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서 復興으로 부활 할 때

고난주간이라 나는 이번 한 주간은 특히 말씀과 기도 중심의 삶을 살기로 하였다. 그런 실천 사항가운데 하나는 서울의 그 교회, 특새 말씀을 경청하는 일이다. 오늘 아침도 나의 스케줄대로 한 설교자의 설교를 경청하게 되었다. 헌데 그는 설교자는 아니고 한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인 분이셨다. 그의 설교는 일종의 간증(주의 은혜로 소아마비 장애자가 대학교수로 서다)이었고, 또한 목발을 짚은 것을 보아 장애우가 분명하였다. 그를 통해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찾는 중에 어느새 나는 그의 간증에 점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교회의 본래적 모습, 영적 경건의 실체를 보는 듯하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 필자는 지금도 공부하면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부흥운동사”이다. 물론 부흥을 운동과 연관 짓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지만, 부흥이 한 시대에 지속적으로 나타났던 것을 염두에 두고 보통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부흥을 일으키셨다. 사도시대에는 베드로, 요한 등을 통해 성령의 부흥이 임하였으며, 초대교회 시대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순교자 이그나티우스를 비롯하여 암브로즈, 어거스틴 등을 통해 교회가 부흥되었다. 또한 중세시대의 부흥은 그레고리1세, 베네딕트 등이 그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레고리1세는 교황권의 기초를 확립한 인물이었지만, 교회의 부흥을 주도하며 교회를 개혁하고, 빈민들을 구제하며, 영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도 하였다. 종교개혁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이 마틴 루터를 비롯한 울리히 쯔빙글리, 존 칼빈이 그 주역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근세시대에는 18세기 영국의 존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가 산업혁명으로 침체된 교회에 영적 활력을 주었고, 미국에서는 조나단 에드워즈, 길버트 텐넨트 등을 통하여 잠자고 있었던 미국교회를 흔들어 깨었다. 그 이후에 미국은 찰스 피니를 비롯하여 드와이트 무디에 이르기까지 부흥을 통해 교회는 다시 침체에서 회복으로, 그리고 세계선교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짧은 지면에 세계부흥의 역사를 다 포함 시킬 수는 없다. 다만 부흥의 발로에 대해서 잠시 나누고자 한다.

필자가 그동안 부흥에 관해 공부하며 얻은 결론 가운데 하나가 있다. 부흥이 일어나는 때는 여러 원인이 있는데, 즉 1)교회가 영적 침체되었을 때 2)교회가 핍박가운데 처하기 전에 3)교회가 복음을 전해야 할 때 등. 하나님은 교회를 너무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가 침체되었을 때, 성령님은 슬퍼하시고 어찌 하든지 그 침체가운데서 다시 소생(Revival)케 되기 위한 기회를 만드신다. 그러나 인간은 그 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단지 주님 앞에 기도로 나갈 뿐이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한 사람의 부흥으로 교회가 전혀 새롭게 부흥되는 것을 역사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그 몇 가지 예를 들면, 18세기 초 미국은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교회는 이전의 경건이 사라졌고, 교회에서는 이성주의적인 설교가 득세하였으며, 젊은이들은 술과 도박 등으로 방탕한 삶을 살아가며, 교인들은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았다. 그러한 때에 매사추세츠, 노샘톤의 한 교회에 조나단 에드워즈가 외조부님의 뒤를 이어 목회자로 부임 하게 되었고, 그가 목회하는 동안, 1734년에 그 교회와 관련된 몇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두 젊은이가 아무 이유 없이 죽었고, 다른 하나는 그 지역의 점술가였던 한 여인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교회는 영적으로 긴장감 가운데 있었으며, 그리고 에드워즈는 주일 메시지를 복음(칭의론)에 관해 설교하였을 때, 그 말씀을 들은 청중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면서 부흥이 일어났다. 이 부흥은 인근지역으로 확대되었고, 여러 교회들에 영향을 미쳐 교회가 새로워지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한창 일 때 교회는 영적 감각이 사라졌고, 교회 안에는 이신론자들로 가득 찼었다. 더 이상 교회를 통해서는 복음 메시지를 들을 수 없었고, 이때 혜성같이 나타난 인물이 존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였다. 이 둘은 옥스퍼드대학에 절친한 친구였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옥외집회를 통해 말씀을 증거 하였다. 특히 휫필드는 설교의 거장으로서 그의 설교를 5분만 들으면 듣는 이들은 누구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경험을 하기도 하였다.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인해 사회가 가장 어두울 때, 노숙자들이 생기고, 가정이 허물어져 가고, 돈이 없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들로 인해 사회가 혼란 할 때, 그들은 병원사역, 감옥사역, 학교사역 등을 통해 사회를 개혁해 나가기도 하였다.

한국의 경우, 1885년에 정식 선교사들이 한국에 입국하였다. 그러나 선교의 큰 실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원산에 거주하였던 미남감리회 로버트 하디 선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본래 의사였지만, 후에 복음 선교사가 되어 원산 지역을 중심으로 사역을 하였지만, 자신의 교만, 자만 등으로 인해 한국인을 무시하고 외면했을 때, 그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처했다. 이때 1900년 중국에서 일어난 의화단 사건으로 한국에 피난 온 두 여선교사를 초청하여 말씀을 공부하고, 간증을 들었을 때,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통회 자복하는 회개를 하였고, 그때 부흥을 경험하였다. 이때가 1903년 8월이었다. 그리고 이 부흥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1907년 1월 평양 대부흥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소돔성 같은 평양이 거룩한 聖市로 변화되었다.

우리는 이 몇 가지 사례를 통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교회가 모이기 시작했다는 것. 조나단 에드워즈가 목회하던 노샘톤 교회에서 교회 안에 영적인 조짐이 일어났을 때, 교인들은 모여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영국에서 웨슬리와 휫필드가 말씀을 증거 할 때 사람들은 빈 공터에 모여 그 말씀을 사모하여 경청하였다. 또한, 1903년부터 비롯된 한국의 부흥도 교회는 모이기 시작하였고, 말씀을 사모하며 기도에 진력하기 시작하였던 것. 평양의 경우, 초기 선교사들은 무디를 통한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이기에 그 모임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였으며, 그러나 진정한 성령의 부으심은 하나님의 주권가운데 일어났던 것이다. 이때 길선주 장로를 사용하신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영적으로 깊은 나락에 떨어졌다. 강단의 말씀 권위가 사라졌고, 세상은 교회를 외면하고, 그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교인들은 더 이상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서로를 향해 정죄하며 비판적이다. 그리고 도덕적, 윤리적인 책임을 물어 특정한 사람을 정죄하며, 그가 퇴임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외친다. 물론 그는 자신의 잘못에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그렇다고 우린 그만 탓할 필요가 없다. 우리 모두가 공범들인데 말이다. 이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리라.

하나님은 당신의 때에 교회의 부흥을 위해 한 사람을 세우신다. 마치 베드로를 세우듯 주님의 종을 세울 것이다. 때로는 루터와 같은 개혁적 성향을 가진 이를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씀중심의 설교자를 세워 부흥을 도모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실패자였던 하디 같은 종을 세워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자존심, 자만, 교만한 마음을 깨트려 교회가 말씀으로, 복음으로 회복하는데 쓰임을 받게 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아무도 모른다. 오직 아버지 한 분 밖에는 알 수 없도다.

필자는 오늘 한 무명의 간증자를 통해서 그 희망을 보게 되었다. 그가 간증 후에 울먹이면서 마지막 기도했던 내용은 지금도 내 귀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오, 주님 이 교회가 회개하고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 힘없는 자들이 가득 차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라고. 이는 부흥의 결과이다. 진정한 교회의 부흥이 일어나면 누굴 향해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대신에 서로 용서하며 용납하며 사랑하며, 그리고 자신을 개혁하며, 더 나아가 이 사회를 개혁하는데 까지 나가게 된다. 지금은 고난에서 부흥으로 부활 할 때이다. 바로 그 교회가, 아니 우리교회가 그런 교회되길 이 고난주간에 간절히 기도해 본다.

“주님, 당신의 주권으로 한 명의 지도자가, 한 교회가 회개하고 주님 앞에 서게 하소서!”

13 3 28(목) 도현/조경현

출처: USA아멘넷 독자공간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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