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대하여 / 토마스 왓슨의 '묵상'에서 발췌


                                          [기도에 대하여]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엡 6:18)



  경건한 사람이란 곧 기도하는 사람이다.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시32:6)고 하였다. 은혜가 부어지면 곧바로 기도는 쏟아져 나온다. 기도는 영혼과 하늘나라 사이의 교통이다. 하나님은 그의 성령에 의해 우리에게 내려오시고, 우리는 기도에 의해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영적인 기도는 믿음의 기도를 말한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마21:22)고 하였다. 어째서 그 많은 기도가 난파를 당하는가 하면, 그 기도들이 불신앙의 바위에 부딪혀 깨어지기 때문이다. 믿음 없이 기도한다는 것은 총알 없이 사격하는 것과 같다.

  영적인 기도는 거룩한 기도를 말한다. 그런고로 거룩한 손을 들어서 기도하라(딤전2:8). 기도는 순결한 마음의 제단 위에서 드려야 한다. 죄짓는 삶은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하나님의 귀를 막아버린다. 죄는 기도하는 입을 막아버리며, 도둑이 길손에게 하듯 기도자의 입에 말 못하도록 재갈을 물린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66:18)고 하였다. 죄에 대항하여 기도드리고, 그러고 나서 기도에 대항하여 죄짓는다면 이는 얼빠진 것이다.

  영적인 기도는 겸손한 기도를 말한다.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시10:17)라고 하였다. 기도는 일종의 자선을 요청하는 것이며, 그래서 겸허함을 필요로 한다. 불쌍하고 아무 것도 아닌 자가 창조주 발 앞에 엎드리는 것은 보기에 어여쁘다.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창 18:27)라고 하였다. 보다 낮은 위치로 마음이 내려갈수록, 보다 높은 위치로 기도는 올라간다. 깨어진 표현이라도 깨어진 마음에서 우러나오면, 그 기도를 하나님은 받으신다.

 영적인 기도는 영적인 목적을 가지고 드리는 기도이다. 영적인 기도와 세속적인 욕망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다. 위선자의 목적은 세속적이다. 그는 기도를 해도 한눈을 팔면서 한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영적 부족감이 아니라 육욕이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4:3)고 하였다. 죄인은 은혜보다 양식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한다. 이런 기도를 하나님은 기도로 이해하시지 않고, 울부짖음으로 이해하신다.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포도주를 인하며 모이며”(호7:14)라고 하였다. 진실한 목표가 없는 기도들에겐 진실한 응답이 없다. 경건한 사람은 은혜의 재고를 늘리기 위해 기도의 무역업에 종사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귀를 즐겁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녹게 하며, 하나님의 손을 펴게 한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영혼을 거절하지 못하신다.

  하나님을 찾겠다고 마음에 다짐하기가 때로는 얼마나 어려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때보다 더 기꺼이 십자가로 나아가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고뇌 가운데 몸부림쳐 기도하셨다(눅 22:44). 많은 사람이 기도할 때 고뇌 가운데 몸부림쳐 기도하기보다 되레 무기력 가운데 심드렁하게 기도한다. 세상일에 관해서라면, 그들은 온통 불덩이가 된다. 기도할라치면, 그들은 온통 얼음장이 된다.

  성도들의 기도의 공동출자는 경건한 자에게 유익이 되도록 작용한다.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행 12:5-7)고 하였다. 천사가 베드로를 감옥에서 끌어냈지만 천사를 이끌어낸 장본은 기도였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5)고 하였다. 시들한 기도는 시들한 구혼자처럼 일을 진척시키지 못한다. 열정 없는 기도는 불 없이 드리는 제사와 같다. 기도를 가리켜 “심정을 통한 것”이라 불러, 그 열렬함을 나타내고 있다(삼상 1:15). 형식적인 기도는 기도를 질식시킨다.

  당신의 마음을 기도에 집중하고 싶거든 당신의 눈을 고정시키라.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시 123:1)라고 하였다. 많은 허영심이 눈을 통해 들어온다. 기도할 때 눈이 갈팡질팡하면, 마음도 갈팡질팡한다. 사랑은 생각들을 한곳에 고정시켜 주는 유력한 막후 해결사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의 생각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뗄 수 없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생각이 온통 세상에 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할수록, 그만큼 우리의 마음도 더욱 기도로 하나님께 전심전념할 것이다. 기도하지 않을 때 제멋대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기도할 때 바른 생각으로 회귀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기도하기를 그치는 사람은 하나님 두려워하기를 그치는 사람이다.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폐하여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욥 15:4)라고 하였다. 기도를 그만둔 사람은 아무 악행이든지 범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사울은 하나님께 물어보기를 포기하더니 엔돌의 무당에게 찾아갔다.

  믿음은 기도의 호흡이다. 기도할 때 믿음이 호흡하지 않으면 기도는 죽는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약 1:6)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 21:22)고 하였다. 믿음이 없는 기도는 지껄이는 것이지,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기도의 손을 잡아주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다. 믿음이 없는 기도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 3:19)고 한 말씀은 기도에도 해당된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기도가 하늘나라에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기도에 대하여 / 토마스 왓슨의 '묵상'에서 발췌 (113-117p)


출처: 생명나무 쉼터  http://blog.daum.net/7gnak/15721167 /믿음은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