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인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을 때에,


광야생활을 40년을 하던 모세가 어느날 부름을 받는 장면입니다.

광야를 지나서 그날따라 어떤 산으로 갑니다. 성경은 그 산을 하나님의 산이며 호렙산 이라고 기록합니다. 애굽의 왕자의 생활을 사 십년간 누렸던 모세가 알수 없는 힘에 이끌려서 광야로 도망가는 신세가 됩니다. 그는 출생부터 험난하였습니다. 태어나자 마자 죽어야할 운명이었습니다. 애굽의 통치자는 이스라엘 민족을 고역과 노동과 억압과 착취를 함으로서 괴롭혔습니다. 특히 인구를 억제시켜서 더 이상 번성하지 못하게 하려는 계략을 사용하는데 남자가 태어나면 죽이라는 악법입니다. 요셉이 총리로 있던 꿈같은 시절은 벌써 희미한 전설이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종으로 신분이 급락한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애굽의 본토인이 아니라 기근을 피해서 집단적으로 이주해온 나그네였습니다. 그러므로 사실 그나라에서 받아준것 만으로도 감사할 지경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그렇게 시련의 때를 지나야 했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왜 이렇게 하시느냐 항의할 수 없는 주권이며 인간이 감히 접근할 수없는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와 신비입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 불가하지만 마침내 선으로 바꿔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극적으로

갈대 상자에 실려 떠내려 가다가 바로 왕의 딸에게 건짐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젖을 물려서 키울 유모를 구하였는데 기막힌 하나님의 섭리로 모세의 친 어머니가 발탁이 되고 죽을 운명속에서 오히려 품삯을 풍족하게 받아서 키우게 되었습니다. 모세에게 젖을 물리면서 그의 귓가에 들려주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소리를 듣고 자란 모세입니다. 어릴적부터 엄마의 찬양과 기도와 말씀을 듣고 자란 모세입니다. 그가 젖을 때고 바로 왕의 딸에게 양자로 입양을 하게 됩니다. 공주의 아들로 신분이 옮겨진 것입니다. 마치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그 피로 인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원수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옮긴것처럼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애굽의 문화와 왕궁의 삶을 살았던 모세였지만

그는 계속해서 자기의 형제들을 보아야만 했습니다. 자기의 신분은 애굽의 왕자였으나 학대받는 이스라엘 인들이 자기의 동포라는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종살이 하느라 하루도 편할날이 없이 죽도록 고생하는 히브리인들이 형제라는것을 알고 그는 어떻하든지 구하고자 했을것입니다. 그럴마음이 있었으니까 어느날 애굽 사람이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좌우에 아무도 없자 그를 때려 죽입니다. 아무도 없을 때 비로소 모세의 본심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동포들이 학대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알았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의 모든 고통과 아픔을 보시고 아시고 듣고계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모세는 그렇게

본 마음은 어떻게 해서든지 동족을 구원하고자 한것입니다. 아마도 애굽의 왕자로서 다음 후계자가 될정도로 충성했을 것이며 바로 왕에게 인정 받았을 것입니다. 그것만이 모세는 동족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음 통치자로서 모세가 왕이 되어서 이스라엘을 자연스럽게  구원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은 모세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정치적인 힘을 기독교인이 얻어서 복음을 전해야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당을 만들고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도 만들고 의장도 되고 총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거기다가 더 나아가서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 이 나라를 완전히 복음화 시키고 예수잘믿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도 성공해야 하고 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일류가 되고 최고가 되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예수의 가르침을 보면 낮아지고 섬기는자 되고 원수를 사랑하라 하고 악에게 대항하지 말라합니다. 한쪽 뺨을 때리거든 다른 쪽 뺨도 돌려 대주라 합니다. 철저하게 낮아지고 비우고 내어주라하는 가르침은 온데 간데 없고 최고가 되어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자 하고 가르칩니다.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만일 모세의 생각이 옳았다면 하나님은 당장에 애굽의 왕으로 모세를 새웠을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모세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살인자가 되도록 허락하시고 결국은 모세가 잡고 있던 애굽의 왕자의 권력을 놓게 만드십니다. 인간적인 허망한 생각인 왕이 되어서 정치적인 힘을 얻어서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려는 모든 모략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사람의 도움을 필요하지 않습니다. 유능한 전도자나 부흥사를 통해서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반드시 버려야할 것들 가운데 한가지는,

세상에서 교회가 힘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더 성장하고 거대해지고 세상적으로 인정을 받고 엄청난 영향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모든 분야에서 탁월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교회는 그러한 야망을 위하여 달려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과연 성경의 증언은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법은 없습니다. 사도들의 시대에서도 그래왔었고 후기 속 사도시대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공동체는 보이는 힘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가장 약하고 보잘것 없는 작은 자들을 통해 유지되었고 보존되었으며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지속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모세를 다루시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모든 인간적인 내용들과 사상과 가치와 의존하는 것들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시켰고 광야에 내동댕이를 친 것입니다. 모세의 혈기를 빼고 자존심을 빼고 자기 의를 빼버립니다. 그렇게 완전히 모세의 옛 성품과 옛 사람을 빼기 위하여 사십년의 광야의 삶이 요구된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힘을 다 빼버리고 나서 모든 자기의와 자기 생각의 어떠함을 포기하였을 때 비로소 호렙산으로 인도하시고 자신을 계시하여 나타내시는 하나님입니다.


교회가 성장이 안된다고 힘이 드십니까?

믿음으로 기도하며 나아가는데도 삶이 곤고하다고 원망하시는지요?

왜 믿는자들은 고난을 당하는데 믿지 않는 저들은 세상에서 형통하는가 하며 분을 내십니까?

왜 세상의 악한 자들과 불의한 자들이 큰소리치며 떠들고 있는데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하며 곤혹스러우십니까?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죽음으로 내어 몰려서 당하는 현실을 보면서 하나님이 모른척 상관하지 않으시냐 소리치십니까? 교회의 불의가 들어나고 치욕을 당하고 주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는데 왜 아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가 분통을 터트리시는가요?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다.

6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7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8    그가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그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 어느 누가, 그가 사람 사는 땅에서 격리된 것을 보고서, 그것이 바로 형벌을 받아야 할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느냐? 9    그는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악한 사람과 함께 묻힐 무덤을 주었고, 죽어서 부자와 함께 들어가게 하였다. 10    주께서 그를 상하게 하고자 하셨다. 주께서 그를 병들게 하셨다. 그가 그의 영혼을 속죄제물로 여기면, 그는 자손을 볼 것이며, 오래오래 살 것이다. 주께서 세우신 뜻을 그가 이루어 드릴 것이다.

우리가 하는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모든 뜻을 성취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새 계명을 듣고 믿으며 그대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믿는자가 이 땅에서 수고하고 당연히 해야할 사명은 그의 계명을 사랑하고 지키는 것이 전부입니다.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그의 뜻을 듣고 지켜 행하는 자로 우리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오늘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을 듣고 함께 묵상하는 가운데 제 안에 울리는 소리를 함께 나눈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반드시 우리는 광야를 지나야만 우리의 걸음을 하나님의 산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여러분의 광야는 지금 어디입니까?

글/빈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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