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Faith Healing과 Divine healing의 정의

1. 용어와 관련된 문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치유에 관하여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그것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심지어 강신술 기법들과 관련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염려와 두려움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심령 치유와 같은 뉴에이지 운동과 여러 치유술들의 다양한 측면들이 널리 대중화되
고 있으며 동양 종교들의 영향이 넓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박스터(J. Sidlow Baxter)의 정의-in the book of "Divine Healing of the Body"
그리스도인들의 치유에 관한 네 가지 용어
신유(divine healing)
기적 치유(miracle healing)
믿음 치유(faith healing)
초자연적 치유(supernatural healing)

"이들 용어들은 여러 가지 모임에서 때로는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고 때로는 해로운
망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면서 애매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중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용어는 신유(divine healing)가 좋다
고 생각한다.
우리가 신유에 관하여 말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항상 단 한 분이신 참되신
하나님의-성경에 계시되었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의 절정을 이루셨
던 살아 계시고 인격적인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에 의한 치유라는 점이다. 따라서
신유(divine healing)라는 용어가 갖는 의미는 다음의 용어들이 가지는 것에 비하여
우월하다.

A. 기적 치유(miracle healing)
사단도 기적을 행할 수 있다(신 13:1-3 행 8:9-25 계 13;13; 16:14 19:20)
기적 치유는 신유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B. 믿음 치유(faith healing)
치유의 근원이 예수님이 아니라 인간의 믿음이라는 인상을 받게된다. 그러나 divine
healing은 인간의 응답보다는 하나님의 역사를 강조하고 있다.

C. 초자연적 치유(supernatural healing)
초자연적 치유란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라는 말로서 항상 divine
healing 일수는 없다. 사단, 천사들처럼 초자연적인 존재들도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D. 심령 치유(psychic healing)
어떤 물체를 통하여 그 소유주의 상태를 진단하거나 강신술을 통한 진단, 투시력, 마
술적인 기법들이 포함된다. 성경은 이를 엄히 금하고 있다(신 18:9-13)


John Stott는 심리학적. 의학적 방법들에 의한 것이든 혹은 그 어떠한 방법도 사용하
지 않았던 간에 모든 치유는 divine healing이라고 주장하였으나 divine healing이
란 용어 사용을 의술의 도움이 없이 또한 자연적인 치유가 아닌 하나님께서 직접 개
입하심으로 일어나는 치유에 제한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초월 명상(TM)같은 동양 종교적 사고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집단들도 병든 자를 치
유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주장을 그리스도인들이 무시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치
유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거부되어야 할 것은 그러한 치유의 근원
이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divine healing을 부인하지 않는 가운데 초자연적 치유가 비그리스도적 맥락
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세속적인 회의론자들에 동조하여 오늘날에는 기적이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
하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초자연적 치유를 인정하는 비기독교적 입장 및 그리스도
교적인 纛揚� 모두 거부되는 경우가 많다.

2. 세속적인 세계관
그리스도인들이 신유를 거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세상적인 서양적 세계관의 막대한
영향을 제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주의와 합리주의에 물들어 있
다. 현대 세속주의의 초석을 이루고 있는 이 두 가지 사상은 18세기의 프랑스 계몽주
의에까지 소급해 올라갈 수 있는 것으로서 지난 2세기동안 서양적 사고 형성에 엄청
난 영향력을 행사하여왔다.

물질주의 세계관: 이 세상에는 물질 및 그것의 운동과 변화 이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
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 세상에는 어떠한 초자연적 reference point가 있을 수 없다

합리주의: 모든 것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고 모든 인간의 문제는 합리적인 방법
에 의해 해결될 수 있으며 따라서 신의 섭리가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주의로 인하여 성적 타락과 방탕과 물질 만능주의가
초래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피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또 다른 차원에서 세속
주의 영향아래 있다. 즉 물질적인 세계에 대한 초자연적 개입 특히 육체적 치유의 가
능성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었다.
세속주의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하여
회의적인 태도를 갖게 한다.
물론 회의주의자가 모두 불건전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너무 가볍게 믿는 것을 피하
여야 한다. 문제는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치유 역사들에 대하여 여러 가지 부정적인
이유를 들면서 우리의 관심이나 사고 대상으로 삼지 않으려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서양적 세속주의의 영향을 극복한 뒤에 즉 오늘날 초자연적 치유가 일어
날 수 없다는 생각을 극복한 후에 비로소 병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3. 신학적 역류
기적은 어 이상 일어날 수 없다고 믿는 신학적인 사고는 하나의 오랜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초대 교회 시대에 이미 치유나 기적의 역
사가 중단되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한다. 신학자들에 따라 그 시기
에 관하여 약간씩 견해를 달리하고 있기는 하나 대체로 치유가 사도 시대가 끝나고
교회가 형성된 뒤로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특별히 세대주의 신학자들은 표적과 기사가 중단되었다는 주장을 가장 강력하게 견
지하고 있다.
개혁주의자 칼빈도 신유에 대하여 위와 같은 입장을 취하였다. 그의 기독교 강요에

.........한동안 주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치유의 은사는 다른 모든 기적들과 마찬가지
로 복음의 선포를 영원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제는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제 치유는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우리는 그러한 능력을 행사하라는 어떠한
위임도 받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루터는 그의 초기 저작인 요한복음 설교집에서 기적 시대는 초대 교회에 한정된 것
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도들은 말씀을 선포하였으며 자기들의 기록을 남겼다. 따
라서 그들이 기록으로 남긴 것 이상의 어떠한 것도 계시될 필요가 없으며 새롭고 특
별한 계시가 필요없다"고 했다.

대부분의 개신교 신학자들과는 대조적으로 로마 카톨릭교회 신학은 오늘날에도 기
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하여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Francis McNutt

.......실제로 치유는 개신교 교인들보다는 카톨릭 교인 편에서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카톨릭 교인들은 신유를 포함한 기이한 은사들로 축복받은 성자들의 전통
속에서 성장해 왔으며 신유는 아직도 성자로 시성되기 위한 하나의 시금석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톨릭 신자들은 신유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는데 별
로 어려움이 없다. 다만 신유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있어 하나의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신유를 거부하고 있는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한가지 점만은 성서적
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신학적 이유로 오늘날 이루어지는 표적, 기사의 가능성은
부정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치유 사역만은 열정적으로 수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제 우리가 신약 성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적이나 치유의 체험을 근거로 한 그리
스도 신앙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들의 신학은 부분적으로나마 현
대 물질주의와 합리주의에 적응한 결과를 반영하고 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
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너희는 삼가라(막 13;22-23)"라는 예수님의
경고를 이유로 기적을 위험한 것으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치유에 대한
이 같은 이해 즉 치유가 초대 교회 시대에는 나름대로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으나
오늘날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오도할 뿐이라는 이해는 그리스도인들이 병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려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4. 고난에 대한 이해
모든 고난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 일부러 주시는 것이라는 생각은 많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신유를 거부하게 하는 커다란 이유가 되고 있다. 이런 생각
을 따른다면 우리가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결과가
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을 기회와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할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치유의 제일차적인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통과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C.S. Lewis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고통은 우리가 즉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악일뿐더러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악이다. 고통은 우리에게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줄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께
서는 우리가 즐거워 할 때에는 속삭이시고 우리가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에는 보통
의 소리로 말씀하시고 우리가 고통하고 신음하고 있을 때에는 큰 소리로 외치시는
분이시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일깨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메가폰인 것
이다...................

이와 같이 고통이 우리를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divine healing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되는 죄로부터 해방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하
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질병을 사람들의 적으로 이해하셨다. 그것은 악을 그 근원으로 하고 있
으며 사단의 왕국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장 깊고도 무서운 병은 죄이며 육체적 질병
이나 가난과 같은 결과들은 죄를 그 원인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병든 사람들
이 기도를 통해 모두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에는 모
든 질병과 가난 그리고 죄악이 영원히 사라지는 날이 오게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형태의 고난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표지가 되고 있
음을 부인할 수 없다.
바울은 롬 8:17에서

(롬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
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라고 말하고 있고 바울을 포함한 신약 성서 기자들은 고난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
에 참여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히 2:10)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
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고후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
암아 넘치는도다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
으심을 본받아
(벧전 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
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벧전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벧전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인간의 고난과 신유를 조화할 수 있을까? 그 열쇠는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하여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치유를 비는 기도
와 고난을 통한 성장은 상호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다.

1)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을 몸소 도모하시는 일이 없다.
2) 하나님께서는 악을 직접 제거하신다.
3)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악을 통하여 당신의 목적을 이루심으로써 그것을 극복하신
다.
4) 결국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악을 체험하게 되지만 그것들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의 네 가지 요점을 질병에 적용하기에 앞서 우선 박해와 관련하여 생각해 보자.
박해를 받게 해 주실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
히려 압제자에게서 구원, 해방, 보호받기를 구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하나님께
서 박해를 통해 역사하시기도 하며 그것을 통해 승리하시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질병에 관하여도 동일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질병에 걸
리도록 기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질병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
사하심을 알고 있다. 결국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길에는 질병이 포함
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믿든지 혹은 그렇지 않던 간에 하나님께서는 질병을 사용하
여 역사하실 수 있으나 우리가 그것에 대하여 수동적으로 대처할 필요는 없다는 원
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5. 여러 가지 믿음의 유형들(후반부에 자세하게 다루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divine healing을 거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접하게
되는 사례들이 천박하고 유치하거나 비인격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치유를 행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어리석고 기괴한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성숙되지 못한 모습들을 보
임으로써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치유 역사를 행하신다는 말을 들을수록 더욱 비판
적이기도 초자연적 현상을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신학에 마음을 두게 되는
것이다.

펌글
-> 출처는  http://cafe.daum.net/wooriwoomulga/BjBO/22?docid=g0PE|BjBO|22|20031129095039&q=%C7%D1%B5%BF%BE%C8%20%C1%D6%B4%D4%B2%B2%BC%AD%20%BA%A3%C7%AE%BE%EE%20%C1%D6%BC%CC%B4%F8%20%C4%A1%C0%AF%C0%C7%20%C0%BA%BB%E7%B4%C2%20%B4%D9%B8%A5%20%B8%F0%B5%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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