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대장쟁이 ㆍ 2013-11-12 (화) 13:41 IP: 173.xxx.141 ㆍ조회: 10      

열왕기하 20장 1절을 보니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너의 신변을 정리하라, 너는 죽을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앗수르는 쳐들어오고 히스기야는 아직 한창 때인 39세입니다.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나를 기억하소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행한 것을 기억하여 주소서.’ 기도하며 심히 통곡합니다.  

제가 젊은 시절 좋아했던 칸초네 ‘물망초’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날 잊지 말아라.” 하고 간절하게 부탁하는 가사입니다.
어쩌면 구원은 ‘물망초’ 가사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잊지 아니하시고 기억하시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그 마음속에 나를 기억하신다면 사랑이 한이 없으신 그 하나님은 내가 죄악에 빠져 영원히 죽는 것을 견디지 못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편강도는 주님께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하고 부탁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병석에서 벽을 향하고 돌아누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히스기야가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앗수르 왕 산헤립의 편지를 펴놓고 한 기도와 죽을병에 걸려 벽을 향하고 통곡하며 드린 기도는 오늘날에도 간절한 기도, 응답 받는 기도의 모본으로 많이 인용됩니다.
이사야 38장 14절을 보면 히스기야는 ‘나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나의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간장을 에는 것 같은 너무나도 간절하고 애처로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아기가 엄마를 쳐다보며 애처롭게 우는 것 같아서 하나님이 도저히 안 들어주시고는 못 배기실 것 같은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그 뜻과 계획을 바꾸시는 이야기도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의 이 대목을 읽으며 ‘아, 응답 받으려면 나도 이렇게 기도해야겠구나.’ 하고 히스기야의 기도만을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뜻, 오늘날 이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더 중요한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왜 히스기야 같은 믿음의 사람을 이렇게 젊은 나이에 죽을병 드는 것을 허락하시고, 그리고 기도하게 하시고 다시 15년을 살리신 것일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단순히 기도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시금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이 구원에 관한 책,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에서 앗수르 산헤립 왕은 우리의 생명을 빼앗아 가려는 원수마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젊은 나이에 죽을병이 든 것은 어느 누구도 심판과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며 제비같이, 학같이, 비둘기같이 애처롭게 쳐다보며 울부짖을 때 들으시고 구원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하여 멸망의 무서움, 죽음의 두려움, 그리고 생명의 소중함, 구원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생명과 구원에 대한 간절함이 있습니까?
죄악과 지옥권세 앞에서 두려워 떨며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같이 눈이 쇠하도록 주님을 바라보며 나를 기억해 주시고 나를 구원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심령의 애통함이 있습니까?

자녀의 합격이나 사업의 형통 따위를 놓고 히스기야처럼 애절하게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생명과 영혼의 구원을 놓고,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놓고 히스기야처럼 간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구원을 위하여 그 아들을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영표 해그림자를 10도나 거꾸로 되돌리셨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십도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성경은 10눈금(10 step)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10눈금이 어느 정도인지, 몇 시간 정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은 해 그림자를 거꾸로 되돌리면서 히스기야가 3일 만에 살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3일 만에 다시 살 것이라 하신 것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냥 살려주시면 되지, 왜 히스기야에게 삼일의 약속을 하시면서 우주질서를 깨뜨리고 태양을 거꾸로 되돌리는 그런 엄청난 역사를 보여주신 것일까요?
그것은 첫째, 하나님이 우주만유의 창조주이시며 주재자이심을 밝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생명구원의 약속, 곧 삼일의 약속은 우주의 운행질서 보다 더 우선하며 태양의 운행보다 더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그것은 우주만유의 창조보다 더욱 큰 사건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약속은 태양의 운행보다 확실하며 복음은 우주의 운행질서 보다 더 우선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