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다원주의와 구원의 길
2004-08-06 22:15 | VIEW : 731

사진 : 김경재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역사적 종교들을 서로 다양한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형성되고 고백된 “구원의 길”이라고 본다. 각 종교는 각각의 구원을 제공하므로, 개방성과 존경심을 가지고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한다.

종교다원주의는 임마누엘 칸트의 인식론에 영향을 받은 종교인들이 진리를 상대주의, 주관주의적으로 이해한 결과이다. 특정 종교가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불멸하는 진리 체계를  독점할 수 없다. 수백만, 수천만, 수억 명의 경건한 신도를 지닌 종교를 어찌 참 종교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진리 담론(談論)은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어 왔다. 특정 종교가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 특정 종교의 가치 규범을 가지고 타종교를 비판, 판단할 수 없다. 자기가 귀의(歸依)하는 종교에 헌신하면서 종교 간의 대화와 협동을 모색하면 세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1. 하나님은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미국 클레아몬트신학대학원의 교수 존 힉(John Hick)은 『하나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라는 제목의 책에서 “우주적 실재”는 한 분이지만 그 분의 이름은 문화마다 서로 다른 명칭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언어 구조가 여러 가지의 하나님의 이름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헬라인은 하나님을 “로고스”라고 칭하고, 유태인은 “야훼”(여호와), “엘로힘”이라고 부른다. 고대 인도인은 “아트만” 혹은 “달마” 혹은 “비로자나불”이라고 불렀다. 중국인은 도(道), 천리(天理), 천명(天命)이라고 부른다. 아랍인은 “알라,” 일본인은 한국인은 “하늘님”이라고 부른다. 이름만 다를 뿐 모두 동일한 긍극적 실재라는 것이다. 이른바 이명동신설(異名同神說)을 주장한다.

이러한 사상에 다르면 오랜 세월 동안 종교들이 자신의 종교를 세계사의 중심에 놓고, 다른 종교를 자기 주위를 도는 행성(行星) 정도로 생각해 왔다. 기독교는 자기를 절대화하고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과오를 범했다. 예수 중심의 기독교는 행성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기독교의 우월성 또는 기독교 진리의 절대성은 거부되어야 한다. 기독교는 “예수 중심 모델”에서 보편적 신앙 모델인 “신 중심 모델”로 전환되어야 한다.

역사에 출현한 모든 종교는 마치 태양 주위를 도는 아홉 개의 행성과 같다.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은 모두 태양의 빛을 반사하듯이 세계사 속에 출현한 다양한 종교는 “하나의 신적 실재”를 역사적, 문화적으로 다르게 응답한 결과이다. 궁극적 실재에 대한 인식의 상이하고도 구체적인 표현이다. 세계의 모든 위대한 종교들은 하나의 신적 실재에 대한 응답이며,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상황에서 형성된 다양한 인식의 구체적 표현이다. 인간이 아는 하나님은 하나님 자체가 아니다. 특수한 전통 종교인식이 낳은  “우주적 실재”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하나의 신적 실재”가 과연 존재하며, 그것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에 답하지 못한다. 인간의 모든 사유가 역사적, 문화적 상대성을 벗어날 수 없으며, 인간은 진리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해석학상 의존적 존재라고 본다. 이러한 사상은 칸트의 인식론에 기초를 둔 트뢸치(E. Troeltsch)의 “역사적 상대주의”를  반영한다. 역사 속에 출현한 모든 이념, 가치, 조직체계는 상대성을 피할 수 없다는 이론 위에 정초(定礎)하고 있다.

간이 작은 붓 대롱으로 본 하늘이 하늘의 전부라고 우기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붓 대롱으로 본 하늘 역시 하늘인 것은 틀림없다. 붓 대롱이 하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면 그것을 통해 보는 진리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존 힉은 이 점을 간과한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영적 암매(暗昧) 가운데 있다. 하늘을 볼 수 있는 붓 대롱을 갖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특별계시는 인간이 하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붓 대롱이다.

2. 일곱 가지 다양한 색깔이 모여 무지개를 이룬다

인도 태생 가톨릭교회 사제 라이문도 파니카(Raimundo Panikkar)는 종교다원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무지개 이론을 펼친다. 개별 종교의 고유성을 담보하는 이론이다. “인류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종교적 전통은 신적 실재라는 순백의 광선이 인간 경험이라는 프리즘에 투과되어 나타나는 무수한 색깔과 같다. 그 광선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통과 교리, 종교를 통해 굴절 된다”고 한다.

백색 광선은 “궁극적 실재”이고, 일곱 가지 색깔을 띠고 나타나는 무지개의 색상은 구체적인 역사적 종교들이다. 세계의 각 종교는 곧 한 개의 “신적 실재”에 대한 서로 다른 문화적, 역사적 반응이다. 구체적이고 특정한 역사적 종교는 그것이 불교든, 이슬람교든 신도교든 기독교든 간에 빛이 스펙트럼을 통과하면서 발생시키는 파장들을 전부 다 나타내지 못한다. 각 종교가 가진 고유소(固有素)는 다른 종교의 그것들과 더불어 신적 실재를 더욱 완전에 가깝게 드러낸다.

파니카에 따르면 특정 종교의 유형적 특성이 타종교를 판단하는 규범적 잣대가 될 수 없다. 다른 종교 안에는 우리가 믿는 구원 내용이 없으므로 종교로 인정할 수 없다든지, 그 종교 안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아야 한다. 그 까닭은 “구원에 대한 실질적 이해와 체험이 개별 종교마다 나름의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무지개 색상의 하나인 빨강색이 보라색에게 너는 색깔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고, 무궁화 꽃이 들국화를 향하여 너는 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파니카의 아날로지는 설정이 잘못되어 있다. 백만 송이의 가짜 장미는 한 송이의 진짜 장미와 질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이다. 진짜 꽃과 진짜 꽃을 대조한 것은 아날로지를 잘못 설정한 것이다. 진짜 장미는 인조장미를 향하여 “너는 꽃의 모양은 갖고 있지만 살아 있는 꽃이 아니다”고 말할 수 있다. 진짜 꽃과 가짜 꽃을 대조해야 옳다. 창조주 하나님이 부여한 생명의 종교, 계시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유사종교와 도무지 비교될 수 없는 차이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다원주의자들이 “등잔 모양은 다양하지만 비쳐 나오는 불빛은 동일하다”고 말하거나 각 종교의 의례, 상징, 교리체계, 성직제도, 윤리적 계명은 다양하고 서로 다르지만 추구하는 내면의 가치는 동일하다고 하는 것은 주관주의, 상대주의에 전제를 둔 신념에 불과하다.

주관주의, 상대주의에 입각한 종교다원주의는 각 종교가 다른 교리와 실천과 강조점을 가지고 있으나 모든 것은 인간 안에 내재하는 “로고스”를 반영한다고 본다. 인간은 누구나 “우주의 이법,” “신적 빛,” “이성의 빛”인 로고스의 종자를 갖추고 있다. 이 로고스가 특정 지역이나 특정 인물에 제한되지 않으며,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과 인물 속에서 그 순수성과 투명성을 달리하면서 드러난다고 한다. 다양한 종교들은 로고스의 현존이며, 예수, 석가, 공자는 모두 로고스의 구체적 성육화(成肉化)의 결과라고 한다.

3. 산의 등정로(登頂路)는 다양하지만 호연지기는 서로 통한다

종교다원주의의 핵심은 구원관이다. 각각의 종교는 참 구원에 도달하는 길이다. 이러한 구원을 받은 종교인은 자기중심적 존재에서 실재 중심 혹은 생명 중심의 존재로 삶의 지향성이 변한다. 이기심과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벗어나 전체 생명과 더 높은 진리의 자리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생사의 두려움을 극복하여 삶과 죽음, 차안과 피안을 하나로 꿰뚫을 줄 안다. 사랑을 자발적으로 실천한다. 하나님의 나라(神國) 혹은 불국토(佛國土) 혹은 대동세계를 실현하는 데 힘쓴다.

산(山)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등정로는 여럿 있다. 등정로마다 산의 풍광이 다르고, 산세나 기후 변화도 다르다. 어느 길로 산을 오르느냐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한다. 등정로가 다르지만 일단 정상에 오르면 호연지기가 통하는 것처럼 어느 종교를 통하든지 절대자 긍극적 실재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을 가진 한신대학교의 조직신학 교수 김경재는 “성경이 주장하는 강렬한 배타적 유일신 신앙의 색깔 때문에” 기독교가 다른 종교에 대한 열림 마음이나 포용적 태도”를 갖기 어렵다고 하면서 그 점을 질타한다. 기독교의 유일신앙을 비판하면서 모든 역사적 종교들을 상대화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다를 뿐이라고 한다. 여호와, 알라, 하늘님, 태극, 도는 동일한 우주적 실재에 대한 각각의 명칭이라고 한다.
김경재는 유일신론을 신이 한 분이라는 숫자개념에 붙잡힌 일신론과 전혀 다른 신앙으로 규정한다. 자기 종교(기독교) 안에서만 위대한 영적, 철학적, 도덕적, 예술적 진리가 존재하고 타종교 안에는 없다고 하거나 열등하다고 보는 것은 근거 없는 우월감의 소치이며 독단이라고 한다.

김경재는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죽은 우리의 선조들의 구원 문제를 논하면서 그들이 지옥 갔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그들 나름대로 “하느님”이라는 신을 믿었기 때문에 그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예수 이름을 듣지 못하고 죽은 “조상을 모두 구원받지 못한 자리로 내몰고 마는 그런 신앙과 신학이론에 안주하는 것은 지독한 종교적 이기심이 아닐 수 없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도 인간 구원과 영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불교는 니르바나(해탈)의 경험을 구원으로 본다. 각 종교는 나름대로의 구원이라고 일컫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구원을 영원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대비시켜 동일시하는 것은 범주착각의 오류이다.

종교다원주의는 현대판 자유주의 신학이다. 우리나라 교회들 가운데도 이러한 사상을 수용하거나 거짓교훈을 가진 자들을 제재하지 않는 교단들이 있다. 건전한 신앙고백을 가진 교회들은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하거나 거짓교사를 제재하지 않는 교단과 하나 됨을 추구하는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에 동참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최덕성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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