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쥐의 꼬리를 잘라서 꼬리 없는 쥐의 모습을 만들어 놓을 수는 있지만 꼬리를 자름으로 "꼬리 없는 쥐"라는 새롭게 변이된 다른 종류의 쥐를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완전히 변형된 새로운 종류는 하나님만 만드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새 사람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정한 분위기 속에서 겉으로 비쳐진 감정적 변화를 보고 새롭게 거듭난 "믿음의 사람"이 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오판으로 밝혀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이 실수를 거듭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요즈음 많은 부모님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아이들의 감정을 움직이게 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거듭되는 교육과 훈련과 실질적인 경험을 통해서 생각 자체, 생활습관 자체, 사고방식 자체가 바뀌어야지 한 두번의 극적인 상황을 통하여 극적인 느낌을 받고 극적인 결단을 하는 변화는 3일도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에 일회용 행사로 끝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감정적 분위기에 의해서 만들어진 천사 같은 모습은 마치 모래성과도 같습니다.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금방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혹시, 일단 모래성을 쌓아 놓은 다음에, 모래성을 무너뜨리지 않고 견고한 성으로 변모시켜 유지 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쉽고 좋겠습니까? 그러나 안 됩니다. 완전히 무너뜨리고 처음부터 새롭게 합당한 재료와 공법으로 다시금 제대로 쌓아 올려야 비로소 견고한 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천국과 같은 분위기의 집회를 통하여 변화된 감정이 얼마나 가던가요? 감정의 변화만을 보고 예수를 믿는 것으로 착각해서도 안 되고 극적인 감정의 변화를 기대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감정의 변화는 있으나마나 할 때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지만, 뚝 떨어지는 선물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믿음이 실제로 생겨납니까? 하늘에서 어느 순간 뚝 떨어집니까? 믿지 못했던 마음이 어느 날 어느 순간에 믿는 마음으로 확 바뀌어졌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아직 신앙의 세계를 올바로 확실하게 접해 보지 못한 분들입니다. 물론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실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의 마음을 무조건 믿는 마음으로 만드실 수도 있습니다. 동물들에게는 그런 마음을 만들어 주셔서, 예를 들면, 강아지는 주인에게는 무조건 순종하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신적인 존재로, 인격적인 존재로 대해 주시는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마음 자체를 그냥 임의로 바꾸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사건을 비롯한 여러 가지 깨달음을 주는 사건들을 통하여 스스로 믿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우리를 두시어서 우리가 하나님을 억지로라도 스스로 찾고, 정말로 의지해 보고, 실질적으로 체험하도록 만들어 주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라는 마음의 상태는 연단에 연단을 거듭하면서 정금처럼 순수하고 아름답게 확실하게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한 번의 집회에서 갑자기 생겨난 감정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집회 장소에서는 분명히 믿음으로 살 것 같은 마음이 생겼었는데, 현실로 돌아오면 몇 날이 못 되어 완전히 그런 믿음의 마음(감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모래성과 같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 정금과 같은 “믿음”은 생활 현장에서 땀과 눈물을 동반한 반복되는 고된 심령의 훈련을 통해서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난 없이, 즉 고된 훈련 없이 감정으로만 생성된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조금만 어려운 일이 발생해도 약간의 유혹만 받아도 맥없이 무너져 내리고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리는 것입니다.

훈련이 믿음을 형성시켜 주고 확증시켜 줍니다. 쉽게 몇 번의 집회에 참석함으로, 또는 한 번의 은사체험으로 세상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척박한 밭이 옥토가 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무 곳에나 씨를 심는다고 나무가 자라고, 곡식이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씨앗을 심어서 열매를 거두려면, 무엇보다 먼저 밭을 옥토로 만드는 작업이 선행 되어야 비로소 씨를 뿌려도 싹이 날 수 있고, 또 난 싹이 자랄 수 있고, 자란 곡식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의 밭에 뿌리어져서 열매를 맺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기까지는 필연적으로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와 많은 사람들의 수고, 특히 가장 크고 직접적인 책임을 맡은 부모의 측량할 수 없는 노력이 꼭 요구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죄 속에서 태어난 인간이 정말로 변화되는 역사를 만들기 위하여 아담이 결정적인 잘못을 저지르자마자 친히 찾아오셔서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면서 곧바로 구원의 계획을 발표하셨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까지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렸고, 그러시고도 그냥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이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하셨고, 그 복된 소식이 세상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수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그 만큼 인간의 심령이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과, 예수님의 무한한 은혜와,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여 오랜 기간 동안 기도하고 땀과 눈물을 흘린 수고가 합쳐져서 만들어내는 "대 역사"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려는 쉽고 넓은 문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우리들에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참 진리의 길과 축복의 문은 생각 없이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떠들며 따라가는 사람들의 것이 아닙니다. 자녀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고, 저절로 되는 길이 있다고 해도, 한번 참석만 하면 된다고 해도, 그 말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꾸준하고 일관성 있고 확실하고 신념에 넘친 훈련의 수고를 통해서 매일 매일 눈물로 뿌려진 말씀의 씨앗들만이 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을 꼭 믿으시고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들을 꾸준히 정성을 다하여 교육시키며 성실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 126:5).

담임목사 최영호
www.sewoondol.org    www.deliverusensemble.com

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4/14/2005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출처ㅣ 아멘넷/ 공부합시다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