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 드리는 기도 최송연 이 9월에 나는 소원하네 저 하늘의 청명함과 넓음을 쏙 빼닮은 내 마음이기를...
      메말라가는 나뭇잎 사이로 흐느끼는 바람소리는 온 여름 다 가도록 불러보지 못한 시인의 애잔한 사랑 노래...
      봄, 여름 내내 젊음을 괭이질 하며 땀 흘려 일궈낸 화사한 꽃이여 이제 그 떨어지는 영화에 울지 말고 밤송이 같은 알갱이로 알알이 영글어야지
      미움은 사랑보다 아픈 것 아픔은 영혼을 어둡게 하는 것 영혼을 어둡게 하는 아픈 情일랑 흐르는 갈바람에 모두 날려보내야 하리
      저 하늘처럼 넓고 청명한 가슴, 착한 영혼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죄인을 품고 사랑하신 그분처럼 더 많이 품고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도록...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왕께 바치는 내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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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 친구 험담을 좀 하겠습니다.

뉴욕에서 목회를 하는 송병기 목사는 제 대학시절 같은 동아리에서 함께 누란지교를 나누던 친구사이입니다, 그가 어느 해부터인가 인터콥의 열성적인 후견인이다 못해 지금은 미주 지역 후원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의 열정은 단순한 후원을 떠나 순복음이나 다른 교단과 교계에 인터콥의 지경을 넓히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제가 인터콥의 정체성에 깊이 좌절하고 이를 드러내면서 그에게 인터콥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도 인터콥과의 결별을 생각하고 있었고 제게 정리하겠다고 약속도 했습니다.

그러나 변수가 생겼습니다. 송목사의 부인이 남편보다 더 깊숙이 인터콥에 연결되어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몇 해가 지나더니 이 친구가 하는 말이 “선교하겠다는데 나쁜 일 하는 것도 아니고 도와 줘야 하지 않겠나?”로 변했습니다. 선교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사고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요 선교현장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하거나 선교에 대해 막연한 감상을 가진 사람들의 통속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부인이 중동지역에 단기선교를 갔다가 길거리 전도를 하고 있는데 현지 경찰들이 다가와서 “무엇들을 하고 있느냐?”고 묻길래 너희 나라가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한 칭찬을 해주고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 저는 “아니 순교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그 좋은 기회를 놓치느냐?”고 했습니다. 바로 이 단체는 ‘복음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선교현장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슬로건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그런 이유로 다른 선교단체들과는 차별화되고 마치 택함 받은 선교단체인 것처럼 떠벌려서 선교 순혈주의에 빠진 단체로 인정받기도 합니다.

선교하다가 순교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이런 마음가짐으로 사역하겠다는데 조금도 나무랄 일이 아니지요. 그런데 요즈음 세상에 순교도 말처럼 그리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제법 덩치가 커지고 먹고 살만해지다보니 현지에서 전도하다 걸리더라도 추방당하는 게 고작입니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당한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씨가 무장세력 탈레반에 의해 살해당했다.

2007년 아프간에서 샘물교회 사건이 터졌지만 한국교회가 선교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범하고 일하는지 아십니까? 겉으로 드러난 샘물교회 인질 사건에는 마자리에 샤리프에서 일하는 인터콥 사역지를 방문하는 일과 인터콥과 연관된 아프간 사역자들의 인도로 빚어진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샘물교회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한국 사회에 드러나지 않은 치부를 낱낱이 열거하면 한국 선교는 문을 걸어 잠거야 할런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제2, 제3의 샘물교회 사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순교란 때로 하나님의 허락하지 않으시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영적 축복이란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말로는 순교를 각오했다고 하면서 막상 반 선교적, 반 순교적 행태를 보이는 선교사들이 너무나 많다는 데 문제의 실상이 있습니다.

2009년, 중동의 I 국가에서 선교사들이 비밀경찰에 붙들려 간일이 있었습니다. 소위 땅 밟고 기도한다는 공격적인 선교를 하는 단체 소속입니다. 책임자가 붙들려갔고 그 뒤를 이어 같은 선교단체의 멤버들이 줄줄이 붙잡혔습니다. 그들은 풀려날 때에 당시 그 나라에서 동역하던 40여명의 선교사들이 강제 출국되거나 비자 연장이 허락되지 않는 방식으로 십 수 년간에 걸쳐 이루어 놓았던 사역의 터전을 접고 그 나라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문제는 그 많은 선교사들이 영문도 모른 채 그 나라를 떠나야 했던 이유가 오리무중이었습니다. 다만 그 선교단체 멤버들이 풀려나는 과정에서 현지에 있던 다른 선교사들의 명단을 넘기는 선에서 테이블 밑에서 딜 했다는 루머가 돌았고 추방당한 이들 역시 강하게 어필했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 해 뒤, 이미 쫓겨났던 여자 선교사가 한국 법정에서 이름을 개명하고 여권도 새로 발급받아 다시 입국했습니다. 좋게는 그 나라를 향한 선교적 열정이라고 합시다.

그러나 비밀경찰은 이미 그녀의 신분을 파악하고 있었고 몇 달간에 걸쳐 그가 만나던 사람들의 인적 사항을 모조리 파악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들이 일망타진되었습니다. 이름까지 개명해 입국한 그녀를 악질적으로 보고 간첩죄를 적용하면서 고문하기 직전, 중간에서 힘을 쓴 대사관의 수고로 옥살이를 겨우 면했습니다. 정말 순교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친 셈입니다. 결국 그녀가 이루고자 했을 위대한 순교를 현지 대사관이 나서서 방해한 것일까요?

그녀가 풀려나는 과정에서 예전처럼 아무런 딜은 없었을까요? 그나마 남아 있던 몇몇 선교사들이 뿌리 채 뽑히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샘물교회 사건은 우리 선교 역사에 귀중한 아픔과 교훈을 주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기독교 선교 방식에 대한 자성이 요구되었고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무뢰배같은 인상마저 주었습니다. 이 민족에게 소망을 주었던 기독교가 어느새 걱정거리 집단, 말썽꾸러기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순교는 좋은 것이고 당연한 것이지만 분별없고 맹목적인 순교는 선교가 추구하는 인간 구원과는 동떨어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됩니다. 가난에 찌든 아프간에서 사는 새들을 보고 이웃나라 우즈벡 새들이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배고픈 아프간 새들은 어디서나 사고뭉치로 왕따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샘물교회 사건으로 수 천만 불에 해당하는 거금을 들여 인질을 빼온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을 바라보는 아프간 사람들 눈에는 그야말로 낚시 밥처럼 헐렁한 나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교는 화려한 말에 있지 않습니다. 비록 순교를 각오하고 선교지로 나간다고 할지라도 ‘선교는 순교다!!’라는 말조차 어줍잖게 내뱉으면 안 됩니다.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나가되 정직함이 뒤 따르지 않는 선교는 실로 두렵기조차 합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수께서 “아버지여, 할 수만 있거든 이 죽음의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요”라며 단장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의 기도를 정직한 기도의 모본으로 삼는 이유일 것입니다.

양국주 대표 / 열방을 섬기는 사람들

양국주  newsnjoy@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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