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를 합법화하는 우리 시대의 다양한 주제들에는 하나의 중심적인 핵심이 있다. 다양성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이교적 문화 속에는 종교적인 이교주의(paganism). 즉 땅과 여신에 대한 숭배라고 하는 심오한 이념적인 통일성이 감추어져 있다. 사도바울은 이 종교를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섬기는 것이라고 묘사하였다(롬1:25). 그러나 일원론(monism)으로 알려진 이교주의의 외적 다양성과 미묘한 차이점들을 뛰어넘어 내적인 통일성을 간파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일원론이란 모노(mono)라고 하는 뜻으로 '하나'를 의미한다. 즉, 하나의 삶의 철학으로서 일원론은 우리 시대의 교회를 점유하려고 한다. 일부는 세속적이며 일부는 '기독교적인'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것들은 갱신된 지구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 준다고 주장하며 대부분의 운동 속으로 파고 들었다. 일원론의 상징은 원이며, 그것의 목표는 원으로서 지구를 하나로 둘러싸는 것이다.
다음의 다섯 요소들은 일원론의 형태를 요약해 준다.
1. 모두는 하나이고 하나는 모두이다.
이것은 일원론의 본질이다. 우주는 질적으로 다르지 않는, 서로 연관있는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이다. 신은 우주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 자체가 우주이다. 기독교의 '창조주, 피조물'의 구분은 제거되었다. 일원론의 큰 '0'은 하나의 원이다. 하나님을 포함한 모든 것이 그 원 안에 있다. 고대의 상징이었던 원이 마법과 힌두교 의식과, 여신 숭배 등에서 재등장하였다. 심지어 '세계 종교 회의'의 상징도 원이었다.
이교주의는 관용과 인권이라는 감상적이고도 매혹적인 색상의 의복을 입고서 점차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것이 성공하는 것은 기독교의 종말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새로운 영성'의 궁극적인 원천은 이교주의이기 때문이다.
2. 인류는 하나이다.
만일 모든 것이 하나라면 인류는 '신적 단일성의 현현'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창조한 우주적 에너지의 응고체이다. 인간이 신성하고 그럼으로써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하는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의 영적 발견을 위해 분주한 탐구를 하게끔 한다. 신비주의가 진정한 영성을 대체해 버린 것이다. 신성의 현현으로서 각 개인이 자아는 바로 진리의 원천이다. 관용과 상대성은 필수적인데, 이는 모든 사람의 진리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치관은 악에 대하여 우월한 선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직관에 의존하여 자기 자신과 자유, 그리고 힘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모든 종교는 하나이다.
이러한 에너지와 신성과 진리의 거대한 확장 속에서는 어떤 종교도 배타적인 진리를 주장할 수 없다. 그 가운데 정통 기독교는 이러한 용서할 수없는 죄를 어김없이 범하기 때문에 지구의 종교적, 사회적 조화를 이루는 데 주요한 방해물로 취급받는다. 종교들은 반드시 하나의 전지구적인 , 연합된 혼합주의로 섞여야만 한다. 사실 세계의 종교적 다양성의 표면 아래에서 여러 신조들은 상호 교환이 가능하며, 영적인 경험들은 동일한 신비적 실재와의 연합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종교 다원주의를 말하고 있다.
4. 하나의 문제
만일 모든 것이 하나라면, 가장 큰 문제는 선과 악, 옳은 것과 그른 것, 진리와 오류, 하나님과 사탄, 남성과 여성, 동성애와 이성애, 인간과 동물, 이교와 기독교, 합리와 불합리 등을 구분 지음으로서 실재를 적대적인 두 진영으로 분리시켜 놓는 것이다. 일원론자들은 그러한 서구 기독교 문화의 전형적인 구분이 인류를 마비시킴으로서 인간이 전체에 속하였다는 것을 더 이상 지각할 수 없도록 영적 기억상실증으로 몰아넣었다고 주장한다. 악이란 초월적인 창조주에 대항한 비극적인 도덕적 반역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망각이다.
5. 탈출을 위한 유일한 수단.
직관과 명상을 통한 영적 지각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한 직관은 무한한 원의 중심에 있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바라보는 비합리적, 신비적 경험을 통해 온다. 자신의 무한한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자아는 필연적인 지고의 위치를 차지한다. 그 경험은 명상이나 약물을 통하여 발생한다. 그러한 명상은 올바로 수행되기만 하면, '정신, 영혼'으로 하여금 육체의 제한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신성하며 전체와 연합되어 있는 자아에 대한 지식의 경험 속에서 자신과 지구의 구속이 가능해진다고 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경험은 창조주의 계획과 대치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해로운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오한 해방과 자유의 느낌을 가져다 주는 '허상의 구원'을 제공한다.
그리고 정신이 모든 생각을 비움으로서 정신의 물질에 대한 승리가 일어나는 순간에 인간은 자신의 신성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에 의한 구원은 여기에서는 아무런 기능도 가지지 못한다. 각자는 각자의 구원자인 것이다. 서구의 기독교의 골격과 결합한 이 동양적인 일원론은 기독교 유신론 또는 그것이 파생시킨 문명과 직접적으로 대치된다. 여기에는 중립이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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