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미친 듯 그립다

                          김성훈

나는 가끔,

아주 가끔,

스무 살의 나이가, 미친 듯이 그립다.

이십 대 초반의 나이가, 미친 듯이 부럽다. 

 

그전에는 애어른, 지금은 어른애.

나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

머리는 더 현명해지지만 마음은 아이가 된다.

 

그러나 이십 대 초반은

그 나이 그대로이다.

미국 passport만 있으면

세계가 내 동네 뒷마당 같을 것 같았다.

 

내가 미친 듯 사랑했던 그 여인은 어디로 갔을까?

아직도 동부 이촌동에 산다. 그리고

그 서울의 뒷골목이 그립다.

알 것 같으면서도 양파 속 같은 동네의 뒷편들.

 

그 많은 부담을 안고서

허허 웃으며 술 마셨던 때,

지금은 그렇게 마셔도 잠만 온다.

 

가슴이 답답해지도록

풀어놓지 못한 이야기들,

최루가스에 구토물에 빗물에 피에 눈물에

 

현정이와 수학 과외를 끝내고

걷던 삼청동 골목에 가서

인사불성이 되어 길거리에 쓰러지고 싶다.

이십 대 초반처럼.

 

미안하다, 약속을 못 지켜서,

그리고 신문에 날 정도로 소문이 나

돌아갈 수도 없어서.

 

그냥 이렇게 죽고 싶다.

 

그때가 미친 듯 그립다.

그때가 미친 듯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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