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시대의 안식일 준수와 예배의 정신

 

<현창학 목사,  합신 구약학 교수> 

  “구약의 안식일은 해방과 자유를 누리고 기념하도록 주신 특별한 은혜의 날로 진정한 삶의 질서 회복하게 해 ”

“안식일 준수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굳게 붙드는 행위이며 사랑에 성실히 응답하는 자세로 힘써 주일 지켜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안식일은 세상의 시작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일주일의 마지막 날이었으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는 일주일의 첫째 날로 바뀌었다”고 진술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XXI. 7).

이 고백의 기초 위에 구약에 나타난 안식일의 의미와 정신을 살펴서 그것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인 주일에 적용해 보기로 하자. 그리고 구약 성경이 보여주는 안식일에 대한 명령과 이스라엘의 안식일 경험을 살핌으로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알아보기로 한다.

 

이로써 교회에서 주일성수와 예배에 대한 이해가 약해지는 이때에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일의 본래 의미를 잘 깨달아 주일을 의무나 율법적 부담이 아닌, 하나님의 은총을 맛보는 기회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능력을 덧입고 새로워지는 기회로 기쁘고 즐겁게 지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1. 안식일은 자유의 날이며 예배의 날

 

1) 먼저 십계명에 나타난 안식일 명령에 대해 살피고자 한다.

 

십계명은 언약 백성의 기본적인 삶의 원리를 말해주기 때문에 십계명을 가장 먼저 다루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십계명은 출애굽기 20:2-17과 신명기 5:6-21 두 군데에 나온다. 따라서 안식일 계명도 두 번 나오는 셈이다(출 20:8-11; 신 5:12-15).

 

출애굽기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하고 있고(20:8), 신명기는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로 되어 있다(5:12).

 

신명기는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라는 구절을 첨부하는데 이는 출애굽기의 안식일 계명을 전제하여 그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므로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두 안식일 계명은 동일한 계명이다. 신명기는 이미 알려진 출애굽기의 안식일 계명을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도 잘 지킬 것을 명령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안식일을 지키는 동기만은 두 계명이 다르게 말하고 있다. 즉, 출애굽기는 하나님이 엿새 동안 만물을 만드시고 일곱째 날에는 쉬셨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고, 신명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 땅 노예살이에서 건져내셨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한다. 동일한 신학적 실체(안식일)를 다른 시각과 논리로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2) 하나의 계명이면서 동기가 이렇게 다른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안식일은 인간에게 두 가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는 함의로 볼 수 있다. 인간은 두 가지 자유가 필요하다.

 

노동으로부터의 자유와 노예됨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창조 질서의 관점에서 인간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고, 구원론적인 관점에서 인간은 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다. 구약의 안식일은 이 두 가지 해방과 자유를 누리고 기념하도록 주신 특별한 은혜의 날인 것이다.

 

인간은 쉼이 필요한 존재이다. 안식일은 인간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날이다. 그럼으로 삶의 창조적인 능력을 부여받을 수 있다. 또한 인간은 죄로 부터의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크신 일을 기억하면서(기념하면서) 영혼이 죄에서 놓임 받고 새로워지는 날이다.

 

창조(창조적 능력)와 구원(죄를 극복함)이 안식일이라는 하나의 신학적 실체 안에 하나로 융해되어 있다. 어느 신학자의 말처럼 창조와 구원은 한 신학적 실체의 두 얼굴인 셈이다.

 

3)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신 두 가지 자유는 하나는 창조(섭리) 질서에서의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구속 질서에서의 자유이다.

 

a) 창조 질서에서의 자유란 어떤 것인가. 인간은 성취를 향해 채우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채우기만 하면 포화되어 폭발할 수 있다. 적절한 주기로 비워줘야 한다. 노동은 귀한 것이지만 적절히 쉬어가며 할 때 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일주일의 하루 안식일은 인간이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acknowledge) 청지기 고백의 날이다. 이 날을 지킴으로 해서 인간에게는 진정한 삶의 질서가 회복된다.

 

b) 구속 질서에서의 자유란 무엇인가. 인간은 비록 구원받았다 하더라도 이 땅에 사는 동안 죄악의 때(더러움)에 지속적으로 오염돼 가게 되어 있다. 늘 회개하는 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일주일에 하루는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모여 말씀을 듣고 교제하며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은총을 확인하고 고백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남은 엿새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죄를 이기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능력을 덧입을 수 있다.

 

안식일은 이처럼 두 가지 자유를 얻는 날이다. 일의 노예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어 회복과 새 창조의 능력을 맛보는 날이다.

 

4) 또한 안식일은 이러한 큰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날이었다.

 

안식일은 단순히 주신 것을 누리기만 하는 날이 아니었다. 그날은 축제일(day of feast)이었고 따라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는 날이었다. 주일도 마찬가지다. 주일은 일에서 손을 놓고 안식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모여 한편으로는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속주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날이다.

 

2. 안식일을 지키는 태도

 

1) 안식일은 기쁨과 즐거움의 날이었다.

 

구약 이스라엘의 경험과 선지자들의 설교를 보면 안식일은 무거운 짐을 지우는 날이 아니었고 기쁨과 즐거움의 날이었다. 물론 안식일의 시행에 관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태도는 단호하기 그지없다. 출애굽기 31:14, 15에 보면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죽이라고 하신다(참고: 출 35:2; 민 15:32-36).

 

그러나 이것은 안식일 준수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강조하는 엄중한 경계의 말씀에 다름 아니다. 실상 안식일을 지키는 이스라엘의 태도는 큰 기쁨이었다. 출애굽기 16:25은 안식일은 금식 등의 무거운 부담을 짊어지는 날이 아니고 “먹는” 날, 즉 즐거운 잔치일(축제일)이라고 말한다. 안식일은 인간을 위한 휴식일이요(30절),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다(29절).

 

선지자의 설교도 이것을 말한다. 이사야 58:13-14에 따르면 안식일은 매일매일 애쓰는 수고로부터 해방을 경험하는 자유의 날일 뿐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의 날이다. 안식일은 율법적으로 힘든 짐을 지우고자 하는 제도가 아니다. 인간의 삶에서 기쁨을 창조해내는 제도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자는 여호와 안에서 기쁨을 누리고 땅의 높은 곳에 다니게 되며 야곱의 기업으로 배부르게 된다.

 

2) 이사야 56:1-8, 66:23 등에 보면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회복된 관계와 이스라엘에게 임하는 큰 복락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교회에 주일성수가 약해지는 것은 혹시 지나치게 율법주의적인 열심에만 경도했던 탓은 아닐까.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벌 받는다는 식의 단순한 공식으로만 주일을 이해한다면 그것은 구약의 하나님을 가차 없는 심판만 가하시는, 인격도 없으신 기계와 같은 하나님으로 오해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주일을 잘 지키면 복을 받는다는 단순 공식도 이에 다르지 않다. 하나님을 하잘 것 없는 인간의 공적에나 의존해서 반응하시는 작고 치졸한 하나님이요, 역시 철저히 기계적이고 비인격적인 하나님으로 격하한 이해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에 의존하지 않으신다. 극히 부패하여 희망이 없는 우리를 그래야 할 이유가 전혀 없으신 데도 조건 없이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보내어 무서운 심판에서 건져주셨다.

 

3)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으로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되 무한히 사랑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안식일은 그 사랑의 표현으로 주신 제도이다. 복을 받거나 문제 해결을 하려고 주일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벌을 받을까봐 무서워 주일을 지키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한량없는 은혜와 자유를 누리며 이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 올리려고 모이는 것이 주일이다.

 

주일은 우리의 보잘 것 없는 공적에 의존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에만 의존한다. ‘받으려고’ 지키는 것이 아니고, 이미 받은 너무나 큰 것을 누리고 감사하는 것이 주일의 기쁨이다. 물론 우리 주변에 여러 가지 근심과 걱정, 해소돼야 할 문제들이 일부일 다가오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복음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문제는 사소한 것이 되며 하나님은 그들의 문제를 흔쾌히 해결해 주시는 분이시다.

 

복을 받고 못 받고 문제를 해결하고 못하고에 주로 매달리는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신 (창조와 구속의) 은혜를 먼저 기리는 신앙을 훈련할 필요가 절실하다. 주일은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향유하며 이러한 자유를 주신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분과 교제하는 큰 즐거움의 날이다.

 

3. 안식일의 ‘윤리’

 

1) 안식일은 ‘나’ 자신만 쉬는 날이 아니라 자녀, 남종과 여종, 가축이나 이방인까지도 쉬게 하는 날이었다(출 20:10; 신 5:14).

 

신명기 5:14는 출애굽기에는 없는 한 구절을 덧붙이고 있다. 그것은 “그리하여 네 남종과 여종이 너처럼 쉴 수 있도록”이라는 말이다. 여기 쓰인 “쉰다”는 말은 말 그대로 “휴식하고 안식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백성에게 안식을 명하면서 그들과 함께한 종의 안식까지 염두에 두신 하나님이시다. 아마도 애굽 땅 종되었던 곳에서 구원해 내셨으니 너도 종된 이들에게 인도적인 배려를 하라는 말씀이 아닌가 한다.

 

신명기의 안식일 계명은 자신이 받은 구원을 기억하고 누릴 뿐 아니라, 배려와 놓임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같은 구원과 사랑을 베풀라고 권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시는 은총을 받은 자들은 전에는 안 보이던, 자신들 곁에서 무거운 고통과 수고로 허덕이며 고단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부여받은 자들이다.

 

2) 그리스도인의 구속은 혼자만의 차원의 것이 아니다. 도움과 배려가 필요한 이들에게도 구원과 안식의 은총이 함께 돌아가게 하는 그러한 구속이다.

 

현대인들은 ‘혼자’에 지나치게 훈련되고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더더욱 병들고 시달린다. 성경의 신앙은 ‘같이’, ‘함께’의 교제이며 윤리이다. 구약은 이스라엘을 하나의 공동체로 부르고 있고, 신약도 교회를 하나의 몸으로 부르며 “함께 지어져 간다”고(엡 2:22) 말한다. ‘혼자’를 버리고 ‘같이’를 찾는 것만으로도 현대인에게 큰 회복과 치유가 올 것이다.

 

안식일은 부패의 결과로 나온 반역적인 ‘혼자’를 버리고 성경적인, 순종과 회복의 ‘같이’를 찾는 날이다.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행위에만 그치는 날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구원에 감사하여 “서로 받으며”(롬 15:7), 놓임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랑 실천의 날이기도 하다.

 

주일을 통하여 자유를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사랑을 연습하는 것이 주일성수의 참 뜻이라 하겠다.

 

4. 안식일의 근원적이며 신학적인 의미

 

이 점은 앞에 논의한 것들보다 선행하며 가장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안식일은 언약의 징표(sign)였다(출 31:13, 17; 겔 20:12, 20). 이 점은 구약의 안식일에 대한 명령, 이스라엘의 안식일 경험, 선지자들의 안식일 설교 등 안식일에 대한 제반 사항들의 기본적인 전제가 된다.

 

1) 구약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가장 본질적인 행위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출애굽기 31:16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심지어 “영원한 언약”이라고까지 말한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에 성실한가 그렇지 못한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시며 인도해 가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향한 고백 행위요, 그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제반 힘을 공급받는 통로였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는 일이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능력을 상실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지도자들은 안식일 준수를 강력한 마로 권고했고(출 31:14, 15) 그것이 느슨해졌을 떼는 그것을 회복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느 13:15-22). 안식일 준수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굳게 붙드는” 행위였다(사 56:4, 6).

 

2)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 특히 십자가에 보혈을 흘려 세워주신 새 언약의 백성이다(눅 22:20).

 

새언약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도록”(롬 8:39)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 강력히 접붙인다.

우리가 언약 백성이라면 안식일을 기억해 지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은혜와 사랑을 안다면 그 사랑에 성실히 응답하는 자세로 주일을 지켜야 할 것이다.

 

기독교개혁신보/개혁주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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