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가라지가 있는가?

짐보 

교회에 가라지가 있는가?
일단 가라지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은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마태복음13:38-39]
의 성경을 인용하여 제 주장을 하면
“예수님은 가라지 비유를 가시적인 교회(지상교회)에서
성도와 거짓성도(가라지)와 함께 있지만 심판 때에는 구별되어
참 성도는 천국에 거짓 성도는 지옥에 던 질것이라 가르치신다.“
반대 의견은
밭=세상 이라 밭=교회가 아니라는 의견이다.
그럴까 그럼
가라지=악한 자의 아들들(거짓 성도) 은 인정하시는가?

예수님의 알곡과 가라지 비유로
세상과 교회 그리고 가라지를 의미하며 읽어보면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41. The Son of man shall send forth his angels, and they shall gather out of his kingdom all things that offend, and them which do iniquity;
마태복음 13:37-43]
가라지는 마태복음13:24-40에 단 한번 언급만 있고
여기서 ‘아버지 나라=his Kingdom'을 주목하고.

겨자씨 비유를 보면
자기 밭에 심은 겨자씨가 나무 같이 자라나서 공중의 새들이 깃든다는 비유를 하는데
여기서 ‘자기 밭’이 나옵니다.
[Another parable put he forth unto them, saying,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o a grain of mustard seed, which a man took, and sowed in his field]
KJV에서는 'in his field' 로 묘사합니다.
밭 = 교회다? 무리?
비유를 바라보는 표현을 주목하고
*마태-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 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13:31-32
*누가-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13:19
*마가-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 일  만큼 되느니라
But when it is sown, it groweth up, and becometh greater than all herbs,            
and shooteth out great branches; so that the fowls of the air may lodge under the shadow of it. 4:30-32, KJV 32
겨자씨를
누가-(나무)가 되어
마가-(풀보다 큰 가지)를 내며
마태-(나무)가 되매

여기서 마태를 소개하면
마태(Matthew)는 직업은 천한 자로 살인자 같이 취급받는 세리였고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예수님이 그를 세관에 까지 찾아가 만남으로 시작된다.
그와 예수님의 만남도 바닷가도 회당도 아닌 가버나움의 세관에서다.
그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를 예수님의 족보를 (마1:1-16,2:5-6,26:3)
그는 구약의 수많은 책들을 인용할 만큼 학식이 있었고
종족인 유대인에게 복음과 예배를 가르쳤다.
복음서중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와 해석(13:24-30,36-43)는 마태복음만 있다.
이외도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13:44), 진주의 비유(13:45-46)
물고기 그물의 비유(13:23-35), 포도원 농부의 비유(20:1-6)
두 아들의 비유(1:28-32), 열 처녀의 비유(25:1-13)
최후 심판의 비유(25:31-46)
은 마태복음만 나타나는 아홉까지 비유이다.
마태는 예수님의 천국(Kingdom of Heaven)의 사용하여
-누가는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을 -
그 비유의 핵심은 천국이라 할 수 있다.
네 복음서중 유일한 아홉까지 비유는 마태복음의
‘그리스도(메시아)-유대인의 왕-다윗의 자손 등으로 쓰여 있음은
구약의 예언이 예수님으로 의해 성취된 것 을 강조하고
유대인의 전통의식을 생략한
마태복음은 특징은 유대인을 위하여 써진 복음서라
“하나님 나라” 가 아닌“천국”으로
“종말”을 특별히 마태복음에만 “교회”라는 명칭이 있다.(16:18,18:17-18)
정리하면 불완전한 교회의 모형이 천국이고 종말에는 진정한 천국이 임한다는.
세리로서 숫자에 민감한 시각으로 그 임함의 진행(성장)을 보았기에.
열 처녀의 비유처럼 돌연히 임하는 천국을.
겨자씨가 자라 “나무‘가 되는 비유와 알곡과 가라지 비유 등
서서히 성장하는 천국을.
가라지가 밀과 비슷하나 이삭이 나면 구별이 뚜렷해지듯이
교회(지상교회)에서의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들어 종말(심판)을
그리고 천국(완전한 교회)을 강조했다.

이제 시각을 넓혀서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가라지=악한 자의 아들들(거짓 성도)이고
좋은 씨를 부리는 이는 인자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이 마귀는 처음 에덴동산에 가라지를 뿌렸고
아담의 하와의 가정에 가인에서 뿌려졌고
아브라함의 가정에 이스마엘이
이삭의 가정에 에서가....등
마귀는 열두제자 중 가롯 유다를 가라지로 뿌려 사도들과 함께 자라게 하였다.
가정에서 공동체에서 열두제자 중에서
마귀는 공통되게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자라게 가라지를 뿌려놓는다.

다시 13장10-11절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께 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냐 물어본다.
예수님의 대답은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but not to them]
여기서 ‘천국의 비밀’은 복음을 이야기 하고
‘씨’는 마태가 이야기 하는 예수님의 천국(Kingdom of Heaven)의 비유고
씨 “알곡”이다.
‘그들 에게는 아니되었나니 -but not to them' 그들은 ‘가라지’이고
‘알곡과 가라지’는 밭에=교회에 뿌려졌고 이 세상에 속한다.

문자 그대로는 밭=세상이기도 하지만
밭이 세상이라 하신 이유는 세상에 속하여 존재하는 교회를 이른 거로
초대교회와 교부들이 해석하였고 그것이 전승이며 유래로 알고 있다.
초대교회가 태동하고 삼백년이 넘어서야 교회의 건물이 지어졌고
그 전까지는 가정교회로 가시적으로 교회와 세상이 구별됨이 없기 때문이다.
어거스틴도 밭을 교회로 여겼다.
“어거스틴은 마태복음 13장의 천국비유들을 헌용하면서
교회를 종말론적으로 이해했다.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의 구분은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때인
역사의 종말에 가서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적,
가시적 교회는 절대로 완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corpus Christi)"이긴 하지만
이는 "섞인 몸(corpus permixtum)"이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적인 교회는 "참된 그리스도의 몸(corpus Christi verum)"과
"위선적인 그리스도의 몸(corpus Christi simulatum)"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면서, 교회가 "섞인 몸"이기 때문에
"신비적인 몸(corpus mysticum)"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예수님의 천국의 비유들에서 등장하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마 13:24-30)
및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의 비유(마 13:47-50)들을 전형적인 예로 삼았다.
나쁜 부류들과 좋은 부류들은 역사의 마지막 때에 가서 주님에 의해 분리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최종적인 판단자들(final judges)이 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는 교회가 성결하다는 것은 교회가 주님의 몸이며,
그 안에 성령께서 거하시기 때문이지 모든 구성원들이 성결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교회는 죄인들의 공동체(communio peccatorum)였으나,
믿음으로 성도들의 공동체(communio sanctorum)가 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주름과 흠이 없는 교회(엡 5:27)란 이 세상에서 있을 수 없다.
-도나투스주의자들과의 논쟁에 나타난 어거스틴(Augustine)의 성서해석 김 영 도 목사“

마귀는 가정에서
사회에서 정의를 부르짖는 존경받는 자로
교회에서 의와 열정이 넘치는 광명의 천사 같은 일꾼으로 지도자로
카멜리온과 같이 위장하는데 최고 선수들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시적인 지상교회는
성령으로 중생한 참성도와 거짓성도가 공존하는 교회이다.
가라지같은 거짓된 성도는 평상시에는 알곡 같이 위장을 하였기에 구별하기 어려우나
결정적인 시가가 오면 거짓일꾼으로 거짓목사로 거짓 그리스도인 인 본색을 드러내기에
구별된 교회 밖의 세력보다 더 위험한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색으로 위장하여 해독을 암암리에 퍼트려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교회의 복음을 변절시키거나 퇴색시켜
분열과 분쟁을 파탄(破綻)을 일으키어 성도들의 희생과 헌신을
그들의 이권으로 장악하고 자기 이익을 도모함은
성경의 말씀이고 말씀으로 우리에게 익히 경고하였다.
신약성경에서 발견하는 숫한 변절자들과
지난 교회의 교회사가 이를 뒷받침 하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제, 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보면
서머나 교회-가난하나 부요한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연약하지만 충성된 교회는 칭찬을 받았고
에베소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는
칭찬과 책망을 받았다.
이 일곱 교회의 모습이 가시적인 현대교회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예수님은 열두 사도를 택하시고도
나중에 사도바울을 부르신 까닭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의 대답이 다 같을 순 없더라도 그가 틀림없는 위대한 사도였다.
이방인을 위한 사역을 하였지만 우리가  정확히 하나님의 오묘한 뜻을
헤아린다는 건 우리가 하나님이 아니기에 불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관점으로 정의하는 교회” 를 주장하신 분들
님들의 믿음과 신학과 교회는 완벽합니까?
하나님의 관점....?
= 하나님의 시각....?
세상에는 완벽함이 없습니다.
완벽한 지상교회도
완벽한 성도도.

위대한 바울은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13:12]
그도 거울을 보는 것 같이 희미하게 안다는 고백을 하며
그의 태도는 겸손합니다만
이곳에 누가 잘못된 성경의 해석을 하거나 인용하면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은혜를 입은 자라면, 긍휼로 살아가는 자라면
좀 더 친절히 설명해 서로의 믿음을 확증하고 확정하는 진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면 좋으련만.
사랑이 없다면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라 유익이 없습니다.

제 주장은 이글로 마칩니다.
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넉넉한 믿음의 장이 되어 토론하고
이제는 새로운 분들의 글을 보는 신선한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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