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시한부 종말론의 사상적 배경으로서 한국교회에 가장 큰 오명을 남기는 데 일조했음에도 세대주의 사상은 여전히 한국교회에 뿌리깊게 남아 있습니다. 한국교회 일각에 다시 세대주의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에 본지는 이필찬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bibeschatology)에 올린 글 중 세대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비판한 글 몇 가지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저자인 이필찬 교수는 합동신학대학원(M.Div)를 졸업하고 미국 칼빈신학교(Th.M)를 거쳐, 영국 세인트 앤드류스대학(Ph.D)에서 요한계시록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이고 현재는 요한계시록연구소를 설립, 많은 강연과 저술활동을 통해 한국교회의 바른 종말론 세우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송만석장로.gif (송만석 장로)



KIBI(한이성경연구소, 대표 송만석, Korea Israel Bible Institute)의 대표인 온누리 교회 송만석 장로는 <지금은 예루살렘 시대>라는 제목의 책을 저술했다. 두란노에서 1999년 초판이 발행된 이후 2011년까지 17쇄를 거듭했다. 여기에서 그의 주장을 간단히 소개하고 분석 평가해 보고자 한다. 그런데 송 장로의 견해는 앞에서 언급한 메시아닉 쥬들의 주장과 매우 유사하다.

 

송만석 장로는 회복에 관한 말씀을 열거한다(31-34쪽): 사 11:11-12; 43:5-6; 49:12; 렘 3:18; 23:7-8; 30:3; 31:8; 33:24-26; 겔 36:24-25; 39:28; 호 3:4-5; 슥 8:1-8. 그리고 이러한 예언의 말씀들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19세기 중반에 유대인들이 고토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기 시작하여 1948년에 독립국가가 되고 1991년부터는 구소련으로부터 대량으로 귀환하게 된 것과 독립 이후에 50년 동안 전세계의 비난 속에서도 한 국가로서 든든히 성장해 온 것이 말씀의 성취라고 서술하고 있다(34-35쪽).

 

송만석 장로는 이러한 예언들이 바벨론 포로 귀환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며 1948년 이스라엘 독립과는 관계 없는 것이라는 비판을 의식하여 이에 대한 반박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렘 16:14-15의 말씀을 인용하며 북방 땅과 쫓겨 가서 살았던 모든 나라에서 귀환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출애굽 사건보다 더 큰 사건이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면서 앞에서 열거한 이스라엘 회복에 관한 성경의 예언이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이 아니라 금세기에 일어난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주장이라는 증거들을 나열한다.

 

송 장로의 주장:
1) 이스라엘 역사상 온 민족이 송두리째 뽑혀서 세계 각처로 흩어져 버린 것은 바벨론 포로 시대가 아니라 예수님의 예언이 이루어진 AD 70년 이후의 일입니다.


반박: 먼저 흥미로운 것은 송만석 장로가 AD70년의 성전 멸망을 예수님의 예언의 성취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 멸망을 말씀하셨지 이스라엘 온 민족이 송두리째 뽑혀 세계 각처로 흩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은 전혀 없다. 구약에서도 이스라엘이 송두리째 뽑혀서 세계 각처로 흩어져 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이 두 경우에 송두리째는 아니지만 일부가 흩어지고 잡혀가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맞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흩어지게 된 것은 바벨론 포로 사건이 계기가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고토로 돌아 오게 될 것을 선포하게 된 것도 바로 바벨론 포로 사건이 배경이 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AD 70년 이후 이스라엘 온 민족이 송두리째 뽑혀 흩어지게 된 것은 성경의 본문과 전혀 관계 없다.

 

송 장로의 주장
2) 위에서 보았듯이 유대인들이 팔레스틴으로 이주해온 경로를 보면 문자 그대로 동서 남북 전 지구상에서 돌아왔습니다. 단지 바벨론이나 그의 인접 국가들 정도에서 돌아 온 것이 아닙니다.

 

반박: 세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1)구약에서의 표현 방식은 강조를 위해 과장된 표현을 쓰는 경우가 있다; (2) 구약에서의 북쪽과 땅끝은 세계화된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그러한 범위가 아니다; (3) 실제로 바벨론 포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반드시 바벨론 포로로부터 귀환뿐만 아니라 세계 각처로부터 몰려 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겔 36:19에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여러 나라에 헤쳤더니’라고 되어 있어서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송 장로의 주장
3) 이사야 11장 11절 말씀을 보면 첫 번째 귀환이 아니라 두 번째 귀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박: 우선 사 11:11은 ‘그 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한다. 만일 이 부분을 문자 그대로 믿으려면 이러한 내용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오늘날의 정황과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다시’라는 말은 두 번째 귀환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 앞선 출애굽과 히스기야를 통한 구원사역를 배경으로 하나님은 다시 반복해서 앗수르로부터의 구원 사역을 일으키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오늘날의 이스라엘의 회복에 적용하는 것은 본문과 본문의 구약적 문맥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송 장로의 주장
4) 스가랴서는 바벨론 포로시대 이후에 쓰여진 선지서입니다. 8:1-8까지의 내용을 보면 각처에서 돌아온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루살렘 거리에서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반박: 슥 8:1-8이 포로 후에 주어진 말씀이라 하더라도 포로 후의 정황에 해당된다고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포로 후에 이스라엘의 상황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에게 격려하고 위로하는 말씀으로 이해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 특별히 9절은 대하 15:1-7을 배경으로 하여 성전 재건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고 있다.

 

송 장로의 주장
5) 렘 30:24 내용은 이러한 사건이 ‘말일’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는데, 이것은 바벨론 포로 귀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있습니다.



반박: 송만적 장로는 종말에 대한 성경적 의미를 오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구약 성경에서 바벨론 포로 귀환 사건은 종말적 사건이다. 종말이란 시간적으로 마지막이란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성취된 순간을 일컫는다. 선지자들이 종말을 내다 보면서 선포했는데 그러한 것들이 포로 귀환을 통해 일차적으로 성취가 되었다. 그래서 스룹바벨은 성전을 건축하고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을 재건하였으며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 재건을 위해 힘쓰게 되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니 온전한 성취가 이루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바벨론 후에 페르시아와 그리스 그리고 로마 제국에 이르는 대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약소국으로 계속 남아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신약 성경 저자들은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재해석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해방이 있다는 말씀을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종말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송 장로의 주장
7) 누가복음 21장 24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리라’고 하셨습니다. AD 70년 이후 예루살렘은 비잔틴 제국, 페르시아, 십자군, 터키, 영국, 요르단 등 적어도 10개국 이상에 의해 지배를 받다가 1967년 6월, ‘6일 전쟁’으로 이 지역이 이방인의 손에서 유대인들의 손으로 넘어 왔습니다.

 

반박: 21:24의 말씀은 구약에서 유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패턴을 활용하여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고 있다. 이 패턴이란 구약에서 항상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 끝나고 나면 그들의 심판을 위해 도구로 삼았던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심판을 선포한다(참조 사 10; 13-14; 33; 47; 렘 50-51; 단 9:26-27; 겔 38; 합 1:1-2:3). 그렇다면 눅 21:24은 구약에서 예루살렘 심판의 표현에 대한 인유(引喩, allusion)라고 할 수 있다. 눅 21:24의 문맥은 예루살렘 성전 멸망에 대한 내용이다. 이 성전은 예수님 말씀대로 AD 70년에 로마에 의해 파괴되었다(이것은 송만석 장로도 동의한바 있다). 이 내용을 서술하면서 구약에서의 심판의 패턴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며 자연스럽다. 이것을 2000년 후에 이스라엘의 회복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음에는 송만석 장로의 겔 36-37장을 근거로한 이스라엘의 3단계 회복론에 대한 비판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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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은 온누리교회의 이스라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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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이연 

송만석 장로의 이스라엘 회복 사상 비판

 

이필찬 교수 "송 장로 견해, 메시아닉 쥬들의 주장과 매우 유사"

 
요한계시록연구소 이필찬  |  https://www.facebook.com/bibeschatology 

 

류광수.PNG

 

 

 류광수 다락방(예장 전도총회)에 대한 연구보고서

 

                                                                                                                  세계한인기독교이단대책연합회

 

지난해 11월 9일, 한국·미국·일본·유럽 등 세계 각국의 이단연구 전문가 87명이 세계한인기독교이단대책연합회(세이연)를 조직하고 창립총회 및 ‘제1회 세계대회’를 열었다. “어떠한 정치적 외압이나 금권적 유혹도 배제한 신뢰성 있는 이단연구를 통해 한국교회를 보호하겠다”는 설립취지다. 창립멤버들은 특히 “한국교회는 외부적으로 이단들의 공격적인 포교로 위협받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정통교단 안에 이단들을 변호하고 지지하는 친이단인사들이 있는 실정이다”며 “정통기독교라는 이름 안에서 이단을 옹호하는 친이단성향의 인사, 단체, 언론에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한바 있다. 만 1년이 지난 시점인 올해 11월 세이연은 “약속한 대로 한국교회를 위한 이단연구보고서를 차례로 발표한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그 두 번째인 ‘류광수 다락방’에 대한 것이다.

최근 교계 일각에서 반복적으로 주장되고 있는 “현재의 류광수 다락방은 이단성 없다”는 주장에 대해 <복음편지>, <현장복음>, <기초멧세지>, <영접의 열두 가지 의미>와 같은 다락방의 최근 양육교재를 근거로 반박할 뿐만 아니라, 지방교회와 흡사한 양태론적 삼위일체와 김기동 베뢰아와 흡사한 귀신론 등의 이단성을 치밀하게 드러낸다. 보고서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편집자주>

서론
1. 류광수 다락방의 현재 상황
2. 류광수 다락방의 조사 목적

본론
1. 양태론적 삼위일체와 기독론을 비롯한 여러 이단적인 사상들
1) 지방교회와 거의 유사한 다락방의 기독론과 양태론(삼위일체의 비밀)
2)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과 성령의 내주를 동일한 것이라고 하는 주장
3) 다락방만이 2000년 교회사에서 유일한 복음을 전한다는 배타적인 교회론
4) ‘그리스도를 누린다’는 지방교회의 용어사용과 그리스도의 삼중직(그리스도의 비밀, 영접의 비밀, 임마누엘의 비밀 등 관련)에 대한 그릇된 견해
5)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이라는 다락방의 양태론적 교리
6) 예수의 무죄성에 대한 왜곡된 기독론
7) 류광수 다락방의 사상에 근거한 비성경적 천사동원권, 사탄결박권

2. 김기동 베뢰아의 이원론적 귀신론과 유사한 다락방의 귀신론
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한 왜곡
2) 가계저주론과 유사한 다락방의 조상의 죄
3) 베뢰아 사상과 동일한 다락방의 사탄배상설
4) 자신들만이 마지막 시대의 남은 자라는 렘넌트 사상

결론

 


서론

1. 류광수 다락방의 현재 상황

류광수 다락방(예장 전도총회)은 현재 9개 교단에서 이단 및 이단성 있는 집단으로 발표되었다. 다락방은 고신(1995/45, 1997/47/이단), 통합(1996/81/사이비성), 합동(1996/81/이단), 합신(1996/81/위험한 사상, 참여금지), 기성(1997/52/사이비운동), 기감(1998/23/이단), 고려(1995/45/유사기독교운동, 사이비기독교운동), 개혁, 기침 등 9개 교단에서 이단 및 사이비 단체 등으로 규정하였고, 교단들의 연합체인 한기총의 2004년 이단종합명단에도 포함되어 있다.

1998년 8월 27일 횃불선교센터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류광수 목사는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 거의 대부분이 오해이고 실수였다고 변명을 했으며, 수정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현재에도 달라진 점은 거의 없으며 오히려 몇 가지 문제점은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공청회에서 말한 주장은 급한 불을 끄려는 변명과 거짓말로 보인다. 특히 다락방에 숨어 있는 지방교회(윗트니스 리)의 사상은 예전에는 구체적으로 보고되지 않았던 것으로 심각한 이단성을 보인다. 그 동안 밝혀진 류광수 다락방의 이단성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2. 류광수 다락방의 조사 목적

류광수 다락방은 1997년 추종 세력을 모아 ‘대한예수교장로회 전도총회’라는 교단을 만들었고, 2011년 6월 21일 예장 개혁측(조경삼 목사측)과 합동예배를 드렸다.1) 이 일로 말미암아 예장 개혁측이 조경삼 목사 측과 장세일 목사 측으로 분열되었고, 한국교회의 중요한 9개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류광수 다락방에게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 회원권을 부여함으로써 한국교계는 큰 충격과 혼란에 휩싸였다. 이에 세이연은 한국교회 대표적인 연합기관인 한기총에서 류광수 다락방을 사실상 회원으로 받아 들였다는 것은 ‘이단해제를 위한 과정’으로 판단하고,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생각아래 류광수 다락방을 조사하게 되었다. 류광수 다락방에 대하여 지금까지 밝혀진 것뿐 아니라 새로운 이단성을 밝힘으로써 그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본론

다락방의 가장 중요한 이단성은 두 가지 방향에서 볼 수 있다. 첫째, 이단 지방교회(위트니스 리)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아 양태론적 삼위일체와 신인양성을 분리하는 왜곡된 기독론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류광수 다락방이 교단을 만들어 분리된 이후부터 더욱 더 노골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류광수 다락방은 자신들의 이단적인 주장을 스스로 “2000년 만에 회복한 유일한 복음”이라고 말하며, 이것을 “삼위일체의 비밀, 영접의 비밀, 임마누엘의 비밀”이라고 말한다.

둘째, 류광수 다락방은 이단 김기동 베뢰아 같은 ‘이원론적 귀신론’ 사상을 주장한다는 점이다. 이 사상은 인간에게 나타나는 모든 저주 즉 질병, 불행, 사고, 심지어 가난까지도 모두 귀신 때문이라고 여기며, 예수를 영접하고 귀신을 쫓아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사상이다. 그러한 귀신론은 하나님과 마귀를 동등한 대적관계로 보는 이원론으로서 “마귀를 알아야 예수를 안다”고 주장할 뿐 아니라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마귀를 멸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1. 양태론적 삼위일체와 기독론을 비롯한 여러 이단적인 사상들

1) 지방교회와 거의 유사한 다락방의 기독론과 양태론(삼위일체의 비밀)
초대교회의 기독론 중에서 ‘아폴로네리우스’2) 라고 하는 이단적 기독론이 있는데,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분리시켜 예수의 영만을 ‘하나님’으로 보는 견해로서 예수의 인성을 부정하는 사상이다. 다락방의 류광수 씨는 이것을 양태론적으로 예수의 영을 ‘하나님 자신’으로 이해하며, 곧 예수님의 성육신과 성도들안에 성령의 내주를 동일한 개념으로 보는 지방교회 사상을 갖고 있다. 류광수 목사의 주장을 입증하는 <복음편지>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1)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 1:14).
(2) 그러므로 그분은 죄가 없고 그 영은 하나님이십니다(고전 15:45).
(3)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4)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가진 분입니다(마 16:16~19) - 영은 하나님이시고 몸만 사람의 몸을 입고 계신 분이 예수님이다.”(<복음편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류광수 씨의 <현장복음> 메시지에도 이런 주장이 나타난다.

“(3) 고전 4:45~50 하나님 - 예수님은 그 영이 하나님이시다.
(4) 요 1:14 사람 - 예수님의 그 육이 사람이시다.”(<현장복음>, 19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그 영은 하나님인데,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이다. 신약에 참으로 중대한 말이다. 여러분 중심에 정말 주님이 역사를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의 죽음은 참으로 중요하다.”(<현장복음>, 18과 예수께서는 왜 죽어야 하는가?)

결국 위의 류광수 씨의 가르침을 요약해 보면 하나님 자신이 직접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 예수요, 그 분이 다시 성령으로 변하여 오셨다는 양태론적 삼위일체요, ‘하나님=예수의 영’이라는 잘못된 기독론을 말하는 것이다. 류광수 씨의 이러한 내용을 단순한 실수나 착각, 신학적 무지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복음편지> 외에 <현장복음>등의 양육교재 외에도 이러한 기록이 너무 많이 반복되고, 오히려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그것을 ‘비밀’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지방교회의 창시자 윗트니스 리의 글을 보면 류광수 씨가 주장하는 내용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육신 되신 후에 하나님은 성육신되기 이전과는 달라지셨다. 성육신 이전에 그 분은 다만 하나님이셨지만 그러나 성육신되신 후에 그 분은 사람의 껍질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다”(윗트니스 리, <세부분의 사람의 생명되시는 삼일하나님>, 54쪽).

“그분은 우리와 같이 되셨다. 왜 그런가? 그 목적은 우리를 그 분과 똑같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고 하나님의 성품을 가졌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과 똑같은 것이다”(윗트니스 리,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63쪽).

“우리 모두가 그분이 다만 영원 안에 감추인 아버지이고, 인간사회에 나타난 아들이실 뿐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오신 그 영이심을 보아야 한다”(윗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두 가지 비밀>, 21쪽).

결국 류광수 씨의 다락방이나 지방교회는 하나님이 곧 도성인신하신 예수요, 바로 이 예수가 보혜사로 오신 성령으로 “하나님 = 예수님 = 성령님”이라는 등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것은 분명히 양태론적 단일신론으로서 사벨리우스3) 가 주장했던 이단적인 사상이다.

2)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과 성령의 내주를 동일한 것이라고 하는 주장
지방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자와 동일하게 영·혼·육으로 분리시킴으로서, 성육신하신 예수를 성령이 내주한 신자와 동일하게 본다. 지방교회의 양태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성령은 곧 성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즉 예수를 성령(하나님)이 내주한 사람의 첫 샘플로 보는 것이며 이것을 ‘God-man’이라고 부른다.4) 즉, 영이신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신 것과 예수와 성령이 신자 안에 내주하는 것을 동일하게 보는데, 그것을 류광수 씨는 ‘삼위일체의 비밀’이라고 주장하며, ‘임마누엘의 비밀’, ‘영접의 비밀’이라고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교회는 아버지가 곧 아들이며 아들이 곧 영이므로, 그것을 곧 ‘하나님의 실제’ 혹은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류광수 씨도 예수의 성육신과 성도들의 성령의 내주를 동일한 것으로 보며, 지방교회의 용어도 동일하게 사용한다. 류광수 씨의 글을 다락방의 문헌을 통하여 살펴보자.

“영접이란 말은 성령께서 우리 속에 내주한다. 그러니까 이 말을 이해해야만 영접이란 말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 오셨다. 말씀이 육신을 입어 오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뭐라고 말하느냐? → 성령의 내주! 이것을 이해해야 이해되는 말입니다. 주님이 여러분 속에 오셨다는 그 말이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뭘 주셨으니? 권세를 주셨으니….”(류광수, <기본멧세지>, 2쪽, 영접의 열두 가지 의미).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성부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성자 하나님은 이 땅에 와서 그 말씀을 다 성취시켰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을 입고 오셨는데 그분이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죠? 그런데 하나님이 지금 우리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이 뭐라고요? 성령 하나님. 맞지요? 너무 너무 놀라운 구원의 비밀입니다. 당장 여러분이 언약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 성삼위 하나님이 내 속에 오셨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 때문에,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여러분 속에 이 하나님이 계십니다. 어떻게? 성령 하나님으로, 이것을 보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인 것입니다”(류광수, <기본멧세지>, 영접의 열두 가지 의미).

“하나님이 우리 속에 아예 오신 것이다.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육이고, 우리의 마음이지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신다”(류광수, <현장복음>, 2과 - 새로운 생명 (3) 성령의 내주란 무엇인가?).

종합해 보면, 결국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 곧 성령의 내주요, 그 성령이 바로 성부 하나님이 신자 속에 들어오는 것과 같다고 이해할 수 있다. 윗트니스 리의 글을 보아도 동일한 사상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경륜이란 ‘하나님 자신을 사람 속에 공급해 주는’ 하나님 자신의 계획임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이란 오로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람 속에 공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오직 그분 ‘자신’ 만을 우리 속에 공급하시는 것이다”(윗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9~10쪽).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들은 누구인가? 자녀들과 아버지는 같은 종류가 아닌가? 요한복음 3장 6절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라고 말한다. 당신과 당신의 부모는 모두 같은 종류, 육신의 종류이다. 6절은 또 말하기를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한다. 이 두 영은 같은 종류이며 또한 같은 근원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 많은 하나님-사람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또한 우리가 믿고 경배하며 따르는 우리의 주님, 또한 첫 번째 하나님-사람(God-man)이다”(윗트니스 리, <하나님-사람의 생활>, 40쪽).

지방교회에서는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사람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 자신을 공급하고 분배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한다. 지방교회의 사상은 다락방 류광수가 말하는 사상과 다르지 않고 동일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3) 다락방만이 2000년 교회사에서 유일한 복음을 전한다는 배타적인 교회론
과거 류광수 다락방의 가장 큰 문제는 다락방만이 유일한 복음을 전한다는 것과 정통교회에는 복음이 없다는 배타성이었다. 이 배타성이 다락방을 이단으로 규정한 중요 이유가 되었다. 예전의 다락방은 노골적으로 기존의 정통교회를 비판한 바 있는데 “기존 교인들은 그리스도를 재 영접을 하여야 한다” 혹은 “한국교회는 98%가 귀신이 들렸다”라는 비난도 하였으며 “다락방만이 초대교회 이후로 유일한 복음을 전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류광수 씨는 지금도 “기존 교인은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의미를 앞에서 말한 아폴로네리우스적인 기독론과 양태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기독교의 정통신학은 자신이 생각하는 임마누엘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과연 기존의 정통 기독교가 성령의 내주를 부정하거나 성육신을 부정하는가? 그렇다면 왜 다락방에서는 기존 신자들이 임마누엘(하나님이 함께 하신다)을 누리지 못한다고 말할까? 류광수 씨의 기성교회 신자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자.

“기존 신자들은 사실상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여러분 개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기존 신자는 이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다. 목사님들도 무언가 모르게 이것이 느껴지질 않으면 은혜가 안 되는 것이다”(<복음편지>, 3과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그것을 보면서 교인들이, 중요한 멤버들이 너무나 축복을 참 모르고 있구나?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복음 운동이 그 많은 나라 가운데 한국에서, 그 많은 교단 가운데 다락방에서 일어나고 있다”(<복음편지>, 9과 기도는 영적과학이다)라고 하여 마치 류광수 다락방에서만 참 복음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2008년 <교회와신앙>(www.amennews.com)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더욱 분명해지는데, 다락방만이 2000년 만에 회복된 복음을 전한다고 주장한다(2008년 1월 20일자 “다락방이 2천년 만에 복음 회복했다/류광수 목사 이단시비 부른 다락방 특수화 주장 여전” 기사 참고).

“그래서 2000년 만에 회복된 복음이라고 했더니 어떤 목사님이 제게 시비를 걸었죠. ‘류 목사님 저, 다락방에서는 2000년 만에 복음이 회복되었다고 하는데 그럼 지금까지 전도가 없었습니까?’라고 했어요. 어, 있었죠! 있었는데 성경에 있는 전도는 제가 찾지를 못했어요. 찾으면 수정하겠는데 없어요. 저도, 공부 좀 했는데요,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성경에 있는 완벽한 전도를 찾아내는 게 2000년만이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이거(출애굽~현재까지를 뜻한다: 녹취자주) 다 합치면 얼맙니까? 4200년이에요! 여러분들이 4200년 만에 나타난 인물들이에요(청중들: 아멘!). 여러분 이거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앞으로 많은 분들이 보고 후회하거나 알게 될 겁니다. 계속 역사가 일어날 겁니다. 교회사를 똑바로 봐야 합니다. 제일 깨닫기 어려운 게 복음입니다. 은혜로 깨닫는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는 복음이 2000년 만에 회복된 것이에요.”5)

계속해서 류광수 씨는 다락방만이 2000년 만에 복음을 회복한다고 말한다.

“또 복음이 없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또 완전히 망해 버렸어요. 이래서 복음을 깨달은 인물이 나왔어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했어요. 모든 것이 다 회복되었어요. 자 이 때부터 이 때까지(출애굽부터 이사야 7:4 말씀에 이르기까지를 뜻한다: 녹취자 주)가 얼마나 걸렸어요? 2천년이 걸렸어요. 기가 찰 일이죠. 제사장, 선지자가 있는데도 복음이 회복되는데 2000년이 걸렸어요.”6)

왜 류광수 씨는 다락방을 2000년 만에 회복된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그의 사상은 2000년 교회사를 통하여 일반 교단에서 가르치지 않는 다른 양태론이며 다른 기독론이기 때문이다.

“우리 다락방이 뭘 발견했는가? 일반 교단이 지금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시대에 전도를 제대로 하겠다는 답이 있는 단체다. 그래서 다른 것이다. 같다고 보면 안 된다. 그래서 이단이라는 말을 쓰는데, 異 다를 이. 다르기는 다르다. 같지는 않다. 저도 같다고 보지는 않는다. 어느 것이 옳으냐의 문제지, 같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같다면 우리 교단 없애야죠. 같지 않다. 뭔가 다락방은 다르다. 다르고 말고요. 분명 다르다. 다를 이(異)자다. 자꾸 뭔 소리 하지만 아무 상관없어요. 똑같으면 죽어요”(2007년 5월29일 예원교회).

4) ‘그리스도를 누린다’는 지방교회의 용어사용과 그리스도의 삼중직(그리스도의 비밀, 영접의 비밀, 임마누엘의 비밀 등 관련)에 대한 그릇된 견해

류광수 씨는 ‘그리스도의 비밀’, 혹은 ‘그리스도를 누려야 한다’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이러한 표현은 지방교회 이단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 중 하나다. 지방교회는 ‘하나님의 실제’라는 용어도 빈번하게 사용하는데, 류광수 씨에게서도 이 용어가 자주 발견된다. 지방교회가 말하는 ‘그리스도를 누린다’는 것은 양태론적 삼위일체 입장에서 이해하여 그리스도를 성부 하나님의 실제로 보는 것으로 지방교회는 그것을 ‘하나님의 생명’ 혹은 ‘하나님의 실제’, ‘그리스도의 실제’라고도 부른다. 윗트니스의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또한 삼일적(三一的)으로 아들 그리스도의 실제화이신 그 영과 함께 살아야 한다. 당신이 ‘오 주 예수 그리스도여’라고 부를 때 당신은 주님을 누린다. 당신이 주님을 누릴 때 즉시 당신 안에 계신 주님은 그 영이시다. 주님은 그 영으로 실제화 되신다. 주님을 더 부를수록 당신은 그리스도의 실제화(實際化)이시며 실제의 영이며 당신 안에 계신 그 영을 더 갖게 된다. 실제란 주로 삼일하나님의 신성한 성분 안에 있는 존재 자체를 가리킨다. 그 영이 하나님의 실제이다”(윗트니스 리, <새예루살렘>, 396쪽).

“그러므로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은혜와 성령의 교통은 세 개의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기 위한 ‘한가지의 세 단계’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 아들, 성령은 세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기 위한 ‘한 하나님의 세 방면’이다. 예를 들어 얼음은 물이 되고 물은 수증기가 된다. 즉 ‘한 실체가 세가지 형태’를 띠고 있다. 그 실체가 수증기의 상태에 이를 때에 우리가 호흡하는 데 유용하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은 성령이 받으며, 성령은 우리가 누릴 수 있도록 그분을 우리 안으로 가져다준다. 하나님은 그분의 삼일성 안에서 설명하고 묘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많은 예들이 있다”(윗트니스 리, <하나님>, 297쪽).

그렇다면 다락방 류광수 씨가 주장하는 ‘그리스도를 누린다’라는 용어를 살펴보자. 류광수 씨는 다락방에서 사용하는 이 용어를 차별화하며 ‘비밀’이라는 말로 강조하고 있다. 류광수 씨는 <영접의 열두 가지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접, 이 말은 교회에 오도록 성경 공부하면서 예수 영접을 시키는 단순한 그 얘기가 아니고, 어마어마한 비밀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예수를 영접하는 순간에 엄청난 비밀이 이루어지고, ‘우리가 영접했다’ 이 말은 우리에게 엄청난 비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축복을 놓치지 말고 누리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비밀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잘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두 가지입니다. 예수 영접과 예수님의 능력을 누리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이 두 가지만 발견해내면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전부 다 발견한 것입니다.”

결국 예수를 영접하는 ‘비밀’은 성령의 내주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누린다는 말은 지방교회가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를 누린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된다고 여겨진다. 류광수 씨가 <현장복음>에서 설명하는 ‘그리스도를 누린다’는 말의 뜻을 살펴보자.

“실제로 누려야 한다. 성경 공부하다가 예수님에 대하여 다 배웠는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에게 누려지는 것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누리느냐? 그것을 배워야 한다. 이 누리는 것이 너무 너무 안 되어 가지고, 5년 믿어도 그대로요, 10년 믿어도 그대로이다. 어떤 면에서는 오래 믿을수록 더 골치 아프다. 문제는 자라지 않는 것이다”(<현장복음>, 27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누리자).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누린다는 개념이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누린다는 의미로 귀결된다. 류광수 씨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의미는 양태론적인 사고로서 그리스도가 하나님 자신이며 동시에 성자이며 성령이기 때문이다. 류광수 씨는 왕, 선지자, 제사장이라는 예수의 삼중직분을 상당히 강조한다. 정통신학에서도 예수의 삼중직을 말하고 있는데 왜 류광수 씨는 이것을 “특별히 깨달아야만 한다”고 말할까? 그러나 류광수 씨가 말하는 삼중직은 정통교회의 그리스도의 삼중직이 아니라 곧 ‘기름부음’의 삼중직을 뜻하며 지방교회가 말하는 ‘그리스도’라는 개념으로 해석을 하는 것이다. 즉 류광수 씨가 말하는 기름부음은 지방교회와 동일한 의미로서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의 실제’이며, ‘임마누엘의 비밀’이며, 그리스도를 누리는 비밀이 된다.

하나님 자신이 예수의 영으로 들어온 것이 곧 ‘그리스도’이고 ‘기름부음’이며 ‘임마누엘’이며, 그것이 곧 ‘성령내주’와 동일한 것이며 그 개념이 곧 다락방의 ‘영접의 비밀’을 뜻하기 때문이다. 메시야(헬라어: 멧시아스, 히브리어: 마쉬아흐)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헬라어로서는 ‘크리스토스’가 된다. 구약에서는 주로 왕, 선지자, 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자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불려졌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임명된 왕도 있었고, 선지자도 있었고, 제사장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직분을 모두 겸한 사람은 예수님 외에 그 누구도 없었다. 그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크다는 세례요한도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한다(요 1:20).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예언된 ‘그 그리스도’(the Christ)이시며,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약속된 유일한 메시야’라는 것을 명백하게 말해주고 있다.

다락방을 비판해 온 박진규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을 누리는 길>이라는 저서에서, 하나님을 누리는 단계를 두 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첫째 단계는 ‘영을 사용하여 기도하는 것’ 이라고 한다. 둘째 단계는 ‘성육신의 원칙을 적용함’ 이라고 했다(79쪽). ‘하나님을 누리는 길을 경건의 비밀’이라고 말하는 윗트니스 리의 이론과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을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하는 류 씨의 이론 사이에는 유사성이 없을까?”

“윗트니스 리는 ‘왕을 누리려면 왕이 되어야 한다’면서 하나님을 누리는 방법을 두 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임마누엘’이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를 가장 잘 누릴 수 있는 길이 무엇이겠는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 그리스도가 되는 길일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를 누리라고 하시지 않는다”(윗트니스 리, <하나님을 누리는 길>, 81쪽).

5)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이라는 다락방의 양태론적 교리
지방교회는 “부활의 실제를 영으로 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락방이 지방교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방교회는 성령이라고 말하지 않고 ‘살려주는 영’ 혹은 ‘그 영’이라고 말하며, ‘완결된 영’이라고 주장한다. “예수가 죽고 부활하여 그 영이 되었다는 것을 부활”이라고 하는 것도 동일하다. 이러한 양태론적인 개념을 류광수 씨도 부활이라고 여러 번 언급한다. 윗트니스 리의 글을 우선 살펴보자.

“그와 같이 완결된 영으로 살아날 때, 이것이 바로 완결된 영의 부활 안에 사는 것이다. 이 부활은 어떤 능력이나 사물이 아니라 한 분의 인격이다. 이것이 ‘예수님 그분은 부활’이라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더욱이 부활의 실제는 삼일 하나님의 최종완결인 그 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결론 - 삼일하나님, 그리스도, 그 영, 부활은 하나임 - 을 갖는다. 우리가 앞의 이 항목을 따라 살 때에 우리는 부활 안에 있다. 이 부활은 한 인격 - 하나님 - 을 가리키는 것이다”(윗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 사람의 합당한 삶, 62쪽).

류광수 씨의 글에서도 역시 지방교회와 같이 양태론적인 개념의 성령의 내주를 부활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본다. 그가 말하는 <현장복음> 1과에 구원의 확신에 대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복음을 알려면 다음 3가지를 알아야 한다. 복음이란? 성경에는 두 가지로 말한다. - 첫째, 예수는 그리스도다! 둘째, 이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부활하셔서 살아 계신다. 이 말은 지금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이것을 강조하였다. 초대교회서 사람을 살린 확실한 메시지가 이것이다. 주는 그리스도시며, 지금도 살아계셔서 보혜사 성령으로 여러분을 세밀하게 인도하고 계신다. 부활의 주님이 늘 강조되어야 한다. 부활하셨기 때문이다”(<현장복음>, 1과 구원의 확신).

류광수 씨는 또 <복음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계획을 총동원하셨다. 그가 성육신하시고(요 1:14), 피 흘리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지금도 성령으로 간섭하고 계신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원을 잘못 알고 있다”(<복음편지>, 제6과 구원받은 나는 어떻게 변했는가?).

6) 예수의 무죄성에 대한 왜곡된 기독론
예수의 무죄성에 대한 다락방의 주장도 결국 그들의 기독론과 양태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의 무죄성은 예수님의 영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죄가 없다는 것과, 예수를 영접한 거듭난 성도들도 그 속에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동일하게 죄가 없다는 것이다. 류광수 씨는 “구원자 예수님의 특성 4가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구원자는 원죄가 없어야 하고, 둘째 자범죄가 없어야 하고, 셋째 그 영이 하나님이어야 하고, 넷째 육은 사람의 몸을 입어야 한다. 류광수 씨의 글을 보자.

<복음편지> 3과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첫째 “원죄가 없어야 한다. 창 3:15. 여인의 후손, 아담의 후손이 아니어야 됩니다. 아담의 후손은 전부 저주의 영을 다 받았습니다. 여인의 후손, 이 말은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이 말은 원죄가 없다는 말입니다. 아담 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전부 저주의 영을 다 받았습니다. 새 생명 안 받으면 빠져 나올 길이 없지요. 천주교에서는 마리아가 원죄가 없다고 그래요. 마리아가 누구의 후손입니까? 아담 후손 아닙니까? 성경 너무 너무 몰라 그래요. 구원에 대한 기초가 안 되어서 그래요.”
둘째 “자범죄 없어야. 빌라도가 밤새도록 예수의 죄를 찾아도 찾지 못했습니다.”
셋째 “고전 15:45~50 그 영은 하나님이십니다.”
넷째 “육은 사람의 몸을 입어야 됩니다. 이 4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구원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분석해 볼 때, 예수님에게 원죄가 없다는 것은 맞지만, 동정녀가 낳았기 때문에 죄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여자의 후손이므로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는 뜻인가? 예수는 육신으로는 아담의 후손(눅 3:38)이고 다윗의 후손(마 1:1)이다. 즉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는 말이 원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의 인성은 전적으로 마리아에게 취한 것이며,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었지만 성령으로 잉태하셨으므로 무죄하게 태어난 것이다. 류광수 씨는 “예수의 영이 하나님이므로 죄가 없다”는 잘못된 양태론적 기독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요한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든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 그 어머니로부터 났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가 성령의 성별을 입어 아담의 타락 이전 때처럼 순결하고 완전한 출생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실히 상기해 두어야만 하겠다. 즉, 성경이 그리스도의 순결에 관하여 우리에게 주의를 환기시킬 때에는 언제나 그것은 그의 진정한 인성에 관한 말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순결하다고 하는 것은 필요치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기독교강요>, 2권 13장 4항).

칼빈은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났다는 자체로 예수의 무죄성이 입증되는 것이 아니며, 예수의 무죄성은 그 분이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며, 그 분이 곧 성자 하나님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2000년 만에 회복된 유일한 복음이고, 임마누엘의 비밀이라면, 류광수 씨의 복음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에 예수가 죄가 없다는 주장은 류광수 다락방의 논리대로라면 성령을 받는 성도들도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7) 류광수 다락방의 사상에 근거한 비성경적 천사동원권, 사탄결박권
지금까지 문제가 되었던 주장이지만 류광수 씨는 과거에 이것을 수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재 다락방 교재에는 여전히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그것은 그의 사상이 여전히 변함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성경에서 천사가 사람을 도와주는 내용이 자주 언급된다. 또 정통신학에서도 사탄과 천사의 활동과 역사를 논한다. 그러나 신자가 천사를 동원하는 권세나 사단을 결박하는 권세를 가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류광수 씨가 주장하는 천사동원권이나 사단결박권은 앞의 양태론적 기독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가 공청회에서 다시는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그 순간을 빠져나가려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사탄결박권, 천사동원권이라는 용어에 담겨있는 사상은 신자 안에 양태론적인 삼위일체인 ‘하나님 자신’(그리스도)이 직접 명령을 한다는 뜻으로, 지방교회가 말하는 God-man의 사상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하나님의 자녀에게 임하신 성령의 내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성육신은 삼위일체 중에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참 하나님으로써 참 사람이 되신 사건이다. 그러나 그분이 비록 사람이기는 하셨지만 성자 하나님의 인격으로 오셨기 때문에 두 분이 아니라 한 분 그리스도시요 주로써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써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되신 것이다. 성도들에게 임한 성령의 내주는 예수님의 성육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로서 사람이 하나님 되는 God-man 사상이 아니다. 그러나 다락방에서는 지방교회와 같이 이 둘을 같은 의미로 보기 때문에 각종 ‘비밀’이라 칭하는 교리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며, 그것은 결국 ‘천사동원권’, ‘사탄 결박권’ 등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세를 사람도 행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들은 우리가 믿는 복음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복음이다. 류광수 씨가 주장하는 내용을 그의 현장복음 멧세지 <예수의 이름>에서 찾아보자.

“여호와 이름을 부르는 것과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과 차이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속에 들어 올 수 있고, 없고의 차이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는 것을 가리켜 ‘영접’이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을 바로 만난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 이름 속에는 하나님을 바로 만나는 그런 효과를 주셨다. 이때 바로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해를 잘해야 된다.”
“악령을 좇아낼 때,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영아 물러가라!’고 명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더 많이 깨달은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내게 있는 주 예수께서 네게 명령하시니, 나가라!’고 한다. 이게 더 정확한 것이다” (<현장복음>, 예수의 이름).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 하늘권세 땅의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우리의 배경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 속에는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영이 계신다. 바로 그 분의 권위를 의지하고, 예수 이름을 놓고 명령 기도하면 사단은 꼼짝없이 결박당하고 추방당한다”(<현장복음>, 6과 응답받는 기도).

“이 위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사람에게 오셨다. 이 예수 이름을 부르면 바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고, 여러분이 예수 이름을 부를 때, 사탄의 권세는 깨어진다. 어마어마한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라는 이 말이 보통 말이 아니다. 안 되는 것이 없다. 그러니까 하나님 되시는 분이 직접 명하노니! 라는 말이다. 그래서 역사가 막 일어나는 것이다”(<현장복음>, 19과 그리스도의 부활).

“주의 종들, 특별히 기도하는 종들에게는 예수 이름의 어마어마한 권세가 있다. 그런데 그것을 안 쓴다. 안 쓰면 아무 역사도 안 일어난다. 두 가지는 명령해야 된다. 첫째, 악령을 보고는 달래서 안 된다. 명령해야 된다. 둘째, 천사들을 명령해야 된다. 이렇게 하면 응답이 즉각 온다. 효과가 대단하다. 왜? 권세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현장복음>, 4과 예수의 권세).

류광수 씨는 천사를 ‘하나님의 종’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심부름하는 종’으로 보고 성도에게 천사동원권있다고 수많은 곳에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신구약에 나타난 천사 관련 성구(현장복음, 5과)들은 성도가 천사를 동원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고 하나님이 주권으로 보내어 역사한 것이다.

2. 김기동 베뢰아의 이원론적 귀신론과 유사한 다락방의 귀신론

다락방에서는 베뢰아 귀신론과 같이 귀신이 자신의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한사코 자신들이 김기동 베뢰아 귀신론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그들의 기본적인 주장은 베뢰아의 이원론적 귀신론과 동일한 것임이 드러난다.

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한 왜곡
다락방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두 성경구절이 있다. 하나는 창세기 3:15이고 또 하나는 요한일서 3:8이다. 창세기에서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원수가 되게 하고 뱀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요 여자의 후손은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다는 말씀이요, 요한일서에서는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신 것이라는 말씀이다. 류광수 씨는 베뢰아의 사상과 같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마귀를 멸하는 것이고 예수를 영접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서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이것을 전하는 것이 복음 전파라고 한다. 류광수 씨의 글을 <현장복음> 멧세지에서 살펴보자.

“요일 3:8에 예수님께서도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고 했다. 그렇다면 마귀의 일이 무엇인가? 창세기 3장 사건이다. 인간이 하나님 모르도록 해서 죽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멸하러 오셨다. 예수님이 그 일을 또한 우리에게 맡기셨다. 그래서 마귀의 일을 멸하게 하는 것이 복음 전파이다. 롬10:13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 이름을 부르면 사단의 권세는 깨진다”(<현장복음>, 42과 깨어있을 이유).

또 전도에 대한 정의를 “전도는 우상숭배자를 건져내는 것입니다”라고 규정한다(<다락방 전도란 무엇인가?>, 세계복음화를 위한 다락방전도훈련원 발행, 14쪽). 이는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온 죽음에서 건져내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손아귀에서 건져내는 것이 곧 전도의 목적임을 알 수 있다.

김기동 씨의 <신앙문답정선> 제97번을 보자.

“요한일서 3:8과 요한복음 3:16의 관계 : 하나님의 의도는 마귀를 형벌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마귀를 멸하기 위하여 천지를 지으셨고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셨던 것입니다. …인간의 구원에 앞서 마귀의 형벌계획이 하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보낼 계획이 세워진 것이 아니라 독생자를 보내기 위하여 처음부터 인간이 창조되었음을 알아야합니다”(김기동, <신앙문답정선>, 97번 199쪽).

위의 내용들을 보면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인간의 구원보다 앞서 마귀를 멸하는 것에 더 치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 가계저주론과 유사한 다락방의 조상의 죄
류광수 씨는 원죄와 자범죄 외에 별도로 조상의 죄를 분류하여 가르친다. 즉 소위 조상들의 죄가 유전된다고 하는 가계저주론7) 을 가르치고 있다. 류광수 씨는 원죄와 자범죄 외의 또 다른 죄로서 조상의 죄를 거론하고 있다. 류광수 씨가 원죄와 자범죄 외에 별도로 구별하는 ‘조상의 죄’가 무엇인가? 원죄도 아니고, 자범죄도 아닌 조상들이 지은 모든 죄들이 유전된다는 것이 아닌가?

또한 류광수 씨는 “예수는 여자가 낳았으므로 죄가 없다”는 주장을 하였는데, 그것은 ① 영이 하나님이므로 죄가 없다 ② 예수는 여자가 낳았으므로 조상죄가 없다는 베뢰아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복음편지>. 기본멧세지 10쪽, 4과 왜 예수만이 길이 되는가? 5과 나는 왜 확신이 없는가?).

베뢰아 김기동 씨는 아담의 영이 계속 유전된다고 주장하며, 여자의 죄는 유전되지 않는다고 주장을 한다. 그는 예수를 믿으면 원죄와 자범죄와 조상의 죄에서 해방을 받는다고 한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죄에 대한 질병에 대해서 류광수 씨는 <복음편지> 10과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죄로 인한 병은 세 가지 인데 ① 조상의 죄 - 우상숭배는 삼, 사대까지 이르는 병이다(출 20:4, 삼하 12:15). 이름도 밝혀지지 않으며 의술로는 불치병으로 드러나게 된다. ② 원죄 - 창세기 3장 사건이다. 범죄이후로 인간의 소속이다. 그 영이 저주받은 상태에 있으므로 치료가 불가능해 진다. ③ 자범죄로 인한 병(왕하 5:27, 대하 21:12~19, 고전 5:5) 계속 도박을 한다거나, 계속 술을 먹는다거나 그러니 병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중요한 병이 오는 것이다”(<복음편지> 제10과 기도하면 왜 질병이 떠나가는가?).

김기동 씨의 글을 보자. <베뢰아 원강> 659쪽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면 범죄는 하와가 먼저 했는데 왜 하와의 죄가 유전되지 않고 아담의 죄가 유전됩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그 후에 하나의 영만 지으셔서 그 영이 유전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을 통해 계속 한 영이 넝쿨처럼 유전되어 나갑니다. 하와가 먼저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 먹음으로 사단적인 죄를 범했을지라도 이 사단적인 죄가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하와가 주는 실과를 먹음으로 불순종한 아담의 죄가 유전됩니다, 그래서 하와의 죄는 유전되지 않고 하와 한 사람만 사단적인 죄를 범한 것으로 끝납니다”(<베뢰아 원강>, 659쪽).

류광수 씨는 조상의 죄의 결과로 오는 저주 곧 질병은 3, 4사대까지 이르는 병이며 불치병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불치병은 조상의 죄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불치병이 없어야만 하며, 또한 불치병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걸리는 병이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 역시 이원론적 귀신론에 의한 것이요 가계저주론과 같은 맥락에 있는 주장이다.

3) 베뢰아 사상과 동일한 다락방의 사탄배상설8)
예수가 오신 목적에 대해서 요일 3:8의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신 것”이라는 내용에 대해서 류광수 씨와 다락방의 양육교재는 수없이 기록하고 있다. 다락방은 과거 사탄배상설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지금도 그러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것이, 대속을 빚을 진 것이라는 뜻만으로 해석하며, 법대로 죄의 대가를 지불하였다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류광수 씨의 글을 보자.

“대속물이라는 말은 뭔가 갚아주는 것 아닙니까? 사탄에게 우리의 실패의 대가를 전부 다 갚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래 놓고 주님이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다락방 류광수는 왜 이단이라고 하는가?>, 142~143).

“이 확신이 없으면 모든 일이 흔들린다. 그 어떤 일도 이 확신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그것은 돈을 다 지불한 노예가 아직도 그 일터에 있는 것과 같고 빚을 다 갚은 자가 아직도 사기꾼에게 계속 빚 독촉으로 재산을 빼앗기는 것과도 같다”(<현장복음>, 22과, 29과, 1. 구원의 확신).

위의 글을 보면 류광수 씨는 대속을 사기꾼에게 빚을 진 것으로 해석하면서 사탄에게 빚을 졌고 사탄에게 빚을 갚은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대속(속죄)라는 개념은 류광수 씨가 정의하는 것과 같이 “빚쟁이에게 빚을 갚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기 위하여 주님이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드린 것”이다. 대속(代贖)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어떤 보상행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뜻한다. “죄의 값이 사망”이기 때문에 구약에서는 죄를 전가 받은 짐승이 대신 죽은 것이며 신약에서는 예수가 온전히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드린 것이다. 류광수 씨는 예수님의 구속을 ‘법적인 해결’이라는 말로 베뢰아에서 쓰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다락방의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민병완 교수라는 사람은 류광수 씨의 사단배상설의 주장은 “사탄에게 원수를 갚는다”는 뜻이라고 궁색한 변명까지 한다. 그렇다면 아래 글은 무엇인가? <영접의 열두 가지 의미>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영접은 기도응답의 모든 법적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예수 영접입니다.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있음을 깨닫고 능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조건을 다 소유했습니다. 실제로 뭐냐하면 법적인 조건을 다 갖추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법대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것도 법대로 승리하셨습니다. 법대로 모든 죄의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창세기 2:17의 법대로…그렇기 때문에 영접, 이 말을 예사로 생각하시면 안돼요. 영접, 이 말은 내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어 버린 것입니다. 창 3:15을 성취한 것입니다. 법적으로 해결을 해 버렸습니다. 예수 영접하는 자는 기도의 조건을 모두 소유한 것입니다. 나가서 복음 전하는데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건져내는 축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정말로 모든 것을 다 소유했습니다.”

예수가 마귀를 합법적으로 해결하였다는 주장은 베뢰아의 주장이다.

“어떤 사람은 ‘마귀가 도전했을 때 당장 하나님이 멸하시면 될 터인데 왜 그렇게 오랫동안 묵인했느냐? 하지만 하나님은 반역하는 천사를 인정해서 묵인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불법을 합법으로 처리하시려고 한 것입니다”(김기동, <마귀론>(상), 66쪽).

위의 글들은 결국 사단에게 배상을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해 낸다는 사단배상설임이 드러난다.

4) 자신들만이 마지막 시대의 남은 자라는 렘넌트 사상
다락방에서는 ‘렘넌트’(Remnant, 남은 자)9) 라는 단어를 자신들의 교회에 적용시키고 있다. 다락방에서는 이 렘넌트라는 용어가 청년들에게 사용되는 용어로서 ‘다음 세대’를 뜻한다고 말하지만, 성경에서 렘넌트라는 용어가 그런 뜻으로 사용된 적은 없다. 이 렘넌트라는 단어는 ‘남는 자’라는 뜻의 영어 단어로 이 용어는 안식교와 여호와의 증인들이 사용하였고, 이 단어는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배타적인 의미와 종말적인 심판의 의미가 있는 용어로서 다른 자들은 다 심판을 받지만, 소수의 남는 자들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락방은 ‘남은 자’란 이사야 6:13의 그루터기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그루터기라는 뜻 자체가 소수의 남은 부분인 그루터기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위하여 엘리야 시대에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 7천명을 남겨두셨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믿음을 끝까지 지킨 사람들을 말한다. 이 ‘남은 자’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특정교회나 자기 교회를 적용시킨다면, 그것이 아무리 다음 세대를 말한다고 변명해도 위험한 이단적 사상일 수밖에 없다. 마치 요한계시록 7장의 144,000명이 자기 교회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로마서에서는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라함과 같으니라.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두시지 아니하였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롬 9:27~29)라고 기록하고 있다.

렘넌트가 하나님의 남겨두신 믿음의 사람들로서 어느 특정한 집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결론

본 연구보고서에서 인용한 자료는 <복음편지>, <현장복음>, <기초멧세지>, <영접의 열두 가지 의미>와 같은 다락방의 가장 최근의 양육교재이며, 현재(2012년) 다락방교회인 예원교회와 서울 임마누엘교회의 자료실과 다락방 교회에서 직접 다운을 받아서 인용한 것이다. 그 자료들에는 류광수 씨가 직접 설교한 내용이 녹취되어져 있음으로 인하여, 평소에는 감추어졌던 그 사상이 잘 설명되어 있었다. 오히려 지방교회 사상은 더 노골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다락방은 지방교회의 사상을 그대로 모방하였으며, 그것이 산해원교회(이태화 목사)으로부터 배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으나 그 사상은 유사하다. 그러나 지방교회의 중요 교리인 God-man 사상의 근거가 되는 ① 양태론 ② 아폴로네리우스적인 기독론 ③ 인간론과 비교할 때에 거의 일치하고 있다. 특히 지방교회가 사용하는 특수한 용어 ‘그리스도를 누린다’ 혹은 ‘그리스도의 실제’, ‘임마누엘의 비밀’ 등도 같으며, 특히 부활의 의미를 지방교회가 양태론적으로 해석하여 예수가 성령으로 오는 것으로 주장하는데, 다락방에서도 부활을 예수가 성령으로 오는 것으로 동일하게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귀신론이라고 불렸던 베뢰아의 이원론 사상에서 비롯된 주장들은 수정되거나 바뀌기는커녕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배타적인 교회론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한국의 유수한 9개 교단이 이단으로 공식 규정한 다락방에 대해서 본 세계한인이단대책연합회는 다락방의 이단성을 재확인하며 확실하게 이단임을 공표하는 바이다. 따라서 다락방을 이단성이 없다고 옹호하거나 지지하여 주는 단체들과 인사들에 대해서는 이단옹호자로 규정하고 엄중한 경고와 질책이 따라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다락방을 영입한 교단이나 회원교단으로 가입시킨 단체에 대해서도 이단이나 이단옹호단체로 규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다락방 출판 서적
<복음편지>, <현장복음>, <기초멧세지>, <영접의 열두 가지 의미> 등 다락방 양육교재
류광수, <파급단계>
류광수, <성경적인 다락방 전도>
허만혁, <다락방 전도란 무엇인가?>, 세계복음화를 위한 다락방전도훈련원, 1996.
이외에 다락방 서적 다수와 다수의 설교 동영상

2. 각 교단의 다락방 비판 자료
박진규, <다락방 류광수 왜 이단이라 하는가>, 경향문화사, 1997
박용규, <다락방 이단 연구 보고서>, 『신학지남』 282호, 2005.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개혁) 이단대책위원회·신학위원회, “전도총회 류광수 목사에 대한 이단성 심의 보고 및 신학적 문제에 대한 평가”, 2011년 4월 16일
민남기, <류광수 다락방의 전도는 다른 복음이다>, 2012.
이영호, <류광수 다락방의 지방교회 사상>, 2012.
고신총회, “류광수 씨와 다락방 전도학교 보고서”, <교회와신앙>, 1995. 11.
박진규, “류광수 씨의 다락방교리와 김기동 귀신론과의 유관성”, <교회와신앙>. 1995. 8
고려총회 신학부 연구보고서,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다락운동에 나타난 실상”, <교회와신앙>, 1995. 11

3. 지방교회측 자료
윗트니스 리, <세부분의 사람의 생명되시는 삼일하나님>, 복음서원
윗트니스 리,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복음서원
윗트니스 리, <새 예루살렘>, 복음서원
윗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복음서원
윗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복음서원
윗트니스 리, <하나님을 누리는 길>, 복음서원
워치만 니, <영에 속한 사람들>, 생명의말씀사

4. 김기동 베뢰아측 자료
김기동, <베뢰아 원강>, 도서출판 베뢰아, 2005
김기동, <귀신론>(상,중,하), 도서출판 베뢰아
김기동 <마귀론>(상,중,하), 도서출판 베뢰아, 1993.
김기동, <성도가 알아야 할 하나님의 의도>, 도서출판 베뢰아, 2001.
김기동, <성령을 알자>, 도서출판 베뢰아, 1992.
김기동. <신앙문답 정선>, 도서출판 베뢰아, 1999.
천봉재, <한국교회의 새 물결과 김기동 목사>, 새앎출판사, 1995.
김기동, <내가 체험한 그리스도의 신유와 거룩한 이적>, 도서출판 베뢰아, 2002.
김기동, <주기도문>, 도서출판 베뢰아, 1996.
김기동, <영혼을 그늘지게 하는 요소>, 도서출판 베뢰아, 2000.
김기동, <7대 능력>, 도서출판 베뢰아, 1998.

5. <교회와신앙> 및 <현대종교>
“류광수 목사 이단성 검증 공청회”, <교회와신앙>, 1998년 10월호
“다락방이 2천년 만에 복음 회복했다”, <교회와 신앙> 2008년 1월 20일자
“오직 전도 명분 다락방 교단창립 순수한 전도 열정인가? 교단분열인가?”, <현대종교>, 1998년 2월호
“다락방 전도운동의 현장을 찾아가다”, <현대종교>, 1996년 10월호
엄무환, “다락방 전도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현대종교>, 1996년 9월호
조찬구, “류광수씨 다락방전도운동 그 겉과 속은 올바른가?”, <현대종교>, 1995년 12월호


[미주]

1) 출처: 바이블파워(http://www.biblepower.co.kr) 2011.06.28. (개혁총회의 다락방 전도총회 영입 논란) 작성자 박동일
2) 아폴리네리우스(Apollinarious는 라오디게아 감독으로서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의 통일성을 인정하지 않고 인격체의 단일성을 주장하다가 예수님의 신성만 인정하고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예수님의 영혼은 하나님이지만 예수님의 육체는 인간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로고스와 인간의 육신이 단일한 성을 가진 혼합체를 형성한다는 것이며 인간에게 있어 지배하는 요소가 영혼인 만큼 그리스도에게 지배적인 단일성은 하나님의 신성으로서 그리스도의 단성론(monophysitism)을 주장하여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3) 사벨리우는 이집트 펜타 포리스 출생으로 3세기 신학자이며 아리우스와 같이 양태론적 일위설을 주장한 자이다. 그는 프락세아스, 에피고누스, 노예투스, 클레메니스등과 함께 한 하나님이 세 모양으로 현현한다는 양태론적 삼위일체를 주장한 것이다.
4) 지방교회에서 주장하는 하나님=에수=성령과 같은 양태론과 사람이 하나님(God-Man)이 될 수 있다는 신화사상은 지방교회의 중요한 사상이다.
5) 정윤석, <교회와 신앙> 2008년 1월 20일자, “다락방이 2천년 만에 복음 회복했다/류광수 목사 이단시비 부른 다락방 특수화 주장 여전”
6) Ibid. 류광수 씨의 말
7) 가계저주론은 멜릴린 히키의<가계의 저주를 끊어라>와 한국의 이윤호선교사의 <가계저주론> 의하여 확산되었는데 이는 과거 조상이 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저주가 임했는데 그것이 가계를 타고 내려온다는 사상으로 예수를 믿는 자에게도 저주가 내려온다는 주장이다. 한국교계에서 이단성 있는 사상으로 규정되었다.
8) 사단배상설(satan ransom theory)은 예수님의 피값을 마귀에게 지불하고 마귀에게서 우리를 사오는 것이라는 주장으로서 비성경적 이단설이다. 이것은 초대교회 이단인 마니교(Manichaeism)으로부터 시작하여 오리겐이 주장하였다.
9) 남은 자(the remnant) 사상은 이사야를 비롯해서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하는 가운데 선지자들에 의해서 외쳐진 하나님이 구원을 위해 남겨둔 사람들이 있다는 사상으로서 로마서 9:27과 11:5에 바울 사도가 해석을 하고 있다. “은혜로 택하심을 받아 남은 자”“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라” 는 사상은 하나님이 범죄한 백성을 다 멸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남기신 자를 말한다. 왕상 19:18의 남겨진 7천명을 남겨두신 사실에서 유래한다.

출처:세이연

 

이재록1.jpg

 

자료1: 예장통합의 공식자료

 

1. 이재록(만민중앙교회)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에서 지난 해(99년) 이재록 씨를 이단으로 전격 규정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먼저 한기총은 한국교회 전체를 대표한다는 위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재록 씨는 한국교회 전체가 이단으로 규정한 셈이다. 그 다음은 이재록측의 로비가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이씨의 이단성이 그만큼 농도가 짙었음을 반증해준다. 이씨의 이단성은 구원론, 신론, 인간론, 교회론 등 신학 전반에 걸쳐 드러났다. 일부에서는 만민중앙교회가 붕괴될 것으로 내다보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이씨측에서는 이를 전면 부인한다. 이렇게 되나, 저렇게 되나 이재록 씨에 의한 최대의 피해자는 이씨의 핵심 신도들일 것이다.

 

이재록 씨 문제의 개요

이재록 씨는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851번지 소재 만민중앙교회 담임목사이며, 예수교대한연합성결교회 총회장과 연합성결신학교 이사장이다. 그는 '만민교회' 내지는 '만민성결교회'란 이름으로 많은 지교회들(국내 : 25개 처, 해외 : 11개 처)을 세워 국내는 물론 국외까지 교세를 확장시켜 가고 있다. 만민중앙교회 일부 신도들은 1999년 5월 12일 MBC-TV의 'PD수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재록 씨에 대한 내용을 방송하자 방송국 주조정실을 점거하여 방송 중단시키는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이씨는 이미 정통기독교에서 수용할 수 없는 이단적 설교를 함으로써 1990년 5월 그가 속했던 예수교대한성결교회(예성) 총회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된 바 있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로부터도 1999년 4월 30일에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신론의 문제점

이재록 씨의 신관에는 심각한 이단성이 존재한다. 그는 우선 '하나님의 편재성'에 제한을 가하는 말을 한다. 그는 1998년 7월 3일 설교에서 '하나님이 보좌에서 자기 교회 강단에 강림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아버지, 강림하셔 제단에 임하소서 하면 아버지가 그대로 오시는 것 보실 수 있을 거예요. … 아버지가 지금 빨리 오고 싶어 견디지를 못하시니까 제가 빨리 끝내야 되겠어요. 그래야 아버지 빨리 오시죠."라고 말하여 자신이 하나님을 부르면 오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또한 "새예루살렘의 열쇠를 놓고 가셨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1998. 7. 5. 저녁예배).

하나님은 영이시기에(요 4:24) 물체와 같이 어떤 특정 장소에 제한적으로 존재하시고, 또 제한적인 장소에 머무르시는 분이 아니시다. 또한 그는 하나님을 자기가 마음대로 부르면 오시고, 그렇지 않으면 안 오시는 분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을 인간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로 격하하는 것으로 기독교 신앙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신성모독이라 할 수 있다.

 

기독론(구원론)의 문제점

이재록 씨는 자신이 예수님과 하나되었다고 하였다. "해와 달과 별에 나타나는데, …… 달 속에 전등 속에 저를 놓아두시고 주님이 함께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와 나는 하나'라고 말씀하시고 전세계에 선포하고 있지 않느냐 이 말예요. …"(1998. 7. 5. 주일저녁)라고 하여 자신을 예수님과 동일시하고 있다(1998. 10. 1. 금요철야집회). 또한 그는 자신은 "원죄도 자범죄도 없는 깨끗한 피를 가졌기에 죽음이 피해간다"고 주장하였다(1998. 7. 5. 주일저녁).

이재록 씨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기독교 구원론,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죄 씻음을 받고 그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보편적 진리에 반하여, 마치 자신을 통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자신을 신격화하고 있다.

"(자신이) 아브라함 등 모든 선지자들과 주님의 제자들을 부르면, 사장이 부르면 오는 전무처럼 나타나는데, …… 그리고 선지자들과 제자들이 자신에게 인사를 한다."(1998. 7. 5. 저녁예배, 1998. 7. 18. 금요철야집회)

(자신은) "영이 하나님 보좌 좌편에 앉아 있으며"(1998. 7. 8. 주일저녁), "죽고, 사는 권세가 있으며"(1998. 7. 5. 주일저녁), "물위에 걷는 것 외에 66권의 모든 말씀을 이루었다"(1998. 6. 28. 주일 저녁), "하나님이 하나가 되었기에 해와 달과 별에 나타나는데 이는 (자신이) 특허를 냈다"(1998. 6. 28. 주일예배, 1998. 10. 16 금요철야).

이상의 예에서 보는 것 같이 이씨는 마치 자기가 구세주요, 자기를 통해서 구원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예수님만이 만민의 구세주이심을 부인하는 결과가 되어 기독론과 구원론에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간)론의 문제점

이재록 씨의 "부모로부터 받은 모든 피는 다 쏟아 버렸고, 주님과 같은 죄성이 없는 새 피를 받아 자기는 원죄도 자범죄도 없다"(1998. 7. 5. 주일저녁예배)는,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의 결정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롬 5:12)고 하여,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은 원죄와 자범죄가 있음은 성경에서(시 14:, 53:), 교회 역사에서 누누이 강조, 지적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만일 인간이 죄가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결과'(요일 1:8, 10)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자신을 원죄도 자범죄도 없다고 하는 것은 자신을 신격화시키는 결과가 되어 기독교 신학의 인론에 중대한 오류가 된다.

 

성령론의 문제점

이재록 씨는 성령론에 있어서 성령의 치유의 능력을 자신이 치유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어떤 이들의 [자신의] 간증 책만 읽어도 그대로 막 치료받는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진만 안고 자도 치료받고, 꿈속에 나타나서 자기가 안수해도 치료받는다'고 주장한다. 또 '자신이 기도한 손수건만 만져도 치료된다'는 등의 말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치병을 하는 것이 아니고, 바울과 요한이 그랬던 것 같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는 것임(행 3:6)을 밝히 보여주고 있다. 치유의 은사는 성령의 은사이지 자신의 책을 읽거나, 사진을 안고 자거나, 손수건을 만져서, 또는 자기가 꿈에 안수한다고 하는 것은 성경에나, 기독교 역사 어느 곳에도 없었던 일로 성령의 신유 사역을 근본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교회론의 문제점

이재록 씨는 1998년 7월 3일에 자신의 "만민중앙교회에 하나님의 보좌가 내려왔고"(1998. 7. 5. 주일저녁예배), "2천년 전의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이 자기 교회에 나타났다"(1998. 7. 10. 금요철야집회)고 주장한다. "만민중앙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하늘에서도 천군 천사들이 똑같이 예배드린다"(1998. 7. 17. 금요철야집회)고 주장하였다.

이는 만민중앙교회를 특별히 하나님이 성별하고 사랑하신다는 의미로서 보편적 교회론에 위배되는 주장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one, holy, catholic, apostolic)이다(각종 신조-사도신조, 니케아, 칼케돈, 웨스트민스터 등). 따라서 이 땅에 편재한 하나님의 진리를 보유한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고, 하나님은 특별한 교회에 강림하시거나 어느 특정 교회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종말론과 내세론의 문제점

이재록 씨는 종말론에서도 중요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재림을 알려 주셨다. …… 휴거 될 것을 알려 주셨다"([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 p.198)고 기록했다.

이는 언제 예수님이 재림하실 지는 인자도 천사도 알지 못한다(마 24:36)고 하였는데, 어떻게 자기에게만 알려 주셨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는 또 말하기를 마지막 심판 때에 자기가 심판장 되시는 하나님 좌편에 앉는다고 말한다. 하나님 우편에는 예수님이 앉으시고 자기는 좌편에 앉아 "심판 날에 주님 옆에서 성도들을 위해 변호해 줄 것"이라고 선포하면서,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새예루살렘에 들어가 살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1998. 7. 17. 금요철야예배).

그러나 신약성경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여 인간은 누구나가 심판에 이른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심판대에 앉을 수 없고, 심판대에 서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씨는 자기가 주님의 좌편에 앉아 성도들을 위해 성도들을 위해 변호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를 신격화 내지는 예수님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종말에 천하의 모든 인간이 심판대에 설 것이라는 기독교의 종말론에 크게 위배되는 일인 것이다(사도신조). 성경의 어느 곳에도 교회 역사의 어느 곳에도 이런 허무맹랑한 기사나 근거는 없다.

또한 그는 내세관에서 5단계 천국관을 이야기하면서 믿음을 분량에 따라 상급과 거하는 처소가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우리의 모습은 예수님처럼 누구나가 33세의 모습으로 변화하며 얼굴은 백옥같이 희고 빛나며 백인의 모습이다. 키도 남자는 약 180cm, 여자는 한 뼘 정도 작다. 남자의 머리는 목 바로 위까지의 길이로 똑 같지만, 여자는 상급에 따라 [머리] 길이가 다르며 상급이 클수록 긴 머리이며, 허리까지 내려오는 사람도 있다"([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 pp.228-229)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가르침은 전혀 성경에 없는 자신의 독자적 해석으로 기독교 교리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독단적 주장이다.

 

지나친 신비주의과 신유 은사의 문제점

이재록 씨는 그의 책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하면서 대언자를 주시라고 기도했더니 1982년 5월 하나님은 대언을 통하여 태양이 작렬하는 때에 개척되리라 하였고, 그대로 되어 7월 25일 개척 되었고 하나님은 여종(한정애를 지칭)을 통하여 대언해 주셨으며, 부흥집회 말씀도 대언을 통해 영혼에게 주님이 뜻을 알려주시고 갈 길을 밝히 보여 주셨다.'고 주장하는 등, 지나치게 직통 계시를 강조하여 마치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언제나, 무슨 일이나 계시를 받는 것 같이 말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병자들을 치유 치유한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기독교 신앙을 무속적 신앙으로 오해하게 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에 신비주의 요소와 신유의 은사는 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오늘에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절제가 필요하다(갈 5:23). 이재록 씨의 지나친 신비주의 경향이나, 치병 강조는 기독교의 근본진리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연구 결론

이상과 같이 이재록 씨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기독교 신학, 기독교 역사에서 살펴볼 때 이단성을 지닌 사람으로 단정치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재록 씨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교인들이 이 유혹에 빠지지 않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예장 통합)

출처: 세이연



 

 

콜로라도 스프링스(01)에서 America The Beautiful 공원에 세워진 오벨리스크 사이로 저 멀리 우뚝 솟아있던 산 "Pikes Peak"은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대표하고, 로키산맥 중 다섯 번째로 높은[14,115 feet (4302 m)] 영험한^^ 산입니다. 이 영험한 산의 이름은 Zebulon Montgomery Pike Jr. (January 5, 1779 – April 27, 1813)라는 군인이자 탐험가의 이름을 따 지었습니다. [그는 최초 이 산을 등정한 사람이지만 1806년 11월 24일 극심한 눈보라로 인해 정상 등정에 실패하고 맙니다. 첫 정상 등정자는 의사며, 식물학자며, 역사학자였던 Dr. Edwin James였습니다. 후에 시장(Mayor)인 Stephen H. Long이 1820년 7월 14일에 정상 등정에 성공해  Dr. Edwin James를 기념해 James Peak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곧 Pikes Peak으로 환원되었고 1835년부터 군사지도에는 Pikes Peak이 공식 지명이 되었습니다.]


 


이후 1858년 이 Pikes Peak 일대에 금맥이 발견되면서 당시 약 10여 만명의 사람들이 이곳 일대로 몰려들게 되었고, 지금의 콜로라도 스프링스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Cripple Creek도 당시 같은 이유로 형성된 중요한 인근 도시임]

당시 이곳으로 금을 찾아 나섰던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슬로건이 유행했었다고 합니다. "Pike's Peak or Bust!(파잌스 픽으로! 그렇지 않으면 파산할 것이요!)"

당시 금을 찾아 갑부가 되기를 원했던 사람들은 이러한 기대에 부풀어 지금의 콜로라도 스프링스 일대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1871년 이 일대는 William Jackson Palmer라는 지도자에 의해 공식적으로 콜로라도 스프링스라는 도시로 탄생되게 됩니다.

1915년에는 [제가 콜로라도 스프링스 (02)와 (02) 추가]에서 말씀드렸던 금광 개발로 갑부가 된 Spencer Penrose와 그의 동료들이 Pikes Peak의 정상까지 자동차 도로를 구상하고 그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됩니다. 사실 이 고속도로는 금을 찾아나섰던 사람들이 이미 통행하며 1889년경에 마차도로로 형성된 도로를 정리하고 포장을 덧 씌움으로 완성된 도로인데요, 지금의 24번 지방도로의 원형이 바로 그것입니다. 당시 이 고속도로 건설의 비용으로 $500,000이 소요되었다고 하니 과히 엄청난 투자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붉은 땅 '콜로라도' + 광천수[Manitou Springs 지역을 비롯하여]가 지금도 솟아나오는 '스프링스' = Colorado Springs. 그곳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아마도 그 붉은 땅과 이 영험한 산에서 마치 광천수가 샘터져 솟아오르듯 금맥이 쏟아져 나와 자신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기를 갈망하며 속속들이 모여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던 조금은 이상한 빛깔을 띤 이 땅이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다름아닌 Gold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Pikes Peak 주위로 몰려든 이유는 이 영험한 산에서 얻게 될 것이라고 믿었던... 자신들의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해 줄 '금송아지'^^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열망(Hope and Spirit)을 가진 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형성된 곳이 바로 '콜로라도 스프링스'였던 것입니다.

워싱턴으로 돌아와 이 Pikes Peak을 살피게 되면서 저는 믿음의 눈으로 다시 산을 오르며 시내산의 모세와 그 아래서 모세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 그분과 대면하며 그들의 참된 생명과 삶을 위한 율례를 받아 내려왔던 모세... 하지만 그들의 백성들은 그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하게 같은 '금송아지'의 Spirit 아래 모여들어 만들어지게 된 이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다시 한번 믿음의 눈으로 내려다 보며... 비록 제가 모세는 아니지만... Pikes Peak정상에 다시 서서 두 손을 높이 들어 콜로라도 스프링스와 제가 살고 있는 워싱턴 D.C.를 향하여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아버지! 이 땅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워싱턴 D.C.와 동부로 부터 시작될 주의 부흥의 화살이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통과하여 평양과 예루살렘으로 날아가게 하옵소서! Pikes Peak의 황금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던 이들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콜로라도 스프링스가... 그들의 금송아지를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참된 하나님으로 깨달아 알고 그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Pikes Peak으로 올라가며 하나님의 율례를 묵상하게 되며, 깨닫게 되며, 배우게 되며 그 정상에서 하나님을 찬미하여 예배하여 이 땅 미국의 부흥과 전 세계의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는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사2:2-5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그가 많은 민족 중에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미4:1-5

첫번째 사진은 America The Beautiful Park에서 찍은 Pikes Peak입니다.
두번째 사진은 Pikes Peak에서 찍은 콜로라도 스프링스 전경입니다. 멀리 아래 콜로라도 스프링스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교회 25%가 이단피해 입어...신천지가 가장 위협적인 이단
합동총회, 6백여개 교회 이단 피해 현황 조사

2014/02/13 (목) 12:35 ㆍ추천: 0      

예장합동총회(총회장 안명환 목사)가 13일 서울 대치동 총회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단 피해 실태 조사를 발표했다. 교회 4개 가운데 1개 교회가 이단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돼 이단으로 인한 피해가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최대 개신교 교단인 예장합동총회가 2013년 3월부터 11월까지 전국교회를 대상으로 이단 피해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 교회 632개 교회 가운데 25.9%가 피해를 봤다고 답했다.

교회 네 곳 중 한 개 꼴로 이단 피해를 본 것이다.

목회자보다는 주로 교인들이 이단에 미혹됐다고 답한 교회가 80.8%를 차지했고, 주된 이단 피해 내용은 가출이 22.7%, 가정 파탄 15.4%, 이혼 7.2% 순이었다.

가장 큰 피해를 준 이단은 신천지가 34.5%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구원파로 5.4%, 안상홍증인회 일명 하나님의교회가 3.6%, 여호와의 증인이 3.1%로 그 뒤를 이었다.

가장 위협적으로 느끼는 이단이 뭐냐는 질문에는 역시 신천지가 58.4%로 가장 크게 나타났고, 안상홍증인회는 16.2%, 여호와의증인 10.8%, 통일교 3.6% 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단에 대한 대응 수준은 15.1%가 매우 미미한 상황이라고 답했고, 84.2% 즉 대부분의 교회는 체계적인 대응이 전무한 상태였다.

더구나 총회가 실시하고 있는 이단대책 활동에 대한 참여도 또한 28.9%에 그쳐 이단교육과 대처방안이 절실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단 피해는 지역적으로 경기도가 가장 심했고, 전남, 경북, 서울 순이었다.

예장합동총회 이단피해대책연구조사위원회(위원장 박호근 목사)는 13일 서울 대치동 총회회관 5층 예배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앞으로 성경교육과 교리교육을 강화해 이단에 대처하겠다”면서 “목회자보다는 교인들이 이단에 미혹되는만큼 교인 개인들을 대상으로 한 총회와 노회 차원의 이단 교육 세미나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호근 목사는 “목회자들이 이단교리에 아주 부족했다. 교역자들이 이단피해에 대해 교인들에게 상담해 줄 능력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교인들 역시 개인 신앙과 구원의 확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이상으로 부족해 앞으로 대책을 세워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단피해대책조사위원회는 특히 “신천지와 관련해서는 요한계시록 주석을 오는 3월 말에 책자로 발간해 전국교회 배포할 계획”이라면서 “앞으로 목사장로 기도회를 비롯한 크고 작은 교단 행사와 총신대학교 교과목 등에 이단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도록 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번 현황조사는 총회교육진흥원이 지난 해 3월 초부터 11월까지 전국 16개 권역의 합동측 소속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통해 조사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플러스 마이너스 3.7% 포인트다.

CBS노컷뉴스 고석표 기자
ⓒ CBS 크리스천노컷뉴스

출처: USA아멘넷

조엘 오스틴, "몰몬교는 진정한 기독교"라고 주장


롬니 후보 관련 질문에 "신학 문제 개의치 않아"

 

 2008년 01월 15일, 박민균  min@kidok.com


    

 

베스트셀러 <긍정의 힘> 저자로 한국 교회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조엘 오스틴 목사(레이크우드교회·사진)가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몰몬교도 진정한 기독교라고 발언해 논란이 되고 있다.


오스틴 목사는 지난 2007년 12월 23일 <폭스뉴스 선데이>(FOX News Sunday)에 출연해 몰몬교도인 미트 롬니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물론 몰몬교도 진정한 기독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진행자 크리스 월리스(Chris Wallace)가 미국 대선과 관련해 종교와 정치에 대해 질문하던 중, "미트 롬니 의원은(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리고 이번 대선을 떠나 몰몬교가 진정한 기독교라고 볼 수 있는가?"란 질문에서 나왔다.


오스틴 목사는 "미트 롬니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라고 말했고, 나도 그렇다. 나는 자질구레한 것까지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몰몬교도 진정한 기독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트 롬니 의원은 품성도 좋고 청렴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진행자 월리스는 몰몬 교주 조셉 스미스나 몰몬교의 이단성을 대표하는 황금판(몰몬경), 하나님과 사람은 같은 형상이라는 등의 신학적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별로 개의치 않으며 신학적 문제는 하나님이 판단하실 것이라고 답했다.


오스틴 목사는 "(신학적 문제는) 깊이 공부한 적이 없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 심판은 하나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미트 롬니 의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한 것을 들었을 때 공감대를 느꼈다"고 말했다. 



* 출처 : 기독신문

가져온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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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모든 질병이 귀신에서 온다는 말의 오류
 김씨는 귀신의 사역을 다섯 가지로 지적했다(마귀론 하, pp.170-174). 귀신은 모든 병의 원인이요, 모든 사고의 원인이요, 모든 중독의 원인이요, 모든 범죄의 원인이요, 모든 자살의 원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모든 병의 원인이라고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질병은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운동에 의해서만 고침을 받는다고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한마디로 김씨는 모든 질병의 원인을 귀신이라고 단정하는데 더욱이 예외도 없는 진리로 본다. 한의학 6,000년, 양의학 3,000년에 병의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으나 모든 병의 원인은 귀신에게서 온다고 주장한다. 즉 어떤 사람이 벙어리 되고 귀 먹는 것은(막 9:25) 그 사람이 벙어리 되고 귀 먹는 것이 아니라 벙어리 되고 귀 먹은 귀신이 속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자체가 병든 것이 아니라 귀신 자체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모든 질병이 귀신에게서 온다는 주장을 할 뿐 아니라 의학이나 약으로는 어떤 질병도 고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연스런 논리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병이 과로로 생겼다고 볼 때 자연히 과로를 피하면 병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귀신에게서 온다고 볼 때 오직 귀신을 쫓아내야만 병이 물러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의학이나 약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은 귀신이 약에 의해 쫓겨날 수 있다는 말이 되어 버리니 그렇게 주장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약은 병을 고치지 못한다. 병을 첨가할 뿐이다. 다시 말해서 다른 저항력있는 병균을 투입함으로써 병의 단위를 높여 줄 뿐이다. 제약회사는 인류의 보건과 생명을 위하여 고심하면서 새로운 발견이 있을 때마다 크게 공헌한다. 그리고 학계는 물론이려니와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푸짐하게 받는다.

 그러나 얼마가서는 그 공헌한 바가 무색케 되고 투약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하고 자기들이 양식시킨 병균으로부터 도전을 받아야 한다. 주기적으로 되풀이 되어야 하는 이러한 방식이 제약회사를 성장시켜 갈 수 있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제약회사들은 늘어가고 비대해 가는 동안 사람들의 신체는 마치 각 제약회사들의 경쟁하는 실험장같이 어처구니 없이 낡아져 가고 있는 것이다. 병이 사라져 간 것이 아니다. 병균의 단위는 투약 때마다 올라간다. 마치 약은 사람 몸에 먼저 들어가 있는 선배균을 죽이고 대신 자신이 군림하는 것이다. 제약회사의 난립은 인류에겐 희소식 같은 예방공해라고 보아 과언이 아니다"(풀빛목회 86, 1·2. p.57).

 오히려 약은 귀신으로 낮은 단위의 병균을 포기하고 대신 높은 단위의 새로운 병균을 확보하게 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약의 투약이나 의술의 사용을 전혀 부정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귀신이 만든 질병을 치료하는데 약이나 의술을 사용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 점에 대해 직접 들어보자.

 "그러나 투입한 먼저 병균을 이긴 저항력있는 균이 후에 때에 맞추어 발병하게 되면 전보다 더 큰 병고를 치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능력은 병의 원인이 되어 병균을 생산 파송하는 귀신을 제거함으로써 깨끗하게 한다. 어떤 병은 대수술을 치른 후에도 재발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도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귀신이 그 몸에 잠재되어 있는 한은 병은 계속 재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방법이 있다. 귀신을 추방한 후에 수술하는 방법, 수술즉시 추방하는 방법이다. 귀신을 추방한 후에 잠재한 병균을 멸하기 위한 투약 방법과 투약 직후 귀신을 추방하는 방법은 무리는 아니다. 귀신이 사람의 몸에서 떠난 다음에는 균만으로써는 인체 내에서 스스로 견디기가 힘들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병균은 모두 사멸되고 만다"(Ibid., p.57).

 김씨는 죄와 병은 불가분리로 생각한다.
 "죄는 보이지 않는 병이요, 병은 보이는 죄악입니다. 이것을 철저한 신앙관으로 삼아야 합니다. 몸이 상할 때 병을 짊어지셨고 죽으실 때 영혼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죄와 병은 구분시킬 수가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다 해도 병이 있으니 죄가 있다는 말이요, 보이는 병은 내게 죄악이 있다는 말입니다"(T.P.46-1).

 모든 질병은 귀신에게서 왔다는 말과 그러기에 의약은 질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김씨의 이론은 그의 귀신론의 자연스런 결론일 수밖에 없지만 이 이론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일반인에게 이해가 안될 뿐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이론으로 보이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일단 하나의 전제를 해 놓고 반증을 하기로 하자. 틀림없이 질병의 일부는 귀신에 의한 것임을 성경이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모든 질병이 귀신 때문이라는 이론가 더욱이 의약은 질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이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이다.

 비판해 보자.
 첫째, 김씨의 행동에 모순이 있다. 모든 질병은 귀신에 의한 것이니 자연히 축사로만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이론은 논리적인 필연적 결과이다. 그런데 1984년 7월에 서울 기독병원(전 베데스다 병원)을 김목사 동생 김호동 목사를 인수했다가 10억이나 되는 손해만 보고 84년 11월에 손을 떼게 되었는데(현대종교 86, 3, pp.78-79) 그 사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필자는 교리적인 타당성을 묻는 것이지 윤리적인 약점을 묻는 것은 아니다. 약은 병을 더 심하게 할 뿐인데 무엇 때문에 병원을 인수했었는지 이해가 안된다. 혹시 김목사 마음 속에도 모든 질병이 귀신에게서 온다는 표면적 주장과 내면적 생각은 다른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둘째, 모든 질병이 귀신 때문이라면 귀신은 우리의 구원문제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된다. 김씨의 말에 의하면 신자도 귀신에 들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1985년 11월 18, 19일에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관에서 한 강연에 의하면 성락교인도 중에 병원에 입원한 작 하나도 없다고 자랑하는 것을 보았다. 과연 성락교회 교인 중 병원에서 치료받은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것인가?

 신자도 병이 들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신자가 귀신에 들려 질병에 사로 잡혀 있으면 구원을 받는냐 받지 못하느냐는 질문이 생기게 된다. 여기에 대해 직접 언급한 부분은 본 일이 없으나 그의 논리적 결과로는 구원은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도 바울마저도 지옥에 가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2:7에서 육체의 가시 즉 사탄의 사자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데 평생 그 가시(육체의 질병 즉 사탄의 사자)를 가지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씨도 아마 질병에 걸릴 것이다. 김씨를 모함하는 자의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간이 나쁘다는 소문이 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그의 말처럼 죄는 보이지 않는 병이요, 병은 보이는 죄악이라면 모든 죄인은 병이 들 것이요 김씨도 죄인임에 틀림없으니 김씨도 병에 들 수밖에 없다고 고백해야 정직할 것이다.

 디모데전서 5:23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는 말에 대하여 김씨는 바울이 모든 것을 안다고 결론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풀빛목회 1986, 1·2. p.56). 즉 바울의 지식을 불완전한 것으로 해석했다. 바울이 적어도 귀신에 의한 질병의 요인을 모르고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하였다는 말이 기독교 정통신학에서 타당한 말일 수 있는가?

 이미 앞서 계시론에서 밝혔지만 바울서신은  가감할 수 있는 성서라고 한 점을 볼 때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주장이다. 이 디모데전서 5:23의 해석과 같이 바울을 격하시켜 바울은 병들 수 있어도 김씨는 병들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않는다면 김씨도 병들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그러면서도 수술(의학)을 질병치료의 하나의 방법론으로 인정하는 점이 더욱 모순된다. 김목사의 말에 의하면 일단 귀신이 몸 속에서 병균을 부리는 것처럼 되어있다. 병균과 귀신은 다르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귀신없이 병균만으로서는 인체 내에서 스스로 견디기 힘들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병균은 모두 사멸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세운 방법론이란 이런 것이다.

 "귀신을 추방한 후에 수술하는 방법, 수술 즉시 추방하는 방법이다. 귀신을 추방한 후에 잠재한 병균을 멸하기 위한 투약방법과 투약 직후 귀신을 추방하는 방법은 무리가 아니다."
 이 말은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말을 하게 된 저의가 베데스다 병원 인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한 통로를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후에 다시 병원을 인수한다거나 병원을 건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그의 교리적 결론은 역시 수술이나 투약만으로는 질병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수술 후에 귀신을 추방하는 방법이나 귀신을 추방한 후 수술을 하는 방법이란 모순 중에 모순이다. 귀신을 쫓는 축사현상 앞에 수술이나 투약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귀신만 사라지면 병균 혼자서 인체에 있을 수 없고 시간만 지나면 병균이 사라진다고 했지 않은가? 그것도 수술 가능성이나 투약의 가능성이 있는 질병이 따로 있다고 억지로 끼워 맞추면 김씨의 이론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의 경우는 아무 소용도 없는 이론이 아닌가?

 왜 이같은 비논리적이고 필자가 보기에 부정직한 이론을 전개하고 있는가?
 이 점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면 들수록 더욱 그러하다. 의약으로 고칠 수 있는 확실한 병의 경우 의약으로만 치료하려는 불신자와 신자의 차이를 설명할 길이 없고, 불치병의 경우 축사와 의약의 균형 있는 치료와 그 타당성을 설명할 길이 없게 된다.

 넷째, 모든 질병이 귀신으로부터 기인된다고 보는 것은 모든 역사를 귀신이 역사로 볼 수밖에 없게 된다. 인간에게는 무지도 있을 수 있고 실수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질병 이전의 그 실수나 무식마저도 귀신이 주장한다는 말이 되어 버린다.

 김씨는 성도가 믿음을 지속시키는 것만이 귀신을 이길 수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믿음 안에 있는 성도도 생활 속의 실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예컨데 수렁에 빠질 수도 있고 넘어져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 이상으로 귀신이 섭리를 인정해야 된다. 그렇게 될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마저도 귀신에 대한 공포 속에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귀신의 주권이 서로 대등한 것처럼 인식되지 않는가?
 다섯째, 귀신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 모호하다. 질병의 원인도 불행의 원인도 귀신이다. 축사 시에도 귀신과 대화하는 것으로서 환자의 의지는 배제하고 있다. 인간의 책임이 무엇인가?

Ⅳ. 미혹의 영에 대한 오류
 서론에서 간단히 밝혔지만 먼저 미혹의 영에 대해 분명히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다. 마귀론 중권은 그 부제가 미혹의 영이듯이 미혹의 영에 대해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그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 번호를 붙여 간결하게 설명해 보겠다.

 ①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수호하는 천사를 파송했다(마귀론 상, p.137).
 ② 이 천사가 가변되는 것을 미혹의 영이라 한다(Ibid., p.138).-가변된다는 말은 선한 천사가 변하여 악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③ 그런데 귀신이 우리 몸에 들어올 때 단독으로는 들어올 수 없고 반드시 미혹의 영의 도움으로만 들어온다(마귀론 하, p.54 이하)
 ④ 그래서 성경에 유혹이란 말은 모두 미혹의 영이란 뜻이다(마귀론 상, p.137, 중 p.64).

 ⑤ 이 가변된 천사, 미혹의 영은 한번 가변되면 절대로 다시 환원될 수 없으며(마귀론 하, p.61),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고 우리 주변에 따라 다린다(마귀론 상, p.142).
 ⑥ 이 미혹의 영이 인간의 인격을 지배한다(마귀론 중, p.70).
 ⑦ 그런데 능력있게 살려면 가변된 천사의 수보다(미혹의 영의 수보다) 천사의 수가 많아야 하며(마귀론 상, p.141), 천사가 가변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마귀론 중, p.74).
 ⑧ 천사가 가변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요, 좁게 세 가지가 된다. 첫째는 천사가 자기 우두머리를 따라 같이 가변되는 경우요, 둘째는 하나님에 의해 가변되는 경우이다(마귀론 상, p.137).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변시키는 경우는 둘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하나님께 과잉충성 할 때와(마귀론 하, p.61)둘째, 성도가 불의할 때 성도의 불의를 따라서 가변된다(마귀론 상, p.137).
 ⑨ 그가 가변된 천사를 위해 사용되는 성구들은 다음과 같다: 삼상 16:14, 19:23, 왕상 22:19, 사 66:3, 4, 겔 14:9, 살후 2:11, 12, 롬 1:28(마귀론 중, pp.62-67). 그런데 마귀론 상권(p. 137)에서는 위 성구 중 3개만 들었다 : 왕상 22:19-23, 사 66:4, 5, 겔 14:9, 10.

 비판해 보자.
 제일 먼저 인간에게 주어졌다는 천사문제를 살펴보자. 그가 인간을 섬기라고 보낸 천사가 신자에게만 주어졌는지 불신자에게도 주어졌는지 분명하지가 않다. 그가 "인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사람들에게 천사가 배치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할 때는(마귀론 중, p.59) 불신자도 포함되는 것 같은데, 곧 천사를 가리켜 성도를 섬기라고 보냄을 받은 자들이라고 한 것을 볼 때(Ibid., p.59)는 불신자는 제외되어 있다.

 더욱이 마귀론 상권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은 천사가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p.130). 여기에서 모순이 생긴다. 우선 태어날 때에 천사가 배치되었다는 말은 분명 잘못된 말이다. "태어 날때"를 "예수를 믿을 때"로 바꾸든지 "예정된 사람들에게는"이란 말을 첨가하든지 해야 할 것이다.

 분명 김씨는 불신자는 천사가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더 큰 모순이 생긴다. 불신자의 질병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질병은 귀신이 일으키고, 귀신은 인격이 아닌 항구적 존재인 사후의 영일 뿐이니 반드시 미혹의 영의 도움으로만 우리 몸에 들어온다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인격이 아닌 항구적 존재인 사후의 영이 불신자의 몸에 들어갈 수 있는가? 불신자에게는 천사가 없으니 가변된 천사, 즉 미혹의 영도 없을 것이요, 미혹이 영도 없으니 불신자에게는 귀신도 못들어 올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는 분명히 자기모순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 점은 그가 미혹의 영에 대하여 든 성구 중에 로마서 1:28에서도 잘 나타난다(마귀론 중, pp.66-67). 인간으로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어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돕는 천사로 가변시켜 유혹으로 역사하는 것을 가르친다고 하였다(Ibid., p.67).

 그런데 이 로마서 1장은 신자에 대한 말이 아니다. 불신자에 대한 말이라는 점이다. 또한 천사가 없는 불신자의 성격형성은 무엇으로 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격형성은 오직 천사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아홉가지 미혹의 영에 대한 설명은 모두 가설에 불과하며 그것도 거짓된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그가 제시한 성구들에 대해서만 변증하겠다.

 그가 제시한 사무엘상 16:14과 19:23은 모두 사울왕에 대한 것이다. 16:14의 말씀은 이렇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19:23의 말씀은 이렇다.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을 하였으며" 14절에서 "여호와의 신"은 사울이 타락하기 전, 즉 천사가 가변된 후라고 한다(마귀론 중, p.62).

 23절에서 "하나님의 신"이 가변된 천사 미혹의 영이라고 한다. 그 스스로의 모순점 들을 살펴보자. 김씨는 마귀론 하권에서는 사울왕은 구원받지 못한 인간으로 보았다(p.143). 즉 자살한(삼상 31:4) 시체는 저주받아 더럽게 처리된(삼상 31:7-13) 자로서 사울이라고 한다. 김씨의 말에 의하면 사울은 죽어서 결코 사무엘처럼 될 수 없고 즉 귀신이 될 수밖에 없든지 아니면 무저갱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생긴다. 미혹의 영과 귀신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성도의 구원문제에도 그렇다. 미혹의 영이 있던 사울은 귀신을 초청하여 질병에 들었다는 말이 성경에 없다. 또한 미혹의 영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타락까지 하여 지옥에 갈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김씨는 천사의 인간의 육체에 못들어 간다고 하면서(마귀론 하, p.63) 또한 영에도 못들어 간다고 하면서 미혹의 영은 인간을 지옥에도 보내는가? 미혹의 영의 힘은 하나님의 구속의 권능보다 커져 버리고 말지 않는가?

 다음에는 열왕기상 22:19-23까지의 말씀이다. 본문의 "거짓 말하는 영"이 바로 가변된 천사, 미혹의 영이라 하는데 이 또한 선한 천사를 가변시켜 사용한다는 말은 전혀 없다. 에스겔 14:9, 10에서 선지자들의 마음이 변하고 인격이 변하면 하나님께서 유혹하시어(미혹의 영을 말함:필자 주) 그들의 영을 가변시킨다는 말은(마귀론 중, p.64) 이사야 66:3, 4에서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능하면 유혹으로 역사하시어(미혹의 영을 말함) 유혹을 택해 준다는 말도(Ibid., p.64)다 가변된 천사를 가리키는 내용이 전혀 아니다. 기타 그가 제시한 어떤 성구도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김씨가 주장하는 미혹의 영에 대한 이론만큼 큰 이 시대의 미혹의 영이 없을 것이다.

Ⅴ. 인격에 대한 오류
 본 항은 인간론에서도 취급할 수 있는 항이지만 본 항에서 따로 취급하는 것은 모두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씨가 이 인격이란 말을 모호하게 사용하여 더욱 성도들을 혼돈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 항에서도 간결한 이해를 돕기 위해 번호를 붙여 설명하겠다.

 ① 김씨는 인간의 영은 항구적 존재로 인격이 아니며 좁은 의미에서는 혼이 인격인데 실제로는 혼은 몸과 함께 인격이 된다고 한다(마귀론 상, p.80, 하, p.62).
 ② 그런데 인격의 주체인 몸이 죽을 때는 혼이 영에 잠재해 버리므로 항구적 인격이 된다(마귀론 상, p.83).
 ③ 그러면서도 사람의 몸이 없어지면 인격이 나타날 수 없어 영에 잠재해 버리므로 인격은 존재하나 그 기능 지·정·의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마귀론 상, p. 167).
 ④ 또한 천사는 몸이 없어도 인격이라고 한다(마귀론 하, p. 62). 반면에 몸은 있어도 보이지 않는 현상으로서 인격이라고 한다(마귀론 상, p.80).

 ⑤ 김씨는 하나님은 또한 비록 세 인격이 아닌 한 인격이라고는 하나 인격이라고 한다(T.P.9-1, 성령을 알자 등).
 ⑥ 그리고 예수님의 육체는 영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었으니 (마귀론 상, P.89)그래서 예수님의 육신은 인격이 아니다(T.P.9-2)라고 한다.
 ⑦ 그리고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기 때문에 인격이 아니며 남의 몸에 들어갈 때만 인격이 나타난다(마귀론 하, PP.62-63)고 한다.
 ⑧ 귀신은 인격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몸에 들어올 때 반드시 가변된 천사, 즉 미혹의 영이 도움으로만 들어오게 된다고 한다.
 이미 독자들은 위에 열거된 그의 사상이 서로서로 모순 투성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탄의 궤계가 얼마나 교묘한지 알 수 있다.

 비판해 보자.
 우선 김씨는 인격이란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든지 두 개의 기준을 가지고 인격이란 말을 쓰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 이유는 쉽게 귀신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한 필연적 논리적 귀결이다. 그가 쓰는 인격이란 말이 의미는 두 가지가 된다.

 하나는 육체를 가져야만 인격이라고 한다는 점이다. 즉 인격의 "사람 인(人)"자 때문에 사람과 같은 존재를 가리킨다고 보기 때문에 육체를 입어야만 인격이라고 하게 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자유의지와 책임을 가진 존재를 가리켜 인격이라고 한다는 점이다. 그 자신이 인격의 기능인 지·정·의를 말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두가지 기준을 동시에 사용하기 때문에 서로 모순 투성이가 도어 버렸다.

이를 살펴보자.
 첫째, 몸을 가져야만 인격이라고 생각할 때 오는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라는 말과 미혹의 영의 도움을 입어야만 우리 몸에 들어 온다는 그의 이론을 설명할 때만 그의 논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많은 모순을 낳는다. 귀신은 절대로 인격이 아니어야 하고 그 귀신은 인격적 기능이 있을 수 없다고 하는(마귀론 상, p.167) 반면 또한 귀신은 인격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마귀론 하, pp.124-135)고 하는 모순된 소리를 했다.

 더욱이 그가 귀신 자체는 영으로 인격이 아니라고 하면서 귀신 자체가 몸도 없이 의지를 보이고 대화하는 것을 설명할 길이 없게 된다(마 12:43, 44). 그런가 하면 귀신이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미혹의 영의 도움이 없이 우리 몸에 못들어 온다는 그의 이론이 파괴되고 말 것이다.

 다음으로는 그가 천사의 몸이 없어도 인격이라고 하였지만(마귀론 하, p.62) 천사는 영인데 어떻게 인격이 될 수 있겠으며 그보다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영이신데(약 1:17) 어떻게 인격이 될 수 있겠는가?

 둘째, 지·정·의를 가진 그리고 책임을 가진 존재가 인격이라고 보는 경우에도 많은 문제점들이 생긴다. 처음에는 김씨가 인격을 전자의 의미로 받아 들인다고만 생각했는데 그의 글을 읽어 본 후 후자의 의미로 인격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항구적 존재라는 영의 문제이다. 영은 인격이 아니며 오직 항구적 가치만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한 그의 말이 모순된다(마귀론 상, p.83) 영자체가 인격이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귀신은 몸을 입기 전에도 인격으로 존재하니 대화도 가능하며 미혹의 영의 도움 없이도 몸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그는 고의든, 무지든 인격이란 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 이것을 네 가지로 나누어 하나씩 문제점을 지적해 보겠다.

1. 사람의 인격
 김씨가 인간을 영·혼·육의 삼분설을 취하면서 그 인격의 주체를 혼으로 잡았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래야만 창세기 1장의 인간과 2장의 인간이 다르다는 이중아담론이 가능하고 귀신의 존재에 대한 설명과 축사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세운 교리이지만 사실 인간의 인격은 영혼 자체만으로(이분설을 취하여) 가능한 것이다 .

 몸이 없어도 다른 모든 천사들이나 신들이 영만으로 인격인 것과 같이 인간도 영혼만으로 인격이 되는 것이다. 혼을 인격의 주체로 보는 것은 구원의 핵심이 혼이 되어 버리고 만다. 모든 것이 혼에 의해 움직여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인격을 지배한다는 천사가 실질적으로 하나님보다 더 큰 영향력과 힘을 가지게 된다.

2. 귀신의 인격
 귀신이란 말 자체가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기 때문에 이는 인격이 아니란 말이 된다. 그렇게 볼 때 귀신 그 자체는 죽을 수도 없어질 수도 없다는 말이 되고 만다. 그런데 "죽은 자"라고 표현한 것이 "귀신"을 의미한다고 하는 것은(마귀론 하, p.141, 144)귀신이란 본질에 대한 표현으로서는 맞지 않게 된다. 죽은 것은 몸이지 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혼이 영에 잠재할 때는 인격이 아니고 몸에 들어올때는 인격이 된다는 말은 귀신은 아무런 의지가 없다는 말이 된다. 아무리 미혹의 영의 도움을 입어 몸에 들어와 질병을 일으킨다고 하지만 전혀 의지가 없는 비인격체인 귀신이 어떻게 몸에 들어오겠는가? 차라리 미혹의 영이 귀신을 강제로 몰아 넣었다고 해야 김씨의 논리가 맞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김씨의 마귀론의 핵심이 귀신이 아니다. 미혹의 영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천사의 인격
 천사는 육체가 없어도 인격이란 말은 천사의 인격과 사람의 인격이 다르다는 전제에 의해서만 가능한다. 천사의 영과 인간의 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전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몸은 있어도 보이지 않는 형상으로 인격이란 말은(마귀론 상, p.80)구약에 천사가 몸을 입고 나타난 경우를 가리키는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형상"이란 말이 모순된다.

 이 형상이란 개념을 내적인 성품으로서의 형상이라면 천사가 몸을 입었든지 안입었든지 형상일 것이요, 형상이란 개념을 외적인 모습으로 생각했다면 천사가 몸을 입었을 때는 보이는 형상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보이지 않는 형상"이란 말은 네모난 삼각형같이 모순된 말이 된다.

4. 예수님의 인격
 그의 말에 의하면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인격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몸을 입고 오신 인간으로서 신이라고 하면 이단이 되고 그의 몸은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이요(요 1:1), 그 말씀은 곧 영이기 때문에(요 6:63) 영은 인격이 아닌 항구적 존재이니 예수님의 육신은 인격이 아니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가 예수님의 육신이 인격이 아니라고 할 때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위에서 지적한 인간의 몸을 중심해서 생각하는 인격의 범주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예수님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몸은 영이니 인격이 아니라는 논리는 자연스런 것이다. 천사는 몸이 없어도 인격이며 예수님은 몸이 있어도 왜 인격이 아닌가? 이 해괴망칙한 인격론이 어디에 있겠는가? 왜 이런 말이 생겼다고 독자들은 생각하는가? 한마디로 그의 귀신의 존재와 축사운동 때문에 생긴 비성경적인 이론이다.

 마귀는 그 본질이 거짓말쟁이이다(요 8:44). 위에서 밝힌 것처럼 김씨의 마귀론이 성경을 떠난 것만은 분명히 사실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유익정도나 숫자와 아무 상관없이 사탄의 역사이다. 우리는 쉽게 김기동씨의 마귀론은 마귀신학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많은 평신도들은 영의 세계를 두려워 한다. 마귀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그래서 오늘날 신비주의는 많은 사람을 모으는 나팔같이 사용되지만 또한 이단을 위한 문이 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이다(요 1:12).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구원 곧 영생을 얻었다(요 3:16). 그리고 아들을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그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롬 8:38, 39).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요한계시록을 보며 어떤 징계와 저주가 나올지라도, 어떤 환난이 나올지라도, 어떤 혼란이 나올지라도 우리는 주의 권능으로 능히 이길 것이며 보호될 것이니 오히려 감사하고 감사해야 하는 줄로 믿는다. 이것이 말씀의 권능을 믿는 성도요,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권능을 믿는 성도이다.

결론
귀신은 타락한 천사이다

서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성서적 마귀론은 신학의 많은 숙제를 남기고 있다. 이제 신학계의 적극적인 관심이 모아지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필자가 결론적으로 이 항을 만든 것은 적극적인 면에서 성서적 마귀론을 정립하겠다는 뜻보다는 많은 연구의 가능성을 남겨 놓자는 것이며 김씨의 마귀론의 표면적 실제적 핵심이 귀신이란 점에서 이 부분에 대한 성서적 접근을 하자는 적이다.

 그동안 학계에 나온 마귀론 중에서 복음적인 면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마귀론을 메릴 엉거(Merrill. F. Unger)가 쓴 성서적 마귀론(Biblical Demonology)이다(정학봉 역, 요단출판사, 1981). 그러나 이 책에서도 많은 연구점을 남기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 자체가 마귀에 대해 많은 부분을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성서적 마귀론, pp.22~23). 그러나 또한 마귀론 연구의 핵심은 다른 어떤 인간의 자연주의적 이론들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분명한 답을 주는 것이 성경이 되어야 한다(Ibid., pp.44~43).

 먼저 김씨가 귀신론을 중심해서 정통교회를 향해 내어놓은 도전을 살펴보자.
 김씨는 귀신이 제명에 죽지 못한 불신자의 사후의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귀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통신학에서는 귀신 또한 타락한 천사로 보는데 이는 성경적으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귀신은 결코 불신자의 사후 존재가 아니요, 마귀와 함께 타락한 천사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모순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성서적 증거도 없습니다"(마귀론 하, p.62).

 그가 그렇게 말하는 논리의 근거는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도 많은 귀신들이 있어서 질병을 일으키느냐고 하는 것이다. 김씨 자신의 주관적 논리의 근거는 이렇다.

 천사나 마귀는 절대로 우리 몸에 못들어 오는데(Ibid., p.63) 만일 들어간다면 A속에 있으면 B속에 마귀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T.P.9~2). 그러니 질병을 일으키는 것은 귀신이요, 그렇게 많은 질병들을 이 우주 안에서 일으키는 귀신들은 많을 수밖에 없고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라고 할 때 잘 믿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점이 성경과 다르다. 성경에 보면 사탄과 마귀가 인간에게 들어 온다는 점이다.

 요한복음 13:2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고 했으며 누가복음 22:3에서는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라고 했다. 심지어 사도행전 5:3에서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고 하였다. 사탄이 하나님을 대적할 때만 사탄이라고 하는 김씨에게 위의 말씀중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가니"란 말은 이중으로 불가능한 말이다.

 또한 마귀가 A란 사람 속에 있으면 B라는 사람 속에 없다는 말은 영의 세계를 모르는 말이다. 그러면 마귀가 A라는 사람을 대적하고, 유혹하고, 올무를 놓는다면 B라는 사람을 대적할 수도, 유혹할 수도, 올무를 놓을 수도 없어야 할 것이다(약 4:7; 딤전 3:7).
 한마디로 귀신은 사탄과 마귀와 같이 타락한 천사이다. 엉거는 타락한 천사를 활동하는 계층과 묶여있는 계층으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탄의 처음 반역에서 그가 비천한 천사들을 많이 끌어들인 것을 알 수가 있다(마 25:41; 게 12:4 참고). 이들 타락한 천사들은 두 계층으로 나누이는데 (1) 자유스럽게 활동하는 계층과 (2) 묶여있는 계층이 있다. 이들 자유스럽게 활동하는 계층은 그들의 재왕인 사탄의 지도하에 하늘에서 왕래하고 있는데 이들 타락한 영들에 대해서만 성경에 분명히 언급되어있다. 그들 '귀신의 왕 바알세불'(마 12:24)이라고 불렀고 '마귀와 그 사자들'(마 25:41), '용과 그의 사자들'(계 12:7)이라고도 불렀다. 이들 사탄의 왕국의 통치하에서의 감금되지 아니한 악령들은 그의 사자와 신하들이며(마 12:26) 그의 세력을 실제적으로 어디에나 있게 할 만큼 수없이 많은데 바로 이들이 귀신들인 것 같다"(엉거, 마귀론, p.88).

 분명히 귀신이 타락한 천사들이란 증거는 "마귀와 그 사자들"(마 25:41)과 "용과 그의 사자들"(계 12:7)을 그 결정적 증거로 들 수 있다. 더욱이 사탄의 최초 반역시 그보다 못한 수많은 천사들이, 모든 천사의 삼분의 일 가량되는 천사들이 그곳에 가담하였다(겔 28:18; 계 12:4). 이렇게 귀신을 정의하는데 성경적으로 아무 모순이 없다.

 하나님 앞에서는 사탄, 마귀 또는 귀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여인의 후손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그의 머리가 상하였으며(창 3:15), 하늘에서 떨어졌으며(눅 10:18), 사탄의 권세는 무너졌다(고전 15:55 이하). 이제 마지막 심판이 남아 있을 뿐이다(계 20:10).

 아무리 그들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할지라도(고후 11:14)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하나만으로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들이 강할지라도 우리는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 6:10) 승리할 것이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5:57)고 찬송하고 찬송하고 찬송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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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 목사가 쓴 <베뢰아 귀신론을 비판한다>(기독교문화협회刊, 1990년 9월10일 발행)를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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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베뢰아의 성령은 허수아비이다.

 김씨의 성령론은 "성령을 알자"라는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이책을 통해 그의 삼위일체는 양태론적 삼위일체임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고,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그가 이해하는 성령론은 정통적인 성령론과는 하늘과 땅처럼, 동과 서처럼 먼 것이다.

 그는 구약시대의 성령의 역사는 인간 속에 내주하신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양자의 영인 성령이 없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다고 한다.

 "구약시대에는 모두가 천사에 의해 이끌림을 받았기에 성령을 받은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양자의 영이 없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지 않았습니까?"(마귀론 상, p.57)
 그런 점에서 예수 이전에는 성령의 내주가 없었다고 한다.

 "예수 이전에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성경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권능을 입어' '감동함을 입어'하여 위에 입었다는 뜻이지 '내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승천하신 다음 오신 성령에 대하여는 '성령이 너희 안에 오시리라',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하여 모든 사람 속에 '내주하리라'는 말로 나옵니다."

 "…과거 선지자들도 성령을 힘입었고, 요한도 '모태로부터 성령 충만함을 입어'라고 했으나 그들은 성령의 권위로 외투를 입고 있듯 힘입었던 것이지 내주하여 임하신 것은 아닙니다"(성령을 알자. pp.95-96).

 그렇기 때문에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은 모두 천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의 신, 하나님이 보내신 영들은 천사들을 말하는 것이지 성령이 아닙니다."(마귀론 상, p.112). 그래서 창세기 1:2에 "하나님의 신"도 천사를 말한다고 했다.

 "구약에서 아브라함이나 모세에게 나타난 여호와가 천사였던 것같이 하나님의 신이 그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는 것은 하나님의 천사가 수면 위에 운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신은 모두 천사를 말합니다"(마귀론 상, p.62).

 그의 성령론 역시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에 근거하여 이해할 때 잘 이해되는데 결국 김씨는 성령의 편재성을 부정한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도 성령 받고 우리도 성령 받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지만 성령이 예수 안에 계실 때에는 어느 장소에도, 어느 사람 속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늘로 가신 다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교회 안에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성령을 알자, p.96).

 예수님께서 하늘로 가시기 전에는 성령은 예수 안에 계셨으니 다른 사람에게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볼 때 성령의 편재성이 와전히 부정되고 있다. 그러나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비로소 교회에 성령이 오셨다는 말은 성령의 편재성을 부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스스로 모순되는 말이다. 즉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교회에 성령이 왔다는 말은교회에 성령이 오신 후에는 하늘에 계신 예수님 속에는 성령이 분명히 안계신다는 말이 된다.

 다시 상기하여 보자. 성령이 예수 안에 계실 때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가 우리 안에 있을 때 성령이 된다는 김씨의 말을 따르게 되면 구약에서의 성령이 내주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안계셨다는 말이 되고, 신약의 예수님이 승천하신후 성령이 교회 안에 계신다는 말은 아버지가 우리 속에 오셨다는 말이니 하늘에는 아버지가 안계신다는 말이 된다.

 그는 심지어 성령이 임하지 않아도 예수를 인정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고(성령을 알자, p97) 오직 예수님의 공생애는 성령이 오심으로 시작되는 것 같이 교회가 성령을 받을 때부터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한다(Ibid., p.97). 그래서 성령이 없어도 구원은 받으나 공생애는 아니요 사생애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령을 받아 공생애의 삶을 살지 않으면 면류관은 없다고 한다(Ibid., p.98).

 이처럼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엄격하게 따지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시대의) 성령의 사역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모태로부터 "성령충만함을 입어" 태어났다는 말도 성령의 내주가 아니라고 하게 되었고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에 의해서 성령이 예수 안에 계실 때는 어느 누구의 속에도 성령이 없다는 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속에 성령을 받게 되면 그 성령은 하늘에도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보다는 성령은 한 분인데 어떻게 모든 사람들 속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갑 속에 성령이 있으면 을 속에 성령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김씨는 성령의 역사를 모두 천사의 역사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비록 김씨는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셨다는 말을 하지만 사실은 천사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으며 권능을 받는다고 할 때의 성령을 권능과 혼돈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한번 움직이면 그의 주변을 경호하는 수행자들이 많이 수행하며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가만히 있어도 수행자들과 경호원들은 계속 일하듯이 성령이 임하시면 이러한 권능들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있으면 자연히 수행자가 따르는 것입니다"(마귀론 상, p.113).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지배를 받는 자들은 천사가 수종들려고 보냄을 받게 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라는 말은 '천사를 얻고'라는 말로, 신약시대의 권능은 천사와 동격입니다"(Ibid., p.111).

 김씨는 천사의 숫자에 따라 능력있는 성도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귀신도 천사가 쫓고(T.P.21-2) 인격형성도 천사가 하며(마귀론 중, P.67) 가변된 천사, 즉 미혹의 영, 모든 행동과 생각도 천사가 주장하고 관리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비판해 보자.
 한 마디로 김씨의 삼위일체론은 구약에는 일신론이요 신약에서만 삼위일체론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나마 양태론적인 삼위일체론이다.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있기 전에는 예수가 있을 수도 없으며 그러기에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 본래 이름이란 말이 가능했고(김기동, 보이지 않는 벽, 서울, 1982, p.185) 구약에는 성령이 인간 속에 내주한 일이 없었으며 그러기에 구약에 나온 하나님의 신은 모두 천사란 말은 자연스런 결론이다. 왜냐하면 성령이란 아버지가 인간 속에 있을 때만 성령이라는 그의 정의를 볼 때 구약에는 성령이 인간 속에 내주한 일이 없다는 말은 아버지께서 우리 속에 내주한 일이 없다는 말과 같은 말이기 때문에 구약에 성령이란 이름조차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구약의 성령의 역사를 말한다면 스스로 모순될 뿐이다. 더욱이 창세기 1:2의 하나님의 신마저도 천사로 볼 수밖에 없음은 하나님의 신을 성령으로 보면 그가 내린 성령에 대한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성령은 아버지가 우리 속에 있을 때만 성령이신데 수면위를 운행할 그런 신은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사람의 영 자체가 신이요, 사람의 영은 천사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라고 한 점을 볼 때(T.P.35-1) 하나님의 신, 즉 성령을 천사라 했고 사람의 영(귀신을 포함해서)은 하나님의 신이기 때문에 결국 정통교회가 보는 성령, 즉 하나님의 신은 천사나 귀신 수준으로 바꾸어 버림은 자연스럽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비록 그가 오순절의 성령강림을 이론적으로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천사의 역사로 설명하여 누가 보아도 성령은 허수아비 같은 인상을 못 벗어나는 이유 또한 삼위의 양태론적 이해와 성령의 편재성을 부정하는 자세에서 나온 체계없는 이론일 뿐이다. 그가 "성령이 예수 안에 계실 때에는 어느 장소에도, 어느 사람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성령을 알자, p96)는 말을 깊이 분석해 보면 성령의 편재성을 부인함을 알 수 있게된다. 혹 그가 신약시대의 성령의 편재성을 억지로 주장하더라도 구약의 신은 삼위 하나님이 아니요 그나마 이해하는 양태론적 삼위일체마저도 신약에만 국한될 뿐이다.

제Ⅲ장
창조론에 나타난 베뢰아의 이단사상

 창조론만큼 중요한 교리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현상이든 그 의미를 찾을 때마다 근원부터 살펴야 하는 학문적 습관과 당연한 방법론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단은 모든 교리의 근원인 창조론에서부터 달라진다. 그리고 가장 많은 이단 사상을 숨길 수 있는 숲 또한 창조론이다. 더욱이 우리는 창조론에서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많은 부분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호기심을 정통신학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것을 이단 사상으로 채울 위험이 큰 것이다.

 김씨의 창조론을 살펴보자.
 먼저 그가 말하는 창조목적은 마귀를 멸하기 위함이라기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천사가 타락한 시기는 천지창조 전이 될 수밖에 없다(마귀론 상, p.64). 그 증거는 이렇다.
 그는 세 가지로 하늘을 구별하여 가르치는데 지구 가까이에 지구의 하늘(sky)이 있고, 그 다음에 궁창의 하늘(space)이 있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하늘(heaven)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타락한 마귀를 하나님의 하늘에서 내어 쫓아 궁창에 가두신 때가 창세기 1:8이요, 그 마귀가 셋째 하늘로 내려온 때가 요한계시록 12:7-10이라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하늘과 궁창의 하늘 사이는 물벽이 있는데 그 물벽이 창세기 1:2의 그 물벽이요 거기 있는 하나님의 신, 즉 천사는 마귀가 하늘나라에 못들어 오도록 지키는 천사라고 한다.

 "천사는 하나님의 일을 수종드는 종으로서 지음을 받았는데 그가 하나님을 반역했기에 하나님은 계획전으로 그 천사를 멸하기 위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천사가 인간보다 먼저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만물을 지을 때에 천사도 함께 있었다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할 때의 그 신은 성령이란 의미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교도소를 지키는 교도관은 법무장관의 지시 하에 그 교도소를 지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운행한다는 것은 곧 천사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교도소에 법무장관이 직접 총을 메고 나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교도관을 파송하는 것같이 하나님께서 영원한 결박으로 지키신다는 뜻입니다"(마귀론 상, pp.61-62).

 그리하여 첫째 날 만든 빛은 어둠의 세력인 마귀에 대한 심판의 시작이라고 한다.
 "만물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이미 천사가 타락했기에 이 타락한 천사를 멸하기 위해 만든 곳이 바로 우주입니다. 성경은 여기에 흑암과 먼지와 안개가 가득하더라 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우주를 만드실 때 창조한 사실이 없으나 이미 과거에 있었던 것이며 이러한 우주 안에 그를 영원한 결박으로 가두신 것입니다. 천지창조는 그 다음에 구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1의 태초는 만물의 태초로 이 우주 안에서 이루어진 태초입니다. 그곳이 어둠과 먼지와 안개로 가득했기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신 것입니다. 이 빛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닙니다. 우주 안에만 있는 시한적 존재입니다. 이러한 피조물은 어느 때인가는 없어질 것들입니다."

 "이러한 계획은 하나님이 천사를 만드셨을 때 그들의 배타적인 부분, 곧 그들이 지위를 떠났을 때의 만약을 위해 사전에 그러한 준비를 하셨을는지도 모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신 것은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시작입니다. 왜냐하면 빛이 있으므로 인류가 있게 되고 인류가 존재하게 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곧 인자가 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귀론 상, pp.64-65).

 여기에서 소위 성도들에게 가장 미혹이 되는 둘째 날 궁창 창조시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이 없는 이유인데 거기에 마귀가 있기 때문이라는 사상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중을 만드셨으나 좋았더라 하지 않으신 것은 마귀가 거할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누가 형무소를 만들어 놓고 놓았더라 하겠습니까?"(마귀론 상, p.66).

 그리하여 하나님은 마귀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을 대적하도록 하나님께로부터 합법적인 권리를 받았다는 논리가 나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사탄으로 마귀가 되게하여 그 사람을 대적하도록 방향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합법적으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곧 마귀라는 불법을 합법화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4장에 시험하는 자라고 주님께서 합법적인 신분이기에 그가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은 합법적인 권리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르면 매일 시험에 빠져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마귀론 중, p.23).

 비판을 하기 전에 창조론에서 한 가지 더 소개해야 할 중요한 이단사상이 있다. 소위 이중아담론이다. 이 사상은 마귀론 상권 79페이지에서부터 95페이지에 잘 나타나있다. 간단히 설명해 보자.

 창세기 1:27의 남자와 여자는 몸과 혼만 가진 존재인데 창세기 2:7의 아담은 영과 혼과 몸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이다. 1장의 인간은 사람이라 하고, 2장의 인간을 아담이라고 한다. 직접 인용해 보자.

 "창세기 1:27의 '하나님이…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할 때의 이 남자와 여자는 지금 말하는 인격적인 사람이라기보다는 남자와 여자라는 곧 암컷과 수컷이라는 하나의 자웅을 구분하는 이치로서의 표현입니다. 이때 많은 자손을 얻어 번성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육체는 생물학적인 유전은 가져왔지만 영적인 유전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사람 자체가 여섯째 날 모든 동물을 만드심 같이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들 역시 몸과 혼을 합해 완전한 인격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육신이 있는 동안 이들에게는 도덕이 잇고 윤리가 있었으며 또 문화도 있었습니다. 다만 영적인 요소가 없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내세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당시 죄 지은 자들은 내세가 없는 자들이기에 더 행복할는지 모릅니다"(마귀론 상, p.81).

 이 2장의 아담은 충만한 수의 사람들(영이 없는 짐승과 같은)중에 뽑혔으니 굉장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이란 말은 생 또는 삶(육+혼)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여 땅에 충만하라 명하심으로 이들의 임무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명하심으로 이들의 임무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 것이었습니다. 아담은 몇몇 사람중에서 한 사람으로 뽑힌 것이 아니라 땅에 충만한 수 중에서 뽑혔으니 굉장한 사람입니다. 몸으로서의 혼, 곧 인격인 아담을 하나님은 생령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마귀론 상, p.84).

 이제 하나씩 비판하겠다. 다음 세 가지로 나누어 하려한다. 첫째,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비친 베뢰아의 이단사상. 둘째, 하늘 문제 속에 비친 베뢰아의 이단사상. 셋째, 이중아담론에 비친 베뢰아의 이단사상.

Ⅰ.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비친 베뢰아의 이단사상
 우선 그가 보는 천사의 타락시기부터 문제가 된다. 성경은 전혀 천사의 타락시기를 말하고 있지 않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와 하나님이 절대창조만은 무너뜨릴 수 없는 절대적인 사상이다. 성경의 가르침이 그렇고 역사적인 기독교의 전통이 그렇다.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천사의 타락시기를 말하려면 겸손하게 가능성 정도만 비쳐 말해야 하며 그것도 하나님의 절대창조와 선한 창조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복음적인 학자들은 천사의 타락시기를 창조 후로 보는데 공통적이다.

 그 다음에는 창조목적이 잘못 되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된 일이다. 그런데 마귀를 멸하기 위해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은 인간은 하나님의 노리개가 되어 버린다. 하나님은 계획적으로 마귀를 멸하기 위해 사람을 만들었다는 말과, 마귀는 불법자로서 하나님께로부터 그 불법을 합법화 하도록 하는 권리를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은 악하며 인간타락의 책임이 하나님께 돌아가 버리는 무서운 사상을 가지게 된다.

Ⅱ. 하늘 문제 속에 비친 베뢰아의 이단사상
 우선 김씨가 주장하는 세 가지 하늘이 있는데 우주(궁창의 하늘과 지구의 하늘을 합하여)와 천국의 하늘이 물벽으로 구분되며 이 우주는 결국 사탄이 지배하는 음부라고 하는 사상은 그의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더욱이 하나님의 하늘과 궁창의 하늘은 물벽으로 나누어 졌다고하여 그 선이 선명한데 반해 지구의 하늘과 궁창의 하늘은 구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보니 궁창은 마귀의 감옥으로 만들었으며 천지창조 둘째 날 궁창 창조에 만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란 말이 없다고 하는 그의 이론은 잘못된 말이지만 그것을 인정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모습을 스스로 만들어 버렸다.

 궁창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마귀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가르친 베뢰아 강의에 보면 바로 넷째 날 만든 해와 달과 별들이 궁창에 있다고 했다(T.P.3-1,2). 이는 그가 과학자들의 말을 빌려 우주, 물벽과 물벽의 지름을 백만 광년이라고 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상하다. 궁창에 마귀가 있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지 않은데 마귀의 감옥 속에 있는 해와 달과 별은 어떻게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그런데 성경에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제 둘째 날 창조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이 없음은 궁창이 마귀의 감옥이기 때문이라고 한 김씨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비판해 보자.

 ① 창세기 1:1의 창조에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이 없다.
 김씨는 창세기 1:2의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영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김씨에 의하면 창조 자체가 마귀를 위해 창조한 세상이니 그렇게 해석함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기에 1:의 창조를 가리켜 어둠과 먼지와 안개로 가득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했다는 것이다(마귀론 상, P. 65).

 본문의 "혼돈"과 "공허"는 단지 사람이 살 수 없는 조직되지 못한 자연적인 상태를 가리키고 있을 뿐이며 더욱이 "흑암"은 자연적인 어두움일 뿐이지 영적 어두움이 아니다. 하나님은 빛도 만드셨지만 어두움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사 45:7).

 ② 1:4의 "어두움"에 대해서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이 없다.
 1:2의 "흑암"도 사탄에 의한 어두움으로 본다면 자연히 1:4의 "어두움"도 사탄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김씨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음이 이상하다. 이 "어두움"또한 자연적인 어두움을 가리킨다.

 만일 자연적인 어두움마저 사탄적인 것으로 본다면 김씨는 자기방에다 밤이 되면 수만 볼트의 전깃불을 가능한 한 많이 켜 놓고 자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김씨에게는 자연적인 어두움이 곧 영적인 어두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빛도 만드시고 어두움도 만드셨다.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나오나이다"(시 104:20)라고 했다. 그런데 창세기 1:4에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이 빛에만 해당되고 어두움에 대하여는 말하고 있지 않다. 왜 그러한가?

 ③ 1:27,28의 인간창조에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이 없다.
 위 두 가지는 해석적인 입장에 따라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남는다. 그러나 인간창조 문제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이 없음은 해석할 길이 없다. 25절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은 땅의 짐승에 대하여 한 말이지 인간에 대하여 한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마저도 마귀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이 없는 것이가? 그렇게 본다면 모든 창조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이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김씨의 이론을 따르면 어차피 창조는 마귀를 멸하기 위한 창조였으니까 말이다.

 ④ 1:31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말이 모순된다.
 이 본문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에서 궁창창조는 예외인간? 1:2의 "흑암"도 1:4의 "어두움"도 1:26, 27의 인간도 예외인가? 오직 궁창창조 하나만 예외가 있더라도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이란 말은 모순되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성경계시를 잘못하신 것이다.

 ⑤ 궁창창조 후에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 대신 "그대로 되니라"라는 말이 있다(1:7).
 "그대로 되니라"란 말은 누구의 뜻대로 되었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되었다는 말이다. 김씨도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믿는 줄 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뜻하는대로 원하시는대로 만드신 것이 둘째 날 궁창이다.

 본문에 "그대로 되니라"란 말이 다른 곳의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을 대신한다. 그리고 1:31의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말은 이 궁창까지 포함한 모든 것이다.

Ⅲ. 이중아담론에 나타난 베뢰아의 이단사상
 이중아담론이 이단적이라는 것을 아는 자는 김씨 자신일 것이다. 그가 1983년 자신이 속했던 침례교 총회에 이중아담론을 가르치지 않겠다고 한  각서를 보아 알 수 있다(물론 후에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결국 그 교단에서 1987년 11월에 이단으로 정죄되었지만). 이 항은 인간론의 측면에서 별개의 장으로 취급될 수 있으나 본항에서 취급하겠다. 이 이중아담론과 베뢰아의 인간론은 "마귀론"상권 사람의 인견(pp.79-95)에 잘 나타나 있다.

 우선 하나님의 이중 인간창조문제를 비판하고 인간의 인격문제는 후에 취급하자.
 김씨는 1장의 인간은 혼과 몸으로만 이루어진 존재로 단지 동물의 자웅을 칭하는 용어로 보고 2장의 인간은 혼과 몸 외에 영을 받아 수많은 1장의 사람들 중에서 뽑힌 개화딘 인간이라고 한다(마귀론 상, p.79). 그러므로 그는 히브리 원문에 보면 창세기 1:27의 남자와 여자가 2:8의 인간과 다름을 잘 알 수 있다고 하였다.

 "히브리 원문을 보면 창세기 1:27의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가 영적인 것을 의미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동물적인 자웅을 구분하고 있는 것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란 말은, 생 또는 삶(육+혼)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여 땅에 충만하라 명하심으로 이들의 임무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 것이었습니다."

 "아담은 몇몇 사람 중에서 한 사람으로 뽑힌 것이 아니라 땅에 충만한 수 중에서 뽑혔으니 굉장한 사람입니다. 몸으로서의 혼, 곧 인격인 아담을 하나님은 생령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령은 아담 하나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하와의 영도 따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아담 하나를 만들어 아담에게서 분리되었다가 다시 합하여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부터 시작했으나 아다믄 충만한 수의 사람 중 하나를 뽑아 경건한 자녀를 얻기 위해 분리시킨 것입니다"(마귀론 상, pp.84-85).

 원래 이단은 거짓말의 명수이다. 김씨는 원문을 들면서 결정적인 거짓말을 했던 경우가 두 번 있는데 그 한 번이 바로 이중아담론이다. 이는 실수로 인한 거짓말이 결코 아니다. 실수로 인해 거짓말을 할 성질의 것이 아니며 그럴 가능성이 신학적으로나 어학적으로나 조금도 없다.

 왜냐하면 1:27의 인간이나 2:8의 인간이 경우 히브리 원문은 똑같이 '아담'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본 상 그렇게 말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오직 고의적인 거짓말을 하여 미혹하려는 경우와 원어도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는 무지와 교만의 가능성 외에는 절대로 다른 가능성이 없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이단들은 성도들을 미혹하기 위해 성도들이 모르는 원문 이야기를 거짓으로 꾸며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데 구원받은 자는 의인이라 해야하며 죄인이라 하면 반드시 지옥에 간다고 하는 구원파 이단의 경우도 그렇다(특히 박옥수파의 사람들은 누구든지). 그들에게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1:15에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했다고 말하면 원문에는 과거시제로 과거에 죄인의 괴수였다고 했기 때문에 현재 죄인의 괴수라고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원문에는 과거시제가 아닌 현재시제로 되어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단들의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다.

 1장의 인간과 2장의 인간은 똑같은 인간이다. 2장의 인간도 1장의 인간처럼 하나님 형상을 가진 인간이요, 1장의 인간도 2장의 인간처럼 생령을 가진 인간이다. 단지 2장은 1장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창조의 모습을 가르치는 것이다. 2:4의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의 "대략"이란 말은 히브리어 "톨도트"란 말로 구체적인 모습을 설명하는 단어이다.

 만일 1장 창조와 2장 창조를 다른 창조로 보면 많은 문제점들이 생긴다. 1장의 인간은 에덴동상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는 말이 되며 에덴동산을 위한 창조가 따로 있게 된다. 그 이유는 2:8에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라고 한 것을 보아서 에덴동산을 따로 창조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1장에는 에덴이란 말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김씨가 말하는 1장의 동물과 같은 인간(동물의 자웅을 칭하는 것과 같은 인간이니까)에게 하나님 형상을 주셨다는 말이 설명되지 않는다. 27절과 28절을 보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단지 동물과 같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주었다고 한다면 김씨는 하나님 형상에 영적 요소를 배제시켜야 할 것이다. 그런 인간에게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어떤 성품과 같은 하나님 형상을 주었다는 것도 모순되는 말이 된다. 더욱이 그런 인간에게 만물을 정복하고 다르시라는 특권을 주었음도 모순된다. 그보다 영적 요소가 없는, 영적 요소가 배제되는 하나님 형상이란 무엇인지 설명할 길이 없다. 이는 하나님 형상에 대한 전통적인 교회의 이해와 완전히 배치되는 이단적 해석이다.

 본 항에서 김씨의 인간론 문제를 취급할 수 있다. 그러나 마귀론에서도 이 점이 핵심이 되기 때문에 다음 장에서 베뢰아의 인격 문제를 같이 취급하여 비판하겠다.


제Ⅳ장
마귀론에 나타난 베뢰아의 이단사상

 김씨는 마귀를 모르면 예수를 모른다고 했는데 과연 그러한가? 자신의 마귀론은 성경에 근거했으며 또한 경험에 근거하여 만들었다고 하는데(마귀론 상, pp.9-10) 얼마나 성경에 접근하고 있으며 얼마나 성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가? 그리고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경험과 성경은 어떤 관계에 있으며, 그의 경험 앞에 성경은 얼마만한 의미가 있는가?

 그의 계시론에서 밝힌 것처럼 이미 그의 설교나 학설은 성경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본장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소개비판 하겠다.

Ⅰ. 김씨가 사탄과 마귀에 대해 내린 정의의 오류
 베뢰아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탄과 마귀는 창세전에 하나님께 혁명을 일으킨 천사(마귀론 상, p.37)로서 원래 동격인데 사탄은 하나님을 대항할 때를 가리키고 마귀는 인간을 대적할 때 부르는 명칭이라 한다.

 "사탄과 마귀는 동격으로 사탄이라고도 하고 마귀라고도 하여 단수입니다. 사탄은 흑암에 갇히기 전 자기 지위를 떠나 하나님께 도전할 때를 말하며 이는 혁명가라는 뜻으로 타락한 자의 신분을 말합니다. 임금을 반역했을 때에 혁명가가 되듯 사탄은 유일하신 하나님께 반역을 일으켜 하나님의 원수가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반역한 원수일 뿐, 권세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주 안에 들어와서 이를 주관하는 자로 권세의 대명사입니다"(마귀론 상, p.151).

 그래서 그는 성경에 사탄을 대적하라고 한 일이 없다고 거듭거듭 말한다. "우주를 창조하기 이전, 하나님을 반역하고 대적하는 자의 신분을 사탄이라 하며 우주를 창조하고 사람을 창조한 후부터 마귀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사탄을 대적하라는 말은 없습니다"(마귀론 중, p.23).

 즉 사탄은 창조 전, 하나님을 도전할 때 가진 이름이요, 마귀는 우주 안에 들어와 인간을 주관하는 합법적인 불법자라고 한다.

 그의 말이 옳은지 살펴보자.
 우선 사탄마귀의 타락시기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타락의 시기를 창조 전으로 잡는 것은 하나님을 불법자로 만들어 버렸으며 인간은 불법적인 합법자 마귀를 멸하기 위하여 피조된 이용물에 불과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의 시기를 창조 후 하와가 유혹받기 전 어느 시기로 보는데 복음적인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김씨가 사탄은 하나님을 도전할 때 사탄이라고 한 말과 인간을 대적할 때 마귀라고 한 말은 전혀 성경적으로 무근한 말이다. 김씨는 너무나도 무책임하게 자신의 사상을 전개시키는데 이든 이단의 속성이요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사탄과 마귀에 대한 정의이다.

 사탄이란 말은 신구약에 56회 , 구약에서는 명사형태로 28회, 동사형태로 6회 정도 사용되고 있는데 김씨의 말처럼 창조 전에 하나님을 대적할 때만 사탄이거나 창조 후부터는 인간을 대적할때는 마귀라고 하는 말은 전혀 무책임한 말이다.

 김씨 말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마 4장) "사단아 물러가라"(10절)는 말은 모순된다. 첫째, 그의 말에 의하면 예수님은 인간이신데(하나님이 아닌), 인간 예수를 대적하는데 왜 "사단"이라고 했는가? 둘째, 창조 후에는 마귀에게 맡겨진 일인데 왜 마귀가 아니고 사단인가?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할 때(23절), 김씨 말에 의하면, 베드로가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에 사단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니다. 분명히 김씨가 주장하는 인간 예수를 대적했다.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김씨의 말이 옳다면 결국 모든 사단의 역사는 직접·간접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의 사상을 완전히 뒤엎을 몇 가지 경우를 더 들어보자.
 사도행전 5장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값을 속였을 때 베드로가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3절)라고 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가리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다고 했으며(고후 12:7),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22:31에서 시몬에게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라고 하였다. 그의 말로하면 이는 사단이 아니라 마귀가 되어야 한다.

 이 점은 구약에서도 같다. 욥기 2:7에 "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틀림없이 사단이 욥을 쳐서라고 했다. 분명히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아니라 욥을 대적했다.

 그보다 스가랴 3:1을 보면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기에서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에서 그는 누구인가? 틀림없이 여호수아이다. 인간 여호수아를 대적하는데 마귀가 아니고 사단이었다.

 이제 인간을 대적할 때 마귀라는 그의 말을 살펴보자. 역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을실 때(마 4장)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고 하였다. 김씨의 말로 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니까 인간 예수를 시험하였으니 마귀가 맞는데 그때 "사단아 물러가라"고 한 것은 모순된다. 그러나 마귀를 사단이라고 한 것을 보니 하나님을 대적하든 인간을 대적하든 사단이요 마귀인 것이다. 그리고 김씨의 주장처럼 베드로가 예수님께 책망을 들을 때 하나님께 대적했으므로 사단이라고 한 것이 사실이라면(마 16:23)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할 때야말로 더욱 사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가룟 유다를 가리켜 "마귀니라"(요 6:70)라고 하셨다.

 그의 말에 의하면 천사장 미가엘과 모세의 시체로 싸울 때 그 원수를 가리켜 "마귀"라고 했는데(유 1:9) 천사를 대적할 때는 마귀인지 사탄인지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볼 때 성경에서 사탄과 마귀라는 용어가 구별된 의미로 사용됨에는 틀림이 없으나, 사탄과 마귀를 같은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계 12:9; 20:2). 김씨의 마귀론은 그 출발부터가 성경을 잘 살펴보지도 않은 채 무책임하게 엮어 놓은 이단체계임을 알 수 있다.

Ⅱ. 귀신은 제명에 죽지못한 불신자의 사후의 존재라는 말의 오류
 김씨의 모든 신학의 초점은 바로 이 귀신의 존재와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현상을 맞추어져 있다.
 먼저 인간수명문제를 생각해 보자. 김씨는 인간의 평균수명이 노아 이전에는 천 년 가까이도 살았는데 노아 때 120년으로 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그가 노아 이후부터 120년이 인간의 수명이라고 가르쳤는데 언제부터인가 이제 평균수명이 고정되지 않은 것으로 설명을 하는 것 같다.

 "창세기 6:3에 인간이 세상에 머무는 연수의 한계를 120년이라 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천 년 가까이 살았는데 노아 홍수 이후부터 사람의 수명이 줄어들었습니다. 곡식을 심으면 다 고르지 않고 위로 올라오는 것도 있고 내려가는 것도 있듯이 하나님이 인간의 연수를 120년이라 하신 것은 평균수명이기에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곳은 더위와 영양부족으로 설흔 네 살이 최장수인 곳도 있습니다"(마귀론 상, p.180).

 그런데 그가 실례를 들어 설명할 때 80세를 자연수명으로 설명하기도 하고(Ibid., p.180), 또한 100세를 자연수명으로 예를 들기도 한 것을 볼 수 있다(Ibid., p.187). 어쨌든 자연수명을 다 채우고 죽은 불신자의 영은 무저갱으로 가고 그렇지 않고 제명에 죽지 못한 영은 제 수명이 차기까지 귀신으로 활동하며 몸에 붙어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수명이 백살인 을이라는 사람이 암으로 60살에 죽었다고 합시다. 그는 자연수명에서 60살에 죽었기에 아직 40살이 남아 있습니다. 이때는 무저갱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음부에서 자연수명이 차기까지 40년간을 마귀와 그 사자들과 함께 활동하게 되는 것입니다"(Ibid., p.187).

 그래서 100살이 제명인 자가 2살에 죽으면 98년간 인간을 괴롭힌다는 것이다(Ibid., p.187). 그리고 귀신이 들렸다가도 자연 수명이 다 되면 자연히 귀신이 떠나 무저갱으로 간다고 한다(Ibid., p.188).

 비판해 보자.
 "제명에 죽지 못한 불신자"란 말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한다.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인간의 수명은 하나님이 정하신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마 10:29). 만일 인간의 수명을 하나님이 정하시고 또 하나님이 죽게하여 남은 생명을 귀신으로 일하게 한다는 말은 하나님 편에서 스스로 모순된다.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작정을 파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수명은 하나님이 아닌 운명론적으로 정해졌을 것이며 그러하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도전이다. 이 점에 대한 김씨의 성경적 증거를 찾을 길도 없으며 또한 구체적 논증을 본 일이 없다.

 이제 귀신은 과연 불신자의 사후의 영인가 하는 점을 살펴보자.
 그는 8,000명을 상대로 하여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의 존재임을 밝혔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나는 죽은 불신자의 영혼이다"라고 한 자가 7,995명이요, "나는 천사다"라고 한 자가 2명이요, "나는 신자였으나 후에 배교했다"는 자가 2명이요, "나는 신자였으나 자살했다"는 자가 1명이라고 했다(마귀론 하, p.146). 이 귀신은 인간의 몸 속에서는 인격을 나타내지만 인간의 몸 밖에 나가서는 항구적 존재인 영으로 있다고 한다.

 이를 살펴보자.
 "성경은 '귀신 들려'라 하며(마 8:16,28; 막 9:25) 사람 몸안에 귀신이 들어 잇을 때에는 '소오마'(헬)라 하며 인격으로 나타냈으며 '귀신이 나가더라'하여 육체에서 귀신이 떠나게 될 때에는 '퓨뉴마'(헬)라 하여 인격이 아닌 영으로 다루었습니다."

사람몸+귀신=인격(소오마)
(X)+귀신=영(퓨뉴마)
 "인격은 몸과 혼은 함께 말하면 영은 하나의 항구적 존재이기에 귀신 들린 사람이라 할 때의 귀신이란 말은 '인격을 지닌 귀신이 들려'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육체가 없어지면 영 안에 인격이 잠재해 버려 그 기능이 나타나지 않기에 영이라 말합니다. 귀신도 사람과 같아 몸을 떠나면 그 인격이 영 안에 잠재해 버리기에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영으로서의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은 사람 몸 안에 들어와서만 역사하지 몸 밖에서는 역사하지 않습니다"(마귀론 상, pp.167-168).

 그가 귀신이 몸 밖에서는 인격이 아니라는 말에 대한 비판은 다음에 따로 하겠으나 먼저 그가 원어를 말하며 결국 성도들을 속였던 두 번 째 거짓을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마태복음 8:16, 28과 마가복음 9:25을 들어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 몸 안에 있으면 '소오마'(몸이란 뜻임)가 되고 귀신 자체는 '퓨뉴마'(영이란 뜻임)가 된다고 하였는데 이는 거짓말이다.

 성경에는 그런 일이 없다 .단지 동물의 몸이나 인간의 썩을 몸과 육체를 가리켜 '소오마'라고 했으며 귀신이 몸 속에 있을 때 '소오마'라고 불리워진 경우는 성경에 단 한번도 없다.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존재라는 김씨의 주장은 체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하나의 학설이라고 하기도 하고(마귀론 상, p.179), 성경에서 명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는 말은 사실이라 하기도 하고(마귀론 하, p.140), 그러나 성경은 귀신의 정체에 대해 우리에게 충분한 증거를 보여 준다고 하기도 한다(Ibid., p.140). 그리고 학문적으로 뒷받침 하기가 어려움을 인정하고 이론이기에 표현에 약간의 무리가 있다고 전제하기도 한다(마귀론 상, p.9). 그러나 그가 말하는 성경적 증거만 살펴보자. 그가 제시하는 성경적 증거는 일곱 개가 된다. 사도행전 16:16, 이사야 8:19, 사무엘상 28장의 신접한 여인 사건, 고린도전서 10:20-22, 시편 106:28, 29 마가복음 6:14-16, 마태복음 16:13, 14이다(마귀론 하, pp.141-145).

 하나씩 소개하며 비판해 보자.
 모두가 다 적은 가능성을 확대하여 해석했을 뿐이며 결정적으로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의 영임을 밝히고 있는 부분은 없다.

 첫 번째 성구이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지라"(행 16:16).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에서 점하는 귀신의 정체가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라고 생각한다면 다음의 이사야 8:19을 제시한다.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여기에서 문제는 '죽은 자'에 대한 해석이다. 이 '죽은 자'가 바로 신접한 자나 마술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점하는 귀신들을 말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모순된다. 이 신접한 자와 마술사 속에 있는 귀신은 비록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라 하더라도 죽은 자라고 할 수는 없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 귀신 자체가 항구적 존재이다. 항구적 존재는 죽을 수 없는 것이다. 신약 에베소서 2:1에 우리 성도를 가리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다. 단지 성경은 영적 생명이 없는 자르 죽었다고 한다. 이 점은 누가복음 9:60에서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장사하게 하라는 말의 두 번째 "죽은 자"에서도 같은 의미이다.

 세 번째로 그는 사무엘상 28장의 사울왕의 경우를 든다.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 갔을 때 그 영인이 한 노인을 올라오게 하였는데 사울이 사무엘인 줄 알고 땅에 대고 절하였다는 것이다(삼상 28:13, 14). 그런데 김씨가 강조하는 점은 사울왕이 그 신을 본 것이 아니고 신접한 여인만 보았다고 한 점이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사울왕 자신이 그 신을 본 것이 아니고 신접한 여인이 신접한 방법으로써 그 신을 불러 올렸고, 땅에서 올라온 그 신을 그 신접한 여인만이 복 있었다는 것입니다(삼상 28:13)"(마귀론 하, p.142).

 그런데 이때 나타난 사무엘은 사무엘이 아닌 이 신접한 여인의 술법에 이하여 끌어 올려진 다른 사후 존재라고 한다(Ibid., p.143). 왜냐하면 그 사무엘이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삼상 28:19)는 예언은 참 예언일 수 없다고 한다.

 "사무엘의 사후 형편과 사울의 사후 형편이 같은 수 없습니다. 사무엘은 죽어 거룩히 장사되었고(삼상 25:1), 사울은 자살하여 (삼상 31:4) 그 시체는 저주받아 더럽게 처리됐습니다(삼상 31:7-13). 결코 거룩한 자의 죽음과 타락하고 자살한 자의 죽음을 동일시 할 수 없습니다"(Ibid., p.143).

 비판해 보자.
 김씨가 그 사무엘이 참 사무엘일 수 없다는 데는 정통적인 신학자과 의견이 같다. 그런데 김씨가 사울은 그 신(사무엘)을 보지 못했다고 하는데는 문제가 있다. 그가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항구적인 존재일 뿐, 육신을 입고 있는 사울이 인격이 아닌 사후의 존재를 보았다는 말이 그의 귀신론의 체계상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사울은 분명히 그 신이 노인이라는 것도 알았고 겉옷까지 입고 있음을 알았고, 더욱이 15절에서 들려온 그 음성은 사무엘의 음성이었다는 점이다. 그의 말처럼 모습은 볼 수 없었다면 소리는 들을수 있는가? 귀신은 반드시 몸에만 들어오고 몸에 들어 올 때만 인격인데 어떻게 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또한 모순되는 것은 자신은 8,000명을 상대한 경험 속에서 귀신의 말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서 본문의 사무엘의 "내일…나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은 사실일 수 없다는 점이 모순된다. 김씨의 주장은 이같이 모순투성이다.

 네 번째 성구는 고린도전서 10:20-22이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그는 "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Ibid., p. 144)라는 짧은 한 마디로 위의 귀신이 사후의 존재라고 비약해 버렸다. 자시의 전제를 하나님 말씀의 전제로 삼은 것이다.

 다섯 번째 성구는 시편 106:28, 29이다.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케 함을 인하여 재앙이 그 중에 유행하였도다" 앞의 이사야 8:19에서와 같이 '죽은 자'를 귀신이라고 한다. 필자도 위의 두 번째 성구에서와 같은 모순점을 지적할 뿐이다.

 여섯 번째 성구는 마가복음 6:14-16이며, 일곱 번째 내용은 마태복음 16:13, 14이다.
 여섯 번째 성구는 헤롯왕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목 베인 요한이 살아났다고 생각했다는 내용이다. 일곱 번째 성구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라고 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에 그런 사상이 너리 퍼져있었을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당시의 사람들이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의 영 또는 악한 자들의 영이라고 생각했음을 부인하지 못하면서도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합니다"(Ibid., p.145).

 과연 위의 두 성구가 초대교인들이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 귀신이라고 믿었다는 말이 될 수 있으며, 아니 그렇게 믿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말이 될 수 있으며, 아니 그렇게 믿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그 신앙이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 있겠는가? 구체적 변증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위의 입곱 개의 성구를 살펴 보았으나 어느 것 하나 성경이 그의 사상을 뒷받침해 주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렇게도 중요한 계시라면 하나님께서 성경에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언급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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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 목사가 쓴 <베뢰아 귀신론을 비판한다>(기독교문화협회刊, 1990년 9월10일 발행)를 전재했습니다.

출처: 교회와신앙

김기동의 마귀론은 왜 이단인가?

제Ⅰ장
계시론에 나타난 베뢰아의 이단사상

 필자는 이단논쟁을 계시론에서 시작해서 계시론에서 끝내고 싶다. 신앙생활 자체가 말씀에서 시작하고 말씀에서 완성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Ⅰ. 성경은 문틈으로 들어오는 불빛에 불과하다는 베뢰아.
 이단이 성경을 보는 자세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성경계시만 충분한 계시로 인정하는 이단이요, 둘째는 성경계시 외에 이와 대등한 또는 이상의 자기계시를 가진 이단이다. 전자는 오직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함으로 이단이 된 자들인데, 세분하자면 표면적으로는 성경만 계시로 인정하면서 실질적으로 다른 계시를 가지고 있는 이단은 이에서 구별되어야 한다. 그런데 분명히 자기계시를 가지고 있는 이단들마저도 가능한 성경만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려한다.

 실례를 들어보자. 통일교인에게 원리강론은 성경 외의 계시오, 성경 위의 계시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표면적으로 성경을 경전으로 받고 있으며 원리강론은 성경에 대한 주석서라고 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이단은 두 개의 손을 가지고 있다.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있고 다른 손에는 또 다른 계시를 들고 있다. 또한 한 손으로는 성경으로 강조하고 또 다른 손으로는 성경을 경시하고 부정한다.

 이제 베뢰아의 계시론이 위의 사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자.
 김기동 씨는 한편으로는 성경을 대단히 강조한다. 1년에 성경을 42번 통독했다고 하고 61년에는 75독, 72년에는 108독 했다고 한다. 그가 성경을 강조하는 면을 먼저 살펴보자.

 "성경은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을 충분히 갖게해주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가 우리에게 있음을 뚜렷이 확신시켜 주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압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많은 우리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사망 권세로부터 구원했음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우리에게 믿음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치며 믿음의 모든 능력을 보증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김기동, 영원한 삶, 서울, 1982년, p.125).

 성경은 믿음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친다고 했다. 성경을 모르면 예수를 모른다고까지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알고 성령을 알고 하나님을 알고 예수를 알아야 한다. 누구든지 성경을 모르면 예수를 모르고, 예수를 모르면 하나님을 모르며, 하나님을 모르면 성령 또한 모른다"(김기동, 성령을 알자, 서울, 1986, 서문에서).

 이제 김씨의 다른 손을 보자. 한 손으로 강조한 성경이 무엇에 의해 무너지는지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이제 성경으로는 예수님을 다 알지 못한다는 말과 성경은 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과 같다는 말에 유의하자.

 "성경도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는 이들이 느낀 글들을 모은 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보고 과거에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하고 깨닫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경대로 살리라 하고 성경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성경기록의 좁은 그릇 안에서만 머물고 있기에 이보다 더 큰 많은 능력들을 경험하지 못하고 지나갑니다. 성령의 역사는 이보다도 더욱 많습니다. 성경에도 이미 밝혔듯이(요 21:25) 성령의 역사를 다 기록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록되었으나 성도들의 부활은 아직 남았습니다. 현대의학의 고민이고 큰 문제인 암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없으나 이에 대한 성령의 역사는 성경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성경보다 풍부하고 풍성합니다. …성령의 활동은 성경의 테두리를 초월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성경이란 아침 햇살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옴 같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과 그 능력과 역사 가운데서 지극히 적은 부분이 비추인 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현재 성경으로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 알지 못합니다. 성령으로 더욱 알고 그 날에 가서 그를 더욱 알고 영원히 살면서 영원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경적이냐 아니냐를 심히 따지기보다 성령을 제한하지 않는 것이 더욱 옳습니다."(김기동, 영원한 관계, 서울, 1983, pp.68-69).

 성경에 대하여 말할 때는 성경이 강조되나 성령의 역사에 대해 말할 때는 성령을 강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성경의 가치를 경시하고 있다. 성경의 좁은 그릇 안에 머물면 더 큰 능력들을(성경을 넘어서는) 경험하지 못한다는 말이 그렇고, 성령의 역사는 성경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 그렇고, 성경이란 아침 햇살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것 같다는 말이 그렇고, 현재 성경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 알지 못한다는 말이 그렇다.

 이같은 말은 사실 성경과 성령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며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사역까지 오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말처럼 성령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자신의 체험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김씨는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을 표면적으로는 인정하는 것 같이 보인다. 즉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경이 자신이 체험한 성령의 역사와 모순될 수 없고 성경과 다른 성령의 역사가 있을 수 없음을 원칙론적으로 인정하는 것같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현재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는 성경을 통해 역사하신 성령의 역사보다는 그 폭이 넓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구태여 그의 말로 꼬집자면 성경을 통한 성령의 역사는 문틈으로 들어오는 불빛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성경에만 매여 있으면 문틈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성령의 빛밖에 경험할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성경이 믿음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했던 것과는 완전히 모순되는 말이다.

 왜 이런 주장을 하게 되는가? 한마디로 그의 체험 때문이다. 그의 체험과 성경의 관계를 찾지 못해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강조하는 것 같으나 경험의 문제를 말할 때는(자신의 경험이 성령의 역사라고 믿고있기 때문에) 성경의 능력과 가치를 제한해야 하고 심지어 성경으로 성경을 폐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경험주의요 신비주의의 길이다.

 성경을 66권으로 제한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러나 성경 기자들이 성경을 기록해서 성경이 아니요 영감으로 기록된 것만 성경이다. 바울은 고린도서 외에 개인적인 편지를 고린도에 써 보낸 일이 있으나 영감된 글이 아니었다(고전 5:9).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성경을 66권으로 제한하셨을까? 왜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사복음서는 침묵하고 있을까? 왜 세상에 둘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예수님의 행적(요 21:25)을 기록하지 않으셨을까? 왜 사복음서는 헤아릴 수 없을 예수님의 기적들을 35건으로 제한하여 기록했을까? 더욱이 왜 성경은 귀신에 대해 많은 부분을 침묵하고 있을까?

 김씨의 말처럼 마귀를 모르면 예수를 모른다면 정녕 성경은 마귀에 대해 더 정확하고 확실한 지식들을 전해 주었어야 했을 터인데 왜 그렇지 않을까? 김기동 씨의 말처럼 66권 성경으로조차 어떤 경험을 성경적이냐 아니냐를 따지게 되면 성령을 제한하는 것이 된다(영원한 관계, p.69)면 어떻게 우리는 성경 속에서 예수를 알고 예수를 믿을 수 있을까?

 더욱이 김씨의 귀신론과 같은 교리는 교회사에 없었고 예수를 아는데 마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구원론을 주장한 초대교회 교부는 한 사람도 없었는데 그들은 어떻게 예수를 알고 믿었을까? 김씨의 말처럼 기독교 2,000년 역사에 이 새로운 역사인 베뢰아 운동은 왜 이제 나타났어야 했을까? 그렇다면 김씨의 마귀론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불빛보다 더 밝은 성경 밖의 계시로 보아야 할까? 베뢰아의 가르침은 과연 성령을 제한하지 않는 성경 위의 계시일까?

 예컨대 성경은 천국과 지옥의 존재는 확실히 밝히고 있지만 우리가 더 알고 싶은 많은 부분을 침묵하고 있다. 그렇다면 천국지옥 계시를 위해 누구의 경험을 첨가시켜야 할까? 「내가 본 천국」의 저자 펄시 콜레의 경험일까? 「다가오는 미레의 저자 이장림 씨의 경험일까?

 김씨가 계시론에서 이단의 뚜껑을 열게된 것은 자기 경험을 성경과 일치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이다. 그는 성경은 해석을 하면 안된다고 하는 기상천외의 자가당착적 말을 하고 있지만(마귀론 상, p.10) 그는 자기경험의 합리화를 위해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그릇 해석하게 된 것이다. 그가 성서란 가늠자를 통해 경험이란 가늠쇠와 맞추어 총을 쏘면 목표물에  맞는다는 도식(Ibid., p.10)은 얼핏 보기에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그릇된 도식이다. 성서는 모든 경험을 비판할 수 있는 완전한 진리이다. 경험을 통해서만 진리를 보여주는 불완전한 진리가 아니다. 성서는 그것 자체가 진리임은 하나님은 우리가 경험하지 않아도 하나님이심과같은 이치이다.

 여기까지에 김씨가 계시론에서 보인 이단사상은 그를 옹호하는 다른 신학적 기준에 의해 반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경험을 나타내고 그것을 성경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그의 시도는 피할 수 없는 다음과 같은 이단사상을 낳게 되었다.

Ⅱ. 김씨의 설교도 성서적 가치를 지닌다는 베뢰아

 김씨는 성경과 성서를 구분하다. 성경은 가감할 수 없는 것인데 이는 계시이기 때문이요, 성서는 가감할 수 있는데 이는 증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경은 율법과 복음인데 율법은 모세오경이요 복음은 공관복음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즉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이기, 민수기, 신명기)과 공관복음(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의 여덟 권은 성경으로 가감할 수 없으나 나머지 58권은 가감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의 간증이나 설교도 먼 훗날 증거로서 성서가 될 수 있다는 망령된 말을 한다. 이는 그의 테이프 24-1에 잘 나타나 있다. 직접 인용해 보자. 말로된 것을 그대로 옮기면 불필요한 말이 많기 때문에 수식어는 생략했으며 줄인 말은 괄호 속에 넣었다.

 "신의 계획을 가리켜 경륜이라고 합니다. 이는 피조물과 의논없이 진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신적 작정이라 합니다. 이는 피조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요? 율법을 가리켜 성경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인간에게 계시하시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기록한 책을 율법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직접 돌판에다 이렇게 쓰셨지요? 율법 대개 구약에서는 모세오경이라고 하지요. 오경 자체가 모세가 고의적으로 성경을 위해서 기록했지요?"

 "아주 좀 냉정하게 율법을 성경이라고 말하고 그 다음에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의 생애가 누가복음까지 삼복음, 공관복음을 가리켜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외에는 성경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욥기가 있다고 합시다. 또는 열왕기나, 역대기나, 다니엘서나 또는 많은 이런 책들이 있는데 욥기를 말하면 하나의 어떤 가정 이야기인데 그러나 이런 가정의 이야기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율법을 증거합니다. 율법을 시인합니다."

 "율법을 시인해 주는, 율법을 증거하는, 율법을 보호하는 그러한 글을 가리켜 성서하고 합니다. 어느 역사 이야기를 기록했는데 그 역사 이야기가 그런 역사를 통해서, 그 기록한 글이 이 내용 중에 아주 다분히 율법을 지지하는 면이 있을 때 이는 거룩한 글이 될 수 있어요. 그를 성서(라 해요)."

 "오늘날 설교집이나 간증집, 이런 것도 수백 년 후에는 성서적 가치를 가지고 있을 수 있어요. 지금도 이런 소리를 하면 욕을 먹으니까 말 못해서 그렇지요. 그것도 성서와 같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어요. 다 여러분의 설교도 마찬가지로 (그렇습니다) 이렇게 그들의 증거나 그들의 글이 성경을 지지할 수 있는, 다분히 지지하는 그러한 내용의 글을 가리켜 성서라 합니다."

 "신약에 있어서 예를 들면 사도행전이나 기타 그런 편지들이 그것은 증인들에 의해서 그 예수님의 생애를 지지하는, 시인하는 다분한 내용이 들어있다 이거야. 이를 성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이 성경은 가감할 수 없는 것이 성경이예요. 가감할 수 없어요. 예수님의 생애도 가감할 수 없어요. 영원히 가감할 수 없지요. 그것 뿐이니까."

 "그러나 성서는 확대할 수 있고 얼마든지 책을 더 늘려갈 수도 있다 이거야. 줄일 수도 있고 더 많은 책이 막 추가될 수 있다 이말이야. 성경이라고 하는 부분은 결코 가감할 수 없는 절대적인 부분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가감할 수도 있다 이거야. 책을 그보다 더 추가할 수도 있고 또는 그것을 줄여버릴 수도 있고 하는 부분을 가리키고. 그것은 인간들이 신앙으로 우리 신앙으로 증거한 것이니까.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이렇게 이야기 듣고도 더 생각하면 성경이 얼마나 간결하고도 얼마나 뚜렷한가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비판할 필요가 있겠는가? 없다고 여긴다. 소개하는 것만으로 앞에서 보인 계시론의 숨은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자신의 체험을 강조하기 위해 성경을 약화시켰듯이, 성경과 성서를 구분하는 이단적 교리체계를 세운 것은 자신의 글을 성경적인 수준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에서 나왔음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종교개혁자의 말을 결론으로 삼자.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멎는 곳에서 멎자.


제Ⅱ장
신론에 나타난 베뢰아의 이단사상

 김씨는 이 신론에서 이단이 되기에 필요충분한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다.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누어 이를 증명하겠다. 베뢰아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이다. 둘째, 베뢰아는 예수님의 양성을 모두 부인한다. 셋째, 베뢰아의 성령은 허수아비다.

Ⅰ. 베뢰아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이다.
 그동안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김씨를 따르는 추종자들과 그를 옹호하는 자들은 삼위일체론 문제에 대단한 반발을 보였다. 워낙 김씨가 삼위일체를 강조하고 삼위일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그가 정통적인 삼위일체를 믿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김씨가 강조하고 믿는 삼위일체는 이단으로 정죄된, 시베리우스가 "동일한 본체인 세 형태"라고 주장하던 사역적 양태론인 것이다. 즉 세 분 하나님은 세 인격이 아니라 한 인격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살펴보자.

 "성부는 하나님의 본질이요, 성자는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성령은 하나님의 본영입니다. 그러니까 본질로서는 아버지요, 본체 곧 형상으로서는 아들이라 하고 영으로는 성령이라는 것입니다."(베뢰아 사람 제7권, 1988년 7월호, p.40).

 성령을 알자(베뢰아 도서출판, 1986)란 책에서, 또는 강의 테이프마다 같은 말이 수없이 반복된다.
 "성부는 하나님의 본질이시며 성자는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성령은 하나님의 본영이십니다. 본질이란, 영이라는 말이 아니고 누가 하나님이시냐 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도 볼 수 없는 본질로서는 아버지 되시고, 보이는 곳에 나타나신 분, 곧 피조물들이 그를 확인하여 그의 존재가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본체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하나님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형상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고 영이십니다. 그래서 본영으로서 성령이 되십니다. "

 "이는 질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시냐? 할 때 그 하나님은 본질을 말하는 것이기에 아버지이시며 이 분이 나타나셨을 때는 본체이시며 영으로 오셨을 때에는 본영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나 영들이 많기에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주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실 때는 아버지이시고 우리 안에 계실 때는 성령이십니다."(성령을 알자, pp. 72-74).

 위의 말은 비교적 무슨 소리인지 선명하게 이해가 안될 것이다. 단지 인격이 하나요 나타난 모양에 따라 다르다는 사역적 양태론에 그 초점을 맞추며 다음 글을 보라.

 "하나님은 곧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예수 안에 있을 때 아버지가 되십니다(요 14:8). 아버지가 성도 안에 있으면 성령이 되십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는 성령은 아버지가 되십니다. 삼위의 각각 개체의 인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장소에 따라 불리워지는 이름이 다릅니다. 이는 곧 세모꼴을 어디서 보나 하나인 것과 같습니다. 서로 각각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은 오직 하나입니다. 각각 개체의 인격으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얼굴을 보는 방향에서 다르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과 성령이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곧 성령님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자기가 자기 안에 있는 아버지에게 기도한 것입니다."(T.P.9-2)

 이보다 완벽한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은 없다. 김씨를 옹호하는 어떤 자의 글을 보아도 김씨의 위의 주장을 양태론적 삼위일체가 아니라고 하지는 않았다. 오직 자료의 신빙성 문제에 대한 시비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테이프를 들어보면 더욱 선명한 양태론주의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하신 기도는 예수님과 하나님은 인격이 하나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가 자기에게 기도한 것이라는 말은 이 때문에 나온 말이다. 절대로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은 예수님이시고 성령은 성령이시다. 김씨의 말처럼 아버지가 성도 안에 있을 때 성령이 아니라 성령은 성도 안에 있든지 성도 밖에 있든지 성령이시며, 또한 성령이 아들 안에 있을 때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든지 아버지이시다.

 그의 삼위일체론이 양태론임을 보여주는 자료는 너무나도 많다(T.P.9-2, 29-2, 성령을 알자 등). 김씨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면 이단이라 하며 여호와 증인을 실례로 들어 설명했다. 김씨가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자에게 쏜 이단 정죄의 화살이 결국 자신의 심장에 박히고 만 것이다.
 
Ⅱ. 베뢰아는 예수님의 양성을 모두 부인한다.

 김씨는 표면적이고 이론적으로는 인성을 인정한다. 아니 인성만 인정할 뿐이다. 그런데 그 인성마저도 정통교회 사상과는 다르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시고 이 땅에 오신 후에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신이라고 하면 오히려 이단이라는 것이다. 정통교회는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걷고 사람을 살리시는 등의 기적을 통해 신성을 주장하는 반면, 김씨는 그것은 우리 인간도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김씨가 예수님을 인간으로만 주장하는 성경적 증거는 바로 요한 2서 1:7이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 그리스도니"(요이 1:7).
 먼저 김씨가 생각하는 예수님의 신성을 살펴보자.
 테이프 9-2번의 내용을 가능한 그대로 적되 불필요한 수식어 는 생략했으며 줄임말은 괄호 속에 넣었다. 이어지는 29-2번이나 19-2번도 같은 방법으로 기록했다.

 "육체가 영이니까 영이 육체가 된 것이니까 썩지 않는 몸이니까 예수는 부활했더라도 그 상처, 못자국을 그대로 가지고 오지만 인간은 부활 때 상처(가 즉) 얼굴이 얽었든간에, 무슨 못으로 찔렸든, 칼로 긁혔든간에 상처가 없지요. 그것은 상처는 흙으로 돌아갈, 그것은 흙이 상처를 가지신 것이지 영이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오직 영원히 상처를 가지신 이는 한 분 밖에 없어요. 그분 한 분 밖에 (없어요). 영원히 영원히 한 분밖에 없다, 이 말이예요."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이 그가 바로 성령이예요. 그래서 성령이 예수 안에 있을 때는 아버지가 되시지요. 아버지가 내 안에 있는 것 같이 내가 너희 안에 있다. 그가 우리 안에 있을 때 또는 성령을 우리 안에 주십니다.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의 영은 내가 너희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있는 것 같이 '내가 너의 안에 (있다)' 할 때 바로 이 육신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이가 바로 우리 안에 있을 때,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가 생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내 말이 생명이요 영이라고 했는데 생명이 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와 있을 때는 이는 보혜사예요. 증거하시는 이란 말이예요. 보혜사, 변호사라. 변호사, 증거하시는 자라. 그러나 우리가 사는 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서 사는 것이예요(계 5:11)."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라고 했습니다). 내 살을 먹어 너희가 영생이 있고 내 피를 마시는 너희에게 생명이니라. 예수의 피가 성령이 아니예요. 예수의 살이 성령이 아니예요. 영신(영의 몸이란 뜻: 필자 주)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피를 흘린 것입니다. 영신입니다. 곧 예수님의 우리 안에 있는 그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곧 예수의 몸이요 말씀이시며 영이시란 말이예요. 그리스도 영, 여기에서 대개 많은 사람들이 혼돈하는 것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누구시냐? 성령이시다. 성령이 누구시냐?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냐?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 그리스도는 사람의 몸에서 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어떻게 되는고 하니 사람이 하나님이다.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말임 : 필자 주)."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곧 그 안에 있는 이가 하나님 아버지시다. 우리 안에 있는 이가 곧 성령이시다. 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자꾸 인격을 따로 보고 있기 때문에 성경이 아주 복잡하게 되고 (있습니다)."

 위의 "예수님은 영이 육신이 된 영신이라고 한 점과 예수님을 하나님이라 하면 사람이 하나님이시라"는 항에 주의하며 다음 내용을 보자.
 이는 테이프 29-2의 내용이다.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다. 하나님의 아들. 그러나 그가 육신으로 오시기 전에는 아버지 안에 있지요. 우리 어린아이가 엄마 품 속에 있는 것과 똑같지요. 똑같애요. 그래서 우리가 아들 할 때는 영적 존재로 생각하는데요(영적으로 생각지 말라는 뜻 : 필자 주) 아들 할 때는 반드시 사람으로 오신 이를 말해야 되지. 그래야 인격이 되니까. 하나님의 아들 할 때요? 육신으로 오신 이가, 사람으로 오신 이가, 사람이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사람이신 그가 육신으로 오심으로 아들의 인격이 세상에 현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아들이신데, 성령이 아들 안에 있을 때 아버지라고,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할 때 영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반드시 사람으로 오신 이를 말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끝으로 다음의 결정적인 내용을 들어보자. 이는 테이프 19-2번이다.
 "예수의 생애는 신의 생애가 아니고 사람의 생애입니다. 물 위를 걸은 것은 사람이신 예수가 걸은 것입니다. 사람이 걷는 것이니 보편적인 것입니다. 무덤이 열리기 전까지 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어느 한 부분이 신이라고 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의 보편성을 부인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김씨가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면을 책으로부터 살펴보자.
 김씨의 말에 의하면 예수님이 성령에게 존칭어를 쓰셨는데 이는 예수님은 사람 인자가 되셨기 때문에 성령을 자기와 같은 수준에서 말씀하실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성령을 말씀하실 때마다 '내가 가면 그가 오시리니' '오실 때에' '오시면' '너희와 함께 계시면'하여 존칭을 쓰셨습니다. 이처럼 주님도 성령에 대해 함부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존칭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자신보다 더 높이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기에, 곧 피조물과 함께 하시어 피조물이 수태되는 것같이 사람 몸에서 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땅에서 식물을 먹고 피곤하여 저녁에는 주무시며, 죽임을 당할 때에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 곧 인자로 계셨기에 그 동안은 성령을 자기와 같은 수준에서 말씀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일체 되시지만 인자 예수가 받은 영광보다 성령은 더 크신 영광을 받아야 할 분입니다."(성령을 알자, p.13)

 예수님이 몸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신이 아니라는 말은 결국 신성을 부정한다는 말인데 정통신학을 한 자라면 이것만으로도 이단이 되고도 남음을 알 것이다. 교회사적 변증은 인성문제까지 취급한 후에 하도록 하고 간단한 성경적 변증을 먼저 해보자.
 도마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 김씨의 말에 의하면 도마는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했으니 이단이 될 것이다. 또한 김씨에 의하면 바울도 이단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바울도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

 마찬가지로 사도 요한도 이단이 되어야 한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요일 5:20).

 그러면 이제 그가 그렇게 강조하는 예수님의 인성 속에 나타난 이단사상을 정리해 보자.
 요한2서 1:7에 의해 예수님은 인간이심을 주장해야 한다고 하지만 신성을 부정하는 것만으로도 이단이다. 그런데 그가 주장하는 예수님의 인성마저도 역사적 기독교와 다르다는 점이다. 그는 요한복음 1:1,14에 근거하여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는데 이 말씀은 요한복음 6:63에 의해 곧 영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을 영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로서 영은 항구적 존재이니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의 영과 같은 수준으로서 인격이 아닌 항구적 존재"라는 것입니다(T.P.9-2).

 이같은 사상의 맥락에서 다음 책들의 글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말씀이며 이는 진리요 생명이며 세상에 비치는 빛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과 말씀은 동격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생명과 빛도 동격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내가 빛을 보니 독생자의 영광이라 말한 것입니다"(요 1:14).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하는 일은 말씀으로 하는 일입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패배를 당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인 생명 곧 빛 때문인 것입니다. 귀신도 이 진리와 생명과 빛 때문에 쫓겨나는 것입니다"(마귀론 상, p.23).

 "그러므로 사람은 생령이 아담이며 예수는 육신이 아담인 것입니다. 같은 아담인데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을 때 아담이 된 것이며 사람은 영이 생령이 되었을 때 아담이 된 것입니다. 곧 사람은 올라갔고 주님은 내려오신 것입니다. 사람은 항구적인 가치가 부여됨으로써 생령인 아담이 되었고 예수는 종의 형상을 입음으로써 아담이 된 것입니다. 같은 아담이지만 예수님의 육신과 우리의 영의 수준이 같기에 예수님의 육신의 죽음은 사람의 영의 죽음을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은 신령한 것이기에 썩지 않을 것이 순간에 몸으로 부활하여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화장하지 마라' 부활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육체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화장을 하든지 않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이 영이시기에 그 육신의 상처가 그대로 영원해지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져 절름발이가 되어 살다가 죽었다 할지라도 영이 절름발이가 아닌 이상 온전한 상태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Ibid., pp.90-91).

 "예수님의 말씀은 영입니다. 예수님의 육체는 영입니다. 그의 흘리신 피는 영입니다"(베뢰아 사람 9권, 1989년 3월호, p.44).

 이제 비판해 보자.
 먼저 김씨는 요한2서 1:7의 내용을 오해하고 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의 인성만 인정하면 이단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오직 그 당시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고 신성만 인정하던 가현설주의자(도케티즘)에 대해서 요한이 한 말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시지 않고 영으로 오셨고 영으로 죽으셨고 영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인성을 qwjd해도 이단이지만 반면에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해도 이단인 것이다. 바로 아리우스가 예수님의 신성을 제한하다가 니캐아 종교회의 때 이단이 된 것이다.

 예수님의 양성문제는 중요하다. 초대교회 종교회의 대부분은 바로 이 예수님의 양성문제를 중심한 이단논쟁이었음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유사하나 하나님이 아리라고 주장하던 아리우스가 이단으로 정죄된 때가 니캐아회의였으며(325년), 그리스도의 인성을 제한하던 아볼리나리스가 이단으로 정죄되던 때가 콘스탄티노플회의요(381 년), 그리스도의 양성이 완전히 독립되었으나 승천할 때 합해진다는 네스토리우스가 정죄된 때가 에베소회의요(431년), 그리스도의 양성을 부정하던 유디게가 정죄던 회의가 칼케돈회의(451)였다.

 그렇게 보면 이 양성 중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져 어느 하나만 주장하든지, 어느 하나를 제한하든지, 아니면 둘 다 부정하든지, 둘을 혼합시키든지, 둘을 분리하든지 하면 이단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비혼합적이요, 비분할적이요, 비준리적이요, 비변질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김씨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고 있는데 그나마 주장하는 인성도 잘못된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육체는 항구적 존재로서 인격이 아니라고 하니 그리스도의 인성은 분명 우리와 같은 인성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의 인성은 죄성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우리와 같은 인간인 것이다(고후 5:21; 히 4:15).

 이 점에 대한 신조들의 내용을 직접 살펴보자.
 먼저 니캐아 신조의 내용이다.
 "…유일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온 우주 앞에 나셨고, 참 신이시며, 참 빛이시며, 참신 가운데 신이시며, 하나님에게서 나셨고, 창조함을 받지 않으셨고, 성부 하나님과 같은 본질이시며 그로 말미암아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고…"
 다음은 콘스탄티노플 신조이다.

 "또 오직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독생자이시며, 모든 세대에 앞서서 아버지에게서 나신 분이며, 빛으로부터 나신 빛이며, 참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참 하나님이시며, 피조자가 아니고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시고, 그 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된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양성문제에 있어서 특히 신성문제에 있어서 더욱 선명해지고 분명해진 것은 아다나시우스 신조이다. 살펴보자.
 "…바른 신앙이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이시며, 인간이신 것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부의 본질에서 나신 신이시며, 온 우주에 앞서 나셨으며, 인간으로서는 성모 마리아의 본질로부터 나셔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칼케돈 신조에서 조금만 더 살펴보자.
 "그는 하나님으로서 또한 사람으로서 완전하시며, 그는 실제로 하나님이시며 또 실제로 사람이시며, 합리적인 영혼과 몸을 가지고 계신다. 그의 신성에 관한한 그는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타고 나셨고 또 그의 인성에 관한한 그는 다만 죄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으시다. …우리는 이 한 분의 유일한신 그리스도-성자, 주, 두 가지 본성을 타고 나신 독생자를 인정하며, 이두 가지 본성이 혼성되거나, 한 본성이 다른 본성으로 변하거나, 두 다른 분리된 범주로 갈라지거나, 양성의 영역과 기능에 따라 각각 대립되지 않는 것을 인정한다."

 김씨가 예수님의 양성문제에 있어서 이단의 화살을 피해 갈 역사적 성경적 길이 있는가? 한마디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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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 목사가 쓴 <베뢰아 귀신론을 비판한다>(기독교문화협회刊, 1990년 9월10일 발행)를 전재했습니다.

출처: 교회와신앙


서론

김기동의 마귀론이 한국교회에 일으킨 문제점은 무엇인가?

Ⅰ. 김기동은 누구이며 베뢰아 아카데미는 무엇인가?

이단연구에는 두 가지 자세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현상학적 연구요, 또 다른 하나는 신학적 연구 내지 성경해석학적 연구이다. 신학적 성경해석학적 연구가 이단논쟁의 핵심이지만 현상학적 연구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현상과 사상은 밀접한 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김기동 씨가 누구인지 살피려는 것은 그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가 목적이 아니요, 그의 신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영등포 소재 성락침례교회의 담임목사요, 베뢰아 아카데미 원장인 김기동 씨를 귀신 쫓는 목사로 비교적 잘 알고 있다. 그는 1938년 6월 25일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64년 봄에 서울로 오기까지 주로 예산에서 살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에 다니지 않았고 1957년 10월에 예산 감리교회에 처음 등록하였다고 한다. 그의 학력은 1970년 명지대학을 졸업하고, 1972년 대한신학교를 졸업했고, 1979년에 대한신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가 말하는 자신의 신앙경력은 다음과 같다.
 교회에 등록한 다음 날, 이웃 장로교회 부흥회에 참석하여 개구리 소리 같은 방언을 했으며, 처음으로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독특한 귀신체험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1981년 충남 예산군 광시면에 사는 최병묵 씨의 부인이 심장병으로 죽었을 때 염을 마친 시신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려 살렸던 것을 시작으로 수십 명의 죽은 자를 살렸다고 하며(1979년 6월 1일까지 10명을 살렸다고 함), 또한 수십 만 명의 귀신을 쫓아 질병을 고쳤다고 하며(85년 당시 40만 명이었음), 현재 성락교회의 교세는 4만 명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베뢰아 아카데미란 무엇인지 살펴보자.

 그가 1979년에 12명을 중심으로 자신이 깨달은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한 모임이 베뢰아 아카데미가 되었는데(베뢰아란 이름은 사도행전 17:11에서 따온 이름임) 현재는 수십기의 졸업생까지 배출시켰다고 한다. 베뢰아 아카데미는 주 1회 2시간씩 2년간 공부를 하는데 김씨의 말에 의하면 통일교인들도 더러 와서 배운다고 자랑하고 있으며 한국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는 이 베뢰아 운동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자랑하였는데(85, 11) 그가 속했던 기독교 한국 침례회 총회에서 1987년 11월 16일에 이단으로 규정받고 자기를 지지하던 자들을 중심으로, 미국 남침례회 총회와는 관계가 없는 기독교 남침례회란 이름으로 새로운 교단을 만들게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베뢰아 아카데미 학생들은 생각밖에 많다. 문제는 그 교단에 속한자 뿐만 아니라 기성교회에 속한 자들이다. 김씨의 마귀론에 근거하여 기성교회에 목회하는 목회자들도 반드시 경계되어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돌이키기를 촉구하며, 참고로 그와 같은 사상의 사람들 몇과 단체를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우선 신사동 소재 그레이스 아카데미의 서울대 국악과 교수인 한만영 씨를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김씨와 내용상 아무런 차이가 없는 다른 단체이다. 또한 인천 소재의 한국 예루살렘교회 이초석(본명 이춘석)씨와, 마산 소재의 산해원 부활의교회 이태화 씨,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벧엘교회 김요한 씨, 은혜한인교회의 김광신 씨도 똑같이 경계해야 할 사람들임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Ⅱ. 본 글의 취지와 방향

 이단을 정죄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의 감정이 개입되어서는 안되며, 자료는 분명하고도 객관적이어야 하며, 비판기준은 반드시 역사적이요 정통적인 교리에서 나와야 한다.

 이단자들은 정통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완전히 정죄되기까지는 정통교회와 다른 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통교회와 교리상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여 표면적으로는 정통교회 속에 있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단으로 정죄되면 교리적인 면이 아닌 자신들의 부흥을 시기하여 생긴 감정적인 조치였다는 주장을 하면서 그 화살을 피할 수 있는 한 피하려 하는 것이 상례이다. 예컨데 구원파란 이단(기독교복음침례회)의 교주 권신찬 씨의 경우 초기에는 정통교회와 교리적인 차이가 없는데 감정적인 문제로 인해 이단으로 정죄된 것으로 주장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지금까지 김기동 씨가 내적으로는 기성교회나 기성신학자나 기성교회 목회자들을 공격한 흔적은 수도 없이 많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내 놓고 베뢰아의 마귀론을 정통교회 교리와는 다른 복음임을 천명하며 가르치지는 않았다. 이 점은 현재 김씨를 이단이 아니라고 옹호하고 있는 자들도 그 교리의 기준을 어느 정도는 정통교리에 의존하고 있는 점을 보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어떤 형태로 나올지 그 귀추를 지켜보아야 한다. 김기동 씨의 교리체계로 보면 정통교회가 오히려 이단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단을 정죄할 수 있는가? 어떤 권위로 이단을 규정할 수 있는가? 혹자는 교단만이 이단을 정죄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교단적으로 이단을 정죄하는 것은 개인적인 감정이 배제될 수 있고 권위가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고 옳은 일이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종교회의를 통해 이단을 정죄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교단도 얼마든지 감정적으로 이단을 정죄했음을 알아야 한다. 단체의 감정도 개인의 감정범위를 못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회의에서 이단을 규정하기 전에 개인적인 이단논쟁이 앞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개인이냐 단체냐라기 보다는 그 비판기준이 성경적이냐 또는 역사적인 기독교에 근거하고 있느냐 아니냐가 그 권위가 핵심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한 것을 총회적으로 연구보고한 내용과 일치시켰다. 가능한 한 필자 개인의 주관적인 입장을 피하려 하나 피할 수 없을 때는 그 점을 명시하여 글의 객관성을 유지토록 하겠다.

 비판의 기준만 객관적이어도 안 된다. 비판의 근거도 객관적이어야 한다. 아니 객관적이어야 한다기 보다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때로 사실이지만 객관적인 증거가 약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객관적으로 확실한 증거만 사용하겠다. 왜냐하면 그를 옹호하고 싶은 사람 누구에게도 불필요한 논쟁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이다.

 우선 일차적인 자료는 책이다. 김기동 씨가 쓴 책들이 무려 스물 다섯 권 정도된다. 그 중에서 그의 마귀론을 분명히 알 수 있는 책 네 가지가 있는데 마귀론 상, 중, 하와 '성령을 알자'이다. 그는 마귀론 상권을 '마귀론'이라 칭하고, 중권에는 '미혹의 영이란' 부제를 붙였으며, 하권에는 '귀신이란' 부제를 붙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중권발행연도가 85년 10월 15일로 제일 먼저요, 상권은 85년 11월 27일 발행되었으며, 하권은 86년 9월 25일에 발행되었다. 발행처는 모두 도서출판 베뢰아로 되어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피할 수 없는 결정적인 자료가 하나 더 잇다. 그가 가르친 베뢰아 강의 테이프이다. 물론 테이프는 말로 했다는 점에서 글만큼의 책임성이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단들은 이단성을 교묘하게 숨기는 명수들이기에 글보다 테이프는 더욱 더 정직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예컨데 후론하겠지만 김기동 씨의 삼위일체론은 이단으로 정죄된 완벽한 양태론이다. 그런데 그 점이 책보다 테이프에 더 분명하고 확실하다는 점이다. 본인이 입수한 벽여 개가 넘는 테이프는 83년 봄부터 85년 봄까지 2년간 강의한 베뢰아 아카데미 9기생 테이프이다(앞으로 테이프의 고유번호와 함께 T.P.라는 약자를 사용하겠다). 필자는 먼저 가능한 일차적 자료인 책에 의존하고 그리고 보충적인 자료로 테이프를 사용하도록 하겠다.

 이단의 교주가 회개하고 돌이킨 경우는 한국교회 역사에 없다. 전략적이요, 형식적인 거짓된 회개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회개의 문이 있다. 김씨가 하나님과 성경과 교회를 참으로 사랑한다면 자신의 잘못이 성경적으로 바르게 지적될 때 회개하고 돌이키리라 믿는다. 그런 점에서 그를 정죄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만 이글이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원하며 글을 쓴다.

 먼저 밝히고 가야할 점이 있다. 김기동 씨는 사탄이라는 말과 마귀라는 말과 귀신이라는 말을 각각 의미로 사용한다. 타락한 천사가 하나님을 대적할 때 사탄이요,  인간을 대적할 때 마귀라는 것이며, 귀신은 제 명에 죽지 못한 불신자 사후의 영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넓은 의미에서 이를 묶어 마귀론이라 한다는 것을 밝혀둔다.

 본 글의 진행은 다음과 같이 하겠다. 본론에서 김씨의 마귀론을 소개 비판하고 결론에서 성경적으로 마귀가 무엇인지 밝히도록 하겠다. 본론은 네 가지로 나누어 소개 비판하려 하는데 제1장, 계시론에 나타난 베뢰아의 이단사상. 제2장, 신론에 나타난 베뢰아의 이단사상. 제3장, 창조론에 나타난 베뢰아의 이단사상. 제4장, 마귀론에 나타난 베뢰아의 이단사상이다.

Ⅲ. 성경적 마귀론을 자극하는 베뢰아의 마귀론

 진리는 힘과 비례한다고 믿는 자들에게 4만여 명의 교세와, 수천 명의 베뢰아 졸업생과, 축사현상으로 질병을 고쳤다는 수 십만명의 사람들은 김기동 시를 진리의 사람으로 인정하기에 충분한 수치이다. 김기동 씨와 그의 제자들로 인하여 일어난 한국교회의 혼란은 상상보다 큰 것이었으며, 그리하여 오래 전부터 복음적인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성경적 마귀론이 정립되기를 강력히 호소해온 것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신다. 그러기에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용하고 계시는 것이다. 오직 긍정적인 면으로 사용되느냐, 부정적인 면으로 사용되느냐가 다를 뿐이다. 구약의 바로도 하나님께 사용되었고, 신약의 가룟 유다도 사용되었다. 단지 부정적인 면에서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 김기동 씨를 통해 성서적 마귀론을 연구하도록 자극하게 된 것은 분명 부정적인 면에서의 그의 공로이다. 그동안 교계나 학계에서 마귀론을 정립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으며 이제라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을 다행한 일로 여김이 공통적인 목소리이다.

 교회사를 돌이켜 볼 때 언제나 이단에 대한 변증의 필요가 신학을 낳게 하였다. 그러기에 아리우스의 반삼위일체론이 아다나시우스의 삼위일체론을 낳게 했고, 어거스틴의 신학은 펠라기우스에 의해 자극되었다. 이처럼 이단은 정통교회의 신앙적 교리적 약점을 자극하고 보완 수정하고 견고히 하는데 공헌하게 된다.

 그렇게 볼 때 정통교회는 마귀론에 있어서 성서적 정립을 하지 못했음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2,000년 동안 꾸준히 발전하고 보완되어 온 신학의 진보가 엄청난데 마귀론이나 종말론에 있어서는 아직 어린아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마귀론에 대한 바른 정립이 안된 것은 한국교회 만이 아니라 세계교회가 동일한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는 성경이 마귀론에 대하여 많은 부분을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요, 둘째는 정통교회는 성경 앞에서 비교적 겸손하고 신중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교회사적으로 볼 때 이 점에 대한 이단의 자극이 정통교회에 없었던지, 있었다면 그 자극을 피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단은 진리를 말하나 진리는 목적이 아니요, 수단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부분을 오히려 확대하고 적은 가능성을 과장하여 교리체계를 세우는 것이 상례이다. 한마디로 성경 앞에 겸손하지도 신중하지도 않은 자들이 이단이다.

 사실 김씨의 마귀론이 비성경적이라는 생각은 한국교회에 오래전부터 싹터왔다. 72년부터 시작한 베뢰아 아카데미에 대하여 이단으로 규정하기까지 무려 15년이나 걸린데는 정통교회가 성경에 대하여 겸손하고 신중했던 덕을 그가 본 셈이다.

 어쨌든 김씨의 마귀론이 일으킨 한국교회의 피해는 표면적으로 나타난 것보다 내적으로 더 심각하다. 한국교회는 김씨에 의해 자극되어 시작된 마귀연구에 더욱 적극적 관심을 기울여 성경적인 마귀론이 정립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Ⅳ. 김기동 씨의 마귀론에 대한 개괄적 이해

 상상 밖으로 김씨의 마귀론을 중심한 교리체계는 복잡하고 방대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은 일관성이 없는 부분이 많아서 그것을 선명하게 캐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그의 방대한 사상을 함축적으로 집약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단이란 그 사상을 정확히 이해하여 분석해 줄 때 구체적인 비판을 하지 않아도 그것 만으로 이단논쟁의 임무를 대부분 완성한다고 본다. 그가 주로 사용하고 있는 몇 가지 언어들의 개념이 개괄적으로 파악되지 않으면 그의 사상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언어는 같아도 그 언어가 내포하고 있는 사상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본 장에서 김 씨의 마귀론을 먼저 개괄적으로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본 장은 김씨의 마귀론을 간결하게 요약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비록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본론에서 구체적으로 소개됨을 기억하여 개괄적 이해에 도움을 얻기 바란다.

 김씨는 자신의 마귀론을 이해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니 구원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으로 여긴다. 마귀를 모르면 예수를 모른다고 한다. 이를 직접 살펴보자. "그러기에 누구든지 예수를 아는 사람은 마귀를 알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를 알려면 마귀를 알아야 되며 그래야만 예수의 하신 일이 어떠한 일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모른다면 마귀를 모르고 마귀를 모른다면 예수도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는 많이 아는데 마귀를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이는 예수를 모른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목적 없이 혼자 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아는 분량만큼 인간을 알고 마귀를 알며 그리고 죄악이 무엇인가를 잘 알게 될 때 성경을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마귀론 상 pp. 14~15).

 구체적인 비판은 후에 하겠지만 오늘날 예수는 많이 알고 있으나 마귀를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는데 이는 예수를 모른다는 말과 같다는 그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이겠는가? 기성교인을 지칭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통교리와 다른가? 김씨의 마귀론이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마치는가? 표면적인 목적과 실질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이단논쟁이 시작되었는가? 왜 이단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었는가? 다음에 이어지는 본론에서 더욱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가며 더욱 세밀한 비판을 가하겠으나 먼저 본장에서 바른 문제의식을 가지도록 하자.

 김씨의 예수를 알려면 마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말은 비성경적인 것이지만 분명 김씨를 알려면 그의 마귀론을 알아야 함에는 틀림이 없다. 필자가 보기에 비성경적이요 비정통적인 교리를 가지고도 그를 추종하는 사람이 많은 점은 그에게 두가지 주관적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틀린 교리체계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주관적인 면에서의 장점은 있는 법이다. 그 첫째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그 둘째는 그의 축사현상으로부터오는 신비적인 힘 때문이다. 어쩌면 후자가 전자보다 그의 추종자들에게 더욱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씨의 마귀론은 넓은 의미에서 신비주의 범주에서도 분석 비판해야 한다. 경험을 강조하고 주관적 체험을 강조하는 자들은 전형적인 신비주의자이다. 이 점을 다시 비판하겠으나 또한 그가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예수님마저도 정통교리와는 전혀 다르다. 교회사적으로 가장 많은 이단논쟁을 불러 일으킨 양성(신성과 인성) 문제에 있어서 어느 하나도 정통교회의 교리와 같지 않다.

 그럼 먼저 창조론을 살펴보자.
 김씨의 창조론에 있어서 이단사상을 보여주는 내용은 여러 가지인데 그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절대창조와 선한창조가 무너진다는 점이요, 인간타락의 책임이 하나님께로 돌려진다는 점이다.

 그가 말한 "만물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이미 천사가 타락했기 때문에 이 타락한 천사를 멸하기 위해 만든 곳이 바로 이 우주입니다"(김기동의 마귀론 상 p.64)라는 이 말을 살펴보면 창세기의 만물 창조 전에 사탄이 타락했으며 이 우주는 곧 마귀가 지배하는 음부로서 그 마귀를 멸하기 위해 이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

 김씨가 우주라고 할 때는 새가 나는 공중하늘과 별들의 하늘, 즉 궁창을 합한 것으로서 원래 그는 하늘을 지구의 하늘(sky)과 둘째, 우주공간의 하늘, 즉 궁창(space)과 셋째, 하나님의 하늘(heaven)로 나누고 있다. 그런데 마귀가 처음 셋째 하늘에서 쫓겨날 때가 요한계시록 12:7~10이요, 둘째 하늘에 갇힌 때가 창세기 1:8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창조 둘째 날 궁창을 창조하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이 없는 것은 그곳은 사탄마귀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보아도 이 우주는 마귀를 멸망시키기 위해 창조된 것을 알게 한다고 하는데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이 둘째 날 궁창창조 문제로부터 많은 교인들이 미혹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 창조론에서 창세기 1:27,28의 인간과 창세기 2:7의 인간이 다르다는 이중아담론은 간과할 수 없는 그의 이단사상이다(이 점은 본론 3장에서 구체적으로 취급했다).

 이제 그의 신론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김씨의 신론은 삼위일체론에서부터 정통교회와 다르다. 한마디로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적인 삼위일체론이다. 김씨는 삼위일체를 가리켜 "성부는 하나님의 본질이시오, 성자는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성령은 하나님의 본영이십니다. 그러니까 본질로서는 아버지라 하고 본체는 곧 형상으로서는 아들이라하고 영으로는 성령이라 하는 것입니다."(성락교회 베뢰아 사람 7권, 88년 7월호, p.40)라고 하였는데 본질, 본체, 본영이란 말이 이해되는가?

 또한 후론하겠으나 김씨는 예수님의 신성도 인성도 모두 부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씨는 성경론에서도 완전한 이단이다. 그는 성령충만을 천사충만으로 본다. 그리고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신은 모두 천사로서(마귀론 상 p.62) 창세기 1:2의 "하나님의 신"도 성령이 아니라 천사를 가리킨다고 한다(Ibid., pp.61~62).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천사에 의해 이끌림을 받았기에 양자의 영이 없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Ibid., p.57).

 사도생전의 오순절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 천사가 임한 것이라 하며(Ibid., p.133), 그러니 우리는 천사를 잘 부릴 줄 알아야 한다(Ibid., p.129)고 한다. 정통교인들에게는 참으로 낯선 이론일 것이다. 김씨에 의하면 성령은 완전히 허수아비 신이 되어버리는데 김씨는 성령론에서도 피할 수 없는 이단자가 되고 만다.

 이제 끝으로 그의 사탄, 마귀, 그리고 미혹의 영에 대해 알아보자.
 천사가 타락하여 사탄과 마귀가 되었다는 말은 정통교회와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귀신과 미혹의 영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한다. 베뢰아의 마귀론은 사실상 그 초점이 이 귀신에 있고 귀신 쫓는 축사현상에 있다. 귀신은 제 명에 죽지 못한 불신자의 사후의 영으로서 제 명의 남은 기간동안 공중에 돌아다니며 인간을 괴롭혀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은 모든 질병의 원인이요, 모든 사고의 원인이요, 모든 중독의 원인이요, 모든 범죄의 원인이요, 모든 자살의 원인이라고 한다(마귀론 하, pp.170~174). 그 중에도 특히 귀신을 질병과 연결시켜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운동으로만 질병이 나을 뿐이지 약으로는 결코 질병을 고치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대표적인 주장이요 교리이다. 그동안 이것이 그의 장점으로 나타났지만 이것이 그의 모든 이단사상이 집약된 보루가 된다.

 그런데 이보다 정통교회 교인들에게 더 생소한 점이 있다. 소위 미혹의 영이란 것이다. 대부분 처음에 이 "미혹의 영" 문제에 개념이 파악되지 않는 것이 상례이다. 이 미혹의 영이란 가변된 천사를 가리키는데, 즉 가변된 천사 미혹의 영의 도움이 없이는 귀신이 단독으로는 우리 몸에 못들어 온다는 것이다(마귀론 하, pp.54~61).

 그런 점에서 미혹의 영은 그의 교리체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리에게 가변된 천사란 말이 더욱 생소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신자에게 천사를 파송했는데 그 천사들이 자기의 우두머리를 통해 가변되기도 하고 하나님에 의해 가변되기도 한다(마귀론 상, p.137)는 것이다. 이 하나님에 의해 가변된 천사는 성도 가 불의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할 때 가변시켜 미혹의 영이 되게 하는데(Ibid., p.139) 한 번 가변된 천사는 절대 다시 환원되지 않는다고 한다(마귀론 하, p.61). 그런데 마귀론 상권에서는(p.137)하나님에 의해 가변된 천사는 성도의 불의를 따라 가변된다고 했는데(왕상 22:19~23; 사 66:4,5; 겔 14:9,10) 하권에서는(p.61) 하나님께 과잉충성할 때 가변되어 미혹의 영이 된다고도 하였다.

 그렇게 볼 때 필자가 이를 분류해 보자면 천사가 가변되는 경우는 자기 우두머리를 따라 가변되는 경우와 하나님에 의해 가변되는 경우가 있는데 하나님에 의해 가변되는 경우는 하나님께 과잉 충성할 때, 그리고 지키고 있는 인간이 불의할 때(예컨대 신자가 혈기를 자꾸 부리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할 때) 가변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데는 김씨가 이론을 점차 수정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가변된 천사인 미혹의 영은 우리 인격을 지배하는데(마귀론 중, p.70)이를 이기려면 미혹의 영의 숫자보다 돕는 천사의 숫자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마귀론 상 p.141). 그래서 성락교회 교인들은 천사를 많이 보내 달라고 결사적으로 기도하고 있다.

 끝으로 알고가야 할 것이 있다. "인격"이란 말과 "항구적 존재"란 말의 개념이 파악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마귀론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 부분은 우리에게 너무나 생소하고 자기 주관적인 체계를 복잡하게 세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무슨 소리인지 알 길이 없다. 이 부분을 모르면 앞의 말과 뒤의 말이 달라지고 모순되더라도 그것을 발견하기가 불가능하게 된다. 필자가 본장을 기록하는 실질적인 목적이 이 사상을 이해시키고자 함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베뢰아 졸업생도 이 부분을 객관적으로 선병하게 이해하는 자가 별로 없었다.

 김씨는 영은 항구적 존재라고 한다. 그는 영을 항구적 존재라고 함은 영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면에서 이런 자기만의 용어를 만들어 쓰는 것이다. 직접 인용해 보자.
 "사람들은 죽음이라 할 때 육체가 없어지기에 아주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영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영원한 항구적인 존재가 바로 영입니다. 천사를 사는 영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항구적으로 살 수 있다는 데에 기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빛이면 빛으로 살도록 되어있는 것입니다"(마귀론 상, pp.30~31).

 그는 영은 오직 내세가 더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라고 한다.
 "몸과 혼 할 때, 여기에 영이 있다고 하여 더 이상의 다른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세가 더 있다는 것뿐입니다. 영원한 존재라는 것은 항구적 가치가 있다는 것 이상 다른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영적인 요소를 앎으로 '내가 항구적 가치를 지니고 있구나! 그러면 죽은 후 내세가 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하여 영생에 들어가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격에 영적인 요소가 더 첨가됨으로 영원한 존재 가치를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Ibid., p.83).

 그러면서 그는 인간의 영 자체가 신이요, 신은 천사를 말하는데 사람의 영은 천사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라고 했다(T.P.35-1). 그는 인간 삼분설을 주장하는데 영은 항구적 존재요, 혼은 인격이요, 몸은 육체인데 사람은 기능적으로 혼이 인격인데 실제로는 몸과 합해져야만 인격이 된다는 것이다(마귀론 상, p.80; 마귀론 하, p.62).

 그러나 사람이 죽을 때 육체가 깨어지면 혼은 영에 잠재되어 버리므로 항구적 존재가 되어 인격이 아닌 것이다. 혼은 몸과 함께 있을 때만 인격이 될 수 있고 몸이 없으면 인격이 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짐승의 경우 인격이 있는가? 라고 할 때 짐승은 혼과 몸이 있지만 그 혼은 각혼을 가졌기 때문에 인격이 못된다고 하는데 독자들은 각혼이란 말에 이해가 잘 안될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천사는 인격이 아닌가란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그는 이 점에 대해 천사는 육체가 없어도 완전한 인격을 나타낼 수 있다고 마귀론 하권에서 말했는데(p.62) 상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모순되는 말을 했다.

 "천사는 몸은 있으나 보이지 않는 형상으로서 인격이며 사람은 몸을 가진 인격입니다"(p.80).
 "천사는 몸은 있으나"란 말은 천사가 몸을 입고 나타나는 경우를 말하는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형상으로 인격이며"란 말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천사의 인격이나 사람의 인격은 같으며 또 하나님의 인격도 마찬가지입니다"(마귀론 상, p.80)라 하고 있다. 그리고 귀신, 즉 제 명에 죽지 못한 불신자, 사후의 영은 오직 몸에만 들어와 질병을 일으킬 뿐이지 영에는 절대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리송한 점을 하나 더 지적해 보자.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으며(요 1:1) 말씀은 영이기 때문에(요 6:63) 예수님의 육체는 곧 영과 같은 존재로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의 영과 같은 것으로 예수님의 육체는 인격이 아니라고 한다.

 "내 말이 영이라 할 때 영은 인격이 아닙니다. '영이 육신이 되어 말씀이 육신이 되어'는 똑같은 뜻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은 인격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육신은 영으로서 항구적 존재입니다"(T.P.9-2).

 이 얼마나 사탄적이요 기독교의 이름은 가졌으나 기독교가 아닌 반 기독교적인 소리인지 다음에 비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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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 목사가 쓴 <베뢰아 귀신론을 비판한다>(기독교문화협회刊, 1990년 9월10일 발행)를 전재했습니다.

출처: 교회와신앙

신천지 오류에 대한 것과 당부

김정한

기성교단과 교회에서 받아들일수 없는 신학적인 논란을 가져오는 글은 바로 조치합니다.
만약 글쓰기를 계속하려면 실명확인을 받아야 합니다

이글은 필자가 한국교회 목사들과 성도와 신천지 인들을 향해 쓴 것입니다.

 

한국교회 성도 여러분,

신천지 이만희 씨의 미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만희는 너무나 명백한 미혹자입니다. 이만희는 계시록 해석을 정말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천지인 여러분,

여러분들을 이단 사이비로 부르는 것은 이만희가 계시록 해석을 자신에 맞추어 해석함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반복된 비유풀이를 통해 점차 미혹되어서 그런 것입니다. 무슨 근거로 필자가 신천지 집단을 이단사이비 집단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그의 계시록해석을 들어보면 명백하게 들어납니다. 계시록해석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은 해석자의 신학적 배경에서 나왔기 때문에 해석자의 신학이 이단과 사이비가 아닌 경우 계시록해석 차이를 견해의 차이점으로 보고 이단사이비란 말로 정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천지 이만희의 계시록 해석은 해석상의 상이가 아니라 계시록 해석을 자신의 해석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며 자신이 ‘유일한 목자’요, ‘유일한 이긴 자’로 거짓주장을 하기 때문에 미혹자요, 거짓된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천지 강사들의 강론이나 이만희의 강론을 들어 본들과 혹시 들어 볼 분들은 그들이 어떻게 계시록을 해석하는지를 주목하여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 이단들이 그러하듯이 그들의 강론은 처음 도입부에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에 말하면서 서서히 말세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異端(이단) 끝이 다르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구약 - 신약 - 말세계시, 이 구조로 모든 것을 말하면서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 성취되고 신약의 말씀이 말세에 계시된 말씀들이 實狀(실상)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지금 나타나고 있지 않느냐고 하면서 계시록 사건을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계시록 사건을 이만희에 맞추어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계시록 2-3장에 나오는 7교회들에게 성령이 하시는 말씀서 ‘이기는 자’는 이런 이런 것들을 모든 교회 성도들 복수에게 주겠다는 말씀이 분명한 것인 대도 이만희집단은 ‘이기는 자’ 오직 한 사람으로 단수로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또 한 가지는 이기는 자에게 라는 미래형의 말씀을 이미 ‘이긴 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만희가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환란의 때’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자기를 ‘이긴 자’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고급반에서 장막성전에서 일어난 사건- 유x구 등 7사람과 얽힌 주도권 싸움에서 이긴 자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이만희의 거짓된 허구에 대해 이탈자가 생길까 그걸 쉬쉬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해하지 못할 것은 자기가 말세의 나타날 진리를 가진 목자라고 하면서 12지파를 모세가, 12제자를 예수님이 진리를 주듯, 이만희는 말세에 자기 말을 듣는 자들이 시온성 14만 사천이 된다고 하면서 전 세계 수십억 기독교인은 안중에 두지 않고. 한국 땅 남한의 지역을 12지파로 자기 맘대로 나누고, 12지파 장을 임명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는 비싼 돈 들여 여러 나라에 다니며 신천지교회가 해외로 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을 자랑삼아 선전놀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니면서 해외에 추종자들이 생기면 그들을 어떤 지파라고 나눌 지? 그 때 어떤 말을 할까 궁금합니다.

 

신천지 교우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제발 이만희에 거짓 미혹에서 벗어나십시오. 여러분이 다녔던 교회가 혹은 그 교회 목사님이 말세 때의 진리를 전하지 않고, 흠결이 많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만희 말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경계하라고 했던 미혹자요, 거짓된 자입니다.

여러분의 강사에게 “7교회 사자들이 누구며, 누구를 이겼느냐?” 고 물어보십시오. 그렇게 실상, 실상 그러면서 이만희가 ’이긴 자‘라고 했으니 이만희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이겼냐고 6하 원칙으로 알려달라고 그래보십시오. 제발 미혹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 목사님들이여,

제발 진리의 말씀에 목말라 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때에 따른 말씀을 전하십시오. 교회성장 지상주의와 미국제 번영복음 그것이 한국교회를 이렇게 만든 주범 아닙니까? 언제까지 어린아이 신자만 양산하시렵니까? 그래서 저들 미혹 자들에게 미혹되도록 하시렵니까? 우리 목사들이 언제까지 주님대신 세상을 사랑하려고 하십니까? 엎드려 기도합니다. 제발, 머리를 들고 성도들을 깨우며 성도들을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우도록 하십시다.



한기총 보수 교단들조차 외면…고신도 ‘한기총 탈퇴’ 결
 
김민정(atcenjin@newsmission.com) l 등록일: 2013-12-27 
 
 
한기총의 막장 행보가 보수 교단들의 잇따른 탈퇴로 이어지며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다. 예장합동에 이어 예장고신도 최근 임원회를 열고 한기총 탈퇴를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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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7일 박윤식 목사 이단 해제를 결의했던 한기총 실행위원회 모습ⓒ뉴스미션

 
예장합동에 이어 예장고신도 탈퇴 결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홍재철 목사)가 이단 해제도 모자라 대표회장 연임안 졸속 처리로 논란의 중심에 선 가운데 보수 교단들의 잇따른 탈퇴 선언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장 주준태 목사) 총회 임원회는 26일 회의를 열고 한기총 탈퇴를 결의했다. 예장합동(총회장 안명환 목사)에 이어 한기총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 줬던 보수 교단들이 줄줄이 한기총에 등을 돌린 것이다.

고신은 지난 2011년과 2012년 총회에서 한기총 탈퇴를 유보하며, 한기총 쇄신에 무게를 두는 쪽을 택해 왔다. 그러나 최근 무분별한 이단 해제와 함께 절차를 무시한 졸속 총회로 대표회장 연임안을 통과시킨 것이 교단의 신뢰를 저버린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구자우 사무총장은 “2년 동안 한기총 탈퇴를 유보했지만 큰 변화를 발견할 수 없었다”며 “이번 총회 진행 과정도 그렇고, 이단과의 문제도 선명하지 않고 오히려 합리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우리 교단의 가치관과 같이 갈 수 없다고 판단해 탈퇴를 결의했다”고 밝혔다.

예장합동 임원회가 한기총 탈퇴를 결의하자마자 홍재철 대표회장이 ‘합동 교단 탈퇴’를 선언하며 맞불을 놓긴 했지만, 대표적 보수 교단들이 떠나버린 상황에서 한기총이 연합기관으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회의적인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재철 대표회장은 26일 열린 총회에서 대표회장 연임에 도전할 것과 한교연과의 통합을 추진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고신 임원회의 이번 결의가 한기총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출처: 세이연

    막장 치닫는 한기총, 박윤식 목사도 이단 면죄부
    다락방 이어 평강제일교회까지, 한기총 어디까지 가나


    한기총이 이단해제 면죄부를 남발하며 위상을 스스로 추락시키고 있다. 한기총은 17일 통일교와 전도관 교리를 혼합한 사상을 가르쳐 주요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에 대해 ‘이단 해제’를 결의했다. 다락방 류광수 목사에 이어 또다시 이단 해제에 나선 한기총의 무차별적 행보에 교계 안팎으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기총 실행위에서 특별위는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에 대해 '이단성 없다'고 보고했다. 실행위는 만장일치로 특별위 보고를 통과시켰다.ⓒ뉴스미션

    “박윤식 이단성 없다…타 교단 이단 규정은 ‘조작’”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홍재철 목사, 이하 한기총)는 17일 오전 11시 한국기독교연합회관 3층 중강당에서 제24-4차 실행위원회를 개최했다.

    이날 실행위원회에서 한기총 이단사이비대책특별위원회(위원장 이건호 박사, 이하 특별위)는 과거 예장통합, 예장합동 등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바 있는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에 대해 이단성 여부를 재조사한 결과를 보고했다.

    특별위는 검증 보고서에서 “박윤식 목사의 신앙 및 신학사상을 철저히 검정한 결과, 박윤식 목사는 이단성이 없으며 그를 이단으로 규정한 기존의 발표는 잘못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예장통합과 합동에서 박윤식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한 내용들은 대부분 조작된 것이거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왜곡된 것들이었다”며 “박윤식 목사는 자신의 신학과 신앙 사상을 점점 발전시킨 결과 구속사 시리즈 9권을 발간하여 자신의 성경 중심적 개혁신학 사상을 밝히 드러냈다”고 치하했다.

    그리고 홍재철 대표회장은 20여분 간 박윤식 목사 재심을 위한 특별위를 구성하게 된 경위와 과정을 길게 설명했다. 이어 즉시 회원들에게 가부를 물었으며, 특별위의 박윤식 목사 이단 해제 보고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일부 실행위원 특별위 보고에 반발

    하지만 특별위의 이같은 검증 발표에 몇몇 실행위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합동보수 강창수 총회장은 “내가 박윤식 목사에 대한 이단 조사를 3년 넘게 했다. 특별위의 발표는 잘못된 발표다. 책이나 글로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진짜 문제는 신학 사상”이라고 반박했다.

    한기총 이대위원인 김창수 목사도 “특별위를 구성하려면 이대위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절차상 문제가 많다. 나는 이대위원임에도 한 번도 회의에 참석시키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홍재철 대표회장이 “그런 말은 하지마라”며 발언을 중단시켰다.

    또 박윤식 목사에 대한 재심 요청에 따라 이단성 여부를 ‘철저하게’ 조사했다는 한기총 특별위 구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제기된다. 한기총 내부에 이대위가 존재함에도 불구, 임시총회 결의도 없이 외부 인사를 위원으로 영입해 특수 기관을 구성하고 단 며칠 만에 임원회와 실행위를 열어 이단 해제를 순식간에 통과시켰다는 지적이다.

    김창수 목사는 “공청회나 전체모임 등의 절차를 전부 무시했다. 행정적으로는 신학박사보다 더 나은 목사님들이 많다. 이대위를 통해 행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대위 회칙에도 그런 내용이 있지 않은가” 반문했다.

    이에 대해 홍재철 대표회장은 “목사님들이 이 문제를 다루면 편협해진다. 신학적으로 밝지 못하다. 제3자인 신학자에 의해 검증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강변했다.

    박윤식 목사 이단해제가 알려지자 한기총 대표회장을 세 번 역임한 길자연 목사도 17일 오전 교계 일간지에 성명을 내고, 한기총의 이단 해제와 관련 모든 한기총 공직 사임을 밝혔다.

    길 목사는 “한기총은 한국교회의 연합 기관이지 이단의 해제를 주된 업무로 하는 기관이 아니다”라며 “한기총 소속 교단의 동의가 없이 한기총이 단독으로 이단을 해제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신앙과 신학적 입지를 뒤흔드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이단 해제된 다락방과 이날 실행위에서 해제된 박윤식 목사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음을 밝히며 “해제를 원할 시 한국교회와 각 교단의 합의하에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길 목사는 홍재철 대표회장의 취임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 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런 성명을 내면서 한기총의 이단해제에 대해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한기총 이단사이비대책특별위원회 위원들이 인사하고 있다. 특별위는 한기총 이대위와는 별도로 외부인사로 구성된 이단 조사 기관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뉴스미션

    문광부 “정관 변경 허가 취소, 지금 정관은 모두 무효”

    한편 이날 실행위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5일 한기총 정관 변경 허가를 ‘직권 취소’한다는 공문을 보낸 것과 관련해 논의가 있었다.

    문광부는 한기총 정관 제39조(정관개정) 3항에 ‘전항의 정관 변경은 총회 의결 즉시 효력이 발생하며 추후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승인을 받는다’라고 규정된 것과 부칙 44조 ‘개정 정관은 임시총회에서 의결된 즉시 시행한다’는 조항이 잘못됐다며 기존에 정관 변경을 허가한 것을 직권 취소했다.

    위 정관 내용은 민법 제42조 2항에서 ‘주무관청 허가가 없으면 정관변경 효력이 없다’는 규정과 정면 충돌한다. 때문에 문광부는 주무관청 허가 없이도 정관 효력이 ‘즉시’ 발생할 수 있도록 규정한 한기총 정관 39조와 44조 내용이 ‘무효’임을 밝힌 것이다.

    이에 따라 홍재철 대표회장이 임기 연임을 위해 지난 해 10월 개정한 정관부터 이후 정관 모두 법적으로는 현재 효력이 없게 됐다.

    문광부 이동희 행정사무관은 이와 관련해 “정관 변경 허가를 직권 취소했기 때문에 현재로선 2011년 7월 7일 정관이 유일한 합법적 정관”이라고 설명했다. 단, “지난 2년 간 홍재철 목사의 대표회장직 수행과 결의는 유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광부의 이같은 결정으로, 당장 홍재철 대표회장의 연임 시도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대표회장 임기를 ‘2년 단임’에서 ‘2년 연임’으로 바꾼 정관 개정안이 내년 1월 한기총 정기총회 일자까지 문광부 허가를 받지 못하면 대표회장 후보 출마조차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기총은 이에 따라 이날 실행위에서 이날 정관 39조를 ‘전항의 정관 변경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승인을 받는다’로 개정하고, 부칙 44조는 ‘삭제’하는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한편, 문광부에 다시 허가 신청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문광부 내 조율이 필요하고 허가가 떨어지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알 수 없어 1월 정기총회까지 주시해야 할 문제다.

    윤화미 ⓒ 뉴스미션
    출처: USA아멘넷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씨 육성설교①-씨앗속임
    한기총 이대위, “‘최삼경 일당’이 조작했다” 주장…과연?
    2013년 12월 17일 (화) 02:09:18 전정희 gasuri48@amennews.com

    ▲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씨 육성설교-씨앗속임

    평강제일교회(구. 대성교회) 원로목사 박윤식 씨는 1991년 예장 통합측 제76회 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됐습니다. 기독론, 타락론, 계시관, 창조론 등의 이단성 때문입니다. 특히 박 씨는 타락론에서, 하와가 뱀과 성관계를 맺어 가인을 낳았다고 함으로 통일교와 같은 성적 모티브를 가졌으며, 타락 후에 인간에게 월경이 생겼다고 하여 이 ‘월경하는 여인의 입장에서 탈출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함으로써 정통적 타락관과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20여년이 지난 2013년 12월 3일, 홍재철 대표회장 사단의 한기총 임원회는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이대위, 위원장 이건호)의 <박윤식 목사 신앙 및 신학사상 재심요청 검증보고서>라는 것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박윤식 목사는 이단성이 없으며, 그를 이단으로 규정한 기존의 발표는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의 보고서입니다.

    특히 보고서의 24쪽에서는 “통합 총회의 불법성: …최삼경이 독자적으로 창작해낸 거짓말이었으며, 통합 측에서는 이러한 최삼경 씨의 거짓말을 근거로 박윤식 목사를 이단으로 정죄했던 것”이라고 하며, 30쪽에서는 “하와와 뱀과 성관계를 하여 가인을 낳았다는 것에 대하여: …박윤식 목사의 ‘씨앗속임’은 1981년 7월 5일 주일에 행한 설교로서, 여기에서 박윤식 목사는 영적인 씨를 말하고 있지만 육체적인 씨를 말하지 않았다. 이 설교에서 하와가 뱀과 성관계를 맺어 가인을 낳았다는 내용은 전연 없었다. 송사자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박윤식 목사는 ‘…분명히 아담은 자기 아내 하와와 동침해서 가인을 낳았다고 성경은 정확하게 기록돼 있습니다’라고 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그치지 않는 거짓의 말잔치 앞에 더 이상 할 말을 잃을 지경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의 자리로 인도받는 것 또한 얼마나 큰 은혜인지 새삼 실감합니다. 이제 <교회와신앙>은 이 참람한 내용의 설교를 한국교회 앞에 직접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박윤식 씨의 설교를 직접 듣고 과연 누가 거짓을 조작하였는지 판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평강제일교회(구. 대성교회) 박윤식 씨 육성설교①-씨앗속임 녹취록
    (아래의 숫자는 ‘씨앗속임’ 설교 테이프 시간을 표시한 것입니다.)

    (앞면) 00:01:28 ~ 00:02:07
    앞으로 나오세요. 앞으로, 빨리, 말씀 딴 거 생각해. 그리고 설교 제목을 좀 바꿉시다. 딴 거해요. 귀한 말이에요. 귀한 말. 요한계시록 12장의 내용을 파헤치는데 창세기 4장과 로마인서 9장과 이사야 1장을 해명하지 못하면은 요한계시록 12장 말씀은 해명은 영원히 안 됩니다. 잘 들으세요, 오늘 여러분들이 남은 자야, 남은 자. 뭐요? (남은 자!) 남은 자만이 공부하는 거야.

    00:04:24 ~ 00:05:57
    이것이 결론인데 그 해를 입은 여자가 왜 아들을 낳느냐, 또 예수님이 남자 없이 성령으로 왜 마리아 뱃속에 거룩한 씨가 들어가서 이렇게 성령으로 낳은 이유가 어디 있느냐? 오늘 말씀을 잘 들으면 풀리게 됩니다.

    이거 보세요, 김 장로님이 이제 저를 낳았어요. 예를 들어 말합니다. 이게 우리 아버지야. 낳았는데, 나보고 하는 말이 “너는 내가 너를 낳았지마는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에이그, 아버지 그러지 마시오. 농담하지 마시오. 아, 내가 아버지의 종자인데 무슨 말이오?” “아니야. 하나님께서 내 육신으로 넌 내 아들로 인정하고프지마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말래.” 그러니까 “아, 왜 그렇습니까?” 물어보니까, “너의 어머니와 나와는 널 낳을 때 약속이 없이 낳았다. 육신의 정욕이 이게 발동이 돼서 그저 관계해서 난 자식에 지나지 않아. 그러니까 씨는 틀림없지마는 뜻으로 볼 때 너는 내 새끼가 아니야.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라고 했대.” 그러면 인간 윤리, 도덕 세계에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이 아들이 아니라고 할 때는 아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요 뜻만 하나만 우리가 읽고선 제가 금번 성경의 비밀을, 또 원리를 오늘 파헤치겠습니다. 알았지요? 로마서 9장 6절 이하 다 같이 읽읍시다.

    00:06:48 ~ 00:07:43
    (교인 : 로마서 9장 6절,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김을 받느니라.) 예,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씨. 종자가, 말씀의 로고스의 아들이 아니라, 오직 약속이라고 하고서 하나님께서 말씀이 나왔지요. 언약을 통해서 난 자식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씨, 종자가 되겠습니다. 알았지요? 요것을 머리에 외워두고 자, 이것 보세요. 그러면 창세기 4장 1절을 다 읽어야 되겠지요. 하나님이 말씀하면 믿어야 되는데 요놈의 여자가 말했다 말이야.

    00:08:08 ~ 00:09:18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분명히 네게 아들을 낳게 해주겠다 했으면 그냥 “아멘!”하고 믿어야 할 텐데 아, 요놈의 여자가 살짝 속였거든. 그러니까 이 말씀의 영이 떠난 아담은 민충이 같이 자기 씨인 줄 알고서 “그래, 하나님의 허락으로 말미암아 낳았지.” 알았어요? 이렇게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까는 아담이 속아 넘어가고, 또 여자 자신도 어둠의 권세 사단한테 속아 넘어가고, 그러니깐 낳고 보니까 전부 뱀 알, 뱀의 씨들만 낳았다 그 말입니다. 알았지요? 그래서 이것을 이렇게 세상에는 방해하는 악령이 있기 때문에 이 해를 입은 여자가 왜 그렇게 만국을 다스릴 철장 가진 아들을 그렇게만 낳아야 되느냐 말이야. 왜 그렇게 역사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오늘 그 문제는 시간 관계로 다 말씀 못 드리지만 여러분들 귀담아 듣는 가운데 창조 이후로 오늘까지 이 말씀의 비밀은 전 세계에 공개되지 않은 것을 제가 잠깐 말씀을 공개하겠습니다. 잘 들으세요.

    00:09:40 ~ 00:11:30
    자 이것 보세요. 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와 분명히 한자리 같이 했지요? 했는데 그 다음에 뭐라고 말 했는고 하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득남했다.” 아담이 말하지 않고, 그 여자가 재치 있게 먼저, 하와가 뭐라고 말 했는고 하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득남했다.” 했단 말입니다. 알았지요? 이거 봐, 이거 봐. 세상에 쉽게 말하면은 여자가, 남편 있는데 죄를 졌습니다. 어떻게? 춤바람 나 가지고 놈팽이와 같이. 이것은 뭐 생활주변에 있는 사실 아니오? 그래 어째서 아이를 낳았어요. 뗄려고 애쓰는데 남편이 자기도 동침하기 때문에 “내 아들이겠거니” 하고서 “떼지 마. 아, 딸밖에 없는데 아들인지 알게 뭐야.” 낳은 다음에 가만히 보니까 그 여자는 춤춘 남자 얼굴을 알갔어, 모르갔어? 알갔지? 닮았다 말이야. 그러니까 보기 미안하니까 “에게게, 당신 닮았네.” 그러겠어, 안 그러겠어?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말씀했다 그 말입니다. 알았지요? 그러니까 오늘날까지 주석에도 없어, 잘 들어. 그러니까 떠들지 말라는 거야. 잘 들어. 깊은 얘기, 깊은 얘기 들으면 다 벌렁벌렁 넘어질 사람들이 무슨 깊은 얘기, 깊은 얘기 말이야. 이날까지 성구에 대해서 의심 없이 우리가 연구도 하지 않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서 지나왔다 그 말이야. 그런데 그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낳은 자식 같으면은 행동이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있어서 일을 해야 될 텐데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사사건건 간섭하고, 정말 방해하고 별 지랄들 다 했다 그 말이야. 그러니까 벌써 씨가 달라.

    00:13:14 ~ 00:14:45
    그러니까 씨앗 속임들 하지 말라고, 이제는. 이런 비밀을 알 때에 씨앗 속임 할 놈 하나도 없어. 다시 한 번 1절 귀담아 정신 차리고 다 같이 시작. (교인: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로 말미암아 잉태가 되었다니까 남편 되는 아담이가 꺼떡꺼떡 했다 그 말입니다. 자기 아들인 줄 알고.

    00:15:17 ~ 00:15:53
    (마 7:16 읽고) 자, 이것 보세요. 이 성구 말씀을 볼 때 나무 농사짓는 것을 무슨 열매 따는 거 말하는 거예요, 이 사람의 농사를 말하는 거요? 사람이지요? 자, 이것 보세요. 이 가인이 분명히 아담의 아들이었다면 아담이 살인자가 됐어? 아담이 살인자요? 못된 나무가 못된 열매를 맺고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요? 그러니까 이 성구를 봐서도 이 가인은, 잘 들으세요. 벌써 이 아담한테, 인류한테, 씨앗을, 씨를, 속이는 작전을 하고 있다 그 뜻입니다. 알았지요?

    00:15:56 ~ 00:16:29
    그럼 하나님을, 내가 성경을 증거할게요. 난 분명히 말씀합니다. 분명히 하와가 씨앗 속임을 했느냐? 난 퀘스쳔 마크만 붙이고, 했다 안 했다 하는 것은 여러분 말씀 들어 가지고 여러분들이 답변 내시기 바랍니다. 대성교회 박윤식 목사가 말했다는 말 하지 마세요. 왜 그러느냐, 여러분들이 좀 위험한 사람들이야. 조금만 말하면 쓸데없이 나팔 불고 말이지, 괜히 이단자 만들고 말이야. 그러니까 오늘 말씀은 이건 공개하지 말고 잘 듣다가 마지막 다 제가 결론 내린 다음에 그때야 공개하시기 바랍니다.

    00:18:11 ~ 00:18:36
    그러면 가인은 누구의 자식이냐 그 말이야. 가인은 하와의 육태 속에 심어 놓은, 정말 아담이 모르는 사이에 마귀가 와서 심어놓은 이 씨인 줄을 아담은 깜깜하게 영계가 어두워서, 영계가 정말 마비가 돼서 알 수 없는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 아시고 말씀을 잘 들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0:27:23 ~ 00:29:07
    요한1서 3장 8절부터 12절. “에게게, 당신 닮았네.” 남자들 다 조심하세요, 믿지 않는 사람들 말이야. 당신은 뭐 당신 닮아. 이거 봐요. 자, 우리 솔직히 말합시다. 그래서 내가 족보를 내놓지 못한 것은 내 할아버지나 아버지나, 또 잘 들어요. 또 뭐인고 하니 남자 따질 필요 없이,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나 정말 밀양 박 씨의 계통을 통해서 낳느냐, 중간에 우리 어머니나 우리 할아버지가 아니, 우리 할머니가 새치기해서 내가 실은 문 씨인데, 박 씨 집안에서 낳기 때문에 내가 박 씨로 내가 됐느냐. 전 세계, 이거 봐요, 인류 역사 가운데 씨앗 속임이 있어, 없어? 틀림없지요? 난 밀양 박 씨라고 믿지 않는 사람이야, 솔직히 말해서. 은혜 받은 이후로 절대 믿지 않아. 과연 순수하게 우리의 조상이 말이지요. 우리의 조상이 정말 박혁거세 계통으로 나왔느냐, 할머니가 아차 하는 순간 강간을 당했든가, 여러 우리 조상 가운데 우리 할머니가 평양 기생이라든가 이런 가운데 술을 따라 주다 “마셔라, 부어라” 하다가 다른 씨를 받아서 이렇게 나를 또 낳았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럼 내가 후레아들, 내가 쌍놈이오? 밝히 믿자고, 밝히. 그래서 예수님으로 씨앗 속임을 다 알기 때문에 다른 이름을 주겠다, 새 이름을 주겠다는 이유가 거기 있는 거야. 알았어요?

    00:30:37 ~ 00:31:47
    (요한1서 3:8~12) 자, 이거 보세요. 분명히 가인은 악한 자의 반열에 섰지요? 씨가 달라. 그 새끼는. 그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낳았어? 달라. 벌써 종자가 달라, 종자가. 종자가. 그렇기 때문에 속을 썩을 때 ‘으이구 저 놈의 종자. 으이구 세상 놈의 저놈 그냥. 전부 저런 망종이다, 망종.’ 그렇지요? 망종이에요. 결국은 망종이다 그 말이야. 이거 아셔야 돼. 이 비밀을 아셔야 돼. 이거 알 때 예수님이 왜 남자 없이 성령으로 태어났는지. 하도 속이기 때문에 안심이 안 돼. 성령을 통해서 마리아한테 남자를, 숫처녀인데, 응? ‘마리아야!’ ‘예.’ ‘나실 바 거룩한 메시야를 널 통해 낳겠다.’ 그러니까 이 바보 같은 여자가 또 뭐라고 질문해. ‘내가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천사가 ‘그래? 싫으면 관두려마.’ 갈려고 했지요? 갈라고 할 때 놀래 가지고서 붙잡고 ‘주의 계집 종이오매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했지요? (예.) 그때 성신이 딱 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날 때에 마리아 뱃속에서 장난질 했어, 못 했어?

    (뒷면) 00:00:00 ~ 00:00:20
    마귀 새끼들이 했어, 못 했어요? 못 했지. 알 턱이 있나, 비밀인데. 성령 비밀인데. 남자가 있어서 뽀뽀하고 한 이불 속에 자야 장난할 텐데 아, 숫처녀 가운데 영의 문제인데, 싹 와서 성신이 임해 가지고 인류를 구원하는 그 거룩한 생명의 씨를 딱 심어놓고 갔지요? 응?

    00:01:20 ~ 00:02:39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이렇게 해서 십자가에 달렸다. 피를 믿으면 구원받는다. 이 해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간단히 해명했지마는 피눈물 나는, 하나님의 서러운, 안타까운, 기가 막힌 거,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되 만인간이 환영하는 가운데 이렇게 보내지 못하고, 이렇게 숨겨서 씨를 보낸 이유가 어디 있느냐. 마귀가 장난할까 봐 그렇게 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알았지요? 이거 기가 막힌 말이야.

    그러니까 저는 늘 눈물 흘리고 지내는 게 그거야. 지난번 십자가 증거 할 때 왜 울었느냐, 이런 얘기해야 할 텐데 시기상조거든. 말은 못하지, 능력이 없습니까?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인류의 구세주를 보내는데 그렇게 안 보내면 안 되는 이유가 어디 있느냐 말이야. 이런 더러운 이 여자의 피 속에는 다른 씨들이 많이 흐르고 있어. 그러기 땜에 안심이 안 돼.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주권적 행사로써 인류의 구원역사에 있어서 친히 인간세계에 뛰어들 때에 마리아의 뱃속에 거룩한 성령의 씨가 들어가 이렇게 되었다는 거, 알았지요?

    00:05:08 ~ 00:05:55
    따라 하세요. 헤롯왕도(헤롯왕도) 아브라함의 순수한(아브라함의 순수한) 믿음의 혈통이 아니라(믿음의 혈통이 아니라) 중간에(중간에) 할머니가(할머니가) 새치기 당했더라(새치기 당했더라). 해서 그 헤롯왕이 자칭 유대인 같지만 그건 에돔 족속이야. 혈통이 어드매요? (에돔!) 에돔! 예수 당시 때 헤롯왕은 유대인의 피가 아니라 그 할머니가 새치기 당했어요. 누구한테? 에돔 놈한테, 그래서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알았지요? 그 성경역사가 다 말하는 거야. 없는 것 말했다간 대번 이단 소리 듣게? 이렇게 무서운 말씀의 세계가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알았어요? 전 세계 다 보세요, 전 세계. 씨앗의 속임이 있나, 없나 다 봐. 거짓말인가.

    00:12:13 ~ 00:14:11
    아, 예수가 와서 여자와 관계해서 새끼 낳는다면야 암만 재주가 좋아도 1년에 하루에 하나씩 낳는다 해도 365명밖에 못 낳아. 그러면 전 세계 어떻게 만들어? 그렇지 않소? 마귀의 씨들은 자, 들으세요. 마귀의 씨는 한번 붙으므로 하나 낳는다. 계산해 봅시다. 그러나 예수의 씨는 어떻게 낳느냐, 그저 믿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씨가 두루룩, 두루룩 이렇게 쏟아지는 거야. 알았어요? 아주 그렇게 만들었다고. 그래서 이거 봐요. 전체 마귀 씨가, 잘 들으세요. 예수 당시 때 전 세계 인구가 5억이야. 얼마요? (5억) 이거 죽어도 잊어먹지 말라고, 예수 당시 때 전 세계 인구가 5억인데, 이거 봐요. 전 세계 인구 5억이 다 소속이 마귀입니다. 마귀 씨야. 그 중에 참 씨가 몇 밖에 없어요? (하나) 하나인데, 이 하나 갖다가 5억 이상 능가하기 위해서는 예수께서도 비법이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말씀의 그 비밀이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 내가 씨를 좀 봐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사람 같으면 “씨를 보려면 큰 처녀를 하나 얻어 오누마.” 육신 같으면 이렇게 말할 거야. 근데 하나님 보세요. “너 십자가에 달려서 넌 죽어야 되겠다.” 예수님이 “아니, 내가 씨를 보겠다는데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 씨 어떻게 봅니까?” “너 죽음으로 말미암아, 너 믿기만 하면 씨가 두루룩, 두루룩 쏟아지게 할께. 걱정하지 말고 믿어! 이래야 마귀가 씨를 심지 못하지. 사람을 통해서 또 씨를 뿌리기 시작하면은 또 마귀가 속여서, 하와를 속이듯이, 또 먹게끔 하는 거야. 야야 전 인류가 건드리지 못하고 다치지 못하게, 오직 씨를 생산하는 것은 아들 예수야, 너 밖에 없으니 너가 십자가를 통해서 씨를 많이 생산해라.” 그렇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알았어요?

    00:14:48 ~ 00:15:08
    월경을 통해 낳은 자식들이지요? (예) 여기에 월경 없이 난 아들, 딸이 어디 있어? 우리 어머니, 할머니도 다 어머니, 아버지가 월경을 통해서 아, 아버지는 아니지. 어머니가 월경을 통해서 다 낳았어요. 근데 우리 하나님의 아들의 씨는 월경 필요 없이 낳았다는 것을 벌써 구약 때 아브라함 때 비밀 보여줬지요? (예)

    00:16:00 ~ 00:16:36
    그러니깐 예수가 장차 그렇게 온다는 것을 미리 마귀 몰래 믿는 자에게 암시를 해줬죠? 미리 암호를 대줘서 우리가 아는 겁니까? 그런데 예수님 총각의 몸으로 그렇게 아들을 많이 낳을 수가 있느냐? 할 때에 십자가 피 속에, 알았죠? 그 십자가 피는 여자의 피가 아닙니까? 이거 봐요. 예수의 십자가의 피가 여자의 피라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피밭을 통해서 아들, 딸 낳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십자가 피가, 알았죠? 그게 바로 말씀을 낳는 아들 딸을 낳는 공장이다. 신령한 배다. 그 뜻입니다.

    00:22:20 ~ 00:22:51
    가인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득남했지요? (아니오) 그러니까 그것은 남자가 말하지 않고 여자가 말했지요? (예) 말하는데 요한일서라는가 야고보라든가 말씀 볼 때에 소속이 가인은 어디요? 악한 자에 속했다고 했지요? 처음부터 살인자 마귀라고 했고, 속이는 거짓의 애비에요, 애비. 알았지요? '거짓'의 애비가 들어앉아서 거짓말 싹 나온 거야. 그러니까 거짓말할 때마다 뭐가 튀어나옵니까? 뱀, 뱀, 뱀이 튀어나와, 뱀이. 알았지요?

    00:24:32 ~ 00:25;23
    고맙고 감사하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이렇게 불과 몇 백 명에 지나기 않지마는 진지하게 참, 서론적으로 저희들이 하와의 그 임신 고백, 그 씨앗 속임, 과연 아담은 영이 무뎌 그 뜻을 깨닫지 못해서 자기 아들인 줄 알고 있지마는 낳고 행동을 볼 때에 분명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아들이 아니라 마귀의 종자였다는 것을 저희들은 깨달았습니다. 주님이여! 이렇게 저희들은 살기를 원합니다. 말씀 받기를 원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뜻 받들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씨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씨로써 남은 여생을 깨끗하게 주의 뜻대로 살아드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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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재철 목사, 예장합동 탈퇴 선언
    예장합동 총회임원회 한기총 탈퇴 결정에 대한 반발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홍재철 목사가 19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예장합동 임원회의 ‘한기총 탈퇴’ 결정에 교단 탈퇴라는 초강수로 화답했다. 그는 “선한 자를 죽이려고 하는 합동 측에 더 이상 머물러야 될 이유가 없다”라며 “오늘 이후로 본인은 합동을 탈퇴한다”고 밝혔다. 
     
    탈퇴서는 기자회견 이후, 노회에 보낼 예정이며 원로목사로 있는 경서교회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홍 목사는 “은퇴하지 않고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다면, 교회까지 교단에서 탈퇴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이번 교단 탈퇴결정은 “내 결단이고, 내 의사일 뿐”이라며 교회와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홍 목사는 예장합동이 “한국교회와 영혼들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지 않고 교권을 이용해 남을 죽이는 일에 앞장서고 있음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한기총의 잘못이 무엇인지 따져보자며 예장합동 측에 공개토론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어 박윤식 목사에 대한 이단해제 결정을 내렸던 것도, 박 목사가 소속된 교단에서 보낸 재심요청에 따른 것으로 “각 교단의 권위 있는 학자들로 구성된 이대위 조사결과, 박윤식 목사에 대한 이단성 혐의 내용들이 일부 이단연구가들에 의해 완전 왜곡, 날조, 조작된 허위사실들로 밝혀졌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또한 실행위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박윤식 목사 관련 이대위 보고서에 대해 계속해서 문제를 삼는다면 “누구든 그 증거들을 제시하고, 이대위원들과 진실여부를 다투어야할 것”이라고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그 자신도 “이대위 특별위원회에서 소속한 학자들이 공정하게 조사하였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홍 목사는 “자신은 의롭다 여기며 남에게는 비판하고 정죄하고 죽이는 일은 바리새 교권주의자들이나 하는 짓”이며 “한기총 역대 대표회장들이 재임 시에 이단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서는 합법적인 것이고, 내가 재임 시에 이단으로 규정하거나 해제한 것에 대해서는 불법적인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예장합동 교단이야말로 “비복음적으로 영적인 살인을 일삼고 있다”라며 “한국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에도 집안싸움을 하다가 세월을 보낸 것이 합동 교단이었다. 이런 교단이 과연, 한기총이 하는 일에 ‘감 놔라 배 놔라’하며 간섭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돌아온 탕자를 받아준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 기독교의 본질이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가?”라며 회개하고 지도를 원하는 이단시비 대상자들의 돌아옴과 회심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홍 목사는 “한기총이 하는 일을 지켜봐 달라. 결코 정도를 벗어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교회를 개혁시키면서 누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개혁을 통해서 서로를 화합하고 한국교회가 재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준수 ⓒ 뉴스파워
    출처: USA아멘넷




    한기총, 다락방 류광수 목사 순서자로 초호화 행사 '논란'

    2013/12/17 ㆍ추천: 0  ㆍ조회: 63      

    한기총이 연말 의례적으로 개최하는 행사가 여당 국회의원들을 대거 초청하고, 이단 논란이 있는 인물까지 행사 순서에 넣는 등 치우쳐 논란이 일고 있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호화판 행사도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합동 등 몇몇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다락방 류광수 목사가 이날 행사에서 해외문화교류재단 이사장 직책으로 다문화가정자녀 장학금 시상을 했다.ⓒ뉴스미션

    이단 논란 인사 참여, 호화판 행사 ‘물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홍재철 목사, 이하 한기총)가 연말 행사로 갖는 ‘대한민국 기독교의 밤’이 12일 오후 6시 여의도 63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에서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는 예장합동, 예장고신 등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다락방’ 류광수 목사가 순서를 맡아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다락방전도총회 전 총회장인 정은주 목사도 준비위원장을 맡아, 행사 전반을 주관했다.

    이날 류 목사는 한기총 회원단체인 해외문화교류재단 이사장 직책으로 다문화가정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는데, 한기총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가 류광수 목사를 이단 규정에서 해제한 후 처음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때문인지 다락방을 이단에서 해제하지 않은 예장합동 교단의 안명환 총회장은 축사 순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교계 관계자에 따르면, 당초 격려사를 할 예정이던 길자연 목사(합동)도 불참을 통보해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장합동은 다락방 이단 문제로 지난 9월 한기총에 대해 ‘행정보류’를 결의한 상태다.

    “사회를 구원할 유일한 단체는 바로 한기총”?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인사들은 한 해 동안 한기총을 이끌어 온 홍재철 대표회장의 노고를 치하하는 한편, 한기총이 기독교 정체성을 지키고 나라와 민족을 지킬 수 있었던 ‘유일한’ 기관이라고 칭송했다.

    한기총 증경회장 이용규 목사는 축사에서 “종교 다원주의가 판을 치는데 이에 맞서 기독교 정체성을 지킨 것은 한기총 밖에 없다. 기독교를 복음주의로 이끌어 갈 단체는 한기총 밖에 없다. 한기총은 이 사회를 진실로 구원할 유일한 단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날 행사에는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대거 참석해 보수 기독교계 정치 모임을 방불케 했다. 순서지에 없던 황우여 대표최고의원, 이해훈 최고의원, 김기현 정책위원장, 손인춘 광명을 당협위원장이 참석해 축사를 전했다.

    황우여 의원은 “홍재철 대표회장이 이끌어 온 한기총이 어려운 현실과 수많은 문제를 이기고 교회를 이끌어준 것 감사하다”며 “한국이 하나님의 공의와 평강이 강 같이 넘쳐흐르도록 기도하자”고 축사했다.

    한기총의 한 해 사역을 돌아보는 영상 말미에는 2007년 박근혜 대통령이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피아노로 반주하고 목회자들이 찬송을 따라 부르는 장면이 상영되기도 했다.

    한편 연중 행사로 열리는 한기총의 ‘대한민국 기독교의 밤’은 올해도 어김없이 여의도 63시티 대형홀에서 호화롭게 치러졌다.

    테이블에 앉은 참석자만 640여 명, 식사로 제공한 코스 메뉴와 선물만 계산해도 수천만 원에 달해 교계 연합 행사로 적절하지 않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홍재철 대표회장은 바로 일주일 전 실행위원회에서 ‘필리핀 재해구호금 모금을 하고 있는데, 현재 모인 돈이 없다’며 회원 교단들의 후원까지 독려한 바 있어 호화판 행사의 명분이 더 무색해졌다.

    윤화미 ⓒ 뉴스미션

    출처: USA아멘넷

    이단・사이비대책협의회, 뉴욕 큰믿음교회 집회 경계령

    2013/10/21 (월) 16:03 ㆍ추천: 0  ㆍ조회: 2015      

    뉴욕교협 산하 이단・사이비대책협의회(회장 최창섭 목사)는 10월말부터 리틀 넥에서 열리는 뉴욕 중보치유집회 경계령을 내리고 21일 산하 교회에 통지했다.

    협의회는 최근 뉴욕의 한인 일간지 전면에 광고된바 있는 뉴욕 중보치유 집회는 뉴욕 큰믿음교회가 주최하는 집회이며, 뉴욕 큰믿음교회는 한국의 주요 교단들로부터 이단성을 지적당하며 참여 및 교류 금지 대상으로 경계되고 있는 서울 큰믿음교회(변승우)의 뉴욕 지교회라고 지적했다.

    큰믿음교회 변승우씨는 한국교계에서 유례없이 주요교단 5개 총회(고신, 합신, 통합, 합동정통, 합동)에서 2009년 동시에 이단 관련 판정을 받았고, 자신이 속했던 교단에서 제명·출교를 당한바 있다. 통합 총회는 "직통계시에 근거한 잘못된 성경관과 계시론, 정통 구원관과 다른 구원론, 입신, 예언, 방언 등 극단적인 신비주의 신앙 형태"등의 변승우씨의 이단성을 발표한바 있다.


    ▲큰믿음교회의 세력확장-큰믿음교회 네트워크 홈페이지 캡처

    뉴욕의 큰믿음교회는 2010년 11월 웨체스트 지역에 지교회를 세웠으며, 2012년 4월 한인들이 많이 사는 리틀넥으로 예배장소를 옮긴바 있다. 변승우씨가 운영하는 큰믿음교회는 한국을 중심으로 일본, 미국, 캐나다, 호주등 해외에 지교회가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뉴욕, 워싱톤 DC, 아틀란타등에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어 전 미주 한인 교계의 공동대처가 필요해 졌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10주년



    시드로스 It's supernatural 에 소개된 Shane Warren(셰인 워렌) 동영상(미국의 미래에 대한 환상)
    http://cafe.daum.net/Bigchurch/LZk9/35993?q=%BD%C3%B5%E5%B7%CE%BD%BA&re=1

    시드로스는 미국에서 It's supernatural이란 방송의 진행을 맡고 있고,

    시드로스는 늦은비 토론토블레싱 집회를 하는 분이시라고 소개가 되어 있으며

    신사도주의자로 지목되고 있다.

    이런 사람의 설교나 책 자료들은 초자연적 은혜에 치중하고 있다.

    초자연적인 기이한 현상을 35년간 연구해 왔다고 한다. 

    셰인 워렌 목사
    - 미국의 미래의 대한 예언
    - 갑자기 하나님의 예언의 영이 자신에게 임하였다.
    - 주시시장에 관한 세세한 부분까지 말씀해 주셨다.
    http://blog.daum.net/trance/12928211 

    가정교회운동과 신사도운동의 공동목표는 쓰러뜨림?
    http://blog.naver.com/yoochinw/130125184405

    메시아닉 사이트에 링크된 신사도 인물들
    http://cafe.daum.net/ontttc/5bHQ/4 

    데이비드 오워는 거짓선지자인가 ?
    http://blog.daum.net/alphacourse/11297713

    초자연적인 화제를 다루다
    천국간증, 놀라운 방언의 비밀, 초자연적인 간증, 교통사고로 61분 동안 죽어서 천국방문

    - 기적과 치유의 사도
    - 초자연적 간증 (방언기도에 숨겨진 엄청난 비밀공개) - 글렌 아레키온
    - 방언기도도 하면 마귀도 모른다.
    -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교회와 도시, 국가가 변하게 될 것이다.
    http://cafe.daum.net/shalomwoosister/bAJ/14649?q=%BD%C3%B5%E5%B7%CE%BD%BA
    

    출처: 생명나무 쉼터


    류광수 목사 이단성 검증 공청회(1)
    1998년 10월 01일 (목)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질의 : 최삼경 목사 (빛과소금교회 담임, 예장 통합측 총회 사이비이단문제상담소장)
    답변 : 류광수 목사 (동삼제일교회 담임, 세계복음화 다락방전도훈련원 원장)
    사회 : 이경원 목사 (대전 혜성교회 담임, 예장 합동측 총회 이단조사연구위원회 총무)
    개회기도 : 김창영 목사 (예장 통합측 사이비이단대책위원회 위원장)
    주최 : 월간 <교회와신앙>, 일시 : 98년 8월 27일 오후 2시~6시, 장소 : 횃불선교센터 사랑성전


    지난 8월 27일 본지 주최로 열린 '다락방 류광수 목사 이단성 검증 공청회'는 2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4시간여에 걸쳐 진행되었다. 한국교회의 10여 개 주요 교단으로부터 이단 또는 사이비성이 있는 것으로 규정된 바 있는 다락방의 류광수 목사는 이 자리에서 "한국교회와 함께 가고 싶다"는 변화된 심경을 밝혔다.

    류목사는 공청회에서 그 동안 자신에 대한 많은 지적들이 대부분 오해였다고 해명하는 한편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자신의 지나친 반교회적 발언과 부적절한 용어 사용이 문제가 되었음을 시인, 사과했다. 사탄배상설과 재영접설도 자신의 신앙사상은 결코 아니나, 그런 사상을 가진 것으로 비판을 받을 만한 자신의 표현에 대해서는 잘못을 분명하게 시인했다. 다락방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전도현장에서 기신자들에게조차 예수님을 다시 영접시키는 등의 사례에 대해서도 사과하고 추후로는 그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류목사는 또한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던 변증 차원의 모든 글은 사실 자신이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고 다락방 관계자들이 기술한 것이었다는 고백도 했다. 그런 관계로 그  동안의 해명이 충분하지도 적절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그로 인해 자신의 음주운전 구속 사건을 두고 다락방측에서 잘못 해명하고, 나아가 음주문제를 지적했던 인사들을 오히려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까지 했던 점 등에 대해 분명하게 사과하고,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이번 공청회는 최삼경 목사가 12개 항에 걸쳐 기본 질의를 하고 이에 대해 류광수 목사가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기본 질의 각 항마다 수 차례 또는 10여 차례의 보충 질의 답변이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단회적 질의 답변이 안고 있는 한계점의 보완으로 심도 있는 진실 접근이 어느 정도 가능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이같은 방식의 공청회가 모두에게 처음이었다는 점에서 질의, 답변 등 전반에 걸쳐 진행상의 아쉬움도 남겼다.

    본지는 이번 공청회를 통해 중요한 두 가지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는 다락방 류광수 목사에 대해 그 동안 지적되었던 이단성이 비록 류목사 자신의 중심 사상은 아니요 오해였다는 해명이 있었지만, 그렇게 비판받을 수밖에 없도록 하는 신학적 오류 발언 및 표현을 그 동안 류목사 또는 다락방 사람들이 해왔다는 사실이다. 즉 스스로의 분명한 원인 제공에 따른 결과였다는 점이다. 둘째는 중요한 몇 가지 문제에 있어 류목사의 잘못 시인과 회개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류목사의 실천과 이에 대한 계속적인 검증을 필수적으로 전제하는 것이지만, 최소한 잘못 시인과 회개가 반영된 새로운 관찰의 필요성만큼은 제기됐다 할 것이다.

    지면 관계상 공청회의 주요 내용만을 이번호에 게재한다. 질의 답변을 그대로 녹취하는 과정에서 문장으로 맞지 않은 부분에 대해 문맥상 뜻이 통하도록 괄호 안에 보충 문장 또는 단어를 첨가하였음을 밝혀둔다. 그리고 공청회 석상에서 충분히 답변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당사자의 요청에 따라 최삼경 목사의 12개 항의 질의에 대한 류광수 목사의 서면 추가답변이 다음번에 실릴 예정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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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자: 먼저 이 공청회의 진행사항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고 오늘 최삼경 목사와 류광수 목사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공청회는 12개의 큰 항목을 놓고 질의, 답변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 항목에 질의, 답변 시간은 통합해서 15분 이내에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12항목을 진행하면 180분이 소요됩니다. 그리고 휴식시간, 그리고 약간의 여분의 시간을 합하면 4시간 안에 끝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세한 내용들은 진행하면서 그때 그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특별히 여러분들이 검증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생각이나 신학사상에 맞지 않는 그런 내용들이 최삼경 목사나 류광수 목사에게서 나올 때 야유를 한다든가, 또 진행에 방해를 일으킨다든가 하는 행동들은 없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최삼경 목사와 류광수 목사는 좀더 정중하게 질의하시고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질의하시는 분은 심문하는 식으로 해서는 안될 것이고 답변하는 사람은 그저 자기 변명하는 식이 되서는 안될 것입니다.

    많은 회중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시인하고, 또 잘된 부분이 있으면 우리가 함께 공유하면서 한국교회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겠나 생각을 합니다. 저는 합동측 목사이기 때문에 다락방의 대표격인 (류광수 목사에 대해) 저희 교단에서는 이미 결론이 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면직된 분에게 직함을 부르는 것은 그 교단 목사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주최측인 <교회와신앙>의 요구대로 '류광수 목사님'으로 호칭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최삼경 목사님'이라고 호칭하면서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먼저 류광수 목사께서 기조연설을 해 주시겠습니다. 10분 이내에 마쳐 주시기 바랍니다.

    * 류광수 목사: 먼저 공청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바른 길을 가며, 한국교회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염려해 주신 목사님들과 특히 이번에 객관적인 검증차원의 본 공청회를 마련해 주신 <교회와신앙> 관계자들에게 중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 동안 전도의 열심 때문에 오해를 끼치며 염려를 끼친 것에 대하여 사과를 드리며 본인도 모르게 일어나는 일들도 많았으나, 일일이 다 해명해 드리지 못한 부분을 주께서 은혜로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너무나 어려움과 험한 세상 중에서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오직 복음과 전도만 하는 중심을 갖고 있습니다. 계획도 전략도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의 충고와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 동안 제가 들어도 이해가 안 될 말들과 도저히 저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글들을 보며, 제가 한국교회에서 받는 오해된 부분이 너무 많았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해된 부분에 있어서 중심을 가지고 상세히 설명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너무 답답할 때에 약간의 몸부림을 친 것이 오히려 저에게는 은혜가 되지 않았으며, 다른 분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했음을 깨달았고 묵묵히 기다리기로 작정했습니다. 총회를 구성한 것은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막연하게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한국교회를 위해 바르게 계속 헌신한다면, 문제는 풀릴 것으로 보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총회 형성이라는 판단이 와졌으며, 막상 무조건 기다릴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 여러 군데 나타났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이해하며 우리가 더욱 바른 복음을 전하는 모임이 되기 위하여 총회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의 표현이 부족했고 오해될 만한 소지가 있는 언어 사용과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은 표현과 비판들이 큰 오해와 문제를 일으키는 결과가 된 줄로 압니다.  그러나 오해되는 부분은 언제든지 겸허히 지도를 받으며, 수정할 것입니다. 더욱이 저를 오해한 분들의 신앙배경이 전혀 저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논쟁할 것이 없으며, 저의 부족한 표현을 수정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정통 보수 신학을 수학했으며 정통 보수 교단에서 성장했습니다.

    그 속의 신앙관이나 교리나 신조가 전혀 저와 상반된 부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저의 신앙관임을 고백합니다. 꼭 부탁 드리고 싶은 것은 저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중의 하나가, 흑암에서 구원을 받고 지금까지 24년 간 현장에서 계속 전도활동을 한 것입니다. 현재 무당에서 돌아온 사람만 200여 명이 넘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적 문제와 귀신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언급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 말고는 아무런 특별한 언급이 없었습니다. 지금 무속인(무당), 점술가들이 그리스도 앞으로 많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 일은 생을 걸고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임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보고를 올린다면, 교인과 교회 수는 감소하고 있으며, 교인들은 전도가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우리가 힘을 합쳐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신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우리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이 총회를 형성할 때 우리의 소원인 전도만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총회를 해산하고 각 교단과 교회에 들어가 헌신할 것을 다짐하고 시작했습니다. 그날이 오면 총회는 해산하겠습니다. 한국교회의 몇몇 큰 오해된 분들께 엎드려 부탁합니다.

    이단을 만들기보다는 안 되도록 도와주시며, 진실된 확인없이 일방적인 비판만  계속 들으면 얼마나 큰 오해가 생기겠습니까? 이것은 보통 영적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지도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해결 안 될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저의 각오를 몇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랑의 충고를 항상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이나 오해된 표현은 고치려고 합니다. 진심으로 한국과 교회의 구석구석에서 교회와 세계선교를 위해 전도하려고 합니다.

    단, 한국과 세계 교회에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매진할 것입니다. 더욱더 노력할 것은 바른 복음, 바른 전도, 바른 교회, 바른 국가의 유익을 위해 계속해서 고쳐 나가려고 합니다. 이상의 것들이 하루 아침에 다 이루어진다고 보지 않습니다. 저의 모습도, 한국교회와의 관계도 계속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혹시, 경쟁을 한다면 성경적이고 선한 경쟁을 하겠습니다. 한국교회의 모든 지도자와 성도 여러분! 저를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어차피 저희들은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형성되어 현장에서 전도와 선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른 길을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저와 많은 양떼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끝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가지고 용납하실 것을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 사회자: 최삼경 목사님께서 이어서 서두발언을 해 주시겠습니다.

    * 최삼경 목사: 그 동안 다락방 전도학교를 인도하는 류광수 목사에 대해서 한국교회 역사의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십여 개 교단으로부터 사이비 내지는 이단 또는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그렇게 연구하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잘못된 결정이었는지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만에 하나 바르지 못한 연구가 있었다면 재고해야 할 일이라고 여겨지며 반대로 바른 연구였다면 뼈를 깎는 회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15년 동안 이단연구를 하는 동안에 약 30여 종의 이단연구에 간접적, 직접적으로 참여를 했습니다. 그런데 진리에 대한 논쟁을 하자고 해 놓고도 불리하면 '변론은 무익하다'고 하여 회피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런데 류목사측에서 이렇게 공청회를 요구한 점에 대하여 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본인은 공청회가 성경에서 하지 말라는 변론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그렇게 기도하며 이 공청회에 나왔습니다. 오늘 공청회를 하는 2가지 이유를 먼저 밝히겠습니다. 첫째는 형식적으로는 류광수 목사님의 요구에 의해 이 공청회가 이루어졌습니다. 조금 전에 기조연설에서 말한 것처럼 류목사님에게 2가지 의중이 있다고 봅니다. 첫번째는 오해된 부분을 해결하겠다는 의지고 또 하나는 잘못된 부분을 회개하고 고치겠다는 의지라고 봅니다.

    진행 과정에서 밝혀지겠지만 류목사님편에서는 오해된 부분이 많다는 것 같고, 저는 회개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오해는 2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첫번째는 류목사님의 사상을 한국교회가 얼마나 객관적으로 이해했는가 하는 문제이고 두번째는 바르게 이해한 그의 신학에 대해서 얼마나 바른 신학적 기준을 설정했는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점을 밝히기 위해서 저는 공청회에 응했습니다. 둘째는 이 일은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비록 다락방에 속한 사람이든, 또는 정통교회에 속한 사람이든, 또는 '다락방은 이대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든, 아니면 다락방을 사이비 이단이라고 생각하든, 또는 '잘 모르겠다, 그걸 알아보자' 그것 때문이었든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이 일 자체가 진리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 큰 유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청회에 앞서서 네다섯 가지 이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저는 예장 통합측에 속한 목사이고 통합측 연구에 참여했던 한 사람이지만 교단의 대표자로 이 일을 하는 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저 개인의 자격으로 이 일을 하고 있음을 꼭 주지해 주시기 바라고 10여 개 교단의 연구에 대해서 본인이 다 변명 내지 변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만큼은 하겠습니다. 두번째는 류광수 목사님이 소속된 교단으로부터 비록 목사 면직을 받았지만 목사라는 칭호를 사용하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번째는 류광수 목사님에게도 이해를 구합니다. 류광수 목사님에게 이단이라는 말이나 사이비라는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음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듣기에 거북하고 불쾌한 일이겠지만 한국교회사에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많은 교단들이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네번째, 중요한 것은 이 공청회 광고가 나간 뒤에 수많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뭔가 하면 '면죄부를 주려고 공청회를 하였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면죄부를 주기 위함도 아니고 회개의 기회를 막으려고 함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여러분들이 그것은 오늘 공청회 진행과정을 통해서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는 어쩔 수 없이 공청회 진행 도중에 자료의 진실성 여부가 확인될 수가 없다고 하는 점입니다. 만일 자료를 잘못 제시했다면 본인이 그 모든 책임을 질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불리한 점에 대해서는 모른다거나 그런 일이 없다고 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자료 확인절차가 필요하다면 추후에라도 자료 확인을 철저하게 하는 방법을 합의에 의해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회자: 최삼경 목사님께서 첫번째 질문을 하시겠습니다.

    * 최삼경 목사: 한국교회와 함께 가겠다는 뜻을 보이셨는데 어떻게 함께 가고 싶다는 말인지 그 점을 묻고 싶습니다. 오해라는 말을 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지금까지 다락방측에서 나온 광고문마다 오해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해만 해결되면 한국교회와 함께 갈 수 있다는 얘기인지, 단지 본인이 인정하는 부분은 말의 실수라고 많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말의 실수와 오해만 고치면 한국교회와 함께 갈 수 있다고 그렇게 보시는 것인지,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회개라고 하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본인 스스로 지금 공청회에 들어가기 전에 무엇을 회개해야 되겠는지, 한 번도 회개의 구체성을 언급한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밝혀 주십시오.

    * 류광수 목사: 기조연설문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기록이 되어져서 나올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검증을 계속해도 좋은 말씀만 드리려고 노력하고요, 그리고 진실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오해라는 단어를 쓴 배경은, 여러 가지 비판을 받았을 때 그 문서나 책자를 보았을 때 제가 충격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그래서 거기에 대한 가장 좋은 자세로 할 말은 그 단어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오해된 부분이다'라고 저는 말할 수밖에 없었고요, 그러면 차후에 '왜 그러면 그런 오해와 이런 말들을 많이 주고 받게 되었는가' 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간단하게 말씀드리기 힘들겠고요.

    여러 가지 이제는 저는 '나의 태도와 바른 것을 계속함으로써 해결될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회개의 말을 쓴 것이고요. 실제로 한 마디로 짧게 얘기하자면 상대방이 저에 대한 비판을 할 때 '저건 맞다'라는 생각이 들어야 진정한 회개가 되는 것이지 도저히 아니라고 생각이 들 때는 진정한 회개가 힘들겠죠. 그래서 너무 지금까지, 최삼경 목사님이 처음으로 제게 진실한 질문을 하는 것이지, 지금까지 질문을 한 사람이 없습니다. 묻지도 않고 얘기를 하자고 해도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답답해서 쓴 단어인데 그 이상 더 좋은 단어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 최삼경 목사: 구체적인 내용은 후에 들어가겠습니다만, 십여 개 교단이 가지는 공통점 몇 가지가 있습니다, 류목사님께 지적한  내용이. 천사동원권 문제나 또는 귀신론을 중심한 구원관이나 그 다음에 재영접설이나 이런 부분이 한 마디로 말해서 오해라고 생각하십니까?

    * 류광수 목사: 가장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어떤 오해를 하고 계시는가, 느껴진 것을 얘기하자면 '전도활동을 하는데 교회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냐'라는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구요. 제 중심은 그게 아닌데. 그 다음에 '천사동원권이라든지 이런 귀신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을 보니 혹시 귀신론 쪽에 관계되지 않았나' 하는 오해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기존 교회를 부인하기 위해서 재영접설을 새롭게 말하는 것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중요한 세 가지 질문을 하셨는데 거기에 대한 오해는 제 중심으로서는 정말 그것은 오해인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내용을, 저의 잘못된 표현이 있는 것은 회개하고 또 거기에 대한 오해된 것은 풀어드리려고 합니다.

    * 최삼경 목사: 그러면 본인 스스로 회개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으니까,  회개해야 될 부분은 또 한 번 무엇이 있는지 말씀해 주실래요?

    * 류광수 목사: 제일 첫번째 것은, 제가 잘못을 지금까지 느낀 것은 '전체를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 (하는 점입니다.) 전체를.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전도만 하는 이런 삶을 살아온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전체를 생각하면서 전도해야 되겠다' 좀 이런 면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 최삼경 목사: 적어도 회개를 본인이 하겠다고 하셨다면 다른 사람이 요구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본인 스스로도 회개할 점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회개하겠다는 표현을 쓰셨을 것으로 본다 이 말이죠. 그렇다면 본인 스스로 지금까지 이 엄청나게, 제가 볼 때 목사님보다 더 이단성이 많은 집단도 이렇게까지 이단규정을 한국교회로부터 많이 받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K집단의 경우는 제가 볼 때 목사님보다 훨씬 이단성이 농후한데도 한국교회 6개 교단으로부터 지적을 받고 이단 사이비로 규정을 받았는데, 웬일인지 그 사람보다는 제 입장으로 봐도 사이비 이단성이 더 적은데 십여 개 교단이나 한국교회 역사에 없도록 목사님을 사이비 이단 내지 경계할 단체로 규정을 했는데, 그것들을 통해서 목사님이 회개해야 될 내용이 '전체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뿐이라는 말입니까?) 그러면 전체를 생각하지 않아서 무엇을 어떤 잘못을 했다고 생각이 되느냐 하는 구체적인 것 한두 가지라도 얘기해 달라 그 말입니다.

    * 류광수 목사: 예. 첫째로는 제가 전도에 너무, 한  24년 전부터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까 좀 한국교회의 안타까운 부분을 너무 비판을 많이 했다 (하는 점입니다.) 심하게. 그 부분은 우리 자체에서도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와 같이 전도하고 같이 가야지 비판을 해 버리면 이 문제가 되지 않겠냐 하는 것도, 저도 그렇고 우리 자체에서도 많은 그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이 제가 솔직히 공청회를 통해서 제일 제가 회개해야 될 부분이다 그렇게 보고요. 제가 '한국 교회가 구원이 없다' 이런 식으로는 전혀 (말해) 본 적이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고 흔들리는 교회는 많아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 좀 안타까운 나머지 비판을 했다든지, 이것을 너무 심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제가 좀 많이 회개를 합니다.


    * 최삼경 목사: 다락방에 두 가지 얼굴이 보입니다. '정통교회와 같다. 우리는 정통교회와 하나다' 라고 하는 그런 얼굴과 또 '우리는 정통교회와 다르다'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정통교회와 다르다고 하는 점이 전도의 열심히 달라서 다른 것인지, 아니면 전도의 방법이 달라서 다른 것인지, 아니면 전도의 신학이 달라서 다른 것인지 그 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 류광수 목사: 여러 가지 말이 나돌 수 있겠습니다만, 잘 보셨는데요, '어디가 같으냐?' 복음과 신학사상이 같습니다. '그러면 어디가 다른가?' 전도 현장에서 전도의 열심, 실제적인 전도에 대한 추구하는 마음, 그런 부분이 다르다고 봅니다.

    * 최삼경 목사: 그러면 전도를 열심히 해서 한국교회로부터 사이비 이단이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 류광수 목사: 그건 아니죠. 전도의 이유가 사이비가 될 수 없죠.

    * 최삼경 목사: 그런데 정통교인은 전도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 류광수 목사: 저도 정통교회 중에 속해 있으니까요 (그런 전제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도 정통교회에서 자랐구요. 지금, 현장에 가보면 전도를 안 한다가 아니고, 현재 우리 기독교인이 복음을 받을 사람이 있어도 설명을 못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빨리 바꿔야 됩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한 강조를 많이 한 것이죠.

    * 최삼경 목사: 그 원인이 어디 있다고 보십니까? 열심의 문제입니까? 신학의 문제입니까?

    * 류광수 목사: 아니죠. 신학의 문제가 아니죠. 그것은 원인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것이죠.

    * 최삼경 목사: 그게 뭡니까?

    * 류광수 목사: 지금 보통, 신자들이 그렇습니다. '신자들이 전도에 대한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하는) 그것이 일반적입니다. 아마, 다 그렇게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강조를 하다보니까 다르게 보여진 것이죠. 그 열심에 있어가지고 또 거기에 대한 방법이라든가 하는 것이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겠죠. 그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 최삼경 목사: 그러니까 전도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하시는 것이, 제가 지금까지 본 바로는 목사님이 '다락방적 구조를 통해서 전도를 해야만 전도가 된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 내용을 제가 수도 없이 발견하고, 정통교인이 가지는 구원의 확신과 정통교인들이 가지는 영접이나 이런 것들이 문제가 있다고 (류목사님께서) 수도 없이 지적을 했어요. 제 편에서 볼 때는 열심도 '정통교회는 우리하고 (비교할 때) 열심이 못 따라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요. 나도 그 열심은 인정하겠어요. 그것은 구원파는 구원에 대한 열심이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제일 뜨겁고, 시한부 종말파는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선에서 보면 종말 신앙에 대한 열정이 가장 뜨겁고, 귀신파는 귀신에 대한 관심이 가장 뜨겁습니다.

    그렇다면, 전도를 캐치프래즈로 내걸고 하고 있는 다락방이야 말로 전도에 대해서 가장 뜨거울 수밖에 없죠. 그 점은 장점인데, 혹 그것이 장점이 되는 이유가 틀림없이 둘 중에 하나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도의 방법이 다르든지, 전도의 내용이 다르든지 하리라는 것입니다. 늘 '전도자로 봐달라, 전도자로 봐달라' 마치 전도자에게는 전도의 신학이 존재할 수 없는양, 전도자에게는 이단성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해왔어요. 제가 글을 다 통해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하나씩 묻습니다. 전도에는 전도신학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지요?

    * 류광수 목사: 그렇겠죠.

    * 최삼경 목사: 그런데 목사님의 전도신학과 정통교인들이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전도신학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 류광수 목사: 그 부분에 있어서 변함없는 생각을 제가 갖고 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제가 정통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을 목사님이 이해해 주시기 바라고. 그러면 '왜 말이 구분되어지게 되었느냐?' 우리가 지금 같은 가족 같은 입장에서 볼 때도 신학이 잘못되어 있다거나 뭐가 잘못되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 지금까지, 현재까지 온 사실 가지고는 전도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가 제일 주장 많이 하는 부분은 가장 '성경적으로 돌아가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만이 전도할 수 있다' 그것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 최삼경 목사: 그러면 정통교회는 성경적으로 하지 않아서 어려움을 느낀다고 봅니까? 가장 성경적이란 말은, 세상에 제가 지금까지 본 바로는 정통교회라고 하는 말은, 어느 누구도 자기가 정통이라는 말은 누구나 다 합니다. 그것이 천주교에서 말하는 외형적 정통이냐 아니면 이레니우스가 말하는 성경적인, 그리고 성령의 내적인 전승을 말하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뿐이지 누구든지 자기가 정통교회라고는 말을 한다고 하는 점인데, 왜 한국교인은 전도의 문을 열어 주었고 전도의 효과를 위해서 한국교회에 봉사를 하고 있는 류목사를 고마워하지는 못하고 그런데 류목사님을 왜 이단이라고 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전도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CCC도 있고, 또 CCC의 전도에도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제임스 케네디의 전도폭발도 있고. 그러면서도 CCC의 전도가 한국교회에 유익을 주었다고 보편적으로 다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 여러 가지 전도법들이 있는 중에 목사님이 굳이 성경적이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성경적이 아니라 한다'라고 말해야 말이 되지 않냐 그 말이죠.

    * 류광수 목사: 그렇겠습니다만, CCC라든지 여러 단체라든지, 이런 단체들이 처음에는 저처럼 오해를 다 받았습니다. 다 받았고, 그분들이 계속 잘하다 보니까 지금은 오해가 없어졌죠. 저도, 그렇게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계속 바르게 가다가 바로 이해될 것으로 (믿습니다.) 지금, 목사님께서 얼마만큼 성경적으로 전도하셨는가는 제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알 수 없고, 또 한국교회 전체가 얼마만큼 성경적으로 전도가 실제로 되어지고 잘 한지는 저는 알 수가 없고, 단,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제 앞에 있는 사람에게 성경적으로 전도해서 현장에다 전도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한국교회를 다 부정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월간<교회와신앙> 1998년 10월호)


    4. 몰몬교의 한국전래

     

    미국에서 이미 두파로 나누어져 포교되어 온 몰몬교는 한국에서도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하여 전래되었고 서로 별개의 종교 단체로 발전하였다.

     

    1>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는 1951년 김호직이 미국에서 몰몬교의 신자가 되어 침례를 받고 귀국하여 부산에서 6.25사변으로 파병되었던 미군들과 함께 집회를 가짐으로 시작되었다.

     

    조직기구로는 선교부와 교구가 양립되어 있고 선교부 아래 각 지방부를 교구 아래는 감독구(Ward)를 두는데, 한국에는 현재 3개의 선교부와 5개의 교구가 있다. 또한 선교부 아래의 지방부로는 서울서.서울동.중부.남부 호남.미국인 지방부등 6개가 있으며, 연 2회의 교구대회를 열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총본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산하에 교육기관으로 신학연구원(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을 운영하고, 정기간행물인 「성도의 벗」을 발행하고 있다.

     

    본부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 7번지에 두고 대표자인 선교부장은 하킨스 선교사가 맡고 있다.

     

    2> 복원 예수 그리스도교회

     

    복원 예수 그리스도교회는 1958년 한국 주둔 미국인 함(Wher Ham)에 의하여 전래되었다. 조직기구로는 한국선교부 산하의 하부기관으로 서울과 충남 아산에 지부가 설치되어 있다.

    년1회 성직자 및 일반 신도대회를 열고 있으며, 미국 복원 예수 그리스도교 세계본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복원고등공민학교(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의료기관으로 매곡기독병원(충남 아산군 양정면 매곡리)을 운영하고 있다.

     

    본부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340-27에 두고 대표자는 선교부장은 조한국이 맡고 있다.

     

     

     

    5. 몰몬교의 포교

     

    한국에 와 있는 선교사라고 하는 그들은 모두 평신도로서 번화한 길거리나 가정을 방문하면서 크고 작은 팜플렛을 나누어주며 환등기(등화를 써서 그림의 확대상을 벽이나 영사막 따위에 비추는 장치)등을 동원하고, 그들은 주로 젊은이들이 짝지어 다니며 젊은 남녀층을 유혹하며 학생들에게 외국어 교습을 시키는 활동을 통하여 포교한다.

     

     

     

    6.몰몬교의 중요의식

     

    가. 신전결혼 의식

     

    몰몬교에서는 두 가지 결혼이 있다.

     

    1)영원한 결혼(Marriage for eternity) - 이는 그들이 중요시하는 신전예식이다.

     

    2)시간적 결혼(Marriage for time) - 이는 신전밖에서의 결혼으로 무의미하다.

     

    영원한 결혼은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교회의 신전 안에서만 받을 수 있는 축복이라고 주장한다.

     

    일반 결혼은 사망과 함께 끝나는 것이고, 충만한 구원을 얻으려면 반드시 신전예식이어야하며 남자나 여자나 혼자서는 승영에 들어갈 수가 없다.(엘리야 사명p.31,구원의 교리p.40)고 한다. 그리고 몰몬교에 있어서 신전예식은 곧 구원에 이르는 길이 되므로 절대추종자들에게만 행해진다. 그러므로 몰몬교는 이 신전 예식, 곧 영원한 결혼예식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없으며(교성76:50-70,이라34권 p.643)사망의 상속자가 된다고 한다.

     

    * 천상성례인 신전결혼은 중요한 교리이다.(교성132:15-16)

     

    * 신전예식은 신성한 결혼을 해야 구원이다.(성약132:15-20)

     

    * 독신으로는 구원이 없다.(구원의 교리 p.40)

     

    나. 침례의식

     

    몰몬교의 침례의식은 8세 이상된 몰몬교인으로서 여섯과의 기초 공부를 마친후 지부장이 신앙의 유무를 확인한 후에 침례를 베푼다.

    더욱이 몰몬교의 침례의식은 구원과 직결된다. 곧 침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침례는 해의 천국에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한다.(구원의 교리 p.40)

    몰몬교의 또 하나의 교리는 죽은 자를 위한 대신 침례이다. 인간이 구원을 받는데 침례가 필수임으로 죽은자를 위하여 대리침례를 받아야한다.(나와 나의 조상1)고 가르치며, 죽은 자를 위한 침례의식은 창세기전부터 제정된 것이라고 한다.(교성124:33)

    또한 몰몬교의 성찬식은 매주 거행하는데 8세이상이면 모두가 참여한다.

     

     

     

    7 . 몰몬교의 일부다처주의

     

    몰몬교는 일부다처주의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 하며 가장 높은 덕이라고 한다. 몰몬교가 이것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1843년 7월 12일 일리노이주 한 코크지방 나부에서 결혼언약의 영원한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교성132:4) 그들이 다처주의 때문에 일리노이주에서 추방당하였고, 또 유타주에 정착하여서도 미국의 큰 사회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미국법은 다처를 금하고 있으므로 계속 국법에 대항하다가 존폐의 위기에 봉착하자 드디어 1890년 9월 24일자에 대관장 원포드 우드럼에 의해 "국법으로써 금지된 결혼을 맺지 말자"하고 형식상 금지되었으나 이는 법을 피하고 여론을 피하는 방편일뿐 다처주의는 몰몬경의 기록처럼 축복으로 여기기 때문에 계속된다.

     

    몰몬교의 창시자인 요셉 스미스 2세는 일종의 변태성욕주의자로 50여명의 처를 거느렸다고 한다.

     

     

     

    8. 몰몬교의 그릇된 주장

     

    * 일부일처를 축복으로 주장한다.(교성132:4)

     

    * 독신자는 천국에 못 간다고 주장한다.(교성76:50-70, 이라34권 p.643)

     

    * 아담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구원교리 1권 p.91)

     

    * 요셉 스미스를 인정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구원교리1권 p.180)

     

    * 몰몬성약을 거부하면 저주받는다고 주장한다.(구원교리1권 P.151)

     

    * 요셉 스미스를 믿어야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구원교리2권 P.267)

     

     

     

    9. 몰 몬 경

     

    가. 몰몬경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성경에 더하여 경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책. 1830년에 뉴욕주 팔미라에서 처음으로 출간된 이 책은 그 후 대단히 많이 재판되고 번역(목회와 신학 1995년 9월호 p.171 1830년 처음 출판된 뒤 4,000번이나 문구를 바꾼 오류와 모순투성이라고 함)되었다.

     

    몰몬교들은 이 책이 요셉 스미스에게 계시되고 그에 의해서 번역된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책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B.C.600년경 한 예언자 레히가 인도하여 예루살렘으로부터 아메리카로 이주하였던 한 무리의 히브리인들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은 번성하였으며 결국 두 무리들로 나뉘게 되었다. 한 무리는 레이맨 사람들로 자신들의 신앙을 잃어버렸으며, 야만인이 되었고, 아메리칸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다. 또 한 집단은 니파이 사람들로 문화적으로 발전하였고, 대도시들을 건설하였으나, A.D.400년경에 레이맨 사람들에 의해서 멸망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이 있기 전에 예수가 나타났으며, (그의 승천후에)니파이인들에게 가르쳤다.

     

    그 역사와 가르침들이 예언자 몰몬에 의해서 축약되어 금판위에 기록하였으며, 그 금판들을 땅에 묻었다. 거기서 그것들은 묻힌 채로 1400년이 흘렀다. 그런데 그렇게 세월이 흐른 뒤 한 부활한 존재 또는 천사인 모로나이는 그 금판들을 요셉 스미스에게 주었으며, 결국 그 금판들은 없어지게 되었다.

     

    비몰몬교 비평가들은 그 책의 기원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주장하기를 그것은 솔론몬 스포울딩이라는 한 성직자가 쓴 소설의 유실된 원고에 기초한 것이라 하였다.(목회와 신학 1995년 9월호 p.171) 몰몬경은 솔로몬 스폴딩이라고 하는 은퇴목사가 쓴 두 권의 공상소설「아메리칸 인디안의 시조」,「이스라엘의 잃어버린 후예」를 표절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나. 몰몬경과 고고학

     

    * 몰몬경에 나오는 도시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 몰몬경에 나오는 이름들은 세계의 비석들 가운데서 발견되지 않았다.

     

    * 히브리어로 된 원판은 아메리카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 이집트어나 혹 요셉 스미스2세가 번역한 개정된 이집트어와 같은 유사 이집트어로 된 원판이 아메리카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 몰몬경의 옛 사본들이 발견되지 않았다.

     

    * 고대 원주민들이 히브리어와 기독교의 신조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는 옛 비문들이

    아메리카에서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 몰몬경에 나오는 인물들, 나라들, 장소들에 대한 언급이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 몰몬경은 참되다고 증거하는 어떠한 종류의 고기물도 발견되지 않았다.

     

    「고기 古記- 옛적 기록 antique records古基- 오래된 옛터 old site」

     

    * 몰몬교 학자들은 몰몬교를 지지할수 있는 증거를 찾기보다는 몰몬경의 진술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들 조차 손을 대지 못하도록 강요당해왔다.

     

    다. 몰몬경의 개정판

     

    요셉 스미스 2세에 의하여 몰몬경은 "땅 위의 모든 책 중에서 가장 바른 책"이라고 하며 1830년 초판에서 시작하여 현대판에 이르기까지 4,000번이나 문구를 개정하였다.

     

     

    ※ 참 고 자 료 ※

     

    * 족보사업

     

    계보 협회의 인도하에 교회와 교인들은 출생,결혼,사망시등 중요 기록과 통계를 오늘날까지 수백만권을 마이크로 필름으로 복사해서 교인들에게는 물론 일반에게도 공개하고 있다.

     

    * 몰몬교의 신전

     

    몰몬교회의 신전은 전 세계에 걸쳐 18개소인데 미국 유타주의 솔트 레이크시로 간오그던,맨타이, 성조지,푸로보 ,아리조나주의 메사, 아이다호주의 아이호훨스 , 캘리포니아주의 로스앤젤스와 오클랜드 , 카나다의 알버타, 카드스튼, 스위스랜드 ,영국 , 하와이 , 뉴질랜드 , 워싱턴등이다.

    특히 솔트 레이크시에 있는 신전은 1853년에 시작하여 40년(1893년 4월 6일 38층)만에 완공했다.

     

    * 교육 기관과 병원

     

    미국의 브리감 영 대학교 , 아이다호주의 릭스대학 , 솔트 레이크시의 말일성도 상업 대학 , 하와이 교회대학 , .뉴질랜드 교회대학 , 그리고 멕시코 , 카나다 , 영국 , 호주 , 일본 , 필리핀 , 인도 , 독일에 종교교육학원이 있다.

     

    솔트 레이크시에는 말일 성도 병원이 있으며 유타주 , 아이다호주 , 와이오밍주에도 병원이 있다.

     

    * 솔트 레이크 몰몬 태버나클 합창단

     

    몰몬교의 태버나클 합창단은 375명으로 구성되었고 1847년 발족했다. 그리고 1929년이후 매주일 아침 템풀수케아로부터 칼럼비아 방송망을 통해 미국전역에 중계되는 라디오 방송을 위해 노래부르고 있다.

    자료 :

    안식교란?




    연구기관:예장(통합), 예장(고신), 기성

    오늘날의 이단은 자금력도 대단하다. 어느 정도 투자를 하느냐에 따라 세가 결정된다는 논리를 적절히 적용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단 집단이 사업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안식교와 관련된 기관은 위생병원, 삼육식품, 삼육대학, SDA영어학원, 월간<시조> 등이다. 혹자는 '이단은 이단이고 제품이 좋으면 살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을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구입하는 이단 제품으로 인해 이단 집단이 성장하고 있다고, 그리고 제품에 해당하는 이익금을 이단 교주에게 내가 헌금하고 있다고....

    한국의 안식교 현황
    미국에서 시한부종말론 주의자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의 사상을 이어 받은 엘렌 지 화이트(Ellen G. White)로부터 시작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Seventh day Adventists 일명 안식교)는 1904년에 하와이로 이민 가던 한국인들이 일본 체류중에 안식교인이 되어 되돌아와 포교를 시작함으로써 한국에 유입되었다. 현재 전국에 800개가 넘는 교회와 120,000명이 넘는 신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 기관으로는 병원(위생병원)과 , 교육기관(삼육 초.중.고, 대학교, SDA영어학원)과 출판사(시조사, 월간'시조'발행)와 삼육식품 등이 있다.

    안식일 문제
    안식교의 주장에 의하면 안식교는 '남은 자손'으로서 참 교회요, 로마카톨릭은 배도(背道)했으며 개신교회는 성경적 진리로부터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일요일에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 아닌 인간의 계명을 따르는 것으로, 거짓 예배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는 예배가 될 수 없고 '짐승의 표'를 받으며, 가장 참혹한 심판을 초래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안식일 준수'는 그들에게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기본교리' 27, pp. 151~161, 238~241, 244)

    연구결론
    안식교는 율법주의적 구원론, 토요일 안식일 문제, 엘린 지 화이트의 계시론, 영혼멸절설, 영원지옥부재설, 또는 조사심판 및 2300주야 문제 등의 비성경적인 교리를 주장하는 이단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건강문제를 앞세우고, 정통교회를 표방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 미혹성이 더 심각하다 할 수 있다.

    안식교 비판을 마치면서 느끼는 것은 엄청난 이단인 안식교도들이 변절하고 위장하고 동일시하며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한 분파로 아는 실수를 하고 있음을 지적 안 할 수 없으며, 교회는 바로 알고 성도들을 일깨워야 한다. 끝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은 성경의 인간론과 구원론, 재림론, 인식일에 대한 교리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된 복음을 믿고 받아들여 자유함을 누릴 수 있기 바란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고 또 성취시키려 오셨으며 구원은 은혜로 된 것이지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다.

    꼭 안식일을 지키거나 음식을 가려 먹는 것 등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롬 11:6, 갈3:21, 22, 갈 3:11, 히 10:38). 의롭게 되는 것도 믿음으로(갈 2:16)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참자유와 구원을 얻도록 힘써야 한다.

     

    신학대학교의 학위 논문을 검색하던 중 눈에 띄는 게 있었습니다. 릭조이너의 예언 사역에 관한 비판적 연구였습니다. 신사도운동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뿐 아니라 신사도운동의 12사도중 한명으로 불리는 릭조이너를 특정해서 비판했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 있는 논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 사이트에는 서론 부분을 뺀 나머지를 중심으로 3회에 걸쳐 요약·연재합니다. 논문게재를 허락해주신 노득용 목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본 논문은 ‘신사도운동과 릭 조이너(Rick Joyner)의 예언사역에 관한 비판적 연구–개혁신학적 입장에서-’라는 제목으로 숭실대학교 기독교학대학원 신학석사 논문으로 2008년 6월 제출됐습니다. 시간이 지났지만 신사도운동을 이해하는데, 특히 그들의 예언사역의 허상과 릭조이너라는 핵심 인물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편집자주>

    제 3 장 릭 조이너의 예언사역 이해

    3.1 릭 조이너의 환상을 통한 직통계시론
    릭 조이너(Rick Joyner)는 현재 미국 노스 캐롤라이너의(Noth Carolina)주 샬롯(Charlotte)에 위치한 샛별출판선교회(MorningStar Publishing and Ministries)의 설립자이며 대표이다. 그는 20여권의 책을 집필했고, 그중에 『빛과 어둠의 영적전쟁』(The Final Quest)과 『예언사역』(The Prophetic Ministry),『동산의 나무』(There Were Two Trees in the Garden), 『추수』(The Harvest)등이 있다. 그는 또 샛별지와 예언회보의 편집인이고 집회강사며 선지자(예언자)라 부른다.

     

    릭 조이너는 “예언은 신구약 모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가장 주요한 방법67)”이며, “시대가 종말을 향해 다가갈수록 교회는 더 많은 예언적 통찰력을 필요로 하게 될것”68)임으로, 예언사역은 “말세에 가장 중대한 이슈”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69) 또한 릭 조이너는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靈)”(계 19:10)이기에 “예언이란 예수께서 직접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증거 해 주시는 것”70)이라는 주장이다. 즉 “성경말씀을 가르쳐 대언하는 자가 예언자”가 아니라 “직접 성령의 계시를 받고 전달해주는 자가 예언자”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그의 글을 보면 내가 말하는 ‘예언적 체험’이라는 것은 수도 많고 다양하다. 거기에는 성경에서 주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셨던 모든 기본적인 방법들이 다 포함된다. 주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기 때문에 자기 백성들에게 동일한 방법으로 말씀해 왔고, 이러한 ‘체험들’은 교회사를 통하여 계속 발견되고 있다71) 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성경에서 주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셨던 모든 기본적인 방법들을 가지고, 오늘날 신자들에게도 말씀하신다는 뜻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백성들은 ‘성경(율법)을 통해서 말씀 하신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것’이였음으로, 오늘날도 그와 같이 직접적으로 계시하신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릭 조이너의 교회에서 예언사역의 중요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스티브 탐슨(Steve Thompson)72)도 같은 견해이다. 릭 조이너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계시를 받았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나서(필자주: 성령의 압도적인 임재후) 쓴 책이 바로 현재의 교회 상황과 임박한 사건들에 관한 『추수』(The Harvest)라는 책입니다. 그 이후에 나는 다른 환상들과 계시를 받았는데 그것들은 『마지막 추구』(The Final Quest) 그리고 『부르심』(The call)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계시들 중 어떤 것들은 열린 환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떤 것들은 마치 영화 스크린을 보고 있는 듯한 가시적이고 외적인 환상들이였습니다.73)

     또한 릭 조이너는 『횃불과 검』(The Torch and The Sword)에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 가르침을 받는 체험을 적고 있다. 주님이 가까이 오시자 흰옷을 입고 계신 것과 앞으로 묶여져 있는 금띠를 두른 것이 보였다. 옷의 밑 가장자리와 소매 끝은 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해가 뜨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한 곳에서 해가 뜰 때 다른 곳에서 해가 진단다. 너는 한 시대의 황혼과 다른 시대의 새벽에 살고 있다. 내가 여기 온 이유도 네가 살고 있는 시대의 마지막과 다가오는 시대의 시작에 관하여 배우기 위해서이다”.74)

     

    릭 조이너는 꿈을 하나님의 직접계시로 믿고 있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1995년 2월 16일에 받은 꿈에서 나는 주 예수께서 하나님의 동산에서 생명 나무 아래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군대가 거기서 주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분은 이제 막 우리에게 아직도 묶여 있는 우리 형제들을 위해 전장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굉장히 잘생겼다고 부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외모는 오히려 평범했습니다.75) 릭 조이너는 환상이나 꿈을 통해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계시를 받고, 그 계시의 내용을 책으로 만들어 냈다.

     이렇게 계시를 받아 만들어진 책들은 신사도주의자들에게는 성경과 상응한 권위를 가진다. 실제 설교를 통해서 이러한 환상과 신비체험자들의 간증을 인용하며, 성경을 해석하고 설명하기도 한다. 또한 릭 조이너는 예언사역자(선지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체험한 영적체험을 성경에 나오는 경험과 동일시한다. 그는 말하기를 이러한 경험들은 구약과 신약에서 꽤 자주 등장한다. 밧모섬에서 요한이 받은 계시도 여기에 속하며, 에스겔이 경험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셋째 하늘에 들려 올라가서 자신이 몸 밖에 있었는지 안에 있었는지 분간하지 못했다(고후 12:24). 베드로는 부정한 동물들이 천에 쌓여있는 환상을 보았는데 이것은 직접 계시의 좋은 예이다.76)라고 말하고 있다. 릭 조이너의 “이러한 경험들은 구약과 신약에서 꽤 자주 등장한다”며, 자신의 여러 영적인 체험들은 성경에 기록된 것과 동일하다는 주장이다. 자신의 체험을 성경안의 인물들이 체험했던 것들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성경에 나오는 그러한 성서 기자들의 체험은 나중에 ‘정경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분명 이들이 베드로처럼, 요한처럼, 바울처럼 동일한 입신, 꿈, 환상들을 동일한 하나님으로부터 계시 받았다면, 그 내용들은 ‘또 다른 하나님의 말씀’ 이 될 수 있음이다. 이에 대해 개혁신학적 입장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특별한 체험과 영적 현상들은 성경을 기록하기 위한 한시적이고, 직접적인 계시체험이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영적인 현상들과 그 권위와 초자연적 능력이 동일할 수 없다. 그런데도 릭 조이너는 하나님과의 직통계시적 예언을 주장함으로, 전통적으로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고백해 온 성경의 유일사상을 거부하고, 성경을 벗어난 계시적 영적체험을 중시 여기기 때문에 성경의 권위를 위협할 수 있다.

     .2 릭 조이너의 사단지배론
    릭 조이너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사단의 조종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환상 중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이 사단의 군대들이 말을 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들 중 대부분은 옷을 잘 차려입고 존경 받을만하고 또한 세련되고 교육도 잘 받은 듯이 보였으며, 사회 각 계층을 고루 대표하고 있는 듯하였다. 이들은 스스로의 양심을 다독거리기 위하여 기독교의 진리는 고백하지만 실제로 삶은 어두움의 세력들과 타협하고 있을 때 그들에게 배속된 마귀들은 더욱 더 강해져서 이들의 행동을 마음대로 조종했다.77)

    릭 조이너의 주장을 살펴보면, 사단이 조직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타고 다니며, 조종하고 있다.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교회 안에서나 사회 안에서 지도층 급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상적인 삶 가운데서도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어두운 세력들과 타협할 때, 마귀들이 더욱더 강해져서 악한 행동을 하도록 충동한다. 릭 조이너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마귀들이 이 그리스도인들을 타고 있는 것을 보았으나 불신자들의 경우와는 달리 그들 안에 들어가 있지는 않았다. 이 그리스도인들이 마귀를 털어내려면 단지 그들의 마귀들과 타협하는 것을 중단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명백하였다···, 마귀들의 권세는 거의 전부 기만의 힘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명백하였다. 그들은 이 그리스도인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쓰면서도 정작 이들 스스로는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만큼만 속고 있었다.78)

     릭 조이너는 환상체험을 통한 예언에서 마귀가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열심히 나름대로 주의 일을 하며, 쓰임 받는다는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실상은 사단에게 속아 사단의 도구로 쓰임을 받고 있다. 이 군대는 교회의 분열을 가져와 교회가 완전히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도록 획책하는 것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그리스도인들을 이용하여 자기 형제들 간에 싸움을 일으키는 것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전방 사단들 중 대부분은 그리스도인들이거나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한 사람들이었다.79)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사단의 포로가 되어 사단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군대에 소속되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착각한다.80) 또한 그리스도인 포로들이 같이 포로 된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한다. 이따금 힘이 처진 포로들은 넘어져 쓰러졌다. 이들이 땅에 쓰러지자마자 다른 포로들은 이들을 조롱하면서 자신들의 칼로 찔러대었다. 다른 포로된 그리스도인들은 옆에 서서 동의한다는 듯이 이를 바라보고 있다가 가끔씩 자기들의 칼로 쓰러진 자들을 다시 찌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릭 조이너는 마귀들이 들고 있는 무기들을 소개한다. 그것은 “협박, 배반, 참소, 험담, 중상, 흠잡기이며, 공격전초대로 거절, 앙심, 조급, 용서하지 못함, 정욕 등의 이름을 가진 마귀들의 중대들”이라고 주장한다.81) 그러나 이러한 마귀의 무기나, 마귀의 역사에 대해서 신사도주의자인 케네스 헤긴은 그 견해를 릭 조이너와 달리한다. 그는 『모든 어둠 권세를 다스리는 승리하는 교회』에서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들이 직접적으로 악한 영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한다.82) 즉, 케네스 헤긴은 인간 내면에 일어나는 죄악된 요소들은 마귀의 일이 아니라 “인간 육신의 역사”이다. 케네스 헤긴은 육신에는 강한 욕망이 있는데, 이것은 마귀의 역사나 귀신의 활동이 아니라는 것이 릭 조이너와 상충된 주장이다.

     인간의 죄악된 요소들은 육신적 취향인데 “유혹의 욕심, 옛 사람”(엡 4:22), “마음의 정욕”(롬1:24), “욕심에 끌려 미혹 당함”(약1:14)등으로 나타난다. 그럼으로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주장하며.83) “육신의 문제를 해결할 주체는 바로 인간 자신임”을 알고, 예수님의 도움을 구하라고 설명한다.84) 그러나 이와는 달리 릭 조이너는 인간의 삶을 ‘빛과 어둠의 영적전쟁’으로 보고, 사단과의 대결구도로 이끌어가고 있다. 그럼으로 ‘잘못된 인간행동은 사단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것’이라는 무조건적인 사고는,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인간관계를 이루는데, 큰 어려움을 초래하게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3.3 릭 조이너의 교회 내전(內戰)론
    릭 조이너는 다가오는 교회의 모습은 영적인 내전의 전쟁터가 될 것이라 말한다. 그 이유는 전통교회는 ‘종교적 영’이라는 것에 지배당하고 있고, 이 ‘종교적 영’이라는 것의 특징 중 하나인 ‘기만(欺瞞;속임)’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전통교회가 하나님을 위한다는 열정 위에 세워져 있고, 이 하나님을 위한 열정은 악한 것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 때문에 속고 있다는 주장이다. 릭 조이너는 그 실례로 바리새인들의 종교적 열심과 구약의 엘리제사장과 바울이 회심하기 전의 열심을 들고 있다.85) 릭 조이너는 신사도교회와 전통교회와의 전쟁을 예견하며, 자신들의 편에 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종교의 영에 대한 교회의(신사도교회) 대적은 마지막 시대에 있어서 웅장한 싸움들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전투에서 싸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결정해야 할 문제는 이것입니다.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입니까.86) 이러한 조이너의 주장은 결국 신사도운동을 수용하지 못하고 제동을 거는 전통교회는, 종교의 영에 사로잡혀 있다며, 전통교회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낸다. 릭 조이너가 말하는 종교의 영의 형태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들의 잘못된 점만을 보는데 열심을 내는 것이라는 “위조된 분별 은사”다. 둘째, 이세벨이 예언자 엘리야를 죽이려 하고 박해한 가장 큰 원수였던 것처럼 예언사역을 공격하는 “이세벨의 영”이다.

     셋째, 주님의 희생을 신뢰하기 보다는 훈련과 개인의 희생을 신뢰한다는 “자기의(自己義)”이다. 넷째, 인간을 과도하게 높이거나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을 숭배하도록 하는 “거짓계시”이다. 다섯째, 주님을 위해 살기보다는 주님을 위해 죽는다는 자살의 영의 한 형태라는 “순교자 증후군”이다. 여섯째, 십자가의 능력을 통한 내적 치유를 행하는 것이 아닌 상담학적, 인본주의 심리학으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은 “자조적인 심리학”이다.87) 그러나 릭 조이너는 표면적으로는 신사도주의자들과 전통교회간의 갈등을 사단과의 전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악한 자에게 사용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고 용기를 잃었다. 그리고 나는 또한 이제 시작되는 전쟁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있을 큰 전쟁”이 될 것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이 임박한 전투의 배후 세력들에 대해 깨닫고 있는 자가 너무나 적을 것이기 때문이였다.88) 그러나 실상은 그 영적인 내전이란 신사도주의 개혁운동의 흐름에 동참하는 세력들과 이에 반대하는 세력 간의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주장인 것이다. 마치 종교개혁시대의 거대한 갈등국면처럼, 다가오는 시대에 교회변혁을 위한 큰 물결인 신사도운동이 활성화됨으로, 교회내의 내전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피터 와그너도 이러한 신사도운동의 갈등관계를 사단과의 대결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사단은 교회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려할 때 사도직이 회복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두려워서 방해한다”는 것이다.89) 그러므로 릭 조이너는 “교회(신사도교회)가 완전히 승리할 때까지”, “교회 안에 있는 형제들(신사도주의자들)의 고소자의 요새들”이 무너질 때까지 싸울 것을 아래와 같이 계시 받았다 한다.

     1996년 2월 23일 나는 교회가 영적 내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계시를 세번째로 받았습니다. 나는 1988년 처음으로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95년 초에 나는 다시 꿈에서 그것을 보았고, 그것을 『마지막 추구』(The Final Quest)의 한 부분으로 써냈습니다. 1996년 2월 23일에 나는 이제 교회가 완전한 승리를 얻을 때까지 힘써 싸우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이 큰 전쟁을 예비하도록 경고할 시간이 되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완전한 승리는 교회 안에 있는 형제들의 고소자의 요새들을 완전히 내던져 버림으로써 이루어집니다.90)

     이런 맥락에서 릭 조이너는 교회 공동체 안에 “거짓선지자와 거짓 영적 은사자”가 있다며, 그것은 마치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리는 사건”과 같다91)고 말한다. 그는 지금까지 교회들이 이러한 가라지를 제거하려다가 다른 참된 은사까지도 소멸시키는 우를 범하여 왔다는 이러한 전통교회의 행동을 “교회안의 내전”으로 설명하고 있다.92) 릭 조이너는 전통교회가 가라지를 뽑으려다가 알곡을 뽑는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은, 전통교회 성도들이, ‘기만’이라는 거대한 사단의 세력에 의해서, 속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마귀들의 권세는 거의 전부 기만의 힘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명백하였다. 그들은 이 그리스도인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쓰면서도 정작 이들 스스로는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 만큼만 속이고 있었다. 이것은 왜냐하면 ‘자기 의’라는 군기는 거의 모든 병졸들이 들고 있어, 막상 행군중인 자들은 부대들의 본질을 나타내는 군기를 볼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93)

     이를 볼 때 릭 조이너의 전통적 교회를 향한 인식은 부정적인 요소가 다분히 있다. 릭 조이너의 저서 『추수(The Harvest)』에서도 기성교회 지도자들 가운데는 많은 경우 “정치적인 조작과 자기 선전으로 현재의 자리를 얻었을 뿐 아니라 부르심에 근거한 사역보다는 전문 직업에 불과한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언젠가는 “삯군임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94) 또한 거짓된 교회(전통교회)가 압도적인 정치권력을 잡게 될 것이고, 참 기독교인들(신사도주의자들)에게 가하는 공격이 있을 것을 주장하고 있다.95) 릭 조이너는 사이비나 이단종파들의 공격은 얼마간의 어려움은 줄지라도, 성도들이 도리어 강하게 되는 기회가 되지만, 자신은 바르게 산다는 종교적인 사람들이 더 큰 위협이 된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그 핍박자라는 사람들은 ‘도덕주의적인 보수파와 그들의 종교기관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그리스도인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참 신자들을 죽이는 행위가 하나님과 사회에 대한 자신들의 의무라며 공격하는, 종교적 편협주의 영을 경계하라”고 말한다.96) 또한 교파와 예수님을 대결구도로 둠으로써 제도적인 교회들은 주님의 반대편에 서있음을 은연중 드러내고 있다.

    거짓된 교회들과 거대한 종교단체가 궁극적으로 참 신자들의 최대의 적대세력이 될 것이며 가장 반기독교적인 정부, 사이비 종파와 다른 종교들보다도 더 심하게 참 신자들을 대적할 것이다. 제도적인 교회에 속한 모든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의 교파와 주님 사이에서 누구를 따를 것인지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될 것이다.97)

     릭 조이너의 주장에 의하면 기성교단 종교지도자들과 성도들은 기만(속임)을 당하고 있고, 영적으로 바로 깨어있지 않음으로 인해서, 그들이 옳다고 하는 그것이 도리어 마귀를 돕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기성교회가 신사도운동의 예언사역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도와 선지자(예언자)의 현존성’을 비판하는 것은 사단의 교묘한 술책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신사도교회가 승리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전쟁은 당연하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신사도주의자인 마이크 비클(Mike Bickle)는 신사도운동과 예언사역을 옹호하기 위해 마틴 루터의 가름침을 예를 든다. “어그스틴 계열의 수도사이며 신부였던 마틴 루터는 16세기 초반 만인제사장설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루터는 또한 개인의 판단에 대한 교리를 가르쳤는데,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또는 성경을 스스로 해석할 수 있다는 교리였다. 이것이 예언 사역에 대한 신약적 이해의 출발점이다. 구약시대에는 특정인들에게만 제한되어 있던 사역(제사장직과 예언자직)들이 신약시대에는 보편화 되었다.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에 의해 인도함을 받을 수 있다”98) 신약의 예언사역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개혁교회와 복음주의 자들은 교회에 예언사역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갈등관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릭 조이너는 진리의 사역들이 회복이 있을 때마다 논란이 있어 왔음을 상기시킨다. 마틴 루터가 모든 믿는 자의 제사장직을 선포했을 때 기독교가 논쟁에 휩싸이게 되었으나,99) 결국은 목회사역의 회복과 전도사역에 괄목할 만한 영향을 끼쳤음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언사역을 시작할 때 오늘날 교계 내에서 논란과 갈등이 있을 수 있으나, 언젠가는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이 판명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릭 조이너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주님께서 논란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사역을 정화하기 때문이다. 첫째로 논란은 모든 진리와 사역의 회복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오류와 극단주의를 바로 잡을 수 있게 한다. 또한 논란은 자기의 이기적인 야망을 위해 새로운 운동을 좇으려는 이들을 가려낸다. 이와 같은 논란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물러 나게 함으로써 사역에 순결함을 가져 온다.100) 또한 “주님께서는 때때로 일부러 하나님의 역사가 갈등과 논란 가운데 있게 하시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존귀하게 여기도록 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한다.101)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다툼과 분쟁이 아니다, 하나 됨이요 일치를 추구하고 있다. 개신교 ‘종교개혁의 역사’와 자신들의 ‘신사도운동’을 동일선상에 두고 합리화하려는 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3.4 릭 조이너의 예언해석론
    릭 조이너의 예언사역에는 여러 가지 수준이 있으며 단계가 있다. 그중 가장 낮은 단계가 “느낌(인상들; impressions)”이다. 오늘날 예언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대부분은 예언의 가장 낮은 단계인 느낌(impressions)의 단계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선호하는 교리나 그날 우리의 기분, 편견 등 여러 가지에 의해 영향을 받아 혼탁해질 때가 많다.102) 이 계시들은 체험이 많고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들에 의하여 해석이 될 경우, 대단히 특징적이고 정확하다는 주장이다.103) 그 다음이 느낌보다 높은 “환상(Visions)” 이다. 이것도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에서, 마치 영화 화면처럼 보이는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이런 환상은 상징적으로 나타나기에 해석이 필요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기 까지 인내가 필요하다.104) 계시의 그 다음 단계는 주님의 “임재에 대한 의식(conscious sense)”, 즉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mind)에 특별한 조명을 준다. 이것 또한 편견이나 교리에 영향을 받는다.105)

     다음으로는 고넬료가 환상 가운데 천사와 대화를 나눈 것 같은 “열린 환상(open vision)” 이 있다. 그것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 느낌보다 훨씬 높은 예언사역이다. 이런 계시는 자주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 매우 중대한 말씀을 주실 때 주님이 하신다.106) 또한 “꿈”이 있는데, 대부분들의 꿈들은 낮 동안 생활하며 느꼈던 것들이 축적되어서 생기는 일관성이 없고 무의미한 것들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꿈은 당시는 모르나 보통은 쉽게 안다. 또 하나의 높은 단계의 예언적 체험에는 “비몽사몽(trance)” 즉, “입신”으로 부르는 단계로 깨어 있을 때 꾸는 꿈으로 순식간에 그 장소에 가있는 것처럼 느낀다.107) 릭 조이너는 “이것은 에스겔이 자주 경험했던 것이며,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환상들을 받았을 아마 경험했던 것”으로 말한다.108) 릭 조이너는 『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에 기록된 환상들은 모두 꿈으로 시작되었고, 그들 중 어떤 것들은 주님의 강한 임재를 느낀 상태에서 왔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은 입신의 상태에서 받았다.109) 릭 조이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들은 구약과 신약에서 꽤 자주 등장한다. 밧모섬에서 요한이 받은 계시도 여기에 속하며, 에스겔이 경험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셋째 하늘에 들려 올라가서 자신이 몸 밖에 있었는지 안에 있었는지 분간하지 못했다(고후 12:24). 베드로는 부정한 동물들이 천에 쌓여있는 환상을 보았는데 이것은 직접 계시의 좋은 예이다.110)

     이러한 릭 조이너의 여러 은사들의 체험은 성경에 기록 된 것과 동일하게 나타난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예언사역자들 중 윌리암즈(Willia ms)는 오늘날의 예언의 은사를 성경의 권위와 같은 수준에 두지 않는다. 다만 성경 기자와의 권위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여전히 말씀 하신다”는 것이다. 그의 뜻은 “신약 정경이 마감되었다고 그분이 말씀을 멈추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111) 그런데 릭 조이너는 이러한 꿈과 환상의 해석을 하는 것은, 곧 신자 자신이라고 주장함으로 신뢰성을 스스로 저하시키고 있다. 릭 조이너는 “지금 해석의 부분에서 예언사역자들이 많은 실수를 범하는 경향이 있다112)”라고 시인한다. 릭 조이너는 은사자들이 그 은사를 해석하기 위해서 “추측, 자신의 개인적인 현재의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태도,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으로 바라보기, 잘못 맞추어진 초점, 편견, 교리적인 편견, 거절감, 쓴 뿌리, 반항, 거룩하지 않은 자비, 분당(분리)의 영,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불복종, 욕망, 육신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보기” 등에 의해서 달라짐을 말한다.113)

     그래서 예언이란 아직도 “유리를 통해 희미하게 보는 것”이고, “부분적으로”(고전 13:12)만 안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고백한다.114) 한마디로 오늘날 신자들 사이에 전해지는 예언의 내용은 하나님의 정확한 계시이기 보다는, 예언적 계시를 받은 인간의 영적성숙도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계시를 받은 개인의 “영적통찰력”과 “영적 성숙도”에 의해 주어진 결과가 신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 릭 조이너는 예언사역자가 백퍼센트의 적중률에 이르는 것이 목표이지만 도달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115)

    결국 이런 논리는 인간해석에 의해 계시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으니, 예언자들이 받았다며 전달하고 있는 예언적 계시들은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릭 조이너의 논리대로 말한다면, 예언자들이 1차적으로 초자연적 계시를 통해 받은 내용들이 성경적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2차적으로 신자들에게 전달 될 때는, 계시를 직접 받은 은사자의 영적 성숙도에 따라서 그 내용이 하나님의 뜻과 가깝거나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3.5 릭 조이너의 오늘날의 신(新)선지자론
    릭 조이너는 “이 시대에도 선지자가 있다”고 주장한다.116) 그 근거로 “거짓선지자를 삼가라(마7:15)”는 구절을 인용한다. 이 말씀은 “거짓선지자가 있다는 말씀은 참선지자가 있기 때문에 사용한 말씀이다”라는 논지로 주장 하고 있다. “참예언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면, ‘삼가’하거나 ‘미혹’당하지 않도록 분변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아예 ‘모든’ 예언은 다 거짓이니 거절하라고 말씀하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곧 거짓선지자를 삼가라고 시금석을 주었다는 것은, 참 예언자가 존재함을 의미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에 대해 신사도주의 선지자 사상을 수용하는 필호이어(Vielhauer)도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고는 교회 안에 참 선지자의 활동을 전제한다(presuppose)”고 주장한다.117)

     이와 같이 릭 조이너는 거짓선지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오늘날 선지자도 존재한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주장을 위해 아래와 같이 성경을 자의(自意) 해석한다. 그것은 주님께서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 알곡속의 가라지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마태복음에서 ‘거짓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마24:11)’라는 말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거짓선지자가 일어날 것이라는 말은 참선지자가 있다는 말도 된다”는 것이다.118) 또한 릭 조이너의 알곡과 가라지 비유의 가르침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결국 거짓 선지자는 교회 안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교회 밖에 있는 이단의 교주나, 자칭 재림주가 아니라 교회 안에 사역자들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가라지와 쭉정이가 동일한 장소(밭)에 같이 있음에 대한 해석을 “중생한 거듭난 신자와 중생하지 못한 교인이 교회를 함께 다닐 수 있다”의 개념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거짓 목회자(가라지)와 참 목회자(알곡)라는 논리로 해석하고 있다.119)

     릭 조이너는 『예언사역』이라는 책에는 “왜 오늘날에도 선지자가 필요한가?”제목 하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성경은 온전하고 충분하고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기독교의 유일한 기초이다. 그러나 성경책은 하나님의 뜻 전부를 기록하기 위해서 만들어 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령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만일 성경의 영적인 은사들과 예언사역이 이 제 더 이상 소용이 없다고 한다면, 다른 사역들 역시 불필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120)

     릭 조이너는 위의 글을 통해서 선지자(예언자)가 존재121)해야 하는 이유를 성경이 하나님의 뜻 전체를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하나님의 뜻을 인간들에게 나타내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즉, 성령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제 2의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기 위해서 오셨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신사도주의자 케네스 헤긴도 그의 책 『환상을 믿습니다』란 글에서 자신은 직접 사도와 선지자의 존재를 환상을 통해 예수님으로부터 직접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122) 릭 조이너는 계속해서 선지자를 통한 예언사역의 정당성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이 사역(예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교회가 온전하게 성숙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뜻한다. 누구든지 그런 주장을 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분량의 성숙함에 이르기 위해서 예언 사역은 여전히 요구되어 진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은사와 사역을 거부하는 것이 교회를 자라나지 못하게 하고 혼란하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다.123)

    릭 조이너의 이 말은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교사, 목사의 직임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인데(엡 4:11), 성경만으로는 성도들을 온전히 세우기에는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온전함으로 세움 받기 위해서는 선지자를 통한 예언(하나님의 음성)사역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지이다. 이 선지자들의 예언사역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교회성장을 방해하고 혼란하게 하는 행위라는 주장이다.124)

    3.6 릭 조이너(Rick Joyner)의 ‘예언사역은사’ 이해
    ‘예언사역의 은사’란 은사 중 일부는 예언사역에 속해 있다는 신사도주의자들과 릭 조이너(Rick Joyner)의 주장을 지칭한 말이다. 신사도주의자들과 릭 조이너는 여러 성령의 은사중 ‘예언사역의 은사’를 따로 분류한다. 전통적으로 목회현장에서 치유(신유)은사를 가지고 사역을 하면, ‘치유사역’이라 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행함의 은사를 가지고 사역을 하면, ‘축귀사역’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예언의 은사로 사역을 하면 ‘예언사역’이라 한다. 그러나 신사도주의자들과 릭 조이너가 말하는 ‘예언사역’이란 의미는 ‘예언은사’와 구분하며, ‘예언은사를 가지고 사역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릭 조이너가 말하는 예언사역은 “그분의 음성과 ‘지혜의 말씀이’나 ‘지식의 말씀’과 같은 ‘초자연적인 성령의 은사’에도 항상 민감해야 한다”125)라고 주장한다. 릭 조이너의 교회에서 그의 조력자로서 예언자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스티브 탐슨(Steve Thompson)도 “예언 사역의 은사들에는 지식의 말씀, 지혜의 말씀, 영분별의 능력, 그리고 예언의 은사들이 포함되어 있다”126)고 말한다. 그러므로 신사도주의자들과 릭 조이너가 주장하는 예언사역에 속해 있는 ‘예언사역은사’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은사’, ‘영분별 은사’이다. 이러한 각 은사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개혁신학적 입장과는 그 해석이 다르다.

     3.6.1 릭 조이너의 지혜의 말씀은사(Word of Wisdom) 이해
    지혜의 말씀은사에 대한 릭 조이너의 사상을 알기위해, 릭 조이너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조이너의 가르침을 대신하며, 예언사역을 책임지고 있는 스티브 탐슨(Steve Thompson)의 해석을 참고하고자 한다. 스티브 탐슨은 지혜의 말씀의 은사(로고스 소피아스)는 “어떤 특별하고 구체적인 경우에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계획과 목적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말씀(계시)”이라 한다.127) 스티브 탐슨은 그 예로 사도행전 27장의 바울의 항해 도중 유라굴로 광풍을 만난 사건을 가지고 설명한다. 바울이 항해가 순조롭지 않고 어려울 것을 미리 예언 받았으며, 또한 천사를 통해 배에 있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될 것을 약속받았었다. 그 이후 실제로 큰 풍랑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선원들이 구명보트를 내리려할 때 바울은 구명보트를 내리면 결단코 살아남지 못할 것을 예언했다. 선원들은 바울의 예언에 순종하였고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스티브 탐슨은 이 사건을 통해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설명하기를 ‘선원들이 모두 배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지혜의 말씀이며, 이것은 단순히 “무엇이 일어났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계시하며 알려주는 것,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지혜의 말씀의 은사라고 말하기 보다는 도리어 ‘예언은사의 고유한 기능’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3.6.2 릭 조이너의 지식의 말씀은사(Word of Knowledge) 이해
    릭 조이너는 지식의 말씀의 은사(λo.γο. γν.σεω.:로고스 그노세오스)에 대해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정보를 아는 지식’이라는 주장이다. 꿈과 입신의 경험 속에서 나로서는 엄청나게 큰 영분별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받았다. 어느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을 보거나, 교회나 사역을 위하여 기도하면,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에 대한 일들을 알게 된다. 이러한 예언적 체험 기간 중에 이러한 은사들은 “실제 삶”에서는 내가 개인적으로 결코 체험해 본 적이 없는 수준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략···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단번에 알게 된다.128)

     이와 같이 릭 조이너는 ‘지식의 말씀 은사’에 대한 주장은 ‘성경에 대한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로 말미암아 “특정한 사람에 관한 모든 정보를 모두 알게 되는 지식”이다. 이에 대해 신사도주의자요, 릭 조이너의 예언사역의 협력자인 스티브 탐슨(Steve Thompson)도 지식의 말씀의 은사란 “어떤 사람이나 장소, 현재나 과거에 일어난 사실(정보)을 이야기 하는 것”129)이라 한다. 그러면서 스티브 탐슨은 성경에 나타난 지식의 말씀은사의 예는 요한복음4장 16절에서 19절130)에 사마리아 여인을 예수님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그녀의 ‘삶에 관하여(그녀에 대한 정보)’ 이야기하셨다는 사실은 바로 지식의 말씀 은사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본문은 예수님에게 임한 ‘성령의 은사’가 아니다. 요한복음 2:24-25절의 내용처럼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외부로부터 부여받은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은사의 능력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필요 없이 다 아시는 분이심으로 적절한 예가 아니다. 또한 지식의 말씀의 은사의 예로 왕상 5:27에 엘리사와 나아만 장군과의 사건을 예를 들고 있다. 아람나라 나환자인 나아만을 치료한 후 감사의 표시로 주던 선물을 거절하였으나, 그의 종 게하시가 몰래 받았지만 엘리야가 그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또한 아람 나라가 이스라엘을 침범할 때 미리 그 군대의 이동을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 주므로 인해 이스라엘을 승리하게 한(왕하 6:8-12) 이런 사건은 지식의 말씀의 은사의 결과라 주장한다.131)

     또한 신사도주의 자들은 고린도전서 14장 24절-25절에서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라는 구절 중 ‘드러나게 되므로’라는 말씀이 지식의 말씀의 은사라 주장한다. 즉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숨겨진 정보를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알아 ‘드러내는 은사’라는 것이다.

     3.6.3 릭 조이너의 영분별의 은사(Discerning of spirit)이해
    영들 분별함의 은사는 학자들 간에 일치된 견해 없이 세 가지 논의가 있다.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는 말씀과 연관이 있는지(요일4:1), “하나님의 성령과 악한 영감을 구별하라”는 말인지(행16:16-18)132), “두 세명의 예언함을 다른 사람이 분별하라”는 표현인지 (고전14:29; 롬12:1-2, 살전 5:19-22) 논란이 있다.133) 이 은사에 대한 릭 조이너의 가르침을 대신하는 스티브 탐슨은 “영들과 기름부음의 능력들의 여러 가지 종류를 분별하고 차이점을 이야기하는 것, 치유와 천사의 나타남과 어떤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어떤 몸 안에서 특별하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하는 지식의 말씀 같은 영적산물134)”이라는 주장이다. 이 은사에 대한 개혁신학적 입장은 ‘영들에 관한 분별’로 보고 있으나, 신사도운동에서는 ‘영적인 여러 현상과 영적인 모든 활동’ 등을 분별하고, 차이점을 이야기하고 다루는 것으로 그 영역(領域)이 넓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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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 미주

    67) Rick Joyner,『예언사역』, 13.
    68) Ibid,. 13.
    69) Ibid,. 13.
    70) Ibid,. 15.
    71) Rick Joyner,『 빛과 어둠의 영적전쟁 』예태해 역 (서울: 은혜기획, 2004), 12.
    72) 스티븐 탐슨(Steve Thompson)은 릭조이너가 담임으로 있는 현재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모닝스타 펠로우십 교회 부담임자로 섬기고 있으며, 예언사역 훈련소 상임지도자 및 모닝스타 사역자 학교 학장이다. 가르침과 예언사역의 은사가 있고, 미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집회 강사로 알려져 있다. 스티브 탐슨은 예언은 “일반적인 예언”과 “구체적인 예언”으로 구분하고 있다. 일반적인 예언은 성경 말씀을 가지고 위로하고 권면하는 것을 말함이고, 구체적인 예언이란 성령의 직접적인 음성이나 환상을 통해 신자 각 사람에 대한 구체적인 개별 사안을 알려주는 것을 말한다. 이들이 말하는 예언사역에서 사용하는 “하나님 말씀”은 “기록된 성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직접 받았다고 주장하는 직접계시의 내용”을 의미하는 말이다.(Steve Thompson,『당신도 예언할 수 있다』, 곽정남역 (서울: 순전한나드, 2005), 14
    73) Rick Joyner, 『21세기를 위한 예언적 비전』김병국 역 (서울: 바울. 2006), 12.
    74) Rick Joyner, 『 횃불과 검』이선협역 (서울: 순전한 나드, 2004), 29-32.

    75) Rick Joyner,『21세기를 위한 예언적 비전』, 199.
    76) Rick Joyner,『예언사역』, 106.
    77) Rick Joyner,『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 25.
    78) Ibid., 26.
    79) Rick Joyner,『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 27.
    80) Ibid., 29.
    81) Ibid., 23.

    82) Kenneth E. Hagin, 『모든 어둠 권세를 다스리는 승리하는교회』 김진호 역 (경기: 믿음의 말씀사,
    2007), 81.
    83) Ibud., 87-90.
    84) Ibud., 93-94.
    85) Rick Joyner,『21세기를 위한 예언적 비전』, 202
    86) Rick Joyner,『21세기를 위한 예언적 비전』, 202
    87) Ibid., 217-23.
    88) Rick Joyner,『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 31.

    89) C. Peter Wagner,『교회의 지각변동』, 150.
    90) Rick Joyner,『21세기를 위한 예언적 비전』, 262.
    91) Rick Joyner,『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 the Final Quest』, 30-31.
    92) Rick Joyner,『21세기를 위한 예언적 비전』, 262.
    93) Rick Joyner,『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 26.

    94) Rick Joyner,『추수(The Harvest)』이선협 역 (서울: 은혜, 2007), 166.
    95) Ibid., 197.
    96) Rick Joyner,『추수(The Harvest)』, 197-98.
    97) Ibid., 198.

    98) Mike Bickle,『예언사역의 여정』박선규 역 (서울: 뉴와인, 2007), 150.
    99) Rick Joyner,『예언사역』, 33.
    100) Rick Joyner,『예언사역』, 33.
    101) Ibid., 34.
    102) Ibid., 100.
    103) Rick Joyner,『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 14.
    104) Rick Joyner,『예언사역』, 101.
    105) Rick Joyner.『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 15.

    106) Rick Joyner,『예언사역』, 104.
    107) Ibid., 100-06.
    108) Rick Joyner,『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 16.
    109) Ibid., 16.
    110) Rick Joyner,『예언사역』, 106.
    111) 김병학에 의하면 피터 와그너는 예언의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를 “계시적인 은사”로 일컫는다. 그는 계시가 오늘날도 발생한다고 믿지만, 그것이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와는 다른 점을 인정한다. 곧 예언이나 방언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자기들 스스로 모순을 낳고 있다. 김병학, “신약시대 이후 예언 은사의 중단성과 계속성에 관한 일 연구”, 44).

    112) Rick Joyner, 『예언사역』, 114.

    113) Ibid., 114-124.
    114) Rick Joyner,『21세기를 위한 예언적 비전』, 13.
    115) 최종태,『예언자에게 물어라』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3), 27.

    116) 신사도주의자들은 오늘에도 예언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에베소서 1장 1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는 말씀을 인용한다. 이와 관련 서울신대 윤철원 교수는 에베소서 1장 17절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 “모든 그리스도인(너희)”에게 충만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소위 제한된 의미의 예언자들에게만 있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1) 케네스 헤긴, 이 본문을 주로 목회자와 소위 “예언자”들에게만 제한해 생각하는 것은 신사도주의자들의 “성경 주해의 자의성(恣意性)”을 잘 드러내 준다. 또한, 신사도주의 자들과 릭 조이너는 거짓선지자를 설명하여 오늘날 기존교회 사역자들 대한 간접적 불신을 드러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17) 남영기,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예언 은사에 대한 이해", (석사학위논문, 침례신학대학교신학대학원, 2000), 59.

    118) Rick Joyner,『예언사역』, 28.

    119) 신사도주의자인 변승우도 거짓선지자는 교회안에 있는 종교지도자임을 주장했다. 변승우는 『거짓선지자를 삼가라』는 글에서 다음같이 주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 하면 “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교회”를 설립한 죠셉 스미스나 “제칠일예수재림안식일교회”의 엘렌 지 화이트여사 같은 사람을 떠 올립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1992년 10월 28일 자정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주장했던 ‘다미선교회’ 이장림 같은 사람을 떠 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들도 거짓선지자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거짓선지자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사람들에게 거짓 선지자로 쉽게 인식되는 자들입니다. 그만큼 이들은 덜 위험 합니다” (변승우,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서울: 은혜출판사, 2007), 168.) 변승우는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3-15)의 말씀 중 “양의 옷을 입고” 라는 말씀은 예수님 당시 목자들이 즐겨 입던 옷이었던 것처럼 목자의 모습으로 위장하여 나타난다는 뜻임을 말하면서, “실제로 오늘날 많은 거짓선지자들이 목자(목사)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목자(목사)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와 있다”며, 노골적으로 기존교회의 목회자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자기들만이 진정한 선지자임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말들을 하고 있다.(변승우,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169)

     

    120) Rick Joyner,『예언사역』 조성국역 (서울: 은혜, 2007), 52.
    121) 선지자 라로 불리는 게네스 헤긴은 “예언의 은사”와 “선지자적 사역”을 구분 한다. “예언은사”는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기 위한 것으로, 소위 장래를 미리 말해주는 것(foretelling), 즉 예언(prediction)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선지자적 사역” 가운데에는 미래에 대한 예언이 있다고 말한다. 예언자들은 계시의 은사(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혹은 영들 분별함)를 예언과 함께 사용한다고 한다.

    122) Kenneth E. Hagin,『나는 환상을 믿습니다』김진호 역 (경기: 믿음의 말씀사, 2004), 146.
    123) Rick Joyner,『예언사역』, 55.
    124) 이와 같이 신사도주의 자들은 이 시대에 선지자가 존재함을 확언하고 있다. 신사도운동을 표방하는 서울 큰믿음교회 변승우는 2008년 5월 10일날 보내준 카페 이메일에서 “이시대에 수많은 선지자가 존재하며, 그들은 바로 케네스 헤긴, 밥 존스, 데이비드 월커, 릭 조이너, 바비 코너, 신디 제이콥스, 마크 듀퐁, 샨 볼츠, 그레엄 쿡, 짐 골, 패트리샤 김, 등이다. 앞으로 수백 수심반의 선지자들이 일어날 것이며, 우리나라에도 많은 선지자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또한 선지자라 불리는 케네스헤긴은 ‘예언의 은사’와 ‘선지자의 사역’을 구분한다. 예언은사는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소위 장래를 미리 말해주는 것(foretelling), 즉 예언(prediction)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선지자적 사역’ 가운데에는 미래에 대한 예언이 있다고 한다. 예언자들은 계시의 은사라고 주장하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은사, 영들 분별함의 은사를 예언과 함께 사용한다는 것이다.(케네스 헤긴, 어떻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 받을 수 있는가? 김진호 역 (경기: 믿음의 말씀사, 2005), 139.

    125) 김영한,『개혁신학이란 무엇인가?』, 95.
    126) Steve Thompson,『당신도 예언할 수 있다』, 14-15.
    127) Steve Thompson,『 당신도 예언할 수 있다 』, 17.
    128) Rick Joyner, 『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 17.
    129) Steve Thompson,『당신도 예언할 수 있다』, 15-16.
    130)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예언자)로소이다”(요4:16-19)

     

    131) 이승영, “고린도전서 12장에 나타난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석사학위논문, 아세아연합신학연구원, 2001), 23-24.
    132) 행 16:16-18,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 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 하여 돌이켜 그 귀신 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33) “고전12장7-10 성령의 은사1 ”에서 R. F. Collins, First Corinthians, 455재인용
    134) Steve Thompson,『 당신도 예언할 수 있다 』, 18.


     출처: 기독교포털사이트
    http://www.kporta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81


    이번 답변에서는  달라스 윌라드나 리처드 포스터와 같이 모두에게 너무나 친숙하지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그들의 신학적 경향성과 해악성에 대해 몇 말씀드리겠습니다.

     

    1. 과연 그들은 진정한 복음주의자들인가?

     

    달라스 윌라드와 리처드 포스터를 비롯해서 헨리 나우웬, 필립 얀시, 브루스 윌킨스, 유진 피터슨, 릭 워렌,

     데이빗 제레마여, 브라이언 매클러렌...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복음주의의 아이콘이라는 것과 이들의 이름으로 출간된 책은 여지없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의 관심사가 매우 유사하다는 것과,

     마치 한 사람의 생각인양 내용적으로 강한 결속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한 가지가 더 있군요.

    교파, 교단, 신학, 심지어 목회자, 일반성도를 구별하지 않고 엄청나게 인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인들로부터 개신교 성도들에게까지, 장로교회에서 오순절교회에까지,

    복음주의에서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이들의 활동과 영향은 전방위적이며,

     이들의 책을 접하는 모든 사람들의 신학적, 교파적, 교리적 차이를 단번에 무장해제 시키는

    참으로 놀랍고도 대단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의든, 타의든 누구에게나 복음주의자 혹은 영성주의자라고 불립니다.

     복음과 영성의 조화... 말로만 들어도 뭔가 완벽한 조합처럼 느껴지는 표현입니다.

    이들의 책을 접한 사람들은 저마다 이들로 인해 복음없는 영성과 영성없는 복음으로 편향되었던

    기존 신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았다고 말합니다.

    한국 대형 기독교 서점들의 치열한 보급 정신과 대형 교회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의 적극적인 추천과

     보다 새로운 복음에 목말라하는 성도들의 강렬한 욕구가 맞아 떨어져,

     이들의 책들은 어느새 복음주의의 신학의 준거점이 되었고,

    수준있는 신앙생활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듣기에는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하는 신학교에서도 교과서로 채택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한국 교회에 소개된 시점이 불과 수년 전의 일임을 감안한다면, 가히 폭발적인관심과 결과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덕분에 님처럼 저도 한때 이들의 책이라면 아무 의심없이 탐닉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일이 무의미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책을 통해서, 그동안 한국 교회의 강단에서 접할 수 없었던 어떤 고상함과 심오함과 명료함과 건전함이

    두루 갖추어진, 마치 명품으로 영혼을 치장하는 듯 한 부티끄한 느낌이 싫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느낌은 그야말로 느낌뿐이었지, 결코 복음의 진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고상하듯 하지만 음험한 속임이었던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의 신학은 ‘참된 복음주의를 말살(훼파)하는 명목뿐인 복음주의’에 불과하였습니다.

    결코 그들은 진정한 복음을 증거하는 복음주의자들이 아닙니다.

     

    2. 왜 우리는 그들을 복음주의자라고 부를 수 없는가?

     

    문제는 그들의 사고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의 신학 때문입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윌라드 달라스나 리처드 포스터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들은 이 시대의 가장 탁월한 복음주의 영성신학자라고 평가받는데,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이들의 관심은 복음을 영성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말하는 영성의 뿌리가 전혀 복음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리처드 포스터는 전형적인 퀘이커 교도의 후예로, 퀘이커적 영성 운동을 주도하는

     ‘레노바레’(The Renovare, 일명 ‘친구들’(Friends))라는 단체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윌라드 달라스는 이 단체의 설립부터 정신적인 멘토로서 깊이 관여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추구하는 영성은 퀘이커교의 창시자인 조지 폭스(George Fox, 1624-91)에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지 폭스에 의해 조직된 퀘이커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형식적과 무교회적 관념 가운데

    하나님과 직접적인 내적 교제(경험, 만남, 합일)가 가능하다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퀘이커 교도들은 기존 교회의 형식적 기재들을 반대하면서,

    성도 개인의 묵상과 명상가운데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신앙을 고집하였습니다.

     물론 이들 역시 개신교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성경을 중요하게 여기고,

    만인제상장설과 같은 종교개혁 사상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개인적인 하나님 체험을 명분으로

     종교개혁의 가장 좋은 선물(예를 들어, 신학, 교리, 예배 모범, 교회 정치 등등..)들을 포기하였습니다.

     퀘이커 교도들에 있어서 성경은 객관적인 (계시)진리의 기준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신앙적 감상과 각성을 위한 전형적인 도구에 불과합니다.

    성경 해석의 주관화와 신령주의화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리처드 포스터와 달라스 윌라드는 조지 폭스의 퀘이커교적 신앙을 좀 더 세련되고 현대화된 정서에 맞도록 재해석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 또는 Centering Prayer, Breath prayer)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L 목사와 K목사등을 통해

    한국 교회에 급속도로 붐을 일으키고 있지만,

    사실 관상기도는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타종교에서는 오래전부터 행하던 기도 방식이었습니다.

    적어도 조지 폭스는 성경의 범주 안에서 하나님과의 실제적 경험을 꿈꿨지만,

    리처드 포스터와 달라스 윌라드는 성경 밖으로의 영역으로까지 외연을 확장하였습니다.

    이들은 칼 융과 같은 사람의 심리학적 방법론을 기초로 성경을 통하지 않고도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길을 터놓았습니다.

     다시 말해, 보편구원론적 개념에서 신을 찾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하나님과의 내통하는 방법을

     ‘기독교적 영성’이라는 이름으로 풀이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최근 한국 교회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미국의 대형교회들(윌로우 크릭 커뮤니티교회, 새들백 교회등)이 이들의 ‘영성’운동을 포스트 대안으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참조, http://www.lighthousetrailsresearch.com/willowcreek.htm).

    얼마 전에 윌로우 크릭의 빌 하이블 목사의 참회 소식이 한국 교회에 큰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참조,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406).

    그러나 빌 하이블 목사의 참회는 ‘방법론적인 목회’에서 ‘보편구원론적 영성 목회’로의 전환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새들백의 릭 워렌 목사도 전적으로 동감으로 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이들 교회는 교회의 체질을 관상기도 중심의 영성운동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윌로우 크릭 교회의 경우,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회 콘퍼런스의 주제가 최근 몇 년동안 거의 이 부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목회 비젼을 이루기 위해 이들 교회들은 성도들에게 공개적으로 관상기도와 관련된 서적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달라스 윌라드와 리처드 포스터의 서적도 예외 없이 끼어 있습니다.

     

    이왕 여기까지 설명하였으니,

    독자들이 잘 알만한 두 사람만 더 언급하겠습니다.

    달라스 윌라드와 리처드 포스터가 직접적으로 영적 스승으로 생각하는 인물이, 바로 헨리 나우웬입니다.

     어쩌면 한국 교회에 ‘복음주의 영성주의’ 바람을 일으킨 최초의, 최고의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는 책만 수십 권에 달할 만큼 헨리 나우웬의 명성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헨리 나우웬은 절대로 복음주의자가 아닙니다.

    그의 책을 조금만 신중하게 읽어 본 사람이라면 몇 문장에 대해서는 고개를 그떡이다가도

    전체 문맥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가장 성경적인 사상을

    가장 비성경적으로 가장 자연스럽게 풀어내는데 있어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그가 가톨릭 사제였고, 종교다원주의자였으며,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모르더라도,

     우리는 그의 책 속에 숨겨진 그의 비신앙적 본성을 발견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헨리 나우웬이 스스로 자신의 영적 아버지라고 존경해마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토마스 멀튼(Thomas Merton)입니다.

    그는 가톨릭 수사로 20세기 관상기도 운동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영성’이라는 촉매를 통해 복음을 초월한 모든 종교와의 영성과 만날 수 있음을 몸으로 보여 준 사람입니다.

    그는 평생 수도원에서 살면서 기독교의 영성과 모든 종교의 영성과의 조화와 일치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런 공로로 달라이 라마를 비롯하여 수많은 세계 종교 지도자들이

    그의 무덤을 찾아와 멀튼의 방식대로 미사 참배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우웬과 윌라드와 포스터의 저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인물이 멀튼입니다.

    그중에서도 포스터의 경우, 그의 모든 책에는 반드시 멀튼의 어록을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풀어내는 방식과 표현을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같은 생각의 소유자들입니다.

     

    이들은 복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좋아하지만,

    오직 성경,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의 복음은 혐오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헌신을 부르짖지만, 그리스도의 공의와 심판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지만,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집중된 삶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상호 소통을 위한 인격적 영성을 언급하지만, 오직 성령과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내적 자아를 찾아가는 침묵과 묵상에 대해서는 열려있지만,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미 죽어 있는 자아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불확실한 종교적 신비를 종교적 확신의 계기로 삼지만,

    유일무이한 하나님 말씀으로 인한 계시의 확실성에 대해서는 종교적 편견으로 몰아붙입니다.

     성경의 일부(구절)를 인용하거나 강조한다고해서 복음이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 말씀만을 가리키며, 그 말씀의 전체를 가리키며, 그 전체를 가감없이 정직하게 증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이 증거하는 내용을 복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과연 이들을 진정한 복음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어느 시대보다도 진리 안에서 명확한 지혜와 사려 깊은 분별이 요청되는 때입니다.

    두 가지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지혜와 분별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소원합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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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는 그들을 경계하고 있는가

    낮은바다 ㆍ 2013-04-23 (화) 01:43 IP: 175.xxx.183 ㆍ조회: 3      

    벚꽃이 만발하는 4월 어느 날, 가까운 곳을 산책하면서 평소 이상한 교회(?)라 생각했던 그 교회를 잠시 방문하였다. 마침, 교회 어느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서점이 있어 어떤 책을 구비 하였는가 궁금하였던 차에 대충 훑어보니 기독교 일반출판사 책들도 눈에 뛰었지만, 이00 목사의 책이 주류를 이루었다. 바로 구원파 계열 이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구원파에도 여러 계열이 있는데, 이곳은 그 가운데 한 곳으로서 권00파, 박00파에 비해 덜 알려진 파이다.

    요즘, 이단이 교회를 대상으로 극성을 부리고 있고, 안산 다문화사역에서 이단관련 강의를 하던 차에 좀 더 알아보고자 누군가와 대화를 시도 하고자 했으나 마땅치 않아 이00 목사의 가르침과 이 교회의 정체에 대한 글을 읽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이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인데, 이들이 가장 먼저 질문하는 것은 바로 “당신은 구원을 받았는가?” “언제 받았는가?”였다. 만일 이에 대한 답을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는 것.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한 번 회개하면 다시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미래의 죄까지 모두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에, 심지어 살인하여도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교리가 아닐 수 없다. 약 30년 전 오대양 사건이 갑자기 떠올랐다.    

    이 단체도 교회라는 이름, 즉 침례교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일반 기독교인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 현재 약 3,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이곳을 출입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 사단의 미혹을 받으면 분별력이 없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도 이런 류의 이단들에게 미혹을 당하는 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더군다나 요즘 정통교회는 다양한 사건들로 인해 그 이미지가 실추되었고, 지금도 세속화된 교회의 모습으로 인해 전도는커녕, 세인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으니 목회자로서 더욱 가슴이 저미어왔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각성하여 한반도의 통일을 준비하고, 세계 열방에 복음을 증거 해야 할 사명이 있는데도 교회는 사단의 미혹, 조롱, 멸시, 천대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위기가운데 처해 있다고 말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다시 무너진 기초를 바로 세우고, 자신들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해야 할 때이다. 지도자들은 지도자답게 그 사명을 감당하며, 교인들은 교인들답게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하리라. 그곳에서 철저한 자기각성, 부흥을 경험하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것 없이는 교회가 다시 소생할 수 없다.

    교회가 혼란 할 때, 세상은 귀를 막고, 교회를 손가락질 하지만, 이단은 교회 내부로 침투하여 들어와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장난을 친다. 특히, 그들은 불신자가 아닌 기신자를 공격 대상 1호로 삼는다. 그리고 신앙을 혼란케 하고, 교회를 비난하고, 더 나아가 분열을 조장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기에 저들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정신을 바짝 차리는 정도가 아니라 영적으로 예민하지 않으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단의 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는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는 건강한지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한다. 우리 각자가 말이다. 둘째는 약한 부분이 있다면 서로 보완해 주어야 한다. 교회는 더불어 세워주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이단들이 침투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반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단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나친 경계로 인해 초신자들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넷째는 교회로서의 사랑과 믿음, 소망이 있도록 더욱 믿음의 공동체로서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그 건물에서 나오면서 중학생 쯤 되어 보이는 두 명의 남학생들을 만났다. 혹시나 해서 그 가운데 한 아이에게 “너는 언제 구원받았나? 라고 묻자, 그는 작년에 0월 0일 0시에 받았다고 정확히 말했다. 그가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은 구원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적으로 깨닫는데 기초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들은 쇄뇌 당한 것이다. 이단들(Heresy)은 복음에서 이탈된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폭력도, 서슴치 않고 자행한다. 그들에겐 윤리, 도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조건 구원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즉 행함이 없는 지식적인 믿음을 추구하기에 비정상적인 삶으로 변하는 것이다.

    결국, 이단에 깊이 빠지면, 가정이 파탄되고, 부부가 이혼하고, 그래서 이단단체가 반사회적인 공동체로 전락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사회문제화 된다. 특히 기독교 사이비 이단은 교주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기에 바른 말씀에 기초해서 신앙생활 하지 않으면 위험하며, 또한, 그들과 대화를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들기에 그들과 교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필자 역시 며칠 전에 세 명의 신천지 요원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만나 대화한 적이 있는데, 상대방을 혼란시켜 넘어뜨리려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

    따라서 교회는 그들을 더욱 더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사단은 사회가 어수선 할수록 교인과 교회를 더욱 미혹하기 때문이다.


    이윤호 목사 “가계저주론 잘못됐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자신의 저서 폐기 처분

    2013/09/11 ㆍ추천: 10  ㆍ조회: 216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라는 책을 쓰고, 그동안 적극적으로 가계저주론을 가르쳐왔던 이윤호 목사(꿈의축제교회)가 가계저주로는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예장합신 교단지 <기독교개혁신보>에 기고했다.

    이윤호 목사는 글에서 “가계의 저주에 관심을 갖고 사역을 하게 된 배경, 가계의 저주에 대한 오류와 관련된 본인의 반성과 성서적 비판, 가계의 저주에 관한 회개 및 이에 상응하는 결단”을 소개하면서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은 폐기 처분하고, 인세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유니세프에 전액 기부했다고 밝혔다.

    자신이 그동안의 가르침에 대해 사과를 표명한 이윤호 목사는 가계저주론을 폐기하기로 결심한 데는 합신교단 관계자들의 충고와 권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윤호 목사의 글 전문.

    가계의 저주에 대한 반성 및 성서적 비판

    지난 1996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 미국, 인도네시아에서 선교사와 목사로 활동하며 ‘기독교 치유상담원’을 설립하고 영성치유 상담 및 훈련 사역을 수행하면서 본의 아니게 교계와 지역교회에 심려를 끼쳐 드림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본인은 이 글을 통해 ‘가계의 저주’와 관련하여 본인의 입장을 세 가지 관점에서 피력하고자 합니다: 1) 가계의 저주에 관심을 갖고 사역을 하게 된 배경; 2) 가계의 저주에 대한 오류와 관련된 본인의 반성과 성서적 비판; 3) 가계의 저주에 관한 회개 및 이에 상응하는 결단.

    1. 가계의 저주에 관심을 갖고 사역을 하게 된 배경

    본인은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일하면서 풀러 선교대학원에서 박사(Ph.D.)과정 중, 논문지도 교수이신 챨스 크래프트 박사로부터 ‘내적치유’ 과목을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내적치유’를 심도 있게 공부하면서, 온전한 치유를 위해서는 영혼육의 전인적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문제가 많은 내담자들을 상담하면서 한 개인의 많은 문제들이 가계로부터 왔으며, 많은 문제들이 한 가계에서 반복되는 대물림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메릴린 히키의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는 책이 1997년에 베다니 출판사에서 출판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약점은 신학적으로 빈약하고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결여된 것입니다. 따라서 베다니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본인은 전술한 메릴린 히키의 책을 보완하기 위해 신학적 작업과 임상적 적용을 위한 구체적 방법론을 담아 1999년에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는 책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2. 가계의 저주에 대한 오류와 관련된 본인의 반성과 성서적 비판

    본인은 ‘가계의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는 책의 저자로서, 이와 관련된 신학과 사역에 대한 자기반성의 관점에서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네 가지로 비판하고자 합니다.

    첫째,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는 용어를 잘못 사용하였음을 인정합니다. 이는 우선 성경에는 이런 직접적인 표현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가계의 저주’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여러 신학자들의 권면을 따라 ‘조상의 죄악이 후손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 혹은 ‘가계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죄악된 성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용어는 다음과 같은 신구약 성경말씀의 지지를 받기 때문입니다(출 20:5; 욥 21:19; 애 5:7; 렘 32:18; 신 5:9; 민 14:18; 사 65:6-7; 레 26:39; 단 9:16)(민 14:33; 사 14:20-21; 시58:3-5; 시 106:6; 행 7:51-52; 마 23:29-32; 눅 11:48-51; 벧전 1:18; 마 18:25, 눅 23:28; 19:41-44).

    둘째, ‘신자에게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있다’는 가르침은 잘못된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신자에게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있다’고 잘못 가르쳤음을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참조 롬 8:34)라는 말씀에서 ‘정죄함’(카타크리마)은 영원한 형벌에 처하는 ‘단죄’(斷罪) 또는 ‘저주’와 같은 의미로 하나님의 결정적인 심판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은 비록 범죄할 때 ‘책망’과 ‘징계’는 받지만(히 12:5-8), 결코 ‘정죄함’ 곧 ‘저주’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받을 저주를 십자가에서 다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참조 고후 5:14-15,21; 롬 3:25; 벧전 2:24). 또한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요 1:1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롬 8:38-39). 따라서 신자의 신분과 칭의적 관점에서, 본인은 ‘신자들에게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없다’는 신학을 전적으로 수용합니다.

    셋째, ‘신자에게 가계의 저주가 유전된다’라는 가르침은 잘못된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신자에게 가계의 저주가 유전된다’고 잘못 가르쳤음을 인정합니다. 이는 아담의 자손들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고, 그 ‘원죄’와 자신이 짓는 ‘자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저주는 또한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죄에 대해 하나님께로 직접 임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 18:4, 20).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신 24:16). 따라서 각자 자기의 선택에 의해 복을 받기로 하고 저주를 받기도 하는 것이지만, 저주가 유전되는 것은 아닙니다.

    넷째,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는 책의 내용은 독자들과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자신의 죄와 잘못을 조상에게 탓을 돌리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본인은 이런 가르침을 통해 독자들과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한 개인의 모든 불행과 비극적 사건의 원인을 조상에게서 찾거나, ‘가계의 저주’를 통해서 자신의 죄악된 삶을 합리화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잘되면 제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과 같이, 첫 번째 부작용은 한 개인의 모든 불행과 비극적 사건의 원인을 조상에게서 찾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죄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조상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나아가서 두 번째 부작용은 ‘가계의 저주’를 통해 자신의 습관적 죄악적 삶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계의 저주’가 오용되고 남용될 때, 본인은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 회피 및 타인에게 책임전가, 죄악된 생활에의 안주, 죄책감 불감증과 회개의 거부 등의 더 큰 후유증을 초래하게 됨을 인정합니다.

    3. 가계의 저주에 관한 회개 및 이에 상응하는 결단

    본인은 ‘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대한 교회사적 선행연구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가계의 대물림의 문제가 심각한 내담자들을 돕기 위한 ‘가계의 저주’를 차단하는 가르침과 사역이 임상적 측면에 지나치게 초점을 둔 나머지 개혁주의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혹은 용어적으로 오해의 소지를 많이 초래했다는 합신교단 관계자들의 지적을 겸허하게 수용했습니다. 이에 본인은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하여 합신총회 관계자들의 충정어린 충고와 지도를 따라 다음과 같은 과정을 이미 밟았습니다.

    첫째, 본인은 문제의 발단이 된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1999년 판)는 책을 더 이상 인쇄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베다니 출판사도 이에 동의했으며 출판사가 보유한 모든 책을 이미 폐기하였습니다.

    둘째, 본인은 ‘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관한 본인의 오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내용을 기독교개혁신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공개하는 것에 이의가 없음을 통보하였습니다. 또한 본인은 2012년 7월 1일부로 ‘가계의 저주’에 관한 가르침을 중단하고, 앞으로도 합신 교단 관계자들의 지도편달을 받아 정통신학에 입각한 목회와 치유상담사역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준해 지역교회 목회 및 기독교영성치유상담 사역에 전념하겠다고 기사광고를 기독교개혁신보에 2012년 7월에 이미 게재하였습니다.

    셋째, 본인이 시무하는 ‘꿈의축제교회’ 주보(2013년 5월 26일자)에 본인의 사상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는 특별광고를 실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2012년 8월에 본인은 소속교단인 한국기독교침례회(이하 ‘한기침’)의 교단 지도자들의 지도편달을 받아 정통신학에 입각한 목회와 치유상담사역에 전념하겠다는 본인의 결심을 ‘한기침’에 이미 피력하였습니다.

    넷째, 본인은 베다니 출판사로부터 받은 ‘가계의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는 책 인세 모두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및 ‘유니세프’에 이미 기부했습니다.

    다시 한 번 본인은 ‘가계의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는 책을 통해 한국교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인정하고 사과드립니다. 반면에, 본인은 비판과 정죄보다는 진리와 사랑과 인내로서 본인이 향후에 올바른 목회와 사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합신 교단 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김철영 ⓒ 뉴스파워/USA아멘넷

    로렌 커닝햄 목사는

    올해 75세로 1960년 초교파 선교단체인 국제예수전도단(YWAM)을 창설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따라 ‘젊은이를 일으켜(Youth With A Mission)’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예수전도단은

    현재 전 세계 150여개국에 1000여개 지부가 있으며 2만명이 넘는 스태프들이 일하는 단체로 성장했다.

    지금까지 4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학생이나 자원봉사자, 간사로 훈련받거나 사역해 왔다.

    그는 또한 선교 지원자들의 전문적인 훈련을 위해 하와이 코나에 열방대학도 설립했다.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 ‘벼랑 끝에 서는 용기’ ‘네 신을 벗어라’(예수전도단) 등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하다.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3906287&cp=nv

     

     

    YWAM(예수전도단) 창립자인 로렌 커닝햄 목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알파코스에 대한 공신력은 국내외 목회자와 신학자들의 추천에서 잘 드러난다.

    외국의 경우 릭 워렌, 빌 하이벨스, 리처드 포스터, 알리스터 맥그래스, 제임스 패커,

    빌 브라이트, 로렌 커닝햄 등 수많은 이들이 알파에 대한 지지와 찬사를 내놓았다.

     

    한국 교회에서도 조용기 김장환 김삼환 최홍준 고용수 김의원 목사 등 영향력 있는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앞다퉈 극찬하고 있다.

    이동원(지구촌교회)목사는 "전도 폭발이 전도 훈련 그 자체로 한국 교회를 도울 수 있었다면

    알파코스는 성경 공부와 전도를 접목한 새 시대 한국 교회 부흥의 알차가 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all&arcid=0921175108&cp=nv

     

     

    “대추수는 끊임없는 기도와 금식을 반드시 요구한다. 캔자스 시에서 마이크 비클이 하고 있는

     중보기도 사역은 대위임 명령의 완성을 위해서 절대 필요한 것이다.”

    -로렌 커닝햄(국제 예수전도단 총재)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8034

     

     

    YWAM 대표 로렌 커닝햄은 아버지로부터 하나님의 음성 듣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결코 YWAM을 세우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3358279&cp=du

     

     

    DTS(Discipleship Training School )는 12주의 강의와 12주의 전도여행을 통해 이뤄지는

     예수전도단의 가장 기본적인 제자 훈련과정이다.

     묵상,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법, 예배, 중보기도, 영적전쟁, 내적치유, 성경적 세계관,

    전도 및 선교 등이 주 강의내용이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6894

     

     

     

    It is a ministry within YWAM but run by and for Catholics.

    Kerygma Teams is a branch of the interconfessional lay - missionary organisation

    YWAM Youth With A Mission.

    Kerygma Teams supports Catholic parishes, renewal movements,

    and groups active in evangelisation, mercy ministries, and training in the Catholic Church

     

    ( 이것은 예수 전도단안에 있으나 카톨릭을 위하여 그리고 카톨릭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다.

    케리마팀은  인터코페션널 래이( 평신도 고해성소)의 지부이다.

    미션을 가진 예수전도단이라는 사역조직이다.

     케리마 팀은 카톨릭의 교구를 지원하고 부흥운동, 복음주의에 속한 그룹들, 구제 사역,

     카톨릭 교회안의 훈련등을 추진한다. )


    Youth With A Mission (YWAM), which now fields more than 12,000 full-time workers in more than 140 countries, was founded in 1960 by Loren Cunningham,

    an ordained Pentecostal pastor of the "Assemblies of God" denomination in the U.S. Cunningham's original aim was to offer young people from various churches the chance to participate in international evangelistic endeavors during their school holidays.  

    ( 예수 전도단은  1960년 오순절 주의 목사인 로렌 커닝햄이 설립하였는데 지금 140개국의 나라에서 12000명의 풀타임 사역자가 현장에서 사역하고 있으며 다양한 모든 교회들의  젊은이들이

    여름 방학 기간 중 국제적인 복음주의의 열정적 집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한다. )

     

    http://blog.daum.net/alphacourse/11296663

     

     

     

    YWAM and Benny Hinn agree to work together!

    Benny Hinn’s new target audience is the youth;

    and who has been involved with the youth more than the missionary organization YWAM.

    They have done a good job in evangelizing in the past but something very different is now taking place.

     

     

    The Head of YWAM on Hinn’s program

     

    On Feb. 4-9, 2002 just a few weeks after the crusade took place here in Hawaii,

    Benny Hinn had Loren Cunningham on his program solidifying the ties

    that he had previously with YWAM through Dawson.

    Previously we watched Joy Dawson with Cunningham as Hinn toured the YWAM base here

    on the Big Island of Hawaii.

     

    http://www.letusreason.org/curren29.htm

     

     

    Joy Dawson Of Youth With A Mission (YWAM)
    Joins Forces With Benny Hinn

    http://www.deceptioninthechurch.com/hinnywam.html

     

     

     

    Youth With A Mission

    Ecumenical (Catholic/Charismatic) Evangelism

    http://www.rapidnet.com/~jbeard/bdm/Psychology/ywam.htm

    가져온 곳 : 
    블로그 >영적 분별력
    |
    글쓴이 : 진실| 원글보기


    한국 예수전도단 설립자 오대원 목사 소개 | 은사주의 운동 실태

    푸르름 2010.02.09 17:45   http://blog.daum.net/alphacourse/11297496

     

    자료 1 한국 예수 전도단의 설립자 오 대원과 관상 기도

     오대원 지음/예수전도단/310쪽/

    헨리 나우웬은 홀로 하나님 앞에 있는 시간을 가리켜 비우는 시간이자 채우는 시간이라고 했다. 이 시간은 날마다 내 실상의 모습에 직면하여 나의 '거짓 자아'를 단념하는 시간이다. 거짓 자아를 구성하는 쌍둥이인 욕심과 분노, 그리고 그 밖의 악한 생각, 나쁜 습관, 충동적 행동 등을 다루는 하루 중 유일한 시간이기에, 자신의 굳은 마음을 내려놓는 이 시간은 고투의 시간이다. 나우웬은 이 시간을 '뜨거운 화덕' 또는 '변화의 도가니'라고 표현한다. 너무나 바싹 달라붙는 죄에서 해방되는 회개의 시간인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은 고투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다. 우리는 자신을 비우는 동안 두려움을 몰아내는 그분의 사랑으로 충만히 채워진다. 매일 이른 아침은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시간, 내 지친 영혼을 위한 그분의 치유를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고, 우리는 그분의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주시할 때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면 날마다 변화된다. 묵상을 하는 동안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나님의 신비를 깨닫고, 그분과의 친밀함 속으로 들어가며, 인격이 새로워진다.

    이러한 신비는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기에, 이 신비에 들어간 사람들은 이 진리를 세상과 나누라는 부르심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먼저 자신의 개인적인 진리가 되어 삶에 적용될 때에라야 비로소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다. 자신이 먼저 변화되고 진리에 의해 자유케 될 때,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타 종교의 묵상은 정신수양으로서의 요가든, 초월적 명상이든, 찾고자 하는 것이 '자신의 참모습'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묵상 가운데 자신의 '창조주 하나님'을 찾는다. 그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 나를 변화시키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길 소원한다.

    토마스 머튼은 이 둘을 잘 대조했다. "하나님은 피조세계를 두셔서 자신의 빛을 사람의 영혼으로 전달하는 투명한 창문이 되게 했다. 날이 밝을 때는 이 창문을 통해 밖의 빛을 볼 수 있다. 밤이 와도 안에 불빛이 없다면 여전히 창문을 통해 밖의 빛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방안에 불을 켜면 밖은 보이지 않고 창유리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빛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전등을 켜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창유리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그것을 또 다른 영적 세계라고 생각한다. 고등종교의 지도자, 특히 붓다와 같은 불교 지도자는 통찰력이 있었으나 그것은 제한적인 것이었다. 그는 창문에 비친 영상들이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소원이 투영된 것뿐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창문이며, 창문유리 너머에 빛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세계의 주요 종교에서 행하는 명상들은 하나님을 찾는 애절한 표현의 다른 이름임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들은 아직도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며 생명의 의미와 근원을 부지런히 찾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묵상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응답하는 자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까지 결코 만족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으며 그분이 말씀하실 때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우리 안에 심어 주셨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응할 때에야 자신의 진정한 존엄성을 획득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있는 곳에서 우리를 만나주신다. 하나님 앞에서 침묵 가운데 기다릴 때,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침묵은 말씀의 집이다. T. S. 엘리엇은 '사순절 첫날(Ash Wednesday)'이라는 시에서 "말씀은 어디 있고, 어디서 울려 퍼질 것인가? 여기는 아니다. 충분한 침묵이 없다"라고 한탄했다. 침묵이란 단순히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태도나 자세를 말한다. 효과적인 침묵을 위해 적막을 찾아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그러면 이내 소음은 자신 안에 있지, 밖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평화로운 침묵을 얻으려면 우리 자신을 넘어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막의 교부들에게서 유래된, 침묵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한 젊은 제자가 스승에게 침묵을 발견하는 방법을 물었다.

    "제게 침묵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글쎄, 자네는 그걸 어디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제 속 깊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으로 깊이 들어갈 수만 있다면 소음을 피하리라고 확신하는데, 어렵습니다.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제자는 스승이 도와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영혼은 늘 고요했으니까.
    "그래, 나도 한때 그랬지. 내 안으로 들어가는 데 수년을 보냈어. 그리고 거기서 침묵을 맛보기도 했지. 그런데 어느 날 내 상상인지 모르지만 예수님이 찾아오셨네. 그리고는 '와서 나를 따르라'는 단순한 말씀을 하셨지. 나는 나갔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지."
    제자는 어리벙벙했다. "하지만 침묵은...?"
    "나는 '위대한 침묵'을 발견했네. 그리고 소음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네!"

    홀로 있는 시간, 주님의 치유 안에서 쉬는 시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모든 말씀에 온 맘 다해 경청하는 침묵의 시간, 이것이 우리의 하루를 시작하는 방법이다. 바쁜 일정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매일 15분 내지 20분만 들어도 좋다. 짧지만 그것은 삶을 바꾸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은 세상을 향한 그분의 마음을 우리와 나누실 수 있다.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중에서

     

    발췌 : http://catholic.bookcosmos.com/Sub/Board/InfoBook.Asp?Type=T&Gubun=love&Id=2&Sno=9010302&page=05

             ( 카톨릭 대학 홈페이지 )

     

    (주) 위에 오 대원이 인용하는 헨리 나우엔과 토마스 머튼은 종교 다원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관상기도 운동을 전파하는 카톨릭 신부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은 구원의 유일한 길이 아니라, 많은 길중의 한 길이라 주장합니다. 불교와 다른 종교들에서도 구원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깨달음은 관상기도를 통하여 만나는 "하나의 하느님"을 만남으로서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모든 종교들에 관상기도 운동을 펼치는 진짜 목적은 결국 모든 종교가 "하나의 하느님"에 이르게 하는데 있습니다. 카톨릭은 복음주의 진영의 에이전트에게 이 운동을 하달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레노바레 운동입니다. 레노바레 운동은 복음주의 진영의 관상기도입니다.

     

     

    자료 2 예수전도단 설립자 오 대원과 치유 운동

     

    치유와 초자연적인 해방의 역사가 고난 받는 교회들을 통해 속속 전달되었다. 70년대에 프란시스 맥너트 목사는 한국을 자주 방문해 교회에 치유 사역을 소개하며 치유 사역이 회복되는 데 힘썼다. 수백명의 개신교 목사들과 카톨릭 신부들이 아침마다 서강 대학교에 모여 치유 세미나를 가졌고 저녁에는 실내 체육관이나 경기장에 모여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치유 집회를 열었다. 나도 여러번 참석했었다. 어느날 저녁 부산에서 열린 모임에서 사람들은 신약 성경에 기록된 거의 모든 종류의 치유를 경험했다. 치유 받은 사람들의 이전 모습을 알고 있던 카톨릭 신부나 개신교 목사가 그들의 치유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하나님은 카톨릭 교인들과 개신교인들이 그들 사이에 오랫동안 존재해왔던 편견을 기꺼이 버리고 화합하는 것을 기뻐하셨다. 교회가 견고해짐으로 그분이 영광을 받으셨다. 우리 역시 크게 기뻐하고 교회가 치유된 것을 노래하고 축하해야 할 일이었다.

     

    발췌 : 오대원 저 묵상하는 그리스도인 178p ( 도서 출판 예수전도단 )

     

    자료 3 오 대원의 약력

     

    본명 : Dauid E. Ross

    1935년 9월 14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출생

    1957년 테네시 킹 대학 졸업

    1960년 유니온 신학대학 졸업

    1961년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

    1972년 예수전도단 설립

    1980년 미국 예수전도단과 공식적 통합

     

    자료 4 예수 전도단과 관상 기도

    YWAM(예수전도단) BDTS(독수리제자훈련학교) 강의

     글쓴이 : 성목사
     
    9.8.일부터  월,화 오전 9:30부터 2:00까지  가스펠 휄로쉽 교회에서  모입니다. 국제 예수전도단의 뉴저지 지부(Ywam Acts NJ)는 그동안 저녁 시간에만 운영하던 독수리 제자훈련학교(BEDTS)를 9월부터 오전에도 개강한다. BEDTS는 국제예수전도단 DTS(Discipleship Training School) 전 과정을 현장의 조건에 맞추어 운영하는 14주 훈련 과정이다. 주님께 헌신된 주부들과 직장인들을 모아 국제 예수전도단의 열방대학 강사들을 통한 12주의 주제 강의와 2주의 전도 여행으로 진행된다. 강의 및 예배와 중보, 소그룹 모임 등을 통하여 하나님과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성경적 원리원칙을 개인의 삶에 적용하여 맡겨주신 각자의 영역에서 세상문화를 변화시키는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고자 도전하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지역교회를 섬기며 보내는 선교사 또는 가는 선교사로 삶을 살도록 도전하는 훈련학교이다.

    성목사 08-08-24 04:04
     
    뉴저지 와이웸 독수리 제자 훈련학교 오전반

    < 강의내용 >
    Contemplative Prayer( 관상 기도 ) / 하나님 음성 듣는 삶 / 예배 / Father Heart of God / 하나님의 성품 /중보기도 /내적치유/ 용서 /기독교 세계관 / Family Relationship / 잃어버린 영혼 / 도시선교

    < 학교안내 >
    -일정 : 2008년 9월8일 - 11월 25일 (12주간)
              매주 월, 화요일 9:30 - 2시까지.
    -장소 : 가스펠 휄로쉽교회
        10 Mcdermott Pl. Bergenfield, NJ 07621
    -모집인원 : 40명 선착순
    -등 록 비 : $500(부부 $900), 등록비 $50 별도
        목사님 사모님 장학금 혜택
    -원서교부 : *YWAM ACTS 공식카페에서 다운로드(www.cafe.naver.com/ywamacts)
    *E-Mail(Ywamactsnj@Hotmail.com) 로 원서요청
    -문    의 : 201-787-1114 / 201-978-9235
     
    자료 5 카톨릭과 함께하는 국제 예수 전도단 KERYGMA팀

     

     

     

    ( 게시자 주 )

     

    예수 전도단은 한국 교회뿐 아니라 세계 교회들에 은사주의와 에큐메니칼 운동을 확산 시키는 주역입니다. 이 단체는 모든 은사주의적 프로그램과 문물들을 젊은이들에게 소개하고 이들을 훈련시켜 다시 교회 전체에 파급시키고 있습니다. 한국의 교회들은 이 단체에 의하여 심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자인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 전도단이 한국과 세계에 전파하는( 함께하는 ) 운동, 프로그램들

     

    1) 프라미스 키퍼스 운동

    2) 알파코스

    3) 관상기도

    4) 에큐메니칼 운동

    5) 신사도 운동

    6) 빈야드 운동

    7) 현대 예배 ( 록, 신디사이저, 열광적 댄스, 자극적 조명과 음향, 파격의 도입 )

    8) 치유 운동

    9) 임파테이션

     

    위와 같은 운동과 프로그램들이 지향하는 두가지 핵심적인 요소는 첫째 현상적 은사에 치중한다는 것이요, 두번째는 에큐메니즘에 대한 강한 모티브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과 운동을 구상하고 발진시키는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누리에 전파하며 성도들로 하여금 참 복음의 의미를 깨닫고 그것에 순종하는 삶의 열매를 맺게하려는 데 집중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 열거되고 있는 것들은 교회와 성도들을 은사주의화하고 이렇게 은사화된 교회들이 교리에 집착하지 않는 " 하나", 즉 에큐메니즘을 이루려는 본의와 지향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보기에는 매우 매력적이고 역동적이며 소위 즉시적인 은혜의 체험의 장으로 이끌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뜻하는 바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땅에 오심으로 완성되었고 성경에 완전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기록된 말씀대로 사역을 해야 할 것이며 성도들은 이 말씀대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위에 열거되는 운동과 프로그램들은 교회와 성도들을 은사주의화하기 위하여 성경의 특정 부분을 왜곡하거나 집중 원리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성도들을 서서히, 은근히, 에큐메니즘의 큰 마당으로 인도합니다. 그런데 이 에큐메니즘은 교회의 일치라는 선한 뜻이 아니라, 종교 연합적 에큐메니즘의 장으로 이끌기 위한 대기적 장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의 정사와 권세를 주관하는 자들은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과학등 모든 분야에서 신세계 질서를 도모하는 뉴에이지적 전략을 펴나가고 있습니다. 종교 분야에서 이들의 목표는 세계의 모든 족속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신념을 초월하는 다원주의적 사상을 갖게하고 종국에는 단일 종교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예언하고 있는 바로 그 " 적그리스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적그리스도의 실체를 예시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이 존재의 실체를 의식하고 분별하지 않으려 한다면 바른 믿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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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둥지| 원글보기

    릭 조이너의 “과격한 수술” 분별하며 읽기



      필자는 2년 전 적그리스도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상세히 해설한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라는 종말론 서적을 출간한 바 있습니다. 성경 예언이 지적하는 그 적그리스도란 무신론자이거나 한 개인적 인물이 아니라 계승되는 여러 사람으로서 바티칸의 로마교황임을 폭로했습니다.  관련기사: <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 < 성전에 앉아 있는 불법의 사람 >


      이 책이 출간된 직후 추천의 글을 써주신 서철원 교수님(전 총신대학 부총장)을 뵙고 함께 식사를 하며 교제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서 박사님은 나에게 “유 목사님은 세례 요한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배교는 완성되었습니다.” 나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이냐고 질문했습니다. 서철원 교수님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카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렇다면 배교는 완성된 것입니다.” 과연 서철원 박사님은 바른 신학과 진리를 수호하는데 생을 바치고 계시는 개혁 신학계의 거목이셨습니다.

     

      1965년 바티칸 공의회 때의 “비 그리스도교 선언”은 충격 자체였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배교 선언’이었습니다. 타종교와의 화해라는 명분으로 사실상 다른 종교에서의 구원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철원 교수님은 이것을 ‘배교의 완성’으로 간주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공적으로 예수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선언했다면 그것은 배교의 극치이자 배교의 완성입니다. 왜? 예수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사상보다 더 높은 단계의 배교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로마교회는 그 전에도 비성경적 행습과 사상이 가득한 배교교회였습니다.  관련기사: < 배교는 오래 전 시작되었고 지금도 진행중 > 그러나 이 배교교회가 1965년에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선언함으로서 마침내 배교의 절정에 도달했고 배교를 완성한 것입니다. 성경이 로마교회를 음녀의 어미라고 예언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관련기사: < 요한계시록 17장① > 


      따라서 배교타락교회인 로마 카톨릭과 연합하고 이 음녀교회와의 일치운동에 앞장서는 자는 분명히 거짓 선지자이며 주님의 몸 된 교회에 가장 위험하고 유해한 인물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치명적으로 병들게 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사람이 자기 자신을 중병에 걸려 사망 직전에 있는 교회를 치유하는 의사로 묘사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순진한 양들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나는 속지 않겠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자칭 선지자인 릭 조이너입니다.

     

    말타기사단 차림의 릭 조이너가 주교관을 쓴 카톨릭 고위 사제 바로 옆에 서 있다.


      조이너는 로마 교황에게 예속된 말타기사단의 기사입니다. 말타기사단의 원 조직은 로마 바티칸에 본부가 있습니다. 그것은 카톨릭 교회에 의하여 통제되고 있는 조직입니다. 말타기사단은 분명히 카톨릭 기관이며 교황에 의하여 통제되고 전적으로 교황과 마리아와 로마 카톨릭을 위하여 봉사하는 기관입니다. 그것은 매우 막강하고 대대적인 규모의 조직입니다. 공식적인 웹상의 명칭은 “소비린 밀리터리 말타 오더”(SMOM: Sovereign Military Order of Malta)라고 합니다. 1099년에 예루살렘에서 창설되었고 1113년에 교황에 의하여 승인되었습니다. 조이너는 이제는 꽤 널리 알려진 ‘말타기사단’ 미주 지단의 한 단장입니다. 관련기사: < 릭 조이너의 영적 뿌리 >


      그런데 카톨릭과 야합하는 이런 유해한 인물이 “과격한 수술”이라는 글을 통해 자신을 암 덩어리로 뒤덮여 더 이상 생존이 어려울 정도인 교회를 수술해 고치는 위대한 의사로 암시하고 있습니다. 도둑이 경찰을 자처한 격이죠. 아래는 릭 조이너가 쓴 “과격한 수술”이라는 글 전문입니다.

     

      과격한 수술 (모닝스타저널 19-1 / 모닝스타코리아저널 21호)


      2007년 10월 20일, 나는 예수님께서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대해 과격한 수술을 행하시는 환상을 보았다. 교회는 마치 수술대에 누워있는 한 여성과도 같았다. 교회는 내가 이제까지 보아왔던 것 중 제일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몸 전체에 암이 번져있었고, 온몸은 종양으로 뒤덮여 있었다. 주님은 조심스럽게 교회의 몸을 절개하기 시작하셨다. 암은 확실히 모든 내장과 근육, 모든 뼈 조직에까지 전이되어 있었다. 어떤 종양들은 크기가 매우 컸고, 또 어떤 종양들은 매우 작았다. 아무튼 종양은 몸 전체에서 발견되고 있었다. 암이 너무도 심각한 상태였기에, 나는 과연 교회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수술을 행하시는 주님은 걱정스런 기색을 조금도 내비치지 않으셨다. 오히려 매우 행복해하셨다.


      나는 주님이 매우 신중한 태도로 교회 안의 모든 내장과 근육과 뼈들을 절개해내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과연 이 정도로 과격한 수술을 받고서도 몸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러자 예수님의 옆에서 수술을 돕고 있던 한 간호사가, 내가 마음속으로만 제기한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해주었다. 마치 내 생각이 큰 소리로 들려진 것만 같았다. “위대한 의사이신 주님의 수술을 받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주님이 아무리 과격한 수술이라도 필요에 따라 마음껏 행하실 수 있으셨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만일 교회의 일부만 수술을 받았더라면 암은 계속해서 번져갔을 것이고, 결국 교회는 결코 치유되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과격한 수술을 통하여 교회는 치명적인 질병에서 온전히 구원받게 되었다.


      그때 나는 주님이 그토록 행복해하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간호사가 대답했다. “드디어 교회가 주님께 수술을 행하시도록 허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수술 후에 교회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영광스럽고 아름답게 변할 것이며, 주님과 매우 친밀한 자리로 나아갈 준비를 갖추게 될 것이다.


      수술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모든 내장, 근육, 뼈, 모든 조직들까지 모조리 절개되고 있었다. 수술대 위에 놓여있는 것이 과연 한때 정말 사람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하나의 덩어리로만 보였다. 교회 안에 아직도 생명이 남아있을 것이라고는 거의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교회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주님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수술을 행하고 계셨다. 방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수술의 결과를 기대하며 대단한 확신과 평강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수술실이 이토록 기쁨에 넘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이제껏 거의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나는 그들의 기쁨에 함께 동참하는 일에 애를 먹었다.


      문득 주님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시더니 수술용 메스 하나를 건네주셨다. 그리고는 내가 원한다면 주님을 좀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물론 나는 깜짝 놀라 주님께 말씀드렸다. 어떻게 수술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기술도 없기 때문에, 내가 수술을 행하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주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내가 정확하게 대답했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몸 된 교회에 이런 식의 수술을 행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다.


      그 후 주님은 핀셋으로 보이는 서로 다른 크기의 수술 도구 두개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주님은 일단 주님이 암을 드러내놓을 테니 나는 핀셋으로 그 암을 끄집어내서 제거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여전히 주저주저하고 있었지만, 주님은 나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계속 불어넣어 주셨다. 주님은 주님의 양손을 나의 양손에 포개어 주셨다. 주님의 평강과 온유의 능력이 내 안에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내 안에 주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은 점점 증대되고 있었다.


      이제 나도 주님과 함께 수술을 행하고 있었다. 나는 주님이 드러내시는 암종들을 하나씩 제거해가기 시작했다. 암종들 중 어떤 것들은 정도가 경미했으므로 쉽게 빠져나왔다. 반면 어떤 암종들은 조직이나 내장에 심하게 얽혀있어서, 암종을 떼어내려다가 자칫 내장까지 손상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주님이 내게 주신 수술도구들을 갖다 대기만 하면, 암종은 곧 죽어버렸고, 붙어있던 내장으로부터 쉽게 떨어져 나왔다. 어떤 내장들은 조직보다는 오히려 공기구멍만 훨씬 더 많이 남아있어 마치 스위스치즈처럼 보였다. 과연 이 내장들이 다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얼마 후 다른 사람들 몇몇이 수술대 위에 놓인 교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도 나와 동일한 수술 작업을 행하고 있었다. 내 안에는 이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확신이 점점 커지고는 있었으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은 틀림없었다. 암의 모양은 너무도 혐오스러웠고, 나는 선뜻 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암이 조금씩 제거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안에는 엄청난 기쁨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암은 마귀의 속성을 드러내주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기 때문이었다.


      수술을 받으면서 교회는 완전히 산산조각 나기 직전까지 최대한도로 절개되어 있었다. 이제 주님은 암종이 제거된 자리마다 바늘로 꿰매어가기 시작하셨다. 주님은 내장들과 조직들을 매우 정교한 솜씨로 봉합하셨다. 마치 위대한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듯했다. 주님의 기쁨은 얼마나 전염성이 강하던지, 그토록 혐오스런 암종을 제거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행복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암종들이 아무리 역겨워보여도 괜찮았다.


      교회의 몸 가운데 암이 가장 심각했던 부위는 심장과 폐와 뇌였다. 제일 마지막으로 봉합된 곳도 바로 이 부분들이었다. 각각의 부분들을 하나로 봉합시키는 작업이 종결되자, 마치 꿀과도 같은 금으로 된 물질이 교회의 몸 전체를 부드럽게 감쌌다. 나는 이 물질이 치유의 향유임을 깨달았다. 이 향유는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향유가 발라진 곳마다 더 이상 염증이 남아있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이 향유는 마치 초강력 영양제와도 같았다. 암종이 제거되면서 생긴 작은 구멍들의 조직이 향유가 발라짐과 동시에 신속하게 회복되었다. 마침내 모든 내장들과 몸은 단순히 새로워진 정도가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더 월등한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나는 교회가 일단 이 암에서 구원받기만 하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질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몸 안의 조직들과 내장들이 완벽하게 봉합되고 난 후, 주님은 교회의 양손을 봉합하기 시작하셨다. 주님의 봉합기술이 얼마나 탁월하고 완벽하던지, 아무리 과격한 수술을 받았더라도 상처자국이 조금도 남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윽고 교회의 양손은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가장 아름답고 흠이 없는 손이 되었다.


      몸은 점점 예전처럼 다시 사람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교회가 이제 전대미문의 최고의 아름다운 몸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너무나도 완벽하게 이루어진 수술 덕분에 흉터는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내 안에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혹시 수술 후 교회가 깨어난 다음에는 통증이나 기타 고통의 흔적을 느끼게 되는 건 아닐지 궁금해졌다. 그러자 간호사 중 한 명이 나에게 앞으로 통증은 없을 것이라고 대답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 간호사는 이번 수술로 인해 교회는 유사 이래 그 어떤 인간과도 비할 수 없는 탁월한 감수성과 예민함을 영원토록 지니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이 수술은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사실 그동안 나는 방안을 둘러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왠지 위를 쳐다보아야한다는 강한 생각이 들었다. 위를 쳐다보자, 하늘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늘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별들과 무수한 은하수들이 있었다. 계속해서 하늘들을 쳐다보는데, 별들과 은하수들 너머에 펼쳐진 영적인 영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별들 대신에 수없이 많은 생물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생물들은 모두가 밝게 빛을 발산하고 있었고, 생명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생명과 기쁨의 능력이 내 안에 전이되어 오는 것만 같았다. 이런 종류의 체험을 할 경우, 이따금씩 당신은 무언가를 단순히 인식하고 감지하는 것뿐인데도, 그 느낌과 인식이 매우 실제적이고 참될 때가 많다. 나는 이 생물들 대부분이 천사와 같은 존재들임을 알아챘다(그들 중 몇몇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 나는 이들의 존재에 관하여 알아가는 일에 영원을 보내게 될 것이지만, 이를 위해 영원의 때가 되도록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또한 그들도 역시 나에 관해 알고 싶어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다.

     

      잠시 후 내 관심은 수술실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거울들을 향해 쏠렸다. 나는 그 거울들이 모두 일방경(one-way mirror)들이라고 느꼈다. 밖에서는 수술실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지만, 안에서는 밖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별안간 나는 거울 너머에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있음을 보게 되었다.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숫자의 사람들이 수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히브리서에 언급된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히 12:1)이었다. 나는 이전에 다른 영적 체험을 하면서도 그들을 본 적이 있었다. 내가 그들을 쳐다보자, 그들도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인사라도 하는 듯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여줌으로써 그들에게 응수했다.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나는 그들과의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 내가 그들을 쳐다보면 볼수록 유대감은 점점 증대되었다. 계속해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들의 모습은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역시 아주 놀라운 체험이었다. 방금 전에 목격한 하늘의 천사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는 이 무리들에 대해서도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들도 나에 관해 알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에 그들의 관심은 나보다는 오히려 수술하는 장면에 더 쏠려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태도로 인해 나도 다시 한 번 수술대를 돌아다보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이 ‘허다한 증인들’에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관심을 쏟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수술은 이미 종결된 상태였고, 교회는 수술에서 깨어나 영광스런 옷으로 단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회의 모습은 이제껏 내가 보았던 그 누구보다도 훨씬 더 근사했다. 얼굴에서는 아름다움뿐 아니라 강한 힘마저 느껴졌다. 눈빛은 얼마나 강렬하던지, 교회가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마치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교회의 존재 자체가 생명의 능력이자, 지적 총명함의 화신처럼 보였다. 교회가 손을 대는 것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모두가 치유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교회가 지닌 고요함이야말로 교회로부터 발산되는 생명의 능력에 비해 훨씬 더 매혹적이었다. 교회는 평강, 은혜, 위엄의 화신이기도 했다. 단지 교회를 바라보기만 해도 이상에 묘사된 온갖 언어들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개념으로 바뀌어버린다. 고결함과 고귀함을 지칭하는 온갖 언어들이 있다면, 교회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다.


      나는 교회가 더 이상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교회는 참되고 새로운 피조물이었다. 육신과 영을 동시에 지닌 진정한 의미의 영적 인간이었다. 교회는 오른손에 검을 쥐고 있었고, 왼손에 나팔을 들고 있었다. 당장은 제자리에 서 있었지만, 이제 곧 행진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환상은 여기서 끝이 났다.


      요 약 (SUMMAPY)


      환상들 중에는 그 의미가 너무도 명백하여 달리 해석이 필요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환상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환상에 내포된 주된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지금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암에 걸려 거의 힘을 잃고 있다. 암은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성, 거역의 대명사이다. 암은 몸의 나머지 지체들이야 어찌되든 상관없이 에너지를 소진시켜 버린다. 오직 자신의 목적과 필요를 채우는 일에만 급급한 것이 암이다. 수많은 교회들과 사역단체들, 심지어 크리스천들마저 이런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교회를 마치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 자신의 비전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 그 결과 진정한 기독교신앙과 교회 본연의 모습은 매우 심각하고 기괴한 형태로 왜곡되어 버렸다. 그러나 교회가 이 일을 통해 주님의 구원을 간구하며 부르짖는다면,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구원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이 일에는 과격한 수술이 동반될 것이다. 교회의 내면에 들어있던 모든 것들이 빛에 노출될 것이다. 이 작업은 매우 힘들겠지만,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가치가 있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이 글은 건성으로 읽으면 아주 유익한 글 같습니다. 글의 주제는 “암덩어리가 온몸에 퍼져 대수술이 필요한 주님의 몸인 교회” 같구요... 그러나 이 글의 진정한 주제는 “암 종양이 전신에 퍼져 생존이 불가능한 지경에 있는 교회를 주님의 위임에 따라 수술하는 위대한 의사 릭 조이너”입니다. 이게 이 글이 의도하는 바입니다.

     

      조이너는 자신이 본 환상을 기술하는 형식을 빌려 자기를 사망 직전의 병든 교회를 수술하는 의사로 묘사했습니다. 즉 릭 조이너는 아주 교묘하게 자신이 특별한 사역자라는 암시를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시더니 수술용 메스 하나를 건네주셨다. 그리고는 내가 원한다면 주님을 좀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이제 나도 주님과 함께 수술을 행하고 있었다. 주님이 내게 주신 수술도구들을 갖다 대기만 하면, 암종은 곧 죽어버렸고, 붙어있던 내장으로부터 쉽게 떨어져 나왔다. 더욱이 천사들도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 했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원했다고 썼습니다. 그들도 역시 나에 관해 알고 싶어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다.” 굉장하지 않습니까? 조이너는 하늘의 천사들도 사모하는 존재입니다.

     

      조이너가 누구관대 천사들이 그를 알고 싶어 하고 조이너 이야기를 듣기 원한다는 말입니까? 천사도 우리 인간들처럼 내가 누구인지를 소개해야 비로소 나를 알 수 있는 것입니까... 말이 되나요? 만일 그런 천사라면 그는 귀신만도 못한 영입니다. 빌립보의 한 여종 안에 있던 점쟁이 귀신은 바울과 실라를 알아보고 이렇게 소리 질렀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행 16:17).

     

      성경 어디에도 천사들이 모세나 엘리야, 베드로나 고넬료 등에 나타나서 “우리는 당신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요. 그래서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원해요. 본인 이야기 좀 자세히 해주세요”라고 했다는 구절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천사가 사람에게 그런 요구를 한 사례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조이너는 왜 이런 아리송한 글을 기술했을까요? 무슨 의도로... 이 글의 독자들을 향해 “나는 천사들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고, 천사들이 나의 이야기 듣기를 원하는 그런 존재다”라고 암시를 하려는 것입니다.

     

      릭 조이너는 이 글 속에서 교묘하게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독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고 조이너의 암시에 걸려들고 맙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생각의 지배를 받습니다: “조이너는 위대한 사도요 선지자다! 여러분은 조이너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암시하고 교묘하게 자기를 높이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것이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순진한 성도들은 대부분 내용 파악을 못하고 조이너가 슬그머니 제시한 암시에 자신도 모르게 걸려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조이너를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인식하죠. 미혹의 글에 속은 것입니다. 이 정도는 약과입니다. 릭 조이너는 또 다른 미혹의 글에서 사도 바울을 격하시키고 자신은 바울보다 탁월한 존재로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관련기사: < 릭 조이너의 미혹의 글 분별하기 >

     

      이런 문제의 인물이 사도와 선지자를 사칭하며 버젓이 활보하는데도 침묵하고 방관한다면 그것은 악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교회 리더들은 성도들이 미혹을 당하지 않도록 경보를 발해야 합니다. 더욱이 조이너는 음녀교회와 야합하는 바티칸의 좋은 친구입니다. 당연히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할 것입니다.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죄 없다 하지 않으실 것이다. 악에 맞서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악에 동의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악에 맞서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은 악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디트리히 본회퍼)

     

    릭 조이너가 소속된 SMOM(최고군사말타기사단) 단장 앤드류가 교황 베네딕토와 함께 하다(2010년 4월 3일 바티칸).

     

      조이너는 마지막 때의 크리스천들이 마지막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현대의 선지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The Final Quest 빛과 어둠의 영적전쟁 p.58~59). 조이너에 따르면 마치 아이들이 그네들의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신도들이 선지자들을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같은 책 p.60). 이런 교훈은 실로 커다란 미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크리스천들이 신사도들과 신선지자(신예언자)들에게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의 크리스천들에게 추종자들을 양산해 내려는 거짓 교사들에 대해 경고 하였습니다(갈 4:17).

     

      영적 지도자들은 자칫 성도들을 조종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조이너는 사도와 선지자를 사칭하며 크리스천들을 조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도들은 현대의 선지자들에게 복종해야 하며 아이들이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선지자들을 의지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순진한 성도들이 기만당하지 않도록 더더욱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한편 “과격한 수술”에서 조이너는 자기와 동일한 수술 작업을 하고 있는 소수의 다른 사람도 엑스트라로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얼마 후 다른 사람들 몇몇이 수술대 위에 놓인 교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도 나와 동일한 수술 작업을 행하고 있었다.” 이 간략한 문구는 자기만 특별한 사역자로 부각시켰다는 지적을 차단하기 위해 치밀하게 마련한 장치입니다. 일종의 연막인 것이죠. 

     

      조이너의 글은 예수님을 나타내는 모양새를 취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 높여드려야 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도둑질하거나 나누어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홀로 한 분이신 구주 예수님만이 영광과 찬양과 높임을 받으셔야 합니다. 영원히!

     

      나는 조이너가 보았다는 이 “과격한 수술” 환상은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미혹의 영으로부터 왔거나 그게 아니면 자신을 특별한 사역자라고 암시를 줄 목적으로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해 쓴 픽션일 가능성이 큽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배교교회와 야합하는 릭 조이너를 암덩어리가 전신에 퍼져 생존이 불가능한 이 시대의 교회를 수술하는 의사라고 말씀하실 리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칼로 수술이 필요한 일차 대상은 카톨릭과의 연합에 앞잡이 역할을 하는 릭 조이너 자신입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로마 카톨릭과의 연합운동에 앞장서는 인사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가장 유해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로마 교황에게 예속된 말타기사단원인 조이너가 병든 교회를 치유하는 위대한 의사일 수가 있습니까? 기만당하지 마십시오. 지금 교회에 요청되는 가장 시급한 수술은 음녀교회인 카톨릭과 연합하는 자들을 암세포처럼 교회에서 분리 제거하는 일인 것입니다. 바로 그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몸에서 과격한 수술”을 요구하는 대표적 악성 종양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백성아, 그녀에게서 나오라. 그리하여 그녀의 죄들에 동참자가 되지 말고 그녀의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 KJV). 관련기사: < ‘하나님의 인 인침 받은 무리 > < 분리의 원리 > < 분리의 삶 >


     

     

     

    글/ 유석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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