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의 아내 – 그녀는 누구였나?

그녀는 역사상 가장 많이 이야기된 아내인가?

우리는 그녀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지만, 그녀는 스콥스 재판에서 논의되었고, 침묵의 소리와 접속이라는 영화에서 언급되었으며, 수백년간 전세계의 나라들에서 이야기되었다.

성경 비판자들은 창세기의 역사적 신뢰성을 폄회하기 위하여 가인의 아내를 수없이 사용해 왔다. 슬프게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해 오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권위를 방어할 수 없으며, 따라서 기독교 신앙도 방어할 수 없는 것처럼 보게 되었다.  

예를 들면, 1925년 테네시에서 있었던 역사적 스콥스 재판에서, 기독교 신앙을 대변한 검사인 윌리암 제닝스 브라이언은 ACLU 변호사였던 클래런스 대로우가 질문한 가인의 아내에 대한 질문에 올바로 답변하지 못했다. 대로우가 브라이언을 심문한 재판 기록을 살펴보라:

질문 – 당신은 가인이 어디에서 아내를 얻었는지 알아냈는가?

답변 – 아니다; 나는 불가지론자들이 그녀를 알아내도록 남겨 두겠다.

질문 – 당신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했는가?

답변 – 나는 알아내려고 한 적도 없다.

질문 – 알아내려고 한 적이 없는가?

답변 – 없다.

질문 – 성경은 가인이 아내를 얻었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 당시 지구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가?

답변 – 나는 이야기할 수 없다.

질문 – 이야기 할수 없는가? 단 한번도 고려한 적이 없는가?

답변 –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질문 – 다른 사람들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가인은 아내를 얻었다.

답변 – 그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바이다.

질문 – 그녀가 어디에서 왔는지 당신은 알지 못한다.

전 세계의 미디어가 이 재판을 주목하고 있었고, 그들이 들은 답변은 오늘날까지 기독교에 영향을 미쳐 왔다 –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 기록을 방어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최근, 이와 동일한 예가 칼 세이건의 책, 접촉에서 사용되었고, 이 책에 근거한 같은 제목의 영화에서도 사용되었다.

그 책은 가상인물인 엘리가 교회 토론 모임의 리더였던 한 사모님으로부터 답변을 얻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다룬다:

“엘리는 성경을 심각하게 읽은 적이 없었다… 따라서 지난 주말 첫번째 수업 전에, 그녀는 열린 마음으로 구약의 중요한 부분인 듯 보이는 부분을 읽었다. 그녀는 단번에 창조에 관한 두개의 서로 다르고 모순적인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가인이 결혼한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세이건은 명석하게 성경이 모순으로 가득차 있으며 방어될 수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제기되는 일반적인 질문들을 열거했다. 실제로 –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아마도 그러한 질문들에 답변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답변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교회가 성경 변증학, 특별히 창세기에 관한 변증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교회 안의 대부분의 신자들은 “너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언제나 변호를 할 준비를 하고 있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할” (베드로 전서 3장 15절)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왜 중요한가?

많은 비평가들은 가인이 아내를 찾기 위해서는 지구상에 아담과 이브의 후손이 아닌 다른 “인종”이 존재 했어야만 한다고 주장해 왔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질문은 역사의 시작에 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만을 기록한 창세기의 창조 기사를 받아들이는 데 걸림돌이다. 복음의 변호자들은 모든 인류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오직 아담과 이브의 후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랏, 신자들은 가인의 아내에 관한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녀도 명백히 아담과 이브의 후손임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가인이 어디서 아내를 얻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복음의 의미에 관한 몇몇 배경적 정보를 다루어야만 한다.  

첫번째 사람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장 12절).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아담이 “첫번째 사람” 이었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인류를 한 종족을 만드심으로 시작하지 않으셨다.

성경은 오직 아담과 이브의 후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명백히 한다. 로마서 5장은 아담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우리도 범죄한다고 가르치신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받은 죽음의 형벌은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전해져 내려왔다.

아담은 모든 인류의 조상이기 때문에, 그가 타락했을 때, 아담의 허벅지에 있던 우리 모두 타락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분리되었다. 죄악의 궁극적 결과는 우리의 죄악된 상태로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것이다. 그러나, 복된 소식은 하나님과 다시 연합할 하나의 방법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죄악과 죽음을 이 세상에 가져왔기 때문에,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죄악과 그에 대한 심판인 죽음에 대한 댓가를 지불할 죄없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사람이 범죄했다” (로마서 3:23) 고 가르치신다. 그 해답은 무엇일까?

마지막 아담

하나님은 그 소망 없는 상태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실 방법을 제공하셨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하나님께서 또다른 아담을 주셨다고 설명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 – 완벽한 사람인 동시에 우리의 골육이 되신 것이다. 그분은 “마지막 아담” (고린도전서 15:45) 이라 불린다. 왜냐 하면 그분은 첫번째 아담의 위치에 섰기 때문이다. 그분은 새로운 대표가 되셨고,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죄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실 수 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ㄷ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21 – 22).
그리스도는 그분의 십자가 사역을 믿는 자들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다시 연합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피를 흘리셨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나니”, 히브리서 9:22).

따라서, 오직 첫번째 아담의 후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모두 친척이다

성경이 모든 인류가 죄인이며, 우리 모두 친척관계라고 묘사하시기 때문에 (“인류와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사도행전 17:26), 복음은 오직 모든 현존하는 인류와 과거의 인류가 첫번째 사람 아담의 후손이라고 하는 기반 위에서만 이치에 맞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복음은 설명될 수도, 방어될 수도 없다.

따라서, 태초에 땅의 티끌로 지어진 오직 한 사람만 있었다 (창세기 2:7).

이는 가인의 아내 역시 아담의 후손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녀는 다른 종족으로부터 왔을 수 없으며, 아담의 후손으로서 설명될 수 있어야만 한다.

첫번째 여자

창세기 3장 20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다른 말로 하면, 아담 이외의 모든 사람은 첫번째 여자인 이브의 후손이다.

이브는 아담의 갈빗대로부터 만들어 졌으며 (창세기 2:21 – 24), 이는 유일무이한 사건이었다. 신약에서, 예수님과 (마태복음 19:4 – 6), 바울은 (에베소서 5:31) 이 유일한 역사적 사건을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결혼의 기반으로 사용했다.

또한 창세기 2장 20절에서, 우리는 아담이 동물들 사이에서 자신의 베필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읽으며, 이는 자신과 같은 종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태초에 오직 한 여자, 아담의 아내만 있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해 준다. 여자가 속한 “종족”이 있었을 수 없다.

따라서,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가인의 아내를 포함한 모든 인류의 조상이 아담과 이브라고 하는 것을 변호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복음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어떻게 선교사들을 모든 종족과 나라에 파송하는 것을 정당화 할 수 있을까?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복음과 복음이 가르치는 모든 것을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가인의 아내를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가인은 누구였나?

가인은 성경에 기록된 아담과 이브의 창남이었다 (창세기 4장 1절). 가인과 아벨, 그리고 셋은 이 땅에 태어난 첫 세대 아이들의 일부였다. 성경은 오직 이들 셋만 언급하시지만, 아담과 이브는 다른 아이들도 낳았다.

가인의 형제 자매들    

창세기 5장 4절은, 아담과 이브의 인생을 정리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들의 일생 동안, 아담과 이브는 수많은 아들, 딸들을 낳았다. 사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구전에 따르면, 아담은 33명의 아들과 23명의 딸을 낳았다.”

성경은 아담과 이브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낳았는지 말씀하시지 않지만, 그들의 긴 인생을 고려할 때 (아담은 930살 까지 살았다 – 창세기 5:5), 많은 자녀들이 있었다는 제안이 논리적인 듯 보인다. 그들은 “생육하고 번성할 것” (창세기 1:28)을 명령받았다.

아내

이제 우리가 개인적 편견이나 다른 성경 외적인 사고가 아닌, 성경으로부터 출발한다면, 태초에 첫번째 세대의 아이들만 존재했을 때, 남자 아이들은 여자 형제들이나 가까운 친척과 결혼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다음 세대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가인이 언제 결혼했는지, 혹은 다른 결혼들과 자녀들에 대한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가인의 아내는 그의 여동생 혹은 가까운 친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창세기에서 “아내”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를 좀 더 자세히 살펴 보면, 독자들이 빠뜨릴 수 있는 것을 알게 된다.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인의 아내가 그의 여동생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좀 더 명확하게 들린다. 창세기에서 “아내”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는 ishshah 이며, 그것은 “여자 혹은 아내”를 의미한다.

“가인이 아내 (ishshah)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창세기 4:17).

Ishshah 는 “여자”를 가리키는 말이며, “남자로부터 나왔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히브리 단어 iysh 와 enowsh 로부터 파생된 말이며, 두 단어 모두 “남자”를 의미한다. 이는 창세기 2장 23절에서 아담으로부터 나온 자에게 “여자”(ishshah)라는 이름이 부여된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세기 2:23).

따라서, 가인의 아내는 아담의 후손이다. 따라서, 그녀는 가인의 여동생 (혹은 조카)여야 한다. 히브리 독자들은 그것을 보다 쉽게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을 통해서 많은 의미가 소실되었다.

반론

하나님의 법

많은 사람들은 남매간의 결혼을 금하는 모세법에 호소하여 아담과 이브의 아들 딸들이 서로 결혼했다는 결론을 즉각 거부한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친척과 결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 만약 우리가 친척과 결혼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인간과 결혼할 수 없다! 아내는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이미 남편과 친척관계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류는 아담과 이브의 후손이며 – 한 핏줄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친척 간의 결혼을 금하는 이 법은 모세의 때에 주어졌다 (레위기 18 – 20). 결혼이 일생 동안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것이라면 (창세기 1장과 2장에 근거해서), 모세의 때 이전에 가까운 친척이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한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이복누이와 결혼한 것을 기억하라 (창세기 20:12).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법이 이러한 결혼을 금하지만, 이는 모세의 때보다 약 400여년 전 일이었다.

생물학적 기형

오늘날, 남매는 법적으로 결혼하여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오늘날 남매간의 결합으로 생기는 아이들이 기형아가 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 사실이다. 사실, 그 친척관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기형아를 낳을 가능성은 높아진다. 복잡한 생물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쉽다.

각 사람은 부모로부터 하나씩, 한쌍의 유전자를 갖게 된다. 불행히도, 오늘날의 유전자에는 많은 결함이 있고 (죄악과 저주로 인하여), 이러한 결함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은 한쪽 귀가 다른 쪽 귀보다 더 아래에 있다는 것을 가리기 위하여 머리를 기른다 어던 사람들의 코는 얼굴 중앙에 있지 않다. 사실을 직면하자. 우리가 서로를 정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동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부부가 생물학적으로 더 가까울수록, 동일한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그들의 유전자에 비슷한 결함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따라서, 남매는 그들의 유전체에 비슷한 결함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들이 자녀를 낳는다면, 아이들은 각 부모로부터 한 세트씩의 유전자를 받는다. 부모의 유전자에 비슷한 결함이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동일한 결함이 모이게 되면 기형아를 낳을 가능성이 그만큼 더 커지는 것이다.  

역으로, 부모가 생물학적으로 관계가 적을수록, 그들의 유전자에는 다른 결함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각 부모로부터 한 세트의 유전자를 물려받는 아이는 한 부모로부터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물려 받더라도, 다른 부모로부터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좋은 유전자를 받게 되는 것이다. 좋은 유전자는 나쁜 유전자의 영향을 극복할 수 있는 경향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심각한 기형은 발생하지 않게 된다. 예를 들면, 완전히 뭉개진 귀가 생기는 대신, 단지 비뚤어진 귀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인류의 유전자에는 세대가 지남에 따라 결함이 계속 축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에 발생하는 일은 아담과 이브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처음 두 사람이 창조되었을 때, 그들은 완벽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은 “심히 좋았다” (창세기 1:31). 이것은 그들의 유전자에는 결함이 없고 완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담으로 인해 죄악이 세상에 들어왔을 때 (창세기 3:6), 하나님은 이 세상을 저주하셨고, 완벽했던 창조는 붕괴되기 시작하여, 죽음과 부패를 경험하게 되었다 (로마서 8:22). 오랜시간에 걸쳐, 이러한 붕괴는 생명체의 유전 물질에 온갖 종류의 결함이 발생하도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인은 최초에 태어난 세대였다. 그와 그의 형제, 자매들은 실질적으로 완벽한 유전자를 아담과 이브로부터 물려받았다. 왜냐하면 죄의 결과와 저주는 처음에는 미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매는 기형아를 낳을 가능성 없이 결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약 2,500년 후인 모세의 때까지, 인류의 유전자에 축적된 결함으로 인해 하나님은 남매간 (그리고 근친간)의 결혼을 금하실 법을 제정하셔야 했다 (레위기 18 – 20).
(또한, 그때까지 충분한 사람들이 있었고, 근친간에 결혼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근친간의 결혼을 금하는 법을 도입해야할 총 세 개의 서로 연관된 이유들이 있는 듯 보인다:

1.    우리가 이미 논의했듯, 기형아를 생산할 가능성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2.    하나님의 법은 유다를 강하고 건강하며 하나님의 목적 안에 지키는 데 중요했다.

3.    이러한 법은 개인과, 가족제도, 그리고 전체 사회를 보호하는 수단이었다. 근친간의 관계로 인한 심리학적 피해 역시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가인과 놋의 땅

어떤 이들은 창세기 4장 16절 - 17절은, 가인이 놋의 땅으로 갔고 거기서 아내를 찾았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따라서, 지구상에 가인의 아내를 낳은, 아담의 후손이 아닌 다른 인종이 있었다고 결론내린다.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앞에서 언급한대로, 가인의 아내를 포함한 모든 인류가 아담의 후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구절은 가인이 놋의 땅으로 가서 아내를 얻었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위의 구절에 대한 주석에서 존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문으로부터, 우리는 가인이 그의 동생을 죽이기 전에 결혼했을 것이라는 정보를 얻게 해 준다; 그렇지 않다면 모세는 그의 결혼에 관한 무언가를 말했어야 했을 것이다.”
가인은 놋의 땅으로 가기 전에 결혼했다. 그는 거기서 아내를 찾은 것이 아니라 그의 아내와 동침했다.

이는 놋이 무엇인지 알면 더 이해하기 쉽다. 놋은 히브리어로 “방랑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인이 놋의 땅으로 갔을 때, 그는 문자적으로 방랑하는 땅으로 간 것이지 사람들로 가득 찬 땅으로 간 것이 아니다.

가인이 두려워했던 사람들은 누구였나 (창세기 4:14)?
어떤 이들은 아담과 이브의 후손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면 가인은 아벨을 죽인 것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해하려 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첫째, 누군가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해를 가하려 했다면, 그것은 그가 아벨과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가인과 아벨은 아벨의 죽음 훨씬 이전에 태어났다. 창세기 4장 3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세월이 지난 후”라는 구절에 주목하라. 우리는 셋이 아담이 130살 때 태어났음을 알고 있고 (창세기 5:3), 이브는 그를 아벨의 대체자로 여겼다 (창세기 4:25). 따라서 가인의 탄생으로부터 아벨의 죽음 사이에는 100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이 존재하며 – 이는 아담과 이브의 다른 자녀들이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아벨이 죽임을 당했을 때, 몇 세대에 걸친 수많은 아담과 이브의 후손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기술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떤 사람들은 가인이 놋의 땅으로 가서 도시를 건설하려면, 그는 그 땅에 이미 존재했고, 아마도 다른 인종이 개발한 많은 기술들을 배웠어야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담과 이브의 후손들은 매우 총명한 사람들이었다. 창세기 4장 21절은 유발이 하프와 오르간 같은 악기들을 만들었다고 말씀하시고, 창세기 4장 22절은 두발-가인이 구리와 철로 여러가지 기구를 만들었다고 말씀하신다.

강력한 진화론적 세뇌로 인하여,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세대가 지구상 가장 발달된 세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단지 우리가 비행기와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가장 지적이거나 발달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기술은 지식의 축적의 결과이다.
우리는 우리의 두뇌가 6,000년의 저주를 경험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많은 세대 이전의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퇴보했다. 우리는 아담과 이브의 아이들보다 훨씬 덜 총명하거나 창의적일지 모른다. 성경은 우리에게 거의 태초부터 진보된 기술이 있었음을 잠깐 보여주신다.

가인은 도시를 건설할 지식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결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인의 아내에 관한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이유들 중 하나는, 그들이 오늘날의 세상과 근친 결혼과 관련된 문제점들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확한 역사적 기록을 보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 관한 진정한 성경적 역사와 죄로 인하여 발생한 변화들을 이해하는 대신, 우리가 현재 처한 상황으로부터 출발하여 성경을 해석하려 한다. 그들이 성경 위에 그들의 세계관을 확립하지 않고, 세속적 사고 방식을 성경에 가져오기 때문에, 그들은 단순한 답변에 대하여 눈이 멀어 있는 것이다.

창세기는 그 일들이 발생했을 때 거기에 계셨던 하나님이 주신 기록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아시며 과거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증인이신 분의 말씀이다. 따라서, 우리가 창세기를 역사를 이해하는 기반으로 사용한다면, 우리는 미스테리일 수 있는 증거들을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진화가 사실이라면, 과학은 가인의 아내를 설명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 즉, 어떻게 사람이 유전적 결함인 돌연변이에 의해 진화될 수 있었겠는가? 왜냐하면 돌연변이는 아이들을 기형으로 되게끔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대체로 기형이 아닌 자손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진화가 아닌 창조의 증거이다.


출처: USA 아멘넷 자유게시판/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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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BBC 방송의 최근 보도에 의하면 한국 남성의 평균키가 북한 남성 평균키보다 3~8cm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평균키 차이는 어릴수록 두드러지며, 취학 전 어린이의 경우 남한 남자 어린이의 평균신장이 북한 남자 어린이보다 4cm 크고, 남한 여자 어린이는 북한 여자 어린이보다 3cm 큰 것으로 조사됐다.

단일 민족 국가인 한국에서 남북한의 평균키 차이는 유전적인 것이 아니며, 남한의 경제 발전으로 남한의 여성의 키가 북한 남성의 키를 추월, “여성의 키가 남성보다 더 큰 유일한 사례” 라는 내용의 발표이다.

남북한 경제의 차이가 만들어낸 특이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한편, 남한과 북한의 경제의 차이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북한의 38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북한 인구는 2330만 명으로 남한의 절반(47.9%) 정도인데 북한 국내 총생산(GDP)는 247억 달러로 한국 (9287억 달러)의 2.7%에 그쳤다.

이를 인구 수준으로 나눈 북한의 1인당 GDP(1060달러)도 한국의 5.6%에 불과하다.

위에 인용된 수치를 종합하면 북한의 경제 규모는 남한의 38분의 1로 남북한 경제력의 격차가 상상을 초월하게 크게 벌어진다는 결론이 된다.

북한은 왜 가난한가?

북한은 왜 전세계의 최빈곤국중의 하나로 전락하고 있는가?
북한은 왜 헤어 나올 수 없는 가난과 폐쇄와 고립 속으로 침몰하고 있는 것일까?

대답은 아주 간단하고 또 확연하다.
북한에는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자신의 자유의사와 선택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실현 시킬 수 있을 때, 바로 그런 인간다운 노력이 생산과 창조로 이어지고, 또 바로 그때에 우리들이 추구하는 물질적인 부도, 생산도, 개혁과 개선도, 예술의 탄생도 가능해진다.

한 개인이 각자 타고나는 창의성의 실현이 한 생명이 추구하는 자아실현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성취시키고, 인간의 자기존중이 시작된다.

북한과 같이 살인적인 억압과 통제 속에서는 개인의 자기존중은 쉽게 말살되며 자기존중을 잃어버린 국민은 저절로 노력을 포기하고 만다.

개인의 선택의 자유가 국민 각자의 권리로 인정 받는 곳,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핵심이고, 이 기본권리의 자유는 자연스럽게 어느 인간사회에나 주어져야 한다.

그러한 자연스러운 국민각자의 생존방식이 바로 건전한 사회, 쉬지 않고 성장하고 성숙하는 사회를 만들고 이끌어가게 되는 것이다.

남한이나 미국처럼 사회 구성원인 각 개인에게 언론, 종교, 경제, 사회, 과학,예술, 교육, 문화, 군사, 스포츠, 정치 등의 각 분야의 선택이 뷔페 식당처럼 열려있고 각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곳, 그런 곳이 바로, 자유,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건강한 사회이다.

자연스러움이 곧 자유이다.

3대 세습으로 김씨 왕조를 반인륜적으로 억지로 끌고가고있는 북한은 현재 ‘완전한 정도의 폐쇄와 절대적 폭압 살상 통치의 외딴섬’과도 같다. 국민은 노예가 되어 혹사 당하고 착취당하며 학대 받고 있다.

자연을 거슬러 살도록 강요당하는 집단 속에서는 인간은 의욕과 동기를 상실하게 되있고, 곧 한 생명의 최악상태인 자포자기로 빠져든다.

북한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있는 부정부패와 권력층의 착복, 뇌물에 의하여 움직여지고 있는 정부기관들이 그 생생한 예이고 증거와 증명이 된다.

북한은 변해야 한다.

반드시 변해야 하고, 또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개혁과 개방과 함께 빵과 자유가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각자 참여하여 자신들의 자유의사에 따라 나라살림을 이끌어가야 한다.

국민 각자를 자신만의 독특한 육체적, 심리적 필요나 욕구를 가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고 보호할 정치이념과 능력을 갖춘 문명한 사회로의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도 현재의 북한에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그 어느 개인이나 집단도 자연을 거슬러서는 절대로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역사의 교훈에서 다시 마음을 열고 배워야 한다.

윤병열 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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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GRACE)라는 단어는
'그리스도께서 값 주고 사신 위대한 부요'
(Great Riches At Christ Expense)라는 
말의 앞글자의 축약입니다.

그 위대한 부요하심이 우리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의해 치러진 
모든 청구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생명과 죽음에 대하여 ...
마땅히 받으셔야 할 것을 우리가 얻었고,
반면에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그리스도께서 취하셨습니다."


- Rev. Geoffrey Thomas 의 
'양자됨의 교리'에 대한 강연 중에서.....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은혜'(GRACE)라는 단어는
'그리스도께서 값 주고 사신 위대한 부요'
(Great Riches At Christ Expense)라는
말의 앞글자의 축약입니다.

그 위대한 부요하심이 우리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의해 치러진
모든 청구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생명과 죽음에 대하여 ...
마땅히 받으셔야 할 것을 우리가 얻었고,
반면에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그리스도께서 취하셨습니다."


- Rev. Geoffrey Thomas 의
'양자됨의 교리'에 대한 강연 중에서.....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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