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하나님이 이 하나님이 아닌가벼
공공기관 기도 합헌 판결을 보면서
2014년 05월 15일 (목) 22:58:45 김기대 ( 메일보내기 )

미국사회에서 하나님(God)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그 의미가 많이 다르다. 교회 안에서 성서를 통해 만나는 하나님이 보통의 미국인들이 말하는 하나님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라고 말하지만 어떤 익명의 초월적 존재를 말할 때 신이라고 표현한다. 하나님은 신이지만 익명의 신이 모두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미국을 기독교적 가치가 잘 실현되고 있는 나라인 것처럼 착각할 때의 하나님(God Bless America를 종교에 상관없이 공공장소에서 부르는 행위, 달러화에 In God We Trust라는 문구가 써있는 점)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라 미국 시민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즉 한국에서 말하는 신이다.

공공기관에서의 기도가 헌법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지난 주 연방 대법원의 판결, 본보에도 보도된 ‘하나님 앞에서’라는 문구가 들어 있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매사추세츠 대법원의 판결은 얼핏 보면 환영할 만한 일인 것 같지만 결코 기독교인들에게 고무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는데 바탕에는 미국의 시민종교가 깔려 있다.

   
 
  ▲ 샌디에고 솔리다드 언덕에 있는 30피트 높이의 십자가상.ⓒ <미주뉴스앤조이>  
 
미국 시민 종교의 역사

‘시민종교'(Civil Religion)라는 말은 종교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가 1960년대 후반 사용하면서 알려진 학술용어이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의 독립 당시부터 시민 종교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미국의 건국 시조들은 유일신 전통을 가진 공적 종교와 종교를 개인의 양심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모순된 생각으로 종교문제에 접근했다. 특정 종교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 전통을 유지함으로써 새롭게 시작한 국가의 구심점을 삼으려 하면서도 영국에서 당했던 종교 핍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던 것이다. 특히 미국 독립 전쟁 초기에 협력관계에 있었던 프랑스로부터 들려오는 프랑스 대혁명의 소문은 미국의 초기 정치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프랑스 혁명에서 교회가 시민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받는 상황을 미국 땅에서는 보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시민의식을 무시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민종교는 미국인들의 마음 속에 새로운 종교 형태로 자리잡게 된다.

예를 들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성서의 모세처럼 미국을 영국의 압제에서 해방시켰으며 여호수아처럼 신대륙이라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사람이다. 따라서 독립전쟁은 자연스럽게 거룩한 전쟁의 반열에 오른다.

시민종교는 미국이 인류 역사 속에서 특별한 사명을 행하기 위해 선택된 나라라는 믿음위에 서 있다. 그 사명을 준 존재는 신일 수도 있고, 이성일 수도 있고, 역사 일수도 있다. 아무튼 미국의 소명을 허락한 존재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일 수 있다는 개연성만 있을 뿐, 하나님이라고 직시하지는 않는 것이 시민종교의 특징이다. 한국의 목회자들이 설교 예화 시간에 자주 사용하는 워싱턴, 링컨, 루즈벨트 등은 시민 종교의 대표적 성인으로 그들의 일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과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성공담을 예화로 사용할 때는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시민종교의 성인 뿐 아니라 독립선언서, 헌법 등도 성물이 되었으며 초기 정치인들이 만든 미국의 공식 인장(Great Seal)에는 시민 종교의 정신이 잘 표현되어 있다. 류대영은 <미국 종교사>(청년사, 2009년)에서 공식 인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장의 뒷면에는 미완성의 피라미드 위에 광채가 나는 삼각형의 눈 하나가 그려져 있고 그것을 “그(혹은 그것)가 우리의 일을 인정했다.(Annuit Coeptis)”, “시대의 새로운 질서(Nous Ordo Seclorum)”라는 라틴어로 된 두 표어가 둘러 싸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중략) “그(혹는 그것)가 우리의 일을 인정했다.”는 말은 미국이 신(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던 간에)에 의해서 선택된 국가이며, 신의 뜻을 행하는 나라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또한 “시대의 새로운 질서”라는 말은 선택받은 미국이 세계의 역사를 새롭게 열어 놓을 것이라는 믿음을 표현했다.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발달되어온 탁월한 문명을 말하는 것이고, 미완성의 피라미드를 광채가 나는 눈이 완성한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아직 완성시키지 못한 일을 새로운 시대의 질서를 이끌어갈 미국이 완성시킬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미국 종교사, 202~203쪽)

헌법에서 인정한 기도행위는 기독교 의례인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점점 반기독교적 정서로 흘러 가는 미국 사회가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에 성물을 설치하고 십계명 석비를 세우고 하는 일들이 기독교의 부흥을 가져오는 행위인지는 솔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이미 다종교 사회에 접어선 미국에서 여전히 신(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자연스럽다라는 것은 기독교라기 보다는 시민종교의 하나님이라는 인식이 더 깊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에서의 기도 역시 미국의 시민종교적 의례일 수도 있다는 위험성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번 판결은 공공 모임에서 기도하는 것을 관용과 전통의 차원에서 받아들이라는 권고처럼 읽히기도 한다. 기독교인들이 이 판결을 환영하려면 우리 역시 어떤 모임에서 행해지는 다른 종교 의례를 관용의 차원으로 수용해야 한다.
미국의 진보적 기독교인 언론인 크리스 헤지스는 <지상의 위험한 천국>(개마고원, 2012)에서 오하이오 회복 프로젝트라는 운동을 이끌고 있는 러셀 존슨 목사를 이렇게 묘사한다.

연설자들은 또한, 기독교인들은 가정을 보호하고 낙태를 금지하고 학교 기도들을 다시 도입하고 기독교적 오하이오를 창조할 투표자를 등록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간절히 호소한다. (중략) 이 새로운 투표자들은 “미국을 위한 빛과 소금”이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과 나라를 파멸시키려는 세력들을 저지할 것이다. 그들이 미국이 기독교적 길로 되돌아가게 할 것인데, 존슨은 그것이 이 나라 창설자들의 의도이며 목표였다고 주장한다. (지상의 위험한 천국, 216쪽)

크리스 헤지스는 존슨 목사를 가리켜 공화당 주지자 후보를 밀자는 선거운동을 복음이란 이름 뒤에 숨긴 기독교 파시즘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소개한다. 그의 주장은 복음적이 아니라 전투적이며, 기독교의 가르침이라기 보다는 미국의 가치를 앞에 두는 시민종교의 메시지일 뿐이다. 이처럼 시민 종교의 흐름에서 우파는 근본주의 속에 녹아 들었고 자유주의 좌파들은 불가지론자가 되어 개인 명상이나 수행을 통해 그들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종교다원주의라면 사탄 보듯이 하는 근본주의 기독교가 시민 종교라는 타 종교와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존슨 목사의 경우는 시민 종교가 기독교 우파를 통해 나타난 극단적 경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 밖으로 복음주의에서도 미국 국가주의는 빈번하게 등장한다. 존파이퍼 목사는 2012년 미국 대선에 앞서 빌리 그래함 목사와 함께 성서적 가치를 실현할 후보에게 투표하자고 호소하기도 했다. 목사의 입장에서 그런 입장 표명을 하는 것이 탓할 일은 아니지만 이면에는 모르몬 교인인 롬니를 밀어야 한다는 뜻이 숨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크리스천 포스트 인터넷판 2012년 10얼 18일 참조). 존 파이퍼는 기독교의 부흥이야 말로 미국을 제자리에 돌려 놓을 것이라며 국가 주의 기독교에 대한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시각은 지난 2008년 “빌어먹을 미국”이라는 말로 유세중에 있던 오바마 후보를 당혹케 함으로써 그와 형식적 결별을 했던 오바마의 정신적 스승 제레미아 라이트 목사의 시각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

대법원 합헌 판결 이후 워싱턴 포스트지는 인터넷판 5월 11일자에서 이 판결 이후 공공장소의 십자가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예를 들어 샌디에고의 솔레다드 언덕(mount Soledad)의 거대한 십자가상은 의회에서 국가 기념물로 인정했지만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면서 이런 논쟁이 쉽게 가라 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법원의 기도 합헌 결정, 공공장소에서 만나게되는 기독교 성물이나 의례가 신앙의 표준 또는 미국 복음화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공공 영역에서 기독교인지 시민종교인지 구분이 모호한 영역이 확대되어 가는 것에 승전가를 부를 것이 아니라 하우어 워스의 말처럼 하나님 나라의 식민지에서 고유한 영역을 지키며 신앙인으로 올곧게 살아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김기대 목사 / LA 평화의 교회

출처: 뉴스엔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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