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후크마의 ‘개혁주의 구원론’에서 발췌

 

 

제4장.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구원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이 갖는 상호 연관성은 너무도 명백한 것이다.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속에 내주하실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본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는 성경구절들을 찾아봄으로 분명해질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될 때 비로소 구원에 이르는 것이며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을 때만이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범위와 폭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이 연합은 범위와 폭에 있어서 영원하며 끝이 없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그의 백성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로 말미암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을 때 이미 시작되었다. 더욱이 이 연합은 역사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 행하셨던 구원역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마침내 이 연합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 위에 태어난 이후 그들에게 실제로 적용되어졌으며, 그들의 평생에 걸쳐 지속되며 다가올 세상에서 그들이 온전히 영화롭게 될 때까지 계속 되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그 뿌리를 하나님의 택정하심에 두고 있으며, 그 근거를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두고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실제적 적용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3. 그리스도와의 실제적 연합

 

(1) 우리는 제일 먼저 중생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 간의 연합이 실제로 성취되는 것은 중생의 임을 알게 된다. 이 연합은 우리 구원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이 연합은 구원의 전 과정을 지탱해 주며, 채워 주며 온전케 한다.

(2)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이 연합을 소유케 되며, 이 연합을 통해 계속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91~101p)

 

 

5. 성령세례

 

 

....오순절이나 신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은 성령세례가 중생 이후에 나타나는, 또한 중생과는 구별된 하나의 경험이라고 주장한다. 이 세례는 모든 신자들이 추구해야 할 그 무엇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이상에 언급된 오순절 계통의 성령세례 교리에 대한 어떠한 성경적 근거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

 

고린도전서 12:13에서 바울은 성령세례가 중생을 뒤잇는 사건이요, 그러기에 중생과는 구별되는 경험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될 사건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오순절 계통의 가르침과 함께 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라는 진리 이상의 대답은 있을 수 없다. 바울은 이 진리를 증명하고자 여기서 이렇게 확언하고 있다.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약관화하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다. 여기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 함이 중생 - 즉 중생은 하나님의 주권이요, 이를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고 그의 몸이 되었음 - 과 동일한 것으로 기술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과 우리들에게 “너희는 중생 이후의 경험으로서 성령세례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미 성령으로 세례받은 자들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6. 성령 충만

 

 

....중생시에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성령충만함 가운데 계속적으로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의 경험이 이 사실을 잘 확인해 주고 있다. 신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갈 수도 있고, 성령을 슬프시게 하기도 하며, 때때로 교만해지고 분쟁가운데 빠지며, 사랑이 없어지고 자기 탐닉에 빠질 수도 있다. 우리들 대부분의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성령을 소유하고 있으나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소유하고 계신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이 필요한 것은 소위 “성령세례”라 불리는 중생 이후의 경험 혹은 개종 이후의 경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으로 더욱 채워지기를 간구하는 일이다.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산다는 것은 성령을 기다리며 그에게 우리를 위해 해주실 것을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성령께 물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날마다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성령은 말씀을 떠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어떻게 성령에 따라 살 수 있는가를 잘 알게 될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말하자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산다는 것은 육신적 소리들을 잠재우고 육신적 미움의 힘들을 누르며 모든 충동적 감정들을 억제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성령에 의해 인도되고 그가 말씀을 통하여 자기를 나타내실 때에 그 분의 음성을 들으며 계속적으로 그 분에게 삶을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의 힘으로 산다는 것은 필요한 영적 능력을 얻기 위하여 그에게 기댄다는 뜻이다. 또한 성령께서 모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에 적합한 힘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일이며, 우리가 필요할 때마다 기도를 통하여 그 능력을 간구하는 일이며, 날마다 겪는 모든 문제들을 만날 때마다 믿음으로 그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분과 계속적인 접촉을 통해서이다. 건전지로 작동하는 라디오와 전기로 작동하는 라디오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후자는 항상 전력의 근원에 플러그가 꽂혀 있어야만 작동된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원리는 건전지 원리가 아니라 플러그를 꽂는 원리에 의해서이다. 우리는 매순간마다 그 분이 필요하다.

 

(80~90p)

 

안토니 후크마의 ‘개혁주의 구원론’에서 발췌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
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