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 고통하는 때의 20가지 특징

디모데후서 3:1-9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9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라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그의 마지막 전도여행 중 갑자기 체포되어 로마의 감옥에 있으면서 디모데에서 보낸 편지입니다. 이때는 네로 황제가 로마의 왕으로 있었고 기독교를 향한 탄압은 점점 더 거세어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A.D.68년 경에 로마시에서 약 5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오스티안 가도'에서 참수 당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4 16절을 쉬운 성경으로 보면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쓰는 상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처음 재판관 앞에 끌려갔을 때, 나를 도와 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났지만 그들이 비난 받지 않기를 원합니다.

, 복음이 핍박 받는 상황에서 다들 바울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혼자 쓸쓸히 재판관 앞에서 자신을 변론해야 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도망친 그들이 그 일 때문에 하나님께 벌받게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디모데후서는 A.D.67 또는 68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홀로 있었습니다.

1 16절을 보면 바울을 찾아 방문한 사람은 멀리 에베소에서 로마 감옥까지 찾아온 오네시보로 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보로 때문에 대단히 기뻐하며 그 가정에 하나님의 자비가 임하기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에도 많은 도움과 위로를 주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바울을 버렸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딤후 1:15).

또한 디모데후서 4 10절을 보면 바울의 동역자였던 데마마저 바울을 버렸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

데마는 바울과 매우 가까운 동역자였지만 복음이 핍박을 받는 고통의 때가 오자 이 세상을 택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버렸습니다. 그는 바울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신앙마저 버린 것입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볼 때 데마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여 예수님을 버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섬기는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서신을 보내며 두려워말고 복음과 함께 담대하게 고난을 받으라고 마지막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 생활은 복음이 세상에서 환영을 받을 때는 어렵지 않습니다. 한국의 경우 1980년대와 1990년 정도에는 교회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 당시 여성들의 결혼 선호 대상에 목사가 2위까지 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교회와 복음이 사회에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핍박을 받을 때는 신앙 생활이 어렵습니다. 이러한 고통의 때에는 신앙을 버리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로 나뉘게 됩니다. 그것이 디모데후서가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당시도 복음은 큰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신자들은 감옥에 갇히거나 재산을 몰수 당하거나 심지어 원형 경기장에서 사람들의 노리개감이 되어 죽임을 당하는 어려운 때였습니다. 이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선한 군사로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당부합니다. 어떠한 시련이 올지라도 겁내지 말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편에 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참교회의 역사 가운데 고통의 때가 있을 것이며 고통의 때에는 배도자들이 일어나 복음의 편에 선 자들에게 악한 짓을 할 것을 말합니다. 복음이 핍박을 받을 때는 세상도 핍박을 하지만 소위 교회라고 불리는 거짓 교회도 참 교회를 핍박할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로, 바울은 디모데후서 4 14-15절을 통해 구리 세공업자인 알렉산더에 대해 말합니다.

또한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딤후 14-15).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는 디모데전서 1 20절에도 나오는 인물입니다. , 바울과 함께 교회를 섬기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이 파선하고 양심을 버렸습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딤전 1:19-20).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는 그리스도를 믿다가 배교한 자로서 심지어 바울이 재판을 받을 때에 불리한 증언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알렉산더에게 직접 보복하지 않고 오직 모든 심판을 그리스도께 맡기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자신의 모든 상황을 의탁하는 믿음의 모습인 것입니다.

아무튼 바울은 디모데에게 알렉산더를 주의하라고 합니다. 이는 알렉산더가 끊임없이 복음에 대적하며 복음 사역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알렉산더는 철저한 배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더 나아가 거짓 목사와 거짓 교회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그 내용이 4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이러한 배경 가운데 바울은 복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각오는 어떠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복음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린 생명을 주는 말씀이기 때문에 복음 안에서 이미 영생을 누리는 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권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7-8).

세상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조롱하고 핍박하더라도 복음은 우리에게 죄사함과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를 주는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선물이니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0-12).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장난이 아닙니다. 취미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형통하기 위해 하나님을 달래어 신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그러한 미신이나 무당같은 종교 생활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죄사함을 받고 그후 죄를 이기며 거룩하게 변화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는 참된 신앙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불이익과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성경은 미래 언젠가 참 교회와 참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대환난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바울이 살던 로마 시대처럼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감옥에 갇히고 재산을 빼앗기고 직장을 잃고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며 카타콤 같은 곳으로 숨어다녀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말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를 것이다(1).

여기서 말세란 마지막 날들이라는 의미로서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부터 재림하실 때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반면 마지막 이라고 하여 단수로 표현되면 심판의 날, 또는 재림의 날을 의미합니다.

디모데후서에서는 뚜렷하게 말세와 마지막 날을 나누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8절을 보면 정확하게 마지막 그 날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마지막)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그러므로 말세의 끝은 마지막 날이며, 마지막 날이 가까울 수록 말세에 대해 언급한 특징들은 더욱 뚜렷하여질 것입니다.

저는 마지막 날이 언제인지 모릅니다. 제가 성경을 통해 아는 것은 마지막 날이 오기 전에 전 세계적인 교회의 배도가 있고 그 다음 마지막 적그리스도의 등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인 마지막 날이 있습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참조, 살후 2:1-12).

아무튼 바울이 경고한 말세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마지막 날이 이를 때까지 참된 그리스도인과 참 교회가 고통을 받는 때가 종종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참교회의 고통의 때는 로마 시대에도 있었고, 중세 시대에도 있었으며 지금 시대에도 있습니다. 한국의 교회 역사만 하더라도 일제신사 참배와 함께 일본의 핍박이 있었고, 6. 25 동란과 함께 공산주의의 핍박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말세의 고통의 때를 야기시키는 특징 20가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특징은 교회에나 사회에나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입니다. 참된 신자들은 절대로 20가지의 사항에 해당해서는 안됩니다. 만일 이 20가지 중에 하나라도 걸린다면 철저한 회개 가운데 그 죄성을 제거하셔야 합니다.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이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고 명령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죄성이 없어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복음의 일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20가지를 하나씩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1) 자기를 사랑하며: 여기서 사랑한다는 것은 최고로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내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 이기적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자기만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람은 예수님과의 교제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과 무관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14:26-27).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 목숨까지 미워해야 합니다. , 내 자신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사랑해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천국을 누리며 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2) 돈을 사랑하며: 돈을 가장 사랑하는 자입니다. 오늘 하루를 사는 이유가 돈 때문에 삽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돈입니다. 이들은 돈 때문에 부모도 미워하고, 형제도 미워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의 특징은 삶의 목표가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말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

3) 자랑하며: 썩어질 세상의 미와 명예와 돈과 권력과 인기를 쉬지 않고 떠벌이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자랑하는 자의 자세는 도도하고 상대나 남을 멸시하는 자세입니다. 성경은 허탄한 자랑은 악한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4:16).

4) 교만하며: 교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무너뜨리는 마음 자세를 말합니다. 사탄은 교만하여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되려고 하였고, 하와 역시 사탄에게 속아 교만하여져서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 여신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교만의 끝은 멸망과 비참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정한 위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교만입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

5) 비방하며: 참람하며: 비방보다는 권위 모독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윗 권위에 대해 항상 그 권위를 허물려는 태도를 말합니다. 부모의 권위, 남편의 권위, 사회에서의 권위를 무너뜨리려는 모독스러운 말을 뜻합니다. 함이 자기 아버지 노아의 실책을 보고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며 모독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함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이는 비방의 끝은 결국 최고의 권위자인 하나님에 대해 모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저주하거나 욕하는 것은 참람한 죄입니다.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느니라(벧후 2:12).

6) 부모를 거역하며: 부모에서 불순종하며 대드는 것에 대해 성경은 큰 죄악으로 간주합니다. 심지어 십계명에도 내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으니 이를 범하면 하나님 앞에 공식적으로 범죄한 것이 됩니다. 살인죄, 간음죄에 대해서는 민감하면서 부모에게 거역하는 죄에 대해 민감하지 않은 것은 우리의 사고 방식이 세상에 물들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부모 공경에 대해 대단히 엄격합니다.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21:18-21).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7:16).

신약도 어김없이 부모 공경에 대해 너무나 마땅한 계명으로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6:1-3).

7) 감사하지 아니하며: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은혜를 모른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아는 자의 가장 큰 특징은 감사입니다. ,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는 모든 자들에게 감사하는 자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자는 복음과 무관합니다.

8) 거룩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이 제 멋대로 죄악을 저지르는 삶의 자세를 말합니다. 특히 성적으로 마음과 육체가 더러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지 않고 창기들처럼 마음과 몸을 아무렇게나 더럽히는 것이 거룩하지 않은 삶입니다. 구약에서 거룩이란 언약에 따라 행함이며 언약에서 벗어난 행동은 거룩하지 않은 것입니다. 인간 관계에서 최고의 언약은 결혼입니다.

9) 무정하며: 동물 중에 가장 무정한 동물은 뱀이나 파충류라고 합니다. 뱀은 새끼를 돌보는 일이 없고, 새끼 뱀은 날때부터 혼자 살며 스스로 살기 위해 속이는데 전문가입니다. 무정한 사람은 자연적인 애정마저 없는 사람입니다. 부모와 자녀 간에도 애정이 없고, 부부 간에도 애정이 없다면 무정한 사람입니다. 거짓과 쾌락에 깊게 물든 사람들의 보편적 특징은 무정한 것입니다.

10)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앙심을 풀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가 용서를 빌어도 용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복수심이 강하며 복수를 즐기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에 독이 많고 시기가 항상 그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가족이나 교회 공동체, 나아가 사회에 있으면 항상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11) 모함하며: 비방 또는 중상모략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습니다. 미움과 악의를 가지고 어떤 대상의 명예와 영광을 모독하는 발언을 뜻합니다. 종종 거짓과 과장이 동반되어 사실을 왜곡합니다. 비방 중에 하나님을 비방하는 말은 가장 무서운 죄악입니다. 또한 나의 유익과 목적을 위해 어떤 대상의 연약함이나 과거의 상처나 죄악 등을 들춰내어 고집스럽게 물고 늘어지며 상대를 무너뜨리려는 악한 의도의 발언이 비방입니다. 비방이라는 단어는 사단이라는 뜻과 같으며 비방은 대단히 무서운 죄악입니다.

12) 절제하지 못하며: 감정이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혈기가 이에 해당하고, 술에 인 박히는 것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대부분의 중독은 절제하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게임 중독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갑작스러운 더러운 욕정에 조정을 당하여 음행 및 음란을 범하는 것도 절제하지 못하는 죄성입니다. 자연적인 욕구, , 식욕, 수면욕, 성욕, 대화, 교제 등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도 죄성입니다. 요새는 문자를 주고 받는데 중독이 되어 있어서 가장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면서도 카톡을 한다고 합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상태는 어떤 종류이든 돌발적인 큰 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13) 사나우며: 싸우기를 좋아하고 말다툼하기를 일상으로 하는 습관입니다. 약자에게는 폭언과 폭력을 쉽게 일삼습니다. 항상 이기는데 관심이 많고 손해 보는 것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14)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멋이 없는 것으로 여기면서 의도적으로 어두움과 악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죄악이 멋인줄로 착각합니다. 모든 정상적인 것은 싫어하고 그 대신 왜곡되고 뒤틀린 것을 좋아합니다. 진리보다 거짓을 더 선호합니다. 선한 사람보다 악인을 더 멋지게 여깁니다.

15) 배신하며: 자신의 유익을 위해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 약속을 밥먹듯이 어기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으로서 거짓이 늘 따라 다닙니다. 가장 큰 배신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져버리고 신앙을 버리는 것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가장 큰 배신은 간음 및 간통입니다. 우정을 저버리는 것도 배신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였습니다.

16) 조급하며: 늘 세상 일로 인하여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조급한 사람은 늘 서두릅니다. 세상이라는 우상과 염려가 가득할 때 조급하게 되어 있습니다. 조급한 사람은 하나님의 깊은 진리의 샘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조급한 사람들은 영적인 분별력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 시대 사람들의 특징은 조급함입니다. 따라서 인내력도 없고 분별력도 없습니다. 무조건 인스턴트가 제일 좋습니다.

17) 자만하며: 허세와 체면으로 우쭐한 상태입니다. 자존심이 매우 강한 사람입니다. 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지 않습니다. 자만의 상태에서는 남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특히 영적으로 자만한 상태에 빠지면, 사랑이 전혀 없고 거룩의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늘 자기 생각과 깨달음만 옳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자만한 사람은 근처에 가기가 불편한 사람입니다.

18)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팥죽 한 그릇에 가장 소중한 것을 던져 버리는 망령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경보다 쾌락을, 기도보다 오락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알기 보다는 안목의 정욕과 육체의 정욕을 더욱 따라는 것이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는 에서와도 같으며 또는 데마와같은 배도자가 됩니다.

19)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합니다. 외적인 부분과 형식적인 부분에서는 경건한 척 보이지만, 실제로 가까이 가보면 죄악에 물들어 있는 모습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교인들은 늘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십년 교회를 다녀도 신앙 인격에 있어서 변화가 없습니다. 그냥 교회 놀이와 종교적인 습관에 익숙해져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 복음을 대적함으로 어리석음을 드러낼 것입니다. 18절에 보니 모세를 대적한 얀네와 얌브레가 있습니다. 결국 마음이 부패하고 믿음에 관하여 저버리게 되면서 알렉산더와 같이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멸망하게 되는 어리석음을 드러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벌써 많은 교회들이 복음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던 데마와 알렉산더와 같은 복음 훼방꾼들이 더욱 교계 내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지키며 전하는 자들이 아니라 교회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돈과 권력과 인기와 아성을 쌓는 자들입니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 보이지만 실제로는 복음의 능력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복음의 능력을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 귀가 가려운 자들이 그들에게 속아 넘어가서 이 세상의 축복을 얻고자 구름떼처럼 모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곳에는 영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을 아십니까?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 만큼 복음 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분의 소드, 즉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십니까? 여러분의 목숨을 걸 만큼 힘차게 달려갈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의 도에 참으로 죽기까지 충성할 것을 맹세하셨습니까?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간절하게 당부합니다.

거짓이 없는 진실한 믿음을 가지라(1:5).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라(1:8).

주께서 주를 의지하는 자들을 능히 지키실 것을 확신하라(1:12).

주 예수님께 충성하라.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2:8).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인내하라.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2:12).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1-2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2-17).

그후 죽음을 앞둔 바울은 마지막 위대한 선포를 우리에게 합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1-2).

우리는 기회가 날 때마다 복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늘 성경을 가까이 하며 복음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시간, 나의 죄 값을 치르시고 내게 죄 사함과 영생을 허락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바랍니다. 또한 그 예수님을 부활시키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시사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 힘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의 힘으로 내 죄성과 죄악을 이겨내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하며 거룩한 삶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의 신앙이 참된 신앙이기를 바랍니다. 가룟 유다와 같은 배신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20가지의 죄성에서 철저하게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고난 때에도, 복음이 이 세상에서 부끄럽게 여겨지며 패배자처럼 여겨지는 때에도, 종교 통합이 되어 복음만을 외치는 참 신자를 핍박하는 때가 될 때에, 나아가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때에도 날마다 바른 신앙을 붙들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랑하며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우리 모두가 죽기까지 주님과 동행하며 주께 충성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이 될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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