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교리

“교리”는 dogma 라고 하는데 “교의”라고도 합니다. 이 교리는 원래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을 정리하고 요약한 표준적인 이론>을 말합니다. 그러나 간혹 교리가 “필요하지 않은 것,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 이라고 비판적인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교리가 교파의 분열을 가져왔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교리가 교파의 분열을 초래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교리가 원인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교권욕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간혹 인터넷 상에서 한국교회를 전체적으로 싸잡아 “교리주의자”라고 거칠게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이단이든지 이단사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정통교회보다 더욱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교리를 갖고 있습니다. 교리란 “정리되고 요약된 표준적인 이론”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원래 “도그마”라는 단어는 헬라의 “법령”을 말하는 단어로서 눅2:1, 행17:7에 나옵니다.

눅 2:1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도그마)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그러나 도그마에 대한 중요한 성경적인 내용은 그 단어가 예루살렘 공회의 교리적 결정에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초대교회 사도들이 사역하던 예루살렘 공의회가 도그마를 선포하였다는 점에서 교회의 공적인 의무적인 가치를 부여한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율법은 아니었으며 사도들이 사역하던 초대교회에서도 교리(도그마)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행 16: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도그마)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교리(doctrine)란 "종교적 체험의 이론적인 부분을 총칭하는 용어“로써 ”이성적으로 이해된 믿음을 옹호하는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과정“이라고 정의합니다. 솔직히 이단교회이건, 정통교회이건 그들 나름대로의 교리를 갖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교리가 정통교리인가 하는 점입니다. 정경옥교수는 "정통교리란 구원을 가르치는 손가락"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정통교리가 아닌 것은 구원이 아니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손가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통교리”(sound doctrine)는 건전한 교리를 말하며, "orthodox"라고 합니다.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켜(헬: 디다스코, teaching) 지키게 하라.

“도그마”라는 단어는 “도케오”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고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초대교회에는 “디다케”라고 불리는 책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성경대로의 가르침을 정통교리(Ortho-dox, 건전한 교리)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서 "건전한 교리"는 반드시 획일적인 한가지일 수는 없으며, 성경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 조건 하에서 어느 정도 다양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분부한 것, 즉 기록된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반대로 비성경적인 교리에 대해서는 우리는 이단적 교리라고 부르는데, 대부분 그들의 지도자나 교주들에 의하여 달리 설정된 가르침을 말합니다. 교리란 성경 안에서는 다양할 수는 있지만, 성경 밖으로 벗어날 때에는 이단교리가 되어집니다. 흥미로운 것은, 정통교리를 비난하는 이단일수록 오히려 다양한 견해가 용납되어지지 않으며, 그들의 지도자나 교주의 개인적인 견해가 획일적이며 유일한 공식교리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왜 교리가 필요할까요?

첫째 교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이단과 다른 사상에 대처하고 막기 위해서입니다. 말하자면 교리랑 울타리같은 것이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칩입과 외부로 향해 나가려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너무나 교리를 가르키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많은 교인들이 이단과 사이비 사상에 미혹되고 빠져가고 있습니다. 이단교리가 왜 비성경적인지를 교회가 가르켜야만, 교인들이 이단에 빠지지 않는데, 목사들이 이단교리가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둘째 교리를 알아야 하는 것은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 입니다. 참된 신앙인은 어느 누구도 교리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거나 교리를 신앙의 조건으로 삼는 사람은 없습니다. 교리란 구원을 가르치는 손가락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단들과 다른 사상을 가진 단체들은 이러한 교리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리가 없어져야만 자신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사상을 전하기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이 비난하는 “교리”란 바로 “정통교리”이며, 그들 자신의 교리도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교리란 성경을 쉽고 간편하게 요약하고 정리한 것으로 반드시 성경적이어야 합니다.

셋째 교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교회의 표준을 위해서 입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교회를 대항하고 우리 교회를 비난하는 많은 무리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믿어야 하며 무엇을 믿어야 올바른 신앙인지 그 표준이 있어야 합니다.

넷째 교리를 알아야 전도를 할수 있습니다. 초신자를 전도할 때 어떠한 질문을 받거나 의문을 물어올 때가 있습니다. 또 타종교인을 전도할 때 우리는 최소한 기독교의 원칙과 주요 핵심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것이 자신에게도 확신과 확증이 될 수 있습니다. 즉 무조건 믿으라가 아닌 왜 어떻게 믿느냐를 설명해 줄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정통교리의 기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통교리가 필요없다는 사람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기독교인이 아니며, 성경을 근거로 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만일 그 사람의 아들과 딸과 그 부인이 이단에 빠졌다면 그는 아마 눈이 뒤짚힐 것이며 입에서 거품을 물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정통교리의 기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신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것으로 경건해석. 신자의 책임과 의무를 이해시키는 것으로서 필요합니다
2) 교리를 규범화하는 것으로서 교리에 대한 해석을 고정화시키고 보존시키는 교회의 표준화적인 역할을 합니다.
3) 교회를 수호하는 측면으로 종교적 전통의 안팎에서의 이단적인 오류에 대해서 교인들을 방어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단(heresy)

먼저 이단에 대해서 이단(heresy), 이단성(heretical), 이단자(heretic)와 같은 용어적인 개념이 정립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단성”이란 정통교회에서도 이단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의적으로 이단성을 갖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잘 몰라서 이단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단성을 갖는 사람이 곧 이단은 아닙니다. “이단”은 원래적인 의미로서는 단체(이단교회)를 말하며, “이단자”는 개인(이단교회 교인)을 말합니다. 그러나 개인에게도 이단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단교리 자체”를 이단이라고도 함으로서 혼동되어지기도 합니다.

(1) 한글의 문자적인 의미: 처음과 중간은 같은데 끝이 다르다는 것(異端)입니다.
즉 이단은 종말적으로 볼 때에 기독교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2) 헬라어적인 의미:  헬라어로 이단이란 용어는 헬라어로 "하이레시스"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자유로운 선택"(free choice)이란 의미로 "당파. 종파, 선택"를 가르킵니다. 예를 들면 사두개인의 당파(행5:17), 바리새파(행15:5)등에도 사용되었고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행26:5)라는 구절에도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 단어가 나쁜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이후에 영지주의와 금욕주의가 교회에 침투하면서, 이 용어는 “에클레시아”(교회)와 반대가 되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단들과 토론을 하여보면 항상 이단이라고 하는 단어의 뜻이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즉 “이단”이라는 헬라적인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로만 보면 단순히 기독교와 다른 또 하나의 당파, 종파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단지 그러한 뜻이라면 그들은 이단이라는 말을 특별히 싫어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분명히 성경에서는 “하이레시스”라는 단어가 나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고전11:19(편당), 갈5:20(이단), 벧후2:1(멸망케 할 이단)

(3) 영어적인 의미: 영어에서 사용되는 이단에 대한 말들은 heresy, sect, cult 들이 있습니다. “sect” 란 원래 “분리”를 뜻하였으며, “cult” 란 “숭배, 예배”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들 중에서 이단을 지칭하는 단어로는 heresy가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어집니다. 최근에 와서는 이단의 형태가 복합적으로 변하면서 숭배자적인 이단(cultic-heresy)나 다색적인 이단(hetero-heresy)라는 단어도 사용됩니다.

(4) 교리적 차이: 행24:5에서 바울에게 “나사렛이단의 괴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바울은 “나는 저희가 이단(Heresy)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행24:14) 라고 말합니다. 유대교의 시각으로 볼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이단이라고 불리울 수 밖에 없는 것이 교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단들은 이단이라는 용어가 상대적, 배타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장로교의 입장에서 다른 신학과 교리를 가진 감리교는 이단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감리교의 시각에서 장로교를 이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감리교와 장로교의 교리는 서로 다르지만, 성경적인 범주 안의 다양한 신학과 교리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즉 기독교의 교리는 다양성이 인정되어진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기록된 말씀, 즉 성경 안에서 인정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종교단체가 그 세력이 커지면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개신교의 많은 사람들은 카톨릭을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며, 세계적인 이단에 들어가는 몰몬교나 통일교를 이단이 아니라고 하는 기독교인은 거의 없습니다. 즉 아무리 큰 교회나 단체라고 할지라도 비성경적인 이단적인 주장을 한다면 누구라도 이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단과 정통을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관점은 성경적인 기준입니다. 유대교의 경전은 구약성경입니다. 기독교는 유대교가 아니며, 구약과 신약성경이 그 신앙의 기준이 되어집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그 기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기독교의 이단은 “기록된 성경”의 범주를 벗어나는 교리를 가진 곳을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전4:6)

(5) 자력으로 취하는 교리: “하이레시스”라는 단어는 “하이레오마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단어는 "자력(自力)으로 선택하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어느 교회나 단체의 교주 혹은 지도자의 개인적인 주장, 즉 인위적이며 자력적인 가르침이 교리가 된다면 그곳은 이단이 되어집니다.

즉 이단이란 뜻은 교회의 전통적인 의미로서 "인위적이며 자력으로 취한 가르침을 갖는 분파“를 말하며, 성경과 어긋나는 "다른 교훈" 혹은 "다른 복음"을 주장하는 단체나 분파를 말합니다. 성경에는 거짓 선지자와 거짓선생을 “이단”이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하이레시스)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2:1).

이단들은 기록된 성경말씀이 아니라 자력적인 가르침을 취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안에는 진리가 없으며, 제 것으로 말하는 거짓말장이들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8:44)

즉 이단이란 뜻은 교회의 전통적인 의미로 "어긋나는 가르침"을 말하며 거짓 선생과 거짓 선지자의 "다른 교훈" 혹은 "다른 복음"을 말합니다. 즉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유1:18)를 말합니다. 바울은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으며, 다른 복음을 전하면 하늘의 천사라도 저주를 받는다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6-9)

신약에서는 이단에 대한 명칭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흉악한 이리”, “거짓 예언자”, “거짓 선지자”, “적그리스도”, “미혹의 영”, “다른 영”,“분열시키는 자”, “거짓 선생”, “다른 교훈으로 남을 분열시키는 것” 등의 의미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6) 이단의 정의: 초대교회의 이레니우스는 정통을 “어느 곳에서나 항상 모든 사람에 의하여 믿어진 바”라고 하였고, 이단을 “올바른 교리의 표준에서의 이탈”로 정의하였습니다. 20세기 이단학의 권위자로 알려진 윌터마틴은 이단에 대해서 "어떤 특정인의 그릇된 성서해석을 중심으로 형성된 종교집단"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피영민 교수는 "정통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서 거짓된 신앙을 만들어 낸 집단이나 혹은 그들의 거짓된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말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단은 그 교회의 교리로서 판단하는 것입니다. 어느 곳은 자기들은 교리와 신학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을 하는 곳일수록 그들은 모두 획일적이고 동일한 주장과 사상을 갖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안디옥의 감독이었으며 속사도였던 이그나티우스는 이렇게 초대교회 당시에 성행하던 이단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 이들은 거짓 이야기 꿈들이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속이는 자들이다. 매우 설득력 있는 말로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이야기한다. 그리스도를 말하면서 그를 거절하는 식으로 그리고 율법에 대해 말하면서도 율법을 거스리는 말을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의 동정녀 탄생을 중상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끄러워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부인하고 그의 부활을 믿지 아니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려지지 않은 존재로 소개하고, 그리스도가 잉태되지 아니했다고 생각한다. 성령의 존재함을 인정치 아니한다. 그들 중의 어떤 이들은 아들을 단순한 인간이며, 성부, 성자, 성령을 동일한 품격으로 본다. 그들은 창조는 하나님의 작품인데 그리스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이상한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2000년 동안 기독교의 정통신학과 교리는 숱한 이단들과 사이비들의 공격과 비난에도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으며, 언제나 성경적인 진리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해 왔습니다. 즉 정통 기독교는 무려 2000년 동안 검증을 받아온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단이란, "성경적으로 검증되어온 정통 기독교의 교리를 거부하면서, 어느 특정인의 자력적인 성경해석을 중심으로 잘못된 교리를 주장하는 단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잘 모르는 초신자에게는 이단을 분별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에 특별히 유의하여야만 합니다. 그들은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으로서, 때로는 목회자의 신분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수도 있으며, 선한 의의 일군의 모습(고후11:15)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양의 옷(마7:15)을 입고 나타날 수도 있으며, 광명의 천사(고후11:4)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거짓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수도 있으며, 오직 겉으로 드러나는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어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은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그들의 교리와 사상이 성경적인 내용인가를 먼저 판단해야만 합니다.
둘째, 그들의 행위가 그리스도인의 향기에 부합되는가를 판단해야만 합니다.
세째, 그들의 신앙적인 목표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판단해야만 합니다.

어느 단체를 외부적으로만 볼 때에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의 교주니 목사는 일반 사람에게 그 행동이 노출되지 않으며, 그들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적인 목표가 어느 교주나 지도자 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든지, 목사의 위상이 유일한 존재니 위치로 높여지면 그들은 이단입니다. 특히 성경에 나오는 상징적인 단어(동방의 의인, 이긴 자, 다른 보혜사등)의 비유가 어느 교주나 목사라고 해석을 한다면 이단이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또 목사나 지도자에게 유일하게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거나, 2000년 정통기독교의 신학이 모두 틀렸다고 주장하거나, 교주나 목사의 카리스마적인 영적 능력을 성령이나 천사가 알려준다고 하거나, 성경의 감추어진 비밀을 깨닫고 있다고 하여도 이단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4:1)

성경이 기록될 당시, 즉 초대교회때에도 거짓교사나 거짓선지자가 있었으며, 다른 교훈과 다른 복음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성경을 가감하는 자들이 있었기에 요한은 그것을 경고하였고(계22:18-19), 베드로는 성경을 무리하게 해석하는 자들은 멸망을 받는다고 책망하였습니다(벧후3:16).
예상 외로 성경은 다른 복음과 다른 영, 거짓 선지자나 거짓 그리스도에 대한 경고를 상당히 많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으며(갈1:6-9), 예수님 자신은 거짓 그리스도에 대한 경고를 반복하여 말씀하셨는데, 오늘날 자신이 그리스도, 메시야, 보혜사, 선지자라고 주장하는 이단들이 너무나 많이 난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23-24, 마24:26, 막13:21)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는 자는 곧 적그리스도입니다.
다시 말하여 예수가 아닌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는 적그리스도가 됩니다.

“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요일2:22-23)

이단에 대해서 디도서3장에는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 두 번 훈계한 후에 관계를 끊고 멀리하라고 충고하고 있으며, 사도요한은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고 충고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로부터 변질된 거짓 복음이 전파하여짐을 사전에 예방하려는 목적입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서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딛3:10-11)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요이1:10-11)

(7) 이단과 다른 사이비(似而非)란 무슨 뜻일까요?

사이비란 완전히 다른 가짜라는 뜻입니다.
비록 잘못되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교리가 성경적이라고 믿는 곳은 이단이라고 불릴 수 있겠지만, 거짓종교의 탓을 쓰고 고의적인 다른 목적으로 유사 종교를 운영하는 곳은 가짜 사이비단체가 된다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8) 이단에 대한 대책(심창섭교수)

1. 건전한 교리 교육과 성경말씀의 바른 해석과 전달
2. 교회지도자들과 교인들의 신앙생활의 갱신
3. 영적생활의 유지를 위한 영성훈련(기도생활의 올바른 지도)
4. 교인들의 욕구충족을 위한 신앙심리 연구와 적용
5. 신앙생활의 가치관과 이념의 형성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11:4)

이단에 대해서 경계와 주의를 말하지 않는 사람이 있거나, 이단에 대해서 침묵 혹은 묵인하는 사람이 있거나, 이단에 대해서 개방적인 사람이 있다면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라, 기독교의 적으로서 그는 하루 빨리 한국교회에서 사라져야할 사람입니다,  

출처: USA 아멘넷/ 이인규 권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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