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다원론자 변선환에 대하여 ◈◈◈ 대 전 신 학 대 학 교 선교학개론 김주덕 교수님

3학년 200812027 서성범. 4학년 200711015 송찬섭

 

 

◆변선환의 신학적 노선=============================================

변선환을 이야기 할 때 자유주의 신학자이며, 종교다원론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지 한 세기가 지났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그동안 이 땅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동안 불교, 유교, 전통종교 등과 자주 갈등을 빚어 왔습니다. 한국에서는 그간 이 갈등의 와중에서 특히 1980년대에 신학자들 간에 보수와 진보 혹은 근본주의와 자유주의로 갈라져 신학적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그 중 변선환은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 했던 인물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범주 속에 종교다원주의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란? "다른 종교에도 진리가 있으며, 구원은 교회 밖에서도 가능하다." 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 이론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 설명을 쉽게 하고자 천주교 원로인 정양모 신부의 말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 '오직 예수' 라는 것은 기독교인의 입장에선 너무 존경스러워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옆을 잠깐만 돌아보면 공자님도, 부처님도, 마호메트도 있다. 하느님의 신비나, 불교의 공이나 진여는 걷잡을 수 없는 세계 아니겠는가. 정상에 이르는 길은 많다. 부처님 코스, 공자님 코스, 무하마드 코스가 있다. 나는 예수 코스를 따르고 있다. 다른 코스를 모르다 보니 예수 코스만 너무너무 좋다. 각자 자기 코스 밖에 안보이니까 오직 예수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선 그렇게 하기가 아주 좋다. 그러나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불자들도 만나고, 유생들도 만나야 하니 생각이 넓어져야 하지 않겠느냐.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참삶, 하느님이고 진여이고, 공이다. 참삶에 이르는 길은 예수다. 그게 예수 코스다."

종교다원주의는 상생과 공존을 주장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논리에 입각하여 변선환은 1980년대에 "종교의 우주는 기독교가 아닌 신 중심",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대담한 선언을 합니다. 그것은 기독교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교리를 부인한 것으로 당시 감신대 학장으로 재직 중인 신학자인 그에 주장은 기독교 뿐 아니라 종교계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던 사건이었습니다.

 

 

◆변선환의 이 같은 주장으로 기독교계의 반응=============================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교리는 신학적인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해 기독교의 본질을 부인 했다."며 당시 감신대 학장에게 감리교회법상 최고형인 '출교'형을 내렸습니다. 이는 중세의 '파문'에 해당하는 것으로 교인의 자격을 빼앗고 당사자를 감리교단 밖으로 내보내는 형벌이었습니다.

보수주의 목사들이 주도한, 감리교단의 '한국형 종교 재판'은 한국개신교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것으로 큰 주목을 받았으며, 재판 결과에 반발하는 학생들과 상당수 목사들로 감신대는 장기간 분규에 휩싸이기까지 하였습니다. 당시 변선환 학장은 최후진술에서 "흑백논리만이 횡행하는 감리교의 현실이 안타깝다"며 "기독교는 더 이상 정복자의 종교가 아니며 전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종교간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종교적 다원주의는 감리교의 세계적 추세"라고 역설을 하였습니다. 또한 "타종교를 무조건적으로 악마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는 개종 중심의 선교 신학은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다. 지구촌에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현실과 그 진리성을 인정하되 종교간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종교를 배워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새로운 신학이 정립돼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러한 신학적 논리를 한국 감리교는 그를 '사탄의 종'이라며 파면을 시키게 된 것입니다.

 

 

◆변선환을 옹호하는 사람들에 주장====================================

변선환 사후 10년이 지나서 그에 제자들은 추모 논문집[변선환 신학 새로 보기]-대한기독교서회-에서 그를 복원시키려 애를 씁니다. 그 제자들은 스승을 이렇게 옹호 합니다. "한국 교회의 근본주의는 '적'이 필요했다." 라고 말입니다.

'다름이 곧 틀림이 되는 차이'를 통해 자아 정체성을 확보하는 모든 근본주의와 마찬가지로 한국 교회의 근본주의 또한 '적'이 필요했다. 또한 '우리'와 '저들'간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드는자 역시 '사탄'이 되어야 했다. 변선환은 그렇게 '사탄'이 되고 말았다.

당시 금란 교회 김홍도 목사는 매주 발행하는 (불기둥)이라는 팸플릿에서 "한때 수천 명씩 모이던 구라파 교회들이 관광 장소로 전락한 것은 수십 년 전부터 있었던 종교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사탄 때문" 이라며 합리주의, 사회복음 운동, 실존주의 철학, 행동주의 신학, 과학적 방법 등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사상가들을 공산주의자와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북한으로 가면 좋으련만 가지 않고 국가를 혼란하게 하는 것이나 기독교의 탈을 쓴 무신론자들이 교회 안에 존재하면서 파괴하려고 드는 것은 사탄의 간계"라며 이들이 교회 밖으로 나간다면 학문의 자유를 가지고 무슨 소리를 하든 개의치 않는다"라고 했다. 그의 논리 안에서 교인의 숫자는 사탄의 득세와 반비례하며, 교회 밖의 '적'은 오히려 교회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교회 안의 이질적 목소리는 용납 못한다는 폐쇄성과 극단적인 이분법이 가득했다. 그러나 변선환의 제자들은 "복종보다 합리적 사고를, 개인 구원보다는 사회복음을, 내면적 초월성보다 사회참여를 중시한다면 보수교회들은 이를 여지없이 교회를 파괴시키고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신학으로 딱지붙이며 대중을 훈련시켰다"며 "변선환을 정확히 대립점에서 자아와 타자의 차이를 해소하려고 했다"라고 설명하며 옹호합니다. 또한 "다른 종교에도 진리는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는 2000년간 배타적 선교 정책을 고수해 온 대다수 기독교인들에게는 여전히 당혹스러운 과제였을 것이며, 더욱이 "교회 안에서만 들리는 하나님의 목소리"에 대한 독점중계권을 쥐고 있었던 근본주의 목사들에게는 실질적인 '위협'이었던 것이라고 변선환의 신학적 논리를 옹호합니다.

 

 

◆변선환이 신학을 하게 된 동기와 누구의 영향으로 신학적 논리를 정립하였는가? 그는 1928년 진남포에서 태어났습니다. 진사인 할아버지 밑에서 서당식 공부를 하였으며, 그 배움을 통하여 동양적 심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중학교 시절에 동서 4대 성인의 인물전을 보고 인간 삶의 생애의 의미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찾아오신 것은 18세 때 신석구 목사님을 만나서 부터라고 합니다. 신석구 목사는 보수적 신앙인으로 불교인들과의 대화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분으로 이후 변선환에게는 토착화 신학에로의 여정, 종교해방신학에 대한 관심, 그리고 학문적 자유를 지켜 내려는 일관된 삶의 태도 등의 논리를 갖는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1948년 평양성화신학교에 입학하고, 후에 6.25발발로 단신으로 남하하여 1951년 부산 감리교회를 다시 입학하게 됩니다. 그곳을 졸업한 뒤 한국신학대학 대학원을 입학하여 바르트 신학을 전공한 박봉랑교수와 틸리히를 강의하는 서남동 선생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로부터 변선환은 "계시신학이 간과하고 있는 종교와 문화로부터의 계시신학 그 자체가 도전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변선환의 문제의식은 실존주의 신학사조를 만나게 되면서 더욱 깊이가 있게 되고 후일 웨슬리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단초가 되게 됩니다.

그 후 그는 미국 뜨루대학 유학길에 오르며, 바르트 신학과 결별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볼트만으로 이어지는 실존론적 신학을 칼 마이켈슨 교수로부터 배우게

되고, 신의 초월성을 신학의 절대지평으로 삼았던 바르트의 계시 신학과는 달리 그리고 또한 존재자체에 큰 비중을 둔 틸리히의 상징론이 그리스도 계시를 불필요하게 만든다고 비판하면서 역사라는 개념을 가지고 신학의 재구성을 시도하는 마이켈슨의 작업에 매료되어 빠지게 됩니다.

 

◆변선환의 신학 사상==============================================

?[실존적 기독론] 변선환에 신학은 토착화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에 토착화 신학에서는 신학적 관점이 서구적 틀 속에 갇혀 있는 것을 거부합니다. 즉, 동양의 세계를 존재 신비주의 차원에서 인식하고 인간의 자아개념이 함몰된 역사망각의 실체로 규정하고 그것에게 구원을 베풀려고 하는 자신의 신학적 주장 속에 서구적 신학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다른 종교보다 낫지 않으며, 하나님의 계시는 구원이 다른 종교들 속에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나타나 있다는 신중심주의 신학 내지는 종교다원주의에로의 획기적인 전환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그는 기독교의 배타성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한국적 신학의 과제를 제시 합니다. 첫째, 한국적 신학은 종교에 대한 서구적 편견으로부터 벗어야 한다. 둘째, 한국적 신학이 타파해야 할 우상을 교회중심주의라고 보았다. 셋째, 난공불락으로 알았던 기독교의 절대성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불교학자 이기영 교수, 유학자 유승국 교수, 민중신학자 안병무 교수, 강원용. 김홍도 목사, 카톨릭 토착화 신학자 심상태 신부 등과 대화를 나눌 때도. 그는 아시아인들의 종교성과 민중성(가난)을 놓치면 아시아의 신학일 수 없다면서 아시아인의 현실에 눈을 감지 않는 신학을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토착화 신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변선환의 웨슬리 이해]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는 우선적으로 그의 사랑과 자비에 조화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라고 변선환은 웨슬리 신학을 이해합니다. 또한 그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건 이전에 살던 사람들조차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 밖으로 내 버려진 사람이 없다는 웨슬리의 선행은총론에 주목을 합니다. 선행은총론이란 인간 모두에게 주어진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새롭고도 현실적인 가능성을 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의 자유의지, 양심, 이성 등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재적 은총의 선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이란 무엇인지 선행은총으로 인하여 하나님에게로 행할 수 있습니다. 유한이 무한을 품을 수 있다는 웨슬리의 보편적 인간론은 그로 하여금 세상의 휴머니스트들, 오늘의 선한 사마리아인들과의 열려진 대화를 가능케 하였습니다.

?[변선환의 기독론, 구원론] 변선환은 기독론과 구원론을 현실에서 다루려 합니다. 종교의 다양성 속에 존재하는 선교의 이상은 철저하게 각 개인의 인간화를 지향하는 실존적 자각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가 바라보는 전통적인 선교의 미래는 암울하다 못해 가치가 없는 것으로 봅니다. 즉, 선교가 개종으로 일어나서는 안되며 사실 개종을 통해서 인류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뭉치게 된다는 이상은 불가능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또한, 변선환은 기독론을 상징 속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의 기독론의 전개 방법은 기존의 서구의 전통적인 기독론을 그 시대와 역사의 한계로 '상황화'시키고 정통 기독론을 상대화 시키는 것을 통하여 한국 고유의 기독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 설명합니다. 즉, 지금까지의 서구 기독론이 형성되어 왔을 때 가졌던 문화의 숨어있는 해석학적 기능과 같은 동양적 기능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변선환은 기독론의 특성은 현재 역사적 기독교의 중심인 전통 기독론을 해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동양적 기독론을 문학작품으로 여기려는 그의 미학적 태도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변선환의 신학적 뿌리인 종교다원주의] 역사적이며 현실적인 예수를 주장하기보다는 우주적이며 보편적인 로고스로서의 그리스도를 강조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상징적인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힌두교의 신학화를 꾀한 파니카는 힌두교의 이쉬바라를 절대자 브라만의 계시자로 보는 동시에 이를 힌두교안의 감추어진 무명의 그리스도로 봅니다. 힌두교의 이쉬바라가 보편적 로고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동일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변선환은 이러한 종교신학을 넘어서서 나아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파니카가 힌두교가 기독교의 예비적 단계로 보고 힌두교가 기독교에서 완성에 이른다고 하는 생각을 비판하였습니다. 변선환은 기독교 신학 내에 부정 신학적 전통이 존재하듯이 힌두교 자체에도 부정적 전통이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변선환을 보는 나의 견해==========================================

변선환의 자유주의 신학, 종교다원주의, 토착화 신학은 이단 사상이라고 하여 종교 재판에서 기소를 받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는 이 같은 결과를 반박하며, 자신의 신학이 지닌 필요성과 정당성을 주장하였습니다. "헬라 철학이나 독일 철학을 사용하여 만든 서구 신학은 혼합주의가 아니고, 동양 철학의 범주를 가지고 복음을 재해석한 모든 아시아 신학은 아시아적 혼합주의라고 이유를 본인은 전혀 알 길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복음을 아시아의 심성에 울림 하는 아시아 종교나 아시아 혁명의 새 언어를 가지고 설명하는 우리 아시아 신학을 개발할 때, 아시아 교회는 독립 신학의 바벨론 포수에서 벗어나서 비서구화 된 아시아 기독교인의 주체성을 찾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초기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변선환은 서구 신학의 영향 아래에 있다가 점차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시도하면서 자신의 신학을 정립해 갔습니다. 국내 신학교에서 서구 신학을 소개받은 그는 미국, 스위스 등으로 유학하면서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고, 그 결과 아시아의 종교에 관심을 갖고, 불교와의 대화에 주력하다가 1980년대 이르러 다른 종교와의 개방과 대화를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를 제창하게 된 것입니다.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어떤 이들은 자신의 구원은 뒤로한 채 마지막 한사람까지 지옥에 내보낸 뒤 가장 마지막에 지옥문을 나서겠다는 불교의 지장보살의 서원을 들어 자신과 타자, 기독교와 타 종교, 선과 악 등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나눠 다른 쪽을 지옥으로 내쳐버리는 기독교의 한계에 절망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변선환은 당시의 기독교의 모난 부분의 현실을 보고, 잘못 된 부분을 종교다원주의와 토속화 신학으로 해결 방법으로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변선환에 문제를 바로 보고 시정하여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 것은 높이 평가 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론적인 면에서 잘못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변선환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구원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인데, 그것은 요한복음 14장 6절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인한 주장으로 18살 때부터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학 공부를 하였으며, 유명한 미국의 신학교를 유학한 사람으로 말씀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이 없던 나라에 복음이 전파될 때는 많은 어려움이 분명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복음에 근본을 잃어버리고 포교를 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어리석은 행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확신합니다.

현재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기독교인들 또한 이 같은 과제를 앉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에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과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고 하였습니다. 보통 지혜롭지 않고서는 우리가 복음에 근본을 잃어버리고 사탄에 밥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완벽하게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에 근본을 버리는 그런 신학과 전도, 예배, 기도 등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가져온 곳 : 
블로그 >불기둥(Pillar of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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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신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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