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사5:4)”
 
우리는 신앙생활 가운데 종종 “신앙이 좋다, 나쁘다” “믿음이 좋다, 나쁘다”라는 표현을 큰 주의 없이 사용하기도 한다. 가량 ‘주일날 예배 참석을 빠지지 않고 한다’던가, ‘헌금을 잘 낸다’던가, ‘교회내 봉사 활동에도 열심히 있다’던가 하면, 흔히들 “신앙 좋고” “믿음이 좋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을 때는 “신앙이 나쁘다” “믿음이 없다”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또 자신에게는 관대하지만 상대의 신앙을 얘기할 땐 쉽게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가? ‘좋다’ ‘나쁘다’를 말하기 이전에 무엇보다 성경을 대하는 자신의 중심이 어떠한지 살피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와 현재의 신앙상태가 꼭 같을 수는 없다. 또한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수시로 자신의 신앙상태가 어떠한지, 신앙생활은 바르게 잘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크리스천의 신앙상태를 다섯 가지 유형으로 정리한 것이다. 과연 현재 나의 신앙상태는 아래의 유형에 해당하는 것들은 없는지 스스로 반성하고 견책한다면 앞으로의 신앙생활에 큰 유익이 있지 않을까. <편집자주>
 
 바리새파적 신앙(눅18: 11-12)
"나는 떳떳한 의인…율법을 하나님보다 중시"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같은 부류가 오늘날에도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의외로 교회에서 이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누구보다 신앙이 좋아 보인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어느 집사, 장로를 떠올리기 이전에 자신을 스스로 점검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율법을 생명처럼 여기지는 않는가. 율법을 지키면 살고, 지키지 않으면 죽는 것으로 착각하지는 않는가. 나는 율법을 잘 지키고 있으니 죄가 없고, 스스로 판단해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의인이라고 여기지는 않는가. 한마디로 바리새파적 신앙은 율법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여긴다고 하겠다. 
 
 기복주의적 신앙(행8:18-19)
"외형적인 복 중시…복 받기 위해 예수믿어"


솔직히 지금까지의 한국교회는 좋은 신앙의 기준을 눈에 보여지는 ‘외형적인 복’에 초점을 둔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상품 가치가 없는 들포도와 같은 무늬만 성도인 크리스천들이 대량 양산되어진 것은 아닐까. 이 유형은 ‘복’에 대한 개념을 잘못 배운 것인지, 아니면 오해하고 있는 것인지, 하나님을 믿으면 복 받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물질의 복을 받지 못하면 신앙의 실패자로 보고, 물질이 없으면 예수를 잘못 믿어 그렇게 되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결국 복 받기 위해 예수를 믿으며, 물질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우를 범한다.
 
■ 추상적 신앙(욥42:5)
"정말 하나님 계실까…안 믿자니 손해같고 믿자니 속는 느낌"

 
실재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하나님을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믿음이다. 즉 “하나님이 진짜로 계실까?” “천국과 지옥은 실재 존재하는 걸까?” “성경은 정말 정확무호한가?” 반신반의하며, 막연한 생각으로 믿는 신앙생활이라 하겠다. 이런 신앙은 성경도 확실히 믿지 못하고 “어떤 내용들은 교훈이 되라고 꾸며낸 이야기 일거야”하는 식으로 늘 미적지근할 수밖에 없다. 안 믿자니 손해 보는 것 같고, 믿자니 속는 것 같은 어정쩡한 유형으로 믿음이 자랄 리가 만무하다.  
 
 자기중심적 신앙(롬2:1)
"나는 부족함 없어"…영적상태는 '가뭄'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유형이라 하겠다. 자기만 옳고 완전하다고 하는 이기적인 신앙으로 영적상태가 메마르기 쉬울 수 있다. 내 의와 내 주장과 내 뜻이 강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상대는 틀렸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정도가 심하면 자신의 부족성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온전함을 주장하는 유형이랄까. 하나님이 계실 자리에 자신이 대신 주인이 되어있지는 않은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미신적 신앙(사1:11-12)
"한인에게 많은 유형…지성이면 감천일터"

 
불교와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인들에게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유형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식으로 “이렇게 까지 하는데 하나님이 안 들어 주실까”하는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부류. 덮어놓고 오래하고 많이 하면 들어주시는 걸로 착각한다. 이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뒤로 하고 내 열심으로 잘 받들고 공을 들이면 복을 받는다는 신앙의 타입이다. 잘못하면 안 되니까 잘해야 된다는 자신의 의가 하나님 말씀보다 앞선다고 진단된다면, 생각과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먼저 중심을 바로 세우는 것이 순서이지 않을까.

 

출처: 크리스챤 투데이 

 

 

송금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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