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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 흰 눈이라도 한차례 쏟아져 내릴 듯 음산하기만 하던 잿빛 하늘이 갑자기 열리고 장대 같은 겨울비가 주르륵거리며 옷깃을 적셔 흐른다. 으스스 몸도 마음도 춥다. 아, 벌써 12월인가,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마음은 급한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 속이 하얗게 정리가 잘 안 된다. “저는 부딪히고, 깨어지고, 떨어져 뒹굴면서 이곳까지 왔습니다.” 우리 독자님 중 한 분이신 G2u님께서 댓글로 남기신 말씀이 쏟아져 내리는 빗물에 섞여 내 가슴을 헤집으며 파고든다. 그렇다. 얼마나 많은 시련과 격동의 파란만장한 인생이었고, 지난 한 해였던가? 한해의 끝자락에 서서 뒤돌아보니 잘한 것보다 후회스러운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무엇을 잃어버렸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이제 남은 며칠 간이나마 제대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아야 하겠다.

하루가 한 달 되고 한 달이 한 해 되고 이렇게 달려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인생의 last destination 은 어디인가? 마지막 종착역에서마저 오늘처럼 후회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인생이 싸움이라고 누가 말했던 것도 같다. 동의가 된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싸우며 나아간다는 찬송 詩처럼 신앙의 길이란 역시 쉬운 것만은 아니지, 싸우며 나아간다는 말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싸워야 제대로 된 싸움, 그날에 주님께로부터 칭찬을 듣는 선한 청지기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오래 전, 워싱턴 주의 '콜롬비아’강에서 산란기가 된 연어(Salmon)떼들의 귀향(歸鄕)길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던 때가 생각난다. 그곳에서 놀라운 사실을 배우게 된 것을 이 한해의 끝자락인 12월에 우리 독자들과 함께 나누어 볼까 한다.

우리가 배운 대로 연어의 특성은 산란기가 되면 아무리 먼 곳에서라도 반드시 자기가 산란 된 곳, 다시 말해 연어들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곳으로 귀향하고 그곳에서 알을 낳은 후 죽는 것이 아닌가, 해마다 이런 연어(Salmon)떼의 귀향길을 구경하려고 몰려드는 수많은 관광객을 위해서 워싱턴 주 정부에서는 콜롬비아 강 상류에 건물을 지어놓고 강물 밑을 환하게 드려다 볼 수 있도록 특수 유리벽을 만들어 놓았기에 우리는 그 유리벽을 통해서 먼 태평양 바다에서부터 콜롬비아 강을 따라서 귀향을 하고 있는 연어(Salmon)떼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는 거센 물줄기가 폭포수처럼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곳을 향해 끝없이 도전하며 올라가려고 필사의 힘을 다하는 연어들을 무심코 바라보며 서 있던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얼마나 고된 귀향길을 감행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그들의 외모가 잘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쇠작살에 등이 찍혔었던지 등이 길게 찢어져 있는 놈, 아직도 상처 주위에는 검붉은 피가 엉겨붙어 있는 놈, 한쪽 눈이 터져 나간 놈, 한쪽 날개(지느러미)가 떨어져 나간 놈, 비늘이 다 벗겨져 핑크빛 살갗이 벌겋게 드러난 놈, 옆구리에 깊이 상처가 나고 살이 터져 너덜거리는 놈, 그야말로 두 눈 뜨고는 차마 볼 수가 없는 참상이었다. 글자 그대로 피맺힌 사투의 귀향길이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넓은 바다에서 이곳까지 오는 도중, 죽는 놈이 무사히 귀환하는 놈보다 더 많은 실정이라고 옆에 계신 분이 귀띔해 주신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즈음은 연어고기의 기름이 불포화 지방산으로서 (이 불포화 지방산이 동맥경화를 비롯 각종 심장병을 유발하는 나쁜 콜레스트롤 (L.D.L)수치를 떨어트려 준다고함) 전 세계인들의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연어를 잡으려는 강태공들은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들은 날카로운 낚싯대에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미끼를 끼워서 여기저기 드리워놓고 연어들이 그 미끼를 물어주기만을 바라며 가만히 숨어 있다고 한다. 또 넓고 깊은 콜롬비아 강엔 갑상어떼들도 많이 출몰한다고 한다. 이 갑상어떼들이 제일 먼저 공격을 하는 놈은 조금이라도 약하거나 병이 들어 비실거리거나 혹은 떼 중에서 이탈하는 놈이라고 한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매 한 가지가 아닐까? 갑자기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고, 성도의 귀향길이 바로 저런 것이구나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렇다, 영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귀향길 역시 녹록지도 만만하지도 않음을 알 수 있고, 우리의 귀향길에서 갑상어 때보다 더 무서운 사단으로부터 쉴새없는 공격을 받고, 곳곳에 쳐놓은 사단의 덫이 무수히 깔려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귀향(歸鄕)길에서 우리가 받고 있는 사단의 공격 무기는 무엇이며, 우리가 조심해야 할 사단의 덫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

혼합 영성의 덫을 피해야 한다

현대는, 매우 불길한 징조의 검은 그림자가 전 세계의 기독교계를 뒤덮고 있다. 이는 수십 가지의 각기 다른 신비주의적 현상, 강신술 (降神術), 각종 이적과 기사, 눈에 보이는 초자연적 현상, 그리고 천사들의 계시, 치유사역, 예언사역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신비한 형태로 포장되어 뒤덮고 있다. 잠시만 말씀에 비추어 살펴보면, 얼마나 허수룩한가 금방 알 수 있는데, 말씀이 없는 영혼, 순수 복음을 떠나 미혹의 길로 달려간다. 이런 신비적 현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매우 빠른 속도로 번져나가는 것이다.
수많은 영적 지도자들,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강신술, 때를 맞추어 각 서점마다 천사와 영들과의 접촉 내용을 담아 내기만 하면 날개돋친 듯 팔린다고 한다. 이때를 자신의 영달의 기회로 삼으려는 거짓 선지자들, 기회주의자들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인 내용이 바로 이 강신술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은 성자 아무개와 대화했다, 천사를 보았다, 금가루가 쏟아져 내린다. 등등, 이런 오컬트적 이야기들로 꾸며진 책은 순식간에 best seller가 되고, 그런 영적 세계를 마음대로 주물럭거린다는 사람은 단번에 유명 강사가 되는데, 어찌 구미가 당기지 않겠는가?

그러나 성경은,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 8:19, 20)" 하는 말씀으로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이 성경에 기록된 "율법과 증거의 말씀"에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사단이 쳐놓은 무서운 덫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물욕(物慾)의 덫을 피해야 한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넘치지 않는다. 현대는 맘몬(mammon), 재물의 신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말세지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이 물욕, 제어하지 못해서 직장에서 신임을 잃고 해고를 당하기도 하고 더 심하면 그 물질 때문에 자살까지도 하게 된다. 목회자들이라하여 이에서 제외된다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약 1:15)는 말씀은 가롯 유다에게서 그대로 이루어졌다. 물질을 탐하던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기에 이르렀다.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다.” (마 26:24)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는 결국 예수님을 팔고 받은 돈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가룟 유다의 사건은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가 물질을 탐하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 좋은 예가 된다. 오늘날 부르심을 입은 주님의 백성들, 우리 모두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예임에 틀림없다.

정욕(情慾)의 덫을 피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최대의 선물이 性인 동시에 잘못 사용하면 최대의 죄악도 바로 性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성스러운 곳이다. 침소를 더럽히지(히 13:4절 참조) 말아야 한다. 성경에 별처럼 빛나던 인물들이 이 부분에서 실패했다. 모세도 이방인이었던 구스여인을 취하여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하므로 그의 권위가 많이 실추되었다.(민 12:1). 다윗이 위대한 왕이었지만 남의 아내 밧세바, 금지된 성(性)을 취하고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그녀의 남편이자 자신의 충성스런 부하 장수, 우리아를 전쟁터로 내보내 죽이는 비행을 저지른다. 삼손은 나실인이었으나, 이방 여인이요, 기생이었던 ‘들리라’를 탐했다가 두 눈 모두 빼이고 결국 목숨마저 잃게 되었다. 지금 주위를 둘러보라. 얼마나 많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목사님들이 사단이 쳐놓은 이성의 덫에 걸려 넘어지고 쓰러지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우리는 속히 피해야 한다.

명예욕의 덫을 피해야 한다

이 명예욕은 정말 무섭다. 이 명예욕은 사단의 속성이다. 그는 하나님처럼 높아지려 하다 쫓겨난 천사라는 기록이 있다. (겔 28장 참조) 명예욕이 무서운 것은 그 속성 때문이다. 올라가려고 하는 자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며 시기와 질투하는 마음은 자신의 뼈를 썩게 한다.(잠 14:30절 참조) 동생을 시기한 가인은 최초의 살인자란 오명을 영원히 남길 수 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다. 요셉의 열한 형제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그를 애굽의 종으로 팔았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시기해서 십자가에 넘겼다.(마 27:18, 막 15:10 참조)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는가. 성경에 이런 일들을 기록한 것은 우리에게 거울로 주신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전 10:6, 11절 참조)

우리 성도들도 부지런히 말씀을 읽고 기도로 무장하지 아니하면 영적으로 약해지고 병이 들어 비실거리게 된다. 또 작은 일에 시험이 들어서 교회란 공동체를 이탈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갑상어떼보다 더 무서운 사단의 공격을 받게 되고 약한 자, 병이 들어 비실거리는 자, 공동체를 이탈한 자, 그런 사람이 제일 먼저 사단의 밥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사단은 오늘도 각종 유혹의 미끼들을 곳곳에 쳐 놓고 성도가 그 미끼를 물어주기를 바라는 음흉한 눈을 가지고 숨어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각종 이단 사설의 덫, 이성의 유혹, 재리의 유혹, 명예의 유혹, 각종 함정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그러나 그들이 쳐 놓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온갖 아름다운 미끼 뒤에는 날카롭고도 무시무시한 지옥의 쇠갈고리가 숨겨져 있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어디 그뿐이랴, 더욱 무서운 것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적들, 한 공동체 안에서 변질된 영혼들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은 이단들로부터 당하는 공격보다 더 무섭고 훨씬 더 치명적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길을 가야한다.

하찮은 미물 연어는 알을 낳고 죽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저렇게도 안간힘을 다 쏟으며 사투(desperate struggle)의 귀향길을 감행하건만…, 나는 과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설사 내가 가야할 이 길이 눈물의 길이요 피 맺힌 사투의 귀향 길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이 길을 달려 갈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으리라, 이 길의 끝에는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며 사모하던 주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시기에, 그분 앞에 서는 날, 내 눈에 눈물을 씻겨주실 그 따스한 사랑의 손길을 그리며, 나는 오늘도 내일도 선한 싸움 싸우며 이 길을 달려가리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말씀)


아멘넷, 별똥별/최송연의 칼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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