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광야의 외치는 소리에 사람들은 요단강으로 나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베푼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회개의 세례는 ‘죄를 씻는 세례’라고 불리었지만 사실 회개의 세례만으로 인간의 죄가 씻어질 리 없습니다. 
그 세례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산이 낮아지고 골짜기가 돋우어지고 길이 평탄케 되어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는, 즉 마음의 길을 닦는 것이요 엄밀히 말한다면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세례‘입니다. 
하나님의 오시는 길, 구세주를 영접하는 마음의 세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도 없으시면서,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신데 요한에게 오셔서 세례를 베풀어달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은 펄쩍 뛰면서 ‘제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텐데 어찌 당신이 제게 세례를 해 달라 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이와 같이 하는 것이 옳다’ 말씀하시고 요한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고 하늘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주님은 죄인과 같이 세례를 받으심으로 죄인들과 동일하게 되셨고 죄인들과 공동운명체가 되신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 하심이었습니다.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낮은 죄인의 자리에 내려오신 순종, 죄인과 함께 세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시는 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하늘에서 기뻐하신 것이었습니다. 

죄인들은 죽음경기장에서 사망권세와 경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서운 사망권세를 죄인들이 죄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무슨 재주로 이길 수 있습니까? 
싸움조차 안 되는 일방적인 죽음의 패배일 뿐입니다. 
그 경기장에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관중석 높은 곳에 앉아서 죄인들에게 지시를 내리거나 코치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직접 그라운드로 내려오셔서 죄인들과 한 팀이 되신 것입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지방 나사렛마을, ‘그런 곳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 라고 나다나엘이 말한 척박한 시골구석에서 목수의 아들로, 또 목수로,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사시던 30년 동안 마귀와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을까요? 
귀신들은 ‘귀신같이’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히 덤비거나 손 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의 권세는 죄 있는 곳, 죄 있는 자에게만 해당이 되니까요.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그들이 어찌 다가올 수조차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예수님이 세례요한이 베푸는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죄를 회개하는 세례, 사람들이 받는 세례를 말입니다. 죄인도 아니면서 세례를 함께 받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래? 죄인들과 한 팀이라고?” 하고 마귀가 덤비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광야에서 받으신 마귀의 시험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으로가 아니라 죄인과 동일한 입장에서, 신성(神性)이 아닌 인성(人性)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이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 광야에서 40일 금식을 하셨습니다. 
그 시험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을 넘어뜨리려는 마귀와의 필사적인 한판 승부였습니다. 
그 싸움에서 주님은 인간이 이겨내기 가장 어려운 세 가지 시험, 곧 주렸을 때 돌을 떡덩이로 만들어먹는 불의를 행하는 것,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 눈 딱 감고 단 한 번 마귀에게 절함으로써 천하만국을 얻는 쉬운 길을 택하는 유혹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계명으로 물리치고 이기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이 대결에서 승리하시자 마귀는 물러가고 천사들이 와서 수종 들었습니다. 

주님이 이 시험을 이기셨기 때문에 3년 공생애기간 동안 마귀와 귀신들은 주님을 감히 대적하지 못 한 것입니다. 
주님이 이 시험을 이기셨기 때문에 주님이 가시는 곳마다 그 앞에서 모든 질병이 떠나가고 귀신들이 쫓겨나가고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이 시험을 이기셨기 때문에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선지자 이사야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한 예언을 이루실 수 있으셨고, 사망권세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도 빛이 되고 소망이 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이 시험을 이기셨기 때문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또 우리에게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누리십시오. 주님이 우리 편이 되셔서 이기셨습니다.

'이응한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이가리 영광의 몸  (0) 2018.11.11
그들은 왜 따라갔을까?  (0) 2018.10.26
질투의 하나님  (0) 2018.09.17
돌판을 깍아 만들라  (0) 2018.09.06
내가 친히 가리라  (0) 2018.08.2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