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은 '육적인 신자'가 있느냐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육적인 신자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운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으로 마치겠느냐' 는 말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생각한다면 무절제하고, 무책임하고, 개념없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이기심과 탐욕은 가장 큰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율법에서 해방되었고(롬 8:2) 율법에서 벗어났고(롬 7:6) 율법을 향하여 죽은 자(갈 2:19)며 이것은 그리스도가 모든 믿는 자에게 율법의 마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롬 10:4). 그러나 이것은 신자가 하나님께 아무 의무도 없고 구원 받고난 후에는 그의 행위에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말씀 고전 3:11-15은 신자에게만 해당이 됩니다. 여기에는 구원을 받으려고 해야할 일은 없고 다만 공로가 있어 상을 받느냐 불충성해서 상을 잃느냐 그 문제입니다. 특히 15절을 보면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이것이 바울이 무엇보다 더 두려워 한 것입니다. 그는 구원을 잃을까봐 두려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구원을 확신했지만 마지막 길에 가서 상과 면류관을 잃을까봐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는 전도생활에서 부주의한 순간에 육신에 굴복되어 공력을 빼앗길까봐 두려워하였습니다.

바울의 고전 9:27 말씀을 구원에 관한 말씀으로 혼동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 9: 24,26,27 말씀을 주의해서 보면 바울은 구원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충성한 데에 대한 상과 면류관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경주를 하는데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죄인은 경주를 해도 천국으로 못들어 가고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이것은 자유로운 선물입니다. 죽은 죄인은 경주를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구원이 경주나 업적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하나님이 섬기는 생활을 한 후에 미련하게 굴어서 상을 잃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쓸데없이 만들까봐 두려워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임무를 그만두고 쉬라고 하시기까지 달리다가 그리스도인이 낙오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다뤄지게 됩니다. 모든 나무와 풀과 짚이 연기 가운데 사라지고 불 가운데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버림받은 자"란 말은 미국 표준 번역판에서는 "거부된 자"로 번역이 됩니다. 이것은 상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거니와 구원이 문제가 아닙니다.

주께서 오시는 때 신자에게는 두 종류,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이 있게됩니다. 둘 다 구원을 받겠지만 그 업적의 차이와 상의 차이는 크게 다릅니다. 충성된 자는 구세주의 손에서 상을 받지만 경솔하게 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지 못한 다른 사람은 <심판대>의 불을 통과해서 나무와 풀과 짚이 다 타버리고 불순물이 다 타버릴 때까지 있게 됩니다. 그 후에 그들이 쌓아 놓았던 다소간의 금과 은과 보석이 깨끗게 되어 잘 타기 쉬운 업적과 구분이 됩니다. 어쨋든 이것은 즐거운 경험은 못될 것입니다. 보나마나 거기엔 많은 후회와 슬픔이 있게될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손해를 입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가운데서 구원받을 것입니다. 의심할 바 없이 이곳 아래서 했어야할 자백을 그 곳 위에서 많이하게 될 것입니다. 잃은 상과 허송해버린 기회때문에 눈물을 많이 흘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기시며"하는 말은 <그리스도의 심판대>후에 그의 영광된 통치시대가 시작되기까지는 다 적용이 안되는 말입니다.

<휴거> 때에 들려 올라가는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은 성경 중에 많은 모습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고전 3장에선 "상 받는 자"와 "해 받는 자"로서 나타나고 요한은 일찌기 인용한 문구에서 그의 나타나실 때 누구는 <확신을 가지고> 나가고 누구는 <부끄럽게>나간다고 합니다. 어떤이는 "여유있는 문"으로 들어갈 것이고 어떤이는 "구원을 받되 불가운데서"될 것입니다. 딤후 2:12 에서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오신 후에 왕국시대에 신자의 지위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의 불이 나무, 풀, 짚을 다 태우고 난 뒤 "금은과 보석"이 얼마나 남았나에 달려있습니다. 이 심판의 시기가 끝장에 가까워질 때 주님이 그의 신부와 왕국을 차지하시려 올 준비를 하실 때 모든 성도는 깨끗해 있어야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상을 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왕국에서 고귀한 지위를 갖게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권위와 임무가 좀 낮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주로 하는 동안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을 했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갖는 매일 매일의 봉사의 기회와 특권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오늘날 대수롭지않게 여기는 주님께 봉사하는 기회가 바로 그 곳에서 상을 받는 만큼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로 은혜로, 은혜만으로 구원받았고 율법의 행위 없이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신자가 구원받은 날 부터 이 지구상에 사는 끝날까지 이 은혜를 받아 행한 일과 한 말을 직고해야될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재능을 가지고 무엇을 했나 답변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고 말합니다. 이것이 신자의 책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로 구원을 받았고 이 구원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하나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모든 사람은, 열 달란트 받은 사람은 물론,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결산 보고를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주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일을 했나'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을 얼마나 했고 얼마나 안한 채 남겨 놓았나가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적절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표면적으로 나타난 것만 보시지 않고 그루터기의 나이테를 보십니다.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했나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위하여 얼마나 억제하였나를 보는 것입니다. 재능이 많을 수록 책임도 많습니다. 기회가 많을 수록 주님께 대한 빚도 많습니다.

"주님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찿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7,48)

율법이냐 은혜냐/ M. R. DeH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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