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이혼이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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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에도 이혼을 할 수 있었을까?


      숭유억불로 삼강오륜을 강조했던 조선시대의 전통은 오늘까지 이혼에 대해 배타적인 입장을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조선시대에도 이혼과 재혼이 가능했다.


      이혼을 할 경우 양반들은 증서를 써서 확인을 해줬는데,
      글을 모르는 일반백성의 경우 옷의 앞섶을 잘라 주는 것으로 표식을 했다.

      유학을 중시하는 양반의 경우 이혼은 거의 불가하지만 일부 가능할 때가 있었는데,
      대표적인 예로 심하게 부인을 구타하는 한 양반을 보다못해
      장인이 예조에 이혼을 시켜달라 상소를 한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조정에 국왕과 대신들이 모여 이혼을 시킬 것인지에 논의를 했는데,
      심한 가정폭력으로 이혼을 허락하며
      당사자는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죄로 관직에서 파면당했다.


      성종 16년(1485년)에는 경국대전이 편찬되며
      아예 국법으로 여성의 재혼을 금지하면서 양반인 여성들에게는 큰 굴레가 되었다.


      하지만 양인이나 노비들은 재가가 마음대로 이루어져
      무분별한 이혼과 재혼이 난무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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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런 조선시대에 재혼은 물론 대단한 남성편력을 지닌
      조선시대에 충격적인 자유부인이 있어 눈길을 끈다.


      태조 이성계의 종제(從弟)였던 이지의 처 김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씨는 빼어난 용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조선시대에도 어김없이 얼굴값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행실이 난잡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김씨는 처음 중추원 학사 조화에게 시집을 갔었다.
      근데 그 시작은 어처구니 없게도 남편인 조화가
      장모와 바람을 피우는 것을 눈치챈 것에서 시작한다.

      장모면 김씨 본인의 어머니일 텐데 놀라는 것도 잠시
      바로 허해와 간통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조화가 첩의 집에 가서 외박을 하자
      대담하게도 김씨는 허해를 집으3 로 끌어들여 거사를 치렀다.


      다음 날 새벽 조화가 집으로 와
      옷을 꺼내 입었는데 이상하게 옷이 잘 맞지 않았다.

      전날 밤 허해가 자신의 옷을 조화의 옷과 잘못 바꿔 입고 갔던 것이다.


      조화가 노발대발하며 김씨를 꾸짖으니
      당신이 뭘 잘 했다고 나에게 이러냐며
      만약 소문을 낸다면 당신이 먼저 수레에 오른 뒤에
      나도 뒷수레를 오를 것이라며
      협박을 했다고.


      당시 수레에 오른 다는 말은 처형장으로 끌려간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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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서로 바람피며 함께 살았던 조화가 죽자 김씨는

      태조의 종제인 이지에게 재가를 했다.


      양반 사회에서 매파를 끼고 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끼리 연애를 해 결혼을 결정한 것이라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그래서 정작 김씨의 자식들도 혼인 당일까지도
      혼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저녁때 혼례를 치르러 이지가 김씨의 집에 당도하자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어머니의 재혼을 막기 위해
      김씨의 아들이 이지의 목덜미를 쥐며 땅바닥에 뒹굴고 통곡했다.
      하지만 결국 대단한 김씨의 혼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첫날밤을 치른 후 김씨는 주변사람들에게
      이지가 늙은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하나도 늙지 않았다고 했다고.
      그 당시 김씨가 57살, 이지는 67살이었으니
      중년의 로맨스가 참으로 요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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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12년 후 이지가 부모님의 기일에 김씨와 함께 절에 묵으며
      불공을 공을 드리던 중 갑자기 죽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희한한 소문이 돌았던 것이
      김씨가 밤에 중과 간통을 하다가 현장을 들켜
      김씨를 이지가 때리고 꾸짖었는데
      화가 난 김씨가 이지의 고환을 잡아당겨 죽게 했다는 것이다.


      칠순이 다되어서도 이런 놀라운 소문의 주인공이 되다니,
      지금 이런 소식을 듣는다고 해도 황당한 일 일텐데
      조선시대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과거나 현재나 사람 사는데 남녀상열지사는 끝이 없나 보다.


      아무튼 이후 김씨는 주변사람들의 손가락질에 스트레스로
      실성한데다 세종이 두둔해 주어 강화도로 쫓겨나는 것으로 그쳤다고.


      출처: 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1
      그림출처: 신윤복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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