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주의(Gnosticism)

 

배경

 

주후 1세기경, 로마를 비롯한 몇몇 중심 도시들을 제외한 여타지역은 극심한 기근과 전염병에 시달리며 모든 정신적 자원도 고갈된 상태였다. 이러한 때 기독교가 가진 구원의 복음은 희망을 잃고 사는 사람들에게 단비와 같은 희소식이었다. 기독교는 점점 세를 확장해 갔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미는 생명의 손을 잡은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로마제국 내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기독교 예배공동체가 생겨났다.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나와 가정이나 공동의 공간을 이용하여 주일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한편, 당시 사회는 헬레니즘에 침식된 철학적 개념과 주제와 더불어 혼합주의로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대개 혼합주의는 겉으로는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일치와 연합을 주무기로 사용한다. 그래서 보기에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혼합적인 문화에 대해 먼저 우려를 표명하고 대응책을 논한 그룹이 나타났는데 그들이 바로 지성적 탐구자들인 영지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세상의 타락과 재앙으로부터 인간의 구원을 논한다는 점에서 기독교와 궤를 같이 하지만 이들의 가르침은 헬라철학에 비해 매우 신비스럽고 우아한 요소를 가미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점점 영지주의자들의 호소가 기독교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아 갔으며 급기야 대세로 확산되어 초대교회의 복음에 일대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여기에 이들이 득세한 데에는 자연의 재앙들이 영향을 끼쳤다. 63년에 지진이 갑자기 발생했고, 79년에는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서 당시 휴양지였던 폼페이와 헤르클라네움 두 도시가 폐허가 되었으며, 80년대 중반에는 로마제국 전체에 흑사병이 창궐해 사람들은 염세주의에 빠졌다. 사람들은 비관적인 상태에서 현실세계를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 차에 영적세계를 소개하는 영지주의의 가르침은 너무나 매력적인 것으로 다가온 것이다.

 

영지(그노시스)란, 곧 지식을 뜻하는데 이 지식은 단순히 세상에서 배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그런 일반적인 지식이 아니라 깊은 영적인 체험으로부터 얻어진 지식을 말한다. 사람들은 영지주의자들의 손에 이끌려 영적 체험의 현장으로 모여 들었다. 새로운 지식을 얻어 절대자를 만나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영적 체험을 하고 영험한 지식을 획득한 이들은 일종의 신적 우월감을 가지고 하류의 인간그룹을 지도하고 관장해 나갔다. 점점 이들의 손에서 성경이 중요치 않게 되거나 사라지게 되었다.

 

여기에 영지주의자들의 주요한 하나의 특징이 발견된다. 그들은 신비적인 방식으로 신을 체험하는 것을 절대화했는데, 이 결과 그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으로 만족을 하지 못하고 성경 이외의 더 깊은 세계를 탐닉하고 여행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이고 정통 기독교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오직 성경만이 절대적인 기준이요 성경 안에 모든 구원이 다 들어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성경만을 고수하지 않고 성경을 포함한 다른 방식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 탐험가들은 깊은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 결국에 어떤 궁극적인 영을 만나고 그 영과의 합일을 추구하며, 드디어 육체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신적 경지를 터득하고 누린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단의 공통된 특징이다. 한 마디로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는 모든 이단의 원형이다. 초대교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이단은 영지주의에 속하거나 영지주의의 한 분파일 뿐이다. 모든 이단은 영지주의가 가지고 있는 속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예컨대 신비주의와 체험주의, 고행주의와 내재주의, 그리고 혼합주의와 다원주의 등은 모두 영지주의의 산물이다. 영지주의는 반 기독교적 철학과 사상과 종교의 집합체이다. 영지주의는 한 마디로 적그리스도의 사상이다. 영지주의 안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원수 삼아 괴롭히고 멸망케 하려는 모든 미혹의 술법과 책략들이 다 들어 있다. 영지주의 이후에 나타난 모든 이단들은 단지 영지주의의 변형이자 위장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단을 알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영지주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그를 잘 간파하면 될 일이다.

 

주요 내용

 

그들이 가르친 주요 내용은 무엇인지 좀 더 논하기로 한다.

첫째, 이원론(dualism)적 관점으로 모든 것을 논한다. 이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특히 플라톤의 이원론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세상을 두 부분으로 본다. 빛의 영역과 흑암의 영역이다. 이 두 질서의 불행한 만남과 혼합으로 영자아의 타락과 추방이 일어났다. 흑암의 세계 즉 우주는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 부차적이고 다른 것에서 파생한 것이다. 이들은 물질세계는 악한 것이고 하나님에 의해 지배되는 정신의 세계만이 선하다고 전제하고, 주된 관심사는 인간이 어떻게 악한 물질의 세계를 벗어나 하나님이 계신 빛의 세계에 참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모든 신자는 철저히 금욕을 실천해야 하고 무지를 추방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신적인 계시를 받고 높은 지식을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 두 개의 세상 즉 충만(플레로마)이라고 하는 영, 즉 재료의 본래적이며 신적인 세계와, 공허(케노마)라고 하는 열등하고 물질적인 세계라는 두 질서 사이의 대립을 강조하는 것이 기독교 영지주의적 사고방식의 특성이다. 다시 말해 무엇이든 실재하고 중요한 것은 충만 속에서 발출한다. 하지만 이것은 가시적 우주의 낮은 수준에서 전위된 양식으로 모방된다. 공허는 충만의 그림자나 상이다.

 

셋째, 빛의 세계는 영(프뉴마)으로 이루어져 있고, 좀 더 낮은 세계는 혼(프쉬케)과 물질(휠레), 육체(싸륵스)로 이루어져 있다. 두 세계는 서로 다른 신이 이끌고 있는데 물질적 우주의 조성자가 '데미우르고스'이고 이는 하나의 신이며 유대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지만 영의 세계에 속한 구성원이 아니며 그저 혼의 재료로 이루어져 있고 사물의 참된 근원을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영의 세계의 주인이신 분의 지성적 복제이다.

 

넷째,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의 내면적이고 참된 자아에서 영이며, 그들의 고유한 고향은 충만에 있다. 그런데 참자아를 가진 영적 존재인 자기들이 이질적인 우주에서 길을 잃었고 다시 길을 찾기 위해선 계시의 은혜를 입어야 한다고 했다. 자신들은 선민이며 유대교의 하나님보다 월등하며 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계질서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는 존재임을 주장했다.

 

다섯째, 따라서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을 세 등급으로 나누었다. 제 1그룹은 희망도 없이 육 혹은 물질의 세계에 잡혀 궁극적으로 멸망할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고, 제2 그룹은 혼의 차원에서 유대교 성경의 하나님에게 속한 기독교인들로서 멸망하지 않지만 2등급의 구원을 얻는 부류익, 제3 그룹은 마지막으로 영들(Spirituals)로서 이들이 영지주의자들이며 신적인 세계의 충만에 속하게 된다고 했다. 모드 이단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자기에게 속한 구성원들을 계급이나 신분 등으로 나누어 차별화한다는 것이다.

 

여섯째, 그들은 스스로를 그리스도 혹은 예수와 더불어 구원의 계시를 가진 자로 여겼으며 다른 사람과 자신들을 엄격하게 구분했다. 그렇지만 예수는 혼의 그리스도일 뿐이라고 했다.

 

특색들

 

첫째, 통일된 내용이 없다. 마치 오늘날의 WCC처럼 특정한 신학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각자의 주장이 중구난방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2세기경의 기독교를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둘째, 영지주의가 기독교보다 연대 상으로 아주 앞서지는 않아도 영지주의가 표현하는 운동이나 종교적 경향은 교회와 독립적으로 존재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셋째, 종종 영지주의는 교회 안에서 자란 하이레시스(hairesis, 분파, 이단)의 모습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 중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들은 신앙에 있어서 영지주의의 습성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현상이 목격되기도 했다.

 

넷째, 대개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은 비밀스러운 가르침이며, 소수에게 계시되고 본질적으로 신비스러운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들이 소유하는 지식(영지)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의 강화에는 의도적인 수수께끼 같은 성질이 있다. 모호하고 복잡하고 신비스럽게 만드는 것 속에 빛이 있다고 가르쳤다.

 

다섯째, 또한 잘 알고 있는 자들에게 계시로서 나타나는 이 영지는 초월적이고 원초적인 실재에 대하여 이야기 형식(뮈토스)을 띤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추상적인 철학적 혹은 신학적 개념 혹은 일반적인 상징들이 담겨 있다.

 

여섯째, 영지주의 문학에는 공상적인 내용이 포함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의 창조이야기에는 이교신화로부터 혹은 점성술로부터 마술로부터 나오는 주제와 개념들을 끌어다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개 영지주의자들은 기독교의 기본교리에 대한 반박의 도구가 되었다.

 

역사적 자료들

 

<플로라에게 보내는 편지(Letter to Flora)>

- 영지주의자인 프톨레미의 작품으로 이 안에 <피스티스 소피아>가 들어 있는데 바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이것은 뒤에 <위대한 로고스의 신비>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1955년엔 <요한의 비밀스러운 가르침>으로 모습을 보였다. 영지주의에 반대한 기독교 변중가들인 리용의 이레니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 터툴리안, 로마의 히폴리투스 등의 작품에서 영지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그들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다.

- 한편, 1945년 이집트의 나그 하마디에서 4세기경의 영지주의 작품들 사본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엔 총 48개의 짧은 논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진리의 복음>, <도마복음>, <트리파르티트 트락타테>, <레기스에게 보내는 서신>, <부활에 대한 논문> 등이 대표적이다.

 

영향

 

영지주의자들은 초기 기독교 문학과 전승에 진지하고 중요한 해석가들이었다. 대표적 영지주이자인 발렌티우스(130-160년에 활약)는 바울서신으로부터 자신의 영감을 발견하고 영적인 것과 혼적인 것, 그리고 육적인 것으로 나누었고 테오도투스는 골로새서를 가지고 충만을 설명했으며, 헤라클레온은 요한복음에 대한 최초의 주석을 시도했다. 이런 일들은 기독교의 학문적인 부분에 하나의 충격을 던진 것이다. 모든 교회의 지도자들은 영지주의의 심각한 왜곡과 가르침에 대해 화가 났다. 궁극적인 하나님은 이 우주의 창조주와 다르다는 주장에 대해 분노했으며, 영은 자동적으로 선하고 육은 그 자체로 악하고 구속받을 없는 것이라는 운명론 또는 결정론에 대해 반론을 펼쳤다.

 

한편 영지주의와 기독교의 결합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보이며 새로운 이단의 주장을 하는 부유한 기독교인이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마르키온(110-160)이다. 주후 139년부터 로마에서 활약한 그는 바울서신을 기준으로 새로운 성경을 만들었으며 독립된 교회를 세웠다. 특히 유대교의 율법과 복음사이에는 대립과 모순이 있다고 추론했으며, 모세의 언약의 하나님과 예수와 바울의 하나님이 전혀 다른 존재라고 했다.

 

영지주의는 170년경 이상한 예언주의자인 몬타누스를 등장시켰다. 그는 자신이 성령이라고 했으며 세상과 완전히 고립된 채 살며 다가올 종말을 선언했다. 정결과 순교를 원칙으로 내세워 두 아내인 브리스길라와 막시밀라도 몬타누스와 헤어졌다. 179년 막시밀라는 죽으면서 '내 이후로는 더 이상 여성 선지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운동은 시리아와 안디옥에 퍼졌고, 로마와 서방세계를 휩쓸었다. 겉으로 보기에 매우 경건한 그들의 삶이 매력을 던졌던 것이다.

 

결론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초기 역사상 가장 심각한 내부의 위협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물질적인 것은 타락하고 악한 것에 불과했다. 영적인 것만이 선하고 순수할 따름이었다. 그들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영적인 지식, 즉 세상의 악의 기원을 알게 됨으로써 구원을 완성하게 만드는 비밀스러운 지식. 즉 그노시스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선택받은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만이 그노시스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밀스럽고 신비한 지식을 소유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은 진리의 그림자로 규정하고 노골적으로 경멸했다.

 

12개 정도의 분파로 나누어진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을 부정해서 성경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라는 내용을 배격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육신이 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예수님과 그리스도를 따로 구분했다. 이는 19-20세기경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따로 분리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주장과 동일하다. 다시 말해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예수라는 이름의 평범한 젊은이를 잠시 사로잡은 어떤 영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선택받은 일부에게 있는 영이 현재 육체에 갇혀 있으므로 이 몸에서 해방되면 다시 영의 세계로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의 핵심교리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선과 악이라는 이원론적 세계관이고, 다른 하나는 구전이나 비밀문서들이 전해주는 은밀한 진리에 관한 믿음이다. 단순하고 간단명료한 영지주의의 이원론은 매우 쉽게 대중들에게 어필했다. 이것이 이단들이 갖는 대중적인 매력이다. 

가져온 곳 : 
블로그 >영적 분별력
|
글쓴이 : 진실| 원글보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