에 수용하고, 신도들로부터 170억 원에 이르는 거액의 사채를 빌렸습니다. 물론 원금을 갚지 않았고, 돈을 받으러 간 신도의 가족을 집단 폭행하고 잠적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후 집단 살인극으로 최후를 맞은 것입니다.

 

당시 검찰은 구원파가 해당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유병언 전 회장에 대해 수사를 벌였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유 전 회장은 1991년 8월, 구원파 신도들에게 거액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는데, 오대양 사건과는 별건입니다. 그러니까 구원파 신도들이 '김 실장'을 거론한 플래카드를 내건 것은 당시 오대양 사건처럼 이번 세월호 사건도 구원파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리려는 의도로 보이는 것입니다.

 

구원파 평신도 복음선교회도도 “사건의 결말이 오대양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기사건으로 종결이 됐다는 것도, 증인들의 말에만 의존해서 판결이 이뤄졌다는 것도 알고 계실 것이다. 1991년의 상황이 재연되지 않게 해달라"고 한 대목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20년전쯤 한국의 낯익은 장면 

길을 가다 보면 어떤 사람이 친절하게 다가와 속삭인다. “ 도에 관심있으세요?” 증산교의 일파인 대순진리회의 포교 행위다.

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가서 학교에서 자주 경험했던 낯익은 장면

여학생이 다가와 예쁘게 속삭인다. “구원의 확신이 있으세요?” 구원은 교회에서 늘 듣던 말이지만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터라 잠시 머뭇거리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예”. “그럼 언제 받았는지 날짜를 기억하세요?”. 이건 또 뭐야라는 불쾌감이 확 밀려온다. 이른바 구원파의 포교행위다.

인재나 다름없는 침몰로 아직도 사람들의 분노와 눈물을 그치지 않게 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 그 세월호가 소속된 선박회사 청해진 해운의 실소유주가 유병언씨 일가로 밝혀져 다시금 구원파가 언론에 회자되고 있다. 다수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아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유명 사진 작가 역시 유병언씨며, 아들 중 하나가 청해진해운의 지주사 아이원아이홀딩스 대주주로 있다. 사진작가 아해가 운영하는 아해프레스는 지난 2012년 프랑스 생 니콜라 쿠르베피 마을 경매를 통해 마을을 52만 유로에 낙찰 받은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 유병언씨 소유 대 저택 10.5에이커대지에 건평 8500스퀘어피트. 뉴욕주 웨체스터카운티 있다.ⓒ 안치용 기자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세모그룹 유병언 전 회장 일가족의 재산은 약 2400억 원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병언씨는 1970년대 삼우 트레이딩을 창업한 후 교인들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모았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시 자금 모금 과정의 의혹으로 기소되었을 때 검찰의 공소사실에는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재물의 무조건적인 헌납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취지로 신도들을 미혹시키는 설교를 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유병언씨가 삼우트레이딩을 기반으로 성장시킨 세모그룹이 운영권을 가지고 있던 한강 유람선은 1990년 사고로 14명의 인명피해를 낸 뒤 1997년 부도 처리됐다.

1987년 발생한 오대양 사건(교주 박순자씨를 비롯해 32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에도 구원파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유병언씨의 이름이 언론에 오느내리기도 했다. 이런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다시 대단한 재력을 소유한 거부임이 드러남으로써 그의 사업 수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이전 것 보다 훨씬 메가톤 급이어서 그의 수완이 다시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 갈래로 나뉜 구원파

구원파는 유병언의 장인 권신찬에 이해 설립된 기독교 복음 침례회의 다른 이름이다. 권신찬은 남산 총회 신학교(현재 장신과 총신이 분열되기 전의 신학교)출신의 장로교 목사였으나 재침례를 허용했다는 이유로 1962년 면직되었다. 1966년 복음주의 방송(극동방송의 전신)에서 일하던 중 여기서도 교리문제로 그만두었다가 1981년 기독교 복음 침례회를 설립했다. 그 전까지는 구원파로 불리는 비조직적 형태의 이단이었으나 사업 수완이 좋은 사위 유병언이 교단을 만들어 공식 교단으로 출범한 것으로 보인다.
1983년 종교와 사업을 연계하는 유병언의 정책에 반대한 이복칠이 이탈한 후 대한 예수교 침례회 서울 중앙교회를 세웠다. 현재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박옥수의 기쁜 소식 선교회도 구원파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딕욕의 상선회사 경험

구원파는 미국 시애틀 출신인 딕욕(Dick York)이 1953년 한국에 들어오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믿음의 방패 선교회(Shield of Faith Mission)를 세운 딕욕은 일종의 재침례파로 사람이 한 번 죄사함을 깨달음으로 구원을 받으면 양심의 모든 죄책감에서 해방을 받았기 때문에 그 이후에 짓는 죄는 죄가 되지 않는다는 교리를 전파했다. 그러므로 구원의 일시가 중요하며 그들의 주장에 따른 죄사함을 경험하지 않으면 세례를 다시 받아야 한다.

1928년생인 딕욕은 믿음의 형제들(http://bif.or.kr)이라는 홈페이지에서 아직 활동중이며 신도들의 질문에 응답하고 있다. 최근에 올라온 자료를 보면 그는 (박옥수의) 기쁜 소식 선교회가 잘못 가고 있다며 박옥수와의 관계는 끊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기쁜 소식 선교회의 영어 안내문에는 딕 욕 소개도 나와 있지만 박옥수는 케이즈 글라스(Kays Glass)라는 선교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며 박옥수의 청소년 시절 케이즈와 찍은 사진도 싣고 있다.

딕욕이 16세인 1944년부터 1950년까지 미국 상선(US Merchant Marine)에서 일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그가 한국에서 배출한 제자들에게 상선의 경험을 이야기했던 것은 아닌가, 그것이 구원파의 유람선, 여객선 사업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닌가라는 흥미로운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돈오점수냐 돈오돈수냐?

불교에서는 한 번 깨달음을 얻은 뒤 지속적인 수행이 필요하다는 입장(돈오점수)과 한번 깨달음으로 모든 수행이 완성된다는 입장(돈오돈수)이 수백년째 논쟁을 이어오고 있다. 고려 시대 승려인 보조 국사 지눌은 돈오점수의 입장이며 조계종 종정을 지냈던 성철은 돈오돈수를 대표하는 승려다. 구원파는 불교로 치자면 일종의 돈오돈수인 셈이다. 한번 구원받으면(돈오) 모든 죄를 더 이상 씻을 필요가 없다(돈수)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정통 기독교의 성화 과정이 생략된 것인데 이런 교리적 차이로라면 토론도 가능할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이 가진 물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다. 더 이상의 회개가 필요없다면 교회라는 제도도 필요없고 이 세상에서의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 하지만 이들이야 말로 교인들로 하여금 며칠씩 직장도 포기하게 만들고 합숙 집회를 열어 자유를 구속하며 교주들은 경쟁적으로 재산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권력자들이나 부유층의 해외 재산 기록을 찾아내는 것으로 유명한 재미 파워블로거 안치용씨가 발견한 세모 소유로 의심되는 해외 재산 목록이 아래 박스에 정리되어 있다. 그들의 교리에 따르면 구원의 깨달음 이후의 모든 것은 죄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재산을 축적하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비아냥 거리고 싶은 부분이다.

   
 
  ▲ 구원파 유병언씨의 일가 미국 내 숨겨진 부동산 내역 일부. ⓒ 안치용 기자  
 
돈오돈수를 주장하는 승려들이 그 교리를 깨닫기 위해 세상을 등진채 힘겨운 수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반면교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세월호의 구원파 관련 사실이 보도되자 분노한 여론의 화살이 기독교를 향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기독교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구원파가 이단이라는 사실은 모른 채 한묶음으로 교회를 비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지연되는 구조 과정으로 인한 여러 음모론이 SNS를 채우는 가운데 언론이 구원파와의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정부를 향해 악화된 여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새로운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오해든 음모든 중요한 것은 그들은 이단이며, 동시에 이번 참사의 원인제공자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유병언씨의 사업 수완이 뛰어나도 권력과의 유착이 없었다면 그의 화려한 재기가 가능했을까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청해진에 대한 엄중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그 정도로 모든 것을 미봉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기대 목사 / LA 평화의 교회
출처: 미주뉴스엔죠이


유진, 유병언 구원파와 뿌리만 같다?
"유병언파 소속 아니다"는 해명글 올렸으나 이요한 구원파 소속 밝혀

2014/05/09 ㆍ추천: 0      

연예인 유진이 7일 자신의 팬카페에 올린 글을 통해 자신이 다니는 교회는 요즘 유병언 구원파가 아니라고 밝혔으나, 유병언씨의 장인 권신찬 씨가 뿌리라고 밝혀 이요한 구원파 교회에 출석하고 있음을 자인했다.

유진은 “교회는 구원파와는 무관하다. 기독교복음침례회와 저희교회가 뿌리가 같아서 이런 오해가 생긴 것 같다.”고 해명했으나 이요한 씨가 이끄는 구원파 대한예수교회침례회 소속임을 밝힌 것.

유진은 “아주 오래전에 기독교복음침례회의 권 목사님과 지금 저희 교회 이 목사님께서 함께 복음을 전하시다가 권 목사님의 사위인 유병언씨의 사업시작으로 인해 교회가 흐려지면서 점점 교회의 참 모습을 잃어갔고 그 이유로 지금 저희 교회의 이 목사님께서 몇 십 명가량의 성도들과 함께 기독교복음침례회를 나오시고 대한예수교침례회 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세우셨다. 그게 벌써 32년 전 일이라고 한다.”고 밝혔다.

.유진은 또 “저희 교회를 비난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말 할 수 있다.”며 “지금까지 저희교회에서 성경말씀에 어긋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다. 제가 다녀본 여러 교회 중에서도 가장 올바로 말씀을 가르치고 순수한 복음만을 전하는 교회”라며 자신이 소속된 교회와 대한예수교침례회가 이단이라는 사실을 부인했다. 유진은 그러나 “만약 이 교회가 앞으로 어떠한 계기로든 타락의 길로 빠지게 된다면 전 주저하지 않고 이 교회를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유진이 쓴 글 전문.

괌에 다녀왔더니 날씨가 오히려 추워졌네요~ 그래도 어제 오늘은 해가 쨍쨍 따뜻하네요~. 저는 아빠를 만나서 점심을 먹고 돌아왔답니다~^^ (전 아직 아빠라고 불러요 아버지는 어색어색)

실은 고민 하다가 글을 올립니다~ 최근 이런저런 말이 많아서 저도 속상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여러분들이 더 속상하고 또 답답해 하실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전 인터넷을 잘 보지 않는 편이라 댓글에 그리 민감하지도 않고 솔직히 신경을 잘 안 쓰거든요. 그런데 이번 사건(?)은 뭔가 좀 크게 번지는 듯 하여 여러분들께 큰 걱정을 끼쳐드리는 것 같아 이렇게 글을 남기기로 했어요.

물론 오랜 세월 저를 좋아해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여러분은 저에 대한 믿음도 있을 거라 생각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기사나 SNS글들, 댓글들을 보고 정말일까 하는 의구심을 갖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요즘 구원파가 큰 이슈가 되면서 저희 교회까지 연루가 된 것처럼 여론이 형성이 되어 적지 않은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확실히 말씀을 드리자면 저희 교회는 구원파와는 무관합니다.

기독교복음침례회와 저희교회가 뿌리가 같아서 이런 오해가 생긴 것 같아요. 아주 오래전에 기독교복음침례회의 권 목사님과 지금 저희 교회 이목사님께서 함께 복음을 전하시다가

권 목사님의 사위인 유병언씨의 사업시작으로 인해 교회가 흐려지면서 점점 교회의 참 모습을 잃어갔고 그 이유로 지금 저희 교회의 이 목사님께서 몇십 명가량의 성도들과 함께 기독교복음침례회를 나오시고 대한예수교침례회 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게 벌써 32년 전 일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80년대 초반에 단 몇 십명으로 시작된 교회가 지금은 국내외에 500개가 넘습니다.

단지 뿌리가 같다고 이렇게 같은 취급을 하고 비방을 하는 것을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제가 알고 있는 저희 교회의 역사는 이렇습니다. 그런데 구원파와는 별개로 저희 교회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글들을 살펴보니 정말 터무니없는 것들이더라구요.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것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얘기들이었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고 속상합니다.

저는 15살에 이 교회를 통해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의 사랑은 깨달았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보혈로 내 모든 죄가 사함받았다고 믿고 오직 예수님을 저의 구원자로 믿고 그 분의 은혜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그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주님의 말씀을 따라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구요... 저는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고 단지 그렇다러라 그런 것 같더라 라는 말들에 휩쓸려 저희 교회를 비난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말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희교회에서 성경말씀에 어긋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다구요. 제가 다녀본 여러 교회 중에서도 가장 올바로 말씀을 가르치고 순수한 복음만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만약 이 교회가 앞으로 어떠한 계기로든 타락의 길로 빠지게 된다면 전 주저하지 않고 이 교회를 나올 것입니다.

저희 교회 말씀은 생명의 말씀 선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모두 공개가 되어있습니다. 전도집회 말씀을 들어보시길 바래요. 그리고 정말 잘못 된것이 있다면 저에게 알려주세요. 아까도 말했지만 이 교회를 통해 주님께서 일하지 않으시다면 전 새로운 곳을 찾아야 하니까요.

말이 많이 길어졌네요~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한 마음을 이곳에서나마 이렇게 털어놓을 수 있어서 감사가 됩니다. 여러분들도 부디 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중심을 지켜주시길 바래요.

그럼 여러분~! 모두 바자회에서 뵐게요~! 조금이라도 여러분의 궁금증이 풀리고 걱정이 덜어지고 가려운 곳을 긁어드렸길 바라며...^^;;

김철영 ⓒ 뉴스파워

출처: USA아멘넷




"사이비 단속했다면 세월호 참사 막았을 것"
이단 사이비 피해자들 거리 집회..정부 단속 촉구

2014/04/29 (화) 09:22 ㆍ추천: 0      



[앵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주인인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이 한국교계에서 이단,사이비로 지목한 구원파의 창설자로 알려지면서 사이비 이단 단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 구원파 피해자를 비롯해 각종 이단 사이비집단 피해자들이 거리로 나왔는데요.

정부가 사이비 집단에 대한 단속을 잘 했더라면 세월호같은 사고는 없었을 거라면서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이단 사이비 단체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했습니다. 천수연 기잡니다.

[기자]

2011년부터 신천지에 빠진 딸은 부모와의 대화를 피하고 결국 집을 나갔습니다.

[인터뷰] 신천지 피해자
"(처음에는 가출시키더니 지금은) 각자 친척집에 애들을 빼돌려서 계속 피드백 하고 뒤로 연락하면서 부모형제간에 이간질을 시켜서..."

안상홍증인회에 빠진 아내는 가출 3년 만에 돌아와 아이를 데리고 다시 나갔습니다. 남편은 결국 아내와 이혼소송 중입니다.

[인터뷰] 안상홍증인회 하나님의교회 피해자
"저도 지금 애를 못본지 6개월 됐는데 법정에서 두 번 만나봤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세요?) 안가르쳐주니까요. 법정에서도 안가르쳐주니까요."

2004년 구원파에서 탈퇴했다는 전해동씨는 14년동안 구원파교회 건축현장에서 막노동을 했지만, 월급은 받지 못하고, 오히려 1억원 넘는 재산을 헌금으로 모두 뜯겼습니다.

[인터뷰] 전해동 (구원파 피해자)
"구원파 (다니고) 탈퇴하면 저처럼 거지가 되고 가정이 파탄나고.. 살해협박 당하고 온갖 모욕을 그쪽 사람들한테 당합니다."

신천지와 하나님의교회 안상홍증인회, 구원파, 정명석 JMS 등 이단 사이비 집단 피해자들이 거리에서 연합집회를 벌였습니다.

이들은 가족을 깨뜨리고, 재산을 빼앗고, 협박과 폭력을 행사하며 사회적 범죄를 일으키는 사이비집단을 정부와 검찰이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정법상 명백한 불법행위를 해도 제대로 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터뷰] 엄승욱 총무 (신천지대책전국연합)
"신천지는 명백히 허위로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했습니다. 27년동안. 그 규모도 엄청납니다. 그런데 그것을 수사기관이 수사조차 하지 않고 있어요."

이들은 종교라는 탈을 쓰고 불법을 저지르는 사이비단체에 대해 정부와 검찰이 단호한 법집행만 했어도 세월호 같은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거라며, 더 큰 국민적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갖고 단속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인터뷰] 이영호 목사 (사이비종교피해자대책연맹)
"사이비 종교를 분류할 수 있는 정부 나름대로의 법적 기준을 만들어서 적극적인 단속을 할 필요가 있는데..."

이단사이비 피해자들은 주말마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거리에 나와 이단 사이비단체의 거짓선동과 심각한 피해 사실을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려나갈 계획입니다.

<영상 정용현 편집 서원익>
천수연 기자 ⓒ CBS 크리스천노컷뉴스

출처: USA아멘넷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원이며,

세계교회협의회(WCC)회원입니다.

 

이러한 여러분들은 한국에 있는 기독교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세를 가지고 

그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분 교단과 여러분들이 회원으로 있는 WCC와 NCCK는

오래전 부터 로마 가톨릭과 하나되는 일치를 위한 행사로

일년에 1주간 동안을 정하여 기도회로 지금까지 행하여 왔습니다.

 

금년에는 여러분들의 총회장 김동엽목사가 시무하는 목민교회에서

가톨릭(천주교) 신부의 인도로 기독교와 천주교가 하나되는 일치를 위한 기도회를

아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9년으로 기억하는데

통합측 교단의 김삼환 목사가 NCCK회장 일때는  

올림픽 홀에서 가톨릭과 하나되는 일치를 위한 기도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 사실이 있습니다.

 

 

 

 

 

 

가톨릭과 하나되게 하기 위한 이러한 행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이미 오래전 부터 계획하고 이를 따라서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로,

가톨릭의 경우는 지난 3월 말에

직제협의회 구성에 대한 정관을 승인했었고,

 

통합측 교단이 중심회원으로 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도

4월 24일 열리는 정기 실행위원회에서

직제협의회 창립 승인 안건으로 다루고

통과키로 정하였고

 

이를 따라서 가톨릭과 NCCK는 금년 5월22일 가톨릭과

하나되기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신앙과 직제협의회"(가칭)창립키로 하였습니다.

 

통합측에 소속된 목사님 여러분!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교회와 교인들은 기독교로서 

기독교이면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몸이 된 지체들을 뜻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님을 머리와 몸으로 해서 이에 붙어 있는 지체들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교회, 곧 기독교라고 칭해 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독교가 어떻게 가톨릭과 하나되는 일치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통합측은 기독교가 아닙니까?

기독교가 어떻게 가톨릭과 하나를 이루기 위하여  “한국 그리스도인 신앙과 직제협의회"를 창립한단 말입니까?

 

묻습니다.

가톨릭이 기독교입니까?

기독교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비슷한 것 같지만 모든 것이 완전히 다릅니다.

다를 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해치는 무서운 실체를 가졌습니다.

 

가톨릭은 가톨릭이지 기독교가 아닙니다.

가톨릭이란 말 그 자체가 로마교라는 말이 아닙니까?

로마의 보편적인 교라고 해서 로마 가톨릭이라고 칭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근원으로 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사도들에 의하여

복음으로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곳 저곳에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 교회가 로마에 와서는

바벨론의 여러 신들과 함께 부정과 부패가 그리스도의교회 안으로 유입이 되어 혼합으로 말미암아

변형, 변모, 변개,변질되어 그만 로마교가 되고 말았지 않았습니까?

그로 부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곧 기독교가 로마에서는 로마 가톨릭이 된 것이 아닙니까?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들은

여러분들의 교단 소속, 역사학을 전공하신 신학자들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이제 묻습니다.

그 동안 여러분 교단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했습니까?

이단으로 정죄한 그들의 잘못이 무엇인지요? 

그들이 어떤 잘못을 범하였기에 이단으로 정죄하고 배척했습니까?

어떤 이단이더라도 아니, 대한 민국에 있는 이단들을 전부 모아 놓은 것 보다 

더 큰 이단이 가톨릭입니다.

가톨릭에 비하여 한국의 모든 이단들은 하루 살이에 불과 하고 로마 가톨릭은 약대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의 교단, 통합측이 가톨릭과 하나 되겠다고 가톨릭과 함께 새로운 총회를 만든다는 이것은, 

기독교+가톨릭= 기형적인 괴물을 출산하는 모양새입니다. 

그 괴물을 성경적인 기독교를 해치는 불의의 병기가 됩니다.

 

여러분들은 로마 가톨릭을 이단 차원을 넘어선, 

적 그리스도로 규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는 고사하고 가톨릭과 하나를 이루겠다며,

일치를 위한 가톨릭과 함께 하는 총회를 만들겠다고 나섰습니다.

이것은 제 정신이 아닙니다.

미혹의 영에 걸려든 것이 아니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어두움의 길을 여러분 교단은 걷고 있습니다. 

 

묻습니다.

마리아 상을 만들어 놓고 이를 향하여 엄마 삼창을 하게 하거나 한다면 

이단입니까? 아닙니까?

마리아 상을 만들어 놓고 이를 향하여 머리 숙이고 기도를 하거나 

꽃을 드린다면 이단입니까? 아닙니까?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 라고 한다면 이단입니까? 아닙니까?

마리아가 하늘의 여왕이라면 이단입니까? 아닙니까?

예수님을 통하지 말고 마리아를 통하라고 가르친다면 이단입니까? 아닙니까?

마리아가 죄 없이 태어났다고 주장 한다면 성경교리에 반한 이단입니까 아닙니까?  

눈을 뜨고 다음 사진을 보십시요.

 

 

 

 

 

 

 

성당 안에 죽은 사람의 무덤을 두거나

시체를 미라로 만들어 전시하거나 뼈들을 모아 놓는, 

이러한 행동이 유물 숭배입니까? 아닙니까?

가톨릭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이 보이지만 형상을 만들어 놓고 이를 숭배하고 유물을 숭배하는 노선을 걷는,

무서운 정체성을 가진 것이 로마 가톨릭이라는 사실을 통합측은 속히 아셔야 합니다. 

 

 

성찬시,

떡이 예수님의 실제의 몸으로 변하여

이것이 사제들의 손에 의하여 

하나님께 제사드리는것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행한다면 정신이 바른 행동입니까? 

정신이 나간 행동입니까? 

 

성경까지 변개 시킨 행위 등등,

가톨릭의 모든 행위들을 낱낱이 열거하고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천년 세월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이 사람을 죽이라고 지시를 했습니까?

로마 가톨릭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몰아서 잔혹하게 죽이되,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였습니까?

이들이 진정한 회개를 한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지금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

세계를 정복하려는 어두운 세력일 뿐입니다.

이에 모든 인류가 위장된 평화의 사도에 미혹되어 있을 뿐입니다.

 

통합측 목사님들!

가톨릭과의 하나되는 일치를 위한 5월에 있을 한국 기독교-천주교 직제협 창립 총회

기형적인 괴물을  태어나게 해서 성경적인 기독교를 한국 땅에서 없애 버리는  총회가 될 것입니다.

 

통합측 목사님들 가운데,

주의 인도하심을 받는 목회자분들이 계시다면

가톨릭과 하나되는 일치를 위한 직제협 총회가 개최되지 못하도록

나서 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가톨릭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로마교입니다.

성경적인 기독교가 세계로 번성 한다면야 참 좋으련만

불행하게도 변형, 변개, 변모, 변질돤 로마교가 기독교 처럼 온 지구상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평화, 봉사, 구제 등등 이 세상 사회적인 면을 부각 시켜서 말입니다.

 

가톨릭은 평화의 사도가 아니라

기독교를 대적하고 인류 구원의 길을 왜곡 시켜 가로막는, 

인류의 대적이기도 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를 훼손 시키는 십자가의 원수이기도 합니다.

어찌하여 통합측은 이러한 어두움의 세력들과 하나가 되겠다고 가담을 하는지요?

 

 

변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금수와 버러지 형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로마 가톨릭임을 아셔야 합니다.

붉은 옷 속에 가려진 거짓된 평화를 아셔야 합니다.

한국교회 130년 역사에서 오늘을 살아가는우리들의 시대에서

성경적인 기독교를 가톨릭과 하나되는 일치로 인한 혼합으로 

변모, 변형, 변개, 변질 시켜 다음 세대에 물려 줄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 로마 가톨릭 교황을 방문한 NCCK 소속 교단장들)





출처: http://cafe.daum.net/wccpusan/V5oM/21
손기철 장로의 저서에 나타난 문제점
기사입력 2014-04-14 오후 7:59:00 | 최종수정 2014-04-14 19:59   


▲ 헤븐리터치미니스터리의 대표 손기철 장로(HTM 홈페이지 갈무리)


손기철 장로(헤븐리터지미니스터리 대표, 온누리교회 장로)는 그동안 주로 치유사역을 해왔다. 필자는 치유사역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오늘날도 치유의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치유사역자들이 자신의 치유 행위와 관련된 특별한 교리를 주장할 때는 조금 달라진다. 치유의 배경과 바탕이 되는 나름대로의 교리와 사상을 말한다면 그것이 과연 성경적인지, 한국교회가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 성도들이 분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손기철 대표는 최근에 자신이 갖고 있는 교리와 사상을, <치유기도>, <알고싶어요 성령님>,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 <기름부으심>, <왕의 기도>(이상 규장 출판사) 등 적잖은 저서를 통해 나타내왔고 이와 관련한 제보와 질의가 필자에게 많이 들어오고 있다.

손기철 대표의 몇 권의 책을 읽는 중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견되었고, 특히 예수님도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그리스도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심각한 문제점을 느꼈다. 그의 교리적 사상을 요약하자면, (1) 영·혼·육을 분리하는 이원론 (2) ‘외부로부터 임하는 성령’(그는 이것을 ‘성령체험’이라고 설명한다)에 대한 비성경적인 주장 (3) 신사도운동의 임파테이션과 유사한 기름부음 (4) 신사도운동의 신비주의적인 집회 (5) 하나님나라에 대한 왜곡과 불균형적인 이해 등이다. 먼저 손 대표의 사상의 문제점을 좀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지방교회·귀신파·다락방의 이원론적 인간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영에는 하나님이 거하고 육에는 사탄(죄)이 거한다는 이원론

인간의 구성요소에 따른 신학적인 견해에는 이분법과 삼분법이 있다. 물론 필자는 교단의 차이에 따른 다양한 신학적인 견해를 존중한다. 이분법이든 삼분법이든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인간을 영과 혼과 육의 세 부분 또는 세 장소로 분리시키는 이원론적인 견해는 조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살아있는 전인적인 사람을 영과 혼과 육의 장소적인 개념으로 분리시켜, 영에는 성령 하나님이 거하고 육에는 사탄 또는 죄가 거한다고 가르치거나, 혼과 육은 성령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거나, 영은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혼과 육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지방교회, 베뢰아, 구원파, 다락방의 주장을 살펴보자.

(지방교회의 주장)
“죄는 사단의 체현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체현이다. 이 두 체현들이 우리 안에 있다.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영 안에 있고, 사단의 체현인 죄는 우리 육신 안에 있다.”(위트니스 리, 세부분의 사람의 생명이 되시는 삼일하나님, 73쪽)

“우리는 우리 존재에 세부분이 있음을 알고 있다. 당신은 사단이 그의 거처를 당신의 몸, 즉 당신의 육체 속에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가? 그리고 당신은 주님께서 당신의 영을 그분의 거처로 삼으셨다는 것을 아는가?”(위트니스 리, 왕국, 218쪽)
  
사단은 우리 몸 안으로 들어왔으며, 우리 몸으로부터 우리 혼에 대해 통제를 행사하고 있다. 이같이 사단은 밖에서부터 안으로 역사한다. 주님은 반대방향으로 즉 안에서부터 밖으로 역사하신다. 어느날 주님은 우리 존재의 중심이요 축인 우리 영 안에 들어오셔서 그것을 그분의 거처로 삼으셨다.”(위트니스 리, 왕국, 217쪽)

(베뢰아의 주장)
“우리의 심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졌기에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있지만 육체는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없습니다.” (김기동, 마귀론, 하 154쪽)

귀신은 사람의 영혼 속에는 들어오지 못하지만 육체 안에는 들어올 수 있습니다.”(김기동 마귀론 하 63쪽)

(구원파의 주장)
(1) 영혼의 구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영혼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죄성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2) 구원받은 사람도 죄를 짓는 이유: 사단은 공중권세를 가진 자이며 인간육체를 통해 역사합니다.
(3) 구원받은 사람이 범하는 죄의 유형 첫째는 부지 중에 짓는 죄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육신이 아직 죄성 가운데 있기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올라오는 죄입니다 (생명의말씀 선교회 홈페이지, 이요한, 대한예수교복음침례회)

(다락방의 주장)
(1)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 1:14).
(2) 그러므로 그분은 죄가 없고 그 영은 하나님이십니다(고전 15:45).
(3)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4)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가진 분입니다(마 16:16~19) - 영은 하나님이시고 몸만 사람의 몸을 입고 계신 분이 예수님이다.” (복음편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아예 오신 것이다.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육이고, 우리의 마음이지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신다” (류광수, 현장복음, 2과 - 새로운 생명 (3) 성령의 내주란 무엇인가?).

헬라철학적인 이원론자들은 이 세상의 근원을 영(선)과 물질(악)의 대결구도로 분리하며, 이 세상을 하나님과 사탄의 두 세력으로 양분하려고 한다. 즉 세상의 악, 질병, 사고나 불행은 모두 사탄으로부터 온다고 간주하며, 육체는 악한 것으로 간주하고 죄가 거하는 좌소로 간주하였다. 그러한 헬라철학은 초대교회 영지주의 이단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인이라고 할 때에는, 우리의 육체만이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인적인 인격이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육은 그 자체만으로 악하거나 악의 좌소가 되지 않는다. 예수님이 죄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육체에 죄가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며, 인간 자체가 죄인이라는 뜻이다. 성경에는 ‘육체’라는 단어는 대부분 전인적이며 총체적인 인간 자신을 뜻하였고, 영이신 하나님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표현된다. 성경은 선악의 문제에서 육체와 영의 구별을 하지 않는다. 육만 더러운 것이 아니라 영도 더러운 것이며 전인적인 인간이 곧 더러운 것이다. 다시 말하여 육체에 사탄이 거하며, 죄가 있다고 하거나, 영은 죄가 없고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 영에 하나님이 거한다는 주장은 성경적이지 못하다. 우리의 죄는 전인적인 마음에 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7:11)

또한 성경은 육체에 사단이 거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예수의 생명이 우리 육체에 나타난다고 말한다.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4:11)

또 육체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과 혼도 죄를 짓는다.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이니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soul)을 보전하느니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spirit)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6:17-18)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내 영혼(네페쉬)을 고치소서 하였나이다”(시 41:4)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spirit)을 감찰하시느니라” (잠 16:2)

마찬가지로 육체가 죄악되고 더러운 것이 아니라, 육체도 영과 함께 전인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성경적인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63:1)

2) 손기철 대표의 이원론

손기철 대표는 구원파의 주장과 같이 영은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 혼과 육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며, 또 지방교회나 베뢰아와 같이 우리의 영 안에 성령이 거하며, 육과 혼에 죄의 세력과 악한 영들이 있다고 분리시킨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고, 성령체험을 하기 위해 모든 잘못된 것을 회개했으며, 갈망함으로 지금 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독대하여 성령의 임재를 간절히 구할 차례입니다.
“주님, 제가 이 시간에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시는 체험을 하기 원합니다. 비록 내 영은 구원받았고, 내 영 안에는 이미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만 내 혼과 육에 찾아주시는 성령체험 없이는 일상에서 그리고 모든 삶의 모든 부분에서 주의 자녀로서 주의 뜻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간절히 사모하오니 지금 이 시간에 임하시옵소서”(알고싶어요 성령님, 89쪽).

“성령님이 빛으로 사랑으로 영광으로 임하시면 하나님의 성전된 우리 육신이 반응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빛이 임하실 때 우리의 육신을 붙들고 있던 악한 영들이 떠나가기 때문에 보기에 아름답지 못한 현상들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90쪽).

“그렇지만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났고,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죄사함을 받은 존재입니다. 우리의 영은 새롭게 되었지만, 우리의 혼과 육은 여전히 죄의 세력에 노출되어 있고 자신의 상처와 욕심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이때부터 악한 영은 우리 자신이 지은 죄와 상처에 대해 본격적으로 시험하게 됩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128-129쪽).
  
악한 영들은 그리스도의 영이 계신 우리의 영에는 결코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여전히 상처가 있고 쓴뿌리가 있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사는 한, 죄의 세력은 우리의 육신을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기 위해 늘 우리 주위를 돌며 틈을 노립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유혹이나 두려움에 묶이거나 거짓말이나 참소에 넘어갈 때에, 그 죄를 타고 들어와 우리의 혼과 육을 사로잡고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들은 우리가 우리 영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 삶의 태도와 행동을 바꾸고 악한 영을 쫓아내는 비밀을 깨닫게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합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132쪽).

“우리가 중생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요 3:6). 구원 받은 후, 비록 우리의 혼과 육은 여전히 죄의 세력 가운데 놓여 있다 해도, 우리의 영 안에는 2천년 전 육신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영 안에 계신 바로 그 하나님의 영이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내 영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의식하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 자기 자신과 세상을 보는 것이 임재의식입니다. 끊임없는 하나님의 임재의식 가운데 살아가는 훈련이 깊어지면 우리가 일상에서 그분께 예배하고 그분과 친밀함을 나누는 것이 가능해 집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182쪽).


성경에서 바울은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대조시키면서,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말하였는데, 성경에서 ‘육체’라는 표현은 고깃덩어리의 부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지 못한 인간 자체’를 말함으로서 ‘성령 하나님’과 대조한 것이다.

"육체의 소욕(인간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하나님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즉 본문은 인간의 육체와 영을 대조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가진 인간과 ‘영’이신 성령하나님을 대조하는 것이다. 또한 ‘영’(프뉴마)이란 인간의 내적인 부분으로서 신적 실재와 접촉하는 직접성과 관련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성령을 가리킨다. 앞서 말하였듯이, 바울이 말한 ‘육신을 좇는 소욕’의 개념은 사람을 육과 영으로 분리하고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와 보호를 좇는 삶’과 거듭나지 않은 사람을 구별한다. 바울은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함을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고 표현한다. 다시 말하여, 바울이 "영에 있다"고 하는 것은 영과 육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거듭남’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다시 말하자면, ‘육신에 있는 자’는 거듭나지 못한 자를 뜻한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3:6-7)

즉 바울이 말한 ‘육체의 소욕’이란 영혼을 제외한 고깃덩어리만의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에 반대되는 총체적인 인간의 소욕을 말한다. 영이 거듭난다는 것은 없었던 영을 갖게 된 것을 뜻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그 영을 강퍅하게 하셨다"(신 2:30)는 것처럼, 우리가 불신자였을 때에 그 ‘영’이 없거나 죽은 것이 아니라, 그 영이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졌음을 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하나님과 단절된 영은 죽은 것이며, 그것이 곧 ‘육신에 있는 자’로 표현된다.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했을 때에, 그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영적인 죽음도 함께 포함되어졌다. 바울이 허물과 죄로 죽었으나(엡 2:1)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가 되었다(롬 6:11)고 말하였을 때에, 영과 육을 구별하고 분리하자는 뜻이 아니며, 전인적으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고후 5:17). 물론 인간은 죽어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다. 야고보서 2장 26절과 같이, "영혼없는 몸은 사실상 죽은 시체"이다.

또한 손기철 대표는 성령이 내주하는 거듭난 성도들에게도 영에는 성령이, 육과 혼에는 악령이 동시에 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러한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손기철 대표에게는 성령이 성도들에게 내주하는 이유가 개인에 대한 구원의 보증과 인도하심보다는 오히려 귀신을 쫓고 권능을 행하기 위한 신비적인 것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 4:4)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요일 5:18)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 4:7)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살후 3:3)

3) 성령세례와 성령체험에 대한 손기철 대표의 문제점

“개혁복음주의에서는 우리가 중생할 때(혹은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의 내주하심을 성령세례로 생각합니다. 즉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세례도 임한다는 입장입니다. 한편 오순절 은사주의에서는 우리가 중생할 때에 이루어지는 성령의 내주하심과 성령세례를 다른 것으로 보며(우리가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의 내주하심과 성령세례가 동일하게 임할 수도 있지만) 대개 물세례 이후 별도의 경험으로 성령세례가 임한다고 봅니다. 저는 성령의 내주하심을 성령세례로, 오순절 은사주의에서 말하는 성령세례를 성령체험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성령체험(성령의 임하심, 성령강림)은 외부로부터의 성령의 임하심으로 그 혼과 육이 성령님께 사로 잡히는 체험을 말합니다. 오순절 이후부터는 성령세례와 성령체험이 동시에 임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성령세례 이후 진정한 성령체험을 하게 됩니다” (알고싶어요 성령님, 51-52쪽).

우선 손기철 대표의 신학적 오류부터 지적하여야 할 것 같다. 손기철 대표가 말하는 개혁복음주의는 아마 개혁주의와 복음주의를 총칭하는 것 같다. 어쨌든 손기철 대표의 신학적인 무지와 달리, 개혁주의나 복음주의에서는 물세례를 받을 때에 성령세례도 함께 받는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개혁주의나 복음주의는 성령세례를 단회적인 성령내주로 보며, 성령충만은 이미 내주한 성령의 Full-fill 상태로 보며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또 오순절 은사주의에 대해서도 손기철 대표는 잘못된 오류를 주장하고 있는데, 오순절 계열의 교회와 개혁주의, 복음주의가 모두 동일하게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다르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오순절 계열에서는 성령내주와 성령세례를 동일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가르친다. 손기철 대표는 개혁주의나 복음주의도 사용하지 않고, 오순절도 사용하지 않는 ‘성령체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성령체험이 ‘외부로부터 임하는 성령’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거듭난 사람에게 성령이 내주하여 있으니 성령충만할 수 있으며 성령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내부로 임하는 성령이 따로 있고 외부로 임하는 성령이 따로 있는가?

4) 성령체험에 대한 이상한 주장

손기철 대표는 계속 성령체험을 성령내주와 다른 것으로 구별하여, 기름부음은 위로부터 성령이 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성령내주와 그리스도의 나타남을 다른 사건으로 구별하는데, 그렇다면 성령 내주로는 그리스도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 성령님은 지금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위로부터 임하십니다. 그때 우리의 혼과 육이 영의 통치함을 받는 것을 비로소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와 함께 또 온 우주에 편재하시는 분입니다. 특별히 그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를 강력하게 사로 잡으실 때에 우리는 혼적 의식을 내려 놓게 됩니다. 그 때 이미 우리 심령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 우리의 혼과 육이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함을 받게 되고 비로소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알고싶어요 성령님, 35-36쪽)

“그러나 동일한 성령님이시지만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과 우리가 매일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의 영이 거듭나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지만 내주해 계시는 성령님이 전부가 아니라, 성령님이 위로부터 임하셔서 우리의 혼과 육을 사로잡은 주권적인 역사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알고 싶어요 성령님, 48)

우리의 혼과 육이 온전히 사로 잡히는 체험적 과정을 통해 우리 안에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생깁니다. 성령체험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의 영에 기초한 새롭게 변화된 자기 의식을 경험할 때 우리는 자기 죄성이 이미 없어졌으며, 우리 자신의 영 안에(자신의 혼과 육이 아니라) 새로운 하나님의 성품이 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58쪽)


장로교인인 손기철 대표의 주장은 개혁주의나 복음주의적인 입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오순절교회와 같은 주장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성령님이 위로부터 임하는 것이 성령체험이라고 주장하면서 성령내주와 그리스도의 나타남을 다른 것으로 구별하기 때문이다.

또 손기철 대표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들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온전하지 못한 가르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성령내주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분명히 손기철 대표의 성령체험에 대한 주장과 이원론은 정통신학적인 내용이 아니다. 그렇다면 손기철 대표의 사상과 다른 정통신학을 가르치는 개혁주의와 복음주의에서는 온전하지 못한 가르침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를 받지 못한다는 것인가? 말을 바꾸면, 정통신학이 말하는 성령내주로는 그리스도가 나타날 수 없고 그리스도의 영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인가? 손 대표의 주장은 결과적으로는 지방교회, 또는 베뢰아나 다락방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예를 들면 성령님이 임하실 때 쓰러지거나 몸을 떨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기침하거나 우는 일들을 보며 성령님이 역사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성령님이 우리의 혼과 육에 임하셨기 때문에 일어나며 또는 그 결과로 우리 육신 안에 있던 악한 영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알고 싶어요 성령님, 45쪽)

Q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이 인도함을 받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지나온 역사를 볼 때 그것은 성령에 대한 편견적 이해와 성령사역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그리고 온전하지 못한 가르침 때문입니다. 그것이 결국 말씀과 성령을 분리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63쪽)

“흔히 자신 안에 성령님이 이미 계시기 때문에 더 이상 위로부터 임하시는 성령체험이 필요없으며,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나타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 자신의 영 안에 성령님이 계신다고 하더라도 아직 온전히 구원받지 못한 우리의 혼과 육의 헌신과 노력으로 그 성령님을 알 수 없고, 그 분이 나타나게 할 수도 없으며, 나타나시는 것을 알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58쪽)

“성령체험은 누구나 추구해야 합니다. 칭의와 성화는 우리의 회개와 거듭남으로, 우리 안에 계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적으로 성화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체험이 필요합니다. 이 성령체험은 중생 또는 물세례와 동시에 또 이후에 이차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73쪽)


놀랍게도 손기철 대표는 칭의와 성화는 우리의 회개와 거듭남으로 이미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체험이 있어야만 실제적인 성화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것을 2차적으로 체험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령내주만으로는 아무리 헌신하고 노력해도 성령님을 알수도 없고 나타나게 할 수도 없고 나타나도 알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손 대표는 성령내주만 알고 있는 성도들은 도저히 성령을 알 수 없고 자신이 주장하는 위로부터의 성령을 체험해야만 성령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정통신학적인 성령론으로는 실제적인 성화의 삶을 살 수 없다는 이상한 주장을 말하는 셈이다. 아래 글을 보면 손기철 대표는 분명히 성령세례와 성령체험을 다르다고 말하며, 사람들이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성령체험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왜 성령체험을 구하지 않을까요? 첫 번째로는 성령체험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성령세례와 성령체험을 혼동하여 성령체험을 하지 못했는데도 이미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령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세 번쩨로 자신의 혼적의지로 통제하지 못하는 영적인 것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76-77쪽)

심지어 손기철 대표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웨슬레의 회심 사건을 잘못 인용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많은 신앙선배들의 삶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존 웨슬레의 경우 그는 예수님을 영접했고 선교사로서 각별한 수고와 헌신을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그에게 성령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성령님이 내주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행위와 노력으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을 때 그는 아무 열매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올더스케이트의 모라비안교도 집회에서 뜨겁게 성령을 체험함으로 그의 혼과 육이 영의 통치함을 받을 때부터 그에게 기름 부으심이 임했고 놀라운 성령의 열매가 맞히기 시작했습니다” (알고싶어요 성령님, 35쪽)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손기철 대표는 사실을 잘못 파악하고 있다. 존 웨슬레는 올더 스케이트 집회를 참가하여 사회자가 마틴 루터의 서문에서 롬 1:14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을 읽을 때에 회심을 한 것이며, 웨슬레는 손기철 대표가 말하는 혼과 육이 영의 통치함을 받는 이상한 성령체험을 하거나 특히 기름부음을 받은 것이 아니다.

   
▲ 집회 중인 손기철 장로(HTM 홈페이지 갈무리)

5) 손기철 대표의 기름부음(크리스마, anointing)

손기철 대표는 기름부음이라는 용어도 성경과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손기철 대표가 말하는 기름부음은 소위 성령체험으로서 신사도운동이 주장하는 기름부음과 같은 것이다.

“또한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안수를 통해서도 성령체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물세례는 받았지만,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했을 때 성령체험을 하게 된 예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행8:14-17, 행19:5-6 인용) (알고 싶어요 성령님, 53쪽)

안수를 통하여 성령을 체험한다는 이러한 주장은 신사도운동의 임파테이션과 동일한 주장이다. 성경에서는 안수라는 행위나 의식을 통하여 성령체험을 한 것이 아니라, 안수라는 기도를 할 때 성령을 받게 된 것이다. 손기철 대표는 행 8:12-17을 인용하여 안수를 통하여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행 8:15에서는 “성령받기를 기도하니”라고 기록되어, 기도를 통하여 성령을 받은 것이며, 특히 행 8:18에서 시몬이라는 자가 안수를 통해서 성령을 받는 줄로 착각하여 돈을 주고 그 능력을 사려고 하다가 행 8:20에서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라는 꾸중을 듣게 된다. 손기철 대표는 하나님의 선물을 안수를 통해 받았다고 생각하는 시몬과 같다. 행 19:5-6에서도 “그 전에는 성령을 받은 적이 없었다”는 구절로 볼 때에 그 사건은 성령체험이 아니라, 성령의 내주로 보아야 하며, 안수라는 의식을 통하여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안수를 할 때 성령이 강림하신 것이다.

특히 ‘기름부음’에 대해서는 신약성경에서 몇구절이 기록되어 있다. 그 신약구절은 기름부음이 손기철 대표의 주장과 달리 “성령내주”라는 것을 말하여 준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크리스마, anointing)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일 2:20).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구약에서 ‘기름부음’은 왕과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이 임명하시거나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제한된 사람에게 해당되었다. 그러나 신약에서 ‘기름부음’은 곧 성령을 받은 것을 뜻한다. 본문에서 요일 2:20은 “거룩하신 자에게서···받고” 요일 2:27은 “주께 받은 바”라고 언급한다. 자칭 사도나 목사의 임파테이션을 통하여 성령 혹은 성령의 능력을 전이시킬 수 있다는 신사도운동의 주장은 비성경적이며, 신약에서 ‘기름부음’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거듭남의 상태를 뜻한다. 즉 요한일서에서 사도요한은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성유식과 같은 인위적인 형식이나 의식으로 성령을 받는다고 주장하였을 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기름 부음이 곧 ‘성령의 내주’라는 것을 말한다. 특히 고후 1:21~22는 기름부음이 곧 성령의 내주를 뜻한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고후 1:21-22)

성령이나 능력은 안수 자체를 통하여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이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이 과연 안수를 통하여 오셨는가? 성령의 은사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성령께서 그의 뜻대로 각 지체에게 나누어주는 선물이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전 12:11)

손기철 대표는 방언이 기름부으심을 흐르게 하는 유익한 기도라고 말하는데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주장이다.

“늘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도록 간구하기 위해 무시로 방언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방언은 영의 기도이며 성령을 통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방언이 아니라 내 뱃속 깊은 곳에서 흘러 나오는 생수를 따라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자신을 비우고 기름부으심이 흐르게 하는 매우 유익한 기도입니다”(기름부으심, 177)

6) 임파테이션(Impartation)

   
▲ 기도 중인 손기철 장로(HTM 홈페이지 갈무리)

손기철 대표는 성령 혹은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안수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다는 신사도운동과 동일한 임파테이션을 주장한다. 이러한 임파테이션에 대해서 1949년 당시 미국 오순절 교단측에서도 늦은비운동(윌리엄 브래넘)을 이단으로 정죄한 적이 있다.

“나눔은 다른 말로 기름부으심이 나타나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하는 기도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나의 육신을 뚫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쓴 뿌리나 상한 감정들이 들통 나지 않도록, 자신의 낮은 자존심이나 거절감 그리소 수치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부인했고, 나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수많은 방어기제들로 자신을 보호해 왔습니다. 성경에는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고후10:4)이라고 표현합니다”(기름부으심, 183)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하심으로 오랫동안 친밀함을 누린 사람은 그분의 기름부으심이 육신을 통해서 흘러 나가는 것과 흘러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기름부으심, 184쪽).

“그러나 수없는 기도사역 과정을 통해서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언제부터인가 나는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능력이 나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손의 안수를 통한 접촉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나중에는 직접적인 신체 접촉 없이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기름부으심의 흐름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기름부으심, 164-165).


‘안수’(lay hand upon)라는 의식이 어떤 효과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안수는 일종의 의식이며 기도일 뿐이며, 기도에 의하여 하나님이 그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마 19:1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 13:3)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행 28:8)

구약에서 희생제물이 되는 짐승에게 안수를 하므로서 죄를 전가시킨다. 그러나 과연 안수라는 의식 자체가 죄를 이동시키는 능력이 있어서, 사람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켰을까? 사람의 죄는 물질이 아니며 이동되거나 전가되지 않는다. 죄사함은 죄성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죄책을 묻지 않는 것이다. 즉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속죄’를 뜻하는 ‘카파르’와 '푸림‘이라는 단어는 “죄를 덮는다”는 뜻이다. 그 짐승은 죄가 실제로 이동하여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대신 죽음으로서 죄책을 면제 받은 것을 의미한다. 신약에서도 그 사상이 나타나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고후 5:14)

안수를 통하여 실제적으로 죄의 전가가 가능하다면, 지금도 짐승에게 안수를 하여 희생제사를 드리면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손기철 대표는 이와 같이 신사도운동의 비성경적인 임파테이션을 주장하고 있다. 신사도운동이 임파테이션을 성경적인 근거로 주장하는 것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롬 1:11)

신사도운동에서는 바울이 신령한 영적 은사를 성도들에게 나누어준다고 주장한다. 이 동사의 단어가 영어로 impart이기 때문에 Impartation이라는 용어가 나타났다. 과연 사도바울은 신령한 은사를 성도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고 하였는가? 정확한 해석을 위해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11절에서 말한 ‘어떤 신령한 은사’(some spiritual gift)라는 표현에 대해서 다른 번역성경을 살펴보자.

[공동번역] 내가 여러분을 애타게 만나보려는 것은 여러분과 함께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에게 힘을 북돋아주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성경] 이처럼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만나려고 하는 것은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의 믿음을 강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은사’라는 단어를 영적은사로만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공동번역과 현대인의성경은 “축복”으로 번역하였으며, KJV와 NIV영어성경은 모두 "Spiritual gift"로 번역하였다. 성경에서 “은사”(카리스마)라는 단어는 언제나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언급되는 방언이나 예언과 같은 영적 은사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영적, 정신적, 물질적인 “선물, 은혜”를 모두 포괄한다. 같은 로마서를 살펴보면,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갖고 간다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bressing, 율로기아)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롬 15:29).

7) 기름부음에서 나타난 위험한 기독론

손기철 대표의 기름부음에는 매우 위험한 기독론적 주장들이 내포돼 있다. 손기철 대표는 “예수님이 기름부으심을 받은 후 그리스도라고 불렸습니다”는 이상한 주장을 한다.

“이 말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에게 이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과 기름부으심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신앙생활에서 구원 후 매우 중요한 것이 ‘기름부으심’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기름부으심을 받은 후 ‘그리스도’라고 불렸습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 혹은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를 뜻합니다. 예수님이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라면 우리도 당연히 그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에게 속해야 합니다. 즉 우리에게도 동일한 기름부으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었을 때 비로소 공생애 사역을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기름부으심이 임할 때라야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할 수 있게 됩니다”(기름부으심, 손기철, 2008년, 규장, 8쪽)

손기철 대표는 예수님이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동일한 기름부으심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와 같은 주장은 매우 위험한 주장으로 “사람은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지방교회와 같은 신화사상으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더욱이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는 내주”와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기름부음, 성령체험”에 대한 이상한 차이점을 예수님의 경우에 비교할 때에 그는 위험한 지방교회의 주장과 연결되어진다.

메시아(헬라어: 멧시아스. 히브리어: 마쉬아흐)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번역하면 “그리스도”가 된다. 구약에서는 주로 왕, 선지자, 제사장같은 높은 직분을 가진 자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불렸으며,(왕상19:16, 시133:2, 출30:22-30) 그 말의 의미는 신성한 지위를 부여하고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약속된 “그 메시아”(호 크리스토, the Christ)를 기다려왔다.

다시 말하여, “메시아”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 선지자, 제사장(출 29:29)을 의미하며, 그래서 그 세 직분을 “예수님의 삼중직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직분을 모두 겸한 사람은 예수님 외에 누구도 없었다. 그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크다는 세례요한도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요1:20)

성경은 오직 예수만이 구약에서 예언된 “그 그리스도”(the Christ)이시며,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구약에서 약속된 그 메시아라는 것을 명백하게 말해주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몇몇 이단들은 기름부음(그리스도)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모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2000년 전에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하여도 믿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24:23-26. 참고: 막13:21)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24:5)

기독교의 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베드로와 동일한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다.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마16:16)

“예수님은 세례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후부터 공생애를 시작하셨으며, 우리는 그때부터 그분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단지 물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물 위로 올라오실 때 성령세례를 받았고, 그 결과로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이고 히브리어로는 ‘메시아’이며, 그 뜻은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입니다” (기름부으심, 18쪽)

“결국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기름부으심을 받으신 후에 권능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가르치심에 권세가 있고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선포하시고, 권능으로 기사와 표적을 일으키신 것도 바로 기름부으심이 임했기 때문입니다.”(기름부으심, 19쪽)


손기철 대표는 예수님이 물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그 결과 기름부으심을 받은 후에 권능과 표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며,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하는 매우 위험한 주장을 한다. 더욱이 우리도 그와 같은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8) 신사도운동의 신비주의 현상

손기철 대표는 누가 보아도 신사도운동을 추구하는 신비주의 성향을 갖었다. 그가 말하는 근거는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체험일 뿐으로 억지로 성경적인 것처럼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체험은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와 이단들에서도 볼 수 있는 ‘쿤들리니’ 현상이며, 아래와 같은 손기철 대표의 주장은 명백한 신사도운동의 집회로 볼 수 있는데, 이미 합동은 2011년에 손기철 대표의 집회를 교류금지와 집회참석금지로 규정하였고, 고신은 신사도운동에 대해서 2007년 지국히 불건전한 사상과 집회참석금지로, 합신은 2009년 신사도운동을 이단성과 참여금지로 규정하였으며, 통합교단은 2012년 직통계시, 쓰러짐과 입신등의 집회를 극단적 신비주의로 규정한 바 있으며, 2012년 미주한인장로교연합도 손기철 대표를 집회참석금자로 규정하였다.

“저는 침묵 가운데 깊은 곳으로 나아갈 때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설 만큼 두려움을 주는 악한 영들이 저를 둘러싸고 공격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또 기도하지 못하도록 동굴 안에서 뱀이 똬리를 틀고 저를 노려보는 장면을 환상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영적세계로 나아갈 때는 누구나 이런 종류의 동굴을 통과하게 됩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134-135쪽)

“흔히 안수기도를 받을 때나 집회에 참석해서 찬양과 경배를 드리거나 말씀을 듣는 도중에,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온 몸에 진동이 일어나고 떨리는 현상, 쓰러지거나 쓰러지지 않았지만 몸이 경직되는 현상,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저절로 음직여지는 현상(특별히 허리가 반복적으로 꺾이고 목과 팔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현상 등),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고 싶다거나 감각이 무뎌지는 현상, 눈꺼풀이 심하게 떨리는 현상 등입니다. 그 외에도 호흡이 가빠지거나, 몸이 무겁게 느껴지고 뭔가 내리누르는 느낌을 받거나, 온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거나, 마치 큰 형광등을 켜 놓은 것처럼 머리 주위가 따뜻하게 느껴지거나, 눈 앞에 형형색색의 빛의 움직임을 보거나, 심한 기침을 하거나, 수천볼트의 전기가 지나가는 것처럼 팔이 진동하고 감전된 것처럼 느끼거나, 손바닥이 뜨거워지거나,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하품을 계속 하거나,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괴로워하거나, 드물지만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웃기도 합니다” (알고싶어요 성령님, 142쪽)

“또한 육신이나 마음의 치유를 동시에 경험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손을 잡고 정원을 거닐거나, 예수님의 품 안에 안겨있거나,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방언을 하게 되거나, 환상을 통해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보는 경험을 하거나, 자신의 의지나 생각과 상관없는 말을 선포하기도 합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143쪽)

“성령체험의 역사를 통해서 다양한 현상들을 보게 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쓰러지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찬양하다가 쓰러지기도 하고, 집회 후 기도시간에 안수기도를 받다가 쓰러지기도 하고, 자신도 미처 안식하지 못하는 상황 가운데 쓰러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현상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부정적으로 인식되거나 오해받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쓰러지는 현상을 가르켜 ‘혼절하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 쓰러지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해 보지 못한 데서 나온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알고싶어요 성령님, 149쪽)

“제가 인도하는 말씀치유집회의 현장도 예외는 아닙니다. 말씀을 전하는 도중이나 또는 말씀을 마치고 기도하거나 찬양하는 시간에 한편에서는 기뻐 웃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악한 영의 나타남으로 여기저기 쓰러지고 울부짖고 기침하고 비명을 지르는 둥 소란스러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어이쿠 여기 잘못 왔구나’, ‘이상한 데 왔구나’라고 생각하고 놀라 도망치다시피 자리를 떠납니다. 그것은 자신 안에 있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성령님이 임하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 일은 성령님이 일으키신 일이 아니라 성령님이 임하시자 각종 더러운 죄악, 질병과 악한 영이 떠나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우리 내면의 어둠 가운데 비춰졌을 때 우리 안에 숨어있거나 눌러 놓았던 슬픔, 우울, 염려, 걱정, 불안, 두려움, 비통, 원망, 거절 등 모든 상처와 악한 영들이 드러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 일들은 도리어 정말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알고싶어요 성령님, 162-163쪽)


이단들은 항상 성경, 신학, 이성보다 개인의 체험을 먼저 내세운다. 이와 같이 기적과 표적의 체험적 현상을 위주로 한다면 이러한 현상은 타종교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특히 쓰러짐의 현상에 대해서, 하루에 백번을 쓰러져도 구원을 받지 못하며,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뿐이다. 성경은 표적과 기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 2:9-10).

따라서 온누리교회 장로이자 헤븐리터지 손기철 대표는 자신의 체험과 표적에 대해 그것이 과연 성령의 역사인지 검증과 재검증을 하는 심정으로 되돌아 봐야 한다. 그는 관절염 환자를 5명을 치료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손기철 대표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가? 자신의 느낌인가?

   
▲ 출판 기념 사인회에서 사인하는 손기철 장로(HTM 홈페이지 갈무리)

9) 손기철 대표의 선포기도, 대적기도

손 대표의 선포기도·대적기도를 살펴보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개념 정리부터 하고자 한다.

하나님나라는 원래 통치적인 개념으로서, 궁극적이고 장래적인 개념뿐 아니라 현재적이며 내면적인 개념까지 포함한다. 정통신학에서 말하는 하나님나라는 궁극적인 하나님나라와 함께 현재적인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균형과 조화를 강조한다. 손기철 대표는 책에서 Already but not yet 이라고 써놓고 Already 만 읽고 있는 것 같으며 두 가지를 착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2000년 전 예수님과 함께 도래한 하나님나라”를 “손기철 대표가 선포한 하나님나라”와 동일시하고 있다. 둘째, “예수님과 함께 도래한 하나님나라”를 “이미 성취된 하나님나라”로 착각을 하고 있다. 손기철 대표는 자신의 집회에서 “하나님나라가 임하였기 때문에 아프고 고통받는 사람이 치유되어야 한다”라고 설교를 한다. 손기철 대표의 주장대로라면 이미 하나님나라가 임하였기 때문에 사람이 죽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가 말하는 소위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병도 고통도 가난도 불행도 없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바로 신사도운동의 대적기도와 선포기도이다.

성경적인 예를 들자면, 예수님이 직접 파송하신 칠십문도들이 돌아와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예수님께 고한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눅10:17)

그 때에 예수님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눅 10:20)

다시 말하여 귀신을 쫓는 권세를 받은 것은 기뻐할 일이 아니며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며 그것이 본질적인 것이 된다. 우리는 귀신과 악한 영에 대적하고 싸워야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귀신과 마귀를 쫓아낸 것은 하나님나라를 전파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으며 그것이 곧 하나님나라의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성경에서 영적싸움은 구원을 위한 성화적인 과정을 뜻하며, 그 방법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슴으로 무장하여 성령의 인도와 보호로 미혹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라는 구절은 있지만, 대적기도와 선포기도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기도”라는 것은 그 대상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대적, 싸움 등은 우리의 삶에서 사탄, 마귀의 미혹에 빠지지 않는 것을 말하며,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초능력과 신비한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회중을 방해하는 모기떼들은 모두 사라질지어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회중들에게서 모기가 싫어하는 물질이 분비될지어다!”
그런 다음 밤늦도록 집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로 이어진 집회에서 어제 모기에 물린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3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 중에 단 한명의 자매가 손을 들었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왕의 기도, 17쪽)


손기철 대표는 자신의 책에서 선포기도로 모기가 사라졌다고 주장하는데, 그 자매를 물었던 한 마리의 모기는 예수의 이름으로 내려진 선포기도보다 더 강한 모기였던 것 같다.

신비주의란 “자신이 원할 때마다 하나님이 기적을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실제로 믿는 신앙”을 뜻한다. 이러한 주장은 자신을 신격화시키려는 의도로 신사도운동 인사들이 사용하는 수법과 일치한다. 피터와그너는 자신이 독일에서 광우병이 사라지라고 선포기도한 후에 광우병이 없어졌다고 주장하며 (피터 와그너, 도미니온, 170-171쪽), 하이디베이커는 자신이 미국의 산불을 꺼지라고 선포를 한 후에 여름에 눈보라가 내려서 산불이 꺼졌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예언이 반만 맞으면 훌륭한 것이며 대부분은 틀린다고 고백한 바 있다.

손기철 대표 역시 대적기도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 명령하고 선포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하셨던 그 기도라고 정의하며 왕의 기도라고 말한다.

“나는 기도를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첫 번째 기도의 종류는 ‘하나님께 구하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 우리의 마음을 드리기도 하고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기도 하지만, 사실 이 기도의 내용은 대부분 우리의 소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기도의 종류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기도’입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그리스도와 친밀함을 누리기 위해서 믿음의 눈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의 음성을 듣고 말씀하시는 것을 감동으로 받는 기도가 이에 해당합니다. ‘구하고 드리는 기도’에 비해 좀더 영적이고 깊은 기도이며 꼭 필요한 기도이지요.

세번째 기도의 종류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기도’입니다. 나는 이 기도를 왕의 기도라고 표현합니다. 이 기도의 목적이 왕이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왕의 기도는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문제를 향해 명령하거나 믿음으로 선포하는 기도로서 예수님이 하셨던 바로 그 기도방법을 따라 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 누려야할 축복입니다”.(왕의 기도, 24쪽)

당신이 육신의 사고체제를 벗고 영의 사고체제를 입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신다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첫째 사실과 현상으로 꾸짖으십시오
“이 더러운 암종아, 파쇄될지어다”
둘째 원하는대로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암종아 사라진 깨끗한 장기가 될지어다”(치유기도, 118쪽)

어떤 장소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함을 선포하는 손기철 대표는 하나님인가? 물론 하나님의 나라는 통치적인 개념과 함께 현재적이고 내면적이며 진행적인 개념도 포함된다. 그렇다고 하여 손기철 대표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할 수는 없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도래하였다. 더욱이 손기철 대표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왕의 기도의 비밀을 알려 주셨다고 주장한다.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곳을 주의 보혈로 덮노라”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음을 선포하노라”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였음을 선포하노라”
“주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주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선포하노라”

이것은 내가 집회를 인도하기 시작할 때마다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기도문입니다. 이런 기도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내가 이런 기도부터 시작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깁니다. 듣도 보도 못한 기도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바로 왕의 기도를 드리는 기본 전제입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성경말씀대로 기도해 왔건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고, 나 자신을 정죄하기도 했고, 하나님께서 무심하게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확신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왕의 기도의 비밀을 알려 주시자마자 나는 곧바로 이 선포를 시작했습니다(왕의 기도, 88쪽)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것도 마귀를 심판할 권한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해 볼 수 있는 사건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마귀의 일을 멸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됩니다.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일 뿐만 아니라 마귀를 대적하여 이길 수 있고 이 땅에서 주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알고싶어요 성령님, 119쪽)

“지금 우리는 영적으로 어떤 위치에 서 있습니까? 좌표를 분명히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위치는 마귀의 일을 멸한 지점입니다.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따라서 마귀는 우리가 우리의 생각으로 허용하는 만큼만 우리에게 역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마귀의 일을 멸한 위치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마귀를 두려워하고 떨 뿐 마귀의 일을 멸한 위치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그들을 지배하고 통제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름부으심, 224쪽)


손기철 대표의 주장은 다락방의 기도응답권, 사탄결박권과 천사동원권과 동일한 주장이다. 다락방의 류광수 목사는 사탄결박권과 천사동원권은 내가 하는 기도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주님이 직접 명령하는 선포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다락방, 현장복음멧세지 - 예수의 이름)
(3)여호와의 이름(요17:11-12)
악령을 좇아낼 때,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영아 물러가라!’고 명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더 많이 깨달은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내게 있는 주 예수께서 네게 명령하시니, 나가라!”고 한다. 이게 더 정확한 것이다.

(현장복음 19과 - 그리스도의 부활)
6. 부활의 결과
(3)고전4:45-50 하나님- 예수님은 그 영이 하나님이시다.
(4)요1:14 사람- 예수님의 그 육이 사람이시다.
▶이 위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사람에게 오셨다. 이 예수 이름을 부르면 바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고, 여러분이 예수 이름을 부를때, 사탄의 권세는 깨어진다.
어마어마한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라는 이 말이 보통 말이 아니다. 안되는 것이 없다. 그러니까, 하나님 되시는 분이 직접 명하노니! 라는 말이다. 그래서 역사가 막 일어나는 것이다.

다락방의 사탄결박권과 천사동원권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직접 명령한다는 주장으로 소위 양태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직접 사탄과 천사에게 직접 명령을 한다는 것이다. 손기철 대표는 성령내주로는 부족하고, 위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혼과 육에 나타나야만 권능을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손기철 대표는 또한 예수도 세례를 받을 때에 기름부으심을 받았으므로 우리도 동일한 기름부으심을 받으면 동일한 권능을 행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또 손기철 대표는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사탄의 일을 멸하는 위치에 있다고 말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손기철 대표가 말하는 왕의 기도는 양태론적인 다락방과 동일한 주장으로서 손기철 대표에게도 양태론이 발견된다.

10) 양태론적 삼위일체

손기철 대표가 삼위일체를 용어적으로 해석할 때에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양태론적인 내용은 그의 책 도처에서 발견된다. 즉 그는 용어적으로는 삼위일체를 인정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많은 문제가 발견된다. 손기철 대표는 구약의 하나님의 영광을 성령님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하며, 또 성령님이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예수그리스도로 임하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예수가 부활하신 이후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셨다고 주장하며 심지어 성령이 우리의 아버지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성령님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모세가 지은 성막에 임하셨고, 다윗이 지은 장막에 나타나셨으며, 솔로몬의 성전에 계셨고,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예수그리스도로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성령으로 우리에게 임하고 계십니다.”(왕의 기도, 99쪽)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십니다. 바로 하나님이 이 땅에 현시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38-39)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자신의 형상을 지으시고자 하는 것을 ‘하나님의 형상의식’이라고 부르러 합니다. 우리는 본래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삶이 무엇인지 성육신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삶을 사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은 지금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으로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알고싶어요 성령님, 186-187쪽)

“성령님은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자녀가 다른 어떤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자신의 사랑 전부를 당신에게 쏟아 부으시기를 원하고, 세상 무엇보다도 당신과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분이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알고싶어요 성령님, 191쪽)

“예수님은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 영어로 카운슬러, 우리 말로 풀면 “도와주고 보호하고 변호하는 은혜를 주시는 자”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요16:7)고 하신 것이 바로 이 뜻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 우리 가운데 또다른 보혜사 성령님으로 오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영광을 받지 않으셨을 때에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영원히 내주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때부터입니다“(알고 싶어요 성령님, 26-27쪽)


필자가 보유하고 있는 동영상에도 손기철 대표는 명백한 양태론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말씀이 예수님이시고 말씀이 성령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집회를 하고 수많은 설교를 함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느냐 믿지 않기 때문에 말씀과 성령님을 나눌 수 없습니다. 십자가와 성령님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예수와 성령님을 나눌 수가 있습니까? 성령님은 예수그리스도이시고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동영상)

손기철 대표가 자신의 주장과 같은 책을 볼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의 사상은 정통신학적인 내용과 다르기 때문이다. 건전하고 올바른 신학은 성경을 근거로 제시하는 것인데 반하여, 그에게 진리적인 기준은 단지 자기의 주관적인 체험일 뿐이다.

"지금까지 저는 성령에 관한 수많은 책들을 읽었습니다. 제 소견에는 성령님에 대해 알려주는 책, 성령님에 대한 잘못된 교리나 부작용을 비판하거나 바로 잡아주는 책은 많았지만, 정작 그 성령님과의 만남과 올바른 관계와 친밀한 교제 그리고 그 성령님이 인도함을 받는 삶에 대해 쓴 책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신학적 이론적인 책이 아니라 말씀에 기초하여 살아계신 성령하나님과의 관계를 나눌 수 있는 실제적이고 체험적인 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308-309쪽)

(참고서적)
치유기도 (손기철, 2010, 규장)
알고싶어요 성령님 (손기철, 2012, 규장)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 (손기철, 2009, 규장)
기름부으심(손기철, 2008, 규장)
왕의 기도(손기철, 2008, 규장)


이인규 대표
평신도이단대책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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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 The Mall의 핵심이자 미국 정치의 1번지인 국회의사당.
겉으로 보기에도 놀라운 미학적 건축구조로 세워져 있는 이 웅장한 건물 앞에 서게 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간역사(?) 앞에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참을 넋을 잃고 그 겉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우리의 시선이 그 건물의 정상에 있는 상(Statue)에 고정되어집니다. 멀리서보면 저게 뭘까? 꼭 로마 군인 같은 동상이 그 건물의 꼭대기에 세워져 주변의 모든 지역을 감찰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무엇일까? 궁금해 하다... 이 상의 실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Statue of Freedom

국회의사당 돔의 꼭대기에 세워져 있는 이 청동상은 로마의 군인이 아니라 '자유의 여신'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뉴욕 맨해튼으로 눈을 돌리면... 1886년 미국이 프랑스에게 선사한 Statue of Liberty가 우뚝 세워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자유의 여신'

같은 이름의 두 여신이 정치의 로마 워싱턴 D.C.와 경제의 로마 뉴욕에 우뚝 세워져 있습니다.

특별히 국회의사당 위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은 미국의 모토인 'E pluribus unum'가 세겨진 반구 위에 우뚝 서 있습니다. 미국 모토 중의 하나인 'E pluribus unum' 는 1782년 미국의 the Great Seal of the United States에도 채택되었는데, 그 뜻은  "Out of many, (is) One." or "From many, (comes) One." 곧 "다수로 부터 하나"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 모토는 미국 안에서 전세계 모든 민족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미화되어 있지만... 사실은 전세계를 단일 정부아래 두려는 그들의 흑심도 함께 반영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반구를 떠 받치고 있는 것은 The Great Seal에 등장하는 독수리가 움켜쥐고 있는 월계수와 화살의 묶음으로, 옛 로마에서 다발로 묶은 막대기에 도끼를 붙인 것으로 집정관의 권위를 표시하는 Fasces(페시즈)입니다. 이는 힘과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힘과 권위 위에 전세계를 단일 정부 또는 통치 아래 두려는 이 시대의 로마제국 미국의 흑심을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국회 의사당 정상의 '자유의 여신'은 오른손에 칼을 왼손에는 13개의 스트라이프가 새겨진 미국이라는 방패와 승리를 상징하는 월계수를 쥐고 있습니다. 또한 독수리와 깃털 그리고 주변에는 별로 장식된 투구를 쓰고 가슴에는 US라는 뺏지로 망토를 고정한 채... 완전 무장한 한 전사의 모습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다시 여러분의 시선을 맨해튼으로 돌려보십시오.
뉴욕의 여신은 워싱턴의 여신과는 조금 다르게 칼 대신 횃불(계몽을 상징한다 함), 월계수와 방패대신 돌판(이 돌판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the date of the nation's birth (July 4, 1776)을 로마 숫자로 기록한 것임)stone tablet을 쥐고 7대양 7대륙을 상징하는 Spike 왕관을 쓴 채 우뚝 세워져 있습니다.

워싱턴 D.C. 와 뉴욕을 잇는 첫번째 connection!
두 여신... Statue of Freedom & Statue of Liberty!

두 여신 모두의 이름이 '자유'이지만...
그 자유는 결국 정치와 경제의 단일 통치 체제 수립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땅 미국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 워싱턴과 뉴욕에는
이런 사이좋은 두 여신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에펠탑 근처에 세워져 있는 자유의 여신 역시 서쪽을 바라보며...
뉴욕의 자유의 여신을 동경하고 있다고 하네요^^

두 여신...
주께서 눈을 열어 다시 이 두 여신을 바라봅니다.
보입니다.^^

우리의 원수!


두 여신에 대해 좀 더 알기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를 클릭해 보십시오.
http://en.wikipedia.org/wiki/Statue_of_Freedom (워싱턴 여신^^)
http://en.wikipedia.org/wiki/Statue_of_Liberty (뉴욕 여신^^)


 

 

1881년 3월 4일 무더웠던 저녁 워싱턴 D.C.
제임스 A. 가필드(James A. Garfield) 대통령의 취임 무도회를 위해
건축가 클러스(Cluss)와 슐츠(Schulze)에 의해 고 빅토리언 스타일로 새롭게 건축된 스미소니언 The Arts and Industry 박물관 건물이 개장되었다.

이곳을 방문한 당시 고위층과 부유층 인사들과 그의 부인들은 그 건물의 원형홀에 세워진 거대한 여신상의 엄위함 앞에 잠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잠시 후 그 여신의 오른손에 쥐어져 높이 들린 횃불(Torch)에 불이 켜지자 거기에 모인 이들은 더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날 그 여신의 오른손 위 횃불을 통해 켜진 전기 빛(electric lightning)은 워싱턴 D.C. 최초의 백열등 전기 빛이었다. 그날 거기 모인 모든 이들은 그 여신의 오른손 위에 켜진 백열등 불빛을 통해 새로운 세기에 대한 어떤 무언의 예견 앞에 전율한다. 그 여신의 이름은 다름아닌 ‘The Statue of America’여신 ‘아메리카’였다.

5년 이후 이 여신 ‘아메리카’는 프랑스 조각가 Frederic Auguste Bartholdi와 에펠탑의 디자이너 Alexandre Gustave Eiffel에 의해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The Statue of Liberty)’으로 둔갑되어 1886년 10월 28일 프랑스로부터 헌정된다. 자유의 여신상 오른손 위에 높이 들린 횃불이 ‘계몽(enlightenment)'을 상징한다는데, 이는 1881년 저녁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밝혔던 그 백열구 전기 빛이 ’계몽‘으로 둔갑한 것이었다. (워싱턴과 뉴욕의 실질적 커넥션)

1879년 전기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이 발명한 ‘백열등(incandescent lamp)'의 발명은 우리가 알듯 미국 50만 인구의 삶의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었다.

빛 - 계몽 - 삶의 변화

The Statue of America는...
The Statue of Freedom
The Statue of Liberty의 원조였던 것이다.

이무하 형제께서 언급하셨듯... 이 여신의 기원은... 결국 마리아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이 시대의 로마 워싱턴 D.C.가 바티칸 로마와 연결되는 또 하나의 커넥션...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President and Mrs. Richard Nixon)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President and Mrs. Ronald Reagan)
1989년 조지 부시 대통령(President and Mrs. George Bush)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President and Mrs. Clinton)은 가필드 이후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대통령 축하연을 개최했던 역대 대통령이었습니다.(이 커넥션 또한 흥미롭습니다.)

* 이머징 교회 바로 보기

 

 

1. 서론

 

2013년 목회사회학연구소(소장 조성돈)에서는 7월 2일부터 11일까지 미국 이머징 처치와 미셔널 처치를 직접 방문하고 체험해 볼 수 있는 비전트립을 진행했다. 조성돈 소장은 “우리는 아직 포스트모던이라는 것이 익숙하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꽤 오래 전에 교회가 이 포스트모던 문화와 씨름해 왔다. 그 결과가 바로 이머징 처치와 미셔널 처치로 대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조 교수는 “이머징 처치와 미셔널 처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비롯해 미국 모델교회들에 대한 정보, 이머징 교회의 다양한 모습들, 현대인들의 종교성 등을 강의하고 함께 스터디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한국 사회도 이제 포스트모던 사회로 깊게 진입해 있다. 이 시대에 교회가 어떠한 대응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우리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일찍 포스트모던 문화와 씨름하며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낸 미국 교회를 살펴보는 것은 한국의 목회자들에게 귀한 영감을 허락할 것”이라고 밝혔다(http://www.c3tv.com/newsmission/news_view.asp?seq=53108).

 

현대 사회를 포스트모던 사회라 부른다. 진리는 상대적이다. 내가 옳다면 그것이 곧 진리가 된다. 즉 객관적 진리가 사리진 시대, 주관적 진리가 판을 치는 시대이다. 즉 모든 것이 진리가 되는 시대 사회 풍토 속에서 교회의 예배도 점차 변해하고 있다. 이미 수년전부터 이머징 처치라는 형태의 교회가 한국에도 상륙하여 한국교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과연 이머징 처치가 무엇인지 그 특징을 살펴보고 개혁주의 입장에서 평가해 보고자 한다.

 

 

2. 이머징 교회의 특징

 

2.1. 용어

 

이머징(Emerging)이란 단어는 사전적으로 무슨 의미인가? 형용사로는 ‘최근 생겨난, 최근에 만들어진’이라는 의미이다. 동사로는 ‘나타나다, 발견되다’는 의미를 가진다. 주로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신흥’으로 번역되고 사용되기도 한다.

 

D. A. Carson에 의하면 지난 수년 동안 이 단어가 “신흥의, 새로 떠오르는”이라는 말과 함께 영미뿐 아니라 전 세계 여러 나라의 교회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운동과 관련이 있다고 하였다. 이 운동에 속한 이들은 이 용어를 ‘새롭게 떠오르는, 신흥의’라는 의미로 규정한다고 했다(D. A. Carson, 2009, 14). 즉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새롭게 떠오르는 교회의 형태,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체험해보고 모방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2.2. 특징

 

2.2.1. 새로운 교회

 

이머징 교회 운동의 핵심인사라 할 수 있는 브라이언 맥클라렌은 “새로운 세계를 원한다면 우리에게 새로운 교회가 필요하다. 새로운 종교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의 신학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새로운 영이 아니라 새로운 영성이 필요하며, 새로운 그리스도가 아니라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필요하다. 새로운 교단이 아니라 모든 교단 내에 새로운 교회가 필요하다”고 했다(Roger Oakland, 2010, 11).

 

그의 주장을 보면 현대는 과거와 아주 다른 새로운 세계라고 본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세우신 신약의 교회, 그리고 그 교회를 통해 전수된 복음의 기초들, 신학체계들을 낡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들 말고 이제는 새로운 교회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마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과 유사한 주장을 한다. 새로운 관점의 신학, 새로운 영성, 새로운 그리스도인, 새로운 교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2.2. 통합적 교회

 

마크 스칸드렛은 “이머징 교회는 좀 더 통합적이고 전체적인 신앙생활에 대한 탐구이다. 신학적 탐구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데, 하나님 나라의 신학, 내적인 삶, 친교-공동체, 정의, 환경보전, 포용성, 영감적 리더십 등의 문제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이머징 교회 운동은 통합적 영성에 대한 탐구이다”라고 했다(Gibbs and Bolger, 2008, 8).

 

기존의 교회와 달리 이머징 교회는 좀 더 통합적이고 전체적 신앙생활에 대한 탐구하라고 하였다. 넓은 포용력을 가진 교회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오순절, 구세군, 성공회, 정교회, 로마 가톨릭등의 교회들을 연합하고 통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만들 수 있다는 식으로 들린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보면 하나님 나라의 신학, 내적인 삶, 친교-공동체, 정의, 환경보전, 포용성, 영감적 리더십등의 문제에 더 집중한다는 것이다. 즉 통합적 영성에 대한 탐구가 이들의 특징인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각 교파별, 신학노선 별로 다양한 색체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을 모두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바로 WCC의 주장과 합치되는 것이다.

 

2.2.3. 사람 중심

 

이머징 교회의 여러 특징들을 살피다보면 재미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의 교회를 보면 설교나 찬양시간에 예배를 표현하는 그림을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미술 처소를 설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예배실 안에서 빵을 굽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예배실로 들어갈 때 빵 냄새를 맡고 배고픔을 유발하게 하여 하나님과 생명의 양식이 되시는 예수님에 대한 갈급함을 자극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는 것이다(Dan Kimball, 2004, 139).

 

재미있는 발상이다. 그러나 육체적 배고픔과 영적 갈망이 같은 것인가? 육체적 배고픔은 육체적 양식으로 채워야 하는 것이지 영적 갈망으로 육체적 배고픔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그들의 발상은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다. 이는 결국 하나님께 나가는 인간의 입장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결국 사람중심의 예배, 교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된다.

 

2.2.4. 9가지의 실천들

 

이머징 교회는 9가지의 실천들을 주장한다. 1.예수님의 삶을 따라하기 2.세속의 영역을 변화시키기 3.고도의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기 4.낯선 이들을 영접하기 5.아낌없이 봉사하기 6.생산자로 참여하기 7.창조된 존재로서 창조해 나가기 8.하나의 몸으로서 인도하기 9.영성활동에 참여하기이다(Gibbs and Bolger, 2008, 71).

 

2.2.5. 3가지 핵심 실천들

 

앞에서 말한 9가지의 실천들 가운데 핵심이 되는 3가지가 따로 있다. 1.예수님의 삶을 따라하기 2.세속의 영역을 변화시키기 3.공동체적 삶을 살아가기이다(Gibbs and Bolger, 2008, 69).

 

이들의 실천들은 바로 이머징 교회의 신학적 뿌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상들은 결국 현대신학자들에게 뿌리를 두고 있다.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것,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는 것등은 바로 현대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슐라이어마허의 사상이고, 그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 리츨까지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신학과 연결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을 강조하는 듯 보이나 예수님의 삶에 관심을 가진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관심을 가진 것이다. 즉 예수님의 길에 대한 관심이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 예수님이 살아가신 방식에 관심을 더 가진다. 그것을 공동체 안에서 구현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산상수훈을 통해 표현된 내용이 바로 예수님의 삶인 것이다. 이것을 당시 유대인의 문화에 예수님이 불어 넣으신 것처럼 오늘 교회도 세상의 문화에 이것을 불어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윤리와 도덕만 남게 되는 것이다.

 

2.2.6. 예배

 

2.2.6.1.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다양한 시대적 문화 속에서 예배의 변호와 형태들이 변해왔다. 이에 대해 고민하고 만들어낸 것이 구도자 중심의 예배이다. 그리고 구도자 중심 그 이후의 예배 형태이다. 전통적 예배는 하나님의 계시와 이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라는 차원의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면 소위 말하는 열린 예배, 구도자의 예배는 새로운 문화의 전환에 대응하는 예배이다. 열린 예배와 구도자의 예배 이후에 등장하는 예배가 바로 이머징 예배이다.

 

이머징 교회의 거두 중 하나인 킴볼은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고귀한 예배」(The Emerging Worship)라는 책에서 포스트모던 시대에 대안적 예배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예배라는 것이다. 이 예배의 대상은 신흥 세대와 문화이다. 이것을 통해 청년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킴볼은 현대 예배가 하나의 쇼, 공연이 되고 있다고 반성한다. 그리고 예배자들은 예배의 주체가 아니라 앞에서 이루어지는 쇼나 공연을 감상하고 구경하는 관객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가 제시한 것은 유기적 예배이다.

 

유기적 예배는 정통 교회들이 가진 예배의 틀이 없다. 틀에 매이지 않고 유기적 흐름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다. 예배 모임은 찬양, 성경봉독, 간증과 침묵의 시간, 찬양과 설교, 영상, 침묵과 묵상의 시간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배 순서에 매이지 않고 자리를 떠나서 예배실 주변에서 기도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기도문을 쓰기 위해 알맞은 장소를 찾아 각자 움직이기도 한다(Kimball, 2004, 111).

 

2.2.6.2. 자유로운 예배

 

또 하나의 이머징 예배 특징은 다양한 시각적 미술품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품을 바라보는 중에도 자신들만의 은혜를 누리고 예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즉 그들은 자유로움을 누리며 그 가운데서 참된 예배를 드린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들의 예배 현장에는 자리를 이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자리를 이동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Kimball, 2004, 129).

 

우리는 어린 시절에 예배를 드릴 때에 뒤도 돌아보면 안 된다고 배웠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는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고 졸거나 딴 짓을 하면 안되었다. 그러나 이머징 예배는 그런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의 편의를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자유롭게 예배를 드린다면 과연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수선한 분위기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과제로 남는다.

 

2.2.6.3. 기도 처소

 

또 이머징 예배의 특징 한 가지는 곳곳에 설치된 기도 장소이다. 이곳들은 영적 진리를 전달하는 다양한 상징들과 창의적 방법으로 기록되어 있는 성경 구절들이 꾸며져 있다. 그래서 예배 모임이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기도처소에서 기도를 할 수 있고 예배 시간이 아니더라도 이곳에서 홀로 묵상을 하고 기도할 수 있다(Kimball, 2004, 114).

 

앞에서도 보았지만 예배 중에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기도하러 갈 수 있다. 그렇게 자유가 주어진다면 예배에 대한 집중도는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기도 역시 중요하지만 예배 중에 기도하러 돌아다니는 문제, 기도 처소에 여러 상징적 그림들과 꾸며진 것들이 기도의 집중도를 방해하지 않는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2.2.6.4. 촛불

 

촛불은 원래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는 장점이 있다. 이머징 교회는 이를 활용하여 촛불을 곳곳에 놓고 테이블을 벨벳 천으로 감싸서 사람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고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집중하도록 한다. 그리고 예배실은 거실처럼 꾸민다. 쇼파를 놓기도 한다. 무대를 바라보는 형태가 아니라 무대를 중심으로 둘러싸는 형태로 배열하고 유기적 모임이 되도록 사람들이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Kimball, 2004, 115).

 

2.2.7. 교회의 지체로서의 삶

 

이머징 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교회의 지체로서의 삶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9가지, 3가지 실천을 보면 예수님의 삶을 따라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강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따라서 교회의 지체는 모두 삶을 강조한다. 소그룹, 가정 그룹, 가정교회, 선교여행, 반별모임등의 그룹들을 통해서 모임을 갖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Kimball, 2004, 164).

 

2.2.8. 감각적 체험

 

이머징 교회는 감각적 체험을 강조하는데 이를 에픽(EPIC)이라고 한다. E는 체험(Experiential)이다. 둘째로 P는 참여(Participatory)이다. 셋째 I는 이미지(Image-Driven)이다. 넷째 C는 연결(Connected)이다. 이머징 교회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형상을 매우 흔하게 사용한다. 또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의 형상도 매우 흔하게 장식을 해 놓았다. 이는 진리의 말씀보다는 감각적 체험을 더 중요시 하는 것이다.

 

 

3.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대로 이머징 교회는 새시대에 사람들의 문화에 맞게 교회와 예배의 형태를 바꾸려 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을 상실하면 더 이상의 교회가 될 수 없고, 예배 역시 예배의 본질을 상실하면 예배가 될 수 없다. 개혁주의 입장에서 이머징 교회의 특징을 평가해 보아야 할 것이다.

 

3.1. 하나님 중심의 교회->사람 중심의 교회

 

청중을 이끌어 모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전도하여 사람들을 교회로 이끄는 것은 교회의 사명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핵심이 되면 안된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사람들을 만족하게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데 목적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교회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교회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친 사람 중심의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사람의 교회로 전락하게 된다. 예배의 문제 하나만 예를 들어도 사람의 편의를 위해서 예배 시간에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예배가 아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예배의 순서가 있고 그 순서를 따라서 질서있게 예배해야 하는 것이 합당하고 바른 것이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고전 14:33)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고전 14:40)

 

3.2. 말씀보다 인간의 감각적 체험에 대한 강조

 

예배의 문제에서 등장하는대로 예배는 회개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은 용서와 말씀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래서 회개와 말씀은 예배자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요소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없다. 인간의 감각적 체험은 말씀보다 중요하지 않다. 감각적 체험을 위한 그림, 형상들이 결코 말씀보다 우위에 있거나 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세 시대에 로마 가톨릭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림과 형상에 더 관심을 가졌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를 반대했다. 하나님은 결코 우상으로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그것이 시청각적 교육의 차원이든 감각적 체험을 위한 차원이든 말이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출 20:4)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조각한 것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레 26:1)

 

3.3. 상대주의

 

이머징 교회의 문제점 중 하나는 상대주의이다. 이것이 바로 이머징 교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진리의 상대성을 주장하여 절대적 진리를 부정해 버린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진리가 된다. 삼위일체, 성경, 구원, 예수 그리스도, 교회, 천국과 지옥, 천사, 영생, 부활 모든 것이 상대적이 되어 절대적 진리를 거부하게 된다.

 

성경과 다른 주장을 하여도 다 인정하고 포용하게 되어 타종교까지도 다 구원에 이른다는 종교다원주의까지 나가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사상을 경계해야 하고 수용불가한 것이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2)

 

3.4. 다원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한 핵심 중 하나는 다원주의 사상이다. 역시 이머징 교회도 이러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 모두 다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찌보면 좋은 것처럼 보인다. 대단히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고 아량이 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것이고 무서운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다원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린 적이 없다. 그들은 가나안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종교를 받아들인다. 한 손에는 하나님을 다른 손에는 바알과 아세라를 믿은 것이다. 가나안은 농사를 하는 문화이다. 이스라엘이 농사를 하기 위해서는 가나안의 문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즉 그들의 농사의 방법, 농사의 방식, 농사의 문화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사의 신, 바알을 섬기게 되고 아세라를 섬기게 된 것이다. 이렇게 우상숭배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문화를 통해 스며들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바알의 숭배자들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버린 일이 없다.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도 섬긴 것이다. 하지만 성경의 평가, 하나님의 평가는 그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으로 나온다.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조상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렘 16:11)

 

3.5. 해체주의

 

포스트모던의 특징 중 하나는 해체주의이다. 모든 기존의 것들을 다 무시하고 해체해 버린다. 기독교의 진리, 기독교의 예배, 기독교의 정체, 기독교의 신학들을 모두 해체하고자 한다. 이는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의 뿌리들이 무너지면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 사교모임일 뿐이다.

 

어떤 교회 부교역자가 심각하게 전화를 했다. 자신이 섬기는 교회는 말씀이 사라지고 진리가 사라지고 오직 모여서 먹는 일만 한다는 것이다.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진리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예배 마치고 모여서 먹고 마시는 일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매주 모여 예배 후에는 어디로 갈까? 어느 음식점이 맛있나? 어떤 음식을 먹을까? 에 모든 관심이 가 있다는 것이다. 교회에 교제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교제를 꼭 밥을 먹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교회가 더 이상 교회되지 못하고 사교모임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바로 해체주의의 영향이다.

 

3.6. 감성주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 즉 인격을 닮게 만드셨다. 지성, 감정, 의지를 가진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러나 지성과 의지를 무시하고 감정만 자극하는 것은 바람직한 은혜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인격 전체를 통해 변화를 가져온다. 감정만 자극하는 것은 성경적 은혜가 아니다. 슬픈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은혜를 받은 것은 아니다. 감정만 자극된다고 해서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머징 교회는 감성주의에 지나치게 빠져 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합당하게 살아가게 하신다. 그러므로 지나친 감성주의에 빠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오해하지 말고, 신비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1년 9월 우리 교단은 이머징 교회와 관련된 관상기도와 왕의 기도의 성경적 신학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들 집회에 교류와 참여를 금지할 것을 결정했다. 총회 신학부 최종보고서는 “관상기도운동은 불건전한 신비주의, 종교다원주의, 이교적 영향이 혼합돼 있어 복음의 순수성을 해치며 성경과 개혁주의 신학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교회에 관상기도를 소개했던 지구촌교회의 이동원 목사는 관상기도를 중지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다행한 일이다. 지금이라도 개혁주의 신앙에서 벗어난 형태의 운동은 우리가 조심스럽게 연구하고 평가를 해야 한다. 그리고 바람직한 성경적인 교회, 예배, 기도등 신앙 전반에 걸친 내용들을 살피고 연구하여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 서적

 

Carson, D. A. 2005. Be Coming Conversant with the Emerging Church. Grand Rapids: Zondervan.

Gibbs, Eddie and Bolger, Ryan K. 2005. Emerging Churchs. Grand Rapids: Baker Academic.

Gilley, Gary E. 2006. This Little Church Stayed Home. Darlington: Evangelical Press.

Kimball, Dan. 2003. The Emerging Church. Grand Rapids: Zondervan.

Kimball, Dan. 2004. The Emerging Worship, KCBS Literary Agency: Zondervan.

Oakland, Roger. 2007. Faith Undone. Silverton: Lighthouse Trails Publishing.

Oakland, Roger. 2010. 이머징 교회와 신비주의. 황 스데반 역. 서울: 부흥과 개혁사.

Carson, D. A. 2009. 이머징 교회 바로알기. 이용중 역. 서울: 부흥과 개혁사.

Gibbs, Eddie and Bolger, Ryan K. 2008. 이머징 교회. 김도훈 역. 서울: 쿰란출판사.

Kimball, Dan. 2007. 시대를 리드하는 교회. 윤인숙 역. 서울 이레서원.

김길성. 2005. 개혁주의교회론. 총신대신학대학원강의안.

김득룡. 1985. 현대교회예배학신강


 

이재록1.jpg

 

자료1: 예장통합의 공식자료

 

1. 이재록(만민중앙교회)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에서 지난 해(99년) 이재록 씨를 이단으로 전격 규정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먼저 한기총은 한국교회 전체를 대표한다는 위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재록 씨는 한국교회 전체가 이단으로 규정한 셈이다. 그 다음은 이재록측의 로비가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이씨의 이단성이 그만큼 농도가 짙었음을 반증해준다. 이씨의 이단성은 구원론, 신론, 인간론, 교회론 등 신학 전반에 걸쳐 드러났다. 일부에서는 만민중앙교회가 붕괴될 것으로 내다보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이씨측에서는 이를 전면 부인한다. 이렇게 되나, 저렇게 되나 이재록 씨에 의한 최대의 피해자는 이씨의 핵심 신도들일 것이다.

 

이재록 씨 문제의 개요

이재록 씨는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851번지 소재 만민중앙교회 담임목사이며, 예수교대한연합성결교회 총회장과 연합성결신학교 이사장이다. 그는 '만민교회' 내지는 '만민성결교회'란 이름으로 많은 지교회들(국내 : 25개 처, 해외 : 11개 처)을 세워 국내는 물론 국외까지 교세를 확장시켜 가고 있다. 만민중앙교회 일부 신도들은 1999년 5월 12일 MBC-TV의 'PD수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재록 씨에 대한 내용을 방송하자 방송국 주조정실을 점거하여 방송 중단시키는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이씨는 이미 정통기독교에서 수용할 수 없는 이단적 설교를 함으로써 1990년 5월 그가 속했던 예수교대한성결교회(예성) 총회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된 바 있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로부터도 1999년 4월 30일에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신론의 문제점

이재록 씨의 신관에는 심각한 이단성이 존재한다. 그는 우선 '하나님의 편재성'에 제한을 가하는 말을 한다. 그는 1998년 7월 3일 설교에서 '하나님이 보좌에서 자기 교회 강단에 강림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아버지, 강림하셔 제단에 임하소서 하면 아버지가 그대로 오시는 것 보실 수 있을 거예요. … 아버지가 지금 빨리 오고 싶어 견디지를 못하시니까 제가 빨리 끝내야 되겠어요. 그래야 아버지 빨리 오시죠."라고 말하여 자신이 하나님을 부르면 오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또한 "새예루살렘의 열쇠를 놓고 가셨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1998. 7. 5. 저녁예배).

하나님은 영이시기에(요 4:24) 물체와 같이 어떤 특정 장소에 제한적으로 존재하시고, 또 제한적인 장소에 머무르시는 분이 아니시다. 또한 그는 하나님을 자기가 마음대로 부르면 오시고, 그렇지 않으면 안 오시는 분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을 인간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로 격하하는 것으로 기독교 신앙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신성모독이라 할 수 있다.

 

기독론(구원론)의 문제점

이재록 씨는 자신이 예수님과 하나되었다고 하였다. "해와 달과 별에 나타나는데, …… 달 속에 전등 속에 저를 놓아두시고 주님이 함께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와 나는 하나'라고 말씀하시고 전세계에 선포하고 있지 않느냐 이 말예요. …"(1998. 7. 5. 주일저녁)라고 하여 자신을 예수님과 동일시하고 있다(1998. 10. 1. 금요철야집회). 또한 그는 자신은 "원죄도 자범죄도 없는 깨끗한 피를 가졌기에 죽음이 피해간다"고 주장하였다(1998. 7. 5. 주일저녁).

이재록 씨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기독교 구원론,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죄 씻음을 받고 그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보편적 진리에 반하여, 마치 자신을 통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자신을 신격화하고 있다.

"(자신이) 아브라함 등 모든 선지자들과 주님의 제자들을 부르면, 사장이 부르면 오는 전무처럼 나타나는데, …… 그리고 선지자들과 제자들이 자신에게 인사를 한다."(1998. 7. 5. 저녁예배, 1998. 7. 18. 금요철야집회)

(자신은) "영이 하나님 보좌 좌편에 앉아 있으며"(1998. 7. 8. 주일저녁), "죽고, 사는 권세가 있으며"(1998. 7. 5. 주일저녁), "물위에 걷는 것 외에 66권의 모든 말씀을 이루었다"(1998. 6. 28. 주일 저녁), "하나님이 하나가 되었기에 해와 달과 별에 나타나는데 이는 (자신이) 특허를 냈다"(1998. 6. 28. 주일예배, 1998. 10. 16 금요철야).

이상의 예에서 보는 것 같이 이씨는 마치 자기가 구세주요, 자기를 통해서 구원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예수님만이 만민의 구세주이심을 부인하는 결과가 되어 기독론과 구원론에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간)론의 문제점

이재록 씨의 "부모로부터 받은 모든 피는 다 쏟아 버렸고, 주님과 같은 죄성이 없는 새 피를 받아 자기는 원죄도 자범죄도 없다"(1998. 7. 5. 주일저녁예배)는,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의 결정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롬 5:12)고 하여,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은 원죄와 자범죄가 있음은 성경에서(시 14:, 53:), 교회 역사에서 누누이 강조, 지적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만일 인간이 죄가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결과'(요일 1:8, 10)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자신을 원죄도 자범죄도 없다고 하는 것은 자신을 신격화시키는 결과가 되어 기독교 신학의 인론에 중대한 오류가 된다.

 

성령론의 문제점

이재록 씨는 성령론에 있어서 성령의 치유의 능력을 자신이 치유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어떤 이들의 [자신의] 간증 책만 읽어도 그대로 막 치료받는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진만 안고 자도 치료받고, 꿈속에 나타나서 자기가 안수해도 치료받는다'고 주장한다. 또 '자신이 기도한 손수건만 만져도 치료된다'는 등의 말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치병을 하는 것이 아니고, 바울과 요한이 그랬던 것 같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는 것임(행 3:6)을 밝히 보여주고 있다. 치유의 은사는 성령의 은사이지 자신의 책을 읽거나, 사진을 안고 자거나, 손수건을 만져서, 또는 자기가 꿈에 안수한다고 하는 것은 성경에나, 기독교 역사 어느 곳에도 없었던 일로 성령의 신유 사역을 근본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교회론의 문제점

이재록 씨는 1998년 7월 3일에 자신의 "만민중앙교회에 하나님의 보좌가 내려왔고"(1998. 7. 5. 주일저녁예배), "2천년 전의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이 자기 교회에 나타났다"(1998. 7. 10. 금요철야집회)고 주장한다. "만민중앙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하늘에서도 천군 천사들이 똑같이 예배드린다"(1998. 7. 17. 금요철야집회)고 주장하였다.

이는 만민중앙교회를 특별히 하나님이 성별하고 사랑하신다는 의미로서 보편적 교회론에 위배되는 주장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one, holy, catholic, apostolic)이다(각종 신조-사도신조, 니케아, 칼케돈, 웨스트민스터 등). 따라서 이 땅에 편재한 하나님의 진리를 보유한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고, 하나님은 특별한 교회에 강림하시거나 어느 특정 교회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종말론과 내세론의 문제점

이재록 씨는 종말론에서도 중요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재림을 알려 주셨다. …… 휴거 될 것을 알려 주셨다"([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 p.198)고 기록했다.

이는 언제 예수님이 재림하실 지는 인자도 천사도 알지 못한다(마 24:36)고 하였는데, 어떻게 자기에게만 알려 주셨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는 또 말하기를 마지막 심판 때에 자기가 심판장 되시는 하나님 좌편에 앉는다고 말한다. 하나님 우편에는 예수님이 앉으시고 자기는 좌편에 앉아 "심판 날에 주님 옆에서 성도들을 위해 변호해 줄 것"이라고 선포하면서,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새예루살렘에 들어가 살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1998. 7. 17. 금요철야예배).

그러나 신약성경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여 인간은 누구나가 심판에 이른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심판대에 앉을 수 없고, 심판대에 서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씨는 자기가 주님의 좌편에 앉아 성도들을 위해 성도들을 위해 변호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를 신격화 내지는 예수님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종말에 천하의 모든 인간이 심판대에 설 것이라는 기독교의 종말론에 크게 위배되는 일인 것이다(사도신조). 성경의 어느 곳에도 교회 역사의 어느 곳에도 이런 허무맹랑한 기사나 근거는 없다.

또한 그는 내세관에서 5단계 천국관을 이야기하면서 믿음을 분량에 따라 상급과 거하는 처소가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우리의 모습은 예수님처럼 누구나가 33세의 모습으로 변화하며 얼굴은 백옥같이 희고 빛나며 백인의 모습이다. 키도 남자는 약 180cm, 여자는 한 뼘 정도 작다. 남자의 머리는 목 바로 위까지의 길이로 똑 같지만, 여자는 상급에 따라 [머리] 길이가 다르며 상급이 클수록 긴 머리이며, 허리까지 내려오는 사람도 있다"([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 pp.228-229)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가르침은 전혀 성경에 없는 자신의 독자적 해석으로 기독교 교리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독단적 주장이다.

 

지나친 신비주의과 신유 은사의 문제점

이재록 씨는 그의 책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하면서 대언자를 주시라고 기도했더니 1982년 5월 하나님은 대언을 통하여 태양이 작렬하는 때에 개척되리라 하였고, 그대로 되어 7월 25일 개척 되었고 하나님은 여종(한정애를 지칭)을 통하여 대언해 주셨으며, 부흥집회 말씀도 대언을 통해 영혼에게 주님이 뜻을 알려주시고 갈 길을 밝히 보여 주셨다.'고 주장하는 등, 지나치게 직통 계시를 강조하여 마치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언제나, 무슨 일이나 계시를 받는 것 같이 말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병자들을 치유 치유한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기독교 신앙을 무속적 신앙으로 오해하게 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에 신비주의 요소와 신유의 은사는 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오늘에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절제가 필요하다(갈 5:23). 이재록 씨의 지나친 신비주의 경향이나, 치병 강조는 기독교의 근본진리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연구 결론

이상과 같이 이재록 씨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기독교 신학, 기독교 역사에서 살펴볼 때 이단성을 지닌 사람으로 단정치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재록 씨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교인들이 이 유혹에 빠지지 않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예장 통합)



오랜만에 콜로라도 스프링스 내용을 올려 봅니다.
이번 내용은 콜로라도 전체를 함축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각을 열어줄 수 있는 내용입니다.
다름 아닌 콜로라도 주 인장(Seal of the State of Colorado)에 대한 내용입니다.


첫번째 사진은 콜로라도 주의 인장입니다.
이 인장과 그와 관련된 역사들을 자세히 추적해 보면 콜로라도가 워싱턴 DC와 또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살펴 보실 수 있게 됩니다.

먼저 인장의 제일 윗부분을 보십시오. 그곳에는 1달러 지폐에서 여러분들이 흔히 보실 수 있는 신의 눈-전시안(Eye of Providence: All Seeing Eye)이 피라밋 속에 그려져 있습니다.
그 전시안과 피라밋으로부터 황금빛들이 양쪽으로 비춰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그 전시안 바로 아래에는 한 다발의 로마 속간[(fasces):옛 로마에서 다발로 묶은 막대에 도끼를 붙인 것으로 집정관의 권위를 표시했음]이 빨강, 파랑, 흰색(미국의 색)의 가죽끈에 의해 묶인 채 놓여져 있습니다. 그 가죽끈에는 “Union and Constitution"이라는 단어가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다발로 묶은 막대의 연합은 힘(Strength)을 상징하고 도끼는 권위(Authority)와 지도력(Leadership)을 상징합니다.

그 아래는 포고관의 방패가 있는데, 그 위쪽 절반  안에는 눈에 덮인 세 봉우리와 세 구름이 붉은색 바탕 안에 그려져 있고, 그 절반 아래에는 광부의 도구인 정과 망치가 황금색 바탕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로키산맥과 그 산맥에서 채굴하는 금광의 바탕 아래 콜로라도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하겠죠!

바로 그 방패 아래는 ”Nil Sine Numine"이라는 콜로라도의 모토가 적혀있는데요,
그 뜻은 “신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Nothing without the Deity)"입니다.
어떤 이는 Numine을 New Mine으로 해석해서 "새로운 광산없이는 아무 것도 아닌"이란 뜻으로 번역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그 신(the Deity)이 누구냐 하는 것이지요!^^

그 아래는 콜로라도가 설립된 연도인 1876년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이 인장을 디자인 한 사람은 루이스 L. 웰드(Lewis Ledyard Weld)로 1861년 링컨에 의해 the Territorial Secretary로 지명되었던 자였으며, 또 한명의 가담자였던 윌리엄 길핀(William Gilpin)은 the Territorial Governor였습니다. 그 역시 이 인장 제작에 부분적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현재 워싱턴 DC에 세워져 있는 링컨 기념관의 대리석들이 바로 콜로라도에서 공수되어져 링컨 기념관을 건립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생소한 로마 속간도 워싱턴DC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속간 역시 링컨 기념관과 제일 먼저 관련이 있는데, 링컨 기념관 안에 좌정하고 계시는 링컨 대통령의 동상 의자 좌우가 바로 이 속간으로 조각되어 있고, 링컨 기념관을 오를 때 (유심히 찾지 않으면 잘 볼 수 없음^^) 양쪽 대리석 기둥에도 역시 이 속간이 조각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진 2는 바로 링컨 대통령의 조각상을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속간을 보십시오!

또한 이 속간은 미국 국회 의사당 내 상하원들이 모여 회의하는 회의장의 의장석 바로 뒤에도 벽에 양각되어져 있습니다. 이 속간은 고대 로마에서 힘(Power)과 권위(Authority)를 상징하는 그 무엇이었는데... 역시 미국 국회 의사당의 상하원 의장석에도 이 속간이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함을 통해 우리는 워싱턴 DC의 스피릿이 이 시대의 로마 건설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이 속간과 관련된 기원을 추적해 보면 이 속간은 '신시나투스(Cincinnatus)'라는 인물로부터 기원됨을 알 수 있는데, 로마가 위급했을 때 로마의 부름을 받아 집정관으로 활동하다, 로마의 승리 후에는 다시 전원 생활로 돌아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존경을 받았던 정치가이자 장군이며 로마의 영웅이었던 신시나투스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면서 돌려 주었던 것이 바로 이 [속간]이었습니다. 곧 힘과 권위를 내려놓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미국 오하이오 주에 있는 신시내티는 바로 이 신시나투스의 이름을 본 따 세워진 도시이며, 조지 워싱턴 역시 자신이 대통령직을 내려 놓고 마운트 버논으로 돌아갈 때, 이 신시나투스를 언급했다는 역사의 기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되면 워싱턴 DC와 콜로라도 그리고 오하이오의 신시내티까지 어떤 커넥션 가운데 있음을 살펴보게 됩니다.

힘과 권위의 상징이었던 속간... 국회 의사당 의장석 뒤에도... 콜로라도의 인장 속에도... 신시내티 가운데도... 그 스피릿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호루스의 눈인 전시안과 피라밋이 콜로라도를 비취고 있는 인장... 콜로라도 스프링스 다운타운 Pionner 박물관 앞 피라밋 속에 있던 햇빛 모양의 광선에서도 보셨듯이... 이런 연결 커넥션들이 콜로라도 속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금광을 통해 획득된 자금의 흐름... 콜로라도 인장 속에 나타난 황금색 방패 가운데 있는 광부들의 채굴 도구들...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흔적들이... 우리의 목표를 어디에 조준해야 할지를 더욱 명확하게 부각시켜 주고 있습니다.

콜로라도와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위하여 함께 중보해 주십시오!



▲ 연세중앙교회 홈페이지

 

 

 

 

 

윤석전 목사의 이단성 문제에 관한 예장 합신총회 연구 보고서

 

 

20001201()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예장합신(총회장 김명혁 목사) 교단에서 금년(2000) 총회를 통해 이유빈, 윤석전, 이재록 씨 사상의 문제점들을 깊이 있게 지적했다. 예장합신 총회는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위원장 박병식 목사)에서 조사 연구한 보고를 그대로 받아, 이유빈과 윤석전 씨에 관해 그 사상의 문제점을 이유로 관계금지조치 결론을 내리고, 이재록 씨에 대해서는 이단으로 공식 규정했다. 자교단 교회는 물론 한국교회가 이단사이비 등 문제의 사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단호한 조치를 내린 것이다.

 

이유빈 씨의 죄공개자백사상은 이미 본지가 9811~12월호, 993월호에 심도 있게 취급했으며, 예장 합동 교단과 기성 교단에서도 이씨 사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한국교회 내에 피해 호소가 줄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합신측의 규정은 문제의 사상이 더 이상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공적인 조치가 내려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

 

윤석전 씨의 사상에 대해서 합신측은 보고서를 통해 이단 혹은 이단성이 짙은 주장들이라며 강도 있게 지적했다. 또한 윤씨의 사상을 전통적 장로교회가 고백하고 존중하는 기본 신학적 입장에 유해한주장들이라며 소속 교단의 목회자들이 주의할 것을 당부하며 관계금지령을 내린 것이다. 윤씨의 사상에 대해 침례교단측은 그렇다치더라도 예장합동, 예장통합의 소위 장자 교단들이 정치 바람에 흔들린 것에 비해 이번 합신측 규정은 공교단으로서 한국교회의 이단문제 이슈를 소신 있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이재록 씨의 이단성은 이미 한국교회에 잘 알려진 상태다. 신론, 기독론, 종말론, 천국론, 교회론, 인죄론 등 그의 이단성은 마치 독버섯처럼 성경 교리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이번 이씨에 대한 규정은 이단사상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 번 일깨운 것이라 할 수 있다.

 

본지는 이번 합신측 규정 내용중 주요 부분들을 요약 게재한다. 이단문제 분별에 좋은 지침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 주>

  성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기도하지 않는 자의 입술에서는 성령이 나올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의 생활 속에서는 성령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1)

 

상기와 같은 대표적 표현은 성령 하나님에 대한 근본적 오류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실체에 따라서 모든 역사들(예정, 창조, 섭리, 구원)에 있어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가장 오래된 정통신학에 대한 고백 내용이다. 따라서 존재와 속성에 있어서 성삼위일체 하나님은 세 하나님이나 세 속성들을 가진 것으로 고백하지 않는다. 다만 상호 혹은 피조물과의 관계해서 성삼위일체는 세 위격(persona)으로 구별될 수 있으나 분리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삼위 사이에 구별된 성령의 역사는 언제든지 실체에 따라서 삼위일체라는 고백이 앞서야 하고 성령이 한 위격으로 구별된 역사가 표현되더라도 언제든지 성령 하나님은 주체로 표현되어야 한다. 동시에 성령 하나님은 언제든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으로부터 역사하신다는 확고한 틀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상기와 같이 성령이 어떤 피조물의 인격이나 그 생활에서 나오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모욕적이고 동시에 어떤 피조물로서 성령을 생각하는 오래된 이단들(오리겐파, 아리우스파, 마케도니아파)에서 주장하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런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경향이 기도를 하나님과의 거래 개념으로 이해하는 부분에서도 확인될 수 있는 내용이다: "내가 기도하고 있다는 증거는 하나님과 거래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2), "내가 기도한다는 것은 최고의 자존심 있는 행동입니다. 나는 하나님과 거래하는 사람이다는 자존심을 가져야 합니다"3),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기업으로 삼아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사용합시다"4)

 

 

예정에 대해서

 

펠라기우스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후대의 반펠라기우스주의자들(Semi-Pelagiani)의 이런 주장들에서 볼 수 있듯이, 윤석전 목사의 예지예정론은 팔레스틴 공의회에서(in Synodo Palaestina) 정죄된 오래된 이단들의 주장과 근본적 차이가 없는 주장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예지예정론이란 구원에 이를 자가 미리 알려져 있을 뿐 결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석전 목사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를 믿으면 살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취사선택할 권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을 권리도 있고, 믿지 않을 권리도 있습니다.

 

··· 바로 지금이 우리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5)고 하였다. 역시 "만일 '예수 안 믿으면 지옥이요, 예수 믿으면 천국이다'하여 당신의 의지로 예수 믿기로 결심했다면, 이 천국 가려는 의지를 항상 당신이 품고 있어야 합니다.··· 결국엔 천국에 가겠다는 의지가 더 멀어지면서 반대로 세상욕심만 점점 커지게 됩니다. 그 순간 당신의 의지가 꺾이면서 하늘나라도 멀어지고, 그런 당신의 생각의 결과는 끝내 지옥을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6)고 하였다.

···

 

그렇게 종교개혁시대에도 공히 종교개혁이 일어난 모든 도시로부터 믿음을 선행시키는 예정론이 거절되었다. 그러나 윤석전 목사가 자신의 예정론을 예지예정론이라고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구원받을 자가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하기 때문에,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이나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보다 더 나아간 이단으로서 예정론 자체들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도르트회의에서 최종으로 정죄된 다음과 같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견해들을 비교하면, 그의 입장이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보다 더 위험한 주장임을 알 수 있다.

···

 

그렇다면, 윤석전 목사의 주장은 범교회가 정죄하였던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이나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이단적 주장들과 엄밀하게 다른 것이고 그들의 이단적 주장보다 더 극단적 입장을 가진 이단의 주장이다.

 

 

기도에 대해서

응답 받는 기도

 

기도의 응답이 없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하나님 앞에 외식했었다는 증거요 증언부언했다는 증거로 보고 응답 받는 기도가 참된 기도로 강조하고 있다. 그런 응답된 기도는 기도 중에 평안한 마음이 되는 것이 특징이라고 보면서도 그 응답내용은 다음과 같은 양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했거든 응답을 정복하라는 말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막 정복해 돌진해 나가라는 말이다", "응답은 바로 행위로 정복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하고 응답을 받았다고 믿어지거든 이미 우리는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이 준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입을 벌려 구한 것은 응답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실천해야 합니다. ··· 소유는 우리가 해야 합니다"7)

 

즉 그는 소유를 위한 적극적인 행동과 그 소유를 기도의 응답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종종 하나님의 역사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지는 이웃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고, 이웃에 대해서 마음으로 미워하지 않고 원수를 위해 기도까지 하라는 이웃 사람의 기본정신과 상반된 주장이다.

 

 

골방기도와 묵상기도

 

"부르짖어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과 나의 기도가 완전히 분명한 획을 그어(긋는) 대로 같은 길이 확 났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옆에서 떠드는 잡념도 안 들리고 별 소리를 다 해도 안 들리고 오직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마음과 마음이 통하기 시작하여, 그때는 묵상이 절로 되고, 이때부터 묵상기도가 되고, 이때부터 하나님과의 진실한 영적교제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묵상기도는 눈 감으면 묵상기도인줄 아는데, 이 묵상기도는 잡념의 소리가 옆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 앞에 완전히 나의 귀도 빼앗기고, 마음도 빼앗기고, 생각도 빼앗기고, 하나님이 나를 독점하고, 나도 하나님을 독점하여 아무도 나의 기도를 방해하지 못할 만큼 영적으로 깊이 들어갔을 때 드리는 골방기도가 시작되고 묵상기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8)

 

이런 특별한 기도의 단계나 기도의 종류는 성경에서 증거되지 않고 있다. 성경 본문 자체로부터 증거 되지 않는 비약된 해석으로서 이런 신비주의적 해석은 여러 부분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목사의 절대적 권위와 교회와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가장 좋은 습관은 목사님 말씀에 절대 복종하는 습관입니다. 이 습관이 여러분 속에 젖어 버려야 합니다."

"만약 목사의 지혜와 지식과 언어가 성도들만 못하다고 한다면, 성도들은 목사를 우습게 보고 말 것이며 목사에 대한 존경심과 절대권위 앞에 무릎 꿇지 않고 무시하고 깔보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나 제직들이 목사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것은 그만큼 목사 입에서 나가는 언어와 말과 지혜가 감히 그들이 생각지 못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기도로만 될 수 있습니다."9)

 

"제가 기도하지 않아도 성도는 줄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영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수준으로 살고, 하나님의 수준으로 먹고, 하나님 수준으로 자라고, 하나님의 수준으로 성장시켜서 정말로 땅의 것과 하늘의 것을 비교할 수 없도록 만들어 하늘의 소망을 이 땅에 실현하려는 겁니다."10)

 

"예수님이 길이십니다. 우리는 그냥 예수님을 따라가면 됩니다. 잔소리하는 사람들은 내려야 합니다. ··· 정 내리고 싶으면 내리라 이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막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차를 타는 사람은 운전자에게 자기 갈 길을 맡기듯이, 교회는 목사에게 맡기고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됩니다."11)

 

이런 태도는 교회의 성도들을 목회자가 수종하고 섬기는 자세가 아니다. 교회에는 목회자와 함께 토의하고 수의하는 회의기관이 있고 교회 회원들은 교회의 모든 결정에 참여하는 길로서 공동의회가 있다. 아무리 좋은 의견일지라도, 목회자가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결 론

상기와 같은 윤석전 목사의 이단 혹은 이단성이 짙은 주장들은 성경에 나타난 복음의 주된 내용들과도 다른 주장으로서 우리 전통적 장로교회가 고백하고 존중하는 기본 신학적 입장에 유해한 주장들이다.

 

 

 

)-----------

1) 윤석전, 절대적 기도생활, 요단출판사 1996, p.283

2) Ibid, 275

3) Ibid, 280

4) Ibid, 247

5) 윤석전, 당신을 성공시켜라, 요단출판사 1999, p.58

6) Ibid, 67-68

7) 윤석전, 절대적 기도생활, 요단출판사 1996, p.337-338

8) Ibid, 322-323

9) 윤석전,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요단출판사 1998, p.162

10) 윤석전, 절대적 기도생활, 요단출판사 1996, p.160

11) Ibid, 186-187

 

 

(월간<교회와신앙> 200012월호)

 

 

 

 

 

* 출처 :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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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나무 쉼터/한아름





오늘은 콜로라도 스프링스(02)의 두번째 사진에 나오는
Will Rogers Shrine of the Sun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자 합니다.
Will Rogers Shrine of the Sun은 Cheyenne Mountain[다음에 이곳에 대한 정보 또한 말씀드리겠지만... 재밌게도 현 부통령인 딕 체니(본명:Richard Bruce Cheney)와 발음이 비슷하죠^^]에 위치한 일종의 관측소(Observation Tower)입니다.

Shrine[슈라인]이란 성인이나 성자들의 유물 또는 유골을 모신 성골[물]함을 의미합니다.
Shrine of the Sun이란 바로 '그 태양의 성지[성골(물)함]' 또는 '그 태양의 성골을 모신 장소'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죠!^^ 그래서 마치 Will Rogers를 김일성과 같이 민족의 태양과 같은 모드로 모신다는 그런 의미 부여일수도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그 태양이 Will Rogers일까요? 

Will Rogers Shrine of the Sun는 Will Rogers가 아니라 Spencer Penrose의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 왜 이곳을 Spencer Penrose의 무덤이라 명명하지 않고
Will Rogers Shrine of the Sun이라고 명명했을까요?
Will Rogers는 1935년에 작고한 Spencer Penrose의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제가 이미 콜로라도 스프링스(02)에서 약간 말씀 드렸죠!^^
저는 아마도 모종의 Trick이 숨겨져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보다 확실한 증거가 확인되면 말씀드리도록 하죠...

Will Rogers Shrine of the Sun는 Penrose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산에 위치한 전망대이기 때문에 이곳에 오르면
콜로라도 스프링스 Metropolitan과 Downtown이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그림 1 참조)
그외 Garden of Gods 같은 장소들이 모두 한 눈에 들어옵니다.
그림 2에서 보실 수 있듯이 Will Rogers Shrine of the Sun에는 망원경을 설치해서
콜로라도 스프링스 곳곳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그 망원경 곁에 Spencer Penrose의 조각상이 있습니다.

제가 이미 Spencer Penrose와 그의 아내 Julie Penrose에 의해 시작된
El Pomar Foundation이라는 재단을 소개해 드리면서
이 재단이 이곳 콜로라도 스프링스와의 깊은 연관에 대해 말씀드린 바가 있지만
이 부부와 관련된 이들에 의해 세워진 건물들과 조형물들[그의 무덤인 이곳... 그리고 부시 대통령이 묵었던 호텔 The Broadmoor Hotel, 그리고 America The Beautiful Park, 그의 가족들의 무덤 위치, 그리고 다운타운에 있는 Penrose의 동상 등]이 콜로라도 스프링스 곳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 위치적 의미를 볼 때... 이 건물들과 조형물들은 마치 Spencer Penrose가 죽은 뒤에도 콜로라도 스프링스 전역을 여전히 통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질적으로는 돈으로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잠식해 들어가고 있고...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주요 장소에 그를 기념하고 그를 기억할 수 있는 건물을 만들거나 조형물들을 세움을 통해... 이 콜로라도 스프링스가 마치 자신의 통치와 지배 아래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는 죽고 없지만... 그와 관련된 이들이... 그를 정면으로 내세워...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간파되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가 한 지역을 점령하면서 드러내는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어제는 여기 Penrose로부터 시작된 El Pomar Foundation이 건설한 The Broadmoor Hotel에서 딕 체니가 Fund rasing을 위해 숙박을 하고 이곳에서 Fund 모금을 위한 행사를 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behind의 영적 Connection들을 확인하게 되면서
저는 그들의 숨은 궤계 앞에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참된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어두운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사람을 기만하여 이러한 숨은 전략으로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더럽혀 나가는 사단의 궤계는 무너질찌어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주인은 우리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십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주인은 Spencer Penrose와 그와 관련된 배금의 자본이 아닙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주인은 오직 여호와 한분 뿐이신 것입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01)에서 America The Beautiful 공원에 세워진 오벨리스크 사이로 저 멀리 우뚝 솟아있던 산 "Pikes Peak"은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대표하고, 로키산맥 중 다섯 번째로 높은[14,115 feet (4302 m)] 영험한^^ 산입니다. 이 영험한 산의 이름은 Zebulon Montgomery Pike Jr. (January 5, 1779 – April 27, 1813)라는 군인이자 탐험가의 이름을 따 지었습니다. [그는 최초 이 산을 등정한 사람이지만 1806년 11월 24일 극심한 눈보라로 인해 정상 등정에 실패하고 맙니다. 첫 정상 등정자는 의사며, 식물학자며, 역사학자였던 Dr. Edwin James였습니다. 후에 시장(Mayor)인 Stephen H. Long이 1820년 7월 14일에 정상 등정에 성공해  Dr. Edwin James를 기념해 James Peak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곧 Pikes Peak으로 환원되었고 1835년부터 군사지도에는 Pikes Peak이 공식 지명이 되었습니다.]

이후 1858년 이 Pikes Peak 일대에 금맥이 발견되면서 당시 약 10여 만명의 사람들이 이곳 일대로 몰려들게 되었고, 지금의 콜로라도 스프링스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Cripple Creek도 당시 같은 이유로 형성된 중요한 인근 도시임] 

당시 이곳으로 금을 찾아 나섰던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슬로건이 유행했었다고 합니다. "Pike's Peak or Bust!(파잌스 픽으로! 그렇지 않으면 파산할 것이요!)" 

당시 금을 찾아 갑부가 되기를 원했던 사람들은 이러한 기대에 부풀어 지금의 콜로라도 스프링스 일대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1871년 이 일대는 William Jackson Palmer라는 지도자에 의해 공식적으로 콜로라도 스프링스라는 도시로 탄생되게 됩니다. 

1915년에는 [제가 콜로라도 스프링스 (02)와 (02) 추가]에서 말씀드렸던 금광 개발로 갑부가 된 Spencer Penrose와 그의 동료들이 Pikes Peak의 정상까지 자동차 도로를 구상하고 그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됩니다. 사실 이 고속도로는 금을 찾아나섰던 사람들이 이미 통행하며 1889년경에 마차도로로 형성된 도로를 정리하고 포장을 덧 씌움으로 완성된 도로인데요, 지금의 24번 지방도로의 원형이 바로 그것입니다. 당시 이 고속도로 건설의 비용으로 $500,000이 소요되었다고 하니 과히 엄청난 투자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붉은 땅 '콜로라도' + 광천수[Manitou Springs 지역을 비롯하여]가 지금도 솟아나오는 '스프링스' = Colorado Springs. 그곳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아마도 그 붉은 땅과 이 영험한 산에서 마치 광천수가 샘터져 솟아오르듯 금맥이 쏟아져 나와 자신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기를 갈망하며 속속들이 모여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던 조금은 이상한 빛깔을 띤 이 땅이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다름아닌 Gold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Pikes Peak 주위로 몰려든 이유는 이 영험한 산에서 얻게 될 것이라고 믿었던... 자신들의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해 줄 '금송아지'^^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열망(Hope and Spirit)을 가진 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형성된 곳이 바로 '콜로라도 스프링스'였던 것입니다.

워싱턴으로 돌아와 이 Pikes Peak을 살피게 되면서 저는 믿음의 눈으로 다시 산을 오르며 시내산의 모세와 그 아래서 모세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 그분과 대면하며 그들의 참된 생명과 삶을 위한 율례를 받아 내려왔던 모세... 하지만 그들의 백성들은 그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하게 같은 '금송아지'의 Spirit 아래 모여들어 만들어지게 된 이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다시 한번 믿음의 눈으로 내려다 보며... 비록 제가 모세는 아니지만... Pikes Peak정상에 다시 서서 두 손을 높이 들어 콜로라도 스프링스와 제가 살고 있는 워싱턴 D.C.를 향하여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아버지! 이 땅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워싱턴 D.C.와 동부로 부터 시작될 주의 부흥의 화살이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통과하여 평양과 예루살렘으로 날아가게 하옵소서! Pikes Peak의 황금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던 이들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콜로라도 스프링스가... 그들의 금송아지를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참된 하나님으로 깨달아 알고 그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Pikes Peak으로 올라가며 하나님의 율례를 묵상하게 되며, 깨닫게 되며, 배우게 되며 그 정상에서 하나님을 찬미하여 예배하여 이 땅 미국의 부흥과 전 세계의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는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사2:2-5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그가 많은 민족 중에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미4:1-5

첫번째 사진은 America The Beautiful Park에서 찍은 Pikes Peak입니다.
두번째 사진은 Pikes Peak에서 찍은 콜로라도 스프링스 전경입니다. 멀리 아래 콜로라도 스프링스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02)에서 다룬 Julie Penrose Fountain Sculpture의 제작자 David Barber과 Bill Burgess를 추적해 보던 중 Bill Burgess는 본명이 William C. Burgess로 확인되었습니다.

그의 웹싸이트를 확인하게 되면서 그가 만든 조각상들 중에 Denver에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있는 Julie Penrose Fountain Sculpture과 비슷한 조각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것이 위의 첫번째 사진입니다.


올려놓은 첫 번째 그림에서는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와는 약간 다르게... 그 동그란 원형이 피라밋의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덴버에 존재하는 이 조각상은 Opus 2(the building Pyramid)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습니다. Opus란 작품이란 뜻으로 음악작품 번호를 부여할 때 이 명칭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Opus 2 곧 작품 2의 부제를 the building Pyramid로 지은 연유는 무엇일까요?


Burgess는 자신이 나선형태(Convolution=Helix): 일종의 Circle 의 구도를 선호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Circles have a long tradition, dating back to prehistory, and they are almost universally regarded as symbolizing "wholesomeness(건전[유익]함; 신중함), completeness(완성[완결]도) and continuity(연속[성, 상태])."


특별히 Burgess는 이 나선형태의 작품을 선호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Julie Penrose Fountain에서는 그 나선형태에서 물이 뿜어 나오도록 만듦을 통해 '그것이 대기와 지구 사이에서 생명을 부여한다'는 자기 만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을 기억해 봅니다.


조금 극단적일 수 있겠지만 1달러 지페에 등장하는 피라밋 위의 전시안과 비교해 볼 때... Burgess의 작품 Julie Penrose Fountain의 구도는 거의 동일한 맥락을 유지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두번째 사진은 역시 Bill Burgess의 작품으로 University of Colorado School of Medicine Aurora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냥 언뜻 보면 특별한 특징이 없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역시 오벨리스크를 뒤틀어 놓은 조각상의 일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명은 Aspire 곧 갈망, 열망인데, 오벨리스크 역시 자신을 하늘에 맞닿으려는 인간 바벨탑의 전형이기에... 이러한 형태로 우리 인간이 갈망하려 하는 바가 어떠한 것인지를 충분히 함축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향한 갈망일까요?^^


한 조각가의 작품은 그의 정신세계의 반영입니다. 특별히 Burgess의 작품을 살펴보면 그의 정신세계 역시 다분히 로마 그리스 신화에 많은 배경을 두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신탁, 헤라클레스, 아프로디테, 제우스 등). 2005년 그의 작품 주제는 드디어 이집트로 넘어가 Osiris(죽음 또는 저승의 신: Isis의 남편)와 Isis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http://www.artactiveonline.com/Art/OneArtist.asp?ArtistID=95 으로 들어가 보시면 23점의 그의 작품을 감상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을 공유해 보고자 하는 부분은 미술작품이라는 미명하에^^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공간 곳곳에 세워져 있는 여러가지 조각상 또는 건축물이... 그 제작자들의 정신세계(혹은 신앙세계)를 지속적으로 반영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의도로 견고하게 세워져 있다는 부분입니다. 그냥 무심코 지나치면 아무 것도 아닐 것 같은 그러한 것들이... 발걸음을 멈추어 그 의미를 추구하기 시작하게 되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우상 숭배로 얼마든지 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을 수행하면서... 제가 살고 있는 워싱턴 D.C. 곳곳에 악한 의도에 의해 조각되고 건축되어 있는 조각물들과 건축물들이 산재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조직적이고 의도적이다는 사실도 확인하면서 말입니다. 그것을 신봉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이 함께 연결되어 하나님을 반역하는 쪽으로 그들의 정신세계를 통일해 나가면... 그 역시 이 땅을 더럽히는 또 하나의 stronghold를 형성시킬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하겠습니다.


참고로 Opus Dei라는 단체를 소개합니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Bill Burgess는 Opus Dei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를 추적해 보면서 그가 에스파니아에서 개인전시회를 개최한 전력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Opus Dei는 1928년 에스파냐인 신부 J.M. 에스크리바에 의해 창설된 종교단체로 <신의 조화의 성십자가 성직자단(Sociedad Sacerdotal de la Santa Cruz del Opus Dei)>의 약칭입니다. 혼자 깨달음을 얻는 엘리트주의와 내밀하고 엄격한 성직 위계제 정치조직이 있습니다. 1940년 무렵부터 에스파냐의 대학 및 연구기관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그 후 세계 각국으로 확대되었고 1950년에 로마교황으로부터 인가를 받았습니다. 1950년대 후반부터 프랑코정권 내에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여, 주로 경제정책을 담당하고 정계에도 진출하였습니다. 에스파냐에서는 교육기관·은행·기업·출판사·신문사 등에도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원은 1970년대 전반에 5만∼6만 명 가량이었으며, 에스파냐인이 반수 이상입니다. 기본적 문서는 1939년에 에스크리바가 쓴 《도(道)》이고, 본부는 로마에 있다고 합니다. - 일종의 프리메이슨 아류이기도 합니다.



 다음글의 원래 주인은 infiltrator님으로써 원문은 제3시 사이트(http://3-rd.net)의 '담장을 넘은 가지'코너에서 볼 수 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01) 첫 그림에서 오벨리스크 정 중앙에 있는 둥근 원형의 조각상에 대한 이야기를 후에 나눠드리기로 했었는데... 오늘 (02)에서 잠시 나누어 드리고자 합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 뉴 다운타운 에 위치한 America The Beautiful Park에는 Julie Penrose Fountain이란 분수 조각상이 지난달 2007년 6월 7일에 헌정되어졌습니다.

왜 이 조각상이 Julie Penrose라는 여인을 기념하여 헌정되어졌는지에 대한 이유가 어떻게 지금 콜로라도 스프링스라는 도시가 거대한 맘몬의 커넥션 가운데 통합되어져 가고 있는지를 밝혀주는 실마리가 됩니다.
 


이 Julie Penrose Fountain의 부제는 Continuum입니다.

연속 또는 연속체 또는 어떤 느리지만 점진적인 변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David Barber and Bill Burgess라는 두 인물에 의해 디자인 되었는데요...

이 분수 조각상은 대기와 지구 사이에서 물이 생명을 부여한다는 의미의 운동을 대표한다고 합니다.

원문은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this sculptural fountain represents the life-giving movement of water between the atmosphere and the earth.

그렇다면 과연 이 Julie Penrose라는 여인은 누구일까요?


줄리 펜로스의 본명은  Julie Villiers Lewis McMillan인데요

그녀는 1890년대 Cripple Creek지역 주위 금광에서 큰 재력을 모은 Spencer Penrose의 아내입니다. 그가 모은 자금은 현재 El Pomar Foundation이라는 재단으로 탈바꿈하여 콜로라드 스프링스 전역에 자선, 투자, 리더 양성의 명목으로 지속적으로 그 맘몬의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좀 더 엄밀하게 말씀드리면... 이 El Pomar Foundation이 콜로라도 스프링스 지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자금줄로 역사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들의 Fund는 the Broadmoor Hotel, the Cheyenne Mountain Zoo, the Will Rogers Shrine of the Sun, the Pikes Peak Highway을 비롯한 중요한 지역 병원 건립에 사용되었습니다. 금으로 형성된 자금으로 새로운 다운타운이 Continuum 즉 점진적으로 확장되어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The Will Rogers Shrine of the Sun은 Spencer Penrose의 무덤이있는 장소인데요, 이곳은 자기의 친구 Will Rogers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합니다. 이 Will Rogers란 인물 역시 여러 연결고리를 가진 인물입니다. 이 윌 로저스라는 인물에 대해 잠시 찾아 보았었는데요, 워싱턴 D.C.와 관련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각 State는 미 국회 의사당 건물 안에 주별로 두개의 상(statue)를 가질 수 있도록 허락이 되어 있는데요. 이 윌 로저스가 오클라호마 주에 의해 그 영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첨부합니다: Each state is allowed to have two statues in the United States Capitol Building. Will Rogers was one of the people to be given this honor by the state of Oklahoma. The statue is made of bronze and faces the floor entrance of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gallery in a hallway connected to Statuary Hall. There is a story that Oklahoma knew they wanted Will Rogers, before he passed away, to be one of their two statues in the Capitol and when the state asked him if that would be okay he told them only if his statue is placed facing the House gallery so he can keep an eye on Congress. It is true that of all the statues in the hallway, Will Rogers is the only one facing the House gallery entrance. It is also said that as Presidents walk by the Will Rogers statue on the way to give a State of the Union speech it is good luck to rub the shoes on the statue. The old US Route 66 is known as the Will Rogers Highway — "officially" named this by the US Highway 66 Association in 1952.


그리고 El Pomar Foundation이 건설한 The Broadmoor Hotel은 지금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를 만들어낸 별 다섯 등급의 호텔입니다. 2006년 12월 11일판 Newsweek magazine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President George W. Bush decided to quit drinking after waking up with a hangover in the Broadmoor Hotel one morning in the summer of 1986. (^^ 86년 여름 어느 아침 이 호텔에서 숙취상태에서 깨어나 술을 마시지 않기로 결단한 장소라고 합니다. - 부시와 이 El Pomar Foundation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이들의 자금이 누구에게 구체적으로 전달되었는지에 대한 내력도 결국은 이 자금이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자료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수 많은 학교들이 이 Fund로 부터 지속적인 자금을 제공받고 있었습니다.


America The Beautiful Park역시 이들의 Fund로부터 완성된 공원입니다.

이곳에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고, 그들의 자금줄의 근원이 되는 Spencer의 아내를 위해 헌정되어진 Julie Fenrose Fountain이 공원의 Core Sculpture로 세워져 있습니다.


이 오벨리스크를 두고 그 자리에서 바로 뒤로 돌면 Pioneer Museum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박물관에 콜로라도 스프링스 (01)에서 보여드린 피라밋이 세워져 있습니다.


아직 Spencer Penrose가 프리메이슨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제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자금에 의해 지어진 건축물이 오벨리스크와 피라밋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Pikes Peak과 America the Beautiful Park 그리고 Pioneer Museum은 같은 Spirit을 가진 연결 고리임에 틀림없습니다.


Pike Peak은 다음 콜로라도 스프링스 (03)에서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El Pomar Foundation이 건립한 동물원이 있는 Cheyenne Mountain 역시 (04) 정도에서 다루어 보아야 할 중요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저는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워싱턴 D.C.와 연관된 자금줄을 발견하게 된 셈이지요.^^


당시 세계 최고의 금광이 있었던 콜로라도 스프링스...

그 금광으로 인해 갑부가 된 자들이 형성한 Fund...

그리고 그 자금이 지금 현재 콜로라도 스프링스와 콜로라도 전역 그리고 미 전역에 미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맘몬의 영향력을 간파해 볼 수 있었습니다.


주께서 왜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주목케 하셨는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정치와 돈 그 배후에서 역사하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그들과 싸워야 하는 우리...

로마의 재건을 꿈꾸며 계획된 세계정치의 중심 워싱턴 D.C.

이곳으로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금으로부터 비롯된 돈들이 흘러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주여!! 도우소서!! 우리의 기도를 보다 정밀케 하시고!!

우리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의 영적 배후에서 벌어지는 궤계를 깨닫게 하셔서...

그들의 궤계가 도모되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주의 군사로... 주의 군대로...

우뚝 세워지게 하옵시고...

왜곡되고 비뚤어진 주의 땅이 주의 새로운 은혜를 경험하는 땅으로

주의 이름을 높이고 주를 예배하며 영광돌리는 장소로 바뀌게 하옵소서!

주의 참된 생명과 구원의 역사가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온전히 임하게 하옵소서!!



 잠행기는 제3시(http://3-rd.net)에 infiltrator라는 필자가 미국 내에 존재하는 '이 세상 어둠 주관자들의 추종자'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적, 문화적 실체물들을 잠행하며 기록한 내용을 올리고 있다. 그의 글을 허락을 받고 이곳에 올린다.

 



2007년 7월 7일 새벽 2시 30분... (^^ 7.7.7)

저희 가족은 조용히 워싱턴 D.C.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주일간의 잠행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주께서 그곳으로 보내신 이유를 발견하고 확인하며... 다시 저희들의 보금자리로 돌아왔습니다.

Pikes Peak (14,110 Ft) 정상에서 콜로라도 스프링스와 워싱턴 D.C.를 향하여 기도하며...

또한 그 정상에서 바로 뒤를 돌아 평양과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평양과 예루살렘을 향하여 두 손을 높이 드는 순간...

비를 흠뻑 머금은 빽빽한 구름 속에서 주께서 제 눈 앞에 번개로 응답하셨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정상에서 엎드려 간구하며 목격했던 그 장관을 목도하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은혜의 단비가 그 땅에 임함과 같이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을 갈망하고 있는 척박한 영적가뭄의 대지에 부어주시기를 간구하며 돌아왔습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 다운타운 America The Beautiful Park에 세워진 오벨리스크와 Pionner Museum에 위치하고 있는 피라밋 조형물을 확인하며...

이 땅 가운데 숨겨진 원수들의 뿌리깊은 Stronghold들의 기저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기도 가운데 보게 하신 것들과 기도 가운데 들려 주신 주의 말씀을 계속해서 조금씩 나누어 가겠습니다.

콜로라도...^^ 붉은 빛을 띠다(에돔)는 스페인어에서 기원한 지명입니다.^^


첫번째 사진은 콜로라도 스프링스 다운타운에 위치한 America The Beautiful Park에 쌍으로 세워져 있는 오벨리스크 사진입니다. 중앙에 위치한 Julie Penrose Fountain이라는 조형물에 대해서도 후에 설명드리겠습니다.

멀리 보이는 산 정상이 Pikes Peak Summit(14,110ft)입니다.


두번째 사진은 콜로라도 스프링스 다운타운에 위치한 Pioneer Museum에 위치한 피라밋 조형입니다. 후에 콜로라도 스프링스 The Seal of Colorado와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소아시아(Asia Minor)는 고고학사에서 현재의 터키와 에게해 연안의 여러 섬들 그리고 이라크의 북부 지역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이 소아시아는 예전에 아나톨리아(Anatolia)라고 불리워졌습니다. 아나톨리아란 고대 그리스어의 아나톨리코스(Anatolikos)에서 온 말로서 "해가 뜨는 곳", 다시 말해 "동쪽"이란 뜻을 갖고 있으며, 유럽에서 볼 때 동쪽에 소아시아가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해가 뜨는 곳... 동쪽 땅이었던 이 아나톨리아(Anatolia)의 중부 지역에 프리지아(Phrygia)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지방 사람들이 즐겨 쓰던 모자에 대한 재미있는 유래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프리지아 사람들이 즐겨쓰던 프리지아인의 모자(The Phrygian cap)는 사진 1에 나타나는 주인공이 쓰고 있는 빨간색의 부드러운 고깔모자입니다.

프리지아 사람들은 그 모자에 자유(freedom or liberty)라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 모자는 어제 제가 올려드렸던 로마의 신 미트라가 쓰고 있던 바로 그 모자입니다. 또한 이 모자는 아나톨리아의 신 아티스(Attis)와 쌍둥이 별자리(라틴어로 'Gemini')의 주인공인 Castor와 Pollux가 즐겨 썼다고 합니다.

로마제국 시대에는 토성(Saturn)의 기원이 되는 사투르누스(Saturnus)에게 제사를 지냈던 12월 17에서 23일까지 이 모자를 쓰고 제사를 지내며 보냈다고 합니다. 또한 이 빨간 모자는 이전 주인에게 해방되었던 노예들이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에 이것이 [자유]를 상징하는 의미의 근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모자는 또한 혁명의 상징(Revolutionary Icon)이었는데요, 18세기 미국 독립 전쟁기간 동안에는 자유의 막대기(Liberty pole) 꼭대기에 매달아 그 의미인 자유를 상징토록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것은 또한 프랑스 혁명에도 동일하게 채택이 되었고, 현재 프랑스 국가 휘장 또는 동전 속에서 등장하는 마리안네(Marianne)가 이 모자를 쓰고 있다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자유의 여신상은 이 마리안네로부터 힌트를 얻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로마와 파리와 뉴욕을 이 컨셉으로 묶을 수 있겠네요^^] 이것은 또한
웨스트 버지니아: http://en.wikipedia.org/wiki/Image:Flag_of_West_Virginia.svg
뉴저지: http://en.wikipedia.org/wiki/Image:Flag_of_New_Jersey.svg 그리고
뉴욕: http://en.wikipedia.org/wiki/Image:Flag_of_New_York.svg
주 깃발에도 나타납니다.
또한 미 육군: http://en.wikipedia.org/wiki/Image:United_States_Department_of_the_Army_Seal.svg
상원: http://en.wikipedia.org/wiki/Image:Senate_cap.PNG
휘장에도 포함되어져 있습니다.

한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 다음과 같은 남미 국가의 군인들의 복장이나 국기들에 이 모자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Nicaragua: http://en.wikipedia.org/wiki/Coat_of_arms_of_Nicaragua
소아시아 지방에 사람이 거주하여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 이전 기원전 약 6000~5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발굴된 많은 유적과 유물들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이 지방에 어느 종족이 살았으며 그리고 어떤 부족 국가들이 일어나고 사라졌는지 오늘날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지방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이미 양탄자를 짜고 토기를 제조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인근의 발전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고고학계에서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약 3000년을 전후로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에게해와 그리스 북부 지역을 거쳐 발칸반도에 이르기까지 이주해 갔으며, 청동기시대 (기원전 약 2000년)를 전후로 도시국가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기에 아마 히타이트 왕국이 융성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하네요.
철기 전기시대 (기원전 약 1200년경)에 이르러 히타이트문명의 도시들은 북쪽에서 들어온 다른 부족들에 의해 정복되거나 파괴되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으며 기원전 10세이후에는 고대 그리스의 동북부 지역의 프리기아가 소아시아의 패권을 잡은 것으로 여겨지며, 기원전 7~8세기부터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이 소아시아의 에게해 연안에 숱한 식민도시를 건설하므로서 고대 그리스 문명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페르시아제국은 소아시아 내륙으로부터 세력을 확장하여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패권을 다투게 되죠.

결국 이런 역사 기록을 통해 살펴볼 때... 아나톨리아 프리지아의 모자가 로마의 미트라에게 씌워짐으로 말미암아... 그 스피릿이 로마로 흘러들어간 것이 거의 확실시 됩니다. 결국 로마 역시 페르시아를 흡수함으로 말미암아... 그 페르시아의 원류였던 프리지아의 신 Attis를 로마의 Mithra로 둔갑시켰던 것입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프리지아의 신 Attis가 a life-death-rebirth deity 즉 생,사,부활의 신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더불어 이것이 Tammuz(탐무즈), Phoenix(피닉스), Isis(이시스), Osiris(오시리스), Brahma(힌두의 브라마), Mithras(미트라스), Damuzi(담무즈), Inanna(이난나) 등의 전세계 신들과 함께 동일 컨셉인 스피릿의 생사부활의 컨셉으로 역사하고 있음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빨간모자의 진실...

로마의 미트라...
프리지아의 아티스...
페니키아의 피닉스...
이집트의 이시스와 오시리스...
인도의 브라마...
수메르의 담무즈와 이난나...
그 외의 모든 잡신들이 다 한 아비 '우리의 대적'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빨간 모자는 로마를 통해 프랑스와 미국 그리고 남미 곳곳에 이미 둥지를 트고 자리를 굳건히 잡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남미의 커넥션을 한참 찾고 있었는데.... 빨간 모자를 통해 그 커넥션의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뉴저지와 뉴욕이 빨간모자로 워싱턴과 로마와 통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미 육군과 미 상원도 빨간 모자를 좋아하는군요...^^

사진 2는 프리지아의 생사부활의 신 아티스입니다. 꼬깔모자를 쓰고 있네요^^




장길자.PNG

 

                                       만들어진 하나님어머니

 

                                                                                                             이인규

 

1985년 임시회의를 통하여 하나님어머니로 조작된 장길자

 

(1) 남편이 있는 장길자와 부인이 있었던 안상홍은 결혼예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하나님의 교회는 장길자가 태초부터 있었던 하나님어머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하나님아버지라고 하는 안상홍은 왜 이 땅에 와서 황XX이라고 하는 부인과 혼인을 하여 자녀를 낳았고, 하나님어머니라고 하는 장길자는 김XX이라는 남자와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았느냐는 것이다.

왜 자칭 하나님이고 하나님어머니라는 자가 이 땅에 와서 서로 헤어져서 다른 남자와 다른 여자와 혼인을 하여 자녀까지 낳았느냐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율법과 도덕과 윤리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스스로 율법과 도덕과 윤리를 어겨서 각각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더욱 해괴망칙한 것은 안상홍이 부산교회에 있을 때에 장길자는 서울교회 전도사였다. 안상홍과 장길자는 다른 남편과 부인이 있는 상태에서 결혼예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소위 하나님이고 하나님어머니라는 자가 사람들에게 솔선수범의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남편과 부인이 있는 상태에서 결혼예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비상식적인 것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필자와 공식토론을 요청한 하나님의 교회의 마루치라고 하는 닉네임을 사용한 전도사라는 사람은 안상홍이 장길자와 결혼사진을 찍었다는 것을 분명한 사실로 말하고 있으며, 이것을 영적 혼인이라고 주장하였다.

 

(4-2) 안상홍님께서 엄씨 에게는 질타의 말씀을 하셨고 안상홍님께서 하늘어머니께는 잘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유대인들처럼 자꾸만 엄씨에게 했던 말을 대입하느냐는 겁니다. 안상홍님께서 엄씨는 하늘어머니가 아니라고 하시면 아닌 것이고 안상홍님께서 하늘어머니께는 어머니라고 하시면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마루치)

 

(4-4) 하나님의 교회는 하늘어머니임을 증거하기 위해서 안상홍님께서 남기신 사진을 증거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적인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사진을 증거로 제시하시니 해괴하다고 하시면 귀하는 아마 영적인 하나님께서 구약 때 돌판으로 증거하시니 해괴하기도 할 것입니다.(마루치)

 

(4-6) 안상홍님께서는 설교노트에서도 밝히 알려주고 있으며 혼인예복을 입고 사진을 촬영하셔서 자녀들에게 증거로 보여주셨으며 더욱 확실한 것은 안상홍님께서 증거 해주시기 전 1900년전에 예언으로 기록되어 있었으니 누가 있어 그 예언을 아니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마루치)

 

(4-8) 육체적인 관계를 자꾸 거론하시는 것을 보니 자기자신이 낳은 자식들도 자기 스스로 보기에도 좀 그렇다는 것인지 좀 의아스럽군요. 똑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게 하시는 군요. 안상홍님께서는 하늘어머니를 알려주시고 증거해주시기 위해서 예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던 것이니 거기에 대해서 왈가왈부 더 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음해하는 분들이 자신들의 꼬인 관점 뭐눈에 뭐만보인다는 점에서 보니까 그렇게 왜곡시키고 있을 뿐이지요.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안상홍님께서는 육신적으로 한번 결혼하신 후 다시 결혼하신 적이 없음에도 영적인 내용을 결부시켜 두 번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분별력부터 키운 다음에 말씀하셔야 되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서로사랑하라” 라는 말도 이상하게 들릴 것이니 말입니다.

“각각 배우자들을 버리고” 라니요?? 진실된 사실만을 가지고 말씀하시길 바랍니다. 입만 열면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군요.. “다른 사람과 혼인이라니요?” 라면타령 하시더니 이젠 정신까지!!

예복입고 하늘어머니임을 알리는 사진촬영을 했다고 하여 육신적인 결혼식으로 보다니 희한합니다. (마루치)

 

(4-10) 침례요한이 약대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띤 이유는 성경의 예언을 믿는 자들에게 엘리야로 예언된 사람이 침례 요한임을 알려주기 위함인 것처럼 성령 안상홍님께서는 신부이신 하늘어머니를 알려주시기 위한 증거로 결혼식장에서 사진을 찍었던 것이니 성경의 예언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도 영적인 내용을 육신적으로 결부시켜서 결혼예복입고서 사진 찍었으니 육신적인 결혼이라고 우기시는 분께서 드라마에서 결혼예복입고 사진찍으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합니다.(마루치)

          

장길자와 안상홍이 거짓으로 드라마 촬영을 하였는가?

드라마 촬영은 현실과 다른 상항을 연출하는 것이며, 안상홍과 장길자는 드라마가 아니라 실제로 결혼했다는 것을 증거로 남기기 위하여 혼인예복을 입고 사진을 찍은 것이다. 여러분들의 남편이, 여러분의 부인이, 다른 여자와 다른 남자와 결혼예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면 여러분은 영적혼인이므로 이해가 간다고 생각하는가?

 

교회의 지도자라는 자와 남편과 자녀가 있는 교회 여자 전도사가 어떻게 결혼예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가 있으며, 그것이 실제 결혼이 아니라, 단지 영적결혼을 한 증거라고 스스로 자백을 한다는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안상홍도 부인과 자녀가 있었고, 장길자도 다른 남편과 자녀들이 있었다.

 

(2) 안상홍이 직접 쓴 책

 

“새 예루살렘과 신부, 여자들의 수건문제 해석” 이라는 책이 있다.

안상홍씨가 직접 쓴 책이다. 물론 하나님의 교회에서 발간된 책은 아래 내용이 없다. 교인들이 보면 큰 일이 나기 때문이다

 

그 머리말에는 “이 소책자를 발행하게 된 것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말썽꾸러기, 즉 성경을 곡해하고 광신적 행동을 하는 자들을 막기 위함이요, 또는 엄XX의 발행한 책들의 오류를 해명하는 것과 변함없는 우리 하나님의 교회 진리를 대강 증거하기 위함입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상홍 생전에 엄모씨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인이 자신을 새 예루살렘이며 신부라고 주장하는 사건이 있었다. 안상홍씨는 그 여인을 비난하기 위하여 “새 예루살렘과 신부, 여자들의 수건문제 해석”이라는 책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7장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 어머니다.

(계21장 1-2절)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엄XX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 자기라고 정신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자기들의 주장하는 성경절에 “갈 4:22-26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라한 이 말씀을 가지고 엄수인은 하늘에서 내려온 어머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엄XX은 생각하기를 하갈이 실지로 지상의 예루살렘이 되고 사라가 실지로 하늘 예루살렘에 된 줄로 생각한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4장22-26절을 쓰게 된 것은 아브라함의 가정의 역사가 예언이 되는 것을 해명해 주신 것 뿐이다.

“갈4장24절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였으니” 옛 언약과 새 언약에 대한 에언으로써 하갈은 시내산에서 받은 모세 율법과 지상의 예루살렘으로 말미암는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 것이고 사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세우신 새 언약과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 것인바 곧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엄XX은 자기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인데 자기가 지상에 내려왔다고 한다. 갈라디아서 4장 22-24절의 예언대로 사라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인데 그 예루살렘이 엄XX이 되었다면 엄XX은 자기 아들하고 결혼한 셈이 된다. 왜냐하면 사라의 아들이 이삭이요 이삭은 또한 그리스도라고 하였기 때문이다.(갈3:16) 엄XX은 그리스도의 어머니도 되고 그리스도의 신부(아내)도 된 셈이다. 엄XX은 나를 눈 먼 이삭이라고 하면서 자기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 즉 사라라고 하니 결국 이삭, 아들하고 살겠다고 하니 이런 해괴망칙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17-18쪽) (필자 해설 : 하나님의 교회는 이삭을 예수라고 합니다.)

 

지금 장길자가 엄XX 씨와 동일한 방법으로 하늘의 예루살렘이 자신이고, 사라가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나님의 교회 교인들은 안상홍씨가 스스로 해석한 새 예루살렘과 신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자칭 하나님인 안상홍씨가 새 예루살렘과 신부를 성도라고 한 성경해석이 틀렸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그 교회는 소위 하나님이며 재림예수라고 하는 자의 성경해석도 틀렸다고 하는가?

 

16장 자기 혼자만 신부라고 한다

...... 그러면 문제의 신부가 말씀하시기를(계22장17절) 여기 신부는 (계21장9-10절)의 신부의 신부와 같은 것만은 사실이다.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였으니 어린 양의 아내는 성도들이다. (계19장7-8절)을 보면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였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공동번역에는 “그 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고 하나님의 허락으로 빛나고 깨끗한 모시옷을 입게 되었다 이 고운 모시옷은 성도들의 올바른 행위이다”하였다. 그런고로 그 신부는 (계21장9-10절)의 예언과 같이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이고 새 예루살렘은 곧 144,000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다. 144,000 성도들은 다 신부요, 신부는 새 예루살렘성이다.

 

(3) 현대종교와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재판판결문이 내려졌다.

 

영적 부인 엄XX과 원고 교회의 l분파와 관련된 부분에 대하여 보건대, 을 제 14호증의 1, 2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엄XX이 원고 교회의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영의 어머니라는 주장을 하다가 제명된 사실, 안상홍 사후에 부산을 중심으로 하는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 교회와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원고 교회 간에 장길자를 영의 어머니라는 지도자로 추대하는 문제로 다툼이 있어 분리된 사실이 있으므로, 결국 위 부분을 허위의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현대종교 판결문)

 

(4) 저와 공식토론한 하나님의 교회 전도사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다.

 

(4-2) 안상홍님께서 엄씨에게는 질타의 말씀을 하셨고 안상홍님께서 하늘어머니께는 잘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유대인들처럼 자꾸만 엄씨에게 했던 말을 대입하느냐는 겁니다. 안상홍님께서 엄씨는 하늘어머니가 아니라고 하시면 아닌 것이고 안상홍님께서 하늘어머니께는 어머니라고 하시면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즉 안상홍의 책은 엄XX을 질타하는 것이고, 장길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하면 엄XX은 가짜 영적부인이었고, 장길자는 진짜 영적부인이었다는 것이다,

 

과연 다를까?

안상홍은 첫째, 신부가 성도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 신부가 엄XX이 될 수 없다면 동일하게 장길자도 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안상홍은 머릿말에서 이렇게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전국에 계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여러분들의 큰 교육이 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방자한 자들의 미혹에 걸리지 않도록 각별 조심하셔야 되겠습니다.

 

다음 내용을 잘 살펴 보기 바란다.

 

그 예루살렘이 엄XX이 되었다면 엄XX은 자기 아들하고 결혼한 셈이 된다. 왜냐하면 사라의 아들이 이삭이요 이삭은 또한 그리스도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엄XX은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삭의 어머니)도 되고 그리스도의 신부(안상홍의 아내)도 된 셈이다. 엄XX은 나를 눈 먼 이삭이라고 하면서 자기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 즉 사라라고 하니 결국 이삭, 아들하고 살겠다고 하니 이런 해괴망칙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무슨 뜻인지 잘 읽어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안상홍을 하나님, 이삭, 예수, 성령이라고 한다. 엄XX이 자신이 사라라고 주장하였는데, 사라는 이삭의 어머니였다. 즉 엄XX이 자신을 사라라고 한다면, 안상홍이 이삭이므로 안상홍의 어머니가 된다는 뜻이다. 어떻게 안상홍과 같이 사는 부인이 안상홍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느냐. (본문의 아들과 결혼한 셈이 된다, 이삭 아들과 함께 살겠느냐)는 것이다.

안상홍이 직접 쓴 책을 보아도 엄XX과 안상홍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즉 엄XX가 첫번째 영적 부인이었고, 장길자는 두번째 영적부인이 된 것인데, 안상홍 사후에 엄XX의 가짜 하나님어머니 수법을 그대로 도입한 것이다.

 

장길자가 사라라고 한다면 안상홍의 신부도 되고, 이삭인 안상홍의 어머니가 되는가?

 

(5) 장길자가 언제 하나님이 되었는가를 살펴 보면 그대로 들통이 난다,

 

회의록을 보자.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고 하는 하나님어머니는 태초가 아니라 1985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즉 장길자는 1985년에 하나님어머니로 부르기로 회의를 통하여 결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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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6월2일의 총회록:

총회장: 그러면 어머니라는 공식명칭과 아울러 교회 외에서는 때와 처지와 형편에 따라서 각자 적절히 부르기 바랍니다

교회에서만 하나님어머니라고 부르는 것뿐이며,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각자 적절히 부르면 된다는 것이다.

 

그 회의록과 법정에서 하나님의 교회 정XX 목사가 증언한 내용을 비교하여 보자.

A: 변호사의 문

그렇다면 안상홍의 생전인 1981년경부터 장길자가 영적인 어머니의 칭호를 받았는가요.

Q: 증인의 답

1981년부터 영적인 어머니의 칭호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A: 변호사의 문

장길자가 언제부터 하나님의 교회의 신앙의 대상이 되었는지요.

Q: 증인의 답

1985년 안상홍의 사망 이후부터입니다.

 

 

출처: 세이연/dsmed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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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승우목사의 신격화와 교주화

 

                                                                                                          이인규

 

변승우목사는 자신이 성경의 다림줄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다림줄이란 무슨 뜻인가? 개역성경에 나오는 다림줄에 대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암 7:7-8)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베풀고 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니

 

(슥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다림줄은 “Plumb line”이라고 하며, 건축을 할 때에 석수나 벽돌공이 수직을 잡기 위하여 추를 매달은 줄을 가르킨다. 이러한 다림줄은 성경에서 비유적으로 사용되어지는데, 하나님의 공의나 진리적인 기준, 심판을 의미한다.

특히 암7:7-8과 사34:11은 하나님의 공의적인 기준에 의한 심판과 멸망을 뜻한다.

또한 슥4:10의 다림줄을 갖고 있는 스룹바벨은 메시야적인 영광을 갖는 예표적인 인물(학2:21-23)로 표현되었으며, 슥4:6-10이 또한 그러한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하여 변승우목사가 자신이 성경의 다림줄을 갖고 있다는 그 주장 하나만으로도 그는 이단이며 시이비 교주라고 발표되어질 수 있다.

 

- 내 손에는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다림줄이 있다. (변승우, 다림줄 p 103-104)

  

변목사가 성경의 다림줄을 갖고 있는 이유는 바로 다음의 그가 말하는 내용이다

  

- 충격적이지만 진실을 말씀드리자면 대부분의 주석과 신학서적, 대부분의 강해설교집과 성경공부 교재, 그리고 대부분의 설교자들의 설교와 심지어는 대형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에 이르기까지 이런 불완전한 과정을 통해서 탄생되었습니다. 즉 거의 대부분의 주석과 강해집과 설교들이 사실상은 다림줄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 눈대중에 불과합니다”(변승우, 다림줄, p.60).

   

“성령께서 책 제목과 내용들을 계시해 주셨다” (변승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p.9).

  

그의 결론은 무엇인가? 성경해석의 기준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변승우목사는 자신을 교주화, 신격화하고 있다.

 

(신격화, 자신의 설교는 성경적이라는 주장)

- 제가 전하는 메시지는 교단의 교리에 딱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리보다 더 성경적입니다. 그래서 지금 많은 목회자와 신학생들이 저의 설교를 듣거나 책을 읽고 자신들의 오래된 견해를 바꾸고 있습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변승우, <지혜와 계시의 영>, pp.23-24).

 

(신격화, 변승우책이 천국에 쌓여있다는 예언)

- 천사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계단이 무슨 계단이냐?’고 물었더니 계단이 아니고 그동안 지어오신 변승우 목사님의 책이 차곡차곡 쌓여 궁창입구까지 쌓여진 모습을 보았습니다. 천사들이 제게 하는 말이 ‘이 책을 통하여 거룩해지라’고 했습니다 ”(김OO 집사, 2005년 1월 5일자 입신간증코너).

 

(신격화, 변승우가 성령이라는 간증)

“변승우 목사님이 나팔을 부는 동시에 에스겔서에 나온 것처럼 마른 뼈다귀가 변하여 사람의 형상으로 갖추어 졌습니다”(김OO 집사, 2005년 1월 9일자 입신간증코너).

 

(변승우의 설교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라는 주장)

“목사님의 설교가 계속되고 불을 토하는 듯한 말씀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었습니다. 앉아있기도 힘들 정도로 주님의 임재가 강했고 힘이 빠지고, 뼈 속에서부터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강대상에 서 계신 목사님의 양쪽 어깨에 흰 비둘기가 각각 한 마리씩 앉아있었고 강대상 위로 흰 비둘기들이 계속 날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목사님은 계속 설교하고 계셨는데, 교회 공간에 천사들이 하얗게 움직였고, 어느덧 마귀들의 무리들이 천사들을 공격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변승우, <하늘나라에서 온 이메일>, pp.223-224).

  

(신격화, 마지막 전투에서 하나님이 사용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주장)

- 지금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머리에 새로운 종류의 투구를 씌워주시고 계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End-time) 마지막 전투에 사용하실 사람들에게만 씌워주시는 특별한 투구입니다. 목사님께 투구와 믿음의 방패와 검과 갑옷을 쥐어주시는데, 목사님은 그 검과 투구와 방패와 갑옷을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변승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p.11-12).

  

(12명의 천사가 변목사 옆에 있는 주장)

- 변목사님의 새로운 행정 (New Administration)을 위해서, 목사님을 돕기 위해서, 다섯 천사가 새롭게 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변 목사님께서는 지금 새로운 자리에 놓여지셨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 새로운 시대가 임해 있습니다. 변목사님께서는 지금 새로운 단계로의 문턱을 한발짝 막 넘으셨습니다. 목사님의 영적인 영역들이 새롭게 열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변 목사님을 새롭게 위임(recommission)하시고 계십니다. 새로운 위임에 따라서 하늘로 부터의 도움이 내려오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변 목사님께로 추가로 다섯의 천사들이 더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변 목사님께 이미 임해있던 일곱 명의 천사에 더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12명의 천사가, 행정 (Administration), 정사와 권세에 의한 통치조직을(Goverment)을 돕게 되며,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실 것입니다. (변승우목사 카페, 신사도 목사의 예언)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성경해석의 은사를 받았다는 주장)

- 이것을 보여주시며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통하다. 이것을 어찌 방언 통변이나 다른 은사들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내가 이 은사를 누구에게 줄까? 미국, 영국, 독일, 유럽과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사람을 찾다가 너를 발견하고 너에게 이 은사를 주었는데 너는 이 은사로 인해 내게 한 번이라도 감사한 일이 있느냐? 늘 방언 통변이나 신유의 은사를 주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지 않았느냐? 내가 다른 작은 은사들을 주고도 감사기도를 받는데 이런 엄청난 은사를 주고도 감사하다는 말은 못 듣고 늘 불평만 들으니 이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변승우,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하나님과 동일한 말을 하는 정확한 성경해석의 은사를 받았다는 주장)

“하나님은 도대체 변 전도사님에게 무슨 은사를 주셨습니까? 무슨 은사를 주셨기에 아홉 가지 은사를 다 체험한 저에게 저렇게 당돌한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누가 기록했느냐?” “성경은 선지자와 사도들이 기록했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것이므로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이십니다.” “네 말이 옳다. 나는 이 시대의 많은 나의 종들에게 말씀의 은사를 주었다. 그러나 성경 저자들이 성경을 쓸 때에 임했던 그런 영감을 준 사람은 이 종 하나뿐이다. 나는 그에게 단순히 말씀의 은사가 아니라 성경 저자들이 성경을 쓸 때 가지고 있었던 그런 영감을 주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아라. 이것은 그가 다시 성경을 기록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성경은 이미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할 것이다. 그가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틀림이 없을 것이며, 내가 직접 하는 말과 같을 것이다. 그러니 이 은사를 어찌 다른 은사들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변승우,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자신의 설교는 성령이 순간적으로 부어준 영적 비밀이라는 주장)

- 제가 작성한 설교는 대부분 그 주에 한번 설교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영감으로 온 설교들은 부흥회 때나 다른 곳에 가서 또 설교하게 됩니다. 즉 부흥회 때에는 거의 100% 영감으로 온 설교만 하게 됩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대로 제가 지금 나누고자 하는 말씀은 어느 날 새벽 성령님께서 순간적으로 저에게 부어주신 것입니다. 이런 설교는 대개 새롭고 영적인 비밀을 담고 있으며 그리고 매주 중요합니다. (변승우, 대부흥이 오고 있다, 237-238).

 

(성령이 책의 제목과 내용을 가르쳐준다는 주장)

- 사실 저는 주님이 책을 쓰라고 명령하시고 그 내용을 가르쳐주지 않으시면 책을 쓸 능력도, 자신도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이 책 역시 주님의 명령에 의한 것입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성령께서 교회 안에 만연되어 있는 ‘종교의 영’에 대항하여 책을 쓰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책 제목을 계시해주시고 어떤 내용들을 담아야 하는지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책은 제목과는 달리 단지 예언에 관한 책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종교의 영에 의해 제일 터부시되고 공격받고 있는 대상이 ‘예언’입니다. 예언은 성령운동을 거부하는 교회뿐 아니라 심지어 성령운동을 하는 일단의 사람들에 의해서까지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의 영을 대적하는 책의 제목으로 성령께서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는 제목을 주신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예언에 관한 책이 아니라 종교의 영을 파쇄하기 위한 책입니다”(변승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p.9). 

 

 


"하나님의교회 빠지면 평생 종의 굴레"

2014/02/28 (금) 14:10 ㆍ추천: 0      

하나님의교회피해자가족모임(하피모) 회원들이 성남시 분당구 야탑역 일대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이단 '하나님의교회'실체를 알리고 있다.

안상홍증인회로 알려진 이단 ‘하나님의교회’가 세대를 불문하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교주 안상홍을 재림예수로 믿으며 세력을 형성해 왔던 안상홍증인회.

안상홍증인회는 1985년 안상홍 교주가 죽자 측근인 장길자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세워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하나님의교회’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유월절 등 성경의 절기를 지키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가르치는 등 전형적인 율법주의 이단행태를 띠고 있다.

◈ "14만 4천명 휴거 된다더니...계속 휴거 자격 기준 바꿔가"

'하나님의교회'는 초창기 유월절을 지키는 14만 4천 명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숫자가 더 늘어나자 계속해서 말을 바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년동안 하나님의교회 소속 교회 당회장(목사)이었던 A씨는 "처음에는 유월절을 지키는 14만 4천명이 죽지않고 천국에 올라간다고 가르쳤지만, 계속 신도들이 늘어나자 안식일을 지키는 14만 4천명이 휴거한다고 말을 바꿔갔다”고 폭로했다.

A씨는 이어 “현재는 내부 동요를 막기위해 60억 세계 인구의 3%인 1억 8천명을 전도해야 휴거가 일어난다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육체가 죽지않고 하늘에 올라간다는 뜻의 휴거. '하나님의교회'는 지난 1988년과 1992년, 2012년에 휴거 소동을 일으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 '이세상 가족들은 가짜..전도 안하면 저주 받는다' 가르쳐

또, 이세상의 가족들은 가짜며, 전도하지 않을 경우 저주를 받는다고 가르쳐 학업포기와 가출, 이혼 등 가정 파괴를 방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하나님의교회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은 다 변명이고 거짓말이라고 보면된다”며, “하나님의교회에 빠지면 자기 시간도 없이 평생을 율법의 종 생활을 하면서 살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 "대재앙 피하려면 유월절 지켜야" 두려움 이용한 포교 나서

이단 '하나님의교회'는 ‘친밀감’과 ‘두려움’을 이용해 포교에 나선다.

우선 친밀감을 통한 포교방법. 하나님의교회 피해자 가족모임(이하 하피모) 회원인 B씨는 “전도대상자들에게 접근할 때는 먼저 좋아하는 운동이나 독서 등 관심사를 파악하고 그 관심사에 최대한 맞춰주면서 친밀감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밀감이 형성됐다고 판단되면 유월절에 대한 소개영상과 하나님의교회와 관련한 홍보자료들을 보여주며 포섭을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두려움을 이용하는 방법은 이렇다. 전쟁이나 지진, 태풍 등을 예를들면서 지구에 대재앙이 임하고 있다며 두려움을 조성한 뒤 이 재앙에서 구원받는 방법은 새언약 유월절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몰아간다.

A씨는 “재앙에 대한 것은 누구나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이용한다”며, “전쟁이 일어나고 지진이 일어날 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면서 유월절이라는 것을 서서히 보여주게 된다”고 말했다.

◈ 이단전문가들, "하나님의교회 세력 경각심 키워 나가야"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를 비롯한 '하나님의교회' 산하 단체의 활동에는 참여를 자제해야한다.

하피모의 또다른 회원 C씨는 “이들 단체에서 하는 봉사활동이나 각종 이벤트를 매개로 청년 대학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며 특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이단전문가들은 “한국교회가 이단 신천지에 온통 관심이 쏠려있는 사이 하나님의교회 세력이 크게 성장했다”며, “곳곳에서 사회적 폐혜가 드러나고 있는만큼 지금이라도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경각심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CBS노컷뉴스 송주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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