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믿음교회 변승우 목사의 주장과 이중성
합신 이단상담연구소장 박형택 목사 재반박 기고문
 
박형택
변승우 목사가 큰믿음교회 사이트와 그의 설교등 여러 곳에 필자를 매도한 글을 보았다. 이단사냥꾼이니 종교마피아니 하면서 무슨 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으로 표현한 내용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특히 그동안 한기총과 교단을 중심으로 이단연구와 조사에 헌신하면서 많은 이단들을 분별해 내는 역할을 했던 4사람 필자를 비롯하여 최삼경 목사(통합), 진용식 목사(합동), 최병규 목사(고신)뿐 아니라 한기총과 한장총등 연합기관에 대하여도 왜곡된 글을 싣고 신랄하게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마치 큰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처럼 매도한 것은 가관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미 그러한 내용을 다 스크랩해 놓고 있지만 자신의 이단성에 대한 굴레를 벗기 위하여 필살의 행동을 하는 것이라 여겨져 측은하기까지 하다.

 필자는 보다 분명하게 비성경적인 변승우 목사의 주장하는 내용 등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비판하고 그 실체를 드러내고자 한다. 실제로 그가 얼마나 이중적이며 많은 모순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고자 한다.

첫째 변승우 목사는 자신의 책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주장하면서 그의 책에도 그렇게 썼다.
    
작금에 변승우 목사는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 수정증보판을  시판하고 있는데  위 책을 홍보하는 내용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5년전 책을 쓸 때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책은 너의 책이 아니다. 나의 책이다." 
 
만일 변승우 목사가 5년 전에 낸 책이 성령의 영감으로 계시적인 것이라면 과연 수정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수정이 필요한 계시라면 결국 하나님이 계시를 잘못주신 것과 같은데 하나님을 불완전한 계시를 주신 분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요즈음 한참 교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이단 신천지 증거장막성전의 이만희씨는 자기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썼다고 하는 <요한계시록 실상>이라는 책을 여러 번 수정했다. 수정할 때마다 내용이 조금씩 바뀌었고 성경도 다르게 해석을 하였다. 그가 받았다는 계시가 하나님의 계시인지 어떻게 증명할 것이며 똑같은 하나님이 주신 계시라면 왜 성경과 모순되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단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를 빙자하여 자신을 하나님의 계시의 수여자로 자칭해 왔다. 이단 중에 자신을 하나님의 수준으로 신격화하거나 자신을 하나님의 계시의 수여자 내지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높이지 않은 이단들이 지금까지있었는가?

토마스 주남 여사가 쓴 <천국은 확실히 있다>라는 책을 하나님의 계시로 보고 그 계시의 연속으로 변승우 목사가 <지옥 가는 크리스천>을 썼다는 것은 토마스 주남과 함께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계시가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은 성경이 아직 미완성이라는 전제아래 주어진 논리로서 성경의 완전성이나 충족성을 부정하고 있는 위험한 사상이 아닐 수 없다. 

둘째, 변승우 목사는 자신을 <사도>라고 스스로 밝혔다. 과연 변승우 목사는 사도인가?   

다음의 글은 변승우 목사가 필자의 글에 대한 반론으로 보내온 내용의 일부이다.

< 반론 : 나는 자칭 사도가 아닙니다. 하이디 베이커, 밥 존스, 예수 파담, 신디 제이콥스, 빌 해몬, 질 오스틴, 슈프레자 싯홀, 마크 듀퐁, 제프 젠슨, 샨 볼츠, 라이언 와이어트, 제레미 넬슨, 마크 비써, 사무엘 리... 등을 위시해서 다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국제적인 하나님의 종들이 내가 사도로 부르심 받은 것을 알아보았고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국내외의 수많은 목사님들과 성도들 역시 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목사라고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듯이 사도가 사도라고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은혜로 되는 것이며, 더우기 천국에서는 사도나 선지자가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가장 닮은 사람이 큰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도냐 아니냐 이런 것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주님을 더 깊이 알고 주님을 사랑하고 닮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

위의 글을 보면 “변승우 목사는 사도”이다. 그런데 그가 사도됨을 인정한 사람들을 그는 거론했다. 위의 사람들이 인정하면 사도인가? 국외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국내의 어떤 목사가 그를 사도로 알아보고 인정했을까? 변승우 목사를 사도로 인정했다면 그만큼 신뢰성이 있고 권위가 있는 사람일텐데 그 이름을 밝혔으면 좋겠다.

사실 신사도개혁운동은 피터 와그너에 의해서 시작이 되었고 로저 샢이 “다가오는 사도시대”라는 책에서 바울 사도 외에 바나바, 실라, 디모데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 아볼로, 안드로니고, 심지여 여자인 유니아, 에바브로디도, 심지어 이름없는 사도까지 사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피터 와그너이나 케네스 헤긴등은 토대적인 사도와 일터사도, 수직적 사도와 수평적 사도등 다양한 사도들을 들먹이며 현재에도 사도가 있다는 사실들을 증거하려고 한다.

그러나 신사도운동가들이 주장하는 성경구절을 연구해 보면서 그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필자는 과연  오늘날도 사도가  존재하는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아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성경이 열두 사도와 바울 사도 이외에 다른 사도에 대하여 증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신사도운동가들은 “최고의 사도로서의 예수”를 주장한다. 히브리서 3:1절에 보면 “함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이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요 히브리서에 그렇게 기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주님은 실제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가? 아니다. 사실 이 말씀은 주님이 사도이고 대제사장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의미에서 사도요 인간 편에서 하나님께 사정을 아뢰는 중보자로서의 대제사장 역할을 하셨다는 의미이다.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특별하게 선택된 12사도와 같은 특별한 직분이 아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가 다 사도이면 모든 목사와 선교사가 다 사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사도는 일반적인 명사가 아니라 주님의 선택을 받은 열두 사도를 지칭하여 고유명사와 된 사람들이다.

지금도 사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에베소서 4:11-12와 에베소서 2:20을 제시한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엡2:20)

우선 에베소서 2:20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의 말씀은 교회의 터로서 이해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오늘날의 교회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사도들과 당시 선지자들의 터위에 세워졌다는 주장이다. 과연 말씀의 의미가 그러한가?  이 말씀은 당시 교회의 기초가 두 직분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말씀하고자 함이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 됨을 설명하는 설명하는 것으로서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또 에베소서 4:11의 말씀에서 성도들을 온전케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는 일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이 지금도 존재한다면 사도들과 선지자들도 계속 존재해야 하지 않느냐, 왜 사도와 선지자는 없고 목사와 교사등 다른 직분만 계속 존재하느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당시에 존재하던 초대교회에 있었던 직분을 바울사도가 나열한 것이지 직분의 계속적인 존속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고전 12:28에서 나열한 말씀은 사역의 다양성을 말씀한 것이지 그 직분이 오늘날도 계속된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은 교회의 기초로서 특별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칼빈은 그의 주석에서 에베소서 4:11절의 사도에 관하여 설명하기를 “사도들”이라는 단어를 어원을 따라 일반적으로 취급하지 않고 특별한 의미를 가진 말씀으로 이해했다. 필자는 이 해석을 전폭적으로 믿고 지지한다.

    "i take the word 'apostles' not genarally and according to its etymology, but in its peculiar signification, for those whom christ particularly selected and exalted to the highest honour. sush were the twelve, to whose nember paul was afterwards added."
          <calvin's new testament commentaries>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4. p179

그리고 같이 언급된 “선지자” 들에 대한 말씀도 고린도전서 14장에서와 같이 예언의 말씀을 해석하는 자로 이해한다.

성경 본문이 12사도외에 다른 일반적인 사도직분이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

로저 샢이 “다가오는 사도시대”라는 책에서 바울 사도 외에 바나바, 실라, 디모데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 아볼로, 안드로니고, 심지여 여자인 유니아, 에바브로디도, 심지어 이름없는 사도까지 사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도행전 13:43(두 사도), 14:1(두 사도),14:3(두 사도) 14:4-5(두 사도를), 14:14(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데살로니가전서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2:6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울사도 외에 다른 사람들이 사도인 증거라고 한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두 사도라는 단어는 원문에는 그들이(3인칭복수)라고만 나오고 사도행전 14:5에는 “사도들에게”, 14:14에는 “사도들이”로 나온다. 원문에는 둘이라는 말이 없다.

 물론 복수이기 때문에 바나바도 사도가 아니냐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사도인 바울과 함께 하기 때문에 그 일행으로서 사도라고 표현한 것이지 바나바가 사도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바나바가 사도였다면 그가 사도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증거했을 것이나 바울을 떠나 독립적으로 사도라고 호칭한 곳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살전 1:1과 2:6의 관계도 해석할 수 있다. 12사도와 바울사도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사도라고 성경은 증거한 곳이 없다. 

성경에서 사도들을 일반화하여 보냄을 받은 자는 누구든지 사도라고 말하는 흔적도 없으며 사도라고 할 때는 구별된 특별한 사람들임을 증명한다. 행 8:1, 9:27, 15:2,4등이 그 예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피터 와그너를 비롯하여 신사도운동을 하는 사람은 첫째 사도는 스스로 사도된 것을 안다는 것이며 둘째 주님에 의해서 선택되어져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 자칭 사도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사도는 선출된 것이 아니며 주님이 부르심을 입어야 하는데 이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하나님이 사도라고 인정했다는 논리를 펴는데 그 사람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며 그 사실을 객관적으로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결국 스스로 사도라 칭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셋째 변승우 목사의 독설과 비방, 그리고 모함은 성령의 사람으로서 나타나는 결과인가? 

변승우 목사의 독설을 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이미 그의 독설과 비방과 매도는 명예훼손의 수준을 넘고 있고 심지어 그의 홈페이지에는 필자의 학력까지 제보를 받았다며 조작된 내용을 게재하고 있음을 보았다. 또 합신 교단에서 20년 이상을 이단연구를 해온  필자를 다른 이대위원들과 이간을 붙이는 식의 모함을 한 내용도 있었다. 이미 누가 그러한 조작을 했는지 짐작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모함과 조작을 계속할 지 두고 볼 것이다.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거짓된 영에 속한 사람을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보여도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이단의 특징 중에 하나가 베드로후서 2장에 말씀한대로 “탐심을 인하여 자기가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利)를 삼으리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였다. 

아무리 사실을 왜곡할 지라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진실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조작이나 거짓을 가지고 사람들을 선동할지라도 언젠가는 드러날 것이다.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이듯 이단성 있는 사람의 주변에는 이단옹호자나 같은 이단성 있는 사람들이 모이게 마련이다. 또 이단옹호언론도 이러한 상황을 잘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보통이다. 유유상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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