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의 여행(A Lifelong Journey)
 


집으로 가는 길은 한평생의 여행입니다
언제나 우리 자신의 일부는
방탕 속에서 헤매기도 하고,
또는 후회 속에 빠져
꼼짝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또 미처 깨닫기도 전에
우리는 탐욕적인 환상과
성난 생각들에 잠겨 헤어나지 못합니다

흔히 우리는 한밤중의 꿈을 통하여
우리의 방황을 깨닫습니다
기도, 금식, 그리고
돌봄과 같은 영적 훈련은
집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주는 길입니다

집을 향해서 걸을 때 우리는 그 길이
얼마나 먼 길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고,
또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길을 가는 도중에
이미 집에 와 있음을 발견합니다

-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우리의 십자가를 들어올리기

(Taking Up Our Crosses)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16:24)

 

예수님은 "십자가를 만들라" 또는
"십자가를 구하라" 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는 지지 않으면 안될 십자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만들거나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십자가는 이미 우리를 감당할 만큼 튼튼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그 십자가를 들어올려서
우리의 십자가로 받아들일 의사가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공부를 못할 수도 있고, 불구일 수도 있으며,
우울증을 앓고 있을 수도 있으며,
가족들 사이에 갈등을 겪고 있을 수도 있으며,
폭력이나 학대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모두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무시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으며,
부인할 수도 있으며, 또한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이 십자가를 들어올려서,
그것을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를 수도 있습니다

 

 

-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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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로 향한 움직임 (Downward Mobility)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위로 향하는 길이 되어야 한다고들 여러가지 방법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것, 각광을 받는 것, 새 기록을 수립하는 것 등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우리들을 신문의 제1면 기사로 실리게 하며, 그리고 우리들에게 돈과 명성의 대가를 가져다 줍니다
    예수님의 길은 이와는 현저히 다릅니다 그 길은 위로 향해 가는 길이 아니고, 아래로 향해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밑바닥까지 내려가며, 무대 뒤에 머물고, 말석(末席)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의 길은 선택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그 길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며, 예수님이 걸으셨던 길이며,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가져오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영적인 용기(Spiritual Courage)

    용기는 위험을 수반합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그랜드 캐년에서 뛰어내리는 행위,

    작은 원통 배를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는 행위,

    뉴욕의 세계 무역 쎈터 (World Trade Center) 건물

    양쪽에 매어 놓은 줄 위로 걷는 행위,

    또는 노젓는 배를 타고 망망 대해를 건너겠다고 나서는

    행위는 모두 용기 있는 행위들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위태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무모한 행동들은

    그 어느 것도 우리 인간의 중심부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행동은 모두

    우리의 신체적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그렇게 함으로써 유명해지고 인기를 얻으려는

    욕망에서 나온 것입니다

     

    영적인 용기는 이러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명성과 인기를 잃어버릴 위험을 무릎쓰고

    우리의 마음 한가운데서 솟아나오는 소망을 좇아

    행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용기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현세의 생명이라도 버릴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말

(Words That Come From the Heart)

우리 속에서 육신이 되지 않는 말은
'단순한 말' 로 남을 뿐입니다
이러한 말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실제로는 그러한 의사가 없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한다면,

이 말은 선을 행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해로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면,

이 말은 새 생명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의 근원지와 접촉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들은 '남을 즐겁게 하는 사람',
즉 단순히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기는 하지만

우리 내면의 생명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는 않은 말을 골라서 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 유혹을 강하게 받습니다

 

우리의 말이 확실히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키는 침묵속에 있습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공동체를 창조하는 말
    (Words That Create Community)

    말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말은 다른 사람이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하여 말을 할 때면,

    사람들이 이 말을 받아들이고, 또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듣는 사람이 필요하고,

    작가에게는 독자가 필요합니다. 삶으로 나타난 인간 경험,

    즉 육신이 말로 바뀔 때 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가 본 것을 얘기해 줄께.

    와서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들어 보렴.

    앉아 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얘기해 줄께.

    내가 누구를 만났는지 얘기해 줄께. 기다려 줘"

    라고 말할 때, 우리는 사람들을 끌어 모아 우리의 삶을

    그 사람들의 삶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말은 우리 모두를 모이게 하여 공동체 속으로 이끌어 갑니다
    육신이 말로 바뀔 때, 성령의 사람 다운,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인 집단의 일부분이 됩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육신이 되는 말
      (Words That become Flesh)
      말은 중요합니다
      말이 없이는 우리의 행동이 의미를 잃습니다
      의미가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말을 통하여 우리는 장래에 대한 전망, 통찰력, 이해 그리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말은 위로와 위안, 격려와 희망을 줍니다
      말은 두려움과 고립, 수치, 그리고 죄책감을 없애 버립니다
      말은 화해하게 하고, 단합하게 하며, 용서하며, 치유합니다
      말은 평화와 기쁨, 내적인 자유와 깊은 감사를 가져오게 합니다
      요컨대 말은 그 날개에 사랑을 태워 나릅니다
      사랑의 말은 가장 위대한 사랑의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삶에서 육신이 되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도 육신이 될 때,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이 된 말씀입니다
      예수님 속에서는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하나였습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우리가 말하는 것을 모두 실천하는 생활을 할 때에만,

우리는 말을 할수 있는 것일까요?

 

만일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침묵해야 할 운명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실천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경우에도,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해야 할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것마저도 우리가 위선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오직 우리 자신의 말이 더 이상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지 않을 때,

우리는 위선자가 되는 것입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어떤 사람도 자기의 이상과 비전을

완전히 실현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상과 비전을 강한 확신과

두터운 겸손으로 선포할 때,

우리는 차츰 우리가 말하는 진리 안에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말보다

언제나 큰소리로 말한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한, 우리는 우리의 말이

겸손한 상태에 머물게 되리라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성령의 열매(The Fruit of the Spirit)

      어떻게 성령이 우리를 통하여 모습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을까요?

      흔히 우리는 증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변호하여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흔히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얘기를 화제로 삼을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가족, 친구, 이웃과 동료들에게

      그들 가운데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것을

      확신시킬 수 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명백한 선교적인 노력은

      흔히 불완전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마음에 분열을 일으킵니다

       

      성령은 사랑, 기쁨, 평안,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그리고 절제와 같은 열매들을 통하여

      가장 설득력 있게 자신을 드러내 보입니다(갈라디아서 5:22)

       

      이 열매는 스스로 혼자의 힘으로 얘기합니다

      따라서 항상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들이

      성령을 믿게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질문보다는

      "내가 성령 안에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We are The Glory of the Lord)

    영적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로서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우리의 영과 성령이공동으로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로마서 8:16 참조)

     

    이 증거는 우리 생활의 모든 영역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먹던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던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

    (고린도전서 10:31)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자유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성령이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과 친교하면서 살 때에만

    우리는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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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증인(Witness of Love)

우리의 주위 환경이 우리들로 하여금

생존권을 확보하라고 충고하고 있는 때에,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세상이 우리에게 조건을 제시하기 전에는,

우리가 조건 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지식은

책이나 강의,TV 프로그램, 또는 세미나로부터

얻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지식은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들로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우리의 가까이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살거나,

또는 아주 옛날에 살았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증거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진리를 선포하고,

또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따라

행동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사랑하기(Doing Love)


      우리는 흔히 사랑은 느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기 전에 사랑의 느낌을 기다린다면,

      우리는 결코 사랑하는 법을 잘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의 느낌은 아름다운 것이고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 사랑을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는 일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영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말하며,

      또 행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대체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할 때',

      비록 다른 사람들이 사랑으로 대응할 수 없는 경우에도

      우리가 '사랑을 한다' 고 하면, 우리는 사랑의 느낌이

      사랑의 행동을 뒤따라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사랑의 작은 발걸음(Small Steps of Love)

     

    사랑을 아주 조금밖에 경험하지 못했는데도

    어떻게 우리는 사랑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랑으로

    작은 발걸음을 내디딤으로써 우리는 사랑을 선택합니다

     

    미소, 악수, 격려의 말, 전화 한 통화, 카드 한 장,

    포옹 한 번, 친절한 인사, 지지를 표시하는 제스처,

    한 순간의 배려, 도움의 손길, 기부금,

    이런 것들이 모두 사랑을 향해 내딛는 작은 발걸음입니다

     

    각 발걸음은 밤에 타는 촛불과 같습니다
    그것이 어둠을 완전히 가시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둠 속에서 우리의 갈 길을 안내합니다

     

    우리가 걸어온 많은 사랑의 작은 발걸음들을 뒤돌아보면,

    우리는 길고 아름다운 여행을 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모든 사랑의 원천(The Source of All Love)

        부모, 형제 자매, 배우자 , 애인,

        그리고 친구의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죽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랑이 깨어지고 제한된 형태로 옵니다

         

        사랑은 권력 싸움, 질투, 분노, 원한,

        그리고 심지어는 학대에 의하여 얼룩지고 있습니다

         

        어떠한 인간의 사랑도 우리의 마음이 바라는

        완전한 사랑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사랑은 매우 불완전하기 때문에,

        때로는 우리가 그것을 사랑으로 받아 드릴 수 없습니다

         

        인간의 불완전한 사랑 때문에 비롯되는

        상처로부터 파멸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모든 사랑의 원천이 하나님의 무제한적인,

        무조건적인 그리고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을 믿어야 하며,

         

        그리고 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살아 계신 성령의 선물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권능
        (Empowered to Receive Love)

        성령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바, 아버지"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알려 줄 뿐만 아니라,

        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하나님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보여 줍니다

         

        따라서 성령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우리 안에 회복시켜 주고, 이 관계로부터

        다른 여러가지 인간 관계의 의미를 찾도록 했습니다

         

        아바는 매우 친밀한 말입니다
        이 말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아빠"라는 뜻입니다

        아빠라는 말은 신뢰, 안전, 확신, 소속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친밀감을 나타냅니다

         

        이 말은 아버지라는 말이 흔히 상기시키는 권위, 권한,

        그리고 통제와 같은 뜻을 함축하고 있지 않습니다

         

        반대로 아빠라는 말은 가슴에 껴안는

        그리고 양육하는 사랑의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랑은 우리의 부모, 우리의 형제 자매,

        우리의 배우자, 우리의 친구 그리고

        우리의 애인에게서 받는 사랑을 총망라하며

        또 그것을 영원히 초월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성령이 주는 선물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하나님을 '아바'라고 부를 수 있는 권능

              (Empowered to Call God 'Abba')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다른 친숙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 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가지셨던 관계, 즉 서로 친숙하며, 두려워하지 않으며, 신뢰하고, 권능을 주는 관계를 우리도 하나님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이런 관계가 성령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며, 성령이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르는 것

              (로마서 8:15, 갈라디아서 4:6참조)은 우리의 마음속의 부르짖음, 즉 우리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솟아나오는 기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존재의 원천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어떤 갑작스런 통찰력이나 노력으로 얻어진 확신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영이 우리 영과 친교를

              나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주장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긍훌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4;16)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의 존재할 권리
              (Empowered to be God's Children)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행동하는 것 그대로가 바로 우리일까요?
              남들이 우리에 관하여 애기하는 그대로가 우리일까요?

               

              우리가 행사하는 권력이 있을까요?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흔히 이런 식으로 우리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예수님의 영은

              우리의 참된 영적 자아를 나타내 보여 줍니다

               

              성령은 우리가 성공이나 명성,

              또는 권력의 세계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 속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걱정의 노예로 만듭니다
              성령은 우리를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켜,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를 회복시켜 줍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시 두려워해야 할 종의 영을 받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로마서 8:15)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기도할 수 있는 권능(Empowered to Pray)

               

              기도는 성령이 주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언제 기도해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걱정합니다

               

              우리는 기도의 방법이나 기교에 관하여

              쉽게 걱정에 빠집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기도를 하는 자는

              우리가 아니고 우리 안에서 기도하는 성령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님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 모를 때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은

              성령님의 생각을 아십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26~27)

               

              이 말을 이해하면, 우리는 성령이 위로를 주는 분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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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할 수 있는 권능(Empowered to Speak)
              
              성령은 말할 수 있는 권능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흔히 우리를 두렵게 하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말을 해야 할 때, 우리는 신경을 쓰고 수줍어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안에 살면, 우리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 우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말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회당이나 괸리나 권력자들 앞에 끌려가도 무슨 말을 어떻게 변명할까 걱정하지 말아라 그 시간에 너희가 할 말을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다" (누가복음 12:11~12)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말할 준비를 위하여 초조해 하다가 너무도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예수님이 주신 성령이 우리 안에서 말하며, 또 설득력 있게 말한다는 진리를 믿으십시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선교지에서 온 편지 -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어제는 이곳 엔세네다에서 큰 집회가 열렸습니다

                엔세네다의 모든 교회들이 연합하여 '엔세네다를 위하여'

                기도를 하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시내 대학 운동장에 운집한 10,000 명 가량의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성시화대회'와 비슷한 집회였던 것 같습니다
                집회를 시작하며 국기에 대한 경례, 국가를 부르고

                하기식까지 거행하는 모습이 색다르게 보이더군요

                 

                이어서 밴드(찬양팀) 반주에 맞춰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손을 들고 찬양을 드립니다

                일행이 있어 중간에 빠져 나와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만...

                많은 감동이 있는 집회였습니다

                 

                특히 개회 초반에 모든 사람들이 손을 잡고

                기도를 드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불같은 성령이 임하기를,

                이곳의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어두어 가는 세상, 죄가 관영한 이곳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세상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

                이제 머지 않은 장래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지난 주 예배를 드린 교회의 목사님은 엘에이 인근,

                파사데나에서 오셨다고 합니다

                아버님은 이태리에서 이민오신, 이민 2세이신데 젊은 시절에는

                의류업체에서 일을 하신 경력도 있으십니다

                 

                약 20여 년전 이곳에 오셔서 개척교회를

                시작하신지 17년 째라고 합니다

                사모님은 완벽한 이중언어를 구사하시니

                목사님이 영어로 설교를 하시면 말 그대로 동시통역으로...

                 

                찬양을 드리며 에배를 시작하는데 참 은혜롭게 찬양을 드립니다
                30여 분 다양한 찬양곡으로...기타와 탬버린, 하모니카...

                넘치지도 않고....절제와 간절함...

                많은 기도로 준비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곳곳에 숨겨 놓은 하나님의 백성들, 일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귀한 것 아낌없이 드리는 이들,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이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

                 

                이제 3일이 지나면 8월이 지나고 9월이 됩니다
                세월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쏜살같이...'날아가나이다' 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의미있고 뜻있게 보내면 좋겠습니다
                주님안에서...
                승리!!!

                 

                글/ 김만니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호흡

                  (God's Breath Given to Us)

                 

                살아 계신 그리스도가 내게 표현 되는 것은

                 예수님에게 충만했던 것과 같은 성령이

                우리에게도 충만해 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아버지인 하나님은 같은 호흡,

                즉 성령을 호흡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예수님과 하나님을 하나가 되게 하는

                밀접한 친교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

                (요한복음 14:1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주고자 하신 것은

                바로 이 하나 됨입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성령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친교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의 같은 친교 속에서 살며,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임재하시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옮긴 글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그리스도로 옷입기
                  (Being Clothed in Christ) 믿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27)
                  그리고 그는 또 "주 예수 그리스도로 무장하십시오" (로마서 13:14)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로 옷입는다는 것은 우리의 불행을 덥을 수 있는 외투를 입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을 변화시켜서,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십니다" (갈라디아서 2:20) 라고 말한 것을 우리도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살아 있는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만드신 육신이시며, 우리의 육신 가운데서 그 자신을 계속하여 나타내십니다 진정한 구원은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되는 것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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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처럼 되기(Being Like Jesus)


                 우리는 번번히 예수님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으려 합니다.


                "예수님이 아시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해.
                예수님이 하신 것을 우리는 할 수 없어"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분과 우리 사이에
                거리를 두지 않으십니다
                 "내가 너희를 친구라고 부른 것은
                내가 아버지께 들은 것을 모두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5:15) 라고 말씀하셨으며,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 큰일도 할 것이다 (요한복음 14:12)

                참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아셨던 것을 우리가 알고,
                예수님이 행하셨던 것을 우리가 행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진실로 우리는 이 부르심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또는 예수님을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
                떨어져 계시게 하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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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에 계신 예수님
                  (Jesus is the World, Not of it)

                  우리는 팔복에서 예수님의 자화상을 봅니다

                  처음에 이 그림은 가장 매력이 없는 그림인 것처럼 보입니다

                   

                  누가 가난하고, 애통하며, 핍박받기를 원하겠습니까?
                  진실로 온유할 수 있으며, 긍휼히 여길 수 있으며,

                  마음이 청결할 수 있으며, 화평케 할 수 있으며,

                  그리고 항상 의에 관심을 쏟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 남아야 하며

                  살아 남기 위하여 세상적인 방법을 이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세상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 있는 방법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본을 따라 생활하면

                  새로운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것이 될 것이고

                  이 지구는 우리의 유산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위로를 받고 충만해질 것이며,

                  긍휼한 마음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확실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정받을 것이며,

                  단지 내세에서가 아니고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참으로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마태복음 5:3~10참조)

                  이것이 예수님의 생애의 본을 따라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데 대한 보상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핍박을 받으신 예수님

                (Jesus is Persecuted)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들, 예수님은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가난하고, 온유하며, 애통해 하시던 예수님,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시던 예수님, 긍휼히 여기시며, 마음이 청결하시고 화평케 하신 예수님, 그분은 이 세상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하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주님은 기성 질서에 대한 위협이었으며, 이 세상의 통치자로 자처해 온 사람들을 언제나 안절부절하게 만든 장본인이십니다
                예수님 자신은 누구도 비판하신 일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비판하는 사람으로 생각했고, 누구도 규탄하신 일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누구도 심판하신 일이 없는데도 그를 본 사람들은 심판을 받은 것으로 느꼈습니다 이 사람들의 눈에 예수님은 용서해 줄 수 없는 사람이었으며, 처형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살려 주는 것은 그들이 죄를 자백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기 따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참되게 살려고 노력할 때, 우리가 항상 사랑과 존경을 받을 것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배척당할 것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화평케 하시는 예수님
                  (Jesus is a Peacemaker) 하나님 아버지의 축복받은 아들인 예수님은
                  화평케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화평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단순히 조화나

                  마음의 평정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화평은 하나님이 무상으로 주신

                  편안함이 충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안을 주고 간다

                  이것은 내가 너희에게 주는 내 평안이다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르다"

                  (요한복음14:27)

                   

                  화평은 샬롬(Shalom), 즉 사람이 개인적으로

                  또는 공동체 속에서 누리는 생각과 마음의 평안,

                  그리고 육체의 평안을 말합니다

                   

                  그것은 전쟁으로 파괴된 세상 한복판에도 존재하며,

                  심지어는 해결되지 못한 문제, 그리고 증가하고 있는

                  인간들의 갈등들 가운데에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형제 자매를 위하여

                  내어 던지심으로써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은 쉬운 화평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화평은 영원한 것이며,

                  또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우리는 화평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의 생명을 내어놓을 의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
                

                 


                                                  마음이 청결하신 예수님

                                           (Jesus is Pure of Heart)

                하나님이 사랑하는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분입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한 가지만을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행하고 말씀하신 것은

                모두 하나님께 복종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행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무것도 스스로 말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
                내가 항상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분은 나를 혼자 버려 두지 않으셨다" (요한복음 8:28~29)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분열이라고는 없습니다
                이중적인 동기도 없고

                비밀리에 무엇을 하겠다는 의도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로 합쳐져 있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는 완전한 내면적인 통일성이 존재합니다
                예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은

                마음이 청결하게 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청결함이 예수님께 진정한 영적 비전을 주었으며,

                또한 우리에게도 그것을 줄 것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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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축복받은 아들이신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긍휼함을 보이는 것은 불쌍히 여기는 것과 다릅니다

                     

                    불쌍히 여기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감이 있음을 의미하며,

                    심지어는 사람을 낮추어 보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한 거지가 당신에게 돈을 달라고 해서 불쌍히 여긴 나머지

                    당신이 돈을 주었다면, 당신은 긍휼을 베푼 것이 아닙니다

                    긍휼은 동정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긍휼은 동등하게 되겠다는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낮추어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들 중 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셔서

                    우리와 함께 깊이 느끼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인이라는 성에 사는 한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리신 것은
                    고통스러워하는 그 과부의 슬픔을 예수님 자신이

                    가슴속 깊이 느끼셨기 때문입니다(누가복음 7:11~17 참조)

                     

                    우리의 형제 자매에게 긍휼을 베푸는 방법을 배우고자 하면

                    예수님의 본을 따르십시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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