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과 코스프레(cosplay)

         

        어떤 분이 정초에 아내를 즐겁게 해 줄 마음으로

        팔을 걷어 부치고 부엌 싱크대에 섰단다.

        “여보 내가 설거지 해줄께…”

        그러나 아내가 남편의 그 말을 받아 말한다.

        “설거지는 해주는 게 아니라 당연히 하는 거예요!

        앞으로는 나를 즐겁게 하려거든 해주지 말고 그냥 해버려요!

        설거지는 생색내며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하는 것이다.

        의미있는 말이라 생각되었다.

         

        주일말씀중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태도를 말씀하시면서

        “사랑과 믿음”에 대해서 “명사”로서만 이해하는데 그치지 말고

        “동사”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권면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에서 이해되어지고, 분석되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끝나지 말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의 실천되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어져야 한다.

         

        “믿음”에 있어서도

        예수님께서 지붕을 뜯고 달아내린 중풍병자를 치유하실 때에

        “친구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에서도 예수님께서 보신“친구들의 믿음”은

        예수님께 나아가면 고쳐 주리라고 하는 명사적“믿음”뿐만 아니라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리는 동사적“믿음”도 포함됨을 말한다.

         

        “기도”에 있어서도 그렇다.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합니다”로 이어져야 한다.

         

        명사로 이해하고 분석하는데서 그치면

        모방하고 흉내내려는 객체의 “코스프레”에 머무르기 쉽다.

        그러나 본질의 주체가 되고… 능력의 역사의 가운데는

        열망하는 마음으로 지붕을 뚫고, 환경을 타개해 나가며

        동사로 이어지는 실천적 행동이 뒤따른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라”고 하지 않으셨다.
        너희는 “빛과 소금이다” 라고 하셨다.

        즉 “존재의 본질”은 “동사”일 때 나타난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누가복음 10:33~34)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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