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기독교 장막성전(유재열)

    한국기독교가 100년이상을 지내오면서 이단을 이끌어온 교주 중 가장 나이가 어린 교주를 꼽으라면 대한기독교장막성전에 유재열(柳在烈)을 들 수가 있다. 그는 17세의 ‘어린 종’으로 이 집단을 이끌어온 장본인이다. 전성기때에는 말세 심판의 피난처로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 청계산 저수지 가 있는 곳에 박태선의 제2의 신앙촌 크기로 장막성전이 큰 집단으로 형성돼 있기도 했다. 7천사, 25장로, 48집사, 72문도 등의 조직을 형성하고 수천명의 교인들을 이끌던 어린 종 유재열 교주의 행각을 알아보자 !

    교주 유재열은 1949년 2월 충북 청주시에서 아버지 유인구씨와 어머니 신종순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유인구씨는 6·25때 공산당에 동조하여 활동하다가 50년 10월 28일에 특별조치법위반혐의로 징역 15년 형을 받고 복역한바 있기도 하다.

    교주 유재열은 1964년 서울 영등포구 상도동 사자암이라는 절아래에서 신비주의 집단인 호생기도원을 다녔다고 한다. 호생기도원에서 교주를 “주님, 아버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보고 크게 마음이 동요된 것 같기도 하다. 유재열의 부모가 이곳에 열심있는 신도였다. 교주 유재열은 성남고 기계체조 선수로서 일본원정을 다닐만큼 재능있는 선수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호생기도원에서 방언을 하는데 중국어(?)방언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은사를 받으면 일본어 방언을 받을 것 같아 열심히 호생기도원에 다녔다고 한다.

    1965년 1월 유재열이 친구들과 함께 호생기도원을 가는 도중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져서 놀라 무릎을 꿇자 어둠속에서 예수님의 환상이 나타나셨는데 예수님의 머리위에는 무지개가 있고 일곱 별이 떠있었으며 한 손에는 어린양 한 마리를 안고 계시더라는 것이다. 이때 유재열이 “사람이 나타났다”고 외치자 같이 동행했던 친구들이 무슨 소리냐고 물으며 어리둥절해 했다. 그때 유재열이 “흰 강아지를 사람이 안았다”며 큰소리를 쳤다고 한다. 그순간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사랑하는 아들아 내 아들아… 내가 네게 큰일을 맡기겠노라”는 말씀이 들렸다고 한다.

    그후 호생기도원을 더욱 열심히 다녔으며 학교를 중퇴하라는 계시를 받고 학교를 그만두고 기도생활만 열심히 하여 방언, 강필(降筆), 통변 등의 계시의 은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때 호생기도원 교주 김종규의 여신도 추행사건이 일어나 그 일로 교주를 추방하였다. 그런 뒤 장막성전이 만들어졌고 자신들 나름대로 교리를 내놓기도 했다.

    중요한 교리로는 특이하게 ‘일곱천사’가 있고 그 일곱천사가 과천장막성전에 있어야 될 이유를 “또 이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재앙을 가진 일곱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계 15:5-6) 라는 성경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어린종 유재열이 만국을 다스릴 철장권세를 가졌다고 주장하며 또 어린종은 예루살렘성 교회에 다니면서 불의와 불법으로 인하여 탄식하는 자들의 이마에 인치는 사명을 맡았으며 이 인맞은 자만이 14만 4천의 반열에 들어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성교회의 목사는 믿음이 교만해져 자멸할 수밖에 없으며 이를 따르는 양떼들은 거짓된 인도로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장막성전에서는 계급별로 뺏지를 달았다. 7천사는 은색, 24장로는 흰색, 48집사는 붉은색, 72문도는 푸른색, 일반 신도는 검정색 뺏지를 달고 다녔고 제사장 모세 장로는 은색에 하얀색 바탕을 한 뺏지를 달고 다녔다고 한다.

    이곳에 신령한 예배 시간이 있는데 흔히 무당 초혼의 초혼 의식과 같이 각종 영들을 불러 들이는 예배 의식이다. ‘사무엘’ 정창래가 방언을 하면 어린종 유재열이 방언 통역을 한다. 신령을 불러 들이는 순서에서 가령 ‘모세의 영’을 불러 들이려 한다면 방언하는 자가 “모세스 모세스. 따따따”하면 모세의 영이 임하여 방언이 터진다는 것이다.

    장막성전의 분파로서는 재림예수를 자처하는 ‘천국복음전도회 교주 구인회’, ‘신천지안양교회/무료 성경신학원의 이만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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