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3월 29일 문화관광부 후원으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주최한 춘계 세미나에서는 “세기말적 종교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를 제목으로최근들어 기승을 부리는 시한부종말론을 정면으로 다뤄 관심을 모았다.

 

KCRP 사무차장 박광수 교수(원광대)의 사회로 진행된 이 날세미나는 ‘종교적 광신과

시민사회의 윤리’(길희성 교수), ‘신학적으로 본시한부종말론’(김명용 교수), ‘시한부

종말론의 사회심리학적 조명’(이훈구교수), 폐쇄적 신앙집단의 사회적 분석(김종서 교수) 등 모두 4개의 주제 발표와각 주제에 대한 토론, 종합토론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신학적으로 본 시한부종말론’을 발제한 김명용 교수는 시한부종말론과 기독교의

종말론을 구분하고 “시한부종말론은 세상과 역사에서 도피하는 탈역사적인 삶을 불러오기때문에 매우 위험한 반면 기독교의 종말론은 악의 역사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역사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위해 싸울 것을 가르치는 동시에 역사의 어둠속에서역사의 희망을 가르치는 교리”라고 설명해 주목받았다. 한편 이 날 행사에는시한부종말론 단체의 신도들도 대거 참석, 특정 주제에 대해서는 야유를 보내는등 민감한 반응을 나타냈다.

 

본고는 지면관계상 각 주제와 토론 발제문을 대폭 요약한것임을 밝힌다.

 

제1주제 종교적광신과 시민사회의 윤리

 

‘광신성’종교의 자유는 제한되어야

길희성 교수(서강대/종교학)

 

종교는 그 자체가 가지는 초월성과 신비성을 완전히 포기하고일상적 사회질서의 일부로

편입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사회적 상식이나 합리성의잣대만으로 재단될 수 없는 ‘광신성’을 지닌 종교적 자유의 한계와 자유시민사회가요구하는 관용의 덕은 어디까지인가.

 

시민사회의 이념인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인간이 자기가 믿고있는 사상과 신앙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다양한 신념과 신앙이 공존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필수조건이있으며 이에 대한 공동체적 합의가 필요하다. 즉 개인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누릴 권리가 있는 조건적 자유인 것이다.

 

광신적 종교집단이 흔히 범할 수 있는 오류는 적어도 광신의형태가 타인의 신앙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의 신앙만을 강요하는 독선이라면 이러한 신앙의 자유는 제한받아 마땅하다. 납치, 구금, 구타, 세뇌, 가족과의절연, 사회생활의 거부, 재산 갈취, 혼음이나 강간같은 반인륜적 행위들은 자유민주주의의질서를 지키기 위해 제한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는 다종교사회에서 각 종교들이 공존하면서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제도적 기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되 관용에 한계가 있음을 명백히 해야 한다.그 한계는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과 가치의 존중, 타인의 자유와 인권의 존중,사회 전체에 깊이 자리잡고 있으면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최소한’의 유교윤리이다.

 

제1토론 종교윤리와 시민윤리는 일치 이루어야

 

광신적 종교행태에 대한 관용의 한계로 제시한 ‘최소한’의유교 윤리에 전적으로 공감하나 시민사회의 건전한 윤리와 종교가 가지는 속성인 광신의 자유를 양립시킨데 대해서는 달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종교가 사회제도의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을 사람답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다. 따라서종교적 행위와 도덕적 행위, 종교의 윤리와 시민윤리는 양립하거나 유리될 수 없고 언제나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광신적 종말론의 경우 그러한 종교 행태가 교회내에서 끝나야지사회로 진출, 일반인을 상대로 선동하거나 유혹하면 제재를 받아 마땅한 혹세무민의반사회윤리가 된다.

 

종말론이 재산, 성 등을 착취하는 비사회윤리적인 문제를야기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철저한 신학적 성찰이 앞서야 한다.그리고 종말은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결단과 참여를 요구하는 실존적현실임을 일깨워야 한다.

【이은윤·중앙일보 전문위원】

 

제2주제 신학적으로본 시한부종말론

 

성경에 나타난 마지막 날가르침

김명용 교수(장로회신학대/신학)

 

종말에 대한 성경의 정신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수 있다. 주님의 재림이 반드시 있다는 것(행 1:11), 종말의 시기를 아무도알 수 없다는 것(마 25:13), 종말이 언제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매순간 주의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막 13:33~37)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종말의 시기에 대한 예언은지금까지 교회역사 속에 너무나 많이 있었다. 이장림씨의 1992년 종말설, 윌리암밀러(William Miller)의 1843년 종말설, 여호와의 증인의 창시자인 러셀(C.Russel)이 주장한 1874년 예수 재림과 그 후의 천년왕국설 등등이 그것이다.거기에다 베드로후서 3장 8절을 근거로 주의 날을 천년으로 계산하여 종말의 시기를 추정하는 세대주의 종말론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종말에관한 날짜를 예언하는 것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성경에 나타난 마지막 날에대한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의하고 깨어서 다가오는 세상에 대한 준비를 해야한다.

둘째, 주인의 명령에 충실해야 한다(마 24:45~51).

셋째,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복음전파에 힘을 기울여야한다.

넷째, 복음전파와 더불어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마 25:31~46).

다섯째, 주님의 의의 힘 앞에 악의 세력이 무너지고 이 땅위에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된다는 것을 믿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

 

이를 근거로 했을 때 시한부종말론은 신학적으로 잘못된 교리이다.이 교리는 성서적으로 신학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과역사에서 도피하는 탈역사적인 삶을 초래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제2토론 기독교의자기비판 계기로 삼아야

 

기독교의 종말관은 타종교나 다른 세계관에서는 볼 수 없는직선적 종말사관이다. 기독교가 종말론을 말하고 있는 한 시한부종말론은 생겨날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이면에는 현실에 대한 불안, 좌절, 절망들이 짙게 깔려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런 맥락에서 종말의식 자체가 인류 보편적현실이 아니라 기독교적 세계관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시한부종말론이 주는 폐해에도 불구하고 종말론자들만을 비판하기전에 기독교 신학 및 교회 역사에 대한 반성과 기독교의 자기비판의 계기로삼아야 한다는 점에서 다음 몇가지를 거론한다.

 

첫째, 어거스틴 이래로 성서내용과 과학적, 객관적 사실이일치하지 않는 경우 은유적 해석을 인정해 왔다. 따라서 세대주의 종말론은이러한 기독교의 전통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둘째, 종말에 대한 관심은 주후 1000년경에 종말이 이를 것으로생각했던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들도 갖고 있었다. 그 후 수많은 종말선포가이러한 전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셋째, 현실에 적응할 수 없는 신앙인들에 의해 야기되는 종말현상을 직시하면서 기독교

교회는 정신적·물질적 소외를 겪고 있는 사람들,현실을 고통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헌신적 배려를 먼저 철저하게수행해야만 할 것이다.

 

넷째, 교회사적으로 볼 때 종말론 운동은 교회가 임박한 종말에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제도적 교회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인습화된 신앙을 공고히할 때 그에 대한 반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시대의 종말론자들 역시 계승화되고제도화된 기성교회에 대한 도전, 반발로써 숙고

되어야 할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정배 교수·감리교신학대/신학】

 

제3주제 시한부종말론의사회심리학적 조명

 

대중매체 통한 계몽 시급

이훈구 교수(연세대/심리학)

 

종말론이 싹트는 이유는 다양하다. 예컨대 오존층의 파괴,엘리뇨 및 라니뇨 현상과 같은

기상변화, 지구온난화 현상 등은 더 이상 지구가지탱할 수 없으리라는 불안감을 조성하고 이러한 불안감은 노스트라다무스의종말론, Y2K 종말론, Deep Impact 종말론 등으로 이어진다.

 

개인이 종말론을 신봉하게 되는 이유는 심리적 이유만이 아닌사회적 또는 시대적 불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면 개인이처한 현실이 너무 괴로워 이로부터 도피하려는 현실도피이다. 즉 종말론과 어지러운사회상은 서로 맞물려 작용한다.

 

인간이 갖고 있던 기대와 실제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면 부조화(불쾌감)에 빠지게 되고 이러한 부조화를 조화로 바꾸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한다는 Festimger의인지적 부조화이론에 의하면 시한부종말론자들은 자신의 되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합리화하기 위해서 계속 종말론에 매달린다.

인민사원을 지휘했던 짐 죤스와신도들의 집단자살도 심리학적으로 해석한다면 인지적

부조화를 겪고 싶지 않아서이다.

 

물론 모든 종말론 신도들이 다 자살을 감행하는 것은 아니다.그러면 어떤 종말론 신자들은 자살하고 어떤 사람이 살아남는가? 그것은 종말론에얼마만큼 심취했는가의 정도와 얼마나 개인적 투자를 했는가에 달려있다.

 

올해는 IMF 시대의 곤란한 경제 상황에다 새로운 세기에 대한불안감이 겹쳐 종말론의 기승이 명약관화하다. 이에 정부와 매스컴은 여러 경로를통해 일반 대중에게 종말론에 현혹되지 않도록 알릴 필요가 있다. 또 종말론을 흥미위주로 다루기보다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며 만일 이에 현혹되면 얼마나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인가를 주지시켜야 한다.

 

제3토론 개인의 정신건강이 우선

 

종말론의 첫 단계인 세계의 멸망이라는 주제에 대한 심리적분석을 해보자. 기존 세상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다가 미운 마음이 생기는데이것이 외부로 발산되면 세상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 물론 내부세계로 들어오면자학이나 자해, 우울, 자살 등이 된다.

 

개인이 과거 생활사의 열등감과 불만에 차 있을 때 혹은 사회가개인에게 불안과 실망을

안겨주었을 경우 고통을 해결하는 하나의 집단적 방법이말세와 새 세계의 건설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세기말적 종말론에 대한 대책을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개인의 정신이 건강해야 한다.

인격의 발달은 0~6세 사이에그 기초가 형성된다고 한다. 이 시기의 부모의 올바른 양육이 어떠한 사회적어려움에서도 견뎌나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회적인 차원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사회의 억압과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현세적이고 기복적인 욕망을 외면하지말아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박용천 교수·한양의대/신경정신과】

 

제4주제 폐쇄적 신앙집단의사회적 분석

 

사교집단 신도 자체도 피해자

김종서 교수(서울대/종교학)

 

폐쇄적 사교집단에 의한 가장 큰 피해는 연루된 자가 개인적으로종교심성을 다쳐서

건강한 영성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탈교 후에도오랫동안 후유증으로 인해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경우도 종종 있으며 헌금에 의한 재산탈취와 가출로 인한 가정파괴, (성)폭행, 살인 등으로 인해기본적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면 사회 전체가 온전할 수 없게 된다.

 

지금까지 폐쇄적 사교집단의 문제를 우리 사회는 대체로 세가지 차원에서 처리하여 왔다.

 

첫째는 상담조정적 차원이다. 예컨대 문화관광부 종무실에서운영해온 ‘신문고’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직접적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대개 형식적 제재나

조정으로 끝나기 일쑤이다.

 

앞으로는 문제가 되는 종교단체에 대한 등록 취소나 면세혜택박탈 등 실질적인 제재가 가능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을 본격적으로 하기위해서는 종교단체들의 법적 지위를 더욱 명백히 하고 관리체계를 강화하는일이 급선무이다.

 

둘째는 형사처벌의 차원이다. 종교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는현대 국가에서 종교적

사실은 결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우리 나라의수사당국은 사교집단들의 기존 사건에 대체로 사기죄를 적용해 왔다. 하지만성실성을 부정할만한 명백한 증거를 잡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재판결과에대해서도 여론에 밀려 판결을 내린다는 인상을 주어 왔다.

 

셋째는 종교 윤리적 정죄의 차원이다. 성폭행이나 부정기적헌금, 공소시효가 지난 경우

매스컴을 통해 비리를 널리 알려 사회 윤리적으로그 집단을 정죄하고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하지만 매스컴이 여론재판을 이끌어내거나 무고한 종교단체들을 마녀사냥 식으로 몰아부치는 경향은 잘못이라는지적도 있다.

 

제4토론 사회에대한 무관심의 양면성

 

교리적 측면에서 사교집단들을 구별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사교집단들의 고도화된 신도유입 방법과 신도들에 대한 세뇌적인 교리 주입도질시와 비난을 할 수는 있어도 범죄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범죄를 서슴지 않는 그들의행태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 전체의 구조적 모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종말론자들이 종말의 증후로 말하고

있는 위기가 바로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때문이다. 즉 사회의 폐쇄성과 폐쇄적 사교집단의 출현은 표리(表裏)의 관계에있다고 할 수 있으며, 사회 전체에 대한 무관심이 낳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폐쇄적 신앙 집단이 야기하는 문제들도 사회 전체의문제로 인식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정부가 폐쇄적 사교집단의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 ‘국민의 건강한 영성 생활’을 위해노력하는 것도 정부의 일이란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폐쇄적 사교 집단에서탈출한 사람에 대한 보호와 갱생을 위한 사회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폐쇄적 구조를 무너뜨리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류성민 교수·한성대/종교학】

 

월간 현대종교 99년 5월호  P1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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