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 소회(所懷)
      대장쟁이님도 할미꽃을 좋아 하시네요. 저도 좋아 하는 꽃입니다.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에 화사한 내세움 자랑 보다 수줍음으로 망자의 무덤에 고개 숙여 핀 꽃을 바라보면 숙연해 집니다.
      어제 할미꽃 꺼내시니 가슴 아린 아픔이 다시 밀려옵니다. 어린 시절 심훈의 상록수를 읽고 독립운동가 이자 영화인 인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짧은 삶에서 소설을 통해 농촌 계몽운동을 기독교인인 채영신을 통해 그가 이루고자한 정의는 무엇인가를 번민하다 기독교인 인 형명가를 꿈꾸었습니다.
      그 꿈으로 인해 제 십대 후반은 집을 떠나 굶주리고 허기진 생활 이었습니다.
      그 후 현실의 꿈이 좌절되어 절망할 때 까뮈의 시지프스 신화처럼 삶이란 신의 형벌로 돌을 굴려 정상을 향해 가다 또 떨어지는 삶이란 아무런 가치도 없어 발전할 수도 없을 뿐 더러 신기루 같은 목적과 수단을 동원한들 가치의 실현이 이루어지기는 커녕 이루어진들 고통뿐인 염세주의자가 되어 신(하나님)이란 성경을 세뇌의 수단으로 삼은 허황된 종교라 허무주의자가 되어 방황하고 다시 하나님을 찾았을 때에도 가시지 않은 허무로 거의 이십대를 보내고... 이십대 후반에 의식화된 크리스찬이 되어 버림받은 사람들이 사는 변두리 개척교회로 향해서 다시 만난 하나님
      그리고 육체적인 고통으로 죽음의 문턱에 머물며 정신병원까지 다니며 원망했던 하나님 하나님을 원망할 자격의 조건이 있다면 저는 원망할 자격이 있다고 절규하던 지난날들...
      그리고 이 시를 쓰던 그리 오래 되지 않던 날 뒤뜰에 주저앉자 또 절규를 했었습니다. ‘하나님 제게 무엇을 원 하십니까 제 고통으로 제게 만족하지 않으십니까 움직이지도 못하는 팔과 어깨허리...경제적인 어려움... '저를 죽여주십시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없이 주저앉은 땅에서 열기를 느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다 고개 들어 바라본 하늘에서 소망을 보았습니다. 이 땅에서 저 하늘까지 믿음으로 연결된 소망을 보았을 때 성경의 구절이 메아리가 되어 노래가 될 때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온몸과 마음이 춤을 출 때 평안을 맛보았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아름다움과 평안 부족함이 없는 평안에서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찬양했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뭉게구름 둥실 둥실 떠가고 구름같이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지난날의 변절과 오늘날의 변절을 떠오르며 제 가슴에 글을 새겼습니다.
      다시 꾸어야 할 꿈 처절하게 원했던 진리로의 자유...
      별똥별님께 댓글을 길게 쓴 날 저녁 제가 한스러워 어리석어 밤늦도록 울고 벼게를 적셔도 변절된 순수한 믿음을 다시 가질 수 있을 까요.
      대장쟁이님 댓글을 읽으며 제 이야기를 어렵게 내려놓습니다. 아직도 간직한 많은 분들을 향한 댓글을 올리지 않았음을 감사하며 이루지 못한 그리스도를 향한 혁명의 나날들 마음에 이미 써진 그리스도의 혁명(복음) ‘내가 만난 하나님의 공의’ 라는 글이 자랑할 것 아무것도 없는 저의 자랑이 될 까봐 누가 될까봐 못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절망은 희망의 다른 말이고 소망은 인고(忍苦)의 고통 넘어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근거 다‘ 라는 고백을 하며 대장쟁이님을 향하신 그리스도의 손길을 바라보며 또 감사드립니다. 짐보의 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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