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연인 오드리 헵번이 실제론 마사 스튜어트 뺨치는 주부 9단이라면?


	[여성조선] 내 어머니, 오드리 헵번
둘째 아들 루카 도티가 털어놓는 어머니 오드리 헵번의 비하인드 스토리. 

지난 8월 15일, 배우 오드리 헵번의 둘째 아들 루카 도티가 한국을 찾았다. 서거 20주년을 맞아 역삼동에 오픈한 ‘오드리 헵번 카페’에는 고인의 흔적이 다분했다. 생전 그녀가 아끼던 찻잔 세트부터 즐겨 만들곤 했다는 브라우니 레시피까지, 그동안 몰랐던 오드리 헵번의 이모저모를 만날 수 있다.

‘강철 나비(Iron Butterfly)’ 같았던 어머니
“제 기억 속의 어머니는 화려한 스타가 아닌 평범한 어머니였어요.”
오드리 헵번의 각진 턱에 올라간 입꼬리를 쏙 빼닮은 루카 도티가 입을 열었다. 오드리 헵번이 두 번째 남편이자 이탈리아 심리학자인 안드레아 도티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14년 만에 파경을 맞았고 이를 계기로 두 번 다시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자식들 앞에서만큼은 따뜻한 어머니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어머니는 매우 전통적인 어머니 상에 해당하는 분이었어요.
다른 평범한 어머니들과 다르지 않았죠. 그땐 몰랐어요. 어머니가 자식들을 위해 일을 포기한 게 얼마나 큰 결심이었는지요. 아빠가 된 지금에야 그 맘을 조금 알 것 같아요.”

둘째 아들인 루카 도티가 태어날 무렵, 오드리 헵번은 화려한 배우의 삶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 첫 번째 결혼의 실패 후 가정에 충실하고자 했던 그녀는 1967년 작 <언제나 둘이서> 이후 10년간 연기를 멀리했다. 이후 서너 편의 영화에 얼굴을 비췄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오드리 헵번의 대표작은 1950~60년대의 것이 전부.


	[여성조선] 내 어머니, 오드리 헵번
“어머니는 ‘강철 나비’ 같은 분이었어요. 강철 나비는 ‘외유내강’을 뜻하는 흔한 표현 중 하나죠. 겉으론 우아하고 가녀렸지만 속은 누구보다 강인한 분이었거든요. 영화감독이자 어머니의 절친한 친구인 피터 보그다노비치도 종종 (어머니를) 강철 나비라 부르곤 했어요.”

10살 때부터 발레를 배운 오드리 헵번은 최고의 무용수를 꿈꿨을 만큼 발레를 사랑했다. 그런 그녀가 외유내강의 전형이라니 다소 의외다.

“아마 발레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발레 역시 겉으론 우아해 보이지만 백조가 수면 아래서 열심히 발길질하듯 고된 훈련으로 자신을 단련하니까요.”

그런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가장 강조한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존중(respect)이에요. 특히 나이 든 분들, 어린아이들, 동식물과 자연까지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늘 말씀하셨죠. 아마 할머니가 어머니를 그렇게 교육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동물에 대한 사랑도 빼놓을 수 없다.

“집에 항상 2~5마리의 개들이 있었어요. 주로 코커 스패니얼이었죠. 특히 어머니가 좋아한 잭 러셀 테리어라는 종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도 했어요.”
오드리 헵번이 화보 촬영장에 종종 데리고 온 미스터 페이머스(Mr. famous)가 바로 그 잭 러셀 테리어다.

“고양이도 키웠어요. 대부분이 길고양이였지만요. 지금은 고양이 3마리, 개 1마리만 키우고 있답니다. 아, 새와 거북이도 있네요.”(웃음)

가장 그리운 시간은 아침식사 시간
루카 도티가 매장의 브라우니를 가리키며 “어머니가 가장 잘 만든 음식 중 하나”라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오드리 헵번 카페에서 판매되는 브라우니는 오드리 헵번의 레시피를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한 것이다.

“어머니는 요리를 잘했어요. 특히 브라우니, 마들렌 만드는 솜씨는 따라올 사람이 없었죠. 때로는 정원에서 키운 과일이나 채소로 마멀레이드 잼 같은 것도 만들어주었어요.”

<세계의 정원>이라는 다큐멘터리 해설에 참여하는 등 정원에 조예가 깊었던 오드리 헵번. 그런 그녀의 생가를 옮겨놓은 듯 카페 한쪽은 벽면 전체가 생화로 꾸며져 있다.
“어머니는 버섯이나 살구 등 제철 과일을 특히 좋아했어요. 지금이야 제철이 아니더라도 식재료를 구하기 쉽지만, 그땐 계절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려야 했거든요.”

할리우드에서는 화려한 지방시 드레스에 진주 목걸이를 드리운 아름다운 뮤즈였지만, 가정에서만큼은 마사 스튜어트 못지않은 ‘살림의 여왕’이었던 그녀. 세월이 지날수록 요리에 대한 일가견도 높아갔다고.

“평소에는 주로 생선이나 닭고기 요리를 해주었어요. 젊었을 땐 화려하고 멋들어진 요리를 선호했다면, 나이가 들수록 간단하고 건강에 좋은 가정식을 주로 만들었죠.”
그런 그녀가 가장 좋아한 요리는 스파게티다. 이탈리아 인의 아내로 산 14년 동안 스파게티는 어쩌면 우리네 쌀밥처럼 필수불가결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파스타 만드는 걸 아주 좋아했어요. ‘파스타 정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웃음) 심지어 다른 나라에 여행갈 때도 올리브오일과 스파게티 면을 챙겨갔으니까요. 특히 포모도로와 올리브오일 파스타를 잘 만들었어요.”

그녀가 이토록 요리를 사랑하고 정원을 가꾸는 데 공을 들였던 데는 어린 시절의 영향도 크다. 10살 무렵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오드리 헵번은 못 먹고 못 입은 그 시절을 절대 잊지 않았다.

“어머니는 ‘인간이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꽃 자체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무의식중에 열매를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혹독한 겨울을 견딘 후 봄에 열리는 열매 말이에요. 마치 전쟁이라는 고된 시기를 딛고 살아남는 것과 같은 이치로 꽃을 바라본 것 같아요.”

나치 치하에서 유럽을 전전한 그녀는 전쟁 때문에 학업과 발레를 포기했다. 무언가를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던 것은 물론이다.

“내 정원에서 내가 먹고 싶은 걸 언제든 따먹을 수 있는 자유와 여유, 이것의 소중함을 일찍이 깨달았던 것 같아요. 저희에게도 늘 그 소중함을 일깨워주었고요.”

‘아침형 인간’이었던 오드리 헵번이 가족과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아침식사 시간이다. 루카 도티는 돌이켜보면 이 시간이 가장 그립다고 말한다.

“인생, 사랑, 고민, 심지어 전쟁 이야기까지 우리 가족의 모든 대화는 주로 아침식사 시간에 이루어졌어요. 제가 기억하는 가장 소중한 추억이죠.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로 돌아가 어머니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배움의 중요성 봉사하는 삶
오드리 헵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말년의 삶이다. 봉사로 점철된 인생의 후반기는 또 다른 의미에서 그녀가 가장 빛났던 시절이다.

1988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그녀는 굶주린 전 세계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로 인해 기부 문화에 붐이 일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은 무엇이었을까.

“네가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사실을 발견할 거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라는 것을 말이야.”

“‘나 자신을 돕는 손’으로 이웃을 돌보라는 말씀이었어요. 그런 사람으로 자신을 가꾼 뒤 ‘다른 사람을 돕는 손’으로 이웃을 돌보라는 뜻이었죠.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바란 건 그거 하나였어요.”

전 세계인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아온 오드리 헵번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남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일(봉사)했어요. 그런 활동을 통해 미래의 자식들에게 더 나은 삶을 물려주고 싶어 했고요. 더 축복받은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고, 그걸 몸소 실천한 분입니다.”

다시 보는 오드리 헵번의 대표작

	[여성조선] 내 어머니, 오드리 헵번
<로마의 휴일>(1953) 유럽의 평범한 단역 배우 오드리 헵번을 세계적인 스타로 탈바꿈시킨 히트작. 그 당시 스물넷이었던 그녀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다.

<사브리나>(1954) 부잣집 도련님과 가난한 집 딸이 신분 차이를 딛고 사랑을 이룬다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 이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이 입은 사브리나 팬츠와 플랫슈즈는 전 세계에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지방시의 대표 뮤즈로 떠오른다.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택시에서 내린 오드리 헵번이 뉴욕 시내 티파니 진열장을 들여다보던 그 유명한 장면이 담긴 영화. 극 중 헵번이 입고 나온 지방시의 블랙 칵테일 드레스는 2006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8억5천만 원에 낙찰됐다.

<마이 페어 레이디>(1964) 극작가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영화. 영국의 계급제도를 다룬 희극으로, 길에서 꽃을 파는 남루한 옷차림의 여자가 6개월에 걸친 연습 끝에 우아하고 세련된 귀부인으로 환골탈태하는 과정을 그렸다. 극 중 헵번이 착용한 각양각색의 모자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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