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세 종류의 사람을 소개하며

‘나는 누구인가’를 따져 보라고 권면합니다.

우리 시대가 염려하는 ‘도덕의 상실’과 현대인들이

공감하는 ‘인간 자아의 상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영적 자아

의 상실’과 ‘신분 의식의 상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과연 나는 누구입니까?

먼저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육체

(프쉬케)의 본능에 지배를 받는 중생 이전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신비한 하나님의 성

령의 일들을 믿을 수 없으며(14절), 단지 육체의 통

치를 받고 육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육에 속한 사람들은 영적인 분별력이 없기 때문

에 성령의 역사들이 어리석게만 보이며(14절).

성도들이 하는 주일 성수와 십일조, 직분에 충성하는

모든 것들도 어리석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육에 속

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신령한 사람은 성령

(프뉴마)의 인도함을 받는 중생 이후의 성도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육체의 본능 대신 말씀에 지배 받

으며 말씀대로 믿고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입

니다. 영에 속한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경험

하게 됩니다. 성령의 탄식을 듣고 기도하고자 하는

충동이 일어나고(롬 8:26), 성령을 근심시키지 않으

려는 신령한 근심이 마음에 있고(엡 4:30), 성령의 불

을 소멸시키지 않으며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삽

니다(살전 5:19).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하

나님의 자녀들은 영광을 받을 뿐 아니라 고난도 함께

받는 사람들입니다(롬 8:14). 구체적인 가정과 사회에

서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말씀 충만의 삶을 살아갑

니다(엡 5:18 이하).

교회가 세상처럼 시끄러워져 말씀을 떠나 감정으로만

치우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균형 잡힌 건강한 지식

과 감정의 통제에서 나오는 의지력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그 다음으로 육신에 속한 자(영적 어린아이)입니다.

육신(살코스)에 속한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

말씀의 지배를 받지만 여전히 육체의 지배를 받는 영

적 어린아이와 같은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입니다(3:2). 육신에 속

한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시기와 분쟁이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3:3).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까?

감리교 창시자 찰스 웨슬리 목사가 미국에서 사역에

실패한 뒤 영국으로 돌아올 때 대서양에서 큰 풍랑을

만나 겁을 먹고 있을 때 두려움 없이 기도하는 모라비

안 교도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속에서 성령의 강한

역사를 체험한 웨슬리 목사는 자신의 이름, 얼굴, 명성,

재물을 위해 설교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사역하며 많은 열매를 거두는 귀한 일꾼이 되었

습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육에 속

한 사람이 아니고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중간 지대에

머무르지 않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3장 9절


퍼온 글 

k.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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