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선교사의 순교이야기가 스코틀랜드에 전해지자 조선에 대한 선교의 열정이 미국과 영국에서 불같이 일어났다. 이때 존 로스목사는 선교지인 중국에 도착한지 1년이 되지 않아 아내가 죽었지만 조선에 대한 선교의 열정은 더욱 뜨거워졌다. 그는 1873년 만주를
돌아보고 고려문을 방문하였다.
1874년 다시 고려문을 방문한 존 로스는 한글로 성서를 번역하기 위해 조선어를 가르쳐줄 선생을 찾았다. 이러한 존 로스를 도와준 맥킨타이어와 함께 이응찬, 백홍준, 이성하, 김진기가 있었고 후에 서상륜과 김청송이 합류하여 6명이 한국인 신앙공동체를 이루었다. 존 로스는 이들의 도움으로 1882년도 3월에 한글로 된 누가복음을 문광서원을 통하여 처음 인쇄하였다. 5월에는 요한복음을, 1887년에 신약 전권인 ‘예수셩교젼셔’를 발행하였다. 이것이 한국에서 발행된 첫 한글성경이다. 여기에서는 원초적인 한글로 적혀서 ‘맛대복음’으로 표시가 되어 있고 요한복음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현대어가 “처음에 도가 있으되”로 표기 되어 있어 로스목사가 번역한 말씀이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의 번역과 다름을 볼 수 있다.
그 후에 조선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복음서를 가지고 자기 고향에 돌아와 복음을 전하였다. 김청송은 누가복음과 요한복음 수천 권을 몰래 가지고 자기의 고향인 집안현으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였다. 백홍준은 성경을 반입하다 적발되자 고심 끝에 성경을 한 장씩 뜯어내 돌돌 말아 짐을 묵는 새끼로 꼬아서 성경책을 밀반입하였다. 1883년 고향인 의주로 돌아온 서상륜은 황해도 장연군에 가서 정착을 하고 소래교회를 설립하였다. 이 때 존 로스가 준 성경 6,000권을 몰래 조선으로 들여와 보급하였다.
1883년, 일본의 스코틀랜드 성서공회는 일본인 나가사카를 한국 부산에 파송하여 매서인으로 성경을 보급하게 하였다. 그가 보급한 것은 아마도 로스목사가 번역한 성경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1885년 4월 5일에 일본에 가서 성경을 번역한 이수정으로부터 마가복음을 받아 제물포에 도착하였다. 1887년, 새문안교회 창립예배를 드릴 때 로스목사가 초청이 되었고, 그때 사용된 성경은 로스가 번역한 ‘예수셩교젼셔’였다. 그 후 로스번역에 지방 방언과 사투리가 조선의 전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언더우드와 몇 선교사들은 1890년 한국성서교회를 시작하고 1895년에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1900년에 신약성경 모두를 번역하여 인쇄하였으며, 1911년 3월에 완성된 구약성경이 2권 또는 3권으로 나뉘어 인쇄되었다. 그 후에 계속적인 개역작업이 있었는데 그 작업은 1937년에 완료되었고, 1938년 비로소 신구약 합본 성경이 발행이 되었다.
이것이 6.25를 마치고 1952년까지 남한교회가 사용해 온 신구약 성경전서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에 복음이 전해질 때 성경이 함께 들어왔고 한글로 번역이 되어 평민들에게도 예수의 사랑이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