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신앙과 위험한 신앙 스데반의 지나가는 생각

 

교회를 어지럽히는 거짓 신앙이 있다.

특히 바른 복음과 바른 신앙을 갖지 못한 설교자는 거짓 신앙을 외친다.

 

1) 그리스도의 의가 아닌 인간의 의를 부추기는 가르침은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니다.이 말이 바른 삶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바른 삶이란 내 힘이 아닌 그리스도의은혜를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되어지는 것으로서 언제나 순종 그 자체가 기쁨이 됨을 말한다. 인간적으로볼 때 야곱은 에서보다 세상에서 말하는 의로운 삶을 산 것은 아니지만  야곱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살았고 에서는 인간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나 여호와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2) 영원한 것이 아닌 없어지는 것을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르침은 기독교의 가르침이아니다. 이 땅에서의 안녕과 부귀와 출세와 권력과 인기를 추구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는 것은 바르지 않다.오히려 믿음이란 모세처럼 세상의 것을 다 잃어도 영원한 것을 잡으려는 것이 바른 믿음이다. 세례 요한은 인생의 안일을 구하기보다 영원한 것을 붙잡기 위하여 목 베임을 당하였다. 아벨은믿음으로 인하여 가인에게 돌로 맞아 죽었다. 이들은 세상에서 보면 실패자요 다 잃은 자들이지만 하나님의 편에서볼 때 영원한 것들을 얻은 자들이다.

 

3) 여호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의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의 힘이나, 자신의 정신력 또는 세뇌, 잠재 의식, 주문, .. 등을 신앙이라고 오해시키는 가르침은거짓 가르침이다. 적극적인 말을 많이 하면 복이 된다는 "믿음 신학," "형통 신학"등은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찬 가르침들이다. 

 

4) 하나님이라는 막연한 가르침, 순종하면 이땅에서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 받는다는 인과응보적 가르침은 결국 타종교와 구별되지 못하고 복음의 차원까지 이르지 못한 종교 다원화적,도덕적, 교훈적 가르침이다. 초등학문에 속한것이며 율법적인 가르침으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는 복음적 가르침과 전혀 관계가 없다.이 땅의 대부분의 교회가 어린아이에게 도덕을 가르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도덕적으로 살도록 동기를 부여하는데 있어서 보통 이 땅에서의 형통과축복을 미끼로 삼는다. 이러한 가르침은 고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십자가의 도와는 거리가 먼 천박한 차원의유치원적 가르침이다.

 

5) 하나님의 주권 및 사탄의 역사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이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고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무한한 지혜 가운데 사탄의 역사가 있다. 특히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그 뜻이 깊다. 그러나 싸구려 거짓 가르침들은 인간 중심적으로 볼때 어려운일이나 싫은 일, 아픔, , 실패 등이 임하면 전부 사탄의 역사로 치부한다. 그리고 성령을 부르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불러 자신이 싫어하는 모든 대상, 모든 사건등을 제거하려고 한다. 고난을허락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찾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내가 잘되고 내가 안녕해야 한다는이기적인 자세가 사탄을 내어 쫓아야 한다는 거짓 가르침과 신속하게 연결된다. 이러한 가르침에 빠지면 너무 쉽게 모든 문제의 주범을 자신의 죄성이 아닌 사탄에게 뒤집어 씌운다.그래서 자신의 죄성을 절대로 수술받으려 하지 않고 언제나 사탄을 제거하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광적으로 기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거짓 신앙의삶은 온유함도, 깊음도 없는 주술적, 마술적, 신비적 신앙이다. 대부분의 이단 신학이 이러한 신비주의 계통에 빠져 있다.

 

 6)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돌아와야한다. 영원한 세계를 보며, 부활을 바라보며, 주실 상급을 바라며, 이 땅에서의 고난을 십자가의 고난과 영광으로 풀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한다. 매일의 삶을 주님과 순간 순간 동행할 수 있도록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항상 맺고 의식하며사는 삶을 배워야 한다. 

 

참으로 복음적 사고, 복음적 가르침이 희귀한 시대가되었다.

생명수 쉼터/한아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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