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여자와의 대화가 가능할까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66권으로 진리만 증거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먹지 못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는 없을까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매스 커뮤니케이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대량의사전달체계에 길들여 진 현대인들입니다. 쌍방향이 아닌 일방적인 의사전달이 가져다주는 문제점을 인터넷이 어느 정도는 해소해주는 것같습니다. 소위 말하는 댓글달기가 그에 속합니다.

예수님과 여인 사이에 대화는 있으되 소통은 없습니다. 알아먹지 못 하는 자에게 더 이상 말을 해봤자 입만 아픕니다. 그래서 주님은 아래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당장)돌아가라,불러라 네 남편을,그리고 여기 오라"(직역-구둣점은 필자가 임의로 찍음)

우리글 성경은 원문의 글맛을 잘 살리지 못 하고 있습니다. 아주 젊잖케 이르시는 주님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뿐입니다. 젊잖을 잃지 않으면서도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주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명령어가 세 번이나 나옵니다. "돌아가라 불러라 오라"

여자는 돌아갈 곳도 부를 남편도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다시 이 곳에 오라고 해도 올 수 없는 아니,올 이유가 없는 그런 여자였습니다. 그만 기가 죽어 꼬리를 내립니다. 겉은 멀정해도 속은 썩을대로 썩은 자신의 내면을 들킨 기분입니다.

'나는 남편이 없어요(나는 남편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번 대화는 성과가 있습니다. 여자가 비로소 알아먹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주여 제가 인제사(지금) 보니까 선지자시네요"(의역)(여기서 '주'란 여자가 남자를 부를 때 쓰는 일반적인 호칭입니다) '아까는 제가 몰라봤습니다. 여느 유대인과 바를 바 없는 분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다소곳해진 여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회개란 입에 발린 말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심으로부터 돌이켜야 참 회개입니다. 여자의 진심은,앞서 자기가 한 말-아니꼽게 여기고 말꼬리 잡고 대들고 비아양댄 것-에 대한 잘못을 (비록 표현은 안 했을지라도)알고 돌이켜 상대를 선지자로 인정함으로 나타납니다.

주님은 몰라서 저지런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입니다. 그러나 무지가 면책사유는 될 수 없습니다. 무지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죄악입니다. 그런데 많이 알고,잘 안다고 하면서 가르치는 선생이 잘못하면 그 때는 형편이 달라집니다. 주님은 죄많고 한많은 인생을 살아온 이 여자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이혼을 다섯 번이나 한 여자입니다. 여섯 번째 남자와 동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습니다. 비록 이 여자가 그런 남성편력을 가지고 있고 무지하여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랬을지라도 주님은 이 사마리아 여인을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오래 참으시면서 말입니다.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없다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 할 것입니다.

그리고,우리는 섣불리 단정짓기를 예수님이 이 여자에게 반말로 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글 성경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나 생판 처음 보는 여자에게 반말을 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람어로 말씀하시고 헬라어로 기록된 위 본문이 가리키는 그 현장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이제 여자는 자신이 평소 가졌던 관심사에 대해 물어봅니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만)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위 본문에는 "예배"란 단어가 무려 열 번이나 나옵니다. 그런데 "구원"이라는 단어는 딱 한 번 나옵니다. '유대인에게서 나오는 구원'이란 말씀이 열 번의 "예배"란 말씀을 견인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앞서 여인과의 대화에서 "생수(살아 있는 물),"하나님의 선물","내가 누구인지","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등등을 언급하신 이유는,"예배"와 "구원"과 연관지어 미리 말씀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배가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구원)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해 주고자 하심인 줄로 믿습니다. 예배(제사)로 얻게 되는 그 선물은 "내가 누구인지"를 계시하심으로써,다시 말해 예수님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심으로써 앞서 말한 "내 말을 믿으라"고 하신 대로 나를 믿으면(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를 믿으면) 하나님의 선물(구원-영생))을 받게 된다는 의미로 말씀하고 있는 셈이지요.

다시 세겜으로 여행을 떠나야 할 싯점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가나안 땅 세겜에 도착하여 모레 상수리나무 아래 단을 쌓습니다. 아브람이 세겜에서 비로소(처음으로) 단을 쌓은 것이 아닙니다. 아벨의 제사,노아의 번제 그리고 조상들이 전해준 대로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단을 쌓은 아브람입니다.

그 뒤 야곱이 이 세겜에서 동일하게 단을 쌓습니다. 모세는,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차지하면) 이 세겜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라고 신명기에서 두 번에 걸쳐 강조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 기록된 분부를 하나님 말씀으로 받들어 아브라함이 처음 단을 쌓은 곳인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 아래로 가서 그렇게 합니다. 이 때 눈여겨 볼 말씀은 에발산에 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다는 점입니다. 절반의 지파는 저주를 위하여 에발산에 서고 나머지 절반의 지파는 축복을 위하여 그리심산에 섰었지요. 저주를 위해 선 에발산에 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말한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다"는 말은 중간기 시대 혼혈잡족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심산에 성전을 건축하고 제사한 것을 일컫는 말이 아닙니다. 기록자 요한은 족장시대와 가나안 정복시대 때 선조들이 지낸 그 제사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 예배의 가장 큰 특징인 제사제도를 살펴봄이 본문 이해에 도움을 줍니다. 제사는 제사장과 제물로 구성됩니다. 아벨의 제사나 아브라함의 제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는 그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그리고 구약의 제사는 그림자요 모형일 뿐입니다. 오실 구원자(여인의 후손으로서 메시야)는 '여호와의 고난받는 종(The suffering servant of Jehovah)'으로 오실 것임을 이사야는 잘 예언하고 있습니다. 출에굽기 12장에 '여호와(주)의 유월절 어린양'으로 이미 예표되어 있음이 그 이유이지요.

그래서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에 나오는 세 번의 유월을 다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주(여호와)의 유월절'이라 하지 않고 "유대인의 유월절"이라고 부르고 있습에 유의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지들만의 유월절임을 드러내고자 함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실로, 자신의 몸을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써,"유대인의 유월절"을 '하나님의 유월절'로 되돌려 놓으셨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실 메시야(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몸을 친히 제물(어린양)로 드릴 것임을 구약 전반에 걸쳐 계시하고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또한 유대지파인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임이 야곱의 유언(예언)과 다윗언약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옛 언약의 성취자로서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님은 다윗의 아들(자손)로 오셨기에 "...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자신이 죄인으로서 죄사함을 받기 위하여 자신과 가족 내지는 백성의 공동체를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죄사함을 받아야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섬길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바른 제사는 필연적으로 섬김을 수반하게 되지요. 신약시대에,예배란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제사에 근거해서 죄인들이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얻는 회개로부터 출발하여 그 분의 백성으로서 섬김의 자리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섬김이란 단어는 일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 백성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에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여호수아의 고별설교 중 여호수아서 24장 14절로 26절까지를 차분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섬김(아바드-serve)이란 단어가 계속 등장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에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로 시작되는 본문입니다.

요한복음 6장 2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아 믿는 것이 곧 제사(예배)란 말입니다. 그런 자를 하나님이 찾으시되 제사에 담긴 영적 의미와 진리에 따라 바르게 믿는 자를 찾으신다는 말이지요. 그래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선물로 받게 될 테니까요.

결국 예배(제사)란,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그 의미를 완전히 드러냅니다.요한복음 4장 본문은 이를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과연 여인의 말 대로 그리스도가 오셔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되 삶과 죽음,부활로써 친히 가르쳐주셨습니다. 모세와 선지자와 시편에 나오는 모든 예언을 따라 그리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내가 기다...(에고 에이미)"라고 자신을 계시하셨던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영생)을 선물로 받아 그 분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외연이 확대됩니다. 아브라함은 약속만 받고 그 땅(세겜) 한 평 차지하지 못했었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씨)이신 우리 주님은 땅(천국-하나님 나라)를 차지하셨습니다. 이제,그 세겜 땅에서 예배(제사)의 의미를 밝히 드러내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차지하신 땅(천국)에 거하는 자마다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심길 수 없습니다.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모임 예배는 물론이요 삶으로 드리는 제사,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사는 삶이 곧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오늘도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39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이상히 여겼다는 말은 놀랐다는 말입니다. 어안이 벙벙해서 말이 안 나옵니다. '아니? 우리의 호프 랍비께서 사마리아인 그것도 하찮은 여자와 담화를 나누시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목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여자와 담화하는 것을 금했다고 합니다. 그래서,묻고는 싶었지만 아무도(한결같이) 묻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둔 채 동네에 들어가서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비록 남편은 불러 올 수 없는 처지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불러 올 수 있습니다. 메시야를 만난 여인의 행동과 말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를 떠올리게 합니다.(반면에 제자들은 여전히(아직까지는) 예수님을 랍비라 부릅니다. 나중에는 "주"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부활후에는 "나의 주시요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편, 제자들은 그 사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라고 합니다. 지들은 이미 다 먹고 왔습니다. "잡수소서"가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모시고 함께 먹어야지그래 음식 싸들고 와 내밀면서 "랍비여 잡수소서!"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믿고(영접하고)서는 자기들과 유하시기를 청합니다. 유한다는 말은 함께 먹고 마시고 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주님은 유대인들이 개 취급했던 사마리아인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교제하십니다. 참으로 죄인들의 친구이십니다. 유대주의에 물든 제자들과는 얼마나 다르신지요!

사마리아 여인은 메시야를 만나자마자 물동이도 내팽개친 채 동네에 들어가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데 제자들이 한 일이라고는 고작,'12명이 밥 1인 분 싸가지고 온 일'이 전부였습니다. 전도(예수님을 전하기)는 커녕 사마리아인들과 말도 섞지 않았을 넘(?)들입니다. 입 꾹다물고. 그러나 씹어먹기 위해서 상.하악골은 부지런히 움직였겠지요.

이런 제자들을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성경은 신앙위인들의 전기가 아닙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임을 철저히 드러낼 뿐입니다.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참되시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사실 오합지졸에 불과한 자들이었습니다. 그 면면을 살펴보십시오. 좀 괜찮은 자가 있는 지를. 그런 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고 나니까 믿음의 용사로 변합니다.

위 본문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제발 전도해라. 너희들의 전도(예수님의 제사-십자가의 복음의 선포))를 통해 하나님은 죄인찾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 벌써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복음전도로 영혼을 살리는 일이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한 사람도 안 데려 왔구나!'

이 지점에서, 이들이 정말 주님의 제자가 맞습니까? 그러면 우리의 모습은 제자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죄많은 그 여인은 먹고마시는 문제 팽개치고(물동이 버려두고) 주님을 증거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죄많은 여인을 통해 하나님은 죄인 찾으시지 않았습니까? 정말 메시야를 만난 자들은 입만 살아서 설치지 않습니다. 온 맘과 몸으로 주님을 증거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의 제사입니다. 다시 말해 회개하는 자들을 받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죄인 찾아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4장 후반부는 하나님이 어떻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지"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기를 원하십니까. 삶을 통해, 복음 전도를 통해 하나님이 찾으시는 자를 찾아나서십시오. 여러분들이 아무리 주일날 예배를 잘 드리고 교회에 열심히 봉사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을 통해서 구원받는 자가 없다면 참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요4장의 요지를 따른다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진정 메시야를 만났다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전도입니다. 그것이 삶으로 하든, 입술로 하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구원받는 자들이 많아지기를 축복합니다.

출처: USA아멘넷/지혜자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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