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서 만난 신붓감에게 "어머니가 치매" 말하자
김제=남정미 기자
입력 : 2013.01.09 03:00 | 수정 : 2013.01.09 07:01

[4] 결혼이주여성 정단아씨네
"우리 집 행복 비결은 서로의 부족함 채워주는 것"

아내 "치매 시어머니 모시겠다" - 요양원 있던 시어머니 데려와
대·소변 받으며 2년간 모셔… 마지막 가는 길 "고맙다 내 딸"
남편 "한글 깨치게 돕겠다" - 어려운 발음은 테이프에 녹음
아내는 1000번 들으며 공부, 대학원 졸업해 원어민 교사 돼
아이들 "우리 가족이 최고" - 엄마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전기장판 데워놓고 기다려

전북 김제시에 사는 정선종(59)씨는 레미콘 운전사다. 아내 정단아(38)씨는 2004년 필리핀에서 시집왔다. 다문화가정이다. 한 달에 약 180만원 벌어 네 식구가 함께 산다. 그의 집엔 보일러가 없다.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이면 네 식구가 전기장판 위에서 전기 히터를 틀어놓고 함께 잔다. 겨울이면 외풍이 심해져, 비닐을 집 밖에 덧대어 놓았다.

이 초라한 가정의 안방 벽면엔 명화(名畵)와 사진들로 가득하다. 작가는 아이들과 정씨의 아내. 아내가 그린 그림 옆엔 '여보 사랑해요'라 적혀 있다. 방 안에 걸린 가족사진은 6개. 첫 번째 가족사진은 큰딸 다정(8)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찍은 것이다. 이 사진을 보고 둘째인 아들 다산(6)이가 "왜 나는 없느냐"고 해서 새로운 사진을 찍었다. 아내 단아씨가 대학원을 졸업할 때, 초등학교 원어민 선생님으로 취직했을 때도 '가족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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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전체보기 “보일러 없는 단칸방… 그래도 가족 있어 든든”… 지난달 21일, 전북 김제시 정단아(오른쪽 위)씨 집 안방 전기장판 위에 네 식구가 모여 앉았다. 단아씨는 아들 다산이가 엄마·아빠·누나의 모습을 본떠 만든 찰흙 모형을 들고서 “이게 우리 가족 보물 1호”라며 웃었다. 뒤쪽으로는 단아씨네 가족사진 6장이 벽면 가득 걸려 있다. /김영근 기자
정씨는 "남들은 집도 좁은데 무슨 사진을 이렇게 많이 걸어놓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내겐 든든한 사진"이라며 "남들 보기에 우리 가족이 어딘가 모자라 보이지만, 우리는 서로 모자란 걸 채우면서 산다"고 말했다.

정씨 가족의 행복 원칙은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서로 도와주는 것'이다. 결혼 전, 정씨는 나이 많고 치매 걸린 어머니까지 모신 가난한 레미콘 운전사였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논과 집을 모두 날렸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치매 걸린 노모를 홀로 모시며 빚을 갚다 보니 나이 쉰이 됐다. '나이', '가난' 그리고 '치매 걸린 어머니'는 정씨에게 극복하기 힘든 약점이었다.

그런 정씨를 위로한 건 단아씨였다. 정씨는 필리핀 아내를 둔 친구와 함께 필리핀에 갔다가 단아씨를 만났다. 정씨는 단아씨에게 "현재 치매 걸린 어머니를 요양 병원에 보낸 상태다"라고 털어놨다. 싫은 기색을 비칠 줄 알았던 단아씨는 오히려 "난 대가족 사이에서 자라 어른을 잘 모실 수 있으니 어머니를 함께 모시자"고 말했다. 가난하단 말엔 "내가 영어를 잘하니 한국어를 배우면 영어 선생님으로 함께 일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해 봄, 부부는 결혼해서 한국에 왔다.

단아씨가 한국에 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요양병원에서 모셔온 것이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찾겠다'며 온 동네를 맨발로 돌아다닐 때도 있었다. 거동을 전혀 하지 못할 정도로 악화된 뒤엔 단아씨가 대·소변까지 모두 받아냈다. 그래도 단아씨는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시어머니가 먹고 싶단 음식은 동네 사람에게 만드는 법을 물어 만들었다. 몸을 움직이기 힘든 시어머니에게 혹시라도 욕창이라도 생길까, 더운 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부채질을 했다. 그러자 시어머니도 단아씨를 '우리 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7년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시어머니는 단아씨에게 "고맙다 내 딸"이란 말을 남겼다.

단아씨가 가지고 있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란 약점은 남편 정씨가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줬다. 정씨는 "한번은 아내에게 '이 바보야'라고 했는데,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내게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화를 내더라"고 했다. '바보'를 굉장히 심한 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단아씨는 "밤이면 고향이 그리워서 울었다"고 말했다.

남편 정씨는 단아씨를 김제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데려가 한글을 배우도록 권했다. 단아씨가 어려워하는 발음은 직접 녹음을 해 들려줬다. 단아씨는 그 녹음테이프를 많게는 1000번까지 들으면서 한글을 깨쳤다.

한글을 배우면서 공부에 재미를 붙인 아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을 도운 것도 남편 정씨다. 정씨는 "(영어를 잘하는) 능력을 살려보라"고 전주대 영어교육과 석사과정 진학을 적극 추천했다. 단아씨는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할 정도로 성적이 뛰어났다. 단아씨는 졸업 후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선생님이 됐다.

이후 단아씨의 가장 든든한 지원자는 아이들이다. 남매는 혹시라도 단아씨가 집에 늦게 오는 날이면 전기장판 코드를 꽂아 집을 따뜻하게 데워 놓는다. 엄마가 수업을 끝내고 오면 아이들이 단아씨의 팔·다리도 주물러준다. "우리 가족은 수퍼 가족이야." 정씨 부부의 아이들이 동네 사람에게 하는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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