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섭 교수

 

 

[편집자 알림: 아래의 글의 저작권자는 '? 바른믿음'이다. 페이스북에서 옮겨 싣는다. 저작권자의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글쓴이 정동섭은 신학자 권호덕, 스탠리 그렌츠, 피영민 등의 책을 참고하여 근래에 주목을 받고 있는 이 주제를 간명하게 간추려 소개한다. 이스라엘과 교회를 분리하는 최근의 일부 종말론과 관련하여 참고할만한 글이라고 생각된다. 글의 내용은 <리포르만다>의 신학 견해와 다를 수도 있다.]

 

 

이단들이 좋아하는 세대주의적 성경해석

이스라엘과 교회, 율법과 은혜 분리하는 것이 큰 문제

 

정동섭 목사 / 가족관계연구소 소장 (전 침신대 교수, Ph.D.)

 

1. 세대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세대주의 신학은 영국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형제교회(Separatist Plymouth Brethren) 지도자 달비(John Nelson Darby: 1800-1882)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19세기 중반에 영국 성공회가 부패했다면서, 교파를 떠나 형제운동을 시작하며 세대주의를 체계화한 사람이다. Darby의 지도하에 형제교회는 급성장했는데, 세대주의는 영국과 미국의 근본주의에 유입되면서 가시적인 기성교회의 제도와 충돌하였다. 신학적으로, 교회적으로 편협한 노선을 주창하면서, 뉴톤(B.W. Newton)과 심한 논쟁 끝에 달비는 배타적 형제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영미에는 개방적인 형제교회Open Brethren도 있는데,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형제교회다).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시스템에 따라서 신학이 크게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하나는 루터와 칼빈이 가르친 개신교 ‘언약신학’에 기초한 ‘개혁주의 신학’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세대주의 신학’이다. 세대(dispensation)는 세계역사를 관통하는 여러 세대 속에 하나님의 프로그램이 전개되는 것을 가리킨다.

 

초기 선교사들은 대부분 세대주의 신학에 근거한 복음을 우리나라에 전파했다. 형제교회 창시자 달비와 성경주석자 스코필드는 역사를 일곱 세대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각 세대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구속적 계획을 마련하였다고 보았다. 세대주의에서는 성경 역사를 무죄(innocence)시대, 양심(conscience)시대, 인간통치(human government)시대, 약속(promise: Patriarchal Rule)시대, 율법(Law)시대, 은혜(grace)시대, 천년왕국(Kingdom: Millennium)시대 등 일곱 가지 시대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각 시대마다 하나님이 새로운 구원의 길을 제시해주셨다고 주장하였다. 세대주의 신학에 의하면, 각 시대마다 구원 얻는 방법이 다르다. 양심시대는 양심에 따라 살면 구원을 받고, 율법시대에는 율법을 따라 구원받는다는 식이다. 시대마다 다른 구원의 길을 주셨다는 교리였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면 구원받는다는 주장이 나왔다. 모세와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킬 것을 언약하였지만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실패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은혜로 구원하신다는 주장은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적대적인 관계로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지금 성도들은 은혜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에 십계명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유일한 법칙이 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세대주의 종말론은 “더 이상 율법이 필요 없다”는 율법폐기론(antinominianism)으로 이어졌고, 기독교의 윤리성은 무너지게 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오대양사건과 세월호사건을 일으킨 유병언의 구원파라 할 수 있다. 회개무용론을 가르치고 있는 또 다른 구원파의 교주 박옥수도 세대주의 신학을 따르는 돌파리 목사 중 하나다. 이 신학에 영향을 받은 많은 정통교회도 은혜를 누린다면서 율법을 무시하는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기독교의 큰 문제 중에 하나는 바로 율법과 은혜를 원수처럼 생각한 것이다. 세대주의적 사고에 따라, 율법은 모세를 통해서 주었고, 우리는 율법과 관계가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은 은혜만이 우리가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율법폐기론이다. 세대주의 율법관과 종말론이 한국기독교를 망치고 있고, 많은 이단을 양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리교 사회학자 이원규 교수는 “한국교회는 교파분열이 심하고, 사이비 이단종파가 많으며, 품위 없는 성직자가 많다”고 지적하였다. 예수님은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하셨다. 물질주의로 나타나는 탐심과 성적 타락은 그 배후에 개혁주의 언약신학의 반대 입장에 서 있는 세대주의 신학이 한 몫을 하고 있다고 본다.

 

달비는 유럽과 뉴질랜드,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세대주의를 보급하였고 많은 사람을 형제교회(Brethrenism)로 회심시키려 시도하였다. 그의 세대주의 종말론은 1883-1897에 연례적으로 열렸던 Niagara Bible Conference를 통해 전파되었다. 많은 침례교인과 감리교인, 그리고 장로교인들이 그의 신학적 전제를 수용하였지만 기존교단에 대한 비판으로 교단을 약화시켰기 때문에 정통교단을 떠나지는 않았다.

 

1920년대 당시 자유주의가 성경적 가르침을 거부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세대주의자들과 프린스톤 칼빈주의자와 같은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달비의 세대주의 신학을 수용하면서 그의 종말론은 미국 근본주의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C.I. Scofield Reference Bible은 50년 동안 3백만 부가 팔렸는데, 그 영향으로 Biola, Moody, Dallas, Grace와 같은 신학교가 세대주의 신학에 근거한 종말론을 가르쳤다.

 

달비는 개신교 교리의 핵심이 되는 두 가지를 부인하였다. ⑴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아서 의인이 된다는 ‘전가설’, 즉 이신칭의의 교리를 부인하였다. 죄인이 예수를 믿으면 ‘놀라운 교환’(wonderful exchange)이 일어나는데, 우리가 가진 죄를 예수님께 드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를 주신다는 교리이다. 신학자들은 이 교환을 전가(imputation)라고 부른다. ⑵성도의 성화과정에 필요한 십계명의 규범적 기능을 부인하였다. 칼빈이 말한 ‘율법의 제3용도’를 부인하였다. 결국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세대주의 종말론과 근본주의신학을 바탕으로 사역하였다. 결국 십계명을 무시하는 도덕률폐기론, 즉 율법폐기론이 만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신학의 극단적 열매가 구원파의 회개무용론, 도덕률폐기론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한국의 개신교는 세대주의 신학의 지배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세대주의 영향으로 한국교회는 이스라엘과 교회, 그리고 율법과 복음을 이원론적으로 이해하였다. 점진적 계시와 관련하여, 한 세대는 하나님의 경륜 안의 한 단계다. 1960년대 초부터 세대주의적 성경해석으로 회개없는 잘못된 구원과 임박한 종말을 강조하며 나타난 이단은 다미선교회나 구원파만이 아니다. 지방교회의 사상적 뿌리도 세대주의다. 기존교회 안에서도 특히 극단적 세대주의 신학(ultradispensationalism)에 따라 성경을 해석해 이스라엘이 독립하던 해 1948년으로부터 한 세대되는 1988년 전후에 예수가 재림하고 신자들은 휴거된다고 가르치던 대형교회 목사들이 있었다.
 

2. 세대주의 신학과 개혁주의 신학(언약신학)은 어떻게 다른가?

 

세대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어떤 특별한 계시에 순종하는 것과 관련해 인간이 시험받는 기간”이다. 세대주의는 구약은 율법시대, 신약은 은혜시대로 구분하기를 좋아한다.

 

세대의 수: 바울은 적어도 세 개의 세대를 언급한다. 현재 이전의 세대(골 1:25-26), 현 세대(엡 3:2), 그리고 장래 세대(엡 1:10). 이 세 세대는 네 번째 세대를 요구하는데, 율법 이전 세대다. 그리고 율법 이전 세대는 다시 두 개로 분류되는데, 타락 이전과 타락 이후로 구분된다. 성경의 전천년설적 이해의 관점에서는 적어도 다섯 세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7세대는 노아홍수 이후의 한 세대와 아브라함의 부름을 계기로 한 또 한 세대를 상정하고 있다.

 

세대주의신학은 문자적 해석원리를 따른다. 이 해석원리를 적용하다보면,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구분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구약시대에 시작된 것이 아니고 오순절 날 시작된 것으로 본다.

 

유병언, 이요한, 박옥수 등도 구원받은 사람은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율법의 속박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의 의미를 오해하여 가르쳤다. 그러나 성도가 율법에 대해 죽었다는 말은 율법의 정죄와 저주에서 해방된 것이지 율법의 도덕적 교훈에서 자유하게 되었다, 즉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이 세대주의 신학의 맹점이다. 예수님은 간음 중에 잡혀 온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외면하고 은혜만을 강조하다 보니, 유병언과 구원파 교인들의 삶에서 보듯이, 양심의 가책이 없이 도적질하고, 간음하고, 거짓말하고, 남의 것을 속여서 빼앗고 탐내고 살인을 저지르는 결과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새대주의의 우산 아래서 수 많은 이단이 독버섯처럼 생겨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개혁주의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 세대주의를 이단이라 할 수는 없지만 유사기독교의 나쁜 신학이 틀림없다.

 

언약신학: 하나님은 행위언약에 실패한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은혜언약(covenant of grace)을 준비해 주셨다. 은혜언약의 핵심내용은 누구든지 자기의 노력이나, 자기의 선이나, 자기의 의를 의지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는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어 영생을 소유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은혜언약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는 영생과 부활의 축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언약을 맺고 노아와 언약을 맺고 최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언약을 맺으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고, 이삭, 야곱과 모세, 다윗과 언약을 맺고 점진적으로 그 뜻을 계시하셨는데, 모든 언약에 보면, ‘아브라함의 후손,’ ‘이삭의 후손’, ‘야곱의 후손’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단수 ‘자손’(seed)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수로 적혀 있는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결국 이 모든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영생의 복을 얻게 되리라는 은혜언약에 대한 점진적 계시이다.

 

구약시대에는 그림자와 예표를 통해 구원을 받았지만, 신약시대에는 실체를 보고 믿고 구원받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구약시대에는 구원에 관한 모든 것이 그림자였고 예표였지만, 시 언약은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현현으로 죄사함과 영생을 주신다는 그림자를 폐한 언약이다(피영민, 2015).

 

그리스도의 법과 모세의 법은 다른 법이 아니다. 신약과 구약에는 연속성이 있다. 각 법은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다; 그리고 두 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종용하는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의 법은 모세의 법을 더 심화시켰을 뿐이다.

 

개혁신학(Reformed Tradition)은 멜랑히톤, 루터, 칼빈과 쭈빙글리의 신학적 전통을 따르는 것으로, 모세의 법에는 도덕적이고, 의식적이며, 시민적 측면이 있는데, 도덕법에는 ①시민적, ②영적, ③규범적 3가지 용도가 있는 것으로 본다. 언약신학은 타락 이후 하나님은 하나의 은혜 언약 아래 역사하신 것으로 본다. 통일된 특징은 은혜의 언약이며 그 언약 아래 있는 구원적 계획이 있다. 구약에서는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는 것으로 구약의 언약은 기대적 성격이 있고, 신약에서는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성취된 구원으로 그 언약의 성격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세대주의 신학은 율법과 복음을 대립적으로 이해했다. 율법의 세 가지 용도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면서 이단집단과의 논쟁을 하면서 정리된 것이다. 교회역사를 보면, ‘율법’(말씀)과 ‘성령’, 그리고 ‘나’ 사이에 세 가지 역학적 관계를 찾아볼 수 있다. ⑴말씀을 무시하고 성령의 역사만 강조하는 경우; ⑵말씀은 강조하는데 성령의 역사를 무시되는 경우; 그리고 ⑶말씀과 성령이 조화를 이루는 경우이다. 첫째는 율법을 배격하고 성령의 직통계시만을 강조하는 율법폐기론자의 경우로 율법을 폐하고 마음대로 살려던 이원론에 빠진 영지주의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금 한국에는 성령 사역의 이름으로 다락방 운동(가계저주론, 조상 죄), 신사도운동(제3의 물결과 같은 현상적인 집회), 알파코스와 은사남용, G-12와 견고한 진, 쓴 뿌리, Soul Tie), 귀신론에 기초한 내적치유 운동이 행해지고 있으나 계명과 율법을 지키는 것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이단들 가운데 김기동 베뢰아 운동, 변승우의 큰믿음교회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둘째는 말씀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로서 율법주의 오류에 빠진 이들이다. 율법주의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려는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이런 율법주의자의 문제점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선을 행한 다음 자기 의(義) 사상에 빠지는 데 있다. 성령의 도움 없이 율법을 지키려는 왜곡된 보수주의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말씀을 따라 생활하려는 노력이 강조되는 것에 비해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는 배제되는 성향이 있다. 세 번째는 받은 바 이신득의의 은혜에 감사해서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말씀에 따라 생활하는 복음주의자들이 있다.

 

약 130년에 이른 한국교회사 속에서 대부분의 교역자들과 부흥사들은 세대주의 신학에 근거하여 종말론을 가르쳤는데, 매우 극적인 내용들 때문에 듣는 자들은 쉽게 거기에 빠져들어갔다. 예수의 재림을 왜곡되게 가르치는 이단집단들이 세대주의 종말론에 뼈대를 둔 것은 그 매혹적인 극적인 정황 설명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세대주의 사상은 한국교인들의 심성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권호덕). 세대주의 사상에서 탈피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무천년 왕국설이 본격적으로 우라나라에 소개되면서부터이다.
 

3. 율법이란 무엇인가?

 

존 파인버그(John Feinberg)에 의하면, 율법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주신 “삶의 규칙(rule of life),” 순종하고 지켜야 하는 계명들(commandments)이다. 율법은 넒은 의미로 성경전체, 중간적 의미로 모세 오경, 좁은 의미로 십계명을 가리킨다. 가장 좁은 의미에서 율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인 십계명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계명은 두 돌비에 새겨졌다. 첫 번째 돌비에는 제1계명부터 제4계명까지 나와 있고, 두 번째 돌비에는 제5계명에서 제10계명까지 나와 있다. 전자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대신(對神)관계가 기록돼 있고, 두 번째 돌비에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대인(對人)관계가 기록되어 있다.

 

율법의 기원은 출애굽 사건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은 억압받던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모든 피조물과 참된 관계를 누릴 수 있는 지침서, 즉 율법을 주셨다. 하나님은 그의 언약백성에게 영속적 관계를 위해서 항상 율법을 주신다. 율법에는 제사법적(ceremonial) 차원과 시민법적(civil) 차원, 그리고 도덕법적(moral) 차원이 있다. 세 차원은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레위기는 주로 제사법(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을 다루고, 신명기는 도덕법을 기록하고 있다. 의식적인 제사법은 금식과 침례(세례), 할례, 유월절, 정결법, 십일조 등과 관계되는 것이고, 시민법은 소송문제, 안식일, 결혼, 노동과 같은 신자들의 국가에 대한 책임을 다룬다. 도덕법은 안식일을 제외한 십계명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것으로 거룩하고 선하며 의로운 것이다.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도덕법은 구약시대에나 신약시대나 언제든지 타당하게 적용되는 영구불변의 항존법(standing law)이다. 제사의식법은 신약시대에 적용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번에 영원한 희생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신약시대라 해서 십계명이 폐해진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세대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신약에 와서 도덕법은 더욱 굳게 세워지고 있다(마 5:19; 롬 3:31). 신약에서 율법은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으로 흡수, 통합되었다. 모든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의 사랑을 한 데 묶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순종하고 지키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구원파는 성경과는 너누 거리가 먼, 매우 위험한 율법이해를 하고 있다. 율법을 너무나 좁게 이해하고 있다. 율법을 설명할 때, 성령과 인간 사이의 역학적 관계 속에서 이해하지 않고 존재론적으로 설명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성화를 위해 도덕법으로서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 29:18).

 

율법은 어떤 기능을 하며, 어떤 가치가 있는가? 율법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한 까다로운 조건이 아니다. 율법은 우리를 살리고, 교육시키며, 마음을 정화시키고, 백성들을 하나로 묶으며,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피영민, 2008).

 

개혁주의 신학 전통에 따르면, 비신자는 율법을 순종하고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인해 저주 아래 있다. 그러나 신자에게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은혜에 의한 구원에 감사드릴 길을 마련해주고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보여줄 기본적인 방법을 제공한다. 성령은 또한 율법을 통해 죄를 책망하시며 회개케 하신다. 모세의 율법의 규범적이고 일차적인 용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규칙을 제공하는 것이다. 거룩한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모든 법의 근간이 된다.

 

출애굽기에서는 십계명을 계속 ‘증거판’(Testimony)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계시하신 것이라는 의미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대한 계시다. 따라서 이 뜻에 순종하면 축복을 받고 거역하면 진노하신다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드러난 것이다. 다음의 ‘율법의 3가지 용도’는 멜랑히톤, 루터와 칼빈 같은 종교개혁가들의 이신칭의(이신득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율법의 3가지 용도: 하나님은 어떤 목적으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는가? 첫째로 율법의 용도 가운데는 악을 제어하는 시민적 용도(civil function)가 있는데 죄인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 있다.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율법은 자기를 비추어볼 수 있는 거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십계명의 10가지 계명 중 8가지가 “하지 말라”는 부정적 명령의 형태를 갖고 있다. 그래서 칼빈은 “십계명은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재갈과 같다”고 했다.

 

인간이 하나님과 같지 않다는 것과 인간이 선하지 않다는 것, 인간은 저주와 정죄를 받기에 마땅하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하는 데 율법의 목적이 있다. 우리는 율법에서 저주와 정죄 소리만 듣는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롬 3:20).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여Td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 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 인간은 구원파에서는 율법의 죄를 인식하고 깨닫게 하는 기능만을 주로 강조하고 있다.

 

둘째는 신학적, 영적 용도(spiritual function)로서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인식하도록 가르치는 용도로서, 율법은 죄를 책망하고 예수를 찾도록 하는 몽학(蒙學)선생의 기능을 한다. 율법은 절망에 빠진 죄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도록 만들기 위해 주어졌다는 것이다. 율법은 인간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엄격한 교사(몽학선생)인 것이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도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 3:24).

 

셋째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해당하는 세 번째 규범적 용도(normative function)가 있는데, 누구든지 중생하면 율법을 지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을 수 있도록 기능한다는 것이다. 율법은 중생인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 죄인은 회개한 후에도 여전히 죄인이고 또 죄인으로 남는다. 율법은 칭의함을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순종토록 하기 위해 주신 것이다. 율법의 제3용도는 중생자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하는 것이다. 중생한 후에도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율법을 지킬 수 없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만으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도움으로 율법을 지킬 수 있다. 이 성령은 성화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특별히 십계명을 판단의 잣대로 이용한다.

 

성경은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고 신령하다(롬 7:12, 14)고 말하고, 율법을 ”하나님의 법“(롬 7:22, 25)이라고 부르고 있다.
 

4. 성도의 행복을 위해 주신 율법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언하고 있다: “내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율법은 원래 구원받은 선민을 괴롭히고 억압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다. 명령과 규례를 지키면 우리는 행복해진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하고 있다. 하나님을 참으로 인격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율법폐기론이나 불순종의 삶으로 이어지지 않고, 은혜와 사랑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삶이 따르게 되어 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서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요일 2:3).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히브리서 저자는 구원받은 성도는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히 12:1-3).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죄와 악이다. 이 세상에 있는 악의 세력의 근원은 마귀이고 내 안에 있는 악은 바로 죄성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세력, 즉 밖에서 성도를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사단의 세력과 안에서 거룩과 경건을 방해하고 성령의 소욕을 방해하는 죄성, 이 두 가지 세력과 싸우는 가운데 성화를 이뤄야 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그들의 사랑을 표현하고 그들의 하나님과의 관계와 서로의 관계를 관장하는 수단으로 삼으라고 주신 것이다. 율법은 구원의 방법이 아니고 언약적 관계 안에서 질서 있는 삶과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수단으로 주어진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율법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그런데 이단 구원파는 율법과 종교에서 해방되는 것이 구원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기존교회에서 하는 것은 종교요, 자기들이 전하는 것은 복음이라고 주장한다. 일단 구원을 받으면 율법과 종교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한국의 모든 정통교단은 구원파를 율법폐기론자(도덕률폐기론자들)로 규정한 것이다. 우리는 율법의 형벌과 저주로부터 해방된 것이지, 그 교훈과 도덕률로부터 해방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시지 않았다. 바울은 사랑으로 율법의 구체적 계명을 준수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약속 있는 첫 계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엡 6:2).

 

권신찬은 로마서 7장의 남편과 아내로 비유된 율법과 성도의 관계에 대하여 설교하면서, “이제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으니”의 내용을 들어, 구원받은 성도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주일성수, 십일조, 금식, 새벽기도, 기도생활까지도 율법이라고 하여 이러한 규범에 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과거에 장로교 목사로서 이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으려 노력했던 것이 소용이 없었음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그는 이제 자기를 괴롭혔던 무서운 폭군인 율법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게 되었다면서 은혜를 누리면서 자유롭게 살자는 무서운 자기복음을 만들었다(종교에서의 해방, p.43).

 

구원받은 후에는 율법이 필요 없게 되었다고 하니 구원받은 후에 짓는 죄는 무엇으로 죄인지 알 수 있겠는가? 알 필요도 없는가. 아니면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고 할 것인가? 도둑질, 간음, 부모거역, 탐심, 살인 등의 죄를 무엇으로 어떻게 알겠는가, 그리고 구태여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할 이유도 없지 않겠는가?

성경에서 율법이 폐해졌다고 말씀할 때는 그 율법이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해당하는 경우에 한해서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모든 율법과 법도 즉 모세의 율법은 십자가로 폐한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할례나 제사제도나 절기 등의 제사법이나 시민법에 관련된 율법이 폐해졌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그러한 규례를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신자는 율법에서 자유하다.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4).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인해서 정죄 아래 있지 않다는 뜻이다. 바울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임을 상기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선언하고 있다(갈 3:11-13).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신자는 율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신자는 자신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데 깊은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예를 들어, 시내산 율법을 주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 20:2)고 소개하신 후에, 즉 죄의 굴레에서 속량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자 이제 너에게 보여준 자비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시편 1편은 복있는 사람은 “주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하고, 시편 19편에서는 율법의 완전함을 노래하며, 119편에 와서는 “나로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35절)고 노래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율법의 정죄와 형벌과 저주에서 구원한 것이지 율법의 교훈과 윤리적 규범에서마저 해방시킨 것이 아니다. 모세 율법의 일부분인 도덕적인 윤리규범은 신약에 와서 다시 강조된다. 도덕적 율법은 폐한 것이 아니라 새 계명으로 주신 것이다. 사도 요한은 구원받은 성도가 율법(계명)을 지킬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고 말씀하신 후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12절)고 가르치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2-3).

 

사단은 인생의 목적이 죄를 안 지으려 피 흘려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일 인생의 목적이 죄를 안 지으려 피 흘려 노력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지 않고 율법을 강화시켰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은혜를 경험해서 죄를 안 짓게 되길 원하신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원치 않는 것은 하고 싶지 않은 게 정상이다. 친밀하게 사랑하는 관계가 이루어지면, 율법과 죄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행하는 것과 율법을 지키는 것은 같은 것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자로 생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다(윤동일, 2008).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기 전에는 자기 자신을 의롭게 하려는 노력이 율법의 반역을 초래하였고 죄의 노예가 되게 할 뿐이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롭게 율법에 순종하여 의를 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성경은 율법이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고 선언한다(롬 7:12). 바울은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이 선한 것인 줄 안다고 말했다(딤전 1:8).
 

5. 율법과 은혜의 관계

 

그리스도인은 구원받기 위해 율법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에 율법을 행하는 것이다. 율법의 핵심은 십계명이다. 십계명을 주신 시기는 출애굽 후, 즉 구원받은 후이다. 율법은 구원받은 백성의 삶의 지침서이다. 은혜가 감사해서 주를 위해 율법을 지키며 생활하는 것이다. 최고의 경건은 계명 준수를 즐기는 삶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순종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불순종으로부터의 자유다.” 율법을 무시하고 준수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유도하는 종교는 하등종교, 사이비종교가 분명하다.

 

율법과 은혜. “한국기독교의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율법과 은혜를 원수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율법은 모세를 통해서 주었고, 우리는 율법과 관계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은 은혜만이 우리가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율법폐기론’이다. 세대주의 종말론이 한국기독교를 망쳐놓은 원인 중 하나다...하나님의 십계명이 한국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고 그 영향력은 미미하다. 한국의 기독교는 은혜만 강조했지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율법폐기론에 빠졌기 때문이다. 모세 언약의 모든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된다는 은혜 언약으로 가는 예표요, 단계다”(피영민, 2007).

 

성경에는 아브라함 언약, 모세언약, 다윗언약, 등 많은 언약이 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다. 그것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언약이 여러 가지 언약들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에베소서 2장 13절에는 “약속의 언약들”(Covenants of the Promise)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약속은 단수로 되어 있고 언약은 복수로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 한 가지를 이루는 여러 가지 언약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모세의 가르침(언약)이나 나의 가르침은 동일하다”고 말씀하고 있다. “내가 준 언약과 모세언약은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율법과 은혜를 대립적으로 볼 수 없다는 확실한 근거가 된다.

 

율법은 하나님이 택하여 구원하신 백성들에게 삶의 원리가 된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따라가야 할 삶의 원리이며 규칙이다. 십계명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모세언약은 구원받은 백성이 어떻게 사는 것이 마땅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삶의 원리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마음에 두고 십계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키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명을 우리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는 없다. 항상 거룩하고 완전한 계명을 늘 기준으로 삼아 우리 자신을 비추어보고, 죄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죄가 있으면 회개하고 자복함으로써 죄씻음을 받고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은혜가 공짜라고? 은혜란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는 호의이다. 우리는 흔히 은혜는 공짜로 아무 조건 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 조건 없는 은혜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호의는 철저한 청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보듯이, 씨뿌림은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목적으로 하는 투자다(마 13:1-7). 베풀어진 은혜에 대한 합당하 반응과 철저한 청산이 강조된다. 은혜는 자격이라곤 전혀 없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호의적인 투자다.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는 우리 속담은 성경의 은혜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관계중심적인 체면사회에서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는, 거저 주어지는 공짜 선물이란 개념의 은혜는 없다. 선물은 자발적인 순환을 요구한다. 선물(은혜)을 받은 사람은 자발적인 고마움과 부채의식을 갖게 된다. 은혜의 조건은 먼저 우리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고(엡 2:9), 다음 조건은 선한 일을 행하게 하려는 것이다(10절). 신약성경은 구원이 은혜의 선물이니까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는 충성스런 삶을 요구한다. 은혜는 하나님의 투자이기 때문에 배은망덕한 자는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이민규, 2014).

 

갈라디아서는 신실함과 순종의 삶이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씀한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갈 5:16). 성령을 따라 살지 않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다(갈 5:21).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약 2:24).

 

은혜로 구원받은 신자도 이후 지속적으로 죄와 싸우며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 구원받은 신자의 특징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죄를 싫어하게 되고, 죄에 대해서 저항하게 되는 새로운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구원받은 신자에게서는 죄와 투쟁하는 거룩한 삶의 새 질서가 시작된다. 존 웨슬리가 가르친 것처럼 ‘완전성화’란 신자의 삶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 그 어떤 위대한 그리스도인도 완전하게 자신의 죄를 정복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전처럼 죄를 즐거워하거나, 무방비 상태로 죄에 끌려가거나, 편안한 마음으로 죄를 즐기고 사랑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내주하시면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요 16:8).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로 알려져 있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말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처럼 크게 오해되고 있는 말씀도 드물다. 이 말씀을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율법과 상관이 없다거나 율법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고, 읽을 필요도, 더 이상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고 이해하는 이들이 있다. 이것은 심각한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율법에 대해 죽었다는 말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도덕적인 율법과 그 도덕적 요구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가장 위험한 도덕률폐기론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율법에 작별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더 이상 구원의 수단으로 율법 아래 있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을 지키고 존귀히 여겨야 할 것이며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이를 행해야 한다“(로마서 7장 강해, p.27). 회개와 믿음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진정으로 구원받은 신자는 그 결과로 삶 가운데 선한 행위를 보이게 되어 있다. 우리의 선행은 우리를 의롭게 해주지 못한다. 우리의 선행은 어디까지나 이미 우리를 새롭게 해주신 하나님에 대한 예배행위다. 선한 일에는 거창한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 삶의 모든 영역 중 만물을 다스리시는 그리스도가 ‘내 것!’이라고 선포하시지 않은 영역은 단 하나도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세속적인 일’과 ‘신성한 일’(거룩한 일)이 따로 있지 않다. 마틴 루터도, 교회에서 하는 일만이 아니라 설거지와 빨래하기, 낙엽치우기, 기저귀 갈기도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5.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들: 예수님의 재림과 세대주의 종말론

 

사도 요한이 본 천년왕국 비전에 대한 정확한 해석문제는(계 20:1-10) 2세기 이래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많은 흥분과 논란을 일으켜왔다. 그 과정에서 세 가지 기본적 입장이 확고해졌다. 그 세 가지 입장은 각각 재림이후에 천년왕국이 온다는 ‘전천년설(premillennialism),’ 천년왕국 후에 재림이 있다는 ‘후천년설,’(postmillennianism) 그리고 재림 이전이나 이후나 천년왕국이 없다는 ‘무천년설’(amillennialism)이다.

 

각 견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에 대하여 나름의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전천년설이 대세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지만, 현재는 천년왕국의 천년을 교회역사에 대한 상징으로 보는 무천년설을 추종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천 년을 지금 천국에서 이뤄지는 죽은 성도들의 통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전쟁과 기근, 지진과 같은 징조가 있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되며, 배도와 함께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있고 7년 대환란이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대환란과 천년왕국을 교회가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실현되는 장으로서 본다. 교회시대의 정점은 휴거이며, 이때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신실한 제자들은 ‘공중에서’ 만나서 천국으로 데리고 가서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여실 것이다. 이렇게 참된 교회가 지상에서 사라지면, 적그리스도가 7년 동안 악마적 통치를 시작하며, 이때 하나님의 진노가 땅위에 쏟아진다. 이러한 대환란 기간에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이 와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의 군대와 함께 재림하셔서 주님의 원수를 모두 처부순다. 그 때 이스라엘은 비로소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할 것이며, 지상에 천년왕국이 세워질 것이다.

 

세대주의 종말론은 기독인들로 하여금 미래의 어떤 시점(예수의 재림시점)에만 집착하도록 만듦으로서 현실의 삶을 등한시하도록 만들었다. 1992년 10. 28. 휴거설을 주창했던 다미선교회나 현재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은혜로교회는 소속교인들이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현실을 무시한 채, 강제적으로 또는 인위적으로 회개하게 만들었다.

 

연대기적 해석을 하게 된 세대주의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분리시키고, 율법과 은혜를 대립적 개념으로 분리시켰다. 율법은 모세와 행위와 연관된 반면, 은혜는 그리스도와 믿음에 연관되어 이해되고 있다. 이들은 “율법은 결코 구원이나 칭의의 수단으로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하는가 하면, 스코필드(Scofield)에 의하면, “율법은 죄인을 칭의하지도 않고 신자를 성화시키지도 않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세대주의 성향은 영적인 것과 실제적인 삶을 분리시킨다. 이런 이원론적 사고방식은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을 등한시하고 확실하지도 않은 환상적인 이상에 몰두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미래의 어떤 유토피아나 지상천국을 약속한 이단종파에 미혹되어 현실의 삶을 망친 경우를 많이 목격하고 있다.

 

무천년설에서는 천 년을 문자 그대로 볼 수 없고 완전수인 10을 세 번 곱한 충만 수로 봐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이다. 무천년주의자들은 천년왕국의 천 년을 교회역사에 대한 상징으로 본다. 천 년이란 교회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승리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칼빈과 어거스틴도 이 입장을 취했다. 천년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인 숫자로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한 사람도 남김 없이 모두 구원하시는 충만한 기간을 천 년으로 보는 것이다. 천 년은 단지 택한 백성을 전부 구원할만한 충분한 기간이다.

 

20세기 한국의 많은 부흥사들이 전했던 세대주의전천년설은 성경을 벗어난 매우 불건전한 해석이다(피영민). 종말론과 관련된 이단들은 대부분 이 세대주의전천년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공통적으로 7년 대환난, 휴거, 천년왕국, 144000, 666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종말에 대해 강박적 관심을 갖고 있는 구원파와 같은 집단의 행태를 지적하면서 균형 있는 신앙생활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예언적 교훈에 대한 지나친 관심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현재의 세계정세에 있어서는 특히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차츰 이 주제에 마음을 빼앗겨 정복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예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설교도 하지 않는다. 이 예언적 교훈에 대한 지나친 몰두 이상으로 영혼의 건강에 위험한 것은 없다. 러시아, 이집트, 이스라엘 및 그 밖의 나라들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에스겔서 37,38장이나 다니엘서 7-12장 그밖의 예언적 관점에서 여러 시기나 경우를 계산하는 데 모든 시간을 소비하며 전생애를 투입하게 되기가 쉽다. 한편 영적 의미에서는 당신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 점점 무관심하고 등한히 될 수 있다. 물론 예언적 교훈은 성경의 중요한 일부이고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장래 세계에서 일어날 사건들에 너무 관심을 가지는 나머지 우리가 지금 살아야 하는 생애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점에서 우리들의 일차적인 위험은 균형이나 조화의 감각을 상실하는 데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나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14:36).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 13). “때와 기한은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 1: 7). 우리는 복된 소망을 갖고 현실에 더욱 더 충실하고 주어진 사명을 더 충실히 감당하며 충성하고 봉사할 때 약속된 하나님의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날과 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성도로서의 거룩한 삶이다(마 24:36; 벧후 3:11,12).

 

우리는 특별한 ‘종말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는 마지막 때로서, 세상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절정에 이르기 직전의 시기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이 얼마나 될지도 알 수 없다. 우리는 선견자 요한처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때가 가까우니라.”(계 22:10).

 

우리가 지금 요한계시록에서 경고하는 말세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말세에는 네 가지 징조가 있다: ①사람의 징조 “미혹”이다(마 24:4); ②환란의 징조 “난리”이다(마 24:6); ③자연의 징조 “재난”이다(마 24: 7-8); ④종교적 징조 “이단”이다(마 24: 11, 23-24). 우리 모두는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을 준비를 갖춰야 한다.

 

우리는 재림이 가까워진다는 핑계로 나태하고 게으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살전 4:11). 성도들은 재림하시는 주를 맞아 영접하여 영원히 주와 함께 살게 될 것이다. 불신자처럼 슬퍼해서는 안 된다. 시간과 시기에 대해 성도들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 매일 경건하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서적

 

권호덕. [율법의 세 가지 용도와 그 사회적 적용]. 그리심, 2003.
김민규. [신앙, 그 오해와 진실]. 새물결플러스, 2014.
스탠리 그렌츠. [누구나 쉽게 배우는 신학]. CUP, 2000.
이인규. [평신도들이 혼동하기 쉬운 성경 50]. 카리스, 2014.
피영민. [신약개론]. 검과흙손, 2015.
Walter Elwell. Evangelical Dictionary of Theology. Baker Book House, 1984.

정동섭 cantoncrc@gmail.com

 

출처: 최덕성 교수님의 리포르만다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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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갈대는 무엇이며 상함은 무엇인가


 

예언의 영을 날개 삼아 그 자신의 시대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하신 시대로, 시간을 초월하여 옮겨간 선지자 이사야는 예언의 눈으로, 그리고 믿음의 눈으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로써,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의 영적 시야에 그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사42:1)

 

이 부분은 마태가 그의 복음서에서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된 것으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18절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소명(召命)

둘째, 소명의 수행

 

1. 그리스도의 소명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여기서(마12:20) 그리스도를 그의 의로운 종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 어느 사역보다도 위대한 사역을 감당하신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리스도는 선택되고 발탁되신 종입니다. 그는 아버지께로부터 부여받은 임무에 대해 모든 일을 수행하고 감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구원 사역을 그의 가장 위대한 일로 여기신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일에 자신의 사랑하는 독생자를 주셨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달콤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주의와 감탄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본문 초두에 '보라'라고 외치십니다.¹시험의 때에 불안한 마음은 현재 그들이 당면한 목전의 상황만을 바라보게 되는 까닭으로 상처 입은 심령의 안식처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위하여 특별히 각성될 필요가 있습니다.

시험의 때에는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참된 놋뱀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그분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참 어린 양이십니다(요1:29). 우리가 바라보는 바, 우리를 구원하는 이 대상(object)은 우리 영혼에 위로를 가져다 주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와 사랑을 바라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중보자로서 행하시고 고난당하신 모든 일들을 통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고후5:19).

우리의 죄로 인해 침해를 당하신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원의 사역을 그처럼 기쁘게 여기셨다는 사실은 우리의 믿음에 얼마나 큰 힘이 됩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에게 있고 그가 그리스도를 기뻐하시듯이,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됩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 자신뿐만 아니라 신비적 그리스도²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즉, 그 사랑은 그리스도 전부에게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우리를 동일한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입시다.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구세주 위에 안전하게 건축합시다. 그분은 너무나 고상한 임무를 지니신 부이십니다.

여기서, 우리의 위안을 위한 삼위(三位) 하나님의 달콤한 일치를 봅시다. 성부께서는 그리스도에게 임무를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그것을 공급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자신은 중보자의 직무를 수행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속은 삼위일체의 세 인격 모두의 연합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소명의 수행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소명을 시행하는 데 있어서, 그것이 왕자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화려한 행차로 요란한 소리와 먼지를 일으키면서 가 아니라 겸손한 모습으로 이루어질 것임이 여기에 규정(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마12:19)

 

사실 그의 목소리는 들려졌습니다. 어떤 음성이었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그는 소리높여 외쳤습니다. 무엇이라고 외쳤습니까?
"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사55:1)

 

그리스도의 임하심은 겸손하였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온유한 것이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성경에 기록된 것입니다.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다루셔야 할 자들의 상태

① 그들은 상한 갈대였습니다.

② 그들은 꺼져 가는 심지였습니다.

 

둘째, 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태도.

그분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십니다. 여기에는 문자적인 뜻보다 더 큰 뜻이 담겨 있습니다. 즉 그분은 그들을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분의 이 같은 동정심 있는 돌보심은 '심판하여 이길 대까지' 변치 않고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심령 속에 시작된 이 은혜의 역사는 그것이 완성에 이를 때까지 모든 저항하는 죄의 부패성을 극복할 것입니다.

 

[본문의 첫째 주안점]

 

그리스도께서 다루셔야 할 사람들의 상태는, 그들이 상한 갈대이며, 꺼져 가는 심지라는 것입니다. 나무가 아니라 갈대입니다. 그것도 온전한 갈대가 아니라 상한 갈대입니다. 교회는 약한 것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즉, 새들 중에서는 비둘기요, 나무 중에서는 포도나무요, 들짐승들 중에서는 양떼요, 사람 중에서는 더 연약한 그릇인 여자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상한 갈대와 꺼져 가는 심지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회심하기 이전에 그들은 상한 갈대입니다. 또한 회심한 후에도 종종 그렇습니다.

 

1) 상한 갈대는 일반적으로 예수님께 도움을 받고자 나아왔던 사람들처럼 어떤 비참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2) 그는 그 비참함 때문에 그 비참함을 야기시킨 죄를 깨닫게 된 사람입니다. 죄가 아무리 자신을 위장하려고 해도 상함과 부서짐은 죄의 결과로 나타나고 말기 때문입니다.

3) 그는 죄와 비참함으로 상하기까지한 민감한 사람입니다.

4) 그는 스스로를 구원할 힘이 없음을 알고, 다른 이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하는 끊임없는 욕구에 이끌리게 됩니다. 그가 가진 어떤 희망은, 비록 그가 담대하게 자비를 요구하지는 못하지만, 그를 일으켜 자신을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합니다.

 

이 희망의 불씨는 타락된 본성에서부터 나오는 의심과 도루염에 의해 저항을 받으면서 그로 하여금 연기를 내며 타는 불꽃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이 두가지 '상한 갈대'와 '연기를 내며 타는 불꽃'이라는 표현이 함께 쓰여 영적으로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사람의 상태를 묘사해 주는 것입니다.

 

역자주 )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으로는 '꺼져 가는 심지'인데 영어로는 smoking flax 즉 '연기를 내며 타고 있는 불꽃'을 의미합니다. 한글 번역은 그 심지가 꺼져 가는 것을 주로 의미하는 것으로 느껴지지만 영어로는 비록 연기를 내며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불꽃이 아직도 피어 있다는 점에 강조를 두고 있습니다. 한글 번역과 영어가 담고 있는 뉘앙스가 반대되고 있어 여기서 한글 그대로의 번역이 곤란합니다. 그러하기에 이하에서 '연기를 내며 타는 불꽃'이라고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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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기독교강요 전체요약

 [출처] 칼빈의 기독교강요 전체요약 |작성자 kingmaker
 
기독교 강요 : 역사, 저작, 목적, 사상적 배경(17)


1534년 칼빈은 파리 대학 취임 연설문이 문제가 되어 방랑 길에 올라 여기 저기를 떠돌다가 1535 1월에 바젤로 오게 되었다. 그곳에서 같은 신앙을 가진 형제 자매들이 케도릭으로부터 잔인한 박해를 받고 있는 것을 보고 저들을 변호하기 위해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유명한 기독교 강요가 되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겨우 26세에 불과했다. 그의 저서를 본 많은 학자들이 그를 '복음주의 신앙의 최상 위에 있는 개혁파 신학의 토마스 아퀴나스'라 하면서 극찬을 했다. 
케도릭에서는 이 책에 대해 혹독한 비평을 하고 말살하려 했지만 복음 주의자들은 이 책의 출현을 열광적으로 환영하면서 사도 시대 이후 가장 명석하고 확신에 넘치는 기독교 진리의 변호라고 했다. 
그는 이 책의 첫 출판으로부터 23년 동안 끝임 없이 수정 개정 작업을 했다. 그의 첫 출판은 1536년에 시작이 되고 그의 마지막 출판은 1559년에 마쳣는데, 그 두 사이에 사상적인 변화와 차이가 전혀 없었다. 즉 성경에 관한 지식은 점점 깊어졌으나, 처음의 사상과 신앙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으니, 그가 처음부터 성경에 대한 정확한 학식을 가졌으며,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성경에 입각하여 추호도 틀림이 없는 상태에서 첫 출발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칼빈의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심원한 지식, 하나님 말씀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저자의 특징이 되는 충실한 해석과 조직화를 위한 세심한 관심" 등을 보게 된다. 
만일 이 저서가 없었다면 루터가 죽은 후 신교는 극심한 신학적 혼란에 빠졌을 것이고, 오늘과 같은 말씀 위에 바르게 선 교회가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1. 기독교 강요의 역사 
초판은 1536 1월에 바젤에서 기독교 강요(Christian Religions Institutio)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이 초판은 총 6장으로 되어 있는데 첫 4장은 율법(십계명 해설), 신앙(사도신경 해설), 주기도, 성례 전으로 되어 있고(루터의 요리 문답 순서에 의해 배열) 5장과 6장은 논쟁적인 기술 법으로 거짓 성례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 기록을 했다. 
5장에서 그는 이제까지 성례 전이라고 불리는 케도릭의 견신례, 고해례, 안수례, 결혼례, 종유례등이 성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6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개념을 해설할 뿐 아니라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말했다.

1년이 못되어 라틴어로 쓰여져 소수의 사람밖에 볼 수 없었던 초판이 매진되고 1539년 새로운 라틴어 기독교 강요를 출판했다. 이 때 그는 책이름을 바꾸어 (Institutio Christian Religions )라고 했고, 6장이던 것이 17장이 되었다.

재판에서 칼빈은 그 서두를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인간에 관한 지식'으로 나누었다. 여기서 그는 삼위일체론을 상당히 확대해서 해석했다. 
1541년 재판이 나온지 2년 후에 기독교 강요는 모국어인 프랑스어로 이 책을 번역 출판했다. 그리고 이 책은 프랑스의 고전이 되었다. 
1543년 그는 라틴어판 기독교 강요를 다시 출판했다. 그리고 1545년에 이 책을 프랑스어로 번역 출판했다. 세 번째 판은 17장에서 21장으로 늘어났다. 그는 이 증보판에서도 서약과 인간의 전통에 관한 것들을 논했다. 
프랑스 판이 나온지 5년 후에 즉 1550년에 또 증보된 라틴어판이 나왔으며, 1551년에 프랑스 번역판이 다시 나왔다. 그리고 그 해 다시 재판을 만들었다. 1550년과 1557년 사이에 이 책은 무려 7판을 출판해야 했다. 
1550년 판에서 그는 성경과 그 권위, 성자의 형상 예배, 양심에 관한 설명을 했다. 그는 새로운 판을 낼 때마다 새로운 인용문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그가 끊임없이 고대의 저작들을 읽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기독교 강요의 결정판은 1559년 라틴어판과, 1560년 프랑스어 판이다. 이 때 칼빈은 四日熱이라는 병에 걸려 죽을 고통을 당하고 있었으나, 그의 저서를 계속 精査하여 증보하므로 21장에서 배가되는 80장이 되도록 하여 증보판을 냈다.

 

2. 기독교 강요의 목적. 
앞에서도 말했듯이 케도릭으로부터 핍박을 당하는 성도들을 변호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급히 이 책을 출판하게 된 또 다른 직접적인 원인이 있었다. 그것은 1534 7 17일 밤에 일어 난 벽보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느카텔(Neuchatel)교회 목사인 '앙트완느 마르코르트'(Antoine Marcourt)에 의해 벌어진 일이 였다. 그는 미사의 남용을 비판하는 벽보를 사방에 부착했는데, 그 내용은 "유일하신 증보 자시오, 구세주이신 우리 주님의 그 거룩한 성찬을 직접 반대하여 만들어진 교황주의의 미사의 그 무섭고 용납할 수 없는 남용에 대하여"라는 것이 였다. 그의 논조는 매우 날카롭고 실랄 했다. 로마 케도릭은 이 일을 빌미로 여러 명의 복음 주의자들을 체포 화형을 시켰고 그 첫 번째 순교자는 '바델르미 밀론'이였다. 
이 사실이 유럽 전역에 전해지자 독일 교회는 크게 개탄하고 폭군들의 폭력을 성토했다, 그러자 케도릭에서는 자기들의 만행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말로 가득한 야비하기 그지없는 소책자를 만들어 배포했는데, 그 내용은 이런 야비한 폭력이 제세례파에 의해 감행되었으며 그 폭도들은 종교적 이유뿐 아니라 정치적 야욕을 가지므로 자행된 것이라는 모략이 였다. 독일과의 관계를 중하게 여겼던 프랑스의 프란시스 1세는 독일 교회와 국민들의 비난을 무마하기 위해 이와 같은 거짓말을 정당화 하는 선언을 1535 2 1일에 공포했다. 그는 이 잔인하기 짝이 엇는 살인은 제세례파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고 했으며, 정치적 음모가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은 거짓 말에 대해 칼빈은 크게 분노해서 '프랑스 왕에게 드리는 글'을 이 저서의 첫머리에 기록했다.

여기서 그의 기독교 강요 강요를 기록한 두 가지 목적이 나타나 있다. 
첫째는 기독교의 교리를 가능한 한 단순하고 쉽게 기록하고 조직화하므로 써, 그리스도교를 탐구하는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기독교를 쉽게 이해하도록 했으나, 라틴어로만 출판되어 많은 사람에게 읽혀질 수 없었으며 
둘째는 기독교를 변호하기 위해서였다.

 

3. 그가 죽기 전 5년까지 줄기차게 저술을 계속했는데, 그의 이런 저술은 그의 독창적인 특징이 있지만, 그가 다른 개혁자들을 도외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에게 많은 영향을 준 개혁자들은 어거스틴, 루터, 쭈빙글리, 멜란히톤, 부처 등이 였으며 칼빈은 그들의 사상을 조직화하고 체계화했다고 해도 잘못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칼빈은 그런 신학자들의 저술이나 사상만 의존한 것이 아니다. 그의 제일 되는 신학적 원천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성경이다. 그는 성경 전체를 면밀하게 연구했고, 구약에 대한 연구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는 성경에 대해 완전히 깨달아 아는 지식을 가졌으며, 사상적으로는 어거스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그리고 다른 고전들을 많이 인용했다.

칼빈이 스콜라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그의 사상을 곡해한 잘못된 생각이다. (신복윤)

프랑스 왕 프란시스 1세에게 드리는 헌사(獻辭) 
생략

 

1 부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75)

: 하나님의 존재라는 말을 쓰지 않고 지식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칼빈 신학의 구조와 내용에 있어서 계시가 중심이 되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1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을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면 이 둘은 어떻게 서로 관련되어 있는가?

 

1. 우리 가진 모든 참되고, 건전한 지혜는 두 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 하나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요, 또 하나는 사람에 관한 지식이다. 이 두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쪽이 먼저이며, 어느 쪽의 지식이 다른 쪽의 지식을 산출하는가를 알기는 쉽지 않다. 
사람이 먼저 자기 자존적인 생각을 돌려 자기가 "힘입어 살며 기동" ( 17:28)하고 있게 된 원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는 아무도 자신을 바르게 살펴 볼 수가 없으며 알 수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받은 은사 중 어느 것도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없으며, 심지어 우리들 자신의 존재 자체도 하나님 안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이 축복들로 인하여 우리는 그 축복의 근원인 하나님께서 올라감을 얻게 된다. 
실로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지식의 빈곤은 우리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을 보다 더 잘 들어낸다. 특히 아담의 타락은 더욱 더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들의 영적 굶주림과 결함으로 인한 공포는 우리들을 겸손하게 하며 하나님을 찾게 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불행을 알도록 자극을 받아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다소라도 얻게 된다. 우리들 자신의 무지, 공허, 빈곤, 허약, 타락과 부패를 자각함으로써, 지혜의 참된 관계, 건전한 덕, 차고 넘치는 선, 의의 순결함이 오직 주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들의 죄악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선하신 일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미워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는 한, 자신의 재능에 만족하고,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알지 못하며, 잊어버리고 있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만족해한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은 (즉 우리 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과 죄악에 대한 깨달음 들은) 우리를 일깨워 하나님을 찾게 한다. 뿐만 아니라, 마치 손으로 끄는 것처럼 우리를 인도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나 빈곤, 또는 어리석음은 그것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을 알게 하는데 큰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2.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는 자신을 알지 못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얼굴을 응시하고 나서, 다음으로 지신을 세밀히 검토하지 않는 한, 결단코 자신에 대한 참된 지식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것은 명백한 증거가 있다. 불의, 더러움, 어리석음, 불결함을 스스로 확신하기 전에는 우리는 항상 자신이 의롭고, 바르고, 현명하며, 거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교만은 인간에게 본유적인 것이다). 
더욱이 우리가 자신만을 바라보고, 이런 판단의 유일한 표준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와 같은 확신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원래 위선으로 기우려 져 있으며, 일종의 공허한 의의 형상이 의 자체를 대신하여 우리를 충분히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허한 의의 형상에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속과, 주위는 너무나 부패해져서 더러워지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신이 인간 부패 내에서만 모든 것을 보게 되면, 우리들의 속과 주위가 마치 깨끗한 것처럼 느껴져, 우리를 만족하게 하고 즐겁게 하지만 사실, 그것은 검은 것밖에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눈에 히끄무례한 것이나, 갈색인 물체를 보았을 때, 완전한 흰 것으로 판단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가 우리들의 영혼의 능력을 평가하는데, 얼마나 과대 망상증에 있는가 하는 것은 육체의 감각을 통해 더욱 명백히 나타난다. 예를 들면, 우리가 대 낮에 땅을 내려다보거나, 주위에 있는 어떤 사물을 본다면 아마 자신이 가장 강하고, 가장 예리한 시선을 가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눈을 들어 태양을 처다 보게 되었을 때, 우리의 시력은 당장 그 광채로 말미암아 눈이 부셔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 후에 우리가 지구상의 사물을 볼 때는 그렇게 예리하던 시력이 아주 흐려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사실을 영적 은사를 생각할 때도 적용된다. 우리가 이 지상 넘어를 바라보지 못하고 자산의 의와, 지혜와 덕으로 만족하고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가장 훌륭한 양 우쭐대며 자신을 거의 半神的적 존재로 착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 돌려 그의 속성을 생각하며, 우리의 규범이 되어야 할 하나님의 의와, 지혜와 권능의 절대 완전함을 생각할 때, 전에 의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들을 즐겁게 했던 모든 것들이 최대의 불의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리고 지혜라는 것으로 우리를 교묘하게 속이던 것들은 매우 어리석은 것으로 미움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전에 능력의 탈을 쓰고 있던 것들은 가장 비참한 무력 자로 증명될 것이다. 우리에게 완전하게 보이는 모든 것들도 하나님의 순결에 비하면 그 자체가 사악한 것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3. 하나님의 위엄과 인간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할 때마다 충격을 받으며, 압도를 당한다고 성경이 말하는 그 두려움과 놀라움은 바로 여기서(인간의 부패함과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 나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은 안 계신다고 생각할 때에는, 보통 완전하며 확고하게 서 있지만, 일단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 보이시면, 죽음의 공포로 쓰러질 만큼 마음이 흔들리며 놀라다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결론적으로 인간이 자신을 하나님의 위엄과 비교해 보기 전에는, 결단코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충분히 인식할 수 없다. 더욱이 우리는 이런 놀라운 사실의 사례들을 사사기나 여러 예언서에서 자주 보게 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자주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공통적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라"( 13:22; 6:5, 1:28; 6:22-23) 
욥기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순결함을 표현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무능함과 부패를 인식케 하는 가장 강력한 논증이 된다.( 38:1 이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위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자신이 "티끌과 재"(18:27)에 지내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했으며, 엘리야도 자기 얼굴을 곁 옷으로 가리우지 않고는 주님께서 가까이 오심을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나타나심은 매우 두려운 것이다.(왕상 19:13) (모세, 이사야, 사도 요한 등에게서 그런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룹들까지도 두려움을 피해 그들의 얼굴을 가리우지 않으면, 안되었거늘( 6:2), 하물며 부패하고( 13:28), 버러지에 지내지 않는( 7:5; 22:6), 인간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에 대하여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왕이 되시고----"( 24:23) 
곧 주님께서 자신의 광채를 나타내시며, 보다 더 가까이 나타나실 때에는 가장 빛나던 광채들도 그 앞에서 어두워진다는 것이다.( 2:10,19)

그러나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고 해도 먼저는 전자에 대하여 논하고 다음에 후자를 논하는 것이 정당한 순서일 것이다.

 

2장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이며, 이 지식의 목적은 무엇인가?

 

1. 경건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그의 영광에 얼마나 유익하며, 우리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 바로 말해서 종교나 경건이 없는 곳에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나는 여기서, 타락하여 저주받은 인간의 중보자 그리스도를 구속 주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그런 종류의 지식에 대하여는 아직 언급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아담이 자기의 무죄함을 그대로 보전하였더라면, 우리는 자연의 참된 질서에 따라 살게 되었을 것이라는 그 기초적이며, 단순한 지식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이다. 인간성이 현재와 같이 파괴된 상태에서 증보 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화목 시키시지 아니하는 한, 하늘 아버지로 알거나, 구원의 창시자로 알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하나님에 대하여 호의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며, 섭리로 다스리시며, 선하심으로 양육하시며, 각종의 축복으로 우리들에게 체워 주신다는 것을 아는 지식을 가지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제시된 화목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믿음의 문제는 별개의 것이다.

하나님은 먼저 우주의 창조와, 성경의 일반적인 교훈에서 자신을 창조주로 나타내신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얼굴을 통해(고후 4:6 참조) 자신을 구속 주로 보여 주셨다. 여기서부터 하나님에 관한 이중의 인식이 생기는데 우리는 여기서 전자(자신을 창조주 나타내신 하나님)를 먼저 생각하고 후자(자신을 구속 주로 보여 주신 하나님)는 다른 곳에서 다루도록 한다.

더욱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는, 그를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성결의 근원이시며, 그 분 밖에서는 아무 것도 찾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신(믿지 않은 한)하지 않는 한, 단순히 하나님을 경외와 찬양의 대상으로 주장하는 것은 충분하지 못하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우주를 권능으로 유지하시며, 선으로 보존하시며, 특히 인류를 의와 심판으로 지배하시며, 자비로 참으시며, 보호하심으로 지켜 주실 뿐만 아니라, 지혜, , , 권능, 공의, 참된 진리등, 그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지 않은 것이 없으며, 하나님을 그 원인으로 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그에게 기대하며, 그에게 찾으며, 또한 이미 받은 것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돌리기를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식하는 것은 "종교를 낳게하는 경건"을 우리에게 바르게 가리켜 주기 때문이다.

"경건"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결합된 것을 말하는데, 이 사랑을 그의 은혜를 깨달아 앎으로써 오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빚지고 있다는 것, 자기가 누리고 있는 모든 축복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찾아서는 안된다는 것, 이런 모든 것을 인식하기 전에는 결단코,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들이 누리는 모든 행복은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진정으로, 그리고 그 중심에서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지 못할 것이다.

 

2. 하나님께 관한 지식은 신뢰와 경외를 포함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라는 질문은 헛된 생각의 장난질이다.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질문은 "하나님의 본성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그의 본성과 일치된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안내자가 되고, 교사가 되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으로 일체의 선을 하나님으로부터 찾아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께 받았음으로 또한 그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함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의 원리를 따라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 자기의 생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계획과 일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인간의 마음을 점령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의 생활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받쳐지지 아니하는 한, 그것은 극도로 부패해져 있음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지야말로 인간 생활의 법칙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하나님께서 모든 선의 근원이며, 원천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아무도 하나님을 분명히 바라 볼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부패성이 그의 마음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올바르게 찾지 못하게 하지만, 않는다면 하나님께 매달리고자 하는 욕망과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경건한 마음은 처음부터 오직 한 분이시며, 참되신 하나님을 깊이 생각할 뿐, 어떤 공상적인 신을 꿈꾸지 않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공상을 하나님이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그대로 믿는 것으로 만족하게 되었을 것이다. 더욱이 그는, 길을 잃고 방황하거나, 혹은 경솔하고, 뻔뻔스럽게 하나님의 의지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최대의 열심과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인식하는 사람은, 만물이 그의 지배하에 있음을 알고, 그가 만물의 안내자요, 보호자이심을 믿기 때문에 전적으로 그를 신뢰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모든 축복의 창시자이심을 알고 믿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때나, 궁핍할 때에는 즉시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의 보호를 구하며, 그의 도우심을 기대하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로우심을 알고 있음으로, 그를 완전히 신뢰할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은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재난에 대한 구제책을 마련해 주신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을 주요 아버지로 인정하기 때문에,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며, 그의 위엄을 경외하며, 그의 영광을 나타내기에 힘쓰며, 또한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심판자로써 죄를 엄하게 벌하시는 분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의 심판석이 자기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여 행동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일어나지 않도록 자신을 억제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지식이 매우 무서운 것이지만, 그런 사람은 비록 피할 길이 열려 있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아니 그는 하나님께서 경건한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악한 사람을 벌하시는 분으로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경건한 신자에게 여생의 상급을 주시고 사악한 자를 벌하시는 것이 다같이, 하나님의 영광에 속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그가 죄를 억제하는 것은 다만 형벌에 대한 공포에서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사랑하며 경외하기 때문에 그를 주로 예배드리며, 찬양하는 것이다. 만일 지옥이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배반한다는 생각은 있을 수 없는 몸서리쳐 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실로 순수하고 참된 종교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엄숙한 두려움과, 결합된 신앙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이란, 자발적인 경외를 내포하고 있으며, 율법에 규정된 것과 같은 정당한 예배를 수반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실을 더욱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곧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되 아무 끝없이 하고 있으며, 다만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의식이 허식으로 흐르고 있는 곳마다 마음의 진실성을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3 장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본래부터 인간의 마음 속에 뿌리 박혀 있었다. 
본 문 : 1:8-15


1. 이 자연적 은사의 특징

하나님은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지각을 주셨다. 이것은 아무도 무지를 핑개삼아 하나님를 부인하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는 이 하나님를 아는 지식을 새롭게 하시는 일을 계속 하신다. 
칼빈은 그의 주석 요 1:5에서 "부패한 인간에게 아직도 남아 있는 두가지 빛의 요소가 있다. 그 하나는 모든 인간에게 종교적인 씨앗이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양심에 새겨진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다"라고 했다. 
인간이 하나님를 알만한 것이 그 속에 있으나 하나님를 영접하지 않고, 하나님를 경배하지 않으며,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을 때는 그들 자신의 증거로 말미암아 정죄를 받는다. 사람애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증거는 많다. 특히 문명인들 보다 원시적인 사람들에게 그 증거가 많이 있다. 짐승과 다를바 없는 생활을 하는 미개인들은 그들 속에 종교적인 씨앗을 가지고 있어서, 인간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종교가 없는 곳은 없었다. 이것은 인간에게 하나님에 대한 어떤 관념이 깊이 새겨져 있다는 좋은 실례다. 
사실 우상 숭배도 이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좋은 증거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하나님하는 종교적 행위다.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를 아는 인식을 부인하고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타고난 천성적인 버릇을 고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이와같은 전재 아래 인간이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 앞에 겸손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발견될 것이다.

 

2. 종교는 임의의 발명품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라는 것은 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우매한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한 방법으로 종교를 만들었으며, 그들은 그들이 만든 하나님를 믿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와같은 종교적 사교 집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모든 종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인간이 하나님를 찾는 본성 속에 씨앗이 새 봄에 굳은 땅을 뚫고 움을 돋듯 하나님를 아는 지식이 없었다면 오늘의 하나님를 믿는 기독교는 없을 것이다. 인간을 속여 사교 집단으로 만드는 거짓이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기독교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종교를 부인하고 하나님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과거에도 오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양심 속에도 하나님를 아는 지식이 있어서 가이우스 칼리쿨라(Gaius Caligula)-로마 황제, AD 37-41까지 로마를 다스린 Tiberius Caesar의 증손-는 방자하게 하나님를 부인하고 기독교도를 핍박한 사람이였지만 천둥만 처도 벌벌 떨면서 침대 밑으로 숨는 사람이었다. 그가 하나님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이런 우수꽝스러운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서 피해 보고자하는 본능적인 행동이다. 하나님를 부인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없다는 온 갖 구실을 찾지만 그럴 수록 더 하나님의 두러움이 떨게된다. 그들이 그들의 양심의 두러움에서 잠시 놓임을 받는 것은 술이 취했을 때나 깊은 잠에 빠졌을 때다.그러나 깊은 잠 속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에 쫒기는 자의 두러움에서 피할 수 없다.

 

3. 실제적인 불신앙은 불가능하다.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면 인간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의식을 지워 버릴 수 없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신에 대한 인식은 모든 사람이 나면서 부터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신념은 인간의 골수와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 
인간은 아무리 몸부림을 처도 이 하나님의 의식에서 벗어 날 수 없다. 키케로(Cicero))가 말한 것처럼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것들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종교는 점점 개량되고 왕성해 진다. 이 세계를 주장하는 사단은 될 수 있으면 하나님에 대한 일체의 지식을 몰아 내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예배를 부패하게 하려 온갖 짓을 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더욱 왕성하고, 하나님를 섬기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학교서 배우는 지식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모태에서 부터 터득한 하나님를 부인하는 지식이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인간의 양심에 하나님를 부인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를 부인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모든 사람은 살아 가는 목적이 하나님를 인식하고 그 분을 섬기며, 그 분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이런 본연의 인식에 도달하지 못하면 언제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괴로움을 당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자연 법칙을 거스려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혼의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을 닮은 것이며, 그 영혼이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붙잡을 때 전적으로 하나님의 모양으로 변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플라톤(Plato)의 말을 아주 잘한 말이다. 그리고 그는 "인간이 악을 피하고 참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같이 거룩하고 지혜로워야 한다"라고 했다. 그릴루스(Gryllus)도 역시 플루타크(Plutarch)의 저서에서 "종교가 생활에서 상실되면 인간은 짐승보다 조금도 낳을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훨씬 더 비참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많은 형태의 죄악에 붙잡혀 그들은 끝임없는 불안과 혼란과 불안 속에 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를 경배하는 것 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짐승보다 더 뛰어나게 하며, 이 예배를 통해서만이 인간은 영생을 동경하게 된다.

 

4 :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부분적으로는 무지, 부분적으로는 악의에 의해 질식 부패되었다


1. 迷信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에 종교의 씨앗을 심어 주셨다는 것은 인간 경험이 잘 말해 준다. 그러나 자신이 받은 이 소중한 씨앗을 자리 키우고 있는 사람은 백에 한 사람 정도도 안된다. 더욱이 그것을 무르익게 하여 때 가되면 열매를 거두도록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1:3 참조) 게다가 어떤 사람은 미신에 사로잡혀 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악한 생각으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있지만, 어떻든 이 사람들은 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버린 사람들이다. 그 결과로 이 세상에는 진정한 경건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미신에 빠져 버렸다. 그들은 맹목적으로 수고하고 있으며 그 맹목은 항상 거만한 허영으로 완고한 것들과 결탁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수준 이상의 하나님을 찾아야 함에도 자신의 육적인 어리석음을 표준으로 삼아 하나님을 판단하고 건전한 탐구를 게을리 하며 호기심을 따라 공허한 사색의 길을 달리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여 주신 그대로 하나님을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 자신의 억측에 따라 하나님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심연의 문이 열려 있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방향으로 발을 내디디던 간에 그들은 필경 파멸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다. 그 후에는 아무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봉사를 한다고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거시다. 그것은 그들의 예배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마음에서 만들어 낸 허구와 망상에게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와 같은 사악에 대해 설득력 있는 발언을 했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 하게 되어"( 1:22)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자기 죄에 대하여 변명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바울은 그들이 바르게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곧 그들은 절제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분에 넘치는 것을 요구하여 제 멋대로 어두움을 자초하고 심지어는 그들의 우준 하고 완고한 교만으로 우둔해졌기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할 대가로 눈이 어두워 졌다고 부언했다. 그들의 어리석음은 이와 같이 허망한 호기심 뿐 아니라, 거짓된 신뢰에 따라 제한된 인간의 지식을 넘어서 보려는 지나친 욕망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조금도 변명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2. 하나님에 대한 의식적인 외면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14:1, 53:1) 다윗의 이 말은, 다른 곳에서도 곧 찾아 볼 수 있겠지만 먼저 자연의 빛을 끄며,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자신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자들에 대한 말이다. 우리들의 하나님께 대한 지식은 生來的인 감각에 의하여 아낌없이 내적으로 제시되어 있으나 오만하고 상습적인 죄로 말미암아 그 마음이 완고해져서, 하나님께 대한 일체의 기억을 미친 듯이 쫓아 내 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다윗은 그들의 광란이 한층 더 증오스러운 점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하나님을 아는 지시의 본질을 아직 제거하시지 않으셨으나 그 심판과 섭리는 박탈하여 하나님을 하늘에 있는 개으름뱅이로 가두어 둠으로써 사실상 하나님의 존재를 단호히 부정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세계의 통치를 포기하고 이 역시 운명에 마끼며, 인간의 악한 행위를 묵과함으로 인간이 형벌을 받지 않고 육욕에 빠져 살게 한다는 것보다 더 하나님의 본성과 불일치한 것은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말살시키고 무분별한 욕망에 빠진 자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이다. 그리고 사악한 자들이 눈을 감은 후, 보아도 보지 못하게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은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인 것이다. ( 13:14-15; 6:9-10; 17:10 참조) 다윗은 자기의 사상을 가장 잘 해석했다. 그는 다른 곳에서 "악인의 죄얼이 내 마음에 이르기를 그 목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하니"( 36:1)라고 말했다. 더욱이 그들은 하나님이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악행을 도도히 자랑한다고 했다( 10:11).


그들이 어떤 신의 존재를 어쩔 수 없이 인정한다고 해도, 그들이 인정하는 신의 능력을 제거함으로써 그 영광을 박탈한다. 바울이 증거 한대로, 하나님은 영원히 동일한 분이시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신 분"(딤후 2:13)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허하며 죽은 우상으로 만드는 자들은, 실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잇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의해야 한다. 그들이 아무리 그들 자신의 의식을 거슬려 싸우며, 하나님을 그 의식에서 몰아 내고, 천상에서 파멸되기를 원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대 앞에 가끔 불러 내지 않는다고 생각할 만큼 어리석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공포로도 하나님을 맹렬히 대항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이런 맹목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있는 한, 그들은 무감각으로 인해 하나님을 망각하고 이 망각은 계속 그들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3. 우리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을 만들어 내서는 안된다.

이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미신에 애한 변명과 공허한 변호가 허물어진다. 그것은 그들은 종교에 대한 열심만 있으면, 그것이 아무리 터부니 없는 것이라고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참된 종교는 마땅히 우주 법칙에 따라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야 한다는 것,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시하시다 는 것,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망상에 따라 변질되는 그런 亡靈 혹은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미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할 때에도, 그것이 가면을 쓰고 하나님을 얼마나 조롱하려 하고 있다는 명백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미신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는 것만을 붙잡고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 기뻐하시는 것들을 공공연히 거절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자신들의 거짓된 의식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망상을 예배하며 찬양한다. 마일 그들이 처음에 어리석고 강퍅한 그들의 신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면 결코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께 대하여 모호하고 거짓된 견해를 가진 것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4:8)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곳에서 "에베소"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 지낸 자들이며 그때에는 유일하시며 참되신 하나님을 올바르게 아는데 있어서 그들은 외인이 였다고 했다( 2:12). 적어도 이런 상황 속에서는 유일신을 생각하던, 다신을 생각하던,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는 이 두 경우에 있어서 다같이 참되신 하나님을 떠나고 이 하나님을 저버렸음이며 또한 그를 버림으로써 저주받은 우상이 외에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와 일치하지 않는 종교는 진정한 종교라고 말 할 수 없다고 단정해야 한다.


4. 僞善 
여기 또 두 번째 죄가 있다. 그것은 적어도 강요를 당하지 않는 한, 그들은 결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반항하며 끌려가지 전까지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위엄을 경외하는데서 생기는 자발적인 두려움에 감동 받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강요되는 노예적이며 강제적인 공포에 사로잡힌다. 이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혐오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이다. 공포는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신들을 만들어 냈다고 한 스타티우스의 말은 이런 종류의 무 신앙에 대하여 그리고 이에 대해서만은 잘 부함이 되는 말이다.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의를 멀리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범한 죄를 심판하기 위한 심판대가 마련되어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심판대가 없어지기를 열심히 염원한다. 그런 심정으로 심판하시지 않고는 참으실 수 없는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운다. 그러나 하나님의 피할 수 없는 능력이 가해짐을 깨닫게 될 때, 그것을 멀리할 수도, 피할 수도 없기 때문에 무서워서 후퇴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어디서나 그들을 위압하고 있는 하나님의 위엄을 멸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어떤 종류의 종교적 행사를 수행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여러 가지 죄악으로 자신을 부패하는데 열심이며, 악에 악을 더하여 마침내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범하여 그 모든 의를 파기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하여튼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체 위장하여 죄의 탐닉을 제재하지 않고 자기로 만족하며, 자신의 육체적인 방종에 빠지길 좋아하는 무리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의 공허하며 거짓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종교의 그림자라고 부를 가치도 없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이런 혼란한 지식과 정교의 기원인 경건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를 새롭게 파악할 수 있는데 이 경건은 오로지 신자의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선자들은 이런 왜곡된 길을 걸으면서도 그들이 멀리하고 있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한다. 전 생애를 바쳐 시종 일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의 모든 행위에서 대담하게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찮은 재물로 하나님을 회유하려고 열심이다. 또한 그들은 마땅히 성결한 생활과 완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함에도 천박한 것들과 무가치한 의식들을 날조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얻으려고 한다. 아니, 그 뿐인가? 그들은 더욱 방종하여 자신을 불결한데 팽개치고 있다. 이는 그들이 속죄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의무를 다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신뢰해야 함에도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피조물인 그들 자신을 더 신뢰한다. 그들은 마침내 그들의 이런 거대한 오류에 그들 자신들을 얽어맴으로써 한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기 위해 번쩍였던 그 섬광을 우매한 죄악으로 질식시켜 꺼져 버리게 한다. 그러나 그 씨앗을 그대로 남아 있으며 결코 근절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신성에 대한 어떤 관념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씨앗이 매우 부패해 있기 때문에, 가장 나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본래부터 하는 나의 주장은 더욱 명백해 진다. 이는 遺棄者 자신들도 이에 대하여 고백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온한 때에는 익살스럽게 하나님을 회롱하며, 허튼 소리로 수다를 떨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약화시킨다. 그러나 일단 절망이 그들 속에 엄습해 오면 자극을 받아 하나님을 찾게 되는데, 형식적이지만 하나님께 기도를 들이게 된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이 하나님께 대해 전적으로 무지한 것이 아니며 벌써부터 나타났어야 할 것이 완고함으로 말미암아 억제되어 있었다는 것이 분명해 진다.

 

5 : 하나님의 지식에 관한 지식은 우주의 창조와 섭리에 빛을 발한다. 
(하나님은 창조 사역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본문 : 139:15

 

1. 하나님의 自己 顯現은 명백하여 어떤 변명도 용납될 수 없다.

사람의 복된 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데 있다고 요 17: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행복할 수 있는 조건에서 제외시키시지 않기 위해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주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을 뜨기만 하면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존재를 사람이 알기는 어렵지만 하나님의 모습이 그의 창조물에 너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104:2 "주께서 옷을 입은 같이 빛을 입으시며"라는 말씀은 이런 하나님을 잘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스러우신 모습을 세상의 어떤 것을 통하시던 사람에게 보여 주신다. 
시편 기자는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104:3]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104:4]"라고 말했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과 지혜를 더욱 찬란히 나타내시기 때문에 흔히 하나님의 궁전이라고 부른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히브리 기자가 이 세상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실상이라고 말씀한 것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거울로 빛을 발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11:2]"라는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다. 시인은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19:2]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19:3]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19:4]"라고 말씀하시므로 온 우주에 하나님의 언어가 통하고 있음을 말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더욱 명백히 밝혔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1:19]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1:20]"

 

2. 하나님의 지혜가 온 인류에게 제시되었다.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보여주는 증거는 수없이 많다. 천문학, 의학, 기타의 자연 과학에서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많고, 그런 지식이 없는 사람도 눈을 똑바로 뜨면 반드시 그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천문학이나 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적 기술에 감탄을 한다. 그리고 무식한 사람들도 우주의 신비한 현상을 알면 감탄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다. 
우주와 만물은 특수하면서도 질서 정연한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갈렌이라는 고대 헬라의 최고의 의학자요 철학자며 해부학의 권위자였던 그는 인체의 각 부분의 기능을 기록한 그의 저서에서 "인체의 관절, 균형, , 효용성 등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재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체의 구조가 정묘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3. 사람은 신적 지혜의 최상의 증거다. 
옛날의 철학자는 사람을 가르쳐 소우주라고 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과 지혜의 특별한 표본이며, 사람의 마음을 깜짝 놀라게 할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 하도다[ 17:27]"라고 하셨다. 
다윗도 "사람이 무엇이관데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데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8:4]"라 하시고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 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나이다[ 8:2]"라고 하셨다. 다윗의 말은 어린아이들이라도 하나님의 우주에 가득찬 섭리와 은혜를 안다는 말이다. 
바울도 아라투스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17:28]"하셨다. 하나님은 그의 탁월하신 재능과 은총을 인간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의 자녀며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을 알게 하신 것이다.

 

4. 인간은 배은 망덕하여 하나님을 대적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고로 하여 아름답고 복된 모든 삶의 은총들을 무수히 준비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하나님의 것들을 마치 자기들의 것인 양 마구 파괴하고 남용하면서 교만을 떨었다. 만일 사람이 이 우주에 가득찬 하나님의 은총을 안다면 탐욕이나 더 가지기 위한 싸움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인간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빌미로 오히려 더 하나님을 대적이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구실로 하여 용서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이 탁월한 기능과 은혜들은 자연의 한 법칙으로 돌리고 하나님을 불신한다.

 

5. 피조물과 창조주의 혼돈. 
어떤 사람은 영혼이 유기적인 여러 기능을 가지고 있으나, 육체 없는 영혼은 존재할 수 없다고 하여 영혼을 육체에 구속시키고, 육체 없는 영혼은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영혼의 여러 능력이 육체를 돕는 기능만 가지고 있지 안다. 우주의 신비를 캐고, 인간의 신비를 캐는데 육체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천문학의 경이로운 발견들은 사실 육체적 활동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영혼의 활동에 있는 것이다. 천체를 관찰하여 별의 신비를 캐며, 별과 별 사이의 거리를 알고, 그 운행의 신속함과 완만함을 알고, 궤도의 여러 모양과 斜行의 정도를 아는 것이 어찌 육체의 힘이겠는가? 하늘과 땅을 관찰하고, 과거와 미래를 결합하며, 오래 전에 들은 것을 기억 속에 담아 두고, 즐거운 것을 즐거워하고, 훌륭한 것에 대한 감탄을 하며, 사랑하고, 미워하고, 좋은 것을 분별하고, 훌륭한 판단과 그릇된 판단을 하며, 슬퍼하고 기뻐하는 것이 어찌 육체에 속한 일인가?사람이 잠자는 시간에도 여기 저기를 배회하고 신기한 일을 행하며, 심지어 좋은 발명품을 만들기도 하는데, 사람이 어찌 육체 밖에 없다 하여 하나님을 배신하고, 그를 인정하기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인가? 잠자는 중에도 우리의 신비한 모과 정신은 움직이고 있듯이 하나님은 잠시도 수시지 아니하시고 일하시며 하나님은 온 세계를 다스리시고 계신다.

바젤의 詩 
"최초에 한 영이 있어/ 이것이 하늘과 땅, 해면, 빛나는 달/ 
그리고 타이탄의 별들을 먹인다./ 이 영은 모든 부분에 퍼져서/ 
그 덩어리를 움직이며 또 그것과 융합한다. 
이 영으로 부터/ 
인류, 짐승, 창공을 비상하는 아름다운 새들 그리고 빛나는 태양과 대양 밑의 고기들이 나온다. 
이 영은/ 
만물에서 불의 열과 생명의 기원을/ 나오게 한다."

"꿀벌은 하늘나라 마음의 한 부분/ 천상에서 어떤 힘을 빨아들인다. 
그것은 / 
신이 땅과 바다와 하늘/ 
그리고 만물에 편제해 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양과 소/ 
사람, 짐승들이 태여 날 때 실날 같은 생명을 받는다./ 
그리고/ 
민물이 그에게로 돌아가서 해소되고도 회복된다. 
다시는/ 
죽음이 없다. 그러나 별만은 하늘 나라 높이 올라가 거기서 살리라.

 

6. 하나님은 자신의 주되심을 창조에서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며, 자연계를 다스리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을 믿게 하시며, 예배드리게 하시고, 자기의 이름을 부르시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주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무한한 우주를 지배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머리 신호로 만으로도 우주를 놀라게 하시며 격동하게 하셨다가 잠잠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이 우주를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들어내시기 위함이다.

 

7.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 
하나님의 자연의 일반적인 과정 밖에서 일어나는 일도 하나님의 권능을 증거한다. 하나님이 인류 사회를 다스릴 때 경건한 사람에게는 관대하심을, 악한 사람에게는 엄격하심을 선언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와 은혜다. 
하나님은 무죄한 자의 보호자요 변호사요, 선한 사람을 벅 주셔서 축복하시고 그들의 생활을 번창하게 하시며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 재난에서 피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신다. 어떤 경우에 그렇지 않게 보이는 점이 있으나 이런 사실이 하나님의 공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한가지 범죄에 대하여 엄격한 심판을 하심은 모든 죄에 대하여 엄격한 다스림을 행사한다는 것이며, 여러 가지 죄를 즉시 다스리지 않으시는 것은 장차 올 무서운 심판을 예고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칠 줄 모르는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

 

8.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생활을 지배하신다. 
하나님이 인간의 생활을 주관하신 다는 증거는 많다. 선지자는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갑자기, 기적적으로, 예상 밖의 사건을 통해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해 강조한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들을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보호하여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107:4]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107:5]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107:6] 또 바른 길로 인도 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107:7]" 궁핍하고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107:8]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 107:9]" 사로잡힌 자들을 침침하고 고통스러운 자리에게 놓아주시고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107:10]" 파선 당한 자들을 항구까지 무사히 돌아오게 하시며, 병으로 죽어 가는 자들을 고쳐 주시며(17-20) 비천한 자들을 높이시며, 교만한 자들을 그들의 위치에서 떨어뜨리기도 하신다.

이런 사건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연한 사건으로 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부성적 사랑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분명하고 찬란한 섭리에 대하여 깨달은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가 사람들에게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의 편견과 오만과 뻔뻔스러움이 하나님의 이런 섭리를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걸음 무더기에서 드셔서[ 113:7]"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퀘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고전 3:19]" "간교한 자로 자기 퀘휼에 빠지게 하시며 사특한 자의 계교를 패하게 하시며[ 5:13]"하셨을 때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신다.

 

9.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숙고하므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다른 어떤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리고 또 다른 증거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너무 명백히 이 온 세상에 들어 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더 상고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이 하락하신 하나님에 대한 상고는 공허한 지식이 아니라 우리들의 심령과 생활에 은혜와 축복을 주시는 지식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지식은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지식에 대해 더욱 감동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지식이 아닌 다른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기 위한 공상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 하나님에 대한 호기심이나 지나친 사색에 의해 하나님을 알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써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 찾을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 하도다[ 17:27]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17:28]" 다윗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라고 했고, 자기도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선포하겠다고 했다.(145:3; 145:5-6). 어거스틴은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압도를 당하여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새로워지기 위해 하나님의 사역을 주시해야 한다"고 했다.

 

10. 하나님에 관한 지식의 목적.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에게 예배 드리도록 하며, 내세의 소망을 가지게 하며, 삶의 용기를 준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이제 시작되어 완성을 향해 가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 경건한 사람들이 경건치 않는 사람들에게 가혹한 핍박을 당하는 것도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으며 경건히 사는 사람들은 상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 의롭게 되는 것은 그가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떻게 사셨는가를 알고 주님이 세상을 사신 것처럼 살게 될 때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그의 선하심과, , 자비, 겸손을 보여 주셨는지를 자세히 살펴 그 분의 모범을 따라야 할 것이다.

 

11. 창조에는 하나님의 증거가 나타나 있지만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의 우둔함과 미련함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주 만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위대하심을 깨달아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인간은 죄와 자신의 육신의 탐욕과 어리석음에 빠져서 하나님을 잃어 버렸다. 특히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능력과 지혜는 어리석은 철학자들과 미신에 의해 더욱 더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12: 하나님의 현현은 인간의 미신과 철학자들의 오류에 의해서 질식되었다.(생략)

 

13. 성령님은 인간이 고안한 일체의 예배 행위를 거절하신다. 
따라서 자신의 견해에 따라 움직이는 모든 자는 사실 하나님의 법을 떠나 자기의 종교에 만족한 사람들로서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들이다. 그들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던 그것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배교적인 행동이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 10:20]"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에게 예배 드리는 법을 배우기 전에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2:12]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2:13]"라 하셨다. 근본적으로 죄를 짖은 인간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1:21]"하신 말씀대로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 드리는 방법을 계시하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잘 몰라서 우상을 섬기는 일을 할 때 비록 무지로 말미암은 죄라 해도 그 죄가 가벼워 사죄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17:23]" 
또한 마땅히 섬기고 예배 드려야 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가르치지 않는 자도 죄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나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4:22]"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어떤 세상적 전통이나 습관에 따르지 말고 하나님이 말씀을 통한 그 방법대로 예배를 드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14. 이런 점에서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는 매우 미급하다. 
자연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계심을 충분히 알려 줄 수는 있다.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14:16]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14:17]" 그러나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를 섬기는 일을 가르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이 점이 자연 계시의 한계라 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그 뜻대로 살기 위한 성경 말씀을 주신 것이다.

 

15. 어떤 변명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순수하고 명백한 하나님의 지식에 도달할 본래적인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그 둔감의 죄가 우리들에게 있기 때문에 어떤 변명도 용납될 수 없다. 그리고 실로 우리의 양심이 나태와 배은 망덕을 항상 깨우쳐 주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무지를 구실로 내 세우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다음의 변명들, 곧 말 못하는 피조물까지도 가장 아름다운 음성으로 전해 주는 그 진리를 들을 만한 귀가 자기에게는 없다고 인간이 변명하는 것과, 눈 없는 피조물이 보여 주는 것을 자기에게는 눈이 없어 볼 수 없다고 변명하는 것들이 용납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만물이 우리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 준다고 해도, 우리가 방랑자요 방황자로 길을 잃고 헤메이고 있다면 어떤 변명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의 놀라운 구조 속에서 그들의 마음에 심긴 하나님에 대한 지시의 씨앗을 부패시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태만에 그 원인을 돌려 한다. 그러나 한편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찬란하게 보여 주는 그 단순한 증거만으로 우리가 충분한 교훈을 얻지 못한다고 하는 것도 거짓 없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주에 대한 명상을 통하여 어떤 가벼운 神知識을 맛보게 되자, 우리는 즉시 참되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 대신 머리로 만들어 낸 꿈과 환상을 추겨 세우며 마땅히 참되신 근원에 돌아가야 할 의, 지혜, , 권능에 대한 찬양을 그 밖에 어떤 무엇에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매일 하시는 역사를 악하게 판단함으로써 그 역사를 희미하게 하거나 뒤집어엎거나, 그 역사 자체로부터 영광을 빼앗으며, 창조주에게서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찬양을 박탈하고 있다.

 

6 장 하나님을 알게 하는 성경

성경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안내자요 교사로서 필요하다.


1.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자신을 알리신 것은 성경에서 뿐이다. 
온 만물에 널리 알려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인간이 하나님을 배은망덕한 죄에 대해 일체의 변명의 여지를 없앤다. 그것은 하나님 실존의 생생한 증거를 피조물의 자연 세계 속에서 너무 명백히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는 자연을 통해 얻은 것보다 훨씬 더 명백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 자연이 아닌 또 다른 하나님을 알게 하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정한 상태인 것을 보시고, 유대인들을 선택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후 다른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한 울타리 안에 둘러 싸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하신 것이다.

성경은 눈이 나뿐 사람이 좋은 안경을 쓰는 것과 같다. 혼란스러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명백히 보여 주시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하며,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지를 보여 주신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에 관한 두 가지 지식)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과 그 밖의 족장들이 자신들과 불신자들을 구별하게 한 명백한 지식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앙적인 교리로서가 아니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는 말씀으로 들었다. 즉 하나님을 창조주로서만이 아니라, 구속 주로서도 믿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구원적 믿음을 가진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통한 지식이다. 이 구원적인 지식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신다는 지식에서부터 오게 된다. 이 지식이 있고 나서 구원적인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즉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구원적인 믿음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2.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성경.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통해 인간의 모든 지능과 지혜를 초월한 확실한 신앙, 곧 영원히 불변하는 믿음을 인간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대로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도록 공적인 기록으로 남기시기를 원하셨다. 이러한 계획 아래 율법이 공포되고, 이 율법의 해석자로 선지자들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이 율법의 핵심적 교훈은 하나님과 죄인을 화목케 하는 것이었다. 바울이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 10:4)이라고 하신 말씀도 이런 의미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만을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계시하신 이외에도 거짓된 一群의 神들과, 그들의 명백한 특징들을 말씀하여 참 하나님과 혼돈 되지 않도록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입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빛을 받아야 건전한 종교적 교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증거를 경건된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할 때 가능한 것이다.

 

3. 성경에서 떠나면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인간의 마음은 너무 쉽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류에 빠지고 날조된 그릇된 종교에 심취하고, 세속적 욕심에 빠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며 인간의 잘못된 감정과 종교적 오류가 얼마나 그릇되고 방자한 것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한 계시가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충분히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지 않았고, 자연 계시보다 더 확실한 계시를 해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말씀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아와야 한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부패한 판단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순수한 구원의 말씀인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인간을 미혹하는 미신은 추방되어야 하고, 하나님은 "영원히 통치하시는 분"이라고 다윗은 말했다.( 93:1, 96:10, 97:1, 99:1) 그런데 다윗은 이 통치라는 말의 의미를, 하나님이 소유하시는 권능, 또는 전 세계를 통치하시는 권능으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의 정당한 주권을 행사하시는 분이라는 뜻으로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사람의 마음에 심겨지기 전에는, 결단코 그 마음에서 오류를 근절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4. 창조의 계시가 전할 수 없는 것을 성경은 전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19:1-2]"이라고 말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계속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께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19:7]" 
다윗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명상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와 똑같은 내용이 시 29편에도 언급이 되어 있는데 이 우주의 우뢰, 바람, 소나기 등을 통해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시고"라고 말하고 나서" "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하나님의 영광이라 하도다"라고 말씀을 맺고 있다. 
다윗은 다른 시편에서도 말하기를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19:8]"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 하도다[ 93:1]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93:2] 여호와여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93:3]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 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위대하시니이다[ 93:4] 여호와여 주의 증거하심이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여 영구하리이다[ 93:5]"라고 했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향해서도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4:22]"라고 하셨다. 
인간의 마음은 무력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님에게 도달할 수 없고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다 말씀 밖에서 하나님을 찾았으므로 공허와 오류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


7 : 성경의 권위는 성령에 의해 확증되며, 교회의 판단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다.

 

1. 성경의 권위는 하나님에게 온 것이지 교회에서 생긴 것은 아니다.

성경의 권위와 신성은 교회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성경 안에서 당신의 신성한 진리를 영원히 신성하게 복종 하시기를 원하신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5:39]"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치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어야 말씀의 신성한 권위가 살게 된다. 
중세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에서 승인을 얻어야 그 권위가 선다고 생각하는 큰 잘못을 범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교회의 공인을 받아야 한다면 성경에 약속하신 모든 말씀이 다 교회의 공인을 받아야 하는 가공할 일이 생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케도릭 교회의 주장을 말한다.

 

2. 교회의 기초는 성경이다. 
그러나 이런 잘못된 생각들은 바울의 말 한마디로 깨끗이 정리된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셨느니라[ 2:20]" 이 말은 이 세상에 구체적으로 보이는 가시적인 교회가 있기 전에 사도들이 있었고 사도들은 주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은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즉 말씀이 교회를 세운 것이지, 교회가 말씀은 만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교회는 조금도 주저없이 성경을 진리로 인정해야 하며 성경을 하나님의 정확 무오하신 말씀으로 존경하고 순종해야 한다.

 

3. 어거스틴의 말을 반증으로 내 세울 수는 없다. (생략)

 

4. 성경의 증거는 모든 다른 증거보다 강하다. 
성경의 최고의 증거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성경 안에서 말씀하신 사실에서 얻게 된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자신의 예민함과 그들을 칭찬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이성적 증거를 고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전 세계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복종시키려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모든 인간을 위한 최고의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이성이나, 양심에서 보다 언제나 최고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순결한 마음과 건강한 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다면 하나님의 위엄은 즉시 우리 시야에 나타나서 우리들이 마땅히 할 일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들이 성경에 대한 논쟁을 해서 성경 말씀을 판단하려 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 보기에 좀 어리석게 보이는 사람도 성경 말씀으로 사람들을 다스린다면 권위 있는 지도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일체의 이론을 훨씬 능가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은 이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내적 증거를 가지게하고, 사람이 말씀을 받아 들일 때 능력을 나타내신다.

 

5. 성경은 자증한다. 
참 성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진심으로 성경을 신뢰한다"는 것, 그리고 성경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거 한다는 것을 안다. 성경은 이성에 종속되지 않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확증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판단력과 지기를 성경에 예속 시켜야 한다. 그리고 인간적인 의지나 지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다 더 생생하게 효과적으로, 절대 순종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 
이사야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 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43:10]"라고 말함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은 추호의 오류도 없는 진리임을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백성들에게 그대로 전했던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들은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54:13]"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실로 우리들에게(신자)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놀라운 은혜를 주신 것이다.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30:12]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30:13]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30:14]"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일반 대중들 뿐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의 자녀라는 유대인들도 믿을 수 없을 것이라 하면서 그 이유를 "여호와의 팔이 나타난 사람들만 안다"( 53:1)고 말하고, 예수님께서도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13:11]"라고 말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듣도록 은혜를 주신 일에 대하여 감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더 열심히 상고하여 은혜를 받자.


8 : 인간의 이성이 허용하는 한에서 성경의 신빙성은 충분히 증명된다.

 

1. 성경은 인간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나다. 
성경에 대한 이런 확신이 없이는 성경을 보호하고, 성경의 권위를 세울 수 없다. 성경은 어떤 다른 외부적인 지원을 받아서 그 권위가 확립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성경이 어떤 다른 것에 의해 권위가 세워진다면 성경의 권위는 늘 다른 것에 의해 흔들릴 것이다. 우리는 성경 자체에서 그 지혜의 배치가 얼마나 훌륭한지. 얼마나 완전한 말씀인지, 그리고 그 위엄을 스스로 지키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아야 한다. 천국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극히 평범한 언어로 기록이 되고 진리의 말씀들이 소박하고 단순한 말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말의 기교가 필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5]"라고 하였고 그의 설교는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4]"이라고 했다. 
사람의 저서가 아무리 기교면에서 잘 다듬어 진 것이라고 해도 성경만큼 사람을 감동시키지는 못한다. 더욱이 죄인을 회개케 하여 구원할 수 있는 인간의 저서가 어디에 있겠는가?

 

2. 결정적인 것은 문체가 아니라 내용이다. 
어떤 선지자의 글은 그 문자체가 화려하고 명쾌한 어떤 사람의 글에도 손색이 없다. 하나님은 성경을 소박하고 단순하게 기록을 하셨지만, 이런 선지자들을 통해 얼마든지 멋있고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음을 증명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므로 누구든지 보고 알고, 믿어 구원 얻도록 쉽게 기록을 한 것이다. 
사단은 복잡하고 교묘한 언어를 써서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고상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나, 그들의 이런 사기극은 진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죄인을 만드는 것이다. 즉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글로 자기를 과시한다.

 

3. 성경의 고전성 (-:문서설에 대한 반론. 문서설이란 성경이 고대의 어떤 문서에 영향을 맏아 기록되었다는 학설을 말함) 
성경의 고전성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애급이나 바벨론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급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화를 주장하는 문서들도 사실 모세 이후에 기록된 것들이며, 모세 이전에 있었던 것은 없다. 
그러나 (모세가 고대의 문서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을 뿐이다. 고로 하나님의 말씀은 모세 이전에 있었고, 애급인들이 말하는 그들의 나라와 문화보다 훨씬 이전에 있었다. 
모세가 말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하신 것에 그 기초를 둔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17:7)" 
만일 모세가 알아 듣지도 못한 것을 그 백성들에게 전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받아 들여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오래 동안의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이 모세의 전한 말에 대해서 충분히 알아 들을 수 있음으며,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자극을 받았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5:13]. 
이스라엘 자손이 애급에 거주한지 사백삼십년이라[ 12:40].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3:17]" 
즉 모세는 자기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의 근거를 다른 여타의 민족들이 주장하는 시간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다른 어떤 문화권의 문서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은 잘못된 것이다.

 

4. 모세의 예증이 보여 주는 성경의 진실성. 
아마 어떤 사람들은 애급의 기원을 창조 이전 6,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믿으려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터부니 없는 말을 세속적인 학자들도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성경이 다른 문서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이런 사악한 자들 주장을 봉쇄하시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쓰신다. 
야곱은 모세 보다 300년 사람이다. 야곱은 그가 죽을 때 그의 후손들에 대한 예언을 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 ( 49:5-6)" 
여기서 레위족은 모세의 가문이고, 모세는 성경을 기록할 때 자기 가문과 자기 선조에게 치욕적인 이런 예언을 기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조상들이 잘못한 일을 숨김없이 말하는 성령에 감동된 사람이다. 그는 자기 개인의 이해 관계에 전혀 매이지 않고, 하나님이 말씀을 그대로 기록했다. 
그리고 그의 집안에서 일어났던 불쾌한 일들도 낱낱이 기록을 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12:1]" 
이런 모세의 기록이 어찌 사람의 말이겠는가? 그리고 그는 당시 최고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지 않고 가장 낯은 자리에 머물게 했는가. 이 모든 것이 모세는 하나님의 종으로 일했음을 분명히 보여 주는 일들이다.

 

5. 이적은 하나님의 使者의 권위를 강화시킨다. (이적과 예언에 대한 반대설을 논박함) 
모세는 수많은 이적을 행한다. 그 이적들은 모세가 말한 율법과 공포된 말씀에 대한 확증이다. 모세의 40일간의 하나님과의 교제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일 사십야를 산에 있으니라[ 24: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5:1].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34:29]. 제 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19:16].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40:34]. 회중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에서 떠나라 하라[ 16:24].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20:10-11].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17:6].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4]. 
밤에 이슬이 진에 내릴 때에 만나도 같이 내렸더라[ 11:9].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있더니[ 16-1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고전 10:3]" 
이 모든 이적들은 모세가 진실한 하나님의 선지자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들이다.

 

6. 모세의 이적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없다. 
모세의 이적은 어떤 사람들이 모세를 반박하고 반대하여 군중들을 동원하므로 떠들썩한 분위기와 불유쾌한 상황 속에서 일어났다. 어떤 가증한 사람들은 모세의 이적은 마술에 의한 것이라고 모략했다. "바로도 박사와 박수를 부르매 그 애굽 술객들도 그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되 [ 7:11]" 그러나 그들은 모세 앞에 설 수 없었다. "술객도 독종으로 인하여 모세 앞에 서지 못하니 독종이 술객들로부터 애굽 모든 사람에게 발하였음이라[ 9:11]" 
모세는 박수나 술객들을 아주 싫어해서 그들을 그들이 있는 곳에서 추방했다. "음란하듯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0:6]" 
그런 그가 어떻게 공공연히 많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마술을 행하여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는 말인가.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뿐 아무 것도 아님을 밝히므로서 일체의 비난들을 일축해 버렸다.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 16:7]" 
그리고 어떻게 마술을 가지고 날마다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신선한 음식을 백성들이 먹도록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16:19-20]" 백성 중에는 날마다 모세를 괴롭히는 무리들이 있어서 모의를 하고 작당을 해서 모세를 제거 시킬려고 했는데 어떻게 이런 사실들을 마술로 미리 알고 막을 수 있었겠는가? 마술로 그 백성을 기만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 백성들을 위해 40일 금식 기도를 3번씩이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7. 예언은 사람의 기대와 다르게 성취되는 일이 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 
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49:10]"라는 예언이 있다. 
이 말씀은 야곱에 의해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모세가 말하기 300년에 말씀된 것을 모세가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엄격한 말씀은 400년 후에도 이루워 지고, 2,400년 되는 지금도 이루워 지고 영원히 이루워지는 말씀이다. 어떤 경우에 유다의 왕권이 유다 지파가 아닌 베냐민 지파에게 이월된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삼상 11:15]" 그러나 사울은 그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 아니다. 그 사람은 백성들이 억지로 하나님에게 때를 써서 세운 백성들의 왕이다.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운 후 즉시 이세의 집을 찾아가 유다 왕을 따로 기름 부어 세운다 이 사람이 진짜 하나님이 세운 왕이 되는 것이다.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삼상 16:13]" 이렇게 해서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49:10]"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엄격히 이루워 진다.

 

8. 하나님은 예언의 말씀을 확증하신다. 
이와같은 예언은 다른 선지자들에 의해 더욱 확실히 증거된다. 이사야 시대의 사람들은 바벨론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므로 바벨론에 대한 위협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그 시대에 살던 이사야는 그들의 나라와 민족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것을 공공연히 예언한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네게서 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39:6-7]" 
그들에게는 전혀 들을 필요 없는 사건의 예언이었는데, 그 예언이 사실로 그들에게 닫친다. 이사야는 그들의 멸망만 예언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고레스라는 사람을 통해 구원 얻을 것도 예언한다.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 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 빗장을 꺾고[ 45:1-2]" 그리고 이사야가 예언한 고레스라는 메데 왕은 이사야 사후 100년에 세상에 나타나 이사야가 말한데로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여기서 고레스가 이사야의 글을 읽고 그 글에 쓰인데로 일을 했다고 생각할 수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또 예레미아는 그들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잡혀 가서 70년이 되면 고향 에 돌아 오게 될 것을 예언하다.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25:11-12]"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29:10]" 그리고 이 예언들은 모두 사실로 이루워 진다. 
이런 사실 앞에서 누가 감히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선지자들이 예언 한 것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반대할 수 있을 것인가.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42:9]" 선지자들은 600년에 될 일들을 이렇게 예언하고 그 후에 있을 일들도 이렇게 예언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다.

 

9. 율법의 전승 
어떤 사악한 자들은 모세나 이사야의 글로 읽히고 있는 책들이 실제로 그들의 책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라고 반박한다. 심지어 모세가 실제 인물이었는가를 의심하는 자들도 있다. 만일 우리가 만나 보지 못했다고 해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제 인물이 아니라고 하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의 입을 봉하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쓰셨다. 어리석고 미련한 왕들과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말씀 보존을 개을리 하여 한때 하나님의 말씀이 유실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경건한 왕 요시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들어 내셨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왕하 22:8]" "서기관 사반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매[대하 34:15]" 
이렇게 발견된 성경은 대대로 게승되어 내려 왔다. 요시아는 그 성경의 원본을 성전에 보관하고, 그 사본을 만들어 왕의 서고에 두게 했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17:18-19]"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맡는 자들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 말씀을 특별한 방법으로 보존하시고 오늘 우리들에게 까지 허락하셨다.

 

10. 하나님은 말씀을 기적적으로 보존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유대의 마카비 일로 로마의 안티오커스가 유대의 모든 책을 다 불태우라 했는데 어떻게 성경이 남아 있겠는가 하면서, 오늘의 성경은 모조품이요 가짜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의 사본들은 박해가 가라않자 즉시로 사람들에게 전해 졌는데,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개편되지 않은 성경이 경건된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사람들에게 믿어 질 수 있겠는가? 아무도 감히 유대인들이 성경을 위조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로마에게 지독한 핍박을 당했고 그들이 쓰는 히브리 말은 죽은 언어가 되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하 나님의 말씀을 보존하시고 계승 시키신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을 통해 매시아가 곧 오시리라는 말씀의 성경책을 보존 하셨는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22:37-40]"의 말씀을 죽도록 믿고 사는 유대인들을 통해 해 주셨다. 그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필요도 없는 말씀-믿지 않으므로-을 생명을 걸고 지킨 것이다. 어거스틴은 그들을 "書籍商"이라고 했다.

 

11. 신약성경의 단순성과 천적 특성 및 권위 
구약은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 보존되고 전파되었다. 
그러나 신약에 오면 그 진리가 얼마나 튼튼히 서 있는지를 알게된다. 세 사람의 복음서 기자는 그들의 역사를 낮고 평범한 문체로 기록했다. 그러나 많은 거만하고 교만한 사람들은 그 평범한 문체에 경멸과 조소를 보냈다. 그것은 그들이 성경의 문체만 보고,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이 구원의 진리를 볼 수만 있다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하나님의 능력과 그 능력을 아주 쉽게 기록하여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탄할 것이다. 진정 조금이라도 겸손한 사람은 눅 1장을 읽은 것만으로도 스스로의 교만에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세 복음서의 저자들이 간단히 기록한 그리스도의 강화는 그들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도 멸시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요한은 위엄있게 책망하면서 믿음으로 순종치 않는 자들의 그 완고함을 벼락을 치듯 강하게 책망하신다. 그들과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성경에서 일체의 존경심을 몰아내는 것을 최대의 사명으로 알고 있는 트집장이들은 모든 사람 앞에 끌어 내어 요한 복음을 읽게 하자. 그리고 그들의 표정이 어떻게 달라지는 가를 구경하자.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는 무수한 하나님의 말씀, 그들을 각성시키시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 그들을 회개하여 옳바른 사람이 되게하시는 능력의 말씀을 접하게 될 것이다. 
바울과 베드로도 그런 방법을 쓰고 있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저작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그 속에 있는 천적인 위엄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매료하여 사로잡는다. 원래 마테는 이전에 그의 책상 앞에 앉아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던 사람이며 베드로와 요한은 고깃 배를 몰아 고기를 잡던 사람이 아닌가. 그들은 한결같이 소박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었다. 그들이 무식한 사람이라는 것은 당시 모든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다.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7:15]"했다 
그들이 말한 글도 모르는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복음을 기록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바울은 이전에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잔인하고 살기 등등한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회심하여 새 사람이 되었다. 갑작스럽고 뜻하지 않는 이 변화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힘에 의하여 그가 반대하던 복음을 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12. 성경에 대한 교회의 불변적인 증거 (교회의 동의와 순교자들의 충성) 
성경이 공포된 후 장구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은 확고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사탄은 온갖 교묘한 방법으로 성경을 억압하고, 파괴하며, 인간의 기억에서 성경을 전적으로 제거, 말살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성경은 마치 종려나무 자라뜻 점점 더 자나라서 감히 공격할 수도 말살 할 수도 없는 탁월한 위취를 차지하며 자랐다. 사실 탁월한 괴변가나, 웅변가나 사상가들 치고 성경을 공격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평생의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와같은 사실이 사소한 사건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의 모든 세력들이 성경을 파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여 무장했으나, 그런 노력은 모두 연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만일 성경이 인간들의 보호에만 의존되었다면 어떻게 사방으로부터 오는 그 강력한 공격을 막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오히려 이런 일들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으로 부터 온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성경은 인간이 모든 노력을 기우려 학대하고 말살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 자체의 힘으로 지금까지 널리 보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성경을 받아 들이고 포용하는데 일치한 것은 한 민족이나 한 국가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면에서는 전혀 공통성이 없는 지구에 있는 여러 민족들이 거룩한 일치에 의해 성경의 권위를 인정했다. 또 근본적으로 마음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한 생각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을 크게 감동시키는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일치한 사람들의 경건을 고려할 때 적지않는 중요성이 이에 더해진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고 새 사람이되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되기 때문이다.


13. 순교자들은 성경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사람을 변회시키는가? 사람을 용감하게, 대담하게, 심지어 큰 정렬을 가지고 죽음을 당하는 일까지도 불사하게 한다. 사실 이 성경 말씀을 보존하고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위대한 사명과 열정을 가지고 순교를 했는가? 그들은 이 말씀을 지킬 때 광신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가장 경건하게, 가장이 진실하게, 가장 탁월한 믿음으로, 이 일을 했다. 
이렇게 보존되여 내려 온 이 성경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 그러나 성경이 다만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보존 되여 내려 왔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더 확실하개 작용을 하고 있었던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성령이 성경을 확실히 보존하도록 사람들을 사로 잡으신 것이다. 그럼므로 우리들도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이 말씀을 지키고 전해야 할 것이다.

 

9 : 성경을 떠나 직접 계시로 비약하는 광신자들은 경건의 모든 원리를 파괴한다.

 

1. 광신자들의 성령에 대한 잘못된 관심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떠나서도 하나님께 돌아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이들은 오도되었다기 보다는 광란에 사로잡혔다고 해야 한다. 아주 교만해지고 오만해진 사람들이 마치 성령의 가르침을 직접 받아서 성경 읽은 것을 전적으로 멸시하고, 그들의 표현대로 라면 죽이는 문자를 아직도 따르는 사람들의 그 단순성을 비웃고 있다. 그렇게 성경의 교리를 감히 유치하고 천박하다고 할만큼 그들을 높은 자리에 까지 오르게 한 그 영이 도대체 어떤 영인가를 묻고 싶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그들이 대답을 한다면, 그 확신은 참으로 조소 거리가 될 것이다. 그들도 사도들과 초대 교회의 신자들이 다른 영으로 조명되지 않았다고 그들도 생각할 것이다. 이들 중 한 사람도 그 영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도록 가르침을 받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들의 저작에서 훌륭하게 증명된 대로 보다 더 높은 존경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이미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되었다. 그는 "내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내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내 입에서와 내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59:21). 이 말씀에서 이사야는 구약 시대의 사람들을 마치 글을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들처럼 외부적인 교리에만 묶여 두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의 통치하에서 새 교회가 이 참되고 완전한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말한다. 곧 성령에 의해서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도 지배 받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결론지을 수 잇는 것은 예언자들이 침범할 수 없도록 결속시켜 놓은 것들을 이 악한 자들은 가증하고 참람되게 분리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삼층천 이끌려 다녀온 후에도 계속하여 율법과 선지자들의 교리를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고후 12:2). 또한 그는 훌륭한 교사 디모데에게도 읽은 것이 착념하라고 권했다(딤전 4:13).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성경에 대한 찬사를 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딤후 3:16-17). 성경의 효용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궁극적인 목적지에 인도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순간적인 거시라거나 일시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은 관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한 영과는 전혀 다른 영을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들이 완전히 정신 착란증에 걸려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자랑으로 여길 정도로 광신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어떤 영을 약속하신다고 하셨는가? 
성령으로 그 영은 "자의로 말하지 않는"영으로서 예수 님께서 친히 과거에 말씀하신 것들을 저들의 마음속에 넣어 주시며암시해 주시는 영인 것이다( 16:13).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약속된 성령의 임ㅂ무는 아직 들어 보지도 못한 새로운 계시를 만들어 내거나 어떤 새로운 교리 자체를 날조하여 용인된 복음의 교리에서 우리를 떠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다만 복음이 말하는 바로 그 교리를 우리 마음에 인처 주는 데 있는 것이다

 

2. 성령은 성경에 의해 인정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무슨 우익이나 만족을 얻고자 한다면, 성경을 열심히 읽으며 성경에 유의해야 한다는 것을 여기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사실은 복음의 빛이 나타난 후에는 물러갔다고 생각되었던 예언자들의 교훈을 열심히 경청하는 사람들을 베드로가 칭찬한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벧후 1:19).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를 제쳐 두고 다른 교리를 우리들에게 강요하는 영이 있다고 하면 이는 마땅히 허망하고 거짓된 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1:6-9). 그 이유는 "사탄도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고후 11:14)하기 때문이다. 가장 확실한 특징에 의해 그가 식별되지 않는 한 성령이 우리를 향해 어떻게 권위를 행사하실 수 있는가? 그러나 성령님은 하나님의 음성에 의해 가장 분명히 우리들에게 지시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성령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찾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찾기 때문에, 스스로 이 가련한 파멸에 이르는 사람들은 예외이다. 더욱이 그들은, 만물이 예속되어 있는 하나님의 영을 성경에 예속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마치 성령은 어디서나 동일하시고 자신과 일치하시며 만사에 시종일관하셔서 변함이 없다는 것이 수치스럽다는 투다. 만일 성령이 인간이나 천사, 또는 다른 어떤 무엇의 규범에 따라 판단된다고 하면 틀림없이 성령님은 그 지위에서 격하될 것이다. 즉 노예 상태로 떨어 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이 그 자신과 비교되고 자신 안에서 고려된다고 하면 그것으로 손상을 입었다고 누가 말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일종의 검토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겋지만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대하여 자신의 위엄을 확림하려고 하시는 검토인 것이다. 우리로서는 성령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임재하신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 그러너 사턴의 영이 성령의 이름으로 침투하지 않도록 성령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형산대로 원하시는 것이다. 성령은 성경의 자자이시다. 그는 변하실 수도, 자신거ㅏ 다를 수도 없으시다. 그러므로 분명히 그는 성경 안에서 일단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그대로 존속하실 것이다. 성령이 자신을 퇴화 타락시키는 것이 명에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이 말은 성령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가 아니다.

 

3. 말씀과 성령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그들은 우리가 죽이는 문자에 의존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런 말하는 것 자체가 그들이 성경을 경시 한데 대한 형벌을 받고 있다는 증거다. 그것은 바울이 고후 3:16에서 거짓 사도들을 대항해 싸우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들 거짓 사도들은 그리스도가 없는 율법을 추천하며, 주께서 "그의 법을 그들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 31:33)하기로 약속하신 계약의 축복들을 사람으로부터 탈취하였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은총과는 관계가 끊어져서 다만 귀에만 울릴 뿐, 마음에는 아무런 가동도 주지 못하는 그런 문자는 죽은 글이며(고후 3:6), 따라서 주의 율법은 그것을 읽는 독자들을 죽인다. 그러나 그 문자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효과적으로 세겨지며 그리스도를 제시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영혼을 소성케 하고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는"( 19:7) 생명의 말씀이 될 것이다( 2:16). 더욱이 사도는 같은 곳에서 자기의 설교를 "영의 직분"이라고 말하였다(고후 3:8). 의심의 여지 없이 이 말은, 성령께서는 성경에서 보여 주신 자신의 진리와 아주 아주 굳게 결속하여 계시므로 그 말씀이 당연한 존경과 위엄을 받을 때에만 비로서 성령이 자신의 권능을 발휘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말씀 자체가 성령의 증거로 말미암아 확증되지 않는 한 우리에 대하여 큰 확실성을 가지지 못한다고 주장할 수 잇다. 그것은 주님께서는 일종의 상호 결속 관계를 통하여 말씀의 확실성과 성령의 확실성을 결합시키셨음으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 보게 하시는 성령께서 빛을 비추어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에 말씀에 대한 완전한 신앙이 머물 수 있으며, 또한 우리가 그의 형상을 따라, 곧 그 말씀을 따라 그를 인신할 때에 우리는 속는다는 두려움이 없이 성령을 마음에 모실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로 이것은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눈 성령이 임하시면 즉시 말씀을 패기할 생각으로 일시적인 전시를 위해 말씀을 우리에게 보이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동일한 성령을 보내셔서 그 권능으로 말씀을 나누워 주신 것은, 그 말씀에 대한 효과적인 확증으로 자신의 일을 완성하시기 위함이다. 
이런 방법으로 그리스도는 두 제자의 마음을 열어 주셨는데( 24:27, 45), 이는 그들이 성경을 거절하고 지혜를 믿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성경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 5:19-20)라고 데살로니가 사람들을 권면할 때에도, 그는 말씀을 떠난 공허한 사색으로 그들을 이끌지 아니하고 오히려 예언이 멸시를 당해서는 안된다고 즉시 덧붙여 말했다. 이 사실을 통해서 그는, 예언이 경시될 때에 성령이 소멸된다는 것을 확실히 암시했다. 
이에 대하여 거만한 광신자들은 무엇을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결솔하게 버리며 그 말씀에 걀별을 고하면서도 대담하고 뻔뻔스럽게, 자신들의 마음에 일어 나는 몽상들을 확고히 붙잡는 것만이 곧 유일하고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바로 저들이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어울리는 것은 이와는 훨신 다른 절제인 것이다. 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영을 떠나서는 전적으로 진리의 빛을 잃게된다고 생까하는 사라들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님께서 자기 영의 조명을 모든 신자들에게 나누워 주시는 도구로 알고 잇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알고 있는 영은 사도들 안에 거하셨고 사도들을 통하여 말씀씀하시는 성령 이외의 어떤 다른 영이 아니며,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끊임없이 말씀을 듣도록 부르심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10 : 성경은 모든 미신의 잘못을 지정하기 위해 참되신 하나님을 이교도의 모든 신들과 대조하고 있다.

 

1.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 교리 
우리는 앞서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만물에서 당신에 대한 계시를 하셨다. 그리고 그 사실을 더욱 명백하게 하기 위해 말씀을 주시어 더욱 생생하고 상세히 계시해 주셨다. 이제 우리는 창조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가 일치하는지를 살펴보겠다. 이 일을 제대로 하려면 엄청난 노력과 수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경건한 사람들에게 일정한 목록과 같은 정도를 마련해 주어 성경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게 인도하는 정도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 
하나님은 원수로 행하던 사람들을 자기의 자녀로 맞아들일 때는 그 사람들에게 이미 구속 주로서 나타나신 것이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하신 것과 같이----"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 국의 아비가 될지라[ 17:4]" 
그러나 이 장에서 우리는 천지의 주제이신 친히 세우신 우주를 어떻게 통치하시는 가를 연구하기로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부성적 사랑으로 우주 만물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이 엄격하신 분임을 기록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도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사악한 자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징벌을 주시는 가도 기록되어 있다.

 

2. 성경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속성은 피조물에게서 알 수 있는 속성과 일치한다. 
성경의 어떤 부분은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모세가 하나님을 계시할 때 간결히, 그러나 확실히 묘사하려 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34:6]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녀 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 34:7]" 여기서 우리는 그 장엄한 이름에서 하나님의 영원성과 자존성이 선언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완전성도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성을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하나님의 속성은 인간의 공허한 사색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순종에서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이미 본 대로 하늘과 땅에서 빛나고 있는 똑같은 완전성이 여기 열거되고 있는바 그것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선하심, 자비로우심, 공의, 심판, 그리고 진리와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권세와 능력은 엘로힘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충분히 나타내고자 할 때는 그 이름을 사용한다. 그 예로는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145:1]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145:2]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145:3]"에서 볼 수 있다. 이 시편에는 하나님의 완전성이 총체적으로 정확히 묘사되어 있다.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사를 나는 묵상하리이다[ 145:5]" 이 시편에는 피조물이 볼 수 없는 것들이 전혀 묘사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우리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계시하신 하나님을 정확히 볼 수 있다. 
예레미아는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9:24]"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전 1:31]" 라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꼭 알아야 한다. 
   1). 인애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 사역이 여기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2). 공평한 심판 : 행악자들은 날마다 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고 영원한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3). 정직 또는 의이다. 이것으로 신자는 보존되며 가장 자애로운 양육을 받고 있다.  

예레미아는 이러한 속성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충분한 방법을 터득한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진실하심, 거룩하심, 권세 등을 정확히 말씀하시고 있다. 시인은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 하시리로다[ 25:8]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25:9]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25:10]"에서도 하나님의 모든 길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이라고 말씀했다. 
실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모든 피조물에 세겨져 있는 빛나고 있는 지식과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 지식은 먼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다음으로는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한다. 이 지식으로 우리는 완전 무결한 생활과 거짓이 없는 생활이 무엇인가를 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그의 선하심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3. 이러한 하나님의 유일성이 이교도들에게도 계시되었기 때문에 우상 숭배는 더욱 핑계할 수 없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진리로 올바르게 인도하시기 위해 이교도들의 모든 우상을 배격한다. 그것은 거의 모든 시대의 다른 종교들은 일반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이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어디서도 알려 졌으며 존경받은 것은 사실이다. 많은 신들을 섬기는 이교도들도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마치 유일신으로 만족이나 하는 듯 '하나님'의 이름을 단수로 쓴다. 그리고 이를 지혜롭게 일아 차린 져스틴 마터(Justin Martyr)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 하나님의 유일성이 사람의 마음에 세겨져 있다고 주장했다. 터툴리안도 이와 같은 것을 흔히 사용되는 구절로 입증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의 허망하고 어리석은 생각에 빠져들어 그 지각이 소멸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다신으로 말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유일하심에 대한 핑계를 댈 수 없음에도 어리석게도 다른 여러 신들을 함께 섬기는 스스로를 속이고 사단의 꾀임에 빠지는 죄를 지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그들이 섬기는 신들이 그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언젠가를 뼈아프게 경험할 것이다.

하박국은 일체의 우상을 정죄한 후에 "성전에 계신" 유일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찾으라고 명령하신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2:20]" 그리고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산 자로 하여금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 이외에는 어떤 다른 신도 용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11 : 하나님을 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것은 불 신앙적이다. 그리고 우상을 세우는 자는 일반적으로 참되신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이다.

 

1. 하나님은 가시적 형태로 자신을 표현하려는 어떤 노력도 금하신다. (예배에 있어서의 형상 배격에 대한 성경적 논증) 
하나님은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참되신 신임을 증명하시기 위해 우상과 대립하신다. 그것은 어떤 철학자나 어떤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그렇게 하신다. 그러므로 성경 어디서나 인간이 만든 신을 무로 돌린다. 
인간은 그들이 신을 만들 때 언제나 물질로 신을 조형화 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수한다. "어떠한 형상이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게 되면 그 불 경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은 파괴된다" 하나님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20:4]"라고 하셨다. 그리고 오래 전에 미신이 하나님을 거짓 것으로 바꾸고 있음을 경고하셨다. 
페르시아 인들은 태양과 별들을 형상화하여 신으로 섬기고, 애급 사람들은 모든 동물을 신으로 섬기고 희랍인들은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 전능한 신이라 했다. 이런 많은 우상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나쁜 것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모두 나쁜 것으로 거절하셨다.

 

2. 하나님은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모순된다. 
"여호와께서 호렙산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 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4:15] 두렵건대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하여 아무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되 남자의 형상이라든지, 여자의 형상이라든지,[ 4:16] 땅 위에 있는 아무 짐승의 형상이라든지, 하늘에 나는 아무 새의 형상이라든지[ 4:17] 땅 위에 기는 아무 곤충의 형상이라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아무 어족의 형상이라든지 만들까 하노라[ 4:18]"라고 하였고 이사야는 이 문제에 대해 더욱 강조해서 말씀을 하셨다."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 40:18] 우상은 장인이 부어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위하여 은 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40:19] 궁핍하여 이런 것을 드리지 못하는 자는 썩지 않는 나무를 택하고 공교한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세우느니라[ 40:20]: (41:7,29, 45:9, 46:5-7) 
바울은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17:29]"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말씀은 인간이 만든 조상과 화상은 모두 하나님의 위엄을 욕되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셨다. 세네카는 "그들은 거룩하고 썩지 아니하며 가히 침범할 수 없는 신들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나쁘고 천한 물건들을 사용했다." 어떤 사람은 그것에 사람의 형상을, 어떤 사람은 물건에게 짐승의 형상을, 어떤 사람은 야수와 괴물의 형상을 새겼으며, 어떤 것은 남녀의 추잡한 모습을, 어떤 것들은 몇 개의 다른 몸을 가진 괴물로 만들었다. 만일 그런 것들이 생기라도 가져 사람에게 나타난다면 아무도 그것을 신성시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3. 신적 임재의 직접적인 표징도 형상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다는 말씀은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33:11]" 인간들을 어떤 목적에 의해 적절히 교훈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위엄의 임재다. 하나님의 불가해한 임재를 사람에게 명백히 말해 주는 것들이 있다. "구름과 연기와 화염"( 4:11)은 비록 이것들이 천적 영광의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굴레처럼 모든 사람의 마음을 제어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 이상 더 깊이 파고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모세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기도를 응답 받지 못하고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33:20]"라는 말씀만 받았다. 
신약에서 성령님은 한번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3:16]" 그러나 그 비둘기 모양의 성령님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하나님이 이렇게 임재 하신 것은 성령님이 눈에 보이는 분으로 믿는 것을 경고 받고 다만 성령의 권능과 능력으로 만족할 것이요 어떤 외부적인 형상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하심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종종 나타나신 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보이시는 서곡일 뿐이다. 
구약의 제단에 속죄소를 만들어 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권능의 임재를 보이시기 위한 것이다. 그룹들은 그들의 날개를 펴서 속죄 소를 덮었다. 그리고 그 속죄소는 휘장으로 가리워져 있었으며, 그곳은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다 볼 수 없이 깊이 감추어져 있었다.( 25:17-21). 그것은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도록 하신 하나님의 배려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속죄소를 가리고 있는 소 형상을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자들이 있으니 한심하다.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6:2]"라고 해서 스랍들도 하나님을 볼 수 없이 하나님의 영광은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4. 형상과 화상은 다 같이 성경에 반대된다. 
우상은 물질로 만들어 진 것이요 신아 아니며, 그 형상은 금과 은으로 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막연히 만들어 숭배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다. "열 방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수공 물이라[ 135:15]"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 물이라[ 115:4]" 이와 못지 않게 나쁜 것은 사람들이 이런 우상을 신으로 섬기고 있다는 것이다. 철공은 철을 숯불에 불리고 메로 치고 강한 팔로 갈리므로 심지어 주려서 기력이 진하며 물을 마시지 아니하여 곤비하며[ 44:12] 목공은 줄을 느려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정규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인형을 새겨 집에 두게 하며[ 44:13] 그는 혹 백향목을 베이며 혹 디르사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취하며 혹 삼림 중에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택하며 혹 나무를 심고 비에 자라게도 하나니[ 44:14] 무릇 이 나무는 사람이 화목을 삼는 것이어 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더웁게도 하고 그것으로 불을 피워서 떡을 굽기도 하고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기도 하는구나[ 44:15] 그 중에 얼마는 불사르고 얼마는 고기를 삶아 먹기도 하며 고기를 구워 배불리기도 하며 또 몸을 더웁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44:16]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여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 도다[ 44:17]" 그리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자들에게 무서운 저주를 퍼부었다.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115:8]" 
우상을 만드는 것 뿐 아니라 화상을 그리는 것도 금지되었다. 희랍인들은 화상에 빠져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다.

 

5. 우상에 대한 성경적 판단 
우상은 무식한 사람들의 책이다 라는 말은 그레고리우스가 한 말이다. 이 말은 우상을 통해 하나님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한 그 자신도 우상을 섬기는 일에 빠졌다. 예레미아는 "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우상의 도는 나무 뿐이라[ 10:8]"이라고 했고, 하박국은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2:18]"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떤 사람들이 우상을 통해 하나님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은 순전한 거짓임을 들어내었다. 즉 하나님에 대하여 무식한 자들이 우상을 보고 하나님을 배운다는 억지 주장이다.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예언자들이 그렇게 꾸준히 우상을 버리도록 백성들에게 강요했겠는가? 
그러나 교황 주의자들은 확실한 원리로 우상이 책의 역할을 한다고 한 결정은 예언자들에 의해 전적으로 정죄 되었다. 왜냐하면 예언자들은 참되신 하나님과 우상을 대립시키고 결코 조화될 수 없는 것으로 대치시켰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예배한 것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이셨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하여 보이는 형상을 만든다는 것은 사악한 일이요 거짓된 일이다. 그리고 그런 형상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고자 하는 자들이야말로 비참하게 속고 있는 자들이다. 요컨대 우상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구한다는 것은 거짓이요 허위라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아마 예언자들은 그렇게까지 꾸준히 이를 정죄 하지 않았을 거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허망한 것이며 거짓된 다고 우리가 주장할 때, 다시 예언자들이 가르친 그 한마디 한마디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

 

6 교회의 교리도 우상에 대하여 달리 판단한다. 
락탄티우스와 유세비우스는 형상으로 보이는것은 모두 可死的이라고 주장했다. 어거스틴도 이와 마찬가지로, 형상에 예배드리는 것 뿐 아니라 그 형상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명백히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이미 오래 전에 에빌라 교회 회의에서 제정된 것이 였다. 그 중 36장에서 "교회 안에 화상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예배를 받던가 찬양을 받아야 할 것이 벽에 그려져서도 안된다."라고 기술되었다. 그러나 특별히 기억할 만한 것은 어거스틴이 다른 곳에서 바르로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고, 이에 찬동하고 확신했다는 것이다. "신들의 조상을 최초로 소개한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제거하고 그 대신 오류를 가했다"라는 말이다. 한 이방인이 이 말을 한 것으로 끝이 났다면 그 말은 권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이방인이 어둠 속에서 광명을 찾은 이 말, 즉 유형적인 형상이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경외를 감소시키고 오류를 다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의 위엄을 가질 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한 것은, 우리를 충분히 부끄럽게 하고 남음이 있다. 이것은 진실과 지혜로 말한 것임을 사실 자체가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그 말을 바르로에게서 인용했지만 자신의 사상에 따라 진술한 것이다. 
그리고 첫째로, 인간이 저지른 하나님께 대한 최초의 오류는 형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 새로운 요소(형상)가 가해지자 오류가 증가한 것이라고 했다. 
둘째로, 형사의 어리석음과 그 둔하고 불합리한 고안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신성이 쉽게 멸시를 당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경외가 감소되고 심지어는 파괴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둘째 사실에 대하여서, 우리는 그런 것을 경험하지 않기를 지심으로 바란다. 그러므로 바르게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을 형상이 아닌 다른 자료에서 배워야 한다.

 

7. 교황 주의자들의 형상물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교황주의 자들이 조금이라도 수치를 느낄 줄 안다면, 하나님이 무식한 자의 책이라고 속임수를 써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의 많은 증거에 의해서 명백히 반박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양보해서 그런 주장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들의 우상을 옹호하는데 아무런 유익이 안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와 같은 괴물들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이 만든 성자의 화상, 혹은 彫像은 가장 음란한 실례가 아니고 무엇인가? 만일 아무라도 그들을 본받고자 한다면, 그는 마땅히 체형을 받아야 한다. 실로 그들의 교회에서 동정녀의 조상(彫像)이라고 여겨지기를 바라는 형상물보다 오히려 창녀의 복장이 더 정숙하고 순수하게 보인다. 그들은 순교자들에게 좀더 잘 어울리는 복장을 입힐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황 주의자, 우상을 일종의 성결의 책이라고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순수하게 보이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적당히 징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민일 교회가 의무를 다했다면 무식한 자들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성스러운 곳에서 신자들을 가르칠 분 아니라고 답변할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런 쓰레기 같은 것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교리를 배우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말씀의 전파와 성례 전을 통하여 한 공통된 교리가 모든 사람에게 제시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우상을 생각하여 그 눈을 사방으로 두리번거리는 자들은 이 교리에 대하여 마음과 주의를 성실히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지해서 다만 우상 이외에는 배울 것이 없다고 교황 주의자 말하는 그 신자들은 누구란 말인가? 바로 그들은 주님께서 자기의 제자로 인정한 자들이며, 하늘 나라의 철학의 계시로 광명의 옷을 입은 자들이며, 또한 천국의 구원의 신비로 교육을 받기를 원하는 자들이다. 실로 나는 오늘날도 그러한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묻고 싶은 것은, 그렇게 무식하게 된 것이, 그들은 교육하기에 적합한 교리를 탈취한 데서 온 것이 아니고 어디서 왔겠는가? 실로 교회의 지도자들이 가르치는 직무를 우상에게 넘겨 버렸다는 것은, 그들이 벙어리였다는 것 이외의 다른 이유가 없다. 바울은 이 복음을 진지하게 전파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3:1)이라고 증거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받을 저주를 대신하여 십자가상에서 죽으시고( 3:13), 자기의 육체를 희생하여 우리의 죄를 속하시고( 10:10), 자기의 보혈로 우리를 깨끗하게 씻어 주시며( 1:5) 성부 하나님과 화목케 해 주셨다는 것을( 5:10), 충분히 또는 진실히 배웠다고 한다면, 대체 무슨 목적으로 나무와 돌과 금, 은으로 그렇게 많은 십자가상을 교회 도처에 세웠겠는가? 이 한가지 교리만으로도 나무와 돌로 만든 천개의 십자가상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탐욕적인 사라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오히려, , 은으로 만든 십자가상에 저들의 마음과 눈을 더욱 더 집착하게 된다.

 

8. 형상의 기원: 유형적 신격에 대한 인간의 욕구 (교회의 회화는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결과적으로 형상의 사용과 예배 부패의 원인이 된다) 
우상에 대한 잠언의 말은 거의 일반적으로 동의를 얻고 있다. 곧 우상을 처음으로 창시한 자들은 죽은 자를 존경하는 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죽은 자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들은 미신적으로 예배하게 되었다. 그것은 우상 숭배에 대한 인간의 천박한 갈망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그 악한 우상 숭배의 최초의 원인은 아니다. 이교의 저술가들이 자주 말하는 死者像을 신성시하려는 열망이 유행하기 전에, 벌써 우상이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모세로부터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는 라헬이 그 아비의 우상을 훔쳤다고 말하면서 우상을 사용하는 일을 흔히 있는 죄악이라고 바랬다( 31:19). 이 사실에서 인간의 본성에는 우상을 만들어 내는 영원한 工場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홍수 이후에 세계는 새롭게 재생되었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자기 멋대로 신들을 만들어 냈다. 하나님께서 얼마 전에 무서운 심판으로 정화시킨 땅에 우상이 득실거리는 것을 노아는 고통 없이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증거한 대로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데라 와 나홀은 거짓 우상을 섬긴 자들이 였다( 24:2) 인간의 마음은 교만과 무모로 가득 차 있어서 자신의 기호에 따라 감히 신을 상상하여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은 완만하게 어리석음과 무지로 완전히 젖어 버리기 때문에 그 공허하고 허망한 환영( 幻影)을 하나님으로 상상해 버린다. 
이런 악에는 또 다른 악이 함께 하는 법이다. 즉 인간은 내적으로 상상한 하나님을 手工으로 표현하려 애를 쓴다. 그러므로 마음은 우상을 잉태하고, 손은 그 우상을 만들어 낸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유형적으로 나타내지 아니하는 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우상의 기원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는 일들이 증명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애급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32:1)고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수많은 이적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했다. 그러나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증거로서 하나님의 존재를 어떤 유형적인 상징으로 볼 수 없는 한, 하나님께서 그들 가까이 에서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故國 行進의 인도자가 바로 하나님이 였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이 인도한다고 인정하려 했다. 그들은 일상생활의 경험에서 육신은 자기들과 비슷한 허구를 얻고 나서는 부분별 하게도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상인 것처럼 위안을 얻는데, 이렇게 하기 전에는 결코 만족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세계가 창조된 이래 거의 모든 시대에 걸쳐서, 인간은 그 맹목적인 욕망에 따라 볼 수 있는 상징 물들을 세우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고 믿었다.

 

9. 형상물의 사용은 마침내 우상 숭배에 빠지게 한다. 
여러 종류의 공상(우상 숭배)에는 즉시 예배가 따르게 마련이다. 인간이 형상에서 하나님을 보냈고 하면 역시 하나님을 형상으로 예배하게 되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들은 그들의 마음과 눈이 전적으로 우상에게 얽매이게 되고, 점점 무감각해져서 마치 거기에 신적인 무엇이 있는 것처럼 그것들에게 완전히 감탄하게 되고 만다. 그런데 인간이 지나치게 우둔하게 되기 전에는 우상 숭배에 뛰어 들어 가지 않는다. 사실 처음에, 그들은 우상을 신으로 간주한 것이 아니라, 신의 어떤 능력이 그것에 내 주 한다고 상상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나 어떤 신들을 형상으로 표현하여, 그를 예배하기 위하여 그 앞에 끓어 엎드릴 때에는, 어떤 미신에 매혹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조상을 만들어 세우는 일과, 예배를 유도할 만한 비문이나, 석비의 어떤 것도 금하신 것이다( 20:25). 
같은 이유에서 제 2 계명에는 예배에 대한 것이 첨가되어 있다. 인간은 하나님을 가시적인 형상으로 만들자 마자 즉시 하나님의 권능이 그 형상에 부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형상화하고 나서는 여기에 하나님을 결부시키고, 마침내 그것에 예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만다. 단순한 우상만을 예배하던지, 하나님을 우상으로 예배하던 지의 차이는 전혀 있을 수 없다. 여하한 구실을 막론하고, 우상에게 하나님의 존영을 부여하는 것은 언제나 우상 숭배가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미신적으로 경배를 받기 원하시지 않기 때문에, 우상에게 무엇을 부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을 빼앗는 것이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참된 종교를 매몰시키고 전복하였다., 그 저주받아 마땅한 우상 숭배를 변호하기 위해 구차한 구실을 찾고 있는 자들은 이 점을 유의하라. 그들은 (케도릭) 형상을 신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유대인들도 금송아지를 만들기 전에는( 32:4), 하나님[서 친히 그들 손으로 그들을 애급에서 인도해 내신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무분별하지 않았다( 26:13). 그러나 금송아지가 바로 그들은 애급에서 구원한 신이라고 아론이 말하자, 그들은 이에 동의하여( 32:4.8), 그들 앞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굼송아지에게서 볼 수만 있다면, 해방자이신 하나님을 금 송아지 형상을 그대로 존속시키기를 원하다고 했다. 
그들은 마음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냈으나 언제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동일한 신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그 많은 형상들의 신이 각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예배하는 것들은 보이는 형상물이 아니라 그 속에 보이지 않게 내 주 하시는 한 실재라고 주장했다. 즉 유형적인 형상물을 통해 마땅히 예배드려야 할 대상에 대한 記號를 바라본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영적 이해로 만족하지 않고, 형상물을 통해 더욱 확실하고 친근한 이해가 그들에게 주어진다고 했다. 그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왜곡된 우상으로 만들고 나서 끊임없는 새로운 계교에 미혹이 되어, 마침내 하나님이 우상을 통해 그 권능을 나타내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유일하신 천지의 대주제이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을 이오 같은 형상으로 예배해도 된다고 확신했다. 한편 이방인들은 거짓된 신이기는 하지만, 이 신들이 하늘에 거주한다고 상상하고 그들에게 예배했다.

 

10. 교회에서의 형상물 예배 
이런 일이 이전에는 행해지지 않았고, 그런 기억이 없다고 주장하는 뻔뻔한 자들이 있다. 그들은 어찌해서 우상 앞에 부복하는가? 그들은 기도할 때 하나님의 귀를 향하는 것처럼 우상을 향해 하는가? 실로 어거스틴은 "우상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예배드리는 사람 치고, 그 우상이 자기의 기도와 예배를 받아 주리라는 생각과, 자기의 원하는 바를 이루워 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라고 한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 
형상물 가운데 어떤 것은 무시를 당하고, 어떤 것은 존경을 받는가 하면, 어떤 것은 가장 엄숙한 존영을 받는데, 어찌해서 동일한 하나님의 상들에게 이처럼 차별을 한다는 말인가? 어찌하여 그들은 자기들 집에 우상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똑같은 우상을 보기 위하여 서원(誓願)을 위한 순례의 길을 떠나, 자기 몸을 피곤하게 하는가? 어찌하여 그들은 제단과 火床을 위해 싸우는 것처럼 살육과 유혈을 무름 쓰고 형상물을 위해 싸우면서 우상보다는 오히려 유일하신 하나님을 그렇게 쉽게 떠날 수가 있는가? 그들은 우상 숭배에 대한 자신들의 결백을 "우리는 결코 우상을 우리의 신이라 부르지 않는다."라고 말하여 주장한다. 유대인이나 이방인들도 우상을 그들의 신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끊임없이 그들을 목석으로 더불어 간음한다고 비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2:27; 6:4이하; 40:19-20; 2:18-19; 32:37). 그런데 이런 행위가 오늘날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자들에 의해서 매일 행해지고 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나무와 돌로 만들어 놓고 육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11. 교황 주의자들의 어리석은 회피. 
그러나 그들이 아주 교묘하게 구별을 함으로써 회피하려한다는 사실을, 내가 모르는 바가 아니며 또한 감추어도 안 되지만 이에 대하여는 조금 후에 언굽하기로 한다. 그들은 형상물에 표시하는 존경을 우상에게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우상을 '예배'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런 말로써 하나님께 아무련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도, '둘리아' 곧 영광이라는 것이 彫像이나 畵像에게 돌려질 수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만 우상의 봉사자일 뿐 예배지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아무련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실로 이것은 마치 "예배하는 것: "봉사하는 것"보다 더 가벼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더욱이 그들은 희랍어에서 피할 곳을 찾으려 하나 그것은 매우 유치한 방법으로 모순을 일심고 있다. 왜냐하면 라트류에인이라는 말은 희랍인들 사이에서 "예배하다"는 뜻을 지니는데 불과하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형상을 예배하고 있지만 예배는 아니다"라고 고백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내가 말에서 그들을 책잡으려 한다는 것을 반대할 아무련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순박한 사람들의 눈을 어두움으로 덮을 때,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무지를 스스로 폭로하고 있는 샘이다. 그러나 아무리 능변이라고 해도 그들의 웅변술로는 결코 동일한 것을 가지고 두 개가 서로 다른 것이라고 입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과 옛날의 우상숭배자들과의 사실상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지적해 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간음하는 자나 살인자가 자기 범죄에 대하여 디른 별명을 붙인다고 해도 죄책을 면할 수 없는 것처럼, 만일 그들이 응당 정죄를 받아야 할 우상 숭배자들과 실제에 있어서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들이 명칭을 교묘하게 고안해 내어 변명을 일삼으려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동기는 우상 숭배자들의 동기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오히려 전체 악의 근원은 그들의 터부니 없는 경쟁심에 있었다. 그 경쟁심으로 그들은 우상 숭배자들과 다투어, 그들의 機智로는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한 상징을 고안해 내고. 손으로는 그것을 날조하였던 것이다.

 

12. 예술의 기능과 한계 
순수한 조각이나 회화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그것은 정당하게 아름답게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익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신 은사가 불합리하게 남용되면 우리를 파멸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어떤 가시적인 모양으로 표현하려는 것을 말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금하셨기 때문이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20:4]" 건실한 예술가들은 그들이 하나님에게 받은 재능을 가지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데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상물 이외에는 무엇이나 만들거나 그려서는 안된다. 더욱이 하나님의 영광을 흉측한 형상으로 만든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가시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역사적인 사건들이요, 하나는 역사적인 것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전자는 교육에 있어 필요하나 후자는 인간의 쾌락을 위한 것 외에 아무 목적도 발견할 수 없다. 케도릭 교회에서 발견되는 형상물들은 후자에 속한 것들이다. 이와 같은 것들은 그들의 판단력과 분별력의 산물이 아니라 어리석고 경솔한 격정의 산물이다.

 

13. 건전한 교리를 가진 교회는 형상물을 예배하지 않는다. 
교회 안에 어떤 형상물을 두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기독교의 아주 순수한 교리가 왕성했던 500년 동안은 교회 안에 어떤 형상물을 두지 않았다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교회 안에 형상물이 없어 던 때 보다 형상물을 가질 때 교회는 타락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어거스틴은 "형상물은 높고 숭고한 자리에 두게 되면 기도하는 사람과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주의를 끌게 되고 그것이 비록 감각과 생명이 없는 것이라 해도 생명이 있는 지체와 감각이 있는 생명체와 비슷해져 유약한 마음을 감동시키고 결국 그것들이 살아 호흡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우상이 수족의 형태를 가지고 있음으로 육체 안에 머물고 있는 마음은 그것이 자신의 육체와 너무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에 우상의 형태도 감각이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며 또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생각을 안할 수 없게 만든다." "우상은 눈과 입과 귀와 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행한 영혼을 굴복시키는 많은 힘을 가진다. 그러나 그것은 그 불행한 영혼을 회복시키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 우상은 말하거나 보거나 듣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우상을 섬겨서는 안되는 이유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요일 5:21]"

 

14. 니케아 회의(787)에서의 형상물에 대한 유치한 논쟁.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위에서 충분히 생각을 했지만, 니케아 회의가 우리의 주의를 끌기 때문에 다소간 이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여기서 말하는 회의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소집했던 저 가장 유명한 회의가 아니라, 이레네 황후(780-802년까지 동방 제국의 여왕. 칼빈은 그 녀를 "Irene"라고 하는 사악한 Proserpine(로마 신화에 나오는 지옥의 여왕)이라고 하였다).의 명령과 그 후원하에 800년 전에 개최된 회의를 말한다. 이 회의에서는 교회 안에 형상물을 설치할 뿐 아니라, 이 형상물에 예배까지 드리도록 결정했다. 이 회의는 우리들의 반대자들에게 유리한 빌미를 제공했다. 이런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이 된다기 보다는 오히려 형상물에 더 큰 애착을 가진 자들의 발광이 어떤 것인가를 독자들에게 말하는 욕망 만큼 나를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할 필요는 있다. 오늘 날 형상물 사용을 지지하는 옹호론자들은 형상물 사용을 허용하는 니케아 회의가 그들을 지지한다고 끝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샤룰마뉴 대제의 이름으로 나온 반박서가 있는데 이 문서는 그 문체로 보아 그 당시에 저술된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서다. 여기에 당시에 그 회의에 참석했던 감독들의 의견과 그들이 사용한 증거들이 기술되여 있다. 동방 교회의 사절인 요한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 형상으로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1:27),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형상물을 가져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 그는 "나로 네 얼굴을 보게하라----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2:14)라는 이 성구는 우리에게 형상물을 권하는 말씀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형상물을 마땅히 제단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아래 두지 않고 등경위에 두나니"( 5:15)라는 말씀을 인용하기도 했다. 더욱이 어떤 이들은 형상물을 우러러 보는 일이 우리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4:6)라는 말씀은 印證하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 비교 강조하기도 했다. 즉 족장들이 이방인의 제물을 사용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의 우상 대신 성자들의 형상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26:8)이라는 말씀을 곡해하였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가장 교묘한 것은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요일 1:1)라는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의 말씀을 들어서만이 아니라 형상물들을 靜觀함으로써 알게된다는 것이다. 
데오도루스 감독도 이와 비슷한 통찰력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은 성도들 안에서 찬양을 받으신다"(불가타역, 67:36)고 하였고 다른 곳에서는 "지상에 있는 성도들에게"(불가타역, 16:3)라고 말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틀림없이 형상물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요컨데 그들의 어리석음이야 말로 혐오스러울 정도여서 그것들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이다.

 

15. 성경 본문에 대한 엉뚱한 誤用 
우상 숭배자들은 성경을 오용하여 우상 숭배를 옹호한다. "야곱이 바로 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47:10]" "야곱이 그 지팡이에 머리를 의지한 것( 47:31; 11:21). 야곱이 세운 돌 비에 기름을 부은 것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28:18]"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 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99:5]"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경배할지어다 대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도다[ 99:9]" "두로의 딸이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은혜를 구하리로다[ 45:12]" 같은 말씀들을 우상 숭배를 뒷받침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한다. 미라의 감독 데오도시우스는 형상물이 마치 하늘에게 내려온 것처럼 신성시하기도 했다.

 

16. 형상물에 대한 모독적이며 무서운 주장. 
아모리의 감독 데오도시우스는 형상물 예배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파문했다. 그들은 황제의 상에 분향을 하는 사람들은 성자의 상에는 더욱 분향을 해야 하고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고 강요했다. 키프러스 섬의 콘스탄스 감독 콘스탄티누스는 형상물을 경건히 받아들인다고 공언하고 앞으로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과 똑 같은 예배와 영예를 그 형상물에 드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을 파문하고 마니교나 마르키온파와 동류로 정죄를 했다. 동방 교회의 요한 사절은 "그리스도의 상을 가지고 그것에 제물을 바치는 자는 기뻐 날뛰어라"라고 말했다. 그들은 예배라는 말인 "라트리아"와 봉사란 말인 '둘리아'를 동일시하고 있어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12 : 하나님은 우상과 달리 완전한 예배를 받으실 수 있다.

 

1. 참 종교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 강의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는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수반된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이 강의에서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말할 때 하나님의 어떤 속성도 다른 곳에 귀속시켜서는 안된다. 종교라는 헬라어 '유세베이아'는 예배를 뜻하는 말로서 어느 누구도 하나님에 대해 외곡된 예배를 피하기 위해 예배에 대한 확실한 법칙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다른 종교와 우상에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셨는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 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20:5]"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순종하게 하기 위해 합리적인 예배를 제정하셨다. 그리고 율법에 다음 두가지를 첨가하셨다. 
첫째는 신자들을 자신에게 종속시켜 하나님이 사람에게 율법을 주신 유일하신 분으로 역사하시고, 둘째는 자신의 의지를 따라 사람들이 당연히 영광을 돌리도록 규범을 정하신 것이다. 즉 율법을 통해 사람들은 악한 예배에 빠지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며, 하나님의 신성하시고 고유하신 것이 유일하신 하나님에게만 귀속되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간사한 자들은 하나님의 지고적 위취를 지키면서도 다른 신들은 하나님만 못하지만 섬긴다고 한다. 즉 하나님은 여러 신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 신들 가운데 최고의 신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신이시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2. 차이 점이 없는 구별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나 천사를 섬기는 것이나 아무 구별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를 드리는 것이나 성자를 섬기며 예배를 드리는 것이나 아무 차이도 없다. 그들은 하나님에게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다른 것에게는 봉사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봉사라는 말이 예배라는 말이고 그 말은 어떤 경우에 더 광범위한 섬기는 말로도 쓰이는 말이다.

 

3. 형상 예배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다. 
바울은 갈라디아교인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깨우침을 받기까지 어떤 형편에 있었는지를 말했는데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4:8]"라고 했다. 여기서 '종노릇하다'라는 말은 '둘리아'라는 말로서 우상 숭배자들이 성자 숭배을 할 때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 말을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의 예배 해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4:10]"라 하신 말씀에서 경배라는 말에 '라트리아'라는 말을 쓰셨는데 이 말씀을 하게 된 것은 사단이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4:9]"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단은 '경배'라는 말을 '둘리아'라는 말을 했다. 
마찬가지로 사도 요한은 천사 앞에 무릅을 끓었다는 이유로 천사의 책망을 받은 일이 있는데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19:10]"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22:8]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22:9]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22:10]"라고 했다. 
사도 요한 이 천사에게 절을 하려 한 것은 그를 하나님으로 믿기 때문에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도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 대신으로 '(프로스쿠네인)'을 할 수 없다. 우리는 흔히 사람이 사람에게 절을 받게된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적인 행위라기 보다 윤리적인, 세속적인 존경을 의하는 것이지 종교적인 행위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종교는 이런 행위로 다른 의미를 가진다. 종교가 일단 예배와 결합이 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모독하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고넬료에게서 볼 수 있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10:25]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10:26]" 
고넬료의 인격과 신앙은 베드로를 하나님으로 보고 절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이런 그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만류하고 있는 것을 본다. 
바울과 실라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부터 앉은뱅이된 사람을 고쳤을 때 사람들은 바울을 허메라 하고 바나바를 쓰스라 하여 경배하려 했다. 이 때 두 사도는 기겁을 하여 말하기를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 하여[ 14:11]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 14:12] 성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13]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14:14]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함이라[ 14:15]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14:16]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게 하셨느니라 하고[ 14:17]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14:18]"라고 하여 그들을 만류했다. 
그들의 이런 행동을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돌아가야 할 영광을 자기들이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죄가 되는 것인가를 너무 잘 말씀하시고 계신 것이다. 
스가랴는 교회의 회복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14:9]"라고 분명히 말씀했다.

결론적으로 사람이 하나님에게 드릴 예배를 다른 것에도 드린 다는 것은 하나님도 좋으시고 다른 신들이나 사람도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대한 적극적인 영광의 훼손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미신은 처음에 하나님에게 드리는 영광을 태양, , 우상을 위해 고안했다. 그러나 야심이 뒤따라 하나님으로 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 썩어질 것으로 하나님을 대신하는 큰 죄를 짓게 되었다. 그리고 최고의 신을 섬기는 원리가 남아 있다고 하면서 저급한 신들, 수호신들, 죽은 영웅들에게 아무련 차별없이 제물을 바치는 일반적인 행위를 하고 결국 하나님도 그런 신들 중의 하나로 취급을 하고 만 것이다. 이런 행위는 유일하신 하나님만 가지신 특별한 은총과 영광을 수 많은 우상들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것들이 하나님이 되는 것처럼------

 

13: 성경은 하나님은 한 본체 시나 본체 안에 3위가 존재함을 가르치신다.

 

1. 하나님의 본성은 불가해하며 영적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본질이 무한하시며 영적이라는 것을 가르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일축하시고 교묘하게 꾸민 이론들을 말살하시기 위해서다. 고대의 세네카는 우리에게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모두가 하나님일 수 있다"라는 말을 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에 하나님의 신성이 침투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의 잘못된 생각을 염려하시므로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 충분히 나타내시지 않았어도 인간이 하나님을 잘못 오해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계시를 하셨다. 하나님의 무한성은 실로 우리들을 두렵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한다. 또 하나님의 영적인 본성은 인간이 하나님을 마음대로 상상할 수 없게 만드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자신이 하늘 나라에 계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우리들이 하나님을 전혀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하늘로 끌어 올리셔서 당신을 우리들에게 계시하셨다. 
마니교 사람들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으며, 그러므로 하나님도 인간의 몸과 같은 몸을 가지고 계시다고 한다. (이 마니교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만들어 졌으며 이 파의 교주는 주후 372년에 사망한 아우디우스라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도 손, , 눈이 있는 사람과 같은 모습을 하고 계시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를 계시하실 때 유모가 어린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손, 발들의 말들이 신인동성동형적인 표현일 뿐인 것을 간과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 지라.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 분토같이 되었으나 그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 손이 오히려 펴졌느니라[ 5:25]" "여호와께서 그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 30:30]" "그는 목자 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40:11]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보았으랴[ 40:12]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40:13]" 
이와 같은 표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에게 알리시기 위한 것이지 실제로 하나님의 눈이 있고 팔이 있으되 사람의 그것과 같다는 말씀은 아닌 것이다.

 

2. 하나님 안에는 삼위가 있다. 
하나님은 자신을 우상과 구별하시기 위해 아주 독특한 특징을 사람에게 보이셨다. 즉 하나님은 한 분이시나 삼위로 존재하신다는 그것이다. 삼위 일체이신 하나님, 그러나 단 한 분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은 세분이시다 라는 다신 적인 사상과, 하나님은 한 분이시나 세 분으로 분활 되었다는 생각을 불식시키기 위한 정의가 있어야 한다. 
먼저 위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은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를 인용 예수 님은 하나님의 본질이 아니시고 밀초에 도장을 찍은 것과 같은 파생 체라고 생각을 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은 예수 님에게 적용할 수 없다. 하나님은 단일하시며 분할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 자신 안에 모든 완전을 포함하시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성자 안에서 전적으로 자신을 나타내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본체를 예수 님을 통해 세상에 들어내신 것이다. 즉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것이다. 예수 님은 하나님의 그림자나 능력을 덧입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인 것이다. 이 일에 대하여 히브리서의 기자는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3]" 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본체는 예수 님에게 나타나셨으나 예수 님 자신의 본체도 있어서 예수 님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신다. 
이와 같은 원리에서 성령 님에 대한 것도 결론 지을 수 있다. 성령 님도 본질은 하나님이시나 성령 님의 본체가 있으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분으로서 본질은 하나이시지만 본체로서는 세 분이시다. 이것은 위라고 말한다. 이 본체를 사람들은 더 알아듣기 쉽게 '실재' 또는 '실체'라는 말로 쓰기도 한다.

 

3. '삼위일체' ''라는 표현은 성경 해석에 도움을 준다. 
삼위라는 말은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서 실체 하시는 완전한 분이시고,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것은 성경 적인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다. 삼위 일체라는 말은 하나님에 대한 잘된 표현이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이 성경에 없는 말이라고 해서 쓰지 못할 말로 말하는데, 성경 자체의 진리를 잘 표현하고 성실하고 진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외래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4. 교회는 거짓 교사들을 폭로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 ""()와 같은 표현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진리를 떠나 회피하는 거짓 비난 자들을 대항해서 진리를 주장하게 될 때에는 이러한 신기한 용어(민일 이와 같이 불러져야 한다면)는 특히 유용하다. 오늘 날 우리는 순수하고 건전한 교리의 적들을 패주시키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기 위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교활한 뱀들을 용감하게 추적하여 붙잡아 짓밟아 버리지 않는 한, 비뚤어지고 사악한 마음의 소유자들인 자들은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그리하여 고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논쟁에서 부패한 교의를 대항하여 싸울 때에, 오류를 감추기 위해 장광설을 늘여 놓는 불경 자들이 그 어떤 사악한 술책도 부리지 못하도록 그들의 의견을 가장 명백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리우스는 성경의 명백한 증거를 대항 할 수가 없어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는 마치 그것을 당연한 일이나 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동의하는 척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리스도도 다른 피조물과 같이 창조하였기 때문에 시초를 가진다고 주장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인간의 이와 같이 교활함을 그 숨은 장소에서 끌어내기 위해 고대의 교부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는 성부의 영원하신 아들이시며 그 본질이 성부와 동일하다고 하였다. 아리우스 파가 호모우시오스(동일 본질)라는 말을 극단적으로 미워하고 저주한 이 사실에서 저들은 자기들의 불 신앙을 들어내었다. 그러나 만일 저들이 처음부터 성실하고 진실 되게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고백했더라면, 저들은 까 성부와 동일 본질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감히 이 선한 사람들을, 사소한 용어 때문에 격렬한 논쟁을 일으키고 교회의 평화를 깨뜨렸다는 이유로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 논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할 수 잇겠는가? 그러나 그 단순한 용어가 순수한 신앙을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히는 모독적인 아리우스 파와의 구별지은 것이다. 그 후에 사벨리우스라는 사람이 일어나 성부, 성자, 성령의 명칭은 거의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서, 이 명칭은 구별을 위해 설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여러 속성을 구별하는 데 불과하며, 이런 속성은 아주 많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가 논쟁에 올랐을 때 그는, 성부도 하나님이요 성자도 하나님이며 성령도 하나님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그 후에, 하나님은 다만 능력이시고 공의로우시며 지혜로우신 분에 불과하다고 말해서 위의 고백을 쉽게 회피해 버렸다. 이와 같이하여 그는, 성부란 성자를 말하며 성령은 성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어떤 순서나 구별이 없다고 하는 또 하나의 옛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중심에 경건을 소유한 당시의 훌륭한 학자들은 이 사벨리우스의 사악함을 무너뜨리기 위해, 한 하나님 안에서의 세 특성의 존재가 참되게 인정되어야 한다고 소리 높이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사벨리우스의 그 사악함을 대항하여 명백하고 단순한 진리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한 분 하나님 안에 삼위가 존재한다는 사실, 같은 말이지만 하나님의 단일성 안에 삼위가 계시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확언하였다.

 

5. 신학적 용어의 한계성과 필요성 
그러므로 이런 용어들이 경솔하게 창안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들 용어들을 거절함으로써 경솔하고 교만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실로 나는 모든 사람들의 신앙이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 하나님이시나 성자는 성부가 아니며 성령 또한 성자가 아니며 그들 각자는 서로가 어떤 특성에 의해서 구별된다는 이 한 점에 일치하게 된다면, 이 용어들은 잊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실로 나는 단순한 용어 때문에 완강하게 싸울 정도로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주 경건한 이 문제를 다룬 고대의 교부들도 서로가 일치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그들 개인적으로 일괄된 견해를 유지하지 못한 것을 알고 있다. 그 예로, 힐라리는 여러 회의에서 채택된 條文들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했던가? 어거스틴은 얼마나 자유스럽게 이런 문제를 다루었던가? 희랍의 교부들과 라틴 교부들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던가? 그러나 이 여러 차이점들 중, 여기서는 다만 한가지 실례만을 들어도 충분할 것이다. 라틴 교부들이 "호모우시오스"라는 말을 번역하고자 하였을 때, 그들은 성부와 성자의 실체는 하나라는 것을 가르치는 "동일 본질"(consubstantial)이라는 말을 사용했으며, 이리하여 "실체"(substance)라는 말을 "본질"(essence)이라는 말 대신에 사용했다. 
제롬은 역시 다마수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 안에 세 실체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세 실체가 있다는 말을 독자들은 힐라리의 글에서 백 번 이상이나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제롬은 "본체"(hypostasis)라는 용어에 대하여 얼마나 혼란을 일으켰던가?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 세 본체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떤 毒이 숨어 있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이 용어를 경건한 의미에서 사용했다고 해도 그는 그것이 부적당한 표현이라는 사실을 감추지 안았을 것이다. 비록 그가 자신이 미워하였던 동방 교회의 감독들을 아무 근거도 없이 고의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비방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성실히 주장하였다 해도 그것은 사실이 였을 것이다. 확실히 모든 세속 학파에서 "우시아"(ousia)가 본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정성이 결여되었다고 그는 보았는데 이런 견해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용법에 의해 끊임없이 반박되었다. 어거스틴은 이에 대하여 더욱 온건하고 정중하였다. 그는 "휘포스타시스"라는 말이 이런 의미에서 라틴 교부들에게 새로운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희랍 교부들이 사용한 어법을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희랍 교부들의 용어를 모방한 라틴 교부들을 관대히 허용하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그의 '삼부사'(三部史) 6권에서 "휘포스타시스"에 관하여 기록한 것은, 그것을 무시한 사람들에 의해 이 문제에 잘못되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그러나 이미 위에서 말한 힐라리는. 경건한 마음속에 간직해 두어야 할 것들을 이단자들이 그들의 사악한 행위로 말미암아 인간 언어의 위험에까지 빠뜨렸다고 하여, 그들의 커다란 범죄를 비난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것은 분명히 불법을 행하는 것이고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한 것이며 용납해서는 안되는 것들을 가정한 것이라고 솔직히 공언했다. 조금 후에, 그는 자신이 대담하게 새로운 용어를 제시 한데 대하여 충분히 변명하고 있다. 즉 그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하는 자연적인 명칭들을 제시한 후에 즉시 첨가하여 말하기를, 이들 명칭 이외의 어떤 다른 것을 구한다는 것은 곧 언어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며 감각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고 이해력의 한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그는 갈리아의 감독들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저들이 사도 시대로부터 모든 교회가 받아들인 그 고대의 아주 단순한 신앙고백 이외에는 어떤 신앙고백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받아들이지도 않았으며 또한 알지도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거스틴의 변명도 이와 비슷한 데가 있다. 즉 그는 이와 같은 중대한 문제를 논하기에는 인간의 말이 빈곤하기 때문에 "휘포스타시스"라는 용어를 부득불 사용하게 되었으나 이러한 용어로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설명할 수 없고, 다만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묵과하지 않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거룩한 사람들의 신중함은, 우리가 받아들인 용어에 대하여 보증하기를 원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고 해도, 그들에 대하여 마치 검열관과 같이 당장 독필을 휘두르지 못하게 하며 혹독하지 비난하지 못하게 하는 경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저들이 교만과 완고함과 악의에 찬 교활해서 그렇게 행하지 않을 때에 한해서이다. 그러나 한편 우리가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필요성을 그들로 하여금 신중히 고려하게 하며, 점차로 그 용어의 유용함에 익숙해지게 하자. 그들이 한편으로는 아리우스 파에게, 다른 한편으로는 사벨리우스 파에게 대항해야만 할 때, 논쟁을 피할 기회가 없어지게 되면 자신이 혹 아리우스의 제자나 사벨리우스의 제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지 않도록 조심하자. 아리우스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창조되었던 시초를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그가 "성부와 하나"라고 했다. 그러나, 까 어떤 특수한 특권에 의해서라고 하지만 다른 신자들처럼 성부에게 연합되었다고 은밀하게 자기 제자들의 귀에 속삭이기도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그 본질이 동일하다고 주장해 보라. 그리면 그 변절자의 가면을 벗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경에 무엇을 더 하는 것은 아니다. 사벨리우스는 성부, 성자, 성령의 명칭은 신격의 구별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에게 삼위가 있다고 주장하면, 사벨리우스는 그것이 세 신을 말하는 것이라고 외칠 것이다. 
하나님의 한 본질 안에 삼위가 있다고 주장해 보자. 이것은 바로 성경의 주장하는 바를 한 마디로 말하는 것이 될 것이며, 또한 이런 주장은 그의 공허한 다변을 억제하게 될 것이다. 실로 어떤 사람들 가운데는 미신적 관습에 사로잡혀 이 용어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있겠지만 성경이 한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는 우리는 그 말이 본체가 하나라는 말로 이해해야 하며, 성경이 한 본질 안에 셋이 있다고 할 때에는 그것이 삼위 일체의 세 위격을 의미한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 용어들이 아무리 간계 없이 정직하게 고백된다면, 우리는 구태여 용어에 대하여 이 이상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용어에 대하여 집요하게 논쟁하는 사람들이 어떤 숨은 독소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의 숱한 경험을 통해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저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모호한 말을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고의적으로 저들에게 도전하는 것이 보다 더 낳을 것이다.

 

6. 가장 중요한 개념의 의미. 
''라는 말은 하나님의 본질에 있어서의 실재를 의미하는 말로 이것은 다른 실재와 관계를 가지며 교통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진다. 여기서 말하는 실재라는 말은 본질이라는 말과 다른 뜻을 가진다. 만일 '말씀'이 다만 하나님일 뿐 아무 특징도 없다면 말씀이 항상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1:1)라고 한 요한의 말은 부당하다. 그는 즉시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을 첨가하셨는데 이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본질의 단일성을 상기시킨다. 즉 말씀이 하나님의 본질 안에 계시므로 하나님과 함께 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실재의 관념이 분명해 진다. 즉 실재는 본질과 밀접히 본질과 밀접히 결속되어 있어 본질과 구별될 수 없지만, 그리면서도 본질과 구별되는 특수한 성격을 가진다. 그래서 삼위는 서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각자의 특성을 가진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님이 대조될 때 삼위의 두드러진 특징을 잘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세 위는 서로 잘 전달될 수 없는 특징을 가진다. 성부에 대한 독특한 구별의 표시가 성자에 속하거나 성자에게 옮겨질 수는 없다.

 

7. 말씀의 신격 (성자의 영원한 신격) 
이 장에서 성자와 성령의 신격을 증명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말씀을 발전시킨다. 성경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제시해 줄 때 그 말씀을 다만 공중에 던져진, 하나님 바깥쪽에서부터 나온 일시적인 덧없는 소리로만 상상하는 것과 또 족장들에게 주신 말씀과 모든 예언이 다 이런 소리로만 생각한다는 것은 큰 잘못이다.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의 덧없는 소리가 아니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영원한 지혜를 의미하는 것이며 여기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예언이 나오는 것이다. 이 일에 대해 베드로는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벧전 1:10]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 하니라[벧전 1:11]"과 같이 사도들이나 전대의 모든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실로 그리스도께서 아직 육신으로 나타나시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말씀이 창세 이전에 성부에게서 나오신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예언자들에게 영감을 준 영이 말씀의 영이라 한다면, 그 말씀은 진실로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우리는 조금도 의심할 수 없다. 그리고 모세는 우주 창조 기사에서 이 말씀을 매개자로 제시하시므로 이를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이것이 있으라' '저것이 있으라'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영광이 그의 형상에서 찬란하게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사도들은 세상을 창조하신 그 말씀이 바로 성자라고 증거한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1:2]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3]" 
여기서 우리는 말씀이 성부의 영원하시며 본질적인 말씀이신 성자의 명령 혹은 위임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일에 대하여 솔로몬은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8:22]"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은 지혜가 만세 전에 성부로부터 나와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통괄했다고 말한 것이다. 
이 일은 하나님의 일시적이며 감정적인 표현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당신의 계획을 말씀을 통해 나타내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5:17]"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주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말씀으로 일하셨다는 것을 모세가 말한 것보다 더욱 분명히 말씀을 하신 것이다. 즉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실 때 세 분의 실제가 함께 일하셨다는 것을 명백히 말씀하시고 게신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 부분에 대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2]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3]"이라고 선언을 했다. 요한은 이 말씀에서 영원하신 본질을 말씀하시고 특수하신 실재 즉 위를 귀속시켰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이 우주를 창조하셨을 가도 보이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리어야 옳은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이 본체적인 말씀을 모든 말씀의 게시의 원천으로서 가장 높은 위치에 두어야 하며 이 말씀은 불변하시고 하나님과 영원히 동일하시고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 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8. 말씀의 영원성 
어떤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거시 아니고 천지를 창조하실 때 즉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새롭게 존재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하나님이 말씀을 하실 때 없었던 무엇이 새롭게 생성된 것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잘못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외부적인 사역에 대한 명칭들은 창조 사역 이후에 그에게 적용된다. (: 창조주) 그러나 그런 것까지도 없었던 것이 우발적으로 새롭게 생겨진 것이 아니다. 
야고보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 부터 내려 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17)"이라고 하신 말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을 하시기 전에 이미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즉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하셨을 때 말씀의 능력이 세상에 뚜렷하게 들어 난 것이지 없던 말씀이 새롭게 생긴 것은 아니다. 그 무엇이 어떤 시간에 나타나기 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라는 말처럼 어리석은 말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래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그 오래 전은 시작이 없는 오래 전이다. 주님은 요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서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을 때 주님은 시간의 어떤 기간을 정하시므로 존재하신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명백히 하셨다. 요한은 이 사실을 놓치지 않고 말씀이 우주 창조에 참여하기 전에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라고 분명히 못을 밖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은 시간의 시작 저편에서 벌써 하나님과 함께 하셨고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시는 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사실로서 주님의 영원하신 참된 본질, 주님의 신성이 증명되는 것이다.

 

9. 구약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신성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45:6]"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내는 말씀이다. 여기 쓰인 엘로힘이라는 말씀은 천사라는 말도 되지만 하나님이라는 말로 해석해야 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 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9: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23:5]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23:6]"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42:8]"하신 말씀도 하나님의 유일하신 성격이 성자에게만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10. 영원하신 하나님의 천사 
구약에 나타난 천사는 자신을 영원한 하나님으로 불렀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느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6:11]"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 도다[ 6:12]"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 이 반석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 6:20]"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6:21]"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 인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6:22]"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7:5]"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7:9]"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시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 리나 내가 너의 식물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지 못함을 인함이었더라[ 13:16]" "불꽃이 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단 불꽃 가운데로 좇아올라 간지라 마노아와 그 아내가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으리니라[ 13:20] 
"그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13:22]"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다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13:23]"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니라[ 13:18]" 야곱의 경우에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2:30]"
주님은 창조된 천사가 아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2:9]"하셨고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나가매 다른 천사가 나와서 그를 맞으며[ 2:3]" "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에게 노략 거리가 되리라 하셨나니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 2:9]"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 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25:9]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모압이 거름 물 속의 초개의 밟힘 같이 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 25:10]" 
말라기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3:1]"하셨다.

 

11. 신약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신성 : 사도들의 증거 
신약에는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증거가 많다. 그 수많은 증거들을 다 말할 수는 없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추려 말한다.

1)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증거된 신성이다. 
그리고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신성이다. 로마서에서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하리요[ 9:23]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9:24]"은 이사야의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8:14]"의 예언이라고 바울은 말했다. 즉 그리스도는 만군의 주되신 다는 것이다. 
바울은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4:10]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4:11]"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 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하였노라[ 45:23]"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말씀하신 것도 주님은 만군의 주되신 다는 것이다. 이사야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을 말씀하셨는데 주님은 이 영광을 자신에게 나타내신 것이다. 
또 바울이 적용한 시편에서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끌고 선물을 인간에게서 또는 패역자 중에서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려 하심이로다[ 68:18]"하신 말씀도 바울은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4:8]"를 인용하시므로 그 하나님이 바로 주님이심을 증거했다. 
사도 요한은 환상을 통해 계시된 것은 성자의 영광이라고 한다.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2:4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6:1]" 이 말씀에서도 이사야 자신은 하나님의 위엄을 보았다고 말한다. 
히브리 서에서 사도들이 성자에게 드린 명칭들은 가장 영광스러운 것들이다.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1:10]"하셨는데 이 말씀은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101:26]"에서 다윗이 하나님에게 돌린 영광이었다.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96:7]"라고 하신 말씀은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1:6]"에서 예수 님에게 돌려지고 있다. 
주님은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 티끌도 연휼히 여기나이다[ 102:14]"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97:1]"의 은혜를 베푸신 분이심을 스스로 말씀하셨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14]" 
바울은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9:5]"이라고 하셨고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딤전 3:16]"라고 확실히 말씀하셨다. 
주님은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 지이다 아멘[딤전 1:17]"의 말씀과 같이 영광을 세세히 받으실 분이시다. 
또 바울은 이 사실을 더욱 확실히 하시기 위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6]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2:7]"를 말씀하셨다. 
사도 요한도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20]"라고 하셨다. 
바울은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고전 8:5]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전 8:6] 하셨으며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딤전 3:16]"라고 하셨다. 
그렇게 의심이 많은 도마도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나이다[ 20:28]"라고 했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겠으며, 하나님의 제 이의 위인 신임을 부인하겠는가?

 

12. 사역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신성 
주님은 태초에 성부와 함께 일하셨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5:17]" 주님의 말씀에 극도로 무관심했던 유대인들은 이 말씀에 큰 자극을 받아 주님을 죽이려고 했다. 이에 대하여 요한은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5: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나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5:19]"라고 기록을 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당신의 신성에 대해 이토록 어리석게 판단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일인가? 주님은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3]"이라고 말씀하시므로 자신의 대권으로 만물을 지배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적을 통해서도 주님은 자신의 신성을 증명하셨다.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9:6]" 또한 그리스도는 만물을 꿰뚫어 보실 수 있는 하나님만이 가지신 권능을 소유하셨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9:4]"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2:25]"

 

13. 그리스도의 신성은 그의 이적을 통해 증명된다. 
선지자들이나 다른 사람들도 이적을 행한바 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적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서 행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적은 주님 자신이 행하신 것이다. 주님은 이적을 행하실 때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시기 위해 가끔 기도를 하셨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11:41]" 그러나 대부분 주님 자신이 직접 이적을 행하셨다. 주님은 당신의 권위로 사도들에게 이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10:8. 3:15. 6:7] 
그리고 사도들은 그들의 능력이 오직 그리스도에게 왔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 능력을 사용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나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3:6]"말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이적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장 잘 증명하는 것이다.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5:36]""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10:37]"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14:11]"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구원 얻을 우리들에게 전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구원 그 자체가 되신다. 
주님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9:17]"이라고 하셨는데 그리스도 역시 선하시고 의로우신 분이 아니라 선 그 자체인 것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4]"이신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진리를 근거하여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1]"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믿는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0:11]"라 하신 말씀을 믿고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28:16]"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이사야가 말한 대로 우리는 그 분에게 영원한 소망을 둔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11:10]"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도 역시 그리스도께 드리는 기도다.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구세주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2:32]"하셨고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 18:32]"라고 하셨다. 더욱이 우리는 스데반에게서 주님이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는 마지막에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7:59]"라고 기도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자신만을 아는 것으로 자랑을 삼으라 하셨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9:24]" 그런데 오늘 우리들에게 성자의 이름만이 전해졌다는 사실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만이 우리들이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자랑인데 누가 감히 주님을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그의 서신 첫머리에 하나님 아버지께 돌리는 영광을 성자에게도 동일하게 돌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1:7; 고전 1:3; 고후 1:2; 1:3 ) 
이와 같은 모든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은혜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며 주님이 성부의 모든 일에 동일하게 참여하심으로서 모든 은사의 창시자가 되신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실로 경건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을 알게 된다.

 

14. 성령의 신성은 그의 사역에서 입증된다. 
성령 님의 신격도 그의 사역에서 찾아야 한다. 모세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1:2]"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아름다운 세계는 성령 님에 의해 보존되고. 이 아름다운 세계가 있기 전에 성령 님은 혼돈 된 세계를 보고 계셨다. 
그리고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 와 이 말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그것을 은밀히 말하지 아니 하였나니 그 말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 신을 보내셨느니라[ 48:16]"의 말씀은 아무도 교묘하게 다른 말로 해석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은 파송하실 때 그 최고의 권능을 성령과 함께 공동으로 행사하시기 때문이다. 
성령 님은 온 우주에 편제하셔서 만물을 유지하시고 그것을 성장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 분은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아니하시며 이 우주와 자연을 초월해 계신다. 그러나 만물에 생기를 불어넣고 그것들에게 본질과 생명과 운동을 불어넣어 주심에 대하여 확실히 그 분은 하나님이시다. 
또한 성령 님은 죄인을 중생케 하신다. 이 중생은 어디서 빌려 온 능력이 아니라 성령 님 자신이 영생의 창시자로서 죄인을 중생케 하시는 것이다. 또한 성령 님에게는 성자에게 속한 모든 속성들이 있으시다. 피조물들 중에 누구도 성령 님의 모사가 될 수 없으나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11:34]" 성령 님은 스스로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이라 하셨다. 또한 성령 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 나니[고전 12:10]"를 셨는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런 일들은 하나님 자신만이 하시는 일이라고 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4:11]" 즉 하나님 자신만이 하실 수 있으신 일을 성령 님이 하신다는 것은 성령 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증거가 된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고 의롭다 함을 받고 진리, 구원, 사랑, 은혜, 성화가 모두 성령 님의 하시는 구원 사역이시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우리는 바울이 말한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고전 12:4]"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성령 님은 모든 은사의 시초요 원천일 뿐 아니라 창시자이시다. 이 일에 대해 바울은 더욱 분명히 말씀을 하셨는데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고전 12:11]"라고 하셨다.

 

15. 성령의 신격에 대한 명백한 증거 
실로 성경은 성령 님의 명칭에 대해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쓰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에서 우리들을 하나님의 전이라고 말씀하신다. (고전 3:16-17; 6:19; 고후 6:16). 우리는 이 말씀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 하신다는 말씀은 성령 님으로 내주 하시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했다 "만일 우리가 나무나 돌로 성령의 전을 세우도록 명령을 받았다 해도 이 영광은 하나님만이 받으셔야 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명령은 성령 님의 신성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성령 님을 위해 성전을 세우라 하시지 않고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성전이라 하셨으니 이 얼마나 분명한 증거인가?" 
사도들은 성도들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이라고 부르셨다. 
성령 님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책망하시면서 베드로는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4]"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사야가 만군의 주라고 말씀하신 부분에 대하여 바울은 그 만군의 주가 성령 님이시라고 하셨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6:9]"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8:25]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도다[ 28:26]" 
베드로도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모든 예언의 저자이신 성령 님이야말로 여호와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 이사야는 그 백성들의 완고함에 하나님께서 노하셨다는 말을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63:10]"라고 하시므로 성령 님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했다. 
주님은 성령 님에 대한 범죄에 대하여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12:32]"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3:29]"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12:10]"이라고 엄하게 말씀하시므로 성령 님의 신적 위엄에 대해 말씀하셨다. 
또 시인은 우주 만물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된 일임을 말해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33:6]"이라고 하셨다.

 

16. 하나님의 하나 되심 (삼위의 구별과 일체성)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통해 자신을 사람들에게 더욱 명백히 계시하셨다. 삼위를 통해 사람들에게 친밀한 하나님을 알리시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증거들 중에 탁월한 증거가 있다. 바울은 이 사실을 하나님(), 믿음, 세례 이 세 가지를 그 하나에서 다른 하나를 추리할 수 있도록 연결을 시켜 놓았다. 그는 믿음이 하나요 주도 하나며, 세례도 하나이기 때문에 믿음 또한 하나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례를 통해 하나님을 믿고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삼위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8:19]" 이 말씀은 하나님의 본질 안에 한 하나님으로 알려진 삼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신앙은 여기 저기를 두루 다녀 보는 것이 아니다. 또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강론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한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하나님과 연합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것이다. 만일 참 신앙이 여럿이라면 그 신앙을 위한 신도 여럿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례는 신앙의 성례다. 그것은 유일한 하나님에게 기초가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떠나서는 세례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예수 님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셨으니 이 말씀은 삼위 하나님을 함께 믿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님이 한 분이라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17. 삼위 
한편, 성경은 성부의 말씀, 말씀과 성령을 구별한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말씀과 성령은 구별이지 분활이 아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13:7]" 이 말씀들은 성부와 성자와 구별되는 특성을 소유하시고 계신다는 뜻이지 말씀이신 성자와 성부가 다른 분이라는 뜻은 아니다. 주님은 성부와 자신을 구별하여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5:32]"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8:16]"이라고 하셨지만 다른 성경에서는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11:3]"이라고 하셔서 만물을 함께 창조하셨다고 하셨다. 
성부는 이 세상에 죄인을 위해 죽으려 오시지 않으셨다. 성자 되신 예수 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 님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18]"셨으며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17:5]"신 분이시다. 그리고 성부와 상자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4:16]" 라 하심으로 삼위 일체 되시는 하나님을 증명하셨다.

 

18. 성자, 성령의 차이점 
성부는 일의 시초가 되시고, 만물의 기초와 원천이 되시며, 성자는 지혜요 계획이시며 민물을 질서 있게 배열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성령 님께 그와 같은 모든 행동의 능력과 효력이 돌려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실로 하나님은 지혜와 권능을 떠나서는 존재하실 수 없으시고, 또한 영원에 있어서 '먼저' '나중'이니 하는 것을 찾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의 영원성은 동일한 영원성이다. 그러나 구태여 순서를 말하자면 성부, 성자 ,성령으로 말하는 것이 옳다. 
모든 인간은 먼저 하나님을 그 다음은 지혜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계획을 수행하는 능력을 생각하는 것이 편해 한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성자는 성부에게 발생되고 성령 님은 성부와 상자에게서 발생되었다고 말한다. 이 사실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8:9]"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8:11]"의 말씀에 나타나 있고 베드로도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이라 말씀하셨다.

 

19.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 
이 구별은 하나님의 단순한 단일성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자는 성부와 동일한 영을 소유하시기 때문에 성부와 상자와 성령이 한 분이시라는 것을 입증한다. 삼위의 하나님은 모든 신적 성품이 각 실제 안에서 이해되고 각자가 자신의 독특한 특성을 소유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 님이 전적으로 피차의 안에 거하신다. 이 사실을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4:10]"이라 하셨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는 자신에 대하여는 하나님이라 불리며, 성부와의 관계에서는 성자라 불린다. 마찬가지로 성부도 자신에 대해서는 하나님이라 불리고 성자와의 관계에서는 성부라 불린다. 성부에 대하여 성자라 불리우신 그 분은 성부가 아니며, 성자에 대하여 성부라 불리우신 그 분은 성자가 아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하여 아버지라 불리우신 분과 자신에 대하여 아들이라 불리우신 그분은 한 하나님이시다."라고 했다.

 

20, 삼위 일체 하나님 
우리가 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을 할 때 이 하나님의 명칭은 유일하시고 단일하신 본질로 이해된다는 것이며, 이 본질 안에는 세 인격 또는 세 실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특수화함이 없이 언급될 때, 이 명칭이 성부를 지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자와 성령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가 연합될 때 양자는 상호 관계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위()들을 구별해 내는 거이다. 
그러나 각 위의 특성에는 일정한 순서가 있다. 예를 들면, 성부에게 시작과 근원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부와 성자, 또는 상부와 성령이 동시에 언급될 때,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특별히 성부에게 적용된다. 이와 같이하여 본질의 단일성이 보존되고 그 정당한 순서가 유지된다. 그렇다고 이것이 성자와 성령의 신격을 조금도 손상시키는 것은 아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이 여호와라고 증거한 하나님은 바로 그리스도라고 사도들이 주장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확신해 보았기 때문에, 항상 본질의 단일성으로 돌아 갈 필요가 잇다. 그러므로 성자를 가르쳐 성부와 다른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증스러운 신성 모독 죄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단일 명칭은 어떤 상관 관계도 허락하지 않으며,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에 대하여 이런 하나님이다, 또는 저런 하나님이다 하는 식으로 불릴 수가 없으시다. 
그런데 여호와라는 이름이 어떤 특별한 설명도 없이 그리스도에게 적용된 것은 바울의 다음 말에도 밝히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고후 12:8).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라는 그리스도의 응답을 받은 바울은 즉시 다음과 같이 부언하였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그런데 ,여기서의 ''라는 말은 '여호와'라는 말 대신에 사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주라는 말을 중보자의 인격에만 국한시킨다는 것은 어리석고 유치한 일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 기도에서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 대하여 전혀 구애를 받지 않는 절대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희랍어의 일반적인 관습에 따라, 사도들이 "큐리오스"()라는 말을 보통 여호와라는 말 대신에 사용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그런 신들메를 찾는다면 구태여 멀리서 구할 필요가 없다. 바울은 베드로가 인용한 요엘 선지자의 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21; 2:32)고 하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의미에서 주님께 기도를 했던 것이다. 
이 명칭이 특별히 성자에게 적용된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가 다르다는 것은 적절한 곳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그러므로 여기서는, 바울이 절대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때 곧 이어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첨가했다는 것으로 우선 만족하자. 심지어 그리스도는 친히 하나님을 온전히 "()"( 4:24)이라고 부르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전 본질은 영적이시며, 이 영적인 사실에서 성부, 성자, 성령이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에서 명백히 말하고 잇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이라고 불리고 있음을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성령이 全 本質의 한 실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 또는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영이라고 불리고 있음을 또한 보게 된다.


21. 모든 이단의 근거 : 모두에 대한 경고(반 삼위 일체 이단에 대한 논박.) 
사탄은 우리의 신앙을 그 근본부터 뒤집어엎기 위해, 부분적으로는 성자와 성령의 신적 본질에 관하여, 부분적으로는 위의 구별에 대하여 언제나 커다란 분쟁을 선동했다. 사탄은 거의 모든 시대를 통해서 불경한 정신의 소유자들을 선동하여 이 문제로 정통주의적 교사들을 괴롭혀 왔으며, 오늘날까지 그 타다 남음 불로 새로운 불을 붙이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여기서 어떤 사람의 그 왜곡된 광란을 반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이 문제를 연구함에 있어, 냉정하고 신중히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들의 사상과 우리들의 언어 그 어느 하나라도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허락하는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그 작은 재능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본질을 측량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매일같이 바라보면서도 그 태양의 구성 요소를 확실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실로 인간이 자기 자신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본질을 규명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관한 지식은 기꺼이 하나님 자신에게 아끼기로 하자. 힐라리(Hilary)가 말한 대로 하나님만이 자신에 대한 유일하신 충분한 증거 자이시며, 자신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알려질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말씀을 떠나 다른 곳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그대로 하나님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께 관한 지식을 하나님 자신에게 마끼는 것이 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크리소스톰이 아노모에오스파를 반박하여 행한 설교가 다섯 편이나 있다. 그러나 이 설교들이 그 건방진 쾌변론 자들의 횡설수설하는 입술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저들은 그 문제에 대하여 다른 모든 곳에서 행한 것보다 더 신중히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들의 그런 경솔한 행동의 불행한 결과로, 우리가 이 문제를 난해하게 연구하기보다는 오히려 다 알기 쉽게 연구하도록 하는 경고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이외에는 어떤 곳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아니할 것,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는 것 이외에는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생각도 하지 아니할 것, 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것은 어떤 것도 말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써야 한다. 그러나 한 신성 안에 있는 성부, 성자, 성령의 구별이 파악하기 힘들다고 하여 그것이 어떤 사람의 이해력에 대한 기대 이상의 어려움과 고통을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인간의 마음은 호기심을 충족시킬 때에는 미궁에 빠져들어 가게 된다는 것을 저들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자. 그리고, 저들이 비록 이 신비한 고귀함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天來 神言에 스스로 복종하여 지배받게 하자.

 

22. 세르베투스의 반 삼위일체론. 
이 교리에 대한 우리들의 신앙의 순수성을 공격하는 여러 오류들의 목록을 작성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그들은 야수와 같이 광란하며, 하나님의 영광 전체를 훼손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무신한 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소수에 불과하던 분파가 많은 분파로 갈라졌으며, 어떤 자들은 하나님의 본질을 갈기갈기 찟어 놓기도 하고, 어떤 자들은 하나님의 위의 구별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렸다. 
참으로 하나님의 본질은 이미 성경에서 입증이 되었듯이, 단일하시며, 분할되지 아니하시며, 성부, 성자, 성령에게 다 같이 속한다는 것, 한편 성부는 어떤 특성에 의하여 성자와 구별되시며 성령도 성자와 구별되신다는 것을 확고하게 견지한다면, 아리우스나 사벨리우스뿐만 아니라 고대의 모든 오류들을 주장한 자들에 대해서도 문은 굳게 닫쳐질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날 세르베투스나 그의 동료들과 같은 광신자들이 일어나서 새로운 속임수로 만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기 때문에, 간단하게 저들의 허위를 논하는 게 필요하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세르베투스에게 있어서는 몹시 증오스럽고 혐오스러운 말이기 때문에 모든 삼위일체론 자들을 향하여 보통 무신론자들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하나님의 본질 안에 삼위가 존재한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셋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되며, 이것은 하나님의 유일성과 상치하기 때문에, 공상적인 삼부조(三部組)가 될 뿐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그는, 위라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표현해 주는 어떤 외적인 관념일 뿐이라고 말한다. 말씀과 성령이 원래는 하나요 도일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하나님에게는 구별이 없었으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심에 따라 그로 인하여 다른 하나님인 성령이 유출되었다고 한다. 
그는 종종 자기의 불합리한 주장을 비유로 말했는데,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이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며 그의 관념의 반영이고 따라서 성령은 신격의 그림자라고 했다. 그러나 후에, 그는 마치 우리들 안에와 나무와 돌 가운데 동일한 영이 실질적으로 존재하여 성자와 성령 안에 하나님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기나 한 것처럼 하나님의 분배의 양식에 따라 성자와 성령 안에 하나님의 일부분이 있다고 주장함에 따라서, 성자와 성령의 신격을 파괴하였다. 
그는 실로 ""를 하나님의 영광의 가시적인 현현으로 보았던 이 기괴한 허설에 대하여 장황히 설명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우주가 창조되기 이전에 벌써 말씀이 하나님이셨다고 요한은 확언을 하였지만 그는 말씀과 관념을 완전히 구별하였기 때문이다.( 1:1) 
그러므로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신 말씀이 아버지와 함께 계셨으며 아버지와 함께 그 영광을 소유하였다고 하면( 17:5), 그는 확실히 외부적인 또는 상징적인 관계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하나님 자신 안에 거하시는 한 실제이시다 는 결론이 나온다.

 

23. 성자는 성부와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다. 
어떤 자들은 세르베투스의 불 경건한 혐오와 수치를 피하기 위해 삼위가 있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그와 비슷한 괴물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성부만이 진실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이 하나님께서 성자와 성령을 지으시고 이들에게 자신의 신격을 주입하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 가공스러운 말을 삼가지 않고, 여전히 성부만이 유일하신 "본질의 수여자"이시며 이와 같은 특성 때문에 성부는 성자와 성령과 구별된다고 했다. 
저들의 그 가시적인 논증의 최초의 주장 점은, 그리스도께서 일반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에서, 바로 말하면 성부만이 하나님이시라는 결론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저들은, "하나님"이라는 명칭이 성자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지만 성부가 신격의 원천이시며 근원이시기 때문에 때때로 탁월한 방법으로 성부에게 이 명칭이 적용되었으며, 또한 이것은 본질의 유일한 단일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 것이다. 
저들은, 만일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그를 한 位의 아들로 생각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하여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이 참이라고 주장한다. 
,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말씀이 만세 전에 벌써 성부에게서 나셨기 때문이다(참조, 고전 2:7,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증보 자의 위격에 대하여 말할 기회가 아니기 때문에 다음에 언급하기로 한다.) 
그리고, 더욱이 명료함을 기하기 위하여 우리는 위에 대하여 주의를 기우려야 하는데 , 이는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여기서 무조건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부와 동등한 말로 이해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만일 성부 이외에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확실히 성자를 이 하나님의 품위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신격에 대하여 언급할 바에는 언제나 참된 하나님의 명칭이 마치 성부에게만 속한 것처럼 성부와 성자 사이에 어떤 대립이 허용 되여서는 안된다. 분명히 이사야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이셨으며( 6:1), 이 하나님을 가르쳐 요한은 그리스도라고 단전하였기 때문이다( 12:41).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자기가 유대인에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라고 증거하신 분도( 8:14) 역시, 바울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한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9:38). 또한 이사야를 통하여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내게 모든 무릎을 끓겠고-----"( 45:23)라고 하신 분도 유일하신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바울은 이를 그리스도와 동일하신 분으로 해석하고 있다( 14:11). 
이에 대하여 사도는 다음과 같은 증거들을 첨가했다.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위 손으로 지으신 바라"( 1:10; 102:25-26)는 구절과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1:6; 97:7)라는 구절이다. 이러한 말씀들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에게만 사용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이를 그리스도께 합당한 명칭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럼으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체시므로( 1:3), 하나님의 고유한 것이 그리스도에게 옮겨진다고 하는 쾌변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것은, 여호와라는 명칭이 언제나 그리스도께 적용되어 있음으로, 그리스도의 존재는 신격에 관한 한 자존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가 여호와라면 이사야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분이 바로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44:6). 
예레미아의 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로다"( 10:11). 
한편 하나님의 아들이 우주 창조 이후에 신격을 소유하였다고 이사야가 자주 증거한데 대해서도 시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만물을 존귀케 하신 창조주가 자존하지 아니하시고 또 자신의 본질을 他者로부터 빌려 올 수 있다는 말인가? 왜냐하면, 성자가 자신의 본질을 상부에게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성자의 자존성을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이를 반대하고, 성자에게 여호와라는 명칭을 부여하였다. 그런데 만일 전 본질이 성부에게만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 본질은 분할할 수 있는 것이 되던가 아니면 성자에게 옮겨질 수 있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성자가 본질을 빼앗기게 되면 다만 명목상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만일 이 허튼 소리를 하는 자들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하나님만이 존재하시며 바로 이 하나님이 성자의 본질 수여자이신 Rlelfr에 하나님의 본질은 다만 성부에게만 속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성자의 신성은 마침내 하나님의 본질에서 나온 무엇이던가 또는 전체에서 인출된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이제 저들은 필연적으로 자기들의 전제에 따라, 성령은 다만 성부만의 영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성령이 오직 성부에게만 고유한 그 근원적인 본질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다면 그는 당연히 성자의 영으로 간주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이 다같이 성부와 성자의 영이라고( 8:9)고 바울의 증거에 의해서 반박된다. 더욱이 성부의 위가 삼위일체에서 제거된다고 하면, 성부만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외에 어떤 점에서 성자 성령과 다르다고 하겠는가? 
저들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성부와는 다르다고 한다. 반대로, 성부가 성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어떤 구별의 특성이 필요하다. 이 특성을 본질이라고 하는 자들은 본질, 아니 그것도 전 본질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참된 신격을 분명히 말살시키는 것이 된다. 
확실히 성부는, 성자와 공통되지 않는 어떤 특수한 무엇을 자신 안에 소유하지 않는 한 상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면 저들은 성부를 구별시키기 위해 도대체 무엇을 발견했던가? 만일 이 구별이 본질에 있다고 한다면 성부가 이 본질을 상자와 공유하였는가 아니면 공유하지 않았는가를 우리들에게 대답해야 한다. 그러나 실로 이 대답은 부분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것은 성자가 절반만 신이라고 하는 말이 되는 것이고 이런 말은 가증스러운 죄악이 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저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본질을 비참하게 찢어 놓고 하였다. 
본질은 성부와 성자에게 다 같이 전적으로 완전히 공통으로 유지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이 만일 참이라고 한다면, 본질에 관한 한 두 사이에는 아무런 구별이 있을 수 없다. 만일 성부가 본질을 수여하고도 여전히 본질을 그 속에 지니고 있는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저들 식으로 해석한다면, 그리스도는 상징적인 하나님이요 외형적인 명목상의 하나님일 뿐 사실은 하나님 자신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3:14)는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존재한다"는 것보다 더 특수한 것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24.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성부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어떤 조건이 없이 하나님을 언급할 때 언제나 그것은 성부에게만 적용된다고 저들은 말한다. 그와 같은 주장이 허위라는 것을 우리는 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통하여 반박할 수 있다. 저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인용한 여러 구절들에서도 수치스럽게 그들의 무분별을 들어내고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성자의 이름이 성부의 이름 곁에 함께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에서 명백해 지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은 相關的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따라서 그것은 성부의 位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한다. "성부만이 참되신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면 성자는 자신이 바로 자기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라고 저들은 반대하고 있지만, 이런 반대는 한마디로 물리칠 수가 있다. 
실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신의 지혜를 발생하셨을 뿐 아니라 중보자의 하나님이신 그가 그 위엄과 순서 때문에 특히 하나님이라고 불린다는 것은 조금도 불합리한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 나는(칼뱅) 다른 곳에서 더욱 자세히 논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그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가 만세 전에 성부로부터 나신 영원하신 말씀이 였다는 이유뿐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시키기 위해 증보 자의 위격과 직책을 취하셨다는 사실에서도 그러하다. 
저들은 뻔뻔스럽게도 성자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제거하고 있음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을 알고 싶다. 곧 선한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19:17), 그가 자신에게서 선을 박탈하셨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성자의 인성 속에 있는 선은 무엇이나 은혜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저들이 반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성자의 인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이 선한 것인가 아닌가를 묻는 것이다. 만일 이 말씀이 선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저들의 불 경건은 저들 자신의 유죄를 충분히 입증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말씀이 선하다고 한다면, 저들은 스스로 자멸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처음 생각할 때는 그리스도께서 "선한 자"의 칭호를 자신에게 적용하시지 않는 듯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들의 주장을 한층 더 확실하게 해 준다. 
사실은 그것은 유일하신 하나님께 속하는 칭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일반적인 화법에 따라 "선한 자"로 인사를 받으셨을 때 그 거짓된 영광을 거절하시고, 자신의 선은 신적인 것이라고 경고하셨던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썩지 아니하시고(딤전 1:17), 지혜로우시며( 16:27), 참되시다고( 3:4) 단정하였는데, 그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어리석고 거짓된 썩을 존재의 수준으로 끌어내린 것이 되는가 묻고 싶다. 
태초부터 생명 자체이시며, 천사들에게 불멸 성을 부여하신 그가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는 말인가? 하나님의 영원하신 지혜이신 그가 지혜로운 분이 아니라는 말인가? 진리 자체이신 그가 참되지 않다는 말인가? 
저들은 그리스도를 당연히 예배를 받으실 분으로 todrr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묻고 싶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모든 무릎이 자기에게 끓기를 요구하셨다고 한다면( 2:10), 그가 바로 자기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예배드리지 말라고 율법으로 말씀하신 그 하나님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20:3). 
만일 저들이, "나 이외에는 다른 신이 없느니라"( 44:6)고 말한 이사야의 말을 다만 성부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으로 이해한다면, 나는 이 증거로 저들의 잘못된 이론을 반박하고자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은 다 그리스도께 속하기 때문이다. 
저들은 도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취하셨던 바로 그 육신으로 높임을 받으셨으며 천지의 모든 권세가 그에게 주어진 것은 그가 육신을 취하셨기 때문이라는 묘한 구별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용납될 수가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왕으로서나 심판자로서의 위엄이 중보자의 전 인격에 미친다고 할지라도 그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 아니였다고 하면, 하나님을 자기 자신과 충돌시키지 않고는 결코 그와 같은 높이까지 올려 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종의 형체를 취하시기 전에 벌써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셨다는 점을 가르침으로써 이 논쟁의 해결을 훌륭히 마무리 지어 놓았다( 2:6-7). 
실로 그는 여호와로 불리시고, 구릅들을 타시며(참조, 18:10, 80:1, 99:1), 온 땅의 왕이시며( 47:2,6), 모든 시대의 왕이신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이와 같은 동등 성을 부인할 수 있는가? 
이사야는 다른 곳에서 "이는 우리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25:9)라고 한 말은 그리스도에게서 제거될 수가 없는 말이다. 이사야의 이 말씀은 자기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교회를 그 완전한 수에까지 회복시키시는 주 하나님의 강림을 기술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들은 그리스도께서 성부 안에 있는 하나님 이였다고 다른 구실을 내세웠지만 그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순서와 지위에 있어서 신성의 근원이 성부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치 성부가 성자의 신격의 동작 자이기나 한 것처럼 본질이 성부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본질이 다양하게 되던가 아니면 저들이 다만 그리스도를 이름뿐인 상상적인 "하나님"으로 부르게 도리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성자가 하나님이시지만 성부 다음 가는 하나님이라고 하면, 성부에게 있어서는 비 발생적이고 비창조적인 본질이 성자에게 있어서는 발생적이고 창조된 것이 되겠기 때문이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으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1:26)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개한 모세의 글에서 우리는 위의 구별을 짓는데, 이에 대하여 많은 비난 자들이 우리들을 조롱하고 있다. 
그러나 한 하나님 안에 여럿의 위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모세의 이 말이야말로 얼마나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것이 되겠는가를 경건한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성부가 말씀하고 계시는 분들이 창조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 곧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이 세상에 창조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창조의 권능과 명령할 수 있는 권위가 성부, 성자, 성령에게 공통적으로 속하다 는 것을 저들이 인정하지 않는 한, 하나님은 자기 자신 안에서 그와 같이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외부의 다른 행동 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말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경의 한 구절만으로도 저들의 두기지 반론을 쉬게 제거할 수 있다. 즉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은 영이시니"( 4:24)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를 성부에게만 한정시켜서 마치 말씀에 영적 성질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이라는 명칭이 성부에게와 동시에 성자에게도 정용 된다면, 성자는 "하나님"이라는 특수화되지 않는 이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즉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지 않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께 정당하게 예배하는 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4:23). 
이 사실에서 또 다른 결과가 생기게 된다. 즉 그리스도는 성부 밑에서 교사의 임무를 수행하셨기 때문에 성부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돌리셨는데, 이것은 자신의 신격을 폐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로 하여금 점차 그것은 인식시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25. 삼위는 공통적으로 신성을 소유한다. 
그러나 저들은 이 문제에 있어 속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이 개체의 각자는 본질의 분리된 일부분을 공유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입각해서, 하나님의 본질에 있어서 하나이시며 그렇기 때문에 성자, 성령의 본질이 비 발생적인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부는 순서상 처음이시며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자신으로부터 자기의 지혜를 낳으셨기 때문에, 모든 신성의 기초가 되시며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무한정적으로 볼 때 발생하신 분이 아니시며, 성부 또한 위라는 점에서는 발생되시는 분이 아니시다. 또한, 저들은 어리석게도 우리의 이 견해가 삼위일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저들은 저들의 머리로 생각해 낸 허구를 거짓되고 무고하게 우리들에게 돌림으로써 우리가 마치 한 본질에서 삼위가 유출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주장한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들의 여러 저작에서 명백히 볼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위를 본질에서 분리시키지 아니하고, 오히려 삼위를 구별하되 그 각자가 본질 안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만일 위가 본질에서 분리되었다고 한다면 아마 저들의 추론에도 어떤 개연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유일신이 그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위들의 삼위가 아니라 諸神의 삼위일체가 되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이것은, 마치 우리가 세 하나님의 본질로부터 유래된다고 상상이나 한 듯이, 삼위일체를 구성함에 있어서 본질이 협력했는가 안했는가를 묻는 그들의 무익한 질문에 대답이 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 없이도 삼위 일체가 있을 수 있다고 하는 저들의 답변 역시 똑같은 우매함에서 나온 곳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본질의 삼위일체의 부분 혹은 한 성원으로서의 구별을 짓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위들은 본질이 없이 혹은 본질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성부는 그가 하나님이 아닌 한 성부가 될 수 없으며 성자 또한 그가 하나님이 아닌 한 성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격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자존하신다고 고백하는 것이요, 그의 위에 관하여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실로 그가 성자인 이상, 그가 성부로 오셨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그의 본질에는 기원이 없으나 그의 위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옛날의 전통적인 저술가들은, 삼위일체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 언제나 이 명칭을 위에만 적용시켰다. 그것은 본질을 그 구별 안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어리석은 과오일 뿐 아니라 가장 큰 불 경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위가 본질, 성자, 성령의 셋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분명히 성자와 성령의 본질을 변절시키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그 여러 부분은 서로 혼돈 되여 파멸을 당하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모든 구별이 불완전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부와 하나님이라는 말이 동의어라고 한다면, 성부는 어떤 신격의 원작자가 될 것이며 성자에게는 그림자 이외에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게 된다. 그리고 삼위일체는 한 하나님과 두 피조물을 격하시키는 것이 불과한 결론을 낳게 될 것이다.

 

26. 성육하신 말씀이 성부에게 예속되었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그리스도께서 본래의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자들은 반대한다. 이에 대하여 나는 한 위와 다른 위를 비교할 때,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사용되지 않고 신적인 근원이신 상부에게 한정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물른 이것은 광신자들의 허튼 소리와 같이 본질의 부여와 관련시켜서가 아니고, 순서의 원리에 의해서 그렇게 사용된다. 그리스도께서 성부에게 하신 말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17:3)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는 중보자의 인격으로 말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의 증간 위치를 취하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 때문에 자신의 위엄이 감소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자기를 비었다고는 하지만( 2:7) 성부와 함께 가지셨던 영광이 이 세상에 대하여 감추어졌을 뿐 전혀 상실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도는 히브리서 2장에서 그리스도는 잠시 동안 천사 보다 못한 자 였다고 하였으나( 2:7,9), 동시에 그리스도는 땅의 기초를 세우셨던 영원하신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1:10)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중보자인 인격으로 하나님께 말씀하실 때는 언제나 자기에게도 속하는 그 신격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 명칭하에 두셨던 것이라고 우리는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나의 하나님께로 가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14:28; 참조 16:7, 20:17)고 말씀하셨을 때 이것은 영원한 본질과 관련하여 자신이 성부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제 2차적인 신격을 자신에게 돌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가 하늘 나라의 영광을 얻어 신자들로 하여금 자신과 함께 성부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여기서 성부를 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분으로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하늘에 빛나는 그 광채의 완전함이, 육신을 입은 자에게서 볼 수 있었던 영광에 비하여 훨씬 더 뛰어나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와 똑같은 의미로 바울은 다른 고에서, 그리스도께서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함이니라(고잔 15:24, 28)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격이 영원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 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멈추지 않고 처음부터 존재하신 그대로 영원히 존속한다고 할 것 같으면, 성부, 성자에게 공통된 하나님의 유일하신 본질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그리스도는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아버지께로 높이 올리시며 동시에 자신이 성부와 하나이신 까닭에 우리를 자신에게까지도 올리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성부에게만 한정시키고 성자에게 이를 배제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인 것이며 부당한 일이다. 
이것 때문에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바로 참되신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하였는데( 1:1; 요일 5:20), 이것은 아무도 그리스도를 성부보다 못한 2- 2류의 신격을 소유하신 분으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더욱이 이들 새 神들의 날조자들이 그리스도를 참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즉시 성부의 신격에서 배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저들은 유일하신 하나님 이외에도 다른 참되신 하나님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며, 도한 移入된 신성이 어떤 신기한 허구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27. 반대자들은 이레니우스를 잘못 인용한다. 
저들은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유일하시며 영원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이레니우스에게서 많은 구절들을 수집했다. 이것은 저들의 수치스러운 미지를 들어내는 것이며 극단적인 부패를 보여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저 거룩한 인물이, 옛날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그 하나님이 바로 그리스도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오히려 세계의 부패에서 생긴 일종의 유령을 상상하였던 광란 자들을 다루고 있으며, 또한 저들과 논쟁하고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레니우스는 전적으로 이 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즉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아버지 이외에 다른 하나님이 아니라는 점과 다른 신을 상상한다는 것은 사악한 행위라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이 높인 하나님과 다른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있을 수 없다고 그가 자주 주장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한 다른 오류에 대하여 반대 할 경우, 옛날 종들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바로 그리스도였다는 것을 진실로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일 누가, 사실상 성부였다는 것에 대한 반론을 제시한다면, 우리의 답변은 간단하다. , 우리는 성자의 신성에 대하여 논쟁하는 동안에도 이것 때문에 성부를 전혀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이레니우스의 이 의도에 주의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아마도 일체의 논쟁이 종식될 것이다. 더욱이 그의 저서 제 3 6장을 일고 보면 모든 논쟁은 쉽게 끝이 날 것이다. 
그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점을 주장한다. "성경에는 절대적으로 또는 아무 구별이 없이 하나님이라고 불리신 분은 참으로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리스도야말로 절대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이라고 불리셨다." 실로 전체의 취지에서 특히 제 2권 제 46장에서 밝힌대도, 그는 수수께끼나 또는 우화적으로 성부라고 불리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논의의 기초라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외에 그는 다른 곳에서도,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성자와 성부를 다 같이 하나님이라고 불렀다고 주장했다( 3권 제 9). 후에 그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자기를 낮추신 그 순종과 관련하여, 만물의 주시며 왕이시오 하나님이시며 심판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만물의 하나님이신 자신에게서 그와 같은 권능을 받으셨는가를 진술한다( 3권 제 12). 다시 조금 후에 성자는 천지의 창조 주시며 모세의 손을 통해 율법을 주셨고 족장들에게 나타나신 분이라고 단정했다. 그런데 성부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셨다는 것이 이레니우스의 주장이 였다고 터부니 없는 소리를 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는 유일하시고 동일하시며 또한 "하나님이 데만 에서부터 오시며( 3:3)라고 한 하박국의 예언의 말씀이 성자에게 적용된다는 이레니우스의 가르침을 제시할 것이다( 3권 제 18, 23). 4권 제 9장에서도 이와 똑같은 목적으로, "그러므로 그리스도 자신은 성부와 함께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라고 기록하고 잇는 것을 우리가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동권 제 12장에서는, 그리스도는 천지의 창조 자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인 까닭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그는 설명한다.

 

28. 터툴리안을 인용한 것 또한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다. 
저들이 터툴리안을 저들의 옹호자로 채택한 것은 더욱 무의미하다. 그것은, 그의 표현 방법이 거칠고 모호 한데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옹호하는 그 교리 전체를 에메하게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유일하시되 그의 말씀은 분배 혹은 섭리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이 터툴리안의 견해인데, 곧 하나님은 본체의 단일성에 있어서 유일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단일성은 분배의 신비에 의해 사위로 배열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삼위가 존재하되 그것은 상태가 아니라 품위에 있어서 그러하고, 본체에 있어서가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 그러하며, 권능에 있어서가 아니라 현현에 있어서 그러하다라는 것이다. 실로 그가 말한 대로, 자기는 성자를 성부 다음 가는 분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다만 위를 적응할 때만 이라고 했다. 그는 어디선지 성자를 가시적인 존재라고 말한 바가 있다. 그러나 문제의 양면을 논한 후에는 성자는 바로 말씀이 되신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터툴리안은 성부가 자신의 위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우리가 현재 부정하고 있는 저들의 날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다. 그리고 터툴리안은 성부 이외에는 다른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러나 다음 구절의 설명에서 볼 수 있는 대로 그가 성부 이외에 다른 하나님을 부정한다고 해서 성자에 대하여 배타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위의 구별에 의해 하나님의 단일성이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의 일괄된 의도에서 우리는 쉽게 그의 말의 의미를 추단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프락세아스를 반대하여, 하나님은 삼위로 구별되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한 분 이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며 그의 단일성이 분할되는 것도 아니라고 논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까 성부와 동일한 존재가 아닌 한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 프락세아스가 거짓된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터툴리안은 이런 구별에 대하여 강력하게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거칠게 표현된다고는 한, 그가 말씀과 영을 전체의 부분으로 칭한 것은 아직도 용서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터툴리안 자신이 입증한 대로, 이것은 본체에 적용된 것이 아니고 단순한 위에만 관계되는 배열과 섭리를 명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도 말한다. "가장 사악한 프락세아스여, 그대는 이미 불리고 있는 이름 이외에 얼마나 많은 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조금 후에 다시 "저들이 성부와 성자를 그 이름과 위에 따라서 믿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상의 논의로 터툴리안의 권위를 이용하여 순진한 사람들을 속이려는 자들의 그 뻔뻔스러움을 넉넉히 반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9. 교회의 인정을 받은 학자들은 모두가 삼위 일체의 교리를 인정했다. 
고대 교회의 저서들을 열심히 비교 연구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레니우스의 사상이 그를 계승한 사람들의 사상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음을 알 것이다. 순교자 져스틴은 아주 먼 고대 교회의 인불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여러 점에서 우리들을 지지한다. 져스틴과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부르는데 대하여 저 사악한 사람들은 반대를 할 것이다. 힐라리는 이와 똑같은 주장을 하였으며, 영원성이 성부 안에 있다고 한층 예리하게 역설했다. 이것이 성자에게서 신적 본질을 박탈하는 것이 되는 것인가? 아니 그와 반대로, 오히려 그는 우리가 고수하는 바로 그 신앙을 옹호하는데 전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힐라리가 자기네 오류의 보호자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 연결이 안되는 산만한 문구들을 마구 수집하는 데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있다. 
만일 이그나티우스의 말을 인용하는 것을 중요한 일로 생각한다면, 저들은 사순절과 이와 비슷한 여러 가지 부패한 것들에 관한 법칙들을 사도들이 만들어 냈다고 증명해야 한다. 이그나티우스의 이름으로 발표되어 온 그 수치스럽고 불합리한 것들 보다 더 욕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럼으로, 속이기 위해 거짓으로 자신을 위장한 저들의 파렴치함에는 더 참을 수가 없다. 
실로 고대인들이 서로 일치하였다는 점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더욱 명백해 진다. 즉 니케아 회의에서 아리우스는 어떤 인정된 저자의 권위를 빙자하여 자신을 변명하지 않았으며, 희랍 교부나 라틴 교부들 중 어느 한 사람도 자기의 이전 학자들이 자기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변명하지는 않았다. 이 악한 자들이 가장 적대시하던 어거스틴이 고대인들의 저작들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검토하였으며 얼마나 존경하는 태도로 그 저작들을 받아 들었던가를 말할 필요가 없다. 확실히 그는, 작은 문제에 있어서도 교부들과 의견을 달리할 경우가 생기면 그 달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논의에 있어서도, 다른 저자들에게 에메하거나 모호한 점이 있을 때에는 그는 이를 눈감아 버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반대하는 교리가 먼 옛날부터 아무런 異論도 없이 받아 들여졌다고 어거스틴은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이전에 가르쳤던 것을 그가 모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말로 명백해 진다. 즉 그는,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하여"라는 저서 제 1권에서 성부 안에 단일성이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래도 저들은 어거스틴이 그 때 자신을 망각했다고 주장할 것인가? 그러나 그는 다른 곳에서도 이와 같은 그의 입장을 해병하며, 성부는 아무에게서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신격의 시작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현명하게도 그는 하나님의 명칭이 특별히 성부에게 돌려진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그 시작이 성부로부터 나오지 않는 한 하나님의 단일성을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온갖 쾌변으로 오늘까지 이 교리에 대한 순수한 신앙을 왜곡, 또는 모호하게 하려는 시도를 계속하는데, 이제까지의 고찰로 인해 사탄의 일체의 쾌변을 물리쳤다고 생각이 된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자신의 호기심을 제어하고, 필요 이상으로 골치 아픈 논쟁들을 분별없이 추구하지 않는다면, 이 교리의 전체 내용이 충분히 설명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고찰한 내용들은 무분별한 사변들을 즐기는 자들에게는 조금도 만족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교회의 건덕을 열망하였기 때문에 별로 유익 되지 않는 일이나 독자들에게 무익한 고통이 되는 일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성부가 항상 발생하는 것인가 아닌가라는 문제에 대하여 논쟁할 필요가 더 있겠는가? 실로 성부의 발생이 계속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삼위가 존재하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성령의 인격과 관련하여, 칼빈은 성령은 창조주와 섭리주 구속주 하나님의 신성과 자존성을 소유하신 하나님 자신이시며, 삼위일체의 3위격이시며, 자신의 고유성으로서 힘과 능력을 가지고 힘과 능력을 발휘하시는 분으로 이해한다. 또한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의 창조주와 섭리주 하나님이시며, 성부의 영이시며, 성육신하신 구속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이신 성자의 영이시다.

 

 

개신교 (改新敎, Protestantism) 개요
- 정진홍 -


16세기초 북유럽에서 중세 로마 가톨릭 교의(敎義)와 제의(祭儀)에 대한 반동으로 태동한 교파.

로마 가톨릭교, 동방정교회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3대 교파의 하나가 되었다. 유럽에서 일어난 일련의 종교전쟁을 거친 이후, 특히 19세기에 이르러 전세계에 다양한 형태로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개신교 운동의 역사>

개신교를 가리키는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이라는 말이 처음 쓰이게 된 것은 1529년 슈파이어 의회에서였다. 이 회의에서 로마 가톨릭 계열의 독일 제후들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와 함께 3년 전 마르틴 루터의 추종자들에게 허락하였던 관용정책의 대부분을 무효화하였다. 1529 4 19일에는 독일의 14개 자유도시와 6명의 루터파 제후들이 대표가 된 이 결정에 대한 항의서가 발표되었다. 이 항의서는 자신들이 그 결정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그 결정이 자신들을 구속할 수 없으며 하느님에 대한 복종과 황제에 대한 복종 가운데 어느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면 하느님에 대한 복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또한 온 그리스도교를 포괄하는 공의회나 전독일민족의 총회를 개최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 항의서를 작성한 사람들은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이름은 항거하는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적에 의해 채택되었고 점차 종교개혁의 교의를 신봉하는 사람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독일 밖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독일의 종교개혁 신봉자들은 복음파(Evangelicals)라는 이름을, 프랑스에서는 위그노파(Huguenots)라는 이름을 선호하였다.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은 루터(1483~1546)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스위스의 울리히츠 빙글리(1484~1531)의 제자들, 나중에는 장 칼뱅(1509~64)의 제자들도 일컫게 되었다. 스위스의 종교개혁자들과 그의 추종자들, 특히 17세기 이후 네덜란드·잉글랜드·스코틀랜드의 추종자들은 개혁파(Reformed)라는 이름을 더 좋아했다.

16세기만 해도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은 주로 종교개혁시대에 나타난 2개의 큰 사상, 즉 루터파 및 개혁파와 관련하여 사용되었으나 17세기초 잉글랜드에서는 영국국교도들이 비정통으로 간주한 사람들, 곧 침례교도들이나 퀘이커교도들과 대비되는 '정통 프로테스탄트'라는 뜻으로 쓰였다. 한편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교인임을 주장하나 가톨릭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단 동방교회는 제외), 즉 침례교도, 퀘이커교도, 가톨릭 성향의 영국국교도 모두를 포괄하는 뜻으로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을 썼다. 유니테리언파에게까지 적용되지는 않았지만,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이 이같이 넓은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700년 이전이었다. 예를 들어 1689년의 영국 관용조례는 '영국국교회를 반대하는 폐하의 프로테스탄트 시민들의 의무를 면제하는 조례'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조례는 잉글랜드에서 '정통 국교반대자'로 알려진 견해들에 대한 관용을 허락하였을 뿐, 유니테리언파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18세기 내내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은 여전히 16세기 종교개혁의 역사적 논거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그 당시의 사전들을 대표하는 새뮤얼 존슨의 사전(1755)은 프로테스탄트라는 용어를 "종교개혁 초기에 로마 교회의 오류에 항거한 사람들을 추종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고 정의하고 있다.

<중세 후기 교회의 상황>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 중세 후기 세계 내의 오랜 발전과 수많은 소요를 배경으로 일어났다. 이 시기를 개관하기는 쉽지 않다. 가톨릭 사가(史家)들은 16세기의 급진적인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자들 이전에 또한 그들과 전혀 무관하게 얼마나 많은 개혁이 일어났는가를 밝히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던 반면, 프로테스탄트 사가들은 종교개혁의 필연성을 밝히기 위해 중세 후기 교회를 극히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아, 결국 종교개혁을 타락한 과거와의 완전한 결별과 같은 것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 새 시대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15세기에 변화를 추구했던 사람들이 '전기(前期) 종교개혁자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그들은 개신교의 선구자가 아니었으며, 후에 나타난 종교개혁 때문에 그들의 중요성이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사건들은 '전기 종교개혁'적인 사건들이 아니었으며, 그 나름의 정체성(正體性)과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학자들은 스페인과 이탈리아로부터 북으로 독일·프랑스·영국 전역에 걸쳐 15세기 교회 내부에 개혁의 발전과 소요가 있었다는 데 대해 항상 의견의 일치를 보여왔다. 이와 같은 개혁과 소요의 일부는 교황·성직자·수사(修士)·수녀 등의 권력남용을 겨냥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경건한 사람들은 교황 인노켄티우스 8(1484~92 재위)가 바티칸에서 자신의 사생아들의 결혼의식을 거행하였다고 해서 그를 증오하였다. 그들은 또한 타락했던 교황 알렉산데르 6(1492~1503)를 멸시하였다. 대중은 교황이 엄청난 재원을 끌어들여 사치스러운 건물들을 짓는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고 이에 분노하였다. 교황에 대한 혐오감은 민족주의 정신이 고개를 들면서 더욱 커졌다. 독일·프랑스·영국 정치에 오랫동안 개입하였던 교황들은 각국의 전제군주들이 새로운 권력을 장악하자 권력약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군주들은 교황과, 대부분의 경우 지역 교회의 성직자 대표들에 대해 이 새로운 권력을 주장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민족의식이 고개를 든 이때에 중세 로마 가톨릭주의의 맥락 안에 완전히 남아 있으면서도 그것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데 참여하였던 새 세대의 신학자들이 나타났다. 오컴의 윌리엄(1349? 죽음)은 프란체스코 수도회 안에서 종교개혁자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 수도회가 대부분 포기했던 청빈의 이상향으로 되돌아가기를 원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개혁의 일부로서 교황 요한네스 22세가 이단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교황권과 제국이 상호 독립적이지만 서로 관계가 있는 정부 혹은 영역으로 보았다. 교회가 이단의 위험에 처할 경우, 평신도들은(제후와 평민 모두) 교회를 구원하기 위해 힘써야 하므로 당면한 개혁에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영국에서는 존 위클리프가 교황의 권력과 중세 교회의 지배력을 약화시켰던 이와 유사한 투쟁에 가담하였다. 위클리프 역시 민족의식을 교회개혁에 이용하였다. 그의 도구는 성서의 도덕률이었다. 위클리프는 이의 번역을 추진하였으며 1380년 통치자와 피통치자가 모두 이 번역본을 볼 수 있도록 조력하였다. 그러나 그는 왕의 귀중한 영적 권위는 계속 인정하였다.

보헤미아에서는 프라하대학의 강사가 되었던 얀 후스가 바로 이 대학을 사치에 물든 성직자들을 비판하는 기지로 삼았다. 그 역시 민족감정을 이용하였으며 교황은 세속의 칼을 사용할 권한이 없다고 논증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대담한 고발 때문에 결국 그는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도덕적 반발과 민족감정을 결합시킨 경건 이외에, 그리스도교 인문주의도 중세 후기 교회에 나타난 또 하나 소요의 징조였다. 이탈리아에서는 로렌초 발라(1407~57)가 자신의 정교한 역사탐구 기술을 이용하여 교황에게 막대한 권력과 넓은 관할지역을 준 문서들이 상당수가 위조임을 폭로하였다. 독일에서는 요하네스 로이힐린(1455~1522)이 성서에 쓰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연구하였으며, 학자들이 교회의 전통적인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투쟁하였다. 네덜란드에서는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1466/69~1536)가 로마 가톨릭교도로 남아 있으면서도 자신의 방대한 지식과 풍자적인 필봉을 통하여 교회의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자기 만족에 빠진 중세 후기 교회를 뒤흔든 또 하나의 요인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327/28 죽음)나 요한 타울러(1361 죽음)의 정신을 통해 꽃핀 신비주의였다. 심오한 헌신의 삶을 살았던 이들은 교회의 제의와 관행들 대부분을 도외시하고 하느님에게 직접 접근하고자 했고 또한 그것을 주장한 추종자들을 얻었다. 마르틴 루터와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이 헌신주의자들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했으며, 그들의 저술을 번역하기도 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고위층 사람들을 공격하였지만, 평민들의 가톨릭주의도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헌신이 미신적이고,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희생시킨다고 보았다. 순례자들이 성자의 유골을 모신 사당을 찾고 교구민들이 성자의 유골을 경외하는 관례들은 일종의 이교(異敎)가 그리스도교로 치장하고 침투한 것으로 여겼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페스트는 죽음에 대한 과도한 공포를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평민들로 하여금 사실상 구원을 팔아먹고 있었던 교회에 착취당하도록 만들었다. 16세기로 접어들면서 유럽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개혁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었다. 그러나 가톨릭교는 그러한 개혁을 향해 스스로를 개방할 수 없었고 그것을 수용할 수도 없었다.


<독일·스위스·프랑스의 종교개혁>

Protestant Reformer Martin Luther 루터의 역할

루터는 이전의 개혁자들이 교회의 생활을 공격하였다면 자신은 교회의 교의를 공격하였고 이 점이 서로를 구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루터 이전의 개혁자들은 성직자들의 죄를 공공연히 비난하였지만, 그는 구원에 대한 스콜라 신학의 도식에 환멸을 느꼈다. 스콜라 신학은 사람들이 고백과 고해성사에 의한 사면을 통해 죄를 하나하나 지울 수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그는 자신이 지은 모든 죄를 기억할 수도 없고 심지어 인지(認知)할 수도 없음을 발견했으며 그것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상처 딱지를 떼어냄으로써 천연두를 치유하려는 것과 같음을 깨달았다. 그는 인간성 전체가 병들어 있다고 믿었던 반면, 교회는 인간이 병들어 있기는 하나 각 개인의 선행으로 악행을 보상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루터는 하느님과 그리스도 앞에 자신이 어떻게 서 있는가에 대해 지극히 솔직하였다. 무지개 위에 앉아 있는 심판자 그리스도가 칼로 나무를 베듯이 저주받은 자를 지옥으로 가도록 선고하리라는 생각은 그를 공포로 가득채웠다. 그는 수도원 생활이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결산 이상의 공덕(功德)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최상의 길이라고 믿었다. 그는 수사가 되었고 엄격한 금욕생활을 하였다. 그렇지만 죄많은 난쟁이와 같은 자신이 하느님의 가차없는 정의와 위엄 앞에 설 수 있다는 확신에 이를 수 없었다. 끊임없이 고해실에 의존하였지만, 그것은 단지 그로 하여금 인간성 전체의 근본적인 죄성(罪性)을 깨닫게 하였을 뿐이다. 그후 그는 인간을 그토록 약하게 만들어놓은 다음 스스로 어찌해 볼 수도 없는 인간을 저주하는 신의 선의(善意)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 루터에게 구원은〈시편〉 연구를 통해서 왔다. 그는〈시편〉22장이 특별한 것을 계시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하면〈시편〉22장에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한 말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는 구절이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바로 그때 그리스도는 아무 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죄많은 인간과 일치시켰기에 하느님으로부터 소외된 느낌을 가졌던 것이다. 무지개 위에 앉아 있었던 심판자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버림받은 그리스도가 되었다. 거기서 하느님의 진노와 하느님의 은혜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였고, 하느님은 내세울 것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느님은 의롭지 않은 사람을 의롭다 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하느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표어가 된 신앙의인론(信仰義認論)의 교의였다.

루터는 1517년 모든 성인의 날에 95개조를 내걸었다. 여기서 그는 3가지 주요논점들을 제시하였다. 첫째는 재정 오용에 관한 것으로, 그는 만일 교황이 독일 민중의 빈곤을 알고 있었다면 그가 치는 양들의 피와 가죽으로 성 베드로 성당을 짓지 않고 재 속에 그냥 두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교의적 오용이었다. 예를 들면, 교황은 연옥에 대한 관할권이 없으며 있더라도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가없이 풀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셋째는 종교적 오용을 공격한 것이다. 예를 들면, 교회의 보물은 복음이므로 성인들의 공로를 기리는 보물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점인데, 교황권이 루터의 입장을 이단으로 선고하였을 때 루터는 이에 맞서 교황들의 무류성과 공의회들의 결정을 부정하고 성서만이 유일한 권위임을 선언하였다.

루터는 여러 지역에서 후원을 받았다. 이미 널리 확산되어 있었던 자유주의적인 가톨릭의 복음중심적 개혁은 성직자들의 축첩, 부당한 재물 취득, 성직 겸임(한 사람이 영국·독일·프랑스 등 서로 다른 지역에서 몇 개의 성직을 차지하는 행위) 등의 도덕적 오용을 바로잡으려 했고, 성자와 그 유물에 대한 숭배, 종교적 순례 등과 연관된 대중의 미신을 조롱하였다. 개혁운동의 대표자들은 어느 곳에나 있었다. 이들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교황 레오 10세가 교황직의 종교적 측면을 심각하게 생각했다면 루터는 급속히 분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레오 10세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1520년까지 루터에게 교황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명령하는 것을 연기하였다. 교황권의 세속화가 루터를 구해준 셈이다. 그리고 루터는 세속화된 교황권을 무너뜨렸다.

1520년 여름 그는 종교개혁의 위대한 선언문 일부를 공표하기 위해 골몰하였다.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을 향한 연설 Address to the Christian Nobility of the German Nation〉은 루터가 여전히 신뢰하고 있었던 황제를 포함한 독일의 지배계급에게 사도의 청빈과 소박함으로 되돌아감으로써 교회를 외적으로 개혁하자고 호소하였다. 교회 개혁을 위해 시민 권력을 향해 외친 이 호소는 황제들이 부적격한 교황들을 폐위하고 대체시켰던 중세 초기의 관행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루터는 교황권이 불과 400년의 연륜을 가졌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말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7(1073~85 재위)의 교회개혁이 교회에게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 가장 저열한 사제도 가장 훌륭한 왕보다 인류를 위해 더 좋은 일을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교회가 행정 영역에 간섭하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루터는 그리스도교인 행정장관들을 포함해 모든 신자들이 다 사제라는 교의를 가지고 이에 대처하였다. 평신도는 직업상 교구 사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영적으로는 누구나 사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통치자는 그 자신이 사제이기 때문에 비록 교회가 그를 영적으로 파문하더라도 교회를 외적으로 개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가톨릭 개혁가들은 교황권을 적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 것만을 제외하고는 이 교의에 동의를 표할 수 있었다. 이러한 동일시에서는 중세기 종파들의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루터는 성사(聖事)를 다루는 또다른 1편의 논문 〈바빌론 유수 The Babylonian Captivity〉를 썼다. 이 제목은 성사가 교회에 포로로 잡혀 있음을 시사한다. 루터는 성사의 수효를 7개에서 2개로 줄였다. 7개의 성사는 성세성사(세례)·성체성사(성만찬)·고해성사·견진성사·신품성사·혼인성사·병자성사였다. 루터는 성사를 그리스도가 제정한 의식이라고 규정하였다. 따라서 오직 세례와 성만찬만이 엄격하게 성사로 인정되었고 고해는 고백으로 인정되었을 뿐이다.

루터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성만찬에서 사제의 기원 때 빵과 포도주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형된다고 주장하는 화체설(化體說)을 부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그리스도의 몸이 제단 위에 실제로 임재한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방식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은 물체와 "함께, 그 안에, 그 가운데" 존재한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이 제단 위에 존재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모든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모든 곳에 있다면 왜 특별히 그곳에 있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인간의 한계를 고려하여 하느님이 말씀의 선포와 성사의 거행을 자기계시의 두 방식으로 정하였기 때문이다. 거기서 신자들의 눈이 열린다.

1520 12 10일 루터는 교황에게 굴복하기는커녕 교회법 사본 1부와 그의 굴복을 요구한 교황의 교서를 불태워버렸다. 정상적인 절차대로 진행되었다면, 그는 즉각 파문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루터의 후견자였던 작센의 제후인 현명왕 프리드리히는 루터에게 공정한 자기변호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루터는 의회로 끌려갔으며 자신의 책들을 부인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다. 만일 그가 성사를 다룬 책을 부인하였다면, 다른 논점들은 협상의 여지가 있었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책의 정당성을 모두 인정하였다. 그러면 그는 자신의 책들에서 펼친 교설들 가운데 일부라도 부인하는지, 또 오랫동안 전해온 가톨릭 교설들을 감히 거부한 그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대해 루터는 우쭐거리지 않고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는 우쭐거리지도 않고, 또 악의를 가지지도 않고 대답하고자 합니다. 나는 성서와 명석한 이성에 의해 유죄평결을 받지 않는 한(물론 저는 교황과 공의회가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그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만) 나의 양심은 하느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을 것입니다. 양심을 거슬러 가는 것은 옳지도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에 나는 어느 것도 철회할 수도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 저를 도우소서, 아멘." 그후 황제는 루터를 황제의 금령 아래 두었고 공식적인 파문칙서가 공표되었다. 이런 상황에 이르자 현명왕 프리드리히는 곧 루터를 은신처로 피신시켰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 성채에서 1년 동안 은신하였다. 이 강요된 은둔 기간에 그는 〈신약성서〉 전체를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번역에서 토착적이면서 날카롭고 힘찬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이것은 루터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었다. 여러 가지 점에서 그의 독일어는 관용구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번역본의 반포만큼 그의 가르침에 대중이 추종하도록 한 것은 없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납득을 하지 못했다. 에라스무스 같은 자유주의 가톨릭 개혁자들은 루터의 역설에, 자신의 성서 해석이 옳다는 루터의 확신에 대해서, 그리고 하느님을 사람이 한 일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어떤 사람들은 선택하고 어떤 사람들은 저주하는 폭군으로 만드는 예정론을 루터가 수용한 것에 대해서 주춤하였다. 독일 민족운동이 붕괴되자 루터의 측근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개신교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였다. 이 개신교의 형태들은 전체적으로 '종교개혁 좌파' '급진적 종교개혁' 등으로 다양하게 묘사되고 있지만 어떤 용어로도 명확한 분류는 가능하지 않다.

가장 급진적인 스위스 종교개혁가들 가운데 한 사람은 울리히 
츠빙글리였다. 그는 음악을 비롯한 여러 감성적 효과들을 종교의식에서 추방하였으며, 주의 만찬을 기념적·선언적인 행위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칼뱅의 역할

칼빈개신교의 또 하나의 형태는 칼뱅주의로, 이는 프랑스인 장 칼뱅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인문학과 법학 교육을 받았으나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으로 전향한 결과 프랑스를 떠나 도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젤에서 27세의 나이로 〈기독교 강요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초판을 발표하였다. 계속 이 책은 증보되어 수세기에 걸쳐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교과서가 되었다. 그는 의인(義認 justification)과 성서의 유일 권위에 대해서는 루터와 근본적으로 같은 의견을 갖고 있었다. 주의 만찬에 대해서는 스위스 급진파와 루터파 견해의 중간적 입장을 취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이 모든 곳에 임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영은 보편적이며 부활한 주와의 진정한 합일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칼뱅은 음악과 예술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하게 중도적 입장을 취했다. 그는 회중의 시편 찬송을 좋아했는데, 바로 이 점은 프랑스 위그노파, 스코틀랜드와 신대륙 장로교의 특징이 되었다. 예술에 관해서는 성인들의 상()과 십자가상(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단순한 십자가는 허용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칼뱅주의가 종교의식에서 음악과 예술에 소원하다는 일반적인 견해가 부정되지는 않는다.

칼뱅의 사상은 루터와 강조점이 서로 다르다. 그의 〈기독교 강요〉는 믿음으로 의롭게 됨에서 시작되지 않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서 시작된다. 루터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는 도피처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찾은 반면 칼뱅은 하느님의 심판의 공포를 보다 고요하게 명상할 수 있었다. 하느님의 심판은 선택받을 자들에게는 닥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루터는 선택받은 자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그는 그 자신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었고 일생 내내 신앙과 확신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였다. 그러나 칼뱅은 근사치에 가깝고 입수가능한 시금석들을 갖고 있었다. 칼뱅은 지극히 내적이고 또 무행인 거듭남의 경험을 요구하지 않았으나, 후에 칼뱅주의는 원래 칼뱅의 입장에서 벗어나 선택의 표시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뇌했다. 칼뱅에게는 3가지의 시금석이 있었다. 첫째는 신앙고백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츠빙글리와 견해가 같다. 둘째는 엄격하게 훈련된 그리스도교적 품행이며, 이것은 재세례파와 같은 견해이다. 셋째는 성례전에 대한 사랑이다. 유아세례는 반복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가 말한 성례전은 주의 만찬을 의미한다. 칼뱅은 어떤 사람이 이 3가지 시금석을 갖추었다면, 그는 선민(選民)임이 분명하므로 더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종교개혁은 주로 헨리 8세의 정치적 의지에 의해 영국에 퍼졌다. 그는 왕위계승을 둘러싼 곤경에서 헤어나기 위하여 1534년 그 자신이 국교회 수장(首長)이라고 선언하였다. 영국 국교회의 성격과 지위, 로마 가톨릭과의 경쟁이 정치적인 쟁점이었던 300여 년 동안 보다 근본적인 발전은 개신교 교회 내부에서 일어났다. 청교도 혹은 분리주의자로 알려진 스코틀랜드의 존 녹스와 비국교도들은 장로교 및 회중교회 형태의 교회 조직과 예배를 발전시키고 이를 확립하였다.

예배의 단순성과 하느님에 대한 개인의 직접적인 관계를 강조한 영국 청교도는 경건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독일과 동유럽에서 광범위하게 수용된 경건주의는 수많은 종파들과 운동이 생겨나게 했으며 이들의 공통점은 '마음의 종교', 곧 하느님의 은혜를 신자들이 마음으로 느낌으로써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있다. 결국 형제단(Unitas Fratrum) 또는 모라비아 교회(Moravian Church)로 불리는 경건주의 집단은 영국 사람 존 웨슬리에게 영감을 주어 감리교 운동을 창시하게 하였다. 이 감리교 운동은 복음주의로 알려진 보다 일반적인 현상의 주요표현이었다.

옥스퍼드의 링컨 칼리지 학생시절에 웨슬리는 성서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학생단체를 결성하였고, 선교를 위해 그루지야를 여행했으며, 모라비아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 경건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일생을 영국에서 복음주의적 설교를 하는 데 바쳤다. 그는 분리를 의도하지 않았으나, 그 당시 영국 국교회의 교구체계는 자유로운 복음설교와 평신도 설교자에 관한 웨슬리의 계획을 수용할 수 없었다. 결국 1744년 웨슬리는 제1차 설교자대회를 개최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은 감리교협회의 치리기관인 연례 대회가 되었고, 1784년에는 합법적인 지위를 인정받게 되었다.

감리교 운동은 프로테스탄트 정통주의가 조금은 소홀히 여기는 감정과 양심을 중시하였다. 감리교 운동은 은혜의 교의에 새롭고도 헌신적인 자극을 주었으며, 한때 경건주의에서 나타났으나 17세기 중반 이에 대한 반동이 일어났을 때 일시적으로 쇠퇴한 바 있던 도덕적 진지함을 중시하는 전통에 합리성을 부여하였다. 18세기의 복음주의 운동은 가장 위대한 찬송가 작사가들, 즉 필립 도드리지(1702~51)와 찰스 웨슬리(1707~88)를 낳았다.


미국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유산

미국혁명과 프랑스 혁명은 서구사회의 역사와 그 안에서 발전한 개신교 운동의 역사를 변화시켰다.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규정한 미국 헌법은 식민지시대의 유산이었던 자유로운 교회가입의 정신, 유럽에서 끊임없이 도래한 이민자들의 종교적 혼합, 영국에서 지배했던 '교회와 왕'의 동맹에 대한 반작용, 계몽주의의 세속 정신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랑스 혁명 및 나폴레옹과 더불어 세속의 국가이념은 수많은 유럽 자유주의자들, 특히 로마 가톨릭 국가들의 반성직주의자들의 이상이 되었다. 미국의 유형은 나폴레옹의 유형보다 유럽 개신교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국교화된 개신교 교회에 익숙했던 독일·스칸디나비아·네덜란드·스위스·영국·스코틀랜드의 세속국가들에서는 한동안 국교 폐지의 강력한 요구가 없었다. 이 모든 나라에서 독립교회 혹은 비국교도 교회의 교인들은 19세기 동안 완전한 관용과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개신교 국가가 아닌 곳에서는 19세기 동안 국가와 국교회 사이의 형식적 연계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예외가 있다면, 영국국교회가 소수파로 존재하였던 아일랜드(1871)와 웨일스(1914~19)뿐이었다. 그러나 국교회는 최소한 외적이고 역사적인 형태로 영국·스코틀랜드·스칸디나비아 등 3국에 남아 있었다.


재통합을 위한 운동

종교개혁 이후 재통합을 향한 가장 중요한 법령이 제정된 것은 19세기초였다. 17세기 후반 유럽의 국가들은 한 교파 이상을 허용하면서 서서히 만인에 대한 관용 쪽으로 움직여 그들이 훌륭한 시민인 한 종교적 관용을 베풀었다. 한편 그리스도교 지도자들, 특히 새로운 합리주의 학파, 혹은 교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주의 학파의 지도자들은 개신교도들을 서로 분리시켜온 교리들이 그들이 동의한 진리보다 중요하지 않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개신교 팽창의 시대

이런 형태로 세속국가는 개신교(그리고 로마 가톨릭)의 팽창과 다양성을 지원한 셈이지만 동시에 모든 교회들과 긴급한 새 문제들을 놓고 대결하게 되었다. 헌법으로 국가와 종교를 분리시킨 미국의 유형은 과거의 회중교회 전통과 계몽주의의 이념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그 의도가 반종교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 유형은 보다 역사가 깊은 유럽 교회들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종교개혁 이래로 국가와 교회가 동맹관계에 있었던 개신교 국가들에서 그 효과는 이중적으로 나타났다. 첫째, 국가는 그 지역의 대표적인 교파들에 대해 더욱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둘째, 국가교회는 모든 형태의 국가 통제로부터 독립을 얻기 위해 더 강력한 압력을 가하게 되었다. 루터교가 지배적인 독일에서는 19세기 중반에 독립을 향한 강력한 운동이 나타났다. 스코틀랜드의 복음파 운동은 목회자들을 교구에 임명하는 것과 관련하여 국가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였다. 이 요구안을 왕실과 정부가 거부하자, 거의 절반에 가까운 스코틀랜드 교회는 토머스 찰머(1780~1847)의 지도 아래 국교회를 떠나 스코틀랜드 독립교회를 창설하였다(1843). 이 두 교단은(1929년 최종적으로 재통합될 때까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계속 유지되었다. 스위스에서는 개혁파 신학자 알렉상드르로돌프 비네(1797~1847)가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위해서 압력을 가했으며 1845년 자유교회(Free Church)를 창설하였다.


세계에서 미국 개신교 영향력의 향상

16세기 이래 개신교 정치권력의 두 중심은 독일과 영국이었다. 프로이센의 영향력 아래 독일이 통일되고 영국이 세계적인 세력으로 등장함에 따라 19세기에는 개신교의 정치적 역량이 종교개혁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했다. 그러나 1860년경 제3의 세력이 미국에서 출현하였다. 1820년 이후 미국의 개척 상황은 다양한 개신교 세력을 확장시켰고, 1832년 부흥운동집단들로부터 형성된 그리스도의 제자회와 같은 교파들이 등장하였다. 이와 때를 맞추어 개신교 교파들은 미국의 경계를 넘어서서 그들의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미국 이민자들의 상당수는 로마 가톨릭교도였으며, 따라서 한동안 미국에서 가장 큰 단일 교파는 로마 가톨릭교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지도력과 문화의 기조는 앵글로색슨적·자유주의적·개신교적인 것으로 유지되었다. 대체로 루터파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독일인들과 스칸디나비아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함에 따라 미국 루터교가 확장되었으며 마침내 루터교의 본산지인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에 버금가는 비중을 지닌, 루터교적 생활과 사상의 중심지가 되었다. 루터교의 지도자들은 대체로 유럽의 경건주의 집단들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미국의 루터파 교회는 독일 교회보다 더 보수적인 신학과 계율을 갖게 되었다. 미국 그리스도교의 부흥운동은 19세기 내내 계속되었으며, 개인적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개념이 미국적인 생활방식에 깊이 침투하게 하였다.


선교의 확산

독일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세력, 미국 세력의 증가, 유럽에서 일찍이 보지 못했던 오랫동안의 평화 등으로 인해 개신교 교회들은 가장 위대한 팽창의 시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새로 생겨나는 도시들에서 개신교 교회들은 전례없는 규모로 사회봉사를 전개하였다. 병원, 고아원, 금주운동, 노인보호, 젊은이들과 성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확대, 교회학교, 도시 빈민지역에서 청소년 및 성인 클럽 운영, 19세기 새로운 도시생활이 필요로 하는 무수한 조직체들의 설립이 그것이다. 개신교 교회들은 프랑스나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지 않은 아프리카의 모든 지역에 개신교를 효과적으로 전파함으로써 남아프리카에서는 반투족이 주로 개신교 교인들의 동맹체가 되었다. 인도에서는 영국과 미국의 선교사들이 신생 인도 그리스도교 교회들의 힘을 끊임없이 증가시켰다. 중국의 그리스도교는 항구도시와 17세기 로마 가톨릭 선교의 잔류자들에게 국한되어 있었으나, 영국이나 미국의 재정 지원과 중국내지선교회 설립의 재정 지원을 받았던 다양한 복음파 집단들은 중국 내지(內地) 깊숙히 들어가 회중을 만들었다. 일본은 1630년 이래 그리스도교에 대해 폐쇄적이었으나, 1859년 재개방 이후 미국과 영국의 선교사들이 일본 그리스도 교회들을 창설하였다. 미국 선교사들은 중앙·남아메리카에 개신교를 소개하였다. 주요한 개신교 교파들(루터교·장로교·성공회·회중교회·침례교·감리교)은 모두 세계적 규모의 단체로 발전하였으며, 자신들의 조직체를 여러 나라의 극히 새로운 요구들을 충족시키도록 조정하는 데 상당한 긴장을 겪었다.


19세기 개신교가 직면한 새로운 문제들

19세기(그리고 그 이후)에 교회 비판은 2가지였다. 하나는 사회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적(知的)인 것이다. 급속한 도시성장과 공업발전은 종교생활과 소원한 프롤레타리아를 창출하였고 많은 정치 지도자들은(특히 유럽에서), 교회는 노동계급을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사회질서의 보루라고 주장하였다. 초기 형태의 사회주의의 일부는 무신론적이거나 최소한 이신론적이었으며, 교권과 왕권 사이의 동맹을 의심하는 만큼 독립교회들에 대해서도 커다란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카를 마르크스(1818~83)와 같은 사회·경제 사상가들은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며 인류로 하여금 자신의 운명에 만족해서는 안되는 데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만족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견해에 대한 응답으로 가톨릭과 개신교의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에서 '그리스도 사회주의자들'이 출현하였다. 그들은(적어도 이론적으로) 노동자들이 사회적·경제적 정의를 누릴 권리를 갖고 있으며, 그리스도교인이라면 노동자들을 위해 더 많은 정의를 이룩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들을 향해 양심적으로 일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견해를 제외하면, 그리스도교 사회주의 관점과 이념은 정치적·신학적인 면에서 서로 크게 달랐다. 베를린의 왕실 설교자였던 아돌프 슈퇴커(1835~1909)는 반유대인적인 급진적 정치가였다. 영국의 성직자이자 소설가였던 찰스 킹슬리(1819~75)는 노동계급을 깊이 동정하고 이해했던 온정적인 보수주의자였다. 그리스도교 사회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심오한 인물은 프레더릭 데니슨 모리스(1805~72)였다. 그는 1853년 추방당할 때까지 런던 킹스 칼리지의 신학자였으며, 그후 런던의 목회자로 있다가, 말년에는 케임브리지대학 도덕철학 교수였다.

영국과 미국에서 소수의 성공회 신학자들의 지적인 지도력 못지않게 노동자들의 종교를 위해 많은 공헌을 한 것은 개신교급진파, 특히 침례교와 원시감리교였다. 어떤 경우에는 이들의 노력으로 사회주의 정당들이 그리스도교인들의 표를 얻을 수 있었다. 또 그들은 그리스도교인 유권자들이나 정치가들에게 실제로 사회주의 정당에 표를 던지지 않더라도 복지국가로 이끌어가는 정책을 채택하도록 설득하였고, 한편으로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더 많이 의식하도록 교육하였다. 미국에서 사회복음은 19세기말에 교회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사회복음의 가장 영향력있는 지도자는 침례교회 월터 라우셴부쉬(1861~1918)였다. 가톨릭 국가들에서는 그리스도교인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자신의 이름에 그리스도교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많은 정당들이 나타난 데 반해, 개신교 국가들에서는 모든 정당들이 그리스도교인 유권자들에게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고, 세속적임을 표방한 정당들이 정치적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20세기의 개신교>

개신교의 흐름

1914~18년의 전쟁은 유럽이 자신의 문명에 대해 품고 있었던 이미 쇠잔해진 자기만족의 환상을 깨뜨렸다. 이 전쟁은 그리스도교 국가들 사이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그리스도교를 약화시켰다. 공식적으로 무신론을 표방한 정부가 1917년 러시아에서 권력을 장악하자 그리스도 교권 세계에는 새로운 부정적 압력이 가해졌으며 서유럽과 미국에서는 사회적 갈등과 노동계급의 갈등이 첨예화되었다. 그후 40년 동안 개신교 교회들은 엄청난 손실을 감내해야 하였다.

1933~45년 동안 권력을 장악한 아돌프 히틀러 통치하의 독일은 유럽을 볼셰비즘의 위협으로부터 구원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이 때문에 나치는 초기에 많은 독일 교인들에게 환영을 받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환멸이 그 뒤를 이었다. 1933년 가을부터 교회문제(특히 유대인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 교회에서 직책을 맡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아리안 조항)에 관해 정부와 협력하고자 한 교인들과 마르틴 니묄러의 지도 아래서 교회문제에 관해 정부와 협력하지 않으려던 교인들 사이에 당파적 분열이 일어났다. 국가의 보조를 받는 남부(바이에른과 뷔르템베르크) 루터교 교회들의 지원에 힘입어 니묄러 그룹은 고백교회(Confessing Church)를 형성할 수 있었다. 고백교회가 1934 5~6월에 바르멘 노회(老會)를 소집하면서 교단의 분열은 분명해졌다. 한동안 고백교회는 독일 전역에서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 정부가 교회성 장관 한스 케를 휘하에 공리공론적인 성격이 적었던 교회 정부를 수립하자 고백교회는 이 정부에 협력하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교회 정부는 나치 정부가 강제로 세운 것이므로 협력할 수 없다는 니묄러파 사람들로 분열되었다. 바트 왼하우젠 노회(1936. 2)에서 고백교회는 다시 분열되었으며 다시는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없었다. 그후 특히 극단적 나치주의자들이 히틀러 정권의 완전한 통제를 확고히 하였던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에 교회들은 점증하는 압력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말기에 일부지역에서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게 되었다. 뷔르템베르크의 주교 테오필 부름은 나치 정권의 비인간적 행위에 저항한 지도자였다. 하인리히 그뤼버 목사는 체포될 때까지 유대인들을 피난시키고 보호하는 뷔로 그뤼버(Büro Grüber)를 운영하였다. 몇몇 교회 지도자들, 특히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치 정권에 대한 저항에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전쟁이 끝나자 러시아 군대는 동유럽을 장악하였으며 독일은 분단되었고 이 지역의 모든 교회들은 억압을 받았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발트3(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에서 소개(疏開)되거나 추방당했다. 루터교 공동체들은 그곳에 남아 있었으나 스탈린 통치하에서 특히 심한 박해를 받았다. 트란실바니아(루마니아)의 루터교도들과 헝가리의 개혁파 교도들은 심한 박해를 덜 받았지만, 그 수효는 크게 줄었다. 신학자 요제프 흐로마트카의 지도를 받았던 체코슬로바키아의 개신교도들은 유럽의 다른 지역 개신교도보다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과 더 많은 대화를 지속하는 데 성공하였다. 개신교에 가장 큰 손실은 독일 분단이었다. 승전국들의 결정에 따라 예전에 독일어권이었고 대부분 루터교가 성했던 넓은 지역이 폴란드로 넘어갔으며, 독일인 약 800만 명이 추방당했다. 1945년에 구성된 동독(독일민주공화국)정부는 비텐베르크와 개신교의 고향이 되는 지역 대부분을 포함하였다. 동독은 마르크스주의 정권이 대부분 개신교도들(70%)인 주민들을 통치한 유일한 국가였다. 한동안 루터 교회는 동독과 서독 사이의 주요연결고리였다. 루터 교회의 연례모임인 '교회의 날'(Kirchentag)은 잃어버린 독일 통일의 유일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짐으로써 동독 교회들은 고립되었다. 자금·교육·교회건축 등과 관련된 정부의 압력, 민족적이고 반그리스도교적인 형태의 청년운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독 개신교도들은 용감하게 활동하였으며 성공을 거두었다. 1967 1031일 종교개혁 450주년 기념식은 개신교 교회가 수많은 사람들의 정서를 얼마나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1917년의 혁명 이전만 해도 철저한 정교회 국가였던 러시아는 혁명 이후 40년 동안 침례교 공동체들이 성장하였다. 침례교 조직의 유연성과 단순성은 대처하기 어려운 법적 조건 아래서도 적절히 활동할 수 있게 하였다. 침례교 공동체들은 1953년 스탈린이 죽은 이후 몇 년 동안은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으나 1960년 이후 다시 예전과 같은 억압과 박해를 받았다.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겪은 물질적 손실과 1947년 이후 영국의 종말은 과거 영국이 지배하던 지역들의 개신교 교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영국은 더 이상 해외 교회들에 과거와 똑같은 규모로 자금과 인적 자원을 제공할 수 없었으며, 일부지역에서는 교회 정부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지도자들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다른 지역들에서는 영국의 지위가 변화됨으로써 그동안 느린 속도로 진행되었던 지도력의 변화과정이 촉진되었다. 부족한 재정 및 인력자원의 일부는 미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보충되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더 이상 유럽 사람들의 눈으로만 보지 않고, 부분적으로는 그리스도교 과거에 대한 상이한 태도에서 비롯된 조급함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지도되는 이른바 젊은 교회들이 세계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 점은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한편, 기술발전 시대의 세속화 추세는 낡은 유럽 교회들을 공격하였으며, 젊은 교회들이 목회활동을 펼치는 지역에서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개신교, 이를테면 서남아프리카나 나미비아의 루터교와 남아프리카의 성공회를 비롯해 남아메리카와 아시아의 오순절 복음주의 교회의 성장은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손실을 보충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지역의 개종자와 인구 성장은 개신교 교회의 범위와 기질을 변화시켰고 그 규모도 증가하였다.

개신교의 종말이 예견되었던 세계 여러 지역들에서도 개신교는 놀랍게도 살아 남아 다시 등장하였다. 1948~49년 중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자 중국에서의 개신교 선교는 결정적으로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1951년에 이르러 중국에서는 유럽인 선교사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며, 중국 교회는 외부 지원 없이 홀로 서지 않으면 안되었다. 중국 교회는 가혹한 억압에 시달렸으며, 특히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이른바 문화혁명 시기에 더 심했다. 중국 교회는 더 이상 복음을 전파할 수 없었고 생존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기와 1980년대에 중국이 서방을 향해 부분적으로 다시 개방하고 종교와 언론의 자유를 더 많이 허용하는 신중한 조치를 취하면서 중국 개신교도들과 서방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접촉이 이루어졌다. 중국에서는 수백만 명의 개신교도들과 그밖의 교파에 속한 그리스도교인들이 과거 20년 동안 가혹한 억압과 박해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들의 미래가 아무리 불확실하다 하더라도 그들은 세계 교회들 가운데서 생동적인 집단을 대표하고 있다.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형태의 개신교

20세기 개신교의 가장 중요한 운동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수적이라고 부르는 토양에 뿌리를 두고 있었으며, 그 토대도 부분적으로 보수반동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물론 이 운동들에 가담한 모든 구성원들을 보수주의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의 진보적이고 왕성한 신앙표현은 보다 급진적인 외양을 띠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 가운데 3가지 주요운동들은 보통 오순절운동·근본주의·복음주의라고 일컬어진다. 오순절운동은 개신교가 역사적 본거지인 유럽을 넘어서서 확산하는 데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오순절운동

이 운동은 20세기로 접어들 무렵 미국에서 웨슬리파 성결운동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1901년 캔자스의 토피카와 1906년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이 운동을 특징짓는 다양한 현상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운동의 핵심은 '방언'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스스로 '복종'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억제없이 하는 말의 형태이다. 그들이 말하거나 노래하는 음절들은 남이 알 수 없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들이 첫 오순절 때의 예수의 제자들처럼 인식가능한 외국어로 말한다고 주장했고 거기서 이 운동의 이름이 비롯되었다. 오순절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물의 세례를 넘어서는 '2의 세례'를 받아야 하며 이를 통해 성령이 그들에게 임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방언으로 말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기도 하며 예언도 한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다른 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기적적인 치유가 사도 시대 이후 중단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치유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의 오순절운동은 '성서의 띠'인 남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았고, 농촌의 가난한 백인들이나 도시의 흑인들 사이에서 발전하였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하느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 등 급속하게 성장한 교파들을 통하여 가장 가시적인 형태의 개신교 가운데 하나로 등장하였으며, 점차 중간계층에게로 수용되었다. 1960년 이후 오순절운동은 성공회·루터교·장로교와 같은 그리스도 교회의 주류를 이루는 교회로 확산되었으며, 이 교회들에서 오순절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 운동을 '은사운동'이라고 일컫는 경우가 많다.

오순절운동은 카리브 연안, 남아메리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지역에서는 수많은 예언 운동들이 분출하였으며, 그리스도교인들은 감성적 형태의 예배와 치유활동을 받아들였다. 대부분의 경우 오순절운동은 식민주의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던 이 지역국가들에서 민중에게 희망을 가져다주는 가난한 사람들의 종교였다. 1세기 전 선교사들이 이룬 토대 위에 집을 지은 오순절운동가들은 일부 해방운동들과는 달리 반미적이거나 반유럽적인 경우가 거의 없었고 '피안'(彼岸)을 강조하여 정치를 회피하거나 보수적 심지어 반동적이기까지 한 정권들과 손을 잡았다.

근본주의

2번째 주요운동인 근본주의는 19세기 후반 '전천년왕국설'(前千年王國說)과 성서무류성을 다소 합리주의적으로 변호한 사상을 서로 결합시켰다. 이 운동의 이름은 1910~15년 미국에서 발간된 〈근본주의자들〉이라는 소논문에서 따온 것이다. 근본주의는 미국에 있던 교파간의 분쟁 때 형식적이고 호전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1919~20년에 공식인정을 받았다.

근본주의가 발흥하게 된 가장 분명한 원인은 성서의 고등 비평과 다윈의 진화론이 확산되어 보다 자유주의적인 개신교 교회들에 수용된 일이다.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은 이 두 운동이 침례교와 장로교 북부 지회의 신학교와 사무국, 선교부, 설교단들을 전복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근본주의의 대가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진화설을 부인하고〈창세기〉의 기사가 과학적이라고 옹호하였던 1925년 스코프스 재판은 침례교와 장로교 간의 교파투쟁이 절정에 이르렀던 때와 같은 시기에 벌어졌다.

근본주의자들은 정치투쟁에서는 패배하였지만 그들의 성서학교와 라디오 프로그램, 출판사업은 살아 남았다. 1940년대 초반에 그들은 재결집하여 서로 경쟁력 있는 몇 개의 근본주의 조직체를 결성하였다. 이 조직체들은 추종자들을 얻었고, 남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사기도 드높아지면서 분명한 자기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대체로 수동적이던 정치적 태도를 버리고 개방적 참여로 특히 1980년과 1984년에 로널드 레이건의 대통령 유세를 지원하여 방향을 바꾸었고 성공을 거두었다. 근본주의적 복음전도자 제리 폴웰이 창설한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와 같은 집단들은 텔레비전 전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근본주의자들은 정치적 역량을 모아 낙태반대, 공립학교에서 기도를 허용하는 헌법 수정을 지원했으며, 이스라엘의 이상과 강력한 국방예산을 지지하였다.

복음주의

수십 년 동안 복음전도자 빌리 그레이엄과 같은 인물들의 목회와 〈크리스천 투데이〉 등의 잡지를 중심으로 활동한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이 집단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 대속(代贖), 예수의 육체부활 등의 주요교리에서는 근본주의와 일치한다.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성서 무류설을 주장하지만,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은 점차 그것이 과연 성서의 권위에 대한 신앙을 주장하는 최선의 방법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어왔다. 근본주의가 강조하는 전천년왕국설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가졌다.

복음주의자들은 근본주의자들보다 온건했다. 그들은 그 본질상으로는 고전적인 형태의 근본주의자들과 같았지만 그 스타일은 달랐다. 그들은 근본주의자들이 문화에 대해 너무나도 부정적이고, 종파화되었으며 무례하고 남을 몰아세우며 비판적이라고 생각하였다. 1942년 복음주의자들이 전국복음주의협의회를 세웠을 때, 그들은 그들이 중도파와 자유주의자들을 공격했던 것만큼 근본주의 우파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좋은 태도를 지닌 근본주의자들로 보기보다는 19세기 개신교의 주류를 유지하는 사람들로 보기를 더 좋아했다.

이를 위하여 복음주의자들은 점차 문화·사회·정치 세계에 다시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성서학교를 짓는 대신 자유로운 인문대학을 지원하였고 일부 복음주의자들은 심지어 급진적인 정치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으며, 보수적인 개신교가 군국주의 및 자유 분방한 자본주의와 스스로를 지나치게 일치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또한 미국과 그밖의 여러 나라에서 상당한 정치력을 갖게 되었다.

복음주의자들은 에큐메니컬 경향을 띠고 있었다. 빌리 그레이엄은 가톨릭 지도자들과 주류 개신교 지도자들이 자신의 강단에 서는 것을 환영하였으며, 근본주의자들이 기피했던 여러 종파의 그리스도교인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근본주의자들과 오순절운동가들이 제3세계에서 동반자를 구했다면, 복음주의자들은 국제 운동들을 형성하고 많은 나라의 그리스도교인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대회를 개최하였다.

근본주의자들이 교회로부터 갈라져 나와 그들 자신의 교회에 칩거하는 데 반해, 수백만 복음주의자들은 주류를 이루는 교파들과 지속적인 연관을 맺으며 점차 완전한 주류를 이루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그들의 독특한 교리와 그리스도를 증언하고자 하는 열정을 생동적으로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개신교 내의 신학운동

개신교 신학 전통 안에는 모종의 반작용도 관찰된다. 이러한 반동은 부분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자유주의에 대해 전반적인 의문이 제기된 데서 비롯되었으며, 특히 후대의 발전과정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이용해 그들 자신의 사회관을 정립하고자 했던 나치에 대한 반작용에서 비롯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에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를 인간이 스스로 경험하고 있다고 믿는 한계로 축소시키고, 객관적인 진리를 주관적인 감정으로 환원한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에 직면하였다. 키에르케고르는 스스로 자유주의자이면서도 자유주의 신학을 가장 맹렬히 비판한 사람이다. 영국 옥스퍼드 운동의 최초 회원들, 전통 복음파, 성서의 무류한 말씀을 고수하다가 20세기에 들어와 근본주의자들로 지칭된 많은 사람 등을 포함한 모든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똑같은 이유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반대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자유주의 진영 안에서도 반작용이 일어났다. 1918년부터 바젤의 카를 바르트와 취리히의 에밀 브루너는 종교적 경험을 강조하는 모든 신학들을 반대하는 운동을 지도하였다. 신정통주의라고 하는 이 신학운동은 유럽과 미국의 개신교 사유(思惟)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바르트와 그의 제자들은 그들의 활동이 성서의 참된 지상권(至上權)을 재주창하고 종교개혁의 진정한 원리들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미국에서 라인홀드 니부어는 사회와 인간에게 적용된 자유주의 그리스도교 철학만큼 이에 반대하는 것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옛 신학자들이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독일 마르부르크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이 미친 영향에서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그는 〈신약성서〉의 핵심 진리를 드러내고 신앙에 대한 〈신약성서〉의 의의를 보다 완벽하게 밝힐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신약성서〉의 '비신화화'(非神話化)를 시도하였다. 나치 독일을 피해 망명한 파울 틸리히와 같은 신학자들은 유럽의 사태 발전을 미국인들에게 해석해주었다.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그것을 발언한 위대한 신학자들의 세대를 넘어서 지속되지 못했고 1960년대 중반 이후의 개신교 신학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비록 위르겐 몰트만 같은 몇몇 신학자들이 신정통주의의 요소들을 취하여 이들을 '희망의 신학', '정치신학', '혁명의 신학' 혹은 '해방신학 ' 등 다양한 운동과 결합시키기는 하였지만, 이제 유럽은 새로운 신학운동의 주도권을 잃었고, 하느님이 억눌린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는 사실의 증언을 강조하는 제3세계 신학자들과 성서를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미국의 여성·흑인 신학자들은 과거의 강단신학에 내장되어 있었던 가부장주의·엘리트주의·인종차별주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해방신학을 채택하고 있는 운동들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전반적으로 보아, 이 운동들은 개신교 사상을 특수화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의 한 접근법은 문화적 상황들을 활용하는 것으로 이는 아프리카 신학, 아시아 신학, 여성신학·흑인신학을 등장시켰다. 이들 신학에서는 성서해석이 성서를 읽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집단이 갖고 있는 '전이해'(preunderstanding)에 의해 착색된다고 생각되었다. 또 하나의 접근법은 '이야기 신학'에 초점을 맞추어 추상적인 신학에서 사람 중심의 구체적 이해로 나아가려는 노력이었다. 오순절운동과 근본주의의 발흥은 개신교 전반에 걸쳐 성령론과 종말론에 관한 새로운 관심을 일으켰다.

에큐메니컬 운동

이 운동은(비록 동방정교회가 곧 참여하기는 하였지만) 본래 개신교의 운동이었으며, 초기에는 개신교 사고가 이 운동을 주도하였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주로 ① 세계 전역에 걸쳐 이루어진 교통수단의 발전과 인구이동으로 여러 교파들이 전례없이 뒤섞이게 된 점, ② 전통적인 교파들의 세계적 확산, ③ 미국 내 종교의 다양성과 이와 같은 다양성에서 비롯된 문제점, ④ 아프리카 및 아시아에 비교적 근래에 세워진 교회들과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사가 아닌 유럽 역사의 사건에서 비롯된 장벽들에 대한 경멸 등에서 비롯되었다. 선교활동들은 항상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미국의 감리교 선교지도자 존 R. 모트는 선교여행을 통해 다양하고 전반적인 노력들을 단일한 조직으로 전환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는 선교를 향한 열정과 그리스도교 일치에 대한 소망을 대표한 사람이었다. 1910년 에든버러 대회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효시인 세계선교대회였다. 이 대회로부터 구체적인 생활태도와 사업문제를 다루는 협의회(스웨덴 루터교의 대주교 나단 죄더블롬이 지도), 신학자들이 그들의 신학적 차이를 호의적인 태도로 검토하는 신앙과 직제(職制) 협의회가 발기되었다. 초창기에 로마 가톨릭은 이 운동에 참여하기를 거부하였고 동방정교회도 서방 디아스포라 유배 이후에야 참여하였다. 나치 정권은 독일인들의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를 계속 허용하지 않았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새로운 분위기가 나타났고 1948년 암스테르담 대회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가 공식 결성되었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대부분의 자금과 상당부분의 추진력을 미국 사람들에게 의존했으나 본부는 제네바에 두었고 초대 총무인 네덜란드 개혁파 교회의 행정가 W.A. 비서트 호프트의 지도 아래 이 운동이 성공하려면 분열된 유럽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함을 결코 잊지 않았다.

1948년 이후 에큐메니컬 운동은 개신교도들로 하여금 동방정교회와 로마 가톨릭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하도록 이끌었다. 1958년 요한네스 23세가 교황이 된 후 마침내 로마 가톨릭교도들도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비록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의 규정들이 대부분 개신교도들에게 수용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는 1870년의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규정들과는 달리 여유가 있었으며, 16세기에 쌓여진 가장 높은 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던 일반적으로 자유주의적인 개신교도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교의·예배·조직 : 종교 개혁자들과 그 후계자들의 공통된 원리와 관행>

신앙의인(信仰義認)

개신교 지도자들은'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즉 신앙의인)는 개신교의 가르침이 개신교를 당시 로마 가톨릭과 구별해준다는 데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가르침은 개신교 역사 전반에 걸쳐서 개신교의 핵심이 되어왔다. 교단들마다 약간의 변용이 있기는 했지만, 이들이 공유하는 신앙의 핵심은 쉽게 분간할 수 있다.

개혁자들 눈에 새로운 상황은 자유의 상황이었다. 가톨릭교도들은 스스로 충분한 공로를 쌓고 선행을 하였는지, 또 하느님의 대리인인 교회를 기쁘게 했는지를 두려워한 데 반해, 개혁자들의 견해는 신자들로 하여금 이 귀찮은 질문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게 하였다. 그들은 한편으로 죄와 죽음, 악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되었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구원을 성취하였다거나 최소한 자신의 구원을 위해 지대한 노력을 했다는 믿음과 짝을 이루는 교만, 곧 사람을 노예화하는 교만으로부터도 해방되었다.

이러한 견해는 개혁자들에게 그들의 적인 로마 가톨릭교도들이 항상 지적하는 심각한 문제를 남겨주었다. , 의인(義認)과 자유에 대해 그렇게 가르친다면 선행을 강조하는 성서의 가르침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였다. 공관복음서(마태·마가·루가)에 따르면, 예수 자신은 언제나 사람들을 더 선하게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으며 바울로 조차도 이러한 관심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운동은 인간 존재를 공로와 선행의 필요성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선행에 대한 관심을 경솔히 취급한 것은 아닌가?

이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개신교 문헌들은 많다. 개혁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사실상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선행은 하느님의 위로나 구원의 위로를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용서받은 마음에서 나오고 항상 의롭다 인정받는 사람의 삶의 결과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법은 인간존재가 걸어가는 구원의 길이나 하느님에게 이르는 일종의 장애물 또는 도로 표시로 이용될 수 없다. 오히려 하느님의 법은 인간의 모자람을 재고 그것을 심판한다. 복음을 통해 활동하는 은혜로운 하느님은 인간 존재를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한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도들은 모든 신자들의 사제직을 주장하면서 평신도와 성직자가 평등함을 인정했지만, 그들이 평신도의 역할을 명확히 밝히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우, 평신도들은 공중 예배에서 설교자가 될 수 없으며, 성사의 집행도 성직자들의 수중에 맡겨져 있다. 설교자가 성서해석에 전문가가 될 것을 요구함으로써 개신교도들은 평신도들의 완전한 참여를 희생시키고 목회자 안수를 받으려면 일정과목을 반드시 이수하도록 정했다. 그렇지만 개신교도들의 이러한 견해는 중세 가톨릭과 비교해볼 때 평신도들의 신학적인 지위와 실제적인 지위를 크게 드높였다.

말씀의 권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의롭다 인정받는다는 가르침과 모든 신자가 곧 사제라는 가르침은 권위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전통적인 견해에 도전하는 주장이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장들은 누구도 은혜의 체계 안에서 위계질서를 독점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중세의 권위적인 체계가 무너짐으로써 개신교에는 공백이 생기게 되었고 개신교는 이를 서둘러 채워야 했다. 개신교 운동의 다양성과 다원주의는 여기서 비롯되었지만 그것이 곧 무정부상태나 훈련부재를 선호했다는 뜻은 아니다. 개혁자들은 즉각 교회와 신자들의 생활에서 행사되어야 할 권위의 범위를 정하는 일과 교회구축을 시작했다. 그들은 최종적인 권위가 하느님의 말씀에 있다고 보았고 이를 성서와 나란히 두는 경향이 있었다. 개신교 운동을 위해 권위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필요는 성서에 관한 이해를 높였으며 성서의 가르침에 대한 재발견은 개신교 운동의 일차적인 동인(動因)으로 간주된다.

교회의 계속적인 개혁

개신교 교회는 교황에 의해서가 아니라 규범이 되는 성서에 의해 심판받고 모든 신자들의 사제직에 근거하며 교회 교부들과 공의회들을 비판적으로 긍정하고 전통적인 교회법의 법전들을 거부한다는 점, 그리고 계속 개혁의 원리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로마 가톨릭주의와는 크게 달랐다. 대부분의 개혁자들은 일단 종교개혁을 완수한 다음에는 그들의 지위와 규정을 위태롭게 하는 종교개혁의 확산을 거부하였지만, 거의 모든 개신교도들은, 교회는 언제나 개혁되고 언제나 계속적인 개혁을 필요로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는 생각을 강조해왔다.


<개신교가 근대세계에 미친 영향>

민족주의에 미친 영향

마침내 개신교는 북서 유럽과 영국, 아메리카 대륙 영어권에서 주류가 되는 신조가 되었다. 19세기의 거대한 개신교 선교운동을 통하여 개신교는 이 지역들로부터 세계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개신교는 소수파로 존재했던 로마 가톨릭과 만났으며 이와 동시에 가톨릭이 주류인 남아메리카에도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개신교를 북대서양 국가들의 역사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국가들에서는 '독립'교회들이나 '교회와 국가의 분리' 이후의 개신교 자유교회들이 수세기 동안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개신교가 근대 민족주의에 공헌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개신교는 이미 종교개혁 시대에 해체되고 있다가 1806년에 최종적으로 붕괴된 신성 로마 제국의 종식을 주도함으로써 민족주의 세력을 형성하는 데 참여하였다. 낡은 그리스도교 세계(corpus Christianum)는 생존할 수 없었고 개신교의 존재는 하나의 수장(首長) 아래 있는 국제적이고 초지역적인 통합된 그리스도교의 쇠퇴를 가속화시켰다. 문맹을 퇴치하고 각국어에 대한 존중을 확산시키고자 했던 개신교는 라틴어를 매개로 한 낡은 그리스도교의 언어적 유대를 없애고 나라마다 그들의 모국어를 사용할 것을 권장하였다. 급진파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현존하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개신교도들은 자기의식에 도달한 각각의 새로운 국가들에게 이데올로기적 기초를 제공할 때가 많았는데, 프로이센과 미국의 경우가 그 예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관심

20세기에는 지난 3세기 반의 세월에서보다 합의를 이루어내려는 노력이 많았다. 오늘날 에큐매니컬 운동은 철저하게 개신교와 동방정교회, 가톨릭을 망라한 외양을 띠고 있지만, 처음에는 교회의 선교가 경쟁과 분열로 말미암아 좌절되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에 의해 개신교 토대 위에서 탄생하였다. 널리 알려진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폭풍우에 휩싸인 양떼처럼 포위당하고 서로 엉켜 있었던 그들은 서로간의 교제를 모색하였던 것이다.

이와 동시에 현대의 교통 및 통신 기술은 세계의 거리를 좁혔고 에큐메니컬 운동의 연합을 가능하게 했다. 신학의 재발견은 에큐메니컬 시대에 공동선언과 때로는 공동행동을 위해 개신교의 열정을 창출하여야한다는 새로운 인식과 융합되었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교파적인 노선과 초교파적인 노선 모두에서 교파 연합과 공의회적 조직을 결성하게 하였다.

그동안 교황 요한네스 23(1881~1963)의 경우가 예시하는 바와 같은 로마 가톨릭의 개방은 개신교도들과 가톨릭교도들 사이에 친교와 일치를 가져왔다. 16세기의 적대적인 입장을 공식적으로 철회하지 않은 채 갈등관계에 있던 두 파는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그들의 경계를 넘어서서 만남을 위한 새로운 토대를 찾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현대의 가톨릭 성서 주석가들은 개신교가 은혜와 신앙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과 상당히 비슷한 언어로 이야기한다. 또한 개신교는 교회의 구성요소가 상호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가톨릭의 견해를 새로운 각도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개신교도들은 성서가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전통은 성서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하여 전통에 대한 가톨릭의 견해에 새삼스러운 공감을 표하고 있다. 개신교도들과 동방정교회 그리스도교도들은 대체로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세계교회협의회 같은 기구와 조직체를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20세기 하반기에 이르러 개신교의 상속자들, 특히 철학적 신학자인 파울 틸리히는 '개신교 시대의 종언' 혹은 '개신교 이후' 시대를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물론 그들 모두가 개신교의 일반적인 증언에 대한 신념을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틸리히는 예언자적 비판의 '개신교 원리'가 교회생활을 참되게 표현하는 모든 것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며 세속의 참된 가치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사상가들은 개신교가 그 역사적 뿌리를 두는 유럽에서 문화를 지배하는 경향은 쇠퇴하고 있다고 믿었다.

개신교 신봉자들은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줄곧, 그리고 계몽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점점 더 그들의 사상 세계가 여러 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공업주의와 도시화가 발흥하였던 19세기에, 급변하는 세계는 전통적인 개신교에 의해 형성되었던 사회와 교회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였다. 한편, 개신교의 영토에서 성장한 특정 이데올로기 신봉자들은 개신교의 근본적인 신념들에 도전하였으며, 그중 일부는 스스로 '신을 죽인 사람들'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이었다. 3명의 예를 들어 본다면, 경제이론가 카를 마르크스, 진화론자 찰스 다윈, 철학적 허무주의자 프리드리히 니체 등이다. 개신교 경험에 정통했던 이들은 이를 무기로 사용하여 그들의 견해 가운데 상당 부분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 개신교는 탈식민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세계에서 '외국 선교'에 근거한 팽창을 도모할 수 있는가에 대해 불확실성에 빠져들었다. ()그리스도교 종교들의 가치에 대한 현대적 평가로 인해 많은 개신교도들은 팽창 위주의 개신교로 비그리스도교 종교들을 멸절시키거나 배제하려는 욕망을 포기하고 이들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전체주의 세력들 특히 나치 독일은 개신교가 강조하는 내용 일부를 흡수하여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이를 변화시켰거나 억압에 대해 철저하게 반대하였던 개신교도들을 박해하였다.

현대생활의 매력, 세속화, 신앙의 위기는 개신교를 전반적으로 쇠퇴하게 만들었고 교인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 현상은 19세기 유럽 대륙에서 최초로 나타났으며, 그 다음에는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영국에서 나타났다. 그결과 스칸디나비아와 영국에서처럼 인구의 절대 다수가 개신교 공교회의 세례 교인이라 하더라도, 그 가운데 극소수가 예배에 참석하거나 교회의 계율과 명령에 응답을 보일 뿐이었다. 교회 출석과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지지를 개신교의 재산으로 보는 사람들도 개신교의 교의가 더이상 신앙을 규정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들과 연합하고 있다. 개신교의 분열은 더이상 서구 사람들을 흥분시키지 않으며, 개신교시대의 종언을 공표할 뿐이다.

한편 개신교는 서구 문화의 많은 요소들과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개신교의 영향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다. 개신교는 주기적으로 밀물과 썰물, 재생과 쇠퇴를 경험해왔으며 지금은 보다 오랜 기간의 쇠퇴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도 서구적인 지방주의를 무심코 드러내 전반적인 흐름을 잘못 평가하는 것일 수 있다. 개신교의 쇠퇴를 예견하게 하는 모든 현상에도 불구하고 다음 2가지 긍정적인 세력이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형태의 개신교 세력이다. 오순절운동·복음주의·근본주의가 그것이다. 이 운동들의 선조들은 세상을 부정하고 종파적이며 은둔적이었지만,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주변문화를 나름대로 형성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1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전혀 예견하지 못했던 형태로 일을 하고 있고 또 일을 시작하고 있다.

개신교의 쇠퇴를 보완하는 또 하나의 세력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개신교의 성장이다. 이 새로운 개신교 교회들의 일부는 주로 선교사들이 소개한 형태와 거의 무관한 토착적인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였으며, 개신교의 판에 박힌 서구적 토대를 훨씬 뛰어넘는 증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J. C. Godbey | 姜元敦 참조집필

한국의 개신교

한국 개신교는 몇 가지 경로를 통해서 수용되었다. 우선 중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에 의해서 시도되었다. K.F.A.귀츨라프, A. 윌리엄슨, R.J. 토머스와 같은 선교사들이 개신교의 한국선교를 위해 노력하였지만 이들의 노력이 구체적인 결실을 얻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성서의 번역과 배포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1873년 개신교의 한국선교에 뜻을 두고 만주에 왔던 J. 로스는 이응찬(李應贊)과 서상륜(徐相崙) 등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성서를 번역하게 되었다. 1882년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가 번역된 것을 시작으로 〈예수강셰일쳔 십칠년〉이 번역되었고, 1887에 최초의 한글 〈신약성서〉인 〈예수셩교젼셔〉가 발간되었다. 이들 성서 번역자를 권서인(勸書人)이라고 하였는데, 이들의 활동과 한글 성서를 통한 한국인들의 개신교 수용으로 인하여 1884년 봄에는 황해도 장연군 송천(松川:지금의 소래)에 한국인의 손으로 최초의 교회를 세웠다. 그리하여 한국 개신교는 선교사들이 활동하기 이전에 이미 자신의 위상을 정립해가고 있었다. 성서의 한글 번역에 공헌한 또다른 사람은 개화파 지식인인 이수정(李樹廷)이다. 1882년 수신사 박영효 일행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1883년 입교한 후, 성서 번역을 시작하여 1885년 요코하마[橫浜]에서 〈마가의 전복음셔언〉을 출간하였다. 바로 이〈마가의 복음서〉를 가지고 H.G. 언더우드는 H.G. 아펜젤러와 함께 1885 4 5일 제물포에 도착하였다. 북장로회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북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한국에 온 이후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도착하여 각기 활동을 시작하였다. 따라서 장로교의 경우 미국의 남장로회와 북장로회, 캐나다 장로회, 오스트레일리아 장로회 등 4개 선교부에서, 감리교의 경우 미국의 남감리회와 북감리회의 2개 선교부에서, 선교활동을 추진하였다. 한편 침례교는1889, 성공회는 1891, 안식교회는 1904, 성결교는 1907, 구세군은 1908년에 각각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한국 개신교의 선교정책은 각각의 선교부 특성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감리교는 주로 교육과 부녀사업에 치중하였으며, 장로교는 교회의 토착과 자립원칙의 선교정책을 수행했다. 장로교의 선교정책은 '네비어스 선교정책'(Nevius Method)으로 알려졌다.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자진전도(自進傳道 Self-Propagation)·자력운영(自力運營 Self-Support)·자주치리(自主治理 Self-Government) 등의 3대 이념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밖에도 구세군은 자선과 사회사업에 치중하였고, 침례교는 만주와 시베리아 선교에 관심을 쏟았다. 교파에 따른 독특한 선교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국 개신교의 선교전략은 몇 가지 공통점을 보이기도 하였다. 개신교 선교부는 적극적인 선교활동에 앞서 교육과 의료사업을 통한 간접적인 선교활동에 상당한 노력을 쏟았다. 한국의 개신교는 선교활동의 초기 단계에서 같은 그리스도교이지만 개신교가 천주교(天主敎)와는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키기도 하였다. 이는 한국 천주교가 전교 초기부터 심한 교난(敎難)을 겪었음을 감안하여 처음부터 충돌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선교사들이 한국 개신교의 초기 성장에 끼친 공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교사들의 기록 속에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채 언급되고 있는 수많은 전도인·권서인·전도부인 등 초기 개척자들의 영향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초기 개척자들에 의하여 그 기틀이 형성되어간 초기 한국 개신교의 가장 큰 과제는 민족의 자주독립을 지키는 것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목표를 가지고 입교하였으며, 교회와 기독교계 학교는 민족운동의 산실이었다. 또한 1895 11월 춘생문사건(春生門事件) 1896 9월 고종탄신일 축하예배 등을 통하여 왕실에 대한 충성을 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개신교의 민족주의적 성향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였다. 일제는 한국 개신교를 침략의 걸림돌로 지목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탄압을 가하였다. 일제의 탄압과 국가의 비운에 직면한 한국 개신교는 물리적인 힘의 저항보다는 신앙적 차원에서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1907 1월 평양에서 시작된 대부흥운동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같은 해 1 6일부터 10여 일간 평양의 장대현교회(章臺峴敎會)에서 행한 사경회(査經會) 기간 중 절정에 달한 이 운동은 1903년 이후 계속되어 온 선교사들의 기도회 모임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 운동은 원산의 전계은(全啓殷), 정춘수(鄭春洙), R.A. 하디, 평양의 길선주(吉善宙) 등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이 부흥운동은 몇 가지 점에서 한국 개신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첫째, 한국 개신교가 신앙에 대한 체험적인 이해를 하게 되었다. 둘째, 한국 개신교의 공동체의식이 구체화되었다. 특히 이 부흥운동을 통하여 한국인 신자와 선교사 간의 이해가 크게 증진되었다. 셋째, 부흥사경회를 통해 개개인의 죄에 대한 고백은 한국 개신교와 교인의 도덕성 회복에 기여하였다. 마지막으로 대부흥운동을 계기로 성서공부와 기도가 더욱 고양되어 이와 같은 운동은 교세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1905년에는 321개였던 교회가 1907년에는 642개로 늘어났으며, 9,761명이었던 세례교인의 숫자 또한 1 8,964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대부흥운동이 끼친 부정적인 영향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운동이 끼친 가장 큰 역기능으로는 한국 개신교의 비정치화(非政治化)와 몰역사성의 문제로 당시 한민족의 아픔을 종교적 차원에서 희석시켰다는 한계를 지닌 것이었다.

선교사들에 의하여 주도된 한국 개신교의 비정치화 경향과는 달리 일부 한국 개신교인들은 초기부터 계속되어온 민족운동의 전통을 지속시켜 나갔다. 이 시기의 한국 개신교의 민족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105인 사건'이었는데 이로 인해 윤치호(尹致昊)·이승훈(李昇薰) 등 개신교계와 신민회(新民會) 인사들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일시적으로 교세가 위축되기도 했지만, 많은 일반 개신교인이 고초를 겪으면서 민족의식을 더욱 교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개신교인의 민족의식 고양은 때로 무장투쟁운동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는 안중근(安重根)·이재명(李在明)·장인환(張仁煥)·안명근(安明根)·이동휘(李東輝)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개신교의 독립운동은 중국, 러시아, 아메리카 대륙 등 해외에서도 전개되었다.

한편 3·1운동을 계기로 다른 독립운동세력과 연대하여 적극적인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3·1운동에 있어서 한국의 종교계가 차지했던 비중은 상당했다. 그중에서도 천도교와 그리스도교가 보다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일제 헌병대의 자료에 의하면 1919년말까지의 3·1운동 관계 피검자 1 9,523명 가운데 2,297명이 천도교인이었으며. 3,426명이 그리스도교인들이었다. 교인의 참여 비율이 높았던 만큼 교회에 대한 일제의 탄압 또한 극심했다. 일제의 물리적 탄압이 교회의 양적인 피해와 기능의 마비를 가져왔다면, 일제의 회유책은 교회의 질적인 변화와 정신적 피해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3·1운동 이후 한국 개신교의 신앙형태는 크게 2가지 흐름으로 전개되었다. 김익두(金益斗)·길선주·이용도(李龍道)와 같은 부흥운동가들에 의해 주도된 초월적·신비주의적 신앙형태와, 적극적인 항일투쟁보다는 민족계몽운동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역량을 강화한다는 현실적 계몽주의 신앙형태가 그것이었다. 한국 개신교의 사회참여 전통은 사회와 농촌운동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1925년 장감연합협의회(長監聯合協議會)는 협의회 안에 사회부를 설치하여 사회운동에 착수했다. 농촌운동은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와 조선여자기독교청년연합회(YWCA)를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1929년 이후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YMCA·YWCA의 연합으로 27개 지역에 농촌강습소가 개설되었다. 이밖에도 1923년 결성된 기독교여자절제회는 금주단연운동(禁酒斷煙運動)과 폐창운동(廢娼運動)을 벌였으며, 구세군은 자선사업을 벌였다. 1920년대 이후의 사회적 변화는 한국 개신교의 연합운동 필요성을 부각시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교회의 사회대응 다변화를 가져와 교회 안에서 분파운동이 나타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김교신(金敎臣)을 중심으로 한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 이용도를 중심으로 한 신비주의, 최태용(崔泰瑢)을 중심으로 한 복음교회 등이었다.

3·1운동 직후 '문화정치'를 표방하여 표면적으로나마 완화된 정책을 보였던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강압적 통치정책으로 선회했다. 일제의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은 한국 개신교에 커다란 위기를 가져다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신사참배의 강요였다. 일제의 강압에 굴복한 한국 개신교는 신사참배가 국민의례의 형식이라는 명분 아래 각 교단별로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교단적 차원의 이러한 굴복과는 달리 몇몇 교역자들과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신사참배거부운동을 벌였다. 신사참배거부운동을 주도한 상징적 인물로는 주기철(朱基徹) 목사가 있었다. 그가 시무한 산정현교회는 신사참배거부운동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신사참배거부운동의 결과 신학교가 폐쇄되고 수많은 교인들이 투옥되었으며, 50여 명의 교역자들이 순교했다. 일제통치 말기에 접어들면서 교회에 대한 탄압은 더욱 극심해졌다. 1942년 언더우드를 마지막으로 선교사들은 추방당했으며, 조선예수연합공의회가 해산당했다. 1940년에는 침례교가, 1943년에는 안식교와 성결교가 폐쇄되는 등 한국 개신교는 실질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마침내 한국 개신교는 1945 7 19일 일제의 일본기독교조선교단으로 흡수되고 말았다.

8·15해방 직후 한국 개신교는 일제 말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교회의 재건을 도모했다. 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려는 이러한 움직임은 6·25전쟁으로 다시금 위기에 직면했다. 민족분열의 위기상황 속에서 한국 개신교는 교회분열이라는 한계를 노출했다. 6·25전쟁중인 1951년 장로교의 고려파(高麗派), 1953년에는 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장로회가 분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감리교는 6·25전쟁 휴전 직후인 1954년 감독 선출을 둘러싸고 총리원파와 호헌파가 분립했다. 이와 같은 교회의 분열은 전통교회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켜 소종파운동이 일어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박태선(朴泰善)이 주도한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천부교로 개칭)와 문선명(文善明)이 주도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世界基督敎統一神靈協會), 나운몽(羅運夢)의 용문산기도원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교회의 분열과 소종파운동, 그리고 1960년대 이후의 사회적·정치적 변화에 직면한 한국 개신교는 심각한 자기반성을 해야 했다. 한국 개신교는 분열극복의 신학을 정립하면서 에큐메니컬 운동을 벌였다. 에큐메니컬 운동, 즉 교회일치운동은 몇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1966 3 8일 장로교의 초동교회(草洞敎會)에서 처음으로 천주교와 개신교의 합동예배가 있었다. 1971년 부활절을 기하여 천주교와 개신교가 공동번역한 〈신약성서〉가 출간되었으며, 1977년 〈공동번역성서〉가 출간되었다. 교회일치운동은 신학교육을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1964 4월 연합기관의 성격을 띤 연합신학대학원이 연세대학교에 설립되었다. 이와 같은 교회일치운동의 분위기 속에서 한국 개신교는 또 한번의 분열을 경험했다.



교회가 바르게 세워지기 위한 필수 전제 (엡 2:20-22)

 

 

교회를 아는 지식의 중요성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특별한 각성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유행을 따라서 사는 안일한 태도로 지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법도에 따라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경륜을 이해할 리 만무이고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다거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원칙이란 것이 이런 것인데,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인 우리가 이런 사람들과 어울려서 희희낙락하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생활태도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이 교회가 이 세상 가운에서 특별히 구별되어 있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피값으로 사신 가운데 이렇게 교회라고 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일원으로 묶으시고, 교회로 하여금 이 세상 속에서 필요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사명을 말하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구원의 기관 노릇을 한다고 하는 이 사실이 가장 크고도 중요한 사명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 속에 세우신 유일한 구원의 기관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이외에 다른 구원의 기관을 이 땅에 내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교회라고 할 때, 교회는 그처럼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 개개인의 인격들을 통해서 그 활동을 진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들 자신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이 교회의 한 분자로서 지금 이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펑범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크신 경륜을 수행하는 자로서 살아갑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분은 참으로 값진 것이고, 이런 의식 속에서 각성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삶인 것이요, 그리고 이와 같은 믿음의 결국에 우리는 다 영생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베드로 사도가 말했습니다(1:9).

 

우리가 믿음의 결국인 영혼의 구원의 완성에 안전하게 들어가려면, 지금이라 불리우는 이 시점에서부터 이미 이 구원을 풍성하게 누리는 자로서 서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구원의 기관 노릇을 적극적으로 감당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구원의 기관 노릇을 적극적으로 감당하기 위해서 우선 필요시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무엇에 앞서 교회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아는 일입니다. 성경이 교회를 무엇이라고 가르치는가, 열심히 연구하고 충분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교회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줄기차게 말하고 있고, 이때 세상은 어떤 곳인가에 대해서도 말하며, 이러한 세상 가운데 처해 있는 우리 교회의 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말해줍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교회로 하여금 정당한 세상관을 갖도록 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이 세상관을 올바르게 정립하고, 여기에 비추어서 세상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 빛과 소금의 역할까지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가리켜 비로소 ‘믿음 안에서 사는 삶이다’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관을 정립하는 일이 성경을 하루 이틀 읽고 연구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이것은 삶의 다양한 체험과 경험 속에서 해석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책상 앞에 앉아서 성경을 읽고 외우는 식의 단순한 지적인 학습 방법만으로는 수립하기가 어렵습니다. 성경에서 깨달아진 어떤 하나의 이론은 삶의 경험 속에서 더더욱 견고하게 확증되어지고, 이것이 다시 다음 단계의 확증으로 발전하는 등등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적으로 거치면서 마침내 성도가 자연스럽게 발휘하는 믿음의 삶의 한 양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방식으로 배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지식을 가리켜 체험적 지식이라, 혹은 살아 있는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참으로 많이 하고 나름대로 오래했을지라도, 가령 교회에 대해서 말해야 할 때에, ‘교회란 이런 이런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평소에 교회를 배우고 경험함에 있어서 순전히 지식적인 방법으로만 학습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입시를 앞둔 수험생이 밤잠을 설치면서 각종 수험 예상 문제들을 암송하듯이 하는 그런 방식을 취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했을지라도 입시를 앞둔 수험생이 보여주는 정도의 뼈를 깎는 듯한 노력과 각오로 임했다면, 결과는 좀더 나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정도의 각오와 노력으로 성경을 연구함으로 교회가 무엇인가를 배우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울 것입니다. 신학자나 목사 혹은 기타 성경연구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사람인 경우에는 혹시 이런 정도의 열심과 각오로 성경을 연구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원칙적으로 성경 지식은 머리 속의 회전만으로는 온전히 깨달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지식이 온전한 것이 되려면 경험과 체험이 임상적으로 뒤따라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교회를 아는 지식에 있어서만큼은 정확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역사를 주권적으로 집행해 나가시는, 이때 최고로 관심을 기울이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교회를 내시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하셨습니다. 아들을 희생하심으로 교회를 이 땅에 내셨고, 교회로 하여금 아들의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의 관심의 최고 절정체요, 하나님께서 세상 역사를 주관하심에 있어서 기준으로 삼으시는 중심 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를 중심으로 세상 만물의 모든 것들을 경영하십니다. 그래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사도 바울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엡 1:11). 또 에베소서 1장 23절에서는 말씀하시기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회복한 종교 개혁자들의 수고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어떤 형식을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물론 이 형식이라는 것은 또한 반드시 그 내용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용이 없이 겉으로만 형식을 갖추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 교회의 형식이란 것은 종교 개혁자들에 의해서 비로소 온전하게 수립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교회의 형식이란 것이 수립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는 곧 로마 카톨릭에 의해서 하나님의 참교회가 온갖 미신과 거짓으로 더럽혀졌던 시기를 가리킵니다. 이 기간이 얼마 동안이냐 하면, 대략 A.D 4세기 말경부터 시작하여 종교개혁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던 때인 A.D 15-6세기경까지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교회의 정체성이란 것이 밖으로 알려지거나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로마 카톨릭이라고 하는 이름 아래 움직이는 거대한 조직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물론 이 거대한 조직은 자기네를 가리켜 스스로 교회라고 불렀지만, 과연 성경적으로 어떤 뒷받침을 받아서 그렇게 교회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 종교개혁이라고 하는 반대 세력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까닭에 그렇게 말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후 성경에 눈을 뜬 사람들에 의해서 로마 교회가 사실상 거짓 교회인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었고, 성경에 눈을 뜬 사람들의 각성은 이후 점차적으로 개혁운동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말틴 루터와 같은 사람은 종교개혁의 불길을 당긴 사람입니다. 그러나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최초의 사람인 것은 아니고, 그 이전에도 이름 없이 수고하고 죽어간 이름 없는 종교개혁자들이 있었습니다. 가령 오늘날의 체코슬로바키아에 해당하는 당시 보헤미야 사람 존 후스는 로마 교회를 대항하여 종교 개혁을 부르짖던 중에 마침내 로마 교회 당국자들에게 붙잡혀서 화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종교개혁의 불길을 여전히 지펴나가셨습니다. 그래서 이후 존 후스의 사상을 받들고 이를 널리 전파하는 사람들이 일어났는데, 이들은 다볼파(Taborites) 혹은 모라비안 형제들(the Moreviav Brethren)로 불리우면서, 로마 교회를 대항해서 종교개혁의 물결을 조성해 나갔습니다. 또 존 후스가 그처럼 로마 교회가 거짓된 교회인 사실을 깨닫고 눈을 뜨게 된 데에는 그의 시대 바로 앞에서 이루어진 존 위클립의 활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존 위클립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최초의 사람인데, 그가 이런 활약을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접할 수 있었고, 따라서 로마 교회가 얼마나 거짓된 종교였는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존 후스도 이 위클립의 영어 성경 때문에 참 교회의 실상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종교 개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부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서서히 불씨를 지피셨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마침내 말틴 루터에 이르러 이것이 하나의 거대한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과 로마 교회와의 투쟁이 일어난 이 사실로 말미암아 자연히 교회의 정체성 문제가 거론되게 되었습니다. 개혁자들은 로마 교회의 거짓된 교회를 타파하면서 ‘참 교회의 실상이란 이런 이런 것이다’라고 제시했던 것입니다. 물론 종교개혁자들의 이런 이론들은 철두철미하게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이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가르치는 것들이 바로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내용들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이러한 내용들에 입각하여 움직이게 되면 여기에서 자연히 형식이란 것이 나오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교회의 형식이란 것은 우리가 교회를 논하게 될 때에 우선적으로 논하여야 하는 중요한 부분으로 대두됩니다. 적어도 어느 한 지역에 존재하는 지역 교회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 교회로 발견되어지려면 바로 이 형식을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형식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용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내용은 없이 겉으로 형식만을 갖추게 되면 안 되는 것이요, 또 사실상 내용이 없는 한에는 형식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각처에 많은 교회들이 지역 교회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어떤 사람이 하늘에서 서울 하늘을 내려다보니까, 서울이 온통 빨간 십자가 네온사인들로 물결을 이루더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런 말도 80년대에 회자되던 것이고, 지금 우리는 96년도 말기의 시대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마만큼 서울에는 교회들이 많이 서 있습니다. 서울 장안 구석구석에 교회들이 들어가 있지 않은 곳이 없고, 심지어는 한 건물에 두 세 개의 교회 간판이 걸려 있기까지 합니다. 처음에 교회를 개척하는 사람들은 몫이 좋은 곳을 찾기 위하여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그야말로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을 찾기 위하여 서울 장안을 샅샅이 뒤지고 다닙니다. 나름대로 심사숙고한 끝에 건물을 빌리고, 강대상과 의자 등등의 기구들을 사서 배치합니다. 좀더 재력이 있는 사람은 내부 치장에 신경을 더 써서 강대상 뒤에 휘장도 드리우고, 예배당 안을 이런 저런 모양으로 꾸미기 위하여 돈을 씁니다. 큰 교단에 속해 있는 개척자인 경우에는 피아노도 면세로 들여놓고, 마이크도 음질이 좋은 것으로 골라서 설치합니다. 예배당 유리창에는 ‘무슨 무슨 교회’라는 이름을 아름답게 새긴 조각을 붙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좀더 세심한 개척자는 그럴듯한 성구나 교회 표어들을 써서 여기 저기에 붙여놓습니다. 그리고는 주일날이 되면 예배를 진행합니다. 이때 소위 말하는 개척 멤버들조차 없이 이렇게 교회를 시작한 경우에는,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만이 이 날 예배의 참석자들입니다. 이후 사람들을 끌어오기 위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전도합니다. 다소간 시일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후 사람은 한 사람 두 사람 불어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런 과정 속에서도 여전히 문제는 나타납니다. 그것을 교회를 빨리 부흥시키려고 하는 욕구에 사로잡힌 나머지, 교회에 가입하는 사람들의 신앙고백을 정당하게 점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속한 교단이 정한 최소한의 규례와 절차조차도 무시하고, 아무에게나 함부로 세례를 베푸는 일이 있게 되고, 순전히 그 사람을 붙잡아 놓으려는 목적으로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직분을 남발합니다.

 

이상 살펴본 사실은 오늘날 교회가 처음으로 개척될 때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기존의 한 큰 교회가 순전히 복음 전도를 위하여 다른 지역에 교회를 분가시키는 방식으로 새로운 교회를 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앞서 살펴본 방식으로 새로운 교회를 교회가 개척되고 있는 실상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이런 식으로 개척되는 교회들이 교회의 형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십자가 네온사인이나 교회 간판을 통하여 이름을 내는 등등의 것들은 교회의 형식이 전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교회가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내용이요, 혹은 형식이라고, 성경은 그 어디에서도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필자는 지금 현대적인 문화의 상황하에서 이런 것들이 교회에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과 같이 문화가 고급으로 발달해 있는 현대의 실상 속에서 교회 역시 이런 것들을 필요로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교회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필수 요소들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제아무리 다양하고 고급스럽게 갖춘다 할지라도 결코 교회의 속성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이런 것들이 교회의 본질적인 요소인양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처음에 개척하려고 할 때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항상 우선 순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다시금 저 옛날 로마 교회가 지배했던 암흑기를 답습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내용이나 형식이 전혀 비성경적인 것에 근거하여 ‘이것이 교회이다’라고 주장하는 결과를 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구분하는 시금석은 교회의 형식으로부터 나옵니다. 가령 우리 주위에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이런 저런 종류의 기독교 선교 단체들을 보게 되는데, 이들은 그야말로 선교 단체일 뿐이지 교회는 아닙니다. 때로는 복음을 섬김에 있어서 선교 단체들이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을 봅니다. 아직까지 문명의 혜택을 잘 받지 못하는 제 3세계의 사람들을 위하여 성경을 번역해서 원주민들에게 보급하기도 하고, 또한 교회가 세워질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선교 단체를 가리켜서 교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선교 단체의 경우 성경에서 교회를 정의할 때에 가르치고 있는 내용들이나 혹은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일 어떤 교회가 있어서 자기네를 가리켜 ‘우리는 교회이다’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교회의 내용이 없다면, 그래서 교회의 형식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는 사실상 하나의 기독교적 종교 단체로 평가될 뿐이지, 결코 교회라고 말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를 세운다거나 또는 교회를 이루어 나간다고 할 때에는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각별히 주의해서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조건으로서의 정통성

 

교회가 교회도기 위해서는 형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교회를 개혁할 때에 이 형식 문제를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이들이 세운 교회의 형식이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입니다. 첫 번째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선포하는 것이요, 두 번째로는 성례를 신실하게 집행하는 것이고, 세 번째로는 권징을 능력있게 시행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사실이 있어야만이 교회가 될 수 있다고 하는 말을 이미 오래 전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는 이 이론이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있는 그대로 작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미 오래 전부터의 일입니다. 교회 안에 권징이 필요한 이유는, 이것이 있어야만이 교회는 교리를 순수하게 보존할 수 있고, 또 일정한 규율과 질서 체계를 유지함으로 교회가 스스로 혼란 가운데로 빠져들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일들을 미연에 방지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거듭난 사람에게만 세례를 베풀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찬에 순결하게 참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선포되는 일은 더 더욱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순수한 선포를 통하여서만이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비로소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며(고전 1:18), 또 이 하나님의 말씀은 거듭난 자들의 삶을 잘 지도하는 가운데 구원의 항구로 안착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벧전 1:23 2:2).

 

그런데 사실 현실적인 상황을 보건대,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명분 아래 이런 저런 세상적인 철학이나 윤리 도덕 등이 가르쳐지기도 하고, 또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선포하기는 하되, 그 사상이나 이념을 충분하게 드러내지 못하거나 심하면 왜곡시키기까지 하는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말씀을 듣는 회중들까지도 이런 것을 잘 분별하지 못하는 가운데, 순전히 이야기주의로 빠져버리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무엇보다 첫 번째로는 말씀을 전하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선포할 때에 일어나게 될 하나님의 역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순전하게 선포하는 이것이 어떻게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겠는가하는 회의를 스스로 품는 설교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는 까닭에 복음을 고지식하게 선포하는 일을 미련하다고 보고는 대신에 여러 가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세상적인 철학이나 기타 이론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이런 것을 준엄하게 타파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전하지 않는 데서부터 교회의 타락은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신앙 생활의 기반인 법인데, 바로 이 말씀을 가볍게 여긴다거나 심지어 변개시키기까지 하면서, 그러면서도 교회를 세우고 부흥시킨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사실상의 이율배반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논리와 행동하에서 이루어지는 교회의 성장이란 것은, 실질에 있어서는 전혀 교회가 아니요, 교회의 타락이라고 하는 결과만을 낳을 뿐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가리켜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딤전 3:15). 이 말씀을 보면,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과 얼마나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는가 하는 사실이 잘 나타납니다. 여기서 ‘기둥과 터’라는 것은, 진리를 기둥(pillar) 같이, 기념비(monument) 같이 높이 세우고 그 아래는 좌대를 돌로 쌓아 올렸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진리의 기둥이라는 기념비와 그 좌대가 되는 것이다 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진리는 두말할 나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여 교회는 말씀을 높이 들어서 ‘이 기념비를 보시오’라고 하면서 남들에게 자신을 내보이는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높이 들고 서야 하며, 바로 이것이 교회의 성립근거요 또한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교회는 말씀의 수호자요, 선양자입니다. 이와 같은 방법을 떠나서는 달리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은혜의 방도이다, 혹은 은혜의 수단(means of grace)이다 라고 하는 이 사실은 철칙과도 같은 원칙이요, 영원토록 불변하는 진리인 것이며, 하늘이 꺼지고 바다가 잠기며 태산이 무너져도 변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교회를 개혁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한 선포를 그 첫째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교회를 진단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교회를 건설했습니다. 개혁자들이 이렇게 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말씀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7).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 당시의 어떤 교역자 등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되이 전한다거나 또는 부분적으로 전하고, 혹은 사람의 말을 가하고 하는 등등의 일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보면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라는 말씀과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라는 말씀은 강한 대조를 이룹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전하는 일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단호히 선포하거니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순순하게 선포되는 곳에 하나님의 교회는 존재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서 성례가 신실하게 시행되어야 하고, 또한 권징이 집행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의 형식이요, 곧 교회의 표식인 것입니다. 이를 영어로는 ‘mark of the church’라고 합니다. 이들 세 가지 형식은 교회와 교회가 아닌 것들을 구별해 주는 시금석입니다. 이 세 가지 형식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됩니다. 이 세 가지 형식이 균등하게 작용하게 되면, 이것이 바로 교회의 형식을 구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형식은 어떤 임의의 기독교 단체를 평가할 때, 이것이 과연 교회인가, 아닌가 하는 것으로 판정해주는 시금석 역할을 합니다. (이 세 가지 형식의 요소들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설명은 별도로 주제를 정하여 다루기도 합니다.) 교회가 새롭게 설립되거나 개척되는 처음 단계부터 이 세 가지 형식이 중심에 와야 합니다. 이 세 가지 형식이 없는 한에는 제아무리 빨간 십자가 네온사인을 하늘 높이 치켜올리고, 그럴듯한 값비싼 가구들로 교회당을 장식한다 할지라도, 결코 교회라고는 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만일 교회가 이런 상태에 있게 되면 이는 하나의 기독교적인 종교 단체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 정당한 평가일 것입니다. 교회는 처음에 세워지는 첫 출발의 시작 단계부터 이와 같은 형식을 반드시 갖추어야 하고, 만일 부득이 이런 것이 없이 교회로서 출발했다고 하면, 이후로는 이것을 자기네 교회가 성취해야 할 최우선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정통성의 문제

 

우리는 여기서 정통성의 문제와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어떤 특정한 지역에 개척되거나 새롭게 세워지는 처음 단계부터 이와 같은 교회의 표식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 바로 이 정통성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정통성이란, 교회를 세우는 자의 자격 문제를 거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교회란 아무라고 열심히 있기만 하면, 그 열심 있는 사람이 세우면 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이런 생각에 의해서 현재에도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워지는 데 있어서는 세우는 자의 정통성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기서 정통성은 다시금 하나님의 재가라고 하는 명제와 연결되어집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먼저 부르심을 입고, 그리고 보내심을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물론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라면 나름대로 이것을 주장할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와 변명으로서 그처럼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서의 정당성을 하나님께로 연결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요, 문제는 객관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객관성은 다름 아닌 정통성입니다. 그리고 이 정통성 혹은 객관성은 교회를 세우는 사람의 자격과도 연결되어집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먼저 그렇게 할 만한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이 자격은 하나님의 소명과 사명을 받는 것을 가리키고, 이것이 자기 혼자만의 주관성을 가지면 안되고, 자타가 시비를 따질 수 없을 만큼의 객관성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의 이 논증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려면 이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2:20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 말씀에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부분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하는 곳입니다. 바울은 지금 교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말할 때에,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진다’고 합니다. 여기서 ‘터’란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진리의 말씀을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을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갔습니다. 지금 이 단계에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어떤 사람들에게 맡기셨다는 사실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말씀을 맡기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신 가운데 당신의 말씀을 맡기사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세우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도록 세우시는 사람이 없이는 교회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것입니다.

 

이런 일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부르심을 입었던 초대교회 당시의 때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려 함에 있어서 당신의 말씀을 맡을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르심을 입은 사람이 나서서 다시금 앞서 이미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의 전통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교회를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정통성이란 것이 성립되어집니다. 또한 오늘날에는 사도들의 시대와는 달리 이미 성경의 기록이 완성되었고, 또 이와 더불어 교회의 창설이 끝난 관계로, 그리고 다름 아닌 교회를 세우는 일에로 부르심을 받는다는 성격상, 이제 누군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될 때에는, 반드시 그 자신이 이미 정통적인 교회원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전제로 하게 됩니다. 교회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고, 또 아는 바 그 진리에 이미 자기 자신을 실제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사람이어야만이, 이후 교회란 이런 이런 것이다 라고 하면서 남들을 가르치고 인도함으로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정통성에 대한 해석입니다. 자기 자신이 교회란 이런 이런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깨닫는 대로 친히 자신을 적용해 나가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교회의 정체성을 바르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이론대로 자신은 물론이요 함께 인도함을 받는 다른 성도들을 목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교회가 세워짐에 있어서 이 정통성의 문제는 중요한 것이고, 이것이 없이는 교회는 세워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보통 생각할 때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여럿이 모여서 ‘이제부터 우리가 교회를 이루어 나가자’라고 합의하고, 그렇게 밀고 나가기만 하면, 그때부터 교회란 것이 존재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종교개혁자들이 생명을 걸고서까지 사수해 나온 진리의 법칙에 크게 위배됩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사람 편에서 먼저 모이는 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편에서 먼저 택하신 당신의 백성들을 부르심으로써 되어지는 일입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해두어야 합니다. 사람들 편에서 스스로 먼저 모이는 데서 교회가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당신의 백성을 불러모으심으로 비로소 교회가 성립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이 일이 어떻게 나타나느냐 하면, 하나님 당신께서 세우신 말씀의 종들을 통하여 말씀을 선포하시는 모습을 띄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말씀의 순수한 전파’라고 하는 이것이 교회의 정체성 가운데 첫 번째 자리에 놓이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첫째로는 말씀의 본질, 곧 진리성과 관련한 것이고, 둘째로는 말씀을 전파하는 자의 자격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사실은 피차 분리되지 않습니다. 말씀을 순수하게 선포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사실상 누구나가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면 누구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자격이 있고, 또 그렇게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입네 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이는 참으로 비참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런 보편적인 차원에서 자격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특별한 의미, 그러니까 교회를 세우는 일과 관련하여, 교회가 성립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로 하는 말씀을 순수한 전파 문제와 관련하여,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말씀의 순수한 전파의 당위성 문제를 떠나서 교회의 본질 문제를 다룬 적이 개혁파 교회권에서는 단 한번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의 방도로서 작용하고 역사하는 가장 적합한 곳은 교회의 강단입니다. 이때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입은 사람이어야만이 이 강단에 설 수 있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사람만이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할 수 있고, 또한 성례를 집행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고 충분하게 드러내어 선포할 수 있으려면, 그마만큼 필요 적절한 훈련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필요 적절한 훈련에는 성경 지식을 쌓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실제로 한 사람의 교회원이 되어, 성경으로서 깨닫고 배우게 되는 교회의 이론을 몸으로서 적용해 나가는 과정까지 수반됩니다. 사람이 이러한 훈련을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신앙고백이 확실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사역을 통하여 자신의 죄값을 사유하셨음을 확실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자기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것을 통하여 죄를 이기는 능력이 자기 안에서 역사하는 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신앙고백의 바탕 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깨닫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알고, 그렇게 깨달은 이론대로 자신을 적용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양육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필요 적절하게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필요 적절한 훈련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고, 이런 사람만이 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을 보면, 자신이 어느 날 작심을 하고 산 속에 들어가서 밥을 굶어가면서 소위 말하는 금식 기도에 힘썼더니, 갑자기 무슨 신기한 기운이 자기를 사로잡았는데, 이후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항상 문제를 일으켜서 마침내 그들이 발휘한 열심만큼이나 그렇게 깊게 교회를 색욕거리로 변질시키게 됩니다. 진리를 아는 능력이 없고, 그것을 진지하게 다루는 신중함이 없고서야 어떻게 교회의 형식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말씀의 순수한 전파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이내 삯군 설교자로 변질되기 마련이고,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입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하면서 달음박질치며 달려나갔다는 데서 찾아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사람을 이런 식으로 부르신다거나 훈련시키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우리의 능력이 심히 미미하다 할지라도 태산과도 같은 주의 일일지라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부르심을 받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자기 속에 교회를 아는 지식이 넘쳐나는 이것이 바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서 공통적으로 찾아지는 첫 번째 요소입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주님의 나라를 사모함이 넘쳐나고, 교회를 아는 지식이 머리 속에 가득차 있지 않는 한에는 어느 누구도 주님의 부르심을 입었다고 나서거나 주장할 수 없는 법입니다. 사람이란 자기가 아는 만큼만 이야기할 수 있고, 또한 행동할 수 있는 존재인데,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아는 지식도 없고 체험도 없는 사람이고서야 어떻게 교회를 논하고 세워 나갈 수 있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예로부터 개혁파 교회는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결단코 강단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훈련받지 못한 사람이 강단에 서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이 규례는 개혁파 교회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런 원리가 간단없이 무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훈련받지 못한 사람, 곧 정통성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가 마구잡이로 세워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까닭에 이들에 의해서 교회는 여지없이 손상을 입게 됩니다. 이들은 순전히 열심 하나만을 내세우면서 교회를 세우는 일에 뛰어듭니다. 따라서 이들이 가진 교회상이란 것은, 그야말로 허무맹랑하고 추상적이기 그지없으며, 지극히 유아적이어서 유치하기만 합니다. 이들은 교회의 형식 혹은 표식을 이루어 내려는 일에는 관심조차 없고,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크게 건물을 짓고 여기에다가 사람들을 그득히 채우는 일에만 죽기살기로 뛰어다닙니다. 교회를 처음 개척하는 초기 때부터, 주보를 화려하게 만들고 교회 이름을 새긴 간판을 거창하게 내어단다거나 십자가 종탑을 높이 세우는 일 등등의 것에만 신경을 쓰는 것을 보건대, 그 이후 나아가게 될 발전과 결말이란 것이 이렇게 나타날 것을 이미 지금부터 충분히 예상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이런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까닭에 중세기에 시작된 종교 개혁은 사실상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각성함으로 이것을 완성하는 일에 초석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빠져버린 지난 날의 과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교회는 자기에게 교회를 세우려는 마음이 있다고 해서 아무나 함부로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려는 사람은 최소한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양하고도 깊이 있게 아는 지식을 갖추어야 하고, 이것이 교회의 실질적인 내용으로 자리잡음으로 교회의 형식이 되도록 하는 일을 생명처럼 여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한 같은 마음으로 거듭난 증거가 있는 사람이 최소한 몇몇은 되어서 함께 동일한 각성 하에서 움직일 수 있어야 비로소 교회다운 교회가 세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네만 믿는 신조도 뚜렷하게 가지고 있고, 교회적인 질서와 규범도 있어서 거기에 확고히 서 나갈 때에 비로소 교회라는 것이 성립됩니다. 그렇지 않고 교회관이 투철하지 못한 어떤 한 사람이 순전히 열심하나만으로 밀어붙여서 건물을 얻고 거기에 교회 간판을 내어 거는 식으로도 교회란 것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아주 피상적인 고백만을 하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이고 합쳐가지고 적당히 성경공부를 하다가 기회를 살려 목사를 모셔오곤 하는 식으로도 교회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세워지는 교회들의 경우 신학적 결점을 치명적으로 가지게 되는데, 이것은 교회의 표식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데서부터 잘 드러나게 됩니다. 내용이 없으니 형식이 나올 수 없는 것이고, 교회를 세워나가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신학적 지식이 없으니, 내용을 구성해 나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신앙고백의 일치성도 없고, 신앙의 도리들에 있어서 논리적인 일관성도 없는 까닭에 객관적으로 드러내보일만한 교회다운 형식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교회 상황을 보건대 종교개혁기의 상황보다도 더 어두운 면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지금 이 시대는 당시와도 같이 개혁을 한다는 이유 때문에 온갖 박해를 당한다거나 심지어 생명까지 빼앗기는 환난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건강하게 건설해 나가는 일에 전념하는 주의 종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심히도 비극적인 상황입니다. 종교개혁 당시에는 오직 로마 교회 하나만이 개혁의 대상으로 부각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개혁자들은 로마 교회의 거짓된 것에만 맞서서 투쟁하면 그만이었습니다. 혹은 영국과 같은 경우, 헨리 8세가 새롭게 시작한 성공회와 맞서서 개혁을 하는 것이 청교도들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저마다 개혁파 교회임을 주장하고 내세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아니한 것으로 가득차 있는 까닭에 상황이 심히 어려워져버렸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름 우리는 온통 비스므레하고 유사한 것들에 둘러 싸여 있는 까닭에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하에 놓여진 것입니다.

 

상황이 왜 이렇게 처참하게 되었는가 하면, 한국 교회가 그 동안 지나치게 물량적인 부흥에 치중하느라고 자체에 규정된 교회 개척의 원리들을 소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부흥과 선의의 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각 교단마다 자기네가 스스로 정한 교회법조차도 무시하면서 마구잡이로 교회를 개척해 나왔습니다. 각기 개개 교단마다 약간의 차이점들은 있겠으나, 대개의 경우 교단들은 교회를 개척하는 일과 관련하여 지키고 따라야 할 질서를 규정해 놓았습니다. 이것을 교단의 헌법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신앙의 도리와 관련된 모든 것을 규정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가령 교회가 한 사람의 구도자에게 세례를 베풀 때에 따라야 할 일정한 질서 체계를 세운다거나 목사나 혹은 장로와 집사의 직무를 맡기 위해서 밟아야 할 일정한 규율과 질서들도 설정해 놓았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는 일과 관련한 규례도 당연히 있습니다. 이렇게 할 때에 자기네 판단에 좋다고 생각되어지는 이런 저런 생각들을 여기 저기서 조금씩 취해서 모으는 식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역사 속에서 실증되어진 개혁파 교회의 정통성의 기반 위에 서서 최종적으로 교회법을 확증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다른 말로 하여 성경을 연구하고, 여기에서 나오는 원리에 입각하여 세세한 부분들을 설정하고 규정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까닭에 가령 장로교 헌법이라 할 것 같으면, 대한 예수교 장로회의 헌법과 미국 장로교의 헌법은 근본 원리면에 있어서 동일한 것입니다. 지역적인 특성과 문화적인 상황에서 고려할 수 있는 차이점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 원리면에 있어서는 영국 장로교의 헌법과 한국 장로교의 헌법은 서로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신학교들과 목회자들

 

그런데 한국 교회는 부흥되려는 욕구에 사로잡힌 나머지 혹은 선의의 경쟁이라는 이름 하에 서로 교세를 확장하는 데 집착하느라고 무질서하게 교회를 세워 나왔던 것입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신학의 기반이 없는 비정통적인 신학교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오고, 신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부르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이런 저런 재주를 피워 신학교를 졸업하고는 적당히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지역 교회들이 여기 저기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교회를 세움에 있어서 아무나 함부로 세울 수 없는 것이고, 일정한 질서에 따라야 한다고 저마다의 교단 헌법들은 규정해 놓았다는 사실을 조금 전에 설명한 바 있습니다. 특별히 말씀의 순수한 선포가 교회의 중요한 표식인 것과 관련하여, 교단의 통제하에서 적절하게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설교할 수 있다고 못박아 놓았습니다. 목사가 아니면 성례를 집례할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순전히 권위를 내세우려고 이렇게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을 존귀하게 다루려는 데서 부득불 이러한 질서가 최소한도로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생들이 전도사라고 하는 명칭을 내세워 저마다 앞다투어 교회를 개척하고 설교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어느 정도 사람을 모으게 되면, 각 교단마다 앞다투어 이들에게 안수를 주어 목사가 되게 하고, 교회 설립을 인증해주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는 가히 신학교의 전성기였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수요와 공급이 넘쳐나서 여기 저기 신학교들이 생겨나고, 신학생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신학교에서는 학생을 모집할 때에 두루뭉실하게 넘어갔습니다. 가령 누군가가 목사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갖추어야 할 것으로 신앙고백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보다도 신앙고백이 확실해야 하고, 또한 지역 교회의 일원으로서 그처럼 지역 교회를 이루어나가고 있는 실질에 성립되어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신 데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고, 그러나 이것은 자기 혼자만의 주관적인 신념이어서는 안되고, 자신이 섬기고 있는 교회 안에서의 봉사를 통하여 객관적으로 드러난 은사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의 직분이란 것은 은사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학교가 신학생을 뽑을 때에 이런 것을 확실하게 점검하지 않았습니다. ‘소명이 있느냐?’라고 묻기는 하지만, ‘예! 소명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기만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교회의 ‘추천서’라는 것도 아주 요식적으로 다루어졌습니다. 원래 이것은 목사 후보생이 실제로 지역교회의 일원으로서 교회를 잘 섬기고 있는지, 나아가 목사의 직무를 감당할만한 은사가 있는가 하는 것들을 알아보려는 의도에서 제정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추천서 용지를 들고 와서 도장을 찍어 달라고 하면, 그냥 찍어주었습니다. 만일 찍어주지 않을 것 같으면, 그는 교회를 떠나버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는 수단으로 추천서를 써주기도 했습니다. 이즈음의 상황이 이미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신학생들이 신학교에서 새삼스럽게 신앙고백을 배우는 기괴한 현상까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미 믿음 안에 서 있고, 믿음의 도리들에 대해서 확고한 이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런 기초 위에서 이제 목회에 관한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 신학교의 과정인데, 어이없게도 신학교에서 신앙고백을 새삼스럽게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조차도 제대로 교수되는 예가 지극히 드물었습니다. 이것저것 배우느라고 대개의 학과들이 수박 겉핱기 식으로 가르쳐졌습니다. 신앙고백서를 아예 가르치지 않는 신학교도 있는가 하면, 가르친다 할지라도 그야말로 두루뭉실하게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일부 신학생들의 경우 신앙고백서의 내용이 자신이 인격에로 흡수되지 못하고, 단순히 하나의 지식과 정보가 되어 그의 머리 속에 쌓여지게 되었습니다. 정보와 지식 그 자체만으로는 구원 얻는 신앙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초보적인 진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지식과 정보를 가진 이것이 자신에게 있는 신앙고백인 것처럼 여김으로 큰 착각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열심을 낸답시고 나서서는 교회들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이후 하는 일들을 보니, 도무지 부르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리 저리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여기 저기 움직이기는 하지만, 도저히 목회하는 사람다운 자태가 엿보이지 않습니다.

 

표현이 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하는 모습을 살펴보니, 순전히 기업을 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미국 목사님이 ‘하나님을 파는 세일즈맨’이라는 책을 써서는 이런 형태의 목회자들을 비판한 적이 있는데,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일들을 하고 다닌다 말입니다. 이들은 교회를 순전히 마케팅 기법으로서 운영하고 부흥시키려고 합니다. 겉으로는 성령님의 역사 운운하지만, 실제로 해나가는 행동을 보면 순전히 마케팅기법입니다. 이들이 목회하는 교회들은 순전히 기업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성장학’인가 뭔가 하는 세미나들이 여기 저기서 개설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곳을 기웃거리면서 복음을 판매하는 기발한(?) 방법들을 배우곤 합니다. 이들의 메시지를 들어보면, 사람을 심각하게 하거나 진지하게 하는 내용들이란 도무지 찾아보기 힘들고, 그저 사람을 웃기고 편하게 해주며, 그야말로 싸구려 복음을 선포합니다. 이들은 주의 몸을 돌보는 목자요 교사로서의 목사입네 하면서도, 정작 주의 백성들에 대한 신실한 책임감도 없고, 주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고 인도하려고 하는 진지한 열심이 없습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많이 긁어모아서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고, 백화점과도 같은 큰 건물을 지을까 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어서, 그야말로 기업하는 사업가들이 기업을 운영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듯이 하는 그런 행동들을 답습한단 말입니다. 교회원들의 영혼의 상태를 예의 주시하여 관찰하는 가운데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들을 인도하고 권면하는 일에 애쓰는 이런 모습을 도무지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를 인도하고 주관하는 까닭에 여러 가지 비성경적인 행태들이 여기 저기에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교회를 운영한다 하면서도 정작 성경을 아는 지식이 없으니 무슨 이론 하에서 교회를 진리에 걸맞도록 운영해 나가겠습니까? 그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본받고 답습하는 것이 전부요, 누군가가 어떤 방법을 써서 교회를 크게 만들었다고 할 것 같으면, 너도나도 달려가서 그 방법을 배우고 도입해서 써먹기에만 혈안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 어이없는 실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옛날에 소위 성공했다고 알려진 어떤 유명한 목회자가 있었습니다. 이 목회자가 어느 날 자기와 같이 크게 성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앞에서 강의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가 간증하기를, 자신이 큰 교회를 짓기 위해서 마음에 둔 어떤 땅이 있었는데, 마침 성경에서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성을 칠일 동안 돌았던 것이 기억이 나서, 자기도 매일 아침마다 그 땅을 찾아가 ‘하나님, 이 땅을 제게 주십시요!’하면서 그 경계를 돌았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침내 그 땅을 얻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목회자가 이런 간증을 했는데, 이 간증을 들은 당신의 참석자들이 저마다 나서서 이 목회자처럼 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네 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방법을 가르치기까지 하였습니다.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행동이 마치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인 듯이 가르쳐졌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목회하는 사람들이 많고, 교회들도 많다고 하는 이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 자기네가 정통이요, 가장 성경적인 목회를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자위하고 자부했습니다. 참으로 이런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세월이 흐르다보니, 어느 사이엔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러자 이렇게 순전히 자기네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이 단순하고도 초보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런 정도를 강의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강론을 정리하자면,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회로서의 형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물론 이 형식은 실제적인 내용이 있는데서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용은 없는데, 껍데기로만 형식을 갖추고 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개혁파 교회가 설정한 교회의 형식은 첫째, 말씀의 순수한 전파, 둘째, 성례의 신실한 집행, 셋째, 권징의 능력적 집행 등입니다. 이 세 가지 형식을 갖추는 한에 있어서 비로소 교회라고 평가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이런 형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교회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설혹 형식을 갖춘 듯이 보여도 그야말로 껍데기만 그렇게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가 이런 처지에 머물러 있는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형편에 있는 교회가 무언가 열심을 내고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게 되면, 이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기독교적인 종교 단체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이 필연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여 교회 타락의 주범이 되어버린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교회가 처음에 설립될 당시부터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 그렇게 세워져야 합니다. 즉 교회를 설립하는 사람은 정통성이 있어야 하고, 부흥되려는 욕구에 미혹되지 않는 가운데, 항상 교회를 교회다웁게 하는 일에만 최고의 관심을 기울여 나가야 합니다. 교회의 부흥은 질적인 성숙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옳습니다. 성숙이 수반되지 않는 부흥이란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각별히 은사를 더하심으로, 우리의 봉사를 통하여 교회가 세워져 나갈 때에 참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안산회복교회/전상범

가져온 곳:생명나무 쉼터 한아름

기독교의 십자가 교리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소외된모습으로 그려지고, 값이 지불되기를 냉정하게 기다렸다가 사람에게 구원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려진다면, 이 얼마나 저급한 신관인가, 하고 현대 자유의자들을 외친다. 실제로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원하는 것보다 더 기꺼이 우리의 죄를 용서한다고 그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화해는 순전히 우리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렸다. 하나님은 우리가 선택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우리를 받아들일 것이다.

 

이 반론은 물론 죄에 대한 자유주의의 견해에 근거해 있다. 만약 자유주의 교회가 가정하는 것처럼 죄가 사소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율법의 저주도 가볍게 간주될 것이며, 하나님은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지난 일은 지난 일이라고 처리하는 것은 듣기에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로는 세상에서 가장 무정한 일이다. 같은 인간에게 범해진 죄의 경우에도 이런 식으로 처리되지는 않는다.

 

모든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죄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였나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의 부르짖음이다. 낭비되어 버린 삶의 돌이킬 수 없는 죄책을 누가 측량할 수 있는가? 하지만 그런 죄책을 위해서까지,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는 샘을 제공했다. 하나님은 마치 옷을 입히듯이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입혔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심판의 보좌 앞에 흠 없이 선다.

 

속죄의 필요성을 부인한다면 진정한 도덕적 질서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 이런 사실을 감히 부인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예수의 제자로 간주할 수 있는지 이상하다. 예수의 생애에 대해 기록한 분명한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예수가 하나님의 공의를 그분의 사랑과 구별되는 것으로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지만 오직 사랑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수는 무서운 말로,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해 말했다. 그는 보응적 정의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 분명하다. 예수가 오늘날처럼 죄에 대한 가벼운 견해를 받아들였으리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

 

현대 자유주의 교사들은 소외된혹은 분노한하나님이라는 교리는 끔찍하다고 말한다. 이 반론에 대해서는 신약성경을 지적하면서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진노와 예수 자신의 분노에 대해 분명히 말한다. 또한 예수의 모든 교훈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전제한다. 그렇다면 예수의 교훈과 모범에서 이렇게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어떻게 자신들을 예수의 참된 제자로 간주할 수 있는가? 진상은 이렇다. 하나님의 진노라는 교훈을 거부하는 현대인들의 태도는 죄를 가볍게 생각하는 견해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전체 신약성경의 교훈, 그리고 예수 자신의 교훈과 완전히 어긋난다. 사람이 일단 죄에 대한 유죄 선고를 진정으로 받았다면, 그는 십자가 교리를 받아들이는 데 별로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실상을 말하자면, 속죄 교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이 속죄 교리를 반대하는 것은, 교리 그 자체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오해 때문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대해 말할 때에는, 언제나 그것이 마치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드린 제물인 것처럼 말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희생 제물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죄값이 지불될 때까지 냉정하게 기다리다가 지불된 후에야 죄를 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자유주의자들의 반대는 기독교의 십자가 교리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근본적 요소를 무시하는 것이다. 바로 죄를 위한 희생제물을 드린 이는 하나님 자신이지, 다른 어떤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본성을 취하고 십자가에서 죽은 아들의 위격 속에서 하나님 자신이, 그리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 준 아버지의 위격 속에서 하나님 자신이 그 제물을 드린 것이다. 구원은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처럼 아무 값없이 우리를 위하여 주어진다. 엄청난 값은 하나님이 지불하고 그 유익은 우리가 얻는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런 사랑은 현대의 설교 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느긋함과는 매우 다르다. 이 사랑은 값을 따지지 않는 사랑이다. 이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이 사랑, 오직 이 사랑만이 사람에게 참된 기쁨을 가져다준다. 실로 오늘날 자유주의 교회도 기쁨을 찾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된 방법으로 찾고 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어떻게 하면 기쁨이 될 수 있는가? 당연히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하나님의 속성, 곧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함으로써 그렇게 될 수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하나님을 우울한 독재자나 엄격하고 의로운 재판관으로 간주하지 말고, 오직 사랑이 많은 아버지로만 간주하자고 권한다. 옛 신학의 공포여, 사라져라!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신을 경배하자! 이것이 그들의 이야기다.

 

종교가 기쁨을 위한 길이라는 이 제안에 대해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첫째, 그것이 효과가 있는가? 둘째, 그것은 참된가? 그것이 효과가 있을까? 당연히 효과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자기 자녀에게 영원한 고통을 가는 일이 결코 없는,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자 사랑의 아버지가 우주의 통치자인데 누가 행복하지 않겠는가? 만약 모든 죄가 반드시 사해질 것이라면 후회의 아픔이 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감사하지 않는다. 현대의 설교자가 자기의 역할을 아주 열심히 행한 후에도- 즉 하나님에 대한 관념에서 불쾌한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대해 그에 어울리는 유창한 언어로 경축한 후에도- 회중은 어쩐지 옛날의 그 기쁨의 열광 속으로 들어가기를 지속적으로 거부한다. 진상을 말하자면, 현재 설교 속의 하나님은 매우 선할지는 모르지만,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 신이다. 누구에게나 듣기 좋은 유머만큼 무미건조한 것도 없다. 그렇게 희생을 치르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가? 만약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든지 하나님이 필연적으로 용서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신경 쓸 것이 무엇인가? 그런 하나님은 우리를 지옥의 두려움에서 건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천국은, 만약 그런 천국이 존재한다면, 죄로 가득할 것이다.

 

사람을 격려하기 위한 오늘날의 신의 개념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또 다른 반대는, 그것이 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오직 사랑과 친절 뿐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자연을 통해? 인간의 통해?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도 분명 아니다. 당신이 우울하다고 거부하려는 그 신의 개념을 이전 신학자들은 성경으로부터 이끌어 내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주 너의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예수가 당신의 근거인가? 이것은 더 좋지 않은 주장이다. 저 바깥 어두운 곳과 영원히 타는 불,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말한 분이 바로 예수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당신의 위로를 주는 신의 개념을 위해 오늘날 당신에게 직접 내려진 계시에 호소하겠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 이외의 다른 누구도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밝은 면만을 보는 방식으로는 종교가 기쁨이 되지 못한다. 한편으로 치우친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 아니며, 우리 영혼의 갈망을 채워 줄 수 있는 분은 진짜 하나님뿐이기 때문이다. 종교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노력은 재앙으로 끝나고 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은 불가침의 신비 속에 둘러싸여, 두려운 공의 속에 존재한다. 사람은 세상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로 자신의 형편을 최대로 활용하며 감옥을 싸구려 금장식으로 치장하려고 노력한다. 하나님은 죄인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기쁨의 여지는 없고 오직 심판과 불같은 분노를 두려운 마음으로 예상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하나님은 현대 설교에 등장하는 위로하는 하나님보다 적어도 한 가지는 나은 점이 있다. 그는 살아 계시고, 통치하시며, 자신의 창조나 자신의 피조물에게 얽매이지 않으며, 기이한 일들을 행할 수 있다. 그 하나님은 원하기만 하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우리를 구원하셨다. 복음은 이 메시지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던 것이었다. 구원의 방법이 그러하리라는 것은 더욱 아무도 몰랐다. 그 탄생, 그 생애, 그 죽음, 왜 그것이 그런 방법으로 그때 거기서 이루어졌는가? 그것은 너무나 지역적이고, 너무나 특정적이며, 너무나 비철학적이고, 기대할 수 있었던 것과 너무나 달랐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우리 자신의 구원 방법이 더 낫지 않은가?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왕하5:12)

 

그러나 만약 그것이 참되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래서, 가장 크신 자가 가장 사랑이 많기도 하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모두를 위해 내어 준 바 되었고, 모든 시대의 철학자들이 추구하던 세상으로부터의 해방이 이제 모든 사람에게 거저 주어졌고, 현자와 지자에게 감춰졌던 것이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났으며, 오랫동안 갈망했지만 성취될 수 없었던 죄의 정복이 신비한 은혜에 의해 이루어졌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곧 거룩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마침내 이루어졌다!

 

참으로 이것, 오직 이것만이 기쁨이다. 그러나 그것은 두려움에 가까이 있는 기쁨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우리 자신이 만든 하나님, 오직 사랑뿐이고, 오직 아버지 외에 다른 분이 아니며, 우리 자신의 공로를 가지고 두려움 없이 그 앞에 설 수 있는 하나님과 함께 있다면 우리는 더 안전하지 않을까? 이런 하나님과 함께 있고자 하는 사람은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록 죄가 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호와를 보고자 한다. 절망하고, 소망하고, 떨며, 반신반의하고, 모든 것을 예수에게 의탁하면서, 우리는 바로 그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감히 나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임재 앞에서 산다.

 

- 그레샴 메이첸, 기독교와 자유주의, 185-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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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성화는 세속적 정의를 구축한다.

 

한국교회의 윤리부재와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고 있는 오늘날, '휴머니즘적인 사회정의'를 마치 하나님 나라 운동에 속한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혹은 사회 정의를 주창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는 칭의'를 약화시키려는 경향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공동선의 추구와 신자로서 중생자의 윤리가 뒤섞여 있는 기이한 현상으로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마치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보겠다는 과욕이거나 혹은 구원받은 신자라면 의당히 사회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사회복음주의에 지나지 않음이다.


이에 대해 성경은 명쾌하게 답변을 하고 있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의를 사회의 정의 구현으로 찾지 않으면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의는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십자가 고난을 마다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사회 정의 구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칭의에 기반을 둔 성화로의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것으로, 중생한 신자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살아가는 삶으로써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곧 성화의 열매 중 하나인 정의인 것이다.


이것은 신자들이 추구하는 사회 정의라는 수준이 단순히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공리적인 개념의 정의의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신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령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 나라의 법'에 순종하며, 이 법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신자들이 추구하는 정의는 세속적 차원이 추구하는 정의보다 월등히 고상한 공평과 공의를 수행하게 되며, 여기에서 비로소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하나님의 의를 모호하게 사회 정의와 혼합하여 그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것은 자칫 '기독교'를 단순한 '휴머니즘'으로 전락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이신칭의를 간과하는 그릇된 휴머니즘적인 하나님 나라 운동이 종교다원주의에 문을 열어주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성화의 길을 가고 있는 신자들의 윤리 의식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기초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위에 서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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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개혁신보

선언적 개혁주의자와 실천적 개혁주의자 디모데전서 4:7

 

<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자기를 뜯어고치려는 몸부림 상실될 때 신학도 무너져”

 

 

제가 유학중일 때 아버지와 같은 저의 지도 교수께서 저를 앉혀놓고 수시로 하셨던 말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개혁주의자라는 것은 반드시 두 가지 방면으로 입증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첫째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곧, 우리는 어떤 신학전통 그리고 교회의 전통에 서 있는가로 우리가 개혁주의자라는 것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곧, 현재의 삶이 우리는 개혁주의자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우리에게는 우리가 물려받은 신학의 내용과 지금 살고 있는 삶이라는 두 날개로 우리가 개혁주의자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가슴에 꼭꼭 새겨두곤 하였습니다.

 

제가 그 어른의 이 가르침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떠올리는 것은,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만 내세워 우리가 개혁주의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우리의 모습을 너무 자주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개혁주의는 주로 우리가 얼마나 성경적이고, 깊이 있고, 수준 높은 신학을 견지하고 있는 사람들인가를 부각시키는 자화자찬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니면 칼끝을 돌려 다른 사람들을 매섭게 몰아붙이고 비판하고 그러다가 조롱하며 비난하는 데로 나아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입을 열거나, 글을 쓰거나 첫 마디를 한국교회에 대한 비난으로 시작하는 몇몇의 사람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과 글의 핵심은 언제나 한국교회가 얼마나 반개혁주의적인가를 지적하고 개탄하는 것이 주를 이룹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감동하고 열광하고 또 자랑스러워하는 개혁주의를 그들의 일상의 삶속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혁주의를 외치는 선언만 있지 실천이 없는 개혁주의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남을 향한 매서운 비판과 매정한 정죄만 있지, 자기를 후려치는 자기 성찰이 없고, 자기를 뜯어고치려는 아픈 몸부림은 없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우리의 그러한 모습을 보며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교회가 나타나야 한다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그 길은 정통신학에서 떠나는 것이라고, 정통신학으로는 안 된다고 자신 있게 주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각광을 받으며 등장한 소위 이머징 교회의 핵심적인 주장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의 말처럼 정통개혁신학이 새로운 시대에는 적용력이 없어서 일어난 문제가 아닙니다. 개혁주의의 실패나 한계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 아니라, 오늘날의 개혁주의자들의 실패와 한계가 빚어낸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실패의 핵심에는 개혁주의자들이 개혁주의를 실천하지 않은 것이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신학의 내용에는 감동하지만, 그 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고는 돌아서 버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개혁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전통의 내용이 무엇이고, 가치가 무엇이며, 그 요구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보존하고 전수할 뿐 아니라 우리는 그러한 신학전통에 서 있음을 확고하게 주장하고 선언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입니다.

 

저는 이러한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을 가리켜 나름대로 선언적 개혁주의자라고 부르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반쪽짜리 개혁주의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개인의 일상의 삶이든지, 목회자의 목회 방식이든지, 노회든지, 총회든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떤 사고 방식과 원리로 일들을 처리하고 진행하는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일관되게 살아가는가, 무엇을 최우선의 기준으로 삼고 일들을 결정하는가를 보고 우리가 개혁주의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진정한 개혁주의자와 개혁주의 해설자는 엄밀히 구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혁주의 해설자가 아닙니다. 개혁주의 실천자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나름대로 실천적 개혁주의자라고 부르곤 합니다. 선언적 개혁주의자에서 실천적 개혁주의자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개혁주의를 말하는 사람과 개혁주의를 행하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는 두 방면으로 입증되는 진정한 개혁주의자가 될 것입니다.

 

 

 

믿음에 대한 그릇된 이해, 한국교회의 오류 중 하나 (1/2)]

 

한국교회의 치명적인 문제 중의 하나는 구원론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무율법주의의 문제요 다른 하나는 율법주의의 문제입니다. 무율법주의는 대부분의 한국교회에서 나타나는 문제로 칭의(稱義), 곧 죄용서는 강조하나 거룩한 삶이 없는 문제요, 율법주의는 이런 한국교회의 갱신과 개혁을 강조하는 그룹에서 종종 나타나는 문제로 성화(聖化)와 제자도를 강조하나 그것을 전적으로 우리 인간의 책임으로 돌리는 문제입니다.

무율법주의가 복음을 값싼 복음으로 전락시키고 삶이 없는 공짜 은혜를 남발하는 것이 문제라면, 율법주의는 윤리적 갱신과 도덕적 책임을 인간에게 지우고 스스로 윤리적 도덕적 삶을 추구하도록 강요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

하지만 이것들은 둘다 구원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그게 뭘까요? 바로 <믿음에 대한 통전적 이해의 결여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신칭의(以信稱義)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죄용서와 상관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믿음이 회개를 결과한다는 것은 종종 놓칩니다. 다시 말해 죄용서와 회개, 칭의와 성화는 둘 모두 믿음과 상관있다는 얘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은 우리에게 값없이 주는 은혜의 선물인 죄용서를 결과하고 동시에 우리 안에 거룩을 향한 마음을 일으킵니다. 바로 회개입니다. 칼빈은 회개를 중생, 그리고 지속적인 성화와 관련시켜 이해했습니다. 믿음의 문제를 죄용서로만 국한시킨 것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교회의 구원론적 문제를 교정할 단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교회의 대부분은 믿음의 문제를 칭의에만 국한시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이후의 거룩한 삶을 간과했습니다. 결국 불의와 부패가 난무한 윤리부재의 현실을 초래하고 만 것입니다. 이에 대한 극단적 반동으로 다른 한편의 그룹 역시 믿음의 문제를 칭의에 국한시킨 것은 마찬가집니다. 이들은 믿음을 죄용서, 곧 칭의에만 국한시킨 나머지, 성화의 삶, 곧 그리스도인의 제자도는 구원받은 자의 책임의 영역으로 분리시켰습니다.

 

하지만 <죄용서와 회개는 둘 다 믿음과 관계>있습니다. 죄용서와 회개는 둘 모두 믿음의 결과입니다. 죄용서함을 받은 자에게 회개는 필연적입니다. 칼빈은 회개를 중생과 연결하여 이해했고 그가 말하는 중생은 바로 성화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새 사람을 입는 것", 바로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성화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그리스도인의 실천의 문제였습니다

 

개혁주의마을/Grace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 한아름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란 무엇인가? 신학 이야기

2006/06/26 13:22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개혁주의 교회의 연합과 일치의 조건

최덕성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역사신학)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1647년 무렵에 창의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기독교 역사에 등장한 여러 가지 신조문과 신앙고백서 가운데 하나이지만 여전히 그 탁월성을 인정받고 있다. 여러 장로교회들이 신앙고백서로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다.

신앙고백[서]는 개인, 단체, 교회, 종교회의 등이 교리와 신념을 공적으로 선언할 의도로 작성한 것이다. 신조(Creed, Symbol)와 신앙고백(Confession)은 비슷한 말이지만 후자가 전자보다 더 포괄적이다. ‘언약’(Covenant)이라는 것은 특정 신앙공동체가 맹약(盟約) 형태로 수납한 고백문이다.

방대한 분량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웨스트민스터 대·소교리문답과 더불어 장로교 권에서 널리 수납되어왔다. 스코틀랜드교회와 미국장로교회는 이것을 3백년 이상 유일한 교리표준으로 사용해 왔다. 전자는 1647년에, 후자는 1729년에 이것을 채택했다. 미국 동북부에 자리 잡고 있는 회중교회들은 1748년에 이 신앙고백서의 교회 정치에 관한 조항만을 바꾸어 채택하여 사용해 했다. 이것은 침례교회의 신앙고백서 작성에 영향을 주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1640년대의 영국이라고 하는 시대의 정황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제시하는 구원의 기본 교리들을 그 어떤 신앙고백서보다 더 잘 설명하고 있다.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정치적 소용돌이 가운데서 영적 갈급함을 가진 청교도―장로회 목회자들이 성경적 기독교를 정착시킬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에 여러 해 동안 기도하면서 애써 만든 것이다.

모든 신앙고백서들이 그러하듯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도 역사적 콘텍스트에서 만든 신앙고백문헌이므로 다른 지역, 다른 시대의 기독교인들이 당면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답을 완전히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제시하는 점에서 그것의 가치는 다른 고백서와 견줄 수 없을 만큼 탁월하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개혁주의 교회들의 연합과 일치의 기초이다. 신앙고백의 기능에 대한 검토와 함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가 만들어진 역사와 정치적 배경과 그 내용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의 교회, 특히 에큐메니칼 시대의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등을 살펴보자.

1. 신조·신앙고백서

신앙고백서의 특징은 “심령의 넘침으로 말미암아 나의 입은 말을 한다.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고백한다”(credo, ergo confiteor)는 고전적인 문구에 표현되어 있다. 신앙고백서는 교회가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을 교인으로 받아들일 때 신앙을 고백해야 할 필요에 의해 생겨났다. 신조·신앙고백은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는가?”라는 그리스도의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답변에서 시작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고백 위에 세워져 있다. 믿음이 있는 곳에는 신앙고백이 있다.

‘사도신경’은 영지주의에 대해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니케아신조에서 칼케돈신조까지의 ‘에큐메니칼 공의회’가 만들어낸 신조문들은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가진 분이며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존재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밝혔다. 간단하던 신조가 점차 확대되어 마침내 전체적인 체계를 갖추었다.

신조·신앙고백서는 고백문헌들은 이단들의 도전이나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교회가 신앙하는 바를 조리 있게 체계화 한 것이다. 교리에 관한 모든 것을 포함하려는 의도로 작성된 것도 있고, 고백문서가 만들어지는 당시의 특별한 문제에 제한하여 작성한 것도 있다. ‘바르멘신학선언’(1934), ‘장로교인 언약’(1940) 등은 당시의 교회가 직면하고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를 중심으로 작성된 것이다. 논쟁이나 갈등이라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도 있고 그렇지 않는 것도 있다. 신학적인 형식을 잘 갖춘 신조문·신앙고백서도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교회의 일반적인 처지에서 만들어진 것이 있는가 하면, 교회의 전체 회의가 만든 것도 있다. 특정 교회의 공의회가 만든 것도 있고, 교회의 위탁을 받아 신학자들이 만든 것도 있다.

신조·신앙고백서는 교회의 이정표, 지계석(地界石) 기능을 갖고 있다.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게 하며,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신앙고백적인 일치를 도모하기 위해, 거짓 교훈을 막아내는 ‘신앙의 규범’으로, 공적인 표준문서로 만든 것이다. 단일 고백을 표방하여 교회의 일치성을 높이는 역할도 한다. 신조·신앙고백서의 이러한 신앙규제 기능은 가끔 신학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신앙과 생활의 순결을 지키고, 신자들을 연합시키며 강건하게 하기도 한다.

신조·신앙고백은 ‘신앙의 규범’이며 기독교 교육을 위한 것이다.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공적인 교육에 적용시키고 그것을 가지고 이단과 그릇된 사상과 오류를 막아냈다.

신조·신앙고백은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갖고 있지는 않다. 성경만이 기독교 신앙과 생활의 최종 규범이다. 신조·신앙고백은 성경에 종속된다. 성경과 일치할 때만 권위를 가진다. 신조·신앙고백에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발견되면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다.

신조나 신앙고백서는 어떤 유래를 갖고 있든지 간에 신조가 생겨난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한다. 신조가 성경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진 것으로 보거나 그것을 절대화하면 신앙고백주의(Confessionalism)와 조주의(Dogmatism)에 빠진다.

소시니언과 퀘이커와 유니테리언 그리고 합리주의자들은 신조·신앙고백문의 권위와 용도를 부정한다. 신조·신앙고백이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와 신앙을 구속하고 개인의 판단을 방해하며 독선, 위선, 고집을 조장하며, 분란과 혼란을 야기한다고 본다. 종교적인 증오심을 조장하고 역작용을 일으켜 서로 험담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척운동의 근거가 되고, 신자들을 그것에 종속시킨다고 본다.

성경은 그것을 해석하는데 필요한 어떤 지침(clue)이 없이는 신자 개인과 교회에 의미 있는 안내를 제공하기에는 방대하다. 신앙고백이나 공식화 된 신조·신앙고백이 없이 성경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허황된 생각이다. 근본주의 성격을 지닌 독립파 교인들, 오순절파 신자들, 침례교인들만이 아니라 자유주의 신학 추종자들 가운데도 신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조·신앙고백문을 배격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형식화된 신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지만 나름대로 어떤 전통이나 신념체계나 지도자의 가르침을 추앙하고 있다. 신조 공식과 신앙고백을 담은 서술문을 소유하고 있다.

스위스종교개혁에서 출발한 개혁교회는 여러 개의 신조·신앙고백서들을 가지고 있다. 제네바신앙고백서(1536). 스코틀랜드신앙고백서(1560), 벨기에신앙고백서(1561),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1563), 제1스위스신앙고백서(헬베틱신앙고백서), 제2스위스신앙고백서(1566), 도르트신경(1619),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1646),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1648) 등은 전통적인 개혁주의 교회의 신앙고백서들이다.

그밖에도 장로교회들과 개혁교회들이 채택한 여러 가지 신앙고백서들이 있다. 미국, 인도네시아, 일본, 대만,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교회들이 채택한 것들이다. 미국연합장로교회가 채택한 ‘새신앙고백서’(1967)와 미국장로교회의 ‘신앙선언’(1976) 그리고 미국개혁교회(RCA)의 ‘우리의 희망의 노래’(Our Song of Hope, 1978)라는 신앙고백서도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우리의 신앙고백’(1976), 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의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1986) 등이 있다. 예수교장로회 고신교단과 합동교단과 한국의 여러 군소 장로교단들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신앙고백서로 사용하고 있다.

2. 웨스트민스터 총회

런던 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웨스트민스터교회당은 중세기에 처음 건축되었다. 참회왕 에드워드(Edward the Confessor)가 1045-1050년에 건축했다. 1065년 12월 28일에 봉헌되었다. 교황은 에드워드에게 참회의 표로 교회당을 건축하도록 했다. 국왕이 건축한 본래의 건물은 로마네스크 양식이었다. 현재의 고딕 교회당 건물은 1245-1517년에 재건된 것이다. 헨리 8세가 에드와드를 추모하는 동시에 자신의 묘소로 만들고자 재건을 했다. 이 교회당에 붙은 두 개의 서편 종탑은 1722-1745년에 건축되었다. 이곳에서 킹 제임스 판 구약성경 4분의 3이 번역되었고, 신약성경의 뒷부분 절반이 번역되었다.

역사적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이 고백문은 본래 영국국교회의 신앙고백문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1642년부터 3년여 동안의 수고 끝에 작성하여 1646년 12월에 영국 국회로 넘겼다. 영국 상원은 1647년 2월에 통과시켰고, 하원도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하원은 이 고백문의 문장을 따지고 성경참고문을 추가하면서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성직자들이 첨가한 성경 근거 구절들을 문제 삼았다.

스코틀랜드교회 대표자들은 이것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스코틀랜드교회 총회는 1647년 8월 27일에 이것을 신앙고백서로 채택했다. 기존의 스코틀랜드신앙고백서(1560)를 대체했다.

하원이 이것을 즉각 통과시키지 않고 시간을 끄는 동안에 올리버 크롬웰 장군과 그의 군대는 국회가 숨결을 느낄 정도로 정치적인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 영향력은 국회가 장로교인들을 숙청하고 독립파 회중교도들을 대체하도록 만들었다. 하원의 숫자는 100여 명으로 줄어들었고, 그들조차 크롬웰의 영향을 받는 독립파 신자들이었다. 장로회 특징을 가진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영국교회와 무관하게 되고 영국국교회는 오늘날의 감독주의 교회 정치체제로 정착되었다.

헨리 8세의 사생활은 영국국교회라고 하는 정치 기형아를 낳았다. 그가 죽은 뒤에 로마가톨릭교회 신자인 메리가 왕좌에 등극하여 청교도들을 핍박했다. 몇 년 뒤에 메리가 죽고 엘리자베스가 등극하여 영국국교회를 오늘날의 형태로 정착시켰다. 엘리자베스 여왕시대(1558-1603)는 군주의 권리가 하나님의 율법의 정하심에 따라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는 형식으로 주어진다고 믿었다. 군주는 오로지 한 분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왕에 대한 그 어떤 종류의 반항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대죄라고 했다.

17세기 초에 이르러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통치자를 절대 군주로 여기지 않았다. 왕권이 하나님의 뜻과 자연법에 따라 제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국회의 권한을 확대했다. 그러나 국회는 왕권보다 우위에 있지 않았다. 국왕이 국회를 소집했다. 국회는 세금부과, 법률제정 등의 업무만을 다루었다. 외교, 종교, 국가기밀은 군주의 영역이었다. 영국은 이러한 제도로 정치적인 힘의 균형을 유지했다.

엘리자베스 l세는 프로테스탄트 신자이면서도 청교도들을 핍박했다. 그가 아들이 없이 세상을 떠나자 영국은 스코틀랜드 슈트워드 왕가의 메리 여왕의 독자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하게 했다. 그는 1603년에 제임스 1세라는 이름으로 왕좌에 올랐다. 이 일을 계기로 영국과 스코틀랜드는 정치적으로 합병되었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제임스를 외국인으로 여겼다. 스코틀랜드인이 국왕으로 등극하자 영국 국회 안의 장로회주의 사상을 가진 다수의 청교도들은 왕에게 기대를 걸고 영국국교회가 감독 정치를 지양(止揚)하고 장로교 정치를 도입하고 개혁신학을 대폭 수용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제임스는 왕권을 돈독히 하는 데는 장로회 정치보다는 감독주의 교회정치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신의 왕권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자기가 유일한 법 제정자이며, 따라서 국회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칼빈주의에 바탕을 둔 장로회 제도가 왕권 신장에 거침돌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청교도들의 청원을 거절했다.

제임스는 스코틀랜드에서 양육을 받았다. 엄격한 칼빈주의 전통 아래서 자랐다. 그는 칼빈주의 교회관이 왕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시대에 확립된 교회 안의 왕권을 확고히 붙잡고자 했다. 문예부흥, 종교개혁, 새 시대의 흐름은 옛날의 권력 구조의 문제점을 일깨워 주었다. 그 무렵 영국인들은 배를 타고 세계 이곳저곳으로 탐험하면서 상업을 발달시켰다. 상권(商權)을 쥔 중간계층이 두각을 나타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정치제도를 개혁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헨리 8세는 수장권(The Act of Supremacy)을 선언하고 국왕이 교회의 우두머리라고 선포했다. 이 때 영국교회는 국가교회가 되었다. 그 무렵에 등장한 청교도들은 교회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교황의 잔재들’을 제거하고 교회를 깨끗하게 만들고자 했다. 스코틀랜드 출신 제임스가 국왕이 되자 의기양양 청교도적인 개혁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했다. 그들은 영국이 장로회 정치와 개혁신학을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칼빈주의와 장로회가 왕성한 스코틀랜드 출신인 국왕 제임스가 자기들의 말을 들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제임스는 교회의 개혁이나 교회가 요구하는 것보다 자신의 왕권 확보에 여념이 없었다. 장로회 정치와 왕정제도가 불일치하다는 것을 알고 조만간 갈등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국국교회가 감독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감독 없이는 왕도 없다’(No Bishop, No King!)고 생각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국회의 기능을 과소평가했고, 자신이 필요한 경우에만 그것을 소집했다.

1625년에 국왕으로 등극한 찰스 1세는 아버지 제임스 1세보다 훨씬 더 강경하게 감독주의 교회정치 제도에 연연했고 청교도―장로교회주의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회를 과소평가했다. 그는 국회의 권한에 맞서서 자신의 독립성을 과시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펼쳤다. 정치동맹 관계를 구실로 로마가톨릭교회 신자인 프랑스의 마르 드 메디치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 영국 프로테스탄트들은 이를 우려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찰스는 귀족들에게 과도한 대출을 요구했고, 이를 거절하는 귀족 70명을 수감했다. 국회는 이에 항의했다. 이런 일로 왕권과 국회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왕의 의사는 국회에서 번번이 거절당했다.

이에 격노한 국왕은 국회의 동의 없이 세금을 부과했다. 국회는 상원에 속한 영국국교회 소속 감독들을 제거하는 것으로 맞섰다. 찰스는 국회를 해산하고, 10년 이상 혼자서 영국을 통치했다. 독재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왕의 신적(神的) 권리를 행사하고자 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후덕했던 반면에 고위 공직자들의 부패에 대해서는 엄격했다. 그러나 국회가 없는 이 나라에는 점차 정치 불균형이 나타나고, 청교도들과 의회주의자들의 분노가 커 갔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로부터 영국 프로테스탄트들의 자유의 상징이 된 국회가 유명무실하게 된 것에 분노했다.

찰스의 독주는 결국 재정 결핍을 초래했다. 국민은 극도의 내핍 생활을 피할 수 없었다. 왕실의 활동도 최소한으로 제한되었다. 군대는 축소되어 일부만 남았다. 1633년에 대주교가 된 윌리엄 라우드(William Laud)는 영국인이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영국국교회에 출석하라고 강요했다. 제도를 강화하여 불만을 가지고 교회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을 시장 앞에 붙들어 놓고 교회 공예배에 한 번 불참한 데 l실링의 벌금을 부과했다.

그러자 청교도들은 즉각 라우드의 조치를 공개적인 신앙박해로 간주했다. 의회주의자들은 군주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선동하기 시작했다. 대주교 라우드는 스코틀랜드교회가 예배의식서인 영국국교회의 『공동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를 채택해야 한다고 선포했다. 같은 예전을 사용하여 왕국의 통일성을 추구한다는 이름 아래서 그는 스코틀랜드에 장로회주의가 일방적으로 정착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기도서를 반대했다. 그것이 처음 낭독된 교회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신앙 탄압에 반대하는 내란도 발생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참된 개혁신앙’을 추구한다고 하는 내용을 담은 국가 차원의 ‘언약’(Covenant)에 서명했다.

이렇게 되자 찰스는 스코틀랜드 의회의 해산을 명했다. 그러나 그 명령은 효력이 없었다. 명령이 거부당하자 왕은 군대를 보냈다. 그 동안 왕에게 충성을 바쳐오던 스코틀랜드인들은 이때 ‘그리스도의 면류관과 언약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외치며 영국군과 맞붙어 싸웠고, 영국군대를 완전히 괴멸시켰다. 국왕은 항복하고 국회를 다시 소집한다는 조문을 담은 항복서에 서명했다. 전쟁 관례에 따라 국왕은 영국 땅에 남아있는 스코틀랜드 군대에게 막대한 전비(戰費)를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돈을 지불하자면 국회를 열어야 했다. 국왕은 그 동안 소집을 거부해 오던 국회를 소집했다. 전비를 보상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다.

이렇게 하여 1640년에 ‘장기국회’(Long Parliament)로 알려진 국회가 다시 소집되었다. 의원들은 11년 동안이나 회집하지 않은 국회가 다시 열리자 누적된 불만을 가지고 임했다. 감독주의 국교회파, 의회주의 장로회파, 회중주의 독립파로 나뉘어졌다. 정치권력을 쥐고 있던 올리버 크롬웰은 독립파 회중주의 지지자였다. 다수를 차지한 청교도 장로회주의자들은 감독주의 지지자들과 제휴를 하고 왕을 움직여 영국국교회가 장로회 정치를 도입하고 개혁신학을 수용하도록 일을 추진했다. 국회가 왕의 신하를 재판 없이 처형할 수 있도록 했다. 찰스에게 영국국교회를 개혁하는 총회 소집을 청원했다.

그 무렵 스코틀랜드 대표는 영국 국회를 설득하여 모든 의원들이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신앙적으로 통일시키기 위한 신앙고백과 교회정치와 예배모범과 교리문답에 바탕을 둔 ‘동맹과 언약’(Solemn League and Covenant)에 서명하게 했다. 그러나 크롬웰은 이를 강력히 거부했다. 장로회 제도가 양심에 따른 개인 예배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여 반대했다. 독립파 회중주의자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개인의 신앙과 그것에 대한 관용이 국가의 통일을 위해 희생될 위기에 처하자, 크롬웰은 왕에 대한 군사적인 승리만이 신앙의 자유를 획득하고 자유로운 기독교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왕정파는 영국국교회가 감독주의 제도를 수용하는 것을 지지했다. 군주의 신적인 통치권과 감독주의 교회 형태가 왕정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크롬웰이 이끄는 독립당에 대항하여 신앙을 위해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한편, 장로회주의를 따르는 청교도들은 중립을 유지했다. 국회의원 다수를 차지하던 그들은 그 동안 수난을 당해온 찰스를 동정하면서 왕과 국회와 교회가 나라의 개혁을 위해 함께 일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국회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런던의 웨스트민스터교회당에서 총회를 소집했다. 영국국교회를 보다 더 장로회다운 치리 형태로 바꾸고 신학을 개혁하고 교회를 정화하기 위한 교회 개혁 법안을 제정하자는 안을 결의했다. 국회는 1642년 6월부터 1643년 5월까지 성직자 총회를 소집하기 위해 다섯 번이나 그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찰스는 번번이 서명을 거부했다. 하원은 여섯 번째 그 법안을 통과시키고 발표했다. 상원도 1643년 6월 12일에 그것을 통과시켜 하원에 동조했다. 종교회의인 총회는 왕의 동의 없이 상원과 하원에 의해 1642년 7월 1일에 소집되었다.

국회는 총회를 국회 자문기구로 여겼다. 그래서 국회가 총회의 회원을 선임하고, 책임자를 임명하고 토론의 주제를 제시하고 활동범위를 제약했다. 이른바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121명의 영국국교회의 청교도 목사들과 약간 명의 회중 교회 목사 그리고 두세 명의 감독제 선호자들로 구성되었다. 총대 대다수는 장로회를 선호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총회에는 30명의 평신도 국회의원이 참석했다. 3명의 에라스티안(Erastian: 교회가 국가권력에 종속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과 스코틀랜드교회가 파송한 여섯 명의 대표(Commissioners)가 자문으로 참석했다.

국회는 총회를 소집하면서 영국국교회가 로마가톨릭교회 식의 예배가 아닌 단순한 예배모범을, 감독제도가 아닌 장로회 정치를, 로마교 신조가 아닌 개혁주의 신조를 채택하여 모든 국민을 포용하는 국가교회로 개편될 것을 희망했다. 그러나 퀘이커와 재세례파 신자 등 과격한 사람들을 배제하고, 무정부주의를 야기하려는 자들이나 영국국교회를 갈라놓으려는 로마가톨릭교회를 배격하기를 바랐다.

총회는 국회의 요청에 따라 먼저 영국국교회의 헌장인 ‘39개 신조’를 개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 신조가 개혁신학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잘못된 해석을 일부 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제거하고자 했다. 니케아신조와 아타나시우스신조를 참고하여 그 교리가 철저히 성경에 바탕을 두게 했다. 난해하고 이론적인 것은 배제했다.

그런데 16번째 신조를 개정하는 작업을 할 즈음에 정치 상황이 급변했다. 국회와 찰스 l세가 정면으로 충돌한 시민전쟁이 발생한 것이다. 국회군은 퇴각해야 했고, 스코틀랜드의 지원이 필요했다. 스코틀랜드는 지원군 파병의 대가로 엄숙한 동맹관계를 맺고자 했다. 그리하여 국회에서 스코틀랜드 대표자들의 발언권이 강화되었다. 스코틀랜드 대표자이며 영국국회에서 스코틀랜드 자문으로 일하던 사람들은 토론의 권한은 있지만 투표권이 없는 상태로 총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이들 6명 가운데 4명의 장로교 목사들은 신앙고백 초안 작성에 능동적으로 참여했다. 그때부터 신앙고백서 작성의 방향이 달라졌다.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종교 통일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는 것으로 전향했다. 스코틀랜드 대표자들은 영국 측의 4명의 의원들과 함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작성 기초 위원으로 활약했다. 이 신앙고백서는 강력한 개혁신학과 장로교 전통 아래서 만들어졌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경건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5년 6개월 22일 동안 1,163차례의 회의와 수많은 소위원회로 모여 신앙고백서를 작성했다.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작성하는 데는 별 논란이 없었으나, 장로회 정치가 과연 신적인 권위를 갖는가에 대해서는 장장 한 달 동안 논의했다. 총회는 기도, 예배, 금식으로 이어졌다. 중단 없이 여덟 시간이나 예배를 계속 드린 일도 있었다. 한 시간의 설교, 두 시간의 기도는 예사로운 일이었다. 1647년 11월, 회의를 마칠 무렵에 신앙고백서는 교리 지침서로, 나중에 완성한 소교리문답은 젊은이들의 교육교재로, 대교리문답은 설교자들의 지침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예배모범, 장로회 정치, 시편찬송도 만들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참석하여 신앙고백서 작성에 심혈을 기울인 스코틀랜드교회 대표자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람은 1647년 11월에 총회를 떠났다. 그들의 주도로 스코틀랜드교회는 기존의 신앙고백서를 버리고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채택했다. 이 신앙고백서는 그것이 만들어진 영국에서는 오히려 그 빛을 보지 못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영국 하원은 고백서를 즉각 승인을 하지 않고 서술을 뒷받침하는 성경구절을 첨가하라고 요구했다. 성경참고문을 찾아 기입하는 일로 시간이 자꾸 흘러가고 있었다. 그 무렵 크롬웰 군대는 국회의 하수인이 아닌 독립적인 정치 세력으로 부상했다. 그는 국왕 찰스를 체포했고, ‘양심의 자유, 신앙의 관용’을 외쳤다. 크롬웰도 장로회 제도와 그러한 방향으로 교회가 개혁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개혁신학을 추종했다. 그러나 독립파 사람들이 그를 옹립하고 점차 국회를 차지했다. 군주는 전쟁으로 말미암아 쇠사슬에 묶였고, 교회는 혼돈상태에 빠졌다. 그러한 상황에서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신앙고백서 작성을 완성했다. 그러나 그것은 즉각 받아들여지지 않고 지연되고 있었다.

하원은 상원이 이미 승인한 신앙고백서를 1648년 6월 2일에 이르러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흘러 가버린 탓으로 그러나 장로회주의자들의 꿈은 무산되었다. 장로회주의자들은 독립교회주의자들을 따돌리고 감독주의자들과 제휴하여 왕을 인정하면서 영국국교회에 장로회 제도를 정착시키려고 했으나 장로회 제도의 꿈은 무산되고, 총회가 수고하여 만든 신앙고백서는 영국국교회의 것이 되지 못했다. 그것들이 자리를 잡도록 만들기에는 그들의 정치적 역량이 부족했다.

크롬웰은 국회를 해산했다. 1653년에서 1658년까지 호민관으로 통치했다. 자신이 펼치는 공화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장로회주의자들은 교구에서 추방당했다. 크롬웰은 장로회 정치가 아니라 회중교회 치리체제를 원했다. 1658년에 크롬웰이 죽자 국회가 복구되었다. 국회는 1660년 3월 14일에 장로회 제도를 영국국교회 정치제도로 공인한다고 하는 법을 선포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다시 채택하고, 그것을 인쇄하도록 했다. 그러나 장로회 제도와 감독제도가 갈등을 겪는 가운데서 찰스의 아들 찰스 2세가 감독주의 체제를 재정비하자 장로회주자들의 희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국회는 왕정 복귀를 공포하고 스스로 해산했다. 득세한 감독주의 감독들은 복수심에 가득 찬 상태로 통일법(The Act of Uniformity)을 통과시켰고,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교구 밖으로 추방했다. 청교도들이 지금까지 추구하던 장로회와 개혁신학은 변두리로 밀려났다. 교구에서 축출된 비국교도 다수는 독립 침례교도로 자리를 잡았다. 신앙고백서를 작성하던 일부 장로회주의 회원들은 영국국교회와 손을 잡았다.

3.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사상

16세기의 종교개혁 직후 유럽 대륙에는 두 가지 흐름이 나타났다. 한편에서는 정통주의가 등장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 경건주의가 나타났다. 기독교 신앙이 이성의 역할에 강조를 둘 것인가, 경험에 강조를 둘 것인가 하는 것이 새로운 주제로 대두되었다. 신학자들은 성경 진리를 새롭고 단순하게 이해하던 종교개혁 당시의 분위기와는 달리 ‘객관적’인 교리 체계를 세우는 일에 몰두했다. 정통주의 시대의 특징은 신학이론을 합리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이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정통주의 시대를 주도한 개혁주의 정통신학(Reformed Orthodoxy)의 영향 아래서 만들어졌다. 하나님의 창조, 작정, 섭리에 대한 합리적 서술에 상당부분을 할애한다. 성령과 선교는 다루지 않는다. 성령은 영국국교회의 ‘39개 신조’에도 포함되어 있는데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그것을 다루지 않은 것은 특기할 만하다. 프로테스탄트 선교는 경건주의가 왕성하던 시기부터 부각되었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이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을 갖지 못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종교개혁 이후 125년 동안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을 집대성했다. 17세기의 신학과 신앙 명제들을 포함시켰다. 조리 있고 엄숙하며 명확한 언어로 서술했다. 완결성과 포괄성을 가졌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유서 깊은 기독교 진리를 변호했다.

이 신앙고백서는 총 3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진리의 원천인 성경을 다룬다. 제2장에서 제5장까지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면서 기독교 신앙의 전체 개요를 논리적으로 배열한다. 하나님의 작정, 섭리를 다룬다. 제6장에서 제20장까지는 인간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설명한다. 제21장에서 제26장까지는 기독교 삶의 윤리 차원을 다룬다. 하나님의 율법, 양심의 자유, 교회와 국가, 결혼과 이혼 등을 서술한다. 마지막 부분인 제27장에서 제33장까지는 교회, 성례, 마지막 일들을 담고 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작성자들(The Westminster Divines)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역사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주권과 돌보심 아래에 있다고 확신했다. 자연의 인과응보 법칙에 따르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칼빈주의적 확신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칼빈이나 도르트총회(1619)가 확정한 교회법보다는 훨씬 더 부드러운 용어를 사용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탁월성과 중요성은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예정론, 하나님의 미리 아심 등에 대한 서술은 당시에 유행하던 연역 사고를 반영하지만, 동시에 성경에서 진리를 도출하는 귀납 방법을 따른 것이기도 하다. 신구약 성경 66권이 어떻게 정경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며, 교회에 의해 그것이 권위를 갖게 된다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주장을 부정한다. 성경의 진실성과 신자의 마음속에 있는 성령의 내적 증거야말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최종적인 설득력을 갖는 토대라고 본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성경에 관한 교리 다음으로 언약신학(Covenant Theology)에 무게를 둔다. 청교도들의 영향을 받아 언약신학을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작정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언약을 인간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원활동의 첫째가는 표현이라고 본다. 제7장은 ‘사람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논한다.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을 나눈다. 이러한 구분을 두는 언약사상을 연방신학(Federal Theology)이라고 한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은 두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한 가지 언약만 있다고 본다. 행위언약이 은혜언약 안에 포함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작성자들은 신학이 이론으로 그치지 않고 실천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앙고백서의 3분의 2 가량을 개인과 사회 차원의 기독교 삶과 관계된 실천적 주제에 할애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기독교인의 삶과 건덕(Edification)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칼빈주의자들에게 신학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인 학문이다. 신학의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순종의 삶이다. 신앙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인간의 자랑이나 권세나 섬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삶과 기독교 신앙의 구현이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신앙고백서보다 분량이 더 많은 대교리문답을 작성했다. 묻고 답하는 형식의 이 고백문서는 설교자들을 위한 길라잡이이다. 신앙고백서를 만든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것을 요약한 것이 젊은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소교리문답이다. 제1문에서 제38문까지는 기독교인이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가를 다루고, 제39문부터 제107문까지는 기독인의 삶의 의무를 다룬다. 성경이 가장 요긴하게 가르치는 두 가지를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 무엇을 믿어야 할 것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본분(duties)이 무엇인가로 나눈다.

4.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한국장로교회

웨스트민스터교회당에서 열린 총회는 종교개혁의 완성을 목표로 삼아 교회정치 제도와 정화(淨化)에 초점을 맞추었다. 청교도 정신을 반영하여 교회나 국가가 개인의 양심을 구속할 권리가 없다는 등의 주제를 다루었다. 개혁신앙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데 정성을 기울였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성직주의를 배격한다. 바울, 어거스틴, 위클리프로 이어지고 칼빈이 강화한 칼빈주의 신학을 담고 있다.

잎서 언급했듯이 신앙고백서는 역사적인 산물이며,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 사회, 정치, 정신, 신앙을 반영한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다른 고백서들과 마찬가지로 제한성을 지니고 있다. 인종차별, 도시화, 산업화, 직장, 민주화, 남녀평등, 매스 커뮤니케이션, 복잡한 인간관계 등은 당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주제가 아니었다. 그 당시의 교회는 사회 문제, 경제 문제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책임을 오늘날처럼 자각하지 못했다. 영국교회는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사회개혁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 신앙고백서는 법률조문 또는 헌장이라는 인상을 준다. 어떤 문제에 대한 정답은 단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보는 경향도 엿보인다. 하나님의 ‘구속’을 강조한 반면에 ‘이웃’에 대한 그다지 큰 관심은 표명하지 않는다.

1907년 9월 17일, 평양 장대현교회당에서 조직된 한국장로교회 첫 노회는 인도장로교회의 신조문을 본 떠 만든 신앙고백문을 채택했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신조’는 흔히 ‘12신조’라고 불린다.

이 신조문은 다음과 같은 서술로 시작한다. “대한예수교회에서 이 아래에 기록한 몇 가지 조목으로 신경을 삼아 목사 및 인허 강도인과 장로와 집사로 하여금 청종하게 하는 것은 대한교회를 설립한 본 교회의 가르친바 취지와 표준을 버림이 아니라 오히려 찬성함이니 특별히 웨스트민스터신조와 성경요리문답 대소 책자는 성경을 밝혀 해석한 책인즉 우리 교회와 신학교에서 마땅히 가르칠 것으로 알며 그 중에 성경요리문답을 적은 책을 더욱 교회문답으로 삼느니라.” 한국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교리의 표준으로 삼았다. 배위량 선교사가 1925년에 처음으로 한글로 번역했다.

이 고백문서가 한국장로교회의 신앙고백서로 채택된 것은 상당한 세월이 흐른 뒤였다. 장로교 통합교단 제52회 총회(1967)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기존의 신조에 첨가하기로 결의했고, 제56회 총회(1971)가 이를 공포했다. 제58회 총회가 결의한 교회 정치와 권징조례 수정안은 통과시켜 1974년 6월에 출간한 헌법 수정판에 그것을 수록했다. 수록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1903년 미국장로교회가 수정하고 보충한 제35장 ‘성령에 관하여,’ 제35장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과 선교에 관하여’를 포함시켰다.

고신교단 제22회 총회(1972)는 노회 수의(隨意) 결과를 보고받아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공식 신조문으로 채택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원본을 채택하여 사용하다가 ‘성령에 관하여’(제34장)와 ‘하나님의 사랑과 선교에 관하여’(제35장)을 보완하여 사용하고 있다.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출범한 학생신앙운동(Student for Christ)의 초기 지도자들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대·소교리문답을 신조로 수납했다.

한국장로교회는 아빙돈단권주석 문제(1935), 창세기 저자 문제와 교회 안의 여권 문제(1934), 신사참배 문제(1938-1945), 조선신학교 문제, 김재준 교수의 자유주의 신학 문제 등으로 장로교는 갈등을 겪었고, 신앙이 위협을 받고 있었다.

고신교단은 이런 배경을 가지고 출범하면서 “현 대한예수교장로회 가설(假說) 총회가 본[래의] 장로회 정신을 떠나서 이교파적으로 흐르므로 이를 바로 잡아 예수교장로회로 계승한다”는 취지를 표방했다. 장로교 정신, 원리, 예배, 신앙고백에 충실한 ‘정통신학운동’을 천명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역사적인 신앙고백서로 여기지만 공식 고백문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독자적인 신앙고백서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개혁신앙을 고백하는 신앙공동체의 연합과 일치의 기초이다. 이것을 고백하는 교회들은 인간적인 문제들을 뒤로 하고 조속히 기구적으로도 하나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은 신앙고백서로 수용하는 교회들과 그렇게 하지 않는 교회들의 연합과 일치는 하나의 난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신앙고백서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회의 시대적 반응을 담은 고백서라는 사실은 신앙공동체가 다양한 고백서들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새로 만든 것이라고 하여 반드시 과거에 만들어진 것보다 더 탁월한 고백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가 만들어진 뒤에 나타난 여러 가지 신앙고백서들을 보라. 그 어느 것도 이를 능가할만한 신앙고백서가 못된다. 성경을 중요하게 여기며 영적으로 깨어 있던 그 시대의 교회의 경건과 견줄만한 풍토가 쉽게 조성되지 않는다. 오늘날의 교회는 옛날보다 훨씬 더 세상의 지혜와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에 오염되어 있다. 신학사조는 기독교의 절대성과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다른 종교에도 성령 하나님의 구원사역과 성령의 열매가 있다고 선언한다.

미합중국장로교회(PCUSA)는 1983년에 미국북장로교회(UPCUSA)와 미국남장로교회(PCUS)가 통합된 교단이다. 바르트주의(신신학)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새신앙고백서’(1967)를 수용하고 있다. 바르트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성경관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고 말하지 않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말한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가 겉으로 보기에는 미미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크다.

미합중국장로교회는 이러한 고백서를 가진 이 교회의 성경관은 목사·장로·집사 임직 때 임직자가 피임직자에게 묻는 질문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여러분은 신구약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된 책이며, 전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독특하고도 권위 있는 증언이며, 당신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받아들이십니까?”

위 질문은 유서 깊은 기독교를 지향하는 장로교단들, 예컨대 한국의 장로교 고신, 개혁, 합동 교단과 미국장로교회(PCA), 미국정통장로교회(OPC) 등이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생활의 최종적 규범이라고 믿습니까?”라고 묻는 것과 대조적이다.

성경의 무오성은 신학의 마지막 보루이다. 미합중국장로교회는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하지 않는다. 성경이 “전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독특하고도 권위 있는 증언이며, 당신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가”고 묻는다. 성경을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단지 말씀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는 바르트주의 성경관을 반영하고 있다.

새로운 신앙고백의 필요성은 항상 존재한다. 새롭게 등장하는 이단들과 이데올로기들은 고풍스럽고 부적절한 논쟁적 외침을 내뱉는 것으로는 결코 효과적으로 극복될 수 없다. 그러나 새 신앙고백서를 만든다고 하여 새 것이 옛 것보다 더 탁월하고 창의적인 것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현대 신앙고백서들은 대체로 핵심 교리들를 지나치게 일방적이거나 빈약하게 다룬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만들어진 신앙고백서들은 개혁주의 공동체들의 시도는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 글은 최덕성 지음 [개혁신학과 창의적 목회] (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05)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온 것입니다. 사이버신학저널 '리포르만다'(www.reformanda.co.kr)에도 실려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가 작성된 웨스트민스터교회당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사이버신학저널 '리포르만다'를 방문하시면 여러 가지 신학논문과 삶의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위 책이 다루는 핵심 주제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사도신경은 로마가톨릭교회의 잔재인가?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 이대로 좋은가?
사도신경은 교회 연합과 일치의 충분조건인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개혁교회 일치의 조건인가?
단군상 철폐운동, 불필요한가?
굶주린 동족, 외면할 것인가?
과거사, 무엇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죄 고백은 공개적으로 해야 하는가?
교회사 지식은 목회에 필수적인가?
예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인가?
예수를 믿으면 저절로 신앙인격이 성숙하는가?
계급적인 직분개념, 이대로 좋은가?
교회개척의 용기, 아직도 필요한가?
21세기의 이상적인 목회자 모델은 무엇인가?
신학, 목회, 창의성은 어떤 관계인가?
개혁교회의 특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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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왜 신앙고백이 중요한가?

 

 

교회 세속화의 원인과 대안

 

 

기독교가 전파된 후 120여년 동안 한국 교회는 세계 선교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듭하였습니다. 규모와 외형에 있어서 엄청난 발전을 했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 교회는 안팎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가 발산해 오던 매력은 찾아볼 수 없고, 한국 사회에서 동네북 신세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모 종교기관에서 실시한 갤럽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퍼센트 이상이 한국 교회를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하였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한국인 세 명중 두 사람은 한국 교회를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종교집단쯤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럴때일수록 좀 더 냉철한 반성과 지성이 요청됩니다. 사실 한국 교회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전후 50년대 이후로 한국 교회의 고도(高度) 성장의 그늘 아래에는 늘 교회의 세속화라는 복병이 숨어 있었습니다. 생사를 걸고 신자를 모으고 교회의 지경을 넓히는 일에 몰두하는 사이, 거룩성과 순수성이라는 교회의 교회됨을 지탱할만한 내공을 키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온갖 유행성 프로그램에 매달려 그나마 신앙을 유지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단기적인 대안으로는 교회 세속화의 흐름을 막기는커녕 교회의 본질로부터 더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뿐이었습니다.

 

 

혹자는 오늘날 한국 교회를 머리카락 잘린 삼손에 비유합니다. 덩치는 큰 데, 다른 이는 고사하고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건사하지 못할 만큼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가 세속화의 물결 속에 이처럼 나약해진 데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습니다만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그동안 한국 교회는 성경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배우는 일 보다는 성경을 이용(?)하여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성경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정작 성경을 강조하면서도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본의(本意)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사고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풍토가 만연합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도 성경 전체의 내용을 균형있게 강조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해와 경험을 근거로 한 부분적인 가르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인간의 행복과 번영과 성공을 위한 ‘그 무엇’으로 강조하는 ‘솜사탕’ 복음이 한 예입니다.

 

둘째, 많은 교회들이 역사적인 신앙고백을 가르치거나 배우지 일에 무관심합니다. 교회 역사상 오늘날처럼 교회안에서 신앙고백이 푸대접을 받는 시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신앙고백을 말하면 손사래부터 칩니다. 교리를 말하면 온갖 인상을 씁니다. 신비한 체험이나 은사라면 모를까 신앙고백을 배워서 무엇에 쓸 것이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신앙고백이나 교리에 무관심한 교회와 성도일수록 성경으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교회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훈 중의 하나입니다. 신앙고백과 교리는 신앙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담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을 바르게 깨닫고 실천하게 되는 기본 틀이 됩니다. 다시 말해, 바른 신앙고백과 교리는 성경 전체 내용을 성경의 원 저자가 되시는 성령 하나님의 시각으로 가늠하게 하는 일종의 이해의 척도(尺度) 역할을 합니다.

 

 

19세기 탁월한 개혁주의 신학자 중 한 사람인 핫지(C. Hodge)는 앞서 말씀드린 내용을 간명하면서도 핵심적으로 이렇게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단들이 모든 기회에 나타나서, 성경을 곡해하며, 말씀의 어떤 부분을 과장하고 다른 중요한 부분을 버리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켜 거짓으로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성도를 보호하기 위해서 성경의 모든 중요한 교리를 정확히 정리해서 잘못된 것을 밝히고, 모든 거짓된 것을 제거하기 위해 성경 전체를 깨달을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이 성경 말씀의 전체 내용을 그 중요성에 따라서 잘 정리함으로써 말씀의 어떤 부분이 부당하게 축소되거나 또는 제거되거나 과장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했던 것이다”

 

 

신앙고백의 성경적, 역사적 근거

 

 

유명한 교회사가인 필립샤프(P. Schaff)는 “성경은 하나님의 것이지만,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대답이다. 또한 성경은 신앙의 규범이요, 신앙고백은 교리의 규범이다.”고 하였습니다. 신앙 고백이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성도의 답변인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실제적인 표현입니다. 따라서 신앙고백이란 모든 성도의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며, 이 고백이 바르게 유지되고 전수되기 위해서 교회는 신앙의 내용을 언어 형태로 표현한 이 신앙고백을 보전해야할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신앙고백의 중요성을 가장 잘 인식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바로 성경 기자들이었습니다.

 

모세의 경우를 보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계명을 받았을 때, 그 내용이 성도들에게는 신앙고백의 형태로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출 19:7-9) 뿐만 아니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 고백을 그들의 자손들에게 끊임없이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찌니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찌니라”(신 31:11-13) 이것은 구약 시대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신앙고백’ 곧 ‘교리문답’이라는 방식이 사용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 예수님께서는 신앙고백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물으셨을 때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5-16)라고 고백하는 것을 근거로 주님의 교회는 그와 같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엡 2:20)고 한 말씀도 같은 내용과 같은 이해로서 고백되어지는 신앙고백이 교회 세움의 기초가 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경적 이해를 바탕으로 정통 교회는 초대 시대부터 교회의 신앙을 공적으로 대변할만한 신앙고백을 작성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 만들어진 가장 대표적인 신앙고백이 ‘사도신경’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신앙고백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16,7세기의 종교개혁 시대에 만들어진 신앙고백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기는 역사상 성경의 본의가 가장 바르게 회복되어 가장 참되게 증거되었던 때였습니다. ‘오직 말씀’에 사로잡힌 종교개혁자들은 거짓 신앙과 거짓 확신의 도전과 오류로부터 성경의 참된 정신을 보전하고, 후대에 온전하게 계승하기 위해 매우 체계적이고 정밀한 형태의 신앙고백을 작성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말씀으로 개혁된 교회의 3대 신앙고백서라고 일컬어지는 벨직 신앙고백(The Belgic Confession of Faith, A.D1561),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The Heidelberg Catechism, A.D 1563) 그리고 도르트 신조(The Canons of Dort, A.D 1619)와 종교개혁의 역사적 성격을 가장 선명하고 원숙하게 드러내는 장로교회의 결정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A.D 1647)는 그 시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성경적 신앙고백서들입니다.

 

 

교회와 신앙의 기준으로서의 신앙고백

 

 

종교개혁의 대전제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신앙'(Coram Deo)과 ‘오직 믿음'(Sola Fide)은 신앙의 대상에 대한 바르고 참된 믿음과 지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종교 개혁에 기초한 신앙이란 ‘순수한 신앙고백을 철저하게 추구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의 비성경적 가르침과 세상과 결탁한 변질된 기독교 사상에 맞서 종교 개혁의 횃불을 치켜들었던 종교 개혁자들이 모진 박해와 고난속에서도 성경에 충실한 신앙 고백을 만드는 일에 결코 좌절하지 않았으며, 이것으로 진리의 나침반을 삼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교회가 완전히 부패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앙고백은 결코 포기된 적이 없는 기독교의 전통”이라고 했습니다. 신앙고백은 성도의 신앙을 하나로 묶어 주는 진정한 교회 일치의 첨병이며, 세상과 이단과 거짓 복음으로부터 참된 신앙과 참된 교회의 영역을 표시하는 지계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앙고백을 부지런히 배움으로써 성경의 본의를 바르게 해석하며 또한 성경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용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참된 신앙고백을 통해 우리의 교회와 신앙을 바르게 세워나가는 일은 변화하는 시대가운세도 변하지 않는 진리를 추구하는 진실한 교회와 성도에게 주어진 숭고한 책임이며, 사명입니다. 

 

[출처] 왜 신앙고백이 중요한가? (비공개 카페)

 

 

 

교회 개혁의 출발점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문제가 구원에 이르는 참된 믿음, 다시 말해 야고보 사도가 말한 행함이 있는 참된 믿음이 결여된 믿음의 문제라고 한다면 오늘날의 교회 개혁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거듭나게 하는 복음으로서의 근원적 개혁이 없다면 그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며, 오히려 교회 안에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사실상의 위선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회의 부패는 교리의 부패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부패이다. 곧 구원에 이르는 참된 신앙의 도리가 강단에서 증거되지 않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중생자의 삶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죄와 비참을 깨달은 사람이 인생의 유일한 위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한다면 필연적으로 감사의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많은 사람들은 죄와 그 비참을 깨닫지도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요 삶의 주권자로 고백하지도 못한 채 형식적인 종교인으로 살고 있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고자 하는 윤리적인 삶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그것이 비록 부패에 점철되며 가증스런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보다는 나을지 모르나 본질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만을 쌓는 도구가 될 뿐이다. 나아가 바로 그 도덕과 윤리는 유일하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걸림돌이 되고 말 뿐이다.


그러므로 복음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교회 개혁은 소리만 요란한 꽹과리일 뿐 결국에는 정죄와 판단, 그리고 또 다른 자기 의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그런 식의 교회 개혁은 사랑의 회복보다는 분노와 증오가 앞설 뿐이다.


교회의 회복을 소망한다면 근원적인 말씀의 개혁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강단에서 성공과 번영의 거짓 복음이 사라지고, 간증이나 윤리 또는 목회자의 개인 취향에 물든 철학과 같은 인간적인 교훈이 사라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개혁에의 여명이 비춰올 것이다.


교회의 개혁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개혁에 앞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의 개혁, 강단에서의 개혁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의 회복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회 개혁을 이끌기 때문이다.


복음만이 생명을 제공하며, 참되고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들을 거듭나게 한다. 그러한 생명을 가진 신자만이 참 생명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로써 사랑으로 역사하는 참된 믿음을 가진 신자만이 참된 신앙고백과 더불어 신자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교회 개혁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http://rpress.or.kr/xe/367391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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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는 마력이 아니다

변 종 길(고려신학대학원 교수)

 

요즈음 안수 문제로 논란이 심하다. 어떤 교회에서는 안찰 기도로
사람이 죽는 경우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그래서 안수, 안찰의 부작용
이 부각되면서 몇 년 전 총회에서 허용된 안수를 다시 금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문제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무엇이 옳
은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성경에 나타난 안수


먼저 구약 성경에 보면 안수는 여러 경우에 사용되었다. 먼저 야곱
이 자녀를 축복할 때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창 48:14). 그리고
제사장이 희생 제물을 바칠 때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였다(출 29:10,
레 1:4).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고 저주한 사람을 돌로 쳐서 죽일
때에는 먼저 그 말을 들은 자들이 그의 머리에 안수하였다(레
24:14). 그리고 레위인을 정결케 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할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레위인에게 안수하였다(민 8:10).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울 때 모세가 그에게 안수하였다(민 27:18-23).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실 때 안수를 많이 하셨다(마 8:15, 막 1:41,
8:23, 25, 눅 4:40 등). 그러나 손을 대시지 않고 그냥 말씀으로 고치
실 때도 많았다(마 8:13, 9:6, 12:13, 15:28, 17:18 등).

 

그리고 어린 아이들을 축복하실 때에 아이들을 안고 안수하시고

축복하셨다(마19:13-15, 막 10:16). 하지만 사도들을 세우실 때

예수님이 안수하셨다는 기록을 우리는 발견할 수 없다.

 

단지 말씀으로 그들을 세우셨으며 아무런 의식이 없었다

(마 10:1, 막 3:13-15, 눅 6:12,13). 초대
교회에서 맛디아와 바울과 바나바와 실라를 세울 때에도 안수했다
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사람을 세울 때
에는 사도들이 기도하고 안수하였다(행 6:6). 그리고 사마리아의 사
람들이 ‘성령’ 받을 때에 사도들이 기도하고 안수하였다(행 8:17).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도 바울이 안수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
였다(행 19:6). 디모데는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았으며, 그 때 예언
으로 말미암아 은사를 받았다(딤전 4:14; 딤후 1:6 참조). 그리고 사
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라”고 당부했
다(딤전 5:22). 이것을 보면 초대 교회에서 어떤 사람을 직분자로 세
울 때 안수가 일반적 관행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안수 그 자체가 영적인 은사를 전달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
도행전 6장 3절에 보면 초대 교회의 일곱 사람들은 안수받기 전에
이미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였다. 사도행전 13장 3절에 보면 이미 직
분자로 봉사하고 있는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서 금식 기도하고
안수하여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디모데전서 4장 14절에 의하면 예
언과 안수는 은사의 ‘기원’이 아니라 ‘통로’였다. 즉, 안수 자체가 은
사를 가져다주는 원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사를 주시는 하나의 수
단, 통로가 되었다는 말이다.

 

교회사적으로 살펴본 안수


이러한 사도들의 안수 관례는 고대 교회에서 세례와 치유 시, 그리
고 타락한 자와 이단들을 다시 받아들일 때, 결혼과 회개와 임직 시
등에 사용되었다. 임직의 경우에 안수 권리는 오직 감독만 가지고 있
었다. 그리고 안수는 항상 기도와 함께 사용되었으며, 오랫동안 직분
은사를 수여하는 상징적 표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서서히 ‘자
동적으로’(ex opere operato) 역사하는 하나의 성례(聖禮)로 이해
되어 갔다.


루터파 교회는 초기에 이러한 가톨릭의 견해를 배척하였으나 나중
에 그것을 다시 받아들였으며, 심지어 그것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
기도 했다. 이에 반해 개혁 교회는, 안수는 그리스도의 명령이 아니
며 따라서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일치하게 가졌다. 그러나
칼빈과 같은 이는 안수에 대해 그것은 유익하며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기독교 강요」IV,3,16; 또한 Aretius,
Spanheim, Koelman 등), 어떤 사람들은 아무래도 좋은 것으로 생
각하였으나 미신적 사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것의 사용을 억제
하였다(엠던 총회, 도르트레흐트 총회, 미들버르흐 총회; Voetius,
De Moor, M. Vitringa 등).


어쨌든 안수는 임직에 있어서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나 사도들에 의해, 그리고 장로들에 의해 한 마
디도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수에 의해 특별한 직분의
영이 기계적으로 전달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안수는
필요한 은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직분에 요구되는 은사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수는 어떤 직분으로 부름받은 자를 공
개적으로 세우는 것이며, 그 직분을 시작하도록 엄숙하게 취임시키
는 것이다. 그것은 부름받은 자가 적법한 절차를 따라 그리고 하나님
으로부터 보냄 받았으며, 그리고 그 직분에 필요한 은사들을 소유하
고 있으며, 따라서 교회가 그를 그렇게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존경해
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 앞과 교회 앞에 엄숙하게, 공개적으로 선언하
는 것이다(H.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IV, 제4판,
pp.365-367 참조).

 

한국 교회와 안수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는 안수에 대해 마력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목사나 장로 안수식 때 안수를 통해 무슨 영력을 받는 것으
로 생각하는 경향이 은연중에 배어 있다. 마치 안수자들의 손을 통해
영력이 전달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성도들의 관심은 온통 안수
식 자체에 몰려 있다. 이것은 우리의 언어생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언제 목사로 임직받았는가?”라고 묻지 아니
하고 “언제 안수받았는가?”라고 묻는다. 이것은 장로 장립의 경우에
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안수만 받으면 다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안수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목사나 장로로 세움받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목사의 경우에, 그 사람이 합당한 신학 교육을 받았
는지 여부와 충분한 신학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지 여부, 그리고 목사
로서 합당한 신앙과 인격을 소유하고 있는지 여부의 문제이다. 이런
것들은 대개 신학대학원 졸업 여부와 목사 고시 합격 여부, 교회의
청빙 여부로 판정된다. 그래서 이러한 과정을 다 통과했다면 그 사람
은 목사로서의 자격을 갖춘 것이며, 이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안
수는 이제 그 사람이 목사로서 자격이 있으며 교회에서 목사직 수행
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외적 의식이다.

 

따라서 그 이전의 신학 교육과 준비 과정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안수에만 초점을 두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화
란개혁교회에서는 목사 안수식이란 게 따로 없다. 목사 임직식을 할
때 목사나 신학 교수 한 분이 초청받아 와서 설교를 한 다음 내려와
서 혼자서 손을 얹고 간단히 기도함으로 끝난다. 거기에는 무슨 거창
한 안수식도 없고 사진 찍는 일도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목사로
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으며, 합당한 신학 교육을
거쳐 최종적으로 목사고시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
다. 그리고 장로 임직식 때에는 아예 안수를 하지 않는다. 그저 주일
오전 예배나 오후 예배 시에 목사가 장로 임직을 위한 예식문을 읽고
서 장로 후보자를 불러 세운 후 서약 문답을 하고 교회 앞에 장로 취
임 사실을 선포함으로써 끝이 난다. 그 시간은 총 10분 정도밖에 걸
리지 않으며, 노회 임원들을 초청하는 일도 없고 타교회 교인들을 초
청하는 일도 없다. 안수식 같은 것은 아예 없으며 사진 찍는 일도 없
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 문제가 많이 되는 것은 병 고침 곧 치유(治
癒)와 관계된 안수 기도이다. 이런 것은 종교개혁 당시나 그 후의 서
양 교회에서는 거의 없었던 일이다. 따라서 신학적으로 논의가 되지
도 않았다. 이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오순절 계통에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한국의 장로교회에게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은 병을 고치실 때에 안수하실 때도 있
었고 하지 않으실 때도 있었다. 예수님의 병 고치시는 방법은 경우에
따라 다르며 다양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병자에게 안수하신
것은 그 안수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전달되기 때문이 아니라, 연약
한 인간에 대한 긍휼과 연민의 정을 표현하시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병자를 위한 기도에서 안수가 꼭 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는 안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안수는 경
우에 따라 시행할 수도 있고 시행하지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안
수에 마력적인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
이다. 치유의 능력은 전능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지 안수에
게서 오는 것은 아니다.

 

실제적인 지침


따라서 안수의 사용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목회자가 각각의 형편에
서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실천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한국 교회의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목회자는 안수의 무분별한 사용
을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성령의 강력한 충동에 의
해 안수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조심스럽게 안수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안수 자체가 아니라 기도이며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다.


아울러서 우리는 건덕상의 문제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어린아
이들의 경우에는 손을 잡고 기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문제될 것
이 없다. 그리고 남자 성도들의 경우에도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
러나 여성의 경우에는 안수를 피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특별히 젊
은 여성의 경우에는 피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신학적인 문
제라가보다 건덕상의 문제이며 실제적인 지침이다.


그리고 안찰(按擦)의 경우는 성경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없다. 예수
님께서 병자를 고치실 때,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만지신 경우와(마
8:15) 소경들의 눈을 만지신 경우(마 20:34), 그리고 병자의 양쪽 귀
에 손가락을 넣고 침을 뱉아서 병자의 혀에 손을 대신 경우(막 7:33)
등을 볼 수 있지만, 병자들 두드리거나 때렸다는 기록은 발견할 수
없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꺼지 아니하시
는 예수님께서 왜 병들고 약한 환자를 두들기고 때려야 하는지 도무
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안찰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잘못된
것이며 비성경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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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신학저널 Orthodox & Reform theology Journal

 

개혁주의 마을/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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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세계 / 박일민 교수


사람들은 대부분 사후세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영혼은 육체를 떠나서도 과연 존재를 하는 것인가.
또 존재를 한다면,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 것인가 하는 등의 질문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죽음 이후에 대해서 경험을 해보지 못한다.
그리고 죽은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서 분명한 대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교훈을 따라서,
영혼 불멸과 중간기라는 주제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 영혼 불멸

1) 영혼 불멸의 개념

사도 바울께서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다고 했다(딤전 6:16).
왜냐하면 시작과 끝이 없이 영원히 사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피조물을 가리켜서도 죽지 않는다고 한 말씀이 매우 많다.
예를 들어, 예수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한 말씀이나(요 3:16),
마귀와 거짓 선지자와 악인들이 세세토록 영원히 죽지 아니하고 밤낮 괴로움을 받는다고
한 말씀이 그러하다(계 20:10). 그러므로 영생은 항상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가 없다.

영생이라는 말이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에게 사용될 때는 두 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믿는 자의 경우에는, 하나님과 더불어서 축복된 상태를 누리는 것을 영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귀와 악인들의 경우에는, 죽지 않고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것을 영생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의인과 악인의 영생에는 그 내용에서 서로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악인들의 경우는 영생이라고 하지 않고, 영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의인의 영혼이든 악인의 영혼이든 결코 죽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즉 복되거나 저주스러운 상태와는 상관없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만큼은 서로 다를 것이 없다.
바로 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말하고자 할 때, 우리는 영생이라고 하기 보다 영혼 불멸이라고
부른다. 그래야 믿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영생과 구분이 되어지기 때문이다.

2) 영혼 불멸의 증거

사람들은 구체적인  증거를 좋아한다. 그래서 영혼이 불멸함에 대해서도 증거를 요구한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영혼이 불멸함을 애써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들 속에서 영혼이 불멸함에 대한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게 된다.

성경은 죽음을 가리켜서, 흔히 열조에게 돌아간다고 표현한다(창 15:15 등).
이 표현은 조상들의 영혼이 불멸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또 에녹의 승천은 이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해준다. 왜냐하면 히브리서는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었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고 했기 때문이다(히 11:5).

욥은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했다(욥 19:26).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영혼의 불멸을 전제로 한 말이다. 다윗도 같은 의미에서 말하기를,
"나의 의로운 중에 주를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라고 했다(시 17:15).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기를 위하여 기도하던 아들이 죽었을 때,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저에게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고 했다(삼하 12:23).
솔로몬 역시 같은 의미에서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시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고 말했다(전 12:7).

예수님께서는 영혼이 불멸함을 전제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교훈하셨다(마 10:28).
사도 바울께서도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말씀하시면서(고후 5:1),
만일 죽은 자의 부활과 영생이 없다면, 우리는 참으로 불쌍한 자들이 되고 만다고 했다(고전 15:19).

솔로몬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다(전 3:11).
영원을 사모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적인 욕구이다. 사람의 본능적인 욕구이다.
사람의 모든 본능적 욕구들은 각각 그것을 충족시켜 주는 대상을 가지고 있다.
식욕은 음식물을 대상으로 가진다.
부귀욕은 재물을 대상으로 가진다. 명예욕은 지위를 대상으로 가진다.
따라서 영원을 사모하는 욕망도 그 대상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영생이다.
그러므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영혼이 불멸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인기 있던 방송 프로 중에 "전설의 고향"이 있다.
전설의 고향은 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이나 귀신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한국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줄거리나 형식은 다를지 모른다.
하지만 더운 지방에 사는 아프리카 사람, 추운 지방의 에스키모, 서양의 아메리칸 인디안,
동양의 이집트나 인도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지역의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육체를 떠난 영혼의 활동에 대한 생각이 모든 민족에게서 보편적으로 자리잡고 있음은
영혼의 불멸이 분명한 사실임을 반증하는 것이 된다.

사람의 영혼이 불멸함은 천사가 죽지 않음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눅 20:36). 천사는 육체가 없다.
그러나 천사는 사람과 동일한 영혼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동일한 사람의 영혼도 역시 불멸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한편, 영혼이 지닌 특성도 역시 영혼이 불멸함을 말해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영혼은 공간을 차지하는 않는 불가분적(不可分的)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가분적이라는 말은 불변함, 즉 불멸함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2. 중간기

예수님께서는 장차 재림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예수님의 재림은 최후의 심판을 위함이다.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서, 의인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간다. 반면에 악인은 지옥에 던져진다.
그런데 영혼이 불멸한다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이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영혼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가.

우리는 한 개인의 죽음에서부터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의 기간을 중간기(中間期)라 부른다.
그런데 우리는 중간기와 관련하여 두 가지의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만일 중간기가 있다면,
그 장소는 어디일까 하는 것과, 그곳에서는 어떠한 상태로 지내게 될까 하는 것이다.

1) 중간기의 장소

기독교 초기의 성도들은 중간기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다.
주님께서 곧 재림하실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사말도 "마라나타(주께서 임하시니라)"라고 했다.
그러나 임박하게 여기던 주님의 재림 소식은 없고,
주변에서는 많은 핍박들과 다른 이유들로 죽는 자들이 늘어갔다.
그리하여 점차 중간기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사람은 죽어서 곧 바로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잘 믿는 소수의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은 이후에 다시 한 번 고통 속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고 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이러한 생각들은 마침내 중세에 이르러, 천국과 지옥 이외에 연옥이나 림보와 같은 곳이 있다는
교리를 낳게 했다.

중세의 로마 교회는 세례를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다.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세례는 세례를 받지 이전에 범한 모든 죄를 용서받게 해준다고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가급적 시간을 늦추어서 임종 직전에 가서야 세례를 받으려 하는 일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도 중한 죄를 범하게 되면, 세례의 효력을 상실하고
구원에서 멀어진다고 했다. 이러한 주장은 마침내 죽은 영혼이 가게 될 중간기의 장소를 여러 가지로
구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중세의 로마 교회가 말한 중간기의 장소들은 다음과 같다.
세례를 받고, 객관적인 공로를 가진 사람의 영혼은 천국에 들어간다. 그리고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과 중한 죄를 범하여 세례의 효력을 상실한 사람의 영혼은 지옥에 들어간다.
그러나 세례를 받았지만, 객관적인 공로를 가지지 못한 사람의 영혼은 연옥에 들어간다.
그리고 세례를 받지는 못했으나, 구약시대에 살았던 성도의 영혼과 자범죄를 범하기 이전에
죽은 아이들의 영혼은 림보에 들어간다.
이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연옥과 림보라는 곳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용어들이기 때문이다.

(1) 연옥이란 어떤 곳인가

중세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연옥이란 많은 고통 속에서 정화와 연단을 받는 장소이다.
그런데 그 정화와 연단의 기간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기간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도나 제사 또는 성행으로 단축되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중세 교회의 가르침은 외경 마카비 2서 12:38-45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마카비서는 영감된 권?㎏? 가진 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임할만한 근거로 이용되어 질 수가 없다.
그리고 그 구절들 자체가 서로 모순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더욱 신임을 할 수
없게 한다.
연옥에 대한 가르침은 사람의 죄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서만 용서받아진다고 하는 성경의
가르침과 상충된다.
그리고 우리의 죄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가졌던 자기 자신의 믿음에 의해서만 사함을 받는다고 하는
성경의 교훈과도 상충이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연옥 사상은 교회에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부패한 교회로 하여금 면죄부를 팔게 하는 구실을 제공할 뿐이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은 연옥을 사단의 고안물이라고 맹렬히 비난을 했다.

(2) 림보란 어떤 곳인가

림보(Limbus)는 라틴어로 가장자리를 의미한다.
슥 9:11에 나오는 "물 없는 구덩이"를 지옥주위에 있는 지하 동굴이라고 생각하여서
사용하게 된 용어이다.
중세 로마교회는 림보란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지만 세례를 받지 못했던 구약시대의 성도들과
(Limbus Patrum, 선조림보), 세례는 못 받았으나 자범죄가 없이 죽은 어린아이들(Limbus Infantum,
유아림보)의 영혼을 위한 중간기의 장소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벧전 3:18-20과 요한 3:5이 그 근거라고 제시했다.

그러나 이 구절들의 내용은 림보와 거리가 멀다.
벧전 3:18-20은 예수님께서 노아의 입을 통해서 노아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던 사실과,
그들이 그 복음을 듣지 않다가 지옥에 던져진 사실을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요 3:5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그래서 죄 사함을 받은 사람 이외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구원은 결코 세례의식이나 사람의 공로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개신교 안에는 낙원과 음부를 중간기 장소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의인의 영혼은 죽어서 낙원으로 가고, 악인의 영혼은 죽어서 음부로 간다고 한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최후심판이 있은 이후에는 각각 천국과 지옥으로 옮겨지게
된다고 한다.

(3) 낙원이란 어떤 곳인가

예수님께서는 한편 십자가에 달려 있던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눅 23;43).
그러므로 그 강도는 낙원으로 간 것이 분명하다.
그 낙원은 어디일까. 예수님께서는
"내 영혼은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하시고 운명하셨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운명을 하신 후에 가신 곳을 알게 되면,
낙원이 어떤 곳인지를 밝힐 수 있게 된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가리켜서,
흠 없는 어린양이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로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히 9:12). 이 말씀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단번에,
즉 운명과 동시에 즉시로 성소에 들어가셨다.
그 성소는 하늘의 지성소, 곧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천국이었다.
그러므로 그 강도가 간 낙원은 바로 천국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낙원은 다름 아닌 천국의 동의어(同義語)로 사용된 말이다.
눅 16:26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품도 역시 천국의 동의어에 해당된다.

(4) 음부란 어떤 곳인가

성경에는 음부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음부는 악인이 가는 곳이라고 했다(시 9:17).
그러나 의인도 가는 곳이라고도 했다(창 42:38).
음부는 아무런 의식이 없는 곳이라고 했다(전 9:10).
그러나 고통을 당하는 장소라고 했다(눅 16:23).
이것은 음부의 의미가 항상 동일하지가 않음을 의미한다.
한글 개역 성경에는 특별한 구분이 없이 모두 음부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음부는 크게 보아 세 가지의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죽음 또는 죽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둘째는 무덤을 의미한다.
세째는 지옥을 의미한다.
그런데 죽음이나 무덤은 죽은 영혼이 가는 곳이 아니다. 죽은 영혼이 가는 곳은 지옥뿐이다.
따라서 중간기적인 의미의 음부는 지옥과 동일하다.
음부를 죽은 악인의 영혼이 가는 중간기 장소로 보는 것은 음부가 문맥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해석되어야 함을 무시함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가는 중간기 장소로
천국과 지옥 이외의 별개의 장소가 따로 있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의인의 영혼은 즉시로 천국에 간다. 악인의 영혼은 즉시로 지옥에 간다.
중간기 천국과 지옥은 육체가 없다는 점 이외에는,
최후 상태의 천국이나 지옥과 다를 것이 없다.

2) 중간기의 상태

성경에는 많은 곳에서 죽는 것을 잔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영혼이 무의식 상태에 들어감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죽은 사람의 육체 상태가 자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자는 사람들이 깨어나게 되는 것처럼, 죽은 사람도 장차 부활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영혼은 자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영혼은 육체와 더불어서 이 땅에 있었을 때와
동일하게 육체를 떠난 이후에도 의식적인 활동을 계속한다.

죽어 육체를 떠난 이후에도 영혼은 지적인 활동을 한다.
그래서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느껴지던 하나님의 진리를 밝히 깨닫게 된다.
아브라함이나 나사로도 알아본다.
또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기쁨과 위로로 받기도 하고,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의식적인 활동에는 사람에 따라서 각기 차이가 있다.
남보다 더 많이 맞는 자가 있는가 하면, 남보다 더 큰상을 받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상태는 고정이 되어 있어서 변경되는 일이 없다.
기쁨이 고통으로 변하는 일은 없다. 반대로 고통이 기쁨으로 변하는 일도 없다.
또 그 가운데는 큰 구렁이 있어서 서로 오고 가지도 못한다(눅 16:26).

사람의 영혼이 죽음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의식적인 활동을 한다면,
그 영혼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을 수도 있는가.
그래서 필요하다면, 이 세상에 다시 올 수도 있는가.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그 영혼을 불러내는 초혼(招魂)도 가능할 수 있는가.

우리 주변에는 제사에나 꿈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나타나는 경험을 했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심령 과학회와 같은 단체도 있다.
때로는 성경에서 그 실예를 찾아보려는 사람도 있다.
곤경에 처한 사울 왕이 엔돌에 살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 이미 죽은 사무엘의 영을
불러낸 후, 예언을 들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삼상 28:3-25).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마귀의 간교한 술책을 이해하지 못함에서 온 것이다.

성경은 죽은 영혼이 이 세상에서 다시 올 수 없음을 분명하게 말한다.
욥은 "음부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그는 다시 자기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라고 말했다(욥 7:9, 10).
그리고 다윗은 죽은 아들과 관련하여 이르기를,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고 했다(삼하 12:23).
또한 성경은 초혼을 엄히 금지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중에서 용납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잘 알 수가 있다(신18:11).
뿐만 아니라, 신접하는 자는 반드시 물로 쳐죽이라고까지 하셨다(레 20:27).

사람의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육체가 한 번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을 끝내 버리는 것이 아니다.
의인의 영혼은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린다.
악인의 영혼은 지옥에서 영원한 저주의 고통을 받는다.
이러한 상태는 영원히 고정되어 있어, 달라지는 일이 없다.
그 상태는 이 땅에 살아있는 잠시 동안의 삶에 의해서 좌우된다.
그러기에 현재의 삶은 너무나도 값지고 중요하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8년 11월호)  박일민  칼빈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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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改新敎, Protestantism) 개요
- 정진홍 -


16세기초 북유럽에서 중세 로마 가톨릭 교의(敎義)와 제의(祭儀)에 대한 반동으로 태동한 교파.

로마 가톨릭교, 동방정교회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3대 교파의 하나가 되었다. 유럽에서 일어난 일련의 종교전쟁을 거친 이후, 특히 19세기에 이르러 전세계에 다양한 형태로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개신교 운동의 역사>

개신교를 가리키는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이라는 말이 처음 쓰이게 된 것은 1529년 슈파이어 의회에서였다. 이 회의에서 로마 가톨릭 계열의 독일 제후들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와 함께 3년 전 마르틴 루터의 추종자들에게 허락하였던 관용정책의 대부분을 무효화하였다. 1529년 4월 19일에는 독일의 14개 자유도시와 6명의 루터파 제후들이 대표가 된 이 결정에 대한 항의서가 발표되었다. 이 항의서는 자신들이 그 결정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그 결정이 자신들을 구속할 수 없으며 하느님에 대한 복종과 황제에 대한 복종 가운데 어느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면 하느님에 대한 복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또한 온 그리스도교를 포괄하는 공의회나 전독일민족의 총회를 개최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 항의서를 작성한 사람들은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이름은 항거하는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적에 의해 채택되었고 점차 종교개혁의 교의를 신봉하는 사람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독일 밖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독일의 종교개혁 신봉자들은 복음파(Evangelicals)라는 이름을, 프랑스에서는 위그노파(Huguenots)라는 이름을 선호하였다.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은 루터(1483경~1546)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스위스의 울리히츠 빙글리(1484~1531)의 제자들, 나중에는 장 칼뱅(1509~64)의 제자들도 일컫게 되었다. 스위스의 종교개혁자들과 그의 추종자들, 특히 17세기 이후 네덜란드·잉글랜드·스코틀랜드의 추종자들은 개혁파(Reformed)라는 이름을 더 좋아했다.

16세기만 해도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은 주로 종교개혁시대에 나타난 2개의 큰 사상, 즉 루터파 및 개혁파와 관련하여 사용되었으나 17세기초 잉글랜드에서는 영국국교도들이 비정통으로 간주한 사람들, 곧 침례교도들이나 퀘이커교도들과 대비되는 '정통 프로테스탄트'라는 뜻으로 쓰였다. 한편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교인임을 주장하나 가톨릭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단 동방교회는 제외), 즉 침례교도, 퀘이커교도, 가톨릭 성향의 영국국교도 모두를 포괄하는 뜻으로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을 썼다. 유니테리언파에게까지 적용되지는 않았지만,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이 이같이 넓은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700년 이전이었다. 예를 들어 1689년의 영국 관용조례는 '영국국교회를 반대하는 폐하의 프로테스탄트 시민들의 의무를 면제하는 조례'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조례는 잉글랜드에서 '정통 국교반대자'로 알려진 견해들에 대한 관용을 허락하였을 뿐, 유니테리언파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18세기 내내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은 여전히 16세기 종교개혁의 역사적 논거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그 당시의 사전들을 대표하는 새뮤얼 존슨의 사전(1755)은 프로테스탄트라는 용어를 "종교개혁 초기에 로마 교회의 오류에 항거한 사람들을 추종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고 정의하고 있다.

<중세 후기 교회의 상황>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 중세 후기 세계 내의 오랜 발전과 수많은 소요를 배경으로 일어났다. 이 시기를 개관하기는 쉽지 않다. 가톨릭 사가(史家)들은 16세기의 급진적인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자들 이전에 또한 그들과 전혀 무관하게 얼마나 많은 개혁이 일어났는가를 밝히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던 반면, 프로테스탄트 사가들은 종교개혁의 필연성을 밝히기 위해 중세 후기 교회를 극히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아, 결국 종교개혁을 타락한 과거와의 완전한 결별과 같은 것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 새 시대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15세기에 변화를 추구했던 사람들이 '전기(前期) 종교개혁자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그들은 개신교의 선구자가 아니었으며, 후에 나타난 종교개혁 때문에 그들의 중요성이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사건들은 '전기 종교개혁'적인 사건들이 아니었으며, 그 나름의 정체성(正體性)과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학자들은 스페인과 이탈리아로부터 북으로 독일·프랑스·영국 전역에 걸쳐 15세기 교회 내부에 개혁의 발전과 소요가 있었다는 데 대해 항상 의견의 일치를 보여왔다. 이와 같은 개혁과 소요의 일부는 교황·성직자·수사(修士)·수녀 등의 권력남용을 겨냥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경건한 사람들은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1484~92 재위)가 바티칸에서 자신의 사생아들의 결혼의식을 거행하였다고 해서 그를 증오하였다. 그들은 또한 타락했던 교황 알렉산데르 6세(1492~1503)를 멸시하였다. 대중은 교황이 엄청난 재원을 끌어들여 사치스러운 건물들을 짓는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고 이에 분노하였다. 교황에 대한 혐오감은 민족주의 정신이 고개를 들면서 더욱 커졌다. 독일·프랑스·영국 정치에 오랫동안 개입하였던 교황들은 각국의 전제군주들이 새로운 권력을 장악하자 권력약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군주들은 교황과, 대부분의 경우 지역 교회의 성직자 대표들에 대해 이 새로운 권력을 주장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민족의식이 고개를 든 이때에 중세 로마 가톨릭주의의 맥락 안에 완전히 남아 있으면서도 그것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데 참여하였던 새 세대의 신학자들이 나타났다. 오컴의 윌리엄(1349? 죽음)은 프란체스코 수도회 안에서 종교개혁자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 수도회가 대부분 포기했던 청빈의 이상향으로 되돌아가기를 원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개혁의 일부로서 교황 요한네스 22세가 이단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교황권과 제국이 상호 독립적이지만 서로 관계가 있는 정부 혹은 영역으로 보았다. 교회가 이단의 위험에 처할 경우, 평신도들은(제후와 평민 모두) 교회를 구원하기 위해 힘써야 하므로 당면한 개혁에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영국에서는 존 위클리프가 교황의 권력과 중세 교회의 지배력을 약화시켰던 이와 유사한 투쟁에 가담하였다. 위클리프 역시 민족의식을 교회개혁에 이용하였다. 그의 도구는 성서의 도덕률이었다. 위클리프는 이의 번역을 추진하였으며 1380년 통치자와 피통치자가 모두 이 번역본을 볼 수 있도록 조력하였다. 그러나 그는 왕의 귀중한 영적 권위는 계속 인정하였다.

보헤미아에서는 프라하대학의 강사가 되었던 얀 후스가 바로 이 대학을 사치에 물든 성직자들을 비판하는 기지로 삼았다. 그 역시 민족감정을 이용하였으며 교황은 세속의 칼을 사용할 권한이 없다고 논증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대담한 고발 때문에 결국 그는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도덕적 반발과 민족감정을 결합시킨 경건 이외에, 그리스도교 인문주의도 중세 후기 교회에 나타난 또 하나 소요의 징조였다. 이탈리아에서는 로렌초 발라(1407~57)가 자신의 정교한 역사탐구 기술을 이용하여 교황에게 막대한 권력과 넓은 관할지역을 준 문서들이 상당수가 위조임을 폭로하였다. 독일에서는 요하네스 로이힐린(1455~1522)이 성서에 쓰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연구하였으며, 학자들이 교회의 전통적인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투쟁하였다. 네덜란드에서는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1466/69~1536)가 로마 가톨릭교도로 남아 있으면서도 자신의 방대한 지식과 풍자적인 필봉을 통하여 교회의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자기 만족에 빠진 중세 후기 교회를 뒤흔든 또 하나의 요인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327/28 죽음)나 요한 타울러(1361 죽음)의 정신을 통해 꽃핀 신비주의였다. 심오한 헌신의 삶을 살았던 이들은 교회의 제의와 관행들 대부분을 도외시하고 하느님에게 직접 접근하고자 했고 또한 그것을 주장한 추종자들을 얻었다. 마르틴 루터와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이 헌신주의자들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했으며, 그들의 저술을 번역하기도 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고위층 사람들을 공격하였지만, 평민들의 가톨릭주의도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헌신이 미신적이고,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희생시킨다고 보았다. 순례자들이 성자의 유골을 모신 사당을 찾고 교구민들이 성자의 유골을 경외하는 관례들은 일종의 이교(異敎)가 그리스도교로 치장하고 침투한 것으로 여겼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페스트는 죽음에 대한 과도한 공포를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평민들로 하여금 사실상 구원을 팔아먹고 있었던 교회에 착취당하도록 만들었다. 16세기로 접어들면서 유럽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개혁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었다. 그러나 가톨릭교는 그러한 개혁을 향해 스스로를 개방할 수 없었고 그것을 수용할 수도 없었다.


<독일·스위스·프랑스의 종교개혁>

Protestant Reformer Martin Luther 루터의 역할

루터는 이전의 개혁자들이 교회의 생활을 공격하였다면 자신은 교회의 교의를 공격하였고 이 점이 서로를 구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루터 이전의 개혁자들은 성직자들의 죄를 공공연히 비난하였지만, 그는 구원에 대한 스콜라 신학의 도식에 환멸을 느꼈다. 스콜라 신학은 사람들이 고백과 고해성사에 의한 사면을 통해 죄를 하나하나 지울 수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그는 자신이 지은 모든 죄를 기억할 수도 없고 심지어 인지(認知)할 수도 없음을 발견했으며 그것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상처 딱지를 떼어냄으로써 천연두를 치유하려는 것과 같음을 깨달았다. 그는 인간성 전체가 병들어 있다고 믿었던 반면, 교회는 인간이 병들어 있기는 하나 각 개인의 선행으로 악행을 보상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루터는 하느님과 그리스도 앞에 자신이 어떻게 서 있는가에 대해 지극히 솔직하였다. 무지개 위에 앉아 있는 심판자 그리스도가 칼로 나무를 베듯이 저주받은 자를 지옥으로 가도록 선고하리라는 생각은 그를 공포로 가득채웠다. 그는 수도원 생활이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결산 이상의 공덕(功德)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최상의 길이라고 믿었다. 그는 수사가 되었고 엄격한 금욕생활을 하였다. 그렇지만 죄많은 난쟁이와 같은 자신이 하느님의 가차없는 정의와 위엄 앞에 설 수 있다는 확신에 이를 수 없었다. 끊임없이 고해실에 의존하였지만, 그것은 단지 그로 하여금 인간성 전체의 근본적인 죄성(罪性)을 깨닫게 하였을 뿐이다. 그후 그는 인간을 그토록 약하게 만들어놓은 다음 스스로 어찌해 볼 수도 없는 인간을 저주하는 신의 선의(善意)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 루터에게 구원은〈시편〉 연구를 통해서 왔다. 그는〈시편〉22장이 특별한 것을 계시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하면〈시편〉22장에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한 말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는 구절이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바로 그때 그리스도는 아무 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죄많은 인간과 일치시켰기에 하느님으로부터 소외된 느낌을 가졌던 것이다. 무지개 위에 앉아 있었던 심판자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버림받은 그리스도가 되었다. 거기서 하느님의 진노와 하느님의 은혜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였고, 하느님은 내세울 것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느님은 의롭지 않은 사람을 의롭다 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하느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표어가 된 신앙의인론(信仰義認論)의 교의였다.

루터는 1517년 모든 성인의 날에 95개조를 내걸었다. 여기서 그는 3가지 주요논점들을 제시하였다. 첫째는 재정 오용에 관한 것으로, 그는 만일 교황이 독일 민중의 빈곤을 알고 있었다면 그가 치는 양들의 피와 가죽으로 성 베드로 성당을 짓지 않고 재 속에 그냥 두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교의적 오용이었다. 예를 들면, 교황은 연옥에 대한 관할권이 없으며 있더라도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가없이 풀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셋째는 종교적 오용을 공격한 것이다. 예를 들면, 교회의 보물은 복음이므로 성인들의 공로를 기리는 보물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점인데, 교황권이 루터의 입장을 이단으로 선고하였을 때 루터는 이에 맞서 교황들의 무류성과 공의회들의 결정을 부정하고 성서만이 유일한 권위임을 선언하였다.

루터는 여러 지역에서 후원을 받았다. 이미 널리 확산되어 있었던 자유주의적인 가톨릭의 복음중심적 개혁은 성직자들의 축첩, 부당한 재물 취득, 성직 겸임(한 사람이 영국·독일·프랑스 등 서로 다른 지역에서 몇 개의 성직을 차지하는 행위) 등의 도덕적 오용을 바로잡으려 했고, 성자와 그 유물에 대한 숭배, 종교적 순례 등과 연관된 대중의 미신을 조롱하였다. 개혁운동의 대표자들은 어느 곳에나 있었다. 이들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교황 레오 10세가 교황직의 종교적 측면을 심각하게 생각했다면 루터는 급속히 분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레오 10세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1520년까지 루터에게 교황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명령하는 것을 연기하였다. 교황권의 세속화가 루터를 구해준 셈이다. 그리고 루터는 세속화된 교황권을 무너뜨렸다.

1520년 여름 그는 종교개혁의 위대한 선언문 일부를 공표하기 위해 골몰하였다.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을 향한 연설 Address to the Christian Nobility of the German Nation〉은 루터가 여전히 신뢰하고 있었던 황제를 포함한 독일의 지배계급에게 사도의 청빈과 소박함으로 되돌아감으로써 교회를 외적으로 개혁하자고 호소하였다. 교회 개혁을 위해 시민 권력을 향해 외친 이 호소는 황제들이 부적격한 교황들을 폐위하고 대체시켰던 중세 초기의 관행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루터는 교황권이 불과 400년의 연륜을 가졌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말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1073~85 재위)의 교회개혁이 교회에게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 가장 저열한 사제도 가장 훌륭한 왕보다 인류를 위해 더 좋은 일을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교회가 행정 영역에 간섭하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루터는 그리스도교인 행정장관들을 포함해 모든 신자들이 다 사제라는 교의를 가지고 이에 대처하였다. 평신도는 직업상 교구 사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영적으로는 누구나 사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통치자는 그 자신이 사제이기 때문에 비록 교회가 그를 영적으로 파문하더라도 교회를 외적으로 개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가톨릭 개혁가들은 교황권을 적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 것만을 제외하고는 이 교의에 동의를 표할 수 있었다. 이러한 동일시에서는 중세기 종파들의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루터는 성사(聖事)를 다루는 또다른 1편의 논문 〈바빌론 유수 The Babylonian Captivity〉를 썼다. 이 제목은 성사가 교회에 포로로 잡혀 있음을 시사한다. 루터는 성사의 수효를 7개에서 2개로 줄였다. 7개의 성사는 성세성사(세례)·성체성사(성만찬)·고해성사·견진성사·신품성사·혼인성사·병자성사였다. 루터는 성사를 그리스도가 제정한 의식이라고 규정하였다. 따라서 오직 세례와 성만찬만이 엄격하게 성사로 인정되었고 고해는 고백으로 인정되었을 뿐이다.

루터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성만찬에서 사제의 기원 때 빵과 포도주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형된다고 주장하는 화체설(化體說)을 부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그리스도의 몸이 제단 위에 실제로 임재한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방식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은 물체와 "함께, 그 안에, 그 가운데" 존재한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이 제단 위에 존재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모든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모든 곳에 있다면 왜 특별히 그곳에 있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인간의 한계를 고려하여 하느님이 말씀의 선포와 성사의 거행을 자기계시의 두 방식으로 정하였기 때문이다. 거기서 신자들의 눈이 열린다.

1520년 12월 10일 루터는 교황에게 굴복하기는커녕 교회법 사본 1부와 그의 굴복을 요구한 교황의 교서를 불태워버렸다. 정상적인 절차대로 진행되었다면, 그는 즉각 파문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루터의 후견자였던 작센의 제후인 현명왕 프리드리히는 루터에게 공정한 자기변호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루터는 의회로 끌려갔으며 자신의 책들을 부인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다. 만일 그가 성사를 다룬 책을 부인하였다면, 다른 논점들은 협상의 여지가 있었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책의 정당성을 모두 인정하였다. 그러면 그는 자신의 책들에서 펼친 교설들 가운데 일부라도 부인하는지, 또 오랫동안 전해온 가톨릭 교설들을 감히 거부한 그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대해 루터는 우쭐거리지 않고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는 우쭐거리지도 않고, 또 악의를 가지지도 않고 대답하고자 합니다. 나는 성서와 명석한 이성에 의해 유죄평결을 받지 않는 한(물론 저는 교황과 공의회가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그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만) 나의 양심은 하느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을 것입니다. 양심을 거슬러 가는 것은 옳지도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에 나는 어느 것도 철회할 수도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 저를 도우소서, 아멘." 그후 황제는 루터를 황제의 금령 아래 두었고 공식적인 파문칙서가 공표되었다. 이런 상황에 이르자 현명왕 프리드리히는 곧 루터를 은신처로 피신시켰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 성채에서 1년 동안 은신하였다. 이 강요된 은둔 기간에 그는 〈신약성서〉 전체를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번역에서 토착적이면서 날카롭고 힘찬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이것은 루터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었다. 여러 가지 점에서 그의 독일어는 관용구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번역본의 반포만큼 그의 가르침에 대중이 추종하도록 한 것은 없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납득을 하지 못했다. 에라스무스 같은 자유주의 가톨릭 개혁자들은 루터의 역설에, 자신의 성서 해석이 옳다는 루터의 확신에 대해서, 그리고 하느님을 사람이 한 일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어떤 사람들은 선택하고 어떤 사람들은 저주하는 폭군으로 만드는 예정론을 루터가 수용한 것에 대해서 주춤하였다. 독일 민족운동이 붕괴되자 루터의 측근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개신교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였다. 이 개신교의 형태들은 전체적으로 '종교개혁 좌파'나 '급진적 종교개혁' 등으로 다양하게 묘사되고 있지만 어떤 용어로도 명확한 분류는 가능하지 않다.

가장 급진적인 스위스 종교개혁가들 가운데 한 사람은 울리히 츠빙글리였다. 그는 음악을 비롯한 여러 감성적 효과들을 종교의식에서 추방하였으며, 주의 만찬을 기념적·선언적인 행위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칼뱅의 역할

칼빈개신교의 또 하나의 형태는 칼뱅주의로, 이는 프랑스인 장 칼뱅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인문학과 법학 교육을 받았으나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으로 전향한 결과 프랑스를 떠나 도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젤에서 27세의 나이로 〈기독교 강요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초판을 발표하였다. 계속 이 책은 증보되어 수세기에 걸쳐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교과서가 되었다. 그는 의인(義認 justification)과 성서의 유일 권위에 대해서는 루터와 근본적으로 같은 의견을 갖고 있었다. 주의 만찬에 대해서는 스위스 급진파와 루터파 견해의 중간적 입장을 취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이 모든 곳에 임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영은 보편적이며 부활한 주와의 진정한 합일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칼뱅은 음악과 예술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하게 중도적 입장을 취했다. 그는 회중의 시편 찬송을 좋아했는데, 바로 이 점은 프랑스 위그노파, 스코틀랜드와 신대륙 장로교의 특징이 되었다. 예술에 관해서는 성인들의 상(像)과 십자가상(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단순한 십자가는 허용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칼뱅주의가 종교의식에서 음악과 예술에 소원하다는 일반적인 견해가 부정되지는 않는다.

칼뱅의 사상은 루터와 강조점이 서로 다르다. 그의 〈기독교 강요〉는 믿음으로 의롭게 됨에서 시작되지 않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에서 시작된다. 루터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는 도피처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찾은 반면 칼뱅은 하느님의 심판의 공포를 보다 고요하게 명상할 수 있었다. 하느님의 심판은 선택받을 자들에게는 닥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루터는 선택받은 자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그는 그 자신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었고 일생 내내 신앙과 확신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였다. 그러나 칼뱅은 근사치에 가깝고 입수가능한 시금석들을 갖고 있었다. 칼뱅은 지극히 내적이고 또 무행인 거듭남의 경험을 요구하지 않았으나, 후에 칼뱅주의는 원래 칼뱅의 입장에서 벗어나 선택의 표시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뇌했다. 칼뱅에게는 3가지의 시금석이 있었다. 첫째는 신앙고백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츠빙글리와 견해가 같다. 둘째는 엄격하게 훈련된 그리스도교적 품행이며, 이것은 재세례파와 같은 견해이다. 셋째는 성례전에 대한 사랑이다. 유아세례는 반복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가 말한 성례전은 주의 만찬을 의미한다. 칼뱅은 어떤 사람이 이 3가지 시금석을 갖추었다면, 그는 선민(選民)임이 분명하므로 더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종교개혁은 주로 헨리 8세의 정치적 의지에 의해 영국에 퍼졌다. 그는 왕위계승을 둘러싼 곤경에서 헤어나기 위하여 1534년 그 자신이 국교회 수장(首長)이라고 선언하였다. 영국 국교회의 성격과 지위, 로마 가톨릭과의 경쟁이 정치적인 쟁점이었던 300여 년 동안 보다 근본적인 발전은 개신교 교회 내부에서 일어났다. 청교도 혹은 분리주의자로 알려진 스코틀랜드의 존 녹스와 비국교도들은 장로교 및 회중교회 형태의 교회 조직과 예배를 발전시키고 이를 확립하였다.

예배의 단순성과 하느님에 대한 개인의 직접적인 관계를 강조한 영국 청교도는 경건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독일과 동유럽에서 광범위하게 수용된 경건주의는 수많은 종파들과 운동이 생겨나게 했으며 이들의 공통점은 '마음의 종교', 곧 하느님의 은혜를 신자들이 마음으로 느낌으로써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있다. 결국 형제단(Unitas Fratrum) 또는 모라비아 교회(Moravian Church)로 불리는 경건주의 집단은 영국 사람 존 웨슬리에게 영감을 주어 감리교 운동을 창시하게 하였다. 이 감리교 운동은 복음주의로 알려진 보다 일반적인 현상의 주요표현이었다.

옥스퍼드의 링컨 칼리지 학생시절에 웨슬리는 성서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학생단체를 결성하였고, 선교를 위해 그루지야를 여행했으며, 모라비아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 경건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일생을 영국에서 복음주의적 설교를 하는 데 바쳤다. 그는 분리를 의도하지 않았으나, 그 당시 영국 국교회의 교구체계는 자유로운 복음설교와 평신도 설교자에 관한 웨슬리의 계획을 수용할 수 없었다. 결국 1744년 웨슬리는 제1차 설교자대회를 개최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은 감리교협회의 치리기관인 연례 대회가 되었고, 1784년에는 합법적인 지위를 인정받게 되었다.

감리교 운동은 프로테스탄트 정통주의가 조금은 소홀히 여기는 감정과 양심을 중시하였다. 감리교 운동은 은혜의 교의에 새롭고도 헌신적인 자극을 주었으며, 한때 경건주의에서 나타났으나 17세기 중반 이에 대한 반동이 일어났을 때 일시적으로 쇠퇴한 바 있던 도덕적 진지함을 중시하는 전통에 합리성을 부여하였다. 18세기의 복음주의 운동은 가장 위대한 찬송가 작사가들, 즉 필립 도드리지(1702~51)와 찰스 웨슬리(1707~88)를 낳았다.


미국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유산

미국혁명과 프랑스 혁명은 서구사회의 역사와 그 안에서 발전한 개신교 운동의 역사를 변화시켰다.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규정한 미국 헌법은 식민지시대의 유산이었던 자유로운 교회가입의 정신, 유럽에서 끊임없이 도래한 이민자들의 종교적 혼합, 영국에서 지배했던 '교회와 왕'의 동맹에 대한 반작용, 계몽주의의 세속 정신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랑스 혁명 및 나폴레옹과 더불어 세속의 국가이념은 수많은 유럽 자유주의자들, 특히 로마 가톨릭 국가들의 반성직주의자들의 이상이 되었다. 미국의 유형은 나폴레옹의 유형보다 유럽 개신교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국교화된 개신교 교회에 익숙했던 독일·스칸디나비아·네덜란드·스위스·영국·스코틀랜드의 세속국가들에서는 한동안 국교 폐지의 강력한 요구가 없었다. 이 모든 나라에서 독립교회 혹은 비국교도 교회의 교인들은 19세기 동안 완전한 관용과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개신교 국가가 아닌 곳에서는 19세기 동안 국가와 국교회 사이의 형식적 연계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예외가 있다면, 영국국교회가 소수파로 존재하였던 아일랜드(1871)와 웨일스(1914~19)뿐이었다. 그러나 국교회는 최소한 외적이고 역사적인 형태로 영국·스코틀랜드·스칸디나비아 등 3국에 남아 있었다.


재통합을 위한 운동

종교개혁 이후 재통합을 향한 가장 중요한 법령이 제정된 것은 19세기초였다. 17세기 후반 유럽의 국가들은 한 교파 이상을 허용하면서 서서히 만인에 대한 관용 쪽으로 움직여 그들이 훌륭한 시민인 한 종교적 관용을 베풀었다. 한편 그리스도교 지도자들, 특히 새로운 합리주의 학파, 혹은 교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주의 학파의 지도자들은 개신교도들을 서로 분리시켜온 교리들이 그들이 동의한 진리보다 중요하지 않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개신교 팽창의 시대

이런 형태로 세속국가는 개신교(그리고 로마 가톨릭)의 팽창과 다양성을 지원한 셈이지만 동시에 모든 교회들과 긴급한 새 문제들을 놓고 대결하게 되었다. 헌법으로 국가와 종교를 분리시킨 미국의 유형은 과거의 회중교회 전통과 계몽주의의 이념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그 의도가 반종교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 유형은 보다 역사가 깊은 유럽 교회들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종교개혁 이래로 국가와 교회가 동맹관계에 있었던 개신교 국가들에서 그 효과는 이중적으로 나타났다. 첫째, 국가는 그 지역의 대표적인 교파들에 대해 더욱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둘째, 국가교회는 모든 형태의 국가 통제로부터 독립을 얻기 위해 더 강력한 압력을 가하게 되었다. 루터교가 지배적인 독일에서는 19세기 중반에 독립을 향한 강력한 운동이 나타났다. 스코틀랜드의 복음파 운동은 목회자들을 교구에 임명하는 것과 관련하여 국가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였다. 이 요구안을 왕실과 정부가 거부하자, 거의 절반에 가까운 스코틀랜드 교회는 토머스 찰머(1780~1847)의 지도 아래 국교회를 떠나 스코틀랜드 독립교회를 창설하였다(1843). 이 두 교단은(1929년 최종적으로 재통합될 때까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계속 유지되었다. 스위스에서는 개혁파 신학자 알렉상드르로돌프 비네(1797~1847)가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위해서 압력을 가했으며 1845년 자유교회(Free Church)를 창설하였다.


세계에서 미국 개신교 영향력의 향상

16세기 이래 개신교 정치권력의 두 중심은 독일과 영국이었다. 프로이센의 영향력 아래 독일이 통일되고 영국이 세계적인 세력으로 등장함에 따라 19세기에는 개신교의 정치적 역량이 종교개혁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했다. 그러나 1860년경 제3의 세력이 미국에서 출현하였다. 1820년 이후 미국의 개척 상황은 다양한 개신교 세력을 확장시켰고, 1832년 부흥운동집단들로부터 형성된 그리스도의 제자회와 같은 교파들이 등장하였다. 이와 때를 맞추어 개신교 교파들은 미국의 경계를 넘어서서 그들의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미국 이민자들의 상당수는 로마 가톨릭교도였으며, 따라서 한동안 미국에서 가장 큰 단일 교파는 로마 가톨릭교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지도력과 문화의 기조는 앵글로색슨적·자유주의적·개신교적인 것으로 유지되었다. 대체로 루터파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독일인들과 스칸디나비아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함에 따라 미국 루터교가 확장되었으며 마침내 루터교의 본산지인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에 버금가는 비중을 지닌, 루터교적 생활과 사상의 중심지가 되었다. 루터교의 지도자들은 대체로 유럽의 경건주의 집단들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미국의 루터파 교회는 독일 교회보다 더 보수적인 신학과 계율을 갖게 되었다. 미국 그리스도교의 부흥운동은 19세기 내내 계속되었으며, 개인적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개념이 미국적인 생활방식에 깊이 침투하게 하였다.


선교의 확산

독일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세력, 미국 세력의 증가, 유럽에서 일찍이 보지 못했던 오랫동안의 평화 등으로 인해 개신교 교회들은 가장 위대한 팽창의 시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새로 생겨나는 도시들에서 개신교 교회들은 전례없는 규모로 사회봉사를 전개하였다. 병원, 고아원, 금주운동, 노인보호, 젊은이들과 성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확대, 교회학교, 도시 빈민지역에서 청소년 및 성인 클럽 운영, 19세기 새로운 도시생활이 필요로 하는 무수한 조직체들의 설립이 그것이다. 개신교 교회들은 프랑스나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지 않은 아프리카의 모든 지역에 개신교를 효과적으로 전파함으로써 남아프리카에서는 반투족이 주로 개신교 교인들의 동맹체가 되었다. 인도에서는 영국과 미국의 선교사들이 신생 인도 그리스도교 교회들의 힘을 끊임없이 증가시켰다. 중국의 그리스도교는 항구도시와 17세기 로마 가톨릭 선교의 잔류자들에게 국한되어 있었으나, 영국이나 미국의 재정 지원과 중국내지선교회 설립의 재정 지원을 받았던 다양한 복음파 집단들은 중국 내지(內地) 깊숙히 들어가 회중을 만들었다. 일본은 1630년 이래 그리스도교에 대해 폐쇄적이었으나, 1859년 재개방 이후 미국과 영국의 선교사들이 일본 그리스도 교회들을 창설하였다. 미국 선교사들은 중앙·남아메리카에 개신교를 소개하였다. 주요한 개신교 교파들(루터교·장로교·성공회·회중교회·침례교·감리교)은 모두 세계적 규모의 단체로 발전하였으며, 자신들의 조직체를 여러 나라의 극히 새로운 요구들을 충족시키도록 조정하는 데 상당한 긴장을 겪었다.


19세기 개신교가 직면한 새로운 문제들

19세기(그리고 그 이후)에 교회 비판은 2가지였다. 하나는 사회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적(知的)인 것이다. 급속한 도시성장과 공업발전은 종교생활과 소원한 프롤레타리아를 창출하였고 많은 정치 지도자들은(특히 유럽에서), 교회는 노동계급을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사회질서의 보루라고 주장하였다. 초기 형태의 사회주의의 일부는 무신론적이거나 최소한 이신론적이었으며, 교권과 왕권 사이의 동맹을 의심하는 만큼 독립교회들에 대해서도 커다란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카를 마르크스(1818~83)와 같은 사회·경제 사상가들은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며 인류로 하여금 자신의 운명에 만족해서는 안되는 데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만족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견해에 대한 응답으로 가톨릭과 개신교의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에서 '그리스도 사회주의자들'이 출현하였다. 그들은(적어도 이론적으로) 노동자들이 사회적·경제적 정의를 누릴 권리를 갖고 있으며, 그리스도교인이라면 노동자들을 위해 더 많은 정의를 이룩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들을 향해 양심적으로 일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견해를 제외하면, 그리스도교 사회주의 관점과 이념은 정치적·신학적인 면에서 서로 크게 달랐다. 베를린의 왕실 설교자였던 아돌프 슈퇴커(1835~1909)는 반유대인적인 급진적 정치가였다. 영국의 성직자이자 소설가였던 찰스 킹슬리(1819~75)는 노동계급을 깊이 동정하고 이해했던 온정적인 보수주의자였다. 그리스도교 사회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심오한 인물은 프레더릭 데니슨 모리스(1805~72)였다. 그는 1853년 추방당할 때까지 런던 킹스 칼리지의 신학자였으며, 그후 런던의 목회자로 있다가, 말년에는 케임브리지대학 도덕철학 교수였다.

영국과 미국에서 소수의 성공회 신학자들의 지적인 지도력 못지않게 노동자들의 종교를 위해 많은 공헌을 한 것은 개신교급진파, 특히 침례교와 원시감리교였다. 어떤 경우에는 이들의 노력으로 사회주의 정당들이 그리스도교인들의 표를 얻을 수 있었다. 또 그들은 그리스도교인 유권자들이나 정치가들에게 실제로 사회주의 정당에 표를 던지지 않더라도 복지국가로 이끌어가는 정책을 채택하도록 설득하였고, 한편으로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더 많이 의식하도록 교육하였다. 미국에서 사회복음은 19세기말에 교회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사회복음의 가장 영향력있는 지도자는 침례교회 월터 라우셴부쉬(1861~1918)였다. 가톨릭 국가들에서는 그리스도교인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자신의 이름에 그리스도교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많은 정당들이 나타난 데 반해, 개신교 국가들에서는 모든 정당들이 그리스도교인 유권자들에게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고, 세속적임을 표방한 정당들이 정치적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20세기의 개신교>

개신교의 흐름

1914~18년의 전쟁은 유럽이 자신의 문명에 대해 품고 있었던 이미 쇠잔해진 자기만족의 환상을 깨뜨렸다. 이 전쟁은 그리스도교 국가들 사이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그리스도교를 약화시켰다. 공식적으로 무신론을 표방한 정부가 1917년 러시아에서 권력을 장악하자 그리스도 교권 세계에는 새로운 부정적 압력이 가해졌으며 서유럽과 미국에서는 사회적 갈등과 노동계급의 갈등이 첨예화되었다. 그후 40년 동안 개신교 교회들은 엄청난 손실을 감내해야 하였다.

1933~45년 동안 권력을 장악한 아돌프 히틀러 통치하의 독일은 유럽을 볼셰비즘의 위협으로부터 구원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이 때문에 나치는 초기에 많은 독일 교인들에게 환영을 받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환멸이 그 뒤를 이었다. 1933년 가을부터 교회문제(특히 유대인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 교회에서 직책을 맡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아리안 조항)에 관해 정부와 협력하고자 한 교인들과 마르틴 니묄러의 지도 아래서 교회문제에 관해 정부와 협력하지 않으려던 교인들 사이에 당파적 분열이 일어났다. 국가의 보조를 받는 남부(바이에른과 뷔르템베르크) 루터교 교회들의 지원에 힘입어 니묄러 그룹은 고백교회(Confessing Church)를 형성할 수 있었다. 고백교회가 1934년 5~6월에 바르멘 노회(老會)를 소집하면서 교단의 분열은 분명해졌다. 한동안 고백교회는 독일 전역에서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 정부가 교회성 장관 한스 케를 휘하에 공리공론적인 성격이 적었던 교회 정부를 수립하자 고백교회는 이 정부에 협력하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교회 정부는 나치 정부가 강제로 세운 것이므로 협력할 수 없다는 니묄러파 사람들로 분열되었다. 바트 왼하우젠 노회(1936. 2)에서 고백교회는 다시 분열되었으며 다시는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없었다. 그후 특히 극단적 나치주의자들이 히틀러 정권의 완전한 통제를 확고히 하였던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에 교회들은 점증하는 압력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말기에 일부지역에서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게 되었다. 뷔르템베르크의 주교 테오필 부름은 나치 정권의 비인간적 행위에 저항한 지도자였다. 하인리히 그뤼버 목사는 체포될 때까지 유대인들을 피난시키고 보호하는 뷔로 그뤼버(Büro Grüber)를 운영하였다. 몇몇 교회 지도자들, 특히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치 정권에 대한 저항에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전쟁이 끝나자 러시아 군대는 동유럽을 장악하였으며 독일은 분단되었고 이 지역의 모든 교회들은 억압을 받았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발트3국(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에서 소개(疏開)되거나 추방당했다. 루터교 공동체들은 그곳에 남아 있었으나 스탈린 통치하에서 특히 심한 박해를 받았다. 트란실바니아(루마니아)의 루터교도들과 헝가리의 개혁파 교도들은 심한 박해를 덜 받았지만, 그 수효는 크게 줄었다. 신학자 요제프 흐로마트카의 지도를 받았던 체코슬로바키아의 개신교도들은 유럽의 다른 지역 개신교도보다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과 더 많은 대화를 지속하는 데 성공하였다. 개신교에 가장 큰 손실은 독일 분단이었다. 승전국들의 결정에 따라 예전에 독일어권이었고 대부분 루터교가 성했던 넓은 지역이 폴란드로 넘어갔으며, 독일인 약 800만 명이 추방당했다. 1945년에 구성된 동독(독일민주공화국)정부는 비텐베르크와 개신교의 고향이 되는 지역 대부분을 포함하였다. 동독은 마르크스주의 정권이 대부분 개신교도들(70%)인 주민들을 통치한 유일한 국가였다. 한동안 루터 교회는 동독과 서독 사이의 주요연결고리였다. 루터 교회의 연례모임인 '교회의 날'(Kirchentag)은 잃어버린 독일 통일의 유일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짐으로써 동독 교회들은 고립되었다. 자금·교육·교회건축 등과 관련된 정부의 압력, 민족적이고 반그리스도교적인 형태의 청년운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독 개신교도들은 용감하게 활동하였으며 성공을 거두었다. 1967년 10월 31일 종교개혁 450주년 기념식은 개신교 교회가 수많은 사람들의 정서를 얼마나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1917년의 혁명 이전만 해도 철저한 정교회 국가였던 러시아는 혁명 이후 40년 동안 침례교 공동체들이 성장하였다. 침례교 조직의 유연성과 단순성은 대처하기 어려운 법적 조건 아래서도 적절히 활동할 수 있게 하였다. 침례교 공동체들은 1953년 스탈린이 죽은 이후 몇 년 동안은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으나 1960년 이후 다시 예전과 같은 억압과 박해를 받았다.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겪은 물질적 손실과 1947년 이후 영국의 종말은 과거 영국이 지배하던 지역들의 개신교 교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영국은 더 이상 해외 교회들에 과거와 똑같은 규모로 자금과 인적 자원을 제공할 수 없었으며, 일부지역에서는 교회 정부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지도자들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다른 지역들에서는 영국의 지위가 변화됨으로써 그동안 느린 속도로 진행되었던 지도력의 변화과정이 촉진되었다. 부족한 재정 및 인력자원의 일부는 미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보충되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더 이상 유럽 사람들의 눈으로만 보지 않고, 부분적으로는 그리스도교 과거에 대한 상이한 태도에서 비롯된 조급함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지도되는 이른바 젊은 교회들이 세계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 점은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한편, 기술발전 시대의 세속화 추세는 낡은 유럽 교회들을 공격하였으며, 젊은 교회들이 목회활동을 펼치는 지역에서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개신교, 이를테면 서남아프리카나 나미비아의 루터교와 남아프리카의 성공회를 비롯해 남아메리카와 아시아의 오순절 복음주의 교회의 성장은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손실을 보충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지역의 개종자와 인구 성장은 개신교 교회의 범위와 기질을 변화시켰고 그 규모도 증가하였다.

개신교의 종말이 예견되었던 세계 여러 지역들에서도 개신교는 놀랍게도 살아 남아 다시 등장하였다. 1948~49년 중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자 중국에서의 개신교 선교는 결정적으로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1951년에 이르러 중국에서는 유럽인 선교사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며, 중국 교회는 외부 지원 없이 홀로 서지 않으면 안되었다. 중국 교회는 가혹한 억압에 시달렸으며, 특히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이른바 문화혁명 시기에 더 심했다. 중국 교회는 더 이상 복음을 전파할 수 없었고 생존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기와 1980년대에 중국이 서방을 향해 부분적으로 다시 개방하고 종교와 언론의 자유를 더 많이 허용하는 신중한 조치를 취하면서 중국 개신교도들과 서방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접촉이 이루어졌다. 중국에서는 수백만 명의 개신교도들과 그밖의 교파에 속한 그리스도교인들이 과거 20년 동안 가혹한 억압과 박해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들의 미래가 아무리 불확실하다 하더라도 그들은 세계 교회들 가운데서 생동적인 집단을 대표하고 있다.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형태의 개신교

20세기 개신교의 가장 중요한 운동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수적이라고 부르는 토양에 뿌리를 두고 있었으며, 그 토대도 부분적으로 보수반동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물론 이 운동들에 가담한 모든 구성원들을 보수주의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의 진보적이고 왕성한 신앙표현은 보다 급진적인 외양을 띠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 가운데 3가지 주요운동들은 보통 오순절운동·근본주의·복음주의라고 일컬어진다. 오순절운동은 개신교가 역사적 본거지인 유럽을 넘어서서 확산하는 데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오순절운동

이 운동은 20세기로 접어들 무렵 미국에서 웨슬리파 성결운동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1901년 캔자스의 토피카와 1906년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이 운동을 특징짓는 다양한 현상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운동의 핵심은 '방언'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스스로 '복종'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억제없이 하는 말의 형태이다. 그들이 말하거나 노래하는 음절들은 남이 알 수 없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들이 첫 오순절 때의 예수의 제자들처럼 인식가능한 외국어로 말한다고 주장했고 거기서 이 운동의 이름이 비롯되었다. 오순절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물의 세례를 넘어서는 '제2의 세례'를 받아야 하며 이를 통해 성령이 그들에게 임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방언으로 말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기도 하며 예언도 한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다른 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기적적인 치유가 사도 시대 이후 중단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치유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의 오순절운동은 '성서의 띠'인 남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았고, 농촌의 가난한 백인들이나 도시의 흑인들 사이에서 발전하였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하느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 등 급속하게 성장한 교파들을 통하여 가장 가시적인 형태의 개신교 가운데 하나로 등장하였으며, 점차 중간계층에게로 수용되었다. 1960년 이후 오순절운동은 성공회·루터교·장로교와 같은 그리스도 교회의 주류를 이루는 교회로 확산되었으며, 이 교회들에서 오순절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 운동을 '은사운동'이라고 일컫는 경우가 많다.

오순절운동은 카리브 연안, 남아메리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지역에서는 수많은 예언 운동들이 분출하였으며, 그리스도교인들은 감성적 형태의 예배와 치유활동을 받아들였다. 대부분의 경우 오순절운동은 식민주의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던 이 지역국가들에서 민중에게 희망을 가져다주는 가난한 사람들의 종교였다. 1세기 전 선교사들이 이룬 토대 위에 집을 지은 오순절운동가들은 일부 해방운동들과는 달리 반미적이거나 반유럽적인 경우가 거의 없었고 '피안'(彼岸)을 강조하여 정치를 회피하거나 보수적 심지어 반동적이기까지 한 정권들과 손을 잡았다.

근본주의

2번째 주요운동인 근본주의는 19세기 후반 '전천년왕국설'(前千年王國說)과 성서무류성을 다소 합리주의적으로 변호한 사상을 서로 결합시켰다. 이 운동의 이름은 1910~15년 미국에서 발간된 〈근본주의자들〉이라는 소논문에서 따온 것이다. 근본주의는 미국에 있던 교파간의 분쟁 때 형식적이고 호전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1919~20년에 공식인정을 받았다.

근본주의가 발흥하게 된 가장 분명한 원인은 성서의 고등 비평과 다윈의 진화론이 확산되어 보다 자유주의적인 개신교 교회들에 수용된 일이다.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은 이 두 운동이 침례교와 장로교 북부 지회의 신학교와 사무국, 선교부, 설교단들을 전복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근본주의의 대가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진화설을 부인하고〈창세기〉의 기사가 과학적이라고 옹호하였던 1925년 스코프스 재판은 침례교와 장로교 간의 교파투쟁이 절정에 이르렀던 때와 같은 시기에 벌어졌다.

근본주의자들은 정치투쟁에서는 패배하였지만 그들의 성서학교와 라디오 프로그램, 출판사업은 살아 남았다. 1940년대 초반에 그들은 재결집하여 서로 경쟁력 있는 몇 개의 근본주의 조직체를 결성하였다. 이 조직체들은 추종자들을 얻었고, 남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사기도 드높아지면서 분명한 자기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대체로 수동적이던 정치적 태도를 버리고 개방적 참여로 특히 1980년과 1984년에 로널드 레이건의 대통령 유세를 지원하여 방향을 바꾸었고 성공을 거두었다. 근본주의적 복음전도자 제리 폴웰이 창설한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와 같은 집단들은 텔레비전 전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근본주의자들은 정치적 역량을 모아 낙태반대, 공립학교에서 기도를 허용하는 헌법 수정을 지원했으며, 이스라엘의 이상과 강력한 국방예산을 지지하였다.

복음주의

수십 년 동안 복음전도자 빌리 그레이엄과 같은 인물들의 목회와 〈크리스천 투데이〉 등의 잡지를 중심으로 활동한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이 집단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 대속(代贖), 예수의 육체부활 등의 주요교리에서는 근본주의와 일치한다.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성서 무류설을 주장하지만,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은 점차 그것이 과연 성서의 권위에 대한 신앙을 주장하는 최선의 방법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어왔다. 근본주의가 강조하는 전천년왕국설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가졌다.

복음주의자들은 근본주의자들보다 온건했다. 그들은 그 본질상으로는 고전적인 형태의 근본주의자들과 같았지만 그 스타일은 달랐다. 그들은 근본주의자들이 문화에 대해 너무나도 부정적이고, 종파화되었으며 무례하고 남을 몰아세우며 비판적이라고 생각하였다. 1942년 복음주의자들이 전국복음주의협의회를 세웠을 때, 그들은 그들이 중도파와 자유주의자들을 공격했던 것만큼 근본주의 우파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좋은 태도를 지닌 근본주의자들로 보기보다는 19세기 개신교의 주류를 유지하는 사람들로 보기를 더 좋아했다.

이를 위하여 복음주의자들은 점차 문화·사회·정치 세계에 다시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성서학교를 짓는 대신 자유로운 인문대학을 지원하였고 일부 복음주의자들은 심지어 급진적인 정치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으며, 보수적인 개신교가 군국주의 및 자유 분방한 자본주의와 스스로를 지나치게 일치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또한 미국과 그밖의 여러 나라에서 상당한 정치력을 갖게 되었다.

복음주의자들은 에큐메니컬 경향을 띠고 있었다. 빌리 그레이엄은 가톨릭 지도자들과 주류 개신교 지도자들이 자신의 강단에 서는 것을 환영하였으며, 근본주의자들이 기피했던 여러 종파의 그리스도교인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근본주의자들과 오순절운동가들이 제3세계에서 동반자를 구했다면, 복음주의자들은 국제 운동들을 형성하고 많은 나라의 그리스도교인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대회를 개최하였다.

근본주의자들이 교회로부터 갈라져 나와 그들 자신의 교회에 칩거하는 데 반해, 수백만 복음주의자들은 주류를 이루는 교파들과 지속적인 연관을 맺으며 점차 완전한 주류를 이루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그들의 독특한 교리와 그리스도를 증언하고자 하는 열정을 생동적으로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개신교 내의 신학운동

개신교 신학 전통 안에는 모종의 반작용도 관찰된다. 이러한 반동은 부분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자유주의에 대해 전반적인 의문이 제기된 데서 비롯되었으며, 특히 후대의 발전과정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이용해 그들 자신의 사회관을 정립하고자 했던 나치에 대한 반작용에서 비롯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에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를 인간이 스스로 경험하고 있다고 믿는 한계로 축소시키고, 객관적인 진리를 주관적인 감정으로 환원한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에 직면하였다. 키에르케고르는 스스로 자유주의자이면서도 자유주의 신학을 가장 맹렬히 비판한 사람이다. 영국 옥스퍼드 운동의 최초 회원들, 전통 복음파, 성서의 무류한 말씀을 고수하다가 20세기에 들어와 근본주의자들로 지칭된 많은 사람 등을 포함한 모든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똑같은 이유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반대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자유주의 진영 안에서도 반작용이 일어났다. 1918년부터 바젤의 카를 바르트와 취리히의 에밀 브루너는 종교적 경험을 강조하는 모든 신학들을 반대하는 운동을 지도하였다. 신정통주의라고 하는 이 신학운동은 유럽과 미국의 개신교 사유(思惟)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바르트와 그의 제자들은 그들의 활동이 성서의 참된 지상권(至上權)을 재주창하고 종교개혁의 진정한 원리들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미국에서 라인홀드 니부어는 사회와 인간에게 적용된 자유주의 그리스도교 철학만큼 이에 반대하는 것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옛 신학자들이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독일 마르부르크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이 미친 영향에서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그는 〈신약성서〉의 핵심 진리를 드러내고 신앙에 대한 〈신약성서〉의 의의를 보다 완벽하게 밝힐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신약성서〉의 '비신화화'(非神話化)를 시도하였다. 나치 독일을 피해 망명한 파울 틸리히와 같은 신학자들은 유럽의 사태 발전을 미국인들에게 해석해주었다.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그것을 발언한 위대한 신학자들의 세대를 넘어서 지속되지 못했고 1960년대 중반 이후의 개신교 신학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비록 위르겐 몰트만 같은 몇몇 신학자들이 신정통주의의 요소들을 취하여 이들을 '희망의 신학', '정치신학', '혁명의 신학' 혹은 '해방신학 ' 등 다양한 운동과 결합시키기는 하였지만, 이제 유럽은 새로운 신학운동의 주도권을 잃었고, 하느님이 억눌린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는 사실의 증언을 강조하는 제3세계 신학자들과 성서를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미국의 여성·흑인 신학자들은 과거의 강단신학에 내장되어 있었던 가부장주의·엘리트주의·인종차별주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해방신학을 채택하고 있는 운동들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전반적으로 보아, 이 운동들은 개신교 사상을 특수화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의 한 접근법은 문화적 상황들을 활용하는 것으로 이는 아프리카 신학, 아시아 신학, 여성신학·흑인신학을 등장시켰다. 이들 신학에서는 성서해석이 성서를 읽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집단이 갖고 있는 '전이해'(preunderstanding)에 의해 착색된다고 생각되었다. 또 하나의 접근법은 '이야기 신학'에 초점을 맞추어 추상적인 신학에서 사람 중심의 구체적 이해로 나아가려는 노력이었다. 오순절운동과 근본주의의 발흥은 개신교 전반에 걸쳐 성령론과 종말론에 관한 새로운 관심을 일으켰다.

에큐메니컬 운동

이 운동은(비록 동방정교회가 곧 참여하기는 하였지만) 본래 개신교의 운동이었으며, 초기에는 개신교 사고가 이 운동을 주도하였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주로 ① 세계 전역에 걸쳐 이루어진 교통수단의 발전과 인구이동으로 여러 교파들이 전례없이 뒤섞이게 된 점, ② 전통적인 교파들의 세계적 확산, ③ 미국 내 종교의 다양성과 이와 같은 다양성에서 비롯된 문제점, ④ 아프리카 및 아시아에 비교적 근래에 세워진 교회들과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사가 아닌 유럽 역사의 사건에서 비롯된 장벽들에 대한 경멸 등에서 비롯되었다. 선교활동들은 항상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미국의 감리교 선교지도자 존 R. 모트는 선교여행을 통해 다양하고 전반적인 노력들을 단일한 조직으로 전환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는 선교를 향한 열정과 그리스도교 일치에 대한 소망을 대표한 사람이었다. 1910년 에든버러 대회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효시인 세계선교대회였다. 이 대회로부터 구체적인 생활태도와 사업문제를 다루는 협의회(스웨덴 루터교의 대주교 나단 죄더블롬이 지도)와, 신학자들이 그들의 신학적 차이를 호의적인 태도로 검토하는 신앙과 직제(職制) 협의회가 발기되었다. 초창기에 로마 가톨릭은 이 운동에 참여하기를 거부하였고 동방정교회도 서방 디아스포라 유배 이후에야 참여하였다. 나치 정권은 독일인들의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를 계속 허용하지 않았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새로운 분위기가 나타났고 1948년 암스테르담 대회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가 공식 결성되었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대부분의 자금과 상당부분의 추진력을 미국 사람들에게 의존했으나 본부는 제네바에 두었고 초대 총무인 네덜란드 개혁파 교회의 행정가 W.A. 비서트 호프트의 지도 아래 이 운동이 성공하려면 분열된 유럽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함을 결코 잊지 않았다.

1948년 이후 에큐메니컬 운동은 개신교도들로 하여금 동방정교회와 로마 가톨릭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하도록 이끌었다. 1958년 요한네스 23세가 교황이 된 후 마침내 로마 가톨릭교도들도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비록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의 규정들이 대부분 개신교도들에게 수용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는 1870년의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규정들과는 달리 여유가 있었으며, 16세기에 쌓여진 가장 높은 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던 일반적으로 자유주의적인 개신교도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교의·예배·조직 : 종교 개혁자들과 그 후계자들의 공통된 원리와 관행>

신앙의인(信仰義認)

개신교 지도자들은'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즉 신앙의인)는 개신교의 가르침이 개신교를 당시 로마 가톨릭과 구별해준다는 데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가르침은 개신교 역사 전반에 걸쳐서 개신교의 핵심이 되어왔다. 교단들마다 약간의 변용이 있기는 했지만, 이들이 공유하는 신앙의 핵심은 쉽게 분간할 수 있다.

개혁자들 눈에 새로운 상황은 자유의 상황이었다. 가톨릭교도들은 스스로 충분한 공로를 쌓고 선행을 하였는지, 또 하느님의 대리인인 교회를 기쁘게 했는지를 두려워한 데 반해, 개혁자들의 견해는 신자들로 하여금 이 귀찮은 질문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게 하였다. 그들은 한편으로 죄와 죽음, 악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되었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구원을 성취하였다거나 최소한 자신의 구원을 위해 지대한 노력을 했다는 믿음과 짝을 이루는 교만, 곧 사람을 노예화하는 교만으로부터도 해방되었다.

이러한 견해는 개혁자들에게 그들의 적인 로마 가톨릭교도들이 항상 지적하는 심각한 문제를 남겨주었다. 즉, 의인(義認)과 자유에 대해 그렇게 가르친다면 선행을 강조하는 성서의 가르침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였다. 공관복음서(마태·마가·루가)에 따르면, 예수 자신은 언제나 사람들을 더 선하게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으며 바울로 조차도 이러한 관심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운동은 인간 존재를 공로와 선행의 필요성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선행에 대한 관심을 경솔히 취급한 것은 아닌가?

이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개신교 문헌들은 많다. 개혁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사실상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선행은 하느님의 위로나 구원의 위로를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용서받은 마음에서 나오고 항상 의롭다 인정받는 사람의 삶의 결과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법은 인간존재가 걸어가는 구원의 길이나 하느님에게 이르는 일종의 장애물 또는 도로 표시로 이용될 수 없다. 오히려 하느님의 법은 인간의 모자람을 재고 그것을 심판한다. 복음을 통해 활동하는 은혜로운 하느님은 인간 존재를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한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도들은 모든 신자들의 사제직을 주장하면서 평신도와 성직자가 평등함을 인정했지만, 그들이 평신도의 역할을 명확히 밝히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우, 평신도들은 공중 예배에서 설교자가 될 수 없으며, 성사의 집행도 성직자들의 수중에 맡겨져 있다. 설교자가 성서해석에 전문가가 될 것을 요구함으로써 개신교도들은 평신도들의 완전한 참여를 희생시키고 목회자 안수를 받으려면 일정과목을 반드시 이수하도록 정했다. 그렇지만 개신교도들의 이러한 견해는 중세 가톨릭과 비교해볼 때 평신도들의 신학적인 지위와 실제적인 지위를 크게 드높였다.

말씀의 권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의롭다 인정받는다는 가르침과 모든 신자가 곧 사제라는 가르침은 권위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전통적인 견해에 도전하는 주장이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장들은 누구도 은혜의 체계 안에서 위계질서를 독점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중세의 권위적인 체계가 무너짐으로써 개신교에는 공백이 생기게 되었고 개신교는 이를 서둘러 채워야 했다. 개신교 운동의 다양성과 다원주의는 여기서 비롯되었지만 그것이 곧 무정부상태나 훈련부재를 선호했다는 뜻은 아니다. 개혁자들은 즉각 교회와 신자들의 생활에서 행사되어야 할 권위의 범위를 정하는 일과 교회구축을 시작했다. 그들은 최종적인 권위가 하느님의 말씀에 있다고 보았고 이를 성서와 나란히 두는 경향이 있었다. 개신교 운동을 위해 권위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필요는 성서에 관한 이해를 높였으며 성서의 가르침에 대한 재발견은 개신교 운동의 일차적인 동인(動因)으로 간주된다.

교회의 계속적인 개혁

개신교 교회는 교황에 의해서가 아니라 규범이 되는 성서에 의해 심판받고 모든 신자들의 사제직에 근거하며 교회 교부들과 공의회들을 비판적으로 긍정하고 전통적인 교회법의 법전들을 거부한다는 점, 그리고 계속 개혁의 원리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로마 가톨릭주의와는 크게 달랐다. 대부분의 개혁자들은 일단 종교개혁을 완수한 다음에는 그들의 지위와 규정을 위태롭게 하는 종교개혁의 확산을 거부하였지만, 거의 모든 개신교도들은, 교회는 언제나 개혁되고 언제나 계속적인 개혁을 필요로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는 생각을 강조해왔다.


<개신교가 근대세계에 미친 영향>

민족주의에 미친 영향

마침내 개신교는 북서 유럽과 영국, 아메리카 대륙 영어권에서 주류가 되는 신조가 되었다. 19세기의 거대한 개신교 선교운동을 통하여 개신교는 이 지역들로부터 세계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개신교는 소수파로 존재했던 로마 가톨릭과 만났으며 이와 동시에 가톨릭이 주류인 남아메리카에도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개신교를 북대서양 국가들의 역사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국가들에서는 '독립'교회들이나 '교회와 국가의 분리' 이후의 개신교 자유교회들이 수세기 동안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개신교가 근대 민족주의에 공헌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개신교는 이미 종교개혁 시대에 해체되고 있다가 1806년에 최종적으로 붕괴된 신성 로마 제국의 종식을 주도함으로써 민족주의 세력을 형성하는 데 참여하였다. 낡은 그리스도교 세계(corpus Christianum)는 생존할 수 없었고 개신교의 존재는 하나의 수장(首長) 아래 있는 국제적이고 초지역적인 통합된 그리스도교의 쇠퇴를 가속화시켰다. 문맹을 퇴치하고 각국어에 대한 존중을 확산시키고자 했던 개신교는 라틴어를 매개로 한 낡은 그리스도교의 언어적 유대를 없애고 나라마다 그들의 모국어를 사용할 것을 권장하였다. 급진파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현존하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개신교도들은 자기의식에 도달한 각각의 새로운 국가들에게 이데올로기적 기초를 제공할 때가 많았는데, 프로이센과 미국의 경우가 그 예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관심

20세기에는 지난 3세기 반의 세월에서보다 합의를 이루어내려는 노력이 많았다. 오늘날 에큐매니컬 운동은 철저하게 개신교와 동방정교회, 가톨릭을 망라한 외양을 띠고 있지만, 처음에는 교회의 선교가 경쟁과 분열로 말미암아 좌절되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에 의해 개신교 토대 위에서 탄생하였다. 널리 알려진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폭풍우에 휩싸인 양떼처럼 포위당하고 서로 엉켜 있었던 그들은 서로간의 교제를 모색하였던 것이다.

이와 동시에 현대의 교통 및 통신 기술은 세계의 거리를 좁혔고 에큐메니컬 운동의 연합을 가능하게 했다. 신학의 재발견은 에큐메니컬 시대에 공동선언과 때로는 공동행동을 위해 개신교의 열정을 창출하여야한다는 새로운 인식과 융합되었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교파적인 노선과 초교파적인 노선 모두에서 교파 연합과 공의회적 조직을 결성하게 하였다.

그동안 교황 요한네스 23세(1881~1963)의 경우가 예시하는 바와 같은 로마 가톨릭의 개방은 개신교도들과 가톨릭교도들 사이에 친교와 일치를 가져왔다. 16세기의 적대적인 입장을 공식적으로 철회하지 않은 채 갈등관계에 있던 두 파는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그들의 경계를 넘어서서 만남을 위한 새로운 토대를 찾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현대의 가톨릭 성서 주석가들은 개신교가 은혜와 신앙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과 상당히 비슷한 언어로 이야기한다. 또한 개신교는 교회의 구성요소가 상호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가톨릭의 견해를 새로운 각도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개신교도들은 성서가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전통은 성서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하여 전통에 대한 가톨릭의 견해에 새삼스러운 공감을 표하고 있다. 개신교도들과 동방정교회 그리스도교도들은 대체로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세계교회협의회 같은 기구와 조직체를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20세기 하반기에 이르러 개신교의 상속자들, 특히 철학적 신학자인 파울 틸리히는 '개신교 시대의 종언' 혹은 '개신교 이후' 시대를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물론 그들 모두가 개신교의 일반적인 증언에 대한 신념을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틸리히는 예언자적 비판의 '개신교 원리'가 교회생활을 참되게 표현하는 모든 것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며 세속의 참된 가치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사상가들은 개신교가 그 역사적 뿌리를 두는 유럽에서 문화를 지배하는 경향은 쇠퇴하고 있다고 믿었다.

개신교 신봉자들은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줄곧, 그리고 계몽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점점 더 그들의 사상 세계가 여러 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공업주의와 도시화가 발흥하였던 19세기에, 급변하는 세계는 전통적인 개신교에 의해 형성되었던 사회와 교회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였다. 한편, 개신교의 영토에서 성장한 특정 이데올로기 신봉자들은 개신교의 근본적인 신념들에 도전하였으며, 그중 일부는 스스로 '신을 죽인 사람들'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이었다. 3명의 예를 들어 본다면, 경제이론가 카를 마르크스, 진화론자 찰스 다윈, 철학적 허무주의자 프리드리히 니체 등이다. 개신교 경험에 정통했던 이들은 이를 무기로 사용하여 그들의 견해 가운데 상당 부분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 개신교는 탈식민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세계에서 '외국 선교'에 근거한 팽창을 도모할 수 있는가에 대해 불확실성에 빠져들었다. 비(非)그리스도교 종교들의 가치에 대한 현대적 평가로 인해 많은 개신교도들은 팽창 위주의 개신교로 비그리스도교 종교들을 멸절시키거나 배제하려는 욕망을 포기하고 이들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전체주의 세력들 특히 나치 독일은 개신교가 강조하는 내용 일부를 흡수하여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이를 변화시켰거나 억압에 대해 철저하게 반대하였던 개신교도들을 박해하였다.

현대생활의 매력, 세속화, 신앙의 위기는 개신교를 전반적으로 쇠퇴하게 만들었고 교인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 현상은 19세기 유럽 대륙에서 최초로 나타났으며, 그 다음에는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영국에서 나타났다. 그결과 스칸디나비아와 영국에서처럼 인구의 절대 다수가 개신교 공교회의 세례 교인이라 하더라도, 그 가운데 극소수가 예배에 참석하거나 교회의 계율과 명령에 응답을 보일 뿐이었다. 교회 출석과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지지를 개신교의 재산으로 보는 사람들도 개신교의 교의가 더이상 신앙을 규정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들과 연합하고 있다. 개신교의 분열은 더이상 서구 사람들을 흥분시키지 않으며, 개신교시대의 종언을 공표할 뿐이다.

한편 개신교는 서구 문화의 많은 요소들과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개신교의 영향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다. 개신교는 주기적으로 밀물과 썰물, 재생과 쇠퇴를 경험해왔으며 지금은 보다 오랜 기간의 쇠퇴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도 서구적인 지방주의를 무심코 드러내 전반적인 흐름을 잘못 평가하는 것일 수 있다. 개신교의 쇠퇴를 예견하게 하는 모든 현상에도 불구하고 다음 2가지 긍정적인 세력이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형태의 개신교 세력이다. 오순절운동·복음주의·근본주의가 그것이다. 이 운동들의 선조들은 세상을 부정하고 종파적이며 은둔적이었지만,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주변문화를 나름대로 형성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1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전혀 예견하지 못했던 형태로 일을 하고 있고 또 일을 시작하고 있다.

개신교의 쇠퇴를 보완하는 또 하나의 세력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개신교의 성장이다. 이 새로운 개신교 교회들의 일부는 주로 선교사들이 소개한 형태와 거의 무관한 토착적인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였으며, 개신교의 판에 박힌 서구적 토대를 훨씬 뛰어넘는 증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J. C. Godbey 글 | 姜元敦 참조집필

한국의 개신교

한국 개신교는 몇 가지 경로를 통해서 수용되었다. 우선 중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에 의해서 시도되었다. K.F.A.귀츨라프, A. 윌리엄슨, R.J. 토머스와 같은 선교사들이 개신교의 한국선교를 위해 노력하였지만 이들의 노력이 구체적인 결실을 얻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성서의 번역과 배포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1873년 개신교의 한국선교에 뜻을 두고 만주에 왔던 J. 로스는 이응찬(李應贊)과 서상륜(徐相崙) 등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성서를 번역하게 되었다. 1882년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가 번역된 것을 시작으로 〈예수강셰일쳔 십칠년〉이 번역되었고, 1887에 최초의 한글 〈신약성서〉인 〈예수셩교젼셔〉가 발간되었다. 이들 성서 번역자를 권서인(勸書人)이라고 하였는데, 이들의 활동과 한글 성서를 통한 한국인들의 개신교 수용으로 인하여 1884년 봄에는 황해도 장연군 송천(松川:지금의 소래)에 한국인의 손으로 최초의 교회를 세웠다. 그리하여 한국 개신교는 선교사들이 활동하기 이전에 이미 자신의 위상을 정립해가고 있었다. 성서의 한글 번역에 공헌한 또다른 사람은 개화파 지식인인 이수정(李樹廷)이다. 1882년 수신사 박영효 일행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1883년 입교한 후, 성서 번역을 시작하여 1885년 요코하마[橫浜]에서 〈마가의 전복음셔언〉을 출간하였다. 바로 이〈마가의 복음서〉를 가지고 H.G. 언더우드는 H.G. 아펜젤러와 함께 1885년 4월 5일 제물포에 도착하였다. 북장로회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북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한국에 온 이후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도착하여 각기 활동을 시작하였다. 따라서 장로교의 경우 미국의 남장로회와 북장로회, 캐나다 장로회, 오스트레일리아 장로회 등 4개 선교부에서, 감리교의 경우 미국의 남감리회와 북감리회의 2개 선교부에서, 선교활동을 추진하였다. 한편 침례교는1889년, 성공회는 1891년, 안식교회는 1904년, 성결교는 1907년, 구세군은 1908년에 각각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한국 개신교의 선교정책은 각각의 선교부 특성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감리교는 주로 교육과 부녀사업에 치중하였으며, 장로교는 교회의 토착과 자립원칙의 선교정책을 수행했다. 장로교의 선교정책은 '네비어스 선교정책'(Nevius Method)으로 알려졌다.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자진전도(自進傳道 Self-Propagation)·자력운영(自力運營 Self-Support)·자주치리(自主治理 Self-Government) 등의 3대 이념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밖에도 구세군은 자선과 사회사업에 치중하였고, 침례교는 만주와 시베리아 선교에 관심을 쏟았다. 교파에 따른 독특한 선교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국 개신교의 선교전략은 몇 가지 공통점을 보이기도 하였다. 개신교 선교부는 적극적인 선교활동에 앞서 교육과 의료사업을 통한 간접적인 선교활동에 상당한 노력을 쏟았다. 한국의 개신교는 선교활동의 초기 단계에서 같은 그리스도교이지만 개신교가 천주교(天主敎)와는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키기도 하였다. 이는 한국 천주교가 전교 초기부터 심한 교난(敎難)을 겪었음을 감안하여 처음부터 충돌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선교사들이 한국 개신교의 초기 성장에 끼친 공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교사들의 기록 속에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채 언급되고 있는 수많은 전도인·권서인·전도부인 등 초기 개척자들의 영향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초기 개척자들에 의하여 그 기틀이 형성되어간 초기 한국 개신교의 가장 큰 과제는 민족의 자주독립을 지키는 것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목표를 가지고 입교하였으며, 교회와 기독교계 학교는 민족운동의 산실이었다. 또한 1895년 11월 춘생문사건(春生門事件)과 1896년 9월 고종탄신일 축하예배 등을 통하여 왕실에 대한 충성을 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개신교의 민족주의적 성향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였다. 일제는 한국 개신교를 침략의 걸림돌로 지목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탄압을 가하였다. 일제의 탄압과 국가의 비운에 직면한 한국 개신교는 물리적인 힘의 저항보다는 신앙적 차원에서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1907년 1월 평양에서 시작된 대부흥운동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같은 해 1월 6일부터 10여 일간 평양의 장대현교회(章臺峴敎會)에서 행한 사경회(査經會) 기간 중 절정에 달한 이 운동은 1903년 이후 계속되어 온 선교사들의 기도회 모임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 운동은 원산의 전계은(全啓殷), 정춘수(鄭春洙), R.A. 하디, 평양의 길선주(吉善宙) 등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이 부흥운동은 몇 가지 점에서 한국 개신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첫째, 한국 개신교가 신앙에 대한 체험적인 이해를 하게 되었다. 둘째, 한국 개신교의 공동체의식이 구체화되었다. 특히 이 부흥운동을 통하여 한국인 신자와 선교사 간의 이해가 크게 증진되었다. 셋째, 부흥사경회를 통해 개개인의 죄에 대한 고백은 한국 개신교와 교인의 도덕성 회복에 기여하였다. 마지막으로 대부흥운동을 계기로 성서공부와 기도가 더욱 고양되어 이와 같은 운동은 교세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1905년에는 321개였던 교회가 1907년에는 642개로 늘어났으며, 9,761명이었던 세례교인의 숫자 또한 1만 8,964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대부흥운동이 끼친 부정적인 영향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운동이 끼친 가장 큰 역기능으로는 한국 개신교의 비정치화(非政治化)와 몰역사성의 문제로 당시 한민족의 아픔을 종교적 차원에서 희석시켰다는 한계를 지닌 것이었다.

선교사들에 의하여 주도된 한국 개신교의 비정치화 경향과는 달리 일부 한국 개신교인들은 초기부터 계속되어온 민족운동의 전통을 지속시켜 나갔다. 이 시기의 한국 개신교의 민족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105인 사건'이었는데 이로 인해 윤치호(尹致昊)·이승훈(李昇薰) 등 개신교계와 신민회(新民會) 인사들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일시적으로 교세가 위축되기도 했지만, 많은 일반 개신교인이 고초를 겪으면서 민족의식을 더욱 교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개신교인의 민족의식 고양은 때로 무장투쟁운동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는 안중근(安重根)·이재명(李在明)·장인환(張仁煥)·안명근(安明根)·이동휘(李東輝)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개신교의 독립운동은 중국, 러시아, 아메리카 대륙 등 해외에서도 전개되었다.

한편 3·1운동을 계기로 다른 독립운동세력과 연대하여 적극적인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3·1운동에 있어서 한국의 종교계가 차지했던 비중은 상당했다. 그중에서도 천도교와 그리스도교가 보다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일제 헌병대의 자료에 의하면 1919년말까지의 3·1운동 관계 피검자 1만 9,523명 가운데 2,297명이 천도교인이었으며. 3,426명이 그리스도교인들이었다. 교인의 참여 비율이 높았던 만큼 교회에 대한 일제의 탄압 또한 극심했다. 일제의 물리적 탄압이 교회의 양적인 피해와 기능의 마비를 가져왔다면, 일제의 회유책은 교회의 질적인 변화와 정신적 피해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3·1운동 이후 한국 개신교의 신앙형태는 크게 2가지 흐름으로 전개되었다. 김익두(金益斗)·길선주·이용도(李龍道)와 같은 부흥운동가들에 의해 주도된 초월적·신비주의적 신앙형태와, 적극적인 항일투쟁보다는 민족계몽운동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역량을 강화한다는 현실적 계몽주의 신앙형태가 그것이었다. 한국 개신교의 사회참여 전통은 사회와 농촌운동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1925년 장감연합협의회(長監聯合協議會)는 협의회 안에 사회부를 설치하여 사회운동에 착수했다. 농촌운동은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와 조선여자기독교청년연합회(YWCA)를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1929년 이후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YMCA·YWCA의 연합으로 27개 지역에 농촌강습소가 개설되었다. 이밖에도 1923년 결성된 기독교여자절제회는 금주단연운동(禁酒斷煙運動)과 폐창운동(廢娼運動)을 벌였으며, 구세군은 자선사업을 벌였다. 1920년대 이후의 사회적 변화는 한국 개신교의 연합운동 필요성을 부각시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교회의 사회대응 다변화를 가져와 교회 안에서 분파운동이 나타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김교신(金敎臣)을 중심으로 한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 이용도를 중심으로 한 신비주의, 최태용(崔泰瑢)을 중심으로 한 복음교회 등이었다.

3·1운동 직후 '문화정치'를 표방하여 표면적으로나마 완화된 정책을 보였던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강압적 통치정책으로 선회했다. 일제의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은 한국 개신교에 커다란 위기를 가져다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신사참배의 강요였다. 일제의 강압에 굴복한 한국 개신교는 신사참배가 국민의례의 형식이라는 명분 아래 각 교단별로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교단적 차원의 이러한 굴복과는 달리 몇몇 교역자들과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신사참배거부운동을 벌였다. 신사참배거부운동을 주도한 상징적 인물로는 주기철(朱基徹) 목사가 있었다. 그가 시무한 산정현교회는 신사참배거부운동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신사참배거부운동의 결과 신학교가 폐쇄되고 수많은 교인들이 투옥되었으며, 50여 명의 교역자들이 순교했다. 일제통치 말기에 접어들면서 교회에 대한 탄압은 더욱 극심해졌다. 1942년 언더우드를 마지막으로 선교사들은 추방당했으며, 조선예수연합공의회가 해산당했다. 1940년에는 침례교가, 1943년에는 안식교와 성결교가 폐쇄되는 등 한국 개신교는 실질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마침내 한국 개신교는 1945년 7월 19일 일제의 일본기독교조선교단으로 흡수되고 말았다.

8·15해방 직후 한국 개신교는 일제 말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교회의 재건을 도모했다. 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려는 이러한 움직임은 6·25전쟁으로 다시금 위기에 직면했다. 민족분열의 위기상황 속에서 한국 개신교는 교회분열이라는 한계를 노출했다. 6·25전쟁중인 1951년 장로교의 고려파(高麗派)가, 1953년에는 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장로회가 분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감리교는 6·25전쟁 휴전 직후인 1954년 감독 선출을 둘러싸고 총리원파와 호헌파가 분립했다. 이와 같은 교회의 분열은 전통교회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켜 소종파운동이 일어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박태선(朴泰善)이 주도한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천부교로 개칭)와 문선명(文善明)이 주도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世界基督敎統一神靈協會), 나운몽(羅運夢)의 용문산기도원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교회의 분열과 소종파운동, 그리고 1960년대 이후의 사회적·정치적 변화에 직면한 한국 개신교는 심각한 자기반성을 해야 했다. 한국 개신교는 분열극복의 신학을 정립하면서 에큐메니컬 운동을 벌였다. 에큐메니컬 운동, 즉 교회일치운동은 몇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1966년 3월 8일 장로교의 초동교회(草洞敎會)에서 처음으로 천주교와 개신교의 합동예배가 있었다. 1971년 부활절을 기하여 천주교와 개신교가 공동번역한 〈신약성서〉가 출간되었으며, 1977년 〈공동번역성서〉가 출간되었다. 교회일치운동은 신학교육을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1964년 4월 연합기관의 성격을 띤 연합신학대학원이 연세대학교에 설립되었다. 이와 같은 교회일치운동의 분위기 속에서 한국 개신교는 또 한번의 분열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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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의 95개 조항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트 성의 대학교회 정문에 대자보가 게시되었다.  
이러한 논재를 게시했던 루터는 처음에 이 일이 유럽일대와 전 세계의 종교개혁을 가져오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 글은 결국 처음 의도했던 것보다 더 근본적인 교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신학적 개혁사상의 기폭제가 되고 종교 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마르틴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소속 수사이자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이며 대학교회의 설교자였던 마르틴 루터는 그 곳에서 이 주제들에 대하여 강의를 하도록 공식적으로 임명받은 바 있다.  비텐베르크에서 자신이 내어 걸었던 대자보의 95개 문제는 자신이 강의 하려고 할 때 옳지 않다고 생각되어서 강의를 하기에 앞서 과연 이렇게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이 옳은지 한번 공개적으로 논의 해 보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루터는 직접 토론에 참여하여 이 문제를 토론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서신으로 토론하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전혀 상상치 않았던 방향으로 치달아 마침내 세계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001. 우리의 주요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회개하라…"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땅
       위에 믿는 자들의 전 생애는 계속적 참회라야 한다는 것을 원하고 계신다.

002. 이 회개라는 말은 참회의 예전 곧 사제의 직에 의하여 집행되는 참회나 사죄에 대한
       말로 이해될 수 없다.

003. 참회는 내면적 참회가 외적으로 여러 가지 육욕을 죽임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참회할 수 없다.

004. 형벌은 자기 자신을 증오하는 동안은 계속되는 것과 같이 내면적 참된 회개 역시 우
       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된다.

005. 교황은 그 직권에 따라서나 교회의 칙령에 따라서 부과하는 징벌 외에 다른 아무것
       도 용서할 수 없다.

006. 교황은 하나님으로부터 죄가 사해 졌다는 것을 선언하고 확증하는 것 이외에 아무
       죄책도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만일 억제 당한 일에서 사죄한다든지 그의 직책
       이 멸시받는 경우에는 죄는 제거되지 않고 용서받지도 못한다.

007. 하나님은 철저히 겸손하게 되지 않은 사람의 죄책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자
      기의 대행자인 사제에게는 굴복하신다.

008. 고해와 참회를 하게 하는 교회의 법규는 산 자에게만 부여되는 것이며 죽은 자에게는  아무것도 용서할 수 없다.

009. 그러므로 교황이 언제나 죽음과 외적 공경을 예외로 취급할 때면 성령께서 교황을
       통하여 자비를 내리신다.

010. 임종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장차 사면을 받을 연옥 때문에 교회가 제정한 참회를 보
       류하는 사제들이 몽매하고 사악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011.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는 참회와 사죄를 연옥의 징벌이란 것으로 변해버린 이 가라지는 감독들이 자는 동안에 심겨진 것이다.

012. 전에는 일어난 죄의 사건에 대한 참회와 사죄라는 소위?교회법에 따른 징벌?은 진
       실한 회개가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사면 선언 후가 아니라 그 이전에 부과되는
       것이다.

013. 죽은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으로써 모든 허물에 대하여 치루어야 할 것을 만족시켰고 교회 법규에 대하여 이미 폐기되었다.

014. 죽은 사람의 불완전한 경건이나 불완전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큰 공포를 동반하는데
       사랑이 적으면 적을 수록 더 큰 공포가 있게 된다.

015. 이 공포와 놀람 자체만으로도-다른 것을 말하지 않더라도-연옥의 고통과 아픔을 느
      끼기에 충분하다.

016. 지옥,연옥, 또 천국은 각각 구별되기를 이미 절망한 상태와 절망에 빠져들어 가는
       경우와 구원의 확실성이 각각 구별되는 것과 같다.

017. 연옥에 가있는 영들은 불안과 공포가 증가하고 동시에 그들의 사랑이 그들에게서
       점점 자라고 더해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018. 연옥에 가있는 영들은 공로의 상태에나 사랑의 증가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은 이성의 근거로나 성서에 의하여 증명되지 않는 것 같다.

019. 연옥에 가있는 영들은 모두가 행복을 누리고 있고 그들의 축복을 확신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매우 확실한 것이라고 한다고 해도 증명할 수 없다.

020. 그래서 교황은 ?모든 징벌의 완전한 사면?이란 말로써 벌이 깨끗이 사면 받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가 부과하려 했던 징벌만을 사면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021. 그러므로 교황의 면죄부를 샀다고 해서 사람이 모든 징벌에서 해방 받고 행복해 진다고 말하는 면죄부 판매 권유자는 그릇되다.

022. 사실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에 대해서 단 하나의 징벌도 사할 수 없다. 이 징벌은
       그들의 교회의 법규에 의하여 받아야 하는 것이다.

023. 만일 징벌의 사면이 누구에게든지 주어질 수 있다면 그러한 사면은 소수밖에 없는
       완전한 사람에게만 주어질 것이 확실하다.

024. 그래서 백성은 대부분은 모든 징벌에서 해방 받는다는 무차별적이고 찬란한 약속에
      의하여 기만을 당한 것이다.

025. 교황이 연옥에서도 일반적으로 장악했다는 것은, 같은 권세를 가진 모든 감독과 목
      사도 자기의 감독구와 교구 안에서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다.

026. 교황은 그가 (연옥에 대하여 전혀 갖지 않은) 이 열쇠의 권세를 근거로 하여 사유하
       는 것이 아니라 대도의 방법으로 영들에게 용서를 사유한다는 것은 매우 잘하는 일
       이다.

027. 헌금궤에 떨어진 돈이 쩌렁 소리를 내자마자 연옥에서 영혼들이 올라온다고 하는
       사람들의 사람은 교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028. 헌금궤 안에서 울려나자마자 이득과 탐욕이 자란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교직
       자의 도움이나 대도가 성립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뜻에만 달려 있다.

029. 성 베리누스와 파스칼리스 전설에 있는 것과 같이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이 사면을
       받겠는지 더욱 확신할 수 없다.

030. 아무도 자기의 회개가 진실 된지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그가 죄의 완전한 사면을 받
       겠는지는 더욱 확신할 수 없다.

031. 진실된 참회를 하는 사람도 드물고 진실 된 마음으로 면죄부를 사는 사람도 드물다.
       말하자면 그런 사람이 매우 드문 것이다.

032. 그들이 산 면죄부 증서로써 행복을 확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교사들과 함께 저주를 받을 것이다.

033. 교황의 면죄부가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하는 데 의존하는 가장 높고 귀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경계하여야 한다.

034. 왜냐하면 면죄부로서 얻는 은총은 사람으로서 지워진 성례전적 속죄행위로 사하는
       벌에만 관계되었기 때문이다.

035. 영혼을 연옥에서 구출한다거나 참회사를 마음대로 택할 수 있는 참회 증서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참회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은 비 그리스도적인 것을 설교한다.

036. 어떤 크리스쳔이든 자기의 죄에 대하여 참된 회개를 하는 사람은 면죄부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히 면죄 받는다.

037. 모든 참된 크리스쳔들은 산 자든지 죽은 자든지 면죄부 없이도 하나님의 선물에 의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든 영역 재산에 참예 할 수 있다.

038. 그러나 교황이 주는 사죄와 거기에 참예하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데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교황의 사죄는 하나님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039. 면죄부의 관대한 선사와 동시에 참된 회개를 민중 앞에서 자랑한다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며 학식이 있는 신학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040. 참된 회계는 징벌을 구하고 그것을 사랑하나 많은 면죄부를 갖는 것은 징벌에서
       해방하고 사랑이 그것이 싫어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도 그렇게 할 기회를
       준다.

041. 교황의 사죄권에 대해서 설교하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그것을 사랑의 업적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042. 면죄부에 의한 사죄는 자선사업과 비슷한 것으로 비교하는 것은 교황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043.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궁핍한자에게 꾸어주는 사람은 면죄부를 사는 것 보다 더 낳은 것을 행한다는 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044.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의 행위로 성장하며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면죄부
       로써 더 선명해지지 못하며 다만 징벌을 면할 뿐이다.

045. 이웃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도 본체만체하고 면죄부를 하는 사람들은 교황의 사죄
       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
       어야 한다.

046. 그리스도인들이 넉넉한 재산을 가지지 못했다면 자기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저장할 의무를 지며 면죄부를 사는 것으로 낭비해서는 안된다.

047. 면죄부를 사는 일은 자유로 할 것이며 결코 강제로 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들에
       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048. 교황은 면죄부를 주는데서 얻는 돈보다는 사랑의 열성이 깃든 기도를 더 원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049. 교황의 면죄부는 사람이 그것에 신뢰를 두지 않는다면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반대
       로 사람은 그것으로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을 잃는다면 그처럼 해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050. 만일 교황이 면죄부 판매에 설교자들의 공갈행위를 안다면 그는 그의 양들의 가죽과 살과 뼈로 베드로 성당이 세워지는 것보다는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것을 더 원할 것
       이다.

051. 어떤 면죄부 판매설교자들 그 돈을 빼앗긴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교황은 자기 돈으
       로 또는 베드로 성당을 팔아서라도 갚아줄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야 한다.

052. 면죄부를 구입함으로써 행복해지리라 믿는 것은 헛된 신앙이다. 교황 자신이 자기의 영혼을 걸고 보증을 하려 한대도 그렇다.

053. 면죄부 설교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다른 교회에서 선포되기를 금지한 자들은 그리스도와 교황의 적이다.

054. 만일 사람이 한 설교에서 사죄권을 행사함에 복음말씀을 전하는 시간보다 더한 시간을 적용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부정을 행하는 것이다.

055. 만일 사람이-매우 적은 가치를 가진-면죄부를 한 방울과 단순한 행렬과 축제로써 축하한다면 매우 값비싼 백 개의 방울과 백 배의 행렬과 굉장한 축제로써 기리고 축제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교황의 견해이다.

056. 교황이 면죄부를 나눠주는 것은 근본인 교회의?보화?(여분의 공적을 말함)는 그리
       스도의 교회에서는 충분히 묘사할 수도 알려줄 수도 없다.

057. 왜냐하면 그것이 현세적 보화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많은 설교자들이 이 보화를 쉽
       게 나누어주지 않고 도리어 모으기에만 힘쓴다는 것에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058. 그 보화는 그리스도의 보화이지 성자들의 공로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교황의 작업 없이도 언제나 역사하고 내적 인간을 위해서는 은총을 주며 외적 인간을 위해서는 십자가의 죽음과 지옥을 주는 것이다.

059. 성 로체스는 공동체 안의 가난한 사람들을 교회의 보배라고 불렀지만 그는 그 시대
       의 통용되는 의미로 그 말을 사용했던 것이다.

060. 우리는 이 보화란 것을 그리스도의 공로로써 교회의 산물로 준 교회의 열쇠의 권한
       이라고 근거 있게 또 심증 있게 말할 수 있다.

061. 왜냐하면 형벌의 면죄와 교황이 관리하도록 된 조건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교황의
       권한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062. 그러나 교회의 참된 보호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에 대한 거룩한 복음이다.

063. 이 보화는 자연적 상태로는 미움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처음 된 자를 마지막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064. 그 반대로 면죄부의 근거인 보화는 자연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받는다. 그것
       은 마지막 자를 첫째로 만들기 때문이다.

065. 그래서 복음의 보화는 옛날에는 돈 많은 사람들을 낚던 그물이다.

066. 그러나 면죄부의 보화는 오늘날에는 사람의 부를 낚는 그물이다.

067. 설교자가 큰 은총을 주기 위하여 외치며 파는 면죄부는 큰 이익과 향락을 갖다주기
       때문에 큰 은총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068. 그러나 그같은 면죄부는 사람이 그것을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축복과 비교한다
       면 매우 적은 은총이다.

069. 감독들과 교구 목사들은 교황의 사죄권을 위임받은 자들을 큰 경의를 가지고 맞아들이게 한 책임이 있다.

070. 그러나 그들이 더 큰 책임을 지는 일은 이 위임받은 자들이 교황이 맡긴 일 대신에
       자기들의 꿈을 설교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데 대해서 이다.

071. 교황의 사죄권을 반대하는 사람은 저주받고 추방당할 것이다.

072. 그러나 면죄부 판매 설교자들의 변덕스럽고 파렴치한 말을 거슬러 걱정하고 슬퍼하
       는 축복을 받을 찌어다.

073. 교황은 면죄부 판매에 손해를 입히고자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 분노나 추방으로 보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074. 교황은 면죄부라는 구실 안에서 거룩한 사랑과 진실성에 손실을 끼치기 위하여 책동하는 사람들에게 더 심하게 분노와 추방을 내리는 것이 좋다고 볼 것이다.

075. 교황의 면죄부에는 굉장한 힘이 있어서 어떤 사람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성
       모를 능욕했더라도 죄에서 해방해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헛된 생각이다.

076. 그와 반대로 우리는 교황의 면죄부는 가장 적은 죄도 없이 할 수 없으며 죄로써 남을수 밖에 없다는 것을 주장한다.

077. 만일 성 베드로가 지금 교황이었더라도 큰 은총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 베드로와 교황을 모독하는 것이다.

078. 그와 반대로 우리는 이 교황이나 다른 어떤 교황이라도 면죄부보다 더 큰 은총, 즉.
       다시 말하자면 고린도 전서 12장에서 말하고 있는 복음(福音)과 성령의 능력과 병
       고치는 은사들을 자유로이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079. 교황의 문장을 화려하게 찍은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더 능력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080. 이 같은 가르침이 민중 앞에서 말해지는 것을 보고 묵인하는 감독 교구 목사 신학자
       들은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081. 면죄부에 대한 그 같은 뻔뻔스럽고 파렴치한 설교는 교황의 명예와 품위를 비방이나 또는 순박한 삶을 끌 수 없는 예리한 질문에 대해서 수호하는 것은 아무리 학식 있는
       사람일 찌라도 어렵게 만든다.

082. 예를 들면 교황은 왜 모든 영들을 그의 가장 정당한 이유로서 가장 거룩한 사랑떼문
       에 또 심령들의 지극한 곤궁 때문에 연옥에서 해방시키지 않는가. 실제로 그는 베드
     로 성당을 세우는데 불쌍한 그리스도인의 돈으로써 하기보다는 자기의 돈으로 해
       야 할 것이 아닌가.

083.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옳지 않은데 왜 아직 죽은 자의 장래
       식이나 해마다 하는 제사가 남아있으며 교황은 죽은 자들을 위해 바친 것을 돌려 주
       지도 않고 그 기부금을 취소하기를 허락하지도 않는다.

084. 또는 그들이 하나님 없이 사는 자 즉, 적대자들에게는 돈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
        고 하나님께 사랑 받는 영혼으로 속해내기를 허락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영혼자체의 큰 곤경을 위해서 사랑으로부터 해방하여 내지 않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하나님과 교황에 대한 경건이 아니겠는가.

085. 또는 참회에 관한 옛 조문이 오래 전에 사실 폐지되고 사용되지 않고 죽은 글이 되었는데 왜 아직 사죄권과 관련되어 그것이 아직 효력이 있고 산 조문인 것처럼 돈으로써 구해낸다고 인정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086. 또는 오늘날 제일 부자보다 더 능력을 가진 교황이 지금 성 베드로 성당을 세우는데
       불쌍한 그리스도인의 돈으로 하기보다는 자기 돈으로 할 것이 아닌가.

087. 또는 교황은 참회로써 완전한 용서를 받고 영적 재산에 참예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사해주고 나누어주려고 하는가.

088. 또는 교황은 용서와 은총에 대한 참여를 지금 하루에 한번 주는 대신에 백번 모든
       믿는 자에게 준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 되겠는가

089. 교황이 면죄부로써 돈보다 구원을 관심했다고 본다면 왜 그는 똑같은 효력을 가졌다고 보이는 면죄부에 대한 옛 교서를 정지시켰겠는가

090. 만일 평신도의 예리하고 사려 깊은 항의를 권력으로 억압하고 근거제시를 통하여 가라않히지 않는다면 교회의 교황은 원수에게 조소거리가 되고 그리스도인은 불행하게 되는 것이다.

091. 만일 면죄부가 교황의 정신과 의견에 따라 설교로 권유한다면 이 모든 의문은 해답
       되었을 것이며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092. 평화가 없는데도?평화?,?평화?하고 말하는 모든 예언자들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093. 그러나 십자가 없는 곳에?십자가?,?십자가?하고 그리스도 백성들에게 말하는
       예언자만이 축복을 받을 것이다.

094. 그리스도인들은 저희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만을 고통과 죽음과 지옥을 통과해서라도 따를 것이다.

095. 그래서 여기 평화가 있다고 하는 태평한 환상으로보다는 많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
       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더 의지하게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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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불씨를 던진 ‘마틴 루터’

루터(1484-1546)라는 인물의 등장으로 교회는 물론 세계 역사가 일대 큰 변혁을 이루게 된다. 루터의 등장과 ‘95개조 반박문’은 처음에는 작은 불씨에 불과했지만 그 불씨에 의해 번진 파장효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루터의 독특성은 그의 생애에서 비롯된다. 1505년 22세 때, 훌륭한 대학이었던 엘푸르트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고 기쁜 마음으로 집에 와서 잔치를 치렀다. 그 후 엘푸르트로 돌아가다가 루터는 번개를 맞은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죽음의 공포에 빠지게 되고, 공포 가운데 하나님께 “살려주면 수도사가 되겠다”고 맹세를 한다.

그 후 루터는 곧장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왜 하나님을 따르고 위하고 싶은데, 마음 한 구석에 불안감이 있는가’의 문제로 고민했다. 로마에 가서 스칼라 상타라 부르는 빌라도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며 기도했지만 마음에 평안이 없었다.

스승은 불안해 하는 그를 위해 신학을 공부하게 했다. 루터는 독일 비텐베르그에서 공부를 하고 1513년에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 후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서 성경을 연구하다가, 어느날 자기의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했다.

루터는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라는 시편 22장 1절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도 고통을 당했고,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받게 됐다.

그 후 루터는 계속 공부를 하다가 로마서 1장 16-17절에서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 진리가 바로 ‘칭의’였다. 그때까지 로마 가톨릭은 세례를 받을 때 원죄가 사라지면서 첫 번째 칭의를 받지만, 두 번째 칭의가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

두 번째 칭의는 첫 번째 주신 은혜의 체험을 기초로 선행을 행하는 우리의 삶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보시고 구원받는 칭의를 주신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구원을 위해서는 선행과 봉사가 필요하고, 하나님께 능력을 받아야만 했다. 이렇듯 지금까지는 행함으로 칭의를 얻는다고 배웠는데, 로마서 1장 16-17절을 보니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비로소 루터가 발견한 것이다.

루터가 칭의의 진리를 발견할 당시, 교회(로마 카톨릭)가 면죄부를 발행해 신자들에게 팔아먹고 그것으로 죄를 감해주는 것을 보았다. 루터는 학자요 목사로서 이처럼 진리를 왜곡시키는 당시 교회의 모습을 95개 조항으로 만들어 1517년 10월 31일에, 전설에 의하면 당시 대학교회인 ‘캐슬 처치’ 입구에 붙였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된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다.

맨처음 독일어로 쓰인 그것을 독일인들은 2주 만에 읽었고, 곧바로 라틴어로 번역돼 두 달 만에 온 유럽이 다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루터가 제기한 교회의 문제점들에 대해 동의했고 같이 항의하기 시작했다. 한 번 터진 봇물은 막을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갇혀 있었던 울분을 터뜨렸다. 루터가 쓴 글에 온 세상 사람들이 집중하면서, 이 움직임이 대중화가 되고 세상은 서서히 개혁의 분위기로 진행됐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활동한 ‘츠빙글리’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종교개혁 시발의 전부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츠빙글리(1484-1531)라는 인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루터와 같은 시기에 신부로서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에서 과감하게 개혁활동을 단행한 인물이다.

당시 스위스에는 용병제도가 있었다. 그 용병들과 함께 츠빙글리는 군목으로 생활했다. 그는 1515년에 마리그나노 전투에서 함께 동참한 젊은이들이 1만명이나 죽는 것을 목도했다. 전쟁에서 돌아온 후에 츠빙글리는 용병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쫓겨났다.

갈 곳이 없어진 츠빙글리는 당시 순례자들이 지나가는 교회에서 3년 간 설교를 했다. 그러던 중 순례자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궐석 상태에 있던 취리히의 목회직에 츠빙글리를 추천했다. 그 때가 1519년이었다. 츠빙글리는 취리히에서 목회를 하면서 젊은이들을 모아서 성경공부를 시키고 복음적인 내용을 성실하게 설교했다.

당시 스위스는 여러 자치 도시들이 모여 한 나라를 구성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 스위스는 프로테스탄트를 따를 것인지 로마 가톨릭을 따를 것인지를 시의회에서 결정했다. 츠빙글리는 시의회와 함께 교회를 개혁해 나가자고 했다.

츠빙글리는 67개 조항으로 교회개혁의 필요성을 말했으며,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해 ‘기독교 신앙 개요’ 및 ‘참 종교와 거짓 종교에 대한 해석’을 출간하고, 개혁은 가톨릭의 종교 의식과 법을 과감히 버리는 것이며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지킬 필요가 없음을 주장했다.

종교개혁을 체계화한 ‘
칼빈

오늘날 수많은 신학자들은 ‘만약
칼빈(1509-1564)이 없었으면 기독교는 생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로마 가톨릭의 토마스 아퀴나스와 프로테스탄트의 칼빈을 대조해서 비교한다. 아퀴나스가 로마 가톨릭의 신학과 신앙을 총정리했다면, 칼빈은 프로테스탄트의 신학과 신앙을 총정리한 위대한 인물이다.

카톨릭의 신학체계 정립을 위해 아퀴나스는 수많은 책들을 썼다. 그가 저술한 ‘신학총론’, 다른 말로 ‘신학대전’이 수십 권이다. 반면
칼빈은 단 한 권의 책을 썼다. 그 책이 바로 ‘기독교 강요’다. 그는 이 책 안에 기독교의 기본진리, 무엇을 믿으며 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기독교인이 근본적으로 알아야 할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히 섰다.

칼빈은 프랑스인이지만 스위스에서 목회를 했다. 26세의 젊은 나이에 기독교 강요 초판을 썼다.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고 도전을 받았다. 이 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는 제네바를 지나다가 귀욤 파렐을 만나서 그의 목회를 도왔다.

칼빈은 1538년에 제네바에서 어려움을 당해 스트라스부르그로 옮겨 3년간 마틴 부처와 함께 목회를 하다가, 1541년 다시 제네바 사람들의 후원과 초청으로 제네바에서 목회를 하게 됐다. 그 때부터 말년까지 시종 목회를 하면서 제네바 아카데미를 세우고, 기독교 강요도 썼다. 그의 모든 설교는 성경 강해였기 때문에 칼빈 주석으로 남아있게 됐다.

칼빈에게는 츠빙글리와 같은 극적인 회심이나, 루터와 같은 극적인 개종의 경험은 없었다. 그는 법학도로서 사리판단이 분명했고 논리적이었으며 내성적이었다. 칼빈이 루터나 츠빙글리와 다른 점은 종교개혁을 체계화한 것이다. 루터와 츠빙글리가 종교개혁 1세대 인물인 반면 칼빈은 2세대 인물이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약 30년 후에 그 속에 뛰어들어 개신교의 신학체계를 정리한 사람이었다.

종교개혁을 체계화한 ‘
칼빈

종교개혁자들은 처음에 가졌던 숭고한 신앙이 사회적 정황으로 인해 정치적인 성격을 띠면서 후에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잃기도 했다.

1525년 독일 전역이 농민전쟁의 전운에 휩싸였을 때, 루터는 처음에는 압제적인 귀족들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농민 편을 들었다. 그러다가 농민들의 반란이 맹렬해지자, 입장을 바꾸어 농민들이 제시한 12개 조항을 비판하고, 소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당국의 개입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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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프로테스탄트를 학살한 나라

잘 알다시피 프랑스는 가톨릭이 국교인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시작되면서 16세기 초에 프랑스 내에는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이 생겨났는데,
많을때는 프로테스탄트가 전체 국민의 3분의 1이상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톨릭은 왕권을 이용해 프로테스탄트를 공격하였는데,
1521년에 프랑스왕 프랑수아 1세(1515~47 재위)는 루터의 저서의 출판을 금지했으며
1534년에는 한층 더 나아가 이를 탄압하는 일련의 칙령을 반포하였습니다.
프랑스 왕 앙리 2세(1547~59 재위)때는 보다더 프로테스탄트를 억압하였으나,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 즉 위그노들은 날로 그 세력이 커졌습니다.

그런데 16세기 중반 이후부터 프랑스 가톨릭이 프로테스탄트를 공개적으로 대학살하기 시작합니다.
가톨릭 가문인 "기즈"가의 프랑수아 드 기즈가 군대를 동원해 프로테스탄트들을 학살한 것이
그 시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가톨릭 못지않게 성장한 프로테스탄트도 이제 무력으로 대응함으로써,
16세기 말까지 8차례에 걸쳐 신구교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 1570년에 양측간의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프랑스의 신구교를 대표하던
프랑스왕 샤를 9세의 동생과 나바르왕 엔리케 간에 혼담이 오갑니다.
바로 이 혼담을 빌미로 가톨릭이 프랑스 내의 프로테스탄트를 대학살하게 됩니다.

당시 파리에서 이 둘간에 혼인식이 치러질 무렵이 성 바돌로메를 추모하는 성 바돌로매의 날이었습니다.
혼인식에 참석하려고 올라온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이 죽은 성 바돌로매에게 예를 표하는 의식을 가진날
가톨릭은 무방비 상태의 프로테스탄트들을 대학살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학살이 오늘날까지도 바돌로매 학살로 불립니다.

모든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이 우선적으로 학살되었습니다.
프랑스 왕의 오른팔이던 콜리그니 장군도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란 이유로 총살되고
머리는 잘려 로레인의 추기경에게 선물되어 교황청으로 보내졌고 그 시체는 거리에 끌려다니게 됩니다.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뿐 아니라 프랑스 내의 모든 프로테스탄트에게도 학살이 가해집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을 학살하기위해 가톨릭 시민군이 소집되고 파리를 탈출할 수 있는 성문을 굳게 닫힙니다.
파리는 학살의 도시가 되었고, 파리시내 전체에서 모든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살인이
프랑스 정권의 비호 아래 합법적으로 자행되었습니다.

파리의 가톨릭 교도들은 '프랑스와 가톨릭을 위하여'라는 구호아래 살인마가 되었고,
프로테스탄트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학살하였으며
파리의 모든 거리는 숨이 끊어지는 프로테스탄트들로 흩뿌려져 있었습니다.
가톨릭 신부들은 한 손에는 십자가를, 다른 한 손에는 단검을 들고서
살인자들의 우두머리들에게 가서 "친척이나 친구들도 봐주지 말라"고 그들을 훈계합니다.
가톨릭은 왕의 허락을 받아 파리뿐 아니라, 프랑스 전역의 프로테스탄트들을 학살합니다.

오렌스에서는 1000명이 살해되었고
로렌에서는 6000명이 살해되었습니다.
펜나에서는 안전을 약속한 후 300명을 학살했습니다.
멜디스에서는 200명이 살해되었습니다.
사마로브리지에서 그들은 프로테스탄트에게 평화를 약속한 후 100명 이상을 살해했습니다.
안티시도에서는 100명이 살해되어 강으로 던져졌습니다.
오리언즈에서는 감옥에 투옥된 100명이 분노한 군중에 의해 죽음을 당했습니다.
로첼레에서는 18,000명이 죽었습니다.

리용에서는 800명이 학살되었습니다.
여기서 부모에게 매달린 어린이들과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안고있던 부모들이
칼과 피에 굶주린, 스스로를 카톨릭 교회라고 칭하는 자들의 희생양이 됩니다.
여기서는 300명이 가톨릭 주교의 집에서 살해되었고,
가톨릭 수도사들은 그들이 매장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보덱스에서는 설교 중에 카톨릭 교인들에게 살육하라고 충동질을 하곤 했던
악한 수도사의 부추김으로 264명이 잔인하게 살해되었습니다.
그들 중의 몇 명은 상원의원이었습니다.
비슷한 신앙심의 또 다른 가톨릭 우애단체가 메인의 아겐디컴에서 유사한 학살을 행했습니다.
거기서 종교 재판관들의 사탄적인 제안으로 가톨릭 교도들이 프로테스탄트에게 돌격해서
그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집을 약탈하고 그들의 교회를 무너뜨렸습니다.

투린의 수장은 자신의 목숨 값으로 많은 돈을 지불했음에도
곤봉으로 잔인하게 두들겨 맞았으며, 옷이 벗겨지고, 강에서 거꾸로 매달렸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그들은 그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어 강에 던졌습니다.

브로이스에서 살인자의 우두머리인 구이세 공작은 그의 군인들에게
약탈품에 달려들며 그들이 찾아낼 수 있는 모든 프로테스탄트들을 죽이거나 익사시키도록 했습니다.
이 말에 그들은 나이나 성별을 가리지 않고 여자들을 더럽힌 후 그들을 살해했습니다.
구이세 공작은 미레에 가서 똑같은 폭동을 며칠 동안 자행했습니다.
미레에서 카세보니우스라는 관료는 강에 던져졌습니다.

안쥬에서 그들은 관료인 알비아커스를 살해했으며,많은 여인들이 더럽혀지고 거기서 살해되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두 자매가 있었는데 그들을 아버지 앞에서 추행한후 그들과 그 아버지를 살해했습니다.

논네에서는 안전을 조건으로 항복하자,
남녀를 조건 없이 무차별적으로 살해하였고, 거리는 슬픈 외침 소리가 울렸으며,
피가 흐르고 집들은 파렴치한 군인들이 던진 불로 화염에 뒤덮여 있었습니다.
한 여자가 숨어있던 곳에서 남편과 함께 끌려 나와서
먼저 잔인한 군인들에게 추행을 당한 후에 강제로 그녀 남편의 내장을 찌르게 했습니다.

마티스콘 시에서는 팔과 다리를 자른 후에 그들을 죽이는 것이 스포츠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방문객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그들은 때로
"사람들이 저렇게 잘 뛰어내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바레(Barre)에서도 극악한 잔인성이 행해졌습니다.
심지어는 어린 아이들의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어 극심한 분노로 그것을 씹기도 했습니다.
성으로 도망했던 사람들은 항복했을때 거의 모두가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오거스토보나에서는 사람들이 파리에서의 학살 소식을 듣자마자
프로테스탄트들이 도망하지 못하도록 문을 닫고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모든 사람들을 부지런히 찾아나서서
감옥에 넣고는 후에 야만스럽게 그들을 살해했습니다.

아바리콤, 트로이, 토울로우스, 로엔과 다른 많은 곳에서도,
도시에서 도시로, 시골로, 읍으로, 온 나라 전체에 걸쳐 그와 똑같은 잔인성을 실행했습니다.

그 결과 일주일만에 약 10만 명의 프로테스탄트가 프랑스 전역에서 조각조각 찢겨졌습니다.
미슐레는 "성 바돌로메의 날의 대학살은 하루가 아니라 온 계절에 가득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로마에서는 그 기쁨이 너무나 엄청나서
그들은 하루를 축제일과 희년으로 정하고 모두가 이것을 지켰고
그들이 고안해낼 수 있는 모든 기쁨의 표현들을 드러내었습니다.
교황은 축포를 떠뜨리고 환희의 날을 선포했고, 영광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572년 위그노들의 학살"(Ugonottorum Strages 1572)이라고 적힌 기념주화를 만들었습니다.



바돌로메 대학살은 다음과 같이 새겨진 문구와 함께 바티칸의 왕의 홀에 그려져 있습니다.

"교황은 콜리그니의 죽음을 승인한다"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들은 이후에도 계속 학살되어서 전멸되었습니다.
현재도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는 전체 국민의 1% 내지 2%에 지나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가 이렇듯 몰락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말만 프로테스탄트였지, 형상과 영에게 예를 표하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 학살의 명칭이 죽은 바돌로매에게 예를 표하는 날인
성 바돌로매의 날의 학살로 칭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프랑스 프로테스탄트를 구하지 못하셨겠습니까?
프랑스 프로테스탄트들이 속수무책으로 프랑스 가톨릭 교도들에게 전멸당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상을 겸해서 섬김으로써 스스로 하나님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사 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종교개혁 당시의 프랑스의 폭발적인 프로테스탄트 성장은 참으로 인상적인 것이었습니다.
당시 가톨릭 추기경의 말에 따르면 심지어 전체 국민의 절반이 프로테스탄트라고 추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과 너무나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한국의 프로테스탄트 성장은 근래에 유래가 없다고 말해지기까지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시대에도 오늘날에도 우상숭배의 길을 걸어가면서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는것 또한
프랑스 프로테스탄트의 우상숭배에 타협하는 자세와 똑같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가 심판받을 차례입니다.
가톨릭이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려고 프로테스탄트에게
태양숭배며 마녀사냥이며 원주민 학살, 종교재판 등등의 자신들의 죄악을 죄다 뒤집어 씌우고 있는
오늘날의 인격적인 테러쯤은 에피타이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두십시오.
우상숭배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프랑스에서든 한국에서든 차별이 없습니다.

신 8:20
여호와께서 너희의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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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재판 (1)
글쓴이 : 예술이
아울러 종교라는 특정한 신념체계가 세속권력과 야합할때 얼마나 참혹해지는지도 깊이 생각해 보아함을 주장하기 위함입니다.  
아래글은 "천주교의 종교재판 약사"와 "중세 종교재판에 대한 기독교 윤리학적 연구"및 "유럽에서 자행된 칼빈주의자들의
인간사냥과 목적"이라는 책을 대부분 인용하여 작성한 글이며, 상세한 인용 페이지는 생략하겠습니다.   
 
 
"역사가에게 요구되고 기독교인에게 허용되는 모든 사항을 고려하더라도 우리는 종교 재판을 우리 시대의 전쟁과 박해와 함께 어떤
짐승에게서도 볼 수 없는 포학성을 드러낸 인간이 기록한 가장 암울한 오점 이라고 분류하지 않을 수 없다." (윌 듀란트)
 
"사람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행할 때만큼 기쁘고 용감하고 철저하게 악을 행하는 일은 없다." - 파스칼의 『팡세』中에서 -
 
 
■ 이단자에 대한 교황 루시우스 3세의 칙령  
 
<최근 지구 대부분의 지역에서 다양하게 싹트고 있는 이단의 악을 제거하기 위해, 카톨릭 교회에게 위임된 힘을 일깨우는 동시에
황제권의 지원을 받아 거짓된 목적을 가진 이단의 오만과 후안무치를 박멸하고,
거룩한 교회에 밝게 비치는 카톨릭의 단순성의 진리를 이단의 거짓 교리의 가증스러움으로부터 순수하고 자유스럽게 발현하기
위함이다... 나아가서 특히 모든 카타리파, 빠터파 (Paterines), 그리고 자신을 "리용의 빈자들"이라고 부르는 자들,
파시파 (Passignes), 조셉파 (Josephists), 아널드파 (Arnoldists)에 대해서 영구적인 파문을 선언한다...
그리고 당해 이단을 받아들이거나 옹호하는 모든 자들과 그들에게 어떤 호의나 정신적 지지를 나타내어 위로하거나, 믿거나
완전하게 하는 등 그 명칭이 어떠하든지 이단을 강화시키는 자들, 혹은 어떤 미신적인 명칭으로든 자신을 위장하는 자들에게
동일한 처벌을 선언한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범죄에 대하여 개인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유죄로 판명된 평신도는 그 이단을 
철회하고 즉시 정통 신앙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세속 재판관의 판결에 맡겨서 그 죄질에 상응하는 타당한 처벌을 받게 할 것을
선언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단을 철회하거나 카톨릭 주교 앞에서 조사를 받아 자신을 깨끗이 한 후에 자신이 철회한 이단으로
돌아간 자들은 어떤 심리도 하지 않고 세속 당국에 인도되며, 그들의 재산은 카톨릭 교회가 사용하기 위해
몰수한다는 것을 선언한다.> (존스, 23쪽).  
 
위 교황 칙서의 사고 중 많은 부분은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에서 400명의 주교와 800명의 수도원장에 의해 성문화 되었으며,
회개하지 않은 이단자는 반드시 파문하고, 세속 당국에 넘겨서 처벌할 것을 선언했다.
처벌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지만 재산의 몰수는 분명하게 허용되었다.
이와 같이 장래의 종교 재판에서 가장 크게 남용된 분야 중 하나인 카톨릭 교회와 세속 당국에 의한 재산 몰수가 공식적으로
성문 법전에 명시되어 종교 재판을 위한 무대가 설치되게 된것이다.
 
 
■ 종교재판의 시작
 
AD 1124년, 교황 그레고리 9세는 프리드리히 황제 2세와 공동으로 이단에 관한 법령을 선포하면서 처음으로 사형의 조항을
명문화 시켰다. AD 1231년, 교황청에서는 "종교재판관"을 임명했고, 1232년 프리드리히 2세는 전 국가에 대해 이단 색출을
명했고 이는 국가에 일임한다는 칙령을 반포했다.
이 칙령에 따라 색출된 이단자, 마술사, 무당들은 화형에 처해졌다.
프리드리히 2세의 칙령에 동반된 정치적 야망을 파악한 교황 그레고리 9세는 교황청이 직접 이단색출과 심문을 맡을 것을
주장하여 '종교재판소'라는 교황 직속의 독립된 기관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일반적으로 이때부터를 참혹한 종교재판의 시작이라 보지만, 사실 기독교의 탄생기 부터 종교재판은 늘 있어왔다.
 
"에클레시아 아브호렉트 아 상구이네"
이것은 "카톨릭 교회는 피 흘리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라는 말인데 카톨릭 교회의 좌우명이기도 한 이문구때문에
카톨릭 교회는 직접적으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세속 당국에서 집행하도록 했다.
교회에서 직접 집행할때는 산채로 불태우는 "화형"을 시행했는데 이는 피를 흘리지 않는 방법으로써 고안된 것이며,
교회의 자우명과 잘 부합되기 때문이였다.
 
이단이 카톨릭 교회 뿐만 아니라 세속적으로도 범죄라는 생각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로마는 이단을 사형에 해당하는 반역으로 간주했는데, 초기 순교자들 중 다수가 로마 황제를 일종의 신(god)으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했을 때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
로마의 재판관은 이단 혐의자에 대한 심문 (인퀴시티오)―이 명칭으로부터 "종교 재판(Inquisition)"이 유래됨―을 할 수 있었다.  
중세 카톨릭의 종교 재판이 시작되기 전 (공식적으로 시작한 것은 AD1227~31년이었음) 200년 동안 이단자에 대한 화형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화형은 때때로 세속 당국이나 폭동에 의해 선동되었다.
잘 알려진 중세의 이단자 화형 중의 하나로서 AD 1022년에 프랑스 왕 로베르 비오가 회개하지 않는 이단자에게 가한 것이 있었다.
폭도에 의한 것은 AD1028년경의 밀라노 (Milan), AD1114년의 쓰와쏭 (Soissons), AD1143년의 콜로뉴 (Cologne)에서
성난 폭도들이 회개하지 않는 이단자를 카톨릭 교회 감옥으로부터 끌어내어 화형시키는 사태가 일어 났었다.
 
이와 같이 "이단자"를 화형시키는 것은 AD1227~31년의 종교 재판의 시작 당시 이미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 종교 재판의 신학적 근거  
 
종교 재판의 옹호자들은 (그리고 놀랍게도 종교 재판이 1834년에 끝난 후-현재도 간접 종교재판은 계속되고 있지만-
호교 교부들도) 종교 재판을 정당화하는 성서적 신학적 근원을 지적하고 있다.
초기 종교 재판관들에 의해 가장 자주 인용된 성구는 구약의 모세 율법이다.
물론 이것은 다소 의문스러운 신학 이론으로서, 말하자면 음식물의 제한에 관한 모세의 율법에 대해서는 1세기 이래 계속 완전히
무시해 오다가, 갑자기 (13세기에) 수천명의 사람들을 기둥에 묶어 화형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그 법을 완벽하게 합리화 시키면서
정당하다고 본 것이다.
주요 성구는 아래에 인용되어 있다 (간략하게 편집했음)  
 
(신명기 13장)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네게 말하기를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네 동복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너는 그를 좇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보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너는 돌로 쳐 죽이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 같은 악을 다시는 너희 중에서 행하지
못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거하게 하시는 한 성읍에 대하여 네게 소문이 들리기를 너희 중 어떤 잡류가 일어나서
그 성읍 거민을 유혹하여...너는 자세히 묻고 살펴보아서 이런 가증한 일이 참 사실로 너희 중에 있으면 너는 마땅히 그 성읍 거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중에 거하는 모든 것과 그 생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얻은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지니 그 성읍은 영영히 무더기가 되어 다시는 건축됨이 없을
것이니라"  
 
(출애굽기 22:18) "너는 무당(sorceress-여자 마법사)을 살려 두지 말지니라."  
 
모세의 율법에서 발췌한 위에서 언급한 원리 중 다수는 후에 종교 재판에서 모방되었는데 그 중에는 다음의 것이 포함되었다.   
 
ㅇ 예언자와 꿈을 꾸는 자의 "제거" (잔다르크의 죽음을 가져온 혐의)
ㅇ 종교 재판에서 가족 성원은 서로에 대해서 불리한 증언을 하도록 한 것
ㅇ 다른 사람에게 경고하기 위해 이단자를 죽이는 것
ㅇ 카톨릭 믿음에서 돌아 선 마을을 심문하고 살피고 조사하기 위한 지침이 후에 종교재판관의 직무 내용 설명서가 됨
ㅇ 이단을 척결하기 위해 전체 마을을 없애는 것  
 
종교 재판 옹호자들이 신약성경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확인하기는 훨씬 더 어려웠다.
신약에서 가장 자주 인용된 구절은 요한 복음 15장에서다.  
 
(요한 복음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종교 재판의 방법은 당대의 가장 유명한 카톨릭 신학자들의 찬사를 받았는데, 성 토마스 아퀴나스 (기원 1225?∼1274)의 방대한
신학적 저술 신학 대전 (Summa Thelogica)의 다음과 같은 대경실색하게 하는 구절이 알려주는 바가 그러하다.
도미니크회(Dominican) 수도 신부였던 아퀴나스는 일반적으로 4/5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 이래 가장 영향력있는 카톨릭 신학자로
여겨지는데 그는 이단의 박멸을 언급하고 있다.  
 
 P(2b)-Q(11)-A(8)…<화폐 위조자와 기타 행악자들이 세속 당국에 의해 즉시 사형의 형벌을 받는다면, 이단자에게는 더욱더
그렇게 할 이유가 있는데, 그들이 이단으로 유죄 판결을 받자마자 파문을 시키는 동시에 사형에 처해져야 한다.
그러나 카톨릭 교회쪽에서는 이단에 빠진 사람의 회개를 바라는 자비 때문에 당장 처벌하지는 않지만 사도가 지시하는 것처럼
"일 이차 권고 후에" 아직도 그가 고집을 부린다면 카톨릭 교회는 더 이상 그의 회개를 바랄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그를 파문하고 카톨릭 교회로부터 분리시키며, 사형을 시켜 세상에서 없애기 위해 세속 법정에 인도한다...
아리우스 (Arius)는 알랙산드리아에서 하나의 불꽃에 불과했으나 그 불꽃은 금방 꺼지지 않고, 전 지구가
그 불꽃에 의해 소모되었다.> (신학 대전-3권-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한 제2부(제1부) 중의 제 2부, 150쪽).  
 
종교 재판의 재판관은 그들의 대의의 정당성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재판에 임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그 대의명분은 너무나 혐오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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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재판(2)
요람에서 무덤까지 카톨릭교회에 충성을 해야하고, 그들의 말만 들어야하고 그들이 지시하는대로 따라야함을 근본정신으로 하는
"살아있는 그리스도(교황)"를 모시는 종교권력은 AD1962~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공식적인 종교재판을 끝낼때 까지
(비공식적으로는 아직 지속되고 있음) 그 피의 향연을 계속했다.  
 
 
■ 중세의 로마 카톨릭 교황의 종교 재판  
 
ㅇ 완전한 사람들 (카타리파)  
 
13세기 즈음이 되면서 성지회복에 의한 영원한 십자군 왕국의 꿈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를 갈구하는 기독교란 종교는 또다른 전쟁을 시작한다.
교황 이노센트 3세는 십자군 전쟁에 대한 열의를 동료 카톨릭 그리스도인에게 돌린것이다.
AD1209년 이노센트 3세는 프랑스 남부 카타리파에 대해 십자군을 보낸다.
역사기록에 "알비장스 십자군"으로 알려진 이 동료 카톨릭 그리스도인에게 행해진 유혈원정은 제 1차 종교 재판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알비장스 십자군은 1209~1229년까지 20년간 지속 되었으며, 같은 카톨릭이지만 이단이라 명명된 카타리파는 이교도
전쟁에서 "적"과 같은 취급을 받았으며, 간혹 더욱 무자비하게 학살되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1209년 7월 22일 베제가 약탈 당했을 때인데, 20,000명이 훨씬 넘는 남녀 및 심지어 젖먹이 어린이까지
주님의 군대(십자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교황의 특사 아르노는 역사에 길이남을 명언을 남기는데, 공격 중에 카톨릭 교인은 살려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모두 죽여라, 진짜 기독교인지 아닌지는 하나님이 아실것이다" 라고 한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이 있을때면, 화형이라는 이밴트를 했는데, 1211년 라보르에서 400명이 화형되었고,
카세에서 94명이 화형되었다.
완전한 사람들이라 불리던 카타리파의 모든 도시는 황폐화 되었고, 주님의 칼날을 피해 도망갔던 카타리파 사람들은 철저한
추적을 당하며 결국에서 피에 굶주린 카톨릭의 사냥감이 될수 밖에 없었다.
1239년 몽비메르에서 183명이 잡혀서 산채로 불태워 졌고, 1244년 몽세귀르 산성에서 215명이 그들 뒤를 따랐다.
 
그후로도 지속된 카타리파에 대한 종교재판으로 카타리파인들이 최후의 만찬시 사용된 "성배"를 가지고 있다라는 거짓 소문에
현혹된 주님의 군대에 의해 "완전한 사람들"이라 불리던 카톨릭 신자들은 영원히 지상에서 소멸되었다.  
 
"정결하다"라는 말인 카타리가 최초의 종교 재판에서는 "이단"이란 말과 동의어로 사용될 정도로 처음 목적은 카타리파 였지만,
그후 확대된 종교재판은 훨씬 광범위하게 "왈도파" "프라티젤리파", "성전기사단"그리고 후대에 "프로테스탄트"까지 확대 되었다.   
 
ㅇ 왈도파(The Waldensians) 그리스도인들  
 
왈도파는 리용의 부유한 상인 삐에르 왈도 (혹은 발데르)에 의해 창설되었다고 한다.
1173년경에 왈도는 그의 전 재산을 팔고 거지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이와 같은 행동의 신학적 근거는 마가복음 10:21인 것처럼 보인다.  
 
(마가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느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때가 되자 다른 사람들도 삐에르 왈도의 금욕적이며 영적인 생활 방식에 이끌리게 되어, "리용의 빈자들"이 결성되었다.
삐에르 왈도가 몇 가지 방언 (프랑스의 프로방스어)으로 성서를 번역하도록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처음에 왈도와 그의 추종자들은 상당히 정통적인 신학 이론을 유지했지만, 리용의 대주교에 의해 복음 전파 허락이 거절되었을 때
카톨릭 교회로부터 탈퇴했다.
1184년에 교황 루시우스 3세는 "리용의 빈자들"을 파문했다.  
때가 되어 왈도의 추종자들은 로마 카톨릭의 교리들 중 다수를 배척했는데, 그 중에는 사제직, 면상(免償), 연옥, 성변화,
그리고 성인에 대한 기도가 포함되었다.
다수의 왈도파 그리스도인들은 보헤미아의 개혁자 존 허스 (John Hus) (1415년에 화형되었다)의 추종자가 되었다.
1532년에 왈도파는 프로테스탄트 신앙과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죤 칼빈(John Calvin)의 친구인 윌리엄 파렐 (William Farel)이 그 교류의 도구가 되었다.  
수백 년 동안 종교 재판과 세속 당국에 의해 색출되어 살육을 당한 왈도파 만큼 오랫동안 그리고 끔찍하게 박해를 당한
그리스도인들은 없다.
왈도파에 대한 가장 악명 높은 박해는 "피드먼트 이스터 (Piedmont Easter)"로서 프랑스 군인들이 1,712명의 왈도파
그리스도인들 남녀와 어린이를 학살했다.
이런류의 학살이 36차례나 지속?으며 완벽히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클라크의 "순교자 열전"은 13세기 초반에 단지 프랑스에서만 살해된 왈도파 그리스도인들의 숫자를 2백만명이라고 계산한다.
AD1570년까지 지속된 왈도파에대한 종교재판의 희생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는것으로 비공개적으로 살육된 사람들을 제외하고도
거의 3백만명을 웃돌고 있다.   
 
ㅇ 신전 기사단(The Knights Templar) 카톨릭 십자군 후예들<그리스도인들이 아닌 정치조직>  
 
신전 기사단은 아마 교황의 종교 재판의 가장 잘 알려진 희생자이며, 종교 재판이 사적 정치적 이득을 위해
어떻게 조종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신전 기사단은 기원 1190년에 성지 순례 여행 길을 보호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여러 번 이와 같은 전사 수도승들은 십자군의 주요 인물 (한 자료는 20,000명 이상의 신전 기사단이 십자군에서 살해되었다고
추산한다)이 되었다.
신전 기사단이 교황에게만 책임을 지고 지방 교회 당국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았던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때가 되자 신전 기사단은 지역 사무소 (신전이라고 부름)를 서구 그리스도교국 전체에 걸쳐 설치했다.
언제나 혁신적인 신전 기사단은 최초의 유럽 은행 체계라고 생각되는 것을 발족시켰는데, 그들의 몰락을 가져 온 것도
은행가로서의 그들의 관련성 때문이었다.
1300년대 초에 프랑스 왕 필립 4세는 파리 신전 조직에 큰 빚을 지게 되었다.
1307년에 그는 그 기사단에 이단 혐의를 씌웠다. 신전 기사단에 불리하게 작용한 혐의에는 신전 기사단 지원자에게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침을 뱉는 것을 요구한다는 것, 신전 기사단이 바호멧(Baphomet)이라는 이름의 신비에 싸인
우두머리를 숭배한다는 것이 포함되었다. 이와 같은 혐의는 종교 재판이라는 도구를 통해 고문을 가하여 얻어낸 자백이다.  
프랑스의 종교 재판은 신전 기사단에게 공식적으로 혐의를 씌웠다.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앞에서 기술했듯이 신전 기사단이 지역 카톨릭 교회 당국의 관할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1312년의 비엔느 (Vienne) 종교 회의는 공식적으로 기사단을 해체하고 그들의 재산의 대부분을 유사 단체인 호스피털 기사단에에
주었다. 중세의 신전 기사단 역사의 마지막 사건은 1314년에 발생했는데, 그 때 기사단의 우두머리 쟈크 드 모레이
(Jacques de Molay)가 그의 이전의 자백을 철회한 후 산체로 화형되었다.  
중세의 신전 기사단이 해체된 후 프랑스 왕은 기사단에게 진 모든 빚을 탕감 받고 아울러 그들의 금전적 부의 상당 부분도
취하게 되었다.(오늘날 유럽을 비롯 미국의 중요정치인들은 신전기사단이란 비밀 결사 회원으로 바티칸을 위해 일하고 있다 )   
 
ㅇ 프라티첼리파 (The Fraticelli)  
 
청빈한 사람들로도 알려진 프라티첼리파는 카톨릭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분리 집단이다.
그들은 가난하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완전성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재산이 없었다는 그들의 주장 때문에 이단으로 고발되었다.
프라티첼리파에 대한 첫 번째 종교 재판은 1318년 마르세이유에서 4명이 화형됨으로써 일어났다.
그들은 1426년에 종교 재판 당국이 세속 당국의 지원을 받아 그들에게 동정적이라고 알려진 31개 마을(약15만명)을 황폐시키고
전멸시킴으로써 완전히 일소되었다.   
 
■ 재개된 교황의 종교 재판(제수이트 예수회에의해)  
 
15세기 말엽에 원래의 교황의 종교 재판 (카타리파를 박멸하기 위해 만들어졌음을 기억하라)은 상당히 진척되었다
화형시킬 더 이상의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종교 재판의 불길은 16세기 중엽에 새로운 연료를 얻게 되었는데, 로마 카톨릭 교회의 새로운 적으로 인식된
프로테스탄트와 싸우기 위해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설립한 예수회에 의하여 재개되었다.  
1540년대까지 로마 카톨릭 교회는 유럽 전체에 걸쳐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영향 때문에 동요하고 있었다.
한 때는 교황이 전체 서구 유럽제국을 지배했으나, 1540년까지는 전체 나라들을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가들 즉 카톨릭이 말하는
프로테스탄트 찬탈자들에게 빼앗겼으며, 여기에는 영국 (헨리 8세), 독일 (루터) 그리고 스위스 (칼빈)가 포함되었다.
프랑스 역시 증가하는 칼빈개혁주의 사회가 그들의 권리를 주장함에 따라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것은) 프로테스탄트 개혁 주의는 심지어 이탈리아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파손의 물결을 저지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게 하기 위해 채택된 일련의 방법은 전체적으로 반종교 개혁으로 알려져 있다.  
반종교 개혁은 로마 카톨릭 교회를 구하기 위한 시도에서 몇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그 중 하나는 전체 종교 회의를 소집하는 것이었는데, 트리엔트 공의회(Council of Trent)가 1545년부터 1563년까지 열려서
여러 가지 개혁을 시행하고 카톨릭 신앙을 고쳤다.
다른 방법으로는 호전적인 새로운 종교 집단 (예수회-The Jesuits)을 설립한 것과 프로테스탄트 요새와의 전쟁 (독일의 30년 전쟁)을 개시한 것이 포함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도구인 종교 재판이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예수회는 트렌트 공의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계 정부를 추진하고 있다 )  
 
1542년 6월 21일 교황 바오로 3세는 "종교 재판 의회" 혹은 "성성(聖省)" (상크툼 오피시움)으로서 교황의 종교 재판을
(리세트 아브 이니티오 칙서로) 재개했다. 교황은 종교 재판을 시행하도록 위원회를 임명하고 추기경 지오반니
카라파 (Giovanni Caraffa)를 최고 재판장으로 삼았다.
카라파는 다음과 같은 그의 성명으로서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아무도 칼빈주의는 물론 어떤 종류의 이단에 대해서도 관용을 보임으로써 스스로를 더렵혀서는 안 된다."
―추기경 카라파 (후에 바오로 4세), 1542년  
 
1555년에 그 종교 재판의 최고 재판장은 교황 바오로 4세가 되었다.
바오로 4세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종교 재판의 힘을 증가시켰다.
1559년에 그는 금서 색인 (인덱스 아우크토레움 ? 리브로룸 프로히비토룸)을 처음으로 출판했다.
마침내 칼뱅, 쯔빙글리 (Zwingli), 루터 등 모든 주요 개혁자의 저술이 그 목록에 등장하게 되었다.
바오로 4세는 다음과 같은 어리둥절하게 하는 정서를 지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심지어 내 아버지가 이단이더라도, 나는 그를 화형시킬 나무를 모을 것이다.>  
 
가톨릭 역사가인 베르제리우스(Vergerius)는

 교황 바오로 4세의 임기 중에(1555~1559) "고문과 아사와 화형에 의한

종교 재판으로만 15만명 이상의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을 죽였다."고 희색이 만연하였다.
이것은 종교재판 기간중에 로마가톨릭교회가 "의견을 달리하는"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쏟아부은 만행의 보잘 것 없는
사례에 불과하다. 1559년에 바오로 4세가 죽은 후 유럽은 몇 년간 종교 재판이 잠시 멈추게 되었다.
재판장 미셀 기슬리에리 (Michele Ghislieri) (바오로 4세에 의해 임명됨)는

 

교황 비오 5세 (1566∼1572)―종교 재판의 최고
재판장이 교황이 된지 10여년 후에 두 번째로 (1585년에, 이전의 종교 재판관이 다시 교황 식스투스 5세가 되었다)―교황이 되었다.
비오 5세 하에 고문이 다시 종교 재판의 일상 무기가 되었다.
1566년 6월 23일 비오 5세는 대중의 아우토 다 페스 ("믿음의 행위")가 된 여러 개 중 첫 번째 것을 로마 내에서 조직하였는데
참수와 화형이 일상사가 되었다.  
재개된 교황의 종교 재판은 특히 이탈리아에서 성공적이 되어 거의 모든 초기 프로텐스탄트 주의의 자취가 16세 말까지는
일소되었다.(이기간에 공식적으로 200만명이 살해됨.)
 
 
 
                                          <다음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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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소위 친구라는 사람이 우정을 위하여 여러분으로 하여금 악한 일을 하게 한다면 친구가 아닙니다.   유혹하는 사람은 유혹받는 사람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마찬가지로 유혹받는 사람이 유혹에 넘어가는 것도 유혹하는 사람에게 죄를 지은 것입니다.) 

잭 하일스 박사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사람을  죄짓게(, '넘어지게 하는') 하는 일 때문에 세상에 화가 있다 범죄의(, '넘어지게 하는 일') 유혹이 없을 수는 없으나 유혹하는(, '넘어지게 하는 일')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18:7)

 

  “실족하게 하는 일” 이라는 말씀을 보십시오실족하게 하는 일은 곧 거침돌이 되는 일을 말합니다그것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릇된 일을 하게 만들거나 그렇게 인도하려는 시도그리고 다른 사람이 바른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일은 고의로 행한 것일 수도 있고 부주의나 무지로 인해 떨어진 거침돌일 수도 있습니다.

  둘 중 어느 경우든우리 주님은 실족하게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그것이 심각한 잘못일 수도 있고가벼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어떤 것이든지 다른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하거나 바른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이런 사람을 일컬어 거침돌이라 부릅니다.

 

  이러한 장애들은 우리나라의 모든 교회와 교회 안의 모든 기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주일학교 교사들 가운데도 있고형제회나 자매회나 청년회 중에서도 있고집에서도 있고사회에도 있으며교회학교 학급에도 있고직원이나그리고 신학교나 목회자 친교회에도 있습니다거침돌들을 고의로 놓거나 부주의하게 떨어뜨리고 다니는 사람들은 마약에서부터 험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동원하여 다른 그리스도인을 잘못된 곳으로 인도하려고 할 것입니다이제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살펴봅시다.

 

1. 저들은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 우리가 그 잘못된 일을 하도록 인도합니다.

  이 사람들은 가장 악한 거침돌입니다잘못된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 잘못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이러한 사람들은 대개 자기들이 그 잘못을 행하고 있으면서 자신들만 그 잘못을 범하고 있는 사람이기 원치 않습니다이 일의 비극은많은 경우 이러한 일들이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가장 큰 복으로 주신 우정의 이름으로 행해진다는 것입니다축복이 저주로 타락하는 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때대로 유혹하는 사람은 그 유혹이 거절되고 저항을 받으면 우정을 잃어버리는 값을 요구하기까지 합니다그는 그와 우정을 유지하려면 말도 안되는 값에 우리가 그것을 사야할 것처럼 믿게 하려합니다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러한 우정은 살 가치가 없는 것임을 명심하십시오소위 친구라는 사람이 우정을 위하여 여러분으로 하여금 악한 일을 하게 한다면 친구가 아닙니다. 이러한 유혹은 마약에 중독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그의 습관으로 끌어들이려고 행해질 수 있습니다또한 젊은이가 이성(異性친구에게 성관계를 강요하면서 사랑의 증거를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또는 지도자에게 신실하지 않는 어떤 사람이 그의 불만에 다른 사람이 동참하도록 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거의 매주 교회 안에서 문제가 있는 목사님들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이야기는 언제나 비슷합니다교회 안에서 영향력 있는 어떤 사람이 목사님과 그의 사역과 그의 지도력을 해치려 한다는 것입니다이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죄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다른 사람도 그와 합세하기를 원하여 다른 사람들의 충성심 앞에 거침돌을 던집니다이 거침돌에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고 결국은 큰 슬픔을 맛보게 됩니다.

 

  이러한 일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된 것입니다오늘날 불러내어 모인 무리와 목사님들이 당하는 그 일을 모세와 아론도 당했습니다.

이제 레위의 증손이요고핫의 손자요이스할의 아들인 고라와르우벤의 자손들 엘리압의 아들들인 다단과 아비람과벨렛의 아들인 온이사람들을 모아들였더라.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대항하니 회중 안에서 유명하고잘 알려진 사람들곧 그 집회의 지도자들 이백오십 명이니라.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거역하여 사람들을 모으고그들에게 말하기를모든 회중 각자가 거룩하고주님께서 그들 가운데도 계시거늘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도다그런즉 어찌하여 주님의 회중 위에 군림하느냐(16:1-3).

 

  2절을 보십시오“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대항하니” 3절에서도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거역하여 사람들을 모으고,라고 하였습니다. 2절에서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보십시오“회중 안에서 유명하고잘 알려진 사람들곧 그 집회의 지도자들 이백오십 명이니라. 마귀는 그의 방법을 바꾸지 않았습니다삼천 년 전에 있었던 그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3절에서 저들이 고소하는 내용을 보십시오“모든 회중 각자가 거룩하고주님께서 그들 가운데도 계시거늘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도다그런즉 어찌하여 주님의 회중 위에 군림하느냐? 돌아가는 모든 것은 돌아오게 되어 있으며 사탄은 그다지 독창적이지 못합니다그의 방법은 세대를 지나도 여전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지도자를 험담합니다그리하여 “장로들을 두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되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장로들에게 특히 그리할 것이니라.(딤전 5:18) 하신 말씀은 그 기억에서 망각되어 버리고 자신의 위치를 나타내려 애씁니다.

 

2. 저들은 우리가자기들은 나쁘게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는 나쁜 것으로 알고 있은 것들을 행하게 합니다.

  저들은 우리가 우리의 분명한 확신을 거슬러 가야하는 것으로 믿게 만들려 합니다또한 우리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을 듣지 못하게 하려 합니다진정한 친구는 “그것은 잘못된 게 없어!” 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진정한 친구는 우리가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용납합니다그리고 우리가 확신 안에 거하면서 그 확신대로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참된 친구는 우리의 확신을 존중할 것이며 확신을 그에게 맞추도록 하지 않을 것입니다.

 

3. 저들은 우리가 옳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삶을 쉽게 하려고 최선을 다할 때그것이 동료 그리스도인을 어렵게 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우리는 서로에 대해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우리의 개성우리의 대화우리의 습관은 틀림없이 서로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거나 아니면 장애가 됩니다우리의 친구가 나쁜 일을 하고 있을 때우리의 좋은 성품이 오히려 그로 말미암아 나쁜 일을 계속하도록 부추기거나 유혹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친구가 나쁜 일을 하려고 할 때 그에게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우정을 증명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즉 우리는 친구를 돕기 위해 장려하는 일을 할 수도 있고 막는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지체가 나쁜 일을 하도록 인도하지 않을 것뿐만 아니라 바른 일을 하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그러면 거침돌이 되는 사람과 우리가 가는 의로운 길에 거침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1. 그의 거침돌에 걸려 넘어짐으로 그에게 거침돌이 되지 마십시오.

  유혹하는 사람은 유혹받는 사람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마찬가지로 유혹받는 사람이 유혹에 넘어가는 것도 유혹하는 사람에게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유혹하는 죄의 왕관을 씌우는 것입니다유혹하는 사람이 유혹받는 사람의 죄를 지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혹받는 사람이 유혹에 넘어가면 자신을 유혹한 사람의 죄를 지원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거침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놓은 사람을 더 큰 악곧 또다른 악을 행하는 것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유혹하는 사람은 유혹받는 사람이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면 범죄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의 유혹에 넘어가면그가 우리에게 죄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유혹하는 사람은 유혹받는 사람 앞에 거침돌을 둠으로써 범죄 합니다유혹받는 사람은 걸려 넘어질 때 죄를 짓습니다그는 유혹하는 사람의 죄가 완성되고 두 배가 되게 함으로써 유혹하는 사람이 이중적으로 죄를 짓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술을 권합니다그렇게 함으로 그는 술 권함을 받은 사람의 의로운 길에 거침돌을 두는 죄를 지었습니다유혹을 받은 사람이 술을 마심으로 죄를 지었습니다그런데 그는 그에게 술을 권한 그 사람에게도 죄를 지었습니다그는 이미 술을 마심으로 죄를 지었고 그의 이웃에게 술을 권하는 죄를 지었는데이제는 그의 이웃이 술을 마셨으니 이웃이 술을 마시게 한 결정적인 사람이 된 것입니다이제 그는 두 가지 죄가 아니라 세 가지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한 젊은 청년이 젊은 여자를 불륜으로 끌어가려 합니다그렇게 하는 것은 죄입니다그렇지만 그 유혹에 넘어가는 여자는 그의 죄를 완성시켜 줌으로 유혹하는 자의 죄를 두 배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한 형제가 지도자에게 신실하지 못하고 그의 불만에 다른 사람이 동참하도록 험담을 늘어놓습니다이 때 대부분은 즉각 거절하지 않으므로 동참을 시작합니다그리고는 끈질긴 그의 험담에 동요되어 버려 교회를 허무는 일에 맞장구를 치게 됩니다이 경우 그 동참한 사람은 그 형제에게 죄를 범한 것입니다사람은 누구나 조그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 불만을 해소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불만을 묵인해 줌으로써 그 불만이 옳은 것이라고 인정해 주는 꼴이 됩니다그리고 그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해도 옳은 것인양 생각하게 하는 중대한 범죄를 교회에 행하게 하는 것이 됩니다이것은 작은 불씨가 산 전체를 태우는 것과 같습니다.

 

 

2. 즉각 거절하십시오.

 

  내가 주님의 계명들을 지키는데신속히 하되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 119:60).

 

  악을 거절하기 가장 좋은 때는 그 순간입니다. 때때로 바른 일을 하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그 바른 일을 즉시 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이 시편은 우리에게 바른 일을 하라고 장려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즉시 하라고 장려합니다모든 그리스도인은 의무의 소명에 순종할 뿐만 아니라 그 소명에 즉각 순종해야 합니다아름다운 순종마치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한 아이가 재빨리 행하는 것과 같은 즉각적 순종과 마지못하여 억지로 느릿느릿 행하는 순종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보더라도 어떤 순종이든 미루면 더 어려워집니다. 일부러 미루는 순종을 통해서는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그러한 순종은 일을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즉각적인 순종만큼 기쁜 순종은 없습니다거기에는 매력이 있습니다그렇게 하면 유혹이 일할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에 많은 유혹을 막을 수 있습니다즉각적인 순종은 그 자체로 많은 어려움을 정복합니다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것과 우리가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것을 아는 뿌듯함을 우리에게 줍니다그것은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을 막습니다.

 

3. 거침돌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과는 함께 다니지 마십시오.

 

  모든 교회와 교회의 모든 기관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우리가 지혜롭다면그들에게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은혜로써 대하기는 해도 그들과 함께 다니지는 않을 것입니다.

 

  해몬드 지역에서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로 가는 도중에는 중앙이 분리된 사차선 고속도로가 있습니다주간도로(州間道路) 65번입니다이 고속도로가 지나는 길에는 마을도 없습니다멈춤 신호도 없고 끝까지 중앙이 분리되어 있습니다그리고 인디애나폴리스로 가는 구도로가 있는데, 41번 고속도로입니다해몬드를 떠나서 41번 고속도로를 타면 인디애나 주 하일랜드를 지나야 하는데 그 길에는 대여섯 개의 신호등이 있습니다쉬러빌을 통과하는 데에는 신호등이 둘이나 더 있습니다그리고 세인트 존을 거쳐야 하고시더레이크,또 여러 작은 도시들을 거쳐야 합니다인디애나폴리스까지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65번 주간도로를 택할 것입니다. 41번 고속도로를 탓하거나 비판하거나 그 도로에 대해 험담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냥 그 도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인디애나폴리스로 가는 그의 생각 속에 41번 고속도로는 빠져 있을 것입니다거침돌이 없는 길로 그냥 가면 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거침돌을 두는 사람이 가는 길을 가지 않으면 됩니다그 사람을 비난하거나 해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그저 그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으면 됩니다그는 자신을 의롭게 하려는 사람들과 여행하느라 너무 바빠서 죄의 공범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결론

 

  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불화가 있을까요그 대답은 간단하고 분명합니다‘만족되지 못한 기대들’ 때문입니다우리에게는 우리가 받지 못하는 어떤 것을 받고자 하는 소원이나 기대가 있습니다하지만 그 바라던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물론 이러한 만족되지 못한 욕구들 때문에 일어나는 불화를 막는 비결은 그 욕구를 만족시키거나 우리의 원함이나 욕구를 우리의 능력 한계 내로 제한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불화를 일으키는 요인은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대접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그 대접을 받지 못하면 불화가 생깁니다이런 일은 가정에서도직장에서도그리고 사석에서도 불화를 일으킵니다만일 그와 반대로 우리의 욕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며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고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라면 그 욕구는 채워질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어떤 방법으로 대접을 받아야겠다고 기대하지 마십시오오히려 다른 사람을 적절히 대접하고자 하십시오.

  감사의 말을 듣고자 하지 마십시오오히려 감사를 표하십시오.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오히려 당신이 다른 이들을 인정하십시오.

 

  우리 교회 문제의 대부분은 우리의 소원우리의 바람우리의 욕구가 정결하게 되고 성화되면 해결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 죽을 수 있도록내가 예수님과 동행하게 하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까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분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 삶을 다른 교회(형제나 자매)를 위해 사용하게 해주시기를 빕니다사도 바울은 그랬기 때문에 갈라디아서 2:20 상반절을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나무에 달려 못박혀 있나니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 있음은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은나를 사랑하셔서나를 대신해서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그는 살았다가 죽고살았다가 죽고살았다가 죽었습니다사는 것이 없으면 죽을 것이 없습니다죽는 것이 없으면 살아야 할 목적이 없습니다.

 

  “우리 중에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자기 자신을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우리가 살아도 주님을 향하여 살고우리가 죽어도 주님을 향하여 죽는 것이니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이로다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일어나셔서 다시 살아나셨으니곧 그분께서 죽은 자들과 살아있는 자들의 주님이 되심이니라그런즉 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를 멸시하느냐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게 되리라이는 기록된 바주가 말하노라내가 살아 있으므로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하셨음이니라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진술(陳述)하게 되리라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를 판단하지 말고도리어 자기 형제의 길에 걸림돌이나 실족하는 것들을 놓지 아니하였는지 판단하라.(14:7-13).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며 스스로 복종하라그들은 너희 혼들을 위해 깨어 있기를 마치 자기들이 반드시 회계(會計)보고 할 자인 것같이 하나니그들로 하여금 이것을 즐거움으로 하게 하고슬픔으로 하지 아니하게 하라이는 너희에게 유익이 없음이니라.(13:17).

 

가져온 곳 : 
카페 >물과피와성령(water and blood and the Holy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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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요셉| 원글보기

칼빈주의 5대 교리와 알미니안주의 5대 교리의 상호비교


알미니안주의 5대 교리

칼빈주의 5대 교리

 

자유의지 혹은 인간의 능력

비록 인간의 본성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심각한 영향을 받았지만 인간의 영적 상태가 전적으로 무력한 상태에 처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은혜롭게도 모든 죄인으로 하여금 회개하게도 하시고 믿게도 하시지만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신다.

죄인은 각각 자유의 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의 영원한 운명은 그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인간의 자유는 영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그의 녕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의 의지는 그의 죄된 본성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죄인은 각자 하나님의 성령과 협력하여 중생을 얻거나 혹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여 멸망에도 이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유기된 죄인은 성령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자신이 믿기 전에 성령에 의하여 중생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믿음은 인간의 행위이고 새 생명으로 탄생하는 일에 선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구원 얻는 일에 공헌할 수 있다.

 

 

조건적 선택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구원에 이르는 어떤 사람들을 선태하신 근거는 그들이 하나님ㅇ ?루스임ㅔ 응답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유롭게 복음을 선택하여 믿음을 가진 자들을 미리 아시고 그들만을 선택하셨다. 그러므로 선택은 인간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어지고 또 제약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선택의 근거로 삼으시는 믿음이란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죄인게 주시는 선물이 아니라 인간 의지의 결과일 따름이다. 아떤 사람이 믿음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는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려 있는 것이며, 따라서 구원을 받게 되는 선택 역시 그러하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선택할 자들을 미리아시고 그들을 택하셨다. 결국 구원의 궁극적인 원인은 하나님이 죄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것이다.

 

보편 구속 혹은 일반 속죄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받는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사람의 구원을 실제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과 각 사람들을 위해서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오직 그를 믿는 자들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죄인들을 용서하는 일에 능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믿는다는 구원의 조건이 있으므로 실제적으로 모든 사람의 죄를 물리치신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인간이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선택을 하는 조건에서만 효과적이다.

 

성령은 효과적으로 거부될 수 있다

성령은 복음의 초청에 의해 외적으로 부름을 입은 자들을 내적으로 부르신다. 성령은 죄인들이 구원 얻기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하신다.

그러나 인간은 그가 자유한 만큼 성공적으로 성령의 부르심을 거부할 수 있다. 성령은 죄인이 믿지 않는 한 중생시킬 수 없다. 즉 믿음(인간이 공헌하는 부분)이 선행해야만 중생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자유의지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적용함에 있어서 성령을 제한한다. 성령은 그와함께 걸어가고자 하는 자들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 있다.

죄인이 응답하기 전에는 성령께서 생명을 주실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은 거부되어질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에 의하여 거부될 수 있고 방해받을 수도 있으며, 또한 종종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은혜로부터의 타락

믿고 진실로 구원을 얻는 자들도 믿음과 그 이외의 것을 지키는 데 실패하면 그들의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

모든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이 점에 대해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즉 어떤 사람들은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안전하다고 주장하는데 결국 죄인이 한번 거듭나게 되면 그는 결코 유기될 수 없다는 것이다.

 

※ 알미니안에 의하면 :

구원은 (주도권을 가지신) 하나님과 (반드시 응답해야만 하는) 인간의 노력이 결합됨으로써 완성된다.

여기서 인간의 반응은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구원을 제공하셨지만, 그의 구원에 대한 준비는 스스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과 협력할 것을 선택해서 하나님의 은총의 제안을 받아 들이는 자에게만 효력을 미치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는 결정적인 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구원의 선물을 받을 자를 결정하게 된다.

 

※ 도르트 총회에서 거부됨 :

(비록 이러한 순서로 나열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항론"(Remonstrance)에 담겨진 사상의 체계이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이것을 1610년 네덜란드 교회에 제출하였고, 이것은 1619년 비성경적이라는 이유로 도르트 총회에서 거부되었다.

 

전적 무능력 혹은 전적 부패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기 위해 복음을 믿는 일에 있어서 전적으로 무능력해졌다.

죄인은 하나님의 일들엘 관해서는 죽었고, 눈이 멀었으며 듣지 못하는 상태이다. 그의 마음은 거짓으로 가득 차 있고 전적으로 부패해 있다.

인간의 의지는 자유하지 못하며 그것은 그의 악한 본성에 지배를 받는다. 그러므로 죄인된 인간은 영적인 영역에 있어서 악에 대하여 선을 택하지 않으며 사실은 할 수도 없는 상태이다.

결국 죄인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해 성령의 사역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성령의 다시살게 하심과 새로운 본성을 주시는 사역에 의해 죄인은 중생하게 된다.

믿음은 인간이 구원을 얻음에 있어서 무엇인가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믿음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지 하나님에 대한 죄인의 선물은 아닌것이다.

 

 

 

무조건적 선택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구원을 목적으로 특정한 사람들을 선택하신 것은 오직 그의 주권적인 의지에 근거하는 것이다.

특정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의 근거는 결코 죄인이 가지는 믿음이나 회개등과 같은 미리 알 수 있는(예지할 수 있는) 반응에 의한 것이거나 인간의 순종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그가 선택하신 각 사람에게 믿음과 회개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결국 믿음과 회개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이 가지는 어떤 덕이나 예지할 수 있는 행위에 근거해서 결정되거나 제약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선택한 자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통하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구원의 궁극적인 원인은 죄인이 그리스도를 택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며 오직 하나님이 죄인을 선택하시는 것에 있다.

 

특별 구속 혹은 제한 구속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피택자들만 구원하려는 것으로써 실제적으로 그들만의 구원을 보장한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어떤 특정한 죄인들을 대신해서 당하신 형벌로써 대속의 인내였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하시는 것과 더불어 자신에게 그들을 연합시키시는 일은 물론 그들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일을 보장한다.

믿음의 은총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어 주신 모든 자들에게 골고루 적용되며, 따라서 그들의 구원은 확실하게 확증된다.

 

 

성령의 효과적인 부르심 혹은 거부할 수 없는 은총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구원의 외적 부르심에 더하여 성령께서는 택함받은 자들을 향해 반드시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지속해서 모든 사역을 하신다.

외적 소명(모든 사람들에게 구별없이 하시는 소명)은 거부될 수도 있고 종종 그렇게 된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적 소명(오직 택한 자만을 부르시는 소명)은 거부될 수 없다. 성령의 내적 소명은 인간을 항상 회개로 초대한다. 이런 특별한 소명을 통하여 성령께서는 죄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신다.

성령께서는 구원을 적용시키심에 있어서 결코 인간의 의지에 제한받지 않으시며, 구원의 성공에 있어서도 결단코 인간과 협동하지 않으신다.

성령께서는 그의 은혜로 택함받은 죄인을 협력하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회개케 하시며, 자유롭고 기쁜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께 나오게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으며, 또한 그 은혜가 미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구원이 이루어진다.

 

 

성도의 견인

하나님에 의해 선택받고,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받으며, 성령에 의해 믿음을 부여받은 모든 자들은 영원히 구원을 받게 된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믿음을 유지하며, 그 결과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다.

 

 

 

※ 칼빈주의에 의하면 :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에 의해 성취된다. 아버지는 자기 백성들을 선택하시고, 아들은 그들을 위해 죽으셨으며, 성령은 택한 자들을 믿음과 회개에 이르게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효과 있게 만드셨다. 또한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복음에 기꺼이 순종하게 하셨다.

모든 과정(선택, 구속, 중생)은 하나님의 사역이며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의 은총을 받을 자를 결정하신다.

 

 

※ 도르트 총회에서 재확인됨 :

이 신학체계는 1619년 도르트 총회에서 성경에 담긴 구원의 교리로서 재확인 되었다.

이 체계는 당시에 "5대 교리"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제출한 5대 교리에 상응하는 대답을 하기 위해) 로 형성되었고, 이때 이후로 "칼빈주의 5대 교리" 로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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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다섯 솔라-(Five Solas)와 그 의미

 

1. 다섯 솔라(Five Solas)

 

다섯 솔라(Five Solas)는 종교 개혁 기간 동안 나타난 다섯가지 라틴어 표어이며,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는 대조되는, 개혁주의자들의 기본적인 믿음을 나타낸다. 라틴어 솔라(sola)는 한국어로 "오직, "홀로"로 번역된다.

  •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 성경하나님영감 있고 권위 있는 말씀일뿐 아니라 기독교 교리의 유일한 원천이며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으므로, 문체가 명료하며 자기 해석이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성경 밖에서는 해석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성경이 거룩한 전승에 의해서만 권위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동방 정교회, 오리엔탈 정교회, 콥트교회, 앵글로 가톨릭,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통(Prima Scriptura)과는 반대된다. Sola Scriptura가 교회의 전통을 무시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교회의 전통도 성경의 권위 아래 있으며, 성경적 근거가 없는 전통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는 달리 교회의 전통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보는 사상을 "Sola Verbum Dei"라고 한다.
  •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 자연인의 상태에 대한 개혁주의적 입장은,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참된 생명력을 잃은("죽어 있는") 절대적인 절망의 상태로서 죄의 종 노릇을 하고 있으며 현세에서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만 사후의 심판에서 죄에 대한 대가로 영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인간은 스스로 벗어날 능력이 없고, 구원의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서 억조창생의 죄값을 다 받고 하나님의 의를 완전히 이룬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를 덧입는 것뿐이라는 것이 Solus Christus에 담긴 내용이다.
  • Sola Gratia (오직 은혜) :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를 덧입혀 주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이 인간 쪽에 아무런 조건을 찾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믿음"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며, "믿음"은 구원의 은혜를 받는 '통로' 역할을 할 뿐이며 그것의 '대가'로 구원을 받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 Sola Fide (오직 믿음) : 하나님이 내리시는 구속의 은혜는 오직 믿음을 통하여 받을 뿐이지 다른 어떤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 사제들과 교황의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와 동일시 되던 중세 카톨릭에 반하여 모든 영광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만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고 완성하시는 일이며 거기에 인간이 참여하는 부분은 없기 때문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내용이다.

 출처 위키백과 - http://ko.wikipedia.org/wiki/%EB%8B%A4%EC%84%AF_%EC%86%94%EB%9D%BC

 

 

 

2. 5 Sola(다섯 가지 오직) 의미

 

 

종교개혁은 중세의 먹구름을 헤치고 그동안 가려졌던 태양을 인류에게 다시금 비취게 하였다. 이로써 그동안 가려졌던 구원의 복음이 명확하게 드러났고, 성경의 가르침은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신앙의 원리를 다섯 가지 솔라로 요약했다. 이것은 대부분 루터와 에라스무스와의 논쟁에서 루터로 부터 나온 것이다. 이로써 루터는 당시의 가톨릭과 인본주의를 넘어서서 복음의 가르침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는 다시 중세의 암흑시대로 돌아갔다는 비난이 높다. 이것은 교회가 성경의 근본이 되는 원리를 잊었으므로 인간의 세계관, 욕심, 무지, 우상숭배, 열광주의 등이 교회를 지배하는 하나의 원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수십년 다녀도 기본적인 신앙의 원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교회는 요즈음 사방에서 지탄을 받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유를 분석해서 개선하려는 의지는 적다고 본다. 다시 복음의 원리가 가려져서 유사복음이 교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에 필자는 종교개혁의 원리이자 기독교의 원리인 다섯 솔라를 설명하면서 우리가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점검하고자 한다. 먼저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핵심 논쟁점을 보고 그다음에 5솔라의 가르침을 살펴본다.

 

 

에라스무스의 입장

자유의지는 nonnihil(약간)이며, 하나님의 은혜는 plurimum (대부분)이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지만, 그래도 인간의 의지가 작용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을 상주시고 벌하시겠는가? 그래야지만 인간은 선행을 위해 힘쓰지 않겠는가? 만약,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벌을 주시는 하나님은 불공정한 잔인한 하나님이 아니겠는가?

 

루터의 입장

루터의 대답에서 신교 칭의론(인간이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 구원을 받는가?) 본질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개혁교회의 4가지 솔라는 이곳에서 나왔으며, 이것은 루터의 칭의론의 근간을 이룬다.

 

 

I. solus Christus(오직 그리스도)

 

에라스무스 인본주의자로서 인간의 존엄성 살리려고 했다. 인간은 비록 일그러지고 병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선한 면이 조금은 있으므로, 이것을 고양하면 선한 사람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사람은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스도는 (여러 의사 중에) 가장 좋은 의사이다. 성경도 여러 가지 좋은 중에서 가장 좋은 약이다.

 

루터: 인간이 병이 것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죽었다! 세포 하나라도 살릴 수가 없다. 그에게는 부활만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를 살리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이다.

 

해설:

에라스무스는 세미펠라기우스 주의이다. 세미펠라기우스 주의는 인간이 완전히 타락한 것이 아니므로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아서 본성을 살려나가면 구원에 이를 있다는 가르침이다. 오늘날 이론이 발전되어 많은 교회에서도 그리스도 외에 종교를 믿어도 어렵기는 하지만 구원의 길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인간은 철저하게 타락했으므로,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출발할 없다. 아무리 본성을 개선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에 도달할 없다. 타락한 인간을 살리시는 분은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없다.

 

적용:

1) 인문주의는 일차적으로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ad fontes). 학자들은 고전(성경 포함)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다. 따라서 그들은 성경이 가장 좋고, 그리스도도 필요한 것이지만, 다른 책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 오직 그리스도, 오직 성경이 아니었다. 이것은 오늘날 복음주의가 그리스도와 성경 외에 심리학, 사회학, 상담학을 받아들이는 것과 유사하다. 그렇게 되면 차차로 그리스도의 유일성이 사라지고, 다른 것들이 그리스도를 대신하게 된다.

2) 요즘 교회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이 기승을 부리는 때에 오직 그리스도 붙잡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원래 교회 일치 운동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종교일치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들은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구원에 이를 있다고 말한다.

 

 

II. sola gratia(오직 은혜)

 

에라스무스: 인간의 내부에는 아직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이것이 자유의지다. 인간은 () 비유하자면, 성의 대부분이 적에 의해 점령을 당했지만, 가장 깊은 곳에는 아직 자유가 있다. 외부에서 강력한 지원군이 온다면, 이는 해방될 있다. 지원군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루터: 무슨 소리! 바로 가장 깊은 (마음, 양심) 이미 옛날에 적에게 강점되어 있소. 인간의 중심이 바로 사단의 노예가 되어 있소.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간의 의지는 속박되어 있소.

 

에라스무스: 인간은 자기가 있는 일을 해야 한다(facere quod in se est).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한 것을 채워서 완성시킨다(당시 가톨릭의 가르침).

루터: 이러한 가르침은 사단의 가르침이다. 인간이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하게 되면, 그는 대죄(죽을 ) 지을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은혜를 내리게 하시기 위해 무엇을 준비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만약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하게 자신을 만든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더이상 은혜가 아니다. 은혜와 공적은 물과 불이라서 결코 섞일 없다. 진실로 인간은 암흑, 토후와보후(1:2: 혼돈하고 공허하며)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은혜 외에는 인간을 구원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III. sola fide(오직 믿음)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무료로, 선물로 받기 때문에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얻는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해설: 죄인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를 얻는 길은, 공적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믿음으로써 가능하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을 그분이 이루신 의가 나에게로 전가된다. 죄인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뿐이다(전가된 ). 그리스도가 주시는 의를 받아들이고 심판받은 자로서, 그리고 부활한 자로서 사는 것이 믿음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0: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참된 믿음을 통해서만(오직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비록 양심이, 내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범하였고 계명 어느 하나도 (완전하게) 지키지 못했으며 아직도 모든 종류의 죄를 짓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고소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공로와 관계없이 순전한 은혜로 나에게 완전한 속죄와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함을 선물로 주십니다

61 : 믿음으로만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있다고 말합니까?

: 하나님께서 나를 기쁘게 받으시는 것은 믿음이 공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와 의와 성결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 대하여 의로운 자가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의를 것으로 삼을 방법은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체도 성령님의 사역이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로 믿은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님을 받아 결과로 믿음을 가지게 된다. 오직 은혜로라는 말은 구원을 하나님 편에서 표현한 것이고, 오직 믿음이라는 말은 인간의 편에서 표현한 말이다.

 

그동안 한국 교회에서 가장 강조해왔던 것이 믿음 같다. 믿기만 하면 된다!!! 믿음으로 해라!!! 그러나 이것은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치는 믿음과는 전혀 반대이다. 이러한 잘못된 생각이 한국 교회를 망친 주원인 중의 하나이다. 개혁자들이 가르친 믿음이란, 우리의 행위와는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순전히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많은 목사들은, 믿음을 무엇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가르쳤다: 믿음으로 불가능한 것을 이루어라(긍정적 사고 방식)! 믿기만 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들은 믿음을 자신의 조직을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따라서 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하되, 정작 기독교는 무너졌다.

결과 교인들로부터 기대할 있는 거룩함과 사랑의 정서는 뒷전으로 밀렸다. 대신 이방종교에서 성행하는 치료, 그들이 방언이라고 주장하는 이상한 소리, 거짓 예언, 뒤로 넘어지는 , 이빨로 변하기, 부자가 되고 성공하여 행복해지기 위한 기도 등이 많은 교회에서 성행하게 되었다.

 

 

IV. sola scriptura(오직 성경)

 

에라스무스: 성경에는 어둡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심지어 서로 모순되는 부분도 있다.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있는 것은 없고, 단지 주장이나 추측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성경과 교부들의 해석, 성경과 전통, 성경과 교황의 가르침, 성경과 철학, 성경과 건전한 이성, 양자가 모두 필요하다.

루터: 성경은 명료하다! 단지 우리의 어두워진 눈이 이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면,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멸망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다음에 하나님의 구원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하게 신앙고백을 있다. 성령님께서는 회의하는 이성과 같은 회의론자가 아니므로 그리스도인도 확신의 사람이다. 모든 것은 활짝 열린 성경이 선사한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오직 성경이다.

루터는 이곳에서 성경은 다른 권위에 의존해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성경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성경해석학적 원칙을 내세웠다. 어두운(어려운) 부분은 밝은 부분으로부터 해석이 가능하다. 성경해석에 있어서 교황이나 전통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알리시기 위해 성경을 주셨다. 비록 인간이 성경을 썼으나,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썼으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성경의 다음의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

 

1) 성경의 권위성: 성경의 권위는 성경 자체에 의해 권위가 증명된다.

2) 필수성: 성경은 인간에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 구원의 방편으로서 필요불가결하다.

3) 명료성: 성경에는 구원에 필요한 지식이 명료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교회나 사람의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도 구원의 도를 있다.

4) 충분성(충족성): 하나님의 구원의 뜻은 성경에 충분히 계시하셨다. 그리고 성경은 개인과 교회의 영적, 도덕적 욕구를 충족시킬 있다.

 

 

V.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 영광)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주권을 재발견했다. 하나님의 주권은 구원에서 뿐만 아니라 신자의 모든 삶에 침투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을 자신의 영광과 죄인의 구원을 위해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애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칼빈 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람은 드믈다. 루터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드러냈고,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드러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로 살았다. 그의 다소 엄격한 태도는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의 유언대로, 묘지도 초라하게 하고 비석도 세우지 않아, 장사된지 달만에 그의 무덤은 아무도 찾지 못했다. 그는 법학도 시절에 교수 대신 학생을 가르칠 정도로 수재였고,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 분명하지만, 자신은 이것을 한번도 밝힌 적이 없어서 아무도 정확하게 그가 박사였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이라는 구호를 삶으로 실천했다고 있다. 그의 기독교강요는 이러한 킬빈의 신앙을 반영한다.

 

 

참다운 신자라면, 신자로서의 분명한 정서를 갖추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과 정서에서 구절을 인용한다.

 

성도들의 기쁨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데서 나온다.

 

기쁨은, 신적인 것들이 자기들과의 이해 관계나 어떤 연관이 있어서 나온 것이 아니다. 신적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거룩한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묵상할 자기의 마음이 즐겁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위선자와 참된 성도의 기쁨을 구분하는 차이이다. , 위선자는 자아가 기쁨의 첫째 기초이며 성도는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위선자는 자기가 도달했거나 도달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행복을 생각하면서(: 주일헌금 일억원, 1000 선교사 파송) 마음에 기쁨을 찾는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먼저 하나님께 속한 일들의 영광스럽고도 호감 어린 본질들을 아름답게 생각함으로써 말로 없는 기쁨과 즐거운 마음을 가진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기쁨의 샘이요, 그들의 모든 유쾌함의 진수이다.

 

그러나 위선자의 정서는 정반대의 순서를 따른다. 그들은 먼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것들이 많이 조성된 것을 즐거워하고(목표 달성),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고양된다. 그런 다음에 그런 것을 기초로 해서 하나님을 사랑스럽게 보는 것이다. 참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는 기쁨의 가장 기초는 그리스도의 완전성과 아름다움이다.

 

복음의 거룩한 교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높아지고 사람은 낮아지며, 거룩은 영예롭게 되며 촉진되고, 죄는 수치를 당하고 기가 꺾이게 된다. 그리고 은혜롭고도 값없이 주어지는 주권적인 사랑이 드러난다. 바로 거룩한 복음의 교리들이 성도의 눈에 영광스럽게 보이며, 그의 취향에 아름답게 보인다. 이것들은 이러한 일들이 자기와 어떤 이해관계를 가지는지 생각하기 이전의 일이다. 실로 성도들은 자신이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을 즐거워하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구주이심을 즐거워한다.

 

그러나 위선자들은 자신이 선한 상태에 있다는 착각으로 그러한 교리 아래서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을 위해서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하시는가를 듣고 대단할 정도로 즐거움을 나타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의 기쁨은 그들 자신 속에 있는 기쁨이다. 그들이 기뻐하고 마음을 스스로 부풀릴 , 자기들의 시선을 자기에게 두기 마련이다(나는 했다). 그래서 자기들이 소위 영적인 발견이나 체험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받은 후에 그들의 마음이 그것들에 사로잡혀서 자신의 체험을 크게 찬탄한다.

그들은 계속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 체험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발견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내가 얼마나 놀라운 일을 만났는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아름다움과 온전하심의 자리에 자기의 체험을 가져다 놓는다.

이들은 자신이 체험하고 성취한 것의 위대한 것을 바라보면서 자기 자신의 일에 관한 대단한 수다꾼들이 된다(선교보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욕망을 크게 채워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들의 복종심과 맹렬한 열성은 보통이 아니다. 자기에게 맞는 하나님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그를 높이고 복종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정서는 자신이 대단한 성도라는 상상 위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영광 자체에 대하여 진정으로 발견한 것들을 기뻐한다. 그들의 정서는 자기 밖에 계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기초를 두고 있다.

 

 

출처 : 개혁주의 마을  |  글쓴이 : 송다니엘 원글보기

 

출처: Return Bible / 개혁신앙

가져온 곳 : 
카페 >말씀의 교회와 새빛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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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상록수| 원글보기

“오직 성경으로”

(Sola Scriptura)

이 환 봉 개혁주의학술원장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는 교회개혁의 표어는 이미 “개혁되어진”(reformata)과 항상 “개혁되어야 하는”(reformanda) 교회의 역설적인 두 가지 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 개혁교회는 불변하는 성경 말씀을 따라 개혁되어졌기 때문에 변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개혁교회는 성경 말씀을 따라 항상 개혁되어야 하기 때문에 변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개혁교회는 오직 성경의 표준을 따라 모든 악한 타협을 거부하기 위해 보수주의자보다 더 보수적이어야 한다. 또한 개혁교회는 오직 성경의 진리 안에서 모든 악한 전통을 극복하기 위해 진보주의자보다 더 진보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역설적 과제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의 길 즉 보다 더 철저하게 성경적이 되는 길뿐이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는 성경 말씀의 표준에 비추어 볼 때 너무 변해서 회개해야 하고 또한 너무 변하지 않아서 회개해야 한다.

 

    1. 오늘 우리는 성경 말씀을 떠나 변하였기에 회개해야 한다.

    상황론자는 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급변하는 세상의 현실과 상황에 따라 항상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혁자들이 생각한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semper reformanda)는 말의 의미는 새로운 상황에 따라 항상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개혁자들이 요구한 개혁의 핵심은 항상 오직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개혁의 표준은 상황이 아니라 성경이었으며 개혁의 태도는 창조가 아니라 회개였다. 즉 교회개혁이란 상황이 요청하는 새로운 것의 창조와 확립이 아니라 성경이 요구하는 옛것의 갱신과 재확립이다.

 

  루터가 95개 조항의 종교개혁 선언문을 회개의 요청과 더불어 시작하였던 것은 회개 즉 성경적 신앙의 회복이야말로 교회개혁의 진정한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칼빈의 교회개혁도 시대의 요청에 교회가 얼마나 잘 적응하는가의 문제 이전에 교회가 성경 말씀의 요구에 얼마나 충실한가의 문제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실상 오늘 한국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도 교회가 세상에 동화되어 변화하지 못한 기능적 실패 때문이라기보다는 교회가 성경에 충실하여 일치하지 못한 존재론적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진보적으로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회개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너무 진보적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에 회개해야 한다.

 

  웰즈(D. F. Wells)가 그의 책 “No Place for Truth"에서 지적한 것처럼 오늘 한국교회도 신학과 목회 현장에서 성경의 교훈과 명령은 뒷전으로 하고 저급한 현대사상과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세상의 학문에 성경의 진리를 위한 자리를 내어 주고 있다. 예를 들면, 경제성장을 위한 시장경제 논리와 마케팅 전략이 교회성장을 위한 성경적 원리와 방법을 대신하는 것을 본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죄와 구속의 은혜가 심리학이 말하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상호갈등과 내적 상처로부터의 단순한 심리적 치유와 안정으로 대체되는 것을 본다. 오늘날 많은 이단과 은사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대신에 인간의 체험과 감정에 기초한 새로운 계시를 앞세워 혹세무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성경적 원리 대신에 수요자 개인의 요구와 필요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개인주의와 실용주의의 원리가 오늘날 교회의 예배, 설교, 전도의 형식과 내용을 결정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성경으로”의 원리를 떠나 기독교를 다시 개혁자들이 반대했던 그런 철저한 인간중심적인 종교로 만들어 가는 교회 변질의 현대적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혁교회와 개혁신앙은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아무리 정당하고 시대적인 요청이 제아무리 더높다할지라도 성경 말씀을 제쳐두고서 우리 자신의 사회학적, 심리학적, 경제학적 생각과 필요를 따라 우리의 신앙을 재구성할 수 없다. 물질주의, 물량주의, 세속주의의 가치와 방식을 따라 은밀히 기획되어진 오늘 교회안의 온갖 인위적인 조작은 결국 교회를 갱신하기 보다는 오히려 훼손해 갈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세상의 영을 따르는 세상의 지혜를 단호히 거부해야한다. 성경 말씀의 표준을 떠나 너무도 변하여 버린 것을 참으로 회개해야한다. 진정한 교회개혁은 하나님의 영을 따라 오직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갈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2. 오늘 우리는 성경 말씀을 따라 변하지 않기에 회개해야 한다.

    성경은 “복음”(good news)으로서 새로운 소식을 의미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우리의 오래된 편견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시고 우리의 회개와 변화를 격려하기 위해주신 것이다. 참된 회개는 진정한 변화를 가져온다. 선지자들은 거듭거듭 자기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전통을 재고하도록 도전하였다. 성경과 교회사에 나타난 신앙의 영웅들은 그 시대의 거짓된 요구들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원리를 옹호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를 따라 회개와 변화를 앞서 주도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거짓된 전통과 일상으로부터 떠나 생각과 삶에 있어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단행하도록 요구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새로운 백성의 조상이 되도록 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그의 역사적 뿌리로부터 잘라내시고 새로운 나라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하셨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자신의 과거와의 분명한 단절이었고 약속된 미래를 향한 새로운 헌신과 위탁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일상에 사로잡힌 삶에서 떠나 가나안의 약속의 땅을 향하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히려 애굽의 일상의 삶을 그리워하고 다시 포로생활로 되돌아가기를 요구하며 모세를 원망하고 거역하였다. 구약의 전 역사에 나타난 바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종 자신들의 일상과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혼동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29:13)고 하셨다. 예수님도 이 구절을 인용하여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책망하셨다(마 15:8-9, 막 7:6-7).

 

  바리새인들은 “고르반”(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이라는 사람의 계명 즉 인간의 전통을 하나님의 진리로 내세워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자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한 전문가들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다른 많은 인간적인 전통을 만들고 따르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머물고 있었다. 또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올바른 해석학적 또는 주석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메시야를 한갓 세상의 군왕으로만 오해하였고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였다.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전통과 이해를 책망하여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5:39-40)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지난날의 교회역사를 통해 때마다 자기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잘못된 전통을 반성하고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되돌아올 것을 거듭 요구하셨다. 그러한 하나님의 결정적인 요구가 바로 종교개혁이었다.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으로 교회를 청결케 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였다. 마침내 교회의 신학과 예배와 설교, 그리고 교회생활의 모든 영역이 혁신적으로 새롭게 변할 수 있었다.

 

    개혁자들은 사도들의 성경적 가르침으로 되돌아가는 일에 있어서는 아주 보수적이었지만, 반면에 성경에서 떠난 인간적 전통들에 대한 공격에 있어서는 매우 급진적이기도 하였다. 개혁자들의 이러한 교회개혁의 자세가 “오직 성경으로”라는 슬로건에 잘 표현되어 있었다. 오늘 우리도 개혁자들처럼 현대사상의 거짓된 요구에 직면하여 오직 성경을 따라 우리의 신앙을 파수해야하고 또한 전통사상의 편협적인 판단에 대해서도 오직 성경을 따라 날로 새롭게 개혁해 가야 한다. 오직 성경에 순종하기 위해 개혁교회와 개혁신앙은 언제나 변하지 말아야 하고 또한 항상 변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거짓된 세상의 새로운 요구에 타협하지도 않고 동시에 변하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지도 않는 균형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균형 있는 개혁자의 삶을 살기 위해 먼저 우리 자신이 오직 성경으로의 삶 즉 철저한 성경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교회개혁의 시대적 사명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만이 우리의 신앙과 삶의 유일한 표준과 충족한 근거임을 새롭게 다짐하며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 개혁주의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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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나이는 어떻게 되는가?”

  2012년 리고니어 선교회 전국 컨퍼런스 중에 있었던 질의응답시간 동안, 강사들은 우주가 만년 이하의 나이라고 생각하는 크리스천들과 그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크리스천들 사이에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과 관련하여 이 질문을 받았다. 리고니어 선교회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스프로울 박사(Dr. R. C. Sproul)는 이 질문에 5분 정도를 할애하며 답을 하였는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크리스천들과 그 논쟁과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스프로울 박사의 답변에 귀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우주의 나이에 관한 논쟁이 교계내 논쟁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스프로울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꼭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문제를 양자택일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내게 지구의 나이를 묻곤 하는데, 그때마다 난 ‘모릅니다’라고 말합니다.  일단 성경이 창조의 날짜를 말해주지 않는데요. 여러가지 경우를 미루어보면 아마도 성경은 지구가 젊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 같기는 합니다. 그와 동시에 교회 밖에서는 팽창하는 우주, 어마어마한 연대측정 등등의 다른 정보들이 전해지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죠.
내가 확실히 믿는 것은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계시만을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경 자체가 하나님께서 자연 속에 당신 자신을 계시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자연계시라고 하죠. 언젠가 한번은 신학교 수업 중에 보수적인 신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오류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 손 들어 보세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신학생들이 손을 들더군요. 이번에는 “자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오류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무도 손들지 않았습니다. 그 계시를 주신 분은 바로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모든 과학 이론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상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교회가 특별계시에 대해 오류를 수정하게 된 것은 일반계시를 연구한 이들 덕분입니다. 그 한가지 예가 코페르니쿠스 혁명입니다. 코페르니쿠스 (Nicolaus Copernicus) 는 태양계의 중심이 지구가 아닌 태양이라고 주장했고, 그 덕분에 존 칼빈(John Calvin)과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그를 16세기의 이단으로 여겨 거부했지요. 하지만, 오늘날 천동설을 변호하는 정통 기독교인은 없습니다. 그런 경우에 교회는 “태양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잘못 해석했다. 우리가 잘못한 해석을 바르게 수정해 준 과학자들에게 고마워하고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계시를 연구하는 불신 과학자들에게 배워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연계시를 무시하는 우리보다 더 뛰어난 자연계시의 감각을 갖은 것 같습니다. 나는 자연계를 높이 평가합니다.

그렇지만, 만약 의심의 여지없이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을 보여주는 무언가가 있고, 누군가가 자연신학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하나님 말씀과 대치되는 어떤 이론을 말한다면, 나는 기여히 수십번, 수백이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서 있을 것입니다. 여러번 반복했지만,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영역과 그와 양립할 수 있는  진리의 영역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과학이론(자연계시)이  어떤 신학론과 충돌을 일으킨다면, 내가 분명코 말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는 틀린 것입니다. 

나는 성급하게 모든 사람이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자가 되어도 큰 상관은 없습니다. 그러나, 꼭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자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류가 없는 자연계시를 해석하는 오류투성이 인간입니다. 또한 오류가 없는 특별계시를 해석하는 오류투성이 인간입니다. 이것이 지구의 나이를 모른다는 말을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인 것입니다. 


  스프로울 박사의 답변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답변을 들으면서 우리는 지구의 나이를 묻는 질문에 대해 적절한 접근법을 찾는데 필수적임에도, 매번 잘못 다루고 간과하며 가벼이 무시하는 어떤 문제들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프로울 박사의 답변을 통해 자연(일반)계시와 특별계시의 원천, 하나님께서 주시는 두 계시 사이의 차이점과 그에 대한 우리 인간의 해석, 그 해석의 오류가능성 등등을 떠올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지난 수십년 간의 논쟁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과학과 성경에 관한 독특한 개혁파적 접근법의 여러 국면들을 상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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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예언을 멸시치 말라!

Despise not Prophesyings

 

 

Writer : mikelee

  

 

Quench not the Spirit. (quench = σβέννυμι (헬)스벤누미 = extinguish 불을 끄다, quench (갈증을) 풀다 2. (타는 불을) 끄다, snuff out 완전히 끝내다[파괴하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라. 그러기 위해서는,
DESPISE NOT PROPHESYINGS. 예언을 무시하지 마라 (1 Thessalonians 5:19-20)
살전 5:19-20 • 성령을 소멸치 말며 • 예언을 멸시치 말고


Different Translations:(다른 번역본들)

(AMP) Do not spurn the gifts and utterances of the prophets [do not depreciate prophetic revelations nor despise inspired instruction or exhortation or warning]. 선지자의 은사들과 발언들을 퇴짜놓거나 일축해 버리지 마라. [예언적인 계시들을 평가절하. 경시하지 말고, 영감을 받아 전하는 지도.지시, 간곡한 권고.장려. 훈계들, 혹은 경고들을 무시하지 마라]

(ERV) Don’t treat prophecy like something that is not important.
(NCV) Do not treat prophecy as if it were unimportant.
예언을 마치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다루지 마라.

(NIVUK) Do not treat prophecies with contempt.
예언들을 경멸하듯 취급하지 마라.

(VOICE) Don’t downplay prophecies.
예언들을 경시하거나 대단치 않게 생각하지 마라.

(TLB) Do not scoff at those who prophesy.
예언하는 자들을 비웃거나 조롱하지 마라.

(DARBY) do not lightly esteem prophecies;
예언들을 가볍게 여기지 마라.

(CEB) Don’t brush off Spirit-inspired messages.
성령의 영감을 받은 메세지들을 가볍게 털어버리지 마라.

The English word “despise” was translated from the Greek word ἐξουθενέω EXOUTHENEO (헬) 엑수떼네오, which means “to make utterly nothing of 완전히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다, i.e. despise 경멸하다 ridicule 조롱하다 Ignore 무시하다” (Strong). It was translated “set at naught 무시[경시, 경멸]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다” three times in the New Testament.
이 단어는 신약에서 세번 “set at naught 무시[경시, 경멸]하다”으로 번역되었다.

Lk. 23:11 And Herod with his men of war set him at nought, and mocked him, and arrayed him in a gorgeous robe, and sent him again to Pilate. 헤롯이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무시.경시.경멸하며) 희롱하고(비웃고 조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Acts 4:11 This is the stone which was set at nought of you builders, which is become the head of the corner.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무시.경시.경멸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던)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Rom. 14:10 But why dost thou judge thy brother? or why dost thou set at nought thy brother? for we shall all stand before the judgment seat of Christ.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무시.경시.경멸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http://www.sfkorean.com

 

 

 

 

살전 5:20 예언을 멸시치 말고

 

예언을 멸시치 말고’라는 구절은 바로 이런 서구 신학의 이중성을 드러냅니다. 워어스비의 The Bible exposition commentary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완전한 계시를 가지고 있어서 예언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주석을 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예언을 멸시치 말고’는 없어져도 무방한 말씀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언을 멸시치 말라고 하였는데, 예언은 멸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예언의 은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선지자 사명을 받은 사람이 있음을 말합니다. 목사와 구분되는 역할로 사도 바울은 보았습니다.

 

 

 

예언은 앞을 내다본다는 점에서 신기한 은사입니다. 이것은 마치 점쟁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앞을 내다보는 점쟁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사해보이지만 유사하지 않습니다. 이런 차이를 경험하지 못한 신학자들에 의해 예언은 필요치 않다는 서글픈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마치 이것은 거룩한 성경을 손상하는 위험한 도구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히 잘못된 예언은 성경을 무시하고, 성경보다 예언을 더 중하게 여깁니다. 이들은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미혹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위험성으로 인해 예언이 필요 없다는 신학자들의 말은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구는 어리석음과 같습니다.

 

 

 

물은 고이면 썩습니다. 하지만 썩은 물은 자신들이 썩었다는 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범죄를 변명하고, 인간의 욕망을 위하여 쓰이고 있는 시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도 위험한 것이기에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언은 이렇게 부패한 교회에 소금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교회를 새롭게 거듭나게 한다는 점에서 예언은 필요한 것입니다. 구약에 선지자들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언하고, 이스라엘의 타락을 질책했습니다. 바로 교회의 올바른 예언이 바로 이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타락한 백성이 다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기 위해서 세웠습니다. 바로 신약에서도 선지자의 사명은 타락한 교회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하는 것입니다.

 

 

 

밧모섬에 유배된 요한은 7교회에 편지를 하였습니다. 그는 다른 교회의 사정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칭찬받을만한 것과 비난 받아 마땅할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어떻게 요한은 밧모섬에서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 없이 불가능합니다. 예언은 이렇게 교회에 유익을 위해 주시는 은사입니다. 개인적으로 성도에게 유익을 주고, 교회를 바로 세우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예언이 사라진다면 교회는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부패의 수렁에서 나오지 못합니다. 썩은 물이 자신을 썩었다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분란을 일으키는 예언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되는 예언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예언으로 돈을 벌거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구하는 것은 장사꾼입니다. 이런 잘못된 형태의 예언으로 인해 예언의 은사가 멸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 중에 이런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들 중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사도 바울은 선지자는 다른 직책과 구분을 했습니다. 목회자들이 다 선지자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엄격한 의미에서 성경의 생각이 아닙니다.

 

 

 예언은 교회의 진정성을 밝힙니다. 사람의 숨겨진 의도를 밝혀냅니다. 그래서 교회의 부패를 고발하고, 성도의 죄를 드러내도록 합니다. 이런 일을 통해서 교회의 부패를 막고, 성도 간에 분란과 싸움을 막습니다. 교회가 올바른 말씀을 통하여 반석위에 서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예언입니다. 전에도 한국교회의 부패에는 이런 선지자 사명을 받은 목회자가 적기 때문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현대 한국 교회는 ‘예언을 멸시치’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부패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새롭게 하시기 위해 주시는 은사이기 때문입니다.(초대 그리스도교회)  

 

 

 

 

 

     오늘날의 예언 운동의 문제

 

오늘날의 예언 운동들은 성경적이라고 하면서 성경의 권위를 가지고 말하지만 그것은 성경을 문자주의적으로 그리고 주관주의적으로 인용하여 무속주의적 점쟁이들이 하는 것들과 혼합시키고 있다. 진정한 성경의 권위와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선지자와 예언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성령에 의해서 교회에게 주신 은사의 하나인 선지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세우는 것이며, 그러한 은사가 성경 후에도 있다고 한다면, 어거스틴이나, 루터나, 웨슬레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지자는 앞일을 예언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개인적인 것이기보다는 교회와 복음에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은사의 하나인 예언은 반드시 선지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 있는 기능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개인의 앞날의 운명을 미리 말하기보다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완성된 계시를 들어냄으로 그것을 듣는 믿지 않는 자나 어리석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는데 있다.

 

선지자나 예언은 하나님의 은사임으로 결코 훈련을 통해서 또는 세미나를 통해서 전수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온갖 자랑과 개인의 권위를 높임과 광란과 무질서와 비이성적인 그리고 물질의 착취가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않고 교회를 어지럽히고 신앙인의 이성을 파괴시키고 정욕적이라면 베드로가 경고한 거짓 선생들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 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 .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벧후 2:1-19).  -홍성국:교회와 신앙 2000-9 中-

 

 

 

 

 

 

 

*현대에도 한국 개신교 교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언을 한다고 하는 가운데, 예언이 범람하고 있는 실정인데 예언은 앞날을 예견하여 말하는 기능도 있지만 예언은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볼 때에 예언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선포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성경적인 예언은 예언하는 사람이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작은 신학교에 다니는 한 집사가 모기도원에서 예언을 받았는데 자신의 지난일들을 알아맞추는 등 '쪽집게' 라는 말을 하는데 나는 '쪽집게'라는 말에 "그건 가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웬만한 사람들의 예언을 믿지 않는다. 한마디로 대부분 (뻥)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예언을 멸시하고 있는 것인가? -Ezra-

 

 

 

 

그러나 예언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인데, 덕을 세우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합니다.(고전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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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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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 특강  (0) 2014.08.26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주는 권면

 

많은 이들이 내가 너무 엄격하고 극단적이라고 크게 불평해 왔으며, 또한 지금도 불평하고 있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외치는 그 순간에도 내 마음속에 그 비판받는 인간들을 미워하는 마음은 없었음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신다.

 

단지 그 인간들이 범하고 있는 죄악을 참으로 증오하고 혐오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러한 사실들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도 가능하다면 이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나를 부르시고 기꺼이 은혜를 베푸시사 신비스런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심판 자리 앞에 서게 될 때, 과연 그가 맡기신 사명을 어떻게 감당했는가 보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있었다.

이러한 하나님께 대한 경외함이 너무도 컸기에 전혀 인간들의 눈치를 살핌 없이 주께서 내게 명하시는 대로 너무도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감히 고백하노니, 나는 하나님 말씀을 인용하여 개인적 이익을 취한 일이 없으며, 인간을 기쁘게 하고자 노력한 일도 없고, 나 개인의 정욕 혹은 다른 이들의 정욕을 만족시킨 일도 없으며, 단지 내게 허락하신 은사를 성실하게 사용하여 내가 감독한 교회의 덕을 세우려고 노력하였을 뿐이다.

<자료제공: 생명의 말씀사 '청교도 인물사'>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창세기로 부터 요한 계시록에 이르기 까지, 성경은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신정국가(말 그대로 '하나님의 통치')에 관한 기사다.

에덴 동산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는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로 상징되었다. 모든 창조물을 다스릴 대리자의 지위를 부여받은 아담은 모든 지상활동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이바지하도록 해야만 했다. 구약학자인 Meredith Kline은 이와 같은 신정국가들을 시종일관 종교(예배)와 문화(세속적 활동)의 결합으로 구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적인 활동들이 '예배'라는 보편적 방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아담의 왕적 신분을 통해 에덴동산을 통치하셨다. 바꿔 말하자면, 에덴 동산은 말 그대로 '지상천국'이었다. 모든 것이 이적에 의해 다스려졌다. 그것은 천국의 축소판이었다. 그렇지만 아담이 죄를 범했을 때, 예배와 문화의 통일성이 와해되었다. 하나님 나라는 단지 장래를 위한 상징과 그림자와 약속을 통해 구원을 소망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 나라가 다시 회복되고, 하나님 나라의 왕이 죄를 용서하고, 믿는 자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모든 것을 바르게 회복하실 때가 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구원을 받았다.

세계 역사가 진행된 훨씬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반역과 죄악으로 가득 차 버린 세상을 심판하기로 결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라는 한 사람을 택하시고 방주를 만들게 하셨으며, 장차 그 방주를 통해 '새 창조'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셨다. 각각의 종류에서 보존된 생명체들은 이 작은 신정국가, 곧 노아의 방주 안에서 하나님의 진노로 범람하는 바다를 견뎌 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다시 한 번 한 왕을 통해 기적으로 자기백성을 인도하셨다.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으로 말미암아 악인들은 멸망당하고 의인들은 구원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이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임을 약속하셨을 때, 하나의 새로운 국가가 탄생되었다. 이스라엘이 바로 그 신정국가가 되었다. 성막이 세워졌으며 이후에는 성전이 건축되었다. 그 성전은 에덴 동산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불쾌한 냄세로 가득 찬 방주도 아니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업적이었다. 다시 한번 종교(예배)와 문화(인간의 활동)가 융화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이적으로 직접다스리셨다. 홍해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길을 열기 위해 갈라지고 그들의 대적을 집어삼키키 위해 덮쳤을 때, 하나님의 백성은 다시 한번 물로 구원을 받았다. 그들은 광야에서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양육되었으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다. 그 나라는 그들 가운데 있었다. 그들은 대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갔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왕을 세우셨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사의 중심이요, 장차 오실 왕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가 되었으며, 자신이 가진 제사장과 왕의 직무를 행함으로 종교와 문화를 하나로 융합시켰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 구원, 기도, 예전 그리고 '영적'인 일에 관한 문제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셨을 뿐 아니라, 문화, 사회, 정치, 경제 생활의 모든 양식을 지시하셨다.

그와 같은 각각의 신정국가에는 성전,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이 있었으며, 희생 제사도 있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첫 신정국가의 성전이었고, 노아의 방주는 두 번째 성전이 되었지만, 솔로몬의 성전이 구약 전체를 통틀어 가장 탁월한 것이었다.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직무의  경우, 신정국가에서는 대개 한 사람의 대리자가 그 세가지 직무를 모두 겸임했다. 희생 제물의 경우, 타락한 아담과 하와에게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덮을 수 있는 가죽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동물을 희생 제물로 삼으셨으며(창 3:21), 죄를 위한 궁극적 희생을 약속하셨는데, 단지 이 동물 희생은 장차 있을 궁극적 희생에 대한 하나의 모형에 불과한 것이었다(창 3:15). 홍수 이후에 노아는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다"(창 8:20). 희생제사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신정 국가에서 중심을 이루었다. 그리고 모든 신정 국가들은 이적으로 통치 받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시하시고, 구원하시고, 보여주고 계셨던 것이다.

하지만 나사렛의 어느 고요한 밤, 한 유대인 처녀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잉태했을 그때에 어떤 변화가 발생하였다. 과거에 예언자들과 제사장들과 왕들이 예표했던 바로 그분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자 세상에 오셨던 것이다. 그분의 신정국가는 이적과 계시와 구속 행위가 다시 한번 새로운 국면으로 국면으로 펼쳐질 것을 예고했다.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 나라의 실제 속에서 천국을 지상으로 이끄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새로운 성전이셨으며, 그것은 솔로몬이 최고 전성기 때 누렸던 명성과 영예의 찬란함을 능가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라고 선언하셨다. 실제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그때에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적보다는 섭리가 특정적이었던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승천을 기점으로 지상이 아닌 하늘의 신정국가로 나아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천국에 계시기 때문에 천국이 이 땅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복음이 전 세계를 통해 신앙되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적으로 현존한다. 우리는 말 그대로 홍해를 통해, 혹은 방주 안에서 홍수를 통해 인도함을 받는다기 보다는 심판의 바다를 통해 인도함을 받는다.

그리스도께서 통치하고 있는 나라가 점진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는 사실과,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시는 일이 원수를 친구로 변화시키는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진 그분의 희생으로 성취된다는 것에 주목하자. 대중들이 믿고 있는 바가 다양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강령이나 사회적 행동지침이 아니다. 결국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희생 제물이다. 그리스도는 성전이요,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시며,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우리의 죄악을 위해 희생 제물이 되셨다. 그리스도는 '정결한' 짐승 제사로 예표되었던 온전하고 흠이 없는 한 번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화목을 위한 최고의 방식을 충족시키셨다.

은혜의 복음이란/ Michael S. Horton

신비주의 문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방대합니다. 초대교회를 넘어서서 플라톤까지 올라가는 아주 방대한 내용입니다.

 

 

오늘날 신비주의 문제가 한국교회에 크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분별하여 알아야 할 내용입니다. 목사들과 교수들이 나서서 신비주의를 현실의 대안으로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과연 그러한 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주로 들었던 것이 관상기도로 영성훈련에서 많이 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방대한 내용이며 기도문제와 맞물려 있고 여기서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배경적으로 전체적인 신비주의와 기독교와의 관계에서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읽었던 말씀은 바로 신비주의적인 질문입니다. 빌립이 했던 질문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소서.’ 오늘 신비주의자들이 다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보고 대면하여 그와 합일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너의 추구가 참 갸륵하구나.’ 하고 예수님이 칭찬해주는 것이 아니라 혼나고 있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이 놓치고 있는 사실입니다. 빌립이 시도한 신비주의적인 추구, 역사 속에서 계속되고 있고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왜 갑자기 신비주의인가? 사실 기독교 안에 신비주의적인 모습과 내용이 두드러졌던 시대가 있긴 했지만 보편적으로 거의 항상 있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안에 신비주의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아마도 관상기도라고 하는 것이 유명목사님들에 통해서 권장되고 이곳저곳에서 관상기도를 실천하는 교회, 영성 훈련원들이 생겨나고 신학교에서 정식으로 가르치고 장신대에서는 입학했을 때 모두 기도원에 가서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심리학적인 기독교의 양태를 띤 것은 데이비드 시멘스 같은 사람 책이 1980년에 번역되고 두란노서원에서 훈련시키고 상처치유 훈련, 상담학, 양육 받은 사람이 개교회로 돌아가고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들이 강조하면서 저변 확대 보편화된 것이 한 세대가 흘렀습니다. 관상기도는 신학생들과 교수들에 의해서 책에 의해서 나오고 있으니 30년 후에는 보편화될 문제가 될 것입니다. 특별히 영성이라는 이름아래서 신비주의가 90년대부터 특별히 대두되어 지금까지 온 것을 보게 됩니다. 배우는 신학생들과 목사들이 교회에서 분명히 파급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대중화되는 것은 10-20년이면 되리라고 봅니다.

 

항상 유학 다녀온 사람들, 영향 받은 사람들에 의해 책이 추천되거나 번역되고 그 밑에서 영향을 받는 신학생들, 책에 영향 받는 사람들, 대중화 코스를 받는데 지금 우리는 그 코스의 중반기로 신비주의가 중간 단계에 와 있다고 봐집니다.     

 

한국교회는 관상기도를 새로운 것처럼 말하면서 신비주의를 크게 수용하고 있습니다. 관상기도는 신비주의의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관상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합일하게 되는 경험, 황홀경에 빠지면서 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신비주의란 말을 잘 안 쓰고 영성이란 말을 씁니다. 시중에 가면 영성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본래 이 두말은 동의어로 씁니다. 17C 프랑스에서 특히 장르 귀용부인과 관련된 상류계층에서부터 이 말이 두 가지를 거의 동의어처럼 썼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주장입니다. 그들은 신비주의와 영성이란 말을 신비적인 것이나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직접적인 내적 지식을 뜻하는 것으로 이 단어를 썼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 신비주의란 말이 부정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다 보니까 그것을 기피하고 영성이란 말을 주로 쓰는 것입니다.

 

요즘 10년 사이에 한국교회에 갑자기 영성이란 단어가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신비주의에 대한 경계심이나 거부감을 영성이란 단어 때문에 덜 갖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말하는 이 정도가 최소의 내용인데 정말로 알아야 됩니다. 어떤 신학생들이 저에게 향후 10-20년 한국교회 추세가 어떻게 흘러갈 것이냐의 질문에 신비주의가 흘러갈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것이라고 해서 빠져 들어갈 것인데 우리가 최소의 가닥을 잡아야 합니다.

 

특별히 요즘 영성 작가들로 알려진 리차드 포스터, 유진 피터슨, 필립 얀시, 게리 토마스, 달라스 윌라드, 제임스 휴스톤 , 존 윈버 이런 사람들의 책들이 번역되고 과거 영성에 뿌리는 둔 릭 워렌이 쓴 글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안 읽으면 간첩 취급받습니다. 대중들이 그런 것을 접하므로 인해서 영성, 신비주의를 어느새 우리들에게 친숙하고 쉽게 수용해도 되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신비주의, 영성을 추구하는 일이 불 일 듯이 일어나고 있는가? 영성에 대한 간단한 글을 쓴 김상재라는 사람이 한 말을 인용하면 ‘과거의 전통적인 언어와 메시지와 제도적인 틀과 신앙적인 사고와 예배 방식과 사유로서는 오늘날의 다양한 갈등과 욕구들을 효과적으로 치유하고 섬겨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계속 전해오는 메시지와 제도와 예배 방식을 통해서는 현대인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추세를 아주 고무적인 현상으로 말했습니다. 장신대의 유해룡 교수는 관상기도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이 기도생활에 대한 열망은 전과 다름없는데 기도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만족도의 충족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영성훈련과 관상기도를 크게 보급하고 있는 최일도 목사는 그동안 한국교회가 외적 성장에 주력했었는데 이제 성도 개개인의 내적치유와 내면적인 성숙에 관심을 가지면서 카톨릭교회에서 이야기 되어 왔던 영성 수련과 관상기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말하기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신대의 권명수 교수는 관상기도를 더 많이, 더 자주 실천하면 할수록 한국의 기독교인이 점점 성숙해지고 교회가 건강한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모두 요즘의 신비주의적인 추세의 원인을 한국교회의 부정적인 현실과 상태 때문이고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상태에 대한 반응으로서 이런 것을 이야기 했을 때 현재 문제에 대해 자각을 갖는 다거나 각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긍정할 수 있겠습니다. 중세 신비주의가 크게 일어났던 것처럼 그런 취지에서 이야기한다면 설득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중세 신비주의가 크게 대두되었던 것도 당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과 반발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일반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이유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더 근본적인 원인입니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교리보다 체험을 선호하는 인간의 본성과 무르익은 시대 분위기 때문이라고 저는 진단합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말씀 속에서 은혜를 경험하고 그것을 탐구하는 것 대신에 개인적이고 신비적인 체험을 추구하는 대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같은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이고 그 흐름을 주도하는 중심에는 북미가 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영성가들이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바짝 그 뒤를 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1900년에 죽은 반기독교적인 철학자 니체가 이런 서구 교회의 모습을, 현재 야기되는 이런 것을 예견했습니다. 마이크로 로버튼이나 데이빗 윌스가 그대로 인용하는데 ‘교리적인 기독교는 종말을 고했다고 탄식하면서 서구는 이제 새로운 불교를 정착시켜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기독교에서 말하고 예배하는 하나님이 죽게 되면 신들이 비같이 내리게 될 것이라고 하는 놀라운 예견을 했습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가 말한 하나님의 죽음은 서구 사회는 모든 진지한 신학적인 자각이 끝났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사람들의 의식가운데 하나님의 존재의미가 없어지게 될 것을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결과를 예견했습니다. 하나님이 죽고 나니 교회가 교리를 내어 던지고 나니 신들이 비같이 내리게 되고 허무주의가 활발하게 활동하게 될 것이며 새로운 불교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했던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은 여러 神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일이 뒤에서 생겼습니다. 기독교는 서서히 내면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관상기도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입니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새로운 불교의 양태로 발전한 것입니다. 교리가 교회에서 사라지고 그것을 말해도 죽은 교리가 되다 보니까 뒤따르는 것은 새로운 불교가 교회 안에 태동되는 일이 있게 된 것입니다.

 

실재로 오늘날 기독교가 어떻게 되었는지 여러분 잘 생각해보세요. 힌두교와 불교와 같은 명상, 물질주의, 교회 안에 심리학, 실용주의, 실존주의, 종교적인 감정에 의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감정주의, 소비자 중심적인 마케팅 원리나 적극적인 사고방식, 번성 신학, 은사주의 이 모든 것을 뒤섞는 뉴에이지 사상, 종교 다원주의 정말로 모든 것이 기독교 안으로 다 들어왔습니다. 나만의 신, 내면의 영들을 추구하는 현상이 기독교 안에 대세처럼 기독교라는 이름아래서 보편화되는 현상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정말로 기독교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전통적으로 믿어온 하나님이 죽고 교리를 버리게 되자 니체 말대로 신들이 비처럼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니체가 말해서가 아니고 기독교 신앙의 본성상 그렇게 됩니다. 교회가 교리를 버리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으면 다른 신들로 채워지거나 하나님을 바꾸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체스터톤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을 부인하게 되면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이나 다 믿게 된다고 했습니다. 정말 명쾌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면에서 현재의 추세를 잘 봐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우리들이 신비주의적인 추구를 하는 것은 단순한 현상과 어떤 반동을 넘어서서 근본적인 문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살아있는 하나님의 진리 교리를 뒤로 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원인을 덧붙이면 사람을 위한 신학과 가르침이 한몫했기 때문입니다.

 

마이크로 호튼이라는 사람은 현재 미국교회가 다시 영지주의로 돌아가서 감정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이고 뉴에이지 사상에 물들게 된 그 최초의 원인을 하나님 주권과 은혜의 교리를 거부한 데서 찾고 있습니다. 마이크로 호튼이 쓴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미국제 영성에 속지마라」제가 여기서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개혁주의 차원에서 썼기 때문에 읽어보시면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통찰력이 있습니다. 그 뿌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교리를 거부한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미국 것을 다 도입하고 있는데 대중적인 복음들이 그런 뿌리 속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결국 미국이 정착한 초기 청교도들이 붙들었던 하나님 주권과 그의 은혜에 대한 말씀으로 균형을 이룬 그들에게서 CORAMDEO 곧 하나님 앞에서라는 의식을 가지고 삶을 살면서 자신의 전 존재를, 몸과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께 바쳤던 그들의 모습에서 이탈해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사람을 위한 신학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에드워즈 전에 있었던 현상으로 반언약제가 등장을 하고 사람을 위한 신학, 알미니안주의가 만연하게 되면서 지금의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진단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조지 휫필드가 다시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원죄와 하나님 주권과 칭의 교리, 특별히 조지 휫필드는 선택의 교리를 영적 각성을 외치는데 메시지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런 선포를 통해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각성하게 하면서 그런 교리에 의해서 영혼들이 회복하고 각성된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시 찰스 피니를 중심으로 한 부흥운동에서 메시지가 하나님에서 인간으로 바뀌게 됩니다. 에드워즈를 중심으로 한 1차 대각성 운동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를 강조점에 두었는데 피니를 중심으로 한 2차 대각성 때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메시지가 주류를 이루고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이것은 신학과 교리에서 감정으로 변화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으로 계속 발전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주권과 원죄와 칭의 교리와 하나님을 향한 전인적인 삶이 무너지자 알미니안 신학과 함께 개인적이고 감정적주의적인 신앙이 자연스럽게 자리 매김하게 되었습니다. 피니 이래로 교회는 사람의 전존재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해서 교회 안에서 모든 말씀을 통해서 사람의 전 존재를 변화시키는데 교회가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감정을 변화시키는데 초점을 두는 현상이 교회에 자리매김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기독교는 마침내 내면의 빛을 찾고 자기의 직관적인 감정을 중시하며 물질적이고 객관적인 세계를 초월해서 영의 원천에 도달해 가지고 힘을 공급받으려고 하는 더 나아가서 신과 합일하려는 온갖 신비주의적인 시도와 은사 운동과 대중적인 복음주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신비주의적인 추구는 간단히 말해서 객관적인 진리를 뒤로 하고 인간 중심의 신앙과 감정에 의한 신앙으로 변화된 것에 따른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호튼이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무한하시며 인격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청교도적인 신앙으로부터 인간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죄와 은혜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프로테스탄트의 견해를 약화시킨 알미니안주의에로 다시 성경적 신앙을 단순한 인간의 감정 순으로 약화시키는 지경으로 변해왔다.” 얼마나 신학이 무서운지 모릅니다. 신학이 사람 중심으로 바뀌니까 물꼬를 확 터버린 것입니다.

 

댐을 하나 열어준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참고로 우리들이 긍정적으로 말하고 있는 독일 경건주의자들도 교회 역사 속에서 개인주의적인 감정적 기독교로 바뀌게 되는데 한 몫을 하게 됩니다. 합리주의에 대한 반동, 이성중심의 반동으로 개인주의적인 체험과 감정을 중시하는 것으로 발전하면서 우리가 그들이 상당히 경건한 모범으로 알지만(진젠도르프 백작의 그룹들) 이런 물꼬를 텄습니다. 한 몫을 한 사람들입니다. 죽은 정통에 대한 반동으로 이성을 중시했던 그런 현상 합리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이성을 무시하고 감정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적인 신앙이 다각적으로 교회사에서 물꼬를 터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개인주의적이고 감정주의적인 신앙은 더욱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판을, 배경을 역사 속에서 설정해 주었습니다. 대륙은 대륙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오늘날 기독교가 개인감정을 중시하고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합일하려는 신비주의로 나가게 된 것은 이런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상 그것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많은 표적을 보고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는 곧 악하고 불충실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핵심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악하고 불충실한 세대가 핵심을 놓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기독교 역사 속에서 교리를 뒤로 하고 개인감정을 중시하며 하나님과 합일하려고 했던 신비주의가 가졌던 모습은 흥미롭게도 기독교 역사상 영적으로 가장 어두웠던 시대,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대중들에게 통용되지 않았던 시대, 신앙생활을 개인의 체험에 크게 의존했던 중세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때 신비주의가 가장 크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성경의 진리를 배우고 있는 우리들이 다시 그런 신비주의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아주 기이한 현상입니다. 지금 미국에도 영성운동이 굉장히 일고 그것이 그대로 우리에게 넘어오고 있습니다. 뉴에이지 운동이 크게 일어나고 있는데 지금 이것이 기이한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종교적인 형태는, 교회는 나오는데, 교회라는 곳은 다니는데 기독교라는 껍데기는 가지고 있는데 마치 그들의 신앙의 행태와 중심성은 악하고 불충실한 세대에 있는 현상과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유념할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영성을 말하는 사람들이나 관상기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중세 신비주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동양 정통의 명상수행을 본받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는 것도 아니며 인간의 의지적 노력을 중시한 인본주의도 아니라고 그들이 말합니다.

 

오히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통을 하기 위함이고 그것을 위해 옛날 신비주의자들이 했던 방식 중에 긍정적인 것들을 재창조하여 사용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구색을 갖춘 말에 불과합니다. 물론 관상기도를 몰라도 우리들이 어떤 면에서 하나님과 진실하게 나가기 위해서 관상기도에 해당하는 것 같은 모양새를 취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비주의는 아무리 바뀌어도 핵심적으로 붙들고 있는 그 중심, 그들이 의존하는 것,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개인감정이요 내면의 무엇입니다. 이것 때문에 결정적으로 얼굴 바꾸어 봐야 소용없습니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신비주의와 기독교는 다릅니다.

 

신비주의는 무엇이고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와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가?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하는가? 성경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신비주의에 대한 정의는 공식적으로 사람들이 사용하고 인정하는 것만도 약 30가지나 됩니다. 신비주의가 주관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정의도 다양합니다. 기독교와 관련된 간단한 정의를 먼저 말하면 하나님과 개인적인 연합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보면 우리는 기독교와 똑같이 생각하는 좋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맥아더 목사의 정의를 덧붙이면 ‘신비주의란 역사적 사실이나 하나님의 객관적인 계시보다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직관이나 경험에 의해 하나님, 또는 궁극적인 실재에 관한 지식을 직접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 것을 추구하는 신비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목적하는 하나님과 연합하는 체험과 그 신비 체험을 통해 얻은 지식이 인간의 지각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이성으로 제대로 포착하는 것은 물론이고 말로서 제대로 설명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하나님을 체험하고 초월적인 지식을 얻었다는 것이 모두 자신들의 감각, 감정에 의한 것이어서 각각 설명이 다릅니다. 그들은 그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서 자신이 깨닫고 경험한 것을 신비로 유지하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19C 탁월한 신학자 B.B. 와필드가 그것은 사실 신비주의자들이 말로 표현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무언을 고집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끝없이 깊은 침묵과 묵상 속에서 자신의 감정 감각을 발견하려고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신비주의자들은 자신이 심연에 접해있을 때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그것을 신성시 합니다. 그런데 그 막연한 감정과 두려움을 신성시하다보니 그때 보거나 경험한 것을 신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힌두교의 브라마가 될 수도 있고 제우스가 될 수 있고 알라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굳이 설명하자면 성령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종교의 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감정에 근거한 신비주의적인 하나님과의 합일은 이런 면에서 너무 위험하고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계시 종교입니다. 따라서 권위의 종교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해 온 신비주의는 계시가 없는 정신의 종교요, 따라서 권위가 없는 종교입니다. 여러분 모든 종교는 두 개로 나눕니다. 계시의 종교와 비계시의 종교입니다. 계시 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했다는 것이고 비계시의 종교는 사람들의 사상으로부터 기인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신비주의도 같은 것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비주의가 다 그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가 없는 그저 정신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권위가 없는 종교인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이 하나님을 말하면서 정신의 종교요, 감정과 이 감각의 종교 방식을 따르는 것은 기독교가 가진 고유하고 특별한 권위를 스스로 내던지는 것입니다.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종교세계나 어떤 신앙의 세계에서 고유한, 유일한 특성을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내 던지는 것입니다.

 

기독교 안에 들어온 신비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원천인 성경, 곧 기록된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객관적인 계시를 무시하거나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대신 자신의 종교적 감정과 체험으로 대치시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추구해 나가는데 있어서 자신의 내부, 종교적인 감정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도 내부를 바라봅니다. 그런데 잘 하셔야 됩니다. 그것이 좋은 줄만 압니다. 성경적으로 하셔야 합니다. 성경적인 기독교는 모든 종교적인 체험을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해석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체험을 인도받고 지시받으며 정정함으로서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표준으로 삼습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찰스 하지는 이런 신비체험이 성령의 사역에 따른 것인지 인간 스스로 노력에 의한 것인지 악한 영의 역사에 따른 것인지 구분하는 방법을 말했습니다. 첫째, 성경의 충분성을 저해하고 다른 계시를 주장하는가? 이것을 해 본다는 것입니다. 말씀보다 자신의 직관이나 명상에 더 의존하는가? 이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제도와 법령과 학문을 무시하고 말씀보다는 성령의 직접적인 내적 조명 또는 내적인 빛을 더 중시하는가? 이것도 유사한 것 같지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퀘이커교도들이 주로 했던 것입니다. 죄와 회개를 무시하고 신비적이고 황홀한 체험만을 추구하는가? 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독일 신비주의자들,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범한 오류입니다.

또 하나님과 내가 하나라는 범신론적인 주장을 하거나 하나님이 아닌 것에 수동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가? 이것이 뉴에이지 운동을 하는 것과 정적주의자들, 침묵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옛날에 우리나라에 방문했던 틱카탄 워킹 메디테이션 하는 사람들, 틱란탄이라든가 이런 사람들도 침묵주의 정적주의를 추구합니다.

 

불교에도 이런 신비주의 요소는 있습니다.

게다가 신비주의자들이 찾는 하나님은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입니다.

 

벌거벗은 하나님,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이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시면서 동시에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 감추인 하나님 그것이 아닙니다. 직접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구도자적인 하나님을 추구한 나머지, 기독교는 구도자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릭 워렌 같은 사람에 의해서 구도자를 위한 예배라고 하면서 구도자를 위한 기독교를 오픈하는 것은 기독교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고 믿는 자들에게 허락되는 복음의 구원입니다. 구도적인 마인드가 있으면 다 오라는 것입니다. 당신들을 기독교라는 사상을 집어넣어서 구원받고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다고 하는 값싼 복음을 유포하는 것입니다. 구도자적인 하나님을 이들은 추구한 나머지 인간의 부패와 죄를 약화시키고 하나님의 진노를 말하지 않습니다. 구원론적으로 말하면 회개와 믿음, 칭의를 말하지 않고 성화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르는 것.

 

신비주의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 가운데 어떤 긍정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손 치더라도 기독교 안에 어떤 신비자들에게 결정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기초와 표준에서 빗나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보다 자신들의 감정에 근거한 하나님을 찾는 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정타입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신비주의자들은 계시를 뒤로 하고 내적인 빛, 내적인 말씀을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벗어난 하나님을 찾고자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한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이번에 글을 실은 최일도 목사의 관상기도에 대한 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 박동을 따라서 예수란 단어를 넣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집중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며 단어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예수를 이야기하지만 실재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에는 예수가 없습니다. 직접 벌거벗은 하나님,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추구입니다. 이번에 글 속에서 내적인 빛, 내적인 말씀을 의지하는 것이 관상기도에서 말하는 것이 같은 맥락입니다. 현대 개신교의 작가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 이런 것을 추구하여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리차드 포스터입니다.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합일하기 위해서 어떤 과정, 단계를 밟는가?

 

일반적으로 신비주의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 갖는 여정은 3단계, 좀 더 상세히 말하면 5단계를 말합니다.

 

먼저 전통적으로 주장해 온 5단계를 간단히 말하면 각성, 정화, 조명, 영혼의 어두운 밤, 하나님과의 연합(합일)입니다.

 

여기서 존 웨슬리는 신비주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서 이 중에서 4번째 영혼의 어두운 밤만 빼고 4가지를 수용하고 체계화하려고 했습니다. 3단계를 말하는 사람들은 정화, 조명, 하나님과의 연합을 말합니다.

 

저는 3단계만 간단히 말하고 한 가지를 덧붙이겠습니다. 첫 번째로 정화라는 것은 깨끗케 하는 단계로서 자아를 살피고 회개하는 것에서 시작해 가지고 거룩한 삶으로 나가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서 사람들은 물질과 육적 욕망을 포함해서 세상적인 것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죄를 죽이는 일을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고행, 금식 이런 것들을 하기도 합니다. 그 다음 조명은 내적인 소리와 통찰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참된 영적 진리를 알고자 애를 쓰고 하나님의 사랑과 아름다움의 초점을 맞추고 영혼의 내면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상상하려고 힘쓰면서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이런 모든 추구와 알고자 하는 노력도 이성을 사용하기보다 직관적인 앎을 추구합니다. 이성이란 것을 이야기 하지만 그래도 최종적인 결정은 직관적인 앎 이 감정에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깊은 것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관상기도는 바로 이 조명 단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조명 단계서부터 하나님과 합일한다고 하면서 황홀경으로 들어간다고 하면서 이 단계를 중시여깁니다. 이 조명에 대한 이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신비주의자 로욜라라고 하는 사람이 많이 주장했는데 그것을 오늘날 리차드 포스터가 많이 차용해서 책을 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과의 연합은 앞의 것을 실현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하나님과 합일하게 되는 단계입니다. 이것이 모든 신비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이것을 토마스 아퀴나스와 그 몇몇 사람들은 지복의 비전이다. 곧 아름다우심과 엄위로우심과 영광과 사랑 가운데 하나님을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것으로 말을 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과 합일하게 되면 그 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적인 ecstacy 황홀경, 무아경을 경험하게 되고 모든 장애물들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며 자신이 신에게 전가되어 초자연적인 통찰력을 가진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세 신비자들은 바로 이런 경험을 낭만적이고 감각적인 용어로 특히 하나님과의 혼인 관계 속에서의 연합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중세 사람들이 아가서를 많이 강론했습니다. 술라미 여인과의 약간 그런 내용들을 이런 식으로 강의를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신비자들은 최소한 이런 정화, 조명, 연합을 통해 또는 하나님과 연합 전에 영혼전의 어두운 밤을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는 것은 십자가 요한이라는 사람이 특히 많이 강조했는데 영혼이 흑암에 압도당하는 순간에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때 영혼 가운데 어떤 하나님의 탄생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종의 신과 접촉할 수 있는, 어떤 신적인 무엇이 자신까지 잊게 된다. 신적인 자신의 영혼이 우리의 영혼이 신적인 것과 접촉하게 되는 동등한 무엇으로까지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내용 속에서 이들은 죄와 은혜, 하나님의 성육신 같은 진리를 다 뒤로 해버립니다. 아무런 중개 없이 직접 하나님과 합일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이성적인 사고과정이나 정상적인 자각 경험, 일종의 이런 지각 활동들, 이런 경험을 철저히 배제합니다. 그런 것은 오히려 방해거리라고 여깁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조명과 하나님과 연합의 과정 속에서든, 하나님과 관상하며 기도하는 가운데서든 그 과정에서 사랑을 갖는 것입니다. 이들은 무척이나 사랑을 이 과정에서 강조하고 인간의 감정에 의존합니다.

 

신비주의자들이 굉장히 사랑을 강조합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지금 나와 있는 영성에 관한 책들을 보면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이때 사랑은 신비주의적인 사랑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이 인간의 육체에 갇힌 영혼이 추구하는 사랑, 곧 에로스를 말하는 것입니다. 뿌리가 그렇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이 왜 그렇게 사랑을 강조하는 지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이 시간에 이것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신비자들이 하나님과 연합하기 위해서 그렇게도 중요시하는 감정, 특히 사랑은 플라톤이 말하는 에로스요, 헬라 신비주의자들과 신플라톤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그 사랑입니다. 

 

이 사랑 때문에 이런 것을 느낀 것이 바로 하나님을 느낀다고 하면서 다 빠져 들어갑니다. 지금도 영성 훈련하는 사람들이 그거 하면서 관상과정 겪으면서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다고 하면서 다 빠져 들어갑니다. 끝없이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느낌에 의해서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신비주의 또는 영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이 관상의 모든 과정을 사랑의 과정으로 말하는데 이것은 사실 플라톤 철학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철학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인 것 같지만 일단은 아닙니다. 다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구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에 이미 그런 영혼의 숭고한 지식으로서 관주된 헬라 철학의 에로스, 사랑 이것이 영지주의적인 부류들의 영향을 받아서 특별한 지식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지주의자들이 말한 그노시스를 정죄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그노시스는 바로 이거였습니다. 영혼의 숭고한 지식으로서 간주되는 헬라 철학자들이 말하는 그 에로스였던 것입니다. 바울이 그것을 알고 이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그노시스, 곧 지식은 플라톤이 말한 에로스, 육신에 갇힌 영혼이 추구하는 에로스와 같은 것을 알고 정죄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구별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13장에서 우리가 유명한 사랑장이라고 알고 있는 사랑을 말할 때 헬라 철학자들이 말한 에로스와 구별해서, 또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그노시스, 지식과 대비해서 아가페 사랑을 말했던 것입니다. 우린 바울이 왜 고전 13장에서 ‘아가페 사랑은 사라지지 않지만 지식은 폐할 것이다’라고 말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신비주의자들이 추구했던 그 지식 이었습니다. 에로스적인 사랑, 영혼의 숭고한 사랑, 그것을 구별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신비주의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바울이 배격하고 정죄한 영지주의자들의 지식, 곧 영혼이 갖는 신비적이고 직접적인 지식이요, 더 높은 지식, 신비적인 직관, 헬라 철학자들이 말한 육체에 갇힌 영혼으로 하여금 영원한 곳으로 나가게 하는 에로스 사랑을 그대로 차용해서 하나님과 합일을 추구하는 것은 뿌리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사랑을 이야기하고 기독교 양태를 거론하고 예수를 이야기해도 뿌리가 잘못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헬라 신비자들과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에로스는 인간 중심적인 획득적인 사랑이요, 신에게 이르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사랑이며 자기중심적인 사랑입니다.

 

바울이 말한 아가페가 아니었습니다. 신비자들은 바로 이런 사랑과 지식으로 하나님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중세 신비자들은 신플라톤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서 그것을 차용해서 하나님과 연합하려고 하는데 사용했고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한 대로 지복의 비전에 이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모든 기독교적인 무리들, 곧 퀘이커교도, 로마 카톨릭교도, 경건주의자, 자유주의자, 은사주의자, 심지어 보수주의자들까지 수용해서 개인적인 내면의 체험을 추구하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차용한 것입니다. 그렇게 발전시켰습니다.

 

그래서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잘 분별해야 합니다. 다른 무리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늘날 소위 복음주의자들,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까지 신비주의의 매력에 빠져든 것은 너무 흥미로운 일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지난 복음주의 교회 역사 속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그룹이나 탁월한 사람들이 신비주의적인 모습을 가졌고 그런 그들의 사상과 글들에 꾸준히 영향을 미쳤습니다.

 

종교개혁이후에 복음주의 진영 내에서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갖도록 영향을 미친 사람들과 무리들은 제가 조금 거론하겠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이후 17세기에 이성을 무시한 개인의 신앙 감정을 중시한 독일 경건주의자들이 여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18세기로 넘어와서는 윌리암 로라고 하는 이런 사람들, 윌리암 로는 웨슬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조지 휫필드도 회심하기 전에 그 사람들 책을 읽었습니다.

 

웨슬리가 결국은 윌리암 로에게 나중에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는 진리의 말씀으로 회심을 하고 나서 윌리암 로의 가르침이 잘못 되었다고 해서 편지를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신비주의에서 벗어나려고 웨슬리가 굉장히 애를 씁니다. 그러나 나중에 신비주의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신비주의로 돌아간 것이 아니고 신비주의에서 긍정적인 것을 잘 체계화 한 것이다. 복음주의 안에서 가지고 있는 장점과 신비주의의 장점을 잘 취합한 사람이 존 웨슬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가 그것은 너무 긍정적으로 웨슬리를 본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면 웨슬리가 주장하는 성화론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완전교리가 바로 신비주의의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라가는 교리 완전에 이르는 교리입니다.

 

벗어나지 못합니다. 웨슬리 같은 사람의 영향이 복음주의에 미쳤기 때문에 독일 경건주의나 웨슬리에 의해 영향이 자연스럽게 흡입되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19세기에 미국의 찰스 피니 이런 사람이 신비주의와 무관하다고 하지만 아닙니다. 신학 체계 같은 것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케이직 사경회 그룹들의 성결운동이 신비주의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케이직 그룹은 더 높은 생활 The high of life 더 높은 생활을 추구하는 신비주의인 정신을 표방합니다. 더 거룩하고 더 멋진 것은 좋아 보이는데 뿌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뒤를 이어서 20세기 초에 케이직 성결운동에 열심이었던 우리나라 여러 사람에 의해 많이 번역되었던 여사 제스판 루이스 1904년  웨일즈 부흥에도 기여했습니다. 그에 영향을 받은 워치만 리의 삼분설 속에서 영에 대한 견해는 신비주의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R. A. 토레이 신부 이런 사람들이 다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20세기 중반이후에 가장 크게 개신교회에 열어놓은 사람은 리차드 포스터입니다. 그가 1978년에 출간한 책 번역본으로는 영적 성장을 위한 제자훈련인가 하는 제목입니다.

 

아주 히트를 쳤습니다. 1978년에 미국에서 출간한 책 중에서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베스트 10에 이 책이 들어갔고 사람들이 성경 외에 가장 영향력 있는 책으로 무엇을 뽑겠는가에 3번째에 이 책을 집어넣을 정도로 사람들이  1970년 대 이후부터 이 영성을 통해서 무엇인가 대리 만족하는 획기적인 장을 연 것처럼 생각하면서 모두가 여기에 이 책을 통해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의 모든 내용은 퀘이커에 내적인 빛을 말하면서 중세 신비주의 사상을 흡수하여서 정리한 것입니다. 로욜라 같은 사람이 많이 기여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도 내노발의 운동을 하는 대표로서 자기는 신비주의운동이 아니라고 하지만 말로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영향을 미치는 사상 글들이 충분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실명을 거론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신문에 기재가 되었고 본인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전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지에 있는 지구촌교회 담임목사님이 최근에 관상기도를 사역자들이나 목사들에게 많이 전하고 긍정적으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해를 긍정적으로 해서 하고 있을 것이고 그런 요소가 있을 것입니다. 개신교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단점들을 보완하여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있겠으나 내노발의 그룹과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다 그런 것을 같이 연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리차드 포스터는 1960년대에서 70년대에 카톨릭 교회가 그동안 신비주의를 그렇게 대중화하지 않고 있었는데 카톨릭 교회에 신비주의를 대중화하는데 기여를 했던 대표적 사람이 토마스 머튼이라는 사람인데 그 사람의 사상에 많이 동조해서 신비주의를 개신교 안에 전한 개신교의 토마스 머튼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나라에 토마스 머튼 책도 많이 번역되었습니다. 20세기 후반 이후에 지금까지 리차드 포스터 뒤를 이은 유명한 영성 작가들이 그 역할을 개신교 복음주의 안에 신비주의를 흡수하는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신비주의 영성을 가지고 글을 써서 신비주의 영향 배후에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리차드 포스터를 위시해서 달라드 윌라드, 유진 피터슨, 필립 얀시, 브래넌 매닌, 헨리 나우웬, 게리 토마스, 알리스터 맥그라스도 영성에 대해서 동조합니다. 재임스 휴스톤, 릭 워렌, 존 윈버 이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굉장히 많은 책들이 번역되었는데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것을 읽어도 됩니다. 분별을 하고 읽으세요. 혹시 여러분들이 시간이 저만큼 없어서 배경이 안 될까봐 거론을 해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개신교 안에 신비주의가 자연스럽게 들어오는데 기여를 한 케이스는 개신교 안에서 개신교 출판사들이 이 번역하고 있는 신비주의적인 글과 그 영향을 받아 쓴 옛날 책들의 번역본들입니다. 일반 신자들은 개신교의 출판사에서 출판되니까 문제가 없다고 접하게 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윌리암 로의 책이나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런 책이나 은성 출판사에서 나오는 옛날 신비주의자들의 책들, 쟌느 귀용 부인의 책들, 제스펜 루이스의 책들, 토마스 머튼의 책들 이것이 다 개신교에서 출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런 것들이 어떤 배경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너무 개신교에서 쉽게 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파상적인 신비적인 영향에 대해서 또 현재 추세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이 중요합니다.

 

제가 4가지를 말해야 되는데 일단 3가지를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하는가? 우리는 개혁주의에 있으니까 우리는 무조건 잘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중간중간 성경적인 내용들을 언급했기 때문에 3가지 정도만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내부에서 발견하는 것, 또는 체험하는 것, 추구하는 것을 외적인 권위에 철저하게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외적인 권위는 하나님의 계시를 말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신 것과 십자가와 부활,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대속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셨다 하는 사실들 이런 외적인 권위에 우리의 모든 발견과 체험과 추구를 굴복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발견하고 체험하고 추구하는 것은 우리 내면에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 안에서 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 다시 말해서 나의 주관적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그의 행하심, 특히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들 그런 것들을 더 알고 체험하고자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저는 목사로서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 하셨다는 것에 지금도 계속 놀라고 있습니다.

말씀을 계속 살펴야 하니까 묵상하면서 계속 놀랍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이 율법주의에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말하면서 구원 그 이후의 삶을 말하면서 왜 그토록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특히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하신 것을 집요하게 말하는지를 제가 묵상하면서 정말 깊은 감동, 너무 행복한 감동을 흥분하게 되는 그런 감동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정말로 그러셔야 됩니다.

 

바울 같이 왜 그렇게 의롭다하신 것에 갈라디아서 전체를 할애할 정도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는지 여러분들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하셨다는 것에 부요함이 과거 한 때, 우리가 과거에 구원받았다는 것이 교리적으로 그것은 과거적인 것이야 하고 우리를 손상시키는지 모르겠습니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과거를 넘어서서 현재 미래로 계속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삶은 이런 의롭다하심으로 말미암아서 있게 된 이 부요함을 더욱 알고 계속 확인하고 체험하기에도 너무 인생이 짧다라는 이런 이해를 가지고 여러분들 그런 객관적인 진리, 외적인 권위에 더 마음을 쏟으셔야 합니다. 현재 우리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떤 자가 되었는지 어떤 은혜를 누릴 수 있고, 또 누려 마땅한지를 여러분들이 더 알고자 하여야 합니다. 저는 목사이지만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면서 이것의 부요함 때문에 행복한 감동, 그런 것도 경험하게 됩니다. 정말 조금씩 경험 속에서 깨닫고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그 수많은 것들 제가 의롭다 하심 그 하나가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이루신 그 수많은 것들을 머리로 아는 것에서 벗어나서 삶속에서 이루기를 원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요하겠습니까?

 

우리 전 삶을 소진해도 모자라는 것입니다. 겨우 조금 알다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외적인 권위들을 뒤고 하고 내면의 뭣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 그것은 아무리 기독교적인 무엇이라고 한다고 해도 워필드 말대로 훨씬 낮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체험을 최고로 높은 것으로 여기면서 생각하지만 그것은 이 외적인 권위, 계시의 내용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준이고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여러분들이 경험에 의한 그런 이해를 가져야 됩니다. 저는 누구보다 못지않게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계시 안에서입니다. 여러분 내면의 무엇으로 신앙생활하려고 하지 말고 외적인 권위에 항상 눈을 고정시키고 특히 우리 주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무한한 것에 온 마음과 시선을 두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벗어나면 아무리 놀라운 체험을 해도 길을 잃게 됩니다. 아니 기독교가 아닌 곳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워필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비주의 역사는 자기 자신 안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 사람이 스스로를 하나님과 혼돈 하는 것으로 끝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아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체스터 톤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

 

모든 종교들 가운데서 아주 끔찍한 것은 내부에 있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만일 존스씨가 자기 내부에 있는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존스씨가 존스 자신을 섬긴다는 의미가 됩니다. 차라리 존스로 하여금 내적인 빛보다는 어떤 다른 것, 해나 달을 섬기게 하라 존스로 하여금 내부에 있는 하나님을 경배하게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고양이나 악어 또는 거리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어떤 사물을 찾아보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잊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존재 가치, 또는 정체성 의롭게 된 것은 외적인 권위, 내 안에 보아서 내가 살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내 밖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이루신 것에 의해서 온 것입니다 여기에 뿌리를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선을 내 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박식하고 신비한 체험을 많이 했던 바울, 삼 층천에 이끌렸던 경험이 있고 사람들을 살리는 능력을 행했던 바울이 각종 신비적인 체험과 하나님의 은사들로 인해서 날리었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했던 말을 유념해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 하기로 작정했다.” 이것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유명 구절로 알면 안 됩니다. 이 배경 속에서, 자신의 경험 속에서 이 바울 같은 체험을 한 입장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으로 부족한 듯해서 율법주의적인 무엇에 마음을 빼앗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결론적으로 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한 것이 없다.”고 한 것을 유념해야 됩니다. 골로새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이 이루어져서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불충분하게 여겨서 골로새서 2장에 기록된 대로 철학과 율법주의 신비주의 금욕주의 등에 유혹받는 것을 보고 바울이 외친 것이 무엇인지를 유념해야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 고 바울이 외쳤습니다. 거기에 모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바울과 다윗의 체험에 대한 묘사들을 잘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신구약 성경에서 가장 많이 기록한 사람들인데도 놀랍게도 내면의 하나님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여기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 밖에서 행하시고 드러내신 객관적인 계시에 의해서 계시된 하나님, 선조들이 말한 그 하나님을 믿고자 했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부르짖었고 그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자신들의 삶 속에서 바로 그 하나님을 믿었던 것이고  하나님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분명히 기독교에는 신비스런 체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체험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체험은 오직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따른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이 추구하고 원한다고 해서 갖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삼 층천에 이끌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모했다고 말하지 않아요, 그 경험을 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추구하고 경험해야 할 체험은 특별한 신비적인 체험이 아니고 계시된 하나님을 삶속에서 믿음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가 경험한 하나님입니다. ‘약속한 땅으로 가라. 내가 너희에게 함께 할 것이다.’ 모든 것을 이야기하시면서 말씀하시고 그 다음부터 여호수아가 경험한 하나님은 그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의지해서 요단강을 발로 밟는 것이고 여리고를 도는 것이며 믿음으로 모든 것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이 내 삶속에서 같이 계시는구나, 역사하시는구나, 바로 이 하나님이야’ 라고 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런 체험을 하는 것이지 내면을 바라보고 황홀경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모호한 신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삶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그런 우리를 계속 어떻게 어떻게 하시겠다 라고 성경에서 말하잖아요? 그것을 믿고 경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을 믿고 경험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의롭다 하신이가 어떻게 하시겠다고 하는 것을 말씀을 그대로 우리가 믿고 나아가면서 그 하나님을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리 힘들어도 내 어떤 그 문제 앞에서도 말씀하신 그 하나님이 나의 삶속에 계셔서 인도하신다는 것, 여리고를 무너뜨린 것처럼 나의 삶의 환경에서 인도하신 것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구하고 경험할 하나님 체험은, 보편적인 하나님 체험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 어떤 신비체험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계시된 하나님을 삶속에서 체험하려고 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독생자를 주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믿고 삶속에서 그 하나님으로 인해 행복해 하고 이렇게 말씀하시며 나를 이끄시겠다고 하는 자기 생명까지 주신 그 하나님 때문에 좀 만족해 할 줄 알고 그분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해하고 황홀해 할 수 있는 그런 믿음으로의 경험을 오히려 하시라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그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즐거워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 이런 체험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웨스터민스터 신앙 교리 문답 1번입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체험, 그것을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꼭 그런 식으로 계시된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이 다 소진 될 때까지 그래도 모자랍니다. 조금 하다 갈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신비주의인 현재 추세에 대해서 우리들이 확고히 해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은혜주시며 자신을 알고 경험케 하시는 수단,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수단에 충실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신비주의자들이 크게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는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 이해에 대한 크게 두 기둥이 있는데 초월성과 내재성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 했던 것처럼 보면 죽는 것입니다. 그렇게 초월적입니다. 그 엄위로우심을 누구도 못 감당합니다. 사도 요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뵐 때 죽은 자같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셨던 분이라도 그분 자체에 부활하신, 승천하신 그 분 속에는 초월성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초월성이 있는 분입니다.

 

동시에 자기 백성들 가운데 오셔서 인도하시고 역사하시는 내재성이 있습니다. 두 기둥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비자들은 내재성만 주장합니다. 자기들이 하나님께 합일하다가 죽은 것은 생각 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다가오시기 위해 정하신 수단이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신비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더 많이 경험하고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 자신이 정하신 그 수단에 우리가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수단은 말씀, 기도, 성례라고 세례 문답에서 이야기 합니다. 이 셋 중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는데 먼저 중시할 것은 말씀과 성례입니다.

 

기도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이 두 가지 기초위에서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신비자들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은혜의 방편 외에 많은 것을 추가했습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기도를 무척이나 중요시 여기고 말씀, 계시를 뒤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주장했던 은혜의 방편들은 우리가 말한 이런 것 외에도 묵상, 죄고백, 훈련, 노동 리차드 포스터는 금식 기도 공부 독거 검소함 죄고백 시련 이런 것도 다 은혜의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철저하게 자기감정과 자기주관적인 경험들을 따라서 하나님과 그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저 섭리적인 이야기를 그저 그런 식으로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나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수단조차 정해 주셨습니다.

 

자신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며 알게 하시고 성례를 통해서 자신과 연합됨과 은혜 경험을 말씀하셨습니다. 계시된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신비자들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합일하는 도구의 기도를 가장 중시하지만 말씀과 성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하나님을 아는 유익을 얻지 못하면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것은 계시 없는 이방 종교인들처럼 모호한 신을 찾고 만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말씀과 성례의 수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 안에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종교 개혁자들처럼 기록된 말씀과 설교는 우리들이 듣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례는 보이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특히 성령의 사역에 대한 말씀과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성례가 바르게 시행될 때마다 ‘성령님은 자유롭게 주권적으로 임하신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우리가 정해서 가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정하신 대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은혜를 경험하려고 하고 이런 가운데서 하나님과 교통해야지 다른 방법들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성례전에 참여할 때 여러분의 헌신 결심이나 다짐에 초점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생명으로 또 우리 주께서 자신의 몸과 피를 스스로 맹세하신 사실을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것입니다. 피는 독생자를 주신 것도 하나님의 맹세요, 자신이 몸과 피를 쪼개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도 그리스도께서 맹세하신 것입니다. 무엇을 맹세해요? 우리를 완전히 구원하시고 그를 영원한 가족으로 삼으시겠다고 맹세하신 것입니다.

 

보이는 말씀을 보아야 되는 겁니다. 우리가 성례에 참여할 때, 그 하나님 그 은혜의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특히 그 정한 수단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개인적이고 실질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 것들을 믿고 주님을 확신하여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특별히 말씀을 들을 때는 그리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성령님께서 만나주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말씀은 절대적으로 독립적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성령하나님께서 같이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시해서 그렇지. 이 말씀은 그분의 말씀입니다.

성령하나님은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 오시기 때문에 말씀을 통해 우리를 통제하십니다. 따라서 말씀과 성례 속에서 하나님을 보셔야 합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얻고자 하고 경험하고자 해야 합니다. 감각적인 것을 구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전 인격 속에서 감동하고 수용하고 그 하나님을 인정하고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경험코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고리타분하게 여기고 그 대신 내면의 빛을 찾는 것은 새롭고 신령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모호한 신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신비주의의 추세 속에서 점검하여 확고히 해야 할 것은 신비주의를 비롯해서 오늘날 개신교 안에 만연해 있는 이 올라감의 신앙 체계, 루터의 말로 표현하면 영광의 신학을 거부하고 그 대신 성경이 말하는 내려감의 신앙 체계, 곧 십자가 신학을 가지고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비주의에 완전히 대두되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 신학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비적인 풍토 속에서 살았고 신비주의에 젖어 있었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결론적으로 뽑아낸 것입니다. 발견한 사실입니다. 성경과 계시 안에서, 이것이 우리에게 아주 좋은 신비주의에 대한 답이 되는 것입니다. 그가 발견한 십자가 신학이. 루터는 당시에 헌신적인 성자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체험을 하기 위해서 올라가고자 했던 그 3가지 사다리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것들은 신비주의 사다리요, 공로의 사다리며, 사변의 사다리였다고 말하였습니다. 루터가 말하는 이 사다리들은 모두 올라가는 사다리입니다. 이 영광의 신학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루터가 성경을 통해서 깨달은 것입니다.


영광의 신학이라는 것은 루터의 말을 빌리면 벌거벗은 하나님, 곧 엄위하신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루터는 인간에 허락된 것이 아닌 것이고 성경에서 볼 때, 또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만날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십자가 안에서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신학을 통해서 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신학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와 같이 하나가 된 것이요, 죄악 된 인류에게로 내려오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는 신학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영광의 신학은 절대 복종 명상 황홀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한다고 말하는 것이고 십자가 신학은 죄범한 우리에게 하나님 편에서 내려오시는 것,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비주의와 그런 신학 체계를 가진 사람들은, 아니 오늘날 이 개신교의 추세는 자신들이 올라가는 것 이 영광의 신학이 근거해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교회나 세계 교회가 크게 이탈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본질을 이탈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올라감의 사상이 모든 종교에 있지만 기독교 신비주의에 들어온 올라감의 사상, 그 영광의 신학의 뿌리는 바로 플라톤을 위시한 헬라 철학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상과 신학이 옛날 영지주의부터 시작해서 오늘날에 뉴에이지 사상 심지어 오늘날 복음주의 내 은사주의 운동, 번성신학, 긍정적 사고방식 이런 것들로 옷을 입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즘 방언 받기 위해 열광하고 있다고 그러더군요. 베스트 10에 다 방언이야기, 성령님으로 나오는데 저는 요즘 「안녕하세요? 성령님」 하며 성령을 구분하는 내용이 바람직하지 않은 추세라고 생각합니다. 성령님을 이야기하려면 말씀과 함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런 것이 다 올라감의 신학을 이야기하다보니 그런 식으로 구분해서 이야기하는 현상이 생겼고 모두 다 직접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무엇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계시는 잘 모르면서 은사를 받겠다고 야단입니다. 부산의 큰 교회의 어떤 분이 나에게 전화로 물었습니다. 강대상에 직분자들을 다 나오라고 하고 성령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다 쓰러뜨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영광의 신학의 잔재들입니다.


이 영광의 신학을 신학적으로 잘 체계화 한 사람이 존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교리입니다. 그 라인에서 계속 발전한 그룹과 사람들이 더 높은 산과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외친 케직사경회 그룹과 한나 스미스, 찰스 피니, R. A. 토레이, 헬레 블랙까미 요즘 대중적인 선교단체들 중에서 신학적으로 이들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단체는 예수 전도단입니다. 신비주의가 가진 영광의 신학을 어느 새 복음주의도 얼굴 모양을 달리 해서 그대로 가지고 계속 추구해 왔습니다. 올라가는 사상은 헬라 철학뿐만 아니라 더 오래 전에 힌두교나 불교 조로아스터교 등에도 있었고 지금의 힌두교나 불교도 계속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기독교와 모든 종교는 이런 것을 올라가는 종교 체계를 갖는 다면 똑같아 보여요.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계시 종교라는 면에서도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다른 종교들처럼 올라감의 종교가 아니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기독교는 정반대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오신 종교입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보십시오. 기록된 내용 중에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발견했다는 사례가 하나라도 기록되어있는지...없습니다. 아담아, 아브라함아, 밤에 잠자고 있는 야곱에게도 하나님이 왔습니다. 다 하나님이 오십니다. 성경은 항상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오셔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계시하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가 마치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는 것처럼 영광의 신학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은 아버지와 하나라고 하시면서 길과 진리이고 생명을 통해서 아버지께 이를 수 있고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자,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봐야 합니다.

 

그를 통해야 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고 계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자연과 귀신과 온갖 질병과 사망까지 주관하시는 그런 모습을 보이셨지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이 하나님의 비밀스러움을 보이셨습니다. 완전히 다 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서 그가 오셔서 말씀해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다 안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벌거벗은 하나님을 직접 만나겠다고 신과 합일하겠다고 이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이 어떠하심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열심을 보고 싶거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는 겁니다. 그의 십자가를 보는 것입니다. 신비자들과 영광 신학을 가진 자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봄으로서 하나님을 보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악 가운데 있는 인간이 하나님과 평화할 수 있는 길은 우리의 내면을 봄으로서가 아니고 우리 자신 바깥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봄으로서 입니다. 비밀은 거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는 자는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고 하나님의 지혜와 그의 성품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으신가요? 내면으로 들어가지 마시고 십자가를 보십시오. 십자가 신학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올라가지 말고 내려가는 삶, 곧 그리스도를 따라서 고난의 삶을 살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삼 층천을 경험한 체험이 있었지만 그런 체험을 그리스도 뒤를 쫓아 고난의 삶을 사는 가운데서 삼 층천 이야기하면서 그리스도 뒤를 쫓아서 고난의 삶을 사는 것에 대한 결론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계시를 고후 12장에서 이야기합니다. 영광 체험을 말하면 좋겠는데 그것은 말하지 않고 거기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또 다른 길을 밝히고 있습니다.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네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해짐이니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하므로 나의 여러 약함을 인하여 자랑함이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함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력과 궁핍과 핍박과 고난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함이니라.’ 이것이 비밀입니다. 바울은 이 비밀을 삼층 체험을 경험한 후에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광 신학으로 살려고 하지 말고 하늘의 은사를 받고 신비스런 체험을 하는 것도 좋은데 그런 것들보다 십자가 신학에 온 맘을 쏟으시고 바로 약할 때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을 하고자 하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진수입니다. 그래서 기꺼이 고난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길입니다. 경험할 수 있는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기도 속에서 내면을 바라보고 어떤 특별한 체험을 해도 이 하나님의 생생함은 고난 속에서 경험되어져야 합니다. 삶속에서 확인되어야만 합니다. 신비주의가 잘못 가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비밀을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신앙을 버리고 영광의 신학을 취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의 신학에 현혹되지 말고 지금까지 말한 이 세 가지를 확고히 하십시오.


제가 마지막으로 워필드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우리는 신비주의자가 될 수도 있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두 가지 다는 될 수 없습니다.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척하는 것은 단지 기독교로부터의 변절을 숨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명쾌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계시 안에 있는 부요한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하십시오.  

 

 

 

 


알미니안주의의 ‘조건적 선택’에는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 / 조엘 비키

 

 

첫째로, 조건적 선택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근본적인 선택을 인식하지 못한다. 성경의 선택 교리는 땅의 기초가 세워지기 아주 오래전에 설계된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부를 자유롭게 선택하신다는 교리이다(계7:9-17).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구원 얻을 방편을 마련해 놓으셨다(엡1:4,5). 하나님은 그들을 구속하고 믿음과 회개로 이끌어 의롭다 하시고, 거룩하게 하고 보존하시며, 그 택한 자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또 그를 통하여 영화롭게 하신다(롬8:28-39,살후2:13,14,딤후1:9,10). 그리고 불신앙을 고집하는 자들을 죄 가운데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신다(롬9장).

 

선택은 무조건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 안에 있는 어떤 내재적인 선함 때문에(고전1:27-31), 혹은 그들이 언젠가는 믿을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로, 조건적인 선택은 우리의 전적 타락과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의 범위를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영광을 가로채고 만다. 반면에 무조건적인 선택은 인간의 전적 타락 교리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은혜 교리에서 비롯되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만일 우리가 성경이 말씀하는 바와 같이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라면, 우리의 구원은 결코 우리 자신에게서 시작될 수 없다. 우리는 본질상 ‘허물과 죄로 죽었던’(엡2:1)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택자를 위하여 자신의 독생자를 고난과 죽음에 내주셨던, 주권적으로 선택하시며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다. 왜 그런가? 우리가 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진노를 받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택’이 없다면 구원도 없다.

 

스펼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나는 인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죄와 저주를 받아야 하며, 구원은 그 시작에서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발견한다. 하나님께서는 멸망받을 자를 멸망받도록 선택하신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기로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셋째로, 조건적 선택은 실제로 아무도 구원하지 못한다. 조건적 선택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타락한 인간 존재에 구원의 기초를 두기 때문에 결국 인간을 파멸로 이끌게 되는 것이다. 반면 무조건적인 선택은 인간을 파멸로 이끌지 않고, 천국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사람들을 천국에서 물리치시고 천국에 가지 못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천국문을 열어 놓으시는 하나님의 복이다. 그러므로 경이로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어떤 죄인들을 의롭게 거절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단 한사람의 죄인이라도 구원하신다는 사실이다.

 

어거스터스 스트롱, “우리는 하나님께서 너무나 적은 수의 사람을 구원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불의하시다고 건방지게 비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신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더 찬미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덕이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불의와 사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죄인을 선택하신다는 이 신비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존 라일, “자기 자신의 마음을 진정으로 아는 신자는 선택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미하게 될 것이다.”

 

- 조엘 비키, 『칼빈주의』, pp 121-123

 

 

출처: http://blog.daum.net/kds2012/245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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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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