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프면 달라붙고 
 배가 부르면 떠나가며, 따뜻하면 모여들고 
추우면 버리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 공통된 마음의 병이다」
 
이른바 전국 시대라 하여 
수십 개의 나라로 나뉘어 있던 
중국 천하가 마침내 일곱 나라로 
합쳐지고 있던 때의 일이다, 
 
주(周)나라에 소진(蘇秦)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소진은 장의(張儀)와 더불어 귀곡 선생 밑에서 각국의 제후들을 
상대로 하는 변설을 공부하고 삼 년 동안 
유랑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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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나라의 왕들을 
찾아 다니며 변설을 하고, 
자신들의 뜻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삼 년 동안이나 
천하를 두루 돌아다녔지만 
소진의 인물됨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데도 없었다,
 
있다면 조(趙)나라 
봉양군 조성(趙成)과 같이 
그의 인물됨을 시기하여 오히려 
해치려고 하는 인물이 있었을 
정도였다, 
 
마침내 소진은 가지고 갔던 
노자를 다 써버리고 빈 털터리 
거지꼴이 되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대문으로 들어서자 
베틀 위에서 베를 짜고 있던 
그의 형수가 콧방귀를 뀌며 
빈정거렸다, 
 
「 흥, 꼴좋으시구려, 
삼년 전에는 뭐라도 곧 될 것처럼 
집안 살림살이들을 죄다 팔아 떠나시더니, 
그래, 뜻은 좀 이루셨소? 」
 
「  형수님, 제가 
지금 몹시 시장하니 
우선 밥이나 한 그릇 주시지요」
 
며칠 동안을 굶었던 소진이
밥 한 그릇을 청하자 형수는 독을 
뿜은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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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 배고픈 줄은 
용케도 잘 아시는구려, 
우리도 그대가 가산과 집을 다 
팔아갔을 때 배가 안 고팠던 줄 알아요? 
 
형수는 끝내 
베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소진은 그 후 일 년 가까이 형수의
눈칫밥을 먹으며 귀곡선생에게서 받은 
책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밤에 잠이 오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렀다. 
자신의 변설에 자신이 서자 소진은 
다시 길을 떠났다,
 
먼저 당시 세력이 제일 강했던 
진(秦)나라로 가서 혜문왕을 만나 
열심히 유세하기 시작했다, 
 
진나라가 6개국을 
병합할 수 있는 비책을 말했지만 
원래 타국의 유세객을 좋아하지 않던 
진나라 왕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다, 
 
소진은 다시 이번에는 
제일 세력이 약한 북쪽의 
연(燕)나라로 가서 왕을 만났다,
 
소진은 진나라를 도와 
천하통일을 못할 바에야 6개국을 
연합시켜 진나라에 대항하게 하기 
위하여 합종책(合從策)을 
시도하라고 권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난 연나라 왕은 크게 
기뻐하여 소진에게 집과 
황금을 하사하고,
 
그에게 6개국을 연합해 
달라는 전권을 위임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소진의 
합종책이다,
 
소진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되어 
6개국이 동맹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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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국의 왕들은 제각기 
소진의 공로를 치하하여 자기 
나라의 정승자리와 많은 황금을 주었다, 
 
소진이 연나라로 가기 위해 
주나라의 고향집 앞길을 지날 때 
그의 화려한 행차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소진이 자기 집 앞에서 
행차를 멈추었을 때 형수와 
동생들이 나와서 무릎을 꿇고 
영접했다, 
 
「소진이 그의 형수에게 말했다 
 옛날에 형수님은 베틀 위에서
 내려오지도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으시더니 오늘은 웬일이시오? 」
 
그러자 형수는 
머리를 조아린 채 대답했다. 
「 그때는 그대가 거지였고 지금은 
높은 지위와 많은 황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듣고 소진은 
새삼스레 세상 인심을 탄식했다, 
 
「 같은 인간인데도 
부귀하면 친척도 어려워하고 
빈천하면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다」 
 
「 하물며 남이야 
어떠할까, 내가 애당초 
논밭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면 
오늘날 이렇게 6개국의 정승이 
어찌 될 수 있었으리」
 
소진은 그의 형수와 
동생들에게 많은 황금을 
나누어 주었다, 
 
이래서 
감탄고토( 甘呑苦吐)라 해든가? 
 
 



가나안 교인들의 귀환

 

기존 교회를 떠나는 가나안 교인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적으로 교회와 유리된 신자의 삶이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의 연합을 뜻한다. 팔과 다리가 몸통에 붙어있지 않고는 머리와 연결될 수 없듯이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원으로 접합되어있지 않으면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결될 수 없다. 바울 사도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음을 뜻한다(Being in Christ means being in the body of Christ). 동시에 성령 안에 있다는 것은 성령의 전인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To be in the Spirit is to be in the temple of the Spirit). 바울의 가르침에서 교회와 분리된 신자의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초대교회에서부터 개혁교회까지... 계속 이어져 온 전통적인 신앙관이다. 초대 교회를 대표하는 교부 어거스틴은 태아가 모태를 떠나 생존할 수 없듯이 신자는 교회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개혁교회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칼뱅도 신자는 교회라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나고 그 품안에서 젖을 빨며 양육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교회를 안 나가고도 신자로 산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신앙이다. 그렇다고 가나안 교인들만 비난할 수는 없다. 과연 현실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교인들을 양육하는 영적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교회가 형식과 외식으로 화석화되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약동하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그 생명력이 소멸된 그리스도의 무덤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가나안 교인들이 자신들 안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생명이나마 부지하려고 영적으로 질식할 것 같은 교회를 탈출하는 것은 아닌지 기존 교회와 교인들(목사를 우선적으로 포함해서)의 심각한 자성이 필요하다.

한국교회가 온유하신 성령님을 너무도 오래 거스르고 근심케 하여 성령님이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스럽다. 아마 예수님과 성령님도 가나안 교인들과 함께 기존 교회를 떠나실 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나안 교인들은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타락한 교회를 떠나 참된 교회를 찾고 있는 일종의 순례자들인지도 모른다. 비록 그들 모두가 다 그렇지 아닐지라도 말이다. 성령께서 부디 그들을 인도하사 교회로 귀환시킬 날을 고대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속히 교회 되어야 하리라.

 

 

출처: 개혁주의마을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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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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