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으라

 

빛이 무엇일까요?
빛은 파동일까요, 입자일까요?
빛이 파동이라면 수많은 빛들이 충돌과 간섭을 일으켜 엉망이 될 것이고
빛이 입자라면 입자의 수에는 제한이 있을 테니 어디에서나 보이고 아무리 멀어도 보일 턱이 없겠지요.
그래서 빛이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다 가졌다 하여 "Duality"로 정의를 합니다.
그러나 "Duality"라는 정의로 빛의 정체를 밝힐 수는 없습니다.
과학자들도 빛을 무엇이라고 정의하지 못 합니다.

모든 것을 밝히고 모든 것을 드러내는 빛,
초속 30만 킬로미터로 직진하는 빛.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라 질량이 무한대로 치솟아 물질세계의 어떠한 것도 넘을 수 없는 벽,
가시광선, 400 옹스트롬으로부터 750 옹스트롬 사이의 파장대에서 무지개 일곱색깔의 영롱한 빛을 발하는...  
빛은 신비입니다.
피조세계의 어떤 것도 범접할 수 없고 넘을 수 없는 성역입니다.

아무튼 그 빛이 왜 있을까요?
빛이 있어야 우주의 천체들이 운행하고 빛이 없으면 별들이 "아, 어두워. 보여야 가지." 하고 멈추나요?
태양이나 달이나 별들, 우주의 모든 천체에게는 빛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빛은 그것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광활한 우주가 있으면 뭣 하겠습니까?
그것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존재, 곧 생명체가 없다면 우주 또한 아무 존재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존재는 그 존재를 의식하는 주체가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빛이 있다는 사실은 우주만유가 의식을 가진 생명체를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겁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광활한 우주공간에 하나님 혼자 계시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이라고 인정해주는 존재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무리 위대한 창조사역을 하시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홀로 지으시고 하나님 홀로 보신다면 얼마나 따분한 일이겠습니까?
함께 나누고 함께 누리는 이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을 찬송케 하기 위하여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 우리 인간의 존재의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부르는 것, 그 분의 하신 위대한 일들을 찬양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그래서 하나님은 빛부터 만드셨을 것입니다.
빛이 있음으로 인하여 모든 피조세계가 드러나고 나타나며, 창조주이든 피조물이든 서로의 존재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우주만유를 우리와 함께 바라보며 나누기 위한 것일 겁니다.
“우와,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걸 다 만드셨어요? 굉장하다, 멋지다. 우리 하나님 최고다!” 우리의 이런 감탄에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빛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요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창조사역일 것입니다.

빛을 지으신 하나님은 빛을 기뻐하시고, 그리고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니 하나님은 나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계속 나누어 가시며 나누신 다음 창조사역을 행하십니다.
왜 굳이 나누시는 것일까요?

좋은 것을 나쁜 것과 함께 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거룩한 것을 더러운 것과 함께 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로지 빛 가운데서만 창조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베소서 1장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창조와 구원의 사역을 행하십니다.
어둠 가운데서는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공허하고 혼돈한 상태에서는, 혼합되고 뒤섞인 상태에서는 창조의 사역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습니다.
이 세상에 택하신 자로 불러내어 교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어둠 가운데서 불러내셔서 빛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예수 안에서 새로운 일을 행하시려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빛 가운데 나오셨습니까?
빛 가운데 행하고 계십니까?
빛 되신 예수 안에 속해 계십니까?
그러면 우리가 예수를 알지 못 하던 때, 그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절망 가운데 있었던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아름답게 시작될 것입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답게 지어져가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당신께 임하기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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