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찌니라.

 

아브라함은 나이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 나섰습니다. 나이 65세였던 사라도 남편을 따라 함께 나섰습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간 가나안 땅 그 척박한 광야에서 자기 땅 한 뼘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62년을 살았습니다. 90세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직 장가도 못 보낸 그 서른일곱 살 노총각 아들 이삭을 남겨놓고 127세에 죽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 그냥 살았더라면 고생 안 하고 편히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들도 대도시에서 좋은 학교 보내고 일찌감치 예쁜 아내 만나 장가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광야에서 함께 고생만 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하나님 때문에 광야에서 아들까지 고생시키고 고생만 하다가 죽은 셈입니다.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도 광야의 척박함과 인생의 허무를 절절히 알았을 것입니다. 모세는 이 창세기를 출애굽 후 광야에서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모세는 모세오경 외에도 시편 90편을 남겼습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너무나도 짧습니다. 죽고 썩어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시신을 산에다 묻든 굴속에 넣어 장사하든 세월이 흐르면 썩고 티끌이 되어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러내셨습니다. 죽어서 티끌로 사라질 존재라면 불러내실 리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러내시는 것은 사라지고 소멸될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소멸되지 않는 존재라면 언젠가는 소멸될 이 땅도 인간의 영원한 거처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시신을 장사한 산도 사라지고 굴도 사라지고 지구도 우주만유도 사라지나 오직 우리의 거처가 되는 것은 모세가 노래한 대로 하나님 한 분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막벨라 굴은 인생이 죽어 땅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약속의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표징인 것입니다. 그 첫 번째가 사라였습니다. 이것이 소망 중에 죽는 성도의 모습, 이 세상에서는 별 볼일 없이 죽는 것 같으나 영원한 하늘나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잠드는 첫번째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의 이러한 모습이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참 가난하고 서글픈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건만 137세가 되도록 자기 땅 한 뼘 없는 가나안 땅 떠돌이 목자의 신세에 평생을 함께 한 아내 사라는 죽고 하나 뿐인 아들은 마흔 살이 다 되도록 혼자이고 주변에는 이방족속 뿐이니 이러한 홀아비 노총각 부자(父子)의 모습이 복된 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인들 슬픈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떠나온 것을 후회하지도 않았고 돌아가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집안일을 맡아온 늙은 종을 불러 부탁합니다. 종의 손을 자신의 환도뼈 밑에 넣게 하고 맹세하게 합니다. “청컨대 네 손을 내 환도뼈 밑에 넣으라.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종이 묻습니다. “여자가 따라오지 않으면 아드님을 모시고 그리로 돌아갈까요?” 가나안땅에 따라 올 여자가 없다면 이삭은 영영 장가를 갈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찌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찌니라.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찌니라.”

설사 아들이 장가를 못 가는 한이 있다 해도 절대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를 종에게 맹세시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맹세하여 말씀하신 그 약속을 믿었던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아들의 아내를 예비하시고 반드시 그 땅을 그 씨에게 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돌아가면 끝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전망이 캄캄하다고 하나님을 떠나면 모든 것이 허사입니다. 지금까지의 믿음과 순종과 섬김이 헛것이 되고 맙니다. 믿음의 길은, 하나님을 따르는 길은 돌이킬 수 없는 길입니다. 무슨 어려움이 있더라도, 어떠한 고난과 희생이 있더라도, 앞이 아니 보이고 캄캄하다 할지라도, 설사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끝까지 돌이킬 수 없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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