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에게 성령 충만한 삶은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흔히 말씀을 많이 공부하여 해박하거나

많은 기도를 통해 성령충만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말씀과 기도가 성령 충만한 삶을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자칫 말씀에 충만한 것이나 열정있는 기도로

성령 충만한 영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착각일수 있습니다.

 

  저에게도 그러한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 성경공부로, 부흥회를 찾아 그 뜨거워졌던 기도의 시간들이 저에게 은혜 충만하고 믿음의 일이 아니면 경원시하고 무언가 다르게 저를 이끌어 가시기를 바라고 또 그럴 것 같이 붕 떴던 마음들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매 번 참석과 과정을 끝나면 뭔가 달라져 있어야 할 저의 모습은 언제나처럼 돌아갔던 허무함 조차 깨닫지 못하고 지나왔었습니다.

 

  요한 복음 15 장에서 주님은 당신을 포도나무요, 하나님 아버지가 농부라 하셨고, 우리를 가리켜 가지라 하셨습니다. 가지의 사명은 바로 열매을 내야 합니다. 그 열매는 바로 '사랑' 임을 분명히 정의 하셨습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인 것을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5장에서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긍휼과 양선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니" 라며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원문은 사랑을 말하고 그 이후 단어들은 사랑의 속성을 나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성령의 열매인 것이고 성령의 열매는 곧 사랑이라는 열매로 오래 참고, 절제, 온유, 부드러움, 선함, 희생, 기쁨, 희생, 겸손, 도움, 성실, 나눔, 배려, 용서, 긍휼, 친절, 양보, 신실 등등을 가지인 우리가 주렁주렁 맺을 때 농부되시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어려서 주일 학교에서 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가시지 않고 현재도 교회에서 성령의 충만한 삶보다는 예배 참석, 헌금, 기도, 암송, 성경 공부같은 수단을 잘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이끄는 사실들이 슬퍼집니다.

 

   하루를 살면서 본인의 부끄러움을 순간적 모면을 위해 거짓을 말하고, 유익이 안되거나 공중 도덕, 작은 약속이기에 지나쳤던 일은 마음에 걸리지도 않고, 바쁘다고 힘들어 하는 자를 외면하기도 했고, 조금 참으면 될 일을 아이나 아래 사람들에게 짜증 내기도 하였고, 일이 많다고 불평과 대충 대충 하는 등등의 사랑의 속성들과 먼 생각과 행동들이 이제는 하루를 마치는 기도할 때마다 우리의 영성(靈性)을 흔들어야 합니다. 오늘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며 용서를 빌고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지게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면서 사랑의 열매를 맺어 간다면 분명히 우리는 성령 충만한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랑의 열매를 무시하는 나의 태도에 멀리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성령 충만한 삶을 위해 나의 옛 성품과 치열한 싸움을 통해 얻어야 합니다. 이는 내게 맡기신 일이고 말씀과 기도에 매달리기만 하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말 한 마디가 작은 행동 하나가 성령의 충만한 삶인지 아닌지 척도가 되며 이런 작은 일은 하나님께서 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오늘 성령 충만한 삶을 삽시다 !

 

출처: 가나의 혼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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