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론...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논의를 해 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예정론은 아직까지도 논의되어지고 있는 문제이며, "하나님의 신비"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이제까지 개혁신학의 예정론을 문제삼는 사람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그들은 예정론이 아닌 운명론을 예정론으로 착각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이 문제삼아야 할 것은 운명론이어야 했다.

 

운명론과 예정론의 차이를 아는가? 이것을 직접 설명하기 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보는 게 좋을 듯하다. 개혁신학의 예정론을 문제삼는 자들이 어떤 논리를 펼치고 있는가? 그들은 말한다. 하나님의 예정이 있고, 예정된 자들이 있고, 따라서 예정된 자들만 믿을 수 있고, 이것은 하나님을 폭군으로 만든다. 예정론은 하나님을 폭군으로 만드는 논리다! 그들은 항변한다. 하나님은 폭군이 아니다. 인격적인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인 것이다.

 

하나님이 언약의 하나님이시며,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라는 말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절대주권의 하나님이심도 여전히 사실이다. 예정론을 문제삼는 자들은 이 절대주권의 하나님을 문제삼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은 폭군이라고 항변한다. 왜 그렇게 항변하는가? 왜 절대주권의 하나님은 폭군이라고 그들은 그렇게도 열심히, 열심히, 열심히 외치고 또 외치고, 또 외치는가?

 

그들의 설명은 이렇다. 예정론은 결국에는 "인간의 인격과 의지를 억압 또는 속박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고 싶어하는 인간들을 믿지 못하도록 그들의 의지마저도 박탈하시는 그런 예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이들이 말하는 논리가 예정론의 논리라고 생각되는가, 아니면 운명론의 논리라고 생각되는가?

 

예정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연,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마저 모두 박탈하고 믿고 싶은데도 못 믿도록 몰아가시고 의지를 박탈하는 그런 하나님이라고 말하는가? 그렇지 않다. 결코, 그렇지 않다. 만일, 그러한 예정론을 주장하고 있다면, 어떻게 우리가 성화를 강조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운명과도 같은 그런 예정 속에서 진행된다고 한다면 말이다.

 

우리는 우선 운명론과 예정론이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 주위에는 자신은 잘 믿고 싶은데, 하나님이 자신이 믿지 못하도록 마치 의지마저 박탈하셔서 우리가 믿을 수 없는 것처럼 종종 하나님을 그렇게 묘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되고 듣게 된다. 자신은 의지를 동원하여서 좀 더 구별된 삶을 살고 싶고 경건한 삶을 살고 싶은데, 하나님이 그런 의지를 발휘하지 못하게 속박하심으로 우리가 그런 구별된 삶을 살 수 없다고 핑계를 댄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의 의지에 대한 속박을 풀어 주시기 까지는 잘 믿기는 글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운명론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의지를 묶어 두시고 우리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두실까? 

 

여기에는 아주 묘한 문제가 깔려 있다. 이것이 우리가 다음으로 다루어야 할 주제이다. 예정론을 가만히 살펴보면, 여기에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의지 또는 하나님의 주권과 성도의 책임의 문제가 예정론의 문제와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지가 있는 인간으로 만드셨다. 그렇다면, 죄인이어도 불신자이어도 의지가 있는 인간이지, 의지가 없는 인간일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불신자도 부분적인 선을 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영적인 선,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에서의 선과는 다르다. 아무튼, 우리의 결론은 인간이 의지가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예정론에 관심을 가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만을 생각하는 오류에 빠진다. 분명, 예정론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있다. 그러나, 그 예정론은 인간의 의지를 무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예정론을 다루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도성을 분명히 해야 하지만, 인간의 책임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부분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 예정론을 떠올리면, 하나님의 주권과 결부시키면서 인간의 의지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그러한 이유로 예정론이 잘못이라고 반박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정론을 다루고자 하는 사람들은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것이 우선적으로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에 대해서 온전히 알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라고 이해되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성도)의 책임에 관해 함께 고려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보인다. 

 

어째서, 예정론을 떠올리면 꼭 주권적인 하나님을 폭군 같은 하나님으로 묘사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 그들은 절대주권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약을 베푸신 하나님과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언약대로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기 위해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주신 하나님이시며, 성도의 책임을 마땅히 감당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성령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성삼위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왜곡되게 오해하면),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성도)의 책임의 관계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고, 이 관계를 알지 못하면 예정론을 운명론으로 오해한다는 것이다. 즉, 삼위일체의 교리를 이해하는 것이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성도의 책임의 관계를 푸는 열쇠(전제라는 의미)이며,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성도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예정론을 올바로 알기 위한 전제이다.

 

성삼위하나님-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성도)의 책임-예정론은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온전히 알 수 없다고 전제해야 옳다. 그것은 유한한 인간으로서 무한한 하나님 앞에 설 때 바람직한 태도이다.

 

마지막으로 이 한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이 모든 교리가 "유기적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성삼위하나님과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성도의 책임의 관계, 예정론, 내적인 부르심 또는 성령의 유효한 불가항력적 부르심, 중생, 믿음, 회심, 성화 등등의 이 모든 교리는 함께 다루어져야 하리라고 본다. 

 

 

 

 

 출처: 양무리마을/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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