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심령의 제사
이응한 목사 2018. 4. 6. 20:59[시편 51:16-17]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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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1편에는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찾아온 때에”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17절에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런데 “상한 심령”은 어떤 심령일까요? “상했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말로는 부패해서 썩어서 상한 것도 “상했다,” 다치고 부서진 것도 “상했다,” 하는데, 여기에서는 부서져서(broken) 상한 것을 말합니다.
깨끗하고 싱싱한 고기를 칼로 자르고 저민 것 같은 상한 심령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시편 51편 17절이 말하는 “상한 심령”이 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부패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야바 대제사장 집에서부터 빌라도 법정과 골고다에 이르기까지 억울한 고소와 주먹질과 침뱉음과 매질 등, 말할 수 없는 부당한 대우와 곤욕을 당하십니다.
그러나 한 마디의 항변이나 반항도 하지 않으십니다. 빌라도가 심히 기이히 여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도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이 자기들의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기도까지 하십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인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이 끝까지 참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인내라는 것, 참는다는 것은 화가 나고, 속상하고, 복수심과 증오심, 악과 독이 치밀어 오르는데도 꾹 눌러 참고, 인내한다는 뜻이 됩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런 식으로 참으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러셨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받으실 희생제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희생제물이 되려면 악과 독이 아예 없어야 합니다.
사과나 복숭아를 찔러도 “아얏, 왜 찔러!” 독과 악이 아니라 달콤한 사과즙, 복숭아 즙이 나오고, 싱싱한 횟감 물고기를 회칼로 저며 놓아도 향긋한 맛이 나듯이 말입니다.
개나 호랑이 같은 동물이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은 정결하지 못 한 탓도 있지만, 잡아 보십시오, 반항하고 악을 쓰며 “두고 보자, 지옥에 가서라도 이 원수는 갚을 거다.”는 듯 으르렁거릴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양 같은 동물은 목을 찌르고 매달아 죽여도 고통으로 버둥거리며 피를 흘릴 뿐 악독과 원망은 아예 할 줄을 모릅니다.
어떠한 인간도 부당하게 학대와 조롱을 받으며 죽임당한다면 악과 독, 원망과 저주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제물은 칼로 상하고 죽임당해야 드려질 수 있습니다.
심령도 상함 받고 죽임당해야 하나님께 제사로 드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의 심령은 상함 받고 죽임당할 때 악과 독과 원망이 터져 나오고 부패와 죄가 풍겨져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인간들의 악한 취급에 마음이 상하였는데도 참으셨다면,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는데 누르고 인내하셨다면,
그런 식으로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셨다면,
이 속죄제사는 무효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위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대속물이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죄 하나 없고 흠도 점도 없는, 그 심령이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어린양 예수님의 심령은
악한 인간들의 배반과 욕설과 조롱과 침 뱉음과 채찍질과 못 박음을 당하며 부서지고 찢기고 저며져서
향기로운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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