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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성 베드로>라는 작품은 현재 16편 정도 전해집니다. 그 중 실제로 엘 그레코가 그렸다고 확신하는 작품은, 오늘 우리가 함께 감상할 톨레도의 따베라 병원에 소장된 작품을 포함하여 다섯 편 정도입니다. 이 그림은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고 예언하신 대로, ‘나는 그 사람을 모르네.’ 하고 스승에게서 돌아섰던 베드로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루카22,34-62 참조) 작가는 중세회화에서 베드로를 상징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사용한 오브제, 곧 천국의 열쇠를 허리춤에 찬 모습을 그려 넣음으로써 이 그림의 주인공이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주체가 베드로임을 나타내었습니다.

구름에 싸인 새벽 하늘을 배경으로 화면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위를 응시하며 치켜 뜬 커다란 베드로의 눈망울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또 두 손을 깍지 낀 채로 기도하는 자세와, 있는 힘껏 힘을 주어 드러난 팔과 손의 강직하고 역동적인 근육에서, 스승을 배반한 그의 죄스러움과 슬픔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베드로는 어디를 향해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일까요? 스승 예수님께서는 닭이 세 번째 울고 난 후 몸을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순간 베드로와 예수님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던 스승을 ‘지금 이 순간’ 배반한 베드로는 그 죄스러움이 극에 달했을 것입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스승에게 용서를 구하는 눈물만을 흘립니다. 온 몸에 힘을 주어 떨리는 듯한 모습을, 작가는 베드로의 옷에 푸른색과 붉은색을 대비시켜 강렬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이 순간 방향과 근원을 알 수 없는 빛이 베드로를 향해 비추며 그의 슬픔과 고통이 온몸과 마음 전체로 뻗쳐있음을 깊이 있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만난 베드로를 어느 누구도 쉽게 비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날 그 장소에 예수님의 수제자요, 첫 번째 교황이 된 베드로만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을 배반한 사람은 베드로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사는 나 자신도 매일 삶속에서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배반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만난 베드로는 2000년 전 베드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일 수 있습니다.


                                                                 지영현 신부(가톨릭미술가협회 지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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