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의 복음을 회복해야한다/박영돈교수

출처: http://blog.daum.net/cross21c/8512302

 

 

 

성화의 복음을 회복해야한다.

박영돈교수(고려신학대학원)

  

1. 칭의 뿐만 아니라 성화의 전 과정은 오직 믿음의 바탕 위에서 진행된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될 뿐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다. 이 말은 개신교 신자들에게 생소하게 들릴지 모른다. 오직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다면 성화를 위한 인간의 노력과 행함이 필요없다는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이 말은 성화과정에서 인간의 행함이 ‘오직 믿음’이라는 채널을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여기서 ‘오직 믿음’은 인간의 역할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진정으로 가능하게 하는 근거를 밝히고 있다. 이는 오직 십자가만이 칭의의 공로인 것같이 또한 성화의 근거임을 주목하게 한다. 우리는 오직 십자가를 바라보는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함을 얻은 것 같이, 오직 십자가의 효력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성화를 이루어간다. 그것은 십자가에서부터 죄를 이기는 능력, 거룩하게 사는 효력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3. 성화의 설교도 예수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예수가 성화의 근원이며, 능력이자 목표이기 때문이다. 신자의 성화는 신자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는 것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서부터 신자가 죄에 대해 단번에 죽고 새생명 가운데 다시 살게 하는 효력이 유출된다.

 

4. 어떻게 매일의 삶 속에서 죄의 세력을 극복하고 옛사람의 욕심과 구습에서 자유할 수 있는가? 죄에서의 자유, 우리의 옛사람을 죽이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몸부림쳐도 우리의 노력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을 주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어주셨다. 우리는 주님과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이루어주신 죄로부터의 자유와 승리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 삶 속에서 죄를 이기는 유일한 비결은 예수를 바라보는 믿음이다.

 

5. 우리의 죄와 옛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보혈의 권세와 부활의 능력밖에 없기에 우리는 성화과정에서도 계속 예수를 바라보아야 하며, 예수와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참여하게 된 결정적인 성화의 은혜를 의존해야 한다. 그와 함께 이렇게 변화된 사람으로 살도록 인도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의존해야 한다. 성령은 예수 안에서 일어난 결정적인 성화의 사실을 신자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신다. 성령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서부터 유출되는 거룩하게 하는 효능을 우리 안에 적용하여 우리가 실제 죄에서 자유한 삶을 살게 하신다. 따라서 성화의 명령을 따라 사는 것은 우리 자신의 힘과 노력에만 맡겨진 사안이 아니라 오직 이 예수의 은혜에 대한 믿음과 성령의 은혜에 대한 의존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성화 과정에서의 신자의 책임은 반드시 이 은혜의 토대 위에서 강조되어야 한다.

 

6. 하나님의 은혜는 신자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자가 그 책임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존하는 믿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적주의 신앙이 아니라 은혜를 힘입어 능동적으로 책임을 수행해가는 역동적인 신앙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자의 노력은 ‘은혜를 향한’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인한’ 행위이다. 은혜를 얻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은혜의 산물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조건이 아니라 그 은혜의 결과이며 열매인 것이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신자의 책임보다 앞선다. 그리하여 신자의 노력을 헛된 수고가 아니라 풍성한 열매를 산출하는 생산적인 수고가 되게 한다.    

 

7. 한국교회가 그동안 칭의 교리를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에 교인들의 윤리적인 수준을 저하시켰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사실 한국교회의 문제는 칭의를 너무 많이 전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칭의를 바르게 전하지 못한 데 있다. 칭의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과 이해는 항상 성화를 증진시킨다. 그것은 칭의가 성화의 참된 바탕과 원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성화의 진전은 오직 칭의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다. 성화가 진행됨에 따라 칭의의 단계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화의 전 과정은 칭의에 의존한다. 신자가 아무리 높은 거룩의 경지에 이르렀을지라도 칭의의 바탕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바로 설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칭의는 즉각적인 동시에 계속적이다. 이는 성화와 같이 칭의가 점진적으로 완전하여진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신자는 예수 믿음으로 말미암아 즉각적으로 완전한 칭의의 은혜를 받는다. 그러나 칭의는 구원의 문으로 진입하는 은혜만이 아니라 신자의 삶 전 과정을 힘차게 떠받치고 있는 영원한 은혜의 반석이다.

 

8. 신앙의 여정에서 칭의의 진리는 우리가 항상 불변하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거듭 확인시켜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또는 다시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부단히 애쓰고 수고해야 하는 율법적 강박에서 자유하게 한다. 비록 우리가 죄 속에 빠져 영적으로 방황할지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변함이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한 죄값을 자신이 스스로 치르고 그것을 보상하려는 헛된 수고를 그치고 두 손 들고 나아가 이 사랑을 다시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신다. 이러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칭의의 메시지는 우리를 타락에서 돌이키는 가장 효과적인 은혜의 방편이다.  

 

9. 교회역사 속에 항상 그래 왔듯이, 칭의의 교리는 자칫 잘못하면 남용되기 쉬운 위험한 교리가 될 수 있다. 성령의 은혜 없이 메마른 이론으로만 칭의의 진리를 전할 때 그런 메시지는 죄인의 심령을 변화시키기보다 오히려 죄악을 심상히 여기게 하는 교리로 오용되기 쉽다. 개신교가 말씀과 성령의 긴밀한 연결성에 대한 중대한 통찰에 있어 소홀함에 빠지면서 개신교 강단이 말씀의 불씨를 지피는 성령의 불길을 잃고 이론적으로 바른 교리에만 매달리는 주지주의적이고 교조주의적 경향으로 치우칠 때가 많았다. 그 결과 오늘날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은혜에 대한 건전한 교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교리가 가리키는 실체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부요함을 삶 속에서 체험하며 누리지 못하고 있다. 곧 은혜의 교리가 ‘다 머리 속에만’ 갇혀있고, 우리의 전 인격과 삶을 관통하여 우리의 전 존재를 바꾸어놓는 능력 있는 말씀으로 역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10. 복음사역의 두 축은 십자가의 도와 성령이다. 십자가를 통해 밝히 계시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대한 설득력 있고 논리적인 진술과 함께 이 십자가의 도가 증거하는 사랑과 은혜의 실체를 죄인의 심령에 체험적으로 와 닿게 하는 성령의 사역이 한데 어우러질 때 효과적인 복음 사역을 낳는다. 십자가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을 성령의 감동으로 전파할 때 죄인은 자신의 죄임 됨을 깊이 자각하고 그런 죄인을 사유하고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압도된다. 이 큰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 마음 속에 부은 바 될 때 죄인들은 복음에 설복된다. 이 하나님의 사랑만이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는 비결이며 그들의 강퍅한 마음을 녹이는 능력이다.

 

11. 우리는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계속 살고 있다. 그런데 왜 이 사랑이 머릿속으로만 이해되고 가슴에 와 닿지 않는가? 어떻게 칭의 교리가 말하는 놀라운 사랑의 실체가 우리 마음에 체험되며 우리 삶을 움직이는 추진력으로 작용될 수 있는가? 그것은 성령의 사역으로 가능하다. 성령은 사랑의 영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영혼 안에 깊숙이 스며들게 하여 우리의 전 존재와 인격이 이 사랑에 흠뻑 젖게 한다. 그래서 사도는 바울 사도는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고 하였다(롬5:5).

 

12. 하나님의 사랑만큼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없다. 두려움이나 죄책감은 결코 이 사랑만큼 강한 힘을 두려움이나 죄책감은 결코 이 사랑만큼 강한 힘이나 순수한 동기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를 얽어매는 율법주의의 사슬을 깨뜨릴 수 있는 강력이며, 범죄를 불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비결이며, 우리를 죄책감과 두려움에서 해방하여 진정한 거룩을 추구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13. 그러므로 율법주의의 위험을 극복하는 가장 강력한 대책은 은혜의 교리와 성령 충만의 은혜를 잘 접목시킨 설교사역을 통해 신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에 강권함을 받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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