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바디스(헨리크 센케비치) 1

한정자 ㆍ 2013/06/24 ㆍ추천: 0  ㆍ조회: 48      

쿼바디스(헨리크 센케비치) 1
-암울한 네로황제 시대에 등불을 켠 기독교인들 이야기-


사치와 향락이 극에 달해있던 로마의 네로황제 시절, 네로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던 페트로니우스의 집에 어느 날, 그의 조카인 비니키우스가 찾아온다. 그는 지금 막 전쟁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이 전쟁에서 그는 약간의 몸의 부상을 입었지만 그보다 마음의 병을 얻은 것을 삼촌에게 고백한다.

그것은 팔의 부상을 치료하려고 가있던 로마 장군 아울루스 집에서 본 소녀, 리기아에 대한 연정이었다. 그녀는 당시 로마국경에 인접해 있던 리기아국의 왕녀로서 인질로 그 집에 와 있었다. 비니키우스는 마치 새벽빛같이 아름답고 신비한 리기아를 처음 본 순간, 무슨 일을 해서라도 그녀를 갖고야 말겠다는 욕정에 사로잡힌다.

페트로니우스는 조카의 이 고민을 듣고 네로황제에게 말하여 리기아를 비니키우스에게 주도록 주선한다. 그리하여 리기아는 아울루스 집에서 강제로 불려나와 네로의 궁전에 잠깐 머문 뒤 비니키우스의 집으로 보내진다.

그러나 이때 리기아는 그녀의 충실한 하인 우르수스에게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자기를 납치해 가도록 부탁했다. 리기아는 그녀가 인질로 잡혀가 있던 아울루스의 아내, 폼포니아가 믿던 기독교의 영향으로 기독교인이 된지 이미 오래인 소녀다. 사실 리기아에게서부터 우러나오는 신비한 아름다움은 단순히 육체적인 매력 때문에만이 아니라 그녀가 믿고 있던 기독교,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온 거룩함에서부터 빚어진 것이었다.

비니키우스는 그것을 뚜렷이 알지 못했지만 쾌락위주로 살아가는 로마풍습에 젖은 여인들만 보던 그에게 리기아의 청순한 모습은 새벽빛이요, 아침이슬처럼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리기아의 입장에서 보면 비니키우스는 그가 아무리 로마의 귀족 청년이라 해도 역시 죄악에 깊이 물든 이교세계의 사람일 뿐이다.

결국 기독교도들은 리기아를 탈취해 갔다. 이 소식을 들은 비니키우스는 분노에 못 이겨 청동 촛대로 자기의 충직한 노예의 두개골을 부수어 버리고 밤새도록 노예들을 매질한다. 그 후 그는 사이비 철학자 킬로를 만나 물고기 그림으로 기독교인들의 모임 장소를 알아내어 킬로와 함께 그곳으로 간다.

그날은 사도 베드로의 설교가 있는 날이다. 비니키우스는 베드로를 처음 보았을 때 참으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신전의 사제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나 진리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현실의 일처럼 그것을 믿고, 또 그것을 믿음으로써 사랑하고 있는 사람같이 보였다. 그 얼굴에도 진리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듯 한 확신의 힘이 있었다. 그는 “사치와 쾌락을 단념하고 빈곤과 결백과 진리를 사랑하라. 학대와 박해를 꾹 참아라. 모든 지배권을 가지고 강림하시는 분에게 복종하라. 불신, 사기. 모략을 삼가라.”고 설교하고 있었다.

<선>이란 리기아를 자기 집에 데려오는 것이고 <악>이란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비니키우스는 그의 이러한 설교에 화가 나기도 했으나 한편 이들이 믿는 완전하고 유일한 신에 비하면 자기들이 믿는 주피터나 아폴로, 비너스 같은 신은 아무 소용없는, 시끄러운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최고의 덕이라고 믿고 있던 그는 리기아가 숨어있는 집을 습격하여 무력으로 그녀를 빼앗으려 한다. 그러나 그는 이때 우루수스의 저항에 부딪쳐 부상을 입고 기독교인들의 간호를 받게 되었다. 그는 이들과 리기아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면서 비로소 리기아에 대한 단순한 육적사랑에서 영적인 사랑에 눈을 뜨게 되고 리기아도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들은 베드로의 축복과 격려에 힘입어 서로 약혼할 것을 다짐하고 잠시 헤어져 있게 된다.

한편 점점 더 정신이 이상해지던 네로 황제는 간신 티겔리누스의 암시를 받아 단순히 자기가 쓰는 시에 감동을 불어넣기 위해서 로마를 불태울 음모를 꾸민다. 그는 트로이의 대 화제를 묘사했던 호머의 일리아드와 같은 작품을 쓰기 위해선 로마와 같은 대도시가 불타는 장면을 보아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었다. 유치한 망상과 야수처럼 잔인한 성품을 타고난 네로의 이 어리석고 무모한 계획에 의해 결국 로마는 불타오르게 된다. 이 불은 6일간 전 로마의 3분의 2를 태운다. 시민들은 아비규환의 지옥 속에서 갈팡질팡한다. 그러나 이때도 네로는 금으로 만든 월계관을 쓰고 자줏빛 옷을 걸치고는 화염에 싸인 하늘을 우러르며 비파를 타고 자작한 시를 읊는다. 그리고 조상의 도시가 멸망해가는 것을 슬퍼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지은 시의 애조에 감동되어 눈물까지 흘리며 시민들이 자기의 시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그러나 이렇듯 어리석은 네로도 분노에 못 이겨 무서운 폭동을 일으킬 듯 아우성치는 군중들을 마냥 묵과해 버릴 수만은 없다는 것을 차츰 깨닫는다. 네로는 그들을 달래기 위해 무슨 방도를 강구해야만 했다. 이때 네로 앞에 저 사이비 철학자 킬로가 나타난다. 그는 태연히 기독교도들이 이 불을 질렀으며 그들은 인류와 율법의 적이요, 로마와 네로의 적일 뿐 아니라 네로의 딸도 기독교인 리기아의 저주로 죽은 것이라고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네로는 이 거짓말을 빌미로 복수심에 불타는 백성들에게 기독교도들을 희생 제물로 내줄 것을 결심한다. 그는 백성들에게 이 불을 일으킨 것은 기독교도들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기독교에 대한 대 박해를 시작한다. 커다란 경기장이 세워지고 신자들은 피에 굶주린 사자와 짐승의 발톱에 갈가리 찢겨져 죽는다.

이러한 박해가 계속되고 있을 때 베드로 사도는 신자들의 간곡한 권유로 로마를 탈출해 나가려 한다. 그러나 로마 성문 밖에서 그는 로마로 향해 들어가는 그리스도를 만난다. 그는 그리스도께 묻는다.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때 주님은 “그대가 나의 어린 양들을 저버렸으니 내가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로마로 가리라.”고 말씀하신다. 한동안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엎드려 있던 베드로는 한참 후에 그를 따르던 시동에게 조용히 말한다. “로마로-.”이리하여 그는 다시 로마로 돌아와 순교의 반열에 들어간다.

리기아도 이때 잡혀 마지막 날, 거대한 황소의 뿔에 매달려 투기장으로 내몰리었으나 그녀의 충복, 우르수스가 놀라운 힘으로 황소의 완강한 목을 부러뜨리고 그녀를 구출한다. 그녀는 관중들의 동정을 사서 생명을 구하게 되고 비니키우스와 함께 시실리 섬으로 가서 행복한 여생을 보내게 된다. 다른 한편 네로는 군사들의 반란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친다.

이 작품은 <네로시대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1세기의 로마를 배경으로 고대의 이교적 세계관인 헬레니즘과 기독교적 신앙인 헤브라이즘의 항쟁을 묘사한 대작이다. 우리에게는 영화로 더 많이 알려 진 작품이기도 하다.

인간의 육체와 힘만이 지상 최대의 선이라고 믿던 로마의 한 귀족청년이 아침 이슬처럼 순결한 리기아를 사랑하면서부터 체험하게 되는 기독교 세계의 경이로움과 그 어떤 권력과 무력으로도 정복할 수 없는 기독교의 신비한 힘이 생생한 필치로 묘사되어져 있다.

이 작품을 쓴 센케비치(Sienkiewicz, Henryk)는 러시아 점령 하에 있었던 폴란드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통적이고 애국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라나 바르샤바 대학에서 역사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일찍부터 시사평론을 쓰기 시작하면서 애국적이고 실증주의적인 여러 편의 작품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고 1876년부터 3년간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는 이때 미국에 대한 비판적 인상기 “미국으로부터의 편지”를 썼다. 그리고 이때 받았던 특별한 인상들을 단편으로 발표하였는데 그중에는 폴란드 망명자나 이민자들의 참상을 다룬 “빵을 찾아서”가 있다.

그는 가난하고 고난 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는 사명감을 갖고 농촌의 참상을 테마로 한 작품을 여러편 발표하기도 하였다. 또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그의 작품에 연결하는 능력이 있었다. 세기가 바뀌면서 그의 명성은 폴란드 뿐만 아니라 독일, 불란서, 러시아 영국 등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작품 “불과 검을 갖고서”는 그 당시 이미 26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팔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명성을 일거에 드높인 작품은 이 <쿼바디스>이다. 이 작품은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40여 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오페라, 뮤지컬로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05년에는 “산문적 서사시에의 위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51년에는 미국에서 영화화 되었다.

폴란드에는 그의 이름을 딴 공원, 거리, 박물관들이 있고 중고등학교에서는 그의 작품과 삶이 가르쳐지고 있다. 그는 역사의식이 뚜렷한 작가요, 애국자로 1차 대전 중에서는 전쟁 희생자의 구호 활동에 종사하다가 스위스로 망명하여 끝내 그곳에서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객사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후 그의 시신은 그가 그리던 고향땅으로 운구 되어 성 요한 성당에 안치되었다.

쿼바디스는 역사학도로서의 센케비치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제정 로마시대 사람들의 사치한 생활과 풍속도, 그들의 생각들이 작품 곳곳에 화려하게 펼쳐진다.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곧 도덕이요, 윤리가 되던 이 시대에는 귀족 여성들이 남편을 서너 번씩 바꾸는 것이 정상이요, 오직 한 남편만을 섬기며 사는 폼포니아같은 여성은 비정상적인 존재이다.

이 전혀 다른 두 세계 속에서 방황하며 고민하다가 마침내 기독교인이 되는 비니키우스를 보며 우리는 도의와 순결의 승리에 박수갈채를 보내게 된다. 기독교의 이 신비한 힘은 비니키우스만 감동케 한 것이 아니다. 철저히 향락적이요, 로마적인 그의 삼촌, 페트로니우스까지도 폼포니아의 집에 처음 들어온 순간 이상스러운 체험을 하게 된다.

“그곳에는 일종의 광명이 있었고 안식이 있었고 일종의 명랑함이 있었으며 그것은 이 사람들 전체가 풍기고 있는 생명에서 직접 넘쳐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여기서 그는 폼포니아로부터 다음과 같은 대담한 신앙고백을 듣는다.

“제가 신앙하고 있는 것은 한분이시며 정의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생명, 진리, 사랑, 하나님에 대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던 비니키우스가 오랜 방황 끝에 마침내 “전 세계는 변혁과 개조가 필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마침내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기독교인이 된 것도 바로 이 기독교로부터 솟아나는 생명의 신비한 힘인 것이다.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도 우리를 감동케 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무한한 희생과 용서의 정신이다. 비니키우스에게 리기아를 찾게 해주었던 사이비 철학자 킬로- 그는 단순한 거짓말쟁이일 뿐 아니라 기독교신자인 글라우쿠스의 삶을 철저히 파괴해 놓은 장본인이었다. 그는 글라우쿠스를 속여 강도에게 그를 팔았고 그 가족들을 흩어지게 했고 그 재산을 빼앗았으며 그를 살인업자에게 넘겨주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후에 그가 살아난 것을 보고는 또 다시 야비한 방법으로 그를 죽이려고 자객을 보냈다.

그러나 글라우쿠스는 그를 만나자 깊은 괴로움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용서해 준다. 킬로는 지금까지 자기가 배신하기만 했던 기독교인들이 자기를 용서해 주었다는 사실에 머리를 갸웃거린다. 그러나 이처럼 큰 용서를 받은 그였건만 그는 여전히 뼛속까지 야비하고 사악함으로 가득찬 인간이었다.

그는 로마의 대화재가 일어나자 네로에게 찾아가 온갖 거짓말로 기독교인들을 매도한다. 그런데 자기를 용서해주고 사랑으로 대접했던 기독교도들이 짐승들에게 처참하게 찢기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자, 그때에야 이 사특한 인간의 마음에도 무언가 두려운 느낌이 찾아온다. 그러다가 활활 불타는 십자가 형틀에 매달린 글라우쿠스와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다. 세상에 킬로가 자행한 참혹한 박해보다 더 무서운 박해가 있을까?

그는 글라우쿠스에게 행했던 모든 악행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형 집행자의 손에 넘긴 것이다. 불길이 점점 깊이 글라우쿠스를 삼키는 것을 보고 킬로는 그 불길이 자기 몸은 태우는 것 같은 공포에 못 이겨 찢어지는 듯 한 소리로 외친다.

“글라우쿠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를 용서해 주오!”

이 전율의 순간에 저 순교자는 깊은 침묵을 한 후에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신음하듯이 말하고 죽는다.

이때에야 이 강퍅하고 뼛속까지 악에 절을 대로 절었던 악한은 땅을 치며 짐승처럼 통곡한다. 십자가에서 죽으면서도 자신을 못 박는 무리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던 저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이 승리하는 순간이다. 이때로부터 킬로는 전혀 딴 사람으로 변한다.

생생하게 펼쳐지는 기독교 박해 장면은 우리를 다시 한 번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받았던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으로 휘몰고 간다. 네로의 미친 행태, 잔인하고 살기에 가득찬 관중들, 어린이나 여인을 막론하고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 맹수들의 노호소리…….그것은 이 세상의 광경이 아니라 피의 광연(狂演), 무서움 꿈, 허무맹랑한 거대한 파노라마이다.

이런 광경을 바라보는 베드로의 고뇌는 우리들의 마음까지도 산산이 찢어지게 한다. 다만 박해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슬픔과 다른 이들의 강권에 못 이겨 로마를 탈출하려 했던 그의 마음을 누구라서 이해하지 못할까?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다시 로마로 되돌아오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비장한 공감을 또한 느끼게 된다.

센케비치는 이 작품 속에서 로마제국의 세계와 기독교 세계를 명암처럼 확연히 구분해 놓고 싶어 했다. 로마가 어두움이라면 기독교는 빛의 세계다. 잔인과 복수가 로마의 것이라면 사랑과 용서는 기독교의 것이다. 로마가 타락, 부도덕, 부패의 모래위에 세워진 왕국이라면 기독교는 순결과 도의, 정의라는 벽돌로 세워진 왕국이다. 로마가 배반과 중상이라는 칼로 스스로를 멸망해 갈 때 기독교는 충성과 변호의 십자가로 세워져 간다. 어떻게 해서 저 거대한 로마제국이 힘없고 약한 기독교의 소수 무리로 인해 무너질 수 있었던가?

우리는 여기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기독교의 생명의 맑은 물이 결국 죄와 악으로 더러워진 로마 정신의 막강한 탁류를 거슬러 이길 수 있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기독교는 실로 로마의 깊고 깊은 어두움 속에 비추인 한줄기 광명한 빛이었다.

센케비치는 이 작품에서 러시아의 학정에 시달리는 자기 민족의 어둡고 고단한 운명을 그리려 했으나 그의 이 소박한 꿈은 오히려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과 비신자들에게 기독교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하는 영광의 찬가가 되었다.

출처:USA 아멘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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