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안 믿으면 손해보는 77가지
4 ~ 10 가지

 

♤ 자신을 위하여


4. 예수를 믿으면 매사에 자신감이 생깁니다.

어쩌면 굳이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미 여러분이 수긍을 하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무슨 일이든지 자신감을 갖고 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른 이름은 ‘용기와 힘’ 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용기와 힘의 원천이십니다.

널리 알려진 한 예로 미국 남북전쟁 때 북군을 이끌던 반쪽 대통령 링컨은 남부지역의 산업구조상 노예해방을 반대할 수밖에 없는 남군과의 지루한 전쟁을 치르면서 날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젊은이들의 엄청난 피를 담보로 하여 지금 저희가 치르는 이 전쟁의 목적이 과연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를 늘 깨우치게 해주소서. 피를 흘리고서라도 저희의 뜻을 세움이 옳다 하신다면, 그렇다면 기필코 저희가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소서. 저희는 오로지 하나님의 정의를 이 대륙에서 실현하는 데 쓰임 받는 당신의 도구일 뿐이오이다
‧‧‧.

하나님께서는 산업구조를 앞세운 남부인들의 타산적인 인종차별 실리보다는 실리와 피부색의 편견을 뛰어넘어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구현하고자 한 북군 지도자의 손을 결국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간절히 기도하는 의로운 사람의 편이시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던 남군을 밀어붙이고 북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정의로우심을 굳게 믿고 싸운 신심 독실한 링컨의 자신감이 그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5.
예수를 믿으면 부지런해집니다.

강원도 산골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집안의 농사일을 거들다가 맨손으로 상경하여 온갖 고생을 한 끝에 마침내 우리 나라 최대의 기업을 이루어내는 데 성공한 정주영 회장 같은 이는 평생을 초인적인 근면생활로 일관한 분이라고 합니다. 그분은 고령에 이른 지금도 서울 장안의 누구보다도 새벽 일찍 일어나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고 하지요?

옛 격언에 ‘부지런은 반복(半福)’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부지런하기만 하면 이미 하늘의 복을 절반은 확보한 셈이라는 뜻입니다.

서양에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더 잡는다!’ 이런 근면의 가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특별히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면서 대개 밤늦게 자정 넘겨 잠자리에 들기가 일쑤고, 아침에는 해가 중천에 닿을 때까지 늦잠 자기를 즐깁니다.

원래 인간은 일몰과 함께 일찍 잠자도록 되어 있고, 일출과 함께 일찍 일어나서 일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부지런한 사람이란 저녁에 일찍 잠들고 새벽에는 일찍 일어나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게으른 사람과 부지런한 사람의 차이, 당장에는 표시가 나지 않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나면 그 생애의 성취도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부지런한 생활습관은 젊어서부터 몸에 배어야 합니다. ,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나도 부지런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가장 좋은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됩니다. 예수를 믿으면 누구라도 부지런해집니다. 게으른 사람들의 특성은 시간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제 아무리 게을렀던 사람도 자연히 부지런한 사람이 됩니다. 삶의 목표가 뚜렷해지면서 근면해야 될 이유가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한 사람으로 일생을 보다 값있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를 믿으면 됩니다. 그런 사람한테는 새벽기도의 축복도 당장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6.
예수를 믿으면 마음이 넓어집니다.

평생동안 예수를 잘 믿어온 분들의 마음 씀씀이를 보면 하나같이 편협한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마음들이 다 넓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곤 하지요. 남의 과실이나 부족한 점은 못 본 듯 그냥 슬쩍 넘어가 주고, 남의 본의 아닌 실수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입는 경우라 할지라도 너그럽게 이해해줍니다. 마음이 넓다는 것은 바로 마음이 너그럽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너그럽게 되는 일이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식당에 가 보세요. 종업원의 실수에 대해 너그러운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자동차들이 밀리는 거리에 나가 보세요. 이웃 차량의 운전자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그래서 대학교수도 운전대만 잡으면 입술에 욕설이 묻는다지 않습니까? 각박한 한세상을 살면서 너그러운 마음씨를 지닌다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도 신실한 기독신앙을 통해 제 마음의 넓이를 무한히 넓혀서 사는 부러운 마음 부자들이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참 많습니다. 성경말씀을 통해 예수정신을 배우고, 기도를 통해 예수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자기수양을 해 왔기에 비로소 그 일이 가능한 것이라고 여겨져 저는 그런 분들을 항상 우러러 보고 있습니다. 예수의 생애 전체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것도 모자라 결국 죄에 찌들고 성급하고 교만하고 옹졸하고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우리의 불쌍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목숨까지도 십자가에 내걸어 바치셨습니다. 그런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늘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마음을 넓히는 그 일은 혼자서는 되지 않습니다. 말씀 안에서 공동체적인 삶의 실천을 거듭거듭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그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를 믿다 보면 이 세상에는 분노할 일들보다 감사할 일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렇게 감사하면서 세상을 살다 보면 세상 속의 잘못보다는 내 자신 속의 잘못이 훨씬 더 많다는 것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넓히는 일이란 자신의 본래 모습을 하나씩 몰아내고 대신 그곳에 예수의 말씀과 정신을 차곡차곡 채워 넣는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려면 예수를 잘 믿는 방법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7.
예수를 믿으면 성격이 밝아집니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여러 가지 선물 가운데 가장 자신 있게 약속할 수 있는, 그래서 가장 확실한 대표적인 은혜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늘 외롭고 어둡고 음울하고 소극적으로 침체되어 있던 사람의 성격이 금세 대낮같이 밝아집니다. 어둑어둑한 음지의 그늘 속에서 마지못해 사는 듯하던 사람이 햇살 바른 양지로 나와 즐거운 마음으로 적극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왜일까요?

첫째, 예수를 믿으면 성경말씀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삶이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사랑 아래 주어진 놀라운 은혜인가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사람은 그 깨달음을 통해 족쇄처럼 굳게 채워져 있던 자기 질곡의 굴레를 벗어던지게 됩니다. 지금껏 목표도 목적도 없이 비관적인 삶을 살던 사람이 생명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 찬양하는 밝은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둘째, 예수를 믿으면 교회사회라고 하는 공동체 생활에 몸담게 되는데 그곳은 빈부 차별 없이, 신분 차별 없이, 학벌 차별 없이 대등하고도 평등한 인간 가치의 기준 아래 우애와 포용과 사랑으로 가득한 새로운 세상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셋째, 예수를 믿으면 불평과 불만으로만 가득 차 있던 칙칙한 마음이 깨끗이 비워지고 대신 거기에 무한한 감사와 축복의 맑은 샘물이 가득 고이게 됩니다. 세상을 둘러보나 자기 자신의 형편을 둘러보나 온통 감사하지 않는 것이 없게 되어 자기 스스로가 깜짝 놀라게 되는데 그것은 마치 앞 못 보던 장님이 어느 날 아침 새롭게 눈을 떠서 세상을 보는 것과 같은 놀라운 감동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훈련이야말로 우리가 믿음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훈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선물 중 하나가 바로 이처럼 긍정적인 시각의 지혜인 셈인데 사람이 긍정적인 마음 씀씀이를 갖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자연히 성격도 따라서 밝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사람은 마음의 깊은 상처 한 가지씩을 가지고 세상을 살기가 쉽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성격을 우울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지요. 누구도 이해해 주려 하지 않는 자기만의 그 상처는 예수의 사랑, 예수의 말씀, 예수의 보혈로써만 치유가 가능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할 근원적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8.
예수를 믿으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 아는 사람을 평할 때 “그 사람 아주 인간이 됐어!” 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칭찬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 세상을 살다 보면 그 반대의 씁쓸한 경우도 가끔씩 만납니다. 그럴 때 흔히 혼잣말처럼 “그 친구 좀 덜 된 인간 아냐?” 하고 무의식중에 뇌까리게 되지요. 저마다 귀한 인격체로 세상에 태어난 인간을 그렇게 ‘된 사람’ 과 ‘덜 된 사람’으로 쉽사리 이분하는 습관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터이나 복잡한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엉켜 살다 보면 그처럼 순간적인 감정이나 직관에 의해 서로가 서로를 단순하게 평가하기가 참 쉽습니다.

, 그렇다면 여기서 ‘된 사람’ 은 어떤 사람이며 또 ‘덜 된 사람’ 은 과연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것인지를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물론 되고 덜 되고를 재는 기준은 참으로 여러 각도에서 가능할 수 있겠습니다만, 가장 흔히 적용되는 기준시각이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심성을 지닌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범사에 감사,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를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원래 맨몸과 맨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게다가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참으로 연약하고 무능, 무지한 갓난아기로 태어납니다. 스스로 앉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눈을 떠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먹지도 못합니다. 누군가가 하나부터 열까지를 다 챙겨서 보살펴주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것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기는 일차적으로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보살핌 아래 조금씩 성장을 합니다. 성장을 하는 과정은 물론이려니와 성장을 다 하고 난 후에도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직간접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지만 살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가르쳐주니 지식을 얻게 되고, 누군가가 양식을 생산해주니 밥을 먹습니다. 누군가가 집을 지어 주니 춥지 않게 살 수 있고, 누군가가 차를 만들어주니 차를 타고 다닙니다. 누군가가 병을 고쳐 주니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누군가가 수돗물을 대주니 물을 먹고삽니다. 그 모두를 일일이 따져 볼 필요조차 없지요.

생각하면 참으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세상에 고맙지 아니한 것이 정말 단 하나도 없습니다.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피를 나눈 형제나 같은 길을 함께 가는 친구나 옷깃 스치는 이웃이나 또는 이름 모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내게는 한없이 고맙고 또 고마운 그런 존재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감사한 마음을 늘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특히 우리 생명 자체를 비롯해서 그 모든 복잡한 생존 조건을 다 허락해 주신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 섭리를 잊고 살 때는 더욱 많습니다. 그러니 ‘된 사람’ 과 ‘덜 된 사람’ 의 차이가 감사할 줄 아는 심성 여부로 판가름이 날 수밖에 없지요. 예수를 믿으면 그 무엇보다도 가장 첫 번째로 배우게 되는 것이 바로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귀한 심성입니다. 신분이 높아져도 감사를 모르면 ‘된 인간’ 이 아니지요.

9. 예수를 믿으면 효자가 됩니다.

날이 갈수록 사회환경이 번다해지고 세상풍조가 이기적이 되어감으로 인해 우리는 코앞의 일상에 쫓기기 바빠 자칫 우리를 낳아 길러 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잊고 살기가 쉽습니다. 바꿔 말하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보다 훨씬 더 급하고 재미난 여러 가지 일들이 얼마든지 많은 세상이 되어 있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부모에게 효도를 좀 해야지 하는 생각은 누구나 갖고 있으나 그 실천율이 낮다는 데 문제가 있겠지요. 불효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나는 봅니다. 아예 효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생각은 하면서도 실천을 하지 않으면 그 또한 불효의 범주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경우라 할지라도 한 가지 공통점은 있습니다. 부모가 안 계시면 한 시도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어릴 적에 비해 사람이 장성하게 되면 부모님의 필요성과 고마움을 어릴 적처럼 그렇게 절실히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점 말입니다. 모든 불효의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 원인의 뿌리를 살펴보면 그것이 일종의 교만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불효자식도 효자가 됩니다. 그 이치는 예수사상에 접근하는 일 자체가 바로 그 교만한 마음을 우선 다소곳이 접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부모를 잘 섬겨야 된다는 이야기가 성경에 말씀으로 이미 쓰여져 있음은 물론이려니와 예수를 믿게 되면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 교만 대신 자기가 받은 모든 은혜를 낱낱이 챙겨 감사할 줄 아는 심성이 자연스럽게 싹트게 마련입니다. 세상의 은혜 가운데 부모님의 은혜만큼 큰 은혜는 달리 없습니다. 효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스스로 부모님을 편안하고 기쁘게 잘 섬기는 일이 있고 그리고 다른 또 하나는 부모님이 소망하시는 대로 우리 자신이 건강하고 훌륭한 사회인으로 잘 성장해 가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으면 이 두 가지 과제가 순조롭게 잘 풀려 나간다는 사실!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자연히 깨우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믿지 않으시는 부모님께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여 그분들의 귀한 생명과 영혼을 구원받도록 해 드리는 일이지요. 믿지 않던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 스스로 예수를 믿기 시작해서 그 믿음을 부모님께도 심어드릴 수 있게만 된다면,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에 그보다 더 귀한 축복, 그보다 더 값진 효도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10. 예수를 믿으면 얼굴이 예뻐집니다.

예수를 믿으면 정말로 얼굴이 예뻐집니다. 얼른 믿어지지 않지요? 그러나 이것은 확실한 근거를 가진 내 지론 중의 하나입니다. 얼굴 표정은 마음에서 나온다는 말, 이미 상식처럼 되었으니 분명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얼굴과 마음과 표정은 각기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뿌리가 하나로 통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음은 ‘생각’ 과 파이프라인이 직결되어 있습니다. 어쩌다 혼자서 부끄러운 생각을 하거나 겸연쩍은 일을 떠올리게 되면 우선 마음이 두근거리면서 얼굴색이 따라서 빨개지지요? 바로 그것이 손쉽게 예를 들 수 있는 좋은 증거입니다. 얼굴은 얼굴 자체가 따로 독립된 피부장기(皮膚臟器)로 그치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 생각, 정신, 사상, 신념 등과 같은 맥을 잇댄 하나의 총체적인 ‘거울’ 이라는 뜻이지요.

예수를 믿으면 우선 늘 좋은 일에 대한 생각, 밝은 미래에 대한 생각, 감사한 인연에 대한 생각, 희망에 찬 삶의 생각, 아름다운 마음 씀씀이에 대한 생각,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누구의 얼굴에나 자연히 밝은 표정이 생기고, 얼굴 근육에 혈액순환이 잘 되어 화사한 생기가 발그스레 돌게 마련입니다.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직업과도 상관없습니다. 학벌이나 재산과도 상관없습니다. 타고난 선천적 외모와도 상관없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누구라도 지금보다는 꼭 열 배 아름다워집니다. 예수는 그 방면에서도 역시 ‘축복’ 의 이름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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