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애굽기를 읽으며 묵상을 하니 참 은혜로웠다. '시선'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내가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선포하면 세상의 미움을 받겠지? 이정도는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질투? 그것이 인간이란 존재의 심연에 얼마나 뿌리깊은 문제인지는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갑자기 교회들이 나를 초청하면서 대학의 기획부처장직을 감당할 수 없을만큼 바빠져서 사임했다.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임하면서 나를 신뢰해주셨던 분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내 평온하던 일상은 금방 전쟁터처럼 바뀌어버렸고 과로에 시달렸지만 그만큼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했다. 내가 집중하면 약속을 잊어버리는 학자적 특유의 건망증 때문에 교회에 실수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아내는 직장을 사임했다. 우리 부부에게는 고되고 어려운 일들이었고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라 힘이 들었다. "오직 주만이~" 이 기도로 버틴 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가시밭길이라 여겼던 그 과정을 전문적으로 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목사도 아니요 신학자도 아닌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더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이 현상을 "이정훈 교수가 떴다"라는 표현을 들으면서 이해했다.


나는 하와이에서 학술대회 참가 그리고 미팅들, 제주도에서의 집회, 국회에서의 양심적 병역거부 발제를 마치고 14일만에 스윗홈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누구시냐?"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우리집 야옹이와 마추쳤을 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대략난감이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조용한 일본의 온천마을로~ 아내와 둘이서 겨울이면 찾던 그 조용한 마을로 가서 이틀이라도 쉬고싶다. 국회발제는 시차와 기온차로 독감에 걸린 상태로는 무리였으나 교회와 나라를 위해 빠질 수 없었고, 이 자리에서도 예전 나의 주장과 이론을 스스로 반박해야 하는 고통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나의 고통들은 작은 것이고 교회와 나라가 사라진 뒤의 회한은 이 생에 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이리라.


이것은 비판이 아니다. 나를 공격하는 목사님들 그리고 신학자들께서 자신의 역할을 올바로 해주셔서 내가 교회강연에 가지 않아도 되길 기도한다. 나는 법학자답게 국회발제, 서울대 트루스 포럼 강의같은 것에만 집중하고 싶다. 실제로 위기를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집회 초청에 응했으나 이제는 대폭 행보를 줄여야만 한다.


교회를 위해 "나를 소비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드린 적이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교회는 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스스로를 진보적 기독교인이라고 자청하는 분들은 이 체제가 붕괴되면 교회의 존립기반이 사라진다는 것을 아셔야만 한다. 교회개혁한다고 교회해체세력과 동역하고 정치개혁한다고 체제붕괴세력과 동역하면 결국 교회도 나라도 여러분의 생존기반도 사라지는 것이다.


나라는 존망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보는 것, 그리고 보고 싶은 것에만 몰두한다. 기도를 드릴 때마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내 개인의 평온하고 행복했던 일상을 바랄 수 없는 상황이다.


내가 미국과 일본의 리더들과 교류하면서 느꼈던 공포를 아는 한국인이라면 지금 그렇게 태평하게 지낼 수 없을 것이다. 평창의 거짓 평화에 속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두렵다. 우리 부부는 부자는 아니어도 각자 일이 있기에 생계를 꾸려가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둘이서 집근처 해운대 해변을 산책하고 맛있는 것 먹고 얼마든지 소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어제 저녁 아픈 나를 보살펴 주는 아내의 피로를 느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세상에서 욕먹고 교회 내에서 욕먹고 과로로 병든 남편에게 "우리 이런 것 다 하지말고 예전처럼 조용하고 행복하게 살면 안 돼?" 이렇게 묻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나는 오늘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오직 한분 뿐이신 그 진리를 바라본다. 주여~ 저와 제 나라를 구해주시옵소서"하고 감옥에서 기도하던 이승만 박사의 영성을 떠올리며 속죄와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



출처: 이정훈 교수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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